陳培培. 從一件西周原始青瓷豆 揭開浙南石棚墓群神秘面紗. 溫州網. 2019-12-06.
陈培培. 从一件西周原始青瓷豆 揭开浙南石棚墓群神秘面纱. 温州网. 2019-12-06.
내용인용
이 서주西周 시대 원시청자 ‘두豆’는 1993년 서안시瑞安市 신긍구莘塍區 정전향汀田鄉 대석산岱石山 서강산西崗山 29호 무덤에서 출토되었다.
오현군伍顯軍 연구원에 따르면, 이 원시청자 ‘두豆’가 발견된 29호 무덤은 고인돌 무덤[석붕묘, 石棚墓]이다. 고인돌 무덤은 일반인에게는 특별하고 신비한 무덤이다. 땅을 파서 만든 널무덤[토광묘, 土坑墓]이나 벽돌무덤[전실묘, 磚室墓]과 비교하면 수량이 적고 특정 지역에서만 발견된다.
從一件西周原始青瓷豆 揭開浙南石棚墓群神秘面紗
서주 시대 원시청자 ‘두豆’ 한 점으로 절강 남부 고인돌 무덤의 비밀을 파헤치다
온주망溫州網 2019-12-06 07:24:00
“豆”字在古代不是代表如今的豆類植物,它是一種盛東西的器皿。
옛날에 ‘두豆’라는 글자는 오늘날의 콩 종류 식물을 뜻하는 말이 아니었다. ‘두豆’는 물건을 담는 그릇의 한 종류였다.




溫州網訊 聽到”豆”這個字,你會想到什麼?”黃豆””綠豆””紅豆””豌豆”…… 但是,”豆”字在古代不是代表如今的豆類植物,它是一種盛東西的器皿,大多是陶製的,也有木製、漆製和青銅製品。本期《溫州寶藏》要說的”寶貝”,是溫州博物館歷史廳內正在展出的一件西周原始青瓷豆。這件西周原始青瓷豆是瑞安市博物館的館藏,由它或許可以揭開浙南石棚墓群神秘的面紗。
온주망溫州網 보도 – ‘두豆’라는 글자를 들으면 무엇이 생각나는가? 아마 ‘노란 콩’, ‘녹두’, ‘팥’, ‘완두콩’ 등을 떠올릴 것이다. 하지만 옛날에 ‘두豆’는 지금의 콩 종류를 말하는 것이 아니었다. ‘두豆’는 물건을 담는 그릇으로, 대부분 흙으로 빚은 도기였고, 나무나 옻칠, 청동으로 만든 것도 있었다. 이번 《온주보장溫州寶藏》에서 소개할 ‘보물’은 온주박물관溫州博物館 역사관에 전시 중인 서주西周 시대의 원시청자 ‘두豆’이다. 이 유물은 서안시瑞安市 박물관 소장품으로, 이를 통해 절강浙江 남부에 있는 고인돌 무덤들의 비밀을 밝힐 수 있을지도 모른다.
유물의 유래 前世傳說
此”豆”在瑞安被發現
이 ‘두豆’는 서안瑞安에서 발견되었다.
這件西周原始青瓷豆是1993年在瑞安市莘塍區汀田鄉岱石山西崗山29號墓出土的,高3.4釐米、口徑9.7釐米、足徑5.3釐米。細看這件青瓷豆,它呈直口,口沿微微內斂;直腹,比較淺,下腹部弧收;內底寬平;圈足較矮,外撇。外壁口下滿飾6周以上不規則的細弦紋。內外壁施青綠略泛黃褐色釉,內壁滿釉,外壁施釉不及底;施釉極不均勻,有積釉、剝釉和脫釉現象。內底留有自底向內壁螺旋狀旋轉的快輪製坯痕。外底刻畫有雙線”開”字形符號。溫州博物館研究員伍顯軍介紹,與這件原始青瓷豆一同出土的還有硬陶盂等器物。專家根據這些器物的時代特徵,判斷它們的年代是西周晚期至春秋初期,而伍顯軍認為更偏向於西周晚期。可見,這件西周原始青瓷豆距今至少有2700多年歷史。
이 서주西周 시대 원시청자 ‘두豆’는 1993년 서안시瑞安市 신긍구莘塍區 정전향汀田鄉 대석산岱石山 서강산西崗山 29호 무덤에서 출토되었다. 높이는 3.4cm, 입구 지름은 9.7cm, 받침 지름은 5.3cm이다. 이 청자 ‘두豆’를 자세히 보면, 입구는 수직이고 그 끝이 살짝 안으로 오므라져 있다. 몸통은 얕고 곧으며 아랫부분은 둥글게 마무리되었다. 안쪽 바닥은 넓고 평평하며, 굽은 낮고 바깥으로 벌어져 있다. 바깥 면 입구 아래에는 불규칙한 가는 선 무늬가 여섯 줄 이상 가득 새겨져 있다. 안과 밖에는 누런빛이 도는 청록색 유약이 발라져 있는데, 안쪽은 유약이 가득하지만 바깥쪽은 바닥까지 칠해지지 않았다. 유약이 고르지 않아 뭉치거나 벗겨진 곳도 있다. 안쪽 바닥에는 물레를 돌려 만들 때 생긴 나선형 흔적이 남아있다. 바깥 바닥에는 두 줄로 된 ‘개開’자 모양의 부호가 새겨져 있다. 온주박물관溫州博物館의 오현군伍顯軍 연구원은 이 원시청자 ‘두豆’와 함께 단단한 재질의 도기로 만든 사발 등도 출토되었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이 유물들의 특징을 보고 서주西周 후기에서 춘추春秋 시대 초기의 것으로 판단했다. 오현군伍顯軍 연구원은 서주西周 후기일 가능성이 더 높다고 본다. 따라서 이 원시청자 ‘두豆’는 최소 2,700년이 넘는 역사를 가졌다고 할 수 있다.
“豆”是盛東西的器皿
‘두豆’는 물건을 담는 그릇이다.
《說文解字》豆部載:”豆,食肉器也”。可見,豆是用於盛放東西的器皿。伍顯軍表示,從”豆”的甲骨文字形看,有點像大家現在用的高腳杯,只是比杯子大得多,有的有蓋、有的無蓋,有的有耳、有的無耳。根據相關研究,陶豆流行於新石器時代至漢代,盛行於商周時期。在新石器時代,陶豆形似高足盤,或有蓋,主要用於盛放食物。陶豆還是我國古代燈具的主要形式之一。比如戰國時期一種盤底中央突起可插燈芯的細把陶質豆,就是當時的照明器具。因此,從器形判斷,這件西周原始青瓷豆是用於盛放食物的日常生活實用器皿。而”豆”字作為一種容器,與杯、碟、碗、盆一樣,既可以作名詞,又可以作量詞。《左傳·昭公三年》就記載說,齊國有豆、區、釜、鐘四種容量單位,”四升為豆”,即四升等於一豆。《周禮·考工記》:”食一豆肉,中人之食也。”《孟子·告子上》:”一簞食,一豆羹,得之則生,弗得則死。”這裡的”豆”字都是應該作量詞來理解的。那麼,在古代,”豆”是一種容器,豆類植物古代又是用什麼字代替的呢?伍顯軍認為,”菽”字就是古代豆類植物的總稱。《說文解字》曰:”尗,豆也。像菽豆生之形也。”由於”豆””菽”兩字在古代讀音相近,後來逐漸通用,到了秦漢時期,人們乾脆把”菽”稱為”豆”,這樣就有了作為植物的”豆”字了。
《설문해자說文解字》 ‘두豆’ 편에는 “두는 고기를 담는 그릇이다”라고 적혀 있다. 이로 보아 ‘두豆’가 음식을 담는 그릇이었음을 알 수 있다. 오현군伍顯軍 연구원은 ‘두豆’의 갑골문 자형이 오늘날 우리가 쓰는 굽 높은 잔과 비슷하게 생겼다고 말한다. 다만 잔보다 훨씬 크고, 뚜껑이나 손잡이가 있는 것도 있고 없는 것도 있었다. 연구에 따르면, 흙으로 만든 ‘두豆’는 신석기 시대부터 한대漢代까지 유행했고, 특히 상商나라와 주周나라 때 가장 많이 사용되었다. 신석기 시대의 ‘두豆’는 굽 높은 접시 모양이었고 뚜껑이 있기도 했다. 주로 음식을 담는 데 썼다. 또한 ‘두豆’는 고대 중국의 주요 등잔 형태 중 하나였다. 예를 들어 전국시대에는 접시 바닥 중앙에 심지를 꽂을 수 있도록 돌출된 부분이 있는 ‘두豆’가 있었는데, 이것이 바로 등잔이었다. 따라서 모양으로 보아, 이번에 발견된 서주西周 시대 원시청자 ‘두豆’는 음식을 담는 생활용 그릇이었을 것이다. 한편, 그릇을 뜻하는 ‘두豆’는 잔, 접시, 사발, 대야처럼 물건의 이름(명사)도 되지만, 양을 세는 단위(양사)로도 쓰였다. 《좌전左傳》〈소공삼년昭公三年〉에는 제齊나라에 두豆, 구區, 부釜, 종鐘이라는 네 가지 부피 단위가 있었다는 기록이 있다. “4승升이 1두豆이다”라는 구절이 그것이다. 《주례周禮》〈고공기考工記〉의 “고기 한 ‘두豆’는 보통 사람의 한 끼 식사다”와 《맹자孟子》〈고자상告子上〉의 “밥 한 그릇과 국 한 ‘두豆’를 얻으면 살고, 얻지 못하면 죽는다”는 구절에서도 ‘두豆’는 양을 세는 단위로 보아야 한다. 그렇다면 옛날에 ‘두豆’가 그릇을 뜻했다면, 먹는 콩은 어떤 글자로 썼을까? 오현군伍顯軍 연구원은 ‘숙菽’이라는 글자가 바로 콩 종류를 총칭하는 말이었다고 생각한다. 《설문해자說文解字》에는 “‘숙尗’은 콩이다. 콩이 자라는 모양을 본떴다”고 나온다. ‘두豆’와 ‘숙菽’은 옛날 발음이 비슷해서 점차 같이 쓰이다가, 진한秦漢 시대에 이르러 사람들이 ‘숙菽’을 아예 ‘두豆’라고 부르게 되었다. 이때부터 ‘두豆’는 식물을 뜻하는 글자가 되었다.
유물과 역사 今生故事
石棚墓有著重要的意義
고인돌 무덤은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伍顯軍介紹,發現這件西周原始青瓷豆的29號墓是一處石棚墓。對於普通大眾來說,石棚墓是一種特殊而神秘的墓葬,它與土坑墓、磚室墓等類別墓葬相比,是數量較少而分布範圍有限的一類。它是用獨塊巨石蓋頂、多塊立石作為墓壁支撐蓋石的一種形制獨特的墓葬,墓壁立石和蓋頂巨石裸露在外,十分顯眼。在浙南民間,這種墓被稱為抬石墓,而歐洲稱之為”桌石”,日本等稱之為支石墓。石棚墓是新石器晚期到銅器時代,延續至早期鐵器時代的墓葬形式之一,是史前文化的重要遺存之一,是巨石崇拜的產物,屬於巨石建築系統,與埃及金字塔、英國巨石陣、法國卡爾納克列巨石遺址、瑪雅金字塔神廟等同為世界巨石文化遺產的重要組成部分。在歐洲西部和北部,亞洲南部、東南部、東北部,非洲北部,南美北部和我國遼東半島地區都有發現石棚墓。它們主要分布於南北緯度30°至45°之間的沿海地區。
오현군伍顯軍 연구원에 따르면, 이 원시청자 ‘두豆’가 발견된 29호 무덤은 고인돌 무덤[석붕묘, 石棚墓]이다. 고인돌 무덤은 일반인에게는 특별하고 신비한 무덤이다. 땅을 파서 만든 널무덤[토광묘, 土坑墓]이나 벽돌무덤[전실묘, 磚室墓]과 비교하면 수량이 적고 특정 지역에서만 발견된다. 고인돌은 하나의 거대한 돌을 뚜껑으로 덮고, 여러 개의 받침돌을 세워 뚜껑돌을 지탱하는 독특한 형태를 가졌다. 받침돌과 뚜껑돌이 땅 위에 그대로 드러나 있어 눈에 잘 띈다. 절강浙江 남부 지방에서는 이 무덤을 ‘타이시무抬石墓(돌을 들어 올린 무덤)’라 부르며, 유럽에서는 ‘탁석桌石’이라 하고, 일본日本 등에서는 ‘지석묘支石墓(고인돌)’라고 부른다. 고인돌 무덤은 신석기 시대 후기부터 청동기 시대를 거쳐 초기 철기 시대까지 이어진 무덤 양식이다. 선사 시대의 중요한 문화유산이며, 거석巨石 숭배 사상의 결과물이다. 이는 이집트 피라미드, 영국 스톤헨지, 프랑스 카르나크 거석 유적, 마야 피라미드 신전 등과 함께 세계 거석 문화유산의 중요한 일부이다. 고인돌 무덤은 서유럽과 북유럽, 아시아의 남부·동남부·동북부, 아프리카 북부, 남아메리카 북부, 그리고 중국의 요동遼東반도 등에서 발견된다. 주로 남위와 북위 30도에서 45도 사이의 해안가에 분포한다.
伍顯軍表示,東亞石棚墓分布最多的地方是朝鮮半島,這些墓與浙南石棚墓頗為相似,表明兩者文化傳播關係密切。日本九州的西北部也發現了大量支石墓,形制結構基本上與韓國、浙南部分石棚墓類同,但墓下往往埋有甕棺,年代一般在繩紋晚期末到彌生中期末,相當於西元前3世紀~西元前1世紀。據考古調查統計,中國吉林、山東、湖南、四川和遼寧均有石棚墓。
오현군伍顯軍 연구원은 동아시아에서 고인돌 무덤이 가장 많이 분포하는 곳은 조선반도朝鮮半島이며, 이 무덤들이 절강浙江 남부의 고인돌과 매우 비슷해 두 지역 간에 밀접한 문화 교류가 있었음을 보여준다고 말한다. 일본日本 구주九州 북서부에서도 많은 고인돌이 발견되는데, 그 형태와 구조가 기본적으로 한국韓國이나 절강浙江 남부의 고인돌과 비슷하다. 다만 무덤 아래에 독무덤[옹관, 甕棺]이 묻혀 있는 경우가 많고, 시기는 대체로 승문繩紋 시대 말기에서 미생彌生 시대 중기, 즉 기원전 3세기에서 기원전 1세기 사이다. 고고학 조사에 따르면, 중국中國에서는 길림吉林, 산동山東, 호남湖南, 사천四川, 요녕遼寧 등에서도 고인돌 무덤이 발견되었다.
神秘的浙南石棚墓群
신비로운 절강浙江 남부의 고인돌 무덤들
伍顯軍介紹,浙南沿海地區是中國南方地區唯一的石棚墓集中分布點,主要分布在瑞安市莘塍岱石山、馬嶼棋盤山、塘下楊梅山等處。浙南石棚墓群的發現,不僅擴展了中國石棚墓的分布地域,而且因其保存完整,對研究中國東南沿海特別是東甌地區商周時期的社會、經濟和文化歷史發展具有極高價值。2001年,浙南石棚墓群被國務院列為全國重點文物保護單位。
오현군伍顯軍 연구원은 절강浙江 남부 해안 지역이 중국中國 남부에서 유일하게 고인돌 무덤이 집중적으로 분포하는 곳이라고 설명했다. 주로 서안시瑞安市 신긍莘塍의 대석산岱石山, 마서馬嶼의 기반산棋盤山, 당하塘下의 양매산楊梅山 등에 있다. 이곳 고인돌 무덤들의 발견은 중국 내 고인돌 분포 범위를 넓혔을 뿐만 아니라, 보존 상태가 매우 좋아 중국 동남해안, 특히 동구東甌 지역의 상주商周 시대 사회, 경제, 문화를 연구하는 데 매우 높은 가치를 지닌다. 2001년, 절강浙江 남부 고인돌 무덤들은 국무원國務院에 의해 전국중점문물보호단위(중요문화재)로 지정되었다.
1956年,浙江省文物管理委員會在瑞安市莘塍岱石山東山脊發現2座石棚墓。1983年開展文物大普查時,瑞安市文物館又在岱石山的山頂和西面山脊上發現26座石棚墓。1993年10月~12月,浙江省文物考古研究所對岱石山石棚墓進行了搶救性發掘,清理了27座墓葬。浙江省文物考古研究所陳元甫研究員將浙南石棚墓區分為四種類型,以第一類為主要類型。這類石棚墓的三面均用多塊長條或長方石緊密埋立形成三面壁體,上架巨大蓋石,壁體立石直接支撐蓋石。
1956년, 절강성문물관리위원회浙江省文物管理委員會는 서안시瑞安市 신긍莘塍 대석산岱石山 동쪽 산등성이에서 2기의 고인돌 무덤을 발견했다. 1983년 대대적인 문화재 조사를 할 때, 서안시문물관瑞安市文物館은 대석산岱石山 정상과 서쪽 산등성이에서 26기의 고인돌 무덤을 추가로 찾아냈다. 1993년 10월부터 12월까지, 절강성문물고고연구소浙江省文物考古研究所는 대석산岱石山의 고인돌 무덤들을 긴급하게 발굴하여 총 27기의 무덤을 정리했다. 절강성문물고고연구소浙江省文物考古研究所의 진원보陳元甫 연구원은 절강浙江 남부의 고인돌 무덤을 네 가지 종류로 나누었고, 그중 첫 번째 유형이 가장 대표적이라고 했다. 이 유형의 고인돌은 세 면을 길거나 네모난 돌 여러 개로 빈틈없이 벽을 세우고, 그 위에 거대한 덮개돌을 올린 형태이다. 벽을 이룬 받침돌이 덮개돌을 직접 받치고 있다.
浙南石棚墓內出土有素面硬陶、泥質陶、夾砂陶、印紋硬陶、原始青瓷、石器和青銅器等多種不同質料的器物。而浙南石棚墓內出土的原始青瓷簋、碟、盂、碗、鼎、豆等器物,不論形態、胎釉還是紋飾特徵,均與同時期浙江其他地區土墩墓出土的器物一致;素面硬陶豆、碗、盂以及印紋硬陶罐、瓿等,也為土墩墓所常見。這些情況表明石棚墓與土墩墓一樣同屬於泛越文化系統的遺存。但是,石棚墓內出土不少青銅兵器、工具、著黑素面硬陶和原始黑瓷,與土墩墓有著較大區別,表明石棚墓的主人可能是百越民族的一支——土著甌越人。不過,也有學者提出石棚墓的主人可能是善於遊走、尚武的一種外來民族。
절강浙江 남부 고인돌 무덤 안에서는 아무 무늬 없는 단단한 도기, 진흙 도기, 모래 섞인 도기, 무늬 찍힌 단단한 도기, 원시청자, 석기, 청동기 등 다양한 재질의 유물이 나왔다. 특히 이곳에서 나온 원시청자로 만든 궤簋, 접시, 사발, 그릇, 솥鼎, ‘두豆’ 등은 모양, 재질, 무늬 등이 같은 시기 절강浙江 다른 지역의 흙무덤[토돈묘, 土墩墓]에서 나온 유물들과 일치한다. 또한 무늬 없는 단단한 도기로 만든 ‘두豆’, 사발, 그리고 무늬 찍힌 단단한 도기 항아리 등도 흙무덤에서 흔히 발견되는 것들이다. 이러한 점들은 고인돌 무덤이 흙무덤과 마찬가지로 범월泛越 문화권에 속하는 유적임을 보여준다. 하지만 고인돌 무덤에서는 청동 무기나 도구, 검은색을 띤 도기와 원시 흑자黑瓷 등이 많이 나와 흙무덤과는 큰 차이를 보인다. 이는 고인돌 무덤의 주인이 백월百越 민족의 한 갈래인 토착 구월인甌越人일 가능성을 보여준다. 그러나 일부 학자들은 고인돌 무덤의 주인이 이동을 잘하고 무예를 숭상했던 외부 민족일 수도 있다는 의견을 내놓기도 했다.
출처來源: 온주만보溫州晚報
기자記者: 진배배陳培培 / 글, 장소룡張嘯龍 / 사진, 인턴 허금언許金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