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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적으로 이제 강의를 할 건데 강사님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오늘 특별 강연으로 윤순봉 전 사장님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방금 소개받은 윤순봉입니다. 손경식 회장님 정말 존경하는 분인데요. 계시고, 또 이승훈 교수님도 계시고, 표학길 교수님도 계시고. 문형표 장관님은 제가 삼성서울병원 사장 할 때 메르스 사태 때문에 참 도움을 많이 받았었는데 정말 영광입니다.

애시당초 제가 안 수석한테 전화를 받았을 때는 우리 내부 세미나 하니까 평소에 술 마실 때, 저녁에 소주 한 잔 할 때 하던 이야기해 주면 된다 해서 제가 오케이 했습니다.

그런데 그러고 나서 명단을 보냈는데 보니까 아, 이거 내가 나설 자리가 아니구나 이거 정말 엄청나신 분들이 와 계시는데. 그래서 제가 NO를 했는데요. 안종범 수석이 이미 통보했다 NO 안된다 라고 해서 아이 뜨거워라 하면서 제가 준비를 좀 했습니다. 파워포인트로 약 1,200장 정도가 나오더라고요.

강의 시간이 한 시간인데. 어제 하루 종일 앉아 가지고 1,200장을 자르고 잘랐는데 마지막 750장으로 끝났습니다. 그래서 제가 오늘 750장을 다 말씀을 드릴 텐데요. 1시간에 750장을 소화하는 신공을 오늘 보여드리겠습니다.

제가 너무나 당연히 시간이 부족한 걸 압니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주로 앞으로 당겨놨고 조금 덜 중요한 것은 뒤로 당겼습니다. 그 대신에 750장을 진행처에 줬습니다. 그걸 PDF로 쭉 한 페이지에 10장 씩 모으면 약 70장 정도 되니까 제가 조금 스킵하면서 빠르게 진행을 하겠습니다. 그리고 구체적인 내용이라든지 증거라든지 또는 지도라든지 고문헌 같은 것은 사진으로 다 붙여 놨으니까 나중에 혹시 관심이 있으시면 한번 보시고 저는 빠른 속도로 한번 진행을 하는 것으로 하고 마지막에 시간이 좀 남으면 제가 Q&A를 같이 하는 걸로 그렇게 진행을 하겠습니다.

제목은 잊어버린 역사 잃어버린 강토. 목차는 이렇습니다. 먼저 동영상 하나 보시죠.

(동영상)

조금 황당한 비디오죠. 방금 서울이라는 이야기는 고유명사, 보통명사 중에서 보통명사 성격을 갖고 있죠. 우리가 서울이라고 하면 우리가 살고 있는 서울일 수도 있고, 미국의 서울. 이렇게 하면 워싱턴일 수도 있죠.

용비어천가를 보면 셔븘이라는 단어가 나옵니다. 셔븘. 긔별을 알씨. 돌궐이 당나라 서울의 기별을 알고 하바사 나사가샤. 혼자서 나아가셔서 딘, 도적(모진 도적, 돌궐족)을 물리시니이다. 물리쳤습니다 라는 문구가 나오거든요. 여기에서 서울은 대한민국 서울이 아니고 당나라 도읍인 시안을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626년에 당태종이 돌궐족의 공격을 받은 장면이 용비어천가에 실려져 있습니다.

구당서를 보면 이런 대목이 나오죠. 돌궐구고릉(突厥寇高陵). 돌궐이 고릉을 침략을 했다라는 침략한 자리가 지금 시안입니다.

그래서 용비어천가에서는 서울이라고 했는데 시안을 이야기하는 것이죠. 일종의 보통명사입니다.

왕응린 선생이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통감지리통석이라는 책에서 이 부분인데요.

지리에 대해서 말하는 것은 하늘에 대해서 말하는 것보다 어렵다고 한다. 무엇이 그렇게 어려운가? 해와 달, 별의 위치는 영원토록 변치 않지만 군국산천의 이름은 여러 번 바뀌며 그 변화는 끝이 없기 때문이다.

5천 년 동안 군국산천의 변화가 굉장히 많았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찾는 학문이 역사지리학입니다. 500년 전에 평양이 어디 있었느냐, 천년 전에 어디 있었느냐, 2천 년 전 평양이 어디 있었느냐. 우리의 상식은 당연히 평안도에 평양이 있었겠지 라고 생각을 하는데요. 제가 오늘 말씀드리는 것을 한번 들어보시면 그게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아마 드실 것입니다.

제가 삼성에서 졸업을 하고 약 5년이 지났는데요. 5년 동안 공부한 게 중국과 한국의 국경이 6500년 동안 어떻게 바뀌었냐. 더 구체적으로 말씀 드리면 우리 한민족과 지나족들이 어디서 국경을 맞대었는가 하는 것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제가 정확하게 약 4년 정도를, 어제도 저녁 9시까지 했습니다만 하루에 약 10시간 내지 12시간씩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제가 파워포인트 만들어 놓은 게 약 10만 페이지 가까이 되고요. 그것을 동영상으로 약 200편으로 만들고 있는 중입니다. 우리 PD하고 같이 하고 있는데. 그래서 그것을 조만간 다음 달 정도부터 공개할 예정인데 아마 오늘 말씀드린 내용은 그것의 맛보기 정도가 되지 않겠느냐 라는 생각입니다.

잊어버린 역사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홍산문화가 기원전 4500년 전에 나왔다는 것은 너무나 잘 아실 것이고요.


홍산. 이렇게 발견이 됐죠. 전세계 대서특필이 됐습니다.

홍산문화라 하기도 하고 요하문명이라고 하기도 하는데 바로 이쪽 부분이 요하문명이죠. 황하문명과 단절돼 있는 문명입니다.

중심부를 보면 이쪽에 요하문명이 있죠.

중국 최고의 고고학자라고 평가받는 소병기 선생은 이렇게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홍산문화는 중화문명이다.

그리고 이분이 쓰신 논문을 쭉 보면 그 중에 포인트가 뭐냐 하면 홍산문화는 중화 5천년 문명의 서광을 비추었다.

왜냐하면, 이집트문화나 메소포타미아문화나 인디스 갠지스 문화는 5천년 이상의 역사를 갖고 있습니다. 중국 역사는 아무리 당겨도 4천년 이상 못 갑니다. 그런데 5천 년 전에 홍산문화가 발견이 되니까 드디어 우리의 중화문명도 5천년까지 올릴 수가 있다 라고 주장을 하는데요. 정말 말도 안 되는 소리죠.

왜냐하면 중국역사지도집을 보시면, 여기가 하상주 땅입니다. 그런데 홍산문화는 여기서 발견이 됐거든요. 테라인코그니타(TERRAINCOGNITA). TERRA, 땅. IN, NOT. COGNITA, COGNITION. 알지 못하는 땅, 미지의 땅이었습니다. 그 당시에 하상주라는 나라는 저쪽에 사람이 살고 있다는 사실 자체를 몰랐습니다.

하상주 시대 다른 지도를 보면요. 확대를 하면 이 부분은 테라인코그니타(TERRAINCOGNITA)입니다. 그런데 중국 사람들은 자기 문명, 자기 문화라고 주장을 하죠.

중국의 어떤 고사료, 문헌, 유물, 묘비석 다 봐도 이쪽에 중국 사람들이 살았다는 증거는 없습니다. 한민족이 살았다는 증거는 정말 차고 넘칩니다.

기원전 4500년부터 2333년 전은 단군조선이 성립될 때죠. 이때에 대한 역사는 우리가 없죠. 실제 문화는 기원전 4500년으로 발견 되는데요. 그때 당시에 우리나라에 있었던 국가 이름이 환국과 신시라는 나라가 실제 있었습니다.

제가 이런 주장을 하면 환단고기나 규원사화 같은 국뽕이라고 말씀하실지 모르겠는데, 실제 환국과 신시라는 나라가 삼국유사에 나오고 있습니다. 우리가 왜곡된 상태로 알고 있습니다.

삼국유사 보시죠. 이것이 규장각에서 갖고 있는 국보 정덕본인데요. 고조선 부분에 환인의 서자인 환웅이 천하의 뜻을 두어서 내려왔고, 환웅이 신단수에서 신시를 만들었고, 환웅천왕이라고 했고, 나중에 사람으로 바뀌어서 웅녀와 결혼을 해서 낳으니까 단군왕검이다 이렇게 되어 있거든요.

세 단계 레이어(layer)가 있습니다. 환인, 신시, 고조선. 환인에 대한 국가는 없죠. 논쟁이 환인과 환국의 논쟁인데요.

삼국유사 다시 보시죠. 이것이 환국입니까? 환인입니까? 삼국유사의 원본은 환국으로 돼 있습니다.

다른 판본을 보시면 환국입니까? 환인입니까?

이것은 고려대학에서 갖고 있는 필사본인데요. 환국으로 돼 있죠.

일본 내각문고에서 갖고 있는 판본인데요. 이것도 필사본인데 환국으로 돼 있죠.

일본국회도서관에서 갖고 있는 판본인데요. 이것은 동경제대의 사학과 교수들이 만들어서 전사를 한 것입니다.

환국으로 돼 있죠.

이것은 일본국회도서관에서 갖고 있는 판본인데요. 여기도 환국으로 돼 있습니다.

일본 내각문고에서 소장하고 있는 판본도 환국으로 돼 있습니다. 모든 원본은 환국으로 돼 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환국이 환인으로 바뀌어 버리죠. 언제냐 하면 일제시대 때입니다.

이마니시류라는 분은, 이것이 일본국회도서관에서 갖고 있는 조선사편수회사업개요라는 책인데, 여기에 보시면 이마니시류라고 연구위원으로 돼 있죠. 교토대학의 조교수다 이렇게 되어 있는데 이분이 원본을 조작을 합니다.

이마니시류가 갖고 있는 원본인데 국(囯)자 위에 인(因)자로 덮어씌워 있는 게 보이시죠. 가필된 것이 확실히 보이시지 않습니까?

이 밑에 도장이 이마니시류의 도장입니다. 자기가 소장하고 있는 삼국유사의 원본을 조작을 한 것입니다.

그 이후에 전세계에 나온 판본들은 환국이 없어지고 환인으로 바뀝니다. 환인으로 가필이 되죠.

대만에서 갖고 있는 판본도 가필이 되죠.

그 다음에 일본국회도서관에 있는 판본도 가필이 되죠.

우리나라에서 갖고 있는 판본도 가필이 됐는데 어떤 분이 원본은 국(囯)이다 라고 옆에 다시 적어놨습니다.

최근에 우리나라 명문당에서 전사본을 다시 만들었는데요. 여기에 보면, 최근 것입니다. 환국으로 적고 있습니다.

그리고 얼마 전에 한국고전번역원에서 만들어온 자료도 환국이죠.

그런데 불행하게도 중국의 모든 자료는 환국이 아니고 환인으로 되어 있습니다.

일본은 어떨까요? 일본의 위키피디아를 가보시면 환국은 삼국유사 등에 기록된 국명이고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어떨까요? 우리나라 위키백과에 들어가 보면 삼국유사 특정 판본에만 환국으로 되어 있다 이렇게 돼 있고, 더 황당한 것은 국사편찬위원회에서는 환국이 아니라 환인으로 적고 있습니다.

그래서 기원전 4500년부터 2333년 사이에는 환국과 신시가 있었고 그 다음에 고조선이 있었다는 것이죠.

세 번째 주제로 넘어가겠습니다. 잃어버린 강토인데요. 먼저 아이스 브레이크부터 하시죠.

1861년이면 지금부터 불과 160년 전입니다. 압록강이 어디 있었을까요?

당연히 여기 있었다. 무슨 질문 같지도 않은 질문을 하느냐.

대동여지도 너무나 잘 아시죠? 1861년도에 김정호 선생(이 만드신 지도죠.) 영화로도 나왔고요. 대동여지도를 보면 압록강을 뭐라고 불렀을까요? 압록강?

이것이 규장각에서 갖고 있는 보물입니다.

합하면 이렇고 해당 부분에 압록강이 아니고 대총강이라고 적혀 있죠.

하버드옌칭연구소에서 갖고 있는 지도를 보시면 여기에 대총강이라고 적혀 있습니다.

국국립도서관에서 갖고 있는 지도를 봐도 대총강,

프랑스에서 갖고 있는 지도를 봐도 대총강 이렇게 돼 있습니다.


다른 고지도를 볼까요? 해동지도, 규장각에서 갖고 있는데요.


의주 부분입니다. 확대를 하면 대총강이라고 되어 있죠.

대동총도에도 보면 대총강.

대총강이라고 그려져 있는 지도만 제가 약 100편 이상을 갖고 있습니다. 얼마 안 지난 세월입니다. 압록강을 우리 조상들은 대총강이라고 불렀어요.

닻 내리기 편향입니다. 현재 상태가 정답이라고 닻을 내리면 과거도 당연히 그랬을 것이라고 하는 게 앵커링 바이어스(anchoring bias)죠. 사람들의 편향. 바이어스 중에서 가장 큰 것 중 하나가 닻 내리기 편향입니다.

그러면 압록강은 어디 있었을까요?

인자수지. 1564년도에 나온 것을 보면 북경 위쪽에 압록강이 있습니다. 보이시죠?

도서편. 1613년 책을 보시면 북경 위에 압록강이 있습니다.

우공회소라는 책을 보면 제경도, 북경을 그린 그림이죠. 북경 위에 압록강이 있습니다.

말하자면 북경의 조금 위쪽이지만 북동쪽에 압록강이 있죠. 이것은 현재 이름으로 요하라고 부릅니다. 우리 조상들은 요하를 압록강이라고 불렀어요.


도서편을 보시면 이것이 지도를 합해 놓은 것인데요. 제일 끝부분에 보시면 압록강 보이시죠?

확대를 해 볼까요? 여기 압록강이 위로 쭉 흐르는데 요동땅이 여기 있습니다. 요동땅 서쪽에 압록강이 있어요. 그럼 너무나 당연하게 요하 아닙니까? 그러면 우리나라 조선은 어디 있느냐? 여기에 조선이 있습니다. 조선과 압록강은 완전히 관계가 없는데죠.

광여도를 보시면, 확대를 하면요. 압록강이 개원이라는 지명에서 흘러나오죠.

그 다음에 삭막도라고 북쪽 사막을 그린 지도인데요. 이것이 정말 재미난 게 요하가 올라가면 여기에 개원이 있고, 그 옆에 평양이 있습니다. 평양이 저기 있다고 생각해 보신 적 있습니까? 요동땅 한가운데 평양이 있습니다. 저기가 지금으로 따지면 요양 땅입니다. 그리고 백두산, 장백산은 여기에 있죠.

지금 지도로 보여드리면 이 요하를 압록강이라고 불렀고, 개원에서 압록강이 흘러나오고, 요양을 평양이라고 불렀고, 백두산은 여기에 있습니다. 현재 압록강은 여기죠. 말이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삭막도가 굉장히 많습니다. 삭막도가 너무나 유명한 지도이기 때문에 이것이 굉장히 많은데 1692년도 독사방여기요라는 지리지를 보시면 삭막도가 나오는데요. 아까 지도하고는 조금 차이가 납니다.

백두산, 개원, 압록강은 같은데 이쪽에 있는 평양이 없어졌죠. 이때는 평양이 한반도로 내려갔습니다.

마테오리치 신부님이 그린 곤여만국전도는 우리 초등학교 교과서에 나오는 것 아닙니까? 곤여만국전도를 한번 볼까요?

일본 내각문고에서 갖고 있는 지도인데요. 압록강이 개원까지 올라가고 장백산이 저 위에 있습니다. 우리가 아는 장백산은 여기 있죠.

이것은 미국 미네소타대학에서 갖고 있는 지도인데요. 마찬가지로 압록강, 개원, 장백산.

일본 천황 수장고에서 갖고 있는 지도인데요. 압록강, 개원, 장백산.

이것은 홍콩 해사박물관에서 갖고 있는 지도인데요. 압록강, 개원, 장백산. 우리가 알고 있는 위치하고는 완전히 다르죠.

도대체 압록이 뭘까요? 두우 선생이 통전에서 뭐라고 이야기했냐 하면 물이 오리 머리처럼 푸르러서 압록이라고 부른다라고 우리들은 배웠지 않습니까? 아니죠. 청둥오리가 머리가 푸르다고 그래서 강이 저 빛이다? 저는 믿기지가 않습니다.

압록은 원래 우리 조상들이 야루라고 발음을 했습니다. 고대 한국어인데요. 만주말에 그 뜻이 남아 있습니다. 만주말에서 야루를 지변, 땅의 변두리를 야루라고 합니다.

그런데 압록강을 나타낼 때의 한자는 여러 가지죠. 압록, 압록, 아로, 야로. 발음은 전부 다 야루로 발음이 됩니다.

지금도 인터넷에 들어가서 야루 리버(yalu river)라고 치면 세 군데가 뜹니다. 하나가 우리의 국경. 여기는 중국과 러시아의 국경. 여기는 중국과 몽고 국경에 지금도 야루 리버가 있습니다. 그러면 야루가 무슨 뜻일까요? 국경이라는 뜻이죠.

1727년도에 러시아에서 만든 지도인데요. 여기 한반도가 보이시죠? 확대를 하면 여기에 야루 리버. 요하를 야루 리버라고 해놨습니다.


1708년에 네덜란드에서 만든 지도를 보면, 확대를 해 보면요. 국경에 야루 레이크(lake)라고 되어 있습니다. 국경에 있는 호수라는 뜻이죠.


1706년에 프랑스에서 만든 지도를 보면 이 부분을 확대를 하면 이것은 야루 산맥. 국경에 있는 산맥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우리나라 말로 압록은 야루라고 발음이 됐고 야루라는 것은 국경, 변방이라는 뜻이다 라는 이야기죠. 아까 야로라는 강이 있었다고 말씀을 드렸는데요. 발음은 야로입니다.

조선왕조실록을 보면 여기 건주위 밑에 야로강이 있다라고 되어 있지 않습니까?


이 지도가 현재 프랑스국립도서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거의 국보급 지도인데요. 천하여지도입니다. 윗부분을 확대를 해 보시면 여기에서 쭉 올라가는, 이 때는 국경이 이쪽이었습니다. 이쪽을 국경이라고 해서 야로. 이것을 대총강이라고 했고 이것을 야로강이라고 불렀습니다.

압록강에 대해서 말씀을 드렸고요. 그 다음에 두만강.

두만강이 어디 있습니까? 누구나 다 저기다 라고 생각을 하시겠죠.


용비어천가에서 두만강을 뭐라고 발음을 하느냐 하면 여기 보면 이란두만이라고 해놓고 발음을 이란투먼이라고 발음한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란移闌은 셋이라는 뜻이고 투먼豆漫은 만萬이라는 뜻입니다. 이란투먼은 3만이라는 뜻이고, 즉 이란투먼은 3만 명의 가구를 다스리는 부족장을 이란투먼이라고 합니다.

투먼 발음 나오는 한자가 이렇게 많습니다. 많은 문헌에서 다르게 쓰고 있습니다만 이 강들은 모두 다 같은 강입니다.


투먼이 뭘까요? 만주어 사전을 보면 만이라는 뜻입니다. 두만강의 원래 이름은 투먼 세끼옌(tumen sekiyen)이라는 발음인데요. 투먼(tumen)은 아까 말씀드린 대로 만이라는 뜻이고 세끼옌(sekiyen)은 물의 원천입니다. 그러니까 두만강이라는 말의 뜻은 만강의 원천이라는 뜻이죠.


중국의 고금지명대사전을 보면 도문강이 두만강이죠. 보면, 도문색금. 투먼 세끼옌(Tumen sekiyen)이라고 하고 만강의 원천이다 라고 이야기가 되어 있죠. 그래서 투먼 세끼옌(Tumen sekiyen), 도문색금은 만강의 원천인데 현재 우리나라 두만강을 볼까요?


백두산 천지에서 실제 흘러나오는 강은 위로 오르는 송화강 하나밖에 없습니다. 두만강은 백두산 천지에서 한참 내려가서 수십 킬로 밑에서부터 나오죠. 도저히 만강의 원천이 될 수가 없습니다. 그러면 만강의 원천이 어디 있을까요?


1718년에 나온 황여전람도라는 지도인데요. 우리나라가 여기죠. 그러니까 만주 땅 한가운데입니다.

여기를 확대해서 보면 토문하라고 보이시죠. 투먼강입니다.


1718년 당빌, 프랑스 사람들이 만든 지도인데요. 우리나라를 확대를 해보면 여기가 현재 국경이고 여기 확대를 하면 투먼 피라(Ttumen Pira). 피라(Pira)는 강이라는 뜻입니다. 두만강이라는 뜻이죠. 저기에 두만강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강을 두만강(토문하)이라고 하고 큰 강을 휘발하라 하고 제2송하강이 이쪽인데요. 여기에 보시면 얼마나 많은 강들이 있습니까? 수백 개의 강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것을 만강의 원천이다 라고 해서 투먼 세끼옌(Tumen sekiyen)이라고 부르는 것이죠.


지도를 보면 고려시대 때 압록강은 여기고, 고려시대 때 두만강은 여기인데, 1712년에 백두산에 정계비를 세우면서부터 이것이 압록강이 되고, 이것이 두만강이 됐습니다. 그러면 1712년 이전에 백두산은 어디 있었을까요? 여기 있습니다. 여기를 백두산이라고 불렀습니다.

우리 조상들이 옛날에 고문헌을 보면, 백두산 구경 가자 하면 함경도로 안 갑니다. 심양 땅으로 갑니다. 예를 들어서 황경원 대제학께서 실제 백두산 구경을 갑니다.

그분이 남기신 책이 영액문에서 백두산을 바라보며라는 시가 있는데요. 강한집에 실려 있습니다. 원본이고요. 번역을 하면, 삼차하는 요수를 이야기합니다. 삼차하의 수원은 백두산에서 나온다. 요수가 백두산에서 흘러나온다. 그럼 우리가 알고 있는 백두산이 아니죠.

그분이 실제로 갔던 길을 쭉 나열을 하면요.

어디냐 하면, 확대를 해서 말씀드리면 실제 여기서 출발을 해서 심양에서. 원래는 이쪽으로 가야 되는데 여기서 조금 농땡이를 치죠. 여기에서 백두산을 구경하러 갑니다. 이쪽으로 가서 영액문에서 백두산 구경을 하고 다시 왔다가 다시 사행길을 떠나죠.

우리가 아는 백두산이 여기라고 하면 함경도로 가야 되잖아요. 우리 조상들이 백두산을 갈 때 함경도로 간 것이 아니고 심양으로 가서, 영액문으로 가서 백두산을 구경하고 내려왔습니다.


1877년도에 일본이 만주를 점령하기 위해서 세작(스파이)들이 그린 지도입니다. 일본 육군참모부에서 만든 지도인데요. 이 부분, 여기가 우리나라고 이것은 만주 땅 한가운데죠.

확대해서 보면, 여기가 영액문이고 여기가 토문하 보이시죠? 백두산에서 나옵니다. 이 산을 장백산이라고 했고 이 산을 백두산이라고 불렀습니다. 지금으로부터 1000~1500리 위에 백두산이 실제로 있었습니다.

그 증거는 지금도 장백산 치면 여기가 나오죠. 그런데 장백산 뒤에 땅 지(地) 자를 하나를 붙이면, 지(地)의 의미는 옛 터라는 이야기입니다. 우리가 황성옛터 할 때 그것을 한자로 하면 땅 지(地) 자를 치면 여기에 장백산지가 나옵니다. 우리가 아는 장백산 말고 이 산을 현재도 중국 사람들은 장백산지봉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당장 가셔서 한번 쳐보십시오. 구글 지도에 쳐보시면 바로 이렇게 뜹니다. 현재도 여기에서 사람들이 살고 있어요. 살고 있고 그 마을 이름을 장백산지 마을이라고 부르는 마을이 두 개나 있습니다. 아무리 흔적을 숨겨도 완전히 숨길 수는 없는 것이죠.


그리고 우리가 장백산이라고 할 때는 산봉우리 하나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산맥을 이야기하는 것이고 이것이 우리가 잊고 있는 백두산 줄기입니다.

그 다음에 고대 요수에 대해서 이야기하겠습니다. 요수 이야기를 하면 요수나 요하나 같은 강 아니냐 라고 누구나 다 생각을 하는데 과연 요수와 요하는 같은 강일까요? 다른 강일까요? 다른 강입니다.

원래 바이두백과는 두 개가 있었습니다. 홍콩판이 있고 북경판이 있었는데 홍콩판은 최근에 폐쇄가 됐습니다. 왜? 너무나 바른 정보를 실으니까요.

그런데 마침 제가 1년 전에 이 화면을 캡처를 해놨는데요. 보시면, 요수라고 치면 산서성에서 뜹니다. 요동이 뜨는 것이 아니라 산서성 지도가 뜨는 것이거든요. 그리고 모든 고문헌에서는 아주 공통되게 요수는 요산이라는 산에서 흘러나온다 라고 되어 있습니다.

후한서를 보시면 여기에 고구려현 적어놓고, 요산에서 요수가 나온다 이렇게 되어 있잖아요. 고구려현은 요산에서 요소가 나온다. 똑같은 문구가 한서, 후한서, 삼국지, 수경주. 웬만한 지리책은 이 문구가 다 들어가 있습니다. 그럼 실제 지도상에는 어떻게 표현이 되어 있을까요?


1402년도에 우리나라에서 만든 지도인데요.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라는 너무나 유명한 지도입니다. 이것은 세계 3대 지도 중에 하나로 꼽는 것인데요. 많은 지도 교과서의 표지로 실릴 만큼 유명한 지도죠.


이 지도를 여기를 확대를 해보면 여기에 요산 보이시죠. 산서성 한가운데 요산이 있습니다. 여기서 요수가 흘러나오죠.

구역수령도라고 지금도 현존하고 있습니다. 사천박물관에 비석으로 이렇게 남아 있는데요.

이 부분을 확대를 하면 여기에 요산 보이시죠? 이것이 황하입니다. 황하 바로 위에 흐르는 강이 요수입니다.

1559년도 대명여지도, 명나라 때 최고의 지도죠. 그 지도를 보시면 산서성 지도인데요. 여기 확대를 하면 요산, 기산, 요주 보이시죠? 이것이 요산입니다.

1645년도 지도종요를 봐도 여기에 요산이 있고 그 밑에 바로 요양이 있습니다. 우리는 현재 요동 땅에 있는 요양을 요양이라고 하는데 실제로 요양이 된 것은 천년 대 이후입니다. 옛날에 요양은 다 여기에 있었죠.

수경주라는 강의 흐름에 대해서 정리해 놓은 책인데요. 아주 재미난 이야기가 나옵니다. 청장수라는 강은 동남으로 흘러서 요수와 서로 만나는데 요수는 요양현 서북쪽의 요산에서 나와서 요양현으로 들어가서 남쪽으로 흘러서 속성을 지나서 청장수로 합류한다 이런 문구가 있거든요.

수경주도라는 책을 보면 이 부분을 확대를 해보면 똑같은 지명이 똑같이 나옵니다.

요산, 요수, 요양, 속성, 청장수. 글자 하나 안 다르게 똑같이 나오면 이것은 수경주와 똑같은 지도라고 보실 수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정말 재미난 것은 그 지명이 현재도 남아 있습니다. 현재도 여기를 요양진이라고 하고 여기를 속성향이라고 하고 이 강을 청장하라고 합니다. 요산에서 소요수가 흘러나와서 요양을 지나고 청장수와 속성에서 만난다. 그러니까 2100년 전의 지명과 지금의 지명, 강의 흐름이 고문서와 같으면 같다고 믿어야죠.


우리가 아는 요수는 여기 있는 것이 아니고 여기에 요수가 흘러서, 이것이 황하라고 하면, 여기에 요수가 흘렀던 것입니다. 요수는 국경입니다. 고조선의 국경이 요수에 있었습니다. 여기를 요동이라고 부르는 것이죠.

그리고 이것을 소요수, 대요수. 이것을 장하라고 하고 이것이 황하입니다. 여기를 요동 땅이라고 하죠. 요동 땅을 저기에 표시한 지도들은 굉장히 많습니다.


우공고금합주라는 책을 보시면 여기가 청주 아닙니까? 청주가 현재로 따지면 산동반도입니다. 산동반도 바로 위쪽이 요동이다. 그 다음에 이 책을 보셔도 여기가 산동반도거든요. 산동반도 위쪽이 요동이다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고대 요수는 지금의 요하와 다른 강이고 중국 본토 한가운데에 있는 황하 바로 위에 흐르던 강을 우리는 요수라고 불렀습니다.

제가 말씀드린 것이 너무 황당합니까? 도저히 말이 안 되는 (이야기 같죠.) 한번 조금만 더 들어보시죠. 저도 이것을 발견하고 나서 정말 너무 황당해서 처음에는 야, 내가 역사 공부를 한 4~5년 하다가 내가 드디어 미쳤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파고 파면 팔수록 증거들이 점점 더 많이 나오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것이 너무 미스터리 해서 끝까지 한번 들어가보자 한 것이 벌써 4년이 지났습니다.


요하라는 강은 실제 24사를 보면 요사에서 제일 먼저 나옵니다.

최초로 나오는 것인데 요사에 어떻게 되어 있느냐 하면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요나라, 거란족이 만든 요나라를 동서남북을 나누는데요. 동쪽, 동쪽은 요하가 왼쪽이니까 동쪽입니다. 해자, 해자처럼 두르고 있다 이렇게 되어 있거든요.

그런데 보시면, 이것은 담기양 선생의 지도인데, 확대를 해보면 여기가 그때 처음으로 요나라 사람들이 요하라고 불렀거든요. 이것을 해자처럼 두르고 있고 이것이 국경이라고 하면 여기가 요나라면 여기가 고려라는 이야기죠. 우리가 알고 있는 고려 이것은 다 거짓말입니다. 고려의 국경은 여기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아는 강동육주는 여기 있는 것이 아니라 여기에 있었습니다.

심득사항에 대해서 한번 말씀 드리겠습니다. 부사년 선생께서 1933년도에 이하동서설이라는 것을 만드셨요. 부사년 선생은 너무나 유명하니까. 학벌로 보나, 커리어로 보나. 이분이 마지막에 북경대학 총장을 하셨고 또 대만으로 넘어가서 대만대학 총장까지 하셨으니까 끝까지 가신 분이죠.

이분이 1933년도에 발표하시고 1934년도에 논문이 나왔는데 이하동서설이라는 것입니다. 논문의 첫 페이지고요.

우리나라 말로도 번역이 되어 있습니다.

부사년 선생의 이야기는 뭐냐하면, 중국 대륙이라는 것은 이때까지 모든 사람이 남북 간의 대결로 봤다는 것입니다.

이 지도를 보시면 남북 대결이 다 보이시죠? 다 보이시죠. 남북 간의 대결이다 해서 남조 북조 이렇게 불렀는데 자기가 꼼꼼하게 들여다보니까 삼국시대 이전에는 남북 간의 대결이 아니라 동서 간의 대결이다 라고 정의를 하십니다.

이분이 말하길, 사람은 자연 환경의 지배를 받는데 중국의 자연 환경이라는 것은 아주 독특한 특징을 갖고 있다.

동쪽, 여기는 평원이고 서쪽 여기는 산지와 고산 지대라고 해서 동쪽을 동평원구, 서쪽을 서고지계라고 정의를 하십니다. 그리고 이쪽에 살았던 사람은 동이족이고 이쪽에 살았던 사람은 서하, 하나라 종족이다 라고 말씀을 하시면서 중국의 삼국시대 이전의 모든 역사는 서하와 동이의 투쟁의 역사다 라고 정의를 합니다.

그리고 이 전쟁 부분에 대한 이야기인데요. 책 자체가 굉장히 두껍고 재미납니다. 제가 이것에 대한 결론, abstract을 전문 번역을 하고 있고 아마 다음 주 정도 되면 제 블로그에 올릴 수 있을 것인데 혹시 관심이 있으면 한번 보십시오.

하상주 지도를 확대를 해보면 이런데요. 담기양 선생의 이야기를 빌면 여기가 태행산맥 아니겠습니까? 여기가 낙양입니다. 이 입구가 낙양인데, 이쪽은 동이족이 살았고 이쪽은 서하족이 살았고 양쪽 간에 끊임없는 전쟁의 역사가 중국의 고대사다(라는 것이죠.)

이 논문을 발표했을 때 중국 사람들은 정말 황당무계하다고 생각을 했겠죠. 이것이 도대체 말이 되냐?

그런데 실제로 이것이 전국시대 때 지도인데요. 우리가 알고 있기로는 여기 연나라가 있고 제나라가 있고 이렇게 다 배웠지 않습니까? 지금도 교과서에는 지도가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그런데요. 이 밑에 보시면 실제 연나라가 어디 있었느냐. 낙양 바로 밑에 연나라가 있었고 낙양 바로 밑에 노나라가 있었고 낙양 바로 밑에 제나라가 있었습니다, 중국 사람인 담기양이 만든 지도입니다.

물론 나중에 우리 한민족들이 대륙에서 쫓겨나고 나서는 이 나라들이 여기서 이쪽으로 옮기죠. 제나라는 여기서 이쪽으로 옮기고 연나라는 이쪽으로 옮기고 노나라는 이쪽으로 옮깁니다. 춘추전국시대 때까지는 저곳이라는거죠.

요약해서 말씀드리면, 동쪽 평원에는 동이족이 살았고 이쪽에는 서하족이 살았다.


이 논문이 발표된 지 90년이 됐는데요. 90년 동안에 반박 논문이 단 두 편 나왔습니다. 이 논문이 하나 있고 이 논문이 하나 있고. 이것도 전문 번역해서 다음주 쯤 제가 제 블로그에 올릴 것인데요. 한마디로 쓰레기 논문입니다. 중뽕에 빠진. 그러니까 그 이야기는 이하동서설이라는 것은 아직도 어택(attack)을 받지 않는 확고한 위치에 있는 이론이라는 것이죠.

잃어버린 강토에 대해서 이제 들어가겠습니다. 고대 이야기할 때 보통 고문헌을 가지고 이야기하는데요. 가장 정확한 것은 사람의 인골입니다. 통상 우리가 화하족이냐 한민족이냐 할 때, 민족이라고 할 때 보통 무엇을 생각하시겠습니까?

첫 번째가 핏줄이 같다. 두 번째, 쓰는 말이 같다. 세 번째, 문화와 문명이 같다. 그럼 같은 민족이라고 그러거든요.

첫 번째가 핏줄입니다. 질문이 이런 것이죠. 한민족과 지나족은 같은 핏줄인가 다른 핏줄인가. 결론은 다른 핏줄입니다.

DNA whole sequencing을 하는 것인데요. 코로나 사태가 한참 일어났을 때죠. 2021년 겨울이니까. 네이처에 엄청난 논문이 하나 발표가 됐습니다. 막스프랑크연구소에서 인류역사과학을 연구하시는 로베이츠라는 분이 수십 명의 석학을 모아서 수년 동안 연구한 결과 논문을 하나 냈습니다.


논문 제목도 희한합니다. Triangulation~이라고 하는 논문인데요. 논문이 하나, 둘, 셋, 넷, 다섯 페이지죠. 레퍼런스 빼면. 제가 이 논문 5 페이지 읽는데 일주일 걸렸습니다. 얼마나 어려운 논문이고 얼마나 전문적인 용어가 많고 얼마나 레퍼런스가 많은지. 이 논문의 포인트는 과거에는 유전학, 고고학, 언어학을 학자들이 따로 연구를 했습니다. 그런데 이 논문은 세 분야의 사람들이 합쳐서 같이 연구를 하고 논문을 냈는데요.

그 중에서 DNA를 말씀 드리면 이 자들이 다섯 군데를 랜드마크로 삼고 동아시아의 유전자가 어떠냐 라고 다섯 군데가 나오는데요. 지역을 보시면, 아무르, 서요하, 홍산, 황하, 일본. 이 다섯 군데를 랜드마크로 삼고 여기에 대해서 각자 유전자들의 움직임, 이동, 변화, 변이가 어떻게 일어나는가를 측정을 했습니다.

이것이 우리나라에 대한 유전자의 결과인데요. 정말 재미난 것은 우리나라의 고대 해골 16개를 분석을 합니다. 그러니까 5천 년 전에 나온 해골이면 아주 운이 좋으면 거기에서 DNA가 나와요. 그럼 DNA를 가지고 다시 하다 보면 whole sequencing이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가능한 게 16개 해골을 이 사람들이 했는데요. 안도라는 섬, 대정리, 장항, 연대도, 욕지도. 이 5군데에 16명입니다.

여기가 대정리, 안도, 욕지도, 연대도, 장항인데 위치는 이렇습니다. 결과가 상당히 놀랍습니다.

보시면 대정리라는 데서 나온 유전자는 100% 하가점상층. 하가점상층이라는 것이 홍산의 후문명 아닙니까? 100% 홍산문화와 같다. 안도에서 나온 것은 남자 둘, 여자 하나인데 이것도 100% 홍산과 똑같다.

다음에 옆에 홍산, 홍산, 홍산이 되어 있는데 파란 것이 뭐냐 하면 일본의 조몬의 유전자입니다. 그런데 일본의 조몬 유전자는 홍산보다도 수천 년 후대거든요. 그러니까 유전학자들이 이것을 어떻게 해석을 하느냐 하면 100% 홍산과 현재 한반도에 사는 사람들은 유전자가 똑같은데 세월이 흐르면서 유전자 변이가 일어났고 이 변이가 일어난 유전자는 일본 조몬의 조상이 됐다 이런 이야기죠.

그러니까 지나족과 한민족은 피가 하나도 안 섞였다는 것입니다. 완전히 다른 민족이다. 그리고 아까 소병기 선생님 말씀을 하셨는데요. 홍산문화는 중화문명이다. 중화문명이 아니죠. 홍산에는 중화에 살던 사람의 유전자가 단 한 톨도 없습니다. 100% 우리의 한민족 문화라는 것이죠.

고대 한국어는 넘어가죠. 이것도 말씀을 드리면 조금 argue가 있는 부분인데요. 보시는 바와 같이 9천 년 전에 홍산에서 동아시아의 언어가 발생이 됐고 전체로 퍼져나갔고 5천 년 전에 한반도에 들어가서 일본으로 넘어갔다 이런 이야기고요.

고대 유물도 마찬가지입니다. 고대 유물도 보시면 여기서 문화가 발생을 해서 6500년 전에 한반도로 왔고 2900년 전에 일본으로 넘어갔다 라고 하는 것이 로베이츠의 논문입니다.

그 다음에 고죽국에 대해서 하나 말씀드리겠습니다. 우리가 어릴 때 교과서에서 수양산을 바라보며라는 시를 배웠지 않습니까? 교과서에서 나온 시입니다. 수양선을 바라보며 이제를 한하노라 하고 나오는 것인데요. 백이숙제 이야기죠.

질문이 이렇습니다. 백이숙제가 한민족인가 지나족인가, 중국 사람인가. 질문 자체가 상당히. 당연히 중국 사람이지. 그리고 백이숙제가 살았던 고죽국이라는 나라는 당연히 중국의 나라지.

사마천 사기를 보면, 사마천 사기가 어떻게 사기를 쳤냐 하면 열전 첫 페이지 첫 줄에 백이숙제를 적어놨습니다. 이걸 보고 중국 사람이 아니다 라고 말할 사람이 있나요? 100% 고죽국은 중국의 제후국이고 백이숙제는 중국 사람이다. 실제로 그런가요? 한번 볼까요?

지나계의 국가들은 전부 다 이름이 한 자입니다. 하, 상, 주, 진, 위, 송, 제, 양. 두 글자인 국가 이름이 하나도 없어요. 모든 나라들이 한 글자입니다. 고죽은 두 글자잖아요.

그리고 고죽을 해석을 하면 외로운 대나무입니다. 도대체 나라 이름을 외로운 대나무라고 지을 수가 있나요? 고죽은 한자를 여러 가지로 씁니다. 이렇게도 씁니다.


이아라는 책을 보면 여기에 고죽을 다른 한자로 적어놨죠. 한자가 다르고 발음이 같으면 그거는 99% 우리나라 말입니다. 우리말을 중국어로 음차해서 표현하기 위해서 같은 발음이 나오는 한자를 아무거나 써도 되는 것이죠. 아까 압록도 야루가 발음되면 아무거나 갖다 쓰는 것입니다.

그런데요. 고죽의 발음과 고추의 발음이 같습니다. 여러분들 옛날에 한번 기억을 해보시면 고구려 때 여러 가지 높은 관직 중에서 고추가라는 이름이 있죠.

삼국지에 보시면 고추가가 나옵니다. 보시면, 고구려의 직책이 상가, 대로, 패자, 고추가 이렇게 나오죠. 고추가는 왕의 피붙이로서 직급이 높은 사람은 고추가. “가” 하면 “님” 자하고 똑같고 고추와 고죽의 발음이 똑같습니다. 제가 이런 주장을 하니까, OK. 고구려까지는 고추가가 있었다는 것을 알겠는데 고조선에 고추가가 있었다는 것은 어떻게 믿냐, 증거 있냐 이런 이야기죠.

제가 주장하기로 무슨 이야기냐, 고구려는 고조선의 제도를 다 본 땄기 때문에 당연히 고추가가 있다라고 가정해야 된다. 그런데 역사에서는 그런 것이 없습니다. 실제 확실한 증거를 들이대야 되는 것이거든요.

두로영은이라는 사람의 비가 얼마 전에 발굴이 됐습니다. 중국에서 얼마나 환호를 하느냐 하면 북비삼절, 북쪽에서 나온 베스트3 비석이 하나, 둘, 셋인데 이 비석입니다.


이것은 비석에 나온 묘지의 장면을 사진을 찍은 것이고, 위에서 찍은 사진입니다.

여기에서 비석이 발견이 됐는데 실제 비석은 이런 모양입니다. 섬서성 함양박물관에서 이것을 보관을 하고 있는 것이거든요.

그런데 이 비석이 너무나 유명한 두루공신도비는 여러 책에서 전문을 인용을 하고 있을 만큼 아주 유명한 비석입니다.

중국국가도서관에서 갖고 있는 유자산집에 그 비석이 나오는데 보시면 두루공은비라고 되어 있죠.

여기에 어떤 대목이 있느냐 하면, 바로 다음 페이지를 넘기면 조선건국고죽위군. 조선이 나라를 세우고 고죽을 군, 군으로 삼았다. 제후국으로 삼았다. 조선이 나라를 세우고 고죽을 군주로 삼았는데 이 고죽의 발음이 고추라는 것이죠. 같은 발음이죠. 이것은 1500년 전의 비석에서 나온 글입니다.

우리가 보면 중국의 고문헌은 얼마든지 거짓말을 할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왜곡이 됩니다. 그런데 이 비석이라는 것은 타임캡슐입니다. 1500년 전에 땅에 묻혔다가 아무도 모르죠. 그러니까 그 당시 상황을 그대로 기록해 놓은 비석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몇 년 전에 뿅하고 드러났단 말이죠. 그런데 이렇게 적혀 있다는 것이죠. 이것은 어떤 문헌, 어떤 지도, 어떤 역사 사료보다도 100% 신뢰를 해야 되는 자료가 소위 말하는 묘비명입니다.

그러니까 조선의 단군이 자기 피붙이 중에서 괜찮은 친구를 골라서 고조선의 서쪽으로 보내서 만든 나라가 고추국, 중국 말로 고죽국이라는 것이죠.

백이숙제는 지나족이 아니고 한민족이고 고죽국은 지나족 국가가 아니고 한민족 국가입니다.

그런데 이 고죽국의 위치가 어디냐 라는 것이 문제가 되지 않겠습니까? 모든 책에서는 여기가 고죽국이다, 교과서에도 이렇게 나옵니다. 제가 보니까 완전히 다른 데 있죠.

수경주라는 책을 보면 뭐라고 돼 있느냐 하면 고죽국 옆에 유수라는 강이 흐른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유수를 찾으면 고죽국이 나오겠죠.


유수를 보면 담기양 지도에도 여기를 유수라고 돼 있습니다.

그다음에 수경주도를 봐도 여기를 확대해 보면, 여기에 텐진입니다.

북유수, 남유수 흘러서 동쪽으로 바다로 들어가는 강을 유수라 그러고 여기에 고죽국이 있었다는 것이죠.

그러니까 여기에 고죽국이 있던 것이 아니라 여기에 고죽국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재미난 것은 이 고죽국과 관련해서 수나라 때 배구라는 재상이 한 이야기가 우리나라 삼국유사, 수서, 구당서, 신당서에 실려 있습니다. 배구전에서 배구가 수양제가 고려를 공격하자라고 하니까 배구가 뭐라고 이야기를 하는데 그 내용이 이렇습니다. 똑같은 내용인데 토씨 정도만 다른데요.

수서, 구당서, 신당서, 삼국유사에 다 나오는데 수서 이 부분입니다. 배구전인데요. 배구가 뭐라고 했냐 하면 고구려 땅은 원래 고죽국이다. 주나라 때는 기자가 살았고 한나라 때는 한삼군, 한사군이고 진나라 때는 요동 땅이었습니다 이렇게 이야기를 합니다.

그럼 무슨 이야기냐 하면 고죽국의 위치나 기자조선의 위치나 위만조선의 위치나 한사군의 위치나 진나라 요동 땅 위치나 고구려 평양의 위치가 똑같다는 이야기 아니겠습니까?

여기에 고죽국과 기자조선과 위만조선과 한사군과 진나라 요동과 고구려 평양이 있었습니다.


요동 하나만 한번 볼까요? 진서에 요동 땅 이야기가 나옵니다. 여기 보면 요동국 해놓고 쭉 나와 있지 않습니까? 제가 번역을 해서 보여드리면 청주에 속할 때도 있고 유주에 속할 때도 있다. 어떤 땅이 여기에 속하고 저기에 속한다는 이야기는 그러면, 청주와 유주 사이에 요동 땅이 있었다라고 보시면 되죠.


그러면 그때 지도를 한번 보죠. 그때 지도를 보면 여기에 유주가 있고 여기에 청주가 있습니다. 그럼 너무나 당연히 여기가 요동이죠. 우리가 여기를 요동이라고 하는데 이것은 다 거짓말이라는 이야기입니다.

보시면 여기에 유주가 보이고 청주가 보이죠. 여기가 요동 땅입니다. 여기를 천 년도까지는 요동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런데 요나라가 여기를 지배를 하면서 이것을 요하라고 불렀고 이때는 요동 땅이라고 했죠. 그러니까 우리가 알고 있는 아주 고대 때부터 고려시대 초기까지는 여기가 다 요동 땅이었습니다.

기원전 1000년 경에 비파형동검이 나오거든요. 고조선의 지표 유물인데, 비파형동검은 신분의 상징입니다.

보시면 사람이 죽으면 가슴팍에 안고 죽거든요. 신분의 상징이죠.

이런 모습입니다.

그런데 정말 재미난 것은 북경 바로 밑에 비파형동검이 하나 나오는데 사람의 인골이고, 여기 보시면 비파형동검이 나오죠. 칼집이 나옵니다. 이것이 무기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약 20cm 정도 되고 칼집까지 있는 것을 보면 이것은 신분의 상징이라는 것이죠.

고조선의 비파형동검의 분포를 김정배 선생님이 정리를 해 놓으셨는데 이 지도를 제가 엑셀로 해서 구글어스에 다시 표시를 하니까 이렇습니다. 여기서 비파형동검이 나온다는 것은 여기가 고조선의 영역이라는 것이죠.


똑같은 작업을 중국의 근풍의 선생께서 작업을 하셨어요.

이것을 그리니까 이렇게 222자루의 비파형동검이 나옵니다. 두 개를 합하면 이렇게 됩니다. 그러면 그때 고조선의 수도가 어디였다는 것은 대개 아시겠죠? 여기가 너무나 당연하게, 중복돼서 잘 안 보이는데 아주 많은 비파형동검이 나옵니다.

제가 이 지도를 만들어 놓고 가만히 쳐다보니까 사람 사는 세상에서 이상하다, 이것은 말이 안 되는 게 이쪽에 퍼져 있으면 이쪽에도 이만큼 나와야 되는 것이 상식이다. 그래서 중국의 고대, 옛날 약 50년 100년 전의 발굴보고서와 논문들을 약 500편 가까이 뒤졌습니다.

주로 하북성, 산동성, 산서성인데요. 제가 여기에서 비파형동검 10자루를 찾아냈습니다. 그리고 세형동검 53자루를 여기서 찾아냈습니다.

합치면 이렇고 아까 지도와 결합을 하면 이렇게 됩니다. 어느 정도 좌우 대칭이 맞죠? 실제 제가 지금도 찾고 있는 중인데 이 부분에서도 엄청나게 많은 비파형동검이 나올 것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러면 옛날에 우리는 한때 이런 식으로 교과서에서 배웠어요. 고조선의 땅이. 그런데 지금은 이렇게 안 가르치죠.

실제 논문에서 나오는 이것은 우리나라에서 나온 것이고 (산동성에서 나온) 비파형동검은 이런 모양입니다. 100% 고조선의 땅으로 봐야죠.

그리고 나온 지명이 여기입니다.

그런데 진짜 놀라운 사실은 낙양에서 비파형동검이 나옵니다. 낙양이면 중국의 중원 한가운데 아닙니까? 여기서 비파형동검이 나옵니다.

기원전 720년에 주나라 평왕 때 무슨 이야기를 했느냐 하면 이수와 낙수에 이르는 곳에 융, 오랑캐가 있었다. 무슨 오랑캐인지는 모르겠다. 그 사람들은 이수와 낙수에 살았는데 이름을 양거와 천고라고 했다.


담기양지도를 보면 낙양 바로 밑에 이수와 낙수가 흐르고 양거, 천고, 이락, 오랑캐가 살았다. 여기에 오랑캐가 살았는데요. 그럼 저 오랑캐가 누구냐 하는 게 문제겠죠. 중국 사람들도 저 오랑캐 이름만 알지 누군지 아무도 모릅니다.

그런데 어떤 일이 벌어졌냐 하면 아까 그 유명한 중국 최고의 고고학자 소병기 선생이 1959년에 발굴을 하는데요. 아까 낙양에서요. 이분이 소병기 선생입니다.

그리고 그 내용을 논문으로 다 정리했는데 이런 거마갱, 마차와 말이 같이 있는 것도 나오고 이것은 얼굴에 올려놓는 옥입니다. 이런 그릇, 이런 장식품도 나오고, 이런 재기도 나오는데 거기서 뭐가 나오느냐 하면 이것이 나옵니다.

놀랍지 않습니까? 이것은 100% 비파형동검이죠. 등이 쫙 이렇게 되어 있지 않습니까? 더 놀라운 사실은 이것입니다. 이것은 나무가 아니고 상아로 만든 것입니다. 삼천 년 전에 나왔는데 상아가 지금도 저렇게 살아남아 있어요. 그럼 이것은 100% 신분의 상징으로 봐야죠. 신분의 상징이고 이것이 낙양 바로 밑에서 죽은 무덤에서 호화찬란한 유물이 나왔으면 그 오랑캐의 주인은 누굽니까? 100% 고조선 사람이다 라고 봐야 되는 것이죠.

전위라는 친구가 아주 겁이 없는 친구인데요. 이분이 쓴 논문을 보면 이 이야기를 하면서 뭐라고 이야기하느냐 하면 서주와 동주 지역, 노나라와 제나라 지역에서 북방 문화요소가 많이 나온다. 적성묘, 고인돌도 많이 나오는데 주척검, 이것이 비파형동검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중원 중심부와 제나라, 노나라 지역에서 발견되는 것은 전혀 놀랍지 않다 라고 이야기를 하면서 이 지도로 그립니다.
이것이 뭐냐하면 아까 홍산문화 나온 데죠. 여기가 중원 땅 한가운데입니다. 이렇게 문화가 전파됐다는, 정말 중국으로서는 용감한 논문을 써낸 것입니다 이 친구가.

그래서 우리 윤내현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이 책을 보면 결론이 이것입니다. 옛날에 고조선 땅이 이거다 라고 말씀을 하시는데 제가 공부를 좀 해 보니까 여기까지가 고조선 땅이었다. 그런데 더 황당한 사실은 그 당시에 하상주 땅이 어느 정도냐, 매우 작은 나라입니다.

맹자를 보면 이런 문구가 있습니다. 하나라, 은나라, 주나라 전성기라 해도 땅은 사방 천리를 넘지 않았다.

그러면 이것도 상당히 과장된 지도인데요. 천 리보다는 조금 많죠. 여기에 주나라를 붙이면, 주나라가 이만합니다. 이 당시에 고조선의 땅은 이만했고 주나라 땅은 이만했습니다.


과연 그게 가능하느냐? 바다를 건널 수 있느냐? 보시면, 예를 들어서 여기서 여기까지 가려고 하면 걸어서 6개월 걸립니다.

말도 안 된다고 하실지 모르겠는데 만 년 전에는 소빙하기였습니다. 소빙하기 때는 얼음이 많아서 수면이 100~120m 낮았습니다.

낮았을 당시를 보면 발해는 전부 다 육지입니다. 그리고 황해의 절반 이상이 육지입니다. 그러니까 옛날에는 이렇게 다닌 것이 아니라 여기서 여기까지 오는 것은 서울에서 대구까지 가는 것보다 더 가깝습니다.

그러니까 지금 기준으로 걸어서 6개월, 과연 그게 말이 되느냐. 그리고 해안을 따라서 사람들이 이동을 한 것이죠.

시간이 너무 많이 지나서 비파형동검까지만 하겠습니다. 나머지 자료는 이런 식의 내용으로 약 750페이지 정도 되니까요. 한번 보시면 이것뿐만이 아니고 그 뒤에 포함되어 있는 자료는 옛날에 고구려 땅이 어디냐, 고구려 평양이 어디 있느냐, 통일신라 땅이 어디였느냐, 고려 때 땅이 어디 있느냐, 백두산이 어디 있느냐 하는 자료와 내용들이 다 포함이 돼 있으니까 한번 눈으로 쭉 넘기시면 아 이렇구나 (하실 것입니다.) 사실 이것은 저도 지금 공부 중이기 때문에 믿거나 말거나 입니다.

그런데 워낙 방대한 자료를 제가 수집을 했고 현재 제가 갖고 있는 지도와 고문헌이 약 3천 편이 있는데요. 어느 정도 분량이냐 하면 6.8테라입니다. 컴퓨터 하나가 1테라잖아요. 컴퓨터 8대 분량만큼 제가 고지도 고문헌을 갖고 있거든요.

그래서 그것을 제가 내년쯤은 무료로 전 국민들한테 공개할 생각인데 하여튼 저도 유튜브를 하니까 혹시 관심이 있으시면 윤순봉의 서재 들르셔서 구독, 좋아요 꼭 눌러주십시오.

감사합니다.

 

(Q&A)

Q: 비파형동검, 지명. 무덤에 나타난 지명. 이것을 가지고 이제 고조선의 흔적을 추적하시는 것은 저는 참 좋다고 생각하고 굉장한 고생을 하신 것이 드러나는 노력인데요. 왜 저 백두산과 압록강을 가지고 고려와 중국(거란, 요나라)의 경계를, 추적하신 것은 단순히 그런 유물만 가지고 할 일이 아니고 그 당시에 고려가 실효적 지배를 하고 있었다면, 그러면 그다음에 무슨 문제가 생기냐 하면 압록강으로 넘어오니까. 그러니까 위화도회군의 위화도는 지금의 위화도란 말이죠?
A: 아닙니다

Q: 그것도 아닙니까?

A: 예

Q: 그럼 위화도도 더 위쪽인가요?

A: 그렇죠

Q: 그러면 그 많은 영토와 살고 있던 주민이 남쪽으로 몰려 내려오는 것은 고려에 있었던 엄청난 이동인데 그것에 대한 다른 기록이 없고 사건이 없다고 그러면 문제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돼서, 저는 사실은 제가 역사학자는 아니지만, 그 이야기를 고조선에 국한시켜서 유물로 파악하시는 것은 저는 상당히 지금 문제가…  고려 때도 그랬다고 이야기하려면 상당히 많은 도발을 받겠다 이런 느낌을 가지고 들었습니다. 재밌게 들었습니다.

A: 여기가 뭐다 라고 증명을 하려고 그러면 단순하게 고문헌에 글자 하나 있다 이것만 가지고는 절대 증명이 안 됩니다. 최소한 약 7가지 정도가 백업이 되어야 됩니다.

첫째 하나는 실제 핏줄이 같냐. 두 번째는 쓰는 말이 같냐. 세 번째는 고대 유물이 나오냐. 네 번째는 묘비석으로 그것을 증명을 할 수가 있느냐. 다섯 번째는 고지도가 백업을 하느냐. 여섯 번째는 그때 자연 환경이 당연하게 인간으로서 그런 상식과 결합이 되느냐. 마지막 일곱 번째는 간혹 천문학 기록이 나옵니다. 천문학 기록과 일치하느냐.

제가 항상 7가지를 놓고 하는데 사료가 7가지가 다 백업이 될 수가 없어요. 그런데 최소한 7가지 중에서 4가지 이상 백업이 돼야 저는 주장을 합니다. 그리고 아까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것인데요. 아까 고려시대 때와 조선시대 때의 국경이 어디냐 하는 것은 제가 정말 연구를 많이 해 놨습니다. 상상을 초월할 만큼 완벽한 증거를 갖고 있고요.

실제 중국의 동북공정은 누가 시작을 했냐 하면 강희제가 시작을 했어요. 300년 전에. 1712년에. 동북공정의 1차가 강희제고 그 다음에 2차가 모택동이고, 3차가 시진핑이고 4차가 지금 일어나고 있는 문화선전공정입니다.

강희제라는 분이 어떤 분이냐 하면 중국의 입장에서는 최고의 황제입니다. 5천년 역사 최고의 황제지만 우리 입장에서 보면 거의 악마입니다. 우리 땅을 손가락 하나 안 대고 천리 땅을 빼앗았습니다. 그런데 능히 그분은 그렇게 할 만한 재질을 갖고 계십니다.
강희제가 어떤 짓을 했냐 하면 지금 우리가 생각할 때 중국 땅 하면 지금 중국이잖아요. 실제 중국에서 변방에, 사람은 숫자가 안 되지만, 땅 넓이로 따지면 61%가 위구르, 신장, 몽고이고 실제 39%가 원래 중국입니다. 강희제 때 그것을 거의 다 먹었어요. 그러니까 땅이 3배가 된 것입니다.

강희제 때. 강희제가 동쪽을 먹고 싶어 했어요. 조선을 먹고 싶어서 끝없이 노력을 하는데, 왜냐하면 장백산이 자기 조상들이 태어난 고향이거든요. 그것을 먹고 싶어 하는데 두 가지 작전을 짭니다. 첫째 입으로 때울까, 둘째 무력으로 갈까. 처음에 입으로 때우자라는 작전을 하고 이분이 그 당시에 (프랑스) 루이14세한테 전통을 보냅니다. 벌써 이미 그때는 국제적으로 나왔어요.
뭐라고 전통을 했냐 하면 우리가 지도가 필요한데 지도를 그리기 위해서 프랑스, 그 당시 프랑스가 그 지도학이 세계에서 가장 발전할 때거든요. 지도학자를 수십 명을 보내달라. 그러니까 루이14세가 딱 보고 ‘어 이거 괜찮은데. 중국 지도를 확보하면 우리가 언젠가는 중국을 먹을 수 있겠구나.’ 그래서 로마 교황에게 갑니다. 가서 뭐라고 이야기하느냐 하면 ‘(중국에서) 학자를 보내라고 하는데 우리가 예수회 신부를 보내겠습니다.’ 교황이 보내라고 해서 예수회 신부를 30명을 보냅니다. 보내는데 이 사람들이 학문적으로 가장 천문학과 지리학이 밝은 사람이에요. 이 사람들이 중국에 와서 무슨 짓을 하느냐 하면 천문 측량을 하고 위치를 파악을 하지 않습니까? 그 다음에 삼각 측량을 해요. 삼각 측량을 해서 아까 그린 지도가 황여전람도라는 지도가 1718년에 나옵니다. 그 지도를 보면 300년 된 지도인데 지금 봐도 거의 손색이 없을 만큼 정확한 지도예요. 그 지도를 딱 확보를 하자마자 우리나라 숙종에게 협박을 하는 것이죠. ‘당신네 나라 사람들이 우리나라 장백산에, 우리 조상이 태어난 땅인데 무단으로 넘어와서 농사를 짓고 무단으로 넘어가서 인삼을 채취를 하고 하니까 이 차제에 국경을 바로 하자.’라고 하니까 그 당시에 숙종은 사실은 뭔가를 잘 모를 때예요. 그래서 양자가 만나서 국경을 확정을 하자 했는데 강희제는 천리 땅 위쪽과 밑에 땅, 중간 땅 적당히만 이야기를 하면 오케이 할 생각이었어요. 그래서 오라총관 목극등이라는 사람을 보내고 우리도 관료를 하나 보내요. 보내서 둘이 만났는데 우리나라 측에서 간 관료들이 뭐라고 이야기하느냐 하면 ‘현재 백두산까지만 우리 땅으로 달라. 그러면 우리가 더 이상 오퍼를 안 내겠다 하니까 목극등이 너무 놀래서 그냥 오케이, 그 자리에서 오케이를 합니다. 그러고 나서 어떻게 되냐 하면 ‘그러면 우리 증거를 남기자.’ 그래가지고 만든 것이 그 유명한 백두산정계비입니다.

원래 백두산정계비는 계획에 없었어요. 그냥 딱 굽히면서 ‘천리 땅 가져가세요.’ 하니까 그 자리에서 며칠 동안 쪼아서 만든 정계비가 백두산정계비고 거기에 뭐라고 적혀 있냐면 ‘이 정계비에서 서쪽으로 흐르는 것은 압록강이라고 부르고 동쪽으로 부르는 것은 두만강이라고 부르자.’ 라고 한 것이 1712년입니다. 300년 동안에 사람들이 전부 다 남쪽으로 쫓겨 내려옵니다.

그래서 우리가 농담으로 하더라도 술 먹다가 농담할 때 ‘고향 어딥니까?’ 이러면 ‘만주 봉천입니다.’ 이런 농담을 하잖아요. 우리 아버지 할아버지들이 만주 봉천 길림에서 다 살았어요. 이것이 내려온 게 얼마 안 돼요. 50년 채 안 되거든요. 그때까지는 그게 다 우리 땅이었어요.

제가 너무 길게 말씀을 드렸는데요. 언젠가 계속 말씀을 드릴 텐데 거기에 대한 증거는 파워포인트 약 10만 장을 정리를 해 놨습니다. 그 중에 약 3만 장 정도가, 오늘 약 천 페이지 정도 보여드렸는데, 강동6주 그런 것들에 대한 자료들이니까..

Q: 거기에 우리가 있었고 우리가 목사를 보내고 우리가 자체적으로 통치를 하고 했다는 증거가..

A: 두 가지를 찾아야 됩니다. 거기가 우리 땅이라고 주장하려면 첫째 호구 조사가 되어야 합니다. 몇 사람이 살았다 라고 되어야 하고 두 번째는 세금 또는 세금 준하는 일을 해야 돼요. 돈을 내라 하든지 돈을 못 내면 네가 대신에 군사로 나가라든지 하는 식으로 갈음되는. 그 두 가지가 확보가 되어야 그 땅은 우리 땅이라고 주장을 할 수 있어요. 세 번째는 그것을 관리할 수 있는 행정구역이, 어떤 성의 형태든지 무슨 형태든지 남아야 됩니다. 완벽하게 저희들은 다 갖고 있어요. 그리고 거기에 대한 지도, 문헌, 논문 (다 있습니다.) 조금만 기다리시죠. 제가 올해 안에는 다 정리를 해서 말씀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제가 이야기가 너무 길었습니다. 죄송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