張敏. 深入《山海經》研究,探索美洲文明起源[J]. 福建師大福清分校學報,2007(01)4-7+10.
張敏. 深入《山海經》研究,探索美洲文明起源[J]. 福建師大福清分校學報,2007(01)4-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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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이 논문은 아메리카 원주민이 중국에서 건너갔다는 정말 황당한 주장을 한다. 중화 쇼비니즘[소위 중뽕]의 극단적인 “뇌피셜”을 보여주는 글이나, 냉정하게 평하면 논문이 아니라 오히려 소설에 가깝다. 증거로 거론하는 여러가지 지도들 역시 전혀 근거 없는 것들이다.
深入《山海經》研究,探索美洲文明起源
《산해경(山海經)》 연구를 심화하여 미주(美洲) 문명의 기원을 탐구하다
張敏[中國太平洋學會 海洋文化專業委員會,北京 100026]
장민(張敏)[중국태평양학회(中國太平洋學會) 해양문화전업위원회(海洋文化專業委員會), 북경(北京) 100026]
作者簡介:張敏[1948—],男,北京人。1982年春本科畢業於首都師範大學。現為中國太平洋學會副秘書長,《科學決策》雜誌編審、華夏文化研究中心研究員。發表各類文學作品百餘萬字,並多次獲獎。在國內外學刊發表了50多篇學術論文。編著或參與編著了《中外關係史辭典》、《中華統一史》、《圖說美洲圖騰》、《傳奇與人生》、《台商創業大上海》、《中國總經理工作手冊》等十幾部著作。近年來主要研究台灣文史、中外關係史及文化人類學。並已被錄入英國劍橋《世界名人辭典》和美國傳記研究所《世界英傑5000人傳》。
저자 약력:장민(張敏)
1948년생, 남성, 북경(北京) 출신. 1982년 봄 수도사범대학(首都師範大學)에서 학부 과정을 졸업했다. 현재 중국태평양학회(中國太平洋學會) 부비서장, 《과학결책(科學決策)》 잡지 편집위원이자, 화하문화연구센터(華夏文化研究中心) 연구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문학 작품을 100만 자 이상 발표했고, 여러 차례 수상한 바 있다. 국내외 학술지에 50편 이상의 논문을 발표했으며, 다음과 같은 여러 저서의 편저 또는 공동편저에 참여했다:《중외관계사사전(中外關係史辭典)》, 《중화통일사(中華統一史)》, 《도설미주도등(圖說美洲圖騰)》, 《전기와 인생(傳奇與人生)》, 《대만 기업인의 상해 창업기(台商創業大上海)》, 《중국총경리공작수책(中國總經理工作手冊)》 등 10여 종. 최근 몇 년간은 주로 대만(臺灣)의 역사문화, 중외관계사, 문화인류학 등을 연구했으며, 영국 케임브리지의 《세계명인사전(World Dictionary of Notable Figures)》과 미국 전기연구소의 《세계영걸 5000인전(世界英傑5000人傳)》에 수록되었다.
摘要
美洲原住民強烈反對”哥倫布發現新大陸”的神話。哥倫布帶給美洲人的是侵略、奴役與大屠殺。而200多年來,眾多中外學者熱心研究表明,中國人在早於哥倫布一千年乃至三、四千年前就發現了這塊大陸。美國默茨博士《幾近褪色的記錄》通過對中國古籍《山海經》的研究,認為”中國人至少在公元前2200年就已到達美洲”。而以中國太平洋學會研究員王大有、宋寶忠以及筆者多年的研究,更從體質人類學、圖騰學、語言學、古文字學、古代地圖學等多方面雄辯地考證出,多批中國人確實先於哥倫布到達美洲。
초록
아메리카 원주민들은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했다”는 신화를 강하게 반대해 왔다.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에 가져온 것은 침략, 노예화, 그리고 대량 학살이었다. 그러나 지난 200여 년간, 중국과 해외의 수많은 학자들의 열정적인 연구는 중국인이 콜럼버스보다 1천 년, 나아가 3천~4천 년 이전에 이미 이 대륙을 발견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미국의 머츠(Mertz) 박사는 저서 《거의 바래진 기록(幾近褪色的記錄)》에서 중국 고서 《산해경(山海經)》에 대한 연구를 바탕으로 “중국인은 적어도 기원전 2200년에는 이미 미주 대륙에 도달했다”고 주장했다. 또한 중국태평양학회(中國太平洋學會) 소속의 연구자 왕대유(王大有), 송보충(宋寶忠) 그리고 필자[장민(張敏)]의 오랜 연구에 따르면, 체질인류학, 도등학(圖騰學), 언어학, 고문자학, 고대지도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의 풍부한 증거를 통해 여러 차례의 중국인 이주가 콜럼버스보다 앞서 미주 대륙에 도달했음이 설득력 있게 입증되었다.
關鍵詞:哥倫布;山海經圖;默茨;美洲原住民
키워드:콜럼버스;산해경도(山海經圖);머츠(默茨);미주원주민(美洲原住民)
Deepen the Research of Shan hai Jing Probe into the Origin of American Civilization
《산해경(山海經)》 연구를 심화하여 미주(美洲) 문명의 기원을 탐색하다
ZHANG Min [Cultural Council of China Pacific Society Beijing, 100026]
장민(張敏)[ZHANG Min] [중국태평양학회(中國太平洋學會) 문화위원회, 북경(北京) 100026]
Abstract: The early Americans strongly opposed the mythical tale that “The America was discovered by Columbus”, saying that what Columbus brought to the Americans were invasions, enslavement and slaughter. In the past 200 years, so many scholars’ researches show that the Chinese people found the America 1000—4000 years earlier than Columbus, and the researchers of the Pacific Society like Mr Wan Dayou, Shong Baozhong, and the author of this article, based on their probes in the physics, ancient anthropology, the Totem Science, linguistics, ancient philology, and ancient cartography, justify that the Chinese people’s discovery of the America was prior the that of Columbus.
Key Words: Columbus; Shan Hai Jing Map; America; the Early Settlers.
초록:
초기 아메리카 원주민들은 “콜럼버스가 아메리카를 발견했다”는 신화적 이야기에 강하게 반대했으며, 콜럼버스가 아메리카에 가져온 것은 침략, 노예화, 그리고 학살이었다고 주장한다. 지난 200년 동안 수많은 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중국인은 콜럼버스보다 1000년에서 많게는 4000년 앞서 미주 대륙을 발견했다. 중국태평양학회(中國太平洋學會) 소속 연구자인 왕대유(王大有), 송보충(宋寶忠), 그리고 본문 저자[장민(張敏)]는 체질인류학, 고대인류학, 도등학(圖騰學), 언어학, 고문자학, 고대지도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의 탐구를 바탕으로, 중국인이 콜럼버스보다 먼저 아메리카에 도달했음을 입증했다.
키워드:콜럼버스;《산해경(山海經)》 지도;아메리카;초기 정착민
1.
誰最早發現了美洲?許多地理教科書曾經講過,是意大利人哥倫布於1492年發現的,於是,許多人,甚至一些偉人也都這麼認為,這幾乎成了盡人皆知的”常識”。然而,加勒比海和美國一些地區卻長期流傳著這樣一首民歌:”哥倫布說謊,哥倫布說謊,他告訴人們他發現了美洲,多麼樣的奇思幻想,也許他以為所有的印第安人都是虛幻……”
누가 가장 먼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했는가? 많은 지리 교과서에서는 이탈리아인 콜럼버스가 1492년에 아메리카를 발견했다고 가르쳐 왔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 심지어 어떤 위인들까지도 그렇게 믿고 있으며, 이는 거의 누구나 아는 ‘상식’이 됐다. 그러나 카리브해(加勒比海)와 미국 일부 지역에는 오래도록 다음과 같은 민요가 전해지고 있다. “콜럼버스는 거짓말쟁이, 콜럼버스는 거짓말쟁이, 그는 사람들에게 자신이 아메리카를 발견했다고 말했다. 얼마나 기이하고 황당한 생각인가? 어쩌면 그는 모든 인디언들이 환상에 불과하다고 여겼을지도 모른다…….”
還是傾聽一下美洲真正的主人,美洲原住民的聲音吧。美洲原住民民族解放運動家布魯斯·威·角[BRUCE WITHHORN]說:”講哥倫布發現了新大陸,對我們美洲原住民來說是一個莫大的侮辱。他來到美洲時,我們祖先們已經在這塊土地上世居了千萬年,怎能說他發現了這片大陸呢?他只不過是位後來的訪客罷了。但這位訪客竟喧賓奪主,招引了一群群的白種強盜屠殺我們的同胞,掠奪我們的土地,消滅我們的文化,使得我們在自己的土地上成為瀕臨絕種的稀有民族了。因此,哥倫布所代表的不是什麼大發現、大航海、及大探險的故事,而是一個大侵略、大奴役、及大屠殺的血淚史。可惜,以往的歷史竟是任由這批白種強盜們解釋,是非黑白都被他們顛倒了,世人不察,也都跟著盲目地講什麼’哥倫布發現新大陸’。更可惡的是,這批殖民主義強盜們在吃我們的肉、喝我們的血之餘,居然還厚顏無恥地在全世界高喊自由與人權,如果他們真的想捍衛人權的話,就請把我們的土地與主權還給我們,讓我們原住民也能有生存的最基本人權!”[《海峽評論》1992年第10期《還我土地還我主權》]
이제 아메리카의 진정한 주인, 아메리카 원주민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보자. 아메리카 원주민 민족해방운동가 브루스 위 호른[BRUCE WITHHORN]은 이렇게 말했다.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했다’는 말은 우리 아메리카 원주민들에게 있어 극도의 모욕이다. 콜럼버스가 아메리카에 왔을 때, 우리의 조상들은 이미 수만 년 동안 이 땅에서 살아오고 있었다. 어떻게 이 대륙을 발견했다고 할 수 있겠는가? 그는 단지 나중에 온 방문자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이 방문자는 주인 행세를 하며 백인 강도들을 끌어들여 우리의 동족을 학살하고, 우리의 땅을 빼앗고, 우리의 문화를 파괴했으며, 우리를 이 땅에서 멸종 위기의 희귀민족으로 만들었다. 그러므로 콜럼버스가 대표하는 것은 결코 ‘위대한 발견’, ‘대항해’, ‘대탐험’의 이야기가 아니라, 대침략, 대노예화, 대학살의 피와 눈물의 역사이다. 유감스럽게도, 과거의 역사는 이런 백인 강도들이 자기 멋대로 해석했고, 옳고 그름이 뒤바뀌었으며, 세상 사람들 또한 분별하지 못하고 맹목적으로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했다’고 떠들어 댔다. 더욱 가증스러운 것은, 이 식민주의 강도들이 우리의 살을 먹고 피를 마시면서도 뻔뻔하게 전 세계를 향해 자유와 인권을 외치고 있다는 점이다. 만약 그들이 진정으로 인권을 옹호하고자 한다면, 우리의 땅과 주권을 돌려 주고, 우리 원주민들에게도 생존의 가장 기본적인 인권을 보장하라!” [《해협평론(海峽評論)》 1992년 제10기, 〈환아토지환아주권(還我土地還我主權)〉]
就”誰最先發現美洲”問題進行的最強烈也是最高級別的辯論,是在1982年11月舉行的第37屆聯合國大會上。西班牙、意大利、多米尼加等34個國家聯名提出”慶祝哥倫布發現美洲五百週年”的決議草案。他們認為,哥倫布發現美洲對後世作出下列貢獻:
“누가 가장 먼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했는가”라는 문제를 둘러싼 가장 격렬하면서도 가장 높은 수준의 논쟁은 1982년 11월 제37차 유엔 총회에서 벌어졌다. 스페인, 이탈리아, 도미니카 등 34개국이 연명으로 ‘콜럼버스의 아메리카 발견 500주년을 기념하자’는 결의안 초안을 제출했다. 그들은 콜럼버스의 아메리카 발견이 후세에 다음과 같은 공헌을 했다고 주장했다:
- 頭一次證明地球是圓的;
지구가 둥글다는 것을 처음으로 증명했다. - 人類由此進入了一個新時代———人類近代歷史的開始,從此人類在科技、經濟和社會層面取得了巨大的進步;
인류는 이로 인해 새로운 시대에 들어섰다. 즉 인류 근대사의 시작이며, 이후 인류는 과학기술, 경제, 사회적 측면에서 거대한 진보를 이뤘다. - 使新、舊兩個世界之間開始接觸,進而使地球上不同文明社會和民族之間有機會可以根據《聯合國憲章》的原則所強調的普遍性的理想,進行接觸和了解;
신·구 두 세계 간의 접촉이 시작됐고, 이를 통해 지구상 서로 다른 문명 사회와 민족들이 《유엔 헌장(聯合國憲章)》이 강조하는 보편적 이상에 따라 상호 교류하고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됐다. - 使新、舊兩個世界在人員、文化、經濟、社會和動植物品種上,開始進行互惠的有益交流;
신·구 두 세계는 인적 교류, 문화, 경제, 사회, 동식물 종의 교환 등에 있어 호혜적이고 유익한 교류를 시작하게 됐다. - 新、舊兩個大陸的擁抱,產生了新的種族即歐洲人和印地安人的混血兒,並產生了一批偉大的人物如華盛頓、傑佛遜等。
신·구 대륙의 결합은 새로운 인종, 즉 유럽인과 인디언의 혼혈인 ‘메스티조’를 낳았으며, 워싱턴(華盛頓), 제퍼슨(傑佛遜) 등 위대한 인물들도 이 과정에서 등장했다.
如果上述決議草案獲得通過,那麼,則聯大所有會員國在1982—1992年的10年間,均需舉辦紀念活動,而聯大秘書長也須每年在聯大會議上報告各國舉辦該活動的進展情況。對此草案,中國代表沒有表態。然而,此草案卻遭到眾多國家代表們的強烈反對。愛爾蘭代表多爾先生最先挺身而出,他不否認哥倫布航行的重要歷史意義,但強調指出,當哥倫布在聖薩爾瓦多島登陸時,美洲的南北部都早有土著居民,他們已經在那裡生活了數千年,而且還發展過多種多樣的高度發達的文化,遑論哥倫布發現美洲?其次,即使談歐洲人發現美洲問題的話,哥倫布也不是第一個,挪威裔的冰島人利夫·埃里克森大約在公元一千年時就發現了新大陸。冰島代表赫爾加松先生贊同這一觀點,他說,埃里克森於一千年時發現新大陸的貢獻巨大,以至於美國國會早在1930年就為他雕刻了巨大的塑像,至今仍矗立在冰島首都雷克雅未克鬧市區。草案為何對此隻字不提而獨鍾哥倫布?這是令人困惑不解的,也是不公正的。赫爾加松先生嚴正指出,如果該決議案獲得了通過,它將是聯合國歷史上第一份紀念殖民化的決議,是不能容忍的!
위 결의안 초안이 통과될 경우, 유엔 총회 모든 회원국은 1982년부터 1992년까지 10년 동안 기념 행사를 개최해야 하며, 유엔 사무총장 역시 매년 유엔 총회에서 각국의 행사 진행 상황을 보고해야 한다. 이 초안에 대해 중국 대표는 아무런 입장도 밝히지 않았다. 그러나 이 결의안은 많은 국가 대표들의 강력한 반대에 직면했다. 아일랜드 대표 돌(Doyle) 씨가 가장 먼저 나서, 콜럼버스 항해의 역사적 중요성은 부정하지 않았으나, 다음과 같이 강조했다. 콜럼버스가 산살바도르(聖薩爾瓦多) 섬에 상륙했을 당시, 이미 아메리카 대륙의 남북 모두에 원주민들이 수천 년 전부터 살아오고 있었으며, 고도로 발달한 다양한 문명을 발전시켜 왔는데, 어떻게 콜럼버스가 아메리카를 ‘발견’했다고 할 수 있겠는가? 나아가, 설령 유럽인의 아메리카 발견을 이야기한다 해도, 콜럼버스는 결코 최초가 아니다. 노르웨이계 아이슬란드인 리프 에릭손(Leif Erikson)은 약 서기 1000년경에 이미 신대륙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아이슬란드 대표 헬가손(Helgason) 씨는 이에 동의하며, “에릭손이 1000년에 신대륙을 발견한 공헌은 매우 커서, 미국 의회는 이미 1930년에 그를 기리는 거대한 조각상을 세웠으며, 지금도 그 동상은 아이슬란드 수도 레이캬비크(雷克雅未克) 번화가에 우뚝 서 있다. 그런데 왜 이번 결의안에서는 이에 대해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고, 콜럼버스에게만 집착하는가? 이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며, 명백한 불공정이다”라고 말했다. 헬가손 씨는 엄중히 지적했다. “만약 이 결의안이 통과된다면, 그것은 유엔 역사상 최초의 ‘식민지배 기념 결의안’이 될 것이며, 이는 결코 용납할 수 없다!”
北歐國家代表的發言,使那些長期遭受殖民主義統治創痛巨深國家的代表們,紛紛起而堅決反對該決議草案。這樣,真理和正義終於戰勝了強權和虛偽,該決議草案終於被否決了,慶祝哥倫布計劃在聯合國流產了。然而,新老殖民主義者力圖慶祝哥倫布”發現”新大陸的意圖並未改弦更張,而是在千方百計尋求宣揚機會。於是,拉丁美洲印地安人和各國正義者也紛紛起而抗爭,於1987年10月7日至12日在哥倫比亞波哥大舉行拉丁美洲農民和土著人民組織會議;1990年8月舉行了挪威特羅姆瑟國際會議;危地馬拉基多會議等,其共同宗旨都是反對紀念”哥倫布發現美洲新大陸”。更令人振奮的是,19個土著人民組織於1991年7月22日至8月2日在聯合國日內瓦辦事處的萬國宮舉行了土著人民問題工作組會議。會議對於自1492年以來,殖民主義者在美洲殺害了約九千萬土著人,幾乎將土著民族趕盡殺絕的暴行,以及他們對於輝煌的美洲古代文明[印加、瑪雅、阿茲特克等]的殘暴毀滅,進行強烈的控訴和譴責。會議通過了著名的1991聯合國土著人民問題日內瓦會議決議。決議指出,西方國家特別是西班牙為隆重紀念所謂的”哥倫布’發現新大陸'”和”兩個世界的相遇”所進行的籌備工作和所使用的方式是對美洲土著人民尊嚴的侮辱。而聯合國大會第45/164號決議宣告1992年為”世界土著人民國際年”,旨在支持土著人民在人權、環境、發展、保健和教育等領域所採取的首創行動,是真理和正義戰勝強權和虛偽的體現。[詳見:龔忠武《美洲不是哥倫布發現的》]
북유럽 국가 대표들의 발언은, 오랫동안 식민주의 지배로 깊은 상처를 입은 여러 국가 대표들로 하여금 잇따라 일어나 결의안에 강력히 반대하게 만들었다. 이로써 진리와 정의가 마침내 강권과 위선을 이겼고, 해당 결의안은 부결됐으며, 유엔 차원에서의 ‘콜럼버스 기념 계획’은 좌절되고 말았다. 그러나 신·구 식민주의 세력은 여전히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을 기념하려는 의도를 버리지 않고, 온갖 방법을 동원해 선전 기회를 모색했다. 이에 라틴아메리카의 인디언들과 각국의 정의로운 인사들도 일어나 저항했다. 1987년 10월 7~12일 콜롬비아 보고타(波哥大)에서 ‘라틴아메리카 농민 및 원주민 조직 회의’, 1990년 8월 노르웨이 트롬쇠(特羅姆瑟) 국제회의, 과테말라(危地馬拉) 키토(基多) 회의 등이 열렸다. 이 회의들의 공동된 취지는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을 기념하는 것에 반대하는 데 있었다. 더욱 고무적인 일은, 1991년 7월 22일부터 8월 2일까지, 제네바(日內瓦)의 유엔 유럽본부인 만국궁(萬國宮, Palais des Nations)에서 19개 원주민 단체가 ‘원주민 문제 실무그룹 회의’를 개최한 것이다. 이 회의에서는 1492년 이후 식민주의자들이 아메리카 대륙에서 약 9천만 명의 원주민을 살해해 거의 절멸에 이르게 한 만행과, 잉카(印加)·마야(瑪雅)·아즈텍(阿茲特克) 등 찬란한 고대 문명을 잔혹하게 파괴한 사실에 대해 강력히 고발하고 규탄했다. 회의는 유명한 「1991년 유엔 원주민 문제 제네바 회의 결의안」을 채택했다. 결의안은, 서방 국가들 특히 스페인이 소위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과 ‘두 세계의 만남’을 성대히 기념하기 위해 준비한 행사와 그 방식이 아메리카 원주민의 존엄에 대한 모욕이라고 지적했다. 또한 유엔 총회 제45/164호 결의안은 1992년을 “세계 원주민 국제의 해”로 선포하며, 인권, 환경, 개발, 보건, 교육 등 분야에서 원주민들이 주체적으로 나서는 활동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이 결의는 진리와 정의가 강권과 위선을 이긴 상징이다. [자세한 내용은:공충무(龔忠武) 저, 《미주불시가륜포발현적(美洲不是哥倫布發現的)》 참조.]
經過美洲土著人民不屈不撓的鬥爭和聯合國兩次會議,”哥倫布發現新大陸”的神話已經宣告結束!
아메리카 원주민들의 끈질긴 투쟁과 유엔의 두 차례 회의를 거친 끝에,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했다”는 신화는 마침내 종말을 고했다!
2.
長久以來,前哥倫布時期美洲的發現以及美洲古代文明的繁榮與衰落之研究,恰是中外學者及世人都非常關切而極感興趣的。這是因為,美洲大陸在這一時期沒有出現殖民者的侵略與殺戮,掠奪與破壞,謊言與欺騙……古代美洲文明的起源與傳播,和平與進步是那樣的迷人,甚至籠罩著某種動人的神秘感,難怪研究者長盛不衰,屢爆”熱門”……
오랫동안 콜럼버스 이전 시기 아메리카의 발견과 고대 문명의 흥망성쇠에 대한 연구는, 중국과 외국의 학자들 그리고 세간의 사람들 모두가 깊은 관심을 가져온 분야였다. 그 이유는 이 시기의 아메리카 대륙에는 식민 침략자들의 침입과 살육, 약탈과 파괴, 거짓과 기만이 없었기 때문이다. 고대 아메리카 문명의 기원과 전파, 평화와 진보는 그만큼 매혹적이며, 심지어 감동적인 신비로움을 띠고 있어서 연구 열기는 좀처럼 식을 줄 몰랐고, 자주 ‘화제의 중심’이 됐다.
在諸多”熱門”研究課題中,中國人何時”發現”了美洲?是令中外學者都非常關注的。平心而論,這並非中國人夜郎自大而提出,始作俑者恰是西方學者們。200多年前,法國漢學家德·吉涅[J. de Guignes]通過研究《梁書·諸夷傳·扶桑國》,於1761年撰寫發表了《中國人沿美洲海岸航行及居住亞洲極東部幾個民族的研究》,首先提出中國僧人慧深於齊永元元年[499]到達了美洲的墨西哥,比哥倫布到達美洲早一千年。1863年,法國學者阿貝爾—雷米薩將中國僧人法顯[337—422]所著《法顯傳》[原名《晉法顯自記歷遊天竺事》,又名《佛國記》]譯成法文在巴黎出版。1869年英國學者薩繆·比爾將《法顯傳》譯為英文在倫敦出版。到1900年前後,法國史學界在法國《蒙陀穆跌輪報》上提出法顯先於哥倫布1500年發現美洲。《山海經》的法譯本傳到法國較早,法國學者巴贊[M. Bazin]於1839年便已對《山海經》做了大量研究工作。1892年,希勒格[G. Schlegel]發表《扶桑國考證》,除依據《梁書》外,還引證了《山海經》”湯谷有扶桑”為佐證。1907年9月,日本學者白鳥庫吉發表《關於扶桑國》,首先提出殷人東渡美洲之說。
그 중에서도 “중국인은 언제 아메리카를 ‘발견’했는가?”라는 주제는 중외 학자 모두가 큰 관심을 두는 쟁점이다. 공정하게 말하자면, 이 주장은 중국인의 자만심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서양 학자들로부터 시작됐다. 200여 년 전, 프랑스 한학자 드 기뉴[J. de Guignes]는 《양서(梁書)》 〈제이전(諸夷傳)〉 〈부상국(扶桑國)〉을 연구한 결과, 1761년 《중국인의 아메리카 해안 항해 및 아시아 극동 민족 거주에 대한 연구》를 발표하면서, 중국 승려 혜심(慧深)이 제(齊) 영원(永元) 원년[499]에 아메리카 멕시코에 도달했다고 처음 제기했다. 이는 콜럼버스보다 1000년 이른 시기였다. 1863년, 프랑스 학자 아벨-레뮈사(Abel-Rémusat)는 중국 승려 법현(法顯)[337–422]이 쓴 《법현전(法顯傳)》[원명:《진법현자기역유천축사(晉法顯自記歷遊天竺事)》, 다른 이름:《불국기(佛國記)》]를 불어로 번역해 파리(巴黎)에서 출판했다. 1869년, 영국 학자 사뮤엘 비얼(Samuel Beal)은 이를 영어로 번역해 런던(倫敦)에서 출판했다. 1900년 무렵, 프랑스 역사학계는 프랑스의 《몽타뮈디에 윤보(蒙陀穆跌輪報)》에 글을 실어 법현(法顯)이 콜럼버스보다 1500년 먼저 아메리카를 발견했다고 주장했다. 《산해경(山海經)》의 불역본은 비교적 이른 시기부터 프랑스에 전해졌으며, 프랑스 학자 바쟁[M. Bazin]은 1839년에 이미 《산해경》에 대해 대규모 연구를 진행했다. 1892년, 슐레겔[G. Schlegel]은 《부상국고증(扶桑國考證)》을 발표하면서, 《양서》뿐 아니라 《산해경》의 “탕곡(湯谷)에 부상(扶桑)이 있다”는 구절도 인용해 보조적 증거로 삼았다. 1907년 9월, 일본 학자 시라토리 쿠라키치(白鳥庫吉)는 《부상국에 관하여(關於扶桑國)》를 발표하면서, 은(殷)나라 사람들이 동쪽으로 아메리카를 건너갔다는 설을 처음 제기했다.
這樣,海外學者便依據中國古代文獻典籍,提出了前哥倫布時期中國人發現美洲的多種學說。這些豐碩的研究成果,自然引起了當時敢於放開眼界看世界的先進的中國學者的注意。著名的愛國學者章太炎先生,率先注意到法國學者提出中國人發現新大陸的主張,於1900年發表《法顯發現西半球說》[《章太炎全集》第4卷484頁],開中國學者探討這一問題之先河。而後,介入這一研究領域的中國學者,便恰似一江春水向東流,莫可阻擋。1939年,中國學者朱謙之完成《扶桑國考證》一書[又名《哥倫布一千年前中國僧人發現美洲說之討論》],1941年由香港商務印書館出版。該書論述詳盡,頗有影響。1962年,他又發表《哥倫布前一千年中國僧人發現美洲考》,進一步重申自己的主張。1940年,陳志良發表《中國人最先移殖美洲》,主張殷箕子受封朝鮮後,其後世子民又轉遷美洲。
이렇게 해외 학자들은 중국의 고대 문헌에 근거하여, 콜럼버스 이전 시기에 중국인이 미주를 발견했다는 여러 학설을 제기했다. 이러한 풍부한 연구 성과는 시야를 세계로 넓히려 했던 진취적 중국 학자들의 주목을 끌었다. 애국적 사상가 장태염(章太炎) 선생은 프랑스 학자가 제기한 “중국인의 신대륙 발견설”에 주목한 최초의 중국 학자였으며, 1900년에 〈법현발현서반구설(法顯發現西半球說)〉을 발표했다[《장태염전집(章太炎全集)》 제4권, 484쪽]. 이로써 중국 학자들이 이 문제를 탐구하기 시작한 서막을 열었다. 이후 이 연구에 뛰어든 중국 학자들의 흐름은 봄물처럼 세찬 물결이 됐다. 1939년, 주겸지(朱謙之)는 《부상국고증(扶桑國考證)》을 완성했고[부제:《콜럼버스보다 1000년 앞서 중국 승려가 아메리카를 발견했다는 학설에 대한 고찰》], 1941년 홍콩 상무인서관(商務印書館)에서 출판했다. 이 책은 논의가 자세하고 당시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1962년, 그는 다시 《콜럼버스보다 1000년 앞서 중국 승려가 아메리카를 발견했다는 고증》을 발표해 자신의 견해를 재차 강조했다. 1940년, 진지량(陳志良)은 〈중국인이 가장 먼저 미주에 이주하다〉를 발표하면서, 은(殷)나라 기자(箕子)가 조선(朝鮮)에 봉해진 뒤 그 후손들이 다시 미주로 이주했다고 주장했다.
美國的亨莉埃特·默茨博士於1936年前後潛心研究《文獻通考·卷327》、《梁四公記》[見《圖書集成》邊裔典卷41]、《山海經》等中國古代典籍,凡十幾年,於1953年出版了她的名著,英文本《幾近退色的記錄》。在這部著作中,她不但堅信慧深和尚於五世紀時遊歷了美洲,還首次宣告世人,中國至少在四千年前就已開始到美洲探險,這一成果震動了學術界,美國國內外紛紛邀請她講學,影響很廣。這部書於1972年再版。而中國大陸於1993年才有這部著作中譯本,海洋出版社出版。
미국의 헨리에트 머츠(Henriette Mertz) 박사는 1936년 전후로 중국의 고대 문헌인 《문헌통고(文獻通考)》 권327, 《양사공기(梁四公記)》[《도서집성(圖書集成)》 변예전(邊裔典) 권41 수록], 《산해경(山海經)》 등을 10여 년간 연구했고, 1953년에 그녀의 대표작인 영문 저서 《거의 퇴색된 기록(Pale Ink)》을 출간했다. 이 책에서 그녀는 혜심(慧深) 스님이 5세기에 아메리카를 여행했다는 것뿐만 아니라, 중국은 적어도 4000년 전에 이미 미주 탐험을 시작했다고 세상에 처음 공표했다. 이 연구는 학계를 크게 뒤흔들었고, 미국 내외에서 강연 요청이 쇄도하며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이 책은 1972년에 재판됐고, 중국 대륙에서는 1993년에야 중역본이 해양출판사(海洋出版社)에서 나왔다.
1961年9月,鄧拓先生從《知識就是力量》雜誌上讀到從俄文翻譯過來的關於五世紀中國僧人發現美洲的有關材料,便以馬南邨為筆名,於同年9月在《北京晚報》的《燕山夜話》專欄,連續發表了《誰最早發現美洲》、《”扶桑”小考》、《由慧深的國籍說起》,引發了一股探索熱潮。1983年8月,李成林在《北京晚報·百家言》發表《美洲和中國》系列文章,宋寶忠、王大有、王雪、孫家堃、張小華等學者紛起響應,從不同角度撰文,探討古代美洲與中國之淵源。
1961년 9월, 등척(鄧拓) 선생은 《지식취시력량(知識就是力量)》 잡지에서 5세기 중국 승려가 미주를 발견했다는 러시아어 자료의 중국어 번역본을 접했고, 같은 해 9월, ‘마남촌(馬南邨)’이라는 필명으로 《북경만보(北京晚報)》의 〈연산야화(燕山夜話)〉 칼럼에 〈누가 가장 먼저 아메리카를 발견했는가〉, 〈”부상(扶桑)” 소고(小考)〉, 〈혜심의 국적에서부터 시작하여〉 등을 연속으로 발표해 큰 탐구 열풍을 불러일으켰다. 1983년 8월, 이성림(李成林)은 《북경만보·백가언(百家言)》에 〈아메리카와 중국〉 연재 글을 발표했고, 송보충(宋寶忠), 왕대유(王大有), 왕설(王雪), 손가곤(孫家堃), 장소화(張小華) 등의 학자들이 이에 호응해 각기 다른 관점에서 고대 아메리카와 중국 간의 관계를 탐구하는 글을 발표했다.
1992年7月,連雲山先生出版專著《誰先到達美洲———紀念東晉法顯大師到美洲1580年》。本書在200多年來中外學者有關研究的基礎上,從中國現有典籍中,鉤沉輯佚,翔實論證,有較高學術價值。更為可貴的是,作者認為:”真正有資格稱為發現美洲大陸的人,是美洲印第安人,也就是美洲土著人。其它如法顯和哥倫布只能稱為到達美洲,而沒有資格稱為發現美洲。”因此本書書名就是《誰先到達美洲》。這種提法,從歷史的本來面貌出發,尊重美洲原住民的意願,尊重聯合國大會會議有關精神,無疑是值得稱道的。通常認為,利用中國古籍探討古代美洲與中國之淵源,西方學者因語言文字障礙、知識結構、研究方法之不同,會有諸多局限,而中國學者頗具優勢,因之,朱謙之《扶桑國考證》、連雲山《誰先到達美洲》等學術專著先後問世。
1992년 7월, 연운산(連雲山) 선생은 전작 《누가 먼저 미주에 도달했는가—동진(東晉) 법현(法顯) 대사의 미주 도달 1580주년 기념》을 출판했다. 이 책은 200여 년 동안 중외 학자들이 수행한 관련 연구를 바탕으로, 중국 현존 고전 속에서 잊힌 기록을 발굴·정리하며, 사실에 기반한 논증을 펼친 학술적 가치가 높은 저작이다. 더욱 소중한 점은, 저자가 다음과 같은 견해를 밝혔다는 것이다. “진정으로 미주 대륙을 ‘발견’했다고 할 자격이 있는 사람은 아메리카 인디언, 즉 원주민이다. 법현이든 콜럼버스든 ‘미주에 도달’한 것일 뿐, ‘발견했다’고 말할 자격은 없다.” 그리하여 이 책 제목을 《누가 먼저 미주에 도달했는가》라고 정한 것도, 역사의 본래 모습을 존중하고, 미주 원주민의 의지를 존중하며, 유엔 총회 관련 정신을 따르는 태도에서 비롯됐으며, 칭송받을 만하다. 일반적으로, 중국 고전을 바탕으로 고대 중국과 아메리카 간의 관계를 탐구하는 데 있어, 서구 학자들은 언어·문자, 지식 구조, 연구 방법의 차이로 제한이 많지만, 중국 학자들은 비교적 우위에 있다고 여겨진다. 그 결과, 주겸지(朱謙之)의 《부상국고증(扶桑國考證)》, 연운산(連雲山)의 《누가 먼저 미주에 도달했는가》 등과 같은 학술 저작이 잇따라 출판됐다.
然而,這種看法未免失之片面,美國默茨博士的《幾近退色的記錄》一書便是空前的成功,把中國人到達美洲的時間提前到四千年前。默茨博士這一觀點的提出並非空穴來風,也不是”人有多大膽,地有多大產”的標新立異,而是基於對《山海經》等中國古籍的深入研究所得出的結論。
그러나 이런 견해는 다소 편파적이다. 미국의 머츠(Mertz) 박사가 쓴 《거의 퇴색된 기록(Pale Ink)》은 중국인의 미주 도달 시점을 4000년 전으로 끌어올린 전례 없는 성과였다. 머츠 박사의 이 주장은 근거 없는 억측이 아니라, “사람이 마음먹으면 하늘도 감동한다”는 식의 과장도 아니었다. 이는 철저하게 《산해경(山海經)》 등 중국 고대 문헌에 대한 심층 연구에서 나온 학술적 결론이었다.
《山海經》是古代地理著作。十八篇。作者不詳,各篇著作時代亦無定論,近代學者多數認為不出於一時一人之手,其中十四篇是戰國時作品,《海內經》四篇則為西漢初年作品。內容主要為民間傳說中的地理知識,包括山川、地理、民族、物產、藥用、祭祀、巫醫等,保存了不少遠古的神話傳說。對古代歷史、地理、文化、中外交通、民俗、神話等研究,均有參考價值。其中的礦物記錄,為世界上最早的有關文獻。晉郭璞作注,其後考證注釋者有清代畢沅《山海經新校正》和郝懿行《山海經箋疏》———《辭海》1979年版。
《산해경(山海經)》은 고대 지리서이다. 총 18편으로, 저자는 미상이고 각 편의 저작 시기에 대해서도 정설은 없다. 근대 학자들은 대체로 하나의 시대나 한 사람의 저작이 아니며, 14편은 전국시대(戰國時代), 《해내경(海內經)》 4편은 서한(西漢) 초기의 저작으로 본다. 내용은 주로 민간 전승 속 지리 지식을 중심으로, 산천·지형·민족·물산·약용·제사·무의(巫醫) 등에 걸쳐 있으며, 고대 신화 전설도 다수 보존하고 있다. 고대의 역사·지리·문화·중외 교류·민속·신화 연구에 귀중한 참고 자료이다. 그 중 광물 기록은 세계에서 가장 이른 관련 문헌으로 간주된다. 진(晉)나라의 곽박(郭璞)이 주석을 달았고, 이후 청대(清代)의 필원(畢沅)이 《산해경신교정(山海經新校正)》을, 학의행(郝懿行)이 《산해경전소(山海經箋疏)》를 펴냈다. —《사해(辭海)》 1979년판 참고.
《山海經》是研究上古社會的重要文獻,但因其內容豐富宏遠,而又包含神話成份,不易讀通,不易為後世讀者理解,故常被斥為奇談怪論,就連司馬遷也歎曰:”至《禹本紀》、《山海經》所有怪物,余不敢言之也。”
《산해경》은 상고 사회 연구에 매우 중요한 문헌이지만, 내용이 방대하고 원대할 뿐 아니라 신화적 요소가 다수 포함돼 있어, 후세 독자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탓에, 기이한 말과 허황한 이야기로 오해받는 일이 잦았다. 심지어 사마천(司馬遷)조차 “《우본기(禹本紀)》와 《산해경》에 나오는 온갖 괴이한 것들에 대해서는, 나는 감히 말하지 못하겠다”고 탄식했다.
《山海經》的分類定位,也非常曲折,《漢書·藝文志》列其在數術中的形法類;《隋書·經籍志》改列在史部的地理類;《宋史·藝文志》改列在史部的五行類;清代《四庫全書總目提要》謂其是”小說之最古者爾”,最終改列在子部的小說家類。這樣,《山海經》就更被視為神話,而不被重視了。
《산해경》의 분류도 매우 우여곡절이 많았다. 《한서(漢書)·예문지(藝文志)》에서는 술수류의 형법(形法) 분야, 《수서(隋書)·경적지(經籍志)》에서는 사부(史部)의 지리류, 《송사(宋史)·예문지》에서는 사부의 오행류, 청대 《사고전서총목제요(四庫全書總目提要)》에서는 “소설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이라 하여 최종적으로 자부(子部)의 소설가류에 편입됐다. 이렇게 《산해경》은 점차 신화적 문헌으로 간주돼 학술적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게 됐다.
魯迅先生喜讀《山海經》,他認為:”中國之神話與傳說,今尚無集錄為專書者,僅散見於古籍,而《山海經》中特多。《山海經》今所傳本十八卷,記海內外山川、神祗、異物及祭祀所宜,以為禹益作者固非,而謂因《楚辭》而造者亦未是;所載祠神之物多用糈〈精米〉,與巫玉合,蓋古之巫書也,然秦漢人亦有增益。”[《中國小說史略》]
노신(魯迅) 선생은 《산해경》을 즐겨 읽었고, 다음과 같이 평가했다. “중국의 신화와 전설은 지금까지도 전용 집서로 정리된 것이 없고, 고대 문헌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을 뿐이다. 그 가운데 《산해경》에는 유독 많다. 현전하는 《산해경》은 18권이며, 해내외의 산천·신령·이물·제사 등을 기록하고 있다. 이를 우(禹)와 익(益)이 지었다고 보는 것은 분명히 아니다. 그러나 《초사(楚辭)》를 본떠 지은 것이라 보는 것도 옳지 않다. 책에 등장하는 제신의 제물 중에는 서〈정미(精米)〉가 많고, 무옥(巫玉)과 함께 쓰인다. 이는 본래 고대의 무서(巫書)였으며, 진(秦)·한(漢) 시대 사람들도 내용을 보완했다.” [《중국소설사략(中國小說史略)》]
魯迅先生目光犀利,對《山海經》之評價是深刻的。首先,他認為中國神話與傳說散見於《山海經》中雖然”特多”,但《山海經》絕不是神話與傳說的”專書”。那麼,《山海經》的主體是什麼呢?是”記海內外山川”,也就是說,《山海經》的主體是海內及海外地理。至於”神祗、異物及祭祀所宜”則居其次地位,而這一部分則帶有巫書性質。關於”巫”與”史”,魯迅先生亦有精闢論述,他認為:”巫以記神事,更進,則史以記人事也”[《漢文學史綱要》],簡而明地講出了由神話、古史傳說發展為歷史的進程。實際上,遠古時代,”巫”與”史”往往同時在作為巫[往往是氏族領袖人物]的人身上產生,神話故事實則就是遠古歷史和英雄史詩,供”巫”借鑑並警示氏族成員。因之,《山海經》是一部以古代地理為主體,又融匯中國古代諸多珍貴史料及原始神話、古史傳說的綜合性史地專著,是今人研究古代中國與世界不可缺少的索引,也是指引今人穿過重重神秘的歷史帷幕,打開上古社會的一把金鑰匙。
노신 선생의 통찰력은 매우 날카롭고 평가는 깊이가 있었다. 그는 우선, 《산해경》에 중국 신화와 전설이 많기는 하지만, 그것이 신화와 전설만을 위한 전용 문헌은 아니라고 보았다. 그렇다면 《산해경》의 중심 내용은 무엇인가? 바로 “해내외 산천을 기록한 것”, 즉 지리 기록이 주된 내용이라는 것이다. 신령·이물·제사의례 등은 부차적인 부분이며, 무속적 성격이 강하다고 보았다. ‘무(巫)와 사(史)’에 대해 노신 선생은 또 정곡을 찌르는 논평을 남겼다. “무(巫)는 신사(神事)를 기록하고, 더 나아가 사(史)는 인사(人事)를 기록한다.” [《한문학사강요(漢文學史綱要)》] 이 간단한 말 속에 신화와 고사(古史) 전설이 어떻게 ‘역사’로 진화해 갔는가 하는 과정을 요약했다. 실제로 원시 사회에서는 ‘무’와 ‘사’가 동일한 인물인 경우가 많았다. 그 무는 대개 씨족의 수령이었으며, 신화 이야기는 고대의 역사이자 영웅 서사시였다. 이것은 씨족 구성원에게 경계와 교훈을 주는 수단이었다. 따라서 《산해경》은 단순한 신화서가 아니라, 고대 지리를 주축으로 하되, 고대 중국의 귀중한 역사 자료·원시 신화·고사 전설이 복합적으로 융합된 종합적 사지(史地) 전문서이다. 오늘날 고대 중국과 세계를 연구하는 이들에게 없어서는 안 될 색인이며, 깊고 무거운 역사의 장막을 걷고 상고 사회로 들어가는 황금 열쇠라 할 수 있다.
海外學者對《山海經》進行了嚴肅認真的研究,認為《山海經》原書共32篇,經秦始皇焚書坑儒,此書曾消失,再次搜求到時,僅餘18篇。由於此書今本已不全,因之更為撲朔迷離,難於理解。這種觀點顯然比確信此書就是18篇更為深入些。更重要是,海外學者研究之《山海經》圖文並茂,即除去18篇文字外,還有標誌翔實的”天下圖”。圖文對照,許多疑難迎刃而解。誠然,古本《山海經》是有圖畫的,而且圖畫佔據著相當重要的地位。據研究,此書的《山經》以文字記敘為主,而後加以插圖。《海經》部分則是以圖為主,而文字則是用來說明圖畫的”圖注”,因之,《海經》部分的圖是格外重要的。又因《海經》部分的圖是標明古代中國與海外各國之所在位置,從中可以了解諸多古代中國與世界之關係與淵源,因而尤其重要。正因如此,《山海經》又稱《山海圖》。陶淵明曾寫過《讀〈山海經〉十三首》詩,其中第一首最後結語便是”泛覽《周王傳》,流觀《山海圖》;俯仰終宇宙,不樂復何如”,可見陶淵明時代此圖還有。可惜的是,古圖佚亡多年,中國學者依據僅餘的18篇文字而又缺少圖畫之今本《山海經》,思想自不能不大受局限。
해외 학자들은 《산해경》에 대해 엄밀하고 진지한 연구를 수행했고, 원본은 총 32편이었으나 진시황(秦始皇)의 분서갱유(焚書坑儒) 이후 일시적으로 사라졌다가, 다시 수집했을 때 단지 18편만 남았다고 보았다. 현존본이 완전하지 않기 때문에 더욱 혼란스럽고 이해하기 어렵게 됐다. 이 견해는 18편으로 완성된 책이라고 단정하는 것보다 훨씬 깊이 있는 시각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해외 학자들이 연구한 《산해경》은 도해와 문장을 함께 분석했다는 점이다. 즉, 18편의 본문 외에도 ‘천하도(天下圖)’라는 정밀한 지도가 있었다. 그림과 문장을 대조하면 그동안 풀리지 않던 난점들이 자연스럽게 해명된다. 실제로 고본 《산해경》에는 도해가 포함돼 있었고, 그 그림은 매우 중요한 비중을 차지했다. 연구에 따르면, 《산경(山經)》 부분은 문장이 중심이고 도해는 보조였지만, 《해경(海經)》 부분은 도해가 중심이고 문장은 그림을 해설하는 도주(圖注)였다. 따라서 《해경》 부분의 도해는 각별히 중요하다. 또한 《해경》 속 그림은 고대 중국과 해외 여러 나라의 위치를 표시한 것이어서, 고대 중국과 세계 각국의 관계를 유추할 수 있는 중요한 단서가 담겨 있다. 바로 이런 이유로 《산해경》은 종종 《산해도(山海圖)》라 불리기도 했다. 도연명(陶淵明)[365-427]은 《독〈산해경〉십삼수(讀〈山海經〉十三首)》라는 시를 지었는데, 그 첫 번째 시의 마지막 구절에 “《주왕전(周王傳)》을 훑어보고, 《산해도(山海圖)》를 훑어보니, 온 우주를 굽어보고도 즐겁지 않다면 어찌하랴”라고 썼다. 이를 통해 도연명이 살던 시대에는 이 지도가 여전히 존재했음을 알 수 있다. 안타깝게도 고도(古圖)는 이미 오래전에 유실됐고, 중국 학자들은 현재 남은 18편의 문장만으로, 도해가 빠진 현존본에 의존해 연구하다 보니 사고의 폭에 큰 제약을 받게 됐다.
值得慶幸的是,《山海經》世界輿地圖在中國雖已佚亡,在海外尚有收藏。一幅十二世紀的《天下圖》[載韶華寶忠雙、歐陽如水明《中華祖先拓荒美洲》432頁]早年流入法國,在西方學者當中流傳較廣。依這幅圖之印刷年代論,當為宋版,價值較高。但考證其真偽,孤證尚難定論。更令人振奮的是,朝鮮尚存有九世紀時的《普天之下地圖》,依年代當為唐版,即使單從善本、珍本書角度講,這也是稀世珍寶了。九世紀時,朝鮮[當為新羅統一百濟、高句麗時期]、日本等國曾向唐朝派出大批遣唐使,文化交流極為廣泛,此圖流入朝鮮,是順理成章之事。
다행히, 《산해경》의 세계 여지도(輿地圖)는 중국에서는 소실됐지만 해외에서는 일부가 보존돼 있었다. 12세기판 ‘천하도(天下圖)’ 한 장[소화보충쌍(韶華寶忠雙), 구양여수명(歐陽如水明) 공저 《중화조선척황미주(中華祖先拓荒美洲)》 432쪽 수록]은 일찍이 프랑스로 유출돼 서방 학자들 사이에서 널리 전파됐다. 인쇄 시기로 판단하면, 송(宋)나라 판본으로 추정되며 그 가치가 높다. 다만 진위 여부를 검토하기에는 단일 증거만으로 판별이 어렵다. 더욱 놀라운 것은, 조선(朝鮮)에서 9세기에 제작된 《보천지하지도(普天之下地圖)》가 현재까지 전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제작 시기로 보아 당(唐)나라 판본일 가능성이 높으며, 선본·진본의 측면에서도 매우 희귀한 보물이다. 9세기 당시, 조선[당시 신라(新羅)가 백제(百濟)·고구려(高句麗)를 통일한 시기]과 일본(日本) 등은 당나라에 대거 견당사(遣唐使)를 파견했고, 문화 교류가 매우 활발했다. 이 지도가 조선으로 흘러들어간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九世紀《普天之下地圖》、十二世紀《天下圖》的發現,具有震驚世界的重大意義。兩圖相比較,只有個別字稍異,可見均有所本,流傳有序。兩圖皆為圓形,是已知地球為圓。如此可知《山海經》成書之年為戰國至西漢初年,當時中國人已知地球為圓的,而且還畫了相當高明的世界地圖。所謂哥倫布發現美洲對後世作出的第一大貢獻”頭一次證明地球是圓的”,可以休矣!
9세기 《보천지하지도》와 12세기 《천하도》의 발견은 전 세계를 놀라게 할 만한 중대한 의미를 지닌다. 두 지도를 비교하면 다만 몇 글자만 다를 뿐이며, 공통된 원형이 있었고 체계적인 전승 경로가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두 지도 모두 원형 구조로 돼 있는데, 이는 당시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음을 뜻한다. 이로부터 《산해경》이 전국시대(戰國時代)부터 서한(西漢) 초기 사이에 편찬됐으며, 당시 중국인들은 이미 지구가 구형(球形)이라는 사실을 알고, 수준 높은 세계지도를 그릴 수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콜럼버스가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증명했다”는 후세의 ‘공로’는 이제 접어둘 만하다.
更為驚人的是,這兩份地圖竟然也繪有亞洲、歐洲、非洲、澳洲、南北美洲地方[當然名稱不同,標的是中華先民對這些地方的命名]所繪位置與今繪世界地圖基本吻合。圖中,自中國向東有朝鮮、日本、暘[谷]國、扶桑國、大人、少昊、甘山等國。扶桑、少昊國均在美洲所在地方。據此圖再對照《山海經》所載,中華祖先不但早已發現了美洲,且往來多次。以怪默茨博士喟然歎曰:”對於4000年前,就為白雪皚皚的峻峭山峰繪製地圖的剛毅無畏的中國人,我們只有頂禮膜拜。”
더욱 놀라운 점은, 이 두 장의 지도에 아시아, 유럽, 아프리카, 오세아니아(澳洲), 남북 아메리카 지역이 모두 포함돼 있으며[물론 이름은 지금과 다르고, 중화 선민(先民)이 붙인 명칭으로 표기], 그 위치가 오늘날 세계지도와 거의 일치한다는 것이다. 지도에는 중국 동쪽에 조선(朝鮮), 일본(日本), 양곡국(暘谷國), 부상국(扶桑國), 대인국(大人), 소호국(少昊), 감산국(甘山) 등이 그려져 있다. 부상국과 소호국은 오늘날 아메리카 대륙에 해당하는 위치에 표시돼 있다. 이 지도를 《산해경》의 기술 내용과 대조하면, 중화의 선조들이 아메리카를 이미 오래전에 발견했고, 수차례 왕래까지 했음을 유추할 수 있다. 이런 사실 앞에서 머츠(Mertz) 박사는 감탄하며 이렇게 말했다. “4000년 전, 눈 덮인 험준한 산봉우리를 탐험하고 지도까지 그려낸 용감무쌍한 중국인들에게, 우리는 그저 경건히 머리를 숙일 수밖에 없다.”
默茨博士認真研究《山海經》的精神是令人欽佩的,她不但敢想,而且敢於實踐,她在美洲經實地旅行考察後認為,”《山海經》中的描寫,和美國、加拿大及墨西哥的實際地理位置是對上號的,能夠印證,並能繪成地圖”,”中國人至少早在公元前2200年某一時期就曾來到美洲,直到公元五世紀,他們定期前來”[見《幾近退色的記錄》]。默茨博士這種敢為天下先,勇於實踐的精神尤為可貴。
머츠 박사는 《산해경》에 대해 진지하고 치열하게 연구한 학자였으며, 상상력만 가진 것이 아니라 실제로 행동할 줄 아는 학자였다. 미주 각지를 직접 답사한 뒤,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렸다. “《산해경》에 묘사된 내용은 미국, 캐나다(加拿大), 멕시코(墨西哥)의 실제 지리와 상당히 일치하며, 이를 바탕으로 실제 지도도 제작할 수 있다.” “중국인은 적어도 기원전 2200년경부터 미주에 도달했고, 기원후 5세기까지 정기적으로 왕래했다.” [《거의 퇴색된 기록(Pale Ink)》 참조.] 머츠 박사처럼 세상의 선두에 서서 생각하고 실천에 나선 학자 정신은 특히 귀중하다.
由上述可知,對於前哥倫布時期美洲與古代中國的研究而言,中國豐富的典籍的確是無窮的寶藏,中、外學者以往的研究,已經取得了豐碩的成果。我們堅信,中外學者今後從中還會有新的發現,還會取得更大的成功!
위 내용을 종합하면, 콜럼버스 이전 시기의 미주와 고대 중국의 관계 연구에 있어, 중국의 방대한 고전 문헌은 실로 무궁무진한 보물 창고라 할 수 있다. 중국과 세계 학자들이 지금까지 쌓아 온 연구는 이미 많은 성과를 거뒀고, 앞으로도 새로운 발견과 더 큰 성공이 이어질 것임을 굳게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