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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CTATION 17 페이지

 

 

반갑습니다. 지난 에피소드에서 중화국치지도 속에 담겨 있는 시대정신이 기연파경[欺軟怕硬]이라는 사자성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약한 자를 업신여기고 강한 자를 두려워한다는 뜻이죠. 오늘은 기연파경이라는 말의 어원과 용례, 쓰임새에 대해서 간략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인터넷에서 기연파경이라고 검색을 해보니까 페이스북 한 페이지가 뜨죠. 자유바람이라는 페이스북인데요. 전직 대통령의 뒷모습이 그려져 있고 그 밑에 ‘억강부약을 말하고 기연파경을 한다. 강한 자를 누르고 자를 돕는다.’라고 말하고서는 약한 자를 업신여기고 강한 자를 두려워한다고 쓰고 있죠.

한눈에 알 수 있는 것이 억강부약[抑强扶弱]과 기연파경[欺軟怕硬]이 반대말이죠. 억강부약[抑强扶弱]. 누를 억[抑]에 강할 강[强]이니까 강자를 누르고, 도울 부[扶]에 약한 약[弱]이니까 약자를 돕는다는 것이죠. 합하면 강자를 누르고 약자를 돕는다는 것이겠죠. 시쳇말로 강대강 약대약[强對强  弱對弱]입니다. 그 반대말이 기연파경[欺軟怕硬]이죠. 이미 우리들이 앞서도 여러 번 살펴봤듯이 약한 자를 업신여기고 강한 자를 두려워한다는 뜻이죠. 이게 바로 중화국치지도 속에 담겨 있는 지나족들의 시대정신이라는 것이죠.

중국 한자사전에서 기연파경을 찾아보면 같은 뜻의 설명이 되어 있고 출처가 있습니다. 중국의 너무나 유명한 소설인 홍루몽에서 이 말이 나온다는 것이죠.

홍루몽이라는 소설은 청나라의 건륭제 시대 때 조설근이라는 분이 쓴 장편 소설이죠. 무려 721명의 등장 인물이 나오는 대하 스토리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중국 소설 분야에서 삼국지나 서유기, 수호전에 비해서 인지도가 조금 낮습니다만 중국에서는 홍루몽까지를 포함해서 4대 소설로 친다고 합니다.

이 소설을 보면 주인공 중에 하나가 영국공이라는 분이 나오는데요.

이분의 아주 오래된 노복 중에 초대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 사람의 이야기가 제7편에 나오죠.

초대라는 사람은 아주 어릴 때부터 영국공과 함께 전쟁에도 서너 번 나갔고 또 한 번은 자기 주군이 시체 속에 쌓여 있을 때 주군을 발견해서 업고 나온 적도 있고 또 밥이 떨어지면 주인을 위해서 음식을 훔쳐서라도 조달해서 바치고 또 마실 물이 떨어지면 자기는 말의 오줌을 먹는 대신에 물을 구해서 주인한테 바치고 하는 등 아주 공을 많이 세우죠.

그런데 이 사람이 이런 공로를 인정을 받자 기고만장을 하게 되고 그래서 성격이 바뀌었는데요. 그 성격을 표시할 때 기연파경[欺軟怕硬]이라는 사자성어를 쓰죠. 그러니까 초대라는 사람의 성격이 약한 자를 업신여기고 강한 자를 두려워한다는 것이죠.

그런데 제가 중국의 다른 고전 문헌 데이터베이스를 찾아보니까 홍루몽보다 훨씬 앞선 출처가 하나 있습니다. 불교, 불교 중에서도 선종불교 관련 책에서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저도 불교에 대해서는 문외한입니다만 아마 선종불교에서는 거의 천 년을 넘게 내려오고 있는 아주 유명한 공안, 다시 말해서 화두가 하나 있다고 합니다.

700년대 당나라 시절에 선종 대사였던 마조도일 스님 이야기죠.

이 스님의 이야기가 대략 300년 뒤에 송나라 때 조동종 제10대 선사인 굉지정각 스님의 글에 소개가 되죠.

굉지정각 스님이 쓰신 책 이름이 청익록이라는 책인데요. 풀네임이 상당히 깁니다. 《만송로인평창천동각화상념고청익록》이라는 책입니다.

그 책의 중간에 제16번째 단락에 <마조 원상>이라는 제목의 글이 있습니다.

마조스님이 원 모양을 그렸다는 뜻이겠죠.

마조스님이 들고 계시는 작대기를 주장자라고 하죠. 스님들께서 법문을 철하시든지 또는 만행에 나설 때 이를 반드시 지니고 다니시죠. 말하자면 일종의 지팡이 역할을 합니다. 그러니까 마조스님이 이 지팡이를 가지고 원을 그렸다는 뜻입니다.

내용을 보시죠. 어느 날 외부에서 한 스님이 마조 선사를 찾아왔는데요. 선사께서 뜰에다가 원을 하나 크게 그려놓고 말씀하셨다는 것이죠. “당신이 이 원 안에 들어와도 나는 주장자로 당신을 때릴 것이고 원 안에 들어오지 않아도 나는 당신을 때릴 것이다.”라고 이야기를 했는데 그 스님이 원 안으로 바로 들어왔다는 것이죠. 그러자 마조 선사도 바로 그 스님을 주장자로 때렸습니다. 그러니까 그 스님이 “저를 왜 때리십니까. 저를 때리시면 안 됩니다.”라고 말을 하자 마조 선사는 주장자에 기대서 더 이상 말을 하지 않고 주장자를 버리고 방장실로 들어갔다는 것이 전체 이야기인데요.여기 보시면 대사기연파경[大似欺軟怕硬]이라고 되어있죠. 그러니까 마조 선사의 행동이 기연파경과 크게 닮았다고 지금 주석이 붙어 있는 것이죠. 약한 것에는 강하고 강한 것에는 약하다는 뜻인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외부에서 찾아온 스님이 그냥 원 안에 들어오니까 주장자로 세게 때렸는데 그 스님이 마조 선사한테 강하게 “왜 저를 때립니까. 안 됩니다.”라고 하니까 약해져서 주장자에 기대서 아무 말을 못하다가 주장자를 버리고 방장실로 들어갔다. 다시 말해서 스님이 약하게 나왔을 때 선사가 강하게 나갔고, 그 스님이 강하게 나오자 마조 선사가 약하게 대응을 했다. 그러니까 바로 기연파경[欺軟怕硬]이라고 해석하는 것 같습니다.

제가 불교도 잘 모르고 공안이나 화두는 더욱 모르기 때문에 제대로 설명이 됐는지 조금 걱정이 되네요.

그다음에 비슷한 말, 유사어가 있죠. 토강여유[吐剛茹柔]를 설명한 말을 보면 약소[弱小], 약하고 작은 것은 괴롭히고 강경[強硬], 강하고 단단한 것을 두려워하는 모습을 비유했다고 되어있죠.

그리고 비슷한 말로서 기연파경[欺軟怕硬], 기약파강[欺弱怕強]. 기연파경이나 기약파강은 거의 같은 뜻이죠. 연[軟] 자가 약[弱] 자로 바뀌었고 경[硬] 자가 강[強] 자로 바뀌었으니까 약한 것을 업신여기고 강한 것을 두려워한다고 해석할 수 있겠죠.

토강여유[吐剛茹柔]를 보겠습니다. 토할 토[吐]에 굳셀 강[剛], 강한 것은 토하고 먹을 려[茹]에 부드러울 류[柔]니까 부드러운 것은 먹는다. 글자 그대로 직역하면 단단하면 뱉고 부드러우면 삼킨다는 뜻인데 아마 오랜 시간을 지나면서 뜻이 조금 변형이 되어서 강자는 두려워하고 약자는 업신여긴다로 바뀐 것 같죠.

이 내용은 《시경》 대아편에 나옵니다. 중간에 보시면 인역유원유칙여지[人亦有言柔則茹之] 하고 쭉 나오죠.

이 부분은 우리가 하상주라고 할 때 주나라의 선왕, 그러니까 주선왕과 주선왕의 경사, 그러니까 국무총리쯤 되는 것이죠. 경사인 중산보 선생의 이야기에서 나오는 문구죠.

《시경》 대아편에서 나오는 글을 바로 보시죠. 엄숙하신 왕의 명을, 중산부가 다 맡아서. 그러니까 엄숙하신 왕은 주나라 선왕이죠. 그런데 중산보가 총리니까 대행을 한다는 뜻이겠죠. 나라가 잘 되고 안 됨을, 중산보가 밝혔도다. 밝고 어질게, 그 몸을 보존하고 밤낮으로 꾸준하게, 왕 한 사람만 섬겼도다.

사람들 말에, 부드러운 것은 삼키고 단단한 것은 뱉으라고 했다. 하지만 중산보는, 그와는 거꾸로 부드럽다고 삼키지 않고 단단하다고 뱉는 일이 없었다네. 직역을 하면 이런 것인데요.

의역을 하면, 아까 한전에서 이야기했던 것으로 바꿔보죠. 사람들 말에 강자를 두려워하고 약자를 업신여긴다고 했지만 그러나 중산보는 약자라고 업신여기지 않고 강자라고 두려워하지 않았다고 해석하는 게 좀 더 원뜻에 가까운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기연파경이라는 말은 직접 나오지는 않습니다만 근대에 들어서 기연파경의 아주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준 케이스를 하나 보죠.

이홍장 선생 이야기입니다. 이홍장 선생은 청나라 말 때 태평천국의 난을 수습을 하고 그 이후에 중국 군대를 근대화하는 데 많은 기여를 했죠.

그런데 1882년에 조선에서 임오군란이 일어나고 1884년에 갑신정변이 일어났을 때 조선에 원세개 선생을 파견하면서 서신을 한 통을 보냈는데요. 그 내용이 바로 기연파경의 뜻을 담고 있습니다.

그대로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지금 대청제국은 비록 만신창이가 되어 있지만 조선은 여전히 우리의 번속국이다. 우리는 반드시 조선에서 누려야 할 종주국의 지위를 지켜야 하며 다른 열강들과 어깨를 견줄 수 있어야 한다고 서신에 적었다는 것이죠.

다시 말해서 세계 열강들에 대해서는 청나라가 만신창이가 되었다는 것이죠. 그러니까 강한 자에게는 약하다는 것이죠. 그런데도 불구하고 조선은 속국이고 그래서 청나라가 종주국의 지위를 확실하게 지켜야 한다. 그래서 군대를 보내서 임오군란을 진압하고 갑신정변을 확실하게 진압을 하라고 원세개 선생한테 명령한 것이죠. 그러니까 강한 자에게는 약하지만 약한 자한테는 강하게 나간다는 기연파경의 전형적인 사례가 된 것이죠.

이상 여기까지 기연파경[欺軟怕硬]이란 말의 어원과 용례, 쓰임새에 대해서 살펴봤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