張志立. 古越民族文化源流研究[J]. 東南文化, 2005[05]51-54.
张志立. 古越民族文化源流研究[J]. 东南文化, 2005[05]5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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古越民族文化源流研究
고월 민족 문화의 기원과 흐름 연구

장지립張志立

소흥문리학원紹興文理學院 고고학 및 문물보호기술연구소, 절강浙江 소흥紹興 312000

Ancient Yue nation had own inherent gene of Yue culture. It absorbed the culture of Wu, Chu, Xu, Shu and the central plain which reflected it had rich cultural origins. At the same time it had great influence on the civilization origin of a good many nations in Southeast Asia.

Key Words: Ancient Yue Culture national culture amalgamation

[內容提要]

古越民族文化有其自身固有的越系文化基因, 它既吸收了吳、楚、徐、舒、中原等文化元素, 充分體現它多源的文化姻緣。同時, 它對其他民族包括東南亞諸多民族的文明起源產生過重大影響。

고월古越 민족 문화는 자신만의 고유한 월계越系 문화 유전자를 가지고 있다. 또한 오吳, 초楚, 서徐, 서舒, 중원中原 등의 문화 요소를 흡수하여, 다양한 문화적 인연姻緣을 충분히 보여준다. 동시에 동남아의 여러 민족을 포함한 다른 민족의 문명 기원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關鍵詞: 古越文化; 民族文化融合
키워드: 고월문화; 민족문화융합

 

古越民族文化是古代越民族群體的生命所在, 它體現出這一民族群體間的聯繫方式、社會制度、日常的生產、生活方式、思想理念及文學藝術等方方面面。一個民族創造了自己的文化,那麼這個文化就順理成章地被這個民族所繼承、發展、延續。民族文化消失了,這個民族也就不復存在了。而這個民族文化中獨具特徵的內涵,則是這一民族文化中的主線即其主源與主流。所以,“任何一種民族文化,必然有一個文化的主要來源;在其文化的發展進程中必有一個主要傳承延續的主流。而我們在考古類型學中常稱的受某某文化影響而體現在這一文化上的某些變異或所謂的外來文化因素,則就是這支文化主體的另一來源。受外來文化類型種類的影響越多,其文化的來源就越多,這就形成了這一文化的多源。而這一主體文化因素或某些特徵傳播或影響到其它文化中去,就是這一文化的一個流向。被這一文化影響、傳播的文化類型越多,這一文化的流就越多,這就是文化的多流”[1]。

고월古越 민족 문화는 고대 월越 민족 공동체의 생명과도 같다. 이는 그 민족 공동체 구성원 간의 관계 맺는 방식, 사회 제도, 일상적인 생산 및 생활 방식, 사상과 이념, 그리고 문학·예술 등 모든 면에서 드러난다. 한 민족이 자신의 문화를 창조하면, 그 문화는 자연스럽게 그 민족에게 계승되고, 발전하며, 이어진다. 민족 문화가 사라지면, 그 민족 또한 더는 존재하지 않게 된다. 그리고 그 민족 문화가 가진 독특한 내용이야말로, 바로 그 문화의 중심 줄기, 즉 주된 기원[주원, 主源]이자 주된 흐름[주류, 主流]이 된다.

그래서 “어떤 민족 문화든 반드시 그 문화의 주된 기원이 있기 마련이다. 또 문화의 발전 과정에는 반드시 계승되고 이어지는 주된 흐름이 있다. 그리고 우리가 고고학 유형학에서 흔히 말하는, 특정 문화의 영향을 받아 나타나는 변이나 소위 외래 문화 요소는 바로 그 문화 주체의 또 다른 기원이 된다. 외래 문화의 영향을 많이 받을수록 문화의 기원은 더 많아지며, 이를 통해 그 문화의 ‘다원多源’이 형성된다. 또한, 이 주체 문화의 요소나 특징이 다른 문화로 퍼져나가 영향을 주는 것이 바로 문화의 한 ‘흐름[유향, 流向]’이다. 이 문화의 영향을 받거나 이 문화가 전파되는 문화 유형이 많아질수록, 그 문화의 흐름은 더욱 많아지는데, 이것이 바로 문화의 ‘다류多流’이다.” [1]

古越民族文化不是獨立的,在同周圍文化的衝撞、交流、融合過程中,同時也不斷地吸收其它文化的優點,而吸收其它文化因素或優點,則是古越民族文化另一文化來源。 關於古越民族文化的多源,我國許多學者早已有過論述。在古越民族文化中“和吳文化有關的最早文化遺存——湖熟文化”的產生,一開始就表現出多源的面貌,它是在本地區新石器時代的基礎之上,融合了中原商周文化和南方以幾何紋陶為特徵的諸文化而成的[2]。南方地區古代文化有其深厚的基礎,當中原發達的青銅文化擴張南下後,百越族人在繼承傳統文化基礎上,吸取中原的先進文化因素而繼續不斷發展自身的青銅文化[3]。比如在先越文化時期的河姆渡文化的晚期,就受到了山東大汶口文化的影響,產生出了三足器——鼎。除越文化受到中原影響外,亦受到楚、徐、舒等文化的影響[4],在紹興出土的徐國銅器和具有諸多楚文化因素與特徵的紹興306號墓中出土的文物,均體現出越國文化中受到了徐、楚、中原文化的影響,這便是越民族文化除其來自傳承的文化本身外,另外的文化來源。在古越文化的發展進程中,充分體現出了多源的文化因素,古越民族文化除了吸收其它文化的因素及優點外,也不斷地將自身文化的長處與因素傳播出去,與相鄰文化間的傳播與吸收,使文化間逐步走向相對趨同,這樣就形成了古越民族文化的多源多流的自然歷史現象。

고월古越 민족 문화는 독립적이지 않았다. 주변 문화와 충돌하고, 교류하며, 융합하는 과정에서 끊임없이 다른 문화의 장점을 흡수했다. 다른 문화의 요소나 장점을 흡수하는 것은 고월古越 민족 문화의 또 다른 기원이 된다.

고월古越 민족 문화의 다양한 기원多源에 관해서는, 중국의 많은 학자가 이미 논술한 바 있다. 고월古越 민족 문화 속에서 “오吳문화와 관련된 가장 이른 문화 유적인 호숙문화湖熟文化”의 탄생은 처음부터 다양한 기원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는 이 지역 신석기 시대의 기반 위에, 중원中原의 상주商周 문화와 남방의 기하문도幾何紋陶를 특징으로 하는 여러 문화가 융합되어 형성된 것이다[2]. 남방 지역의 고대 문화는 그 기반이 깊다. 중원中原의 발달된 청동기 문화가 남쪽으로 확장된 후, 백월족百越族 사람들은 전통문화를 계승하면서 중원中原의 선진적인 문화 요소를 흡수하여 자신의 청동기 문화를 계속 발전시켰다[3]. 예를 들어, 선월先越 문화 시기 하모도문화河姆渡文化 후기에는 산동山東의 대문구문화大汶口文化 영향을 받아 세 개의 발이 달린 그릇인 정鼎이 만들어졌다. 월越 문화는 중원中原의 영향 외에도 초楚, 서徐, 서舒 등 문화의 영향을 받았다[4]. 소흥紹興에서 출토된 서국徐國의 청동기나, 수많은 초楚 문화의 요소와 특징을 가진 소흥紹興 306호 묘에서 출토된 유물들은 모두 월越나라 문화가 서徐, 초楚, 중원中原의 영향을 받았음을 보여준다. 이것이 바로 월越 민족 문화가 자신의 전통문화 외에 또 다른 문화적 기원을 갖게 된 이유이다. 고월古越 문화의 발전 과정 속에서 다양한 기원의 문화적 요소들이 충분히 드러난다.

고월古越 민족 문화는 다른 문화의 요소와 장점을 흡수했을 뿐만 아니라, 끊임없이 자신의 문화적 강점과 요소를 밖으로 전파했다. 이웃 문화와의 전파와 흡수를 통해 문화 간에 점차 서로 비슷해지는 방향으로 나아갔고, 이렇게 하여 고월古越 민족 문화의 ‘다원다류多源多流’라는 자연스러운 역사 현상이 형성되었다.

任何事物,均存在著兩個以上的方面,體現在古越文化中也不例外。古越文化的創造者及其先民,在發展自身文化的同時,也對中原文化及其它民族文化亦產生了巨大的影響,甚至遠播到日本及東南亞地區。自新石器時代以降,“流到全國廣大地區的‘鼎、豆、壺’組合而成的禮器、祭器就是淵源於這一地區。”[5]古越文化中有段石錛、半月型石刀、玉器、原始瓷器、水稻、舟楫與絲織等,對中原和西南諸民族文化乃至東亞許多國家和地區均產生了巨大的影響。秦漢以後,古越民族部分散居於兩廣及西南地區與其它少數民族雜居。現代的壯族、侗族、布依族、水族、黎族、高山族、畬族、瑤族等民族與文化均與古越民族及其文化有著千絲萬縷的聯繫。有些古越族的一些人們在吳越爭戰期間、楚滅越及秦漢郡縣制後,帶著自己的文化遠漂東南亞各國及日本、朝鮮半島[6]、以及環渤海地區[7]已得到許多國內外學者的共識。這些都是越文化的諸多流向的體現。古越民族文化既要保留了本民族文化的精髓,又吸收了其它文化的各種營養,不斷地豐富、發展自己的特徵文化,這就是古越民族文化的歷史發展規律。

모든 사물에는 두 가지 이상의 측면이 있으며, 이는 고월古越 문화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고월古越 문화의 창조자와 그 선민先民들은 자신들의 문화를 발전시키는 동시에, 중원中原 문화와 다른 민족의 문화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심지어 일본과 동남아 지역까지 널리 퍼져나갔다. 신석기 시대 이래로, “전국 각지로 흘러 들어간 ‘정鼎, 두豆, 호壺’가 조합된 예기禮器와 제기祭器는 바로 이 지역에서 기원했다.” [5] 고월古越 문화에는 단석분[段石錛, 자귀의 일종], 반달칼[半月型石刀], 옥기玉器, 원시 자기[原始瓷器], 벼농사, 배, 비단 등이 있었다. 이는 중원中原과 서남西南의 여러 민족 문화, 나아가 동아시아의 많은 국가와 지역에 큰 영향을 미쳤다.

진한秦漢 시대 이후, 고월古越 민족의 일부는 양광兩廣 및 서남西南 지역으로 흩어져 다른 소수민족과 섞여 살았다. 현대의 장족壯族, 동족侗族, 포의족布依族, 수족水族, 여족黎族, 고산족高山族, 사족畬族, 요족瑤族 등 민족과 그들의 문화는 모두 고월古越 민족 및 그 문화와 매우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일부 고월족古越族 사람들은 오월吳越 쟁패 시기, 초楚나라가 월越나라를 멸망시킨 시기, 그리고 진한秦漢 시대에 군현제가 실시된 이후, 자신들의 문화를 가지고 동남아 각국과 일본, 조선반도朝鮮半島[6], 그리고 환발해環渤海 지역[7]으로 멀리 이주했다는 점은 많은 국내외 학자들의 공통된 견해이다. 이 모든 것이 월越 문화의 다양한 흐름을 보여주는 증거이다.

고월古越 민족 문화는 자기 민족 문화의 정수를 보존하면서도, 다른 문화의 다양한 영양분을 흡수하여 끊임없이 자신의 특징적 문화를 풍부하게 발전시켰다. 이것이 바로 고월古越 민족 문화의 역사 발전 법칙이다.

民族文化的同源和異源問題,由於各個民族文化都有許多源和許多流,這樣,在有些民族文化,特別是相鄰的民族文化中,他們的許多源中往往會有一個或幾個源是相同的,即都來源於一個民族文化,這就叫做民族文化的同源。例如,今天中國長江流域及邊疆地區的許多民族文化,他們都曾在歷史上接納了一定數量的漢族文化,因此在這些民族文化的許多源中,就都有一個相同的來源,這就是所謂同源。我們這裡所說的同源和過去有些學者所說的一些民族文化都起源於同一種族文化,是兩回事。不能把起源於相同的民族文化和來源於相同的地域文化相混淆。此外,在過去封建史學家中有這樣一種觀點,認為中國所有的民族文化都是炎黃文化,都是漢族文化的支系,這種各文化同源說和我們的同源說有本質上的區別,他們是否認了這些民族文化還各有自己的文化主要來源,認為都只有一個源——華夏文化,而我們卻承認各文化各自有其主源,而只在他們的多源中有一個源相同,都是源自漢族文化。這就涉及到各民族文化在同源外,還有多源,是指各個民族文化都有許多源,而在多源中,除一個來源相同外,其他許多來源都不同,而他們大都另有自己不同渠道和方式的來源。

민족 문화의 동원同源과 이원異源 문제가 있다. 각 민족 문화는 여러 기원源과 흐름流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일부 민족 문화, 특히 서로 인접한 민족 문화의 경우, 그 여러 기원 중 하나 혹은 몇 개가 같은 경우가 많다. 즉, 모두 하나의 민족 문화에서 비롯된 것인데, 이를 민족 문화의 ‘동원’이라 한다. 예를 들어, 오늘날 중국 장강長江 유역 및 변경 지역의 많은 민족 문화는 역사적으로 일정량의 한족漢族 문화를 받아들였다. 따라서 이들 민족 문화의 여러 기원 속에는 모두 하나의 공통된 기원이 존재하는데, 이것이 바로 소위 ‘동원’이다.

우리가 여기서 말하는 ‘동원’은 과거 일부 학자들이 말한 ‘몇몇 민족 문화가 모두 동일한 종족 문화에서 기원했다’는 것과는 다른 이야기이다. 동일한 민족 문화에서 기원한 것과 동일한 지역 문화에서 비롯된 것을 혼동해서는 안 된다. 또한, 과거 봉건시대 역사학자들 사이에는 중국의 모든 민족 문화는 염황문화炎黃文化이자 한족漢族 문화의 한 갈래라는 관점이 있었다. 이러한 ‘모든 문화는 동원’이라는 주장과 우리의 ‘동원’ 주장은 본질적인 차이가 있다. 그들은 이들 민족 문화가 각자 자신의 주된 문화 기원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부정하고, 오직 하나의 기원, 즉 화하문화華夏文化만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우리는 각 문화가 각자의 주된 기원을 가지고 있음을 인정한다. 다만 그들의 다양한 기원 중 하나의 기원이 같을 뿐이며, 그것이 바로 한족漢族 문화에서 비롯되었다고 보는 것이다.

이는 각 민족 문화가 ‘동원’ 외에 ‘다원多源’을 가진다는 문제로 이어진다. 즉, 각 민족 문화는 많은 기원을 가지고 있으며, 그 여러 기원 중 하나의 기원이 같을 뿐, 다른 많은 기원은 서로 다르다. 그리고 그들은 대부분 각기 다른 경로와 방식으로 자신만의 기원을 가지고 있다.

例如歷史上的漢族曾有不少人遷徙東南邊疆,分別加入到吳、越、徐、楚、蔡等古代民族中,同時也帶去了中原漢族文化,成為他們許多文化源之一。但這些民族文化在有一個共同的來源外,還各有自己具有本民族特有文化內涵的主源,除其本身傳承的主源和與其它民族文化有某些共同來源外,還有因社會原因、地理環境、戰爭、人口遷徙等因素,而吸收了其它民族文化。而正是這些不同的主源、同源、多源,使這些民族文化發展成為不同的民族文化。並非像過去有些人所說的,是起源於同一民族文化的一些分支,在以後發展中,由於不同的地理環境,產生了各種差異,形成了不同的民族文化。而是由於一個民族文化的不同部分傳播、影響到各地後,和許多不同的民族文化融合,被許多不同的民族文化所吸收。

예를 들어, 역사적으로 한족漢族 중 많은 사람이 동남쪽 변방으로 이주하여, 각각 오吳, 월越, 서徐, 초楚, 채蔡 등 고대 민족에 편입되었다. 이때 중원中原의 한족漢族 문화를 가지고 들어가, 그들 문화의 여러 기원 중 하나가 되었다. 하지만 이들 민족 문화는 하나의 공통된 기원을 가진 것 외에도, 각자 자기 민족의 고유한 문화 내용을 담고 있는 주된 기원[주원, 主源]을 가지고 있었다. 자신들이 계승한 주된 기원과 다른 민족 문화와의 몇몇 공통된 기원 외에도, 사회적 원인, 지리적 환경, 전쟁, 인구 이동 등의 요인으로 인해 다른 민족의 문화를 흡수하기도 했다. 바로 이러한 각기 다른 주된 기원[주원, 主源], 공통된 기원同源, 다양한 기원多源이 이들 민족 문화를 서로 다른 민족 문화로 발전하게 만들었다.

이는 과거 일부 사람들이 말했던 것처럼, ‘동일한 민족 문화에서 갈라져 나온 몇몇 분파가, 이후 다른 지리적 환경 때문에 여러 차이가 생겨나 각기 다른 민족 문화를 형성했다’는 것과는 다르다. 오히려 한 민족 문화의 각기 다른 부분이 여러 지역으로 전파되고 영향을 미친 뒤, 수많은 다른 민족 문화와 융합하고 또 그들에게 흡수되었기 때문이다.

在浙江這塊吳越民族發祥地中,亦發現諸多的石棚與大石蓋墓的遺迹,其年代在西周早期到春秋晚期這一時限之內,他們是在長達600~700年的歷史長河中形成的。主要分布在溫州地區瑞安市、平陽縣和三門縣[8]。關於浙江境內發現的石棚、大石蓋墓已有許多學者進行了研究,有的先生認為“瑞安石棚文化,淵源於遼東島的石棚文化,是從遼東半島經漫長的海路傳播過來的。”[9]也有人認為“瑞安石棚不是遼東‘舶來品’,可能就是甌越先民獨立發展起來土著文化⋯⋯瑞安皆不可能成為這種外來文化落足的頭一個站點”[10],“就浙江石棚而言,他與歐洲、非洲等地的石棚決不可能是同一個民族的墓葬,與鄰近的我國東北、韓國和日本的石棚也不可同屬一個文化的遺存,他的主人無疑是當地的土著居民[11]。”在研究考古文化中,發現不同地域間文化發展的“趨同”現象很多。筆者認為:瑞安等地的石棚、大石蓋墓與環渤海地區的石棚、大石蓋墓之間當有其文化傳播與影響的因素,而且並非是承襲。這種文化的相互影響,也就是文化多源的文化現象[12]。一種文化的主源與主流多體現在其縱向發展中。而多源與多流的現象,則是在縱、橫時空中均有體現。考古學文化的研究是和民族史的研究聯繫在一起的。古民族的形成亦存在著主源、主流和多源多流的問題,而其情況更加複雜。考古文化或文化類型只有與其相應的民族共同體相吻合,方能稱之為某某族的民族文化。

절강浙江은 오월吳越 민족의 발상지로, 이곳에서도 많은 석붕[石棚, 고인돌]과 대석개묘[大石蓋墓, 덮개돌 무덤] 유적이 발견된다. 이 유적들은 서주西周 초기부터 춘추春秋 후기까지, 600~700년에 이르는 긴 역사 속에서 형성되었다. 주로 온주溫州 지역의 서안시瑞安市, 평양현平陽縣, 삼문현三門縣에 분포한다[8].

절강浙江 경내에서 발견된 석붕과 대석개묘에 관해서는 많은 학자들이 연구를 진행했다. 어떤 학자는 “서안瑞安의 석붕 문화는 요동遼東반도의 석붕 문화에서 기원했으며, 요동遼東반도에서부터 긴 바닷길을 통해 전파된 것”이라고 주장한다[9]. 또 다른 학자는 “서안瑞安의 석붕은 요동遼東의 ‘외래품’이 아니며, 아마도 구월甌越의 선민先民이 독자적으로 발전시킨 토착 문화일 것이다… 서안瑞安은 절대로 이러한 외래 문화가 첫발을 내디딘 거점일 수 없다”고 본다[10]. “절강浙江의 석붕에 관해 말하자면, 그것은 유럽, 아프리카 등지의 석붕과는 결코 같은 민족의 무덤일 수 없으며, 인접한 중국 동북 지역, 한국, 일본의 석붕과도 같은 문화의 유존에 속할 수 없다. 그 주인은 의심할 여지 없이 현지의 토착 주민이다”라는 견해도 있다[11].

고고학 문화를 연구하다 보면, 서로 다른 지역 간 문화 발전에서 ‘동질화[취동, 趨同]’되는 현상을 많이 발견하게 된다. 필자는 이렇게 생각한다. 서안瑞安 등지의 석붕, 대석개묘와 환발해環渤海 지역의 석붕, 대석개묘 사이에는 문화적 전파와 영향의 요인이 있었을 것이며, 이는 단순한 계승承襲이 아니다. 이러한 문화의 상호 영향이 바로 문화의 기원이 다양함을 보여주는 ‘다원多源’ 현상이다[12].

한 문화의 주된 기원[주원, 主源]과 주된 흐름[주류, 主流]은 주로 그 문화의 종적縱向 발전 과정에서 드러난다. 반면, 다양한 기원多源과 다양한 흐름多流 현상은 종적縱向 및 횡적橫向 시공간 모두에서 나타난다. 고고학 문화 연구는 민족사民族史 연구와 연결되어 있다. 고대 민족의 형성 과정 역시 주된 기원, 주된 흐름, 그리고 다양한 기원과 흐름多源多流의 문제가 존재하며, 그 상황은 더욱 복잡하다. 고고학적 문화나 문화 유형은 그것에 상응하는 민족 공동체와 맞아떨어질 때에만, 비로소 ‘아무개 족族의 민족 문화’라고 부를 수 있다.

根據區系類型學的考古理論,我們往往把屬於同一時期或持續發展具有共同特點的考古遺存劃分出一些考古文化或文化類型。一定考古文化的類型形成,並非偶然的。考古學文化實質是歷史上存在過的有共同文化傳統的人們共同體,它是一個民族共同體的物質文化和精神文化面貌的具體體現。“每一個考古文化或文化類型大體都反映了一個民族共同體的存在。民族共同體在發展過程中是不斷擴大的。最早的民族共同體僅是包括幾個氏族組成部落,以後才逐漸發展成為一些具有親屬關係的部落群,並由這些部落群結成一些部落聯盟。這些部落聯盟逐漸凝結成最初的部族。這些部族以後才逐漸融合了許多部落和部族,擴大形成為一些較大的古民族。”[13] 文化是人所創造的,民族共同體所反映出的這種時空中的歷史過程體現的精神與物質現象,則應是這一民族共同體的民族文化或文化類型。

구계유형학區系類型學의 고고학 이론에 따르면, 우리는 종종 동일한 시기에 속하거나 지속적으로 발전하며 공통된 특징을 가진 고고학 유존遺存을 몇몇 고고학 문화나 문화 유형으로 나눈다. 하나의 고고학 문화 유형이 형성되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고고학 문화의 실질은 역사상 존재했던, 공통된 문화 전통을 가진 사람들의 공동체이며, 그것은 한 민족 공동체의 물질문화와 정신문화의 모습을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모든 고고학 문화나 문화 유형은 대체로 하나의 민족 공동체의 존재를 반영한다. 민족 공동체는 발전 과정에서 끊임없이 확대된다. 가장 이른 시기의 민족 공동체는 단지 몇 개의 씨족이 모여 이룬 부락部落에 불과했지만, 이후 점차 친족 관계를 가진 부락 집단으로 발전했고, 이 부락 집단들이 모여 부락 연맹을 결성했다. 이러한 부락 연맹이 점차 응집하여 최초의 부족部族이 되었다. 이 부락들이 이후 수많은 부락과 부조를 융합하며, 비교적 큰 규모의 고古민족으로 확대, 형성된 것이다.” [13]

문화는 사람이 창조한 것이다. 민족 공동체가 시공간 속에서 보여주는 이러한 역사 과정과 그 안에 구현된 정신적·물질적 현상은 바로 그 민족 공동체의 민족 문화 또는 문화 유형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民族共同體的這一發展過程和不同時期考古文化類型分布範圍的變化,大體上是一致的。最早出現的新石器早期的一些考古文化類型分布範圍應該比較小,新石器中、晚期逐漸擴大,並由考古文化中分出一些既有本身特徵,又有共性的文化類型。到了青銅器時代,則能體現出一些分布較廣的考古文化及文化類型。一定的考古文化或文化類型的分布範圍和相應的民族共同體的分布地域基本上應該是一致的。“雖然考古學文化與族的共同體能否等同尚可討論,但這兩者具有同一性當無問題。一個族的共同體的地域與一種考古學文化分布的範圍應有其一致的方面。”[14]

민족 공동체의 이러한 발전 과정과 시기별 고고학 문화 유형 분포 범위의 변화는 대체로 일치한다. 가장 먼저 나타난 신석기 시대 초기의 고고학 문화 유형들은 분포 범위가 비교적 작았을 것이다. 신석기 중기, 후기로 가면서 점차 확대되었고, 고고학 문화 속에서 자신만의 특징과 공통성을 함께 가진 몇몇 문화 유형들이 갈라져 나왔다. 청동기青銅器 시대에 이르면, 비교적 넓은 범위에 분포하는 고고학 문화 및 문화 유형들이 나타난다.

특정한 고고학 문화 또는 문화 유형의 분포 범위는 그에 상응하는 민족 공동체의 분포 지역과 기본적으로 일치해야 한다. “비록 고고학 문화와 족族의 공동체를 동일시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논의의 여지가 있지만, 이 둘이 동일성을 가진다는 점에는 문제가 없을 것이다. 한 족族 공동체의 지역과 특정 고고학 문화의 분포 범위는 마땅히 일치하는 측면이 있어야 한다.”[14]

古越族是先秦時期我國南方的一個龐大種族,它廣泛分布在長江中下游以南沿海及五嶺以南地區的古越族系,支系繁多,“越有百種”,“自交趾至會稽七八千里,百越雜處;各有種姓。”[15] 其主要的支系有于越、干越、揚越、駱越、外越、閩越、越常、滇越、越漚、西漚及後來的南越、東越、閩越、山越等等。

고월족古越族은 선진先秦 시기 중국 남방의 거대한 종족이었다. 이들은 장강長江 중하류 이남의 연해 지역 및 오령五嶺 이남 지역에 널리 분포한 고월古越 족속으로, 그 갈래가 매우 많았다.

《한서漢書》 〈지리지地理志〉
粵地,牽牛、婺女之分野也。今之蒼梧、鬱林、合浦、交阯、九真、南海、日南,皆粵分也。其君禹後,帝少康之庶子云,封於會稽,文身斷髮,以避蛟龍之害。自交阯至會稽七八千里,百粵雜處,各有種姓。
월粵 땅은 견우牽牛와 무녀婺女의 별자리 분야이다. 지금의 창오蒼梧, 울림鬱林, 합포合浦, 교지交阯, 구진九真, 남해南海, 일남日南이 모두 월粵의 땅에 속한다. 그 임금은 우禹의 후예로, 제왕 소강少康의 서자라고 하는데, 회계會稽에 봉해져 몸에 문신을 하고 머리를 짧게 잘라 교룡蛟龍의 해를 피했다. 교지交阯에서 회계會稽까지 칠팔천 리에 백월百粵이 섞여 살았으며, 각기 다른 종족과 성씨를 가지고 있었다.[15]

주요 갈래로는 우월于越, 간월干越, 양월揚越, 낙월駱越, 외월外越, 민월閩越, 월상越常, 전월滇越, 월구越漚, 서구西漚가 있었고, 후대에는 남월南越, 동월東越, 민월閩越, 산월山越 등이 있었다.

關於古越族系的考古文化,經過考古學者的調查與發掘,當是以幾何印紋陶器為主要特徵的物質文化遺存,在浙江、福建、江西、廣東及江蘇、安徽、湖南、廣西、海南、香港及台灣省等部分區域均有發現[16]。“南方地區有早期幾何形印紋陶的諸文化,儘管文化面貌不盡相同,但在文化內涵的某些方面又有共同因素。到印紋陶的發展興盛時期,各地文化發展仍很不平衡,但是諸文化區之間,某些共同因素更趨明顯。這不僅說明南方諸土著文化之間有廣泛、密切的聯繫,而且說明他們很早以來就有可能屬於一個大部族的‘族文化’,這個‘族文化’應該就是古越族的文化。”[17]筆者認為這個“族文化”應該是古越族系的文化,它包括了許多古越族的支系。以幾何印紋陶為主要特徵的青銅文化,為古越族系的物質文化遺存,已得到學術界的共識[18]。經過許多學術界前輩與學者的研究,將這廣被於中國南方的這種以幾何印紋陶為特徵的青銅文化,據其發展的進程和地域的特點,將其分成若干文化類型區域。現較為通行,被大多數學者認可的是李伯謙先生所劃分的七個類型區域[19]:即寧鎮區、太湖區、贛鄱區、湖南區、嶺南區、閩合區、粵東閩南區。並明確指出:“廣泛分布於我國南方的幾何形印紋陶。產生於不同的地區,來源於不同的文化,有著各不相同的特點,結合它們所處自然條件的差異可明顯區分為不同的七區,代表七支具有不同來源和特點的文化。”象寧鎮區和太湖區屬於吳越範圍即可稱為吳越文化。其它各區⋯⋯暫稱之為“百越文化”亦無不可[20]。從而說明百越族系的形成,是各有淵源的。也是由於歷史的進程,通過交流、融合,才在商、周時期形成了百越民族的族系雛形。也說明百越族系內的各支系民族文化之間除其各有主源外,也存在着文化多源的事實。尤是受中原商、周文化的影響。

고월古越 족속의 고고학 문화에 관해, 고고학자들의 조사와 발굴을 거친 결과, 기하인문도기幾何印紋陶器를 주요 특징으로 하는 물질문화 유존임이 밝혀졌다. 이는 절강浙江, 복건福建, 강서江西, 광동廣東 및 강소江蘇, 안휘安徽, 호남湖南, 광서廣西, 해남海南, 홍콩香港 및 대만성台灣省 등 일부 지역에서 모두 발견된다[16].

“남방 지역에는 초기의 기하학적 인문도 문화를 가진 여러 문화가 있었다. 비록 문화의 모습은 서로 같지 않았지만, 문화적 내용의 어떤 면에서는 공통된 요소가 있었다. 인문도印紋陶가 발전하고 흥성하는 시기에 이르러, 각지 문화 발전은 여전히 매우 불균형했지만, 여러 문화권 사이의 어떤 공통된 요소들은 더욱 뚜렷해졌다. 이는 남방의 여러 토착 문화 사이에 광범위하고 긴밀한 연관이 있었음을 설명할 뿐만 아니라, 그들이 아주 오래전부터 하나의 큰 부족에 속하는 ‘족族 문화’였을 가능성을 보여준다. 이 ‘족族 문화’는 바로 고월족古越族의 문화일 것이다.”[17]

필자는 이 ‘족族 문화’가 고월古越 족속의 문화여야 하며, 여기에는 많은 고월족古越族의 갈래가 포함된다고 생각한다. 기하인문도幾何印紋陶를 주요 특징으로 하는 청동기 문화가 고월古越 족속의 물질문화 유존이라는 점은 이미 학술계의 공통된 인식이 되었다[18]. 많은 학계 선배와 학자들의 연구를 거쳐, 중국 남방에 널리 퍼진 이 기하인문도幾何印紋陶를 특징으로 하는 청동기 문화는 그 발전 과정과 지역적 특징에 따라 몇몇 문화 유형 구역으로 나뉘었다. 현재 비교적 널리 통용되며 대다수 학자가 인정하는 것은 이백겸李伯謙 선생이 나눈 7개의 유형 구역이다[19]. 바로 영진구寧鎮區, 태호구太湖區, 감파구贛鄱區, 호남구湖南區, 영남구嶺南區, 민합구閩合區, 월동민남구粵東閩南區이다. 또한 그는 “중국 남방에 널리 분포하는 기하학적 인문도幾何形印紋陶는 서로 다른 지역에서 발생했고, 다른 문화에서 비롯되었으며, 각기 다른 특징을 가지고 있다. 여기에 그것들이 처한 자연조건의 차이를 결합하면 명확하게 7개의 다른 구역으로 나눌 수 있으며, 이는 각기 다른 기원과 특징을 가진 일곱 갈래의 문화를 대표한다”고 명확히 지적했다. 영진구寧鎮區와 태호구太湖區 같은 경우는 오월吳越의 범위에 속하므로 오월吳越 문화라고 부를 수 있다. 다른 나머지 구역들은… 잠정적으로 ‘백월百越 문화’라고 불러도 무방하다[20].

이를 통해 백월百越 족속의 형성은 각기 다른 기원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역사의 흐름 속에서 교류와 융합을 거쳐, 상商·주周 시기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백월百越 민족 족속의 원형이 형성되었다. 이는 또한 백월百越 족속 내의 각 갈래 민족 문화 사이에 각자의 주된 기원[주원, 主源] 외에도 문화의 기원이 다양했다多源는 사실이 존재했음을 설명한다. 특히 중원中原의 상商·주周 문화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在諸越的文化中,以揚越、干越和于越三個支系文化最為發達[21]。它們均有著一個普遍的現象:即都在本地區新石器時代文化基礎上發展起來的,有著各自的文化主源。如于越文化的主體淵流是根植在河姆渡文化主體之中。其干欄式居住形式,平地掩埋的土墩墓和土墩石室墓,陶器中的陶釜、支腳、鴨形壺、鼎、觯形器、尊形器、深腹凹底罐、幾何形印紋陶中的繩紋、蘭紋、葉脈紋、方格紋等,以上這些文化因素,始終伴隨着這支文化。而干越則是脫胎於湖熟文化之中。其主體內涵則是,陶器以鬲和□、折肩盆、鉢簋、帶鏤孔的豆和印紋硬陶罐等。印紋陶紋飾則以繩紋為主、梯格紋次之,還有雲雷紋、劃紋、網紋等。土墩墓多見挖豎穴墓坑。直到西元前473年越滅吳後,兩個支系民族文化趨於統一,消失於秦漢統一以後。除在壯族、侗族、布依族、水族、黎族、高山族、畬族、瑤族等現代民族文化中還能體現出其孑遺外,絕大部分越族及其文化已融合到漢民族文化中,亦是越文化的主要流向。

제월諸越의 문화 중에서는 양월揚越, 간월干越, 우월于越 세 갈래의 문화가 가장 발달했다 [21]. 이들에게는 한 가지 보편적인 현상이 있다. 바로 모두 해당 지역의 신석기 시대 문화 위에서 발전했으며, 각자 자신만의 주된 문화 기원[주원, 主源]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우월于越 문화의 주된 기원과 흐름은 하모도문화河姆渡文化의 주체 속에 뿌리를 두고 있다. 그들의 간란식干欄式 주거 형태, 평지에 매장된 토돈묘[土墩墓, 흙무지무덤]와 토돈석실묘土墩石室墓, 도기 중에서는 도부[陶釜, 가마솥], 지각[支腳, 그릇 받침], 압형호[鴨形壺, 오리 모양 주전자], 정[鼎, 솥], 치형기[觯形器, 뿔잔 모양 그릇], 존형기[尊形器, 항아리 모양 그릇], 깊은 배에 바닥이 오목한 관[深腹凹底罐] 등이 있다. 기하학적 인문도幾何形印紋陶 중에서는 승문[繩紋, 밧줄무늬], 난문[蘭紋, 난초무늬], 엽맥문[葉脈紋, 잎맥무늬], 방격문[方格紋, 바둑판무늬] 등이 있다. 이상의 문화 요소들은 시종일관 이 문화와 함께했다.

한편, 간월干越은 호숙문화湖熟文化에서 파생되었다. 그 주된 내용은, 도기로는 격鬲과 □, 절견분[折肩盆, 어깨가 꺾인 동이], 발궤[鉢簋, 바리때 모양 그릇], 구멍 뚫린 굽이 있는 두[豆, 굽 달린 접시], 인문경도관印紋硬陶罐 등이 있다. 인문도印紋陶의 무늬는 승문繩紋이 위주고, 제격문[梯格紋, 사다리무늬]이 그 다음이며, 운뢰문[雲雷紋, 구름과 번개무늬], 획문[劃紋, 그은무늬], 망문[網紋, 그물무늬] 등도 있다. 토돈묘土墩墓에서는 수직으로 판 무덤 구덩이가 많이 보인다.

기원전 473년 월越나라가 오吳나라를 멸망시킨 후에야 두 갈래의 민족 문화는 통일되는 경향을 보이다가, 진한秦漢 통일 이후에 사라졌다. 장족壯族, 동족侗族, 포의족布依族, 수족水族, 여족黎族, 고산족高山族, 사족畬族, 요족瑤族 등 현대 민족 문화 속에서 그 잔존 유산을 찾아볼 수 있는 것을 제외하면, 절대다수의 월족越族 및 그 문화는 한민족漢民族 문화에 융합되었으며, 이 또한 월越 문화의 주요한 흐름이다.

綜前所述,說明古越族系文化是在各有其主源主流與多源多流的歷史時空中逐步形成的。有著從各支系小範圍地域向族系的大範圍地域漸進的規律,體現著從血緣關係到地緣關係進程軌跡。更體現出古越民族祖先在生產、生活和對征服自然界的歷史進程中,相互吸取先進文化因素以豐富各自文化的內涵。隨著各自不斷的文化交流和各支系之間的民族融合,在春秋、戰國時期達到了古越族系文化大體一致的面貌。雖然也吸收了許多外來民族文化因素來充實自己本身,但其用固有的文化基因,帶著歷史留下的痕跡,在不斷豐富和完善本身民族文化中保留下來。秦漢以後部分融合到其它一些民族文化中,部分被古越族的後裔承襲至今,而更多部分被融合到華夏文化之中,成為中華民族文明及至朝鮮半島、日本及東南亞許多民族文明的重要來源之一。

앞서 서술한 바를 종합하면, 고월古越 족속의 문화는 각자의 주된 기원과 흐름主源主流, 그리고 다양한 기원과 흐름多源多流이 존재하는 역사적 시공간 속에서 점차 형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각 갈래의 좁은 지역에서 족속 전체의 넓은 지역으로 점차 나아가는 법칙을 가지며, 혈연관계에서 지연관계로 나아가는 과정의 궤적을 보여준다. 나아가 고월古越 민족의 조상들이 생산, 생활 및 자연을 정복해 나가는 역사 과정 속에서, 서로 선진적인 문화 요소를 흡수하여 각자 문화의 내용을 풍부하게 했음을 보여준다.

각자의 끊임없는 문화 교류와 여러 갈래 사이의 민족 융합을 통해, 춘추春秋·전국戰國 시대에 이르러 고월古越 족속 문화는 대체로 일치하는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비록 많은 외래 민족의 문화 요소를 흡수하여 자신을 채우기도 했지만, 고유의 문화 유전자를 사용하여 역사가 남긴 흔적을 지닌 채, 끊임없이 자기 민족 문화를 풍부하게 하고 보완하는 과정 속에서 그 명맥을 보존했다.

진한秦漢 시대 이후, 그 일부는 다른 민족 문화에 융합되었고, 일부는 고월족古越族의 후예에게 계승되어 오늘에 이르렀으며, 더 많은 부분은 화하華夏 문화 속에 융합되었다. 그리하여 중화민족中華民族 문명, 나아가 조선반도朝鮮半島, 일본 및 동남아 여러 민족 문명의 중요한 기원 중 하나가 되었다.

 

[1] 張志立: 《古越民族文化的多源多流淺析》,蔣炳釗等: 《龍虎山崖葬與百越民族文化》,吉林人民出版社2001年6月。

[2] 陳江: 《吳文化起源的探討》, 《南京博物院集刊》1987年總第9期。

[3][21] 彭適凡: 《略論揚越、干越和于越對我國冶金術的傑出貢獻》, 《國際百越文化研究》,中國社會科學出版社 1994年。

[4] 浙江省文物管理委員會等: 《紹興306號戰國墓發掘簡報》, 《文物》1984年第1期。楊權喜: 《紹興306號墓文化性質的分析》, 《國際百越文化研究》,中國社會科學出版社1994年。

[5] 蘇秉琦: 《略談我國東南沿海地區的新石器時代考古》, 《文物》1978年第3期。

[6] 林華東: 《良渚文化研究》,浙江教育出版社1998年。

[7] 張志立: 《越民族文化對環渤海文化圈的傳播與影響》, 《文史知識》2004年第9期。

[8] 浙江省考古研究所: 《瑞安岱石山“石棚”和大石蓋墓發掘報告》,《浙江省文物考古研究所學刊》1997年。

[9] 董楚平: 《吳越文化新探》,浙江人民出版社1988年,第 201頁。

[10] 俞天舒: 《瑞安石棚初探》, 《東南文化》1988年第5期。

[11] 陳元甫: 《浙江“石棚”遺存的初步研究》, 《浙江省文物考古研究所學刊》1997年12月。

[12] 張志立: 《古越民族與周邊文化關係》,李永鑫、張偉波主編: 《越文化研究文集》,中華書局2001年3月:第68~ 245頁。

[13] 孫進己: 《東北亞民族史論研究》,中州古籍出版社1994 年。

[14] 蘇秉琦: 《地層學與器物形態學》,《文物》1982年第4 期。

[15] 《漢書·地理志》,引臣瓚語。

[16] 《文物考古三十年》《文物考古工作十年》有關省市論述。

[17] 彭適凡: 《中國南方古代印紋陶》,第320頁,文物出版社 1987年。

[18][20] 彭適凡: 《江南印紋陶問題學術討論會紀要》, 《文物集刊》第3集。吳錦吉: 《江南幾何印紋陶“文化”應是古代越人的文化》, 《百越民族史論集》,中國社會科學出版社1982年。呂榮芳: 《三苗、越族與印紋陶的關係》, 《百越民族史論集》1982年。董楚平: 《吳越文化初探》,浙江人民出版社1988年。陳國強、蔣炳釗、吳錦吉、辛土成: 《百越民族史》,中國社會科學出版社1987年。林華東: 《河姆渡文化研究》,浙江人民出版社1992年。;牟永抗: 《高祭台類型初析》, 《浙江省文物考古研究所集刊》1993 年。楊楠: 《商周時期江南地區土墩遺存的分區研究》, 《考古學報》1999年第1期。

[19] 李伯謙: 《我國南方幾何形印紋陶遺存的分區、分期及有關問題》, 《北京大學學報》1981年第1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