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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그러면 나머지 73%에 대해서 보도록 하죠. 크게 네 단락으로 되어 있는데요.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기승전결 구조를 한번 보죠.

그런데 기승전에서는 각각 질문을 던집니다. 그리고 마지막 결에서 앞서 던진 세 가지 질문에 대한 답을 사마천 선생이 서술하는 것이죠. 일단 그 구체적인 내용은 다음에 보겠습니다만 문장의 마지막 부호가 기승전은 물음표로 끝나고 결은 느낌표로 끝납니다.

다시 말해서 기승전에서는 질문을 던지고 문제 제기를 하고 마지막 결에서 전체 답을 구하는 구조죠.

기에서는 어찌 그런가? 승에서는 그렇지 아니한가? 전에서도 그렇지 아니한가? 결에서는 어찌 후세에 명성을 남길 수 있겠는가!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먼저 전체 내용을 요약하죠.

첫 번째 단락 기에서는, 공자의 글에서 왜 어떤 사람의 이름은 나오고 어떤 사람의 이름은 나오지 않는가라는 질문입니다.

다음 두 번째 승에서는, 공자께서 백이숙제가 스스로 원망하지 않았다고 했는데 채미가를 읽어보면 스스로 원망하고 있지 않은가? 이게 어떻게 된 일인가?라고 질문하죠.

그다음 세 번째 전에서는, 하늘의 도, 천도는 항상 선한 사람, 착한 사람 편을 든다고 했는데 현실을 보면 그것과는 다르지 않습니까?라고 문제 제기를 하는 것이죠.

마지막 결에서 나 사마천은 천도, 하늘의 도에 맞추어서 잊혀진 이름들을 불러 주겠고 또 그들의 선악을 기록해서 후대 사람들한테 기억되도록 하겠다고 마무리합니다. 마지막 결은 열전에만 해당된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만 사기 전체에도 확대 적용할 수 있는 부분이죠. 그래서 제가 프랙털이라고 말씀을 드렸죠.

먼저 첫 번째, 기입니다. 공자의 글을 보면 어떤 사람의 이름은 나오는데 왜 어떤 사람의 이름은 나오지 않는가라는 문제 제기죠.

먼저 사마천은 공자의 육예, 그중에서 특히 시경과 서경을 치켜세웁니다. 무릇 학자들의 서적, 책은 대단히 많지만 그래도 육예를 살피면 믿음이 간다.

육예라는 것이 공자께서 쓰신 육경을 이야기하는 것이죠. 시경, 서경, 예기, 역경, 악경, 춘추 여섯 가지입니다. 시경과 서경은 비록 잃어버린 부분이 있지만 우나라와 하나라의 기록은 볼 수가 있다.

여기서 우하가 나오는데요. 우나라는 순임금의 이름이 우순이니까 순임금 때를 이야기하는 것이고 하나라는 우임금의 이름이 하우니까 우임금 때를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아무튼 공자께서 순임금과 우임금 때의 기록은 믿을만하다 이런 뜻이죠.

요임금이 임금 자리를 순임금에게 물려주고 또 순임금이 우임금한테 임금 자리를 물려주었는데요. 그 과정에 악목 모두가 추천하기를 당장 물려주지 말고 우에게 먼저 관직을 한번 줘보고 시험을 해서 수십 년이 지난 후에 제대로 공을 세우자 정권을 물려줬다는 것이죠. 여기서 악목의 추천을 받았다고 할 때 악목은 사악 십이목인데 나중에 공경과 제후가 되는 것이죠.

그리고 사기 정의를 보면 순임금이나 우임금 모두 선양을 받기 전에 현장에서 20년 이상 경험을 쌓은 후 공을 인정을 받고 자리를 물려받았다는 것이죠.

상서, 서경을 보면 이름이 서로 왔다 갔다 하는데 원래 이름은 서입니다. 전국 시대 때 우서, 하서, 상서, 주서 4부로 구성된 책이라고 해서 서라고 했죠.

그런데 나중에 한나라 때 유학을 숭상하고 통치 이념으로 삼은 후에 유학자들이 존중하고 숭상해야 된다고 해서 상서라고 불렀습니다. 그 뒤 송나라 때는 유학의 5대 경전인 5경 속에 포함된다는 의미에서 서경으로 불렀던 것이죠.

그래서 상서와 서경은 같은 말이라고 볼 수 있죠. 그래서 상서를 보면,

순임금이 말했다. ‘아, 사악이여! 누가 능히 나의 삼례를 맡을 수 있겠는가?’ 삼례는 천신, 인귀, 지기에게 제사 지내는 일을 삼례라고 합니다. 그러자 모두들 말하기를, ‘백이입니다.’라고 추천하죠. 그래서 순임금이 ‘좋다. 아! 백이여 그대를 질종으로 삼겠다.’ 이 질종이 앞에서 본 삼례, 세 가지 제사를 책임지는 관직이죠. ‘이른 새벽부터 밤까지 오로지 공경하는 자세로, 곧고 맑게 일하도록 하라.’라고 순임금이 이야기를 하니까 백이가 머리를 조아리면서 절을 하고 ‘기, 용이라는 사람이 저보다 낫습니다.’라고 사양했습니다. 그러자 순임금은 ‘좋다, 가라. 하던 일을 열심히 해라.’라고 보내는 것이죠. 여기까지 상서, 서경에 실려 있는 내용입니다.

다시 사기로 돌아가죠. 천하는 가장 중요한 그릇이며 임금은 큰 통치자이기 때문에, 대통이기 때문에 천하를 전하는 일이 이처럼 어려운 것임을 보여준다.

여기까지를 요약하면, 사마천 입장에서 여러 가지 역사 사료가 있지만 그래도 공자가 쓰신 육례가 믿음이 가고 그중에서 특히 시경과 서경을 보면 순임금, 우임금의 이야기들이 실려있는데 서경을 보면 그중에 백이숙제 이야기가 나온다는 것이죠.

여기서 톤이 바뀝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이르기를, 이 말은 육경  말고 다른 데서 다른 이야기가 나온다라는 뜻인데요. 요임금이 순임금한테 첫날을 선양하기 전에 요는 천하를 허유라는 사람한테 선양하려고 시도했다는 것이죠. 그런데 허유는 선양을 받지 않고 이를 부끄럽게 여겨서 달아나서 숨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는 것이죠.

여기서 ‘사람들이 이르기를’ 하는 말은 그중에 하나가 장자입니다. 장자를 보시면 내편 소요유가 있는데요. 소요, 여기저기 다니면서 유, 유유자적하게 즐긴다 이런 뜻입니다. 요가 허유라는 사람한테 천하를 물려주려고 시도했다는 것이죠. 그러자 허유가 말하기를, ‘임금이시여, 돌아가서 쉬시오. 나는 천하같이 그렇게 큰 물건은 쓸 데가 없습니다.’라고 사양을 하죠.

여기서 허유소부, 기산영수 이런 사자성어가 나오죠. 허유는 요임금의 제안을 사양하고 듣지 않아야 될 이야기를 들었다고 해서 기산에 흐르는 영수라는 강 물가에서 귀를 씻었죠. 그런데 허유의 친구인 소부라는 분이 마침 송아지를 끌고 와서 물을 먹이려 하다가 허유가 귀를 씻는 것을 보고 그 이유를 들어 보고 나서 ‘당신이 귀를 씻은 더러운 물을 송아지에게 먹일 수 없다.’라고 하면서 더 상류로 올라가서 송아지한테 물을 먹였다는 이야기죠. 그러니까 사마천 이야기는 육경 말고 다른 책을 보니까 백이숙제 말고 허유, 소부라는 사람 이야기도 있더라는 것입니다.

그다음 연이어 사기를 보죠. 하나라에 이르러서는 변수와 무광이라는 분이 있었다. 이것 역시 장자에서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장자의 양왕 편을 보면,

탕이 드디어 걸을 정벌했다. 탕과 걸이 나오는데, 하상주 중에서 하나라에서 상나라로 넘어갈 때 이야기죠.

하나라 마지막 군주가 걸인데 폭군이죠. 탕이 나서서 정벌하고 상나라를 개국하죠. 그런데 이기고 나서 변수에게 천하를 물려주려고 했다. 이 역시 선양을 시도한 것이죠.

그러자 변수라는 분이 탕왕의 선양 제안을 거절하면서 마침내 스스로 주강에 몸을 던져 죽었다. 좀 과하죠. 귀를 씻는 정도가 아니라 못 들어야 할 이야기를 들었다고 해서 스스로 죽은 것입니다.

연이어 탕이 또 무광한테 천하를 물려주려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또 무광이 돌을 등에 짊어지고 스스로 여수라는 강의 깊은 물속에 빠지고 말았다. 마찬가지로 죽은 것이죠. 이런 이야기가 어떤 책이라고 했지만 장자에 나옵니다.

그래서 사마천 선생은 질문을 던집니다. 하나라 때는 변수와 무광이라는 분이 있었다고 하는데 왜 이런 사람들의 이름이 언급되지 않는가? 어찌 된 일인가?라고 문제 제기를 하는 것이죠.

사기 정의에서 이렇게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경전과 사서에서는 오로지 백이숙제 이야기만 하고 허유, 변수, 무광 이런 분들은 언급하지 않는데 왜 그런가? 어찌 된 일인가?라고 질문했다는 것이죠.

그다음 태사공 사마천이 이야기를 합니다. 내가 기산에 올랐는데 그 위에 허유의 무덤이 있다고들 했다. 실제 기산에 가보니까 사람들이 그런 얘기를 하더라는 것이죠. 구체적인 사료를 서로 발굴한 것입니다. 기산 영수와 허유 소부를 그린 그림들입니다.

그다음 사마천은 이렇게 이야기를 하죠. 공자는 고대의 어진이, 성스러운 이, 현명한 이를 차례로 열거하면서 오태백, 오나라의 태백과 백이의 무리들은 상세하게 이야기를 했다. 오태백은 춘추시대의 오나라, 초대국입니다.

그런데 내가 다른 데서 전해 듣기로는 허유와 무광은 의리가 지극히 높다고 했는데 왜 이 사람들이 시경이나 서경에는 조금도 보이지 않느냐, 이거 어찌 된 일인가?라고 질문을 던지죠.

첫 번째 기를 정리를 하면, 공자의 글에서는 오태백이나 백이의 이름은 거론되는데 왜 허유, 변수, 무광 이런 분들의 이름은 나오지 않는가?라는 질문이죠.

그다음 두 번째가 승입니다. 첫 번째 기보다는 문제 제기의 강도가 조금 더 올라갑니다. 내용은 공자께서는 백이숙제가 스스로 원망하지 않았다고 하죠. 그런데 자기가 직접 채록한 채미가라는 노래를 보면 스스로 원망하고 있는데 공자 말씀이 잘못된 거 아니냐하고 도발합니다.

열전을 보겠습니다. 공자가 말했다. 백이와 숙제는 지나간 악, 과오를 염두에 두지 않았기 때문에 원망도 하지 않았다. 인, 어짐을 구해서 인, 어짐을 얻었으니 그 무엇을 원망하겠는가? 그러니까 공자 말씀은 백이숙제가 자신의 처지에 대해서 스스로 원망하지 않았다고 했다는 것이죠.

그런데 사마천 선생이 잃어버린 시, 채미가를 보니까 참 이상한 점이 있다. 공자 말씀과 다른 점이 있다고 문제 제기를 하면서 그 잃어버린 시를 기록하죠.

여기서 일시라는 말이 나오는데 흩어져 없어질 일이니까 흩어져 없어져 버린 시를 사마천 선생이 직접 채록해서 열전에 실었다는 것입니다. 연이어서 앞에서 설명 말씀드린 215 자에 백이숙제 이야기가 나옵니다.

여기에 채미가가 실려있죠. 마지막 부분을 보면 ‘나는 어디로 돌아가야 하나? 아, 죽어야 하리라. 내 명을 다했구나!’ 그리고 마침내 수양산에서 굶어 죽었는데요. 이렇게 볼 때 원망했는가, 그렇지 않은가? 문구는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만 그 내용은 자기가 볼 때 원망했는데 왜 공자께서는 원망하지 않았다고 이야기하는가라는 도발이죠.

대비해서 보면 공자께서는 백이숙제가 지나간 악험을 염두에 두지 않고 그래서 원망도 하지 않았다. 어짐, 인을 구해서 어짐, 인을 얻었으니까 무엇을 원망했겠는가라고 했는데 채미가에서 보면 마지막에 ‘나는(백이숙제) 어디로 돌아가야 하는가? 아 죽어야 하리라, 우리 명을 다했구나.’라고 원망했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 승을 요약하면, 공자께서는 백이숙제가 스스로를 원망하지 않았다고 했는데 사마천 자기가 실제 다니면서 채록했던 일시, 잃어버린 시 채미가를 보면 스스로를 원망하고 있다. 공자님 어떻게 된 것입니까?라고 도발하는 것이죠.

세 번째 전입니다. 첫 번째 두 번째 기승보다는 도발의 강도가 조금 더 올라갑니다. 하늘의 도, 천도는 항상 선한 사람, 착한 사람의 편을 든다고 하는데 실제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어떻게 된 일입니까?라고 강하게 어필을 하죠.

열전을 보면, 어떤 사람이 말했다. 마찬가지로 육경에 포함되지 않은 것을 인용할 때는 어떤 사람, 혹자, 혹왈이라는 문구를 사용합니다.

하늘의 도에는 사사로움이 없고 언제나 선한 사람 편에 선다는 것인데요. 아까 말씀드린 장자의 스승인 노자께서 하신 말씀이죠. 노자는 소위 말하는 도가, 무위자연설을 주장하시는 분들인데요. 노자가 출발점이면 장자는 꽃을 피우신 분이죠.

노자의 말씀이 정리되어 있는 도덕경을 보면, 큰 원한은 풀어도 반드시 앙금이 남으니 어찌 좋은 일이겠는가? 그래서 성인은 빚 문서를 지니고 있을 뿐 빚 독촉을 하지 않는다. 덕이 있으면 빚은 저절로 갚아지고, 덕이 없으면 빚을 억지로 받아낸다. 하늘의 도에는 사사로움이 없고, 언제나 선한 사람 편에 선다. 마지막 문구를 사마천 선생이 인용을 한 것이죠. 그러면서 혹왈,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이라고 했죠.

그런데 하늘은 착한 사람을 돕는다고 했는데 백이와 숙제 같은 사람은 착한 사람 아니냐. 인, 어짐을 쌓고 고결한 행동을 했는데도 왜 이처럼 굶어죽느냐.

그다음에 공자의 제자인 안연 선생의 이야기를 합니다. 또 공자의 칠십 제자 중에서 공자는 유독히 안연이 학문하기를 좋아한다라고 하면서 칭찬을 했죠. 그런데 안연은 항상 가난해서 지게미와 쌀겨, 조강. 우리들이 조강지처라고 할 때 조강이죠. 지게미와 쌀겨도 싫어하지 않았는데 끝내 요절하고 말았다. 하늘이 선한 사람을 돕는다고 했는데 어찌 이럴 수가 있는가? 왜 천도와 다른 일이 현실에서 일어나는가라고 질문을 던진 것이죠.

그다음 역으로 악한 사람 예를 듭니다. 천하의 도적, 도척이죠. 이 도척의 이야기는 역시 장자에 나옵니다. 장자 도척 편을 보면, 도척은 9천 명의 졸개를 거느리고 천하를 횡행하면서 제후들을 침략하고 포악하게 굴었으며 남의 집에 구멍을 뚫어서 문을 떼어내고 들어가서 소나 말을 훔쳐내고 남의 부녀자를 취했다. 그리고 뺏은 것을 탐하느라고 진척도 잊었고 부모형제도 돌보지 않고 조상들한테 제사도 지내지 않았다. 그래서 도척의 무리가 지나가는 성읍에서는 큰 나라는 성을 수비하고 작은 나라들은 보루에 들어가서 숨어서 만백성들이 이런 고통을 받았다고 도척의 악행을 열거하고 있죠.

이를 두고 사마천 선생은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도척은 날마다 무고한 사람을 죽이고 사람의 간을 회로 쳐 먹고 포악한 짓을 멋대로 저지르고 수 천명의 무리를 모아서 천하를 횡행했지만 나쁜 짓을 했는데 결국 천수를 누렸다. 도대체 이것은 무슨 덕인가? 이게 천도인가?라고 따져 묻는 것이죠.

제가 다른 에피소드에서 좀 상세하게 말씀드리려고 하는데요. 공자를 질책하고 궁지에 몰아넣은 두 사람의 인물이 있습니다. 한 분이 안자춘추라는 책에 나오는 안자, 안영이란 분이고 다른 한 사람이 천하의 도적, 도척입니다. 장자를 보면 공자 선생이 도척한테 혼이 나고 거의 정신없이 도망쳐 나오는 장면이 있죠.  힘으로 혼이 난 것이 아니라 논리로 혼이 나죠.

얼마나 혼이 났는가 하면 장자에 나와 있는데요. 공자는 도척에게 두 번 절하고 잰걸음으로 달려서 문을 나와서 수레에 올라타고 말고기를 잡으려 하다가 세 번이나 놓치고 눈앞이 캄캄하여 아무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는데 안색은 불 꺼진 잿빛 같았으며 수레 앞턱 가로나무에 기대어서 고개를 떨군 채 숨을 내쉬지 못 할 지경이었다고 쓰고 있습니다. 완전히 넋이 나갈 정도로 혼이 난 것이죠.

그리고 돌아와서 도척의 형과 이야기를 하는데요. ‘그렇습니다. 저는 소위 병이 없는데도 스스로 뜸을 뜬 꼴이 되었습니다. 냅다 달려가서 호랑이 머리를 건드리고 호랑이 수염을 얽어댔으니 하마터면 호랑이에게 먹힐 뻔했습니다.’라고 자복합니다.

다시 사기로 돌아오죠. 이것들은 아주 명백하게 드러난 예들이다. 그러니까 천도를 따르면 백이, 안연은 착한 사람들이니까 흥해야 되고 도척은 악한 사람이니까 망해야 되는데 현실은 거꾸로 아니냐. 이게 아주 잘못된 명백한 사례라고 이야기하는 것이죠. 그러면서 초점을 현재로 옮기죠. 그렇다면 근세에 이르러서도 그 품행이 도를 벗어나고, 오히려 남들이 꺼리는 일을 범하고서도 평생토록 즐겁게 살고 부귀가 대대로 이어져 끊이지 않는 자들이 있다. 나쁜 짓을 하는데 잘 산다는 것이죠.

또 역으로 어떤 사람들은 땅을 골라서 밟고, 때를 맞추어서 말을 하고 지름길을 가지 않고 공정하지 않으면 분을 터뜨리지 않았는데도 재앙을 만나게 되는 사람은 가히 그 숫자를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왜 착한 사람들이 재앙을 입느냐라는 것이죠.

나는 심히 당혹스러우니 만일 이것이 천도, 하늘의 도라고 하는 것이라면 정말 하늘의 도라는 게 옳은 것인가 옳지 않은 것인가라고 질문을 던집니다. 그 강도가 상당히 세죠.

세 번째 전을 요약하면, 하늘의 도, 천도는 항상 선한 사람, 착한 사람의 편이 된다고 했는데 현실은 왜 이것하고 다른 가라고 문제 제기를 한 것입니다.

마지막 네 번째 기승전결의 결입니다. 요약하면, 사마천 내가 사기라는 책을 쓰면서 천도, 하늘의 뜻에 맞추어서 잊혀진 이름들을 새롭게 불러 주고 그 선악을 기록해서 후대 사람들한테 기억되도록 하겠다는 내용이죠.

열전을 보죠. 공자께서 이르기를, ‘가고자 하는 길이 같지 않으면 서로 일을 계획하지 않는다.’라고 했으니까 역시 각자 자신의 뜻에 따라야 한다는 말이다. 그래서 만약에 부귀라는 것이 구한다고 구해질 수 있는 것이라 하면 비록 미천한 일이라도 나도, 공자 스스로도 그것을 할 것이니라. 그런데 만약에 구한다고 해도 구할 수 없는 것이라면 나는 내가 좋아하는 것을 따르겠다.’라고 공자께서 말씀하셨다는 것이죠.

여기에 사기의 주석 집해를 보면, ‘부귀라는 것이 구한다고 얻는 것이 아니고 마땅히 덕을 닦아서 얻게 되는 것이다. 만약에 도라는 것이 구한다고 얻어지는 것이라면 비록 말채찍을 잡는 천한 직업이라도 내가(공자) 또한 일을 할 것이라는 뜻이라는 것입니다.

그다음에 사마천 선생은 공자의 다른 말씀을 인용합니다. ‘날씨가 추워진 뒤에 가서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나중에 시든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래서 사마천 선생은 공자 말씀을 해석을 하죠. 세상이 모두 혼탁해지면 그때서야 청렴한 선비가 드러난다. 연이어서 그것은, 누구는 저것을 중시하고 누구는 이것을 경시하기 때문이 아니겠는가라고 쓰고 있는데요. 여기에 대해서는 해석이 좀 다양합니다.

연이어서 사마천 선생은 공자 말씀을 또 인용합니다. ‘군자는 죽은 뒤에 이름이 칭송되지 않을까를 걱정한다.’라고 했다는 것이죠.

그다음 전한 초기의 사상가인 가의의 말을 인용합니다. 가의가 말했다. ‘탐하는 자는 돈 때문에 죽고, 절개 있는 선비는 명예 때문에 죽고, 뽐내는 자는 권력 때문에 죽고, 평범한 서민들은 삶에만 매달린다.’

사람들의 욕망을 세 가지로 명쾌하게 정리했습니다. 돈과 명예와 권력이죠. 탐하지 마라, 절개를 가져라, 뽐내지 말라는 삶의 지침이죠.

또 가의의 어록을 인용합니다. ‘같은 빛은 서로 맑게 비추고, 같은 부류는 서로를 구한다.’ 흔히 우리들이 이야기하는 유유상종이란 말하고 거의 유사한 뜻이죠.

‘구름이 용을 따르고 바람이 호랑이를 따르니 성인이 있어야만 만물이 뚜렷해진다.’라는 말을 인용하는데요. 이 말은 회남왕께서 쓰신 회남자라는 책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범이 울부짖자 바람이 일어나고, 용이 일어서자 상서로운 구름이 모여든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다음 사마천 선생은 재미난 이야기를 합니다. 백이와 숙제가 비록 어질다고 하지만 공자께서 이름을 남겼기 때문에 그 이름이 더욱 빛났다. 그리고 안연이 비록 학문에 독실하다고 하지만 천리마의 꼬리에 붙어서 품행이 뚜렷해졌다. 여기서 ‘천리마의 꼬리에 붙어서’ 이 부분이 재미나죠.

사기 정의를 보면 백이숙제가 비록 현인의 행실을 했다고 하지만 공자께서 이를 기려서 칭찬하여서 이름이 더욱 빛나게 드러났던 것이다.

그다음 색은에서는 쉬파리가 천리마의 꼬리에 붙어서 천리를 간다는 말은 안회가 공자로 인해서 이름이 밝혀졌음을 비유한 것이라고 풀었죠.

마지막 문구 두 개인데요. 산 속에 은거하던 사람들의 진퇴도 이와 같았지만 그 명성이 자취 없이 사라져 입에 오르지 않았으니 서글프도다! 사기 정의에서 이 문구를 해석하기를, 숨어서 지내는 선비가 때로는 천리마의 꼬리에 붙어서 이름이 밝게 드러날 때가 있지만 혹시 자취가 없어져서 기리지 못하게 된다면 이또한 비통한 일 아닌가라는 뜻으로 해석하죠.

마지막 문구입니다. 마을에 사는 일반 사람, 보통 사람들은 덕행을 갈고닦아서 명성을 세우고자 한다면, 청운의 뜻을 이루는 선비에게 붙지 않고서야 어찌 후세에 명성을 남길 수가 있겠는가!라고 하면서 마치는 거죠.

그 뒤에 백이열전 해설로써 색은의 술찬이 붙어있죠. 천도, 하늘의 도는 고르게 나누어져서 선한 무리들한테 주어진다고 했다. 현자가 굶어 죽고 도둑이 무리를 모은다. 길흉은 기이하고 숨어있으며, 보시는 얽혀있고 복잡하다. 공자가 천명을 말했듯이, 알려지기 전에 스스로 얻어지는 것이다. 그 소박한 선비들은 안타깝게도 청운에 붙지 못했구나!라고 마무리를 짓죠.

네 번째 기승전결의 결을 요약하면, 사마천 내가 사기라는 책을 쓰면서 천도, 하늘의 도에 맞추어서 잊혀진 이름들을 내가 새로 불러 줄 것이고 그들의 선악을 제대로 기록해서 후세 사람들한테 길이길이 기억되도록 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이죠.

제가 모두에 김춘수 선생께서 쓰신 꽃이라는 시에 대해서 말씀드렸는데요. 백이열전을 굳이 꽃이라는 시에 비유한다면 다음과 같은 억지를 부려 볼 수도 있겠습니다.

첫 번째 단락, 내가 그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공자께서 허유, 변수, 무광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들은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바꿔보면, 내가 그들의 이름을 불러 줄 때, 그들은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될 것이다.

내가 그 이름을 불러 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는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 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이것을 바꿔 보면, 내가 그들의 이름을 불러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는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 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여기서 ‘나의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이것은 ‘천도의 빛깔과 향기에 맞는’ 이런 식으로 비유할 수 있겠죠. 그런데 이 천도라는 것이 사마천 선생의 입장에서 보면 공자의 춘추대의와 선악포폄이 잣대라는 것이죠.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 다오.’ 부분은 ‘누가(다른 사람들이) 사마천 사기의 이름을 불러 다오.’ 어떻게, 좋게는 지금 기준으로 보면 동양 최고의 사가, 역사학자라고도 부를 수 있고 나쁘게 이야기하면 완유, 아주 완고한 유학자라고 이름을 붙일 수 있는 것이죠.

마지막 단락,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이 부분은 우리 모두 공자께서 말씀하시는 천도가 살아 숨쉬는 세상을 함께 만들어 가자 이런 뜻으로도 전환이 가능하죠.

제가 조금 억지를 부렸습니다만 마무리를 하면 사마천 선생께서는 사기 백이열전에서 많은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백이열전은 열전 전체의 서론을 담고 있고 사마천 선생 자신이 완유, 아주 완고한 유학자라는 사실을 숨김없이 드러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백이열전에서 주장하는 천도, 더 구체적으로는 공자님의 춘추대의, 선악포폄이라는 프랙털이 사기 전체의 큰 흐름을 대변하고 있죠. 그리고 마지막으로 사마천 선생이 자기가 잊혀진 여러 이름들을 불러줌으로써 후손들의 기억 속에 남도록 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피력하는 것이죠.

이상 여기까지가 백이열전에 대한 이야기인데요. 마무리하기 전에 백이열전을 읽어보면 생각지 못했던 새로운 질문이 다섯 가지 정도 나왔습니다.

첫 번째가 허유, 변수, 무광 이런 분들의 이름이 다른 책에서 언급되고 있는데 도대체 뭐가 문제냐라는 것이고, 두 번째는 주무왕이 성군이고 상나라 주왕이 폭군인데, 주무왕이 상주왕을 몰아냈다고 과연 이게 비난받을 일일까요?라는 의문입니다.

그런데 세 번째, 백이열전은 기본적으로 요순우가 자기 자리를 선양했다는 사실에 근거를 두고 있는데요. 과연 요순우 선양 기록이 역사적인 사실일까요? 아닐까요?라는 질문이죠.

네 번째는 조선 초기 사육신 중의 한 분인 성삼문 선생께서 ‘수양산을 바라보며’라는 시조를 썼죠. 거기서 왜 백이숙제를 한스러워 했을까요?라는 질문이고, 마지막 질문은 백이숙제의 고향땅인 고죽국이라는 나라가 상나라의 제후국이 맞나요? 아니면,  완전히 저 개인적인 생각입니다만 혹시 고조선의 제후국은 아닌가요?라는 질문이죠. 긴 시간 동안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