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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아 컨센서스 2차 콜로키엄]

  • 주제: 근대성의 한계와 새로운 시각의 필요성 + 세계화에 대한 담론
  • 참석자: 김병국, 손동현, 윤순봉, 이정우
  • 일시: 2006년 11월 13일 (월) 오후 5시
  • 장소: EAI 회의실
  • 정리: 송문희(EAI)

콜로키엄 정리자료_text 9p


[요약] 달라지는 미래사회와 새로운 시각의 필요성

[토론 1] 근대성의 한계와 새로운 시각의 필요성

[토론 2] 세계화에 대한 담론


[요약] 달라지는 미래사회와 새로운 시각의 필요성

1. 근대이성의 한계와 새로운 시각의 필요성

1) 근대인의 자연관, 인간관과 ‘이성만능주의’의 오만

근대인은 인간을 합리적 이성을 지닌 존재로 보고 자연을 인과결정의 관계로 파악했다. 그러나 이성의 완전무결함만을 내세워 이성과 합리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다고 믿는 인간의 오만이 문제를 낳게 되었다. 인간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과학기술의 끝없는 확장이 환경오염과 자원고갈이라는 문제를 낳기 시작했다.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인간’을 전제로 했던 형식적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는 점차 정치적, 경제적 불평등과 함께 인간소외의 문제를 야기시켰다.

2) 새로운 시각의 필요성
  • 근대 이성 비판? 이것이 반(反)이성 비(非)이성을 의미하는가?

근대 이성주의로 인해 한계에 부딪혔다면 과연 어디서 해법을 찾을 것인가? 이성 이외에 다른 방법이 있는가?

‘죄수의 딜레마’의 경우처럼 이성적인 인간의 합리적 선택이 비합리적인 결과를 낳는 것은 ‘이성’에 결함이 있기 때문이 아니라 ‘제도’와 ‘구조’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이성적인 개인이 ‘context(情況)’을 모두 파악할 수 있는 상태에서 판단을 할 수 있다면 자기욕구를 스스로 조절하여 합리적 선택을 내릴 수 있다. 그러므로 이를 가능하게 하는 ‘institution(제도)’을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나 제도를 만드는 정치의 영역에서 ‘비용과 혜택의 분배 구조간에 존재하는 부조화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난제를 안고 있다.

  • 탈현대 사상

이성과 감성, 합리와 직관은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상호보완적인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간 감성과 직관의 영역 등은 경시되었다. 비이성주의, 비과학주의, 감성주의, 해체주의, 유기체적 사상이 근대성의 한계를 극복하는 대안으로 부각되고 있다.

  • ‘유연하고 섬세한 이성’의 필요성

근대 이성의 한계를 지적하는 것이 곧 반(反)이성의 옹호를 뜻하는 것은 아니다. 이성에 질식 당하지 않기 위해서 삶의 생명력을 풀어야 한다는 의미이다. 우리의 직관, 감성에 잘 조응할 수 있는, 보다 유연하고 섬세한 이성이 필요하다.

  • 단절적 변화와 bottom-up approach의 필요성

앞으로 다가올 세상은 예고 없이 그리고 단절적으로 생기는 변화의 모습을 보여주게 될 것이다. 이런 변화의 모습을 파악하는 데는 위가 아래를 지배한다는 기존의 top-down 방식보다 bottom-up approach가 유용하다. 왜냐하면 bottom에서의 변화조짐들이 ‘self-organization’을 거침으로써 새로운 ‘창발(創發)’이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2. 세계화에 대한 담론

1) 세계화와 문화적 경계

세계화라는 것은 바로 ‘인류의 보편사가 실현되는 것’을 의미한다. 세계화의 한계가 존재하는가와 만약 한계가 존재한다면 어떤 영역이 세계화의 경계지점이 될 것인가에 대한 분석이 필요하다. 보편성과 특수성의 문제가 있기에 모든 영역을 획일화시키려는 것은 문제이다. 세계화가 가능한 영역이 있고(과학, 기술, 산업, 경제 분야) 그렇지 못한 분야(문화, 종교, 예술)가 있기 때문이다.

2) governance의 위기

시장이 팽창함에 따라 세계는 단일경제권화 되어가고 있다. 반면에 정보화와 세계화가 진전되면서 지식, 생산, 정보에 대한 국가권력이 분산되고 국가차원의 통제력은 점점 약해지고 있다. 국가(nation state)와 시장간의 부조화 문제를 누가 조정할 것인가? 이런 governance의 위기를 어떻게 타파할 것인가? 인류의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해서는 “섬세한 이성을 통한 욕망의 절제”가 인류보편적 가치로 뿌리 내려야 할 것이다. 정치적으로는 “엄청난 권력(power)”만이 이것을 가능하게 할 것이다. 이러한 제도를 어떻게 만들어 낼 것인가?

3) 달라지는 미래사회와 가치관의 변화

인간이 추구하는 가치관은 무엇인가? 달라지는 미래사회에는 어떤 가치관의 변화가 있을 것인가? 세계정부가 만들어지더라도 과연 이것이 인류의 행복을 보장해 줄 수 있는가? 앞으로는 국가의 위상변화와 함께 정치와 사회를 바라보는 기존 시각에도 변화가 있을 것이다.

<키워드>

‘이성만능주의’의 오만, 죄수의 딜레마, institution(제도),‘비용과 혜택의 분배 구조간에 존재하는 부조화 문제’, 탈현대 사상, ‘유연하고 섬세한 이성’, bottom-up approach, ‘self-organization’,‘창발(創發)’, 세계화와 문화적 경계, governance의 위기


[토론 1] 근대성의 한계와 새로운 시각의 필요성

1. 근대 이성(理性)의 한계와 새로운 시각의 필요성: 근대성의 문제가 무엇이었나? (손동현)

(1) 근대인의 자연관, 인간관과 근대성의 문제

근대인은 인간을 합리적 이성을 지닌 존재로 보고 자연을 인과결정의 관계로 파악했다. 이성적 개인들이 대등적 관계로 맺은 사회계약이 민주주의의 기본이 되고 개인의 자유주의에 근거해 자본주의가 발달했다. 자연을 법칙적으로 정립시키려는 합리적 사유의 성과가 과학을 낳았다. 그러나 인간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과학기술의 끝없는 확장이 환경오염과 자원고갈이라는 문제를 낳기 시작했다. 근대인은 사회를 개인의 자유를 토대로 한 이익 조정의 장으로 보았으나 오히려 불평등과 인간소외를 야기시켜 “이성의 야만”을 드러냈다.

(2) 새로운 세기의 사상사적 기조: 탈현대 사상

20세기 초부터 극단적인 자유주의와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이 시작되면서 개인주의에 대한 보완으로 공동체주의가 등장했다. John Rawls의 “정의론(正義論)”을 기폭제로 사회정의의 기본 출발점을 어떻게 정할 것인지에 대한 논쟁이 시작되었다.

같은 맥락에서 탈현대 사상의 등장도 이해될 수 있다. 탈현대 사상은 새로운 시각으로 인간과 사회, 국가를 보기 시작했다. 새로운 시대의 사상적 기조의 변화는 비이성주의, 비과학주의, 감성주의, 해체주의, 유기체적 사상을 그 특징으로 한다. 카오스, 복잡계 등의 현대 물리학 이론과 요소환원적인 생명과학에서 벗어난 생태학적 관점의 현대 생물학 이론이 새로이 주목받고 있다.

현 시대가 맞고 있는 문제는 지난 세기의 성과에서 비롯된 것이다. 따라서 근대성이 낳은 문제에 대한 응답이 바로 새로운 시대를 여는 key가 될 것이다. 새로운 세기의 사상을 구성하게 될 요소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한다.

2. 이성과 과학이 파국의 원인인가? 근대 이성 비판? 이것이 반(反)이성 비(非)이성을 의미하는가?

(1) ‘이성만능주의’의 오만 (윤순봉)

20세기 이전을 특징짓는 단어가 ‘기계적, 유물적, reductionism, 서양적, 이성, 합리’였다면 20세기 이후는 ‘유기체적, 유심적, holism, 동양적, 감성, 직관’이라는 단어가 화두가 되고 있다. 그런데 이성과 감성, 합리와 직관은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상호보완적이다. 문제는 이성의 완전무결함만을 내세워 이성과 합리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다고 믿는 인간의 오만에 있다. 이성만으로 풀 수 있는 문제는 현실세계에서 1%도 안 될 것이다. 그간 경시되었던 직관(intuition)과 감성의 영역을 더 부각시킬 필요가 있다.

기술과 과학의 발전은 어떤 형태로 어디까지 갈 것인가? 이에 대한 인간의 적응능력은 어디까지 따라갈 수 있을까? 과학이 파국의 원인인가, 아니면 해결의 단초인가?

(2) ‘유연하고 섬세한 이성’의 필요성 (손동현)

근대 이성의 한계를 지적하는 것이 곧 반(反)이성의 옹호를 뜻하는 것은 아니다. 이성에 질식 당하지 않기 위해서 삶의 생명력을 풀어야 한다는 의미이다. 도끼로 깨는 이성이 아니라 면도날로 자르는 이성 즉, 보다 유연하고 섬세한 이성이 필요하다. 유연하고 섬세한 이성이라야 우리의 직관, 감성에 잘 조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원래 인간은 사유와 감각이 융합된 유일한 존재인데 과학의 발달로 인해 이제는 기계가 인간의 감성적 작용까지도 수행할 수 있는 단계에 왔다. 비이성적인 영역까지 과학기술의 산물이 동참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과학의 발전이 인간의 행복을 해칠 위험은 없는가? 인간이 이를 어디까지 제어할 수 있을 것인가? 인간의 욕구는 계속적으로 충족되어야만 하는 것인가, 아니면 욕망의 절제가 필요한 것인가? 인간의 욕구가 무한히 충족되어야만 하는 근대성의 논리로는 생존자체가 불가능해 질 수도 있다.

(3) ‘이성’이 아닌 ‘제도’와 ‘구조’의 문제? (김병국)

근대 이성주의로 인해 한계에 부딪혔다면 과연 어디서 해법을 찾을 것인가? 이성 이외에 다른 방법이 있는가? 비과학주의적, 감성주의적, 해체주의적, 유기체적 사상이 근대사상을 극복하려는 전략이라면, ‘이성’은 문제해결에 더 이상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인가? 과학은 세상을 엄청나게 바꿔놓고 있다. 이것은 중단시킬 수 없는 대세이며 이에 따라 사회논리가 달라지고 있다. 인류가 당면하고 있는 문제점들을 해결하는데 있어 과학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가? 과학이 문제해결에 도움이 되는 방법은 없는가?

왜 이성적인 인간의 합리적 선택이 비합리적인 결과를 낳는가? 이성에 결함이 있기 때문이 아니라 제도와 구조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닌가? 사회과학은 이성을 믿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인간은 이성적 존재이고 합리적 이성을 통해 해결책을 찾을 수 있다. 그러나 인간은 ‘죄수의 딜레마’라는 구조적인 제약하에 놓여있기 때문에 큰 시야를 갖고 전체를 관망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이러한 구조적 제약의 포로가 된 개인은 스스로 합리적이라고 믿는 선택을 하지만, 결국 개인과 구성원 모두에게 비합리적인 결과가 된다. 이성적인 개인이 구조와 상황을 다 파악할 수 있는 상태에서 판단을 할 수 있다면 자기욕구를 스스로 조절하여 합리적 선택을 내릴 수 있다. 그러므로 문제는“이성”이 아니라 ‘context(情況)’와 ‘institution(제도)’에 있는 것이다.

문제해결을 위해서는 ‘제도’를 만드는 정치의 영역에서 ‘비용과 혜택의 분배 구조간에 존재하는 부조화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그러나 혜택은 장기적이고 분산되어 있는 반면, 비용은 단기적이고 집중되어 있기 때문에 비용지불자의 반발로 인해 문제해결은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중국이 자원과 환경을 고려하는, 지속 가능한 성장전략으로 나갈 수 있도록 유도하기 위해서는 세계협력의 구조적 틀을 새로 짜야 한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도 단기적 이익에 치중하는 정치권력과 ‘비용과 혜택의 분배구조상의 부조화’라는 문제 때문에 악순환은 반복될 가능성이 있다.

(4) 초점이 필요 (이정우)

너무 원리적, 철학적 논쟁에 매몰되지 말고 세계화, 정보화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과학기술, 환경, 에너지 문제라는 프리즘을 통해 새로운 문명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혀나가야 한다.

3. edge of chaos(혼돈의 가장자리)와 emergence(創發) (윤순봉)

(1) 과학과 진리

과학자들에게 진리란 ‘그 시대의 공통된 합의 내지는 편견’일 뿐이다. 진실과 과학은 다른 것이다. 우리가 지금 옳다고 생각하는 것이 다음 시대에는 진리가 아닐 수도 있다. 열린 시각과 자세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2) 혼돈의 가장자리(edge of chaos) → 자기조직화(self-organization) → 창발(emergence)

‘혼돈의 가장자리’에서 일어나는 ‘자기 조직화’는 ‘엔트로피(entropy)’를 파괴하는 이론이다. ‘자기조직화’를 통해 ‘창발(emergence)’가 일어나면 인과론적 추론의 범위를 벗어나는 새로운 질서가 형성된다.

(3) 단절적 변화와 bottom-up approach의 필요성

2020년 세상이 어떻게 바뀔 것인가? 새로운 agenda는 무엇이 될 것인가? 우리는 이에 어떻게 적응할 것인가? 이런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위가 아래를, 그리고 큰 것이 작은 것을 지배한다는 기존의 top-down 방식의 approach에서 벗어나야 한다. 예고 없이 그리고 단절적으로 일어나는 변화의 모습을 파악하는 데는 bottom-up approach가 유용하다. 왜냐하면 bottom에서의 변화조짐들이 self-organization을 거쳐 새로운 ‘창발(創發)’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예: 예상치 못했던 동구권의 해체와 고르바초프 현상, 2002년 월드컵과 붉은 악마 신드롬)


[토론 2] 세계화에 대한 담론

1. 세계화와 문화적 경계 (손동현)

Kant는 보편사로서 인류의 역사에 관한 이념을 제시했다. 세계화라는 것은 바로 ‘인류의 보편사가 실현되는 것’을 의미한다. 누구에 의한 세계화인가? 세계화를 어떻게 보아야 할 것인가? 바람직한 세계화의 모습은 어떤 것일까? 세계화의 한계는 어떤 지점이 될 것인가? 인류 보편사의 의미와 내용에 대한 탐구가 필요하다.

보편성과 특수성의 문제가 있기에 모든 영역을 획일화시키려는 것은 문제이다. 세계화가 가능한 영역이 있고(과학, 기술, 산업, 경제 분야) 그렇지 못한 분야(문화, 종교, 예술)가 있기 때문이다. 세계화에 의해 지식 및 기술과 관련된 분배상의 불평등문제는 더 커질 것이다. 지금의 세계화는 ‘자본’과 ‘지식’을 수단으로 이성의 물결을 끌고 가고 있는데 이것은 바람직한 것인가?

2. governance의 위기 (김병국)

웨스트팔리아(Westphalia) 이후의 근대국가는 여전히 건재한 반면, 시장이 팽창함에 따라 세계는 단일경제권화 되어가고 있다. 정보화와 세계화가 진전되면서 지식, 생산, 정보에 대한 국가권력이 분산되면서 국가차원의 통제력도 점점 약해지고 있다. 국가(nation state)와 시장간의 부조화 문제를 누가 조정할 것인가? 이런 governance의 위기를 어떻게 타파할 것인가?

근대에는 혁명과 전쟁을 통해 권력이 교체됨으로써 권력의 성격이 변화해왔다. 미래에도 그 시대에 가장 큰 권력을 갖고 있는 국가나 조직의 선택이 중요할 것이다. 미국과 중국이 충돌할 경우 출구가 마련되어 있지 않다면 결국 공멸(共滅)의 길로 갈 위험이 있다. 이를 막기 위한 세계협력의 틀을 누가, 왜, 어떻게 만들 것인가? 인류의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해서는 “섬세한 이성을 통한 욕망의 절제”가 인류보편적 가치로 뿌리 내려야 할 것이다. 정치적으로는 “엄청난 권력(power)”만이 이것을 가능하게 할 것이다.

3. 달라지는 미래사회와 가치관의 변화 (윤순봉)

인간이 추구하는 가치관은 무엇인가? 오로지 ‘돈과 명예와 권력’뿐인가? 달라지는 세상에서는 가치관에 어떤 변화가 일어날 것인가? 세계화와 지역화, 문화의 보편성과 특수성 사이에 존재하는 벽을 어떻게 해체할 것인가? 세계정부가 만들어지더라도 과연 이것이 인류의 행복을 보장해줄 수 있는가? 앞으로는 국가의 위상변화와 함께 정치와 사회를 바라보는 기존 시각에도 변화가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