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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력

  • BC 356, 마케도니아 왕국[1]의 왕자로 출생
  • BC 338, 카이로네이아 전투에 부왕 필리포스 2세와 함께 참전
  • BC 336, 부왕이 암살되자 군대의 추대를 받아 약관의 나이로 즉위
  • BC 334, 페르시아 원정 개시
  • BC 333, 킬리키아의 이수스 전투[2]에서 다리우스 3세[3]의 군대 대파, 이후 10년간 인도에까지 이르는 대원정 사업 추진
  • BC 324, 회군하여 페르세폴리스[4]로 복귀
  • BC 323, 바빌론[5]에서 33세의 젊은 나이로 사망

시대적 배경

그리스 도시국가 시대가 쇠퇴하고 페르시아의 전성기도 기울면서 유럽과 아시아에 걸친 통일의 기운이 성숙

당시 문명은 상당한 군사력, 행정력, 문화력, 인프라를 보유하여 대제국 건설의 기초를 제공


성장 과정

알렉산더는 정치가와 군사지휘관으로서의 자질은 부왕으로부터 전수받았음. 부왕은 실제 전투에 왕자인 알렉산더를 똑같은 지휘관의 일원으로 대동하여 전투경험을 갖게 함

13세부터 3년간 당대 최고 철학자인 아리스토텔레스로부터 자연, 인문을 배웠으며, 특히 그때 읽은 「일리아드」[6]는 생애를 통해 그의 행동과 사고에 큰 영향을 끼침

호메로스[7]의 시 등 고전을 애독하여 원정 시에도 지니고 다녔으며, 학자를 대동하여 각지의 탐험․측량을 실시하고, 그리스 문화를 변함없이 숭상


주요 업적

그리스에서 중앙아시아(지금의 아프가니스탄), 인도북부에 이르는 대제국 건설

자신의 이름을 딴 알렉산드리아(Alexandria)라는 도시를 70개나 건설[8]


후대에 미친 영향

알렉산더는 자손이 없어 사후 제국이 수하 장군들에 의해 분할. 이후 로마의 시저가 제2의 알렉산더를 꿈꾸며 대제국 건설

유럽과 아시아의 문명들을 융합하여 헬레니즘[9] 문명을 형성하고, 이는 기독교(헤브라이즘, Hebraism)과 함께 서양문명의 2대 원류 중 하나가 됨. 알렉산더의 인도 원정으로 헬레니즘과 불교 문명이 접촉하고 그 영향은 신라 석굴암 불상에까지 나타남[10]

리더십 특성

①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과 열정

알렉산더는 호기심과 탐구정신으로 과학적 실험을 수행하고 정복지의 자연과 문화를 연구

알렉산더가 최초로 잠수함을 만들어 바다 밑을 탐험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음

정복지에서 기이한 동식물을 발견하면 표본을 채집하여 당시 최고의 생물학자였던, 자신의 스승 아리스토텔레스에게 보내 연구하도록 함

자신이 정복한 세계의 지식을 총결집한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을 건립

② 다국적군의 강점을 결집, 시너지 창출

휘하 정복지의 다양한 군대의 개성을 살리면서 이들의 긴밀한 연결에 의한 전투력 향상을 지향

테살리아(Thessalía)의 중장기병, 트라키아(Trakai)의 창병, 크레타(Creta)의 궁수, 아이톨리아(Aetolía)의 투창병 등을 결합시킨 다국적군을 지휘

각군의 특성과 강점을 결합, 견고한 밀집부대와 기민한 기병대의 모순된 속성을 결합. 기병대의 기동적인 급습과 바위같이 육박하는 보병의 추진력을 동시에 보유한 하이브리드(hybrid)형 모델 구축

알렉산더는 전쟁의 역사상 처음으로 예비대 개념을 도입

알렉산더는 유목민의 기병전술을 도입하고 전투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최초로 예비대의 개념을 도입

알렉산더가 2300년 전에 사용한 반스웜 전술은 현대 미육군의 대게릴라 전술로 활용[11]

③ 진정한 세계제국의 이상을 추구

알렉산더는 정복지의 모든 실리와 왕실 재산을 신하들에게 아낌없이 배분하고 자기 것은 챙기지 않았음

신하들이 폐하의 몫은 무엇인가고 묻자 그는 “나는 희망을 갖겠다”고 대답

미지의 새로운 세계에의 탐험추구라는 이상과 비전을 중시

알렉산더는 페르시아-인도 원정에 단순히 영토 확장이 아니라, 동서양의 통합이 통합된 세계제국의 건설이라는 이상을 제시

페르시아 정복 후, 지금의 아프가니스탄, 인도 북부까지 수많은 국가들을 정복하면서도 국가간, 조직간 충돌 최소화

그리스 청년 장교와 페르시아 여성들 수백 명을 집단결혼시켰으며, 스스로 페르시아 공주와 결혼, 민족통합 추진

관용과 평화의 세계제국 건설을 위해 정복지의 고유한 통치구조와 문화는 물론 풍습까지 보호

그리스의 민주주의, 인간존중 문화, 관용의 기준을 전파하되, 정복지의 종교, 풍속, 규범을 존중

에페소스(Ephesos)[12]에서는 민주주의를 정착시키되, 과거 독재자에 대한 보복과 살해를 금지시킴

바빌론에서는 고유 종교인 마르두크(Marduk)[13] 사원을 재건했으며, 카리아에서는 여성 가장제도를 존중, 여성 총독을 임명

BC 324년, 모든 민족대표 9천 명이 평등하게 모이는 오피스 향연 개최


[1] 마케도니아 왕국(Kingdom of Macedonia): 그리스 북부의 고대 왕국. 주민은 도리아계 그리스인. 초기에는 페르시아에 복종했지만 그리스와 협력하면서 국력을 획기적으로 강화. 필리포스 2세가 BC 338년 카이로네이아의 싸움에서 승리하여 그리스의 패권을 장악. 그가 암살되자 아들인 알렉산더가 왕위를 계승. 알렉산더 사후에 수하 장군들 간에 격렬한 권력투쟁이 전개되었으며 안티고노스 2세(재위 BC 276∼239)에 이르러 혼돈은 수습되고 헬레니즘시대가 개막. 지중해와 세계 진출의 웅도를 품고 있던 필리포스 5세(재위 BC 221~179) 때 로마와 충돌하여, 패하자 왕국은 멸망.

[2] 이수스(Issus)는 소아시아반도 남동쪽에 붙어 있는 이스켄더룬의 옛 이름.

[3] 고대 페르시아제국 아케메네스 왕조 최후의 왕(BC 380?∼330).

[4] 페르세폴리스(Persepolis): 페르시아제국의 수도. 그리스인의 호칭이며 고대 페르시아어로는 파르사. 이란 남부, 시라즈 북동쪽 약 60㎞ 지점에 위치.

[5] 바빌론(Babylon): 고대 바빌로니아의 수도. 유적은 이라크의 수도 바그다드 남쪽 약 110㎞ 지점인 유프라테스 강변에 위치. 본래 메소포타미아의 오랜 신역.

[6]「일리아드(Iliad)」: 호메로스(Homeros)의 작품으로 고대 그리스의 영웅서사시. 제명은 ‘일리오스(Ilios)의 노래’라는 뜻이며, 일리오스는 트로이(Troy)의 별칭. 10년에 걸친 트로이 공방전의 종말 무렵 50여 일 간의 사건을 다룬 것으로, 중심주제는 ‘아킬레우스의 분노’. 「오디세이」와 함께 그리스 최대최고의 고전.

[7] 호메로스(Homeros): 고대 그리스 시인. 「일리아드」와 「오디세이아」의 작자.  그리스 시대를 통하여 가장 많이 강의되었으며 그리스인의 의인적 신관과 인간관을 형성하는 데 크게 기여.

[8] 현재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 알렉산드리아 마르기아나(현재 카스피 해 옆 카라쿰사막 남단의 메르프), 아라코시아의 알렉산드리아(현재 힌두쿠 시 준령 남단의 칸다하르), 카프카스의 알렉산드리아(현재 카불 북쪽의 베그람), 합류지점의 알렉산드리아(현재 펀잡 지방 라비 강 남단의 우치치), 가장 먼 알렉산드리아(현재 소그디아 지방의 에샤테) 등.

[9] 헬레니즘(Hellenism): 고대 그리스 종말로부터 로마시대 성립까지의 시기에 그리스 고유문화와 오리엔트문화가 융합하여 이루어진 그리스 문화·사상·정신·예술 등을 가르키는 말. 그리스인이 ‘스스로’를 가리키는 ‘헬레네스(Hellenes)’라는 낱말에서 나온 말로 ‘그리스풍’이라는 뜻. 1863년 독일의 드로이젠이이 ‘헬레니즘사’라는 책에서, 로마·게르만 두 요소의 복합을 로마니즘(Romanism) 이라고 부르는 데 착상하여 그리스·오리엔트 두 문화가 서로 영향을 주고받아 질적 변화를 일으키면서 새로 태어난 문화를 헬레니즘이라 부름.

[10] 원래 석존이 입멸 후 5백여 년 동안은 불상이 조성되지 않았음. 기원후 1세기경 알렉산더 대왕의 동정을 계기로 페샤와르(현 파키스탄의 북서부)를 중심으로 한 간다라(Gandhara) 지방에 정착한 그리스인들의 헬레니즘 신상숭배의 모습을 목격한 불자들이 그 영향을 받아 불상을 만들기 시작하면서 간다라 미술이 탄생. 간다라 미술은 헬레니즘 미술의 양식과 수법으로 불교의 주제를 표현한 조각 위주의 그리스풍 불교미술. 인도 고유의 석굴미술이 간다라 미술과 융합되어 연파한 불교석굴은 아프가니스탄의 바미얀 석불군, 우즈베키스탄의 테레메스 석굴, 중국 신장의 키질과 쿰투라 석굴, 투르판의 베제크리크 석굴, 돈황과 뤄양, 윈강의 석굴, 그리고 신라까지 이어짐으로써 동서에 걸친 하나의 긴 연파대를 조성. 석굴암은 이 연파대의 동단에서 가장 완숙된 모습으로 그 대미를 장식한 석굴로 평가.

[11] 반스웜(anti-swarm) 전술은 유목민의 집중포위공격(스웜 전술, swarm tactics)에 대응하는 전술. 알렉산더의 보병주축 군대가 자자테스(현재 우즈베키스탄 지역)에서 스키타이족의 궁기병들과 조우했는데 그들은 빠른 기동력으로 포위하고 긴 사정거리를 이용해 화살로 집중공격. 알렉산더는 그들의 기동력을 제한할 자연지형적 장애물, 즉 강이나 요새가 필요함을 간파했지만, 주변에 장애물이 없자 기병대 일부를 미끼로 사용하여 스키타이족들을 유인해서 격파. 현대 미육군의 대게릴라 전술은 이와 흡사. locate(위치파악), fix(고정), 접전(engage) 순으로 적을 공격.

[12] 에페소스(Ephesos): 소아시아 서해안에 있던 이오니아의 고대 도시.

[13] 마르두크(Marduk): 고대 바빌로니아의 신으로 ‘태양의 아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