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18일에 국회사무처 요원들을 대상으로 “21세기 디지털 유목민 되기”라는 주제로 강의했다. 국회방송에서 <명사특강>으로 방영되었고 <국회보>의 편집장인 이진섭 공보관께서 사무실을 방문해서 인터뷰를 했다.

[관련자료]  2005.3.18. [강의] “21세기 디지털 유목민 되기” 국회사무처


원문보기_text 212p

국회보 인터뷰 발췌_text 13p


[편집인이 만난 사람] 윤순봉 삼성경제연구소 부사장

대담: 이진섭 공보관

가진 것 다 버리자? 천만에! 있는 것 더 잘하자

디지털시대에는 플러스알파를 창출하는 소프트웨어가 경쟁력

이진섭: 지난달 국회사무처에서는 모처럼 간부직원들을 상대로 연찬회를 가졌습니다. 국회간부직원들이라면 허구한 날 수다한 언변가들 사이에 파묻혀 사는 분들이니까 웬만한 얘기로는 감동을 받기 어려운, 한참 까다로운 청중들인데 우리 윤 부사장 얘기에 그날 상당히 혹한 것 같아요. 기업 컨설팅분야의 전문 강사들이 설 입지가 좁아지겠어요. 월 몇 번 정도 강연회에 불려 나가십니까?

윤순봉: 강의는 거의 안 나가는데 공공 분야에서 부를 때, 그러니까 정부나 여러 부처, 국회 이런 데에서 부를 때는 가끔씩 나가지요.

이진섭: 강의안은 몇 가지나 갖고 계십니까?

윤순봉: 예, 저는 그 패턴으로 해 가지고 한 20여 가지가 있지요. 그날은 전체 프로그램 한 30시간짜리의 제일 첫 번째 도입부분만 말씀 드린 것입니다.

이진섭: 베르나르 베르베르가 〈개미〉라는 책에서 그 비슷한 얘기를 한 것 같은데 그날 서두에 말씀하시기를 “지구에 살고 있는 동물 중에서 주인공이 누구라고 생각하느냐?”, 상식의 허를 찌르는 난센스 퀴즈 같은 얘기를 꺼내면서 청중을 확 잡아 끄신 것 같은데, 개미의 총 중량이 진짜 사람 무게보다 많습니까?

윤순봉: 정말 그렇답니다. 저는 자연과학 서적을 많이 읽는데 그런 책들을 보면 지구상에 사는 개미의 총 무게가 지구상에 사는 사람의 무게보다 많아요.

이진섭: 삼성경제연구소의 영어 약자가 SERI이지요. SERI.org.

윤순봉: 원래 삼성 이코노믹 리서치 인스티튜트 (Samsung Economic Research Institute)니까 SERI지요.

이진섭: 혹시 박세리의 이미지를 차용한 것은 아닌가요

윤순봉: (웃음) 우리 장난할 때 몇 가지가 있는데 미국에 가면 박세리 할 때 세리, 일본에 가면 요술공주 세리 할 때 세리, 그 다음에 한국에서 세상의 이치를 밝힌다 할 때 세리….

무겁고 느리고 닫힌 세계에서 ‘小速連開’의 세계로

이진섭: 세리(世理)라 말 되네요. 그날 강연 중에 옛날에는 뭐든지 크고, 무겁고, 느리고, 또 닫힌 세계, 독야청정 그런 것을 추구했는데 지금은 그 반대로 작고 빠르고 사방으로 연결되어 있는 열린 세계, 소속연계(小速連開)를 지향한다, 그게 유목민의 특징이다 그런 말씀을 하셨지요. 아마 우리나라 언어 중에서 전 세계적으로 제일 많이 알려진 언어가 ‘빨리빨리’라는 말이 아닌가 싶은데 전 세계 어디를 가 봐도, 예컨대 관광상품점이나 음식점 같은 데 가면 ‘빨리빨리’라는 말은 다들 알고 있지요.

어떻든 빨리빨리, 급히 서둘고 빠른 변화를 추구하는 그런 우리의 기질이 인터넷 시대에 기막히게 맞아떨어지는 느낌이 드는데 뭐든지 후딱 해치우고 빨리 바꾸다 보면 자기의 정통성을 잊어버릴 위험도 없지 않겠어요. 주체성, 정통성이라고 할까, 아이덴티티(identity)를 지켜 나가는 것하고 변화에 빨리 적응하는 것을 어떻게 조화시키느냐, 그 점도 함께 생각하십니까.

윤순봉: 우리가 스스로 한국 사람들을 비하할 때 가장 많이 쓰는 게 한국 사람은 성질이 급하다, 빨리빨리, 대충대충, 투기성, 치맛바람, 이런 이야기들을 막 하지 않습니까. 그것은 산업화 시대에는 굉장한 약점이지요. 그런데 디지털 시대가 되니까, 최고의 가치는 퀄리티보다도 스피드거든요.

이진섭: 복부인, 치맛바람 뭐 이런 것도 디지털시대와 궁합이 맞는다는 말씀인가요.

윤순봉: 치맛바람이라는 게 어떻게 보면 굉장히 나쁘게 보이지만, 한국은 아무것도 없잖아요. 사람도 없고 자원도 없고 돈도 없고 오로지 사람 머리, 휴먼 캐피털을 가지고 살아남아야 되는데 치맛바람이… 최고의 힘은 캐피털입니다. 그러니까 엄마의 치맛바람, 하여튼 내 자식은 나보다 공부를 더 해야 된다, 이것이 국가경쟁력하고 바로 연결이 된 겁니다.

이진섭: 우리나라 부모들이 자식 공부 못하는 것보다 학교에서 왕따 당하고 기죽고 매 맞고 들어오는 것보고 더 못 참고,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있나’ 하고 마구 부추기고 설쳐대는 것이 거꾸로…

윤순봉: 그게 한국적 평등주의입니다. 대한민국 국민들의 창업가 정신(Entrepreneurship)이 세계 1등이라고 그러거든요. 이 창업가정신이 어디에서 생겨나느냐 하면 이런 평등주의에서 생겨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애들보고 ‘너 커서 뭐 할래’ 하면 다 대통령 된다고 하고 신입사원보고 ‘너 나중에 뭐 할래’ 그러면 다 사장한다고 하잖아요. 그런데 일본 가면 절대 그런 소리 못합니다. 애들보고 ‘너 뭐 할래’ 수상한다고 하면 미친 놈 소리 나오거든요. 한국적 평등주의라는 게 나쁘게 보면 배 아픈 것을 못 참는 것이지만 좋게 보면 도전정신, 무한한 가능성, 그런 밑거름이 되지요.

유목민 리더는 군림하는 대신 ‘서포팅’ 한다

이진섭: 옛날에 칭기즈칸이 말과 활의 상승속도 덕분에 몽고기마병들이 질풍노도 같은 기습전을 펼쳐 세계를 제패했습니다. 그날 칭기즈칸의 리더십에 대해서 정착민의 리더와 대비해서 몇 가지를 요약해서 말씀하셨는데 한 번 더 들려주시지요.

윤순봉: 정착민의 리더들은 전쟁을 나가도 자기가 전투를 안 해요. 뒤에서 앉아 총지휘만 하고 명령만 하잖아요. 그런데 유목민의 칸이나 인디언 추장들은 대장이 제일 먼저 나가요. 그러니까 논리가 아니라 실력이 중요한 것이지요. 유목민들은 좋은 리더가 나타나면 사람들이 구름 떼처럼 모여요. 역사를 보면 11세기, 12세기 때 칭기즈칸 몽고족들이 세계의 3분의 2를 지배했잖아요. 뛰어난 유목민 대장이 나오면 사람들이 구름 떼처럼 몰립니다.

이진섭: 핀란드, 헝가리까지 유라시아 대륙을 거의 대부분 지배했다고 해도 되겠지요 옛날 유방을 도와 천하를 제패한 장자방이가 좋은 새는 나무를 보아가며 둥지를 틀고(良擒相木而捿), 현신은 주인을 택해 보좌한다(賢臣擇主而佐)는 유명한 말을 남겼는데, 우리 옛 화백제도가 사실은 진짜 민주적이었습니다.

윤순봉: 예, 몽고족들은 우두머리, 지도자를 칸이라고 부르고 흉노족들은 선우라고 불렀는데 미국의 학자 믹예이츠는 그들의 공통점을 ‘4E’로 표시했어요. 인비전(envision), 인에이블(enable), 에너자이즈(energize), 임파워(empower)인데 인비전, 그러니까 비전을 제대로 내걸고 그 다음에 인에이블, 비전을 실천할 수 있도록 능력과 시스템을 갖추고 세 번째가 에너자이즈, 자기가 갖고 있는 에너지를 부하 직원들한테 쏟아주고 네 번째가 자기가 갖고 있는 파워를 현장으로 떨어뜨려 주고 권한 이양을 하는…. 인디언 추장이나 칸은 군림하지 않습니다. 코치를 하고 도와주는 서포터 역할을 해요. 그리고 전쟁을 할 때는 전쟁의 대장이 되지만 평상시에는 그냥 자기 자리로 돌아가서 남들하고 똑같이 먹고, 똑같이 살고, 권한을 독점하지 않고 다 분배하고… 그게 요새 기업경영에서 스톡옵션 하는 것하고 똑같지 않아요. (웃음)

이진섭: 우리나라 사람들의 민족적인 기질이 정착민적 기질과 유목민 쪽의 기질이 섞인 혼합형이라고 볼 수 있는데 유목민은 개인적이라고 할까, 창의적이고 도전적인데 비해 정착민들은 중앙집권적이고 권위적인데 우리 배달겨레가 옛날에 북방에 살다가 반도에 내려와서 갇혀 가지고 정착민이 되는 바람에 옛날의 그런 창의성, 도전성 같은 게 많이 사그라졌거든요. 그런데 지금 인터넷 정보화 시대, 세계화 시대에 와서 그게 다시 꽃이 피는데 아마 삼성, 특히 전자 쪽에서 견인차 역을 하는 게 아닌가 합니다.

윤순봉: 그렇지요. 그게 학자마다 좀 틀린 데 대개 정설은 우리가 어떤 정신적 가치, 단군의 자손, 이런 이야기를 예로 한다고 하면 실제 인류학적으로 보면 우리 핏줄 속에서 북방계 몽골리언이 80%이고 남방계 몽골리언이 20%거든요. 남방계 몽골리언은 배를 타고 쌀을 가지고 넘어와서 우리한테 쌀농사를 가르쳐 준… 농삿말 중에서 지금도 버마, 태국하고 같은 말이 굉장히 많고 그 다음에 우리나라 허 씨들이 다 인도 사람들 아닙니까 허 씨들이 김수로왕의….

이진섭: 우리나라 경상도가 소백산맥에 갇혀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북방계가 남하하다가 소백산맥에 막혀 호남 쪽으로 내려갔고 남방계는 주로 김해, 부산, 그런 쪽으로 와서 역시 소백산맥을 못 넘어 영(嶺)의 남쪽에 자리 잡았다, 그래서 ‘알 신화’를 가진 경상도 사람들 중 남방계가 많다는 설도 있습니다.

윤순봉: 다양한 학설이 있는데 사실 5천년 동안에 조선시대 초까지만 해도 우리가 다 유목민처럼 살았다는 것이지요. 여자들도 말 탔고, 전쟁터에 나가고 그랬지 않습니까.

이진섭: 고려시대 때까지는 그랬다고 하지요.

사이버스페이스를 점령한 한국 N세대의 저력

윤순봉: 조선시대에 와서 그 뒤에 유교사상을 받아들이면서 양반문화가 자리잡게 됐기 때문에, 사실 5천년 중에서 4천 5, 6백년을 유목민처럼 살았다는 것이지요. 그러다가 요 몇 백 년 동안에 정착민으로 살았는데 사실 우리 인자 자체에는 유목인자가 그대로 살아남아 있다는 것이지요. 그게 특히 주변 강국들, 러시아, 만주, 중국, 일본에 둘러싸인 지정학적 위치 때문에 갇혀 있다가 사이버스페이스, 디지털 때문에 가상공간이라는 게 나오면서 특히 우리나라 젊은이들, 2, 30대 N세대들 손에 서 다시 살아난 것이지요. 제가 볼 때는 우리나라 N세대들이 사이버스페이스를 점령해 나가는 속도가 칭기즈칸이 세계를 지배하는 속도만큼 빠릅니다. 우리나라 젊은이들의 소위 유목민 기질, 스피드, 상상력, 독창성, 예술적 감각, 이런 것들은 전 세계적으로 타의 추종을 불허합니다. 최근에 세계의 수많은 일류 기업들이 디지털 상품이나 서비스를 새로 만들면 반드시 서울에 와서 실험을 합니다. 왜냐하면 전세계에서 서울만큼 실험 대상이 다양하고 효과적으로 실험을 할 수 있는 곳이 없거든요. 이것을 경영학적으로 이야기하면 테스트 베드(test bed), 실험장이라고 하지요. 한국은 전 세계 최고의 디지털 실험장입니다.

이진섭: 우리 배달겨레가 세계 최초의 사이버 부족으로 거듭나게 됐지만, 한편으로 보면 우리나라만큼 담배 이름 자주 바뀌고 정당 이름 자주 바뀌고 음악, 종교까지도… 말하자면 민족정서와 정통성까지 가장 빨리 바꿔 치우는 그런 나라라고 볼 수 있는데 지금까지는 그게 식민지 근성, 변방체질, 반도기질 같은 데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냐 이런 식으로 본 사람들이 많았는데 이것을 유목민의 유전인자에서 유래한다고 보면 한결 속이 편해질 것 같습니다만… 역시 너무 허무하게 우리 것을 잃고 있지 않나 합니다.

윤순봉: 이라크 전쟁도 어떤 의미에서 보면 자원전쟁이지만 더 속으로 들어가면 종교전쟁이거든요. 이슬람원리주의자 대 기독교 원리주의자들의 충돌이라고 보면 양자가 서로를 인정을 안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우리나라만큼 이렇게 다양한 종교를 인정하는 나라가 어디 있습니까.

이진섭: 몽고가 세계를 제패했으면서도 지금의 팍스 아메리카하고는 차원이 달랐지요.

윤순봉: 그래서 우리가 ‘세계화, 세계화’ 하는데 인류역사상 최고의 세계화를 이룬 게 팍스 몽골리카(Pax Mongolica), 몽고족이 세계를 지배했을 때가 최고의 세계화라고 합니다.

‘상생과 포용’의 세계공동체 시대 열려야

이진섭: 그런 점에서는 영연방이 전 세계를 지배한 적이 있고 지금도 미국이 그 후예라고 볼 수 있지만, 이 다음 세기에는 ‘몽고 연방’이라고 할까 우랄알타이 연방이라고 할까, 무력이 아니고 과학기술과 문화와 정신의 힘으로, 그런 상생과 포용의 우랄알타이연방 같은 세계 공동체가 새로 나와야 되는 것 아닌가, 그래야 세계가 평화를 찾고 정말 다원주의가 인정되는 새로운 문명이 도래하는 것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듭니다.

윤순봉: 그러니까 세계 역사를 봐도 우리가 세계 역사를 정착민의 역사와 혼동하는데 인류가 300만 년 살았다고 하지만 지금으로부터 400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지구의 대부분을 유목민 또는 이동민들이 지배했거든요. 최근 요 산업화 시대 직전부터 지금까지 한 3, 400년 동안에 정착민들이 세계를 지배했는데 현재 세계 지배의 원리는 정착민들의 지배 원리지요.

이진섭: 아니, 아직도 유목민이 세계를 지배한다고 볼 수 있겠어요. 항해시대가 열리면서 배를 타고 유목하는, 해양족이 수백 년간 패권을 잡아왔잖아요. 북극해를 제외하고 전 세계 해안을 영미의 해양 유목민들이 장악하고 있지 않습니까.

윤순봉: 영국, 스웨덴, 네덜란드, 이런 나라들이 바다를 통해 세계를 재패한 나라 아닙니까.

이진섭: 그렇지요. 그게 세계 조류의 흐름하고 일치합니다. 스페인, 포르투갈에서 배를 타고 가면 표류를 해도 콜럼버스가 당도한 쿠바 근처로 가게 되어 있습니다. 옛날에 콜럼버스가 항해를 하면서 선상 반란을 당하고 배가 표류를 하는데도 그쪽으로 떠내려갑니다. 지금 앵글로 색슨 문명이 옛날에 아메리카에서 살던 죄 없는 원주민들을 다 쓸어버리고, 참으로 참혹한 비극적 역사인데, 태평양을 앞뜰로 만들면서 극동지방으로 건너온 게 불과 1세기 전 일입니다. 대륙을 통해서 아프리카, 아랍, 동남아시아를 집어삼키며 극동에 오는 것하고 그게 시점이 겹칩니다. 지구가 둥그니까…… 그게 세계대전으로 폭발하는 20세기 초의 상황인데, 말하자면 세계 2차 대전의 본질이 그거라고 보면 됩니다. 해류가 시계방향으로 도는 것이 문명의 방향이라고 할까, 서구열강의 세계진출 방향과 일치합니다. 이것이 21세기에 와서 세계의 양대 조류 내지 기운이 우리 쪽에 모여 있다고 보는 하나의 논거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데, 그런 점에서는 극동이 21세기 새 문명의 재출발점에 섰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윤순봉: 아주 재미난 분석이십니다.

마(魔)의 1만 불 덫, 어떻게 돌파할까

이진섭: 이제는 화제를 세리로 돌려볼까요. 삼성경제연구소가 작년 가을 현 정부 들어설 때 경제 재도약을 위한 10대 제안을 하셨지요. 그때 주된 논점이 뭐였나요.

윤순봉: 우리나라가 소위 말하는 국민소득 1만 불 트랩에 걸렸다, 1만 불 트랩이라는 것은 우리뿐만 아니고 전세계 나라들이 공통으로 걸리는 현상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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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섭: 아르헨티나가 지하철을 처음 놓은 게 우리보다 반세기 이상 앞섰다고 합니다. 그것도 1919년 3월 1일.

윤순봉: 20세기 초반, 중반까지만 하더라도 아르헨티나가 전 세계 4등 국가였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아주 추락을 해 버렸습니다. 1만 불의 함정에 걸려서 우리나라가 헤매고 있는데 이것을 어떻게 돌파해서, 최소 선진으로 가려면 일단 2만 불까지 가야 되니까 어떻게 선진으로 갈 것이냐, 이렇게 경제 측면에서 제안한 것 하나가 있습니다. 그 다음에 두 번째 측면은 자본주의 체제가 유지되려면 기본적으로 양극화 현상이 해소되어야 됩니다. 지금 우리나라는 양극화가 그렇게 심하지는 않지만, 빈익빈 부익부, 해외기업 대 국내기업, 대기업 대 중소기업, 실업자 대 취업자, 이런 식으로 모든 부분에서 양극화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데….

이진섭: 최근에는 이념 논쟁까지 곁들여지고 있으니까….

우리나라가 선진으로 가려면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 사회로 가야 합니다. 우리 사회는 실패에 대한 관용이 너무나 빈약합니다. 실패를 장려해야 되고 거기에서 경험을 얻어 다시 일어나야 됩니다. 그러면서 발전하는 것입니다.

윤순봉: 그것을 해소하고 어떻게 우리가 선진으로 갈수 있느냐, 그에 대해 열 가지 제안을 했는데 그때 저희들이 내건 캐치프레이즈가 다섯 가지입니다. 첫 번째가 미래로, 두 번째가 밖으로, 세 번째가 스스로, 네 번째가 실질로, 다섯 번째가 더불어, 이런 구호들을 냈습니다. 첫 번째 ‘미래로’는 모든 국가전략이나 정책들을 미래 지향적으로 펼쳐보자, 과거를 청산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욱 더 중요한 것은 우리가 어떻게 한국의 미래를 설계할 것이냐 다, 그 다음에 ‘밖으로’는 이 작은 땅덩어리에서 서로 간에 너무 상충관계를 갖지 말고 밖으로, 세계를 향해서 우리가 어떻게 펼쳐 나갈 것이냐를 고민하자, 그 다음에 ‘스스로’는 우리나라의 많은 주체들이 남들한테 다 기대고 있습니다. 농촌도, 중소기업도, 실업자들도, 노인층들도 다들 남한테 기대서 무엇인가를 하려고 하는데 물론 정부가 도와줘야 되겠지만 스스로 갈 길을 찾자, 그 다음에 ‘실질로’는 이제 이념논쟁은 그만하자, 좌냐 우냐 보수냐 진보냐 이런 것 하지 말고 실제 뭐가 대한민국에 도움이 되는 것이냐를 가지고 논쟁을 벌이자는 것이고, 마지막 ‘더불어’는 그렇지만 사회약자들은, 충분하게 보호해 가면서 나가야 된다, 그런 다섯 가지 키워드가 있지요.

SERI의 힘: 열린 연구, 현장 연구, 고객을 위한 연구

이진섭: ‘4로 1어’로 잘도 정리가 된 것 같습니다. 삼성경제연구소에서 나온 보고문이라든가 이런 게 대단히 저널리스틱 하다, 먹혀 든다, 이런 말도 있지만 또 그만큼 조금 가벼운 것 아니냐는 평판도 있는 것 같습니다. 하여튼 삼성경제연구소가 지금은 한 대기업의 방계 조직이라든지 기업 자체를 위한 연구소 차원을 넘어 국가의 미래와 세계의 방향까지 내다보고 지침을 마련하는, 그야말로 국가전략 싱크탱크로서의 역할을 감당하게 된 것 같고 국회라든지 정부 차원에서 자꾸 윤종용 부회장이나 윤 부사장 같은 분들을 모셔 가지고 얘기를 듣는 것이 그런 인식을 인정받은 결과가 아닌가 싶은데, 삼성경제연구소가 발족할 때부터 그랬습니까.

윤순봉: 아닙니다. 처음 발족했을 때는 삼성이 어떻게 초일류기업이 될 것이냐에 대한 관심이 굉장히 많았지요.

이진섭: 그래서 그 방법을 찾아보자, 그런 뜻에서 만든 것이었지요

윤순봉: 그렇습니다. 발족도 그렇게 했고 또 우리 과제들 중에서 한 60, 70% 이상이 삼성그룹과 관련된 과제들이었습니다. 그러다가 대전기를 맞이한 계기가 IMF 사태입니다. IMF 사태 때 우리도 느꼈고 그룹의 CEO들도 느꼈던 게 대한민국 경제가 망하면 삼성이고 뭐고 아무것도 없다, 일단은 대한민국 경제가 살아야 삼성도 같이 산다, 그래서 ‘97년도에 저희 연구소 미션을 바꾸었지요. 그 결과 지금은 삼성그룹에 관련된 것은 한 10~20%밖에 안 되고, 나머지 한 80% 이상은 대한민국 경제를 어떻게 잘 되게 할 것이냐 그런 것이거든요.

이진섭: 연구 분위기를 보니까 혼자 연구하는 것, 독방연구자는 필요 없다, 모든 것은 토론을 통해서 하고 또 현장을 중시하는 그런 분위기라고 하는데 개개인이 어떤 테마를 가지고 연구를 하다가 그것을 합동으로 토론을 해서 보고문의 방향을 잡는 것입니까.

윤순봉: 예, 어떤 보고서는 한 70명이 모여서 만드니까요. 우리 캐치프레이즈가 몇 가지 있는데 첫 번째가 ‘열린 연구’이고, 두 번째가 ‘현장 연구’, 그 다음이 ‘고객을 위한 연구’입니다. 열린 연구라는 게 어떤 취지냐 하면 대한민국에서 일어나는 현상들 중에서… 경제나 정치나 사회나 딱 잘라서 뭐라고 할 수 있는 현상들이 없어요. 모든 것이 다 복합적으로 일어나는 현상들이 거든요.

이진섭: 그렇지요. 세상만사 다 유기적으로 전부 연관되어 있으니까. 한두 사람한테 맡겨 버리면 장님 코끼리 더듬는 식이 되어 전모는 미궁에 빠져버릴 위험이 적지 않겠지요.

윤순봉: 예를 들어 우리가 내년도 경제성장률을 전망한다고 할 때는 대개 한 80명 이상 붙습니다. 그래서 전세계, 또 국내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기술, 산업, 기업경쟁, 고객 모든 요소를 다 검토해요. 처음에 연구할 때는 큰 마스터플랜을 짜고 그 다음에 일을 나누고 전원이 다 모여서 워크숍을 몇 번씩 합니다.

이진섭: 그래서 삼성의 보고서가 현실감이 있다는 소리를 듣는 것 같아요. 책상머리에서 쥐어짜는 워딩 위주의 보고서는 발붙일 데가 없구만요. 기자처럼 발로 뛰는 필드워킹을 중요시한다는 말씀이네요.

윤순봉: 우리는 책 같은 것을 통해서 연구를 안 시켜요. 모든 것을 현장에 직접 나가서 하도록 합니다. 또 우리는 문제제기 보고서는 없어요. 답이 없는 보고서, 대안이 없는 보고서는 쓰지 마라, 그리고 고객이 대안을 받았을 때 실제 실행에 옮길 수 있도록 해라, 저희들은 승부를 실행으로 합니다. 저희들은 ‘발렌타인데이’ ‘화이트데이’ 하지 말고 그 대신에 ‘견우직녀의 날’ 하자, 그리고 그때 초콜릿 대신 농산품을 예쁘게 만들어서 선물하자, 이런 제안도 하고, 저희들이 벤처농업 성공에 대한 심포지엄을 벌써 5회 이상 했어요.

이진섭: 예컨대 그렇게 해서 농약이라든지 비료를 덜 쓰는 무공해 청정 농업을 하면서 이웃에 있는 중국하고 가격 경쟁력을 맞출 수 있는 그런 방안이 나옵니까.

윤순봉: 나오지요. 우리 목표는 첫 번째가 1촌 1CEO, 그러니까 시골 한 마을에 청년지도자 한 사람씩을, 기업으로 따지면 CEO로 양성하자, 그래서 그들이 자기 마을을 고부가가치로 만들자는 게 첫 번째인데 방금 말씀하신 유기농이라든지 청정농업 쪽으로 발전을 하지요. 그 다음에 세 번째가 고객을 위한 연구인데, 우리는 어떤 연구를 하든지 간에 꼭 고객을 설정합니다. 고객이 있는 연구와 고객이 없는 연구는 하늘과 땅 차이거든요. 많은 연구자들이 빠지기 쉬운 함정이 기술을 위한 기술, 연구를 위한 연구입니다. 그러면 자기만족은 하지만 고객은 모르잖아요. 그래서 우리 캐치프레이즈가 ‘고객이 원하면 지옥까지 간다’입니다.

이진섭: 사실 꼭 그렇게 하기야 어렵겠지만 고객과 함께 에이즈에 걸리는 한이 있더라도 자위행위는 안 된다는 말씀 같군요. (웃음)

외환위기: 문제는 브레이크가 아니라 엔진이다

윤순봉: 7년 전에 처음 우리가 연구보고서를 냈을 때는 전부 다 대학 박사논문 같았어요. 그래서는 안 된다, 그래서 제가 처음으로 했던 게 뭐냐 하면 모든 보고서를 10분의 1로 양을 줄여서 요약해라. 그래서 앞에 요약을 붙였어요. 그러면 200페이지짜리가 20페이지가 되잖아요. 그래도 신문기자들이 골치 아프다, OK 그러면 한 장으로 요약해라, 그래서 우리는 보고서를 4개 만들어요.

이진섭: 삼성 CEO출신인 국회 남궁 석 총장이 한 장짜리 보고서, 될수록 등장인물이 많은 ‘뉴스레터’를 아주 강조하는 편입니다. 삼성의 보고서 가운데 최근에 제일 비중 있는 것으로는 ‘2만불 시대 어떻게 달성하나’ 그런 것이었습니까.

윤순봉: 예, 그렇지요. ‘국민소득 2만불로 가는 길’ 그것도 비중이 굉장히 높았지요.

이진섭: 거기에 보면 ‘텐텐 전략’이라고 해서 견인차 역할을 하는 산업이 열 개 정도는 있어야 되고 또 핵심기업이 또 10개 안팎 있어야 된다, 그리고 2만 불 시대에는 200개 기업이 새롭게 나와야 된다, 그것은 저도 인터넷을 통해 본 기억이 나는데요.

윤순봉: 그것은 저희들이 계산상으로 한 것인데 삼성이나 LG나 포항제철, 현대자동차 정도 규모의 글로벌 플레이를 할 수 있는 기업이 한 10개 정도 나오면 2만불 정도 되니까요. 2만 불, 2만 불 구호만 외치지 말자 해서 조금 구체화시킨 것이지요.

이진섭: 목표 달성을 2010년 정도로 가상하고 만든 것이지요 지금은 환율 덕도 보고해서 더 당겨질 가능성이 높지 않습니까.

윤순봉: 2007년이나 2008년께는 달성될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가 소위 다이너미즘이 대단하거든요. 역동성이 라는 게 엄청난 나라인데 한국 국민들이 갖고 있는 유목기질에 더해 역동성을 얼마나 살리느냐에 따라서 2만불은 중간 허들이고 3만 불까지 가야지요. 역동성만 살리면 충분히 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최근에 역동성이 많이 죽고 있다는 겁니다. 거기에는 몇 가지 원인이 있는데 가장 결정적인 원인이 제가 볼 때는 외환위기입니다.

이진섭: 외환위기 때문에 오히려 분발한 점이 더 많지 않습니까.

윤순봉: 사실 외환위기가 나타난 데는 여러 가지 복합적인 요인이 있거든요. 비유해서 말씀드리면, 우리나라가 처음에 티코였어요. 그런데 점점 발전해서 소나타가 됐단 말이에요. 그런데 우리나라 사람들이 소나타가 잘 나가니까 기분이 좋아가지고 과속을 해서 교통사고가 난 거예요. 그러면 브레이크가 고장 났구나, 2,000cc 소나타에 4,500㏄짜리 에쿠스 브레이크를 붙여버린 거예요. 그러니까 지금 차가 안 나가는 거예요. 지금 사회에서 일어나는 모든 논쟁들은 얼마나 센 브레이크를 붙일 것이냐 하는 논쟁이에요. 그러니까 투명성부터 시작해서 감시하고 감독해야 되고 견제해야 되고 이런 것들이 전부 다 브레이크를 얼마나 더 잘 쓰느냐 이거예요. 그런데 차가 잘 나가려면 브레이크가 잘 들어야 되는 게 아니고 일단 엔진이 좋아야 되는 거 아닙니까.

이진섭: 아주 핵심 포인트를 말씀하셨는데 그러나 차제에 기본부터 갖추어 나가자는 반성이 있는 것은 좋은 현상이라고 봅니다. 거품이나 때는 많이 걷혔잖습니까.

실패를 장려하는 문화가 아쉽다

윤순봉: 경제 역사를 보면 전 세계적으로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high risk high return), 로우 리스크 로우 리턴(low risk low return)입니다. 20세기 들어서 선진으로 간 유일한 나라가 일본 한 곳 아닙니까? 우리가 두 번째 나라가 되려면 다시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 사회로 가야 됩니다. 그래서 저는 GNP 이전에 GNF를 늘리자고 주장합니다. 그로스 내셔널 페일류어(gross national failure), 국민총실패율을 높이자. 한 번 사고를 당해 나라 전체가 너무 수비적으로 빠졌는데 실패를 하지 않고는 성공할 수가 없어요. 그것은 마치 어린애가 기어 다니다가 언젠가는 갑자기 일어서는 것과 같아요. 그런데 어린애가 기어 다니다가 일어서려고 하면 2만 번쯤 넘어져야 일어선다는 것이지요. 그렇다고 놀래서 ‘일어서면 다치니까 평생 기어 다녀’ 이렇게 하면 안 되잖아요. 다시 일어나라, 넘어지고 일어나고 넘어지고 일어나고 하다가 애가 걸어 다니는 거지요. 우리 사회는 실패에 대한 관용이 너무나 빈약합니다. 실패를 장려해야 되고 거기에서 경험을 얻어 다시 일어나야 됩니다. 그러면서 발전하는 것입니다.

이진섭: 사람이 한 번 일어서려면 몇 만 번 넘어진다는 얘기를 저는 이런 관점에서 생각해 봅니다. 남북 문제 얘기 나올 때, 지금 완전 통일까지는 어렵지만 교류와 협력을 하는 데 있어 이런저런 사소한 시비만 불거져도 하다 말다 하는데 남북이 합치려면 어린애가 서는 것처럼 합치는 연습, 교류하는 연습, 협력하는 연습을 수만 번 해야 된다고 말입니다. 그 과정에서 자빠지고 엎어지고 깨질 수 있지만 한번 깨졌다고 해서 완전히 포기한다는 것은 있을 수가 없습니다.

윤순봉: 그래서 확률 개념을 갖고 봐야 됩니다. 완벽이라는 게 없잖아요. 100개를 해서 49개를 실패하고 51개를 성공했으면 전체 계산을 하면 2개가 성공한 것이니까 잘했다고 해야지, 실패한 것만 놓고 계속 비난하고 견제를 합니다. 그러니까 우리나라도 ‘패자부활전’을 만들어야 돼요. 사회 전체적으로 패자를 격려하고 실패하더라도 다시 일어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분위기가 되어야 됩니다. 제발 브레이크 만드는 고민 말고 엔진 만드는 고민을 해야 됩니다.

작지만 강한 나라, 강소국 모델 지향해야

이진섭: 칭기즈칸의 후예다운 좋은 말씀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자동차 엔진이 제발 작은 것부터 좀 더 여러 가지 크기로 다양하게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현 정부 들어서 중요한 개념 두 가지가 대외적으로는 동북아 중심 국가론, 지금은 그게 동북아 균형자론으로 각도가 약간 바뀐 것 같습니다마는 그것하고 대내적으로는 지역균형 발전론인데 그 아이디어도 세리에서 태동한 것 아닙니까?

윤순봉: 그렇지 않아요. 동북아 중심 국가보다는, 우리나라가 중심이 아니잖아요? 동북아 허브라는 개념이, 허브 앤 스포크(hub and spoke) 개념이 있지 않습니까? 바퀴에 우리가 허브가 되겠다는 개념은 아마 주변국가들이 받아들일 수 있을 텐데 중심 국가라는 것은 좀 받아들이기 힘들 거예요.

이진섭: 공의 표면은 어느 지점이나 다 중심이 될 수 있습니다만, 자부심이 강한 이웃들에게는 아무래도 거부감을 일으킬 수 있는 용어지요.

윤순봉: 그래서 저는 이런 주장을 많이 했었어요. 지금 물류 허브하고 금융 허브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 사실은 물류 허브하고 금융 허브는 우리나라에 안 맞습니다. 그것보다는 차라리 지식 허브 또는 디지털 허브를 해야 된다고 주장을 하는 입장인데….

이진섭: 혹시 SERI에서 100년 뒤의 한국 이런 것을 그린 것은 없습니까?

윤순봉: 저희들은 최고로 본 게 10년입니다. 1995년도에 2005년도를 전망했는데 겨우 비슷하게 맞추겠더라고요. 한 10년 정도 내다본 게 겨우 맞을 정도니까요. 하여튼 10년 전에 우리가 한번 예측한 적이 있는데 비슷하게 맞췄었어요. 그런데 10년이 넘어가면 예측이 불가능한 것 같아요.

이진섭: 국가의 성격이라든지 위상 이런 것을 얘기하려면 한 20년, 30년 뒤까지도 내다보면서 얘기를 해야 되는 것 아닌가요?

윤순봉: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미래라는 것은 주어진 미래가 있고 선택적 미래가 있거든요. 주어진 미래라는 것은 미래란 어떻게 될 것이라고 전제를 하는 것인데, 저는 우리가 가고 싶은 방향을 설정해 놓고 노력을 하면 거기로 가지는 것이다, 그게 선택적 미래라는 것이거든요.

이진섭: 거시적으로 봐서 우리나라가 통일된 뒤든지 통일 전이든지 간에 한국이 가야 될 모델 같은 것을 설정한 것은 없습니까?

윤순봉: 제가 2000년에 주장했던 모델이 강소국이라는 모델이거든요. 요새 강소국이라는 말을 많이 쓰던데 약자로 SBS 컨트리, 스몰 벗 스트롱 컨트리(small but strong country), 작지만 강한 나라입니다.

이진섭: 스위스 같은 나라가 우리의 살아있는 모델이 될 수 있겠네요.

윤순봉: 스위스도 아주 좋은 모델이지요.

이진섭: 지정학적으로 봐도 강대국으로 둘러싸여 있고 산악 지역이 많고 그러면서도 공해 없는 산업으로 세계최고 수준의 질 높은 삶을 누리고 있는 나라인데…

윤순봉: 스위스가 참 좋은 모델이지요. 산업도 우리한테 시사점이 많고 통일도 시사점이 많아요. 왜냐하면 스위스라는 나라는 원래 여러 개 캔턴으로 나누어져 있던 나라가 통합된 나라거든요. 지금 4개 국어를 같이 쓰고 있잖아요. 결국 캔턴들이 통일한 방식을 우리 남북통일에도 원용을 하면 시사점이 많지요.

이진섭: 스위스는 산악철도 같은 것도 상당히 잘 되어 있고 케이블카도 아주 발달되어 있는데, 우리나라는 몇 년 전에 설악산에 케이블카 놓으려다 환경단체에서 반대를 해서 못 놓았는데 케이블카 놓는 게 도로 뚫는 것보다 환경에 미치는 영향이 아마 10분의 1, 100분의 1도 못 될 거예요. 도로를 뚫으면 가만히 있고 케이블카 놓는 것은 전부 다 반대해서 못 놓지요. 스위스의 자연친화적인 관광을 배워야 합니다.

우리가 살 길은 하드웨어 아닌 소프트웨어

윤순봉: 관광은 우리나라 미래산업 쪽에서 굉장히 중요한 산업입니다. 지금 욘사마 배용준이나 탤런트 몇 사람, 영화, 음악 이런 것으로 하는데 폭을 훨씬 더 넓혀야 됩니다. 한국의 소리, 한국의 색, 우리나라 염료가 세계에서 아주 독창적이거든요. 한국의 맛, 요새 대장금 때문에 홍콩에서 한국 음식 붐이 엄청나게 일어나고 있어요. 한국의 느낌, 정서, 템플 스테이(temple stay)도 훌륭한 관광상품입니다. 좋은 것, 재미난 것을 보는 것도 좋지만 절에 한 2박 3일 조용하게 다녀오는 것도 참 좋거든요.

이진섭: 우리나라에 오염 안 되고 남아있는 것 중에서 전통사찰이 아마 제일 으뜸일 거예요.

윤순봉: 그렇지요. 그런 것을 다 포함해서 ‘코리아 필’, ‘필 코리아’, 한국을 느끼자, 이런 식으로 접근해야 됩니다. 그리고 스토리를 만들어 줘야 됩니다. 예를 들면 ‘다도해’ 이렇게 하면 안 팔려요. 거기에 뭐를 만들어야 되느냐 하면 이순신 벨트, 장보고 벨트, 러·일전쟁 벨트 이런 것을 만들어야 돼요. 일본인들이 넬슨 제독보다 더 높이 평가하는 사람이 이순신입니다. 세계 해전 역사상 최고를 이순신으로 치거든요. 그러면 예를 들어서 울돌목을 하드적으로 관광 가보면 물살 빠르다, 그것 관광해 봐야 30분이면 끝나잖아요. 그렇게 하지 말고, 옛날에 일본 배가 몇 십 척 왔을 때 우리가 몇 척 가지고 중앙을 어떻게 공격했다는 스토리도 만들고 비디오도 만들어 놓고 기념관도 만들면 완전히 하루짜리 관광이 되거든요. 그러면 이순신 벨트만 따라가도 일주일이 가는 것입니다.

이진섭: 한때는 기생관광·때밀이관광이 유행하기도 하고 논란을 일으킨 적도 있는데, 아무리 돈이 좋다지만 관광산업도 철학과 미학이 있어야 되지 않겠어요?

윤순봉: 재미난 게 뭐냐 하면, 일본 관광객 중에 처음에 사우나 관광을 왔단 말이에요. 그 다음에 때밀이 관광, 그 다음에는 성형수술 관광 이렇게 됐지요. 일본 여자들이 한국에 들어온 첫날 쌍꺼풀 수술하고 선글라스 끼고 관광하다가 실밥 딱 풀고 일본으로 가면 감쪽같다는 얘기예요. 그래서 제가 뭐라고 붙였느냐 하면 뷰티 관광, 아름다워지는 것도 관광상품이라는 거예요. 한국에 오면 얼굴도 예뻐지고 피부도 부드러워지고 또 영화 클러스터를 만들면 배우들도 왔다 갔다 할 것 아니에요? 그리고 남도 쪽, 경주, 부산, 경상남도, 전라남도, 남해안, 제주까지 거대한 관광벨트를 만들면 일본 사람들, 중국 사람들 엄청나게 옵니다. 한 5년 내에 세계에서 가장 거대 산업이 세 가지인데 석유, 자동차, 관광이에요. 관광이 세계 3대 산업으로 올라간다고요. 그 시장을 우리가 노려야 됩니다.

이진섭: 관광산업을 활성화시키는 데 지금 자꾸 중국하고 일본하고 우리가 갈등 관계를 일으키지 않습니까? 어떻게 현명하게 극복해야 될 것 같습니까?

윤순봉: (웃음) 좀 민감하네요. 잘해야지요. 우리가 살 길은 하드웨어가 아니고 소프트웨어예요. 제가 가지고 있는 키워드, 캐치프레이즈는 ‘디지털 앤 소프트’ 예요. 한국이 2만 불, 3만 불 시대에 도달하려면 디지털하고 소프트에 목숨을 걸어야 됩니다. 우리나라 전체가 ‘가진 것 버리자’ 이렇게 하지 말고 ‘있는 것 더 잘하자’, 1차 산업도 1.5차, 2차 산업도 2.5차, 3차 산업도 3.5차 이런 식으로 해야 돼요. 그것이 산업화의 길이지요.

거대한 지식생태계야말로 미국발전의 원동력

이진섭: 삼성경제연구소가 다른 연구소를 압도해서 독주한다, 다원화 시대의 가치를 창출하면서 역으로 삼성은 우리나라에서 일원화라고 할까 그런 쪽으로 가고 있는 게 일종의 모순이라면 모순인데….

윤순봉: 일단 연구소부터 말씀을 드리면 이런 건데, 워싱턴에 가면 가장 부러운 게 워싱턴에는 한 1000개의 연구소가 거대한 생태계를 이루고 있습니다. 브루킹스, 헤리티지 같은 큰 연구소와 또 5명, 10명 되는 작은 연구소가 1,000개 있어서 먹이사슬 관계를 이루면서 거대한 생태계를 이루고 있는데 사실은 그게 미국의 저력이고 미국 발전의 원동력입니다. 그 연구소들이 모여서 세계에서 일어날 수 있는 모든 가능성과 현상을 분석하고 판단하고 미래를 예측하고 정책대안을 마련하거든요. 그러니까 미국이라는 나라는 누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준비된 대통령일 수밖에 없는 게, 다 되어 있기 때문에 자기한테 맞는 것만 골라 뽑으면 되는 거예요.

이진섭: 미국 대통령은 마담 노릇만 하면 되는 것이지요.

윤순봉: 그렇지요. 그런데 불행하게 과거 한 몇 년 전부터 우리나라 연구 생태계가 서서히 붕괴돼 가고 있습니다. 이 연구소들을 빨리 부활시켜서 거대한 생태계로 다시 만들어서 국책연구소 같은 데에서는 큰 국가적인 연구를 하고 대학 같은 데에서는 기초연구를 하고 민간 연구소는 각 분야별로 새로운 응용연구를 해야 합니다. 그런 연구소들이 대한민국쯤 되면 최소한 100개 정도가 돌아가야 돼요. 국회도 마찬가지지요. 국회도 물론 의원들이 고민도 해야 되지만 다양한 연구소들과 같이 정보도 주고받고 토의도 하고 의견도 제시해서 수많은 정책대안들이 축적되어야 그 중에 제일 좋은 것을 골라서 법 통과하면 나라 법으로 되는 것 아닙니까? 그게 사실 제일 안타깝지요.

과거 한 몇 년 전부터 우리나라 연구 생태계가 서서히 붕괴돼 가고 있습니다. 이 연구소들을 빨리 부활시켜서 거대한 생태계로 다시 만들어서 국책연구소 같은 데에서는 큰 국가적인 연구를 하고 대학 같은 데에서는 기초연구를 하고 민간 연구소는 각 분야별로 새로운 응용연구를 해야 합니다.

이진섭: 제가 듣기로는 헤리티지가 원래 철도 재벌이었는데 창업자가 아들한테 물려주려고 하니까 그 아들이 “과정이 없는 부는 저한테는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기업을 안 받겠습니다” 하고 상속을 거부한 거예요. 그래서 헤리티지가 평생 동안 번 돈을 다 쏟아 넣어 연구소를 만들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윤순봉: 그렇습니까?

이진섭: 우리나라에서 재벌 중에는 아직 그런 재벌이 없지요. 그런 멋진 2세도 없고요.

윤순봉: 그쪽은 자본주의 역사가 200년이고 우리는 50년이니까 우리도 어느 정도 기간이 차면 그런 케이스들이 많이 나오겠지요.

이진섭: 스탠포드가 대학을 만든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윤순봉: 스탠포드대학도 철도 재벌이지요. 스탠포드가 내놓은 땅에 지은 대학이 스탠포드대학이지요.

이진섭: 스탠포드가 원래 하버드대학의 명예박사를 받고 싶었는데 거기에서 점잖게 퇴짜를 놓으니까 서부에 서 하버드대학을 만들겠다 해서 시작된 게 스탠포드대학인데 지금은 거꾸로 하버드 대학이 ‘동부의 스탠포드’라는 소리를 듣게끔 됐습니다.

윤순봉: 지식 생태계 문제는 좀 심각하게 다뤄야 돼요. 정부도 마찬가지이고 국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수많은 연구소들이 서포팅을 해 줘야 됩니다.

순종문화에서 잡종문화, 이종문화로

이진섭: 어떤 생태계든 제일 중요한 게 다양성인데 다양성을 어떻게 살려 가느냐….

윤순봉: 인류가 멸종하지 않고 생존할 수 있었던 원인이 다양성이거든요. 다양성이 부족하면 인류가 멸종합니다. 그래서 우리도 순혈주의의 순종문화에서 잡종문화, 잡종문화에서 이종문화로 가야 됩니다. 저번에 말씀 드렸습니다마는 사람이 임신을 할 때 난자가 정자 수억 개 중에서 한 개를 골라 뽑는 기준이 염색체 배열을 분석해서 자기 염색체 배열과 차이가 가장 많이 나는 정자를 선택하거든요. 그게 소위 다양성의 원리예요. 완전히 다른 것과 다른 것끼리 만나야 다양성의 원리가 나오거든요. 그런데 문제는 두 가지입니다. 다양성을 소화하는 사회가 있고 소화하지 못하는 사회가 있는데 미국이 저렇게 발전한 것은 다양성을 용광로 속에 넣어서, 소위 멜팅 팟(melting pot)이라는데 녹여서 새로운 플러스 알파를 만들어 내는 게 미국의 저력이지요. 미국처럼 다양성을 인정해 주는 사회가 없습니다.

이진섭: 미국은 다양성을 가장 잘 활용하는 나라이기도 하고 말살시키는 나라이기도 하고… 서울은 너무 과밀하고 서울과 부산 사이의 물류비용이 남미에서 한국까지 오는 것만큼 든다는 말이 나온 지가 오래됐는데, 마지막으로 행정수도문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윤순봉: 북경이 서울의 10배란 말이에요. 그러면 북경권을 서울에 딱 갖다 놓으면 인천·개성·서울·수원·기흥·천안 위까지가 한 권역이에요. 그리고 요새 모든 도시가 따로따로 떨어진 게 아니잖아요. 메가폴리스라고 해서 도시와 도시가 다 연결이 되어서 하나의 권역이 되어 버린단 말이에요. 수도가 어디로 가느냐 행정도시가 어디 가느냐의 문제가 아니고 전체 동일 권역이 어떻게 힘을 합해서 시너지를 낼 것이냐를 고민해야 돼요. 조금 고민이 덜 돼 있는 것이지요.

이진섭: 그런 점에 아직 착안이 안 됐다는 얘기지요. 오늘 여러 가지 좋은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말씀이 너무 고차원·다차원적이어서 따라잡지를 못 하겠습니다.

윤순봉: (웃음) 별 말씀 다 하시네요. 별로 재미도 없는 이야기인데….

이진섭: 아니 역시 별같이 빛나고 재미있는 주옥 같은 말씀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