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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반트의 유령들: 최초의 개척자들은 정말 ‘실패’했을까?
막다른 길에서 숨겨진 영향력으로
현생인류, 호모 사피엔스의 위대한 여정은 아프리카에서 시작됐다. 하지만 그 첫걸음은 어땠을까? 특히, 아프리카를 벗어나 처음으로 레반트(Levant, 오늘날의 이스라엘, 시리아 등 동부 지중해 연안)에 도달했던 선구자들의 운명은 오랫동안 미스터리였다.
얼마 전까지 과학계의 답은 단호했다. 약 19만 년 전 이스라엘 미슬리야(Misliya) 동굴이나 12만 년 전 스쿨(Skhul)·카프제(Qafzeh) 동굴에 살았던 인류는 그저 ‘실패한 시도’였을 뿐, 후대에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못하고 사라진 ‘유령’ 같은 존재라는 것이었다. 오늘날 우리 비(非)아프리카인의 조상은 그보다 훨씬 뒤인 약 7만~5만 년 전의 단 한 번의 성공적인 대이동에서 비롯되었다는 ‘단일 확산설’이 정설이었다.
하지만 최근, 화석, 유전자, 그리고 고대 기후를 복원하는 놀라운 기술들이 이 오래된 정설에 도전장을 내밀고 있다. 초기 개척자들의 이야기는 ‘완전한 멸종’이라는 비극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들은 비록 단명했을지라도, 인류의 대서사시에 우리가 몰랐던 영향을 남겼을 수 있다는 새로운 해석이 떠오르고 있다. 이것은 ‘막다른 길’에 대한 이야기가 ‘숨겨진 영향력’에 대한 이야기로 바뀌는 과정이다.
2011–2015년, 정설의 시대: “오직 한 번의 성공적인 탈출”
이 시기 학계는 하나의 깔끔한 이야기에 동의했다. 인류의 성공적인 ‘아프리카 탈출’은 비교적 최근에 일어난 단 한 번의 사건이라는 것이다.
마치 역사책의 한 페이지처럼, 이야기는 명확했다. 스토니브룩 대학교(Stony Brook University)의 베인(A. Beyin)은 오늘날 비아프리카인의 조상은 “7만 년 전 이후“의 단일 확산에서 비롯되었다고 정리했다(Beyin, 2011). 그 이전에 레반트에 도착했던 용감한 선구자들은 있었지만, 그들의 모험은 그저 “단명한(short-lived)” 해프닝으로 치부되었다. 런던 자연사 박물관(Natural History Museum, London)의 저명한 학자 스트링어(C. Stringer) 역시 스쿨·카프제 동굴의 인류는 “후대 인구에 실질적으로 기여하지 않았다“고 못 박으며, 그들이 우리 족보의 직계 조상이 아님을 분명히 했다(Stringer, 2014).
파도바 대학교(University of Padua)의 파가니(L. Pagani) 연구팀이 이집트와 에티오피아인의 유전자를 분석한 결과도 이 정설을 뒷받침했다. 성공적인 탈출 경로는 북쪽(시나이-레반트)이었을 가능성이 높았지만, 이 역시 7만 년 전 무렵의 ‘주력 부대’에 대한 이야기였지, 그 이전의 ‘선발대’와는 무관했다(Pagani et al., 2015). 이 시기, 레반트의 초기 개척자들은 역사의 무대에서 완전히 퇴장한 것처럼 보였다.
2011–2019년, 반격의 서막: “우리가 몰랐던 ‘이른 외출’의 증거들”
정설이 굳어지는 동안, 고고학 현장에서는 이 깔끔한 이야기에 균열을 내는 증거들이 조용히 쌓이고 있었다. 마치 잊혔던 사건의 증인들이 하나둘 나타나는 것 같았다.
- 아랍에미리트(UAE)의 제벨 파야(Jebel Faya) 유적에서 5만 년 전의 석기가 발견되었다(Armitage et al., 2011).
- 사우디아라비아의 주바(Jubbah) 고호수 근처에서는 5만 년 전의 인류 거주 흔적이 드러났다(Petraglia et al., 2012).
- 결정적 증거는 이스라엘의 미슬리야(Misliya) 동굴에서 나왔다. 무려 19만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호모 사피엔스의 턱뼈가 발견된 것이다. 이는 아프리카 밖에서 가장 오래된 현생인류 화석으로, 기존의 연대표를 완전히 뒤엎는 충격적인 발견이었다(Hershkovitz et al., 2018).
- 사우디의 알-우스타(Al Wusta) 유적에서는 5만 년 전 호모 사피엔스의 손가락뼈가 발견되어(Groucutt et al., 2018), 인류가 한때 ‘녹색 아라비아’였던 사막 깊숙이 진출했음을 증명했다.
- 심지어 그리스의 아피디마(Apidima) 동굴에서는 21만 년 전의 호모 사피엔스 두개골이 발견되어, 그들의 여정이 유럽까지 닿았을 가능성마저 제기되었다(Harvati et al., 2019).
이처럼 ‘이른 외출’은 더 이상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 되었다. 하지만 학계의 해석은 여전히 보수적이었다. “그들이 일찍 나간 것은 맞지만, 결국 모두 실패하고 사라졌다.” 초기 개척자들은 여전히 비운의 주인공으로 남아 있었다.
2020년, 유전체의 최종 판결?: “모든 길은 단 하나의 사건으로 통한다”
2020년, 유전체학이 이 논쟁에 마침표를 찍는 듯했다. 프랜시스 크릭 연구소(Francis Crick Institute)의 베르그스트룀(A. Bergström) 등이 발표한 대규모 연구는 충격적이었다. 전 세계 929명의 고해상도 유전자를 분석한 결과는 명확했다.
“모든 비아프리카인은 7만 년에서 5만 년 전 사이의 단일한 아프리카 탈출 확산에서 유래한다.“(Bergström et al., 2020)
DNA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19만 년 전 미슬리야 동굴의 개척자든, 12만 년 전 스쿨 동굴의 주민이든, 그들의 유전자는 현대인에게서 발견되지 않았다. 유전체 분석은 초기 개척자들이 정말로 흔적도 없이 사라진 ‘유령’이었음을 강력하게 뒷받침했다. ‘멸종 정설’은 그렇게 과학의 최종 승리를 선언하는 듯했다.
2021–2025년, 대반전: “기후가 열어준 ‘기회의 창'”
그러나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과학자들은 질문을 바꾸기 시작했다. “그들은 왜 실패했는가?”가 아니라, “그들이 마주한 세상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최신 기후 모델링 연구는 놀라운 사실을 밝혀냈다. 과거의 레반트와 아라비아는 불모의 사막 장벽이 아니었다. 기후 변화에 따라 주기적으로 초원이 펼쳐지는 ‘녹색 회랑’이 열렸다.
- 케임브리지 대학교(University of Cambridge)의 바이어(R.M. Beyer) 등은 기후 모델을 통해 인류가 이동할 수 있었던 ‘기후의 창(window)’이 과거 수십만 년 동안 여러 차례 열렸음을 계산해냈다(Beyer et al., 2021).
- 막스 플랑크 화학 연구소(Max Planck Institute for Chemistry)의 아바스(M. Abbas) 등은 레반트의 지층을 직접 분석하여, 13만 년 전부터 9만 년 전 사이에 여러 차례 비가 많이 오는 습윤기가 존재했음을 증명했다(Abbas et al., 2023).
이러한 발견은 모든 것을 바꾸었다. 초기 개척자들의 ‘이른 외출’은 무모한 실패가 아니었다. 그것은 기후가 ‘기회의 창’을 열어주었을 때마다 이루어진, 지극히 합리적이고 반복적인 시도였다. 그들은 막다른 길로 뛰어든 것이 아니라, 열린 문으로 나아갔던 것이다.
최근 파도바 대학교(University of Padua)의 발리니(L. Vallini) 연구팀은 한 걸음 더 나아가, ‘페르시아 고원 허브’ 모델을 제안했다(Vallini et al., 2024). 약 7만 년 전 아프리카를 떠난 우리 조상들이 곧장 전 세계로 퍼진 것이 아니라, 페르시아 고원(오늘날의 이란, 이라크 등)에 오랫동안 머물며 ‘허브’를 형성한 뒤, 약 4.5만 년 전을 기점으로 동서남북으로 뻗어나갔다는 혁신적인 가설이다. 이 모델에 따르면, 레반트의 초기 개척자들은 완전히 동떨어진 ‘실패작’이 아니라, 이 거대한 허브를 형성하는 과정의 일부, 즉 대서사시의 ‘서막’이었을 가능성이 열린다.
결론: ‘멸종’에서 ‘숨겨진 영향’으로
초기 레반트 개척자들에 대한 이야기는 극적으로 바뀌고 있다.
- 과거의 정설: 그들은 막다른 길로 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우리의 직계 조상은 7만~5만 년 전의 ‘성공한 그룹’뿐이다.
- 현재의 시각: 우리 유전자의 주된 뿌리가 후기 확산 그룹에 있다는 사실은 변함없다. 하지만, 초기 개척자들은 기후가 허락할 때마다 반복적으로 아프리카를 벗어났던 실존 인물들이다. 그들은 ‘완전 멸종’이라 단정하기 어렵다.
- 새로운 가능성: 그들이 남긴 유전적 흔적은 거의 없을지라도, 그들의 존재 자체가 후발 주자들에게 지리적 정보나 행동 패턴의 단서를 제공하는 등, 눈에 보이지 않는 ‘국지적 영향’을 남겼을 수 있다.
따라서 오늘날 우리는 레반트의 유령들을 더 이상 ‘완전한 실패자’로 부르지 않는다. 그들은 “대부분 단명했지만, 인류의 위대한 여정에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남겼을” 선구자들로 재평가되고 있다.
부록: 핵심 논문 상세 내용
레반트 북방 경로 관련 핵심 논문 요약표
| 논문 | 연대/시기 | 지점·대상 | 방법 | 핵심 수치·발견 | 의미 | 한계 |
| Beyin (2011) | 후기 홍적세 | 아프리카·레반트 | 문헌 종합 | “오늘날 비아프리카인 대다수는 7만 년 전 이후 확산에서 유래” | 후기 단일 확산 정설 확립, 초기 물결은 단명으로 규정 | 2010년대 이전 자료 위주, 이후 발견 반영 못함 |
| Stringer (2014) | 12만–9만 년 전 | 스쿨·카프제 | 고고학·화석 재평가 | “후대 인구에 실질적으로 기여하지 않음” | 레반트 초기 집단은 장기적 기여가 없음을 재확인 | 유전체 증거가 제한적이던 시기의 논평 |
| Pagani et al. (2015) | 7만–6만 년 전 | 이집트·에티오피아인 | 게놈 비교 | 북방 경로(이집트-시나이)가 데이터와 더 일치 | 성공적인 ‘아웃 오브 아프리카’의 경로로 북쪽을 강조 | 10만 년 전 이전의 초기 파동과는 무관 |
| Shriner (2016) | – | Pagani 2015 재분석 | 통계 모델 재검토 | 북/남 경로 단정 불가 | 경로 논쟁은 아직 미해결 상태임을 보여줌 | 샘플과 모델 가정에 민감함을 지적 |
| Armitage et al. (2011) | 12.5만 년 전 | UAE 제벨 파야 | 석기군 분석, OSL | 아프리카 중석기와 유사한 석기 발견 | 아라비아 조기 진출의 증거, 그러나 ‘일시적’ 사건으로 평가 | 인골 없음, 제작자 단정 불가 |
| Petraglia et al. (2012) | 8.5만–7.5만 년 전 | 사우디 주바 고호수 | 석기군·환경 복원 | 습윤기마다 반복적인 점유 흔적 발견 | ‘녹색 아라비아’ 시기 내륙 점유 증명 | 인골 없음, 종 정체성 불확실 |
| Groucutt et al. (2018) | 8.5만 년 전 | 사우디 알-우스타 | 인골(U–Th, ESR) | 호모 사피엔스 손가락뼈 확인 | 아라비아 내륙에 사피엔스가 존재했다는 직접 증거 | 개체 1점이라 집단 규모나 지속성은 불명 |
| Hershkovitz et al. (2018) | 19.4만–17.7만 년 전 | 이스라엘 미슬리야 | 인골(U–Th, ESR) | 현생인류 상악골 발견 | 아프리카 밖 가장 이른 사피엔스 화석 | 표본이 단수, 후대 기여율은 불확실 |
| Harvati et al. (2019) | >21만 년 전 | 그리스 아피디마 | 두개골 분석, 연대측정 | 아피디마 1 두개골을 사피엔스로 재분류 | 유라시아에서 가장 이른 사피엔스 존재 가능성 | 보존 불량, 분류에 대한 논쟁이 있음 |
| Bergström et al. (2020) | 7만–5만 년 전 | 전 세계 929게놈 | 고해상도 전장게놈 | “모든 비아프리카인은 7만~5만 년 전 단일 확산에서 유래” | 주된 조상 lineage가 후기 단일 확산임을 재확인 | 국지적인 소량의 기여는 탐지하기 어려움 |
| Beyer et al. (2021) | 최근 30만 년 | 전 지구 기후모델 | 모델링(강수·해수면) | 바브엘만데브 해협 폭 4–20km, 남쪽 길의 조건 좋았음 | 남쪽 길의 현실성 강화, 레반트 경로도 반복적으로 열렸음 | 모델 기반 추정, 직접적인 고고학 증거는 아님 |
| Hill et al. (2022) | 지난 50만 년 | 남부 홍해 | 해수면·조석 모델링 | 항상 바다였으며, 완전한 육교는 없었음 | 짧은 해상 횡단이 필요했지만 충분히 가능했음을 시사 | 항해 기술이나 빈도는 직접 자료 없음 |
| Abbas et al. (2023) | 13만–9만 년 전 | 레반트–요르단 계곡 | 지층·OSL 분석 | 장기간 지속된 습윤기(“protracted moisture”) 존재 확인 | 초기 외출이 반복적·단명했으나, 회랑 자체는 현실적이었음 | 유전적 기여율은 평가 불가 |
| Vallini et al. (2024) | 7만–4.5만 년 전 | 페르시아 고원 | 유전+고환경+고고 | 허브 체류 후 4.5만 년 전 무렵 급격히 확산 | 초기·후기 파동을 하나의 연속 과정으로 재맥락화 | 모델 추정, 더 많은 고고학적 증거 필요 |
| Markowska et al. (2025) | 지난 800만 년 | 아라비아 석순 | 동위원소 분석 | 반복적인 습윤기가 여러 차례 존재했음을 확인 | ‘녹색 아라비아’ 창이 주기적으로 열렸음을 입증 | 직접적인 인류 증거가 아닌 환경 기록 |
1) Abbas et al. (2023), Science Advances — “레반트 회랑은 실제로 젖어 있었다”
- 무엇을 했나: 남부 레반트(요르단 열곡)의 지층을 직접 시추하여, 과거 습지나 호수였던 흔적을 찾고 OSL(광자극 루미네선스) 기법으로 연대를 측정했다. OSL은 퇴적물이 마지막으로 햇빛에 노출된 시점을 알려준다. 연구 대상 시기는 마지막 간빙기(MIS 5), 즉 약 13만 년에서 9만 년 전 사이였다.
- 핵심 발견: 여러 시추 코어에서 13만 년에서 9만 년 전 사이에 걸쳐 장기간에 걸친 습윤 환경이 존재했음을 확인했다. 논문은 이를 “수자원을 지속적으로 이용 가능했던 장기간의 국면”이라고 명시했다.
- 무엇을 의미하나: 레반트가 늘 ‘사막 장벽’이었던 것이 아니라, 반복적으로 인류의 이동을 허용하는 ‘녹색 회랑’이었음을 직접적인 지질학적 증거로 보여주었다. 이는 “초기 이주민은 불가능한 환경에 도전했다가 즉시 멸종했다”는 단정을 약화시킨다.
- 주의점: 이 연구는 환경이 이동에 유리했다는 증거일 뿐, 이들이 후대에 유전자를 남겼는지 여부를 직접 알려주지는 않는다. ‘장기적인 계통 기여’ 문제는 여전히 별도의 검증이 필요하다.
2) Vallini et al. (2024), Nature Communications — “페르시아 고원 허브 모델”
- 무엇을 했나: 현대인과 고대인의 유전 데이터, 고환경, 고고학 자료를 모두 통합하여 새로운 가설 모델을 제시했다. 약 7만~6만 년 전 아프리카를 떠난 인류가 곧장 전 세계로 퍼진 것이 아니라, 먼저 페르시아 고원(오늘날의 이란이라크·사우디 북동부)에 수천 년간 머물며 ‘허브’를 형성했고, 약 4.5만 년 전을 기점으로 동쪽과 서쪽으로 급격히 분기했다는 내용이다.
- 핵심 포인트: 기존의 ‘탈출 → 즉시 전 세계로 확산’ 모델을 ‘탈출 → 허브 체류 → 2차 급확산’이라는 단계적 모델로 전환했다. 이는 12만~9만 년 전의 초기 레반트 이주 같은 ‘짧은 파동’과 후대의 성공적인 파동을 하나의 연속적인 과정으로 엮어낼 가능성을 연다.
- 무엇을 의미하나: 주된 조상 그룹이 후기 대확산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지만, 레반트와 아라비아의 초기 파동을 완전한 ‘막다른 길’이 아니라 거대한 흐름의 ‘전사(前史)’로 재해석할 여지를 만들었다.
- 주의점: 허브의 정확한 위치와 범위, 체류 기간 등은 아직 모델 추정치에 의존하므로, 향후 고고학 및 고유전학 연구를 통한 추가적인 교차 검증이 필요하다.
3) Beyer et al. (2021), Nature Communications — “이동 가능한 ‘기후 창’ 정량화”
- 무엇을 했나: 지난 30만 년간의 고해상도 기후 데이터를 바탕으로, 수렵채집인이 생존하는 데 필요한 최소 강수량 조건을 설정하고, 이 조건을 만족하는 ‘이동 가능한 기후의 창’이 언제, 어떤 경로로 열렸는지를 컴퓨터로 계산했다.
- 핵심 수치: 남쪽 경로의 주요 길목인 바브엘만데브 해협의 폭이 해수면에 따라 약 4km에서 20km까지 달라졌음을 명시했다. 또한5만 년에서 3만 년 전 사이, 남쪽 길에 이례적으로 길고 좋은 조건의 ‘창’이 열렸다고 서술했다.
- 무엇을 의미하나: 남쪽 길의 현실성을 강화하는 동시에, 레반트와 아라비아의 북쪽 길 역시 여러 차례 열렸음을 보여주었다. 즉, 초기 파동의 ‘환경적 타당성’이 수치로 뒷받침되었다.
- 주의점: 이 연구는 특정 가설(최소 강수량)을 기반으로 한 모델링 연구이며, 실제 인류가 그 경로를 이용했는지, 유전적으로 얼마나 기여했는지를 직접 알려주지는 않는다.
4) Hill et al. (2022), Quaternary Science Reviews — “남부 홍해는 늘 바다였다”
- 무엇을 했나: 홍해 남부의 과거 지형을 복원하고, 고조류 모델링과 입자 시뮬레이션을 결합하여 빙하기 저해수면기 때 해협의 상태가 어떠했는지 재구성했다.
- 핵심 결론: 지난 50만 년 동안 홍해와 인도양은 계속 연결되어 있었으며, 해수면이 가장 낮았을 때도 해협이 완전히 육지로 이어진 ‘육교’는 존재하지 않았다. 즉, 이곳은 항상 바다였다.
- 무엇을 의미하나: “해수면이 낮을 땐 걸어서 건넜다”는 식의 단순한 가정은 잘못되었다. 하지만 해협의 폭이 좁아져 표류하는 뗏목 등을 이용하면 충분히 횡단 가능했으므로, 해상 이동 능력을 전제로 한 남쪽 경로의 현실성은 여전히 유효하다.
- 주의점: ‘횡단이 가능했다’는 평가이며, 당시 인류가 구체적으로 어떤 항해 기술을 가졌는지, 실제로 얼마나 자주 바다를 건넜는지에 대해서는 고고학적 증거가 더 필요하다.
5) Hershkovitz et al. (2018), Science — “미슬리야 동굴의 19만 년 전 턱뼈”
- 무엇을 했나: 이스라엘 미슬리야 동굴에서 발견된 현생인류의 위턱뼈 화석을 U–Th(우라늄-토륨), ESR(전자자기공명) 등 다양한 방법으로 연대 측정했다.
- 핵심 포인트: 연대측정 결과는 4만~17.7만 년 전으로, 아프리카 밖에서 발견된 가장 오래된 호모 사피엔스라는 기록을 세웠다.
- 무엇을 의미하나: ‘아웃 오브 아프리카’가 여러 차례에 걸쳐 시도되었음을 보여주는 결정적인 화석 증거다. 다만, 이들이 후대 비아프리카 인류의 주된 조상과 직접 연결된다는 증거는 아직 없다.
- 주의점: 화석이 단 한 개체에 기반하므로, 이들의 유전적 기여율을 알기 위해서는 다른 대규모 유전체 연구 결과와 종합하여 해석해야 한다.
6) Harvati et al. (2019), Nature — “아피디마 1: 21만 년 전 유럽의 매우 이른 사피엔스”
- 무엇을 했나: 그리스 아피디마 동굴에서 발견된 ‘아피디마 1’ 두개골의 연대를 21만 년 이전으로 재평가하고, 형태학적으로 호모 사피엔스의 특징을 가지고 있음을 제시했다.
- 핵심 포인트: 유라시아 대륙 내에서 가장 이른 시기의 호모 사피엔스 존재 가능성을 부각했다. 이는 ‘이른 파동’이 레반트를 넘어 남유럽까지 도달했을 수 있음을 시사한다.
- 무엇을 의미하나: 초기 북방 이주가 단순히 레반트에서 멈춘 것이 아니라 더 넓게 퍼졌을 가능성을 열어주었다. 그러나 이들의 장기적인 생존이나 후대 기여율은 불분명하다.
- 주의점: 화석 표본의 보존 상태가 좋지 않아 종 분류에 대한 학술적 논쟁이 있었고, 이 집단은 결국 나중에 도착한 네안데르탈인에게 대체되었을 것이라는 시나리오가 유력하다.
7) Armitage et al. (2011), Science — “제벨 파야의 12.5만 년 전 석기군”
- 무엇을 했나: 아랍에미리트(UAE) 제벨 파야 유적에서 발견된 석기군의 연대를 측정했다. 이 유적은 약5만 년 전의 것으로, 아라비아로의 매우 이른 확산 증거로 제시되었다.
- 핵심 포인트: 석기들의 제작 기술이 당시 동아프리카의 중석기 전통과 유사성을 보였다. 연구진은 이 확산이 단명(“ephemeral”)했을 가능성도 함께 언급했다.
- 무엇을 의미하나: 남쪽 경로를 통한 아라비아반도로의 ‘이른 외출’이 실제로 있었음을 보여준다.
- 주의점: 인골 화석이 발견되지 않아 도구만으로는 제작자가 누구인지, 그들의 계통을 명확히 단정할 수 없다.
8) Petraglia et al. (2012), PLoS ONE — “네푸드 사막의 반복적인 점유”
- 무엇을 했나: 사우디아라비아 네푸드 사막에 위치한 주바 고호수 일대의 중석기 유적을 정밀하게 연대측정하고 당시 환경을 복원했다.
- 핵심 수치: 약 5만~7.5만 년 전, 이 지역에 호수가 존재했던 습윤기마다 인류가 반복적으로 거주한 뚜렷한 흔적을 발견했다.
- 무엇을 의미하나: ‘녹색 아라비아’ 시절에는 인류가 사막 깊숙한 내륙까지 진입할 수 있었으며, 이러한 시도가 한 번이 아니라 여러 차례 누적되었음을 시사한다.
- 주의점: 발견된 것은 석기 유물이므로, 제작자가 반드시 현생인류라고 단정하기보다는 중석기 기술 전통의 확산이라는 관점에서 해석할 필요가 있다.
9) Groucutt et al. (2018), Nature Ecology & Evolution — “알-우스타의 8.5만 년 전 손가락뼈”
- 무엇을 했나: 사우디아라비아 알-우스타에서 발견된 호모 사피엔스의 손가락뼈(중수골) 화석을 직접 연대측정했다.
- 핵심 수치: 연대는 약 5만 년 전으로, 레반트 지역 바깥에서 연대가 직접 측정된 가장 오래된 호모 사피엔스 인골로 평가된다.
- 무엇을 의미하나: 아라비아 내륙에 인류가 실제로 거주했음을 화석으로 입증하여, 초기 파동의 현실성을 강화했다.
- 주의점: 개체 1점의 뼈이므로, 이를 통해 당시 인구 집단의 규모나 지속성을 판단하기는 어렵다.
10) Bergström et al. (2020), Science — “929게놈 분석: 주된 조상은 7만~5만 년 전 단일 확산”
- 무엇을 했나: 전 세계 54개 인구 집단에 속한 929명의 고해상도 전체 게놈을 비교 분석했다.
- 핵심 결론: 현재 살아있는 모든 비아프리카인은 약 7만~5만 년 전에 있었던 단 한 번의 성공적인 확산에서 유래했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는 초기 레반트 이주민들이 현대인에게 유전적으로 큰 비중을 차지하는 기여를 하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 무엇을 의미하나: ‘멸종 정설’을 뒷받침하는 가장 강력한 유전학적 버팀목이다. 최근의 ‘영향 가능성’ 논의와 정면으로 배치되지는 않지만, 초기 이주민들이 ‘큰 비율’로 유전자를 남겼다는 주장은 지지하지 않는다.
- 주의점: 현재의 분석 기술로는 아주 소량의 국지적인 유전적 흔적은 탐지하지 못하고 지나칠 수 있는 한계가 있다.
11) Pagani et al. (2015), AJHG — “성공적인 탈출 경로는 북쪽(이집트-시나이)일 가능성”
- 무엇을 했나: 이집트와 에티오피아인 225명의 게놈을 비교하여, 성공적인 ‘아웃 오브 아프리카’가 어떤 경로를 통해 이루어졌는지 가늠했다.
- 핵심 결론: 여러 시나리오 중 북방 경로(이집트-시나이) 모델이 실제 유전 데이터와 가장 잘 부합했다. (단, 이는 7만~6만 년 전 무렵의 주력 부대를 지칭한다.)
- 무엇을 의미하나: 후대의 성공적인 대확산이 북쪽 경로를 통해 이루어졌을 가능성에 무게를 실어주었다. 10만 년 이전의 초기 파동이 기여했다는 주장은 아니다.
- 주의점: 현대인의 유전자를 바탕으로 과거를 추정하는 연구이므로, 하나의 성공적인 확산이 있었다는 전제하에 경로를 비교한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
12) Shriner (2016), Frontiers in Genetics — “경로는 아직 불확실하다”
- 무엇을 했나: 파가니(2015)의 연구를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경로를 단정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 핵심 포인트: 분석에 사용된 인구 샘플이나 통계 모델의 가정에 따라 결과가 민감하게 변할 수 있으므로, 경로를 단정하는 것은 아직 섣부르다고 지적했다.
- 무엇을 의미하나: 탈출 경로 논쟁은 유전학만으로 결론 내기 어려우며, 고고학, 고환경학적 증거와 통합하여 해석해야 함을 시사한다.
13) Beyin (2011), IJEB — “당시의 종합 리뷰: 후기 단일 확산 + 초기 물결은 단명”
- 무엇을 했나: 북동부 아프리카, 아라비아, 레반트 지역의 중석기/중기 구석기 유적과 유전학 문헌을 종합적으로 검토했다.
- 핵심 포인트: 비아프리카인의 대다수 계통은 7만 년 전 이후의 확산에서 비롯되었으며, 그 이전의 초기 레반트 이주는 단명한 사건으로 정리했다. 당시 정설의 교과서 같은 위치에 있었다.
- 무엇을 의미하나: 이 연구는 이후 10여 년간의 새로운 발견과 모델들이 어떤 기존의 프레임을 정교화하고 변화시켜 왔는지(예: 완전 멸종 → 영향 가능성)를 보여주는 기준점 역할을 한다.
14) Lambeck et al. (2011), QSR — “홍해의 해수면과 해안선 복원”
- 무엇을 했나: 홍해 분지의 해수면과 해안선을 지구물리학적 모델을 이용해 복원하고, 이것이 인간과 동물의 분산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논의했다.
- 핵심 포인트: 해수면이 낮아졌을 때 드러나는 해안 지형의 변화가 이동 통로의 폭과 형태를 크게 바꾸었음을 보여주었다. 이는 남부 홍해 횡단의 난이도를 평가하는 기초가 된다.
- 무엇을 의미하나: 힐(2022)과 같은 후대의 정밀한 수리 모델링 연구의 중요한 이론적 기반이 되었다.
15) Kopp et al. (2009), Nature — “마지막 간빙기 해수면: 지금보다 6.6m 이상 높았다”
- 무엇을 했나: 전 지구의 해수면 지표들을 통계적으로 통합하여, 마지막 간빙기(LIG) 때 전 지구 해수면이 가장 높았을 때의 수치를 확률적으로 추정했다.
- 핵심 수치: 당시 해수면은 지금보다 최소6m 이상(95% 확률) 높았고, 8.0m 이상일 확률도 67%에 달했다.
- 무엇을 의미하나: 해안 저지대의 범람과 대륙붕의 침수 리듬을 정량화하여, 이동 경로의 ‘열림’과 ‘닫힘’을 해석하는 데 핵심적인 근거를 제공한다.
16) Rohling et al. (2014), Nature — “기온과 해수면 변화의 ‘엇박자’”
- 무엇을 했나: 지난 530만 년간의 심해 온도와 해수면 기록을 결합하여, 빙하기-간빙기 전환 과정에서 두 요소의 변화가 항상 동시에 일어나지는 않았음을(비동시성) 제시했다.
- 핵심 포인트: 기온이 하강하기 시작하는 단계와 거대한 빙하가 형성되어 해수면이 실제로 낮아지는 단계 사이에는 상당한 시간 차이가 있다.
- 무엇을 의미하나: ‘기후-해수면-지형’이 단선적으로 움직인다는 단순한 모델을 경계하게 한다. 각 지역의 이동 경로 조건이 시간과 공간에 따라 서로 엇갈리게 변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17) Stringer (2014), TREE — “우리의 뿌리는 ‘최근 아프리카 기원(RAO)’에 있다”
- 무엇을 했나: 다지역 기원설을 비판하는 논평에서, ‘최근 아프리카 기원(RAO)’ 모델이 여전히 가장 타당함을 재확인했다. 또한 스쿨카프제(9만~12만 년 전) 인류는 후대 인구에 큰 기여가 없었다고 정리했다.
- 무엇을 의미하나: 2010년대 중반의 정설을 명확하게 요약한 기준 문헌이다. 이후 축적된 증거들은 이 ‘완전 멸종’이라는 단정적인 시각을 ‘영향 가능성’이라는 더 유연한 시각으로 정교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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