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순봉. 2만불에 대한 오해와 진실 7가지. 2003.2.28.
목차
1) 마의 1만불 현상은 왜 일어나는가?
2) 경제성장과 정치적 자유의 관계
3) 경제적 자유와 경제성장의 관계
4) 정치적 자유와 경제성장의 관계
5) 민주주의가 경제성장에 긍정적인 영향
6) 민주주의가 경제성장에 부정적인 영향
7) 양자를 포괄하는 배로의 주장
1) 영국 블레어 정권의 우경화
2) 독일 슈뢰더 정권의 ‘아젠다 2010’
1) 자본증가세가 둔화
2) 노동증가세도 둔화
3) 생산성 향상 추세도 답보
제6장. 우리도 2010년에 2만불이 되면 선진국인가?
- 제논의 패러독스
- 국민소득에서도 제논의 패러독스가 작동한다
- 선진국의 하한선은 2010년에 2만5천불, 2015년에 3만불
- 미국의 2만불 달성 수준까지 가려면 매년 14.6% 성장해야
글을 쓰며
이 글은 지난 여름부터 쓰기 시작했다. 당시 세간의 화두는 단연 2만불이었다.
SERI에서 연구조정실장을 맡고 있던 터라 여기저기서 2만불에 대한 보고서가 언제 나오느냐 전화가 왔다. 정부나 학계에서도 관심이 많았고 여러 언론들도 앞다투어 2만불 특집 기사를 냈다. 이에 부화뇌동하여 필자도 시골장터의 장돌뱅이처럼 2만불을 외치고 다녔다. 그러다가 가을부터 정치권에서 몰아닥친 거센 폭풍으로 인해 2만불에 대한 관심은 세인들의 머릿속에서 신기하리만큼 하루아침에 사라졌다. 하지만 SERI에서는 꾸준히 2만불에 대한 연구를 진행했고 새해 들어 신년특집으로 천여 쪽을 넘는 보고서를 냈다. 한 달 만에 SERI의 인터넷 홈페이지를 통해 10만 명 이상이 해당 보고서를 다운로드 받았고 다시 2만불에 대한 관심이 점차 고조되고 있다. 그래서 필자도 그간 내버려두었던 이 글을 다시 쓰기 시작했고 두 달 지난 이제야 탈고를 한다.
하고픈 이야기를 한마디로 압축하라면, 2만불은 호떡집에 불난 것처럼 급히 구워낼 수 없다는 것이다. 동치미를 담아 오랫동안 땅에 묻어 익히듯 지그시 참고 발효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2만불은 한순간 스쳐 지나가는 캠페인이나 슬로건으로 소모하기에는 너무나 아까운 주제다. 일단 남용하거나 오용하면 세인들은 식상해 할 것이고 다시 쳐다보지 않을 것이다. 2만불이라는 화두는 가슴 속에 소중히 품고 고이 키워가야 할 우리의 소망이자 꿈이다. 하지만 시작도 하기 전에 벌써 2만불에 대하여 많은 착각과 오해가 일고 있다. 저마다 자기 입맛에 맞게 2만불을 각색한다. 그 양태도 다양하다.
우선 첫 번째, 일부 국민은 벌써 우리가 2만불이 된 양 착각한다. 벌 만큼 벌었으니 이제는 나눠 갖자고 한다. 실직자들은 모르겠고 일단 직장을 차지한 기득권자들부터 잘살아야겠다 한다. 명품점 세일은 인파로 메워지고 공항에는 출국을 기다리는 골프채가 넘쳐난다. 로데오 거리에 나서면 겉보기에 우리는 벌써 2만불을 넘어 3만불의 선진국 반열에 들어선 듯 하다. 과연 우리는 지금 어디 서 있나?
두 번째, 혹자는 그냥 내버려두어도 언젠가 우리도 2만불이 될 수 있다 한다. 물론 경제위기가 재발하지 않는다면야 적당히 성장하고 해마다 물가가 올라갈 터이니 언젠가 2만불이 될 텐데 왜 난리냐는 식이다. 큰 착각이다. 우리 앞에는 마(魔)의 1만불이라는 가벼이 넘을 수 없는 높은 장벽이 가로막고 있다. 앞서간 선진국 모두가 마의 1만불을 힘겹게 넘었고 우리를 비롯한 대만, 스페인, 그리스 같은 나라는 마의 1만불에 가로막혀 고전하고 있다.
일찍이 선진국 반열까지 갔던 ‘남미의 진주’ 아르헨티나는 그 벽에 가로막혀 아예 후진국으로 전락했다. 우리는 왜 여기 멈춰 있나?
세 번째, 어떤 논객은 이제 우리도 박정희 시절의 개발독재에서나 가능한 고도성장의 망상을 떨쳐버릴 때라고 한다. 또 다른 논객은 분배와 성장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을 수 있다고 한다. 분배를 잘 하면 성장이 저절로 따라 온다고 강변한다. 한때 유럽을 풍미했던 사민주의를 거론하면서 이제는 그들처럼 우리도 분배에 신경을 써야 진정한 선진국으로 갈 수 있다 한다. 성장과 분배는 상충(trade-off) 관계이며 이제는 분배 쪽의 손을 들어주자는 것이다. 정말 우리는 그만 성장해도 되는가?
네 번째, 고민깨나 한 사람들도 우리도 열심히만 한다면 2010년 정도에 2만불이 될 수 있다고 애드벌룬을 띄운다. 적당히 실질성장을 하고, 물가도 조금 올라가고, 환율이 적당히 내려가면 2만불은 그리 힘든 목표는 아니라고 한다. 정말 우리가 ‘잘’ 하면 2010년에 2만불로 갈 수 있는가?
다섯 번째, 그래도 아직 우리에게는 과거 압축성장기의 성장동력이 남아 있지 않느냐고 막연한 희망을 피력하는 사람들도 있다. 잠재성장률이 5.4% 수준이면 감지덕지하다고 한다. 진정 우리에게 성장잠재력이 남아 있는가?
여섯 번째, 혹자는 2010년까지 2만불로 갈 수 있다면 우리도 드디어 선진국 반열에 올라선다고 한다. 현재 우리 머릿속에 있는 2만불이라는 선진국 진입의 표상(表象)이 2010년에도 그대로 유효할 것인가?
마지막 일곱 번째, 사회 일각에서는 우리가 열심히 개혁만 하면 선진국이 될 수 있다 한다. 이미 개혁의 필연성은 전 국민이 절감하고 있다. 그렇다고 열심히 개혁만 하면 선진국으로 갈 수 있는가?
이러한 여러 가지 착각과 오해의 덫에서 벗어나지 않고서 우리는 결코 2만불로 갈 수 없다. 2만불로 가는 길이 그리 쉬운 일이라면 수많은 나라들이 마의 1만불에서 좌절했을 까닭이 없다. 이 글에서는 2만불과 관련해서 일고 있는 이러한 오해의 실체를 규명하고 무엇이 진실인지를 밝히고자 했다.[1] 물론 필자의 주장 그 자체가 오해일 여지도 있다. 그렇다 해도 최소한 이 글이 우리 사회에 무엇을 논쟁거리로 삼아야 할지 단초만이라도 던져줄 수 있다면 그것으로 만족이다.
끝으로 이 글은 필자가 속해 있는 SERI의 공식적인 견해와는 전혀 상관없으며 완전히 개인의 생각에 따라 썼다. 필자가 속해 있는 조직의 공식적인 견해는 SERI가 발간한 『2만불로 가는 길』이라는 보고서에 담겨 있다. 따라서 이 글에서 범하는 오류는 전부 필자의 귀책사유임을 미리 밝힌다. 꾸중하거나 지적할 일이 있으면 SERI 측이 아니라 필자에게 연락 바란다.
2003. 2. 28.
윤순봉
Executive Summary
- 우리는 지금 어디 서 있나?
- 오해: 우리는 OECD에도 가입했고 국민소득도 1만불을 넘었으며 OECD 랭킹도 24등이니 이미 선진국 반열에 들어섰다.
- 진실: 그래도 우리는 아직 선진국이 아니다.
- 이유: 선진국 반열에 들려면 국민소득이 OECD 30개국 중에서 19위는 되어야 하고 금액상으로 하한선이 2만불이다(이탈리아: 19위, 1999년 20,477불). 우리의 국민소득은 세계은행 기준으로 210개국 중에서 54등에 불과하다.
- 우리는 왜 여기 멈춰 있나?
- 오해: 그냥 있으면 언젠가 우리도 2만불로 갈 수 있다.
- 진실: 가만히 있는다고 2만불로 갈 수는 없다.
- 이유: 마의 1만불이라는 만국공통적인 현상 때문이다. 이는 소위 ‘혼돈의 가장자리(edge of chaos)’로서 선진국으로 도약하든지 아니면 개도국으로 다시 추락할 수 있는 변곡점이다. 우리의 미래는, 우리가 하기에 따라 달라지는 ‘선택적 미래’다.
- 우리는 왜 성장해야 하나?
- 오해: 성장과 분배는 상충(trade-off) 관계다.
- 진실: 성장과 분배는 상호보완(win-win) 관계다.
- 이유: 성장률이 높아지면 소득불균형이 해소되고, 반대로 성장률이 낮아지면 소득불균형은 악화된다. 우리가 경제성장을 해야 하는 이유는 소득불균형을 해소하고, 국가부채를 조기에 갚아야 하며, 고령사회에 대비하는 한편, 통일비용을 충당할 재원을 마련해야 하기 때문이다.
- 우리도 ‘잘’하면 2만불로 갈 수 있나?
- 오해: 우리도 ‘잘’하면 2010년에 2만불이 될 수 있다.
- 진실: 그냥 ‘잘’해서는 2010년에 2만불로 갈 수 없다.
- 이유: 역사상 7년 안에 1만불에서 2만불로 간 나라는 이탈리아와 일본 두 나라뿐이다. 이들 국가도 리라화와 엔화가 비정상적으로 평가절상되면서 단기간에 2만불까지 갔다. 진정 우리가 2010년에 2만불 달성을 원한다면 역사상 전례가 없는 새로운 변화를 보여주어야 한다.
- 우리의 저력은 어느 정도인가?
- 오해: 우리는 아직도 충분한 성장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 진실: 우리의 잠재성장률은 2003년 현재 5.4% 수준이며 향후 급락할 것이다.
- 이유: 자본과 노동의 증가율이 둔화되고 생산성 향상 속도가 떨어지면서 2004∼2010년에 잠재성장률은 4.0%, 2011~2016년에는 3.8%까지 하락할 것이다. 이 역시 현재 우리 경제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한다는 전제다. 지난 16년 동안 기록했던 성장률 7.0%의 57% 수준에 불과한 4.0%라는 성장률로 2만불에 도달하는 시점은 2015년이며 물가인상을 감안한 ‘진정한’ 2만불은 2031년에 달성된다.
- 우리도 2010년에 2만불이 되면 선진국인가?
- 오해: 우리도 2010년에 2만불이 되면 선진국에 진입한다.
- 진실: 2010년에 2만불을 달성해도 우리는 여전히 선진국 반열에 올라서지 못한다.
- 이유: 다른 선진국들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성장하기 때문에 선진국의 문턱은 2010년에 2만5천불, 2015년에 3만불로 높아진다. 따라서 2010년에 선진국이 되려면 매년 9.9%씩 성장해야 하고 이는 과거 개발독재시대의 성장률(10.4%)과 맞먹는다. 더욱이 미국이 2만불을 달성했던 1988년 수준까지 가려면 매년 14.6%씩 성장해야 한다.
-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나?
- 오해: 우리가 열심히 ‘개혁’만 하면 된다.
- 진실: 우리 모두 개혁의 필연성은 이미 절감한다. 이제는 무엇을 어떻게 개혁할 것인가 하는 ‘방향성’이 중요하다.
- 이유: 진정 선진국으로 가려면 인식의 차원을 달리해야 한다. 첫째, 패배의식에서 벗어나야 한다. 한국은 과거부터 내부적으로 큰 결함을 안고 있었고 그 결과는 외환위기로 귀결되었으며 따라서 과거 전통과 경로의존성을 완전히 무시하고 철저히 세계표준에 맞도록 나라 전체 틀을 뜯어 고쳐야 한다는 강박관념에서 벗어나야 한다. 경로의존성을 존중하고 핵심역량을 살려야 한다. 둘째, 미래 한국의 비전은 강대국(强大國)이 아니라 강소국(强小國)[2] 이다. 한국은 태생적으로 소국이므로 크고 강한 나라를 벤치마킹하기보다는 강소국들의 성공사례를 분석하여 우리의 역사와 현실에 맞는 전략을 수립하고 실천해가야 한다. 셋째, 다시 도약하기 위해서는 한민족 고유의 야성(野性)을 회복하고 도전정신을 일구어야 한다. 한번 실패해서 외환위기를 당했다고 영원히 후진국에 머물 수는 없는 일이다.
- 결어
2010년에 국민소득 2만불을 달성한다는 비전은 정말 상식적인 노력으로는 불가능에 가까운, 거의 달성하기 힘든 벅찬 과제다. 우리 모두가 각고의 노력을 해야 하고, 참아야 하고, 힘을 한데 모으는 가운데 국가 전 영역에서 전례를 찾을 수 없는 단절적인 변화를 이루어내야 한다. 하지만 일단 마의 1만불을 넘어설 수 있다면 머지않아 2만불도 달성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우선 ‘정치의 계절’을 ‘경제의 계절’로 바꾸어야 한다.
제1장. 우리는 지금 어디 서 있나?
오해: 우리는 OECD에도 가입했고 국민소득도 1만불을 넘었으며 OECD 랭킹도 24등이니 이미 선진국 반열에 들어섰다. 진실: 그래도 우리는 아직 선진국이 아니다. 이유: 선진국 반열에 들려면 국민소득이 OECD 30개국 중에서 19위는 되어야 하고 금액상으로 하한선이 2만불이다(이탈리아: 19위, 1999년 20,477불). 우리의 국민소득은 세계은행 기준으로 210개국 중에서 54등에 불과하다. |
1. OECD 가입과 맞바꾼 외환위기
한국은 1996년말 김영삼 정부 말기에 선진국 클럽으로 알려진 OECD에 가입했고 그 대가로 외환위기라는 값비싼 대가를 치렀다.
김영삼 정부는 세계화를 기치로 내걸고 과감하리만큼 문호를 개방했다. 특히 금융시장의 개방은 도가 넘었다. 덩샤오핑(鄧小平)이 “방 안이 더워 창문을 열면 시원한 바람도 들어오지만 덩달아 파리와 모기도 들어온다”라고 했듯이[3] 우리가 방충망도 치기 전에 온갖 벌레들이 들어왔다. 단기자금을 빌려서 장기투자에 쏟아부으면 유동성 부족으로 자칫 흑자도산할 수도 있다는 가능성도 잊은 채 종금사들은 해외단기 자금을 무한정 끌어다 댔고 정책당국은 실태파악조차 손 놓았다.
1999년 2월에 『뉴욕타임즈』지는 그때 상황을 상세히 기록하고 있다.[4]
“한국 등 아시아 국가의 금융위기에는 미국의 과도한 금융개방 압력도 한몫을 했다. 또 미국 정부의 금융개방 압력은 월스트리트 금융기관의 로비 때문이었다. 미국 정부가 특히 아시아를 겨냥해 금융자유화의 압력을 가했던 것은 미국의 은행과 증권회사들이 아시아 시장에서 잠재적인 금광(gold mine)을 보았기 때문이다. 한국의 OECD 가입 협상이 그 대표적인 예다. OECD 관계자들은 ‘미국 재무부는 한국이 금융시장을 개방하면 선진국 클럽인 OECD에 가입시켜 주겠다고 운을 뗐고 결국 여러 가지 우려에도 불구하고 보다 신속한 금융개방에 합의했다.”고 증언했다.
1996년 2월에 작성된 미국 재무부의 3쪽짜리 보고서에서도 한국의 채권시장 개방과 기업의 장단기 차입 허용, 주식시장 개방 확대 등을 언급하고 있다. 결국 미국은 한국의 OECD 가입을 시장개방에 이용하려는 목적을 분명히 가지고 있었다. 미국은 세계 금융시장 자유화 추진과정에서 한국을 주요 목표로 삼았고 OECD 가입을 전제로 한국의 시장개방을 요구했다.
그러나 한국은 법적 여건이나 자본시장 현대화가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시장개방 요구를 받아들이는 바람에 금융위기를 겪게 되었던 것이다. 미국은 칠레에 대한 개방 압력이 미국 의회의 신속처리법안 통과 반대로 무산된 직후 한국을 시장자유화의 매력적인 대상으로 생각했다. 1996년 6월 20일에 작성된 미국 재무부 비망록에 한국은 미국 재무부가 추구하는 시장자유화 우선대상국에 포함되어 있다.
미국은 한국 시장을 열기 위해 OECD를 이용했으며, 미국 재무부는 비망록에서 ‘이들 지역(아시아)이 미국 금융산업의 이해가 걸린 곳’이라고 밝혔다. 미국 정부의 한 고위관리는 ‘한국은 OECD에 가입하기 위해 당초 계획 이상의 시장을 개방하기로 합의했다. 한국 정부는 지나치게 빨리 시장을 개방하면 상당수 금융기관이 적응하지 못할 것을 알고 있었다.’고 말했다. 한국은 미국과의 합의에 따라 채권 및 주식시장, 단기차관 도입을 개방했다.
이에 한국 기업들은 외국의 단기자본시장에 접근함으로써 급작스런 자본 이탈이 있을 경우 패닉 상황에 처할 위험이 커져갔다. 한국은 장기자본시장을 묶어둔 채 쉽게 빠져나갈 수 있는 단기자본시장을 개방하는 잘못을 행했다. 미국은 자본이동 자유화를 진전시키는 내용을 IMF 강령으로 채택하도록 요구했고, IMF는 이를 수용했다. 미국의 이해를 대변하는 IMF 이사회는 1996년 7월에 금융시장을 개방한 한국과 인도네시아를 환영한다고 밝혔다.”
이러한 보도에 대해 『한겨레신문』의 정운영은 다음과 같이 코멘트한다.[5] “OECD 가입은 애초에 남의 장단에 맞춘 춤이었다. 선진국 명함이 그렇고, 세계화 구호가 그렇다. 졸속 개방으로 상당수의 금융기관이 쓰러질 줄 알았지만 한국 정부는 밀려드는 달러에 정신이 나갔고, 미국 정부는 자유화 설교로 그런 위험에 눈을 감게 만들었다. 1997년 11월에 돌발한 한국의 외환위기는 1996년 6월 미국 재무부의 금융자유화작전 메모에서 이미 예견된 것인지 모른다.”
2. 절름발이 세계화
월스트리트에서 발신된 세계화에 대한 주창은, 퓰리처상을 두 번이나 받은 『뉴욕타임즈』 기자인 토머스 프리드먼(Thomas L. Friedman)이라는 유대인이 『렉서스와 올리브나무』에서 설파했듯이,[6] 세상 모든 나라가 거스를 수 없는 도도한 시대적 흐름처럼 보였고 한국 정부도 이에 동승했다.
기실은 유대 자본이 주도하는 세계화가 절름발이라는 사실을 인식하지도 못한 채 선진국 클럽에 들어가려면 반드시 문을 열어젖혀야 되는 줄 알았다. 세계 제1차대전이 일어나기 전 한 시대를 풍미했던 세계화는 지금 유대 자본이 주장하는 세계화와는 격(格)을 달리한다. 당시 세계는 물적자본이나 상품은 물론 노동력까지 국경을 넘어 자유로이 유통되었다.
하지만 지금 팍스아메리카나(Pax-Americana) 아래서의 세계화는 미국이 강점을 가진 지식이나 상품 그리고 물적자본은 세계화의 틀 속에 들어 있지만 가장 중요한 생산요소이면서도 미국이 경쟁력에서 열세에 있는 저임금 노동자의 이동은 철저한 통제하에 있다. 특히 911 테러 이후에는 저임금 노동자가 미국 비자를 얻기란 바늘구멍에 들어가는 것보다 힘든 일이다. 더욱이 8백 년 전 칭기즈칸이 개막한 팍스몽골리카나(Pax-Mongolicana) 시대는 한 단계 더 격을 달리한다. 샤머니즘을 믿고 직접 제사장(祭司長)이 되었던 칭기즈칸은 인력 교류는 물론 종교의 자유까지 인정했다.[7]
하지만 작금의 팍스아메리카에서는 새뮤얼 헌팅턴(Samuel Huntington)의 『문명의 충돌』[8] 을 굳이 인용하지 않더라도 911 테러로부터, 오사마 빈라덴과 탈레반 정권에 대한 미국의 공격, 그리고 얼마 전 끝난 이라크 전쟁에 이르는 일련의 사태가 이슬람 원리주의자와 기독교 원리주의자 사이에 벌어진 종교적 충돌이라는 주장도 상당한 힘을 얻고 있는 게 현실이다.
어쨌든 이러한 절름발이 세계화만이 한민족이 재도약할 수 있는 길이라고 믿었던 대가는 우리에게 외환위기라는 재앙으로 되돌아왔다. 당시 중국은 멋모르고 위안화를 대폭 평가절하했고 일본 역시 미국과 물밑 대화를 통하여 엔화를 평가절하하자 한국을 비롯한 주변 아시아 개도국의 수출제품은 하루아침에 가격경쟁력을 상실하고 이는 무역수지적자로 연결되었으며 결국 외환보유고 소진으로 귀결되었다. 확실한 물증은 없지만 짐작하건대, 당시 OECD 가입이라는 과제에 직면한 김영삼 정부로서는 위안화와 엔화의 평가절하에 맞추어 한국의 원화 역시 상당 수준으로 평가절하해야 우리 수출품의 가격경쟁력이 유지된다는 사실을 인식했을 것이다.
한편으로는 원화가 평가절하되면 국민소득 1만불 달성이라는 또 다른 치적이 날아가게 된다는 딜레마에 빠졌을 것이다. 숙고 후 내린 선택은 외환보유고가 설사 줄어든다 해도 소득 1만불 달성의 손을 들어주는 결정을 내렸을 것이다. 그리고 몇 개의 사이비 재벌이 무너지고 기아의 노사 간 야합이 겹치면서 결국은 외환위기가 터졌다.
당시 적절한 환율은 어느 수준이었을까? 약식으로 계산하면 <그림 1-1>처럼 1993년까지는 명목환율과 실질환율이 별 차이가 없었지만 1994~1996년에 명목환율이 적정 수준보다 6~14% 수준으로 고평가된 것으로 보인다.[9]
<그림 1-1> 외환위기 당시의 명목환율과 적정환율
3. 잃어버린 8년
1996년 3월 한국은행은 국민소득이 1995년에 처음으로 1만불을 넘었다고 발표한다. 두 달 뒤 어느 국책연구소는 “1인당 실질국민소득이 2020년에는 3만 2,020달러로 세계 32위에서 7위로 뛰어오를 것”이라는 장밋빛 청사진도 내놓는다. 1996년 12월에는 OECD에 가입했다. 그리고 국민은 마치 우리가 선진국으로 진입한 양 환각과 환청 상태에 빠져들었다.
1960년대 한국의 국민소득은 필리핀의 30% 수준이었는데 당시 모두들 필리핀을 따라잡기 어렵다고 했지만 이제 한국은 필리핀보다 10배나 잘살게 되었다는 자긍심이 넘쳐났다. 20세기 들어 동양의 후진국 중에서 유일하게 선진국으로 도약한 나라가 일본이었는데 드디어 우리 한국도 선진국 반열에 올라섰다는 자만심에 젖어 들었다. 일본은 이미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세계에서 가장 큰 항공모함과 가장 빠른 프로펠러 비행기를 만들 정도의 기술력을 갖추었던 반면 우리는 고작 설탕이나 만들던, 그것도 일본으로부터 기술을 빌려오던 수준에서 두 세대가 채 지나기도 전에 선진으로 도약했다는 흥분에 휩싸였다.
이러한 성공의 함정(trap of success)은 부메랑처럼 외환위기로 되돌아왔다. 지난 10년간 일본이 ‘잃어버린 10년(lost decade)’의 악몽을 겪었듯이, 한국에서도 ‘잃어버린 8년’이 시작되었다. 8년 동안 1995년에 비해 명목국민소득은 단 1달러도 늘어나지 않았고 실질국민소득은 오히려 2천 달러 가까이 줄었다.
알고 보니 OECD는 선진국만의 클럽은 아니었다. 물론 1961년 9월 창설 당시에 영국을 위시한 유럽 18개국[10]과 미국, 캐나다 등 20개국이 참가했으며, 선진국 클럽의 성격을 갖고 있었다. 그 후 일본(1964년), 핀란드(1969년), 호주(1971년), 뉴질랜드(1973년)가 가입했다. 하지만 최근 들어 멕시코(1994년) 같은 중진국과 체코(1995년), 헝가리(1996년), 폴란드(1996년) 등 체제전환국들이 참가하면서 선진국 클럽이라는 성격은 변모되었다.[11]
<표 1-1> 1996년 한국 가입 당시의 OECD 회원국
따라서 1996년에 한국이 OECD에 가입했다는 자체로 선진국에 진입했다는 생각은 아전인수(我田引水)격 자화자찬(自畵自讚)이었다. 어쨌든 지난 8년간 우리는 성공의 덫에 걸려 엄청난 고생을 했다. 1989년 5천불에서 1995년 1만불을 돌파할 때까지 한국 경제는 연평균 7.7%씩 성장했지만 이후 1996~2002년까지는 연평균 4.5% 성장에 그쳤다. 어쨌든 아직도 외환위기의 후유증은 한국 사회 곳곳에 잠재되어 잔존하고 있지만 겉보기에는 IMF로부터 빌린 빚도 다 갚았고 경제성장률도 플러스 숫자로 돌아섰으며 외환보유고도 충분할 정도로 쌓았다. 1995년에 10,823불이었던 국민소득도 1998년에 6,744불까지 추락했다가 2002년에 10,013불로 회복되면서 명목적으로는 1만불 고지에 재진입했다. 현재는 OECD 30개국 중에서는 국민소득 랭킹이 24위 수준이다.
4. 선진국의 하한선은 2만불
소득 1만불이면 선진국인가? 아니라면 선진국의 기준은 무엇인가? 선진국의 기준에 대해서는 국제적인 성문법이 없다. 판례법이 있을 뿐이다. 유추할 수 있는 몇 가지 잣대를 놓고 주관적으로 판단할 수밖에 없다. 우선 가장 확실한 잣대부터 살펴보자.
그룹(group)의 약자인 소위 ‘G-’로 시작되는 명칭이나 국가 간 모임에 속한 나라가 대개 선진국에 포함된다는 데는 큰 이견이 없다. 예컨대 비공식적으로 사용되는 G2는,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경제 거인(巨人)인 미국과 일본이 상호경제협력을 촉진한다는 차원에서 1986년에 만들어진 용어다. G5는 자유진영의 5대 거대선진국이 경제정책을 조정협의하기 위해 1985년 9월 22일에 발족되었다. 여기에는 G2에 프랑스, 독일, 영국이 가세한다. G7은 G5와 함께 1985년 9월 22일에 회원국 간 경제협력을 촉진하기 위하여 발족되었는데 G5에 캐나다와 이탈리아가 더해진다. 시기적으로는 가장 이른 1975년 10월에 발족된 G8은 국제경제연합회의에서 경제협력을 촉진하기 위해 만들어졌는데 회원국은 G8에 공산국가인 러시아가 포함된다.[12] 소위 ‘파리 클럽(Paris Club)’으로 더 잘 알려진 G10은 IMF에 출자금을 많이 낸 부국(富國)들로서 비공식적으로 모여 IMF와 관련된 주요한 의사결정을 내린다. 회원국은 G7에 벨기에, 네덜란드, 스웨덴이 더해진다. 1984년 4월부터 스위스가 참가하여 실제로 11개국이 되었지만 이름은 여전히 G10으로 쓰고 있으며 BIS, EU, IMF, OECD가 비(非)국가구성원으로 참가한다. 이렇게 보면 ‘G-’ 시리즈에 포함되는 미국, 일본, 독일, 프랑스, 영국, 이탈리아, 캐나다, 벨기에, 네덜란드, 스웨덴, 스위스 등 11개 나라가 선진국이라는 데는 별 이견이 없다.[13]
다음 잣대는 ‘개발(develop)’이다. 이미 ‘개발된(developed)’ 국가는 선진국이고 ‘개발 중(developing)’인 국가는 개발도상국(開發途上國家)으로 대개 중진국이다. DCs라는 약칭을 쓰는 개발국가(Developed Countries)에는 OECD 가입국과 버뮤다, 이스라엘, 남아공, 유럽 도시국가들이 포함된다. 또 개발국가에 대해 ‘제1세계(The First World), 고소득국가(High-Income Countries), 북반구산업국(The North Industrial Countries)’이라는 명칭을 사용하기도 한다.
개발도상국(Developing Countries)이라는 용어는 IMF가 많이 사용하는데, IMF는 세계 여러 나라를 선진경제권(Advanced Economies), 체제전환국(Countries In Transition), 개발도상국(Developing Country)의 세 가지로 나눈다. 선진경제권은 바로 선진국이고, 체제전환국은 과거 공산주의체제에서 지금은 자본주의체제로 넘어온 국가를 말한다. IMF 통계자료에 따르면 개발도상국은 아프가니스탄부터 짐바브웨에 이르기까지 126개국이 포함된다.
주목할 것은 1997년 5월에 IMF가 내놓은 『세계경제전망』보고서다.[14] 여기서 IMF는 그간 ‘개발도상국’으로 분류했던 한국을 ‘선진경제권’으로 격상시켰다. IMF는 선진경제권을 ‘주요 산업국(Major Industrial Countries)’과 ‘기타 선진경제권(Other Advanced Economies)’으로 구분하는데, 주요 산업국에는 미국, 일본, 독일, 프랑스, 영국, 이탈리아, 캐나다 등 G7 국가가 포함되며, 기타 선진경제권에는 그리스, 홍콩, 이스라엘, 뉴질랜드, 스페인, 스웨덴 그리고 한국이 들어간다.[15] IMF는 한국을 기타 선진경제권에 포함한 이유를 다음과 같이 밝힌다.
“홍콩, 한국, 싱가포르, 대만 등 여러 아시아의 ‘신진산업화경제권(Newly Industrialized Economies)’과 이스라엘 등 전통적인 산업국가를 함께 묶었다. 이러한 재분류는 이 나라들의 경제발전이 선진 단계에 진입했음을 반영한 것이다. 실제로 이들 나라는 1인당 국민소득에서나 제대로 발전된 금융시장과 수준 높은 금융기관, 그리고 서비스 부문이 급속히 성장하는 등 주요산업국의 특징을 공유하고 있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한국은 1997년 초 선진경제권에 포함되었지만 그해 11월 외환위기가 일어나고 국민소득이 급감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IMF의 결정은 다소 성급했다.
한편 세계은행의 분류기준으로 보면, 한국은 ‘고소득 국가군’에 속하지만 랭킹은 세계 54위에 불과하다. 세계은행은 1인당 국민소득을 GNI(국민총소득) 기준으로 발표하는데 755불에 미달하면 저소득 국가, 756∼2,995불이면 중하위소득 국가, 2,996∼9,265불이면 중상위소득 국가, 9,266불 이상이면 고소득 국가로 분류한다. 이 기준으로 보면 한국은 고소득 국가의 끝자락에서 위치하며 1만불 선상에서 슬로베니아나 바레인 같은 나라와 몇 년째 엎치락뒤치락 순위 경쟁을 하고 있다.
그래도 가장 비중을 두어야 할 잣대가 OECD 기준으로 보인다. 지금이야 변질되었지만 OECD는 과거에 선진국 클럽이었기 때문이다.
중언하면 OECD는 1961년 설립 당시 세계에서 가장 잘 살았던 유럽 18개국을 중심으로 기구를 만들면서 경제 강국인 미국과 캐나다가 곁다리 붙었으므로 유럽국가 중 일부는 선진국 범주에서 벗어날 수도 있다. 현재(2001년) 기준으로 보면 OECD 국가 중 상위 19개국 정도가 선진국이라는 데 대해서는 큰 이견이 없을 것 같다.
하한선은 17위 프랑스(21,678불), 18위 호주(18,940불), 19위 이탈리아(18,849불) 정도다. 호주와 이탈리아가 2001년에는 일시적으로 2만불 아래로 떨어졌지만 호주는 2000년까지, 이탈리아는 1999년까지 장기간 2만불 이상을 유지해왔다. 20위 스페인(14,482불)과 21위인 뉴질랜드(13,136불)의 위상은 애매하다.[16]
22위부터는 선진국이라 하기에 낯간지럽다. 22위 그리스(10,712불), 23위 포르투갈(10,685불), 24위 한국(9,024불)[17] 등이 뒤에서 상술하겠지만 소위 ‘1만불의 벽’에 부딪혀 고생하는 국가로서 선진국으로 진입할 가능성이 불투명한 나라들이다. 만일 마의 1만불 벽을 슬기롭게 극복하면 선진국으로 자리매김할 것이지만 전망은 그리 낙관적이지 않다. 랭킹 24위인 한국의 국민소득이 10,013불인데 비하여 바로 아래인 25위 멕시코의 소득은 6,227불(2001년)로 뚝 떨어진다. 따라서 멕시코 이하의 국가를 중진국 또는 개발도상국으로 부르는 데는 별 이견이 없다.
이상 여러 잣대를 종합할 때, 선진국 반열에 들려면 국민소득 순위로 세계 19위권 정도는 들어야 하며, 달러 기준으로 하한선은 대개 2만불 정도라 할 수 있다. 룩셈부르크가 44,757불로 국민소득이 가장 높고 선진 19개국은 평균하면 25,774불이다. 한국은 선진국 평균의 39% 수준에 불과하다.
요컨대 한국이 1996년 OECD에 가입했고 2002년에 1만불로 재진입했다고 해서 선진국일 수는 없다. 선진국이 되려면 최소 2만불, OECD 순위로는 19등은 되어야 한다.
그러면 OECD 20~24위권에 있는 스페인, 뉴질랜드, 그리스, 포르투갈, 한국 같은 나라가 선진국이 아니라면, 중진국 또는 개발도상국에 포함되는가? 그도 아니라면 20~24위권 국가의 실체는 과연 무엇인가? 복잡계 이론(science of complexity)에 비추어 보면, 이들은 혼돈의 가장자리(edge of chaos)에 빠져 있는 나라들이다. 이 책에서는 이러한 혼돈의 가장자리를 ‘마의 1만불’이라고 부를 것이다.
제2장. 우리는 왜 여기 멈춰 있나?
오해: 그냥 있으면 언젠가 우리도 2만불로 갈 수 있다. 진실: 가만히 있는다고 2만불로 갈 수는 없다. 이유: 마의 1만불이라는 만국공통적인 현상 때문이다. 이는 소위 ‘혼돈의 가장자리(edge of chaos)’로서 선진국으로 도약하든지 아니면 개도국으로 다시 추락할 수 있는 변곡점이다. 우리의 미래는, 우리가 하기에 따라 달라지는 ‘선택적 미래’다. |
1. 혼돈의 가장자리
1만불대에서 정체되어 있는 그리스, 포르투갈, 한국은 ‘마의 1만불’이라는 덫에 걸렸다. 복잡계 이론(science of complexity)으로 해석하면 ‘혼돈의 가장자리(edge of chaos)’에 빠졌다.
혼돈(混沌, chaos)이란 무엇인가? 흔히 과학자들은 혼돈스러운 것보다는 명확하고 뚜렷한 것을 선호한다. 혼돈스럽다는 것은 현재 일어나고 있는 현상을 설명할 수도, 미래를 짐작하게 할 수도 없기 때문에 과학자들과는 체질적으로 어울리지 않는다. 예컨대 데카르트(Rene Descartes) 같은 합리주의자에게는 기하학처럼 ‘명확하고 뚜렷한’ 지식체계를 세우는 것이 이상이었다.
‘명확’하다는 것은 어떤 개념이 다른 개념과 구분된다는 뜻이며 ‘뚜렷’하다는 것은 그 개념을 합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다는 의미다.[18] 따라서 ‘명확’하기 위해서 개념을 ‘분류’하고 ‘뚜렷’하기 위해서 개념을 ‘정의’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혼돈이란 <그림 2-1>처럼 개념상으로는 확실하게 구분되지만 그 개념을 합리적인 논리로 정의하기 힘든 것을 말한다. 즉 명확하지만 뚜렷하지 않은 것이 바로 혼돈이다.
가령 모나리자 그림을 예로 들어보자. 대부분의 사람은 모나리자 같이 예쁜 여자와 못생긴 여자를 한눈에 구분한다. 모나리자가 예쁘다는 것은 ‘명확’하다. 그런데 사람들에게 모나리자가 왜 예쁜지를 설명하라고 하면 대부분 머뭇거린다. 이유를 설명할 수 없지만 직관적으로 그냥 예쁘다는 것이다. 바로 이런 경우가 ‘명확하지만 혼돈스러운’ 영역이다.
<그림 2-1> 혼돈의 개념
그러면 기업 CEO의 의사결정 과정은 과학의 영역에 가까운가? 아니면 예술의 영역에 가까운가? 물론 두 가지가 혼재되어 있지만 굳이 택일하라면 과학보다는 오히려 예술의 영역에 가까울 것이다. 대개 현대의 기업 CEO는 정교한 첨단 분석기법을 활용하여 의사결정을 수행한다고 여긴다. 특히 정보시대, 컴퓨터 시대가 진전될수록 이런 경향은 더욱 커질 것이다. 경영자는 수많은 정보시스템, 데이터베이스, 전문적인 분석가에게 둘러싸여 있으며 수많은 분석 정보가 경영자의 데스크로 전송되고 경영자는 전문가의 자문이나 첨단 분석기법을 통하여 보다 정확한 의사결정을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물론 이런 생각이 전적으로 잘못되었다고는 할 수 없다. 과거 헨리 포드(Henry Ford)나 알프레드 슬론(Alfred Pritchard Sloan Jr.) 같은 역사적 CEO들과 오늘날의 CEO들을 비교해볼 때 정보 원천의 다양성이나 취급하는 정보량은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커졌다. 나폴레옹 시대만 해도 기업가들은 봉화를 통해서 이웃나라의 상황을 파악했다. 이에 비해 현대 세계는 온갖 통신수단이 육해공을 뒤덮고 있으며 전 세계 곳곳의 정보가 실시간으로 전송된다. 또한 이런 정보는 체계적으로 정리되고 데이터베이스에 축적되어 언제 어디서나 손쉽게 검색할 수 있다. 또 수많은 전자문서, 통계패키지의 개발로 대규모의 회귀분석, 시계열분석을 몇 초 안에 수행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모든 분석수단의 개발에도 불구하고 경영자의 의사결정은 그렇게 분석적이지 않다. 뛰어난 경영자일수록 감성과 직관, 그리고 상상력에 의존한다.
헨리 민츠버그(Henry Mintzberg)는 경영자들의 하루 일과를 실증적으로 분석한 연구를 수행한 결과 경영자들이 실제로는 그다지 분석적으로 활동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경영자들은 얼핏 보기에 무질서하고 단속적이며 비체계적으로 일하고 있었고 치밀하고 정교한 분석보다는 마음속의 잡동사니 정보에 더욱 의존하고 있었던 것이다.[19] 요컨대 노련한 CEO는 의사결정을 내릴 때 정교한 데이터나 분석에 의존하기보다는 혼란스럽고 복잡다기한 여러 가지 변수를 종합한 후에 암묵적인 감(感)이나 직관(直觀)에 의존하는 경향이 강하다는 것이다. 논리적으로 정확하게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무엇이 좋은 것이고 무엇이 나쁜 것인지는 감각적으로 안다. CEO의 의사결정 역시 명확하지만 혼돈스런 영역이자 경영의 예술적인 영역이다. 이처럼 혼돈스런 영역에 도전하는 시도가 혼돈이론(混沌理論, chaos theory)이며 복잡성의 과학(science of complexity)이자 직관경영(直觀經營, management by intuition)[20] 이다.
이러한 혼돈의 가장자리(edge of chaos)에서는 단절적인 변화가 일어난다. 무생물에서 새로운 생명체가 태어나기도 하고 물이 얼음으로 바뀌기도 한다.
1953년 5월 15일 『사이언스』지에는 시카고대학교의 해럴드 유리(Harold Urey) 교수의 박사과정 학생인 스탠리 밀러(Stanley Miller)가 쓴 2쪽짜리 논문이 실린다. 원시 바닷물이라 생각되는 물과 원시 대기라 생각되는 수소, 암모니아, 메탄가스의 혼합물을 밀폐된 용기에 넣어 6만 볼트의 고압전기로 방전을 일으켜 작은 번개를 만들었더니 생명체를 구성하는 기본물질인 글리신, 알라닌, 아스파르트산, 글루탐산 같은 네 가지의 아미노산이 합성되었다는 것이다. 원시 생명의 기원을 설명하는 유명한 ‘유리-밀러 실험’이다. 여기서 번개가 치는 그 상황이 바로 혼돈의 가장자리다.
액체인 물이 0℃를 통과하면 갑자기 고체인 얼음으로 바뀌고 100℃를 통과하면 수증기라는 기체로 바뀐다. 물리학에서는 이를 상전이(相轉移, phase transition)라 한다. 여기서 섭씨 0℃와 100℃ 지점이 혼돈의 가장자리다. 물의 온도가 99℃에서 1℃로 낮아진다고 해서 물이 얼음이라는 고체를 향해 점진적으로 밀도가 높아지는 것이 아니라 0℃가 되어야 상전이가 일어난다.[21] 역으로 물의 온도가 1℃에서 99℃까지 간다 해도 물에서 기체의 조짐을 찾을 수 없으며 100℃를 통과해야 상전이가 일어난다.
물이 수증기가 되는 과정을 자세히 보자. 바닥이 넓은 냄비에 찬물을 담고 데우기 시작하면 처음에는 아무런 변화를 인지할 수 없다. 어느 정도 온도가 올라가면 전도현상이 생기는데, 이는 바닥에 있는 뜨거운 기운이 위에 있는 찬물로 전달되는 과정이다. 물의 온도가 좀 더 올라가서 전도현상만으로는 온도가 전달되지 않게 되면 대류현상이 생긴다. 뜨거운 물이 위로 올라가고 찬물이 아래로 내려온다. 그러다가 물이 거의 100℃ 상황에 이르면 냄비 바닥에서는 이제껏 볼 수 없었던 신기한 모양의 육각형 구조가 생긴다.[22] 연이어 육각형 구조에서 수증기가 만들어져 하늘로 날아감으로써 상전이가 종결된다.
좀 골치 아픈 이야기지만 1977년에 노벨 화학상을 받은 벨기에의 물리학자인 일리야 프리고진(Ilya Prigogine)의 말을 빌면, 처음에는 정해진 범위 내에서 동요가 일어나다가 나중에는 동요의 범위를 이탈하게 되고, 그 혼돈의 가장자리에서 자기 조직화하는 산일구조 또는 무산구조가 생긴다는 것이다.[23]
이처럼 우리는 사회과학이나 자연과학을 막론하고 단절적인 변화가 일어나는 과정에서 흔히 혼돈의 가장자리를 목격할 수 있다.
역시 노벨 수상자이자 독일 막스 플랑크 물리화학연구소장인 만프레드 아이겐(M. Eigen)에 따르면, 효소가 모이고 모여서 그 숫자가 임계치(critical mass)에 도달하면 효소 집단은 스스로 효소를 합성할 수 있는 창발성이 생긴다.[24] 여기서 임계치에 도달한 지점이 바로 혼돈의 가장자리다.[25]
사회혁명이 일어나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처음에는 권력이나 부의 편중을 비롯한 여러 가지 사회적 불균형에 불만을 가진 극소수의 사람만이 자기 마음속에 있는 불만을 밖으로 드러낸다. 하지만 주위에는 자신의 처지에 만족하는 사람이 많기 때문에 그 불만은 크게 확산되지 않고 별 파장 없이 조용히 사라지며 사회는 다시 균형상태로 돌아간다. 그러나 불만의 요인이 사라지지 않고 커지게 되면, 보다 많은 사람이 불만을 표출하고 데모로 이어진다. 그래도 여전히 본질적인 변화가 없을 때는 사회의 질서가 붕괴되는 혁명이 일어나게 되고 사회조직은 과거와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재구성되는 것이다. 대표적인 예가 로마의 노예반란이나 프랑스 혁명인데, 여기서 혁명 직전 상태가 혼돈의 가장자리다.
인류학자인 클로드 레비 스트로스(Claude Lévi Strauss)는 사회현상에 열역학적인 개념을 도입하여 사회가 가진 에너지의 양에 따라 차가운 사회와 뜨거운 사회로 나누었다. 차가운 사회는 엔트로피가 적게 배출되고 기존의 상태를 그대로 유지하려는 경향이 크다. 반면 뜨거운 사회는 사회 내부의 불균형이 에너지로 작용하여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가는 경향이 크다는 것이다.[26]
문화의 변천 단계도 혼돈의 가장자리를 거친다. 앤서니 월리스(Anthony Wallace)는 그의 비교문화연구에서 문화의 변천단계를 ‘안정 상태, 문화적 왜곡, 재활성화 및 재구축, 변화, 정착화’라는 단계로 나누어 설명한다.[27] 여기서 ‘문화적 왜곡, 재활성화 및 재구축의 단계’가 혼돈의 가장자리에 해당한다.
토머스 쿤(Thomas Kuhn)이 주장한 ‘패러다임의 대전환’ 역시 혼돈의 가장자리에서 일어난다.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패러다임이라는 개념은 쿤의 명저인 『과학혁명의 구조』에서 처음 나온다.[28] 그는 과학적 탐구를 공동체적 활동으로 파악하고 이를 두 가지 이질적인 활동으로 나누었다. 정상과학(normal science)과 과학혁명(scientific revolution)이다. 정상과학이란 동일한 패러다임을 공유하는 과학자 공동체가 행하는 과학적 탐구 활동을 말한다.
반면 과학혁명은 패러다임이 교체되는 과정으로서 과학발전이 한 시대의 세계관(패러다임)에서 다른 세계관으로 바뀌는 혁명적인 과정이다. 과학혁명은 바로 한 패러다임 내의 과학이 모순으로 혼돈의 가장자리에 빠져들다가 마침내 혁명적인 과학자에 의해 직관을 통해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예컨대 ‘코페르니쿠스적 대전환’은 당대의 천동설을 뒤엎은 지동설의 개가이자 패러다임의 대전환이다.
조직혁신 과정에서도 혼돈의 가장자리가 생긴다. 소규모의 조직에서 점진적인 변화가 일어날 때는 조직 내부에 큰 혼란 없이 변화가 마무리된다. 아미르 레비(Amir Levy)는 이를 일차적 변화라 부른다. 하지만 대규모 조직이 혁신적인 변화를 시도할 때는 대개 시행착오를 겪게 되고 패러다임 전환(paradigm shift)을 위한 창조적인 파괴 과정이자 혼돈의 가장자리에 빠져든다. 레비는 여기에 ‘이차적 변화(second-order change)’라는 이름을 붙였다.[29] 이차적 변화란, 단편적인 개선 수준을 넘어서 조직의 패러다임 자체가 바뀔 정도로 광범위하고 다차원적인 변화를 말한다.
이처럼 우리가 살아가는 일상생활 주변에서도 부지불식간 혼돈의 가장자리가 생기며 그 과정에서 새로운 질서가 탄생한다.
2. 혼돈의 가장자리에 서 있는 한국
현재 우리 한국은 혼돈의 가장자리에 서 있다. 혼돈의 가장자리를 도표로 그리면 변곡점(變曲點, point of inflection)이 생긴다. ‘변곡점’이란 곡선의 기울기가 변한다는 의미다.
하기에 따라서 곡선의 기울기가 가팔라져 고도성장을 할 수도 있지만, 자칫 기울기가 낮아져 저성장의 함정에 빠질 수도 있다. ‘하기에 따라서’라는 말은 미래는 우리의 선택에 달렸다는 뜻에서 ‘선택적 미래’라고 할 수 있다. 현재 우리의 선택에 따라 선진국으로 갈 수도, 후진국으로 전락할 수도 있는 것이다.
이헌재 전 재경부장관은 2003년 1월말 『조선일보』와 가진 간담회에서 “한국에 1만 달러는 ‘마(魔)의 선(線)’과 같다”는 견해를 피력한다. “우리 경제가 기력(氣力)이 빠져나가는 고비를 맞고 있는데, 영원한 중진국이란 없는 법이다. 계속 성장해 선진국으로 올라 붙든지, 아니면 어느 순간 가라앉아 후진국으로 내려앉든지. 동서고금 역사에서 줄곧 중진국을 즐긴 예는 없었다. 한국에 남은 시간은 4~5년 정도다. 그때까지 ‘1만 달러의 덫’을 탈출해 치고 올라가지 못하면 후진국 쪽으로 떨어질 운명이다.” 이와 유사하게 조선일보의 박정훈 차장은 1만 달러라는 숫자는 이론으로 설명하기 힘든 주술(呪術) 같은 효력을 지녔다고 표현한다.[30]
서울대 송병락 교수의 비유가 가슴에 와 닿는다. “과거 시골에서는 ‘아들이 고시에 합격하면 아버지가 일찍 죽는다’는 말이 있었다. 자랑하느라 술독에 빠져 건강을 잃는다는 뜻이다. 한국은 짧은 기간에 급성장하다 보니 국민의식이 경제 수준을 못 따라간 느낌이다. 나라 전체가 혼돈에 빠져 있다. 상식적으로 노동자라고 하면 ‘집도 절도 없이’ 노동을 팔아 어렵게 사는 사람을 말한다. 현실은 어떤가? 좋은 집에 좋은 차를 갖고 있고 해외도 마음대로 드나드는 사람이 스스로를 노동자라고 자처한다. 심지어 대학교수마저 노동자라고 한다.”[31]
어쨌든 현재 우리나라는 변곡점에서 곡선의 기울기가 급속히 침하 중이다. 사회 전체가 주술에 걸린 것처럼 마의 1만불이라는 함정에 빠졌다.
우선 경제 측면을 보자. 1997년 말에 외환위기가 일어나고 한국 경제는 전 부문에 걸쳐 각고의 구조조정을 한다고 했지만 오히려 경제기초(fundamental)가 약화되면서 ‘코리아 디스카운트(Korea Discount)’가 지속되고 있다. 또한 본의든 아니든 세계화의 급진전으로 한국 경제는 외풍(外風)에 민감해지고 경제의 불안정성도 증폭되었다. 시장이 안팎으로 열리고 외국 자본이 자유로이 넘나들면서 한국의 대외의존도는 1995년 61.9%에서 2002년에는 90.5%로 확대되었다. 경기 변동폭도 5.70%로 외환위기 이전의 1.54%와 비교해서 3.7배 확대되었다. 외환위기 이후 추진된 일련의 시스템 개혁이 본질은 거의 변화가 없는 남귤북지(南橘北枳)[32]에 그치면서 한국 고유의 최대장점인 기업가정신(entrepreneurship)도 크게 훼손되었다. 해외에서 한국 경제의 위상을 보여 주는 환율도 1만불 달성 이후 38.4% 평가절하되었다. 원/달러 평균환율은 1995년에 771.04원이었지만 이제는 1,200원대를 오르내린다. 무디스(Moody’s)가 평가한 국가신용등급도 외환위기 이전 수준을 밑돈다.
경제 측면만 보아도 상황이 이럴진대 한국 사회 전체는 우리가 선진국에 진입했다는 착시현상이 만연되어 있다. 1만불은 생활의 기본조건인 의식주(衣食住) 중에서 의식(衣食)은 어느 정도 해결된 수준이다. 가계비 중에서 식품비가 차지하는 비중을 표시하는 엥겔계수가 선진국 수준인 26.3% 수준이니 먹고 사는 데는 큰 지장이 없다. 하지만 삶의 질이나 삶의 방식은 중진국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사람이 잠자고 생활하는 주택의 자가보유율은 54.2%로 일본의 1만불 시대인 62.4% 보다 훨씬 낮다. 주택난이 심각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부동산이 곧잘 문제의 핵으로 부각된다. 또한 가계비 중에서 교육비가 11%나 차지하여 일본의 2.6%보다 4배나 높다.[33]
기업경영 환경은 더욱 심각하다. 외환위기 이후에 정부는 일부 사회단체와 협력 하에 월스트리트의 신자유주의 방식을 도입한다고 표방했지만 가장 근본적인 기업의 자유도는 오히려 악화되었다. 유럽대륙식 경제체제에서는 이해관계자(stakeholder)의 이익을 존중하므로 기업의 사회적 책무를 강조하지만, 월스트리트식 앵글로색슨 방식에서는 주주(shareholder)의 이익을 중시하므로 기업의 자유도를 넓혀가야 한다. 하지만 지난 몇 년간 기업경영에 관련된 규제는 더욱 늘어나고 급기야 헤리티지(Heritage)연구소는 한국을 1995년 이후 경제자유도가 가장 많이 하락한 10개국에 포함시킬 지경에까지 이르렀다.[34]
인적자원에 대한 개발도 답보 상태를 면치 못하고 있다. 유엔개발계획(UNDP)이 내는 『인간개발보고서(Human Development Report)』 에 따르면 175개국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인간개발지수(HDI, Human Development Index)도 최근 수년간 27~30위권 수준에 머물러 있다.[35]
사회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박정희 대통령 시절 이후 배불리 먹고 살기 위해 억제되어왔던 분배 욕구가 한꺼번에 터져 나온다. 사회적 참여가 강조되는 맥락에서 정부와 기업에 대한 기대 심리가 높아지면서 저마다 제 몫을 찾겠다고 집단시위와 노사분규를 일삼는다. 사회적 이해관계는 집단이기주의를 통해서 해결될 수 있다는 인식이 상식화되었고 노사분규는 선진국과 비교하여 대형화되고 장기화되며 더욱 과격해지고 있다.
우리의 노사관계는 IMD의 2003년 세계경쟁력 연감에 따르면 인구가 2천만 명 이상인 30개 경제권 가운데 가장 적대적이다.[36] 한국은 근로자 1천 명당 노사분규로 인한 근로손실일수(勤勞損失日數)가 144.1일로서 일본(0.7일), 미국(15.5일), 영국(20.3일) 등과 현격한 차이를 보인다.
겨우 1만불을 부자 된 양 착각하여 경제발전의 밑거름이 되었던 근면성과 높은 저축률과 같은 덕목이 급격히 퇴보했다. 민간저축률은 1988년에 GDP 대비 32.8%로 최고 수준을 보인 후 2001년에는 17.6%까지 급락했다. 건전한 소비의식이나 소비행태가 정착되지 못하여 버는 것 이상으로 무분별하게 소비하면서 가계 빚이 감당할 수 없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신용불량자가 372만 명에 이르고 가계부채는 GDP의 70%를 넘은 지 이미 오래다.[37] 그 결과 기업의 설비투자는 줄어들 수밖에 없다. 설비투자율[38]이 1995년에 14.9%에서 2000년에 12.9%, 2002년에 10.7%로 급강하했다. 미래를 대비해서 미리 투자를 하지 않는다면 우리에게는 미래가 없다.
정치사회적으로는 분배욕구가 높아지면서 인기영합주의의 조짐까지 보인다. 분배 논쟁이 치열해지는 와중에 보수 진영과 진보 진영 사이에서는 이데올로기 충돌도 일어난다. 이념 간, 계층 간, 지역 간, 세대 간의 갈등이 확산되면서 사회통합력이 급속히 약화되고 있다.
이처럼 정치, 경제, 사회, 기업 전 부분이 마의 1만불 함정으로 빠져들고 있다. 혼돈의 가장자리에서 곡선의 기울기는 변곡점에서 급속히 하향곡선을 그리고 있다.
우리의 ‘잃어버린 8년’은 일본의 고전(苦戰)과는 성격을 달리한다. 일본은 이미 1968년 이케다(池田勇人) 수상 시절에 독일을 누르고 세계 제2의 경제대국으로 부상한 후 지금 ‘잃어버린 10년’의 고통을 겪고 있지만 여전히 세계 중심부(中心部)의 위상을 지키면서 1990년 중반 이후 거의 매년 1천억 달러 이상의 경상수지 흑자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은 외환위기 당시나 지금이나 여전히 세계경제의 변방(邊方)일 뿐이다. 일본의 생산제조기술은 여전히 세계 최고 수준이다. 와세다대학교의 이홍무 교수는 “일본의 국내경제 지표만 보고 더 이상 일본에서 배울 게 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지나친 단견이다. IT만 해도 게임이나 정부 정보화와 같은 일부 소프트웨어는 한국이 나을지 몰라도, 하드웨어나 인프라에서는 한국이 아직 멀었다.”고 단언한다.[39] 일본의 국가경쟁력은 세계 10위권 밖으로 밀려났지만 기업의 R&D와 독창력은 여전히 세계 2~3위이며 일본의 미국 특허건수도 미국에 이어 부동의 2위를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은 생산기술은 물론 주요 기계장비나 핵심부품, 소재까지 일본에서 들여와야 생산이 가능하다. 다만 일본은 내수시장과 소비심리 위축이 문제의 핵이다. 이시형 박사는 일본의 경제 회복이 더딘 이유를 ‘거지 망상(妄想)’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일본인들은 미래가 불안하면 돈을 안 쓴다. 일본 예금 잔고의 절반을 65세 이상 고령층이 갖고 있는데 이들이 지갑을 닫고 있다.”[40] 하지만 1억 2천만 명에 달하는 내수시장이 기지개를 펴기만 한다면 과거의 영광을 되찾기란 그리 힘들어 보이지 않는다. 우리의 일그러진 모습을 일본에 투영하여 자위(自慰)하기에는 우리의 사정이 너무 절박하다.
3. 마의 1만불은 만국공통적인 현상
그렇다면 이러한 마의 1만불은 한국에서만 일어나는 특수한 현상인가? 그렇지는 않다. 만국공통적인 현상이다.
쿠웨이트나 사우디 같은 산유국은 석유자원을 바탕으로 1970년대 중반에 1만불에 진입했고 쿠웨이트와 아랍에미리트 같은 산유국은 한때 2만불을 넘어 선진국으로 진입했지만 오일쇼크 이후 1만불대로 추락했다.
<그림 2-2> 주요국의 1만불 달성 시기
1980년대 중반에는 아시아의 네 마리 용(四龍, 한국, 대만, 싱가포르, 홍콩)이 제조업을 기반으로 1만불에 진입했지만 마의 1만불이라는 벽에 가로막혀 거의 10년째 좌절하고 있다. 일찍이 OECD에 가입한 국가 중에서도 그리스, 뉴질랜드, 포르투갈, 스페인은 1만불 선상에서 장기간 정체상태에 빠져 있다.
몇몇 나라는 오히려 후진국으로 전락했다. 예컨대 ‘남미의 진주’로 불리던 아르헨티나는 20세기 초반까지 미국, 영국, 프랑스에 이어 세계 4위의 부국(富國)이었다. 세계 3대 곡창지대인 팜파스 대평원이라는 천혜의 자연환경을 바탕으로 영국으로부터는 수입품목에 대해 무관세 혜택을 받았고 대규모 이민정책을 통해 풍부한 노동력을 확보했다. 하지만 1920년대 들어 구미국가들이 농업보호 정책을 펼치고 특히 세계대공황 당시 영국이 블록화 정책을 전개하자 농산물의 수출이 급감하면서 경제난에 빠졌다. 1945년 10월에는 페론(Juan Peron) 정권이 들어서고 인기영합적인 정책을 펼치자 경제는 최악의 상황에 봉착하고 1954년 페론 정권은 붕괴한다. 지속된 만성적인 하이퍼 인플레이션과 페소화의 가치 등락으로 국민소득이 1979년에 3,893불, 1980년에 7,402불, 1982년에 2,897불로 등락을 거듭했다. 1982년에는 포클랜드 분쟁, 멕시코 디폴트 선언, 국제적 고금리, 1차 산품 가격하락 같은 대외적인 악재가 겹치면서 금융위기, 통화위기, 자본도피, 대외채무위기 등 ‘잃어버린 10년’이라는 침체기를 겪었다. 1989년에 메넴(Carlos Menem) 정부가 들어선 후 급격한 개방정책 부작용과 무분별한 정부지출에 따라 공공부채의 과다 문제가 불거져 2001년 12월에는 다시 채무 디폴트를 선언했다.
현재 선진경제를 구가하고 있는 국가들도 마찬가지로 마의 1만불에서 좌절했다. 미국, 일본, 독일, 영국 같은 나라는 튼튼한 제조업을 기반으로 대개 1970~1980년대에 현재의 1만불 수준을 달성했지만[41] 1970년대에 있었던 오일쇼크로 수년간 스태그플레이션이라는 정체기를 경험했다. 당시 이 나라들은 대외환경이 급변하는데도 불구하고 대내적으로 노사 대립, 사회복지 욕구 분출 때문에 경쟁력이 급속히 악화되었다. 예컨대 네덜란드나 영국은 경제위기에 봉착하여 스스로 ‘네덜란드 병(病)’과 ‘영국 병(病)’에 걸렸다고 자가 진단한 바 있으며 일본과 핀란드는 1980년대 중반 이후부터 경제 내부에 버블이 생기면서 심각한 경제불황에 빠졌다. 하지만 두 나라는 혼돈의 가장자리를 슬기롭게 극복함으로써 선진국이 되었다. 이 모두 ‘선택적 미래’인 것이다.
OECD 선진 19개국의 경우를 보자. 이들 나라 중에서 큰 문제없이 무난히 성장세를 유지한 나라는 <그림 2-3>처럼 미국뿐이다. 캐나다와 이탈리아도 2만불 고비는 무난히 넘었지만 2만불대에서 소위 마의 2만불을 경험하고 있다. 캐나다는 1989년에 2만불을 넘어선 후 1993년에 다시 1만9천불대로 떨어졌다가 1996년에 2만불로 재진입했다. 7년간 마의 2만불을 경험한 것이다. 이탈리아는 1991년에 2만불을 달성한 후 1992년에 21,657불까지 갔다가 국민소득이 점차 하락하여 2001년에는 18,849불까지 떨어졌다. 이탈리아 역시 10년째 마의 2만불을 경험하고 있다.
<그림 2-3> 미국, 캐나다, 이탈리아의 국민소득 성장 추이
나머지 16개국은 <그림 2-4>처럼 모두 1만불~1만5천불 사이에서 마의 1만불을 경험했다. 그중에서 아일랜드, 스위스, 아이슬란드, 노르웨이, 스웨덴 등 5개국은 1만5천불대에서 국민소득이 등락하는 정체기를 맞았다가 2~5년 후에 다시 성장세를 회복했다.
일본은 1983년 1만불에서 1987년 2만불까지 최단기인 6년 만에 돌파했지만 1만5천불로 가는 데 5년이 걸렸으며 그 후 1년 만에 2만불을 넘었다. 여기에는 물론 1985년에 체결된 플라자 협정으로 일본 엔화가 급속히 평가절하된 탓도 있지만 그래도 상대적으로 1만불 직후에 마의 1만불 현상을 경험했다
<그림 2-4> 국민소득 1만~1만5천불대에서 정체한 국가들
<그림 2-5> 마의 1만불을 경험한 국가들(1): 일본 등
최장기간인 16년이 소요된 영국은 <그림 2-6>처럼 1980년 9,518불에서 1990년에 1만5천불을 넘는데 10년이 걸렸다. 1979년부터 1990년까지 수상을 맡았던 철의 여인 대처(Margaret Thatcher)가 강경노조와 맞서면서 영국의 국민소득은 과도기적 현상으로 1984년에 7,643불까지 하락한 후 노동문제가 해결되자 경제가 급성장하면서 1992년에 18,615불까지 갔다가 외환위기를 당해 다시 한번 출렁인 후 1996년에 겨우 2만불을 넘어섰다.
<그림 2-6> 마의 1만불을 경험한 국가들(2): 영국 등
전형적인 마의 1만불을 경험한 11개국은 <표 2-1>처럼 2만불까지 가는 데는 평균 11년이 걸렸지만 그 중에서 1만5천불까지는 7.9년이라는 장기간이 소요된 반면 1만5천불에서 2만불까지는 평균 3.1년이 걸렸다. 마의 1만불에서 2배 이상의 기간이 소요된 것이다. 국민소득 증가율도 1만5천불까지는 연평균 5.6%의 수준을 보였지만 그 이후 2만불까지는 두 배를 넘는 12.1%라는 높은 증가율을 보였다.
<표 2-1> 국민소득 1만5천불과 2만불 달성에 걸린 기간
1) 마의 1만불 현상은 왜 일어나는가?
마의 1만불이라는 현상의 실체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정치적 자유(민주주의)와 경제적 자유(시장경제) 그리고 경제성장(국민소득 증가)이라는 세 가지 요소 사이에서 일어나는 복잡다기한 연관 관계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결론부터 요약하면, 일단 경제가 성장하면 정치적 자유가 늘어나고(즉 민주화가 확산되고) 그로 인해 정부의 통제력이 줄어드는 반면 소득재분배와 같은 사회적 욕구가 분출되면서 경제성장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양자 간의 복잡한 관계를 세 가지로 나누어 살펴보자.
첫 번째, 경제성장과 정치적 자유의 관계다. 경제가 성장하면 정치적 자유가 늘어나고 민주화가 진전된다는 데는 큰 이견이 없으며, 우리는 이러한 현상을 직접 목격했다. 박정희 시대에 여러 차례에 걸친 경제개발계획이 주효하면서 한국 경제는 급성장했고 삶의 질이 어느 정도 수준 이상으로 올라가자 민주화에 대한 요구가 표출되었으며 그 결과 전두환 정부와 노태우 정부라는 과도기를 거쳐 민주정권이 탄생했다.
두 번째, 경제적 자유와 경제성장의 관계다. 이 역시 이견이 없다. 경제적 자유가 늘어나면, 즉 시장경제가 확산되면 경제성장이 따라온다는 것이다.
하지만 세 번째, 민주화의 진전과 경제성장과의 관계에 대해서는 다양한 견해가 존재한다. 민주화가 항상 경제성장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주장과, 이와는 정반대로 민주화가 경제성장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주장, 그리고 경제개발 초기에는 민주화가 경제성장에 도움이 되지만 일정 수준 이상의 민주화가 진전되면 오히려 경제발전에 걸림돌이 된다는 주장이 혼재한다.
이처럼 다양한 견해 중에서 마의 1만불 현상을 그럴듯하게 설명할 수 있는 주장은 하버드대학교의 로버트 배로(Robert Barro)가 지적한 것처럼 경제개발 초기에는 민주화가 경제성장에 도움이 되지만 일정 수준 이상의 민주화가 진전되면 오히려 경제발전에 걸림돌이 된다는 것이다.
2) 경제성장과 정치적 자유의 관계
먼저 경제성장(시장경제)과 정치적 자유(민주주의)[42]의 관계에 대해 살펴보자.
이미 1835년에 알렉시 드 토크빌(Alexis de Tocqueville)이라는 프랑스 정치학자가 미국의 민주주의에 대해 연구하면서, 경제가 성장하면 민간의 조직이나 기구가 늘어나고 이들이 정권의 독재를 감시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설명했다.[43]
1959년에 세이무어 마틴 립셋(Seymour Martin Lipset)은 국가가 부강해질수록 민주주의를 유지할 수 있는 가능성이 크다는 소위 ‘립셋 명제(Lipset hypothesis)’를 내놓았다.[44] 국부가 늘어날수록 자원을 서로 차지하려는 필사적인 경쟁이 줄어들며 누가 통치를 하는가의 문제는 상대적 중요성이 낮아진다. 즉 부유층 입장에서 보면, 국가가 자신들이 보유한 자원에 대하여 미칠 수 있는 영향력이 낮아지므로 국가권력과는 독립적으로 부를 향유할 수 있다. 빈곤층 입장에서도 부유층이 조금만 부담을 한다면 커다란 희생 없이, 비교적 고통도 없이 어느 정도 부의 재분배가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시장경제의 주창자인 밀턴 프리드먼(Milton Friedman)은 경제적 자유가 정치적 자유를 성취시켜 주기 위한 필수 불가결한 수단이라고 주장한다. 경제적 권력이 정치적 권력으로부터 분리되면 두 권력의 힘이 서로 상쇄되고 분권화가 진전된다는 것이다.[45] 에블린 후버(Evelyne Huber)는 자본가 계층이 확대될수록 기존의 지주 계층의 힘은 약해지는 반면 근로자 계층을 조직화하고 중산층을 늘리는 힘과 능력이 향상되면서 정치적 자유가 확장된다고 했다.[46] 로버트 배로에 따르면, 국민소득 증가, 수명 연장, 교육 수준 향상을 통하여 삶의 질이 향상되면 정치제도가 더욱 민주화될 수 있는 가능성을 높인다.[47] 그는 정치적 자유의 성격을 일종의 사치재(奢侈財, luxury good)로 규정한다. 부자가 될수록 민주주의라는 상품을 더 많이 소비한다는 해석이다. 민주주의라는 상품 자체가 부자에게 바람직한 것이고, 설사 정치적 자유의 확대가 경제성장에 어느 정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더라도 이를 감수할 수 있는 충분한 여력을 갖고 있다는 주장이다. 헤리티지(Heritage) 연구소의 정책분석가인 브라이언 존슨(Bryan Johnson)이 161개국을 대상으로 실시한 실증연구에서도, 경제적 자유도가 높은 나라에서는 정치적 자유도가 높은 반면, 역으로 경제적 억압이 심한 나라에서는 정치적 억압도 심하다는 결론이 나왔다.[48] 그 외에도 경제개발이 정치적 체제에 직접적이고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결과는 이미 상당히 많이 나와 있다.[49]
이러한 관계를 종합하여 프린스턴대학교 페이(Minxin Pei)는 경제개발이 민주주의에 긍정정인 영향을 미치는 경로를 다섯 가지로 설명한다.[50] 첫째, 경제개발은 사회구조를 개혁하고 민주주의의 사회적 기반이 되는 중산층을 대규모로 창조한다. 둘째, 경제개발은 그 부산물로서 새로운 정치적 가치관(예컨대 개성주의, 개인적 자율, 개인의 자유와 선택에 대한 가치 등)을 출현시킴으로써 민주주의 제도와 민주주의 실천을 뒷받침한다. 셋째, 경제개발은 시민에 대한 교육의 질적 수준을 높여 정치적 절차에 대한 지식이 더욱 풍부해지고 자신의 권리를 자각하게 된다. 넷째, 경제개발을 통해 민간의 여러 경제주체가 자원을 축적하게 되면 국가권력으로부터 독립성을 확보하게 되고 시민사회는 국가에 대한 견제세력으로서 힘을 가지게 된다. 또한 국부가 축적되면 소득불균형 문제를 해결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다섯째, 경제가 개방될수록 성공적인 경제개발이 이루어질 가능성이 높으며 그 과정에서 국제사회와 문화적, 사회적, 정치적으로 광범위하게 연결고리를 맺게 된다. 이를 통해 정보의 흐름이 원활해지면 독재체제가 서서히 침하되며, 바깥세상으로부터의 다양한 압력이 가해지고 독재자의 행동에 제약이 가해진다.
이러한 여러 학자의 연구결과를 굳이 인용하지 않아도 경제가 성장해서 생활수준이 올라가 삶의 질이 향상되면 사람들이 정치적인 자유를 요구하게 된다는 경로는 상식적인 일이다.
3) 경제적 자유와 경제성장의 관계
다음은 경제적 자유(시장경제)와 경제성장의 관계를 살펴보자. 경제적 자유와 관련해서는 우선 자유주의자들을 거론할 수밖에 없다. 존 스튜어트 밀(John Stuart Mill)은 좋은 경제사회란 개인이 상품의 구입과 자원의 처분에서 폭넓은 선택의 자유를 가질 수 있는 사회라고 설명하면서 경제적 자유의 중요성을 주창했다. 애덤 스미스(Adam Smith)는 경제적 자유를 개인과 사회의 경제적 후생을 증진시킬 수 있는 것으로 보았다. 프리드리히 하이에크(Friedrich August von Hayek)는 경제적 자유를 정치적 자유를 보장할 중요한 수단으로 간주했다.
밀턴 프리드먼[51]은 보장되어야 할 경제적 자유를 세 가지 측면에서 설명한다. 소득을 사용하는 방법을 선택할 자유, 소유자원을 사용할 수 있는 자유, 재산을 소유할 수 있는 자유 등이다. 첫째, 국민이 자신의 소득을 의지대로 사용할 수 있는 자유가 필요하다. 자신의 소득을 사용하는 데 아무런 제약이 없다면 완벽한 선택의 자유를 가졌다고 할 수 있겠지만 현실은 국가권력에 의해 많은 구속을 받으며, 예컨대 국민소득에서 조세가 치지하는 비중으로 그 자유도를 측정할 수 있다. 둘째, 국민은 자신이 소유하고 있는 인적, 물적 자원을 자신의 뜻에 따라 사용할 수 있는 자유를 가져야 한다. 세 번째, 국민은 자신의 재산을 소유할 수 있는 자유를 가져야 하다는 의미로 사유재산을 인정한다는 것이다. 경제체제는 자산이 사적으로 소유되면 자본주의, 공적으로 소유되면 사회주의, 그리고 혼합적으로 소유되면 혼합체제라 부른다. 사유재산 신성불가침이 개인의 권리로 보장되어 자기의 노력을 통하여 재화와 부를 소유할 수 있고 이를 효율적으로 사용하여 재산을 축적할 수 있어야 자유가 보장되었다고 할 수 있다.
여러 가지 실증연구 대부분에서도 경제적 자유의 확대가 경제성장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온다. 로버트 배로는 경제적 자유를 억압함으로써 시장을 왜곡시키는 대용지표로서 외환거래의 암거래 프리미엄을 설정했는데, 약 1백여 개국의 사례를 분석한 결과 암거래 프리미엄이 높을수록 경제성장률이 낮은 것으로 나왔다.[52] 마찬가지로 알베르토 알레시나(Alberto Alesina)도 암거래 프리미엄을 대용지표로 사용하여 같은 결론을 구했다.[53] 스테판 낵(Stephen Knack)의 연구에서는 부패, 재산 몰수의 위험, 계약 실행 가능성, 법치주의 등의 요소가 경제성장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54]
요한 토르스텐손 (Johan Torstensson)이 1976~1985년 동안 68개국의 경험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는, 정부가 개인의 재산을 몰수하는 정도가 높을수록 경제성장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왔다.[55]
제임스 과트니(James Gwartney)의 연구에서는, 1993~1995년 현재 기준으로 경제적 자유도가 높은 나라는 1980~1994년에 국민소득이 연평균 2.4% 신장한 반면 경제적 자유도가 낮은 27개국은 같은 기간 동안 국민소득이 연평균 -1.3% 감소했다. 경제적 자유가 상당 수준 이상으로 보장된 나라는 모두 높은 국민소득을 유지했으며, 경제적 자유도에서 괄목할만한 개선을 보인 17개국은 높은 경제성장률을 보였다.[56]
마이클 넬슨(Michael Nelson)이 1970~1989년 동안 67개 개발도상국을 대상으로 수행한 연구에서는 물가 안정, 정부 규모, 차별적 과세, 자유무역 제한 등을 경제적 자유를 측정하는 잣대로 삼았는데 경제적 자유가 높을수록 경제성장률이 높다는 결과가 나왔다.[57] 헤리티지 연구소와 『월스트리트저널』의 공동연구에서는, 1980~1993년 동안 경제적 자유가 보장된 국가는 국민소득이 연평균 2.88% 성장했고, 어느 정도 자유가 보장된 나라는 0.97% 성장한 반면, 경제적 억압이 어느 정도 있는 나라는 -0.32% 감소했으며, 경제적 자유가 전혀 없는 나라는 -1.44% 감소했다.[58]
아무튼 경제적 자유가 경제성장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은 구공산권의 몰락 사례에서 보듯 명약관화하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공산주의 정권이나 좌파정권이 집권한 나라는 대부분 경제적으로 형편없는 성과를 냈지만, 경제적 자유를 확대한 국가는 번영했다. 냉전시대도 공산권의 몰락으로 막을 내렸다. 경제적 자유가 상대적으로 많았던 자본주의체제가 중앙계획경제보다 성공적이었기 때문이다.[59]
물론 최근 들어서는 자본주의 시스템 내부에서 경쟁이 일고 있다. 완전한 경제적 자유를 추구하는 앵글로색슨 스타일의 신자유주의 모델과, 시장에서 정부가 일정 부분 개입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유럽대륙식 라인 모델이 유효성과 효율성에서 겨루고 있지만 양자 모두 상당한 수준의 자유가 보장된 상태 내에서의 경쟁이다.
4) 정치적 자유와 경제성장의 관계
마의 1만불 현상을 해석하는 데 가장 중요하면서도 논쟁의 여지가 많은 부분이 정치적 자유(민주주의)와 경제적 자유(시장경제) 또는 경제성장과의 관계다.
이미 선진국 반열에 올라선 미국, 일본, 독일의 경우를 보면 정치적 자유도 많고 경제적 자유 역시 많으면서 국민소득도 높으므로 세 가지가 함께 간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리고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함께 채택하고 있어 민주주의에서는 당연히 시장경제와 결합되는 것이고 독재체제에서는 통제경제 또는 사회주의를 하는 것으로 착각하는 경우도 흔하다. 미리 집고 넘어가야 할 점은 민주주의와 독재체제는 정치적인 차원이고 시장경제와 통제경제(사회주의)는 경제적인 차원이라는 것이다. 돌이켜보면 과거 박정희 정권 시절에 한국은 독재체제였지만 시장경제를 했으며 이러한 결합을 “개발독재”라 불렀다.
그러면 민주화의 진전이 경제성장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양자 간의 상관관계는 비교정치학의 고전적인 연구과제이면서 여전히 비교정치학자들의 중요한 관심을 모으고 있는 주제이다.[60] 예컨대 애덤 셰보르스키(Adam Przeworski)가 조사한 바에 의하면 <표 2-2>처럼 다양한 연구결과가 나와 있다.[61]
<표 2-2>에서 18건의 연구와 21건의 결과가 나와 있는데 그중 권위주의 지지가 8건, 민주주의 지지가 8건, 나머지 5건은 차이가 없는 것으로 나타나 백중지세(伯仲之勢)를 보인다. 존 헬리웰(John Helliwell) 같은 경제학자나 코흘리(Atul Kohli) 같은 정치학자의 계량분석에서도 민주주의와 경제성장의 관계가 긍정적이지도 부정적이지도 않다는 결과가 나왔다.[62]
이러한 논점을 명확히 하기 위하여 정치적 자유가 경제성장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주장과 반대로 부정적이라는 주장을 나누어 살펴보자.
<표 2-2> 민주주의와 독재가 경제성장에 미치는 영향
5) 민주주의가 경제성장에 긍정적인 영향
민주주의가 경제성장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주장은 대개 다음과 같이 다섯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투자가의 기업가정신(entrepreneurship)[63]을 북돋운다. 둘째, 정통성을 가진 민주정권은 장기적인 시각을 가지고 경제운용을 한다. 셋째, 민주화를 위한 여러 가지 제도가 경제적 자유를 확대시킨다. 넷째, 통치자의 사익과 지대추구 행위를 방지한다. 다섯째, 민주적 언로 확보는 갈등 관리에 들어가는 거래비용을 줄인다.
이와 같은 다섯 가지의 상세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 민주주의는 국내외 투자가의 기업가정신을 북돋워 투자가 활성화된다. 밀턴 프리드먼은, 정치적 권리가 확장되면 즉 민주화가 진전되면 경제적 권리[64]의 확장이 촉진되고 그래서 경제성장을 자극하게 되므로 결국 경제적 자유와 정치적 자유는 상호보완관계 또는 상호강화관계라는 입장이다.[65] 클린턴 정권의 초대 노동부장관을 지낸 로버트 라이시(Robert Reich)는, 민주주의와 개인의 자유가 더 많이 보장되면 사람들이 미래를 스스로 관리할 수 있다고 느낌으로써 더욱 창의적이 되고 자신의 삶의 영역을 넓혀가려는 경향이 있으므로 경제성장률과 경제활력이 좋아진다고 주장한다.[66] 더글라스 노스(Douglas North)는, 통치자가 민주주의 체제를 채택하는 것은 사익추구를 위하여 국민의 재산권을 해치지 않을 것이라는 의지를 나타내는 가장 신뢰할 수 있는 결의표명 방식이라고 설명한다. 또한 민주주의 체제에서 국민이 투자를 통해서 이익을 얻을 수 있고, 투자에 대한 유인 효과는 통치자가 사익 추구를 위해 국민의 재산을 약탈하지 못하도록 견제하는 역할을 하므로 민주적 정치 체제는 경제성장에 가장 좋은 토양을 제공한다는 것이다.[67] 현재 아프리카의 여러 국가와 중남미의 일부 국가, 과거에 계획경제를 했던 동구권 국가 중 일부, 그리고 필리핀의 마르코스(Ferdinand Edralin Marcos) 정권 등에서 통치자가 국민의 재산권을 약탈했던 사례는 주지의 사실이다.
둘째, 민주정권이 정통성을 확보하고 있다면 장기적인 시각에서 경제운용을 할 수 있으며 이는 장기성장으로 연결된다. 룬트스트롬(Susanna Lundström)에 따르면, 민주 정부는 당연히 독재 정부보다 정통성이 강할 것이고, 정부가 정통성을 갖고 있다면 단기적인 소비를 조장하는 인기 위주 정책에 과감히 맞설 수 있는 힘을 가진다.[68]
셋째, 민주화를 지탱하는 여러 가지 제도적 장치가 경제적 자유를 확대시키고 이는 경제성장으로 연결된다. 룬트스트롬은 그 예로 독립적인 법률 체계, 전문적인 민간 서비스, 재산권 보장 등을 든다.[69] 이와 유사하게 스컬리(Gerald Scully)는 민주주의가 경제성장에 도움이 되려면 경제에 관련된 여러 정치적인 제도가 민주적인 원칙 아래 효과적으로 기능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개인의 재산권을 보호하는 법치주의, 창의성과 기업가정신을 고양시키는 개인적인 자유, 정보의 생산과 흐름이 보장될 수 있는 표현의 자유, 종종 독재 체제에서 볼 수 있는 대규모의 공익 약탈 행위를 막을 수 있는 제도적 견제와 균형 장치 등이 필요하다는 것이다.[70] 올리바(Maria-Angels Oliva)는 개발도상국을 대상으로 민주주의의 질(質)과 법치주의 그리고 자본의 흐름(이동)이 국민소득에 미치는 영향에 대하여 연구한 결과, 민주주의는 성장에 직접적으로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답을 얻었다. 민주주의는 교육을 촉진함으로써 간접적으로도 영향을 미쳤으며 법치주의는 외국인 직접투자(FDI, Foreign Direct Investment)를 촉진함으로써 경제성장에 간접적인 영향을 주었다. GDP 대비 FDI의 비율이 높을수록 경제성장률이 높게 나왔으며 FDI가 성장에 미치는 영향은 국내 투자가 성장에 미치는 영향보다는 몇 배나 높게 나왔다.[71]
넷째, 민주주의 체제에서는 통치자의 이기심 발동을 가로막는 견제와 균형 시스템이 있기 때문에 지대추구(rent-seeking)를 방지할 수 있다. 이러한 시스템이 결여된 나라에서는 기존의 엘리트, 특히 국영기업의 경영자나 정치지도자가 지속적으로 많은 혜택을 누리게 되고 독점 방지도 어렵게 된다.[72] 하지만 정치적 자유가 확대되면 정부의 약탈행위로부터 국민을 보호할 수 있다.[73]
다섯째, 민주적 언로 확보는 갈등관리에 들어가는 거래비용을 줄인다. 즉 민주주의에서는 정치적 자유가 보장되고 토론을 할 수 있는, 자유투표제도와 발언의 자유가 보장되어 있어 갈등관리를 위한 기반이 마련되어 있다. 독재 체제에서는 단기적으로 이러한 갈등을 막을 수 있지만, 갈등을 해결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는 없다.[74] 이와 관련된 실증연구도 있다. 스컬리가 1960~1980년의 115개국을 대상으로 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정치적인 개방성이 높은 국가는 국민소득이 연평균 2.53% 증가한 데 비해 폐쇄적인 정치체제를 가진 국가는 1.41% 증가에 그쳤다. 이는 민주적인 국가가 비민주적 국가보다 80% 이상 빠르게 소득이 증가한다고 해석된다.[75]
6) 민주주의가 경제성장에 부정적인 영향
한편 민주주의가 경제성장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경로는 다음과 같이 요약된다. 첫째, 잔인한 딜레마이다. 여러 개도국에서는 민주주의를 희생시키는 대신에 시장경제체제를 곁들인 개발독재를 통해 경제적 성장을 이루었다. 둘째, 선거정국의 혼란 등 정치적 불안이 경제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셋째, 특정한 소수의 이익집단이 조직화를 통해 정치적인 힘을 발휘하여 지대를 추구한다. 넷째, 지도자의 통치기반이 약하면 인기영합주의로 흐르게 되고 단기 시각으로 경제운영을 한다. 다섯 번째, 다수결 투표제도가 악용되면 부의 재분배에 관련된 정책이 늘어나고 사유재산권 보호가 불안해진다.
이와 같은 다섯 가지의 상세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 잔인한 딜레마(cruel dilemma)이다.
정치적 자유가 경제성장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주장의 역사적 뿌리는 깊으며, 그 출발점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시작된 냉전시대의 개막이다. 당시 중국은 전체주의를 채택했고 인도는 민주체제를 채택했기 때문에, 서구의 민주진영과 동구의 공산진영은 이제 막 잠을 깬(awakening giants) 이들 나라에 많은 관심을 기울였다. 공산체제와 대적해서 악전고투를 하던 민주진영에서는 인도가 중국보다 더 나은 경제성과를 올리자 많은 제3세계 국가가 서구의 민주체제를 선호하고 채택하기를 소망했지만 결과는 반대로 나왔다.
이에 대해 서구의 경제학자들은 경제발전 과정을 설명하는 새로운 모형을 만들었다. 대표적으로 영국의 해로드(Sir Roy Harrod)와 미국의 도마(Evsey Domar)가 제안한 해로드-도마 모형에서는 자본생산성과 투자율이라는 두 가지 변수를 사용해서 경제성장을 분석했는데[76] 자본생산성은 국정운영권을 가진 테크노크라트의 손에 좌우되는 것으로 간주되면서 나머지 투자율만 정책운용 수단으로 인식되었다. 독재체제는 세금이나 다양한 압력을 통해 국민으로부터 많은 돈을 거두어들이고 국내 저축률과 투자율을 높일 수 있지만, 민주체제에서는 세금을 더 많이 걷기 위해서는 유권자들을 설득하는 절차가 필요하고 또 다른 희생을 강요해야 한다는 단점이 있으므로 오히려 독재체제가 민주체제보다 경제성장에 더욱 유리하다는 식으로 인도와 중국의 사례가 설명되었다.
이러한 맥락에서 바그와티(Jagdish Bhagwati)는 소위 “잔인한 선택(cruel choice)”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1966년에 쓴 『저개발 국가의 경제』라는 책에서 “(스스로 유지되는) 급속한 (경제)성장과 민주적인 (정치적) 절차 사이에서 잔인한 선택(cruel choice)”을 할 수밖에 없다고 표현했다.[77] 민주주의는 경제발전을 희생시키므로 경제성장과 민주적 절차는 서로 상충관계(trade-off)에 있다는 것이다. 1966년 군부 쿠데타 이후의 브라질은 잔인한 선택에 직면하여 민주주의 대신에 경제성장을 선택했다고 사례를 든다. 이러한 바그와티의 주장에 대해 20년이 지난 1986년에 코흘리(Atul Kohli)가 “잔인한 딜레마(cruel dilemma)”라는 이름을 붙임으로써[78] 지금은 “잔인한 선택”보다는 “잔인한 딜레마”라는 용어가 더 많이 통용된다.
역사적인 경험을 보아도 민주주의와 경제성장이 상충관계에 있으며 오히려 민주주의가 말살된 권위주의 또는 독재정권 아래서 경제적 자유가 확대되고 높은 경제성장을 이룩한 사례를 흔히 목격할 수 있다. 우리나라 박정희 시대의 경제개혁이 그 전형적인 사례이며, 칠레의 피노체트(Pinochet) 정권, 페루의 후지모리(Fujimori) 정권, 이란의 샤(Shah) 정권도 정치적 권리를 억제한 상태에서 근대적인 의미의 경제개발을 시작했고 오랜 세월이 흐른 후에야 현재의 민주주의를 달성했다.[79] 더욱이 싱가포르의 리콴유(Lee Kuan Yew) 수상은 민주주의란 무절제하기 그지없는 제도라고 공격하면서 자신들의 ‘소프트’한 독재적인 방식이야말로 경제발전에 장애밖에 되지 않는 허약한 민주주의로부터 싱가포르를 보호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그는 “한 국가가 경제개발을 하려면 민주주의보다는 오히려 규율이 더 요구된다. 민주주의가 넘쳐나면 무절제 상태에 빠지고 경제개발에 장해가 되는 일들이 무질서하게 일어난다”라는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80]
이처럼 독재체제라도 적당히 시장경제체제를 곁들인다면 오히려 민주체제보다 경제성장에 유리하다고 생각하는 학자들은 개발도상국이나 체제전환국에 대해서 “시장이 먼저, 민주주의는 그 후”라는 주장을 편다. 경제개발 초창기 급속한 성장을 위해서는 어느 정도 개인의 권리를 제약해야 하므로 최소한의 독재체제가 요구된다는 것이다.[81] 예컨대 칠레, 한국, 대만 같은 나라는 독재체제 아래서 경제개혁을 성공적으로 이룩할 수 있었고 그 후에야 민주적 체제로 전환했다.[82]
이와는 반대로 러시아는 정치적인 민주화부터 시작했는데 결과는 제도적 혼돈으로 귀결되었고 경제개혁은 실패로 끝났다.[83] 러시아가 초강대국에서 몰락한 이유도 부분적으로는 경제적 측면의 자유화 시도인 페레스트로이카(Perestroika)를 하기 전에 정치적 측면의 자유를 확대하는 글라스노스트(Glasnost)부터 먼저 추진 때문이다.[84] 이에 비하여 중국은 민주주의보다 시장경제체제를 먼저 도입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높은 경제성장을 할 수 있었다.
몇몇 연구에서는 잔인한 선택을 실증적으로 지지하는 결론이 나온다. 좌파주의 경제학자인 런던대학교의 다렌도르프(Ralf Dahrendorf)가 독일을 대상으로 수행한 연구에서나[85] 무어(Barrington Moore)가 부르주아 계층의 부상이 민주주의를 가져왔다는 고전적인 연구결과도 이러한 관점을 지지한다.[86] 또한 위드(Erich Weede)가 1960~1979년의 94개국(중앙계획경제국가, 식민국가, 산유국 제외)을 대상으로 한 경제성장률 연구에서는 오히려 민주주의가 경제성장에 약하게나마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온다.[87]
둘째, 소위 ‘정치가 경제의 발목을 잡는’ 경우로서 선거정국의 혼란 등 정치적 불안이 경제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민주주의에서는 국민의 대표를 뽑기 위해서 주기적으로 선거를 하는데 이로 인해 정국 혼란이 일어나면 결국 경제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이와 관련해 메이(Jianping Mei)는 최근 전 세계에서 일어난 아홉 번의 금융위기 사례 중에서 여덟 번이 선거와 관련 있다는 사실을 증명했다.[88]
조세연구원의 송대희 원장도 “최근의 아르헨티나 국가부도 사태의 원인도 잘못된 정치에 있었고 과거 남미의 여러 차례 경제위기의 원죄도 잘못된 정치에 있었다. 경제위기의 주원인은 선거철을 전후한 정치적 인기주의와 방만한 재정정책 때문이었다. 우리가 겪은 1997년 IMF경제위기도 정치불안과 관련이 있다. 그 당시 대권경쟁의 정치바람은 취약한 경제를 더욱 어렵게 만들었다.”라고 주장한다.[89]
정치불안이 경제를 어렵게 한다는 사실은 현재 우리가 몸으로 체득을 하고 있으므로 별 이견이 없을 것이다. 학문적으로도 이와 관련된 연구는 1990년대 들어 중남미의 경제위기와 1997년 중반 이후 시작된 아시아 경제위기를 계기로 더욱 증가했다. 루비니와 삭스(Roubini and Sachs)는 OECD 국가에서 일어나는 대규모 재정적자의 원인을 정치적 요인에서 찾았는데, 정권의 평균임기가 짧거나 정당 간 정치연합이 확대되는 상황, 즉 정치가 불안정하면 재정적자가 확대된다는 결론을 제시한다.[90]
알레시나(Alberto Alesina)의 연구에서는, 정권 붕괴의 가능성이 커지는 등 정치적 불안정이 증가할수록 국민소득의 증가율이 낮다는 결과가 나왔다.[91] 특히 최근 세계화로 인하여 자본이동이 자유화된 상황에서 정치불안은 곧 바로 자본유출 또는 국가신용등급의 하락으로 인한 리스크 프리미엄의 증가를 가져와 국민경제에 부담을 주게 된다. 특히 후진국의 경우에 선거를 전후로 정치불안이 극심해진다는 점을 공통적인 특징으로 송대희는 지적한다.[92]
셋째, 특정한 소수의 이익집단이 정치적인 힘을 발휘하여 지대를 추구한다.
개발독재에서는 정경유착으로 인해 지대추구가 일어난다면 민주체제에서는 소수의 이익집단이 조직화를 통해 정치적인 힘을 발휘함으로써 또 다른 형태의 지대추구를 한다. 이는 민주체제의 근본원리인 대의민주주의의 부정적인 측면으로 조직화된 소수가 조직화되지 못한 다수로부터 자원을 끌어낸다는 것이다.
대개 집권여당은 다음 선거에서 승리할 요량으로 특정 이익집단의 요구에 따라가는 경향이 있다.[93] 따라서 특정한 이해관계를 공유하는 여러 사람이 모여 이해집단(농업단체, 환경압력단체, 방위산업체, 장애인단체 등)을 만들고 개방적인 정책의사 과정에 깊숙이 개입하여 영향력을 행사하고 직간접적으로 압력을 가하게 되면 사회 전체적으로는 비효율적인 정책결정이 내려진다는 소위 지대추구 문제가 경제성장의 발목을 잡게 된다.
올슨(Mancur Olson)은 민주주의에서 특정한 이해집단이 이기적인 행동을 함으로써 비효율적인 정책을 나오게 된다고 설명한다. 독일과 일본이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 영국보다 신속하게 발전했던 이유도 특정 이익집단이 확산된 정도 차이로 해석한다. 독일과 일본의 경우에는, 특정 이익집단이 상당히 포괄적이어서 비효율성이 상대적으로 적었지만, 영국의 경우는 강력한 특정 이익집단이 산발적으로 존재함으로써 비효율성이 발생했고 그 결과 성장에 장애요인으로 작용했다는 주장이다.[94]
역으로 해거드(Stephan Haggard)에 따르면, 비민주적인 체제에서는 분배주의자들의 압력을 차단할 수 있다. 그는 아시아의 신흥개발국(NICs)과 중남미 국가를 비교한 연구에서 한국, 대만, 싱가포르, 홍콩 등 동아시아 국가의 경제발전에 대해 설명하면서 권위주의적 자본주의(authoritarian capitalism), 즉 개발독재가설을 제시한다. 이에 따르면, 한국과 대만에서 단기간에 기적적인 경제발전이 가능했던 것은 권위주의적 독재자가 노동계급으로부터 나오는 분배에 대한 압력을 억압할 수 있었고, 초기 축적단계에 필요한 투자재원을 강제저축을 통해 동원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분배를 요구하는 집단행동을 권위주의 통치자의 명령으로 해결했다는 것이다.[95]
국민대학교 소병희 교수 역시, 일반적으로 과반수 득표로 가결되는 민주주의 아래의 정치적 의사결정 과정에서는 국민의 공공재에 대한 요구가 더 많이 허용되어 공공지출이 증대하는 경향이 있으며, 특수이익집단이 단결하여 소득에 대한 재분배 요구를 증대하게 되고, 또한 국민이 뽑은 대리인인 국회의원이 자신들에게 이득이 되는 정책 수립을 위해 영향력을 행사하여 공공지출이 증대하게 된다고 주장한다.[96]
넷째, 지도자의 통치기반이 약하면 인기영합주의에 흐르게 되고 단기적 시각으로 경제운영을 하는 경우로서 소위 조삼모사(朝三暮四)에 비유된다.
세계은행 보고서에 따르면, 정치적 자유와 시민의 자유가 확대되면 정부가 국민에게 인기는 없지만 장기적으로 필요한 정책결정을 내리기가 힘들어진다.[97] 일반유권자는 장기적으로 경제성장을 가져오는 투자보다는 당장 눈앞의 소비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개혁에는 오랜 기간이 소요되며 긍정적인 효과를 거둘 것이라는 확신도 없으므로, 설사 개혁을 통해 장기적으로는 국민 다수의 복지 확대가 예상된다 하더라도 대부분의 유권자는 이에 반대한다.[98] 예컨대 민영화의 경우 근로자는 종국에는 많은 이익이 돌아올 것이 확실하지만 자신이 가진 기술이 개혁 후에도 계속 필요할지에 대해 의문을 갖게 되므로 민영화에 적극 반대한다. 이런 경우에는 정치적 반격을 피할 수 없기 때문에 독재체제만이 이를 실행할 수 있다.[99]
또 다른 경우로 정부가 재분배에 치중하면 과잉소비가 일어나고 저축이나 생산적인 투자에 대해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하지만 소비와 실질임금을 제약하는 행위는 선거에서 재선의 가능성을 줄이게 되므로 정부로서는 진퇴양난의 입장에 서게 된다.[100]
갈렌슨(Walter Galenson)에 따르면, 민주주의는 국민의 단견적인 소비욕구를 충족시켜줄 수 있지만 그 대가로 투자의 비용이 올라가고 그 결과 성장의 비용 역시 높아진다. 전형적으로 민주사회에서는 노동조합이 노동자를 부추겨서 전면적인 소비를 조장하는 강령을 내거는 경우가 흔히 목격된다.[101]
또한 민주주의 아래서는 노동조합의 활동이 활발해지므로 경제가 지불할 수 있는 한도 이상의 임금상승을 노동자가 쟁취할 수도 있게 된다.[102] 마찬가지로 헌팅턴(Samuel Huntington)도, 민주적 체제에서 유권자는 비민주적 체제에 비하여 정치인에게 투자보다는 개인적인 소비에 더 높은 우선순위를 주도록 유도한다고 주장한다.[103]
더욱이 경제성장을 하려면 대규모의 투자가 요구되는데 이는 유권자에게 현재의 소비를 억제해달라는 ‘희생’을 요구한다. 하지만 어떤 정당도 이러한 정책강령으로는 권력을 얻을 수 없다.[104] 이정우 교수도 “경제발전은 인간과 물질에 거대한 투자를 필요로 하는 과정이다. 그런 투자 프로그램은 현재 소비의 삭감을 의미하며, 그것은 거의 대부분의 개발도상국의 낮은 생활 수준에서 고통스러운 일이다. 투자를 위해 필요한 잉여를 동원하려면 정부는 강력한 수단에 의지해야 하며 철의 손으로 강제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런 정책이 대중투표에 붙여진다면 부결될 것이 뻔하다. 밝은 미래를 위해 현재를 희생하자는 강령을 갖고 민주적 선거에 이기리라고 기대할 수 있는 정당은 없다.”라고 설명한다.[105]
이러한 민주주의의 부작용에 대해서는 현재 국민 전체가 절감하고 있다. “요즘 한국사회는 이른바 ‘떼법’과 ‘빽법’ 두 가지 법이 지배하고 있다. 상대적으로 힘이 없는 조직은 너도 나도 집단행동에 나서고 힘이 있는 집단은 공정하고 투명한 방법이 아니라 편법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라는 김태기 교수의 주장도 맥을 같이 한다.[106]
직종과 분야를 가리지 않고 돌출되고 있는 ‘내 몫 챙기기’ 사례는 이미 상식선을 넘었다. 정부과천청사 앞 운동장에는 확성기 소리와 구호로 시끄럽자 이를 참다 못한 인근 학교와 주민들은 학생들의 공부에 방해되지 않도록 시위를 자제해달라는 팻말을 운동장 주변 곳곳에 설치했다. 2003년 5월에는 아산지역 주민 5천여 명이 1백여 대의 버스에 나눠 타고 과천청사에 몰려와 경부고속철도 ‘천안아산역’의 이름을 ‘아산역’으로 바꿔달라고 요구하면서 장송곡을 틀었다.
한국-칠레 정부 사이의 FTA 비준이 농민과 선거를 의식한 국회의원들의 담합으로 지연되고 있어 칠레는 물론 다른 나라에서도 ‘한국은 믿을 수 없는 나라’라는 이미지가 고착되고 있다.
최근 발생한 각종 대형 파업에 대해서 이진순 교수는 “조직화된 노동자는 현 상황에서 보면 자본가의 몫이 아니라 상대적으로 열악한 비(非)조직 노동자, 실업자의 몫과 일자리를 빼앗아가고 있다”라고 지적한다.
KDI의 심상달 선임연구위원은 “떼쓰는 사람에게 이익이 돌아갈 것으로 예상되면 기업은 투자를 안 한다. 떼를 써서 분배문제를 해결하면 시스템이 망가진다. 서로 충돌하는 이해관계를 조정하려면 법과 원칙을 바로 세워야 한다.”라고 강조한다.[107]
다섯 번째, 다수결투표제도가 악용되면 부의 재분배 관련 정책이 늘어나고 사유재산권 보호가 불안해진다. “배고픈 것은 참을 수 있어도 배 아픈 것은 참을 수 없다”는 경우다.
민주체제에서 선거권은 부자나 빈자에게 골고루 평등하게 주어지고 대개의 경우 20:80의 원칙이 작동하여 부자보다는 빈자의 절대수가 많으므로 빈자들이 부의 재분배에 관련된 정책(소득세 누진제도, 토지개혁, 복지 이전 등)을 지지하는 방향으로 투표권을 행사하게 되어 국가 차원에서 경제적인 왜곡이 일어날 수 있고 국민의 재산권 보호가 불안정해질 수 있다. 쉐보르스키(Adam Przeworski)도 민주주의가 개인의 재산권을 보호한다는 생각은 무리라고 설명한다.
선거권이 보편화되면 재산이 없어 고통을 받는 빈자가 정치적 권력을 가지게 되고 그들은 부자의 재산을 몰수하는 데 그 권력을 사용하려고 시도한다는 설명이다.[108] 이러한 단점 역시 우리의 아킬레스건이 되고 있다. 홍기현 교수는 “이제라도 정부는 성장과 분배 관계에서 확실한 선택을 해야 한다. 성장은 기업이 하고, 정부는 분배에 신경을 쓰겠다는 안이한 태도를 가지려면 차라리 정부는 모든 경제정책에서 손을 떼라.”라고 강하게 충고한다. KDI의 한진희 연구위원은 “지속할 수도 없는 소외계층 배려정책은 기대만 잔뜩 키웠다가 꺼지기 때문에 부작용이 더 많다.”라고 강조한다.
물론 이에 대한 반론도 만만치 않다. 페이(Minxin Pei)는, 이러한 문제가 민주체제의 약점이지 독재체제의 장점은 아니며, 경우에 따라서는 독재체제에서도 동일한 약점이 노출된다는 점을 지적한다. 독재체제 아래서 독재자가 재판권의 독립을 해치거나 국회로부터의 견제를 인정하지 않는다면 제도적인 구속에서 자유로울 수 있으므로 과도한 세금을 부과하거나 개인의 재무적 권리를 인정하지 않음으로써 개인의 재산권은 안전치 못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보아도 독재자는 자신의 부를 축적하기 위하여 사회로부터 약탈행위를 일삼았으며, 독재체제에서도 지대추구의 해악이 존재한다는 주장이다. 독재자는 자기 자신을 지키기 위하여 후원자들로부터 도움을 받아야 하며 그들에게 지속적으로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이러한 특혜는 독점이나 보조금, 세금혜택, 면허 등으로 나타나며 이는 사회 전체의 경제적 효율성을 크게 떨어뜨린다는 설명이다.[109]
앞서 언급한 바그와티도 1966년에는 ‘잔인한 선택’ 또는 ‘잔인한 딜레마’라는 부정론을 주장했다가 30년 지난 1995년에는 긍정론으로 전환한다.[110] 민주주의가 경제성장과 같이 갈 수도 있다는 것이다. 정확히 말하면 과거의 주장을 완전히 바꾸어 민주주의가 경제성장에 도움이 된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민주주의가 경제개발과 조화롭게 공존할 수도 있으며 잘만 하면 경제성장을 촉진할 수도 있다는 식으로 입장을 바꾼다. 그의 표현을 빌면 과거에는 ‘좋은 것을 하는 것(doing good)’을 주장했다면 이제는 ‘잘하는 것(doing well)’이 중요하다. 경제성장에는 독재체제가 좋은 것이고 민주주의는 나쁜 것이라는 선악의 차원을 넘어 독재체제든 민주주의든 잘만 하면 경제성장에 도움이 되고 잘못하면 장애가 된다는 의미다.[111] 그 핵심은 ‘시장경제’로서, 독재체제든 민주주의든 시장경제체제가 제대로만 도입되면 경제성장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112] 독재체제에서도 시장경제가 도입되면 경제성장을 할 수 있지만, 반대로 시장이 없는 민주주의는 국가의 경제적 복지향상에 별로 도움을 주지 못한다. 더 나아가 민주주의처럼 바람직한 정치체제는 세계 평화를 촉진하므로 장기적인 관점에서 전 세계 경제성장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바그와티는 2002년에도 같은 취지의 연구결과를 낸다. 독재체제와 비교할 때 민주주의는 경제발전을 지속하기 위하여 반드시 요구되는 혁신적이고 기업가적인 프로세스를 촉진시키는 환경을 제공하는 데 보다 효과적이며, 시장과 경쟁의 확산이 수반될 때만 민주주의가 경제개발에 도움이 되지, 시장이 없는 민주주의는 경제성장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자유로운 국제무역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아이디어, 지식, 상품, 서비스, 기술을 쌍방향으로 원활히 유통함으로써 경제개발을 촉진시킬 수 있는 민주적인 여러 제도가 생산적으로 뒷받침되어야 한다고 바그와티는 주장한다.
7) 양자를 포괄하는 배로의 주장
이상과 같은 두 가지 관점을 모두 포괄하는 학자가 배로 교수다. 그는 민주주의가 경제성장에 이로울 수도 해로울 수도 있다는 식으로 양측 입장을 모두 수용한다. 요컨대 정치적 자유와 경제성장의 관계는 선형적이 아니라 비선형적(非線型的)인데, 가령 정치적 자유가 결여된 국가에서 민주화가 진전되면, 즉 정치적 자유가 확대되면 경제성장이 촉진되지만, 이미 적정 수준의 정치적 자유가 달성된 경우에는 정치적 자유의 확대가 경제성장을 저해한다는 것이다. 배로는 이와 관련하여 몇 편의 연구결과를 내놓았으며 결론은 동일하다.[113]
배로는 1960~1990년 사이의 약 1백여 개국의 경제성장 사례를 연구한 결과, 경제성장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요인으로서 법에 의한 통치(법치주의), 자유시장, 작은 정부지출, 높은 인적자원 수준 등이 나왔다.[114] 이러한 변수와 초기의 국민소득 수준을 상수로 놓고 보면, 민주주의의 진전이 경제성장과 투자에 미치는 영향이 비선형적으로 나왔는데, 민주주의의 발달 정도를 횡축에 놓고 경제성장률을 종축에 놓을 때 대체적으로 역U자형(逆U字型, 거꾸로 된 U자형) 모습을 보였다. 정치적 권리가 없는 상태를 0으로 하고 최상의 권리가 보장되는 상태를 1이라고 할 때 민주화 수준이 0.5의 경우에 투자율이 가장 높았다. 즉 정치적 자유가 낮은 수준에서는 민주주의가 경제성장을 촉진한다. 민주주의에서의 여러 합리적 제도는 정부권력이나 통치자의 권력남용을 견제하므로 이들이 개인적인 치부를 하거나 잘못된 경제정책을 펼치지 못하도록 막을 수 있어 경제성장에 직접적인 도움이 된다. 간접적으로도, 민주주의는 여성의 교육을 자극함으로써(성별 간 평등을 촉진함으로써) 출산과 유아사망률을 줄이므로 경제성장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하지만 1994년의 멕시코나 대만처럼 일정 수준 이상의 정치적 자유가 달성되고 민주주의가 확대되면 오히려 경제성장에 악영향을 미친다. 민주주의의 기본원리인 다수결 투표제도와 대의민주주의 때문이다. 우선, 다수결 투표제도에서는 다수인 빈자가 정치적 압력을 가하여 부를 재분배하는 정책프로그램을 채택하게 할 수 있다. 소득세 누진제도, 토지개혁, 복지 이전 같은 정책은 어떤 환경 아래서는 바람직할 수 있겠지만 한계세율을 불가피하게 높이고 경제적으로 다양한 왜곡을 야기하므로 필연적으로 투자 인센티브와 근로의욕을 감소시켜서, 결국 경제성장을 저해한다. 다음으로, 대의민주주의에서는 농업단체, 환경압력단체, 방위산업체, 장애인단체와 같이 조직화되고 정치적으로 강력한 힘을 가지는 이해집단이 조직화되지 않은 다수로부터 합법적으로 자원을 끌어낸다. 이러한 이익집단은 국가의 자원을 자신에게 이로운 방법으로 재분배하는 정책을 만들어내는 경향이 있다. 이와 같은 부의 이전(移轉)은 경제적 왜곡을 초래하여 경제성장을 저해하며, 크게 보아 이러한 프로그램은 결코 빈자에게도 이롭지 못하다고 배로는 지적한다. 그는 이런 연구결과를 기반으로 말레이시아나 멕시코처럼 1994년에 0.5 수준을 넘어선 나라에서 민주화가 더 진전될 경우 성장세가 감소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한다. 마찬가지로 한국의 경우도 민주화 수준이 1980년대 초에 0.33에서 1994년에 0.83으로 급속히 높아졌으므로 더 이상 민주화가 진전되면 경제성장에 저해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배로는 예견한다. 결국 한국경제는 배로의 예견처럼 민주화가 경제성장에 발목을 잡기 시작했고 끝내 잃어버린 8년을 맞게 되었다. 그리고 우리는 이를 ‘마의 1만불’이라고 부른다.
그 외에 배로는 한국의 현실에 대해 직접적인 언급을 하기도 한다. 2003년 7월 KIEP 안충영 원장과 가진 대담에서 “한국은 민주주의가 사회 전반에 안착하고 있으나 이익집단이 등장하면서 혼란 양상이 나타나고 있다.”라는 질문에 대해 배로는 “민주주의는 긍정적인 요인과 부정적 요인을 모두 내포하고 있다. 예컨대 민주주의는 복지비용 지출 등 성장에 방해되는 요소를 내재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긍정적인 점도 많다. 일부 권위주의적 정부는 고속 성장을 추구했지만 대부분 국민의 돈을 훔쳐갔다.”라고 평한다.[115] 2003년 5월 『매일경제신문』 주관으로 서울대학교 이지순 교수와 가진 대담에서는 소득 2만불의 달성가능성에 대한 질문에 대하여 “외환위기 후 한국은 ‘수렴 과정(convergence process)’을 겪었다. 기업-금융 구조개혁, 사회안전망 확충, 노사관계 정립, 정부 규제완화 등이 한꺼번에 진행됐다. 그 결과 경제적 비용도 컸다. 한국이 현재 소득 1만 달러 시대에 머물고 있지만 환율과 경제 기초체력을 감안하면 1만6천 달러 정도의 실력을 갖췄다. 따라서 2만 달러 시대 진입도 그다지 멀지 않았다고 본다.”라고 답한다. 그는 한국 경제를 낙관하고 있으며 그 근거로 “한국은 아시아에서 가장 역동적인 경제구조를 갖고 있다. 특히 첨단과학이나 통신산업에 대한 투자, 발전은 무척 인상적이다. 최근 삼성전자 수원공장을 방문했는데 반도체 강국의 입지를 한눈에 확인할 수 있었다. 정부가 성장 가능성이 높은 분야를 잘 선택해 집중 육성한 것도 큰 도움이 됐다.”라고 설명한다. 그리고 “다만 2만 달러 진입엔 전제조건이 있다. 정부가 규제를 풀고 시장친화적인 정책을 펼쳐야 한다. 작은 정부가 곧 경제성장의 전제조건이다. 노동친화적인 정책으로 기업의 입지가 줄어들면 2만 달러 시대는 그만큼 멀어지게 된다.”라고 충고한다.[116]
이상에서 많은 연구결과와 사례들을 살펴보았지만, 두부 자르듯 명쾌하게 결론이 나오지 않는다. 민주주의가 경제성장에 도움이 되는지 장애가 되는지 하는 문제는 아직도 많은 후속 연구와 고민이 필요한 부분이다. 하지만 현재로서는 배로의 주장이 그래도 가장 포괄적이다. 민주화 초기에는 경제성장에 도움이 되지만 과도한 민주화는 오히려 장해가 된다는 논지다.
물론 이러한 해석은 현상에 이론을 끼워 맞춘 억지춘향 같은 느낌도 들지만 현재로서는 그 외에 달리 설명할 대안이 없다. 옥스퍼드대학교의 사회인류학자인 에반스-프리차드(Edward Evans-Pritchard)는, 사회과학에서 유일하게 보편화할 수 있는 것은 사회과학에서 어떤 무엇도 보편화할 수 없다는 사실이라고 했다. 그리고 케임브리지대학교의 경제학자인 로빈슨(Joan Robinson)은, 경제학에서는 어떤 것이 진실이라면 그 반대 역시 진실일 수 있다고 했다. 몇몇 석학의 경구를 핑계 삼을 따름이다.
제3장. 우리는 왜 성장해야 하나?
오해: 성장과 분배는 상충(trade-off) 관계다. 진실: 성장과 분배는 상호보완(win-win) 관계다. 이유: 성장률이 높아지면 소득불균형이 해소되고, 반대로 성장률이 낮아지면 소득불균형은 악화된다. 우리가 경제성장을 해야 하는 이유는 소득불균형을 해소하고, 국가부채를 조기에 갚아야 하며, 고령사회에 대비하는 한편, 통일비용을 충당할 재원을 마련해야 하기 때문이다. |
1. 서유럽에 확산되는 우파 정권
199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빨갛게 물들었던 서유럽 지도가 새 밀레니엄을 맞아 <그림 3-1>처럼 파란색으로 변하고 있다.
<그림 3-1> 서유럽 국가의 정권 변화 현황
1990년대 후반만 해도 서유럽의 대부분 국가들은 중도 사회민주주의(中道 社會民主主義, 이하 社民主義)를 표방한 좌파정권이 집권했다. EU 가입 15개국 중 11개국에서 좌파정권이 집권했고 EU 비회원국인 노르웨이, 스위스, 아이슬란드를 포함하면 서유럽 18개국 중 13개국에서 좌파정권이 집권했다.[117]
그러던 서유럽국가들이 몇 년간 혼돈의 가장자리에 빠져들더니 1999년부터 잇달아 좌파정권이 몰락하고 그 자리를 우파정권이 채우고 있다. <표 3-1>에서 보듯 18개국 중 12개국에서 우파정권이 이겼고 좌파정권은 영국, 독일, 스웨덴, 벨기에, 그리스, 아이슬란드 등 6개국만 남았다. 그 중에서 영국과 독일도 말이 좌파지 영국의 블레어(Tony Blair) 수상이나 독일의 슈뢰더(Gehard Schroeder) 총리가 내놓는 정책은 주변의 우파정권이 무색할 정도로 분배나 사회복지보다는 성장과 시장경제를 지향하는 우파 성향을 보인다. 결국 실질적으로는 4개국에서만 좌파정권이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결국 좌파정권은 ‘13:5’라는 절대 우위에서 ‘4:14’라는 절대열위로 추락했다.
<표 3-1> 서유럽국가 정권의 성격
룩셈부르크, 아일랜드, 스위스 등 3개국은 예나 지금이나 계속 우파정권이 유지되고 있으며 9개국이 좌파에서 우파로 선회했다. 스페인은 가장 먼저 1996년에 좌파인 사회노동당을 누르고 우파인 국민당이 집권했으며, 1999년에는 오스트리아가, 2001년에는 이탈리아, 덴마크, 노르웨이가, 2002년에는 포르투갈, 네덜란드, 프랑스가, 마지막으로 2003년 3월에 핀란드에서 우파가 정권을 장악했다.
2002년 4월에 있었던 프랑스의 대통령 선거 과정에서는 현재 대통령인 시라크(Jacques Chirac)가 19.7%로 1위를 고수한 반면 의외로 극우정당인 민족전선의 르팽(Jean Marie Le Pen)은 17.0%를 얻어 2위를 했으며 좌파인 사회당의 조스팽(Lionel Jospin) 후보는 16.1%로 3위에 그쳐 전 세계에 충격을 던져주었다.
독일의 경우 현재 좌파인 사민당과 녹색당이 연합정부를 구성하고는 있지만 2001년 9월에 함부르크에서, 2002년 4월에 작센-안할트에서, 2003년 2월에 니더작센 주와 헤세 주의 선거에서 사민당이 연속적으로 패하여 우파인 기민당이 세력을 넓혀가고 있다. 니더작센 주는 슈뢰더 총리의 정치적 고향인데도 차기 사민당의 리더로 각광받는 핵심적인 인물을 내고서 고배를 마셨다.
이처럼 서유럽에서 좌파정권이 맥을 추지 못하는 반면 우파정권이 약진하는 이유는 대개 네 가지로 정리된다.
첫째, 유럽통합이 급속도로 진전된다. 유럽통합의 주도세력들이 내세우고 있는 경제정책 기조는 전통적인 유럽대륙 방식과는 완연히 다르게 자유화, 규제완화, 공기업 민영화 등 영미식 신자유주의의 전형적인 색채를 보인다. 노동 측면보다는 자본 측면에 더 많은 비중을 둠으로써 노동세력을 약화시키고 복지 프로그램도 축소하며 정부의 시장개입도 줄임으로써 기존의 좌파세력은 기반이 약화될 수밖에 없다. 급기야 최근 들어서는 좌파정권들이 절대선(絶對善)으로 여겼던 ‘복지국가’라는 이념 대신에 ‘국가경쟁력’을 우선시하는 쪽으로 무게의 중심이 이동한다. 2004 년 6월 1일에 동구권 8개국과 지중해 2개국이 추가로 EU에 가입하면 EU 회원은 25개국으로 늘어나고 회원국 간의 경쟁이 더욱 치열해져 우경화 경향은 더욱 급물살을 탈 가능성이 높다. 2003년 6월에 EU는 공동농업정책(CAP, Common Agricultural Policy)을 개선하는데 합의했고 이는 도하라운드의 농업협상 진전에 도움이 될 것이며 유럽의 우경화가 플러스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다.
둘째, 소위 ‘시계추 효과’ 때문이다. 전통적으로 서유럽은 성장을 표방하는 우파정권과 분배를 중시하는 좌파정권이 시계추처럼 주기적으로 정권을 주고받는다. 근본적으로 정치권에 대해 불신감을 갖고 있는 서유럽 국민들은 좌우를 번갈아 선택함으로써 지속적인 변화를 추구하는 경향이 있다. 1960~1970년대는 좌파정권이 득세했고 1980년대~1990년대 중반까지는 우파정권이, 그 후 1990년대 후반에는 좌파정권이 득세했다. 하지만 21세기 들어서 경기가 침체되고 실업률이 급상승하는 등 경제상황이 악화되자 보수회귀 성향이 표출되면서 다시 우파정권이 득세한 것이다.
셋째, 집권 좌파의 실정(失政)에 대하여 국민들이 불만을 표출했다. 좌파정권이 권력을 장악한 이후 유럽 경제는 급속히 침체 국면에 빠져들었으며 회복 가능성마저 불투명해지고 실업률까지 증가하면서 사회불안이 가중되었다. 또한 좌파정권은 노령화에 따라 증가일로에 있는 사회복지비용을 마련할 뚜렷한 대책을 내놓지 못하는 등 사회복지제도 운영에 한계를 노출했으며, 재정적자가 심해지자 캐치프레이즈로 내걸었던 복지혜택을 축소할 수밖에 없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더욱이 <그림 3-2>처럼 1990년대 후반에 좌파정권이 집권한 후 경제성장률이 하락하고 미국과의 경제력 격차가 확대되자 국민들은 좌파정권에 대한 불신이 극에 달했다.
<그림 3-2> EU의 경제지표 추이
미국의 노동생산성 증가율은 1990년대 후반에 2.5%까지 올라갔지만 EU의 노동생산성은 1990∼1995년에 2.0%, 1995∼2000년에 1.3%로 답보상태다.
넷째, 외국인 노동자 유입 문제를 제대로 처리하지 못했다. EU 15개국은 매년 70만 명에 이르는 이민자를 정식으로 받아들이고 있지만 알바니아 등 동유럽국가와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등으로부터 매년 50~70만 명의 불법이민자가 유입되어 현재 EU 내에는 약 3백만 명의 불법이민자가 체류하고 있다. 이로 인해 고용불안, 범죄, 마약 등 여러 가지 사회문제가 연일 언론에 보도하고 있으나 좌파정권들의 대응은 답보상태를 면치 못하고 있다.
어쨌든 이러한 서유럽국가들의 우경화 추세는 현재 “서유럽 국가들의 사민주의를 철저히 벤치마킹해야 한다”는 국내 일각에서 일고 있는 주장에 대해 경종을 울린다. 서유럽국가들은 그들이 동경하는 좌파적 사민주의의 폐해에서 벗어나 이제는 우파로 돌아서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
1) 영국 블레어 정권의 우경화
현재 영국은 좌파인 노동당이 정권을 장악하고 있으며 수상인 블레어(Tony Blair)의 노선은 ‘제3의 길’(The Third Way)로 요약된다. 블레어는 1994년 7월에 젊은 정치인으로 노동당 당수에 취임하자마자, 이제껏 노동당은 경제정책에서 실패했다고 인정하고 오히려 개인, 경쟁, 기업을 강조하는 보수당 성향의 정책으로 전환한다. 노동당 내부에서 강한 비판이 일었지만 1997년 5월 총선에서 압도적인 승리로 18년 만에 정권 교체에 성공한다.
블레어는 수상에 취임하자, 전통적으로 노동당이 계승해온 사민주의나 또는 그 반대편에 서 있는 월스트리트 방식의 신자유주의와는 다른 새로운 정치-경제적인 이념이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소위 ‘제3의 길’을 강조하면서 좌파 성향의 노동당 정책을 바탕에 깔되 우파 성향의 보수당 정책을 전향적으로 수용한 ‘신노동당(New Labour)’ 정책을 공식노선으로 채택한다. 이는 기존의 사민주의가 복지국가를 지향하면서 야기되는 여러 문제점은 물론 신자유주의의 한계까지 극복한다는 취지다. 복지국가에서는 재정적자가 확대되고 관료계층이 비대해져 ‘큰’ 정부가 만들어지며, 노동자들의 근로윤리가 해이해져 결국은 국가경쟁력이 약화된다. 반면 신자유주의에서는 빈익빈-부익부가 심화되고 시장경쟁 지상주의, 효율 지상주의, 개인 중심주의가 횡행한다. 블레어는 유럽대륙식의 복지병(福祉病)도 피하고 지지기반인 노동자와 중산층의 호응도 잃지 않겠다는 의도에서 ‘제3의 길’을 표방한 것이다.
블레어의 정책은 사회학자인 기든스(Anthony Giddens)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블레어는 기든스가 1994년에 쓴 『좌파와 우파를 넘어서』[118]라는 책을 읽고 번뜩이는 영감을 얻어 스스로 ‘제3의 길’이라는 정치적 개념을 노동당의 새로운 이념적 기반으로 천명했으며, 기든스가 블레어의 정치적 입장을 이론적으로 체계화하여 펴낸 책이 1998년에 나온 『제3의 길』이다.[119]
‘제3의 길’은 기본적으로 사적 소유와 시장경제를 인정하는 자본주의 체제를 바탕으로 하되 노동 소외, 생태계 파괴, 빈부격차, 불평과 같은 부작용을 사회적으로 치유하고자 노력한다. ‘제3의 길’에서는 시장경제를 존중하면서도 국가의 고유한 역할을 강조한다. 예컨대 교육은 국가 이데올로기의 원천이므로 시장에만 맡길 수 없다는 것이다. 또한 자유와 책임의 관계를 분명히 하고 노사 간의 대립보다는 파트너십이 기초되어야 한다는 공동체 의식, 그리고 출신계급보다는 재능을 강조하는 메리토크러시(meritocracy)를 강조한다.[120] 블레어는 21세기 유럽의 좌파이념이 가야 할 방향으로 ‘유럽 제3의 길, 새로운 중도’라는 공동선언문을 발표하면서 “오늘날 사회민주주의는 사회적 정의뿐만 아니라 경제적 역동성과 창조성 그리고 혁신의 발현을 지향해야 한다.”고 주창한다. 정부의 개입을 최소화하는 개방적인 자유시장 경제체제를 새로운 밀레니엄의 유럽 좌파주의 대원칙으로 천명한 것이다.
블레어는 경제적인 측면에서, ‘제3의 길’을 통하여 정부의 시장개입이라는 전통적인 케인즈식 관리국가의 경제정책을 포기하는 동시에 조세를 통해 부를 재분배한다는 전통적인 사민주의적 정치노선에서 탈피하기 위하여 다음과 같은 핵심적인 경제정책을 펼친다.
첫째, 거시경제의 안전성을 강조한다. 거시경제 안정의 핵심인 물가상승률을 2.5% 수준으로 낮게 유지하기 위해서 새로운 통화정책을 수립하고 그 일환으로 1998년에 영국의 은행법에 따라 영국은행 통화정책위원회에 금리결정권을 부여한다. 그리고 균형적인 재정을 유지하고 순공공부채비율(純公共負債比率)을 GDP 대비 40% 이하로 유지하는 소위 ‘지속가능한 투자준칙’을 골간으로 하는 새로운 재정정책의 틀을 확립한다.
둘째, 산업정책 목표를 네 가지로 설정한다. 혁신과 기업경쟁력 강화, 저투자 극복, 경쟁 강화, 기술토대 향상 등이다. 이를 위해 세 가지의 중점전략을 실행에 옮긴다. 첫째, 규제완화와 공정경쟁을 통한 민간기업의 역할을 강조한다. 민간기업의 투자를 촉진하기 위하여 다양한 정책을 개발하고 독점성이 높은 공익산업에서도 공정한 경쟁 개념을 주입하며, 중소기업을 지원하기 위하여 벤처기업과 중소기업에 법정지체이자를 추가로 지불한다. 둘째, 투자를 늘리고 자본시장을 육성한다. 만성적인 투자부족 문제를 개선하는데 필요한 자본시장을 육성하기 위하여 종업원 지주제도와 종업원의 주식보유를 늘린다. 은행 간에 경쟁을 유도하여 저축시장의 질서를 확립하고 국내저축률 제고를 유도한다. 철저한 경쟁만이 기업의 혁신적인 성과를 가능하게 하며 국제경쟁은 국내경쟁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이므로 공정거래청의 예산을 20% 늘리고 그 역할을 강화한다. 셋째, 노동자의 숙련도를 높인다. 미래의 산업은 고숙련 지식기반산업이 주도할 것이므로 인적자본의 형성을 위하여 교육훈련에 대한 투자를 늘린다. 이와 같은 블레어의 경제정책은 과거 우파정권이었던 대처 전 수상이 펼친 안정과 성장을 우선시하는 경제정책을 유지 발전시킨 것으로 평가된다. 시장에서 정부 개입을 최소로 줄이고, 산업을 선별적으로 직접 지원하기보다는 간접 지원을 통해 일반적인 산업환경의 개선에 초점을 맞춘다는 방향성은 대처와 유사성을 보인다. 다만 블레어는 사회적 투자와 교육훈련과 관련해서는 보다 적극적인 국가의 역할을 강조한다는 차원에서 차별성을 보인다.
셋째, 노사가 동반자관계를 추구하는 새로운 노사정책을 추진한다. 고용을 늘리기 위해서 경제적 효율성과 사회적 포용 사이에 적절한 균형이 필요하므로 이를 위해 여섯 가지의 ‘고용계획원칙’을 발표한다. 첫째, 경제적 성장과 안정을 추진하기 위해서 물가억제를 위한 새로운 통화정책과 황금률의 재정정책을 유지한다. 둘째, 인적자본 향상을 위한 투자를 늘리고 직업교육을 강화하기 위하여 민간투자자들과 협력한다. 셋째, 청년층과 장기실업자들을 위하여 ‘일하기 위한 복지 프로그램’을 도입하고 기존의 조세와 급여체계도 고용을 늘릴 수 있는 방향으로 개혁한다. 넷째, 적극적인 노동시장정책으로 생산시장을 개혁하고 경쟁정책을 도입하여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높인다. 다섯째, 새로운 최저임금제도와 노동시간지침을 도입한다. 여섯째, 사회에서 소외된 개인이나 집단을 위하여 정부가 사회정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한다.
블레어는 ‘제3의 길’을 통하여 영국 경제는 세계 경기와 유럽 경제의 침체에도 불구하고, 1980년대의 대처 시절보다는 성장세가 둔화되었지만, 안정적인 경제성장 기반을 다진다. 독일과 비교하면, 영국은 1997년에 3.4%의 높은 성장세를 보인 반면 독일은 1.4%의 성장에 그친다. 독일의 성장률이 2000년에 상승하여 영국과 격차를 줄였지만 2001~2002년에 다시 그 격차를 벌린다. 실업률도 대처 정권에 이어 지속적인 하향세를 보이고 있으며 2000년부터 5% 대로 안정적인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이는 7~8% 대를 보이고 있는 독일과 프랑스에 비하면 상당히 낮은 수준이다.
2) 독일 슈뢰더 정권의 ‘아젠다 2010’
독일은 슈뢰더가 집권한 1998년 이후 경제상황이 계속 악화되어 급기야 2002년 4/4분기에 이어 2003년 1/4 분기에 연이어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하여 ‘기술적 침체’ 또는 ‘미니 침체’(mini recession) 상태에 빠졌다. 독일 경제는 <그림 3-3>처럼 2000년에 2.9%의 높은 성장을 했으나 2001년의 0.6%에 이어 2002년에 0.2%로, 1993년에 -1.3% 성장률을 기록한 이래 가장 낮은 수준이다.[121] OECD는 독일 경제에 대해 디플레이션 가능성까지 경고하고 있으며, IMF 역시 독일 경제가 회복 조짐을 보이지 않는 상태에서 스태그플레이션 가능성을 지적한다.
<그림 3-3> 독일의 주요 경제지표
실업률도 슈뢰더가 당초 내걸었던 공약을 상회한다. 슈뢰더는 1998년 집권 당시에 실업자 수를 350만 명 수준까지 줄이겠다고 공약했지만 2003년 3월 현재 실업자 수는 460만 명이며 실업률은 11.1%로 슈뢰더 정권이 출범한 후 가장 높고, 서독 지역의 실업률은 8.8%, 동독 지역은 19.6%에 이르는 등 최악의 상태를 보이고 있다. 정부의 재정적자도 2002년에 GDP 대비 3.6%로 EU의 목표치인 3.0%를 훨씬 넘었으며 유럽에서 가장 높은 수준이다. 현재 독일 정부는 2006년까지 재정적자를 GDP의 3% 이내로 낮추지 못할 경우 EU 집행위로부터 경제적 제재가 불가피하다는 경고를 받고 있다. 또한 정부 부채의 규모는 2003년에 당초 계획보다 배가 늘어난 380억 유로에 이르는 등 정부의 재정상황이 갈수록 악화되고 있다.
이러한 독일 경제의 부진은 엄청난 통일 비용과 방만한 사회복지제도, 경제불황 때문이며 비효율적인 경제체질에도 원인이 있다. 독일은 강력한 제조업을 기반으로 소위 ‘라인 강의 기적’을 일구었고 사민당이 주도하는 복지국가적 전통이 강하여 강력한 노조가 존재한다. 슈뢰더는 글로벌 차원에서 디지털 경제가 확산되고 외국인투자를 유치하기 위한 국가 간 경쟁이 심화되는 상황 속에서 획기적인 개혁조치가 요구되었지만 집권 초기부터 노동자의 복지 향상과 부의 재분배 등 사민주의의 전통적인 정책을 고수했다. 그로 인해 고용과 해고가 경직화되고 노동시장의 유연성은 더욱 낮아졌으며, 관료주의가 횡행하고 규제가 더 늘어나는 동시에 복지 확대로 인해 비(非)임금성 노동비용이 급증하고, 인구 고령화에 따라 연금 수요가 늘어나는 문제에 직면했다. 슈뢰더는 과거에도 세율을 낮추어 경기진작을 도모했지만 효과가 나지 않자 보다 근본적인 개혁에 착수했다.
이러한 총체적인 경제난 속에서 슈뢰더가 내놓은 비방(秘方)이 ‘아젠다 2010’이다. 요컨대 기존의 좌파 정책을 포기하고 우파 정책을 펼치겠다는 의지의 표명으로서, 과도한 복지정책으로 악화된 재정적자 문제를 해결하고 노조 편향적인 정책이 양산한 실업자들을 구제하여 독일 경제를 회생시킨다는 것이다. 슈뢰더는 2003년 3월 연방의회에서 ‘평화를 위한 용기, 변화를 위한 용기’라는 제목의 정책연설을 통하여 ‘아젠다 2010’을 제안한다. ‘아젠다 2010’의 핵심내용은 기존의 노동자와 빈곤층을 위한 복지사회정책에서 탈피하고 고용보호 축소, 실업 및 의료보장 혜택 축소, 단체협상원칙 완화와 같은 시장자유주의 정책으로 전환한다는 것이다. 좌파인 사민당 정권이 우파 정책을 수용하자 정치적으로 많은 논란이 일었지만 결국 사민당은 6월 1일 전당대회에서 520명의 대의원 중 90%로부터 전폭적인 지지를 얻었으며 사민당의 연정 파트너인 녹색당 역시 지지 측으로 돌아선다.[122]
‘아젠다 2010’은 노동, 산업, 세제, 의료 및 연금, 환경, 가족 및 아동, 경제통합 및 이민, 교육 및 연구, 규제 등의 분야에서 문제점을 적나라하게 지적하고 대책을 제시한다. 핵심내용은 노조 권한을 축소하고 복지사회정책도 축소하며 기업 부담을 경감시킴으로써 기존의 ‘분배 및 복지 중시’에서 ‘성장우선’ 정책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슈뢰더는 “내일 우리의 아이들과 손자들이 먹고 살 것을 오늘 우리가 다 먹어 치워서는 안된다”라고 강조한다.[123] 고용과 해고에서 유연성을 확보하고 실업수당의 지급기간을 기존의 32개월에서 55세 이상은 18개월, 55세 미만은 12개월로 대폭 축소한다. 실업수당과 사회보장혜택을 통합하여 지방정부의 부담을 줄여준다. 경기활성화를 위해서 중소기업의 사업 환경을 개선하고 법인세를 낮춘다. 고용의 70% 이상을 담당하는 중소기업을 육성하기 위하여 상점의 영업시간 제한법을 개정하여 저녁 8시까지 영업을 할 수 있도록 하고 토요일의 영업도 허용한다. 노동자의 가처분소득을 보장하기 위하여 소득세를 19.9%~48.5%에서 15%~42% 수준으로 낮춘다. 요컨대 ‘아젠다 2010’의 골자는 독일 경제의 성장잠재력을 회복시키기 위하여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줄곧 유지해왔던 노선을 포기하여 노동시장의 규제를 완화하고 사회복지제도를 축소한 것이다.
‘아젠다 2010’은 전후 50년 만의 가장 광범위한 개혁안이며 1980년대 대처가 추진한 개혁안과 유사하다고 영국 언론들은 평한다. 유럽의 국민들도 장기적 경제난과 실업을 탈피하기 위해서는 개혁이 불가피하다고 환영했으며 독일 국민의 3분의 2는 긴급한 정책이라고 인식하지만 3분의 1은 아직도 개혁이 불충분하다고 생각한다는 설문조사 결과도 있다. 이제 막 시작한 슈뢰더의 화려한 변신이 과연 성공으로 귀착될지 여부는 차치하고라도 이러한 슈뢰더의 우경화 사례는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던진다.
2. 성장과 분배는 상호보완 관계
서유럽 국민은 왜 번갈아 가면서 좌파 정권과 우파 정권을 선택하는 것일까? 근본적으로 좌파가 내세우는 분배정책과 우파가 내세우는 성장정책을 공존할 수 없는 상충(trade-off) 관계로 보기 때문이다.
성장하기 위해서는 노동보다는 자본이 우선시된다. 그 과정에서 고도성장을 하더라도 자본가 계층과 노동자 계층 간 빈부격차가 더 벌어지면서 사회 전체적으로 분배에 대한 목소리가 커진다. ”이제는 파이를 나누어 먹자”는 것이다. 그래서 좌파 정권이 들어서 분배에 치중하게 된다. 노동자들의 임금이 올라가면서 소득 불균형이 해소되어 분배에 대한 욕구는 줄어든다. 그러다 보면 현재를 희생하고 미래를 대비한 장기적 투자는 줄어들며 당장 먹고 마시는 눈앞의 즐거움에 치중하게 됨으로써 잠재성장력이 급속히 하락하고 경기급랭으로 이어지면서 실업자가 속출한다. 그러면 “이제는 파이를 키우자”는 목소리가 커지면서 우파 정권이 들어서고 성장 위주의 정책이 채택된다. 요컨대 성장과 분배는 같이 갈 수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시계추 현상은 서유럽이라는 선진국가의 이야기다. 서유럽 국가들은 선진국으로 진입한지 이미 상당 기간이 지났고 매년 벌어들이는 플로(flow) 개념의 국민소득 중 상당 부분은 스톡(stock) 개념의 국부 형태로 나라 여기저기에 축적되어 있는 상태다. 또한 성장이 둔화된다고 해서 국민소득이 의식주 해결이 곤란한 수준으로까지 떨어질 리 없고 마이너스 성장을 한다고 해도 기존에 즐기던 수준을 조금 낮춰 잡아야 할 정도다. 한마디로 우리에게는 “부자 배부른 소리” 정도의 푸념으로 들릴 뿐이다.
한국의 사정은 다르다. 벌어놓은 것도, 축적해놓은 것도 없기 때문에 성장률이 떨어지면 실업자가 양산되고 한계 수준의 생활조차 보장받지 못하는 빈자들이 속출하며 이는 사회불안 요인으로 작용하여 민주체제나 시장경제의 기반 자체가 허물어질 가능성까지 있다.
말을 바꾸자. 국가, 산업, 기업, 사람 등 세상에 존재하는 많은 개체들이 서로 간에 관계를 설정하는 방식에는 세 가지 유형이 있다.[124] 서로가 충돌하는 경우(相衝), 서로가 함께 가는 경우(相生), 서로가 힘을 합하는 경우(相乘)다. 문화인류학자인 신시아 조바(Cynthia Joba)는 이를 ‘경쟁, 협동, 공동창조’라는 말로 표현한다. 공통점은 무언가를 ‘함께’한다는 것인데 경쟁(competition)은 함께 싸우는 것(striving together)이고 협동(cooperation)은 함께 일하는 것(working together)이고 공동창조(co-creation)는 함께 창조하는 것(creating together)이다.[125] 이를 역장(力場, force field) 이론의 시각으로 해석하면 상충은 서로의 힘이 대치하고 있는 것이고 상생은 서로의 힘이 나란히 가는 것이며 상승은 서로의 힘이 합해지는 것이다. 변화관리전문가인 대릴 코너(Daryl Conner)도 이와 유사하게 정의한다. 자기파괴형은 1과 1을 더하면 2보다 작아지고 보존형에서는 2가 되며 상승형에서는 2보다 커진다.[126]
이러한 세 가지 유형에서 유리에게 가장 익숙한 개념은 상충관계다. 경제학자들이 꿈꾸는 시장이란 ‘완전경쟁’이 이루어지는 시장이다. 우리나라의 경제법 체계에서는 치열한 경쟁만이 국가경쟁력을 높인다는 차원에서 공정거래법이 강력한 힘을 발휘하여 독과점을 규제한다. 우리는 초등학교에 입학해서부터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인간성이 형성되는 전 기간 동안 치열한 경쟁 속에서 살아왔다.
사회생활이 시작되면 그 경쟁은 더 치열해진다. 1997년에 일어난 외환위기로 인해 한국사회에 깊숙이 이식된 월스트리트 방식의 신자유주의는 카지노 자본주의(casino capitalism),[127] 샤일록 자본주의(Shylock capitalism), 피스톨 자본주의(pistol capitalism)라는 추악한 모습을 보이면서 한국 사회 전체를 치열한 경쟁의 장(場)으로 만들었다.
이와 같은 상충의 시대, 경쟁의 시대를 표현하는 단어가 ‘or’이다. 뭔가를 선택해야 한다는 의미다. 다윈이 주창한 진화론의 핵심개념은 생존경쟁과 적자생존이다. 자연은 환경변화에 적응하는 생명체를 선택한다. 지구상에 오래 살아남는 종(種)은 머리가 좋은 종이나 힘이 센 종이 아니라 환경에 적응하는 종이다. 개미는 인류보다 머리도 나쁘고 힘도 약하지만 지구상에 더 오랫동안 살았고 더 오랫동안 살아남을 것이다. 개미의 생존기간은 1억 년으로 현생인류의 3백만 년보다 30배가 길다. 『개미』의 작가인 베르나르 베르베르(Bernard Werber)의 말을 빌면 개미라는 종의 눈에 인류라는 종은 한때 지구상을 스쳐 지나가는 종족일 뿐이다.
하지만 이러한 상충의 개념과는 다르게 상생이나 상승의 개념 역시 만만치 않다. 스콧 피츠제럴드(Scott F. Fitzgerald)는 “일급의 지능을 테스트하는 것은 두 가지 상반된 생각을 하면서 동시에 두 가지 모두를 실행에 옮길 수 있는 능력을 조사한 것이다.”라고 지적한 바 있다.[128] 경영학자인 제임스 콜린스(James Collins)는 비전 있는 기업들은 ‘or’라는 악령(惡靈)에 사로잡히지 않고 ‘and’의 영신(靈神)을 맞아들인다고 주장한다. ”비전이 있는 기업들은, 역설을 쉽게 받아들이지 않고 서로 상반된 두 개의 힘이나 사상은 동시에 존재할 수 없다는 ‘or’이라는 악령에 사로잡히지 않았다. ‘or’의 악령은 많은 사람들에게 사물은 ‘A and B’가 아니라 ‘A or B’라는 식의 흑백논리를 신봉하도록 강요했다. 하지만 비전기업들은 여러 가지 극단을 동시에 포용하는 능력인 ‘and’의 영신(靈神)을 맞아들임으로써 ‘or’의 악령에서 벗어났다. 비전기업들은 ‘A or B’에서 하나를 선택하는 대신에 ‘A and B’를 동시에 취할 수 있는 지혜를 터득했다.”[129] 잭 웰치(Jack Welch)가 이끈 GE가 초우량기업인 이유도 여기에 있다.
웰치는 재임 20년 동안(1981~2001년) 두 가지 유형의 개혁을 했는데 전반 10년간은 구조를 뜯어고치는 하드(hard) 차원의 개혁을 했고 후반 10년은 조직의 가치관과 시스템을 바꾸는 소프트(soft) 차원의 개혁을 실천에 옮겼다. 후반부 소프트 개혁에서의 진수는 공룡같이 거대한 GE 조직을 벤치기업처럼 기민한 조직으로 바꾼 것이다. 웰치가 강조하던 소위 3S 전략은 기민함(speed)과 단순함(simplicity) 그리고 자긍심(self-confidence)으로 구성된다. 거대한 공룡의 움직임은 둔할 수밖에 없고 빠르기 위해서는 작아져야 한다는 ‘or’의 악령에서 벗어나, 거대한 조직이라도 기민하게 움직일 수 있다는 ‘and’라는 영신을 맞았던 것이다. 이것이 바로 패러독스 경영(paradox management)의 핵심이다. 바야흐로 세상은 ‘or’의 시대에서 ‘and’의 시대로 바뀌고 있다.
다시 서유럽 이야기로 돌아가자. 재미있는 일은 서유럽에서는 성장과 분배가 서로 상충 관계를 보이지만 한국에서는 성장과 분배가 함께 간다는 사실이다. 한국의 과거 경험을 보면 고도성장기에는 소득분배가 개선되었고 경제 불안기에는 소득분배가 악화되는 추세를 보였다. 성장과 분배는 상충관계가 아니라 상승관계다. 서유럽 국가들은 ‘or’이라는 악령에 사로잡혀 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and’라는 영신을 맞이할 기회가 열려 있다.
한 나라의 소득분배의 불평등을 나타내는 대표적인 지표는 지니계수다.[130] 이를 기준으로 보면 한국은 경제발전 초기인 1960년대 후반에 산업화와 함께 노동집약적인 제조업이 육성되면서 소득분배가 개선되었으며, 또한 1980년대 중반 이후부터 외환위기 이전까지 고도성장을 하던 시기에도 소득분배가 양호했다. 최근의 상황을 보면 <그림 3-4>처럼 한국은 1970년대부터 1980년대 초반에는 두 차례 오일쇼크를 거치면서 경제가 불안해지자 소득분배는 악화되어 지니계수가 1979년의 0.306에서 1985년에는 0.312로 올라갔다. 그 후 1980년대 중반부터 경제가 고도로 성장하고 중산층이 확대되면서 소득분배는 개선되어 지니계수는 1985년의 0.312를 정점으로 1997년에는 0.283까지 떨어졌다. 이 시기에는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의료보험과 국민연금이 1988년에 실시되었고 고용보험이 1995년에 도입되었다. 하지만 1997년에 외환위기가 일어나자 소득분배 구조는 크게 악화되었다. 경기침체에 따라 대량실업사태가 생기면서 임금을 기반으로 하는 중산층이 급격히 붕괴했다.
<그림 3-4> 한국의 경제성장률과 지니계수 추이
반면 금융소득을 기반으로 하는 자산가들은 전례 없는 고금리 혜택으로 소득이 증가한 결과 소득불균형은 더욱 악화되었다. 이후 경제는 회복되었지만 빈익빈-부익부 현상은 개선되지 않았고 최근에는 무리한 가계대출과 과소비에 따라 신용불량과 가계파산이 확대되면서 지니계수는 1997년 0.283에서 2002년 다시 0.319로 올라갔다.
이러한 과거 경험이 우리에게 던지는 시사점은 명확하다. 서유럽에서는 성장과 분배가 상충 관계일지 모르지만 최소한 한국에서만은 성장과 분배는 상승 관계다. 즉 성장과 분배가 ‘or’라는 선택의 대상이 아니라 ‘and’로서 서로 시너지를 낸다는 의미다.
중요한 것은 순서 문제다. 분배를 잘하면 성장은 자연적으로 따라오는 것인지, 아니면 성장을 하면 분배구조가 개선되는 것인지 하는 문제다. 앞서 살펴보았듯이 분배가 우선시되면 성장은 희생된다. 이는 소비와 투자의 문제로 재해석할 수 있는데, 분배는 현재의 소비를 즐기기 위한 것이고 투자는 현재의 소비를 희생하는 대가로 미래의 성장을 꿈꾸는 일이다. 그렇다면 답은 명확하다. 비전에서는 성장과 분배를 같은 비중으로 가져가되, 실행전략은 우선 성장을 하면 분배는 자동적으로 따라오며, 파이를 나누는 것보다는 성장친화적 정책을 통하여 전체 파이를 키우는 것이 우선이다.
과거 복지지향형을 추구했던[131] 스웨덴, 핀란드, 노르웨이, 덴마크 같은 북구 제국들은 전 국민의 소득보장과 공공정책에 의한 소득재분배를 강조함으로써 소득불균형 문제가 심각하게 일어나지 않는다. 이와는 반대로 시장지향형을 추구하는 미국, 영국, 캐나다, 호주 같은 앵글로색슨 계열의 국가들은 소득의 절대수준은 높지만 분배를 위한 정부의 역할이 적어 상대적 소득불균형이 심각한 문제로 대두된다. 그 중간에 있는 절충형이 한국, 일본, 이탈리아, 프랑스 같은 나라들이다.
물론 두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을 수만 있다면 더 좋은 일은 없다. 하지만 복지지향형 국가들은 모두 선진국의 반열에 들었지만 아직도 한국은 혼돈의 가장자리에 빠져 있어 한국이 세계에서 가장 완벽한 사회보장제도를 확보하고 있는 스웨덴처럼 북구식 복지국가로 간다는 시도는 아직 시기상조다.
스웨덴은 1955년에 ‘국민건강보험법’이 제정되었고 1974년에 사회보장에 관련된 광범위한 개혁이 시행되었다고 하지만, 현재 한국의 수준은 <그림 3-5>처럼 1974년의 스웨덴에 비해 인당 국민소득(구매력 기준)이 절반 수준이므로 분배를 강조하는 정책은 성장의 발목을 잡을 따름이다.[132]
더욱이 실업률을 낮추기 위해서라도 성장이 필요하다. 성장을 해야 일자리가 만들어지며, 경험치로 보면 잠재성장률이 1% 올라가면 실업률은 0.3% 하락한다.
<그림 3-5> 한국과 스웨덴의 국민소득 비교(구매력 기준)
지난 2001년 9월에 부임한 후 2년간 서울 근무를 마치고 2003년 8월 홍콩으로 떠난 IMF의 폴 그루엔발드(Paul Gruenwald) 서울사무소장은 한국이 국민소득 2만불 국가에 진입하기 위해서 필요한 조건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대해 “무엇보다도 생산성을 높이기 위한 성장 주도의 정책이 필요하다. 한국 정부나 한국인들이 FDI에 대해 개방적 태도를 가져야 하고,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고 답한다. 하버드대학교의 로버트 배로 교수도 2003년 7월 조선일보가 기획한 대담에서 다음과 같은 언급을 한다.[133] ”수치로만 보면 한국의 빈부격차는 그다지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미국보다 훨씬 낫고 일본과 비슷한 수준이다. 그러나 앞으로는 중요한 문제로 떠오를 수 있다. 특히 통일이 되면 빈부격차 문제가 정치적 이슈가 될 것이다. 만약 브라질이나 남아공이었다면 부의 재분배가 가장 시급한 문제일 것이다. 하지만 한국에서 부의 재분배가 왜 강조되는지 솔직히 궁금하다. 왜 부의 재분배가 문제가 되는지 모르겠다.”
요컨대 한국은 소득분배 구조를 개선하고 실업률을 낮추기 위해서라도 성장이 시급하다. 그 외에도 한국 경제는 반드시 성장해야만 하는 여러 가지 당위성을 갖고 있다. 외환위기 이후 급증한 국가채무도 빨리 갚아야 하고, 조만간 다가올 고령사회에도 대비해야 하며, 통일비용을 마련하기 위해서라도 성장을 해야 하는 것이다.
3. 외환위기로 진 국가 빚을 갚아야 한다
한 나라의 경제가 안정되려면 정부의 재정부터 튼튼해야 한다. 남미 여러 국가나 유럽 후진국들의 경제가 침체된 것도 재정악화가 핵심원인 중 하나다.
한국의 정부재정은 외환위기 이후 3년 동안 재정적자 상태를 보이다가 최근에야 흑자로 전환하여 현재는 그런대로 안정적인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재정수지는 1960년대 중반부터 박정희 대통령의 주도로 여러 차례에 걸친 경제개발계획을 추진해오면서 투자재원이 부족하여 1970년대 말까지는 적자재정이 지속되었지만 1982년 이후에는 균형재정에 근접하면서 외환위기 이전까지 GDP 대비 1% 내외의 적자 또는 흑자를 보였다.
하지만 외환위기가 일어나자 실업자 구제 등 사회안전망을 확보하고 경기를 부양시키는 과정에서 재정적자가 큰 폭으로 증가하여 1997∼1999년의 3년 동안 재정적자가 40조원 규모로 누적되었다. 이후 서서히 경제가 회복하면서 조세수입이 증가하여 2000∼2001년에는 GDP 대비 1.3%의 재정흑자로 전환했다.
재정적자는 결국 국가채무로 누적된다. 외환위기 이전인 1996년에 국가채무는 GDP 대비 12.0%였으나 외환위기 이후 지속적인 증가세를 보여 2002년에는 22.4%까지 증가했다. 이는 OECD 국가 평균인 73.0%에 비해서는 아직 낮은 수준이며 영국(50.7%), 미국(59.7%), 독일(60.2%), 프랑스(65.0%)의 절반에 미치지 않는다.
하지만 외환위기의 부작용을 치유하는 과정에서 부실처리와 금융기관 정상화를 위하여 159조원에 달하는 대규모의 공적자금을 투입함으로써 국가가 지급을 보증하는 국가보증채무도 1996년에 GDP 대비 1.8%에서 2002년에는 17.2%로 급증했다. 만약에 국가보증채무의 대부분을 점하고 있는 150조원의 공적자금이 제대로 회수되지 않는다면 국가채무로 전환된다. 현재 공적자금 회수율은 34% 수준(2002년 기준)으로 상당히 저조한 실적을 보이고 있으며, 향후 정부가 감당해야 할 소위 ‘재정부담 귀착액’[134]을 2001년 현재가치로 환산하면 회수율을 10∼50%로 가정할 경우 무려 70∼100조원에 달하는 규모다.
이러한 재정부담 귀착액을 경제에 부담을 주지 않고 정부의 재정건전성을 유지하는 상태에서 갚아가려면 <그림 3-6>처럼 한국 경제는 앞으로 최소한 5% 이상의 성장세를 지속해야 한다.
<그림 3-6> 장기 경제성장률에 따른 재정수지 비교[135]
만일 경제성장률이 중장기적으로 4%대 이하로 떨어질 경우에는 부채증가액이 경제성장분을 초과하는 등 정부재정에 심각한 타격을 줄 수도 있다. GDP 대비 재정수지가 2001년 -1.5%에서 2030년에는 -3.3%로 악화되고, GDP 대비 부채 비중이 2001년 22.4%에서 2030년에는 42.8%로 상승할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경제성장률이 5% 수준을 유지할 수만 있다면 재정건전성이 어느 정도 유지된다. GDP 대비 재정적자는 2003년까지 증가한 후 다시 하락하여 2030년에도 현재 수준인 2.6%를 유지할 것이다.
재정적자가 생기고 국가부채가 늘어난다는 사실은 현재 우리들이 잘 살기 위해 미래의 자손들에게 빚을 넘겨주는 꼴이다. ‘가산탕진(家産蕩盡)한 부끄러운 조상’이 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고도성장을 해야 한다.
4. 고령사회를 준비해야 한다
현재 한국에서는 세계 역사상 유래를 찾을 수 없을 만큼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65세를 넘는 노인층 인구가 전체 인구 중에서 7%를 넘으면 고령화(高齡化)사회라 하고, 14%를 넘어서면 고령사회, 20%를 넘어서면 초(超)고령사회가 된다.
한국은 <그림 3-7>처럼 이미 2000년에 고령화사회에 들어섰으며 지금 추세로 간다면 2019년에 고령사회로 진입할 것으로 전망된다.
<그림 3-7> 인구구성의 변화 전망
현재 고령화로 골치를 썩이고 있는 여러 선진국들이 고령화사회에서 고령사회로 진입하는데 40∼115년이라는 기간이 소요되었지만, 한국은 19년만에 고령사회에 진입한 후 2026년에는 노인층의 비중이 20%를 넘어 초고령사회로 진입할 것이다.
고령화가 진전되면 사회 전체가 부양해야 할 부양인구가 늘어나는 반면 부양을 책임질 생산활동인구가 감소하며 이는 경제성장의 둔화요인으로 작용한다. 지금 추세대로 가면 생산가능인구 1백명이 부양해야 하는 고령인구의 비율이 2000년 10.1명에서 2007년 13.7명, 2010년에는 14.8명으로 급증할 것으로 보인다. 더욱이 생산가능인구 자체도 고령화되어, 생산가능인구 중 60∼64세의 비중이 2000년 5.4%에서 2007년에 5.6%로, 2010년에는 6.2%로 늘어난다.
인구의 고령화는 사회 전체의 노동생산성을 떨어뜨리고 저축률을 낮추어 경제성장률을 둔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이를 성장이론 측면에서 살펴보자. 신고전주의 경제학자들이 즐겨 쓰는 생산방정식에서 성장률을 좌우하는 변수는 투자증가와 노동증가 그리고 생산성향상(기술발전) 등 세 가지며 노동증가율과 투자증가율을 가중평균한 후에 생산성향상률을 더하면 경제성장률이 나오는데,[136] 고령화는 세 가지 변수 모두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첫 번째, 고령화가 되면 투자율이 낮아진다. 경제성장을 위해서는 투자가 필요하고 그 재원을 확보하는 방법은 국내 저축에 의존하던지 아니면 외자유치로 해결한다. 라이프사이클상에서 보면 사람들은 젊을 때 돈을 벌어 저축을 해놓고 노인이 되면 이를 소비하는 게 상식이므로 노인층의 저축 성향이 생산가능인구보다 상대적으로 낮기 마련이다. 2000년에 가구주(家口主)의 연령이 60세 이상인 가구의 저축률이 20.2%로 전체 가구의 평균 저축률인 26.2%보다 낮게 나타난다. 결국 노인층의 비중이 높아져 고령화가 진전되면 국내 저축률이 하락하여 투자재원이 부족해지고 이는 경제성장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두 번째, 고령화가 되면 노동증가율이 둔화된다. 만약 나라 전체 인구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다면야 별문제겠지만 인구증가가 답보하는 상태에서 생산가능인구의 비중이 줄어든다는 것은 생산가능인구의 절대숫자가 줄어든다는 의미다. 이는 노동투입증가율을 감소시키므로 당연히 경제성장률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더욱이 인당 국민소득 측면에서 보면, 분모가 되는 전체 인구는 고정되어 있는 반면 분자가 되는 GDP를 만들어내는 인구가 줄어들게 되므로 부정적인 영향이 더욱 크다.
세 번째, 고령화는 생산성 향상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국가 전체의 생산성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는 다양하며 주장도 가지각색이지만 대개 몇 가지로 요약된다.
첫 번째, 스탠포드대학교의 폴 로머(Paul Romer)나 시카고대학교의 로버트 루카스(Robert Lucas) 등이 주창한 내생적 성장이론(endogenous growth theory)에서는 아이디어, 기술, 지식, 교육, 체험학습(learning-by-doing), 인적자본(human capital) 등을 생산성 향상의 핵심요인으로 본다.[137]
두 번째, 리처드 넬슨(Richard Nelson) 등은 인적자본을 투입물 같은 투자 객체(客體)라는 차원을 넘어 혁신을 이끌어가는 주체(主體)로 인식하는데,[138] 경제성장은 혁신의 증가율에 좌우되기 때문에 인적자본의 양적인 증가보다는 주체로서의 역할이 더욱 중요하다.
세 번째, 사회적 역량(social capability) 또는 사회적 인프라(social infrastructure), 제도품질지수(index of institutional quality)가 중요하다. 사회 전반적으로 잘 정비된 법체계와 법치주의의 효력, 유용 가능성 축소, 사회 전체의 유인체제 정비, 국민의 국제 언어 구사능력 제고가 필요하다. 경제정책에서는 안정적인 환율정책과 물가정책, 국제무역 개방과 교역량 증대 등이 요구되며 정부 차원에서 낮은 정부지출과 재정적자 감소, 정부 관료의 능력 향상, 부패 척결이 선결되어야 한다.[139]
이 모두를 포괄할 수 있는 개념이 아마 ‘혁신(innovation)’일 것이다. 인적자본이나 교육은 혁신의 투입물이고 기술과 지식은 혁신의 산출물이며 인적자본은 혁신의 주체다. 사회적 역량이나 인프라는 혁신의 토양이다. 단언할 수는 없지만 고령화가 진전되어 사회가 늙어지면 사회 내부에서 혁신이 일어날 가능성은 낮아질 것이다. 요컨대 고령화는 투자와 노동의 증가를 둔화시키고 사회 전체의 혁신력을 저하시킴으로써 경제성장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한걸음 더 나아가 고령화는 <그림 3-8>처럼 건강보험이나 국민연금의 재정을 고갈시킨다.
<그림 3-8> 국민연금과 건강보험의 적립금 전망
건강보험은 이미 2001년에 적립금이 적자로 전환되었으며 고령화에 따라 노인층의 의료비가 계속 증가하여 앞으로 국가재정에 지속적인 부담이 될 것이다. 또한 국민연금은 당초 ‘저부담-고급여(低負擔-高給與)’ 방식으로 설계되어 2048년이면 기금이 고갈될 것으로 전망되었으나 고령화가 급속히 진행되어 당초 예상보다 앞당겨진 2030년이면 재원이 고갈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140]
이와 같은 고령화에 대비한 근본대책은 고령화의 진전 속도를 늦추고 생산가능인구 중에서 생산활동인구의 비중을 늘리는 것이다. 하지만 인구 문제는 하루 이틀만에 해결될 일이 아니며 정부가 앞장선다 한들 그 실효성도 의문이다. 결국 가장 효율적은 방책은 성장률을 높이는 길밖에 없다.
5. 통일비용을 마련해야 한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날에도 통일이 급격히 이뤄지리라고 믿었던 독일인은 극소수였다. 그러나 10년이 지난 오늘 통일은 하나의 역사가 되었고, 통일은 폭동과 유혈사태 없이 쉽게 이뤄졌다.(…) 반면 당시 대다수는 경제적 측면에서 통일은 큰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보았다. 콜 수상도 약간의 돈만 통일 비용으로 내면 3~4년 후에는 멋진 세상이 펼쳐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하지만 경제적 통일은 정치적 통일보다 훨씬 더 어려운 것으로 판명되고 있다.”
뮌헨 IFO 경제연구소의 한스-베르너 진(Hans-Werner Sinn) 소장이 『독일의 경제적 통일: 10년 후의 평가』에서 통일이 독일에 가져다준 경제적 부담에 대해 언급한 부분이다.[141]
그때가 언제인지 모르지만 미래에 남한과 북한이 통일될 것이라면 우리는 통일 가능성에 대비해야 한다. 많은 준비가 필요하겠지만 반드시 짚어야 할 부분이 경제적인 측면에서 통일비용 문제다. 추정 방식에 따라 통일비용은 많은 편차를 보이지만 최소한 북한의 사회간접자본을 확충하고 북한 주민들의 최저생계를 유지하는 데도 일정기간 동안 막대한 비용이 소요될 것이다. 가령 동서독 방식으로 통일이 진행된다고 하자. 독일은 1990년 통일 이후에 매년 GDP의 4%를 동독 재건 등 통일비용으로 사용했고 2002년까지 통일비용으로 총 7천억불을 투입했다. 이를 한국에 대입하면 통일 후 5년간은 매년 GDP의 10%에 해당하는 5백억불을 투입해야 한다.
게다가 독일과 한국은 여러 측면에서 사정이 다르다. 통일 당시 독일은 세계 제2의 경제력을 자랑하던 국가였지만 우리는 이제야 겨우 개도국에서 탈출을 시도하고 있다. <표 3-2>처럼 독일은 통일 당시 소득이 거의 2만불에 달했지만 한국은 1만불 수준이다.
<표 3-2> 독일과 한국의 경제 수준 비교
동서독 간의 국민소득 격차는 인당 GNP 기준으로 3:1 수준이었지만 현재 남북한의 경제력 격차는 10배 이상 차이가 난다. 인구도 독일은 4:1이었지만 우리는 2:1 수준이므로 서독 인구 4명이 동독 인구 1명을 보살폈다면 남한인구 2명이 북한 인구 1명을 돌보아야 한다.
지난 역사를 보면 지역 간 격차가 매우 컸던 경우들이 종종 있다. 미국의 경우 남북전쟁 이후 1세기 동안 남부는 북부에 비해 매우 빈곤한 상황에 처했다. 대개 빈곤한 지역은 부유한 지역보다 상당히 빨리 성장해가는 경향이 있지만, 미국의 경험을 보면 지역 간 경제격차가 조정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린다. 격차는 연평균 2% 정도씩 줄어들며 격차가 절반으로 줄어드는 반감기(半減期)가 약 35년이다. 이러한 현상은 여러 나라에서 나타나는 경향이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이탈리아 경우를 보아도, 1950년에 북부의 부유한 4개 지역은 소득이 이탈리아 평균보다 70% 높았고 가난한 남부 7개 지역은 32% 낮았는데, 40년이 지난 1990년에는 북부가 30% 높았고 남부가 26% 낮은 모습을 보여 격차가 해소되는 데는 오랜 기간이 걸린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마찬가지로 독일의 경우 가장 빈곤했던 슐레스비히 홀슈타인 등 4개 지역[142]은 1950년에 독일 평균보다 소득이 23% 낮았는데 40년이 지난 1990년에는 그 차이가 13%로 줄어들었다.
하버드대학교의 로렌스 서머스(Lawrence H. Summers)는 ‘지역 간 수렴 철칙’(iron law of convergence)이라는 이름을 붙였다.[143]
로버트 배로는 독일의 경우도 마찬가지로 격차를 4분의 1 줄이는 데 14년, 절반으로 줄이는 데 35년, 4분의 3을 줄이는 데 약 70년이 소요될 것이라고 추정한다.[144] 두 세대 이상이 걸리는 것이다. 우리라고 예외일 수 없다.
이처럼 경제적 측면에서만 본다면 통일의 길은 험난하다. 관건은 통일비용의 조달 문제이지만, 재원을 마련할 수 있는 뾰쪽한 수단이 없다. 우리 경제가 고도성장을 해서 북한 주민들과 나누어 가질 파이를 키우는 길뿐이다.
본 장을 요약하면, 한국 경제가 성장해야 하는 이유는 네 가지다. 성장을 해야 분배도 가능하고 실업률을 줄일 수 있으며, 외환위기로 인한 나라 빚을 후손들에게 물려주지 않을 수 있다. 그리고 조만간 다가올 고령사회에 대비해야 하며, 통일비용을 미리 마련해야 한다. 그래서 우리는 반드시 성장해야 한다.
제4장. 우리도 ‘잘’하면 2만불로 갈 수 있나?
오해: 우리도 ‘잘’하면 2010년에 2만불이 될 수 있다. 진실: 그냥 ‘잘’해서는 2010년에 2만불로 갈 수 없다. 이유: 역사상 7년 안에 1만불에서 2만불로 간 나라는 이탈리아와 일본 두 나라뿐이다. 이들 국가도 리라화와 엔화가 비정상적으로 평가절상되면서 단기간에 2만불까지 갔다. 진정 우리가 2010년에 2만불 달성을 원한다면 역사상 전례가 없는 새로운 변화를 보여주어야 한다. |
1. 대부분 국민은 조만간 2만불 달성이 가능하다고 생각
2003년 8월 SERI가 실시한 설문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우리 국민 중 상당수가 앞으로 10년 내에 소득 2만불 달성이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145]
<그림 4-1>처럼 전체 조사대상 1천 가구의 81.1%가 향후 10년(2013년) 내에 이루어질 것이라고 응답했다. 반면, 11년 이상이 소요될 것이라는 응답은 18.3%, 불가능하다고 응답한 비율은 0.1%에 불과했다.
<그림 4-1> 국민소득 2만불 달성 시기에 대한 예상
연령별로는 큰 차이는 없으나 2030층이 4050층보다 미래성장 가능성에 대해 상대적으로 낙관적이었으며, 소득별로 보면 연간 소득 2천만 원 이상의 계층이 그 하위 계층보다 상대적으로 낙관적인 전망을 했다.
<www.seri.org>의 회원 1,353명이 자발적으로 참가한 조사에서도 전체 응답자의 86.3%가 국민소득 2만불 달성 시기를 10년 이내라고 응답하는 등 비슷한 결과가 나왔다. 향후 6~7년이 31.0%로 가장 많았고, 향후 10년 26.7%, 향후 8~9년 16.3%, 11년 이상 13.7%, 5년 내 12.3% 순이었다. 2003년 12월에 한국경영자총협회가 국내 100대 기업 최고경영자를 대상으로 조사한 「100대 기업 최고경영자 전망조사」 에서는 2만불 달성시점을 향후 10년 내로 보는 CEO가 50%로 가장 많았고 7년 내는 36%, 15년 내는 7%였다.[146] 이처럼 우리 국민의 대부분이 대개 10년 내에는 2만불을 달성할 수 있을 것이라는 낙관전인 전망을 하고 있다.
하지만 경제전문가들은 완전히 다른 견해를 보인다. 『조선경제』가 경제 관련 자문위원 15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는 2만불의 달성 시기에 대해 2010년경으로 내다본 자문위원은 2명, 2015년경이 4명, 2020년경이 2명, 나머지 2명은 정부와 국민이 하기에 달려 있다면서 특정연도를 언급하는 것을 피했다. 일부 자문위원은, 통일을 감안할 경우 2만불 달성 시기는 더 늦춰질 것이라는 견해를 덧붙였다.[147]
2. 국민소득은 어떻게 올라가는가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국민소득’은 정확히 표현하면 ‘달러화로 표시된 국민 1인당 명목 GDP’를 말한다. 용어 정의에서 몇 가지 시사점을 얻을 수 있다.
첫째, ‘달러화로 표시된’이라는 의미는 당초 자국화폐로 GDP를 계산한 후에 달러화로 환산한다는 것이다. 만약에 자국화폐의 환율이 달러 대비 평가절상되면 가만히 앉아서 국민소득이 올라가며, 반대로 평가절하되면 국민소득은 그만큼 낮아진다. 예컨대 국민소득이 1천만 원이고 원화 환율이 달러당 1천 원이라면 국민소득은 1만불이 된다. 그런데 다음 연도에 국민소득은 동일한데 환율이 5백 원으로 두 배 평가절상되었다면 국민소득은 2만 달러가 되므로 그냥 앉아서 국민소득이 2배로 올라간다. 과거 일본, 이탈리아, 독일, 네덜란드 같은 나라가 2만불로 가는 과정에서 환율이 급격히 하락하여 많은 덕을 봤다.
둘째, ‘국민 1인당’이라는 의미는 명목 GDP를 총인구로 나누어 국민소득을 구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총인구가 늘어나면 그만큼 국민소득은 줄어들 것이고 반대로 총인구가 줄어들면 국민소득은 올라간다.
셋째, 명목 GDP는 실질 GDP에 물가상승분이 더해진 것이므로 물가가 올라가면 그만큼 명목 GDP도 높아진다. 호주, 덴마크, 스웨덴 같은 나라가 물가상승이 2만불 달성에 많은 기여를 했다.
요컨대 국민소득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변수는 네 가지다. 국민소득이 증가하려면 실질 GDP가 올라가든지, 물가가 올라가든지, 총인구가 줄어들든지, 자국화폐가 달러 대비 평가절상되어야 한다.
여기서 ‘진정한’이라는 용어를 사용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진정한 국민소득의 증가는 실질 GDP가 증가하는 것이다.[148] 싱가포르, 아일랜드, 룩셈부르크, 노르웨이 같은 나라가 실질 GDP가 상승한 국가다. 그 외의 요인을 통하여 국민소득이 올라가면 그로 인한 부작용이 따르든지 후유증이 심각해진다. 가령 물가가 지속적으로 올라가면 언젠가는 2만불로 갈 수 있지만, 물가가 무조건 올라가면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경제가 파탄되므로 다른 여러 거시지표와 균형을 맞추어 물가가 올라야 경제가 붕괴되지 않고 건전한 성장을 할 수 있다. 환율이 대폭적으로 평가절상되는 것도 그 부작용이 크다. 자국 수출품의 국제적인 가격경쟁력이 그만큼 약화되므로 수출이 부진해지면서 경상수지가 악화된다. 인구가 줄어드는 것도 문제다. 요즘처럼 날로 의학이 발전되는 시대에 인구가 줄어든다는 의미는 수명은 연장되지만 소자화(少子化) 추세에 따라 출산율이 낮아지는 속도가 더 앞선다는 것이다. 그러면 당연히 노령화가 급속히 진행되어 경제성장에 여러 가지 악영향을 미친다.
<그림 4-2>는 선진국이 1만불에서 2만불로 가는 과정에서 여러 요인이 기여한 정도를 나타낸 것이다. 의외로 물가상승의 기여도가 63.0%(100% 기준)로 상당히 높게 나오며, 실질GDP 증가의 기여도는 36.6%, 환율절상은 8.8% 수준이며, 인구는 모든 국가에서 증가세를 보여 오히려 -8.3%라는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149]
<그림 4-2> 선진국의 2만불 달성 요인
3. 우리는 2010년에 2만불까지 갈 수 있나
결론부터 요약하면 앞으로 7년이 남은 2010년에 2만불까지 간다는 꿈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OECD 선진 19개국이 1만불에서 2만불까지 가는 데 걸린 기간은 평균 9.8년이다. <표 4-1>처럼 7년 미만이 걸린 나라는 이탈리아 5년, 일본 6년 등 두 나라에 불과하고 네덜란드가 13년, 호주가 15년으로 최장이다.
<표 4-1> 1만불에서 2만불까지 소요기간
이탈리아는 5년이라는 경이적인 기록을 수립했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탈리아의 고도성장은 실질GDP가 증가한 게 아니라 환율이 급등락함으로써 생긴 비정상적인 현상이다. 아마 환율이 정상적으로 움직였다면 10~14년이 걸렸을 것이다. <그림 4-3>처럼 인당 GDP가 자국화폐(리라) 기준으로는 큰 등락 없이 점진적으로 증가세를 보인 반면, 달러 기준의 인당 GDP는 급등락을 하는데 이는 급격한 환율 변동 때문이다. 브레턴우즈 체제가 붕괴된 1971년에 달러당 0.320리라의 강세에서 출발하여 1985년에 0.986리라로 가치가 지속적으로 하락하다가 1990년에 0.619리라의 강세가 된 후 다시 급증하여 1.085로 1리라를 넘어선다. 이탈리아가 1만불에서 2만불로 간 1986~1991년은 리라화가 강세를 보인 1985~1990년과 시기가 거의 일치한다. 당시 이탈리아는 유럽경제통화동맹인 EMU에 가입하기 위하여 유럽에서 기축통화 역할을 하던 독일 마르크화에 연동된 준고정환율제도를 채택하고 있었고 마르크화가 강세를 보이자 리라화 역시 덩달아 강세를 보인 것이다.[150]
<그림 4-3> 이탈리아의 GDP와 환율
만약 당시 리라화가 급격한 평가절상을 하지 않고 점진적으로 평가절하가 되었다면, 1만불에서 2만불로 가는데 10~14년이 소요되었을 것이다.[151]
한편, 일본은 6년 만에 2만불을 돌파했지만, 마찬가지로 환율이 급격히 평가절상 되는 소위 엔고(円高)의 덕을 톡톡히 보았다. <그림 4-4>처럼 1981년에 10,061불에서 연평균 12.3%라는 고도성장을 하여 1987년에 20,151불이 되었는데, 기간을 나누어 보면 1985년까지 11,311불로 정체상태에 있다가 1986년에 47.2%라는 기록적인 성장을 하고 87년에 다시 21.0% 성장하여 20,151불로 2만불을 넘었다.
<그림 4-4> 일본의 인당 국민소득 추이(1981~1987년)
이러한 이면에는 플라자합의에 따른 엔화의 급격한 평가절상이라는 예외적인 변수가 개입되어 있다. 지금이야 중국이 ‘세계의 공장’으로 불리지만 1980년대 초만 해도 일본이 그 역할을 담당했다. 일본의 해외수출은 급증하면서 미국과 유럽 각국은 “엔화가 실제 가치에 비해 저평가됐다”라면서 일본을 강력히 비난하고 시정을 요구했다. 레이건 행정부는 대일 무역적자가 1985년에 429억불에 이르는 등 재정-무역에 걸친 쌍둥이 적자를 해소하기 위하여 공화당이 전통적으로 고수해오던 강한 달러 정책을 포기하면서까지 엔고를 주도했다. 일본은 저항했지만 결국 1985년 9월 22일 뉴욕 플라자호텔에서 G5(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일본) 재무장관-중앙은행 총재가 참석한 가운데 엔화의 급격한 평가절상에 합의함으로써 역사적인 플라자합의가 탄생했다.
당시 제임스 베이커 미국 재무장관은 “달러의 가치상승이 세계 경제가 직면한 문제 가운데 하나이며, 달러 약세가 바람직하고, 엔화의 가치가 일본의 경제력을 제대로 반영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미국이 일본 측에 요구한 사항은 광범위하다. 전자제품이나 자동차 같은 제품의 수출증가 문제에서부터, 컴퓨터나 카메라와 관련된 지적소유권 문제까지 포함된다.
더 나아가 미국 제품이 일본 내에서 제대로 팔리지 않는 원인으로 일본 내부의 전통적인 유통시스템 때문이라고 적시하고 유통관행의 개선을 요구했다. 또한 일본 기업이 약진하는 이유로 게이레츠(系列) 시스템이나 주식상호보유 등을 거론하면서 일본 기업의 소유지배구조 문제까지 개선을 요구했다. 동시에 엔화의 평가절상 문제를 거론했고 1995년의 플라자합의를 통해 실제로 엄청난 폭의 평가절하가 이루어졌다.
어쨌든 당시 엔화환율은 <그림 4-5>처럼 1985년에 239엔에서 1987년에 145엔이 되었다. 국민소득은 달러 기준으로 보면 1981~1987년까지 연평균 12.4% 성장하여 6년 동안 101.3% 증가했지만, 반면 엔화 기준으로 보면 연평균 4.7% 성장하여 6년 동안 31.5%의 성장에 그쳤다.
<그림 4-5> 일본 엔화 환율변동과 국민소득 추이
일본 엔화는 1969년까지 달러 대비 360엔 수준이 유지되다가 1970년부터 변동하기 시작하는데 만일 1970년부터 엔고가 시작된 직전연도인 1985년까지의 환율변동 추이가 그 이후에도 지속되었다고 가정하면, 즉 엔고가 없었다면 일본은 <그림 4-5>처럼 1990년에야 2만불을 돌파했을 것이다. 6년이라는 기간이 8년으로 2년 더 연장되는 것이다. 요컨대 6년간 소득이 배증되는 과정에서 달러 기준으로 소득이 연평균 12.4% 성장을 했는데 이는 엔화 기준으로 소득이 연평균 4.7% 성장한 것과 달러 대비 엔화가 연평균 6.8% 평가절상된 것이 합해진 결과다.
물론 일본 경제가 단순히 환율 덕분에 2만불이 돌파한 것은 아니다. 환율이 절상되었다는 것은 세계 시장에서 일본 상품의 가격경쟁력이 그만큼 낮아졌다는 의미다. 그런데도 일본은 엔고 장벽을 슬기롭게 뛰어넘었다. 우선 내수 차원에서는 확대정책을 펼쳐 성장을 위한 기본 바탕을 확보한 위에 수출 차원에서는 수출주도형 제조업을 주축으로 세계 수준의 경쟁력 확보에 일층 매진했다. 일본 정부는 ‘큰형님(big brother)’ 역할을 했고 노동조합은 파업을 자제하여 상승게임을 벌였으며 기업은 자체적으로 경쟁력 확보에 나섰다. 경박단소(輕薄短小)라는 신개념 아래 제품개발력을 향상시켰으며, 자본가는 적극적인 설비투자에 나섰고 주거래은행은 든든한 돈줄이 되어주었다. 간판시스템과 같은 첨단생산기술을 업그레이드하고 “마른 수건도 다시 짜는” 식으로 철저한 원가절감에 매진했다. 대외적으로는 해외 마케팅에 본격적으로 나서 세계 시장을 확대해나갔다.
이러한 각고의 노력 끝에 일본은 미국과의 경제마찰에도 불구하고 <그림 4-6>처럼 무역수지(상품수지)가 급증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림 4-6> 일본의 무역수지 추이
이러한 일본의 국가경쟁력은 엔고 이후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오랫동안 일본 내부에 체화되어 있던 상태에서 외부로부터 위기가 닥쳐오자 밖으로 표출되었을 따름이다. 그렇게 보면 일본이 6년 만에 2만불을 넘었다는 것은 표면적으로 나타난 현상일 뿐 실질적으로는 그보다 훨씬 오랜 기간이 소요되었다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그래서 일본은 진정한 선진국인 것이다.
다음으로 2만불까지 가는데 8년 걸린 나라가 아일랜드, 핀란드 등 2개국이고 9년 걸린 나라가 스위스, 영국, 덴마크, 아이슬란드 등 4개국이다. 하지만 이들 나라 중에서 영국을 제외하고는 <표 4-2>처럼 모두 인구가 1천만 명에도 채 미치지 못하는 소국이다. 아일랜드 4백만 명, 핀란드 5백만 명, 스위스 7백만 명, 덴마크 5백만 명, 아이슬란드 28만 명이다. 물론 강소국(强小國)이 한국 경제의 중요한 벤치마크이기는 하지만 도시국가인 홍콩(7백만 명)이나 싱가포르(4백만 명) 수준이므로 벤치마크로서의 실효성은 크게 낮다.
<표 4-2> OECD 선진 19개국의 인구[152]
2만불까지 가는 데 8년이 걸린 아일랜드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외자유치를 통해 기적적인 경제성장을 이룬 나라로 소위 ‘켈틱 타이거’(celtic tiger)라는 명성을 얻었다. ‘아시아의 호랑이’라 불리던 과거 한국, 대만의 경제성장과 견줄 정도로 높은 경제성장을 이뤘기 때문이다. 1987년 이후 찰스 호히(Charles Haughey) 수상이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하여 ‘선(先)성장-후(後)분배’라는 공감대를 형성하고 강력한 경제개혁을 단행했다. EU 통합에 대비하여 실물시장과 금융시장의 규제를 과감히 철폐하고 외자유치를 위하여 행정서비스의 속도를 획기적으로 향상시켰다.
기업을 지원하기 위하여 법인세를 10% 수준으로 낮추었고 더블린 지역에 국제금융서비스센터(IFSC)를 설립하는 등 경제특구를 육성했다.[153] 1987년에 사회협약을 체결하여 노사안정을 도모했으며 교육개혁을 통하여 이공계 인력을 대거 배출했다. 그 외도 수많은 사례가 있다. 하지만 그 속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제대로 된 국적기업은 하나도 없고 죄다 외국인만 들어와 판을 치고 있어 나라를 송두리째 외국 자본에 내준 꼴이다.
최근에 근로자의 임금이 급격히 상승하자 외국 기업이 속속 아일랜드를 탈출하고 있다. 1990년대에는 임금상승률이 연평균 0.6%에 불과했지만 2003년 2월부터 인상되는 최저임금은 시간당 7유로 수준으로 EU에서 세 번째로 높다. 미국계 네트워크 장비업체인 3Com은 호황기에는 종업원이 1천 명에 달했지만 이제는 연구개발센터 50명만 남기고 나머지는 모두 중국과 멕시코로 이전하기로 했다. 프랑스의 전자부품회사인 슈나이더(Schneider Electric)도 공장을 체코로 옮긴다고 발표했다.[154] 세계경제포럼(WEF)의 국가경쟁력 조사결과에서도 2000년도의 2위에서 2003년도에는 24위로 추락했다. 뒤늦게 아일랜드 정부는 “토종기업을 육성하자”라고 난리를 치지만 이미 실기한 것이다.
이러한 아일랜드의 사례는 우리에게 몇 가지 중요한 시사점을 던져준다.
첫째, 외국 자본이 생산최적지를 찾는 중요한 요인 중 하나가 노동 문제다. 인건비가 싸야 하고 노사분규가 없어야 한다.
둘째, 저인건비에 의존한 외자유치로 경제성장을 이룰 경우 그 수명은 그리 오래가지 못한다. 경제가 성장하는 것만큼 인건비는 상승할 것이고 그 결과 저인건비를 목표로 외자를 들여온 기업이 미련 없이 떠날 것이기 때문이다.
셋째, 한국이 외자를 유치하는 목적을 바꾸어야 한다. 1997년 말 한국이 외환위기를 당했을 때야 유동성 위기를 막기 위해 외환보유고를 늘리는 일이 절체절명의 과제였고 많은 자본을 들여오는 기업은 국빈 대접을 받았다. 하지만 이제 한국에서는 돈이 넘쳐난다. 이미 세계에서 몇째 가는 외환보유고를 비축했고 시중에는 엄청난 규모의 부동자금(浮動資金)이 투자처를 찾지 못해 급기야는 부동산 폭등이라는 사회적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이제는 외자유치의 필요성이 자본유입보다는 기술유입으로 바뀌어야 한다. 다국적기업은 자본도 풍부하지만 기술 역시 세계 수준이므로, 다국적자본이 보유하고 있는 첨단 기술은 물론 그들 기업조직 내부에 체화(體化)되어 있는 경영기술을 우리가 체득해야 한다.
넷째, 국적기업 또는 토종기업을 양성해야 한다. 우리 사회 일부에서는 아직도 월스트리트 자본이 주창하는 절름발이 세계화 논리에 심취되어 “외국기업이라도 한국에 있으면 한국 기업”이라는 주장을 되뇌고 있다. 우리나라에 들어와 고용을 창출하고 세금을 내는데 뭐가 문제냐는 식이다. 물론 세계 모든 나라가 겉으로는 세계화 논리에 동참하는 제스처를 쓴다. 세계화라는 도도한 물결을 거슬리고서는 개방경제에서 생존 자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 모두 속으로는 국적기업에 더 많은 애정을 쏟는다. 외국 자본은 자신들이 목적에 따라 언제라도 그 나라를 떠날 수 있기 때문이다. 과거 프랑스의 톰슨 멀티미디어가 대우전자에 매각될 듯하다가 결국 무산된 것도 프랑스 국민이 자국 최대전자기업을 외국인 손에 넘길 수 없다고 강하게 저항한 결과다. 물론 외자가 들어오지 않는 것보다는 유입되는 것이 좋지만 자국기업에 역차별을 주면서까지 외자를 들여와야 한다는 주장은 비판받아 마땅하다.
이와 같은 선진국 경험에 비추어 볼 때 한국이 2010년에 2만불로 간다는 목표는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진정 소망한다면 비범한 노력이 요구된다. 그냥 잘해서는 안 된다. ‘정말’ 잘해야 한다. 역사상 그 전례가 없는 새로운 변화의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
제5장. 우리의 저력은 어느 정도인가?
오해: 우리는 아직도 충분한 성장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진실: 우리의 잠재성장률은 2003년 현재 5.4% 수준이며 향후 급락할 것이다. 이유: 자본과 노동의 증가율이 둔화되고 생산성 향상 속도가 떨어지면서 2004∼2010년에 잠재성장률은 4.0%, 2011~2016년에는 3.8%까지 하락할 것이다. 이 역시 현재 우리 경제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한다는 전제다. 지난 16년 동안 기록했던 성장률 7.0%의 57% 수준에 불과한 4.0%라는 성장률로 2만불에 도달하는 시점은 2015년이며 물가인상을 감안한 ‘진정한’ 2만불은 2031년에 달성된다. |
1. 경기와 경제
“한국 경제(經濟)가 좋다”는 말과 “한국의 경기(景氣)가 좋다”는 말은 다르다. 경제와 경기라는 용어가 의미하는 바가 다르기 때문이다.[155]
경제 실상을 대변하는 대표적인 지표는 잠재성장률(潛在成長率)로서, 경제와 잠재성장률은 동전의 양면이다. 잠재성장률이 높으면 경제가 좋은 것이고, 반대로 낮으면 경제가 나쁜 것이다. 예컨대 과거 한국이 5천불에 도달하기 전이었던 1970~1989년의 잠재성장률이 7.9% 수준이었는데 그 후 5천불에서 1만불로 가던 1990~1995년까지의 잠재성장률은 7.0%였다. 경제 상황이 다소 악화된 것이다.
경기는 이와 다르다. 실제 경제성장률이 잠재성장률보다 높게 나오면 경기가 좋은 것이므로 호황이라 하고, 반대로 낮게 나오면 경기가 나쁜 것이므로 불황이라 한다.
<그림 5-1>을 보면 한국의 경기는 호황과 불황을 반복해왔다. 현재 기준으로 한국의 잠재성장률은 대개 5.4%로 추정되는데 금년의 실제 성장률은 3.0%에도 미치지 못할 것으로 전망된다. 따라서 경기가 나쁘다고 한다. 경제는 장기성이 강하다면 경기는 단기성이 강하다. 잠재성장률은 “부자(富者) 삼대 간다”는 식으로 하루아침에 급속히 올라가지도 않지만 하루아침에 낮아지지도 않는다.
하지만 경기란 정부정책에 따라 단기간에 부양되기도 하고 침체되기도 한다. 예컨대 미국의 경제대부인 앨런 그린스펀(Alan Greenspan) FRB 의장이 과거 몇 년간 지속적으로 금리를 낮추어간 것은 단기적으로 경기를 부양하기 위한 조치였다.
<그림 5-1> 한국의 경제와 경기: 실질 및 잠재성장률[156]
잠재성장률이 높아지는 것은 항상 좋은 일이다. 기초체력이 좋아지는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경기가 부양되는 것은 항상 좋은 일만은 아니다. 기초체력이 탄탄하다면야 상관없겠지만 기초체력이 약한데도 계속 스테로이드 제제를 먹어가며 무리하게 운동을 하면 결국 몸을 크게 해친다.
경제정책당국자 입장에서는 경기가 나빠지면 당장 ‘발등에 떨어진 불’이므로 즉각적으로 대응하지만 반면에 경제가 나빠지는 것, 즉 잠재성장률이 하락하는 것은 쉽게 눈에 띄지 않으므로 눈감고 넘어가기가 십상이다. 경제가 하루아침에 나빠지지는 않겠지만 그런 상태가 지속되면 경제는 서서히 병들어가게 된다.
한국 경제가 외환위기의 후유증에서 탈피하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하고 있던 2000년에 필자는 『크루그만 신드롬의 신화(The Myth of Krugman Syndrome)』라는 수백 페이지의 방대한 글을 쓴 적이 있다.[157] 폴 크루그만(Paul Krugman)이라는 석학은 1994년에 『아시아 기적의 신화』라는 글을 통해 한국사회에 소위 ‘크루그만 신드롬’을 일으켰다.[158] 한국 경제가 겉으로 보면 기적적인 성장을 했지만 기실은 속빈 강정이라는 크루그만의 주장은 지지 차원을 넘어 한때는 한국의 식자들 입에 상식처럼 회자되었다. 경제 성장이란 자본의 투입과 노동의 투입 그리고 기술발전이라는 세 가지 요인에 의해 결정된다는 신고전주의 경제학의 성장이론에 비추어보면, 한국 경제는 주로 노동의 투입과 자본의 투입을 늘려감으로써 성장해왔다는 것이다.
농촌 인력이 도시로 유입되고 실업자가 일자리를 찾으면서 노동인구가 대폭 늘어났으며, 한편으로는 세계 최고 수준의 저축률과 국가 차원에서의 해외자본 조달을 통해 자본투입량도 급증했던 반면에 한국에서는 기술발전이 미미했다는 것이 당초 알윈 영(Alwyn Young)의 주장이었다.[159] 크루그만의 책은 영의 논문을 각색하고 알기 쉽게 해석한 것이며, 이러한 정황을 볼 때 한국의 미래가 없다고 주장했다. 과거처럼 노동이나 자본의 대폭적인 증가를 기대할 수 없고 기술발전 속도 역시 미미하므로 한국의 기적적인 경제성장세가 급락할 것이라고 했다. 당시 한국 경제는 ‘고비용-저효율’이라는 말로 요약되던 차에 크루그만의 주장은 많은 지지를 얻었고 소위 ‘크루그만 신드롬’을 일으켰다.
이러한 분위기에서 필자는 크루그만의 주장을 정면으로 비판하며, 한국에도 미래가 있다고 주장했다. 아직 성장잠재력이 충분히 남아 있으며 우리가 선택하고 노력하기에 따라서는 우리의 미래가 밝다는 ‘선택적 미래’를 강조했다. 당시 글의 제목을 『크루그만 신드롬의 신화』라고 한 것도 크루그만의 글 제목인 『아시아 기적의 신화』에 빗댄 것이다. 크루그만의 주장처럼 ‘아시아의 기적’이 허구에 가득 찬 ‘신화’라면 필자의 생각은 그러한 크루그만 주장과 그로 인해 야기된 신드롬이야말로 허구에 가득 찬 것이라는 입장에서 『크루그만 신드롬의 신화』라는 제목을 택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하지만 이제는 글의 제목을 바꾸어야 할 판이다. 『크루그만 신드롬의 ‘신화’』가 아니라 『크루그만 신드롬의 ‘실현’』으로 바꾸어야 할 것 같다. 필자의 애달픈 소망과는 달리 한국의 잠재성장력이 급속히 쇠락하고 있기 때문이다.
2. 한국의 잠재성장률은 급속히 하락 추세
한국 경제는 1만불을 달성하기 전인 1970~1995년까지 7%대의 잠재성장률을 유지해왔지만 그 이후 잠재성장률이 5.4% 수준으로 급락했다.
잠재성장률을 구성하는 세 가지 요소별로 보면, <그림 5-2>처럼 자본증가의 기여도(2.3% → 2.2% → 1.3%)와 노동증가의 기여도(2.9% → 1.8% → 1.0%) 역시 급락세를 보이며, 기술발전도 3.0% 내외로 답보상태다.
<그림 5-2> 잠재성장율 변화 추이
1) 자본증가세가 둔화
첫 번째, 자본증가의 기여도가 급락했다. 앞서 <그림 5-2>에서 보듯 1970~1995년에 2.2~2.3%로 일정 수준을 유지해오던 자본증가의 기여도가 1996~2003년에는 1.3% 수준으로 낮아졌다. 미국과 일본 등 선진국의 경험을 보면 국민소득이 1만불에서 2만불로 가는 과정에서 설비투자가 크게 늘었지만 오히려 한국은 1만불 이후 설비투자가 위축되었다.
한국은 1995~2002년에 설비투자가 연평균 3.1% 증가했지만 싱가포르(1989~1994년)의 10.8%나 일본(1981~1987년)의 8.8%에 비해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1만불에서 2만불로 올라가는 기간이 상대적으로 길었던 미국(1978~1988년)과 독일(1979~1990년)도 각 4.8%와 4.1%로 한국보다 높다. 또 1만불을 돌파한 후 설비투자가 경제성장에 기여한 비율도 한국의 경우 7.6%에 불과하며 나머지는 민간소비(46.2%)와 수출(53.0%)의 기여 몫이다.
하지만 일본은 설비투자가 성장에 27.8%나 기여했으며 싱가포르(20.5%), 독일(15.1%), 미국(8.9%), 영국(13.9%)의 경우도 한국보다는 훨씬 높다. 국내총생산에서 설비투자금액이 차지하는 비율도 2000년 12.7%에서 2001년 11.1%, 2002년 10.7%로 계속 낮아지고 있다. 이는 1990년대 말 이후 홍콩이나 대만보다 평균 2% 가량 낮으며, 성장이 거의 멈춰있는 일본(10.0%)과 비슷한 수준이다.[160] GDP 대비 국내총투자의 비중은 <그림 5-3>처럼 1991년에 39.8%로 최고치에 이르렀다가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에 21.3%까지 하락한 후 2002년에 26.1%로 겨우 회복되었다.
<그림 5-3> 국내총투자율(GDP 대비 %) 추이
이는 <그림 5-4>처럼 자본투입량을 나타내는 대표지표인 국내총자본형성(國內總資本形成)[161]이나 국내총고정자본형성(國內總固定資本形成)[162]의 증가율이 매년 0.31~0.34%씩 낮아지고 있기 때문이다.[163]
<그림 5-4> 자본투입 증가율의 추이
그 원인은 자본의 공급 측면과 수요 측면 양쪽 모두에 있다. 자본의 공급 측면에서는 투자의 재원이 되는 저축이나 외자유입이 둔화되었다. 민간저축률은 <그림 5-5>처럼 1988년에 GDP 대비 32.8%로 최고 수준을 보인 후 점차 하락하여 2001년에는 17.6%까지 떨어졌다.
1988년 40.5%에 달했던 총저축률도 2002년 29.2%로 1983년의 29.0% 이후 처음으로 30% 선 밑으로 떨어졌으며, 우려되는 점은 총저축률 하강 속도가 매우 빠르다는 사실이다.
<그림 5-5> 민간저축률(GDP 대비 %)
직접투자자본이 한국으로 들어오는 것보다 나가는 것이 더 많은데도 원인이 있다. 과격한 노사분규가 만성화되고 규제완화가 지연되는 등 국내의 기업경영여건이 나빠지면서 해외자본의 국내 유입은 줄어드는 반면, 오히려 국내 기업이 해외로 나가는 직접투자는 증가일로에 있다. 급기야 2002년에는 <그림 5-6>처럼 국내 기업의 해외직접투자는 27억불, 해외 기업의 국내직접투자는 20억불로 직접투자 수지가 -7억불 적자라는 상황에 이르렀다. 물론 앞서 살펴본 것처럼 이제는 외자유입의 의미가 바뀌었지만 이러한 현상은 국내의 기업경영 여건이 급속히 악화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자료이기 때문에 우려되는 바 크다 하겠다.
<그림 5-6> 직접투자 수지: 해외직접투자와 외국인직접투자
2) 노동증가세도 둔화
두 번째, 잠재성장률에 대한 노동증가율의 기여도 역시 1970~1989년의 2.9%에서 1990~1995년에는 1.8%, 1996~2003년에는 1.0%로 낮아졌다.
노동량을 나타내는 대표적인 지표인 취업자 수는 1970년의 1천만 명에서 2002년에 2천2백만 명으로 증가하고 있지만 그 증가세는 <그림 5-7>처럼 노동증가율의 추세선이 매년 -0.08%씩 감소되고 있다. 여기에 노동소득분배율 0.530[164]을 곱하면 0.0426이 나오는데 즉, 취업자 증가세가 매년 -0.08%씩 둔화되고 있어 잠재성장률을 매년 -0.04%씩 낮추는 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그림 5-7> 취업자와 증가율 추이
이처럼 취업자 수의 증가세가 둔화되는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고령화, 소자화 현상이 경제활동인구의 절대 숫자를 줄이는 가운데, 외환위기 이후 일자리가 줄어들면서 실업자가 양산되었고, 기업경영 측면에서는 생산성 향상을 위해 자동화를 추진하면서 생력화(省力化)가 급속히 진행되었기 때문이다.
3) 생산성 향상 추세도 답보
세 번째, 기술발전 또는 생산성 향상이 잠재성장력에 기여하는 정도는 1970~1989년의 2.8%에서 1990~2003년에 3.0~3.1%로 답보상태다. “지식이 중요하다” 또는 “지식강국으로 가자”, “신지식인을 양성해야 한다”라고 화려한 슬로건이 내걸려 있지만 R&D 투자가 부족했고 선진국과의 기술격차가 워낙 커서 기술혁신을 바탕으로 하는 생산성 향상에서 큰 진전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
기술발전은 결국 자본생산성과 노동생산성의 향상으로 귀결된다. 자본생산성을 측정하는 대표지표인 ‘국내총고정투자 대비 GDP 증가’[165]를 보면, 1980년 0.55배에서 점진적으로 하락하여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에는 -0.07배까지 떨어졌다가 2002년에는 0.28배 수준으로 회복되었다. 1980~2002년에는 매년 1.8%씩 감소하는 추세를 보인다.
<그림 5-8> 자본생산성의 향상(GDP 증가/국내총고정투자) 추세[166]
다음으로 노동생산성이 잠재성장률에 미치는 영향은 별첨된 <보록 #2>에서 상술했으며 여기서는 분석 결과만 요약한다. <표 5-1>처럼 노동생산성을 약식으로 계산하여 ‘인당 취업자 대비 GDP’로 구해보면 1980~2002년 동안 원화 기준으로 노동생산성이 점진적으로 증가하고 있지만 증가폭이 매년 -0.60%씩 감소하고 있으며 이는 잠재성장률을 -0.35%만큼 낮추는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이를 달러 기준으로 환산할 때는 원/달러 환산 기준이 문제 된다.
원화는 외환위기 이전에는 상대적으로 고평가되었으며 외환위기 이후에는 상대적으로 저평가되어 있기 때문에 원/달러 명목환율을 그대로 적용할 경우 분석결과가 왜곡될 수 있다. 따라서 실질구매력 기준 환율로 수정하여 노동생산성을 구해보면, 노동생산성의 증가추세가 매년 -0.27%씩 감소하고 있으며 이는 잠재성장률에 -0.16%의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왔다.[167]
한편 한국생산성본부(KPC)는 보다 정교한 노동생산성지표를 네 가지로 발표하는데, 위와 동일한 절차를 밟아서 통계를 분석한 후 네 가지 지표의 평균을 구해보면 실질구매력 기준 환율을 적용할 때 노동생산성의 증감 추이는 매년 -0.59%씩 감소하며 이는 잠재성장률에 -0.34%의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표 5-1> 노동생산성 증감 추세와 잠재성장률에 대한 기여도
이상에서 살펴본 것처럼 한국은 노동생산성이나 자본생산성 모두 증가세가 둔화되고 있다. 물론 한국이 선진국에 비해 생산성이 절대 수준에서 뒤진다는 사실은 명확하다. 유전(油田)이 발견된다든지 하는 예외적인 상황을 제외하고는 생산성 절대 수준과 국민소득 수준은 거의 비례한다. 미국이 우리보다 세 배 잘 사는 것은 생산성이 세 배 높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기서 논점은 생산성의 절대 수준이 아니라 생산성의 개선 속도다. 설사 현재는 생산성 절대 수준에서 뒤진다 하더라도 증가속도가 빠르면 경제성장률이 높아지고 국민소득이 올라가게 된다. 하지만 한국의 현실은 그와 반대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3. 앞으로 잠재성장력은 더욱 하락한다
앞으로 한국의 잠재성장력은 어떻게 될 것인가? 현재의 추세가 미래에도 그대로 유지된다고 가정하면 잠재성장률은 <그림 5-9>처럼 2004∼2010년에 4.0%로, 2011~2016년에는 3.8%까지 하락할 것으로 추산된다.
이 역시 그냥 앉아서 갈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현재 우리 경제의 실력을 최대한 발휘한다는 전제다. 연평균 4.0%의 성장률은 지난 16년 동안 기록했던 성장률 7.0%의 57% 수준에 불과하다. 성장잠재력이 침하되는 주요 원인은 고령화가 급진전하여 노동 투입량이 둔화되고, 투자부진으로 생산성 향상이 정체하기 때문이다.
<그림 5-9> 향후 잠재성장률 전망
첫째, 노동력 문제다. 현재 한국 사회는 소자화 추세로 인해 출산율이 급격히 낮아져 인구증가율이 하락하는 한편 고령인구는 지속적으로 증가하여 생산가능인구의 비중이 감소하는 동시에 이는 노동투입량의 둔화로 연결된다. 앞으로 인구증가율은 2003년의 0.6%에서 2015년에는 0.2%로 둔화하고, 생산가능인구는 2016년까지는 증가하다가 2017년부터는 감소세로 반전될 것이다. 노령화지수[168]는 2003년의 40.8%에서 2015년에는 82.6%까지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둘째, 기술발전 문제다. 선진국과의 기술력 격차, 기업가정신의 약화로 기술개발에 따른 생산성 향상 효과도 약화될 전망이다. 경제성장에 대한 기술발전의 기여도도 1996~2003년의 3%대에서 향후 2004~2016년에는 2%대로 둔화될 것이다. 자본생산성(GDP 증가분/총고정자본형성)은 1980년대 29.1%에서 1990년대 이후 18.4%로 낮아질 것으로 보인다. 특히, 외환위기 이후 영미식 자본주의가 빠르게 확산되면서 기업은 장기보다는 단기 실적에 치중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으며, 기업부실에 대한 주주나 사회로부터의 책임 추궁이 강화되면서 개발연대의 기업가정신과 도전정신이 급속히 약화되었다.
4. 네 가지의 경제성장 시나리오
2010년 이후 미래 일을 현시점에서 짐작하는 것 자체가 무리지만 그래도 주어진 제약조건 내에서 시나리오를 만들어보면 대개 <그림 5-10>처럼 네 가지 유형이 나온다.
첫째, 현상유지형(現狀維持型)은 현재의 잠재성장률이 미래에도 지속될 것으로 가정한 경우다. 매년 4.0%씩 경제성장을 하게 되며 2015년에 국민소득 2만불을 달성한다.
둘째, 확장성장형(擴張成長型)은 나라 전체가 절치부심하여 과거의 성장동력을 회복하여 재도약하는 경우로서, 매년 6.5%씩 성장하여 2010년에 2만불을 달성한다.
셋째, 불안성장형(不安成長型)이다. 정치, 경제, 사회적으로 여러 가지 난맥상이 연출되어 성장잠재력이 하락하고 불황이 지속되므로 2025년에야 2만불을 달성할 수 있다.
넷째, 침체파탄형(沈滯破綻型)이다. 최악의 시나리오로서 1997년에 겪었던 경제위기에 준하는 상황이 재현될 경우 향후 50년 이내에는 2만불을 달성할 수 없을 것이다.
<그림 5-10> 미래의 한국 국민소득 추이에 대한 4가지 시나리오
첫째, 현상유지형은 실현가능성이 가장 높은 시나리오다. 수출 증대 등 대외적인 여건은 호전되지만 대내적으로 신용불량자, 실업자, 경제양극화, 사회분위기 난맥상 등의 현상이 지속되면서 성장률은 연평균 4.0%에 그치고 국민소득 2만불은 2015년에야 달성된다.
2000~2003년에 부진한 모습을 보였던 세계 경제는 2004년부터 디지털산업과 지식산업의 발전에 힘입어 과거의 부진에서 벗어나 3.1% 수준까지 상승할 것이며, 다만 2010년부터 예상되는 미국의 퇴직자 인구 증가, 달러화 약세 가능성 등은 세계 경제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다. 국내 물가는 경제성장력 회복과 더불어 1990년대 이후의 과잉유동성이 물가상승 요인으로 작용하여 디플레이션 압력에서 벗어나 연평균 2.9% 수준으로 상승한다. 노사문제는 과격한 양상을 띠는 노사분규가 자주 발생하고, 고율의 임금인상 관행이 거듭되며, 사회 분위기도 기업하기 좋은 여건을 조성하기보다는 각 이익집단이 ‘제 몫 찾기’에 치중하고 규제 개선도 지지부진해진다. 남북관계는 간헐적으로 불안요인이 발생하지만, 현재의 교착상태에서 벗어나 소폭 개선되면서, 정치적 체제 변동보다는 남북경협 등 민간 차원의 교류가 확대될 것이다.
이 경우 한국 경제는 불필요한 대기업 규제, 신성장동력 발굴 미흡, 투자심리 위축 등으로 인하여 투자 활력이 저하된 가운데 소비가 경제를 지탱하는 양태가 될 것이다. 투자 비중은 외환위기 이전의 35.9%에서 외환위기 이후에 24.6%로 감소했으며 2015년에는 더욱 위축되어 19.0% 수준까지 하락하여 2004~2015년간 연평균 투자증가율은 1.9%에 그칠 전망이다. 수출은 연평균 3.8% 증가하여 GDP 대비 수출의 비중은 55% 선이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
GDP 대비 소비 비중은 외환위기 이후 1998~2003년의 59.8% 수준에서 2015년에는 63.0%로 상승하고 2004~2015년의 소비증가율은 경제성장률을 상회하는 4.6% 수준을 보일 것이다. 그 결과 한국 경제는 연평균 4.0% 성장에 머물러 국민소득 2만불은 2015년에 달성될 것으로 전망된다. 2만불 달성까지 물가는 연평균 2.6% 상승하고,[169] 원/달러 환율은 연평균 0.7% 평가절상된다. 2015년의 국민소득 2만불도, 미국이 국민소득 2만불에 도달한 1988년의 GDP 디플레이터(deflator)를 적용할 경우 11,373불에 불과하므로, 미국의 물가 수준을 반영할 경우에 한국의 국민소득은 당초 예상보다 16년이 지난 2031년에 20,308불로 ‘진정한’ 선진국이 되는 것이다.
둘째, 경제가 매년 6.5%씩 성장하여 2010년에 2만불을 달성하는 확장성장형 시나리오는 가장 바람직한 경우지만 그만큼 실현 가능성은 낮다. 현상유지형처럼 대외적인 경제여건이 개선되는 동시에 국내 경제환경 역시 크게 개선되어 성장지향형으로 일사불란하게 나라가 재정비되어야 확장성장이 가능하다.
이 경우에 성장의 구심점을 창출하기 위한 국가리더십이 제대로 발휘되고, 경제 주체의 자발성과 시장경제 원리가 존중되고 실용적인 정책이 전개된다. 국정기조는 성장 위주로 초점이 맞춰지며 정치가 안정되고 정책의 일관성이 유지된다. 법치주의에 의거하여 이익집단의 이기주의와 불법행위가 차단된다. 북한도 국제사회를 향해 문호를 개방하고 국제사회는 북한을 지원함으로써 한반도 평화체제가 구축되며, 한·미·일·중 네 나라 사이에 정책공조를 통하여 북핵위기가 해결되고 평화체제가 구축되면서 남북한 경제교류가 확대된다.
특히 기업환경이 전향적으로 개선되어 새로운 ‘성장 모멘텀’이 확보된다. 기업 관련 규제가 대폭적으로 완화되어 기업활력이 제고되며, 기업지배구조 제도도 보완됨으로써 기업가정신도 회복된다. 합리적인 노사관행이 정착되고 원스톱 서비스를 통해 정부가 진정한 의미에서 기업활동의 지원자 역할을 자임한다. 경제자유구역법이 보다 현실적으로 개정되고 글로벌 차원에서 고급인력이 몰려와 성장인프라가 확대된다. 산관학 사이에 인력교류가 활성화되고 여성인력의 활용도가 높아진다. 전반적인 시스템 개혁으로 기업도 신산업 발굴과 육성에 나서 성장동력 창출에 주력한다. 이렇게 되면 투자가 부진한 가운데 국내 소비가 성장세를 겨우 지탱해가는 현상유지형의 악순환 고리에서 탈피하여 이제는 투자가 경제를 주도하고 수출이 성장을 지원하는 체제로 바뀔 것이다. 기업은 설비확충은 물론 새로운 성장동력을 발굴하고 생산성을 향상시키기 위해 R&D 중심으로 투자활동을 활발하게 전개한다. 투자도 2004~2013년 동안 연평균 10.7%씩 증가하여 GDP 대비 투자 비중이 2010년에는 32%가 되어 외환위기 이전의 35.9% 수준을 회복하게 될 것이다. 투자확대에 따라 한국 상품의 경쟁력이 향상되어 수출도 연평균 7.7% 증가하여 GDP 대비 비중이 61%로 올라간다. 반면 국내 소비는 경제성장률을 조금 밑도는 5.0%의 증가세를 유지하여 GDP 대비 국내 소비 비중이 2005년 57.2%에서 2010년 53.0%로 둔화될 것이다.
이러한 희망 섞인 전망이 현실화된다면 우리의 잠재성장력이 2.5% 정도 증가하여 6.5%의 견조(堅調)한 성장세가 지속되고 2010년이면 국민소득이 21,678불에 달할 것이다. 물가는 연평균 2.9% 상승하고, 환율은 경상수지 흑자기조가 정착되며, 대외신인도가 개선되어 원/달러 환율이 연평균 2.6%씩 절상될 것이다. 미국의 물가 수준을 반영한 국민소득도 4.0% 성장에 그칠 경우에 비해 5년이 앞당겨져 2016년이면 21,300불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셋째, 불안성장형은 한국 경제로서는 불행한 일이지만 이 역시 실현가능성이 상당히 높은 유형이다. 경제상황이 현재보다 다소 악화되어 연평균 경제성장률은 3.4% 수준에 머물고 2만불은 2025년이 되어야 달성 가능하다.
이 시나리오의 경우, 세계 경제가 3%대 초반의 성장세를 보이는데도 남북관계는 뚜렷한 해결점을 찾지 못한 가운데 교착상태가 지속되는 등 지정학적 리스크가 성장의 제약요인으로 작용한다. 정책리더십이나 기업관련 규제는 현재 상황이 지속되며 성장과 분배, 대기업 관련 정책을 둘러싼 정책혼선이 발생한다.
노사관계도 단순히 임금문제를 넘어 근로자의 경영참여 요구 등 다양한 목소리가 표출하는 등 매우 불안해지고, 기업의 투자의욕이 낮아지면서 투자가 크게 위축되는 가운데, 수출은 정체되고, 국내 소비가 경제를 주도하면서 성장 한계에 봉착한다. 기업의 투자축소 등으로 자본형성이 미미하고, 수출증가세도 연평균 3%대에 그친다. 2004~2025년 동안 연평균 투자증가율은 1.2%에 그치며, GDP 대비 투자 비중은 2002년 24.3%에서 2025년 15.0%로 축소된다. 소비는 경제성장률을 조금 상회하는 4%의 증가가 예상된다. GDP 대비 국내 소비 비중은 2002년 59.6%에서 2025년 66.5%로 크게 확대되어 한국 경제가 소비 위주로 성장하며 소비가 소득보다 빠르게 늘어나면서 경상수지는 적자로 전환된다.
이렇게 될 경우 경제성장률은 3.4% 수준에 그치고 국민소득은 2025년에나 2만불에 도달한다. 물가는 연평균 2.9% 상승하고, 원/달러 환율도 경상수지 적자 등 경제기초가 약화되어 연평균 2.4% 절하된다. 미국의 물가 수준을 반영할 경우, 인당 국민소득 2만불은 향후 50년 내 달성이 불가능하며, 미국 물가 수준을 반영한 2025년 인당 국민소득은 9,297달러 수준에 불과하다.
넷째, 침체파탄형은 최악의 경우를 가정한 가장 비극적인 시나리오로 성장률은 1.0% 수준에 그치고 장기침체 상태가 지속되어 남미형 경제로 추락하면서 국민소득 2만불은 50년 내 달성이 불가능하게 된다. 이 경우에는 노사관계가 더욱 대립화되고 경제정책 혼선, 정치불안 등이 빈번하게 발생하는 등 기업환경이 악화되면서 제조업의 탈공동화 현상이 심화되고 실업 증가 및 각종 분규로 인해 사회불안감은 증폭되며 남북관계도 냉전 구도가 고착화되면서 해외자본유출이 가속화된다. 국민소득은 2050년에 8,771불로 1994년 수준(8,998불)으로 되돌아간다.
이상 네 가지의 시나리오 중에서 현상유지형과 확장성장형을 비교해보자. 한국 경제가 현상유지형에서 확장성장형으로 가면 2만불 달성 시기는 2015년에서 2010년으로 5년이 단축된다. 이를 위해서는 반드시 ‘투자 주도 속의 수출’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현상유지형에서는 투자가 위축되고 수출이 줄어들면서 한국 경제는 내수에 과잉의존하게 되면서 4.0% 성장에 그친다. 이에 비해 확장성장형은 투자가 활성화되면서 수출이 급증하여 6.5%의 경제성장을 이룬다.
결국 2010년에 2만불을 달성하려면 그 돌파구는 미래성장의 원천인 투자에서 찾아야 하며, 기업환경 개선과 기업가정신 회복에 초점을 두고 한국경제시스템을 재정비해야 한다. 생산적인 노사관계를 구축하고, 금융이 산업을 지원하는 역할을 강화해야 하며, 기업지배구조를 개선하여 기업의 활력을 북돋우고, 정부는 경제주체 간에 합리적 조정자로서 역할 해야 한다.
우리에게 다가올 앞으로의 7년은 우리가 선진국으로 진입하는 마지막 기회다. 기업투자가 위축되고, 청년실업이 급증하고, 노사갈등이 심화되는 등 현재의 난맥상을 방치한다면 2만불 시대의 개막은 고사하고 경제위기가 재발할 우려까지 있다. 현시점으로부터 향후 7년 동안은 한국 경제의 도약과 퇴보를 좌우할 결단의 시점이다. ‘선택적 미래’인 것이다.
제6장. 우리도 2010년에 2만불이 되면 선진국인가?
오해: 우리도 2010년에 2만불이 되면 선진국에 진입한다. 진실: 2010년에 2만불을 달성해도 우리는 여전히 선진국 반열에 올라서지 못한다. 이유: 다른 선진국들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성장하기 때문에 선진국의 문턱은 2010년에 2만5천불, 2015년에 3만불로 높아진다. 따라서 2010년에 선진국이 되려면 매년 9.9%씩 성장해야 하고 이는 과거 개발독재시대의 성장률(10.4%)과 맞먹는다. 더욱이 미국이 2만불을 달성했던 1988년 수준까지 가려면 매년 14.6%씩 성장해야 한다. |
1. 제논의 패러독스
모순(矛盾)은 창이라는 의미의 모(矛)와 방패라는 의미의 순(盾)이 합해진 말이다. 중국 초나라 상인이 창(矛)과 방패(盾)를 팔면서 “어떤 방패로도 막지 못할 창이요, 어떤 창으로도 뚫지 못할 방패”라고 앞뒤가 맞지 않게 선전했다는 고사에서 나왔다.
모순은 영어로 패러독스(paradox)다. 세르반테스의 소설 『돈키호테』에는 이상한 법을 시행하는 나라 이야기가 나온다. 국경을 경비하는 병사들은 다른 나라에서 오는 사람을 붙잡으면, “여기에는 무엇 하러 왔느냐?”라고 묻는다. 바른대로 대답하면 아무 일이 없지만, 만약 거짓말을 한다면 교수형에 처하게 되어 있다.
어느 날, 한 사나이가 국경을 넘어와 말하기를 “나는 교수형을 당하러 이곳에 왔다”라고 했다. 어떻게 처리해야 할까? 또 다른 예로, 아기를 빼앗은 악어가 아기의 엄마에게 “내가 아기를 잡아먹을지 안 잡아먹을지 알아맞히면 아기를 무사히 돌려주지”라는 문제를 냈다. 엄마는 “오오! 너는 내 아기를 잡아먹고 말거야”라고 답했다고 한다.
이러한 패러독스의 원조는 그리스 철학자인 제논(Zenon ho Elea, BC 490~429)이다. 제논은 여러 가지 패러독스를 내놓았는데 그 첫 번째가 ‘분할의 패러독스’로서 만일 어떤 선분을 무한히 쪼갤 수 있다면 운동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 선분의 끝에 가려면 중간지점인 이분점(二分點)을 지나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사분점(四分點)을 지나야 하고 또 그러기 위해서는 팔분점(八分點)을 지나야만 하는 등 무한히 많은 점을 지나야 한다.
이처럼 무한개수의 중간지점을 통과해야 하는데 그러려면 무한한 시간이 소요되기 때문에 선분의 끝에 영원히 도달할 수 없다는 것이다. 제논과 입장을 달리하는 피타고라스학파 지지자들은 이 패러독스에 대하여 “점에는 위치가 있지만 크기가 없다. 또 시간도 크기가 없는 시각이 모인 것이다”라고 반론을 편다.
이에 대해 제논이 다시 내놓은 패러독스가 ‘아킬레스와 거북이의 패러독스’다. 아킬레스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반신반인(半神半人)의 전설적인 마라톤 영웅으로 그리스 제일의 달음박질의 명수이지만, 거북이는 세상에서 제일 느린 동물 중 하나다. 하지만 아킬레스보다 거북이가 조금이라도 먼저 출발했다면 아킬레스는 거북이를 영원히 따라잡을 수 없다는 것이다. 아킬레스가 거북이의 위치에 도착할 때는 이미 거북이가 좀 더 앞으로 나가 있고 이런 상황이 영원히 반복되기 때문이다.
그 외에도 제논은 반박하기 힘든 여러 가지 역설을 내놓아 많은 사람을 당황하게 했다. 이러한 패러독스 때문에 그는 얼마나 인기가 없었던지 왕에게까지 미움을 받아 무참히 처형되고 말았다. 처형 당시 그는 형장에서 마지막으로 왕에게 직접 전해야 할 중대한 비밀이 있다며 왕에게 가까이 가서 왕의 귀를 물어뜯었는데, 왕을 호위하고 있던 병사의 칼로 목이 잘려진 뒤에도 그의 목이 왕의 귀를 물고 있었다는 전설이 남아있을 정도다.[170]
어쨌든 골치 아프지만 재미있는 패러독스다. 그렇다면 제논의 주장에 무엇이 잘못되었는가? 답은 다음 장으로 넘기기로 하자.
2. 국민소득에서도 제논의 패러독스가 작동한다
2010년이나 2015년에 우리가 2만불 국민소득을 달성해도 그동안 선진국의 국민소득도 더 높아진다. 다시 우리가 선진국의 위치에 가면 선진국은 더 멀리 나아간다. 제논의 패러독스가 작동하는 것이다.
현재 OECD 국가 중 한국의 국민소득은 24등이다. 선진 19개국이 월등히 앞서 가고 있으며 선진국의 하한선은 프랑스(21,678불), 호주(18,940불), 이탈리아(18,849불) 등이다. 호주와 이탈리아는 2001년에 일시적으로 2만불 밑으로 떨어졌지만 호주는 2000년까지, 이탈리아는 1999년까지 장기간 동안 2만불 이상을 유지해온 선진국이다. 그 밑으로 혼돈의 가장자리에 있는 국가가 스페인(14,482불), 뉴질랜드(13,136불), 그리스(10,712불), 포르투갈(10,685불), 그리고 한국이다.
OECD 선진 19개국의 향후 국민소득을 전망해보자. 1983~2002년까지의 소득추이를 단순히 회귀분석하면 <그림 6-1>과 같다. 의외로 독일이 <그림 6-1>처럼 1995년의 30,110불을 최고점으로 한 이후 현재까지 계속 하락세를 보이고 있어 단순히 회귀분석을 할 경우에는 2011년에 2만불 밑으로 떨어진다.
<그림 6-1> OECD 선진 19개국의 향후 국민소득 추정(2003~2015년)
1990년 동서독 통일 이후에 매년 GDP의 4%를 동독재건 등 통일비용으로 사용했고 2002년까지 통일비용으로 총 7천억불을 투입한 데다가 좌파정권인 슈뢰더가 집권한 1998년 이후 계속 분배와 사회복지 위주의 좌파정책을 펼침으로써 급기야는 ‘침체(recession)’ 상태에 빠졌다는 진단까지 나왔다. 하지만 최근 슈뢰더 정권은 우파조차 놀라워할 정도의 성장위주정책인 ‘아젠다 2010’을 추진하고 있어 국민소득이 2만불 밑으로 떨어지는 현실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기존의 노동자와 빈곤층을 위한 복지사회 정책에서 탈피하고 고용보호 축소, 실업이나 의료보장혜택 축소, 단체협상원칙 완화와 같은 시장자유주의정책으로의 전환이 착실히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호주, 이탈리아, 오스트리아 같은 나라는 2만불과 2만5천불 사이를 오락가락하지만 그래도 2만불 밑으로는 떨어지지 않을 것이다. 일본도 하락세를 보이고 있기는 하지만 최근 일본은 ‘잃어버린 10년’이라는 불명예를 씻고 회생의 조짐이 보이고 있어 조만간 재도약의 길에 나설 것으로 전망된다.
이렇게 보면 우리가 2010년이든 2015년이든 2만불을 달성한다 해도 OECD 선진 19개국을 앞설 가능성은 희박하다. 다만 20~23위 나라인 스페인, 뉴질랜드, 그리스, 포르투갈 중에서 한두 나라는 앞설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현재 24등에서 22~23등으로 올라가는 수준이다. 결국 아킬레스가 거북이를 결코 따라갈 수 없다는 제논의 패러독스가 현실화된다.
3. 선진국의 하한선은 2010년에 2만5천불, 2015년에 3만불
만일 우리가 2010년에 2만불을 달성하면 선진국이 되는가? 2002년 현재 기준으로 2만불은 선진국의 하한선이지만 2010년에는 최소 2만5천불이 되어야 선진국 반열에 들어갈 수 있다. 물가가 올라가고 인구가 줄어들며 환율이 변하기 때문이다.
지난 1993~2002년의 10년 동안 OECD 선진 19개국에서 실질소득이 증가한 것 외에 국민소득에 영향을 미친 요인을 분석해보면, 물가가 평균 20.5% 올랐고(GDP deflator 기준) 인구는 5.1% 늘어났으며 환율은 달러 대비 19.6% 평가절하되었다.
이를 종합하면 국민소득의 실질가치가 지난 10년 동안 37.1% 절하되었다는 뜻이다. 연간으로 환산하면 3.2%가 나오는데, 이를 미래에 적용한다면 선진국의 문턱이 매년 3.2%씩 높아진다는 의미다. 따라서 2002년 현재 가치 기준으로 2만불이라는 목표는 8년 후인 2010년에는 25,746불로 높아지고, 13년 후인 2015년에는 30,149불이 된다. 대략적으로 보아 2010년에 2만5천불, 2015년에는 3만불이 되어야 선진이 될 수 있다는, 소위 ‘이동 표적’(moving target)이 되는 것이다.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현상이 유지된다면 한국 경제는 연간 4.0% 성장하고 경제여건이 호전된다면 최고 6.5%까지 성장하는데, 만일 4.0%씩 성장할 경우에는 2034년이 되어야, 그리고 6.5%씩 성장할 경우에는 2015년이 되어야 선진국 문턱을 넘을 수 있다.
또한 앞에서 “2010년에 2만불을 달성하려면” 연간 6.5%씩 실질성장을 해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선진국 문턱이 점차 높아진다면 “2010년에 선진국이 되려면”이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인당 국민소득은 2만5천불로 상향조정되어야 하고, 이는 앞으로 8년간 매년 9.9% 성장을 해야 가능한 수치다
<그림 6-2> 선진국 진입가능 연도(6.5% 및 4.0% 성장 시)
4. 미국의 2만불 달성 수준까지 가려면 매년 14.6% 성장해야
한걸음 더 나아가자. 거꾸로 생각하면 과거에 OECD 선진 19개국이 2만불을 달성한 당시의 2만불은 현재(2002년 기준)보다는 더욱 가치가 높았을 것이다. 19개국이 2만불을 달성한 시기와 현재의 GDP 디플레이터를 비교해보면 평균 39.9% 증가했다
예컨대 미국이 1988년에 20,703불로 2만불을 돌파했는데 당시 GDP 디플레이터는 81.75(1995=100)인데 비해 2002년의 디플레이터는 112.97로서 38.2%가 증가했다.
다시 말해 선진 19개국이 2만불을 달성한 당시와 동일조건이 되려면 미래의 목표 역시 39.9% 높게 잡아야 한다는 것이다.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미래의 가치하락을 고려할 경우 2010년의 선진국 문턱은 2만5천불 수준이었는데 여기에 과거 조건 39.9%를 감안하면 선진국 문턱은 36,024불이 된다. 8년 동안에 인당 명목 GDP가 3.59배 높아져야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인당 실질 GDP가 2.98배 높아져야 하고 8년 동안 매년 14.6%씩 성장해야 한다. 한국이 앞으로 8년 후인 2010년에, 과거 미국이 선진국의 문턱을 넘었던 1988년의 상황이 되려면 매년 14.6%씩 성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과거 한국이 동아시아의 기적을 일으켰던 개발독재 시기인 1966~1990년에도 실질 GDP 성장률이 연평균 10.4%였던 점을 비추어보면 이는 상상을 넘어서는 숫자다.
요컨대 한국이 2010년에 국민소득 2만불을 달성하려면 매년 6.5%라는 고도의 성장을 해야 한다. 이것 자체가 거의 불가능한 목표다. 게다가 선진국 문턱 역시 해마다 높아져 2010년에 선진국의 하한선은 2만5천불로 높아진다. 그러려면 매년 9.9%씩 성장해야 한다. 이는 과거 개발독재 당시의 성장률(10.4%)에 거의 맞먹는다. 더욱이 미국이 2만불을 달성했던 1988년 상황까지 가려면 연간 14.6%씩 성장해야 한다. 산 넘어 산이며, 상상을 넘는 목표다.
그렇다면 제논의 패러독스처럼 우리는 영원히 선진국이 될 수 없다는 것인가?
제7장.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나?
오해: 우리가 열심히 ‘개혁’만 하면 된다. 진실: 우리 모두 개혁의 필연성은 이미 절감한다. 이제는 무엇을 어떻게 개혁할 것인가 하는 ‘방향성’이 중요하다. 이유: 진정 선진국으로 가려면 인식의 차원을 달리해야 한다. 첫째, 패배의식에서 벗어나야 한다. 한국은 과거부터 내부적으로 큰 결함을 안고 있었고 그 결과는 외환위기로 귀결되었으며 따라서 과거 전통과 경로의존성을 완전히 무시하고 철저히 세계표준에 맞도록 나라 전체 틀을 뜯어 고쳐야 한다는 강박관념에서 벗어나야 한다. 경로의존성을 존중하고 핵심역량을 살려야 한다. 둘째, 미래 한국의 비전은 강대국(强大國)이 아니라 강소국(强小國) 이다. 한국은 태생적으로 소국이므로 크고 강한 나라를 벤치마킹하기보다는 강소국들의 성공사례를 분석하여 우리의 역사와 현실에 맞는 전략을 수립하고 실천해가야 한다. 셋째, 다시 도약하기 위해서는 한민족 고유의 야성(野性)을 회복하고 도전정신을 일구어야 한다. 한번 실패해서 외환위기를 당했다고 영원히 후진국에 머물 수는 없는 일이다. |
1. 제논의 패러독스 극복하기
앞 장에서 살펴본 제논의 주장에서 무엇이 잘못되었기에 패러독스라 하는가? 우리가 고등학교 2학년 수학시간에 배우는 극한(極限)이라는 개념을 적용하면 바로 허점이 드러난다. 제논의 패러독스가 논쟁의 대상이 된 것도 그리스 시대에는 극한의 개념이 확실치 않았기 때문이다.
먼저 첫 번째 ‘분할의 패러독스’를 보자. 만일 어떤 선분을 무한히 쪼갤 수 있다면 선분 위에는 점이 무한히 존재하므로 이를 모두 통과하려면 무한한 시간이 소요된다는 게 제논의 패러독스다. 하지만 이는 진실이 아니다. 선분 위에 아무리 많은 점이 있다 하더라도 각각의 점에 대응하는 시각(時刻) 역시 크기가 없기 때문에 모든 점을 통과하는 데는 무한의 시간이 필요치 않기 때문이다. 이분점, 사분점, 팔분점 식으로 분점을 계속 나누면 무한대의 분점이 생기고 따라서 시간도 무한대로 증가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분점을 무한대로 나눌수록 이를 통과하는 데 걸리는 시간 역시 거의 0에 가까운 무한소가 되므로 선분을 통과하는 시간이 무한대로 늘어나지 않는다. 예를 들면, 에서 n은 무한대(無限大)로 가고 그러면
은 0에 가깝게 무한소(無限小)로 가는 모습이다. 어느 한쪽만 보면 무한대로 가든지 무한소로 가지만 답은 1이라는 유한한 값이 나온다는 이치다.
두 번째 패러독스를 보자. 아킬레스가 거북이를 앞지를 수 있다는 사실은 누구나 직관적으로 알 수 있지만 제논의 주장 역시 허점이 쉽게 드러나지 않는다. 가령 아킬레스의 속도가 거북이의 속도의 10배라 하고, 아킬레스는 거북이의 100미터 뒤에서 출발하여 거북이를 따라잡는다고 하자. 아킬레스가 100미터를 달려서 본래 거북이가 있던 자리에 가면 그 사이 거북이는 100미터의 1/10의 지점인 10미터만큼 전진한다. 아킬레스가 또 10미터를 달려서 거북이가 있던 자리에 오면 그 사이에 거북이는 10미터의 1/10인 1미터만큼 앞서 있다. 이렇게 계속 반복되므로 시간이 무한대로 늘어나는 것처럼 보인다.
이러한 ‘거리’ 개념에서 탈피하여 관점을 ‘시간’ 개념으로 바꾸어보자. 가령 아킬레스가 100미터를 달리는 데 10초가 걸린다고 하면 그 사이에 거북이는 10미터 앞에 나가 있다. 아킬레스가 10미터를 따라오는 데는 1초가 걸린다. 1초 동안 거북이는 1미터를 더 나가 있다. 아킬레스가 1미터를 따라가서 거북이가 있던 곳까지 오는 데는 1/10초가 소요된다. 그동안 거북이는 또 1/10미터 앞쪽으로 나가 있을 것이다. 이렇게 계속 반복된다고 할 때, 아킬레스가 거북이를 따라가는 데 걸리는 소요시간을 모두 합하면 (10+1+1/10+1/100+…)초 걸린다. 그런데 이 합은 무한개의 수를 더하지만, 합은 100/9초가 된다.[171] 결국 이 제논의 패러독스를 시간의 관점에서 보면 아킬레스가 거북이를 100/9초 만에 따라잡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처럼 무한한 수를 아무리 많이 더해도 유한한 답이 나오는 것이다.
우리는 흔히 공간을 잘게 나누면 면이 되고 다시 면을 잘게 나누면 선이 되며 다시 선을 잘게 나누면 점이 된다고 생각한다. 이것이 제논의 패러독스가 가지는 함정이다.
하지만 낮은 차원의 양을 아무리 늘려도 높은 차원의 한 조각도 만들어내지 못한다. 점을 아무리 많이 모아도 1나노미터의 선도 만들 수 없다. 점은 위치만 있지 길이가 없다. 마찬가지로 선을 무한히 모아도 결코 면이 될 수 없으며, 면을 무한히 모은다 해도 공간이 될 수 없다. 그 전형적인 사례가 복잡계 이론에서 나오는 ‘코흐 곡선’이다. 코흐 곡선은 먼저 정삼각형에서 시작한다. 각 면을 삼등분하고 중앙 3분의 1 부분에 정삼각형을 붙인다. 이를 계속 반복하면 <그림 7-1>처럼 도형의 길이는 점점 늘어난다. 이를 반복할수록 선의 길이는 무한정으로 늘어난다
<그림 7-1> 코흐 곡선
하지만 그 선의 길이가 아무리 늘어난다 해도 전체 면적은 이를 둘러싸고 있는 원의 면적을 초과할 수 없다. 선의 길이는 무한하지만 면적은 유한한 것이다. 이처럼 차원을 바꾸면 세상 역시 달리 보인다.
2. 인식의 차원을 달리해야 한다
복잡계 이론 이야기를 하나 더 하자. 앞서 언급한 것처럼 한국경제는 현재 ‘마의 1만불’이라는 덫에 걸려 있다. 이러한 혼돈의 가장자리에서는 자기조직화(self-organization) 과정을 거쳐 새로운 질서가 창발(創發, emergence)한다. 무생물에서 새로운 생명체가 태어나기도 하고 물이 얼음이나 수증기로 바뀌기도 한다. 새로 탄생하는 질서는 약(藥)이 될 수도, 독(毒)이 될 수도 있다.
최근 주변에서 일어난 사태를 보면, 1997년의 외환위기도 정권 말기의 레임덕이라는 혼돈의 가장자리에서 일어났으며, 새로 탄생한 소위 ‘IMF체제’라는 질서는 우리에게 약과 독의 양면성을 보여주었다. 세계 질서의 냉엄함을 전 국민이 피부로 느꼈으며, 전근대적이었던 사회시스템이 세계표준(global standard)에 맞도록 개조되었지만, 부분적으로는 세계표준이라는 미명 아래 개선(改善)이 아니라 개악(改惡)이 이루어진 분야도 있다. 경제회생 과정에서 많은 기업이 문을 닫았고, 정부는 거액의 부채를 안게 되었으며, 많은 국내 기업이 외국인의 손으로 넘어갔다.
한편 2002년에 전 국민이 피부로 느끼고 동참했던 소위 ‘붉은 악마 신드롬’도 혼돈의 가장자리에서 일어났으며, 이는 부정적인 측면보다는 긍정적인 측면이 훨씬 많았다. 이처럼 혼돈의 가장자리를 거쳐 새로이 창발하는 신질서는 우리에게 약이 될 수도, 독이 될 수도 있다.
의도적으로 조직을 혼돈의 가장자리로 몰고 가는 경우도 있다. 예컨대 중소기업 수준의 일본전기라는 회사를 NEC라는 세계 유수의 기업으로 일구고 소위 C&C[172]라는 신개념을 제창한 고바야시(小林) 회장이 가장 즐겨 사용한 어구는 “가장 안정된 조직은 가장 불안정하고, 가장 불안정한 조직이 오히려 가장 안정되어 있다”라는 패러독스다. 조직이 목표를 달성하고 “고생했으니 이제는 좀 발 뻗고 자야지”라고 할 때가 조직이 와해되는 출발점이며 “큰일이다 큰일이다”라고 하면서 조직 전체가 생존을 위해 발버둥칠 때 조직은 가장 많은 성장을 한다는 의미다. 고바야시 회장은 이러한 신념 아래 조직을 쉴 새 없이 혼돈의 가장자리로 몰아넣었고 NEC는 혼돈의 가장자리에서 자기조직화를 통해 새로운 질서를 창조함으로써 세계 일류기업으로 성장했다.
삼성그룹도 대표적인 혁신 프로그램인 ‘신경영(新經營)’에서 그룹 CEO는 “아내와 자식만 빼고 다 바꾸어라”라고 했다. 조직 전체를 혼돈의 가장자리에 몰아넣고 새로운 질서를 창발시킨 것이다. 주목해야 할 점은 그룹 CEO가 조직을 혼돈의 가장자리에 내버려둔 것이 아니라 개혁의 방향성을 명확히 제시했다는 사실이다. 양(量) 위주에서 질(質) 위주로, 외형 지상주의에서 실리 추구로, 기업 자신만족에서 고객만족으로, 국내 차원의 시각에서 글로벌 차원으로 시각과 인식의 차원을 달리 해줄 것을 조직 구성원들에게 요구했고 그 결과는 성공으로 마무리되었다.
그러면 한국이 빠져 있는 마의 1만불이라는 혼돈의 가장자리는 미래에 독이 될 것인가 아니면 약이 될 것인가? 이 역시 현재 우리의 선택에 따라 미래가 달라지는 ‘선택적 미래’다. 위기(危機)는 위험(危險)과 기회(機會)가 합해진 말이다. 위기를 기회로 전환시키기 위해서는 방향성을 제대로 설정해야 한다. ‘열심히’ 하는 것보다는 ‘잘’ 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열심히’란 효율성(efficiency)을 말하고 ‘잘’이란 효과성(effectiveness)을 나타낸다. 효과성은 효율성을 우선한다. 우선 방향을 제대로 설정해야 하고 그 다음에 열심히 해야 한다. 아무리 열심히 해도 방향성이 잘못되면 하지 않는 것만 못한 결과가 나온다. ‘개혁’은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다. 개혁은 ‘크게 근본적으로 바꾸자’는 것이며, 바꾸려면 변화 이전의 모습(as is)과 변화 이후의 모습(should be)이 제대로 규명되어야 한다. 변화의 방향(should be)은 쉽게 기술되어야 한다. 설사 심오한 철학적 고뇌를 통해 만들어진 방향일지라도 국민에게 전달될 때는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비전으로 표현되어야 한다.
경영전략을 연구하는 학자들이 국가 비전에 대해 이야기할 때 즐겨 사용하는 사례가 있다. 케네디(John F. Kennedy) 대통령이 1961년 5월 25일에 내놓은 “미국은 인간을 1960년대 안에 달로 보낸다”라는 슬로건이다.[173] 미국이 우주개발에 엄청난 국민세금을 투자했지만 1957년 10월 4일 소련이 먼저 인공위성 스푸트니크(Sputnik) 1호를 발사함으로써 순식간에 미국 국민은 허탈 상태에 빠진다. 이때 케네디가 내놓은 슬로건은 미국 국민의 의욕에 다시 불을 지폈다. 결국 1969년 7월 20일, 아폴로 11호의 선장 암스트롱이 착륙선 이 글에서 ‘고요의 바다’에 내려진 사닥다리를 천천히 내려와 월면을 밟았다. 그 과정에서 개발된 신기술은 팍스아메리카의 수명을 연장하는 데 디딤돌이 되고 있다. 이처럼 국가 비전에는 미래의 방향성이 명확히 나타나야 하고 쉽게 이해될 수 있어야 하며 국민에게 꿈과 희망을 줄 수 있어야 한다. 과거 박정희 대통령이 내건 “잘 살아보세”라는 비전도 수범적 사례이며, 기업 차원에서 보면 페덱스(FedEx)가 내건 “익일배달”(overnight delivery)이라는 비전 역시 기업의 목표와 고객의 기대가 한마디에 함축되어 있는 훌륭한 비전이다.[174]
변화의 방향이 정해지면 핵심주제를 택해야 한다. 소위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 망라주의(網羅主義, usual many)가 아니라 중점주의(重點主義, vital few)가 요구된다. “이것도 중요하고 저것도 중요하다”라고 하면 사실은 모든 게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며, 정말 중요하다면 중요한 것 몇 가지에만 힘을 집중하는 것이 중점주의다. 시골 할머니가 고구마를 캘 때 제대로 된 줄기 하나만 당기면 수십 개의 고구마가 줄줄이 따라 나오듯 핵심적인 주제를 서너 가지로 압축해야 한다.
그 후보로 몇 가지를 제안한다. 이 역시 근본적인 인식의 변화가 요구된다.
첫 번째, 변화 이전의 현재 우리 모습에서 패배의식을 지워야 한다. 한국은 과거 내부적으로 큰 결함을 안고 있었고 그 결과는 외환위기로 귀결되었으며 따라서 과거 전통과 경로의존성을 무시하고 철저히 세계표준에 맞도록 나라 전체를 뜯어 고쳐야 한다는 강박관념에서 벗어나야 한다.
두 번째, 미래 우리 한국의 비전은 강대국(强大國)이 아니라 강소국(强小國)이다. 한국은 태생적으로 소국이므로 크고 강한 나라를 벤치마킹할 게 아니라 강소국의 성공 스토리를 분석하여 우리의 경로의존성에 맞는 전략을 수립하고 실천해가야 한다.
세 번째, 다시 일어서기 위해서는 야성을 회복하고 도전정신을 일구어야 한다. 한번 실패해서 외환위기를 당했다고 영원히 후진국에 머물 수는 없는 일이다.
3. 우선, 패배의식에서 벗어나자
필자는 외환위기가 발발한 지 3년이 지난 2000년 말에 『패자의 변』이라는 글을 쓴 적이 있다. 외환위기 당시 일방적으로 죄인으로 매도되었던 한국의 입장에서, 다시 말해 패자의 입장에서 외환위기의 과정을 재정리한 글이다. 글의 요지는 다음과 같다.[175]
한국 외환위기에서 이해당사자는 당연히 채무자와 채권자다. 채무자라 함은 해외로부터 자금을 차입한 한국의 금융기관과 기업이며 특히 대규모의 단기차입금을 헤징도 하지 않은 채 달러 표시로 무리하게 빌려온 단자회사가 그 주역이다. 외환위기가 일어난 후 채권자와 협상 과정에서 민간의 해외차입금에 대하여 한국 정부가 지급보증을 해주고 채권자와의 협상을 주도했으므로 한국 정부도 채무자에 포함된다. 위기극복 과정에서 많은 공적자금이 투입되었으며 이는 전 국민이 언젠가 갚아야 할 부채이므로 넓게 보면 정부와 국민을 포함한 한국 전체를 채무자로 보아도 별 무리는 없을 것이다.
반면 채권자는 한국에 대출해준 미국, 일본, 유럽 등지의 금융기관이다. 해당국 정부도 외환위기 극복과정에서 다각도로 직간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했으므로 그들 역시 광의의 채권자 집단에 포함된다. 그중에서도 특히 루빈 장관, 서머스 차관, 립턴 차관보와 같은 미국 재무부 관료들은 월스트리트의 이익을 대변하여 맹렬한 활동을 전개했다. 여기서 IMF의 역할이 애매모호하다. 원론적으로는 채권자와 채무자 사이에서 공정한 ‘심판’ 역할을 해야 했다.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채권자의 입장에 완전히 경사된 채 채권자의 대변인 역할을 자임했다.[176] 따라서 IMF 역시 채권자로 분류하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반면 세계은행은 상당히 중립적인 입장을 견지했으므로 심판으로 분류해도 큰 무리는 없을 것이다.
채권자들이 쓴 한국 외환위기의 역사는 다섯 단계로 진행된다.
먼저 제1단계다. 한국 경제는 외환위기 이전부터 이미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었다. 이는 크루그만이 지적한 바와 같이 ‘아시아 성장한계론’이나[177] IMF가 주장하는 ‘동아시아 내부결함론’으로 요약된다. 채권자의 주역인 IMF의 주장에 따르면, IMF가 이러한 내부적인 결함을 미리 감지하고 한국에 여러 차례 사전경고를 했지만 한국 정부와 국민은 귀담아 듣지 않고 일방적으로 무시해버렸다.[178]
제2단계에서는, 이처럼 한국 경제가 내부적으로 많은 구조적인 결함이 안고 있었는데도 구조조정이 지연되고 IMF의 충고를 따르지 않은 결과, 문제가 누적되어 외환위기라는 파국으로 귀결되었다. 한국의 위기가 순전히 내부결함 때문에 일어난 것이므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내부 문제부터 철저히 고쳐야 한다고 IMF는 주장했다. 채권자는 물론 채무자 일각에서도 IMF 주장에 동조하는 공감대가 형성되었다.
제3단계로, 채권자들은 한국이 외환위기를 극복하고 위기재발을 방지해야 한다는 명분으로 광범위한 구조조정을 추진했다. IMF의 진두지휘 아래 한국은 철저한 시장중심 경제로 재탄생하고 아시아적 가치와 도덕적 해이를 타파하며 사회 전반의 투명성을 제고하는 동시에 기업의 부채비율을 낮추었다. 이로써 한국은 기존에 문제가 많았던 정부 주도의 개발경제방식을 과감히 버리고 선진의 영미식 자본주의체제를 사회 깊숙이 이식시켰다.
제4단계에서는, 한국이 세계화 추세에 따라가지 못하고 자본시장 개방을 지연시킨 데도 위기의 원인이 있으므로 한국의 자본시장을 더욱 개방하는 동시에 불공정한 무역관행도 타파하는 등 무역시장도 과감히 개방했다.
마지막 제5단계다. 한국은 급등하는 원화환율을 안정시키고 외환보유고를 늘리기 위하여 IMF 처방대로 금리를 급상승시키고 긴축재정정책을 펼치며 경제성장률도 낮게 가져갔다. 초국적 자본에 한국 기업을 매각하여 외환보유고를 더욱 확충했다. 한국 경제는 자유시장체제가 제대로 작동하는 글로벌 스탠더드에 근접하게 되었으며, 시대착오적인 아시아적 가치는 폐기되었다. 도덕적 해이를 타파하는 한편 투명성을 제고하고 기업의 부채비율도 낮추었다.
이렇게 하여 한국은 외환위기를 훌륭하게 극복해냈다. 여기까지가 채권자들이 주장하고, 흔히들 알고 있는 한국 외환위기의 역사다.
하지만 서구 학자들 가운데서는 이러한 채권자의 관점에 동의하지 않는 목소리도 나왔다. 하버드대학교의 삭스나 『파이낸셜타임즈』의 울프(Martin Wolf) 같은 지성(知性)들은 채무자인 한국이 범한 잘못도 있지만 그 대가가 너무 크며 또한 외환위기가 발발한 데는 채권자의 책임도 있다고 했다. 대차관계에서는 항상 채권자와 채무자가 있기 마련인데 왜 채무자만 비난받아야 하느냐는 반론이다. 세계은행 수석부총재인 스티글리츠(Joseph E. Stiglitz)는 한국의 위기와 관련해 의미 있는 발언을 한다.[179] “모든 대차거래에서 채무자가 있으면 항상 채권자가 있기 마련이고 채권자도 채무자만큼 책임을 져야 한다. 동아시아의 채무국이 비난받는다면 채권국 역시 비판받아야 한다. 그리고 외국은행이 어느 정도 한계대출자(marginal lender)였다면, 그들은 더욱 비난을 면할 길 없다. 한국의 은행을 통하여 한국 기업에 많은 부채를 안긴 해외채권자는, 금융분석가가 안정적으로 여기는 수준보다 훨씬 높은 부채비율을 안고 있다는 점을 잘 알고 있었다.” 삭스도 무분별한 채무자가 생기는 데는 무분별한 채권자가 있게 마련이라는 점을 지적했다.[180]
이러한 소수 의견은 당시 주류학자들로부터 많은 비판을 받았지만 수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 그들의 주장이 널리 지지를 얻고 있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 크다. 모든 것이 ‘한국 탓’이라는 주장은 채권자 측의 논리일 뿐이다. 한 나라의 역사가 단순한 사적인 기록에 그친다면 누구의 손으로 어떻게 쓰이든 상관없다. 하지만 우리가 겪고 있는 경제위기는 한국 현대사에 큰 획을 긋는 사건이며, 한국이 다시 시행착오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는 위기의 역사가 채무자인 우리 손으로 재해석되어야 한다.
다시 스티글리츠의 주장을 보자.[181] “나는 동아시아에 대한 비관적인 목소리를 자주 듣는데 특히 동아시아 사람들이 스스로를 지나치게 비하하는 경우가 있다. 그들은 지난 25년간 이룬 업적에 대하여 보다 자랑스러워할 필요가 있다. 그들이 이룬 것은 종이로 만든 집이 아니라 매우 실질적인 것이다. 많은 사람의 생활수준이 개선되고 가난을 극복했다. 만일 아시아인들이 경제에 대한 자신감을 회복한다면 경제는 예전의 힘을 회복할 것이다.”
우리 스스로 자기비하에 빠질 필요가 없으며 지난 25년간 이룬 업적에 대하여 보다 자랑스러워해야 할 것이다. 채무자의 관점에서 외환위기의 역사를 재기술하면 완전히 다른 흐름이 나온다.
먼저 제1단계다. 한국 경제는 위기 이전에 여러 가지 문제를 안고 있었지만 외환위기를 촉발시킬 정도로 심각한 수준은 아니었다. 크루그만도 경제성장률이 점진적으로 하락할 것으로 전망했지 위기상황을 예견한 적은 없다. IMF나 세계은행도 위기 직전까지 한국 경제의 기적적인 성장을 칭송한 것으로 보아, IMF는 위기를 사전에 예견하지 못했다. 특히 IMF가 한국에 대하여 사전에 경고를 했다는 흔적은 어디서도 찾을 수 없다.
제2단계로, 동남아의 외환위기가 한국으로 전염되면서 채권자 사이에서 심리적인 공황상태가 일어나자 헤지펀드를 필두로 해외자본이 일시에 탈출을 시도하면서 외환이 폭등하고 유동성 위기에 봉착했다. 하지만 채권자들은 ‘동아시아 내부결함론’을 주장하면서 위기의 원인을 한국의 내부 문제 때문이라고 규정했다. 채권자들은 한국의 외환위기가 다각적인 원인이 복합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으면서도, 한국 정부와 협상 단계에서는 철저히 내부결함 문제만 부각시켰다. 하지만 한국 정부와 협상을 끝낸 직후 IMF는 공식적 또는 대외적인 자리에서는 외부적인 요인이 상당 부분 작용했다고 말을 바꾸었다.
제3단계에서, IMF와 한국 정부는 구제금융의 조건으로 한국 경제 내부를 철저히 구조조정하는 데 합의하고 다양한 방법을 구사하여 영미식 자본주의체제를 이식시켰다.[182] 그 과정에서 IMF는 주어진 권한을 넘어서는 여러 가지 월권행위를 했다.
제4단계로, IMF는 미국 재무부와 월스트리트 자본의 이익을 대변하는 데 앞장섰다. IMF는 한국 측으로부터 무역이나 자본시장 개방과 관련하여 통상적이고 쌍무적인 관계에서 도저히 얻을 수 없는 양보를 받아냈다. 특히 미국 기업과 경쟁하고 있는 한국 대기업의 경쟁력을 약화시키는 여러 가지 경제정책을 요구하는 동시에 초국적자본이 자유롭게 한국 시장에서 활동할 수 있는 교두보를 구축했다. IMF가 미국의 이익을 대변하는 이유는 미국이 IMF의 최대주주이며 캉드쉬가 IMF 총재에 선임되고 세 번 연임하는 데 미국이 결정적으로 지원했기 때문이라는 추정이 가능하다.
마지막 제5단계다. IMF는 한국을 위기에서 탈출시킨다는 명분으로 고금리정책, 긴축재정정책, 낮은 경제성장률과 같은 축소지향적인 경제정책을 펼쳤고 그 결과 외환위기는 금융위기, 실물위기 등 경제 전반적인 위기로 확산되었다. 한국의 기업과 금융기관, 부동산의 가치가 급락하자 초국적 자본은 한국의 많은 기업과 우량자산을 헐값세일(fire-sale) 가격에 매입했다. 그리고 한국 경제는 외환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생긴 부작용으로 인해 아직도 혼란에 빠져 있다.
이상의 흐름이 채무자의 입장에서 정리한 위기의 역사다. 각 단계를 대비하면 <표 7-1>처럼 요약된다.
<표 7-1> 위기실체에 대한 채권자와 채무자의 관점
물론 이러한 채무자의 관점은 소위 ‘음모론’에 일방적으로 경사된 편향적인 시각으로 백안시(白眼視)될 수 있다. 패자(敗者)이며 약자(弱者)의 입장에서 감정에만 치우쳐 수호천사의 도움을 고마워하지 못할망정 이를 비판하는 것은 세계화 시대를 역행하는 시대착오적이며 국수주의적인 발상이라는 비난을 받을 여지가 있다.
따라서 우리가 국수주의적인 입장에서 탈피하고 세계화된 국제질서 속에서 나름대로의 입지를 확보하여 거센 세계화의 물결을 헤쳐나가기 위해서는 글로벌 차원의 정치-경제 질서의 냉엄함을 정확하게 인지해야 할 필요가 있다.
부국(富國)이 다양한 형태의 힘이나 자원을 최대한 활용하여 더욱 많은 부를 축적하려고 애쓰는 행위는 자본주의체제 아래서 자연스런 일이다. 이를 옳지 못하다고 비난한다면 자본주의체제가 유지될 수 없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사실은,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간의 냉전체제가 붕괴된 후에 자본주의체제 안에서 체제 간 또는 국가 간에 새로운 긴장관계가 형성되었으며 헤게모니 확보를 위하여 치열한 물밑 전쟁이 진행되고 있다는 점이다. 과거의 동지가 더 이상 현재의 동지가 될 수 없으며, 적과의 동침은 다반사로 일어나는 현실이다. 이러한 냉엄한 국제 정치-경제 질서를 이해해야만 우리가 다시는 외환위기 같은 불행을 반복하지 않고 험난한 세계화 시대를 제대로 헤쳐나갈 수 있을 것이다.
아무튼 채권자가 쓴 역사와 채무자가 쓴 역사가 완전 대립의 양상을 보이는 것은 한국에서 외환위기가 발생한 원인에 대한 양자 간의 인식 차이에서 비롯된다. 채권자들은 한국에서 외환위기가 일어나자 한국이 해외채권자에게 진 빚을 도저히 갚을 수 없는 ‘지급불능’ 상태에 빠졌으며 그 원인으로 한국 내부의 구조적인 결함 때문이라는 ‘내부구조결함론’을 제시했다. 반면에 채무자의 관점은 한국이 비록 유동성 부족 상태에 빠졌지만 이는 캐시플로우(cash-flow)를 잘못 관리한 탓에 흑자도산 상태에 처하게 된 것이므로 상당액의 유동성이 제공되었다면 한국이 외환위기를 탈출할 수도 있었다는 것이다. IMF가 감기 환자에게 감기약을 주는 대신에 폐렴 수술을 집도함으로써 일을 크게 벌였다는 식으로 비유되기도 한다. 특히 수술 과정에서 수혈까지 차단함으로써 환자의 병이 필요 이상으로 악화되었다는 시각을 채무자 일각에서는 가지고 있다.
스티글리츠도 한국의 위기가 “지급불능 때문이 아니라 신인도 상실 때문”이라고 정리한다.[183] 마찬가지로 하버드대학교의 펠트스타인(Martin Feldstein)도 한국의 외환위기는 유동성 부족 때문이라고 규정한다.[184] “한국의 위기는 근본적인 채무이행불능 상태라기보다는 일시적인 유동성 부족의 문제였다. 더욱이 한국의 경상수지적자 규모는 매우 작았고 급속히 감소하는 추세였기 때문에, 정부지출 감축과 세율 인상, 그리고 통화 긴축이라는 전통적인 IMF의 정책은 필요치 않았다. 한국에 필요한 것은 15년 전 남미처럼 채권은행이 협조하여 채권 만기를 연장하고 이자상환을 위한 추가여신을 제공함으로써 단기부채를 재조정해주는 것이었다.”
외환위기기 일어난 원인을 굳이 하나만 선택하라면 필자는 유동성 부족 때문이라는 후자의 입장을 지지한다. 물론 전자의 주장처럼 한국 경제 내부에 전혀 문제가 없었다는 것은 아니다. 1997년 당시 한국 경제는 고비용-저효율 구조로 인해 고전하고 있었고 크루그만 주장처럼 성장잠재력이 급속도로 침하되고 있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동의하지만 이런 현상이 외환위기를 촉발시킬 정도로 심각한 수준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뒤에서 상세히 설명되겠지만 한국에서 외환위기가 일어난 가장 직접적인 원인을 한 가지만 들라면 ‘헤징(hedging) 되지 않은 외화표시 단기외채가 과도했기 때문’이다. 위기 당시에 외채가 단기가 아니라 장기였다면 며칠 만에 그 많은 외채 상환요구가 없었을 것이고 외환보유고 부족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설사, 외채 상환요구가 있었다 해도 외화표시가 아니라 원화표시였다면 한국은행의 발권을 통해 부채를 상환할 수 있었을 것이다. 또한 외화표시 부채라 하더라도 사전에 헤징만 해놓았다면 환율이 일시에 급등했다 해도 부족분을 메울 수 있었고 따라서 외환보유고가 고갈되지 않았을 것이다. 이와 같은 관점은 ‘유동성 부족론’과 맥을 같이한다.
이상 여기까지가 ‘패자의 변’이라는 글에서 필자가 주장했던 내용이다. 요점은 외환위기가 발발하는 과정에서 물론 한국이 잘못한 점도 있지만 위기를 일으킬 정도는 아니었으므로 그리 패배의식이나 자괴감을 가질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불행히도 한국 사회의 현실은 그 반대로 돌아가고 있다. 이제껏 한국에서 일어난 모든 것이 잘못되었으니 송두리째 바꾸어야 한다는 것이다. 일부에서는 월스트리트식 자본주의를 철저히 이식하여 모든 세상을 내장까지 들여다 볼 수 있도록 투명하게 만들면 경제성장은 저절로 따라올 것이라고 혹세무민(惑世誣民)하기도 한다. 월스트리트식 자본주의는 세계 최대최고(最大最高) 국가인 미국에서는 통했을지 모르지만 한국에 수입되어 체화되는 과정에서 두 얼굴을 가진 메두사가 되었다. 반면(半面)은 완전경쟁과 투명성이라는 그럴듯한 모습이지만, 다른 반면은 카지노 자본주의(casino capitalism), 샤일록 자본주의(shylock capitalism), 피스톨 자본주의(pistol capitalism)라는 추악한 모습으로 변질되어 한국의 성장잠재력을 바닥에서부터 붕괴시키고 있다.
이러한 함정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우리 스스로 우리의 모든 것이 잘못되었다는 패배의식부터 버려야 한다. 식상한 이야기지만 ‘한강의 기적’이라는 세기의 업적은 아무나 이루어낼 수 있는 역사는 아니다. 세계의 수많은 나라와 민족이 빈곤에서 탈출을 갈구했지만 두 세대 만에 이를 달성한 민족은 세계에서 우리가 유일하다. 이러한 기적을 일군 우리의 전통적인 비결이 외환위기 한번 당했다고 해서 다 버려야 하는 시대착오적인 퇴물일 수는 없다. 크든 작든 우리가 변화를 시도할 때 반드시 고려해야 할 두 가지 요인이 경로의존성(path dependence)과 시스템적 관점(systemic view)이다.
첫째, 경로의존성이란 지나온 우리의 과거를 완전히 무시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현재 우리의 모습은 과거의 유산 위에 있는 것이며 미래 역시 현재의 바탕 위에 가꾸어가야 한다. 과거를 무시하고 완전히 새로운 것을 쌓아 올리겠다는 시도는 사상누각(沙上樓閣)이 될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해서 과거에 잘못된 것까지 무조건 계승할 수는 없다. 여기서 핵심역량(core competence)이라는 개념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 과거의 성공요인 중에서 남들과는 차별화되고 미래에도 장점으로 작동할 수 있으며 여러 분야에 확산 가능한 장점을 핵심역량이라 한다. 한국이 가진 핵심역량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한국이 경제적인 성공을 거둔 요인이 무엇인지, 경쟁국가는 어떤 장점을 갖고 있는지, 미래의 세상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지를 먼저 이해해야 한다. 단순히 외환위기의 단초를 제공했다고 해서 모두 잘못된 것이므로 폐기해야 한다는 주장은 우리의 핵심역량을 우리 스스로 포기해버리는 우둔하기 그지없는 일이다.
서울대학교 송병락 교수의 주장 역시 맥을 같이 한다. “우리 것은 전부 버리고 외국 것만 따르는 것이 세계화가 아니다. 미국의 한 권위 있는 경제잡지는 삼성전자를 세계 최고의 IT기업으로 꼽았다. 우리 안에 세계 일류가 있는데 왜 남의 모델을 따라야 하는가? 네덜란드에서 배울 것이 아니라 삼성전자에서 배워야 한다. 요즘 대기업 정책은 ‘투명성’을 목표로 삼고 있는 것 같다. 투명성은 기업이 지켜야 할 기본일 뿐이지 목표는 될 수 없다. 기업과 산업의 경쟁력을 높이는 데 정책의 초점을 맞춰야 한다.”[185]
한걸음 더 나아가 새로운 세상이 열리면 이에 맞는 새로운 핵심역량을 계발할 필요가 있다. 지구상에 없는 새로운 시도를 해볼 수도 있을 것이고 선진국을 벤치마킹할 수도 있겠지만 이때 반드시 고려해야 할 요인이 시스템적 관점이다.
시스템이란 여러 가지 개별 요소가 상호 연결되어 네트워크를 구성하면서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는 모습을 일컫는다. 시스템은 계층적 구조로 되어 있어 하위 시스템은 상위 시스템을 구성하는 부분 요소가 된다. 예컨대 경제시스템은 금융시스템, 기업시스템, 시장시스템, 노동시스템 등으로 구성되며, 한편으로 경제시스템은 국가시스템의 부분 요소다.
이러한 시스템이 외부를 둘러싸고 있는 환경과 상호작용하면서 생존하고 진화하기 위해서는 적합성(fitness)을 확보해야 한다. 적합성에는 외적 적합성(external fitness)과 내적 적합성(internal fitness)이 있다.[186] 외적 적합성이란 시스템이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주변 환경의 속성에 적응해야 한다는 개념이다. 예컨대 기업조직의 경우 주변의 환경변화가 안정적이라면 CEO는 원가나 품질을 중시할 것이지만 주변 환경이 급변한다면 당연히 스피드를 중시할 것이다. 한편 내적 적합성이란 시스템 내부의 여러 구성 요소 상호 간 정합성 또는 일관성을 유지해야 한다는 개념이다.
예컨대 <표 7-2>처럼 환경변화가 안정적이라면 업무는 정형적이고, 인력은 주로 기능적인 전문가로 채워질 것이며, 공식적인 조직구조는 피라미드 형태를 유지할 것이며, 조직문화는 관료화될 것이다. 그래야 생존 발전이 가능하다.
반면 환경변화가 격심하다면 업무는 창조적인 일로 채워질 것이며 사람은 자율적인 프로로 채워질 것이고 조직은 문진형(文鎭型)[187]으로 납작해질 것이고 조직문화는 유연해질 것이다.
<표 7-2> 조직의 내적 적합성 사례
만일 내적 적합성이 부족하면, 즉 균형이 깨지면 조직은 혼란에 빠진다. 예를 들면 환경이 급변하는 상황에서 자율적인 프로가 창조적인 업무를 하는데 조직구조가 피라미드 형태이고 조직문화가 관료적이라면 조직은 혼란에 빠지고 성과가 나오지 않게 되는 것이다. 당연히, 조직이 환경 변화에 대응해서 외적 적합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조직의 구성요소 네 가지를 바꾸어가야 한다.
그러나 네 가지 요소를 일시에 바꾼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므로 우선순위를 정해 각 요소를 바꾸게 된다. 그런데 어떤 경우에는 네 가지 중 하나만 바꾸는 사례가 있는데 이는 오히려 조직에 혼란(비적합성)만 가중시키게 된다. 예를 들면 선진기업을 벤치마킹하여 조직구조를 피라미드 조직에서 ‘키 작은(flat)’ 조직으로 바꾸었으나 나머지 요소는 함께 바꾸지 않고 기능적 전문가, 정형적 업무, 관료적 조직문화가 그대로 남아 있으면 조직은 내적 균형이 허물어지고 더욱 비효율적으로 된다. 또 네 가지 요소를 모두 바꾸는 데 너무 많은 시간이 걸리면 역시 변화는 실패한다. 예를 들면 업무를 과거의 수비적이고 보수적인 업무에서 도전적, 공격적, 창조적으로 전환시키면서도 사람의 평가를 가점방식으로 바꾸지 않고 과거의 감점방식을 그대로 적용하여 실패에 대해 벌을 준다면 조직의 내적 불균형은 더욱 커진다.
이러한 관점은 국가시스템이나 경제시스템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가령 어떤 시스템에 문제가 생겨 선진의 새로운 시스템을 연구하여 우리나라에 도입한다고 하면, 최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할 사항은 다른 시스템과의 적합성 여부다. 부분적으로 최적이라 하더라도 전체를 모을 경우에 상충관계가 생겨 오히려 부작용이 생기는 소위 ‘집합의 오류’가 일어난다면 개선(改善)이 아니라 개악(改惡)으로 귀결될 수 있다. 시스템적 관점에서는 부분 최적보다 전체 최적이 우선하며, 분석적인 접근(reductionism)보다 총체적인 접근(wholism, systemic approach)이 필요하다.
특히 정부 차원에서 기존의 특정한 제도를 구악(舊惡)으로 규정하고 선진의 새로운 제도를 신선(新善)으로 강요할 경우 대단히 신중할 필요가 있다. 한국 경제는 외환위기라는 초유의 사태를 겪으면서 우리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과거 수십 년간 이어져오던 경로의존성을 버리고 영미식 자본주의체제를 도입하게 되었다.
하지만 세계 최대최고의 국가에서나 작동되는 국가운영시스템이 과연 작고 약한 우리나라에 정착되고 제 기능을 발휘할 것이냐 하는 점에 대해 냉철히 고민해보아야 한다. 만일 800cc 마티즈 엔진에 4500cc 에쿠스의 차체를 얹는다면 어떻게 될까? 에쿠스가 얼마나 편하고 고급스러운지 누구나 다 안다. 하지만 52마력의 힘으로는 2,165kg를 견인하기에 힘이 부친다. 하지만 지금 한국 사회에서는 이러한 웃지 못할 일이 실제로 일어나고 있다. 특히 외환위기를 당하고 나서 IMF와 미국 재무부 그리고 월스트리트라는 삼인방의 합작으로 영미식 자본주의체제를 한국 사회 깊숙이 이식하면서 이런 해프닝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세계에서 가장 크고 가장 강한 나라에서 작동하는 경제사회시스템을 규모가 20분의 1도 채 되지 않는 한국에 이식하면 우리도 미국처럼 승승장구할 것이라는 주장 때문이다. 때리는 시어미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더 밉다고 삼인방보다, 삼인방의 주장에 부화뇌동하여 미국식 자본주의시스템과 그 아류는 모두 선(善)이고 한국의 기존 경로의존성은 모두 악(惡)이므로 철저히 배격해야 한다고 몇몇 논객이 앞장서고 있다. “자본시장을 더욱 개방하라, 외자만 유입된다면 헤지펀드라도 좋다, 무역장벽을 더욱 낮추어라, 기업은 부채비율을 낮추어라, 증시에서 자금을 조달하라, 대기업 집단을 해체하라, 벤처만이 살 길이므로 대기업은 더욱 규제하라, 우량기업과 부동산을 해외자본에 매각해도 결국 한국 땅에 있으면 한국 것이다.” 자신의 주장이 월스트리트 자본의 이익을 대변한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채, 아니면 알고서도 또 다른 목적을 위하여 사실 왜곡에 앞장서고 있다. 남 탓 할 일이 아니다. ‘한국적’ 자본주의시스템만 정립되어 있다면 모든 것이 해결될 일이다.
4. 강소국으로 가자
‘한국적’이란 형용사의 전제조건은 무엇인가? 다시 ‘핵심역량(core competence)’ 개념을 차용하자. 첫째, 과거 성장의 요인이어야 한다. 둘째, 미래에도 적용될 수 있어야 한다. 셋째, 확산성 또는 범용성이 있어야 한다. 이런 게 무엇이 있을까?
작은 고추가 맵다는 것이다. 첫째, 과거 한국이 개발독재를 할 수 있었던 것도 나라가 작았기 때문이다. 싱가포르가 리콴유(Lee Kuan Yew)의 선도 아래 일거에 선진국으로 진입할 수 있었던 것도 마찬가지다. 둘째, 앞으로 세상을 지배할 트렌드 중 하나가 작다는(small) 것이다. 반도체도 작게 만들어 집적도를 높일수록 부가가치가 높고, GE의 잭 웰치가 내건 3S 중 하나가 small이다. 과거 GM이 “큰 것은 좋은 것”이라는 자만심에 사세가 기울었다면 미래의 구호는 “작은 것이 아름답다(small is beautiful)”라는 것이다. 셋째, small은 확산성이 높은 개념이다. 산업에서도 경박단소(輕薄短小)가 이미 성공의 비결이 되었으며 조직 운영에서도 “큰 조직을 작은 조직처럼” 운영하는 게 큰 숙제다.
강소국이라는 말이 낯설기는 하지만 우리는 이미 개발경제 시절에 강소국 모델과 유사한 경험을 한 바 있다. 전 국민이 충만한 기업가정신으로 무장하고 노동집약 산업을 거쳐 장치산업을 니치로 삼아 많은 일류기업을 일구어냈다. 전자, 반도체, 조선, 자동차, 석유 같은 산업에 대규모 자본을 투입하여 설비, 장치를 갖추고 효율성을 철저히 점검해가는 과정에서 강소국 시스템이 어느 정도 성공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세상이 바뀌어 더 이상 개발독재는 통하지 않는다. 정부가 일일이 민간에 개입할 수도 없으며 해서도 안 된다. 개발을 위해서 국민의 기본권을 훼손할 수도 없다. 국가 차원의 산업합리화 정책도 구시대 유물로 전락했고 외부환경도 바뀌었다. 과거에 문을 닫아걸고 한국 내부에서만 경쟁하던 시절은 벌써 막을 내렸으며 개방화 시대에는 개발독재가 더욱 통하지 않는다. 이제 우리는 새로운 강소국 모델을 창조해내야 한다. 강소국에 대한 벤치마크는 몇 있지만 경로의존성을 무시한 채 그대로 복제할 수는 없다. 우리 스스로 새로운 모델을 만들어가야 한다.
강소국이라는 용어를 정리하자. 크기나 역량을 기준으로 국가를 분류할 때 대개 강대국(强大國)과 약소국(弱小國)의 두 가지로 나눈다. 강(强)이란 ‘힘이 세다(strong)’는 의미고 약(弱)은 ‘힘이 약하다(weak)’다는 것이다. 그리고 대(大)는 ‘크다(big)’는 것이고 소(小)는 ‘작다(small)’는 뜻이다. 따라서 강대국(强大國)은 ‘크고 힘이 센 나라(big and strong country)’이며 약소국(弱小國)은 ‘작고 힘이 약한 나라(small and weak country)’이다.
분류 기준에 대해 여러 가지 이견이 있겠지만 먼저 대소(大小)의 기준에는 국적별 또는 동일언어권의 인구, 국토면적 등이 있다. 일단 여기서는 그 기준을 국적별 인구수로 하고, 인구가 1억 명이 넘으면 대국(大國)으로, 그 미만이면 소국(小國)으로 하자.
한국의 인구는 채 5천만 명이 되지 않으므로 소국에 해당한다. 강약(强弱)의 기준도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여기서는 국민소득을 기준으로 삼자. 국민소득이 1만5천불 이상이면 강국(强國)이고 그 미만이면 약국(弱國)으로 나눌 수 있다.[188]
한국의 국민소득은 1만불 내외이므로 약국에 포함된다. 이러한 두 가지의 잣대로 국가 유형을 구분하면 <표 7-3>과 같다.
<표 7-3> 대소-강약으로 분류한 국가 유형
여기서 강대국과 약소국은 이미 우리가 익숙하게 사용하는 용어지만 강소국(强小國)과 약대국(弱大國)이라는 말은 생소하다. 강소국이란 ‘작지만 강한 나라’, 즉 SBS(Small but Strong) country이며 약대국은 ‘크지만 약한 나라’를 말한다. 강대국에는 미국, 일본이 들어가고 약대국은 중국, 러시아, 인도 등이다. 강소국은 네덜란드, 스위스, 스웨덴, 핀란드 등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개도국과 후진국은 약소국이다.* 强大國(BaS): Big and Strong, 强小國(SbS): Small but Strong, 弱大國(BbW): Big but Weak, 弱小國(SaW): Small and Weak.
이처럼 굳이 대소를 나누는 이유는 소국의 국가전략이 대국과는 다를 수밖에 없으며 반드시 달라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혹자는 한국이 인구가 4천만 명이 넘는데 인구가 5백~1천5백만 명밖에 되지 않는 네덜란드나 스웨덴, 스위스나 핀란드와 같이 소국에 속할 수 있느냐고 비판할지 모른다.[189] 인구가 적은 소국은 사회적 합의를 비교적 손쉽게 이끌어낼 수 있으며 훌륭한 지도자만 나오면 나라 전체를 일사불란하게 이끌어갈 수 있는 것이 아니냐는 문제 제기를 할 수도 있다. 이런 점에서 한국은 오히려 프랑스(5,945만 명)나 영국(5,954만 명), 독일(8,201만 명) 같은 중국(middle country)에 포함시키는 것이 타당하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
물론 대소를 나누는 기준으로 인구와 국토면적 같은 정량적인 잣대를 사용할 수 있지만 그와는 달리 정성적인 잣대를 적용할 수도 있다.
첫째, 내수시장이 작아서 독자적인 시장만으로는 선진국으로 진입할 수 없는 나라는 소국이다. 이 잣대에 따르면 미국이나 일본은 당연히 대국이다. 경제 전체에서 수출이 11~12%를 차지하고 있지만 자국 인구도 많고 내수시장 규모도 충분하므로 극단적으로는 다른 나라와 교류하지 않고 혼자만의 힘으로도 강국 수준을 유지할 수 있는 저력을 갖고 있다. 하지만 한국은 자국 인구도 작고 내수시장 규모도 협소하므로 혼자서는 선진국으로 도약할 수 없으며 경제의 많은 부분을 해외수출에 의존해야 하므로 소국일 수밖에 없다.[190] 따라서 강소국 개념에는 이른바 ‘개방 소국(small open economy)’의 개념이 포함되어 있다.
두 번째, 지식의 외부성이라는 잣대를 기준으로 살펴보자. 주지의 사실이지만 토플러는 『권력이동』에서 권력이 힘에서 돈으로, 그리고 지식으로 이동한다고 했다.[191] 우리 사회도 이미 자본주의(資本主義)에서 지본주의(知本主義)로 이동하는 조짐이 곳곳에 보이고 있으며 그 추세는 더욱 강해지고 있다. 과거는 산업화 시대였고 물리적인 생산요소의 투입이 중요했다면 미래에는 지식정보화 시대가 전개될 것이고 인적자본과 그 속에 체화된 기술이나 지식이 경제성장의 원동력이 된다. 국가 차원에서도 경쟁력의 원천이 군사력에서 자본력으로, 다음에는 지식창출 역량으로 이동할 것이며 성장잠재력도 지식에 기반을 두게 될 것이라는 점은 명확하다.
내생적(內生的) 성장이론의 창시자 중 한 사람인 스탠퍼드대학교의 폴 로머(Paul Romer)에 따르면,[192] 경제성장의 원천이 되는 아이디어(idea)는, 개발하는 데는 많은 비용이 들지만 일단 개발하고 나면 이를 널리 확산하는 데는 비용이 거의 들어가지 않는다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193] 아이디어의 가치는 시장 규모에 따라 달라진다. 내수시장이 큰 나라는 작은 나라보다 아이디어를 개발하는 데 더 큰 유인효과를 가지며, 그 결과 시장 규모가 큰 나라가 작은 나라보다 더욱 빨리 성장할 수 있다. 특히 작은 나라에서 큰 나라의 특성인 통제나 규제가 심할 때에는 성장이 둔화된다고 로머는 주장한다. 하지만 한국은 내수시장도 작고 통제와 규제도 만만치 않으므로 결국 지식창출에서 상대적으로 열위에 처할 수밖에 없다.
인구도 성장잠재력과 직결된다. 인구를 계산하는 기준은 과거처럼 국경이나 민족으로 구분하기보다는 오히려 동일언어권으로 기준이 바뀔 것이다. 내생적 성장이론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지식의 외부성’은 디지털 기술의 발전과 맞물려 더욱 큰 효과를 발휘하게 된다. 지식의 외부성은 의사소통이 자유로운 동일언어권 내에서 활발히 일어날 것이다. 같은 지식이나 기술이 창조되더라도 그 지역이 영어권이냐 또는 한글권이냐에 따라 그 확산되는 범위가 크게 차이가 나며 창조에 대한 인센티브도 달라진다. 테크노스릴러 소설의 대표주자 격인 크라이튼(Michael Crichton)은 『쥐라기공원』과 『잃어버린 세계』라는 화제의 소설로 엄청난 부를 축적했다. 수익은 책에서 그치지 않고 영화 판권, 캐릭터 판매로까지 연결되었다. 최근에 최고의 베스트셀러가 된 『해리 포터』 시리즈는 이미 판매 부수가 수 억 부를 돌파했다. 만일 『쥐라기공원』과 『해리 포터』가 한국에서 한글로 출간되었다면 지식의 외부성이 그만큼 일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언어권에 따라 창조의 대가에서 큰 차이가 난다.
이러한 점에서 보면 한국의 4천만 명이라는 적은 인구는 경제성장에서 비교열위 요인으로 작용한다. 베이징어권이 7억 3천만 명, 영어권이 4억 3천만 명, 스페인어권이 2억 7천만 명, 그리고 힌디어권, 아랍어권, 포르투갈어권, 벵갈어권, 러시아어권이 1억 6~8천만 명, 일본어권과 독일어권이 1억 2천만 명이다.[194]
세 번째, 외교력을 기준으로 살펴보자. 주변 국가 사이에서 중심적인 힘을 발휘할 수 없다면 이 역시 소국이다. 한국은 이제껏 동아시아에서 외교적으로 중심이었던 적이 없다. 근대 이전에는 중국의 변두리 국가였으며 근대 이후에는 중국과 러시아 그리고 일본의 틈바구니에서 등거리 외교를 펼칠 수밖에 없었다. 한때는 일본에 주권을 빼앗기기까지 했으며 해방 이후에는 주변 강국의 리스트에 미국이 추가되었다. 현재도 한국은 중국, 일본, 러시아, 미국이라는 주변 4대 강국과의 관계 속에서 우리의 위상을 찾을 수밖에 없으므로 결국 한국은 소국으로 분류된다. 최근 ‘허브(hub)’이라는 주장이 먹혀들어 가는 것도 주변 강대국의 틈바구니에서 나름대로의 니치(niche)를 찾아야 한다는 관점의 발로다.
단순히 한국의 인구가 프랑스나 영국과 비슷하다고 해서 한국이 대국이거나 프랑스나 영국이 소국일 수는 없다. 영국이나 프랑스는 외교상 유럽 대륙에서 중심적인 주도적 역할을 하고 있다.
네 번째, 스웨덴이나 핀란드처럼 인구가 적다고 해서 선진국으로 진입하기가 쉬운 일만은 아니다. 지구상에 수많은 소국이 후진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스웨덴이나 핀란드도 십수 년 전에 외환위기에 봉착하여 나라 전체가 중진국으로 전락할 위기를 겨우 넘긴 적이 있다. 물론 인구가 적으면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는 데 상대적으로 유리하다는 장점도 있겠지만 내수시장 규모도 작고 지식의 외부성이 일어날 수 있는 범위가 한정되어 있다는 단점도 있으므로 단순히 적다는 것 자체가 강국으로 도약하는 데 유리한 조건이 될 수 있다는 주장에는 한계가 있다.
결국 인구, 내수시장 규모, 지식의 외부확산 가능성, 외교상 주도권 여부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하면 한국은 대국이 아니라 소국이다. 이처럼 한국의 현재 위상이 약소국이라면 한국의 미래 국가비전은 강대국이 아니라 당연히 강소국이 되어야 한다.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소국이 하루아침에 대국이 될 수는 없는 일이다.[195]
강소국이 태생적으로 안고 있는 한계는 시장이 협소하고 자원이 빈곤하다는 사실이다. 중소기업이 대기업 흉내 내다가 망하듯이 한국이 태생적인 한계를 무시하고 무작정 강대국을 흉내 낸다고 미래가 보장되지 않는다. 미국과 일본 그리고 독일은 더 이상 우리의 벤치마크가 될 수 없다. 그들은 경제규모 면에서 한국과 비교가 되지 않는 강대국으로 GDP 규모에서 미국은 우리의 21배, 일본은 10배, 독일은 5배나 된다. 이럴진대 강대국에서나 성공한 자본주의 모델을 아무런 여과도 없이 한국 사회에 접목하려는 시도는 실패로 귀결될 것이라는 점이 쉽게 예상된다.
예컨대 이찬근 교수는 앵글로색슨식 자본주의체제가 한국에 적합하지 않다는 이유를 여러 가지 든다.[196]
“무엇보다도 미국은 보편성보다는 특수성이 강한 나라이다. 특히 미국은 큰 땅과 다양한 민족으로 구성된 나라이다. 이러한 조건으로 인해 미국은 개방체제를 택하더라도 외부로부터의 충격이 상대적으로 약하고, 다양한 민족 간에 일종의 위계적인 계층구조를 형성하는 것이 수용될 수도 있다. 또한 미국은 달러화의 패권적 지위와 영어 사용의 본국이라는 이점을 살려 금융서비스업을 글로벌하게 발전시킬 수 있는 독특한 조건을 구비하고 있다. 바로 이 때문에 미국은 무역적자가 심각한 데도 각국 자본이 미국으로 모여드는 극히 특수한, 그 어떤 나라도 복제할 수 없는, 미국만의 고유한 조건을 향유하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즉, 미국 모델이 보편성보다는 특수성이 강하다는 사실은 미국 모델을 쉽게 추종해서는 안 된다는 경고를 함의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미국 모델을 무작정 따라가다가 경제사회의 파탄을 겪은 대표적인 나라가 바로 멕시코이다.”
한국은 이제까지의 경로의존성을 바탕으로 한국 독자적인 자본주의체제를 만들어가야 한다. 바로 ‘강소국 모델’이다. 물론 현재의 강소국이 우리의 미래 모습과 완전히 일치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강대국보다야 우리가 실질적으로 배울 점이 더 많을 것이다. 대기업 속에서 중소기업이나 벤처기업이 나름대로의 입지를 확보하고 생존하는 것처럼 한국도 강소국 모델을 발전시켜나감으로써 강대국 사이에서 독자적인 위상을 찾아야 할 것이다.
5. 그리고, 다시 도전하자
벤처기업의 주요 특성 중 하나가 하이리스크 하이리턴(high-risk, high-return)이다. 위험을 감수하면 돌아오는 것도 많지만 그만큼 실패할 위험도 높다는 것이다. 성공한 벤처는 실패라는 토양 위에 일어설 수 있으며, 실패를 두려워하면 위험을 감수할 수 없고 높은 반대급부 역시 기대할 수 없다.
신고전주의 경제학자들은, 기업이란 직면한 환경에 적응해야 생존할 수 있으므로 근본적으로 경영환경이 기업행위를 결정하며 기업은 수용자일 뿐이라고 본다. 하지만 컬럼비아대학교의 넬슨(Richard Nelson) 교수에 따르면,[197] 경제성장에서 사람이 중요한 이유는 사람이 생산요소의 일부로서 생산과정에 투입되는 객체라는 관점보다는 혁신을 이루는 주체이기 때문이다. 내생적 성장이론주의자들은[198] 동아시아의 기적적인 성장요인 중 첫 번째를 ‘기업가적 의사결정’으로 꼽는다. 한국을 포함한 동아시아의 기업인들은 기업가적인 의사결정과 환경변화를 학습하는 능력을 바탕으로 불확실성이 높은 새로운 사업에 과감히 뛰어들어 경제기적을 일구어냈다는 것이다. 1979년에 서울의 동대문 시장을 방문한 MIT의 홀로몬(Herbert J. Hollomon) 교수는 “한국은 내가 방문해본 나라 중에서 모험가적 성향이 가장 강한 나라”라고 지적했다.[199] 페얼리(Robert Fairlie)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미국에 살고 있는 61개 소수민족 집단 중에서 이스라엘 사람과 한국 사람의 자영업률(self-employment rate)이 가장 높다.[200] 미래학자인 나이스비트(John Naisbitt)는 2003년 7월 24일 인터컨티넨탈 호텔에서 열린 ‘차세대 성장산업 국제회의’에서 “한국의 인터넷산업처럼 기업가정신을 통한 상향식 방식을 통해 새로운 경제를 만들거나 활성화할 필요가 있다”라며 기업가정신의 고양을 강조하기도 했다.[201]
기업가정신의 핵심은 도전정신이다. 위험을 감수하고(risk-taking) 도전해서 성공하면 도약하지만 실패하면 망한다. 하지만 실패에도 좌절하지 않고 전열을 정비하여 다시 도전하는 것이 기업가정신이자 도전정신이다. 한국은 과거 개발경제 시절에 위험을 감수했고 다행히 성공했다. 수많은 기업인이 불모지에서 맨주먹으로 새로운 사업을 일으키는 과정에서 많은 성공과 실패가 교차했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한국은 경제 분야에서 소위 ‘기적(miracle)’이라고 일컬어질 대성공을 이루었다.
하지만 이러한 것은 과거지사로, 한국에서 더 이상 위험감수는 힘들게 되었다. KDI 김중수 원장은 한국에서 ‘경제하려는 의지’가 소멸되고 있다는 사실을 지적한다.[202]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아서 루이스(Arthur Lewis)는 ‘경제하려는 의지(the will to economize)’가 경제성장의 동인임을 갈파한 바 있다. 경제성장은 노동자의 근로기강과 기업가의 모험정신이 동력이며, 결국 인간 노력의 결과라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우리의 뇌리에서 어느새 사라져버린 개념이다. 마치 자본과 기술이 있으면 경제는 저절로 성장한다든지, 인위적 선진제도 도입으로 선진국이 될 수 있다는 착각 속에 살고 있는 형국이 되었다고 보인다. 지금 우리는 경제주체의 ‘경제하려는 의지’를 복원시키는 데 사회의 모든 자원과 지식을 집중해야 한다.”
또한 김중수 원장은 경제하려는 의지를 촉발하기 위해서는 개인의 자유와 다양성을 최대한 존중하고, 능력에 상응하는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수월성을 추구하는 정책을 펼쳐야 한다고 강조한다.
지난 3년 반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IMF와 월스트리트의 합작으로 영미식 자본주의체제가 한국 사회 깊숙이 이식되어왔다. 미국이나 영국처럼 사회 전반에 걸쳐 실패(시장실패, 금융실패, 기업실패, 정부실패 등)가 일어나지 않도록 철저히 감시·감독체제를 정비하면 사회 전체가 안정되고 다시 재도약을 할 수 있다는 논지 아래 우리의 경로의존성과는 전혀 다른 영미식 자본주의체제가 한국 사회에 접목되었다. 요컨대 위험을 회피(low-risk)하면 고수익이 보장(high-return)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위험을 회피한 국가가 고도성장을 이루어낸 사례는 인류 역사상 없다.
물론 과거에 위험을 감수한 결과가 외화의 유동성 부족이라는 실패로 귀결되고 그로 인해 한국민 모두가 고통을 당했으므로 조건반사적으로 위험 감수에 대해 거부감을 보이는 것은 수긍이 간다. 그러나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은 위험을 부담하지 않으면 실패의 가능성은 낮아지지만 결코 고수익은 올릴 수 없다는 사실이다. 이찬근 교수도 한국민 대다수가 서구적 산업화의 완성을 희구한다면 위험부담이 큰 분야에 기민하게 거대한 투자를 감행할 수 있는 고유의 특성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203]
“자기 자금만으로는 상대를 추격할 수 없기에 차입경영의 불가피성을 인정해야 하고, 이로 인해 발생하는 과도한 부채에 대해서는 담보대출, 상호지급보증 그리고 복합경영이라는 기존의 안정 메커니즘이 작동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유수 기업에 대한 외자의 경영권 지배를 막기 위해서는 상호지분 보유에 의한 안정 주주의 확보가 절실히 요구된다. 족벌지배가 밉다고 한국의 재벌체제가 갖는 고유의 강점을 대안도 없이 포기해서는 안된다.”
마찬가지로 노부호 교수 역시 도전의식을 강조한다.
“우리보다 별로 나을 것이 없다고 생각되는 일본의 국민소득이 3만 달러인데 우리는 아직도 1만 달러라면 우리는 왜 안 되는가 하는 도전의식을 가져야 한다. 위기가 코앞에 와 있는 지금 우리는 행동하지 않으면 파멸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역설적으로 2만 달러 달성에 필요한 긴박감을 가질 수밖에 없는 좋은 여건에 놓여 있다 할 것이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많지 않다.”[204]
무사 안전한 경제운영을 하면서 높은 성장을 할 수 있다는 주장은 현실 경제에서는 실현할 수 없는 환상 속의 그림일 뿐이다. 현재 한국은 위험을 감수하지 않되 영원히 후진국에 만족할 것이냐, 아니면 다시 위험을 감수하더라도 재도약을 시도할 것이냐 하는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현재처럼 위험을 회피할 경우에 나라 전체가 안정되고 위험에 처할 가능성은 낮아지겠지만 선진국 대열에는 영원히 낄 수 없다.
물론 선진의 화려한 제도나 세계표준에 혹할 수 있다. 부채비율 축소, 기업지배구조 개선, 투명성 제고, 소액주주 감시제도, 사외이사제도 등은 보기에도 그럴듯하다. 하지만 이러한 월스트리트 방식은 강대국인 미국에서나 작동할 수 있는 예외적인 시스템이지 한국 같은 약소국에서 제대로 작동할 수 있을지 심각한 고민이 전제되어야 한다. 이제껏 외환위기를 당한 대부분의 국가에 IMF와 미국 재무부의 주도로 영미식 자본주의체제가 이식되었지만 대부분 실패로 종결되었으며 지금도 많은 부작용을 일으키고 있다. 선진국을 무비판적으로 흉내 내는 것만으로도 선진국이 될 수 있다면 걱정할 필요가 없지만, 중소기업이 대기업을 흉내 내다가는 망한다. 그렇다고 해서 과거 수십 년간 이어져오던 개발경제방식의 경제사회 시스템도 미래에는 제대로 작동할 리 없으므로 과거로의 회귀는 우리의 선택지가 아니다. 기업가정신과 도전정신을 고양할 수 있는 우리의 길을 찾아 독자적으로 갈 수밖에 없다.
한번 실패했다고 좌절하는 것은 기업가정신에 맞지 않는다. 우리가 위험을 감수했으니 실패 사례는 다반사로 일어나는 일이라고 대범하게 넘기고 다시 일어나 도약해야 한다. 재도약을 위해서는 국가 CEO부터, 공직자, 기업인, 서민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공공 부문과 민간 부문 모든 곳에서 소멸되고 있는 기업가정신을 되살리는 일이 무엇보다도 시급하다.
극단적으로 대비하는 감은 들지만 여러 국가가 가지고 있는 사회 시스템을 크게 나누면 수비를 강화하는 시스템과 도전을 촉진하는 시스템으로 구분할 수 있다. 이미 성장기를 지나 성숙기에 들어선 선진국은 대개 수비적 시스템을 가지고 있지만 고도성장을 하는 개발기 또는 성장기에 있는 나라는 도전적 시스템을 택하고 있다.
우리 경제는 이제 막 1만불이라는 혼돈의 가장자리에 있으므로 마의 1만불을 벗어날 때까지 당분간은 도전을 촉진하는 사회 시스템을 갖추어야 한다. 그러나 외환위기라는 실책을 범한 대가로 우리는 IMF와 대주주 국가들로부터 수비적 시스템을 구축하도록 강요받은 결과 이제 막 걸음마를 시작한 우리 사회가 노년층에나 어울리는 안전 위주의 사회시스템을 구축함으로써 사회 전체가 이른바 조로(早老) 현상을 보이고 있다.
개별기업 단위로 보면 도전하는 과정에서 실패와 성공 사례가 엇갈릴 것이지만 나라 전체로 보아서 실패기업보다 성공기업이 많으면 전체는 성공으로 평가된다. 한두 번 실패했다고 해서 사회에서 완전히 도태시켜버린다든지 실패한 기업가를 몰염치범으로 몬다든지 하는 관행도 종식되어야 한다. 값비싼 실패의 대가는 성공의 밑거름이 될 수 있는데도 만일 기업가정신까지 상실하면 다시 일어서기를 포기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만일 패자부활전의 기회가 박탈된다면 국가 전체에서 기업가정신은 사라질 것이고 모두가 패배의식에 젖게 될 것이다. 경영 구루(guru)인 톰 피터스는 『혼돈 위의 번영』이라는 명저에서 ‘국민총실패율(GNF: Gross National Failure rate)’이라는 재미있는 개념을 제안한다.[205] 국민총실패율이 높을수록 그만큼 성공할 수 있은 확률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미국에서 많은 기업가가 기록적인 수준의 고용을 창출했지만 이는 기록적인 실패를 동반하고서 이루어졌다고 톰 피터스는 주장한다. “우리는 모든 분야에서 빠른 혁신을 이루어야 하지만, 혁신이란 한번도 실험하지 않은 새로운 것을 다루는 일이다. 불확실성과 복잡성이 점차 증가하고 있다. 실행을 통해서만 불확실성이 제거되고 복잡성을 다룰 수 있으며, 복잡성의 증가에 직면하여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시도는 항상 실패를 낳을 수밖에 없다. 빠르게 실행하려면 보다 많은 실패를 빨리 해보아야 한다. 요컨대 혁신의 속도를 극적으로 가속화시키려면 실패의 속도와 양을 극적으로 증가시켜야 한다.” 역설적이지만 상당히 공감 가는 주장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자세이며, 설사 실패하더라도 반드시 그 과정에서 학습을 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위험을 감수하는 도전의 대가 중 하나는 부의 축적이다. 모든 선진국이 경제개발 초기에는 국내 자본 축적과 자본가 양성에 많은 노력을 경주했다. 자본은 성장의 밑거름이 되는 필수 생산요소이며 자본주의체제에서 부와 자본의 축적 없이 성장을 기대하기란 불가능하다.
물론 이제껏은 일부 자본가도 잘못한 점도 있었다. 사이비 재벌이 철없는 머니게임을 벌이다가 국부손실을 끼친 일, 전문경영인이 노동자들과 결탁해서 기업을 망친 사례, 정경유착과 부정부패를 통해 부당하게 부를 축적한 경우, 기업은 망하는데 기업주는 해외에서 호의호식하는 사례, 부의 축적을 넘어 권력욕까지 노리다 실패한 사례 등 여러 비판거리가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영자는 묵묵히 기업경영을 하면서 해외에서 외화를 획득하고 이익을 내고 고용을 늘리고 세금을 내면서 국가경제를 지탱하고 있다. 한두 마리의 미꾸라지가 흙탕물을 만든다고 해서 호수 전체를 흙으로 메워버릴 수는 없다. 과정이 건전하고 정당하다면 그 성과는 존경받아야 한다. 모든 자본가를 무조건 악인으로 몰아붙인다면 기업가정신은 고갈되어버릴 것이다.
대한상공회의소에 따르면, 세계 22개 주요국가 중에서 한국의 반(反)기업정서가 70%로 가장 높다.[206] 이는 네덜란드(13%)와 대만(18%), 싱가포르(28%), 일본(45%)에 비해 월등히 높은 수준이다. 대한상의는 1997년의 외환위기가 경제전반적인 시스템 부실에서 기인된 것인데도 사회 분위기가 이를 기업책임으로 몰아가 반기업 정서를 악화시킨 요인이 됐다고 분석한다.
또 정권이 바뀔 때마다 기업의 잘못을 들춰내 일벌백계(一罰百戒)식으로 기업인을 처벌했던 과시성 기업정책 관행도 반기업 정서가 뿌리내리게 된 원인으로 작용했다는 것이다. 중고등학교 경제 관련 교과서가 기업의 1차적 목적을 이윤추구로 서술하면서도 기업의 사회적 역할이나 빈부격차 해소에 대한 책임을 더 강조하고 있어 반기업 정서를 야기하고 있다고 대한상의는 지적한다.
2002년 4월 미국 남부 앨라배마주 몽고메리 거리 곳곳에는 ‘Welcome! Hyundai’라는 플래카드가 나부꼈다. 이곳에 공장을 세우기로 결정한 현대자동차에 대한 고마움의 표시였다. 몽고메리 시당국은 10억불을 투자하는 현대차를 위해 그간 2억 5천만불의 자체 예산으로 공장 앞 도로를 닦고 상하수도를 놓아주었다. 직원 연수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직원모집 공고도 시 예산으로 냈다. 현대차가 공장 앞 도로이름을 ‘Hyundai Boulevard’로 바꿔달라고 요청하자 시는 즉각 주민 청문회를 열어 수락했다. 현대차 공장이 들어서면 5,355개의 일자리가 새로 만들어지고 총투자액도 부품제조업체를 합치면 15억불에 달해 지역경제가 살아나기 때문이다. 중국 베이징(北京)시는 현대차와 절반씩 합작한 ‘베이징-현대자동차’가 생산하는 쏘나타를 택시 용도로 팔 수 있게 택시 크기 관련 규정을 아예 소형에서 중형으로 고쳐버렸다.
2003년 4월 8일 삼성전자가 멕시코 중부 케레타로에서 냉장고, 에어컨 등을 생산하는 백색가전 공장 준공식을 가진 후 멕시코 경제장관이 폭스 대통령에게서 “준공식에 직접 참석하라고 했는데 왜 다른 사람을 보냈느냐”라고 질책을 받았다고 한다. 그는 준공식에 앞서 삼성전자 윤종용 부회장에게 헬기를 보내 대통령궁으로 초청해 만나는 등 공장 준공에 깊은 관심을 보였다.
1995년 삼성전자가 영국 북부 윈야드 현지에서 가진 전자복합단지 준공식 에는 엘리자베스 2세 여왕과 부군 에든버러 공(公)이 직접 나와 테이프커팅을 했다. 윈야드 지역 왕실 대표 기스버러 공과 프레이저 상공차관 및 정부 관계자가 대거 참석해 축하했다. 우리의 반기업 정서와는 대조되는 사례들이다.[207]
더욱 근본적으로는 사상과 철학이 전혀 다른 자본주의와 민주주의가 서로 결합되면서 생긴 오해 중 하나가 평등 문제다. 식상한 이야기지만 민주주의에서 주장하는 만민 평등 차원에서 보면 기회도 평등해야 하고 결과도 평등해야 한다. 가령 똑같이 시드머니로 시작했는데, 어떤 사람은 노력해서 부를 더 늘리고 다른 사람은 흥청망청해서 다 잃어버렸다 해도 이를 다시 절반으로 나누어 가져야 한다. 자본주의에서는 다르다. 기회가 평등했으면 그 결과가 부자와 빈자로 갈라지더라도 이를 수용해야 한다.
그리고 국민의 기본권인 선거권과 주주(株主)의 기본권인 주권(株權)은 서로 다른 이야기다. 민주주의 원칙 아래 모든 국민들은 공평하게 한 표씩 선거권을 가진다. 하지만 자본주의 원칙 아래서는 100억 원의 자본을 투자한 자본가와 1만 원을 투자한 소액주주의 권리가 같을 수 없다. 같은 권리를 부여하자고 주장하게 되면 자본주의에서의 최고 발명품인 주식회사제도 자체가 바닥에서부터 허물어져 내릴 것이다.
1980년대 일본의 소형 자동차가 미국 시장을 석권하고 엄청난 이익을 내자 미국은 일본의 전략을 벤치마킹한다. 미국 측이 내린 결론은 상품개발 순서가 다르다는 것이다. 미국은 전통적인 전략대로 고객의 니즈(needs)를 파악하고 설계를 한 다음 마지막으로 부품의 원가절감에 들어간다. 일본은 이와 달리, 고객의 니즈를 파악한 후 먼저 목표 이익을 정하고 이를 달성할 수 있도록 설계를 거꾸로 맞추어간다. 요컨대 미국은 합리적인 자원배분을 통해 생산성을 높이는 방식을 택한 데 비해 일본은 먼저 의지(목표이익)를 정한 후에 모든 것을 이에 맞추어가는 역추진 방식을 택한 것이다.
이는 소국에 시사하는 바 크다. 최선의 노력을 경주해봐야 이미 수백 년에 걸쳐 자본과 노동력을 축적해온 선진국을 추격하기란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모험을 걸어야 한다. 먼저 도달하고자 하는 목표를 원대하게 설정해야 한다. 안정적으로 성장하되 영원히 후진국으로 만족할 것인가, 아니면 언젠가는 선진국이 되고자 모험을 걸 것인가에 대해 국가 차원의 합의를 도출할 필요가 있다. 만일 선진국의 길을 택했다면 안정 위주의 전략과 시스템은 포기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실패와 시행착오가 일어날 수 있으나 실패에 좌절하지 않고 재도약을 해야 한다.
설정하는 목표는 다소 무모해도 좋다. 예전에 개발경제 시절처럼 원대한 목표를 세우고 이를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달성해내던 기업가정신을 되살려야 한다. 자본이 모자라면 저축을 조장해야 하고 국내에서 해결이 안 되면 국가원수라도 해외로 나가 자본을 빌려와야 한다. 노동력이 모자라면 여성인력을 동원하고 그도 안 되면 외국인 인력을 들여와야 한다. 기술이 부족하면 국내에서 개발하되 그도 안 되면 해외에서 빌려오든 사오든 해야 한다. 전 국민이 힘을 합해 자원을 동원하여 원대한 목표를 향해 나아가야 한다.
이제는 우리가 선택을 할 시기다. 1997년 말에 일어난 경제위기는 아직도 진행 중이며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성장과 안정 사이에서 우리의 선택이 요구된다. 안정을 택하면 성장을 포기해야 하고, 성장을 택하면 안정을 희생해야 한다.
안정과 성장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 하다가는 두 마리 모두 놓칠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리고 안정을 추구하고 성장을 포기하면 남미의 전철을 밟을 가능성이 크다. 진정 우리가 원하는 미래가 크루그만의 예견처럼 소련 사례의 재현은 아닐 것이다.
우리는 고도성장 과정에서 한 번 좌절을 맛보았다. 그렇다고 해서 영원히 선진국 되기를 포기할 수는 없다. 아기가 걸음마를 배울 때 수없이 넘어지고 다시 일어나는 과정을 거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럽다. 단 한 번에 일어나서 걸어 다니는 아기는 세상 어디에도 없다. 한 번 넘어졌으니 다시는 일어서려는 시도조차 하지 말라는 주문은 애당초 어른 되기를 포기하겠다는 처사다.
우리 경제도 마찬가지다. 제법 이룬 것도 있다고 큰소리 치기는 하지만 세계 전체 자본주의 차원에서 보면 우리는 막 걸음마를 시도하는 유아 단계다.
불행하게도 우리는 넘어지는 과정에서 커다란 충격을 받았다. 만약에 외환보유고라는 안전장치가 제대로 작동했다면 가볍게 털고 일어날 수 있었던 일인데도 중상을 입고 IMF라는 의사에게 치료를 맡길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우리가 한 번 넘어졌다고 평생을 앉은뱅이로 살아갈 수는 없다. 재활치료도 하고 다리 근육도 튼튼하게 만들어 다시 일어나야 한다. 물론 앞으로도 넘어질 때가 있겠지만 안전장치만 잘 설치해두면 다시 일어나서 재도약할 것이다.
안정과 성장은 선악의 문제가 아니라 선택의 문제다. 언젠가 선진국이 되기를 원한다면 성장을 택해야 한다. 외환위기 이전의 활력을 되찾고 다시 도전에 나서야 한다. 물론 하다가 실패할 수도 있겠지만 시도조차 포기하기에는 이제껏 우리가 쌓아온 노력이 너무 아깝다.
천혜의 자원 없이 한국이 언젠가 선진국이 되기 위해서는 나라 전체가 강소국으로 재탄생해야 한다. 국가 원수로부터 서민에 이르기까지 도전의식과 기업가정신이 충만해야 한다.
그래도 서산대사 말씀처럼, 참선에 이르기 위해서 “마치 모기가 무쇠로 된 소에게 덤벼드는 것 같아서 모기가 함부로 주둥이를 댈 수 없는 곳이라도 목숨을 내놓고 한번 뚫어보면 몸뚱이 채 들어갈 것”이라는 비장한 심정으로 시도해볼 일이다.[208]
글을 마치며: “정치의 계절에서 경제의 계절로”
저널리즘 분야의 영예와 권위를 상징하는 퓰리처상은 1961년에 일본 최초로 나가오 야스시(長尾靖)라는 사진기자에게 돌아갔다.[209] 사진의 제목은 ‘도쿄 찌르기(Tokyo stabbing)’였다.
<그림 8-1> 1961년 퓰리처 수상작 ‘도쿄 찌르기’
1960년 10월 12일 도쿄의 히비야(日比谷) 공회당에서 다음 달에 있을 국회의원 선거 유세가 시작되기 전에 3당의 정치적 논쟁을 관람하기 위해 3천 명이 모여 있었다. 『마이니치신문』의 간부 사진기자인 나가오는 TV 카메라맨들과 다른 사진기자들과 함께 취재를 하고 있었다. 연사 대기석에서 불과 15피트 떨어진 곳에 있던 나가오는 이미 한 컷만 남긴 채 필름 한 통을 거의 다 써버린 상황이었다. 사회당 당수인 아사누마 이네지로(淺沼稻次郞)가 연단에 나와 자유민주당과 미국과 일본 간의 안보협정을 헐뜯었다.
연설 시작 몇 분 후에 한 무리의 극우파 학생들이 야유를 보냈지만, 연설은 계속되었다. 대부분의 기자는 유세장 근처 소란의 현장을 향해 카메라 플래시를 터뜨리기 바빴지만 마침 한 컷밖에 남지 않았던 나가오는 ‘마지막 순간’을 위해 셔터 누르기를 자제하고 있었다.
이때 유세장 반대쪽에서 갈색 막대기를 든 그림자가 연단으로 달려들었다. 아사누마가 달려드는 대학생에게로 돌아서자 그 학생은 긴 칼로 그의 복부를 깊이 찔렀다. 극우주의자인 17세의 야마구치 오토야(山口二矢)가 길이 32.5cm의 칼로 찌르자 아사누마는 비틀거리며 연단에서 몇 걸음 물러났고 칼은 다시 그의 가슴을 찔렀다.
연단 바로 옆에 서 있던 나가오는 마지막 남은 한 장의 필름으로 야마구치가 두 번째 습격의 칼날을 빼는 순간 셔터를 눌렀다. 바닥에 넘어진 아사누마는 곧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병원에 도착하기도 전에 숨을 거뒀다.
이 사진이 UPI통신사를 통해 전 세계 신문에 게재되었고, 나가오는 퓰리처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안았다.[210]
이 사건을 계기로 일본 사회는 ‘정치의 계절’에서 ‘경제의 계절’로 급속히 전환하고 결국은 세계 2등의 경제 강국으로 부상한다. 그리고 그 과정을 주도한 인물이 바로 이케다 하야토(池田勇人) 수상이다. 이케다는 우리에게도 여러 가지 면에서 친숙한 인물이다. 1961년 11월 12일 박정희 당시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과 한일국교정상회담을 가진 인물이 바로 이케다 수상이다.
박정희는 1961년 5.16 군사혁명을 일으키고 7월에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에 취임했지만 국민의 환심을 사고 정통성 확보의 기틀을 마련하는 것이 시급했다. 그래서 경제 원조를 볼모로 조속한 민정 이양을 촉구하는 미국보다는 확실한 ‘큰손’인 일본에 손을 벌렸다. 미국도 정략적으로 한일 외교를 지지했다. 박정희는 쿠데타 6개월 만에 방미 도중 일본을 경유하여, 이케다 수상을 만나 한일국교정상회담을 서두르기로 합의한다.
이를 계기로 1965년 6월 22일 남한을 한반도의 유일한 국가로 하는 내용의 ‘한일기본조약’과 어업 협정, 청구권 자금 5억 달러(무상 3억 달러, 유상 2억 달러)를 받은 청구권 해결 협정 등의 ‘한일협정’이 조인된다.
이케다는 정치적으로 일본의 소위 ‘55년 체제’를 정착시켰다. 55년 체제란 1955년 10월에 좌우 사회당의 재통일이 이루어지고, 11월에 이루어진 ‘보수합동’(保守合同) 즉 자유당과 민주당의 합동에 의해 ‘자유민주당(자민당)’이 결성되는 정계 개편에 의해 형성된 안정된 정치체제를 말한다.[211] 55년 체제를 탄생시킨 하토야마(鳩山)는 ‘일소(日蘇) 국교 회복(1956. 10)’ 이후 은퇴했고, 이시바시(石橋) 내각은 이시바시의 사망으로 단명내각으로 끝났다. 키시(岸) 내각은 정치적 문제를 부각시킴으로써, 여야당의 세력관계가 안정되지 않고 대립이 격화되었다. 1958년 10월 경직법(警職法) 개정 문제에서부터 1960년 6월 일미(日美) 안정보장조약 개정에까지 이르는 일련의 과정이 이를 보여주고 있다. 결국 키시 내각의 정치적 쟁점을 중심으로 한 무리한 정국 운영은 야당과 국민의 강력한 반발을 불러 일으켰다. 바로 이때 이케다 수상이 등장한다. 키시 내각의 실패를 거울삼아 ‘저자세’로 등장한 이케다 수상은 1960년 12월에 ‘국민소득배증(倍增)계획’을 제안했고 내각의 정국 운영은 정치문제에서 경제문제로 쟁점이 넘어간다.
소득배증계획은 경제성장을 극대화하고 생활수준을 향상시키며 완전고용을 달성하기 위한 계획으로 1961∼1970년의 10년 동안 연평균 7.8% 성장하여 국민소득을 두 배로 높인다는 원대한 목표를 설정했다. 구체적으로 GDP는 9.7조 엔에서 26조 엔으로 2.6배, 국민소득은 87,736엔에서 208,601엔으로 2.3배 올린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실제로는 GDP가 연평균 11.6% 성장하여 6년 만에 목표치를 달성하고 1970년에는 목표치를 160% 초과 달성함으로써, 일본은 계획 기간 중 세계 제2의 경제대국으로 도약하여 선진국 진입에 성공한다. 1968년 인당 국민소득은 1,450달러였지만 경제규모 면에서는 독일을 제치고 미국에 이어 세계 제2의 경제대국으로 도약한다.[212]
또한 계획기간 중인 1964년에 OECD에 가입하였고 IMF 8條國이 된다.[213] 수출도 급속히 증가하여 1964년에 무역수지 만성 적자국에서 탈출하여 무역수지 흑자국으로 전환했으며 싸구려 제품의 대명사로 불리던 ‘made in Japan’이 고품질의 대명사로 변신하는 계기를 마련한다. 계획기간 중에 경제사회 시스템 역시 경제대국에 걸맞은 수준으로 올라간다. 산업이 고도화되고 국토가 개발되었으며 임해 공업지대가 조성되고 농업생산이 기계화되었으며 노사 간 협력적인 관행이 정착한다. 농업과 중소기업 문제도 해결되었으며 사회보장제도 등도 정비된다. 경제의 양적 확대뿐 아니라 지역 간, 기업 간, 계층 간 격차 문제도 해결된다. 사회 전체의 파이를 키워서 소득이 분배문제를 해결한다는 전략을 채택하여 성공한 것이다. 이처럼 한마디로 나라 전체가 완전한 변신의 과정을 거쳐 새로운 나라로 재탄생한 것이다.
1960년 당시 일본은 신미일(新美日)안보조약 비준을 둘러싸고 반미 분위기가 고조 되고 ‘총노동 대 총자본’(總勞動 對 總資本)의 대결 양상을 보였던 미쓰이 미이케(三井三池) 쟁의 등 노사분규도 극에 달하는 등 국론이 심각한 분열상을 보였고 그 와중에 ‘도쿄 찌르기’라는 사건이 발생했던 것이다.
이에 이케다 수상은 분열된 국론을 치유하고 공산주의와의 대결을 피하기 위해 ‘관용(寬容)과 인내(忍耐)’를 내세우며 ‘정치의 계절을 경제의 계절로’ 바꾸자고 설득에 나선다. “경제는 나한테 맡겨 달라”고 국민에게 호소했으며 “월급을 2배로 올려주겠다”는 슬로건은 공허하게 들렸지만 많은 국민은 그의 말에 희망을 걸었으며 결국 이케다는 일본 역사의 획을 긋는다.
이러한 성공의 원천에는 이케다 수상의 경제에 대한 강한 신념이 있었다. 재미난 것은 ‘국민소득배증’이라는 구상은 이전에도 있었다는 것이다. 기시 내각 때부터 소득배증 구상과 검토 작업이 있었지만 비관론자들의 벽에 부딪혀 실행에 옮겨지지 못했다.
그러나 이케다는 비관론자의 의견을 과감하게 물리치고 소득배증계획을 실행해갔다. 이케다는 당시 언론에 회자되었던 ‘월급 2배론’에 강한 관심을 보이며 일본 경제에 대해 “우수한 인력과 설비가 놀고 있다”고 보고 설비를 가동시키고 유효수요를 환기시키면 고성장이 가능하다고 인식한 것이다.[214]
이처럼 혼돈의 가장자리에 빠진 ‘일본 구하기’의 선봉에선 이케다라는 걸출한 지도자가 있었으며, 이케다가 우리에게 던져주는 메시지는 ‘정치의 계절에서 경제의 계절’이라는 키워드이다.
다른 선진국도 마찬가지다. 영국에는 대처가, 독일에는 아데나워(Konrad Adenauer)와 에르하르트(Ludwig Erhard)가 있었다. 네덜란드의 뤼버르스(Ruud Lubbers)와 코크(Wim Kok)는 ‘권리 대신 의무’를, ‘요구 대신 양보’를, ‘파업 대신 일자리’라는 바세나르 협약을 이끌어냈다.[215]
아일랜드의 기적에는 듀크스(Alan Dukes)가 있었다. 제1야당 당수였던 그는 여소야대(與小野大)의 의회에서 소수정권을 몰아세우지 않겠다며 “여당이 초당파적 경제정책을 세우고 경제 살리기에 전념한다고 약속하면 전폭적으로 협력하겠다”라고 선언한 ‘탈라 합의(Tallaght Agreement)’를 탄생시켰다. 반면 아르헨티나의 몰락에는 페론이라는 지도자가 있었다.
훌륭한 지도자가 제대로 리더십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사회를 이끌어가는 지도층의 ‘노블리스 오블리제(noblesse oblige)’가 요구된다. 지성(知性)은 그리스인, 체력은 켈트인과 게르만인, 기술력은 에트루리아인, 경제력은 카르타고인보다 뒤떨어졌던 로마인이 어떻게 세계적인 제국을 건설했을까? 『
로마인 이야기』의 저자 시오노 나나미(鹽野七生)의 대답은 간결하다. 노블리스 오블리제 덕분이다. 귀족과 원로원 의원이 자신이 누리는 특권에 걸맞은 의무를 다한 것이 대제국을 건설하는 원동력이었다는 것이다. 로마는 부족한 재정을 부유한 계층이 내는 돈으로 충당했고 귀족들은 전쟁터에서 늘 평민보다 먼저 적진에 뛰어들었다. 이처럼 서구 사회의 노블리스 오블리제 전통은 특권을 누리는 계층이 솔선해서 국가를 위한 병역의 의무를 다하고 부(富)를 사회에 환원하는 것으로 요약된다. 영국은 제1차 세계대전에서 50세 이하 귀족 남자 가운데 20%가 전사했다. 1982년 포클랜드전쟁에서는 앤드류 왕자가 헬기 조종사로 직접 참전하기도 했다.[216]
우리가 2010년에 국민소득 2만불을 달성한다는 비전은 정말 상식적인 노력으로는 불가능한, 거의 달성할 수 없는 벅찬 과제다. 한민족 모두가 각고의 노력을 해야 하고, 참을 수 있어야 하며, 힘을 한군데로 모으는 가운데 국가 전 영역에서 전례를 찾을 수 없는 단절적인 변화를 이루어내야 하는 과제다.
하지만 일단 마의 1만불을 넘어설 수 있다면 머지않아 2만불도 달성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우선 ‘정치의 계절’을 ‘경제의 계절’로 바꾸어야 한다. 우리에게는 시간이 없다. 진정 우리도 일본처럼 ‘서울 찌르기’라는 한계상황에 봉착해야만 정쟁(政爭)을 멈출 것인가.
보록 #1: 선진 19개국의 국가별 2만불 달성요인
국민소득 1만불에서 2만불로 성장한 요인을 국가별로 보면 <표 보록1-1>와 같다.
우선 실질GDP가 연평균 3% 이상 성장한 나라가 아일랜드(5.7%), 아이슬란드(4.1%), 룩셈부르크(3.6%), 일본(3.5%), 노르웨이(3.4%), 핀란드(3.2%), 호주(3.1%) 등이다. 그런데 호주 같은 나라는 인구가 연평균 1.4%씩 증가했으므로 인당 실질GDP 증가율을 보려면 인구증가율을 빼야 한다. 이를 감안할 경우 실질GDP 증가율이 3%를 넘는 나라는 아일랜드(5.3%), 룩셈부르크(3.3%), 노르웨이(3.0%), 아이슬란드(3.0%) 등이다.
<표 보록1-1> 국가별 2만불 달성요인[217]
물가 측면을 보면 연평균 5% 넘게 물가가 올라간 나라가 상당수다. 아이슬란드(40.6%), 스웨덴(8.1%), 덴마크(7.5%), 핀란드(7.3%), 노르웨이(7.2%), 이탈리아(7.0%), 프랑스(6.5%), 호주(5.3%), 미국(5.2%), 캐나다(5.1%) 등 10개국이다. 공통적인 현상은 이 나라 중에서 캐나다와 이탈리아를 제외한 모든 나라의 화폐가 평가절하되었다는 점이다. 19개국이 1만불에서 2만불로 가는 과정에서 물가와 환율의 상관관계를 보면, 아래 <그림 보록1-1>에서처럼 물가가 높은 나라에서 평가절하가 심하고 물가인상율이 낮은 나라에서는 평가절상이 되었다. 회귀분석을 해보면 물가가 1% 인상될 경우 환율은 0.85% 평가절하된다. 물가인상율과 평가절하율의 합이 5%를 초과하는 나라는 이탈리아(11.0%), 일본(9.1%), 스위스(7.0%), 핀란드(5.8%), 미국(5.2%), 캐나다(5.1%) 등 5개국이다.
<그림 보록1-1> 물가와 환율과의 관계
보록 #2: 노동생산성향상이 잠재성장률에 미치는 영향
1. 노동생산성 증가율을 회귀분석하여 TFPG 기여도를 추정
잠재성장률을 성장회계방식으로 구하는 경우에 기술발전, 즉 총요소생산성증가(TFPG: Total Function Productivity Growth)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노동생산성은 생산성 절대수치가 아니라 생산성 향상도이다. 생산성이 지속적으로 향상되더라도 향상 폭이 감소하면 TFPG에는 마이너스의 영향을 미치고 향상 폭이 증가해야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다시 말해 노동생산성 향상 여부가 중요한 게 아니라 향상추세가 증가세를 보이느냐 또는 감소세를 보이느냐 하는 것이 논점이다. 예컨대 선진국에서 노동생산성의 절대수치는 높지만 증가세가 낮으면 잠재성장률은 낮은 것이다. 반면 후진국의 경우 노동생산성의 절대수치는 낮지만 증가세가 높은 경우는 잠재성장력이 높은 것이다.
먼저 가장 약식으로 노동생산성을 구하는 방식은 ‘GDP를 취업자 수로 나누는 것’이다. 즉 ‘취업자 인당 GDP’가 노동생산성이다. 통계청 자료를 기초로 노동생산성과 증가율, 증가율 추이를 구하면 아래 <그림 보록2-1>과 같다.
<그림 보록2-1> 노동생산성 증가율 추이(원화 기준)
노동생산성은 점진적으로 증가하여 2002년에는 2,690만 원 수준이지만 증가율은 등락을 거듭한다. 증가율을 회귀분석하여 추세선을 구해보면 우하향(右下向) 모양으로 기울기는 -0.6009로 나온다. 다시 말해 노동생산성은 점진적으로 증가하고 있지만 그 증가세는 매년 0.60%씩 감소하고 있다는 의미다. 여기에 1980~2002년의 노동소득분배율 평균값인 0.576을 곱하면 0.35%가 나온다.[218] 즉 노동생산성 증가율이 매년 -0.60%씩 감소하며, 이는 잠재성장률을 -0.35% 감소시키는 효과가 있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여기까지의 노동생산성은 원화 기준이다. 본 자료에서는 국민소득을 달러 기준으로 다루고 있으므로 노동생산성 역시 달러 기준으로 환산할 필요가 있다. 관건은 원화의 대비 달러 환산율이다.
특히 한국의 경우는 외환위기가 일어나기 전에는 소득 1만불 달성과 OECD 가입을 위하여 달러 대비 원화가 실제 능력보다 상대적으로 고평가되었던 것으로 짐작되며 외환위기 이후에는 외환보유고 확보를 위해 원화가 비정상적으로 저평가되었던 적도 있다. 일부에서는 현재까지도 이러한 원화의 저평가 추세가 지속되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왜곡요인을 제거하기 위해 본 자료에서는 다음의 절차에 따라 환율에 구매력지수를 감안하여 환율을 수정한다.
첫 번째, 연도별 환율을 구한다. 세계은행 통계에서 ‘DEC alternative conversion factor (LCU per US$)’를 사용한다.
두 번째, 실질구매력으로 평가하기 위해 PPP변환지수를 환율에 곱하여 구매력 기준 환율을 구한다. PPP변환지수는 세계은행 통계에서 ‘PPP conversion factor to official exchange rate ratio’를 사용한다.
세 번째, 연차별 편차를 조정하기 위해 PPP변환달러를 회귀분석하여 추세선을 구한다. 변곡점이 4번 발생하므로 4차 방정식으로 구한 후 PPP수정환율을 계산한다.
네 번째, 각 연도의 PPP수정환율을 기준으로 각 연도의 노동생산성을 구한다.
이러한 절차를 밟아 나온 PPP수정환율이 <그림 보록2-2>에서 ‘다항식’으로 나온 추세선이다.
<그림 보록2-2> 대비 달러 원화 환율의 수정(PPP수정환율)
PPP수정환율을 위에서 살펴본 원화 기준으로 된 결과치에 반영하면 전과는 다른 결과가 나온다. 1980~2001년 동안 노동생산성 증가율의 추세선 역시 우하향(右下向)이지만 기울기는 -0.2748로 원화기준보다는 완만하다. 여기에 같은 기간 동안의 노동소득분배율(단순평균값)인 0.575를 곱하면 -0.1580이 나온다. 즉 노동생산성의 증가율이 매년 -0.27%씩 감소하는데 이는 잠재성장률을 매년 -0.16%씩 감소시키는 영향이 있다는 것으로 해석 가능하다. PPP수정환율로 구한 값이 원화 기준으로 구한 값보다 작게 나오는 이유는, 시간이 지나면서 원화가 절하되었기 때문이다. 반대로 원화가 절상되었다면 감소효과는 더 커졌을 것이다.
<그림 보록2-3> 노동생산성 증가율 추이(PPP수정달러 기준)
2. 한국생산성본부(KPC)의 노동생산성 관련 통계
한국생산성본부(KPC)는 더욱 복잡하고 세밀하게 노동생산성에 대한 통계를 1964년부터 발표하고 있다. 물적노동생산성지수, 부가가치노동생산성지수, 단위노동비용지수 등이다.
첫째, 물적노동생산성지수는 노동투입에 대한 산출량(산업생산)의 상대적 비율이다.[219] 생산의 효율성을 파악하는 데 유용한 지표로 활용된다. 이는 노동투입량의 포괄 범위에 따라 상용근로자 기준(상용근로자 5인 이상)과, 전체근로자 기준(5인 이상의 상용+비상용근로자)으로 구분된다.
둘째, 부가가치노동생산성지수는 노동투입에 대한 산출(불변부가가치)의 상대적 비율이다.[220] 임금결정의 준거 기준으로 보다 적합한 개념으로서 노동생산성의 국제경쟁력 비교에 유용한 지표로 활용된다.
셋째, 단위노동비용은 산출물 1단위를 생산하는 데 소요되는 노동비용으로서 근로자의 보수(명목)와 실질노동생산성의 관계에 의해 결정된다.[221] 단위노동비용을 측정하는 목적은 노동비용의 증가가 물가상승에 미치는 영향을 파악하기 위한 것이다. 근로자의 보수가 증가하면 단위노동비용이 높아지고, 노동생산성이 향상하면 단위노동비용은 낮아진다. 노동비용 개념은 엄밀히 말해 임금이나 복리후생비 등 근로자에게 지급되는 모든 보수(compensation cost)를 포함하지만 편의상 임금비용(wage cost)이 노동비용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크며, 또한 월별 자료의 가용성 측면에서 근로자 보수 자료를 이용하는 데 한계가 있기 때문에 KPC는 임금비용을 노동비용의 대용 개념으로 사용한다.
이렇게 보면 KPC는 노동생산성과 관련하여 세 종류, 네 가지의 지수를 발표하는 셈이다. 상용근로자의 물적노동생산성지수와 제조업 단위노동비용지수는 1970년부터 통계가 있으며, 전체근로자의 물적노동생산성지수와 부가가치노동생산성지수는 1985년부터 통계가 있다. 다만 KPC 자료에서는 1998~1999년에 시계열상 비연속 현상이 일어난다. 1998년 이전은 근로자 10인 이상을 대상으로 하되 1995년을 기준연도 100으로 했으며, 1999년 이후는 근로자 5인 이상으로 대상을 낮추고 2000년을 기준연도 100으로 했다. 따라서 이러한 자료가 연속성을 갖기 위해서는 1998년과 1999년의 연결고리를 만들어야 한다. 여기서는 편의상 1980~1998년의 추세가 1999년에 그대로 이어진다고 가정하고, 또한 2000년이 기준연도로 되어 있는 1999년 이후 자료를 1995년에 100으로 기준을 수정한다.
이러한 과정을 거친 후 1980~2002년의 네 가지 지표가 변하는 추이를 보면 <그림 보록2-4>와 같다.
<그림 보록2-4> KPC 통계의 노동생산성 추이
<그림 보록2-4>처럼 물적노동생산성은 상용근로자나 전체근로자 기준이 서로 비슷하게 가고 있으며 부가가치노동생산성은 상대적으로 조금 높게 나온다.
단위노동비용으로 구한 노동생산성은 <그림 보록2-5>처럼 기준연도인 1995년 이전에는 상대적으로 낮게 나오다가 이후 특히 1998년에 최고조에 달한다. 이는 외환위기 이후 진행된 구조조정과 임금삭감 등으로 단위노동비용이 상당 수준 낮아졌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그림 보록2-5> 단위노동비용으로 구한 노동생산성(1995~1998년)
이상 네 가지 지수의 증가율을 구하면 <그림 보록2-6>과 같다. 추세선은 각 지표의 증가율을 회귀분석한 결과다.
추세선의 기울기는 물적노동생산성(상용근로자)이 0.1184, 물적노동생산성(전체근로자)이 -0.4075로 나온다. 이렇게 큰 차이가 나는 이유는 외환위기 이후 상용근로자의 노동생산성 향상도는 점진적으로 나아지고 있지만, 실업자가 양산되어 전체근로자의 생산성 향상도는 크게 낮아졌기 때문으로 짐작된다. 부가가치노동생산성 역시 물적노동생산성(전체근로자)과 유사하게 -0.3947로 나오며 단위노동비용으로 본 노동생산성 향상도는 0.0113으로 나온다. 전체 평균은 -0.1681이다. 즉 1980~2002년까지 노동생산성은 향상되고 있지만 그 향상 폭은 매년 -0.17%씩 하락하고 있다는 개략적인 해석이 가능하다. 여기에 노동소득분배율 0.575를 곱하면 -0.096이 나온다. 즉 노동생산성 향상률의 감소추세가 잠재성장률을 매년 -0.10%씩 낮추는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그림 보록2-6> KPC 통계의 노동생산성 증가와 추세선
3. KPC 통계를 PPP수정달러 기준으로 분석한 노동생산성
이상은 KPC 자료를 원화 기준으로 분석했다면 다음은 노동생산성을 PPP수정달러 기준으로 살펴본다. PPP수정환율을 노동생산성지수에 반영하면 전과는 다른 결과가 나온다. 원화가 점진적으로 절하되기 때문에 그만큼 노동생산성의 향상 폭이 좁아 들기 때문이다
<그림 보록2-7> 수정 노동생산성 증가율의 추세선
<그림 보록2-7>처럼 PPP수정환율을 기준으로 환산한 노동생산성 지표의 증가율 추이는 모두 마이너스이며, 평균은 -0.5872로서 증가율이 매년 -0.59%씩 줄어든다는 의미다. 여기에 노동소득분배율 0.575를 곱하면 -0.337이 나온다. 즉, 노동생산성 향상률의 감소추세가 잠재성장률을 매년 -0.34%씩 낮추고 있다는 것이다.
이상의 보록 #2에서 살펴본 내용을 요약하면 <표 보록2-1>과 같다.
<표 보록2-1> 노동생산성 증감 추세와 잠재성장률에 대한 기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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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진실’이라는 단어 자체가 식상하지만 최근 여러 글에서 유행하는 “…에 대한 오해와 진실”이라는 패턴을 모방했다
[2] 강소국이란 ‘작지만 강한 나라’를 말한다. 영어로는 ‘Small but Strong Country’ 또는 ‘SBS Country’다.
[3] 개방에 대한 언급으로서 창문을 연다는 것은 ‘개방’을 의미하고 시원한 바람은 ‘경제성장’을 뜻하며 파리와 모기는 ‘부작용’을 말한다.
[4] The New York Times는 5달 동안 해외 8개국 10여명의 특파원을 동원하여 “글로벌 전염”(Global Contagion)”이라는 제목으로 금융위기의 원인을 분석하는 특집 시리즈 기사를 1999년 2월 15일부터 18일까지 4차례 연재했다. 그 중에서도 2월 16일자에 한국의 OECD 가입에 대한 내용이 상세히 소개되어 있다.: Kristof, Nicholas D. With David E. Sanger (1999. 2. 16). ”How U.S. Wooed Asia to Let Cash Flow in”. The New York Times.
[5] 정운영 (1999.3.2). ”누구의 장단인가”. 『한겨레신문』.
[6] Friedman, Thomas L. (1999). The Lexus and the Olive Tree. New York: Farrar, Strauss and Giroux.: 이 책을 읽을 때는 상당한 주의를 요한다. 어떤 국가든 세계화의 흐름에 동참하지 않고서는 경제성장 자체를 위협받는다는 세계화 논리가 짜임새 있고 설득력 있게 전개된다. 월스트리트를 장악하고 있는 유대 자본의 지배 영역을 글로벌 차원으로 넓히기 위해서는 국가 간 장벽을 허물어야 한다는 그들 의도의 편린을 엿볼 수 있다. http://www.conspiracyplanet.com에 관련 자료가 많이 수록되어 있다.
[7] 당시 세계의 중심이었던 칸발릭(현재의 카라코룸)의 성벽 안팎에는 몽골인, 중국인, 페르시아인, 위구르인들이 뒤섞여 살았고 종교도 기독교, 불교, 도교, 이슬람 등 갖가지였다고 한다. 무슬림 거주구역과 중국인 거주구역이 별도로 설정되었고 불교사원이 12개소, 모스크가 2개소, 교회당이 1개소가 있었다는 사실은 몽골제국이 지향했던 다원주의를 상징한다.
[8] Huntington, Samuel P. (1996). The Clash of Civilizations and the Remaking of World Order. New York: Simon & Schuster.
[9] 1993년에 무역수지가 균형을 이루었으므로 1993년을 기준연도로 삼아 구매력 기준 인당소득을 조정했다. 기초통계는 세계은행 GDP 자료를 사용했다.
[10] 영국,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벨기에, 네덜란드, 룩셈부르크, 덴마크, 아일랜드, 아이슬란드, 그리스, 스페인, 포르투갈, 스웨덴, 오스트리아, 노르웨이, 스위스, 터키 등이다.
[11] 2000년 12월에 마지막으로 슬로바키아가 가입하여 현재는 총 30개국에 이른다.
[12] 현재 기준으로 보면 러시아는 선진국 반열에서 제외되지만 그대로 강대국으로 인정받는다.
[13] 물론 G-시리즈 중에서 선진국이 아닌 경우도 있다. 예컨대 G3은 콜롬비아, 멕시코, 베네수엘라 등의 정책협의를 위해서 1990년 9월에 발족되었다. 소위 Groupe des Six Sur le Desarmement로 불리는 G6는 1984년 5월 22일에 핵 군비축소를 위해 아르헨티나, 그리스, 인도, 멕시코, 스웨덴, 탄자니아 등의 국가들이 발족했다. G9은 유럽 여러 나라가 비공식적으로 상호이익을 추구하기 위하여 구성했는데 오스트리아, 벨기에, 불가리아, 덴마크, 핀란드, 헝가리, 루마니아, 유고연방(세르비아와 몬테네그로), 스웨덴이 참가한다. 1984년 6월 21~22일 콜롬비아의 카르타헤나에서 발족되었다고 해서 소위 ‘카르타헤나 그룹’으로 불리는 G11은 중남미 국가 중에서 채무국들이 만든 협의체다. 아르헨티나, 볼리비아, 브라질, 칠레, 콜롬비아, 도미니카, 에콰도르, 멕시코, 페루, 우루과이, 베네수엘라 등이 참여한다. G15는 1989년 9월에 개도국이 모여 경제적인 협력을 촉진하기 위해 만들었다. 현재는 알제리, 아르헨티나, 브라질, 칠레, 이집트, 인도, 인도네시아, 자메이카, 케냐, 말레이시아, 멕시코, 페루, 세네갈, 스리랑카, 베네수엘라, 짐바브웨 등 16개국이 참여한다. G24는 IMF 체제 내에 있는 아프리카, 아시아, 중남미 국가가 상호협력을 목적으로 1989년 8월 1일에 발족했는데 알제리 등 24개국이 참가한다. 참여 범위가 가장 넓은 G77은 1964년 6월 15일에 발족하여 1967년 2월에 1차 각료회의가 열렸다. 개발도상국 간 경제적 상호 협력을 목적으로 현재는 131개국이 참가하고 있지만 명칭은 여전히 G77을 유지하고 있다.
[14] International Monetary Fund (May 1997). World Economic Outlook.
[15] 선진경제권에는 총 28개국이 포함된다; 호주, 오스트리아, 벨기에, 캐나다, 덴마크, 핀란드, 프랑스, 독일, 그리스, 홍콩, 아일랜드, 이스라엘, 이탈리아, 일본, 한국, 룩셈부르크, 네덜란드, 뉴질랜드, 노르웨이, 포르투갈, 싱가포르, 스페인, 스웨덴, 스위스, 태국, 영국, 미국.
[16] 스페인은 1970년 이후 현재까지 19~22권을 오르내리고 있다. 뉴질랜드는 1973년 OECD 가입 당시 국민소득이 세계 14위였으므로 선진국이었다는 데는 이견이 없지만 1996년에 17,765불로 최고 수준을 보였고 점차 순위가 하락하고 있으며 2001년에는 13,136불로 21위 수준이다
[17] 한국의 국민소득은 2002년에 10.013불로 1만불을 넘었다.
[18] 진중권 (1994). 『미학 오디세이』. 새길.
[19] Mintzberg, Henry (1975). ”The Manager’s Job: Folklore and Fact”. Harvard Business Review, 53, 100-110.
[20] 이는 필자가 만든 조어(造語)다.
[21] 4℃에서 물의 밀도가 가장 높다는 것은 상식이다.
[22] 프랑스의 물리학자 앙리 베나르(Henri Benard)는 액체의 얇은 층을 가열하면 액체 전체에 걸쳐 균일한 온도를 갖게 됨으로써 기이한 질서를 갖는 구조, 즉 육각형의 셀(cell)이 창발한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발견했다.
[23] 물이 수온이 일정하게 유지되는 상태(평형상태)에서 수온이 점점 올라가 100℃ 근처(비평형 상태)까지 가게 되면 미시적인 동요가 일어나더라도 무질서하게 흐트러져 있는 주위로부터 에너지를 흡수하여 주위의 엔트로피(무질서 상태)를 감소(또는 무산)시킴으로써 거시적으로 안정한 구조가 출현한다. 이렇게 출현되는 구조를, 주위의 엔트로피를 사라지게 만들어서 생겨나는 것이라는 뜻에서 무산구조(霧散構造, dissipative structure) 또는 산일구조(散逸構造)라고 부른다. 또한 이런 산일구조의 출현이 자생적으로 이루어진다는 의미에서 자기 조직화(self-organizing) 현상이 일어난다고 한다.
[24] Capra, F. (1996). The Web of Life: a New Scientific Understanding of Living Systems. New York: Brockman.
[25] 임계치(또는 임계질량, critical mass)란 핵물리학에서 핵분열 연쇄반응을 유지할 수 있는 한계인 최소질량을 말한다. 모래성 쌓기를 할 때 계속 쌓다 보면 하중을 이기지 못해 모래성이 무너지게 되는데, 마지막 한 알갱이의 모래가 올라간 순간이 임계치를 통과하는 것이다.
[26] Lévi-Strauss, Claude (1955). Tristes Tropiques. Paris: Librairie Plon, 478-479.
[27] Wallace, Anthony F. C. (1956). ”Revitalization Movements”. American Anthropologist, 58, 264-281.
[28] Kuhn, Tomas (1970). The Structure of Revolution. Chicago: University of Chicago Press.
[29] Levy, Amir (1988). ”Second-Order Planned Change: Definition and Conceptualization”. Organizational Dynamics, Summer.
[30] 박정훈 (2003. 5. 16). “국민소득 ‘1만불의 덫’”. 『조선일보』.
[31] 『동아일보』 (2003. 7. 10). ”1만 달러서 주저앉나(10), 전문가 좌담”.
[32] 중국 회수(淮水)라는 강의 남쪽인 회남(淮南)의 귤나무를 회수의 북쪽인 회북(淮北)에 옮겨 심으면 탱자나무로 변해버린다는 뜻으로 사람이나 물건이나 ‘원래 바탕과 본질이 같은 것도 조건과 환경에 따라서 변한다’는 뜻이다.
[33] 2001년 기준.
[34] Miles, Marc A., Edwin J. Feulner, Jr., and Mary Anastasia O’Grady (2004). 2004 Index of Economic Freedom: Establishing the Link Between Economic Freedom and Prosperity. Heritage Foundation.
[35] 인간개발보고서는 UNDP가 개발정책 방향 정립을 위한 기초 자료로 활용하기 위하여 1990년부터 독립된 전문가팀에 위임, 작성하여 매년 발표한다. 인간개발지수(HDI)는 구매력 기준 1인당 실질 GDP, 평균수명 및 교육 수준 등을 고려하여 산정된다.
[36] IMD. IMD World Competitiveness Yearbook 2003.
[37] 인천대 이찬근 교수는 그 원인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1997년 말 외환위기로 국내총생산 대비 총투자율은 37~38%대에서 20%대로 주저앉았고 지난 정부 내내 전혀 회복되지 않았다. 이에 당황한 DJ 정부는 소비 부양을 통해 경기를 유지하고자 했고 이것이 수익성 중시로 전환한 은행권의 변화와 맞물려 가계금융 및 카드채 폭증으로, 그리고 급기야 가계부채 대란으로 이어졌다.” (경향신문 (2003. 7. 4))
[38] 명목 국내총생산액에서 명목 설비투자액이 차지하는 비중을 말한다.
[39] 『한국일보』 (2003. 8. 4). ”2만 달러 시대로: 선진경제 부침에서 배운다(12), 일본/제조업의 힘”
[40] 『동아일보』 (2003. 7. 10). ”1만 달러서 주저앉나(10), 전문가 좌담”.
[41] 각국의 1인당 경상GDP를 각 연도의 경상달러로 환산한 금액을 기준으로 한 경우다.
[42] 자유주의에 관한 고전적인 연구로 1911년에 레너드 홉하우스(Leonard Hobbhouse)가 쓴 『자유주의(Liberalism)』가 있다. 자유주의가 구질서를 공격하고 새로운 역사적 발전을 제시하는 데 여러 가지 자유가 사용되는데 정치적 자유도 그 중 하나다. 홉하우스가 열거한 자유에는 공민의 자유, 재정상의 자유, 인권의 자유(사상과 종교), 사회적 자유, 경제적 자유, 가정의 자유, 지방-종족-민족의 자유, 국제적 자유, 정치적 자유 등이 있다.
[43] Tocqueville, Alexis de (1835). Democracy in America. Translated by Henry Reeve. London: Saunders & Otley. 프랑스 정치학자인 토크빌(1805~1859)은 1827년 베르사유재판소 배석판사에 취임하였으며 1831년 교도소 조사를 위하여 미국을 방문한 후에 1835∼1840년에 걸쳐 『미국의 민주주의(De la Democratie en Amerique)』라는 두 권의 책을 저술했다. 이 책은 근대 민주주의의 가능성과 문제점을 깊이 있게 분석했고 또한 ‘다수자에 의한 전제’의 폐해를 지적하고 있다.
[44] Lipset, Seymour Martin (1959). ”Some Social Requisites of Democracy: Economic Development and Political Legitimacy”. American Political Science Review, 53, March.
[45] Friedman, Milton (1962). Capitalism and Freedom. Chicago: University of Chicago Press.
[46] Huber, Evelyne, Dietrich Rueschemeyer, and John D. Stephens (1993). ”The Impact of Economic Development on Democracy”. Journal of Economic Perspectives, 7, Summer, 71-85.
[47] Barro, Robert (1994). ”Democracy and Growth”. NBER Working Paper No. 4909, October.
[48] Francis, David R. (1999). ”Political Freedom Translates into Economic Freedom”. IDEAS, February 4.
[49] Lipset, Seymour Martin (1959). ”Some Social Requisites of Democracy: Economic Development and Political Legitimacy”. American Political Science Review, 53, March; Dahl, Robert A. (1971). Polyarchy: Participation and Opposition. New Haven: Yale University Press; Huntington, Samuel P. (1991). The Third Wave: Democratization in the Late Twentieth Century. Norman: Oklahoma University Press; Rueschemeyer, Dietrich, Evelyne Stephens and John Stephens (1992). Capitalist Development and Democracy. Chicago: University of Chicago Press.
[50] Pei, Minxin (1999). ”Economic Institutions, Democracy, and Development”. presented to the Conference on Democracy, Market Economy, and Development Sponsored by the World Bank and the government of the Republic of Korea (February 26-27).
[51] 프리드먼은 하이에크와 함께 시장지상주의를 주장하는 대표적인 경제학자다. 그는 실증경제학(positive economics)의 방법론을 바탕으로 소득, 시장, 화폐 등에 관해 경제학계에 큰 영향력을 행사한 연구를 하고 소위 시카고학파로 불리는 많은 학자를 양성했다. 그가 주장하는 핵심은 정부가 시장에 개입하면 경제의 효율성이 저하되고 경제적 자유가 제한되면 정치적 자유도 감소된다는 것이다. 한편, 하이에크는 1944년에 쓴 『예속으로 가는 길(The Road to Serfdom)』을 비롯해 많은 저술을 했다. 그는 정부의 집합적 행동이 개인의 자유를 박탈할 수 있다는 가능성에 대해 경고했다. 그가 우려하는 것은 정부가 경제적 행위에 간섭할 경우 전체주의가 대동할 수 있다는 것이다.
[52] Barro, Robert (1994). ”Democracy and Growth”. NBER Working Paper No. 4909, October. 물론 암거래 프리미엄이 경제적 자유를 나타내는 지표인지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을 수 있다.
[53] Alesina, Alberto (1998). ”The Political Economy of High and Low Growth”. Annual World Bank Conference on Development Economics 1997. Washington DC: World Bank.
[54] Knack, Stephen, and Philip Keefer (1995). ”Institutions and Economic Performance: Cross-Country Tests Using Alternative Institutional Measures”. Economics and Politics, 7, 207-227.
[55] Torstensson, Johan (1994). ”Property Rights and Economic Growth: An Empirical Study”. Kyklos, 47, 231-247.
[56] Gwartney, James, Robert Lawson and Walter Block (1996). Economic Freedom in the World: 1975-1995. Vancouver: Fraser Institute.
[57] Nelson, Michael A. and Ram D. Singh (1998). ”Democracy, Economic Freedom, Fiscal Policy and Growth in LDCs: A Fresh Look”. Economic Development and Cultural Change, 46, 677-696.
[58] The Heritage Foundation and The Wall Street Journal (1999). 1999 Index of Economic Freedom.
[59] Francis, David R. (1999). ”Political Freedom Translates into Economic Freedom”. IDEAS, February 4.
[60] Helliwell, J. F. (1994). ”Empirical Linkages between Democracy and Economic Growth”. British Journal of Political Science, 24, 225-248; Burkhart R. E. and M. Lewis-Beck (1994). ”Comparative Democracy, the Economic Development Thesis”. American Political Science Review, 88(4), 903-910; Alesina, Alberto and Roberto Perotti (1994). ”The Political Economy of Growth: A Critical Survey of the Recent Literature”. The World Bank Economic Review, 8(3); Ersson, S. and J. E. Lane (1996). ”Democracy and Development: A Statistical Exploration”. in A. Leftwich, ed., Democracy and Development. Cambridge: Polity Press, 45-73; Przeworski, Adam and Fernando Limongi (1993). ”Political Regimes and Economic Growth”. Journal of Economic Perspectives, 7(3), 51-69; Landman, T. (1999). ”Economic Development and Democracy: The View from Latin America”. Political Science, 47(4).
[61] Przeworski, Adam and Fernando Limongi (1993). ”Political Regimes and Economic Growth”. Journal of Economic Perspectives, 7(3), 51-69.
[62] Kohli, Atul (1986). ”Democracy and Development”, in John Lewis and Valeriana Kallab, ed., Development Strategies Reconsidered. Washington DC: Overseas Development Council; Helliwell, John (1992). ”Empirical Linkages between Democracy and Growth”. NBER Working Paper No. 4066.
[63] 기업가정신(起業家精神, entrepreneurship)에서 ‘起業’은 기업(企業)을 새로 일군다는 의미다.
[64] 정치적 권리란, 정치적 과정에 의미 있게 참여할 수 있는 권리를 말한다. 민주주의에서 그 의미는 모든 성인이 선거를 하고 공적기관에 맞설 수 있는 권리이며, 선출된 대표가 공공정책을 결정하는 투표에 참여할 수 있는 권한을 말한다; Gastil, Raymond D. and Followers (1982~83 and other years). Freedom in the World. Westport, CT: Greenwood Press.
[65] Friedman, Milton (1962). Capitalism and Freedom. Chicago: University of Chicago Press.
[66] Francis David R. (1999). ”Political Freedom Translates into Economic Freedom”. IDEAS, February 4.
[67] North, Douglass (1990). Institutions, Institutional Change and Economic Performance.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68] Lundström, Susanna (2003). ”On Institutions, Economic Growth and the Environment”. Göteborg University, Economic Studies 123.
[69] Lundström, Susanna (2003). ”On Institutions, Economic Growth and the Environment”. Göteborg University, Economic Studies 123.
[70] Scully, Gerald (1988). ”The Institutional Framework and Economic Development”. Journal of Political Economy, 96(3); Olson, Mancur (1993). ”Dictatorship, Democracy, and Development”. American Political Science Review, 87(3), September; Bhagwati, Jagdish (1992). ”Democracy and Development”. Journal of Democracy, 3(3), July.
[71] Oliva, Maria-Angels and Luis A. Rivera-Batiz (2002). ”Political Institutions, Capital Flows, and Developing Country Growth: An Empirical Investigation”. Review of Development Economics, 6(2), June.
[72] Aslund A., P. Boone and S. Johnson (1996). ”How to Stabilize: Lessons from Post-Communist Countries”. Brookings Paper of Economic Activity, 1, 217-313.
[73] North, Douglas (1990). Institutions, Institutional Change and Economic Performance.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74] Lundström, Susanna (2003). ”On Institutions, Economic Growth and the Environment”, Göteborg University, Economic Studies 123.
[75] Scully, Gerald (1988). ”The Institutional Framework and Economic Development”. Journal of Political Economy, 9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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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 Bhagwati, Jagdish (1966). The Economics of Underdeveloped Countries. London: Weidenfeld and Nicolson. Bhagwati는 인도 출신의 세계적인 경제학자로서 현재 컬럼비아대학교에 있다.
[78] Kohli, Atul (1986). ”Democracy and Development”, in John Lewis and Valeriana Kallab, ed., Development Strategies Reconsidered. Washington DC: Overseas Development Council.
[79] Schwarz, Gerhard (1992). ”Democracy and Market-Oriented Reform: A Love-Hate Relationship?”. Economic Education Bulletin, 32(5), May.
[80] The Economist (27 August 1994); Prime Minister Lee’s interview with Fareed Zakaria in Foreign Affairs 73, March-April 1994, 109-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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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 Shleifer, A. (1998). “Government in Transition”. European Economic Review, 41(3-5), 385-410.
[84] 고르바초프는 1985년에 집권한 후, ‘새로운 사회주의 국가 건설’을 주장하며 정치·사회 측면에서는 글라스노스트(개방), 경제면에서는 페레스트로이카(개혁) 정책을 추진했다. 글라스노스트(Glasnost)의 어원은 러시아어로 ‘소리, 말소리’이며 ‘소리를 내다, 자유로이 발언하다, 반포-공표하다’라는 뜻에서 ‘정보공개’를 의미한다. 고르바초프가 1985년 3월에 소련 공산당 서기장에 취임한 후 공산당 기관지 『프라우다』, 관영 『이즈베스티야』지, 국영 타스통신 등을 통해 관리의 부정부패, 사회의 부조리 또는 정책의 과오 등을 공개적으로 보도한 정책을 말한다. 소련의 언론은 작게는 관리의 뇌물수수사건에서부터 크게는 스탈린에 대한 역사적 재평가 등을 독자 투고나 전문가의 견해를 빌어 비판했다. 이 정책은 좁게는 소련 언론이 그동안 자행해왔던 선전선동 위주의 편집에서 진실을 보도하는 언론 본연의 임무로 방향을 전환한 것이며, 더 나아가 사회를 개방하여 비판의식을 고취하고, 올바른 진로를 모색함으로써 사회발전을 기하겠다는 사회정책적인 목표를 가지고 있었다. 한편 JIepectpoNka(Perestroika)는 JIepe(pere, 고치다)와 CTpoNka(건축)이 합해진 말로 즉 ‘고쳐 세운다, 낡은 체제를 새로 고쳐 세운다’는 의미에서 ‘재건, 개편’을 뜻한다. 흐루시초프 이래 브레즈네프에 이르기까지 자본주의적인 요소인 이윤의 개념을 도입하는 등 온건한 개혁이 수차례 시도되었으나 모두 실패로 돌아가자 페레스트로이카를 통해 자본주의 시스템을 전면적으로 도입하겠다는 경제 측면의 개혁이다. 그러나 국내 경제에서는 기업의 자립이나 시장경제가 진전을 보지 못해 인플레와 함께 국민 생활이 어려워졌으며 민족 문제가 발생하는 계기가 되었다.
[85] Dahrendorf, Ralf (1966). Society and Democracy in Germany. New York: Doubleday.
[86] Moore, Barrington (1966). Social Origins of Dictatorship and Democracy. Boston: Beacon Press. 무어는 “부르주아 없이 민주주의 없다(No bourgeois, no democracy).”라는 말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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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 Lundström, Susanna (2002). ”Decomposed Effects of Democracy”. Göteborg University Department of Economics Working Paper in Economics, No. 74, June.
[100] Alesina Alberto and A. Drazen (1991). ”Why are Stabilizations Delayed?”. American Economic Review, 81(5), 1170-1188; Block, S. A. (2002). ”Political Business Cycles, Democratization, and Economic Reforms: The Case of Africa”. Journal of Development Economics, 67, 205-228.
[101] Galenson, Walter (1959). ”Introduction”, in W. Galenson ed., Labor and Economic Development. New York: Wiley.
[102] 소병희 (2000). ”시장처럼 경쟁하는 정치”. 『월간 에머지』, 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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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4] Rao, Vaman(1984). ”Democracy and Economic Development”. Studies in Comparative International Development, Winter.
[105] 이정우 (2002). ”민주주의와 경제발전”. 『서울사회경제연구소 SIES Working Paper Series』. No. 152.에서 재인용.
[106] 『동아일보』 (2003. 6. 30). ”1만 달러서 주저앉나(1), ‘내 몫 챙기기’ 집단신드롬”.
[107] 『동아일보』 (2003. 7. 10). ”1만 달러서 주저앉나(10), 전문가 좌담”.
[108] Przeworski, Adam and Fernando Limongi (1993). ”Political Regimes and Economic Growth”. Journal of Economic Perspectives, 7(3), 51-69.
[109] Pei, Minxin (1999). ”Economic Institutions, Democracy, and Development”, presented to the Conference on Democracy, Market Economy, and Development Sponsored by the World Bank and the government of the Republic of Korea (February 26-27).
[110] Bhagwati, Jagdish (1995). “Democracy and Development: New Thinking on an Old Question”. Indian Economic Review, 30(1), January, 1-18; Bhagwati, Jagdish (1995). “New Thinking on Development”. Journal of Democracy, 6(4), October, 50-64; Bhagwati, Jagdish (1966). The Economics of Underdeveloped Countries. London: Weidenfeld and Nicolson; Bhagwati, Jagdish (1997). ”Democracy and Development: New Thoughts on an Old Question” in V. N. Balasubramanyam(ed), Writings on International Economics. Oxford University Press.
[111] 조세연구원의 송대희 원장의 주장도 이와 유사하다. ”정치는 기존 경제법제의 운용을 통하여 경제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아무리 법제의 기본원칙이 잘되어 있어도 정치적 운영은 얼마든지 잘못될 수 있다.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기존 법제의 적용 강도나 적용 분야를 달리하게 되면 시장경제는 혼란에 빠진다. 그 반대의 경우, 즉 법제가 미흡하더라도 정치적 운영을 지혜롭게 하게 되면 경제는 활력을 얻게 된다.” (송대희 (2002). ”건강한 정치와 활력 있는 경제”. 『재정포럼』, 1월호).
[112] Bhagwati, Jagdish N. (2002). ”Democracy and Development: Cruel Dilemma or Symbiotic Relationship?”. Review of Development Economics, 6(2), June, 151-162.
[113] Barro, Robert (1994). ”Democracy and Growth”. NBER Working Paper No. 4909, October; Barro, Robert (1996). ”Determinants of Economic Growth: a Cross-Country Empirical Study”. NBER Working Paper No. 5698, August; Barro, Robert (1996). Getting It Right: Markets and Choices in a Free Society. Cambridege, MA: The MIT Press.
[114] 연구 대상 국가 숫자는 1960년 98개국에서 1965년 109개국, 1972~1994년에 134개국으로 늘어난다.
[115] 『조선일보』 (2003. 7. 1).
[116] 『매일경제신문』 (2003. 5. 23). ”로버트 배로 교수에게 듣는다”.
[117] 본 장에서 서유럽국가를 언급할 경우 도시국가는 제외한다.
[118] Giddens, Anthony (1994). Beyond Left and Right. Cambridge: Polity Press.
[119] Giddens, Anthony (1998). The Third Way: the Renewal of Social Democracy. Cambridge: Polity Press.
[120] 메리토크러시(meritocracy)란 실적주의 또는 업적주의라는 의미로서 출신이나 가문 등이 아니라 능력이나 실적, 즉 메리트(merit)에 따라서 지위나 보수가 결정되는 사회체제를 말한다. 메리트가 교육의 성과로서 나타나는 바가 크기 때문에 교육의 역할을 정당화하기 위한 중요한 개념이다. 영국의 사회학자 영(Robert M. Young)이 그의 저서인 The Rise of the Meritocracy: An Essay on Education and Equality(1958)에서 영국이 세습제 귀족정치 사회로부터 사회적으로 증명된 실력이 지배하는 사회로 이행하는 모습을 가상적으로 묘사하였는데, 거기에서는 IQ를 높이는 노력이 메리트로 간주되었다. 만하임(Karl Mannheim)도 개인의 사회적 지위 결정요인이 혈통원리에서 재산원리를 거쳐 업적원리로 이행해가는 것을 설명한 바 있다. 또한 다렌도르프(Ralf Gustav Dahrendorf)는 ‘재산 사회’는 ‘업적 사회’로 이행하고, ‘업적 사회’는 궁극적으로 ‘교육 사회’로 전화(轉化)한다고 주장했다.
[121] 2002년 영국의 성장률은 1.6%, 프랑스는 1.2%이다.
[122] 슈뢰더는 ‘아젠다 2010’에 반대하는 사민당 내 좌파를 설득하기 위하여 당초 계획 중에서 재산세 재도입 검토와 상속세 인상, 이자소득세 25% 단일세율화와 같은 정책을 일부 철회한다. 당초 슈뢰더는 최고 48.5%의 차등세율이 적용되던 이자소득세를 25%로 단순화시킬 계획이었으나 좌파들이 부자들을 위한 정책이라고 반발하자 슈뢰더가 이를 수용한 것이다.
[123] “We must not eat up today what our children and grandchildren will need to live on tomorrow.”
[124] 윤순봉, 장승권 (1995). 『열린 시대 열린 경영』. 서울: 삼성경제연구소.
[125] Joba, Cynthia, Herman Bryant Maynard, Jr., and Michael Ray (1993). ”Competition, Cooperation and Co-Creation: Insight from the World Business Academy”, Edited by Michael Ray and Alan Rinzler. The New Paradigm in Business: Emerging Strategies and Organizational Change. A Jeremy P. Tarcher/ Putnam Book.
[126] Conner, Daryl R. (1993). Managing at the Speed of Change. Villard Books.
[127] LSE(London School Of Economics)의 교수였던 수전 스트레인지(Susan Strange, 1923~1998)는 1986년에 쓴 Casino Capitalism이라는 책에서, “1999년 12월 31일에 고층 오피스텔 꼭대기에서 살아남은 금융 노름꾼들만이 축배를 들고, 그 외의 사람들은 슬픔에 가득 차 비참한 세기말을 맞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128] Fitzgerald, F. Scott (1936). The Crack-Up. Esquire.
[129] Collins, James C. and Jerry I. Porras (1994). Built to Last: Successful Habits of Visionary Companies. New York: Harper Business.
[130] 지니계수(Gini’s coefficient)는 소득분배의 불평등도를 나타내는 통계치다. 이탈리아의 통계학자 지니(C. Gini)가 제시한 지니의 법칙에 따라 나온 것으로, 0과 1사이의 값을 가지며 0에 가까울수록 소득분배는 균등한 것을 뜻한다. 일반적으로 지니계수가 0.4를 넘으면 소득분배가 상당히 불평등한 것으로 본다.
[131]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현재는 이들 나라 대부분이 성장지향형으로 돌아섰다.
[132] 1974년 당시 스웨덴의 1인당 국민소득은 7,320불로서 현재 가치로 환산하면 2만불을 상회한다.
[133] KIEP 안충영 원장의 사회로 게이오대학교의 사카키바라 에이스케(榊原英資) 교수와 함께 대담을 진행했다. (『조선일보』 (2003. 7. 1)).
[134] 재정부담 귀착액 = 공적자금투입액 – 공적자금 회수액 + 공적자금 관련 이자지급액.
[135] 재정수지에서 사회보장성기금은 제외.
[136] 먼저 노동증가율과 투자증가율을 구한 후 노동과 투자가 GDP에 기여하는 비중을 기준으로 가중평균하면 총요소투입증가(總要素投入增加, TFIG: Total Factor Input Growth)가 나온다. 여기에 생산성향상분인 소위 총요소생산성증가(總要素生産性增加, TFPG: Ttotal Factor Productivity Growth)를 더하면 GDP 증가율이 된다. 예컨대 알윈 영(Alwyn Young)의 계산에 따르면, 한국은 1966~1990년의 고도성장기에 GDP가 연평균 10.4% 증가했고 자본 투입량은 13.7%, 노동 투입량은 6.4% 증가했다. GDP 중에서 자본 투입으로 인해 나온 소득이 전체 소득의 32%이고 노동력 투입에 의한 것이 68%인데 이를 기준으로 가중평균하면 총요소투입증가(TFIG)는 8.8%다. 이중에서 자본과 노동의 기여분이 각각 4.4.%다. 여기에 총요소생산성증가분(TFPG)을 1.6% 더하면 GDP 성장률 10.4%가 나온다; Young, Alwyn (1994). ”Tyranny of Numbers: Confronting the Statistical Realities of the East Asian Growth Experience”. NBER Working Paper No. 4680; 상세한 내용은 필자가 쓴 『크루그먼 신드롬의 신화』(2001, 삼성경제연구소)에 수록되어 있다.
[137] Romer, Paul M. (1983). ”Dynamic Competitive Equilibria with Externalities, Increasing Returns and Unbounded Growth”. Ph. D. Thesis. Department of Economics. University of Chicago; Romer, Paul M. (1986). ”Increasing Returns and Long-Run Growth”. Journal of Political Economy, 94(5): 1002-1037; Romer, Paul M. (1990). ”Endogenous Technological Change”. Journal of Political Economy, 98(5): S71-S102; Lucas, Robert E. Jr. (1988). ”On the Mechanics of Economic Development”. Journal of Monetary Economics, 22: 3-42.
[138] Nelson, Richard R., and Edmund Phelps (1966). ”Investment in Humans, Technological Diffusion, and Economic Growth”. American Economic Review, 56: 69-75, May.
[139] Barro, Robert (1996). ”Determinants of Economic Growth: a Cross-Country Empirical Study”, NBER Working Paper No. 5698. August; Hall, Robert E., and Charles I. Jones (1996). ”The Productivity of Nations”. NBER Working Paper No. 5812, November; Lee, Jong-Wha, Steven Radelet, and Jeffrey D. Sachs (1997). ”Economic Growth in Asia”. Background Paper for the Asian Development Bank Study. ”Emerging Asia: Changes and Challenges”, July; Bosworth, Barry, Susan M. Collins, and Yu-Chin Chen (1995). ”Accounting for Difference in Economic Growth”. Brookings Discussion Papers in International Economics No. 115, December 11; Rodrik, Dani (1997). ”TFPG Controversies, Institutions, and Economic Performance in East Asia”. NBER Working Paper No. 5914, February; King, Robert G., and Sergio Rebelo (1990). ”Public Policy and Economic Growth: Developing Neoclassical Implications”. NBER Working Paper No. 3383, April.
[140] 이는 약식으로 계산한 결과이며 보다 엄밀히 계산하면 다른 결과가 나올 수도 있을 것이다.
[141] Sinn, Hans-Werner (2000). ”Germany’s Economic Unification. An Assessment After Ten Years”. CESifo(Center for Economic Studies and Ifo Institute for Economic Research) Working Paper No. 247, February.
[142] Schleswig-Holstein, Lower Saxony, Rhineland-Palatinate, Bavaria 등의 지역이다.
[143] Barro, Robert (1998. 6. 11). ”Why Eastern Germany Still Lags”. Wall Street Journal.
[144] Barro, Robert (1996). Getting It Right: Markets and Choices in a Free Society. Cambridge, Mass: MIT Press.
[145] 삼성경제연구소 (2003. 8). “2003년 3/4분기 소비자태도조사”.
[146] <www.kef.or.kr>. (2003. 12. 12).
[147] 『조선일보』 (2003. 8. 4). ”진단과 기획: 한국경제 언제 회복되나 – 조선경제 자문위원 설문”. 자문위원에는 정갑영(연세대), 왕윤종(KIEP), 김준영(성균관대), 곽만순(가톨릭대), 정한영(금융연구원), 이종화(고려대) 등이 포함되었다.
[148] 더 엄밀히 이야기하면 노르웨이처럼 석유와 같은 부존자원을 통해 성장한 나라도 ‘진정한’의 대상에서 제외해야 한다.
[149] 국가별 2만불 달성요인은 ‘보록 #1’ 참조
[150] 그 후 ERM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독일이 1990년 10월에 통일을 이루고 1992~1993년에 통일 후유증을 겪으면서 재정적자와 물가상승의 압력에 시달리자 마르크화는 기축통화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할 수 없게 된다. 이에 불경기로 시달린 프랑스가 경기침체에 대항하기 위해 금리를 내리면서 프랑화의 가치가 대폭 하락하고 스페인, 덴마크 화폐의 환율이 덩달아 크게 올라 ERM의 환율변동폭 유지가 어렵게 된다. 나아가 경제위기를 겪게 된 이탈리아와 금융 불안에 빠진 영국이 결국 1992년 9월 ERM에서 잠정적으로 탈퇴함으로써 유럽의 통화통합은 커다란 위기에 빠진다.
[151] 1만불을 달성한 1986년 당시 인당 GDP가 8,217리라였으며 그 두 배가되는 16,434리라를 넘는 시기가 1996년(17,122리라)이다. 1971~2000년까지 환율을 회귀분석한 결과를 대입하면 2만불이 되는 시기는 2000년으로 나온다. 따라서 최소 10년에서 최대 14년이 소요된다.
[152] 2002년 기준: 한국 4천8백만 명, 북한 2천3백만 명, 홍콩 7백만 명, 싱가포르 4백만 명.
[153] 아일랜드는 1987년 더블린에 ‘국제금융센터’(IFSC: International Financial Services Centre)라는 경제특구를 만들어 외국 금융기관을 적극적으로 유치한다. 4만8천 평에 485개 기업이 입주했으며 고용인원은 8,500명에 달하고 자금운용 규모는 투자기금이 1천5백억불, 은행이 7백억불 수준이다.
[154] 최홍섭 (2003. 9. 27). ”아일랜드의 위기”. 『조선일보』.
[155] 물론 광의(廣義)의 경제에는 경기도 포함된다. 여기서 경제란 협의(狹義)의 경제를 말한다.
[156] 잠재성장률은 성장회계방식과 HP(Hodrick-Prescott)필터법을 사용해서 구했다. 성장회계접근법은 성장요인의 성장기여도를 계산하는 방법으로 성장의 원천을 노동증가, 자본증가, 기술발전 등으로 본다. HP필터법은 경제의 장기추세와 순환요인을 추정하는 방법으로서 GDP 시계열자료를 추세변동과 순환변동으로 구분한 후 추출된 GDP의 추세치가 잠재성장률이다.
[157] 윤순봉 (2000). 『크루그만 신드롬의 신화』. 서울: 삼성경제연구소.: 이 글은 삼성경제연구소 홈페이지(www.seri.org)에서 볼 수 있다.
[158] Krugman, Paul (1994). ”The Myth of Asia’s Miracle”. Foreign Affairs, November/December.
[159] Young, Alwyn (1994). ”Tyranny of Numbers: Confronting the Statistical Realities of the East Asian Growth Experience”. NBER Working Paper No. 4680, March. (Quarterly Journal of Economics, 110(3): 641-680, August 1995)
[160] 『한국은행』 (2003. 6). “최근의 설비투자 동향과 특징”. 經濟統計局 國民所得統計팀.
[161] 국내총자본형성(gross domestic capital formation)이란 국내에서 최종적으로 소비되지 않고 재생산을 위해 투자된 재화의 총액을 말한다. 투자하는 부문은 민간과 정부로 구분되고, 투자되는 재화의 형태에 따라 총고정자본형성과 재고품 증가로 나누어진다.
[162] 국내총고정자본형성(gross domestic fixed capital formation)이란, 국내에서 이루어진 고정자본의 증가액을 말한다. 총고정자본형성은 총체 개념으로 파악되기 때문에 자본감모충당금(資本減耗充當金)을 공제하기 전에 계산된다. 총고정자본형성은 주택과 기업설비로 분류되고, 기업설비는 다시 비거주용건축물, 기타의 건설 및 기계설비 등으로 나누어진다. 이는 생산력 확대 또는 재투자 유발을 초래하므로 경기순환을 불러일으키는 주요인이 된다.
[163] <그림5-4>에서 추세선은 총자본형성과 총고정자본형성의 증가율을 회귀분석한 것으로 기울기가 -0.3085~-0.3351로 나온다.
[164] 노동소득분배율은 GDP에서 노동소득이 차지하는 비중이다. 1970~2001년의 노동소득분배율을 단순평균하면 0.530이 나온다.
[165] 투자의 대표적인 지표가 국내총고정투자이고 투자에 따른 결과는 GDP 증가로 실현되기 때문에 자본생산성을 측정하는 대표적인 지표로 널리 사용된다.
[166] 추세선은 1980년부터 2002년까지의 자본생산성을 회귀분석한 결과치다.
[167] 동일한 제품에 대한 A, B 두 국가 간의 가격비율은 A국에서 A국 통화 한 단위로 구입할 수 있는 재화 또는 서비스와 동일한 양을 B국에서 구입하기 위해 필요한 B국 통화단위의 수를 측정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는데, 이 비율을 특정 재화 또는 서비스에 대한 두 통화 간의 구매력평가(PPP: Purchasing Power Parities)라고 한다. 환율(exchange rate)은 각국 간의 물가 수준 차이와는 관계없이 거시경제 요소(물가지수 산정에 있어 국내재와 국제재의 가격 및 구성의 변동, 자금거래 및 투기성거래 등)에 의해 결정되므로 각국 화폐 간 상대적 구매력을 제대로 나타내지 못할 수 있기 때문에 이러한 단점을 보완하기 위하여 작성하는 지표로서, PPP는 각국 화폐의 구매력을 고려한 화폐변환율(rate of currency conversion)을 의미한다. (통계청, 통계용어)
[168] 65세 이상 인구를 0~14세 인구로 나눈 수치.
[169] 소비자물가지수(CPI: Consumer Price Index) 기준.
[170] 이만근, 오은영 (1997). 『흥미 있는 수학이야기』. 서울: 수학사랑.
[172] Computer & Communication.
[173] 케네디의 연설 내용은 다음과 같다: “나는 이 나라(미국)가 1960년대 안에 인간을 달에 착륙시키고, 그러고 나서 무사히 지구로 귀환시킨다는 목표를 겨냥해야 한다고 믿는다. 이것 이상의 감명을 주고, 또 우주의 장기적 개발에 이것 이상의 중요성을 지닌 계획은 생각할 수 없다. 그리고 이것만큼 달성하기 어렵고 돈이 드는 계획도 없을 것이다.”
[174] 페덱스 홈페이지에는 “FedEx는 전 세계 국민총생산액의 90%를 생산하는 지역을 통관 서비스와 환불보장 서비스를 포함한 각종 서비스로 24~48시간 내에 Door-to-Door 서비스로 연결합니다.”라고 되어 있다.
[175] 윤순봉 (2000). 『敗者의 辨: 채무자 관점에서 다시 쓴 외환위기 역사』. (미출간원고).
[176] 그 이유는 한마디로 미국이 IMF의 최대 주주였고 IMF의 캉드쉬 총재가 세 번이나 연임하는 데는 미국의 결정적인 지원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필자는 보고 있다.
[177] Krugman, Paul (1994). ”The Myth of Asia’s Miracle”. Foreign Affairs, November/December.
[178] 물론 이는 외환위기 발생 후에 IMF가 주장한 내용이다.
[179] Stiglitz, Joseph E. (1998). ”Sound Finance and Sustainable Development in Asia”. Keynote Address to the Asia Development Forum, 1998. 3. 12.
[180] Sachs, Jeffrey D. (1997. 12. 19). ”It’s Malaysia vs. Markets”. The Chattanooga Times.
[181] Stiglitz, Joseph E. (1998. 3. 27). “The View from the Bank”. Interview at the Final Plenary Session of the Asian Development Forum, Held in Manila on March 9~13, 1998, under the Auspices of The World Bank and The Asian Development Bank. Asiaweek.
[182] 세계경제평론가인 윌리엄 파프(William Pfaff)는 『시카고트리뷴』을 통해, 아시아의 내부 붕괴는 아시아 성장모델이 영미식 자본주의체제와 충돌한 결과이며 IMF 처방을 영미식 자본주의체제로 규정한다. ”IMF 처방은 IMF와 클린턴 행정부의 재무부 간 긴밀한 협조 아래 개발되었고 미국의 주류적인 경제관점이 반영되었다. 미국은 아시아 모델을 파괴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IMF 처방은 적용 초기에 아시아의 시장과 은행, 통화의 붕괴를 막지 못했다. 더욱이 디플레이션으로 이미 고통받고 있는 경제에 한층 더 디플레이션을 강요함으로써 상황을 더욱 악화시켰다.”: Pfaff, William (1998. 1. 13). ”American-Inspired Remedies to Asia’s Problems No Longer Credible”. Chicago Tribune.
[183] Stiglitz, Joseph E. (1997. 12. 1). Statement to the Meeting of Finance Ministers of ASEAN Plus 6 with the IMF and the World Bank, Kuala Lumpur.
[184] Feldstein, Martin (1998). ”Refocusing the IMF”. Foreign Affairs, March/April.
[185] 동아일보 (2003. 7. 10). ”1만 달러서 주저앉나(10), 전문가 좌담”.
[186] Nadler, David and Michael Tushman (1988). Strategic Organization Design: Concepts, Tools & Processes. Scott Foresman & Co., 161-178; 적합성이라는 용어 대신에 상황성, 일관성, 일치성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기도 한다.
[187] 문진(文鎭)이란 책장이나 종이가 바람에 날리지 않도록 누르는 물건을 말한다. 따라서 문진형 조직이란 조직의 상하계층이 적어 납작한(flat) 조직을 말한다.
[188] 엄밀하게 유엔 통계를 기준으로 삼아 전 세계 201개 국가를 대중소 또는 강중약으로 나눌 수도 있지만 실효성은 없다. 유엔 통계를 기준으로 보면 한국은 1인당 GDP(8,871 달러)가 51위, 총 GDP(4,069억 달러)는 13위, 인구(4,707만 명)는 26위, 국토면적(99㎢)은 89위이므로 강국이나 대국이라고 주장할 수 있다. 그런데 각 지표의 상위 3분의 1 수준인 67위를 보면, 1인당 GDP는 크로아티아로 4,242 달러, 총 GDP는 스리랑카로 159억 달러, 인구는 말리 1,168만 명, 국토면적은 가봉이 258㎢인데 이들 나라를 대국이나 강국으로 분류할 수는 없는 일이다.
[189] 네덜란드 1,590만 명, 스웨덴 888만 명, 스위스 721만 명, 핀란드 517만 명(2000년 기준).
[190] 수출이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강대국과 강소국 간 명확한 차이를 보인다. 2000년 기준으로 한국의 GDP에서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52%이며 강소국은 대개 48~67% 수준이다(네덜란드 67%, 스웨덴 52%, 핀란드 48%, 스위스 48%). 이에 비해 강대국인 미국은 12%, 일본은 11% 수준이다.
[191] Toffler, Alvin (1990). Power Shift. New York: Bantam Books.
[192] Romer, Paul M. (1993). ”Idea Gaps and Object Gaps on Economic Development”. Journal of Monetary Economics, 32, 543~573, December; Romer, Paul M. (1996). ”Why, Indeed, in America? Theory, History and The Origins Of Modern Economic Growth”. NBER Working Paper, No. 5442, January.
[193] 여기서 Romer가 말하는 아이디어란 무형의 지식이나 기술까지를 포괄한다. 그는 생산요소를 사물(thing)과 사고(idea)로 나누고 물적자본이나 노동 외의 무형적인 생산요소 모두를 아이디어에 포함한다.
[194] 그러나 영어를 이차 언어로 사용하는 인구가 3억 5천만 명에 달하므로 이를 합치면 영어는 베이징어를 제치고 세계에서 가장 폭넓게 쓰이는 언어가 된다. 영어를 가르치는 나라는 100여 개국, 공식어로 지정한 나라는 70여 개국이다(Los-Angeles Times (2000.1.24)). 사이버스페이스상에서 사용되는 언어는 다소 차이가 난다. 2000년 말 인터넷 사용인구 2억 8천만 명 중에서 영어가 1억 8천만 명, 일본어가 2천 7백만 명, 독일어가 1천 9백만 명, 중국어가 1천 6백만 명, 한국어가 1천 5백만 명이다(이티포캐스츠 조사 결과).
[195] 언젠가 남북이 통일되면 비전을 강소국에서 강중국으로 버전업할 수 있을 것이다. 2000년 기준 남북한 인구를 합하면 6,950만 명(남한 4,707만 명, 북한 2,243만 명)으로 세계 16위가 되며 국토면적은 219㎢ (남한 99㎢, 북한 120㎢)로 세계 71위가 된다(유엔 통계 기준).
[196] 이찬근 (2001). 『창틀에 갇힌 작은 용: 국경은 없어도 국적은 있어야 한다』. 물푸레.
[197] Nelson, Richard R., and Edmund Phelps (1966). ”Investment in Humans, Technological Diffusion, and Economic Growth”. American Economic Review, 56: 69~75, May.
[198] Nelson, Richard R., and Howard Pack (1997). ”The Asian Growth Miracle and Modern Growth Theory”. World Bank, October; Hobday, Michael (1995). Innovation in East Asia: the Challenge to Japan. London: Edward Elgar.
[199] 김인수 (2000). 『모방에서 혁신으로』. 시그마인사이크컴.
[200] Fairlie, Robert W. and Bruce D. Meyer (1994). ”The Ethnic and Racial Character of Self-Employment”. National Bureau of Economic Research Working Paper #4791.
[201] 『한국일보』 (2003. 7. 25).
[202] 김중수 (2003. 7. 8). ”경제하려는 의지 살려줘야”. 『조선일보』.
[203] 이찬근 (1999. 8. 27). ”한국, 고도성장 포기했나”. 『조선일보』.
[204] 노부호 (2003. 8. 2). ”말만으론 2만불 갈 수 없다”. 『조선일보』.
[205] Peters, Tom (1987). Thriving on Chaos. New York: Alfred A. Knoph.
[206] 『대한상공회의소』 (2003. 8. 8). ”우리나라 반기업 정서의 현황과 과제”: 엑센츄어가 2001년에 세계 22개국 880개 기업의 CEO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를 재인용했다.
[207] 『동아일보』 (2003. 7. 4). ”1만 달러서 주저앉나(5), 정치는 5천 달러 수준”.
[208] 청허당(淸虛堂) 휴정(休靜)스님, 일명 서산대사가 쓴 『선가귀감(禪家龜鑑)』 제17편에 나오는 어록이다.
[209] 퓰리처상은 미국의 신문왕 조셉 퓰리처(Josep Fulitzer, 1847~1911)의 유언에 따라 1917년 제정된 이래 매년 저널리즘과 문학, 드라마 그리고 음악 부분에서 뛰어난 대중적 공로와 업적을 낸 인물에게 수여되는 상이다. 전 세계 지성과 예술의 최고를 추구하며 해를 거듭할수록 그 명성과 권위를 더해가고 있다.
[210] 1968년 가와바타 야스나리(川端康成) 이래 26년 만인 1994년 두 번째 노벨문학상을 일본에 안겨준 오에 겐자부로(大江健三郞)는 아사누마 암살 사건에 자극을 받아 1961년에 『세븐틴(セヴンティ-ン)』과 『정치소년 죽다(政治少年死す)』라는 두 편의 단편을 쓴다.
[211] 1993년 7월에 실시된 중의원선거에서 자민당 획득의석은 과반수를 크게 밑돌아, 결국 자민당 단독 과반수에 의해 지탱되었던 55년 체제는 붕괴되었다.
[212] 1968년 미국의 국민소득은 4,540달러, 독일은 2,215달러이다.
[213] IMF 8條國이란 IMF 제 8조 규정 즉 ①국제수지상의 이유에 의한 외환제한 폐지, ②차별적 통화조치 금지, ③ 자유교환성 회복 의무를 지니는 나라로 한국은 1988년에 IMF 8條國이 되었다.
[214] 혹자는 이케다가 일본의 전형적인 엘리트 코스를 밟지 못했고 젊은 시절에 많은 좌절을 경험한 사실을 주목한다. 이케다는 일본 최고의 고등학교인 구제1고(舊制1高)에 낙방한 후에 구제5고(舊制5高)에 입학했으며 도쿄대학(東京大學) 역시 고배를 마시고 교토대학(京都大學)에 입학하는 등 젊을 때 좌절을 겪고 1925년에 염원하던 대장성에 들어간다. 1931년에는 악질 피부병(天疱瘡)으로 대장성을 사직하고 5년간 투병 생활을 하면서 생과 사의 갈림길을 경험했다. 1934년에 대장성에 복직하여 맹렬히 직무에 돌진하여 도쿄대학 파벌을 제치고 교토대학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주세국 국세과장에 취임한다. 제1차 요시다(吉田茂) 내각 때 대장상인 이시바시(石橋)의 사무차관을 거친 후 정계에 입문하는데 전후에 도쿄대학 출신이 아닌 대장성 사무차관은 이케다가 아직 유일하다고 한다.
[215] 이들은 1982년에 네덜란드의 노사화합 대명사인 ‘폴더(polder, 바다를 간척지로 만든다는 네덜란드 말) 모델’을 만들었다.
[216] 『동아일보』 (2003. 7. 8). ”1만 달러서 주저앉나(8), 지도층 도덕해이”.
[217] 가중평균은 1만~2만불 기간 동안 각국의 평균 GDP를 가중치로 했다.
[218] 노동소득분배율이란 국민소득 중에서 노동소득이 차지하는 정도를 나타내는 지표로서 자본소득 등 다른 요소소득에 비해 노동소득분배분의 상대적 크기를 측정하는 데 주로 사용된다. 통계청 자료를 활용하여 1980~2002년의 노동소득분배율을 단순평균하면 0.576이 나온다. 이는 국민소득 중에서 노동소득이 57.6%라는 의미다.
[221] 또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