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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다음 두 번째, 5천 년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지명 하나만 들으라고 하면 요수, 요하, 요동, 요서에서 요[遼]라는 글자인데요.

식민사관, 반도사관의 가정은 요하와 요수는 같은 강이고 그 위치는 지금까지 바뀐 적이 없다는 가정이죠. 그러니까 우리나라 모든 역사가 풀리지 않는 이유는 딱 이 가정이 가장 큰 것 중에 한 가지입니다. 사실이냐? 아니죠.

제가 결론부터 말씀을 드리면 요수, 요하, 요동, 요서라는 고유명사도 마찬가지로 마치 발이 달린 보통명사처럼 이동을 했죠.

제가 앞서도 말씀드렸다시피 기원전 2천 년 당시 하나라와 고조선의 국경은 현재의 역수 또는 역수하인데요. 이 강을 당시 요수라고 불렀죠. 그다음에 지나족들이 이 역수를 건너오자 국경은 조금 이동을 하고 현재의 조백하가 요수로 됩니다. 그 이후에 연나라가 영토를 확장하고 동쪽으로 진출을 하면서 현재의 난하가 요수가 되는데요. 이 요수는 그 뒤에 유수로 이름이 바뀐 후 마지막에 난하가 되죠.

그다음에 한참 지나서 고구려가 멸망하고 나서 당나라가 대릉하까지 진출을 하면서 대릉하를 요수라고 부르죠. 그다음에 천 년 전후에 요나라가 생기고 요나라가 현재의 요하까지 진출을 하면서 당시 요동반도 한가운데를 흐르던 요하를 처음으로 요하라고 부르는 것이죠.

요컨대 요수는 네 번에 걸쳐서 위치 이동을 했고 요하는 위치 이동을 한 적이 없는 것이죠.

먼저 첫 번째 역수를 요수로 불렀다고 하는 것에 대해서는 앞서서 살펴보았고 그다음에 조백하도 뛰어넘겠습니다.

그다음에 현재의 난하를 요수라고 불렀다는 것인데요.

1247년에 만들어진 《추리도》. 현재 소주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는데 중국이 국보로 지정을 했으니까 그 가치가 대단하다는 사실을 알 수가 있죠. 이 《추리도》는 비석에 새겨져 있습니다.

탁본인데요. 이 부분을 확대를 해보면 여기에 장성이 보이시죠. 그 왼편에 갈석산[碣石山]이 있죠. 그리고 그 위에 요수[遼水]라고 뚜렷이 보이죠.

그러니까 현재의 난하를 당시에 요수라고 불렀던 것이죠.

그다음에 1136년에 만들어진 《우적도》라는 비석에 새겨진 지도를 보시죠.

탁본이고, 모사본입니다.

마찬가지로 오른쪽 위를 확대해서 보면 이미 지금의 난하가 유수라고 이름이 바뀌었죠. 그리고 훨씬 동쪽에 요수가 있습니다. 이 요수가 바로 지금의 대릉하에 해당되죠.

그다음에 요나라가 생기면서 요동반도 한가운데를 흐르는 현재 요하에서 고려와 국경을 이루었죠. 이때부터 요하라는 이름이 나오기 시작합니다.

제가 앞서 말씀드린 빅데이터 분석 결과를 보더라도 그 이전에는 요수 밖에 나오지 않죠. 그러다가 요나라 역사를 그린 《요사》부터 요하가 등장하기 시작하는 것이죠.

그리고 이 요수와 요하의 동쪽을 요동, 서쪽을 요서라고 불렀던 것이죠. 이상 여기까지 요수, 요하, 요동, 요서의 이동에 대해서 간략히 살펴보았습니다.

세 번째로 압록강도 마찬가지로 위치를 네 번이나 이동을 했습니다.

먼저 《삼국유사》를 보시죠.

고구려 때 도읍은 안시성, 일명 안정홀로서 요수의 북쪽에 있었다는 것이죠. 요수는 일명 압록으로 지금은 안민강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1281년도는 이미 요나라 때 현재의 요하를 요하 또는 요수라고 불렀을 때죠. 그런데 그 요수, 요하를 일명 압록이라고 부르기도 하고 안민강이라고 한다는 것이죠.

먼저 지나족 입장에서는 요[遼]가 멀다는 뜻이니까 국경 또는 국경 너머 멀리 있는 아득한 강을 요수라고 불렀던 것이죠. 우리 한민족 입장에서 보면 안민강[安民江], 편안할 안[安] 자에 백성 민[民] 자니까 백성을 편안하게 해주는 강이다 이런 뜻이겠죠. 그러니까 이 요하가 국경에 있는 방어선 또는 해자[垓子]의 역할을 했던 것이죠.

그다음에 압록이라는 말이 문제입니다. 그 유명한 두우 선생께서 《통전》에서 압록수에 대해서 물빛이 오리 머리[鴨頭] 같아서 예로부터 그리 이름 붙였다. 그러니까 오리 압[鴨] 자에 푸를 록[綠]자를 쓴 것이죠. 오리 머리가 푸르기 때문에 압록이라 했다는 것인데요.

제가 아무리 인터넷에서 찾아봐도 대부분의 오리 머리는 갈색입니다.

아주 예외적으로 청둥오리 머리가 푸른색인 경우가 있죠. 예외적인 상황입니다.

그리고 압록강을 네 가지로 쓰는데요.

강[江] 또는 수[水] 자로 부르니까 결국 압록은 두 가지가 있죠.

하나가 푸를 록[綠]자고 하나가 맑을 록[淥] 자입니다.

만일에 두우 선생의 말이 맞다고 하면 맑을 록[淥] 자는 쓸 수 없는 것이죠. 오리 머리처럼 맑다? 오리 머리가 투명합니까? 아니죠. 그래서 마찬가지로 같은 발음에 다른 한자를 쓸 경우에는 대개 한민족이나 만주족의 말을 음차한 것이죠.

우리가 현재 압록강을 영어로 부를 때 Yalu River라고 부르죠. ㄹ-ㄹ, ㄹ이 두 개죠. 그런데 중국어로 압록을 발음을 하면 야루[ya-lu]입니다. ㄹ이 두 개가 아니고 하나죠.

그런데 이 야루라는 말은 만주어 사전을 찾아보면 경계 또는 국경이라는 뜻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야루강이라는 것은 국경에 있는 강을 말하는 것이죠.

그런데 그 당시 상황을 보면 요나라, 발해, 고려, 궁예까지 해서 서로 영토에 대한 경쟁이 아주 극심했죠. 따라서 국경도 수시로 바뀌었습니다. 그런데 이 국경이 만일 이동을 한다고 하면 국경을 나타내는 야루도 마찬가지로 이동을 하는 것이죠.

그래서 결론을 요약해서 말씀을 드리면 먼저 현재의 혼하, 훈허를 마자수 또는 압록수라고 불렀습니다.

그 뒤에 발해의 강토가 점점 넓어지고 결국 나중에 사방 오천 리까지 되는데요. 그때는 현재의 요하 전체를 압록수라고 불렀습니다.

그다음에 세 번째는, 한참 지나서 조선 때 국경이 많이 후퇴를 하고 현재의 애하를 압록수라고 불렀습니다.

그다음 네 번째는 1712년 백두산정계비가 세워지고 1718년에 강희제가 《황여전람도》라는 지도를 편찬한 이후부터 현재의 압록강을 압록강이라고 부르게 된 것이죠.

하나씩 살펴보죠. 먼저 첫 번째, 현재의 혼하를 마자수 또는 압록강이라고 불렀죠.

《신당서》에 보면 고구려 당시 8대 강이 나옵니다. 《신당서》 표지이고, 이 부분인데요.

원문 그대로 보면 여기 이 초록색 부분에 강 이름이 8개가 나오죠.

우리말로 번역을 하면 이런데요.

제가 다시 정리를 하면, 요수, 패수, 대요, 소요, 양수, 마자수, 압록수, 염란수 8개죠.

과연 이 강들의 위치가 어디일까요? 그 단초는 아까 보신 《추리도》에서 시작할 수 있습니다.

먼저 당나라와 고구려가 국경을 이루었던 갈석산 부근에 요수가 있었죠. 그리고 그 동쪽을 쭉 보면 소요수라는 강이 보이시죠. 이게 현재의 요하 입구입니다.

구글 지도에 표시하면 여기가 요수, 여기가 소요수죠.

그다음에 《신당서》에 실려있는 내용 중에 마자수가 있는데, 말갈의 백산에서 나온다. 《신당서》에서는 발해를 말갈로 불렀습니다. 그러니까 말갈의 백산은 발해의 장백산에서 나온다는 것이죠. 물빛이 오리 머리 같아서 압록수라고 한다. 국내성 서쪽을 지나서 염란수와 같이 합치고 또 서남쪽으로 흘러서 안시성에 이르러 바다로 들어간다고 돼 있죠.

다시 《추리도》를 보겠습니다. 여기 장백산이 있고 말갈지가 있고 남서쪽으로 흐르는 강에 표시가 있는데 수[水] 자는 보이는데 그 앞에 자가 보이지 않습니다. 이것이 마자수 또는 압록수겠죠.

추가로 구글맵에 표시를 하면 지금의 혼하, 여기가 당시 마자수 또는 압록수라고 불렀던 것이죠.

추가로 몇 가지를 더 표시하면 여기에 장백산이 있고 장백산에서 흘러나오는 강이 마자수 또는 압록강이죠. 국내성의 서쪽을 지나가고 염란수와 만나서 안시성을 거쳐서 바다로 들어가는 것이죠. 이 정도까지 되면 다른 부분은 쉽게 나오죠.

추가로 지금의 동요하를 양수라고 불렀고 지금의 태자하를 패수라고 불렀죠.

그다음에 《신당서》 원문을 보면, 고구려의 왕은 평양성에 사는데 남쪽에 패수가 흐르고, 그리고 국내성과 한성이 있는데 별도, 또 다른 도라고 부른다. 그리고 평양은 압록수의 동남쪽에 있다고 되어 있죠.

지도상에 그려보면 패수 북쪽 마자수, 압록강 남쪽에 평양성이 있고 한참 밑에 현재 평양에 한성이 있었던 것이죠. 평양, 국내성, 한성 세 곳에 있었는데요.

구글맵에 표시를 해보면, 요동 한가운데 평양성이 있었고 조금 위쪽에 국내성이 있었고 현재 평양 자리에 한성이 있었던 것이죠. 그런데 우리 교과서에서는 현재 압록강변에 있는 집안에 국내성이 있었고, 당시 한성이 있었던 곳에 평양성이 있었다고 가르치고 있죠.

두 번째, 요하 전체를 압록강, 압록수로 불렀습니다. 고구려가 멸망하고 나서 그 자리에 발해가 들어서죠. 발해가 강토를 넓혀가면서 국경이 점점 서쪽으로 이동을 하죠. 그래서 현재의 요하 전체를 압록강이라고 불렀던 것이죠.

801년 당나라 때 만들어진 가탐도리기라는 지리지가 있죠. 가탐이라는 분은 당나라 때 재상을 지내신 분인데요. 재상으로서의 능력은 평균적이었던 모양입니다. 그런데 이분이 지리에 대해서는 아주 능통하셨습니다.

그래서 “중국 역사 3천 년 동안 지리학자 한 사람만 골라라” – 그러니까 원픽[one-pick]이죠 – 라고 하면 이 가탐이라는 분입니다. 제 개인적으로 봐도 중국의 수많은 시리즈 중에서 토시 하나 바꿀 수 없을 정도만큼 정확하고 완벽한 시리즈가 가탐도리기라고 생각하는 것이죠.

가탐도리기에서 보면, 중국 산동반도 등주에서 출발을 해서 발해왕성까지 가는 길이 적혀져 있습니다.

마전도, 고사도, 득물도를 지나서 1천 리를 가면 압록강당은포구에 이른다고 되어 있습니다. 여기에 있는 압록강당은포구의 위치를 찾으면 당시에 압록강이 나오겠죠.

미국 의회도서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산동직례성경해강도》라는 군사용 지도가 있습니다. 1차원적으로 아주 횡으로 길게 그려진 지도인데요. 지나인들은 이런 지도를 보고 해방만리도라고 하죠. 바다를 방어하는데 중국의 바다 전체 길이가 만리니까요. 그래서 해방만리지도라고 부르는 것이죠.

실제로 보면 지나 국가의 해안선은 이렇게 들쑥날쑥한 것이죠. 그런데 이런 2차원을 1차원으로 쭉 늘려서 표시를 하면 이렇게 됩니다.

제일 왼쪽 부분을 확대를 해보면 여기가 금주, 그러니까 명나라의 동쪽 끝이 금주인 것이죠. 그다음 오른편에 요하, 대릉하, 소릉하가 표시되어 있습니다.

구글맵에 표시를 하면 금주, 요하, 대릉하, 소릉하는 이쪽 위치죠.

그런데 요하 앞부분을 확대해서 보면, 여기에 마전도, 고사도, 득물도가 보입니다. 그리고 그 앞에 양방구. 요하로 들어가는 입구를 양방구라고 불렀던 것이죠. 명나라 당시에는요. 그러니까 801년에 가탐도리기를 쓸 당시 마전도, 고사도, 득물도를 지나서 당은포구로 들어간다고 했는데 그곳이 바로 명나라 때는 양방구로 바뀌었던 것이죠.

밑에 보시면 요하도라는 지명이 있고, 요부관이라는 지명이 있는데요. 이 부근에 당은포구가 있었던 것 아닌가 추정하는 것이죠.

문헌을 봐도 명나라 정사인 《명사》를 보면 양방구관이라는 관이 있는데 바다로부터 오는 배가 이곳에서 요하로 들어간다고 되어 있는 것이죠. 그러니까 양방구, 요하, 당은포구가 같은 곳에 있었던 것이죠.

참고로 당나라 등주에서 출발을 해서 발해왕성으로 가는 길을 복원을 하면 대개 이런 모습입니다. 등주에서 압록강당은포구까지는 바다배를 타고 가고 당은포구에서는 작은 강배로 바꾸어서 압록강을 쭉 거슬러 올라가다가 압록강 끝에서 내려서 땅 길로 발해왕성까지 가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다음에 《연산도》라는 지도가 있습니다. 《인자수지》라는 책에 나오는 지도인데요. 경사가 지금의 북경입니다. 북경 오른쪽 위에 압록강이 있죠.

저는 이 지도를 처음에 보고 무슨 이런 말도 안 되는 그림이 있느냐 라고 생각을 했는데 사실은 정확하게 그린 지도입니다.

요하 중에서 서요하, 그중에서 남쪽으로 흐르는 강을 압록강이라고 표시한 것이죠.

구글 지도에서 오른쪽을 압축을 하면 이런 모습이 되죠.

결국 이 지도는 사실을 정확하게 표시한 것입니다.

이 지도는 《도서편》에도 반복해서 나오고 《우공회소》라는 책에서는 《제경도》, 황제의 도읍을 그린 지도라고 이름이 바뀌었지만 내용은 같죠. 다만 이쪽에 보시면 여진이 표시가 되어 있죠.

그러니까 여진족이 살던 곳 왼쪽을 흐르는 강이니까 너무나 당연히 지금의 요하죠. 그 당시 요하를 압록강이라고 불렀던 것이죠.

1613년에 나온 《도서편》 이라는 책에 또 다른 지도가 하나 실려 있는데요. 《화이고금형승지도》라는 지도입니다. 중국과 오랑캐의 옛날과 현재의 땅 모양을 그린 지도라는 것이죠.

그런데 이 부분을 확대해서 보면, 압록강이 보이시죠. 이게 현재 어디쯤 될까요? 바로 오른편 위에 주석이 있는데요.

한번 보시면, 옛날 숙신의 땅이다. 수나라 당나라 때 흑수말갈이 있었다. 당나라 초에 연주를 설치를 했고 흑수부가 있었다. 금나라 태조가 여기서 일어났고 금나라가 여기서 망했다. 발해에 요도가 있었다. 원나라 때는 만호부를 설치를 했다. 본조 명나라 때는 200여 개의 도사위가 있다.

현재의 요동땅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압록강은 현재의 요하죠. 거의 완벽한 증거죠.

세 번째, 현재의 애하를 압록강이라고 불렀습니다. 구글맵을 보면 여기 흐르는 강을 애하라고 하죠. 위치가 현재의 압록강 입구 거의 다 가서 있죠.

1896년에 그려진 《팔도지도총론》이라는 지도집인데요. 미국 의회도서관에서 소장하고 있습니다.

먼저 《대조선국전도》를 보시죠. 서쪽을 위로 하고 북쪽을 오른쪽으로 해서 눈에 익숙지 않습니다.

왼쪽으로 90도 돌리면 이렇게 되는데요. 조금 눈에 익숙하시죠.

여기 보시면 강 하구에 대총강이라고 되어 있고 조금 올라가면 구련성이 있고 그 옆을 흐르는 강을 압록강이라고 적어놨죠.

그다음 지도는 《평안도도》라는 이름의 지도인데요.

조금 더 확대를 해보면, 강 입구에 대총강. 그 위에 구련성, 그 옆으로 흐르는 강을 압록강이라고 해놨죠.

그다음에는 조선시대 때 그려진 《해좌전도》라는 지도인데요. 이 부분을 확대하면 마찬가지로 대총강이 보이고, 구련성이 보이고, 오른편에 압록강이라고 적혀 있죠.

그다음에 규장각에서 소장하고 있는 《관서총도》라는 지도를 보시죠. 이 부분을 확대해서 보면 마찬가지로 여기에 대총강이 있고, 조금 올라가면 구련성이 있고, 그 옆을 흐르는 강을 압록강이라고 해놨죠.

앞에서 본 세 편의 지도는 한반도만을 대상으로 그린 지도고 중국에서 그려진 지도 몇 가지를 보겠습니다.

먼저 《도서편》이라는 책인데요. 제일 마지막 부분에 《조선도》라는 지도가 붙어 있습니다. 보기에 조금 까다로운 지도인데요.

먼저 제일 밑에 개성부터 시작을 하죠.

그 북서쪽에 대동강이 보이죠.

그리고 그 위쪽에 대령강이 보입니다. 이 강이 현재의 압록강이죠.

이 강을 쭉 따라서 올라가 보면 위쪽에 갑산. 삼수갑산 할 때 갑산과 함경도가 보이시죠.

그 왼편에 있는 백산이 바로 백두산이겠죠.

그다음에 왼편에 흐르는 강을 압록강이라고 적었습니다. 바로 지금의 애하를 이야기하는 것이죠.

이 강을 쭉 따라서 올라가다 보면 왼편에 심양이 보입니다. 그러니까 이 애하는 요동반도 가운데를 흐르는 것이죠.

쭉 따라 올라가다 보면 태백산이 보입니다. 이 태백산이 바로 원래 장백산을 말하는 것이죠.

그러면 이 압록강과 대령강 사이는 현재의 요동땅입니다. 그런데 이 요동땅 한가운데에 평안도가 보이죠. 좀 이상하죠. 평안도가 요동땅 한가운데 있다는 것이 선뜻 이해가 가지 않으시죠.

1700년도 초에 프랑스의 아주 유명한 지리학자인 당빌 선생이 그린 지도 두 편을 보시죠.

1730년에 독일에서 발행된 지도인데요. 그 저본은 당빌지도입니다. 이 부분을 확대해 보시면, 여기가 압록강, 여기가 백두산, 여기가 두만강이죠. 그런데 여기 PINGAN이라고 돼 있고 여기에 HIENKING이라고 되어 있죠. 우리말로 PINGAN이 평안도고 HIENKING이 함경도죠.

평안도를 보면, 절반은 현재의 압록강 북서쪽에 있고 또 절반은 현재의 압록강 동남쪽에 있죠. 평안도 한가운데를 현재의 압록강이 흘러가는 것입니다.

그다음에 1732년에 나온 지도인데요. 확대를 해보면 앞의 지도와 거의 유사합니다. 여기가 현재의 압록강이고, 여기가 백두산, 여기가 현재의 두만강이죠. 마찬가지로 여기가 평안도인데요. 요동땅 상당 부분을 평안도가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죠.

그러면 애하라는 강이 어떻게 해서 압록강이라고 불렸을까요? 소위 말하는 유조변이라는 국경 때문입니다. 유조변은 여러 가지 이름으로 불립니다만 유조변장, 유조변책 등등으로 불리죠.

버드나무 류[유][柳] 자에 가지 조[條] 자, 변방 변[邊] 자에 담장 장[𢉈] 자. 그러니까 버드나무 가지로 만든 변방의 담장이라는 뜻이죠.

청나라 때 영토의 동쪽 끝을 만리장성처럼 성으로 쌓은 것이 아니고 살아있는 버드나무로 담장을 친 것이죠.

이 그림은 1700년 대에 청나라 정치인인 장부라는 선생이 그린 유조변의 그림입니다.

현재도 유조변의 흔적이 여기저기 남아 있고 또 설명비가 곳곳에 설치되어 있죠.

보시는 바와 같이 “청대유조변”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1883년도에 그려진 지도를 보면 이 부분을 확대를 하면 여기 연두색으로 보이시죠. 이게 바로 유조변입니다. 그러니까 이 부분 서쪽이 청나라 땅이니까 당연히 이 부분 동쪽은 조선 땅이었겠죠.

그다음에 1830년도에 《서북피아양계만리일람지도》라는 지도죠. 현재 서울역사박물관에서 소장을 하고 있죠.

확대를 해보면 여기 빨간 줄로 그어진 부분이 유조변입니다. 그리고 사이사이에 성채의 모습이 그려져 있는데요. 유조변을 통과하는 일종의 검문소 역할을 하는 것이죠. 그러니까 이곳이 바로 청나라의 동쪽 끝이죠. 그리고 그 오른쪽은 당연히 조선땅입니다.

《성경여지전도》를 보셔도 여기를 확대를 해서 보면 유조변이 보이시죠.

그런데 1880년도에 만들어진 《중국, 일본, 한국 지도》. 현재 미국 의회도서관에서 소장을 하고 있는데요.

이 부분에서 빨갛게 표시된 부분이 유조변입니다. 그런데 애하가 이 녹색인데요. 유조변 가를 흐르는 것이죠. 다시 말해서 이 당시에는 유조변이 국경이었고 국경에 애하가 흐르고 있으니까 당연히 애하를 압록, 즉 국경이라고 불렀던 것이죠.

그다음에 위에서 소개했던 1875년도 일본의 스파이들이 만든 《조선전도》입니다.

윗부분을 학대해서 보면, 빨간 부분이 유조변이고 녹색으로 그린 부분이 애하 부분이죠. 물론 조금의 편차는 있습니다만 조선과 청나라 국경에 유조변이 설치가 됐고 유조변 가를 흐르는 강이 바로 애하였던 것이죠.

그다음에 규장각에서 소장을 하고 있는 《해동지도》라는 지도를 보시면요.

여기에서는 이미 이름이 애하가 애합하라고 되어 있죠.

그리고 압록강은 지금의 압록강을 압록강이라고 표시를 해놓은 것입니다.

예컨대 1700년대 초반에는 이미 조선의 국경이 많이 후퇴를 해서 현재 애하까지 밀려났고 그쪽에 청나라가 유조변을 설치를 했고 이 국경을 흐르는 강을 압록강, 압록수라고 불렀던 것이죠.

마지막으로 네 번째가 1712년 강희제가 숙종을 윽박질러서 현재의 백두산에 정계비를 세우고 또 1718년에 《황여전람도》에 현재의 백두산과 압록강과 두만강을 표시함으로써 공식적으로 현재의 국경이 만들어진 것이죠.

그때부터 현재의 압록강을 압록강이라고 부르게 된 것입니다.

이상 여기까지 4개의 압록강에 대해서 말씀을 드렸는데요. 요약을 하면, 첫 번째는 고구려 시대 때만 하더라도 현재의 혼하를 압록강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리고 그 이후에 발해가 강토를 사방 5천 리로 확대하면서부터 요하 전체를 압록강이라고 불렀고 그다음에 발해가 망하고 나서 고려시대 때도 상당 기간 현재의 요하에서 요나라와 대치를 했기 때문에 현재 요하를 압록강이라고 불렀던 것이죠. 그리고 조선 세종 때 조금 후퇴를 했다가 청나라가 들어서고 나서는 국경이 유조변까지 밀리면서 유조변을 흐르던 애하를 압록강이라고 부르다가 강희제 때 천 리 땅을 날로 빼앗긴 이후에 현재의 압록강을 압록강이라고 부르게 된 것이죠.

여담으로 조금 다시 돌아가는 느낌은 있습니다만 세 번째, 애하를 압록강이라고 불렀을 때 현재 압록강은 뭐라고 불렀을까요?

여러분들께서 너무나 잘 아시는 《대동여지도》. 고산자 김정호 선생께서 만드신 지도죠. 1861년도에 만들어졌으니까 불과 160년 전 이야기입니다. “당연히 압록강을 압록강이라고 불렀겠지” 라고 생각하실지 모르는데요. 실제 지도를 보시죠.

규장각에서 소장하고 있는 판본인데요. 현재 보물로 지정돼 있죠. 원래는 낱장입니다만 전체를 펼쳐보면 이런 모습이 되죠.

확대를 해서 보면 현재 압록강 입구에 대총강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하버드 대학의 옌칭연구소 도서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판본인데요. 여기도 확대를 해보면 대총강이라고 되어 있죠.

영국의 국립도서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판본인데요. 여기에도 확대를 해보면 대총강이라고 되어 있죠.

그다음은 프랑스 동양언어문화학교에서 소장하고 있는 판본이죠. 마찬가지로 확대를 해보면 대총강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불과 160년 전에도 압록강을 대총강이라고 불렀고 그중에 지류 하나인 애하를 압록강이라고 불렀던 것이죠.

《대동여지도》 말고도 대총강이 나타난 지도는 아주 여럿 있습니다. 보물로 지정된 《해동지도》, 규장각에서 소장을 하고 있는데요. 《의주부》 지도를 보시면, 확대를 해보면 여기에 대총강이 있죠.

대동총도라는 《조선전도》를 보셔도 압록강 강구에 대총강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미의회도서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동국지도》를 보셔도 확대를 해보면, 마찬가지로 대총강으로 되어 있죠.

규장각에서 소장하고 있는 《서북계도》 원본이고, 글자가 흐려서 잘 안 보입니다.

모사본인데요. 확대를 해보면, 마찬가지로 대총강으로 되어 있죠.

미의회도서관에서 소장을 하고 있는 《조선지도》도 확대를 하면 대총강.

마찬가지로 미의회도서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동국팔도지도》를 봐도 확대를 해보면 여기에 대총강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아까 세 번째로 말씀드린 우리가 애하를 압록강이라고 불렀을 당시에 현재 압록강은 대총강이라고 불렀다는 지도는 이 말고도 수없이 많습니다.

이상 여기까지 압록강의 위치 변화에 대해서 살펴봤고 마지막, 고유명사의 이동의 사례로서 평양에 대해서 살펴보죠.

먼저 질문을 하나 던지겠습니다. 지나족들 역사책에 나오는 최초의 도읍지가 어디일까요?

현재로서는 사마천 《사기》보다 훨씬 더 신뢰성을 인정받고 있는 《죽서기년》이라는 책이죠. 별칭으로 《급총기년존진》으로 되어 있는데요.

오제기를 보시면, “순임금이 평양에서 요임금을 가두고 제위를 얻었다.” 또 “순임금이 평양에서 요임금을 석방을 했다”는 글귀가 나옵니다.

사마천 《사기》에서는 요순우 시대가 최고의 태평성세고 요임금이 자기 아들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 당시 가장 뛰어난 사람이었던 순임금을 발탁을 해서 임금으로 앉히고 순임금도 마찬가지로 자기 아들을 물리고 당시 가장 똑똑했던 우임금한테 자리를 물러주었다고 하는 소위 선양이라는 아름다운 제도를 자랑하고 있죠.

그런데 《죽서기년》이라고 하는 죽간에 쓰여진 책을 보면, 다 역사 조작이고 왜곡이라는 것이죠. 순임금이 쿠데타를 일으켜서 요임금을 쫓아내고 그 자리에 앉은 후에 정권을 장악하고 그때서야 순임금을 풀어줬는데 그런 사건이 일어난 장소가 평양이라는 것이죠.

《한서》에 보면 요도평양이라고 나옵니다. 평양인데 요임금이 도읍을 했던 평양이라고 해서 요도평양이라고 쓰고 있죠.

물론 우리나라 평양과는 한자가 다릅니다. 그렇지만 지나족의 평양이나 우리의 평양이나 고유명사지만 보통명사의 성격을 갖고 있기도 합니다. 평평한 구름 위에 있는 도읍지를 평양이라고 불렀던 것이죠. 도읍지가 수시로 바뀌는데요. 도읍지가 바뀌면 평양이라는 이름도 따라서 이동을 하는 것이죠.

예컨대 서울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대한민국 수도는 서울이라고 하면 서울은 고유명사죠. 그런데 미국의 서울은 어딥니까? 워싱턴DC입니다 라고 하면 이때 서울은 보통명사죠. 그 나라의 도읍이 어디입니까? 수도가 어디입니까? 라고 물어본 것이죠. 마찬가지로 평양은 특정 시점에는 고유명사지만 도읍이 이동을 하면 같이 따라 이동을 하는 보통명사의 성격도 갖고 있는 것이죠.

제가 시간관계상 다 말씀드릴 수는 없고 고구려 때에 도읍이 여기저기 이동을 하면서 평양도 여러 곳에 나타나는데요.

장수왕 때 천도를 하고 결국 마지막 고구려가 멸망할 때 도읍이었던 평양은 우리가 알고 있듯이 현재 북한에 있는 평양이 아닙니다. 현재 요동 한가운데에 있는 요양을 평양이라고 불렀죠. 그리고 고려 때 서경을, 현재의 평양을 서경으로 불렀다고 되어 있는데요. 이도 아니죠. 고려 때는 현재 요동 한가운데에 있는 요양을 서경으로 불렀던 것입니다.

《도서편》을 보시면 《화이고금형승지도》라는 지도가 나오죠.

이 부분을 확대하면, 요동땅 한가운데 남쪽은 조선이고, 북쪽은 여직인데 그 밑에 주석이 있습니다.

정원, 당나라 때죠. 정원 때 당도호부로 이름을 붙였다. 현재 요양에 당도호부가 있었죠. 예로부터 이르기를 고구려 때는 평양이라고 했고 그 후, 고려 때는 서경으로 이름을 바꾸었다고 쓰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당나라 때 도호부였던 요양이 고구려의 평양이었고 고려 때는 서경이었던 것이죠.

요나라의 역사책인 《요사》를 보면 훨씬 더 정확하게 나옵니다. 북위 태무제가 사신을 보내서 고구려 왕이 거주하는 평양성에 이르게 하니, 요의 동경이 본래 이곳이다. 당고종이 고구려를 평정하고 이곳에 안동도부를 설치했다. 뒤에 발해의 대씨 소유가 되었다.

그리고 또 《요사》를 보면 938년에 남경을 동경으로 바꾸고 그 밑에 산하부로서 요양을 두었다는 것이죠. 그러니까 고구려 때 평양은 요나라 때 동경이고 그 산하에 요양이라는 부가 있었다는 것이죠.

평양 이야기는 간략하게 마치고 다섯 번째 주제에서는 특정 시점에는 고유명사가 한 군데에 고착되어 있지만 5천 년 역사를 놓고 보면 이 고유명사들이 마치 발이 달린 보통명사처럼 여기저기를 옮아 다니는데요. 그 예로서 동이, 그리고 요수, 요하, 요동, 요서, 그리고 압록강, 평양에 대해서 말씀을 드렸습니다.

제가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려야 될 수밖에 없네요. 제가 웬만하면 강의 시간은 잘 맞추는데 어제 서재에서 마지막 리허설을 할 때는 어느 정도 말을 빨리 하니까 됐는데 아침에 혀가 굳어서 그런지 조금 진행이 잘못된 것 같습니다. 하여튼 제가 말씀드린 내용은 전부 훨씬 더 상세하게 동영상으로 만들어서 올리고 훨씬 더 정확한 자료까지 첨부를 하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