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힐강의 “맥국 산서성 위치설”
요약
20세기 초 신문화운동(新文化運動)의 격변기 속에서 중국(中國) 역사학에 혁명을 일으킨 고힐강(顧頡剛)의 학문 세계를 심층적으로 분석한다. 호적(胡適)의 과학적 회의주의와 왕국유(王國維)의 이중증거법(二重證據法) 등에 영향을 받은 그는, ‘누층적으로 조성된 중국 고대사(層累地造成的中國古史)’라는 핵심 이론을 제창했다. 이 이론은 시대가 흐를수록 전설 속 역사는 더 길어지고 인물은 더 위대해진다고 보며, 요순(堯舜)과 같은 고대 성왕의 이야기가 후대에 의해 끊임없이 가필되고 발명된 것임을 주장한다. 이를 통해 그는 경전(經典)의 신성한 권위를 해체하고 모든 고대 문헌을 비판적 분석의 대상으로 삼는 의고학(疑古學)의 패러다임을 확립했다.
고힐강(顧頡剛)의 의고학(疑古學) 방법론이 어떻게 실제로 작동하는지 보여주는 가장 대표적이고 급진적인 사례는 바로 ‘맥국(貊國) 산서성(山西省) 위치설’이다. 이 주장은 단순히 고대 국가의 지리적 위치를 수정하는 것을 넘어, 수백 년간 이어져 온 중화(中華) 중심의 역사관과 영토관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파괴적인 힘을 가졌다. 전통적으로 맥족(貊族)은 만주(滿洲)와 한반도(韓半島) 북부에 거주하던 동북방의 ‘이민족(東夷)’으로 간주되었으나, 고힐강(顧頡剛)은 가장 오래된 문헌 중 하나인 《시경(詩經)》에 대한 정밀한 재해석을 통해 이 통설을 근본부터 뒤집었다. 그의 논증은 《시경(詩經)》 <대아(大雅)·한혁(韓奕)>에 등장하는 한후(韓侯)의 지리적 위치를 확정하는 데서 출발한다. 그는 《죽서기년(竹書紀年)》의 기록을 근거로 시에 언급된 ‘분왕(汾王)’이 주(周) 여왕(厲王)이며, 그가 피신한 곳이 산서성(山西省) 분수(汾水) 유역의 한후(韓侯) 영지였음을 밝혔다. 이를 통해 먼저 한후(韓侯)의 위치를 산서성(山西省) 남부로 비정했다. 그리고 그가 맥족(貊族)을 포함한 ‘북국(北國)’의 통치자로 임명되었다는 구절을 근거로, 맥족(貊族) 역시 필연적으로 한후(韓侯)의 북쪽, 즉 산서성(山西省) 북부에 존재해야 한다는 결론을 이끌어냈다.
물론 그의 주장은 학계에 큰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후대 사서에 기반한 전통적인 동북설, 그리고 ‘맥기(貉器)’ 청동기 명문을 근거로 한 임운(林沄)의 하남성(河南省) 위치설 등 여러 반론이 제기되었다. 그러나 본 보고서는 고힐강(顧頡剛)의 학문적 유산이 ‘맥국(貊國)이 어디였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최종적인 답을 찾는 데 있지 않다고 평가한다. 그의 진정한 공헌은, 문헌 기록의 다층성을 드러내고 역사-지리 연구에 엄밀한 비판의 잣대를 도입함으로써, 역사를 맹목적인 믿음의 대상에서 끊임없는 질문과 탐구의 과정으로 전환시켰다는 점에 있다.
목차
제1부 의고학의 혁명: 고힐강(顧頡剛)의 역사학 방법론
서론
20세기 중국(中國) 역사학의 흐름을 바꾼 중추적 인물이자 논쟁적 인물인 고힐강(顧頡剛)은 전통적인 역사 서술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하며 중국(中國) 역사학계에 거대한 파문을 일으켰다. 그의 학문적 여정은 《고사변(古史辨)》 운동으로 집약되는데, 이는 고대 문헌에 대한 무비판적 수용에서 벗어나 과학적이고 실증적인 방법론을 통해 역사를 재구성하려는 시도였다.[1] 본 보고서는 고힐강(顧頡剛)의 역사학 방법론을 심층적으로 분석하고, 그의 이론이 실제 역사 연구에 어떻게 적용되었는지를 구체적인 사례를 통해 조명하고자 한다. 그의 작업은 왕조 중심의 ‘정사(正史)’가 아닌, 민족과 문화의 형성과 변천에 초점을 맞춘 새로운 ‘국사(國史)’를 쓰려는 시도였으며, 이는 제국주의의 압박과 내분이라는 국가적 위기에 대한 지성적 응답이었다.[2] 특히, 그가 제시한 주장 중 가장 도전적이면서도 그의 사상 체계를 잘 보여주는 ‘맥국(貊國) 산서성(山西省) 위치설’을 중심 사례로 삼아, 그의 거시적 이론과 개별적 주장이 어떻게 유기적으로 연결되는지, 그리고 그의 주장이 문헌, 역사지리, 고고학의 관계를 어떻게 재정립하도록 이끄었는지를 상세히 논증할 것이다. 맥국의 위치를 재조정하는 것은 단순히 지도 위의 점 하나를 옮기는 행위가 아니었다. 그것은 수백 년간 축적된 주석의 권위를 무너뜨리고, ‘오랑캐(夷狄)’와 ‘중화(中華)’의 지리적 경계를 재정의하며, 통일 제국이라는 신화에 균열을 내는 근본적인 해체 작업이었다.[3], [4]
제1부 의고학의 혁명: 고힐강(顧頡剛)의 역사학 방법론
제1절 지적 기반과 영향
고힐강(顧頡剛)의 학문은 진공상태에서 탄생한 것이 아니라, 중국(中國) 지성사의 오랜 흐름 속에서 형성되었다. 그의 비판 정신의 뿌리는 청대(淸代) 고증학(考證學)의 실사구시(實事求是)적 전통과 유지기(劉知幾) 같은 선구적 사학자들의 문헌 비판 의식까지 거슬러 올라간다.[5] 그러나 그의 학문을 폭발시킨 것은 20세기 초의 시대적 격변이었다. 신해혁명(辛亥革命)과 5.4 신문화운동(新文化運動)의 급진적인 지적 분위기는 유교적 전통과 그에 기반한 역사관을 포함한 모든 권위에 의문을 제기할 수 있는 동력을 제공했다.[1] 이러한 시대적 배경 속에서 그의 학문적 성장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세 명의 거인이 있었다. 고힐강의 천재성은 이 세 가지 서로 다른 현대 지성의 흐름—서구의 과학적 방법론, 민족주의적 역사학, 그리고 실증적 고고학—을 하나의 강력하고 체계적인 비판 프로젝트로 통합한 데 있다.
호적(胡適): 미국(美國)에서 존 듀이의 실용주의와 과학적 방법론을 가지고 돌아온 호적(胡適)은 고힐강(顧頡剛)의 가장 중요한 지적 스승이었다. 그는 “의심하다가 틀리는 것이 맹신하다가 틀리는 것보다 낫다”는 원칙과 “고대사를 2, 3천 년 단축시키자”는 과감한 제안으로 고힐강(顧頡剛)의 의고(疑古) 정신을 고취시켰다.[1], [5] 그는 고힐강에게 고대 문헌을 비판적으로 검증할 수 있는 방법론적 도구를 제공했다.
양계초(梁啟超): 그의 ‘신사학(新史學)’은 중국(中國) 민족과 영토의 단일성에 대한 신화를 깨뜨리는 개념적 틀을 제공했다. 양계초는 역사를 왕조의 계보가 아닌 민족의 진화 과정으로 파악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이는 훗날 고힐강(顧頡剛)이 전통과의 단절을 선언한 ‘네 가지 타파’의 사상적 기반이 되었다.[6], [7]
왕국유(王國維): 그는 문헌 기록과 새롭게 발굴된 고고학적 증거[갑골문(甲骨文) 등]를 결합하는 ‘이중증거법(二重證據法)’을 개척했다. 이는 가장 오래된 문헌조차도 물질적 증거를 통해 비판적으로 검증되거나 반증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으며, 고힐강(顧頡剛)이 훗날 고고학과 씨름하게 되는 방법론적 모델을 제시했다.[8] 이중증거법은 의고학파의 회의주의에 대한 가장 강력한 실증적 도전이자 보완책이 되었다.
제2절 층루적 고사관(層累地造成的中國古史)
고힐강(顧頡剛)의 가장 핵심적인 명제는 ‘층루적(層累的)으로 조성된 중국 고대사’라는 개념이다. 그는 우리가 아는 고대사가 과거 사실의 정적인 기록이 아니라, 후대의 정치적, 문화적 필요에 따라 끊임없이 덧붙여지고 윤색되며 심지어 발명된 ‘지층’과 같다고 보았다.[5] 이 이론은 두 가지 핵심 원리로 요약된다.
“시대가 뒤로 갈수록 전설 속 고대사의 기간은 더 길어진다”: 고힐강(顧頡剛)은 고전적인 사례를 통해 이를 설명했다. 서주(西周) 시대 사람들에게 가장 오래된 인물은 우(禹) 임금이었지만, 공자(孔子) 시대에는 요(堯)와 순(舜)이 등장했고, 전국시대(戰國時代)에는 황제(黃帝)와 신농(神農)이, 진한(秦漢) 시대 이후에는 반고(盤古)가 태초의 인물로 추가되었다는 것이다.[5] 이는 후대일수록 더 오래고 권위 있는 기원을 창조하려는 경향을 보여준다.
“시대가 뒤로 갈수록 전설 속 중심인물은 더욱 위대해진다”: 순(舜) 임금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공자(孔子) 시대에 그는 단순히 ‘무위(無爲)로 다스린’ 성군이었지만, 《서경(尙書)》 <요전(堯典)>에서는 ‘가정을 다스린 후 나라를 다스린’ 성인이 되었고, 맹자(孟子) 시대에 이르면 효(孝)의 화신으로 변모한다.[5] 이처럼 각 시대는 자신들의 핵심 가치를 과거의 인물에게 투영하여 그를 이상화했다.
이러한 관점은 역사 연구의 대상을 근본적으로 전환시켰다. 역사학의 과제는 더 이상 요순(堯舜)의 ‘실제’ 이야기를 찾는 것이 아니라, 요순(堯舜)에 대한 이야기가 어떻게 그리고 왜 시대에 따라 변해왔는지를 이해하는 것이 되었다. 문헌 자체가 그 문헌을 생산한 시대의 역사적 산물이 된 것이다. 이는 역사를 암기해야 할 사실의 집합에서 분석해야 할 서사 구성의 동적인 과정으로 바꾸어 놓았다. 고힐강(顧頡剛)이 종종 단 하나의 ‘진실(眞)’을 확립하는 것보다 ‘이야기의 변화 과정(流變)’에 더 큰 관심을 보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의 방법론은 역사 서술의 목표를 단순한 사실 검증에서, 사회가 어떻게 과거를 구성하는지에 대한 해석적 분석으로 격상시켰다.[5]
제3절 고전을 읽는 새로운 방법
고힐강(顧頡剛)은 경전(經典)의 신성한 권위를 거부하고, 이를 비판적 분석의 대상으로 삼았다. 그는 경전이 숭배의 대상이 아니라 모순과 편견으로 가득 찬 역사 사료로 다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했다.[5] 그의 방법론은 다음과 같은 특징을 가진다.
비교 문헌 분석: 그는 동일하거나 다른 시기의 여러 문헌을 비교하여 모순점을 찾아냈다. 예를 들어, 그는 비교적 소박한 역사적 사실을 담고 있는 《시경(詩經)》을 후대에 훨씬 더 상세하고 체계적으로 서술된, 따라서 조작의 혐의가 짙은 《서경(尙書)》이나 사마천(司馬遷)의 《사기(史記)》와 비교하여 후대 기록의 신빙성에 의문을 제기했다.[5]
민속과 신화의 사료화: 그는 민간 설화, 대중극, 신화를 단순한 허구가 아닌, 당대 민중의 상상력과 더 정형화된 ‘역사’가 구성되는 원재료를 엿볼 수 있는 창으로 보았다. 맹강녀(孟姜女) 설화의 변천 과정을 분석한 것은 그의 이러한 방법론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이다.[8], [6]
제4절 전통과의 네 가지 단절
고힐강(顧頡剛)의 비판적 프로젝트는 단순한 학문적 유희가 아니었다. 그것은 전통적인 유교 국가와 그 이데올로기를 뒷받침하는 지적 기둥에 대한 직접적인 공격이었다. 단일 민족, 통일 영토, 황금시대라는 신화를 해체함으로써, 그는 당대 지식인들이 중국(中國)의 발전을 가로막고 있다고 느꼈던 제국적 통치와 문화적 쇼비니즘의 정당성 자체를 허물고자 했다. 이는 ‘고사변(古史辨)’ 운동이 가진 깊은 정치적 성격을 드러낸다. 그것은 새로운 근대 중국(中國)을 창조하기 위한 5.4 운동의 광범위한 프로젝트, 즉 ‘모든 가치의 재평가’의 일부였다. 고힐강(顧頡剛)의 작업은 과거를 다시 쓰는 것만큼이나 새로운 미래를 창조하는 것에 관한 것이었다.[1], [2] 그의 비판적 프로젝트는 전통적 역사관의 지적 기반을 해체하기 위해 설계된 네 개의 기둥 위에 서 있다.[6], [2]
민족 일원론 타파: 황제(黃帝)의 후손인 화하족(華夏族)이라는 단일 민족 개념은 문화적으로 다양한 집단을 통합하기 위해 후대에 만들어진 구성물이라고 주장했다. 이는 전통적인 중화중심주의(中華中心主義)에 대한 정면 도전이었다.[6]
영토 통일론 타파: 통일된 ‘중국(中國)’이라는 개념을 고대사에 시대착오적으로 투영하는 것을 비판했다. 그는 고대 중국(中國)이 경쟁하는 여러 국가와 문화의 모자이크였으며, 광대하고 통일된 제국이라는 관념은 후대의 발전이라고 보았다.[6], [9]
고대사 인물화 관념 타파: 많은 ‘역사적’ 인물들이 본래는 신, 정령, 혹은 토템 동물이었으나 후대에 ‘인간화’되고 성군이나 현신(賢臣)으로 역사화되었다고 주장했다. 우(禹) 임금이 ‘산천의 신’에서 인간 황제로 진화한 것이 핵심 사례이다.[1], [5]
고대 황금시대론 타파: 그는 진화론적 사관을 적용하여, 요순(堯舜) 시대의 황금시대로부터 역사가 퇴보했다는 유교적 이상을 거부했다. 대신 역사는 진보하고 발전한다는 관점을 제시했다.[1]
제2부 맥국(貊國) 사례: 지리적 재평가
제1절 핵심 주장과 그 의의
고힐강(顧頡剛)의 여러 주장 중에서도, 《시경(詩經)》에 언급된 맥국(貊國)의 위치를 전통적인 동북 지역(만주(滿洲))이 아닌 지금의 산서성(山西省) 북부로 비정한 것은 그의 학문적 방법론을 가장 잘 보여주는 사례이다.[3] 이는 맥족(貊族)을 ‘동이(東夷)’의 일원으로 간주해 온 수백 년간의 주석 전통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급진적인 주장이었으며,[10] ‘통일된 영토’라는 신화를 깨뜨리려는 그의 원칙이 구체적으로 적용된 결과였다.
제2절 핵심 증거: 《시경(詩經)》의 해체
고힐강(顧頡剛)의 논증은 가장 오래된 문헌인 《시경(詩經)》에 대한 철저한 재해석에서 출발한다. 그는 후대의 모든 주석과 지리적 전통보다 서주(西周) 시대 문헌인 《시경(詩經)》에 내재된 지리 정보를 절대적으로 우선시한다. 그는 후대의 주석가들이 고대 산서성(山西省)의 지리에 익숙하지 않았기 때문에, 자신들에게 더 친숙한 ‘오랑캐’의 땅인 동북 지역으로 맥족(貊族)의 위치를 시대착오적으로 투영했다고 암묵적으로 주장하는 것이다. 이는 그의 방법론이 가진 힘과 잠재적 위험을 동시에 보여준다. 이 방법론은 역사를 급진적으로 재해석할 수 있게 하지만, 어떤 문헌이 ‘가장 오래된 지층’을 대표하는지에 대한 역사학자의 비판적 판단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2.1. <한혁(韓奕)> 편의 문헌 분석
핵심적인 구절은 <대아(大雅)·한혁(韓奕)>에 나오는 “왕이 한후(韓侯)에게 그 추(追)와 맥(貊)을 하사하시니, 북국(北國)을 맡아 그 우두머리가 되게 하셨다”라는 부분이다.[11] 고힐강(顧頡剛)은 이 구절을 먼 땅을 하사한 것이 아니라, 한후(韓侯)의 봉지(封地) 근처에 있는 북방의 여러 나라들을 다스리라는 책무를 부여한 것으로 해석했다. 즉, 한후(韓侯)의 위치가 곧 맥국(貊國)의 위치를 결정한다는 것이 그의 논증의 핵심이다.
2.2. 한후(韓侯) 봉지의 위치
고힐강(顧頡剛)은 서주(西周) 시대의 한후(韓侯) 봉지가 전국(戰國) 시대의 한(韓)나라와는 다른 별개의 실체이며, 그 위치는 산서성(山西省) 분수(汾水) 유역에 있었다고 주장했다.[1] 그는 후대의 지리적 통념이나 정치적 해석을 배제하고, 가장 오래된 문헌인 《시경(詩經)》과 《죽서기년(竹書紀年)》에 나타난 기록을 통해 이를 논증했다.[1] 고힐강(顧頡剛)의 이러한 비정은 그의 ‘층루적(層累的)으로 조성된 중국 고대사’라는 핵심 명제에 기반한다. 그는 고대사가 후대의 필요에 따라 덧붙여지고 윤색되었다고 보았으므로, 가장 이른 시기의 문헌에 내재된 지리 정보를 절대적으로 우선시했다.[5]
《시경(詩經)》 <한혁(韓奕)>에 나타난 한후 봉지의 단서
고힐강(顧頡剛)은 《시경(詩經)》 <대아(大雅)·한혁(韓奕)> 편의 여러 구절에서 한후(韓侯) 봉지의 위치를 추론할 수 있는 중요한 단서들을 포착했다.
첫째, <한혁(韓奕)>에는 한후(韓侯)가 주(周)나라 여왕(厲王)의 조카와 혼인하여 주(周) 왕실의 사위가 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원문: 韓侯取妻, 汾王之甥, 蹶父之子.[12]
한글: 한후(韓侯)가 아내를 맞이하니, 분왕(汾王)의 생질이요, 궤보(蹶父)의 딸이다.
여기서 ‘분왕(汾王)’은 주(周) 여왕(厲王)을 지칭하는데, 《죽서기년(竹書紀年)》에 따르면 여왕(厲王)이 포학무도하여 백성들의 반란이 일어나자 분수(汾水)가 흐르는 한후(韓侯)의 땅으로 도망하여 ‘분왕(汾王)’이라는 이름을 얻었다고 한다.[1], [13] 이 기록은 한후(韓侯)의 봉지가 분수(汾水) 유역과 밀접한 관련이 있음을 강력히 암시하며, 고힐강(顧頡剛)이 한후(韓侯) 봉지를 산서성(山西省) 분수(汾水) 유역으로 비정하는 데 결정적인 문헌적 근거가 되었다.[1] 고힐강(顧頡剛)은 ‘고사의 진정한 상황은 알 수 없지만, 전설 속의 가장 초기 상황을 알 수 있다’고 주장했는데,[5] ‘분왕(汾王)’이라는 이름이 ‘분수(汾水)’에서 유래했다는 기록은 그에게 ‘전설 속의 가장 초기 상황’을 파악하는 중요한 단서가 되었다.
둘째, <한혁(韓奕)>에는 한후(韓侯)의 성(城)을 연(燕)나라 병사들이 완성해 주었다는 구절이 있다.
원문: 溥彼韓城, 燕師所完.[12]
한글: 커다란 한성(韓城)은 연(燕)나라 병사들이 완성시켰다.
이 구절은 한후(韓侯)의 봉지가 연(燕)나라와 지리적으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했음을 시사한다. 서주(西周) 시대 연(燕)나라의 봉지는 지금의 북경(北京) 일대에 있었으므로, 한후(韓侯)의 봉지 역시 그와 인접한 북방 지역에 있었을 가능성을 높인다.[14]
셋째, <한혁(韓奕)>에는 한후(韓侯)가 ‘북국(北國)’을 맡아 ‘추(追)’와 ‘맥(貊)’을 거느렸다는 내용이 나온다.
원문: 王錫韓侯, 其追其貊. 奄受北國, 因以其伯.[12]
한글: 왕이 한후(韓侯)에게 그 추(追)와 맥(貊)을 하사하시니, 북국(北國)을 맡아 그 우두머리가 되게 했다.
이 구절은 한후(韓侯)가 주(周) 왕실로부터 특정 비주(非周)계 민족인 맥족(貊族)을 포함한 ‘북국(北國)’을 통치하는 책무를 부여받았음을 명확히 보여준다.[2] 고힐강(顧頡剛)은 한후(韓侯)의 봉지가 산서성(山西省) 남부 분수(汾水) 유역이었으므로, 그가 다스리게 된 ‘북국(北國)’에 속한 맥족(貊族) 역시 그의 봉지 북쪽, 즉 산서성(山西省) 북부에 위치해야 한다고 논증했다.[3] 이는 그의 ‘영토 통일론 타파’ 원칙이 구체적으로 적용된 결과로, 고대 중국(中國)이 단일한 통일 제국이 아니라 다양한 민족과 정치체가 공존하는 모자이크였다는 그의 시각을 반영한다.[2]
고힐강(顧頡剛)의 맥족(貊族) 원거주지 및 이동에 대한 상세 주장
고힐강(顧頡剛)은 맥족(貊族)의 원거주지와 그들의 이동 경로에 대해 구체적인 주장을 펼쳤다. 그는 맥인(貉人)이 본래 병주(并州)와 대국(代國) 사이에 거주했으며, 이후 북쪽으로 옮겨가 동쪽으로 점차 퍼져 예족(穢族)과 섞여 살면서 마침내 예맥(濊貊)이라 불리게 되었다고 보았다.
출전: 《중국강역연혁사(中國疆域沿革史)》 <춘추전국제족분포(春秋戰國諸族分佈)> 제2절 <호맥여북적(胡貉與北狄)>, 46-48쪽.[15]
원문: “貉人本居并州與代國之閒……後北徙東漸,與穢族雜處,遂號濊貊.”
한글: “맥인(貉人)은 본래 병주(并州)와 대국(代國) 사이에 거주했다… 이후 북쪽으로 옮겨가 동쪽으로 점차 퍼져 예족(穢族)과 섞여 살면서 마침내 예맥(濊貊)이라 불리게 되었다.”
그는 병주(并州)와 대(代)의 땅이 곧 맥(貉)의 옛 땅이며, 따라서 연(燕)과 박(亳)이 곧 맥(貉)의 땅이라고 주장했다.
출전: 《고힐강문집(顧頡剛文集)》 제3권 <연국증천지분수유역고(燕國曾遷至汾水流域考)>, 203쪽.
원문: “並州, 代土乃貉之故壤, 故燕亳即貉地”
한글: “병주(并州)와 대(代)의 땅은 곧 맥(貉)의 옛 땅이므로, 연(燕)과 박(亳)은 곧 맥(貉)의 땅이다.”
또한 맥(貉)이 옛 땅을 떠난 후, 동북의 여러 예(濊)는 모두 그들이 변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출전: 《고힐강문집(顧頡剛文集)》 제3권 <연국증천지분수유역고(燕國曾遷至汾水流域考)>, 203쪽.
원문: “貉既去其舊, 東北諸濊皆其所變也.”
한글: “맥(貉)이 이미 그 옛 땅을 떠났으니, 동북의 여러 예(濊)는 모두 그들이 변한 것이다.”
고힐강(顧頡剛)은 《고사변(古史辨)》에서 병주(并州)와 대국(代國)에서 시작하여 “북적(北狄)의 북쪽, 동이(東夷)의 서쪽”으로 맥족(貊族)이 확산된 경위를 도표와 함께 설명하며, 최종적으로 예맥(濊貊)을 형성했다고 명시했다.
출전: 《고사변(古史辨)》 제2책 <담맥족지분포(談貉族之分布)>, 88-89쪽.
원문: (도표와 함께 설명) “北狄之北, 東夷之西” (결론부) “終於形成濊貊”
한글: (도표와 함께) “북적(北狄)의 북쪽, 동이(東夷)의 서쪽”으로 확산된 경위를 설명하며, 결론적으로 “마침내 예맥(濊貊)을 형성했다.”
이러한 고힐강(顧頡剛)의 주장은 맥족(貊族)이 원래 산서성(山西省) 지역(병주(并州)와 대국(代國) 일대)에 기원했으며, 이후 북방과 동방으로 이동하여 예족(穢族)과 섞여 예맥(濊貊)을 형성했다는 그의 지리적 비정의 핵심을 이룬다. 이는 한후(韓侯)의 봉지가 산서성(山西省) 분수(汾水) 유역에 위치하고, 그가 맥족(貊族)을 통치했다는 《시경(詩經)》의 기록과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맥국(貊國)이 산서성(山西省) 북부에 위치했다는 그의 주장을 뒷받침한다.
《죽서기년(竹書紀年)》에 나타난 한후 기록의 활용
고힐강(顧頡剛)은 《죽서기년(竹書紀年)》에 기록된 두 명의 한후(韓侯) 기록을 통해 서주(西周) 시대 한후(韓侯)의 존재를 확인하고, 전국(戰國) 시대 한(韓)나라와의 구별을 강조했다. 《죽서기년(竹書紀年)》에는 주(周)나라 초기 성왕(成王) 때(기원전 11세기) “왕병(王兵)과 연(燕)나라 병사들이 한성(韓城)을 지었다. 왕이 한후에게 (작위를)명하였다”[1]는 기록과, 주(周) 선왕(宣王) 4년[기원전 824]에 “왕이 명하여 궤보(蹶父)를 한(韓)에 보냈다. 한후가 내조하였다”[1]는 기록이 있다. 이 두 기록은 약 270년의 시차가 있어 서로 다른 한후(韓侯) 인물일 가능성을 보여주지만, 한후(韓侯)의 존재와 주(周) 왕실과의 관계를 입증하는 중요한 문헌적 증거가 된다.[1]
전국 시대 한(韓)나라와의 명확한 구별
고힐강(顧頡剛)은 서주(西周) 시대의 ‘한후(韓侯)’와 전국(戰國) 시대의 제후국 ‘한(韓)’나라가 명칭은 같지만, 그 기원, 시기, 성격, 지리적 위치가 전혀 다른 별개의 정치체임을 명확히 했다.[1] 전국 시대의 한나라는 기원전 403년 진(晉)나라가 한(韓), 위(魏), 조(趙) 삼국으로 분열되면서 제후국이 된 것으로, 서주(西周) 시대의 한후(韓侯)보다 약 400~600년 후의 인물이다.[1] 전국 시대 한나라는 주로 산서성(山西省) 남부와 하남성(河南省) 북부를 포함하는 지역에 위치했으며, 초도(初都)는 평양(平陽, 현 산서성 임분(臨汾))이었다.[16] 고힐강(顧頡剛)의 ‘의고(疑古)’ 사상은 이러한 ‘한(韓)’이라는 명칭의 역사적 연속성 속에 숨겨진 ‘단절’을 밝히는 데 기여하며, 동일한 명칭이 다른 시대에 다른 의미로 사용될 수 있음을 인지하고 고대 기록의 다층성을 파악하려 했다.[5]
2.3. 반박하기 어려운 연역
이러한 분석을 통해 고힐강(顧頡剛)은 다음과 같은 논리적 삼단논법을 제시했다.
《시경(詩經)》은 후대의 지리서보다 이른 시기의 문헌이므로 더 신뢰할 만한 사료이다.
<한혁(韓奕)> 편에서 봉지가 산서성(山西省) 남부에 있던 한후(韓侯)는 맥족(貊族)을 포함하는 ‘북국(北國)’의 우두머리(伯)로 임명되었다.
따라서 맥족(貊族)은 한후(韓侯)의 봉지 북쪽에 위치해야만 하며, 이는 곧 산서성(山西省) 북부를 가리킨다.
그의 논증은 하나의 정교한 텍스트 연역의 사슬과 같다. 그 힘은 내적 일관성과 가장 오래된 자료에 대한 우선순위 부여에 있지만, 그 약점 또한 여기에 있다. 이 논증은 ‘분왕(汾王)’과 주(周) 여왕(厲王)을 동일시하는 결정적인 해석에 전적으로 의존한다. 만약 이 연결고리가 다른 방식으로 해석될 수 있다면, 전체 논증은 무너질 수 있다. 이는 그의 “과학적” 방법론이 실제로는 고도로 해석적인 행위임을 보여준다.
제3절 교차 증거와 학제간 연결
3.1. 《산해경(山海經)》의 재해석
《산해경(山海經)》 <해내서경(海內西經)>에는 “맥국은 한수(漢水)의 동북쪽에 있다(貊國在漢水東北)”는 기록이 있다.[17] 전통적인 주석가들은 이를 당연히 현재 호북성(湖北省)의 한수(漢水)로 해석했다. 하지만 고힐강(顧頡剛)의 이론은 이러한 해석에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한다. ‘한수(漢水)’라는 명칭이 고대에는 다른 강, 예를 들어 산서성(山西省)의 분수(汾水)를 지칭했을 가능성이 있으며, 이는 맥국(貊國)의 산서성(山西省) 위치설과 부합한다. 이는 지명이 시대에 따라 이동한다는 ‘지명 이동(地名 移動)’ 개념의 중요성을 부각시킨다.
3.2. 고고학적 고찰: ‘북방식(北方系)’ 청동기
산서성(山西省)에서는 중원(中原)(상(商)/주(周))의 양식과는 뚜렷이 구별되는 북방 초원 문화의 특징을 가진 청동기(무기, 장신구 등) 유물이 다수 발견되었다. 이는 흔히 ‘북방식’ 또는 ‘오르도스식’ 청동기로 불린다.[18], [19], [20] 이러한 물질문화는 상(商)·주(周) 시대에 산서성(山西省) 내에 맥(貊), 융(戎), 적(狄)과 같은 비(非)주(周)계 민족이 존재했음을 보여주는 구체적인 고고학적 증거를 제공한다.[21], [22], [23], [24] 고힐강(顧頡剛)의 이론은 순수하게 문헌 비판에 기초했지만, 이후의 고고학적 발견들은 그의 주장을 위한 그럴듯한 문화적 배경을 제공한다. 고고학은 고힐강의 이론을 직접적으로 증명하지는 않지만, 그의 주장에 역사적 개연성을 더한다. 즉, 고고학적 발견은 산서성(山西省)이 단일한 주(周) 문화권이 아니라 치열한 문화 교류와 혼합이 이루어지던 다문화적 변경이었음을 보여주는 독립적인 물질적 증거를 제시한다. 주(周)의 심장부에서 ‘이민족’의 유물이 발견되었다는 사실은 그곳에 맥족(貊族)과 같은 ‘이민족’이 존재했을 가능성을 훨씬 더 설득력 있게 만든다. 이는 문헌과 유물의 융합, 즉 왕국유(王國維)가 제창한 ‘이중증거법(二重證據法)’이 실제로 작동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고힐강(顧頡剛)의 급진적인 가설은 고고학적 발견물을 해석하는 새로운 틀을 제공했고, 고고학은 다시 그의 문헌적 주장을 뒷받침하는 정황 증거를 제공함으로써 학제간 연구의 힘을 입증했다.
표 1: 고힐강(顧頡剛)의 맥국(貊國) 위치설에 대한 핵심 문헌 증거
| 출전 문헌 | 원문 (한문) | 국문 번역 | 고힐강(顧頡剛)의 해석 및 의의 | 관련 자료 |
| 《시경(詩經)》 <대아(大雅)·한혁(韓奕)> | “王錫韓侯, 其追其貊. 奄受北國, 因以其伯.” | “왕이 한후(韓侯)에게 그 추(追)와 맥(貊)을 하사하시니, 북국(北國)을 맡아 그 우두머리가 되게 했다.” | 논증의 기초가 되는 증거. 고힐강(顧頡剛)은 한후(韓侯)의 봉지가 산서성(山西省) 남부였으므로, 그가 다스리게 된 ‘북국(北國)’에 속한 맥족(貊族) 역시 그의 북쪽, 즉 산서성(山西省) 북부에 위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 [11], [12] |
| 《산해경(山海經)》 <해내서경(海內西經)> | “貊國在漢水東北. 地近於燕, 滅之.” | 맥국은 한수(漢水)의 동북쪽에 있다. 그 땅이 연(燕)나라와 가까워 연나라가 멸망시켰다. | 고힐강(顧頡剛)의 이론은 어떤 ‘한수(漢水)’를 지칭하는지에 대한 재평가를 요구한다. 현대의 호북성(湖北省) 한수(漢水)가 아닌, 산서성(山西省)의 분수(汾水)와 같은 북쪽의 강일 수 있으며, 이는 지명 이동의 가능성을 시사한다. | [17], [25] |
| 《관자(管子)》 <소광편(小匡篇)> | “…敗胡貉…與卑耳之貉…” | “…호(胡)와 맥(貉)을 물리치고… 비이(卑耳)의 맥(貉)과 함께…” | 이 문헌은 ‘비이(卑耳)의 맥(貉)’을 태행산맥(太行山脈) 서쪽에 위치시켜, 산서성(山西省) 위치설과 일치하는 맥락을 제공한다. 그러나 ‘비이(卑耳)’의 정확한 위치 자체는 논쟁의 대상이다. | [26], [27] |
제3부 학술적 논쟁과 지속적인 영향
제1절 경쟁하는 지리: 대안 이론과 반론
고힐강(顧頡剛)의 주장은 즉각적인 반론에 부딪혔으며, 맥국(貊國)의 위치에 대한 논쟁은 오늘날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전통적 동북 위치설: 《삼국지(三國志)》와 같은 후대 사서에 근거하여 맥(貊)과 예(濊)를 동북 만주(滿洲) 및 한반도(韓半島) 지역에 위치시키는 견해는 오랜 기간 학계의 통설이었다.[28], [29]
하남(河南) 위치설: 학자 임운(林沄)은 ‘맥기(貉器)’라는 청동기 명문에 근거하여 새로운 이론을 제시했다. 이 명문에는 주(周) 왕이 ‘맥(貉)의 군주’를 ‘여(呂)’ 땅에 봉했다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임운(林沄)은 여(呂)나라가 다른 문헌을 통해 현재 하남성(河南省) 남양(南陽) 부근에 위치했음이 알려져 있고, 이 지역은 또한 한수(漢水)와 가깝다는 점을 들어 서주(西周) 시대에 하남성(河南省)에 맥국(貊國)이 존재했다는 독자적인 문헌-지리적 논증을 펼쳤다.[3]
임운(林沄)의 주장은 《산해경(山海經)》에 “맥국은 한수(漢水)의 동북쪽에 있다”는 기록과도 연결되는데, 여기서 ‘한수(漢水)’가 지칭하는 강에 대한 해석이 중요하다. 고대 문헌에서 ‘한수(漢水)’는 현재 호북성(湖北省)을 흐르는 한수(漢水) 외에도 여러 강을 지칭했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특히, 서한수(西漢水)는 고대에는 한수(漢水)의 상류로 여겨졌으나, 서한(西漢) 여후(呂后) 2년[기원전 186] 무도(武都) 지역의 대지진으로 인해 서한수(西漢水)가 가릉강(嘉陵江)의 상류로 바뀌면서 고대 한수(漢水)는 두 갈래로 나뉘게 되었다는 학설이 있다.[30] 《상서(尙書)》 <우공(禹貢)>에는 “파총(嶓冢)에서 양수(漾水)를 인도하여 동쪽으로 흘러 한(漢)이 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이 파총산(嶓冢山)은 감숙성(甘肅省) 천수(天水) 남부에도 존재하며 이곳이 서한수(西漢水)의 발원지이다.[31] 따라서 임운(林沄)은 《산해경(山海經)》의 ‘한수’가 현재의 한수(漢水)가 아닌, 당시 하남성(河南省) 남양(南陽) 부근과 지리적으로 연관될 수 있는 다른 고대 한수(漢水)를 지칭했을 가능성을 열어두고 맥국(貊國)의 위치를 비정했다.
이러한 상충되는 증거들은 ‘맥국(貊國)’이라는 존재 자체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산서성(山西省), 하남성(河南省), 동북 지역에 모두 맥족(貊族)의 흔적이 나타나는 것은 이 이론들이 상호 배타적인 것이 아니라, 부분적으로 모두 타당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이 교착 상태를 해결하는 가장 정교한 방법은 고힐강(顧頡剛) 자신의 ‘민족 일원론 타파’ 원칙을 이 문제 자체에 적용하는 것이다. ‘맥(貊)’이라는 용어 자체가 단일하고 통일된 국가를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북방 민족을 가리키는 광범위한 민족명이거나, 시대에 따라 다른 집단을 지칭했을 가능성이 있다. 만약 ‘맥(貊)’을 단일 실체로 가정한다면 이 논쟁은 해결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오히려 해답은 맥국(貊國)의 유일한 위치를 찾는 것이 아니라, ‘맥(貊)’이 고대 북중국에서 유동적이고 광범위하게 퍼져 있던 정체성이었음을 인식하는 것일 수 있다.
표 2: 맥국(貊國)의 위치에 대한 주요 학설 비교 분석
| 학설 | 제시된 위치 | 주요 제창자 | 핵심 문헌 증거 | 주요 고고학 및 기타 증거 | 관련 자료 |
| 산서성설 | 산서성(山西省) 북부 | 고힐강(顧頡剛) | 《시경(詩經)》 <대아(大雅)·한혁(韓奕)>, 《관자(管子)》 | 산서성(山西省) 내 북방식 청동기 분포 | [3], [12] |
| 동북설 (전통적 견해) | 만주(滿洲) / 한반도(韓半島) | 후대 주석가, 일부 현대 학자 | 《삼국지(三國志)》, 《후한서(後漢書)》 | 예맥(濊貊) 민족 및 동북 지역 고고학 문화와의 연관성 | [28], [29] |
| 하남성설 | 하남성(河南省) 남양(南陽) 일대 | 임운(林沄) | ‘맥기(貉器)’ 청동기 명문에 언급된 ‘여(呂)’ 땅, 《산해경(山海經)》의 ‘한수(漢水)’ 기록 | 하남성(河南省) 내 여(呂)나라의 위치, 현대 한수(漢水)와의 근접성 | [3] |
제2절 주장의 지속적인 유산
고힐강(顧頡剛)의 주장이 남긴 가장 중요한 유산은 산서성(山西省)설의 입증 여부가 아니라, 그가 전통적인 정태적 지리학의 패러다임을 영구적으로 깨뜨렸다는 점이다. 그는 역사-지리 연구에서 문헌 비판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도록 학계를 이끌었다. 또한, ‘비정통적’ 문헌과 방법론의 사용을 정당화함으로써 후대 주석의 권위에 도전했고, 학자들이 모든 고전 문헌의 가장 초기 지층을 재검토할 수 있는 문을 열어주었다.
궁극적으로 고힐강(顧頡剛)의 작업이 지닌 가치는 그 결론이 아니라 방법론에 있다. 그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한 해체와 분석의 강력한 도구를 제공했다. 비록 그의 구체적인 결론 중 일부는 논쟁의 여지가 남아있지만, ‘고사변(古史辨)’은 하나의 고정된 결론이 아닌, 끊임없이 질문하고 탐구하는 ‘방법’으로서 그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다.[5]
결론: 교조에서 탐구로
고힐강(顧頡剛)의 역사학은 그의 거시적인 방법론과 맥국(貊國)의 위치에 대한 미시적인 주장이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그의 천재성은 새로운 답을 제시한 데만 있는 것이 아니라, 새롭고 불편한 질문을 던진 데 있다. “우리가 고대사에 대해 안다고 생각하는 것을 어떻게 아는가?”라는 질문을 던짐으로써, 그는 역사학 분야 전체를 변혁시켰다.[1], [5]
결론적으로, 맥국(貊國)에 대한 그의 논증으로 대표되는 고힐강(顧頡剛)의 연구는 역사 연구가 주어진 전통에 대한 믿음의 행위에서, 엄격하고 비판적이며 끊임없이 진행되는 과학적 탐구의 과정으로 전환되는 근본적인 변화를 상징한다. 그의 유산은 고정된 결론의 집합이 아니라, 과거를 의심하고, 질문하며, 재검토하라는 영원한 초대장으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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