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인학. [칼럼] 제도 혁신 없이 한국경제의 미래는 없다. 재계 인사이트. 2016.10.5.
지난 9월 28일, 김영란법이란 이름으로 그동안 논란이 많았던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 금지법이 발효되었다. 바로 그날, 기획재정부는 2016년 세계경제포럼(WEF) 국가경쟁력 평가결과를 분석한 자료를 배포하였다. WEF 평가에 의하면, 한국의 국가경쟁력 종합순위는 조사대상 138개국 중 26위로 재작년, 작년에 이어 정체된 상태이며, 국가경쟁력을 제고하려면 노동 등 구조개혁과 산업개혁 지속 추진 및 성과 확산을 위한 조속한 입법조치가 긴요하다는 것이 정부가 발표한 내용의 요지였다.
비리와 부패는 법치주의와 자본주의를 해치는 주범
김영란법이 발효되던 날, 2016년 WEF 보고서가 발표된 것은 아귀가 잘 맞아 떨어지는 느낌이다. WEF 보고서는 공공부문을 중심으로 한국 사회 전반에 비리와 부패가 만연해있다고 평가하고 있는데, 이를 바로잡겠다는 것이 김영란법의 취지이다. 부패와 비리는 법치주의와 경제발전, 이 두 가지를 해치는 주범이므로 당연히 척결되어야 한다. 김영란법이 그 계기가 된다면 국가의 미래를 위해 그만한 다행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공직자의 부패를 막겠다는 당초의 법안취지와 달리 국회의 입법과정에서 언론인, 사립학교 교직원 등으로 적용대상을 확대한 것, 그리고 합법과 불법의 경계를 사전에 알기 어려운 점 등으로 인해 동법의 실효성과 부작용에 대한 논란이 있었고, 이는 앞으로도 끊이지 않을 전망이다.
한편, WEF 연례 보고서를 중앙정부 차원에서 분석하고 그 의미를 언론에 홍보했다는 점은 흥미로운 부분이다. 다보스포럼으로 더 유명한 WEF는 일찍이 1979년부터 세계 각국의 국가경쟁력을 평가, 순위를 매겨왔던 국제민간기구이다. 1995년까지는 스위스 로잔에 위치한 국제경영개발원(IMD)과 함께 국가경쟁력을 평가했다. 그러다 1996년부터 IMD가 세계경쟁력지수(World Competitiveness Index)를 별도로 발표하면서 두 기구는 갈라섰다. 그리고WEF는 성장경쟁력(Growth Competitiveness Index) 및 기업경쟁력(Business Competitiveness Index)으로 이원화하여 평가해오던 것을 2006년부터는 국제경쟁력지수(Global Competitiveness Index)로 통합 개편하면서 지금 같은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GCI 조사항목은 약 115개 내외이며, 이 중 70% 이상이 평가 대상국의 CEO를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자료이다. 예를 들어 2016년 한국 관련 설문조사는 국내 파트너 기관인 KDI를 통해서 금년 4~5월 중에 국내 대·중소기업 CEO 100명을 대상으로 실시되었다.
비생산적인 지대추구활동을 부추기는 공공제도 부문의 개혁이 관건
이렇듯 민간 주도하에 대부분을 설문에 의존해서 평가한 것에 대해 중앙정부가 검토하고 보도자료를 내는 경우는 다른 나라에서는 보기 힘든 경우일 것이다. 이런 대응이 문제라는 뜻은 아니다. 과거를 돌아보면 WEF 외에도 IMD 세계 경쟁력 순위, 세계은행의 기업환경지수가 발표될 때마다 국내에서는 조사항목과 평가방식의 한계를 감안하지 않은 채 결과를 과도하게 해석하는 경우가 없지 않았다. 따라서 조사방식의 특징과 한계를 이해하고 조사결과를 객관적으로 해석, 전달하면 불필요한 논쟁의 불씨를 예방하는 효과가 있을 것이다. 또한 정부 차원의 검토 과정에서 우리의 상대적 약점에 대해 타산지석(他山之石)의 교훈을 얻을 수 있다면 올바른 정책방향을 잡는 데 도움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기왕에 정부 차원에서 이들 국가경쟁력 지표를 활용하려 한다면, 그 이면의 논리구조를 확실하게 이해할 필요가 있다. WEF 국가경쟁력 평가는 한 마디로 ‘경제성장은 경제제도의 경쟁력에 좌우된다’는 전제를 깔고 있다. 많은 이들은 경제성장이 인적 자본(노동력), 물적 자본(투자), 지적 자본(기술)의 양과 질에 좌우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근본을 따져보면 이들 생산요소는 경제성장과 동행하는 변수이거나 결과이지, 근본적 결정원인은 아니다. 인적·물적·지적자본에 얼마나 어떻게 투자할지, 시장경쟁에 참여할지 아니면 규제지대 추구로 우회할지 등등 개인과 기업의 경제활동의지와 방향에 영향을 미치는 핵심 변수는 따로 있다. 경제게임의 규칙인 제도야말로 기업가정신의 질과 총량을 결정하는 근본요인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WEF 국가경쟁력 지표를 다시 보면, 한국의 제도수준은 평가대상 138개국 중 69위로 한참 뒤처져 있다. OECD 35개 회원국만 놓고 보면 한국의 제도경쟁력은 27위로 하위권이다. 절대적 수준으로는 OECD 평균이 4.8점인데 우리는 3.9점에 불과하다. 특히 공공제도 16개 항목 중에 정책결정 투명성(115위), 정부규제 부담(105위), 정치인 신뢰(96위), 공무원 의사결정의 편파성(82위) 등은 참혹한 수준이다. 더 나아가 공공제도의 열악함은 민간제도의 효율성에도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제도 전반이 생산적 경제활동보다는 각 부문에서 지대추구활동을 부추기는 형국이다. 이 상태로는 한국경제의 회생은 물론 미래를 기약할 수 없다. 행정부를 비롯한 입법부, 사법부는 힘을 합쳐 더 늦기 전에 불합리하고 비효율적인 제도의 개혁에 나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