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귤화위지(橘化爲枳)의 참 뜻은?
  2. 不法財의 悲劇
  3. 스크린 쿼터 축소와 개방경쟁, 한국 여류바둑기사에게 배워라!
  4. 한국에는 왜 탐정(探偵) 직업이 없을까?
  5. 시장실패의 우화
  6. 규제와 지원의 역설
  7. 왜 법의 지배(法治主義)가 중요한가
  8. 고야의 검은 그림을 보며…
  9. 제4차 산업혁명 시대, 우리는 제대로 준비하고 있는가
  10. 제도 혁신 없이 한국경제의 미래는 없다


 1. 귤화위지(橘化爲枳)의 참 뜻은?[1]

9월은 탱자가 노랗게 익어가는 때이다. 감귤처럼 생긴 탱자는 향기도 좋지만 먹지는 못한다. 식물학적으로는 둘 다 운향과에 속하니 서로 친척 뻘이지만 하나는 식용으로 쓸모가 많고 다른 하나는 식용으로 적합하지 않다.

고대 중국에서는 이 두 가지 열매를 두고, 귤화위지(橘化爲枳)라는 고사성어를 만들었다. ‘강남의 귤을 강북에 옮겨 심으면 탱자가 된다’는 뜻인데 전말은 이렇다. 중국의 춘추 전국시대에 제 나라의 재상인 안영이 초나라에 사신으로 갔다. 그러자 초나라 왕은 제 나라 사람들이 국경을 넘어와 도적질을 많이 한다고 힐책하였다. 이에 안영이 귤화위지에 비유하면서 제 나라에서 태어나 사는 사람 중에는 도둑이 별로 없는데 이 나라에서 도적질을 많이 한다면 이는 제 나라 사람의 문제가 아니라 초나라의 풍토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 아니겠느냐며 반론을 펼쳤다는 것이다.

기후와 토양이 바뀌면 정말로 귤나무에서 탱자가 열릴까? 내가 이 사자성어를 처음 접한 것은 고등학교 다닐 때였다. 그때는 제주도 귤나무를 서울에 옮겨 심어보고 정말로 탱자가 열릴지 알아봐야겠다고 맘먹은 적도 있었다. 말의 참뜻을 몰랐기 때문이다. 귤화위지는 생물학의 문제가 아니라 제도 환경의 차이에 따라 똑같은 사람이라 해도 추구하는 목표와 행동, 선택이 판이하게 달라지는 현상을 비유한다는 것을 늦게야 알았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동식물은 자연환경에 적응적 진화하는데 애를 쓰지만 사람은 자신이 속한 조직과 사회의 제도에 반응하고 이용하려는 속성이 많다. 예컨대 일 잘하는 사람을 제대로 보상하고 해악을 끼친 사람을 제때에 적절하게 제재하며, 귤과 탱자를 혼동하지 않는 조직에서는 누구나 성실하게 일하려는 유인이 있다. 그러나 신상필벌(信賞必罰) 원칙이 흐릿하고, 내가 부린 재주에 다른 사람이 공을 채가는 조직에서는 일보다는 친분 맺기 정치와 비정상적인 잇속을 챙기려는 탱자 족이 득세하기 마련이다. 그리고 탱자가 되고 싶지 않은 대다수 구성원들은 냉소주의에 빠지면서 조직의 파망을 재촉할 것이다.

어느 조직, 어느 사회든 탱자 족과 귤 족 중 누가 우대받느냐에 따라 성패가 갈리고 이 모든 일의 시작은 제도의 경쟁력에서 비롯된다. 국가의 흥망성쇠도 마찬가지이다. 1894년 동학혁명이 일어나기 직전, 영국의 왕립지리학회 최초의 여성멤버였던 이사벨라 버드 비숍은 조선을 방문, 탐사하고는 ‘한국과 이웃 나라들(Korea and Her Neighbors, 1898)’이란 책을 썼다.[2] 이 책에서 비숍은 조선인에 대한 첫 인상이 지저분하고 게으르고 가망 없다고 느꼈음을 숨기지 않는다. 그러나 시베리아에 이주한 조선인들을 만나서 그들이 근면성실하게 일하며 재산을 모으는 것을 보고는 생각을 바꾼다. ‘조선의 농부들은 양반과 관료들의 가혹한 세금과 갈취 등으로 재산이 안전하게 보호되지 않기 때문에 하루 세끼를 겨우 먹을 수 있을 만큼만 경작하고’, 시베리아 정착민들도 ‘그대로 조선에 있었으면 똑같이 근면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게 비숍의 결론이었다.

120년 전 비숍의 관찰은 귤화위지의 영락없는 한반도 사례이다. 생긴 지 2000년이 넘은 고사성어를 아직도 기억하고 인용하는 까닭은 인간과 사회의 근본에 대한 혜안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우리 주변을 돌아봐도 권력형 비리와 부패는 물론, 영리조직의 경영에서도 이 비슷한 사례를 얼마든지 볼 수 있다. 예컨대 잘되는 음식점은 맛만 좋은 게 아니라 누가 주인이고 종업원인지 분간하기 어렵게 다들 열심히 체계적으로 일하는 특징이 있다. 노력과 보상의 연계에 대한 주인과 종업원 사이의 돈독한 신뢰가 남다른 협력과 고객 응대로 표출되고 있음이다. 그러니 이번 추석에 고향에 가서 탱자나무 울타리에 걸려 있는 노란 열매를 혹시라도 보게 되면 한번쯤 자문해보시라: 우리 회사는 탱자가 잘되는 조직인가, 아니면 귤이 잘되는 조직인가? 우리나라는 어떤가?


2. 不法財의 悲劇[3]

시장에서는 거래 상대방 모두에게 이득이 되기 때문에 자발적 교환이 이루어진다. 그런데 거래 쌍방이 수요하고 공급하겠다는 시장 거래를 도덕적인 이유 또는 사회에 미치는 부정적인 파급효과(negative externality)를 고려해서 정부가 개입, 해당 상품의 시장거래를 불법화․금지시키면 어떤 일들이 일어날까?

성매매, 음주, 마약은 이 질문의 답을 궁리해보기에 좋은 대상이다. 이들 산업은 인류의 역사만큼이나 오래되었고 자발적인 공급자와 소비자가 늘 있었지만 정부는 도덕성, 사회적 윤리, 외부 불경제 등의 이유로 이들 상품의 거래를 불법화하여 금지하는 경우가 종종 있어 비교연구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도 지난 2004년 9월 23일 이후 성매매 금지법을 한층 강화해서 시행하고 있기 때문에 위 질문은 우리의 현실과도 무관치 않다.

결론부터 먼저 얘기하면, 이들 상품 거래를 불법화하는 명분이 얼마나 아름답고 고귀한가와는 별도로 정부가 법 집행을 위해서 막대한 세금과 행정력을 쓰는 것에 비해 그리 괄목할 성과를 내기 어렵다는 것이다. 거래자 서로에게 이득이 되는 교환을 불법화하면 거래량은 어느 정도 줄 것이다. 그러나 근절(根絶)과는 거리가 멀고 불법화한 상품의 오염, 지하경제의 융성 등 정책 도입 시 생각을 못했던 부작용이 커지면서 종국에는 엄청난 사회적 비용에 비극적인 종국을 맞기도 한다.

먼저 술의 공급과 소비를 금지한 사례부터 살펴보자. 주지하다시피 미국에서는 1920년에 제18차 헌법 개정을 통해 금주법(禁酒法)을 시행한 바 있다. 이로 인해 밀주거래는 적발과 처벌의 위험성이 높아졌지만 공급이 감소한 만큼 가격이 앙등하여 고위험-고수익의 산업이 되었다. 이에 할리우드 영화 ‘Untouchable’의 ‘알 카포네’처럼 지하경제의 속성에 밝고 ‘별 달기’를 두려워하지 않으며 폭력의 재능으로 무장한 ‘갱단’들이 이 산업에서 독점적 지위를 확보하기 위해 전쟁을 벌이는 통에 강력사건 등의 사회범죄는 계속 늘어만 갔다.

저 유명한 마피아는 禁酒法의 소산이었던 셈이다. 술의 독성도 한층 강화되었고 술 소비 행태도 바뀌었다. 적발될 확률을 낮추고 부가가치도 높일 겸 지하시장의 공급자들은 부피는 크고 값이 싼 맥주보다는 위스키를 공급하게 되고 소비자 역시 단속을 피하기 위해 ‘좀더 독한 술을 한꺼번에 마시기’를 선호했다. 법집행이 강화될수록 규제(단속)를 회피하려는 인센티브도 커져 소비와 공급의 양 측면에서 술의 도수와 독성도 높아지는 시장적응현상이 벌어졌던 것이다. 그 결과 알코올 중독자는 오히려 禁酒法 이후 크게 증가하게 된다.

이 뿐만 아니다. 지하시장에서 유통되는 술은 지금처럼 알려진 기업이 알려진 상표를 부착한 게 아니고 특정 장소에서 단골 고객에게 반복적인 판매를 하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술의 성분이나 품질에 문제가 있어도 불평을 전달하고 시정을 요청할 수 없었으며, 불법상품인지라 법의 보호를 받을 수도 없었다. 상황이 이러하니 메틸 알코올 등으로 독성만 강화한 가짜 술들이 판 칠 것은 뻔한 이치이다. 그 결과 禁酒法 기간 중 알코올 중독에 의한 사망률이 지금의 30배에 이르고, 1927년 한 해에만 알코올 중독에 의한 사망자가 1만 2천명에, 오염된 술로 인한 사망자와 실명자도 수천 명에 이르게 된다. ‘술 없는 청교도 사회’에 대한 고결한 理想은 폭력의 점철과 사회적 불안, 법 집행에 쏟아 붓는 혈세, 예측치 못한 시장의 반응과 사회적 부작용 등으로 1933년 드디어 막을 내리게 된다.

禁酒法은, 시장의 생리를 이해하지 못하고 名分과 理想을 앞세운 정책은 소기의 효과를 달성하기는커녕 사회적으로 막대한 비용을 초래하고 만다는 교훈을 남기고 사라진 대표적 사례이다. 그렇다면 마약은 어떤가? 술과 마약은 경우가 똑같다 할 수 없지만 몇 가지 비슷한 점이 있다. 1914년 이전, 미국에서 코카인은 금지된 약물이 아니었으며, 오늘날의 커피처럼 물에 희석해 마시는 경우가 흔하였다고 한다. 이 역시 불법화되면서 범죄집단의 황금알 낳는 산업으로 접수되고, 이들은 운송 중에 단속을 피할 목적으로 ‘부피는 적고 독성은 강하게’ 하는 방향으로 기술을 진보시켰다. 소비자 역시 적발 확률을 낮추기 위해 ‘한번에 뿅 가는’ 방향으로 소비행태를 바꾸어 금지 이전에는 물에 혼합해서 사용하던 것을 코로 흡입하고 혈관에 직접 주사하는 방식으로 전환하였다.

그 결과, 술 중독의 경우에서처럼 마약중독은 오히려 증가하고 이들에 대한 치료 및 재활비용 지원 등 정부예산지출도 함께 증가하게 된다. 마약을 불법화한 까닭은 범죄 등 사회문제를 우려한 때문일 터이다. 그러나 독일과 미국에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마약 중독자 중 20%만이 합법적인 소득으로 마약을 구입할 뿐이며 나머지는 마약거래에 종사하거나 강도, 매춘 등의 불법행위를 통해 마약구입 자금을 조달한다 하니 사회범죄에 미친 영향도 플러스인지 마이너스인지 모르는 상황이 되었다. 최근 네덜란드, 스위스, 영국 등 일부 국가에서 중독성이 약한 약물의 거래를 허용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음도 이러한 부작용과 무관치 않을 터이다.

끝으로 성매매의 불법화는 어떨까? 성매매 수급량은 분명 감소하겠지만 지하조직에 의한 성매매 시장의 접수, 이들 조직에 의한 성매매 종사자의 인권유린, 매매 성의 오염 즉 AIDS 등의 성병 확산은 일어나지 않을까? 좀더 지켜보아야 하겠지만 아마 그럴 것이다. 성매매가 허용되고 관리되는 미국의 네바다 주에서는 등록된 종사자 중 AIDS 양성 반응자가 하나도 없었으나 성매매가 금지되고 따라서 관리되지 않는 뉴저지 주의 Newark에서는 52%가 양성반응을 보였다 한다.

우리의 성매매금지법 역시 필경 AIDS 등 치명적인 성병을 사회적으로 더욱 확산시키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우려되는 대목이다. 공유재(共有財)의 경우, 재산권 설정의 문제로 남용ㆍ남획의 비극이 발생하는데 반해 불법재(不法財)는 자발적 거래 유인이 있는 재화와 서비스를 불법화함으로써 해당 상품의 품질을 오염시키고 2차, 3차의 사회문제를 유발하게 되는 셈이다. 그렇다고 필자가 이들 상품 거래를 전면 자유화하자고 주장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필자가 강조하는 바는, ‘성(性), 마약도 결국 시장의 수요와 공급의 원리가 적용되는 경제문제’ 라는 관점에서 접근해야 하며, 뜻이 좋다 하여 규제에 따른 직간접 비용을 고려하지 않고 마구 밀어붙이기 보다는 비용 대비 효과를 감안하여 합리적인 규제방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3. 스크린 쿼터 축소와 개방경쟁, 한국 여류바둑기사에게 배워라![4]

정부가 스크린 쿼터(한국영화 의무상영일수)를 연간 146일에서 73일로 축소하기로 어렵사리 확정했다. 정부는 3월 7일 총리 주재 하에 열린 국무회의에서 스크린쿼터를 연간 상영일수의 40% 이상에서 20% 이상으로 줄이는 내용의 영화진흥법 시행령 개정안을 의결했으며, 이 개정안은 7월 1일부터 시행될 예정이다.

영화인 대다수가 스크린 쿼터의 현행 유지를 주장하며 1인 시위 릴레이를 비롯하여 여러 이벤트를 벌였지만 어차피 안될 일이었다. 쿼터 축소는 미국투자를 유치하여 외환위기를 극복하겠다며 오래 전에 한국이 먼저 미국에 제의한 한미투자협정의 선결과제였다. 다만 영화인들의 거센 반발에 쿼터 축소도 한미투자협정도 진전되지 못하고 있었을 뿐이었다. 그러다 금년에 한미 FTA 협상이 급물살을 타고, 쿼터 제도의 향방이 우리의 경제개방 의지를 가늠하는 시금석으로 치환 인식되면서 상황이 급변하였다. 한국은 성공적인 대외거래를 통해 이만큼 발전해 왔고, 이제 와서 자급자족, 고립무원의 폐쇄체제로 회귀할 수 없는 일이므로 개방경쟁의 수용은 선택이 아닌 필수이다. 이에 쿼터 제도가 한국의 개방의지를 가늠하는 척도의 문제로 환원된 한, 규제 완화는 시기와 속도의 문제일 뿐 어쩔 수 없는 귀결이라 하겠다.

시기적으로도 정부가 쿼터제한 완화를 더 미뤄야 할 이유도 없다. 21세기 들어설 즈음부터 국산 영화는 매년 대박 행진을 거듭하였고 그 결과 국산영화의 시장 점유율은 2001년 처음으로 50%를 넘어선 후 2004년에 거의 60%에 육박했으며, 작년 말에 출시된 영화 ‘왕의 남자’는 금년에도 계속 흥행을 기록 중이다. 토종 영화의 경쟁력이 향상되고 시장점유율이 영화진흥법 시행령에 규정된 40%를 크게 상회하다 보니 쿼터 규제는 오히려 무색하게 되었다. 시장점유율이 쿼터를 크게 그리고 지속적으로 넘어섰음에도 불구하고 기존의 제도를 계속 유지하자는 것은 영화 소비자를 만족시키기 위한 경쟁을 피하고 그 대신 정부의 보호막에 안주하여 독점적 지대를 향유하겠다는 것처럼 들리기 때문이다.

일부에서는 쿼터 제도가 있었기 때문에 대박 흥행이 가능했다 한다. 그러나 이는 쿼터 유지를 의도한 나머지 한국영화산업의 체질 개선과 영화의 품질 향상을 위해 노력하고 오늘날의 성과를 만든 영화계 종사자들에게 응당 돌려야 할 공(功)을 앗아가는 주장이다. 또한 비용과 수고를 아끼지 않고 극장에 간 영화 소비자의 합리적인 선택마저 쿼터 탓으로 돌리는 것은 관객에 대한 비례(非禮)이기도 하다.

인간은 누구나 타인의 기득권을 공격하고 자기 권리를 확장하려는 성향이 있다. 그 반대의 경우가 발생하면 위기의식이 발동하고 제도변화에 당연히 저항하게 된다. 마찬가지 원리로 영화계 종사자들에게 스크린 쿼터의 축소는 기득권의 축소로 인식될 터이고 상실감도 적지 않을 터이다. 그러나 개방경쟁은 어차피 피할 수 없는 파고(波高)이다. 정부의 보호 손길에 기대지 않고 개방경쟁 환경에 의연하게 대처, 극복하겠다고 했어야 했다. 이는 다른 산업계도 마찬가지이다. 나중에 한미 FTA가 체결되면, 산업별·기업별로 그 파장과 명암이 다를 것이다. 정부는 가급적이면 우리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협상을 해가겠지만 기업 입장에서는 차라리 전면 개방경쟁을 각오하고 스스로 경쟁력을 높이는 일에 진력해야 한다.

이와 관련, 쿼터 축소가 이미 확정된 영화산업은 물론이고 다가올 한미 FTA 파고에 영향 받게 될 모든 산업계는 우리나라 여류바둑기사의 도전정신과 성공사례를 교훈삼아 배워야 할 게 있다. 잘 알다시피 한국의 바둑은 조훈현, 이창호 등 걸출한 스타들을 중심으로 이미 오래 전 세계 최강의 반열에 올라 있다. 그러나 몇 년 전 만해도 불모지나 다름없었던 한국의 여류바둑계가 최근에는 일본바둑을 이기고 중국과 상대할 정도의 비약적인 발전을 이룬 사실은 잘 모르는 이가 많다.

한국여류바둑이 짧은 시간에 압축적인 발전을 이룰 수 있었던 원인은 무엇인가. 그것은 스스로 개방경쟁을 선택한 한국 여류바둑기사의 당찬 도전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남자 프로기사도 쉬이 이기는 루이나이웨이(芮內偉)를 불러들여 싸우고 지면서 다시 도전하고 이기는 방법을 배웠기 때문이다. 루이 9단이 중국을 떠나 처음 노크한 것은 일본기원이다. 그러나 일본의 여류기사들은 루이 9단이 일본에서 활동하게 되면 일본여성대회를 싹쓸이 할 거라며 절대 반대했다 한다. 시간이 흘러 루이 9단이 한국을 노크했을 때, 우리의 젊은 여류기사들은 일본에서와 달리 뜻밖의 당찬 반응을 보였다. ‘우리는 루이 9단을 환영한다. 최강의 그녀에게 배워 그녀를 이기고 싶다’라고. 그리고 1999년 루이가 한국에 온 후 도전은 계속되었고 2003년, 우리의 여류기사들은 드디어 루이를 이기고 우승하기 시작하였다.

둘 간의 결승전은 이번으로 무려 14번째. 지난 달 11기 여류명인전 방어를 포함해 루이가 11회, 조혜연이 2회씩 우승을 했다. 통산 전적도 31승16패로 루이가 2배 앞서 있다. 하지만 학업을 병행 중인 조혜연(고려대 영문과)의 도전은 멈추지 않을 태세다. 루이는 1999년 한국 정착 이후 국내 타이틀만 18개를 휩쓸었고 현재 여류 전관(3관)왕으로 군림 중이다. 여류국수전서도 루이가 6번 우승, 두 차례 정상에 섰던 조혜연을 압도하고 있다. 이방인 출신 철혈 여제(女帝)와 독재에 맞선 여대생의 항쟁 같은 모양새가 끝없이 반복되고 있다.[5]

개방경쟁을 한다 해서 토종 자본, 국내산업이 외국의 거대자본에 지는 건 아니다. 외국 문화에 노출되었다 하여 우리 문화가 소멸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월마트와 까르푸, 외국계 대형 할인점이 들어온 이후 할인점 시장규모는 급성장했고 이마트 등 국내 할인업체의 경쟁력은 더욱 향상되었다. 여류바둑계도 개방경쟁을 자청함으로써 경쟁력 향상은 물론 여류 기전의 규모를 늘리는 효과를 거두었다. 스크린 쿼터가 축소되면 국내영화는 할리우드 거대자본 영화와 대등하게 경쟁하기 어렵지 않으냐고 걱정하는 이도 많지만 영화산업의 부가가치가 투입량에 비례하는 건 결코 아니다. 한국 여류기사의 사례에서처럼 개방경쟁을 회피하려고 하기보다는 적극 대처함으로써 우리의 영화 및 관련 산업도 시장규모를 키우고 경쟁력을 더욱 향상시킬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해본다.[6]


4. 한국에는 왜 탐정(探偵) 직업이 없을까?[7]

추석 연휴 기간이던 지난 9월 13일, KBS에서 특집영화로 <조선 명탐정: 각시투구꽃의 비밀>을 방영했다. 조선시대에 웬 탐정(探偵)? 궁금해서 열심히 봤는데 영화 속 주인공은 내가 기대했던 ‘탐정’이 아니라 ‘특별수사 공무원’이었다. 내가 아는 탐정은 영국의 추리작가 코난 도일(Conan Doyle, 1859~1930)이 만든 셜록 홈스가 대표적이다.

코난 도일의 추리소설을 읽으며 막연히 ‘탐정’이 되는 꿈을 꾼 적도 있다. 어린 나에게 홈스는 민간인 신분이지만 경찰 공권력이 전전긍긍하며 해결하지 못하는 복잡한 사건을 쾌도난마(快刀亂麻)하는 영웅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영화 <조선명탐정>의 주인공은 민간 탐정이 아니었다. 왕의 특명을 받아 사건의 내막을 은밀하게 파헤치는 ‘특별수사관’ 쯤이었니, 나는 요즘 말로 제목에 ‘낚인 셈’이다. 불행하게도 한국에서는 결코 셜록 홈스와 같은 명탐정이 생길 수 없다. 셜록 홈스 뿐만 아니라 일본의 애니메이션 영화 <명탐정 코난>, 아가사 크리스티(Agatha Cristie)의 추리소설 등을 보고 스스로 명탐정의 꿈을 꾸는 사람들이 있겠지만 제도적으로 불가능한 곳이 한국이다. OECD 국가 중에 거의 우리나라만이 탐정이라는 직업을 인정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탐정이라는 명칭마저도 법으로 금지하고 있다고 한다. 반면에 미국에서는 탐정으로 활동하는 민간조사관이 5만 2천명이고, 영국에서는 1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탐정 직업을 갖고 있고, 독일과 프랑스에서는 약 4천명이 탐정으로 활동하고 있다고 하며, 일본에서도 종사자 수는 알 수 없지만 민간조사업체가 약 3900개에 이른다. 이처럼 다른 나라에서는 탐정이 하나의 직업군으로 어엿이 자리 잡고 있다. 이와 달리, 탐정 직업이 불법인 우리나라에서 탐정을 소재로 하는 영화나 소설이 인기를 끄는 게 신기하다.그렇다고 우리나라에서 탐정 서비스의 수요가 적은 게 아니다. 극장 관객 744만 명을 끌어들여 2011년 최고 흥행 영화의 반열에 올랐다는 <써니>에서 주인공은 오래 전의 여고 동창생을 찾기 위해 불법인 줄 알면서도 흥신소를 이용하는 장면이 있다. 일종의 암시장 거래인 셈이다. 당연히 이런 거래는 법적으로 보호받지 못하며, 의뢰자나 의뢰 대상자의 사생활 침해와 개인정보의 악용 가능성에 노출되기 마련이다.

약(藥)을 구하려다 독(毒)을 얻는 사례가 자주 발생하는데도 사람들이 흥신소나 심부름센터를 찾는 이유는 경찰 행정 서비스에 태생적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경찰 행정은 공익을 앞세우고 보편적 서비스를 지향하기 때문에 국민 개개인의 니즈(needs)에 맞는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하는데 한계가 있음이다. 우리가 국가의 일원으로 소속되어 정부의 공권력을 인정하고 세금을 납부하는 까닭은 내외부의 위협으로부터 생명과 재산을 보호받고, 개개인의 행복을 추구할 수 있는 안전한 환경을 보장받기 위함이다. 따라서 국방(國防)과 치안(治安)은 국민으로부터 공권력을 위임받은 정부가 모든 국민에게 제공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필수 서비스이다. 여기서 국방은 논외로 하고 치안 서비스만 보면, 문제는 사람마다 처해있는 상황이 다른 탓에 필요로 하는 치안 서비스의 양(量)과 질(質)이 다르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미아 또는 실종자를 찾는 사람이나 억울하게 사건에 휘말려 결백을 입증해야 하는 사람의 경우, 경찰 수사 서비스는 속도나 전담시간 등에서 태부족으로 느끼기 마련이다.이렇게 정부가 필요한 서비스를 제 때에 충분히 공급하지 못하는 경우, 그 부족분을 민간시장에서 자유롭게 구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것은 어찌 보면 정부의 당연한 의무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경비업법’을 통해 민간경비업무는 인정하면서도 탐정과 같은 민간조사업무는 인정하지 않고 있는 게 현실이다. 이제라도 민간조사업무를 합법화해야 한다. 불허한다고 해서 현실적인 수요가 없는 것도 아니니 지하시장 거래를 양지로 끌어 올려야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1년에 약 3000건의 미아(迷兒) 사건이 발생한다. 미아를 포함한 실종 사건이 매년 6만 건 내외 발생하고 있으나 경찰만으로는 해결이 쉽지 않고 미제(未濟) 사건도 쌓여가고 있다. 실종자 데이터베이스(DB)의 문제, 담당 수사관의 주기적인 부서 이동 등 행정시스템에도 문제가 있겠지만 공익침해 사건을 우선하는 경찰행정의 특성상 실종자 가족들의 애타는 속을 달랠 수 있을 만큼의 시원한 서비스를 공급할 수 없다. 공적 서비스의 부족을 시장적 해법으로 보완해야 하는 이유이다. 민간조사제도는 허용되지 않고 공적 서비스는 태부족하다보니 잃어버린 아이를 부모가 직접 나서 찾겠다고 직업도 버리고 가정은 풍비박산된 채 전국을 헤매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된다. 그리고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안타까움을 넘어 정부의 ‘제도 실패’에 분노마저 느끼게 된다.어느 연구에 따르면 이렇게 실종아동 1명을 찾는데 들어가는 사회적 손실비용이 5억 7천만 원에 이른다고 한다. 사회적 손실비용도 줄이고 실종자 수색의 효과를 높이기 위해서라도 조사에 전문 역량이 있는 사람들에게 사건을 의뢰할 수 있도록 민간탐정제도를 조속히 도입하기를 거듭 촉구한다. 그렇게 하면 다른 나라의 사례에서 보듯이 새로운 산업, 일자리가 창출되는 부수효과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모든 관건은 제도 도입에 책임이 있는 국회에 달려 있다. 이 문제는 이미 1999년부터 논의되어 왔던 사안이고, 18대 국회에서도 관련 법안이 행정안전위원회에서 계류 중이다. 그러나 법무부는 관련 제도를 꼭 도입해야 한다면 경찰청이나 행정안전부가 아니라 법무부 소관으로 해야 한다 하고, 변협은 변호사 시장 잠식을 우려하면서 민간조사업을 변호사의 업무로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등 국민의 필요와는 무관한 논쟁을 일으키며 법안심의를 지연시키고 있다. 그러는 사이에 미제(未濟)사건은 늘어나고, <살인의 추억>(2003), <그 놈 목소리>(2007), <아이들>(2011)과 같은 불행한 영화의 리스트도 늘어나고 있다.


5. 시장실패의 우화[8]

등대와 꿀벌. 전혀 관련이 없는 듯한 이 둘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경제학에서 ‘시장의 실패’를 상징하는 소재로 많이 인용된다는 점이 공통적이다. 정부가 왜 시장에 개입해야 하고, 시장을 대신해야 하는지를 주장할 때 등대와 꿀벌이 강력한 설득의 도구로 활용되기도 한다.

시장경제는 애덤 스미스에 의하면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자원이 적재적소에 효율적으로 배분되는 시스템이다. 보이지 않는 손은 시장가격을 의미한다. 가격에는 우리 모두가 의사결정을 하는 데 필요한 정보가 집약돼 있다. 가격이 생각보다 비싸면 사려는 사람은 줄고 만들어 팔려는 사람은 늘어난다. 가격이 생각보다 싸면 수요량은 늘고 공급량은 준다.

정부를 포함한 누군가의 강제와 지시, 인위적 조정 없이도 가격의 신호에 따라 수요량과 공급량, 생산과 소비가 조화를 이루며 자원 배분이 최적화되는 게 시장경제다. 그런데 현실에서는 시장의 자원 배분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 이를 시장실패라 한다. 정부규제를 논할 때면 어김없이 등장하는 개념이다. 문제는 불완전과 비효율을 분간하지 않고 시장실패 개념을 오남용하면서 정부규제를 촉구하거나 선호하는 경향이 아주 크다는 것이다. 시장실패가 있다면 다른 쪽에는 정부실패가 있다. 하지만 후자는 고려하지 않은 채 ‘시장실패=정부규제’를 당연시하는 사고가 입법부 행정부 심지어 학계에서도 횡행하고 있다.

시장실패 개념의 오남용이 계속되면 정부는 갈수록 팽창하고 시장은 위축된다. 오남용의 발단은 시장실패에 대한 오해에서 시작된다. 시장실패는 겉보기와 달리 이해하기 쉽지 않은 개념이다. 경제학적으로는 어떤 산업에서 공공재, 무임승차, 외부효과, 도덕적 해이 등의 특성이 존재할 때 시장실패의 개연성이 있다고 본다.이 중 공공재는 소비에서의 비(非)배제성과 비경합성을 특징으로 하는 재화 또는 서비스를 의미한다. 부정확한 이해는 오해로 이어진다. 가장 흔한 경우가 공공재를 정부가 생산 소비 공급하는 것으로 잘못 인식하는 경우다. 예를 들면 어느 단체에서 중·고교생에게 올바른 경제교육을 시켜야 한다면서 경제교육서를 발간했다. 그런데 여기에서조차 공공재를 ‘정부가 사용하기 위해 생산한 재화와 서비스’로 설명하고 있다. 어느 정치학 사전에서는 공공재를 ‘정부의 재정으로 공급된 재화나 서비스’로 풀이하고 있다.둘 다 비슷한 내용이고, 명백한 오류다. 정부지출 중에 공공재와 관련이 있는 것은 국방, 치안과 같은 일부분에 국한될 뿐이다. 그 밖의 예산은 대부분 경쟁적인 시장에서 지출되며 시장실패나 공공재와는 무관하다. 정부가 생산, 공급하는 것들을 모두 공공재로 보는 것은 정부의 모든 시장개입을 시장실패 문제의 시정을 위한 행위로 인식하는 것과 같다. 따라서 공공재, 시장실패에 대한 인식 오류는 시장경제에는 치명적인 독소가 된다. 현존하는 규제도 그 내용을 뜯어보면 시장실패와는 무관하게 어떤 사건이나 정치적 계기에서 비롯된 게 대부분이다. 예를 들어 단말기유통구조개선법, 중소기업 적합업종 지정제도는 사업자 간 경쟁을 제한하는 규제 내용을 담고 있다. 경쟁을 제한하고, 그 결과 소비자 복지를 침해하는 규제가 시장실패 시정 목적에서 나왔다고 믿는 이는 없을 것이다. 시장실패에 대한 환상이 널리 확산되는 이면에는 등대, 꿀벌의 우화도 큰 역할을 하고 있다. 등대 이야기는 이렇다. 등대의 불빛은 주변 선박이 야간에도 안전하게 항해하는 데 아주 긴요하다. 그런데 등대 불빛은 주변의 모든 배가 이용할 수 있고 어느 배가 이용했다 해서 다른 배가 이용하는 불빛의 양이 줄지도 않으며, 또 넓은 바다에서 그 불빛을 이용하지 못하게 할 수도 없다. 등대는 소비의 비경합성과 비배제성이 결합된, 말 그대로 공공재인 것이다. 상황이 이러니 배 주인은 받는 혜택에 상응하는 비용을 지급하기보다는 가급적이면 공짜로 이용(무임승차)하려 한다. 이런 문제 때문에 시장에 맡겨두면 등대가 건설·운영될 수 없고, 정부가 세금으로 등대를 세우고 운영해야 한다는 것이 등대 우화의 줄거리다. 등대 우화는 폴 새뮤얼슨의 1970년대 경제학원론에 소개되면서 유명해졌다. 재정학에서는 등대 우화에 빗대 시장실패와 공공재를 설명하는 게 정석이 됐을 정도다. 그러나 등대 우화가 상징하는 만큼 역사적 사실에 부합하는지는 의문이다. 영국의 등대 역사에 관한 논문에서 로널드 코스는 1820년께 영국 등대의 약 4분의 3을 민간이 건설해 운영하고 매매와 상속까지 했다고 밝혔다. 나중에는 트리니트 하우스라는 민간회사가 등대산업 독점권을 취득해 영국 등대의 대부분을 인수해 운영했다. 어찌됐든 영국의 등대 역사는 재산권 설정과 시장거래비용 조건에 따라 다를 수 있지만 민간기업도 얼마든지 공공재를 생산, 공급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꿀벌 우화도 비슷하다. 꽃 피는 계절, 과수원 옆에 벌통을 설치하면 과수원 경작자와 양봉가 모두에게 이익이 된다. 경작자는 원활한 수분을 통해 과일 생산량을 늘릴 수 있고 양봉가는 벌꿀 채취량을 늘릴 수 있다. 서로에게 도움이 되지만 꿀벌의 수분 활동에 가격을 매겨 거래할 수 없기 때문에 시장실패가 발생한다는 게 꿀벌 우화의 요지다. 이 또한 사실과 다르다. 스티븐 청에 의하면 우화와 달리 경작자와 양봉가는 계약을 체결, 거래를 하고 있으며 계약방식도 일반 임대차 계약과 다르지 않다고 한다. 흥미로운 것은 어느 때는 경작자가 수분에 대해 보상하고 또 어느 때는 양봉가가 벌꿀 채취의 대가를 지급한다는 사실이다. 시장은 흔히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똑똑하고 정교하게 작동한다. 그러니 널리 알려진 우화라고 여기에 빗대 시장실패를 함부로 논할 일이 아니다.

정책입안 시 니르바나 성향에서 벗어나 불완전과 비효율을 분간해야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불완전과 비효율을 구분하지 않는 성향이 있다. 시장실패를 바로잡으려는 정부 개입 및 규제가 원래보다 부작용이 더 많은 정부실패로 귀결되는 현상을 뎀셋츠 교수는 ‘니르바나 함정’으로 표현한다. 여기에서 니르바나는 불교의 열반(涅槃)을 의미한다. 유토피아와 마찬가지로 이 땅에 구현할 수 없는 이상향이다. 그리고 니르바나 성향이란 어떤 이상적인 기준이나 규범을 평가의 잣대 삼아 경제 현실을 불완전하다고 하면서 이를 개선하기 위해 정부 개입이 불가피하다며 규제를 촉구하는 성향을 일컫는다.

경제 현실 또는 시장기능이 불완전하다는 이유로 규제를 해야 한다면 세상에 정부규제에서 자유로울 것은 하나도 없을 것이다. 예를 들어 경제학 교과서에 완전경쟁이론을 이상적 기준으로 삼는다면 세상의 시장은 불완전하기 짝이 없다고 할 것이다. 왜냐하면 완전경쟁시장은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이론적 허구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상은 불완전하기 때문에 기회와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시장 또한 불완전하기 때문에 새로운 지식의 발견과 혁신이 끊이지 않고 기업가정신이 보상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세상이 불완전하다고 해서 반드시 비효율적인 것은 아니다. 그래서 시장이 불완전하다, 시장실패가 의심된다는 사실 만으로 규제정책을 설계하면 지금의 상태보다 더 나쁜 상태를 초래할 위험이 크다. 다시 말하면 니르바나 성향은 정부실패 또는 규제실패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사례를 들자면 소비자를 위한다며 보조금 상한규제를 하기 위해 만든 단통법이 이런 경우에 해당할 것이다. 규제 이후의 소비자 후생이 규제 이전만 못하다는 원성이 높고, 단통법 폐지 요구가 거센 것이 그렇게 보는 이유이다.

따라서 이런 문제가 생기지 않게 하려면 정책 입안자는 물론, 학계와 언론의 정책 제안자들도 니르바나 성향의 함정에 빠지지 않도록 항시 조심하고 경계를 해야 할 것이다.


6. 규제와 지원의 역설[9]

올 초 한국은행은 우리나라 연평균 잠재성장률이 3%대 초반(3.0~3.2%)으로 떨어졌다고 발표했다. 경제성장의 엔진이 식어가고 있다는 뜻인데, 여론의 반응은 새삼 놀라워하는 기색이 아니다. 아마도 최근 5년간 연평균 성장률이 3%에도 미치지 못한 것에서 보듯이 저성장의 고통을 이미 겪어왔기 때문일 것이다. 경제 부진이 이어지고 갈수록 활력이 떨어지는 근본적인 원인은 무엇인가. 이해를 돕기 위해 재미가 없어 관중이 외면하는 운동경기가 있다고 하자. 한때 올림픽 종목에서 퇴출될 위기에 처했던 레슬링, 태권도를 떠올릴 수도 있겠다. 축구, 야구, 골프 등 많은 경기가 독자적인 산업으로 발전하는 속에서 어떤 경기는 사양산업 취급을 받는다면 원인은 무엇일까.

관중의 취향 변화를 제외하면 경기의 활성화는 규칙, 판정, 선수의 역량 및 전술 등에 좌우된다. 이 중 가장 중요한 것은 규칙의 내용과 판정의 공정성이다. 선수의 잠재 역량이 출중해도 경기 규칙과 판정이 모호하면 누구도 실력을 발휘할 수 없기 때문이다. 퇴출 위기에 몰렸던 태권도가 올림픽 종목으로 살아남은 것도 공격적인 경기 진행을 위해 채점 방식을 바꾸고, 판정 시비를 막기 위해 전자호구시스템을 도입하는 등 기존의 규칙을 바꾸는 혁신을 해서다. 위의 비유에서 경기 규칙은 규제를 포함한 경제제도에 해당한다. 규제는 경제활동 게임의 규칙이며, 정치적 과정을 통해 국회와 정부에서 정한다. 심판 판정에 해당하는 규칙의 집행과 판정은 행정부와 사법부의 역할이다. 그리고 선수는 주어진 게임 규칙 안에서 활동하는 기업과 국민, 즉 경제인에 해당한다.

따라서 운동경기 비유의 연장선상에서 한국 경제 부진의 근본 원인을 짚어보면 경제활동 게임 규칙에 해당하는 제도, 그 중에서도 특히 규제환경의 문제부터 거론하지 않을 수 없다. 혹자는 기업이 투자를 덜 한다, 국민이 지갑을 덜 연다는 등 경제 부진의 원인으로 선수 탓을 하기도 하나 이는 부차적인 문제다. 그 동안에도 규제는 한국 경제의 재도약을 가로막는 원인으로 꾸준히 지목돼왔다. 김대중 정부 이후 역대 정권이 모두 규제개혁을 강조했고, 현 정부도 대통령이 직접 “규제개혁이라 쓰고 일자리 창출이라고 읽는다”고 한 것은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규제 환경은 여전히 열악하다. 2015년 세계경제포럼이 조사한 글로벌 경쟁력 지수 중에서 기업인이 평가한 정부규제부담 지수는 한국이 140개국 가운데 97위로 사실상 꼴찌 수준이다. 달리 말하면 역대 정권마다 규제개혁의 기치를 내세우고 많이 노력했다고 하지만 산업 현장에서는 별반 개선된 게 없다고 느끼고 있는 것이다. 정부가 그렇게 규제개혁을 강조했는데도 왜 이런 일이 생겼을까. 규제는 경기의 규칙처럼 또는 교통량이 많은 네거리의 신호등처럼 반드시 필요한 측면이 있다. 운동에서의 규칙은 경기를 활기차고 재미있게 하는 데, 그리고 신호등은 교통의 흐름을 원활하게 하는 데 궁극적 목적이 있다. 이와 같은 원리로 경제 규제 또한 시장거래에 수반되는 비용을 낮추고 생산적인 기업가 정신의 발현을 뒷받침하는 것에 목적을 둬야 하는데 우리의 현실은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다는 데 문제가 있다. 한국의 규제는 체계 및 내용에서 생성과정 및 집행단계에 이르기까지 병으로 치면 중증(重症) 상태다. 과거에는 하나의 기술을 중심으로 특정 산업이 발전했다면 지금은 여러 기술이 융·복합하면서 산업 간 경계가 무너지고 새로운 산업이 태동하는 시대다. 그러나 한국의 규제는 ‘단일 기술-단일 산업’의 과거 패러다임에 기초하고 있는 데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법령에 열거하지 않은 신기술이나 신사업 모형을 불법으로 간주해 금지하는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이 방식은 기술과 사업 모형에서 새로운 시도를 원칙적으로 허용하고 예외적으로 금지하는 미국 등의 선진 규제시스템과 비교하면 경제상의 자유와 창의를 저해하는 문제가 심각하다. 미국의 규제는 시장과 기술의 새로운 변화에 열려 있는 시스템이라면 한국은 새로운 가능성에 닫혀 있는 시스템이다. 만약에 한국 정부와 국회가 시장 또는 기술의 변화 추세에 앞서 선제적으로 법령을 올바로 개정할 수 있다면 한국이나 미국의 규제 환경에 실질적 차이는 사라질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이상적인 정부나 국회라 해도 시장의 변화와 기술 진보 속도에 선제적 대응은 고사하고 뒷북치며 따라가기도 버거운 게 현실이다. 이렇게 규제 환경이 열악한 한국에서 미국처럼 혁신기업이 속출하기를 바라는 것은 나무에서 물고기 얻기를 기대하는 것만큼 어려울 것이다. 산업현장에서 규제개혁을 체감하지 못하는 또 다른 이유는 행정부처마다 이유를 내세우며 규제관할권을 분점하는 상태가 근본적으로 시정되지 않기 때문이다. 자동차 튜닝이 그런 경우다. 자동차 5대 생산국의 면모에 걸맞지 않게 튜닝에 부정적이던 정부가 창조경제산업의 일환으로 이를 합법화하자, 국토교통부와 산업통상자원부가 각자 산하에 비슷한 협회를 두고 관할권을 분점한 것은 비근한 사례다. 또 다른 나라에서는 어엿한 직업으로 인정받고 국내에서도 수요가 적지 않은 탐정(민간조사제도)이 한국에서 불법인 까닭이 행정자치부와 법무부가 관할권을 주장하며 대치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여기에 해당한다. 한국 경제가 재도약의 전기를 마련하려면 경제활동 게임의 규칙부터 바꿔야 한다. 그러나 지금까지 봐왔듯이 새로운 기회와 도전에 닫혀 있는 현재의 시스템, 그리고 관할권 중첩 문제를 근본적으로 수술하지 않으면 어떤 규제개혁 노력도 찻잔 속의 태풍에 그칠 공산이 크다. 규제개혁의 추진 주체에 대해서도 재고할 필요가 있다. 규제의 권한을 늘리는 데 더 관심이 있는 행정부에 개혁을 주도하라는 것은 고양이 스스로 목에 방울을 달라는 것과 같아서 소기의 성과를 거둘지 의문이다.

公益 내세운 정부 규제 곳곳서 부작용 속출

모든 규제는 육성, 보호, 균형, 공익, 정의 등 선한 의도를 표방한다. 규제의 선한 의도만 놓고 보면 규제가 많을수록 세상은 살기 좋고 아름다워질 것 같다. 그러나 현실은 정반대다. 규제가 의도했던 효과는 나타나지 않고 엉뚱한 부작용만 키우는 경우가 더 많다. 규제의 역설을 보여주는 사례는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다. 2011년 말 중소기업 적합업종으로 지정된 포장두부가 그 중의 하나다. 정부는 중소기업을 보호하기 위해 포장두부를 제조·판매하는 대기업 3사의 시장점유율 합계가 80%를 넘지 않도록 제한했다. 그 결과 누가 이득을 보고, 누가 손해를 입었을까. 규제연구에 실린 논문에 따르면 이 규제로 인해 대기업 간 판매 경쟁이 자제되고 소비자가 지급하는 가격이 높아지면서 사회적 후생손실이 급증했다고 한다. 포장두부 시장에서 경쟁을 제한한 결과, 규제의 의도와는 반대로 대기업이 이득을 보고 피해는 소비자에게 집중됐다는 것이다. 규제와 마찬가지로 정부가 주도하는 각종 지원사업도 당초 의도하지 않았던 부작용을 키운 사례가 많다. 예를 들어 중소기업 정책금융은 당초 의도대로 중소기업의 경쟁력과 성장 지원에 긍정적인 성과를 거두고 있을까. 이에 대해 한국개발연구원(KDI)은 ‘공적 자금을 지원받은 중소기업은 지원을 받지 않은 기업에 비해 생산성은 떨어지고 잔존율은 높다’는 연구 결과를 최근 발표했다. 정책금융을 통한 정부 개입이 경쟁력이 높은 중소기업을 역차별하는 한편, 이들 기업이 정부 지원으로 연명하는 중소기업보다 시장에서 빨리 도태되는 이른바 ‘지원의 역설’이 발생하고 있다는 것이다.


7. 왜 법의 지배(法治主義)가 중요한가[10]

한국경제는 법치(法治)만 제대로 확립해도 추가 성장할 여지가 많다. 어느 연구에 의하면 법치주의가 1% 개선될 때 실질국민소득은 최소 0.75%에서 최대 1.75%까지 증가하는 관계가 있다고 한다.[11] 우리나라는 법치에 관한 한 OECD 34개국 중 27위에 불과할 정도로 법치 후진국이다. 세계은행에서 조사하는 WGI 법치지수는 한국이 0.97로 OECD 평균(1.27) 보다 26% 뒤떨어져 있다. 그만큼 개선의 여지가 많다. 따라서 우리나라가 법치주의를 OECD 평균 수준으로 선진화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1인당 실질소득을 크게 끌어올릴 수 것으로 기대된다.

‘법령 따로, 경제 따로’가 아니라 법 제도는 국민경제의 활력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왜 그런지는 규제법령을 생각하면 이해가 될 것이다. 규제법령이 복잡하여 예측하기 어렵고 경제적 자유를 제한하는 내용이 많으면 개인과 기업의 경제활동은 위축되기 마련이다. 창의적이고 생산적인 기업가정신은 위축되고 그 대신에 규제 관련 지대추구(regulatory rent-seeking)와 유착비리, 부패가 횡행하게 된다. 지금 한국이 이와 비슷한 상황일 듯싶다. 법치주의 순위가 그렇듯이 세계투명성기구에서 평가한 반부패지수(CPI)에서도 한국은 OECD 회원국 중 꼴찌 수준이다.

이제는 경제성장의 근본원인에 대해 다시 생각해봐야 할 때이다. 경제학 이론에서 경제성장은 여전히 노동, 자본, 기술의 함수로 분석되고 있다. 그러나 한국경제가 저성장의 늪에 빠진 채 계속해서 어려움이 가중되는 까닭은 사람, 돈, 기술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예컨대 의료, 법률, 회계시장을 보자. 여기에는 공부깨나 하는 인재들이 오랜 세월에 걸쳐 유입되었지만 글로벌 경쟁력이 변변한 회사가 없다. 그 이유는 전문자격사 아니면 투자도, 경영도 못하게 하고 업종간 융·복합을 가로막는 규제법 때문이다. 또한 GDP 대비 연구개발투자의 비중이 세계 1, 2위를 다투는 한국에서 드론, IOT 등 제4차 산업혁명을 선도하는 산업에서 중국에 벌써 뒤진다는 말이 나오는 것도 기술 문제가 아니라 시대에 맞지 않는 규제법령 때문이다.

모든 규제는 국회에서 독점적으로 만들고 고치는 법률에서 비롯된다. 법치의 내용과 수준은 국회가 어떤 내용의 법을 어떻게 만들고 고치느냐에 따라서 달라진다. 국회의 입법활동이 생산적·창의적 경제활동을 위축시킬 수도 있고 그 반대일 수도 있다. 국회는 저성장의 늪에 빠진 한국경제를 더 깊은 수렁에 빠지게 할 수도 있고 그 반대로 경제회생의 단초를 제공할 수도 있다. 이 점에서 지난 19대 국회에 대한 평가는 부정적이다. 경제회생을 위한 규제개혁에는 냉담한 반면에 부실·졸속 입법과 규제생산에는 열심이었기 때문이다.

제20대 국회는 과거의 오류를 답습하지 않아야 한다. 올바른 의미의 법치 확립은 국민 모두가 바라는 경제회생의 주춧돌이라는 인식을 새롭게 하고, 법치주의가 제대로 확립될 수 있도록 입법권을 행사해야 한다. 법치는 합당한 절차를 거쳐 제정된 법률의 준수를 의미하는 개념으로서의 법률 통치(rule by law)와 정의(正義)를 지향하는 좀 더 높은 차원의 개념으로서의 법의 지배(rule by law)로 구분된다. 이 중 법의 지배가 올바른 의미의 법치이다. 1215년 영국의 마그나 카르타(大憲章)에서 보듯이 법치의 본래적 의미는 국가 공권력을 비롯한 제3자로부터 개인의 인격, 자유, 재산권이 침해받지 않도록 법률의 내용과 집행을 통해 보호하는 것이다. 따라서 20대 국회는, 국회가 만든 법은 무조건 준수해야 한다는 법률 통치의 관점이 아니라 국민의 자유와 재산을 우선적으로 보호하는 법의 지배 관점에서 법률을 제정하고 개정해야 한다.

법의 지배를 확립하기 위해 구체적으로 해야 하는 일 중의 하나는 ‘원칙금지-예외 허용’의 포지티브 규제 시스템을 ‘원칙 허용-예외 금지’의 네거티브 시스템으로 바꾸는 것이다. 현행의 포지티브 시스템은 이미 효용성이 끝났고 시대에 뒤떨어진 방식이다. 이미 기존의 산업·기술간 경계를 무색하게 만드는 창의적 아이디어와 비즈니스 모델, 융·복합 기술들이 이 시스템 때문에 무산되거나 뒤처지는 폐단이 심각한 만큼 공을 들여 네거티브 시스템으로 변경해야 한다. 새로 만드는 법에만 적용할 게 아니라 기존의 법률을 전수 조사해서 고칠 것은 고쳐야 한다.

법의 지배 확립에 중요한 또 다른 과제는 과잉범죄화(over-criminalization) 현상의 억제이다. 크든 작든 불미한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국회와 정부는 그런 일이 다시 일어나지 못하게 한다며 형사처벌을 도입, 강화하는 식으로 법률개정을 추진해왔다. 행정규제의 경우에는 경제적 제재의 강화가 범죄 억지력에 더 높음에도 불구하고 공무원의 규제집행을 쉽게 할 양으로 형벌 조항을 도입한 경우가 수두룩하다. 그 결과 인구 대비 전과자 누적 비중은 2010년에 22%를 넘었고 2020년에 이르면 32%까지 높아진다고 한다. 이와 관련 20대 국회는 ‘과잉범죄화는 법의 지배와 자본주의 모두에게 해롭다(The increasing criminalisation … is bad for the rule of law and for capitalism)’는 명제를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12]

끝으로 법의 지배와 민생에 대해서는 노자(老子)의 도덕경 제57장의 내용만 기억해도 좋을 것이다: “天下多忌諱 而民彌貧, …, 法令滋彰 盜賊多有.”


8. 고야의 검은 그림을 보며…[13]

프란시스코 고야(1746-1828)의 검은 그림(pinturas negras)은 언제 봐도 섬뜩하고 불편하다. 아름다울 미(美)로 시작하는 미술과는 거리가 멀다. 검은 그림은 인간의 탐욕과 광기를 끔찍한 상징으로 표현하고 있다.

알다시피 고야는 18세기 후반에 서양 미술사를 대표하는 화가이다. 스페인 궁정화가 시절에 그렸던 카를로스 4세 가족의 초상(Charles IV of Spain and His Family, 1800-01), 옷을 벗은 마하(Naked Maja, 1800-3)는 널리 알려진 그의 작품들이다. 검은 그림은 그의 말년에 세상과 등진 채 집안 벽면에 그렸던 14점의 연작을 일컫는 말이다. 이 그림들은 아들을 먹어 삼키는 사투르누스(untitled, Saturn Devouring His Son, 1819-23) 그림이 그렇듯이 한결같이 기괴하고 음산하다.

이 중에 곤봉결투(untitled, Duel with Cudgels, 1820-23)로 이름 붙은 작품은 그나마 섬뜩함이 덜하다. 그림을 보면 두 사내가 진흙탕 같은 곳에서 몽둥이를 들고 서로 공격하는 자세를 취하고 있다. 어두운 배경 저 멀리 하늘 한쪽이 허연 것은 동이 틀 무렵을 말하는 듯하다. 만약 그렇다면 두 사내는 밤새 죽도록 싸웠던 게다. 발은 벌써 무릎까지 진흙에 파묻혀 있다. 이제는 누가 이겨도 수렁을 벗어나 목숨을 부지하기 힘들 것 같은 느낌이다.

미술에 문외한인 필자가 이 그림을 유심히 본 까닭은 한국이 처한 상황이 이와 같지 않을까 뜬금없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약 200년 전 고야를 자극했던 스페인의 역사와 시대적 배경은 지금의 한국과는 당연히 다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경제가 저성장의 늪에 빠져 있는 상태에서 정치권이 여야간, 파벌간 대립과 갈등을 계속하는 모습은 고야의 곤봉결투 그림과 닮은꼴이다. 고야의 곤봉결투를 우리 식으로 바꿔 표현하면 이전투구(泥田鬪狗)이다.

한국경제가 위기의 늪에 빠졌다는 진단은 오래 전부터 있었다. 2013년 봄에도 한국경제는 서서히 뜨거워져 가는 솥 안에 앉아 종국에는 저 죽을 줄 모르는 개구리로 비유되기도 했다. 달리 말하면 성장률이 3%에도 미치지 못할 만큼 경제가 부진한 것은 경기순환에 따른 일시적 현상이 아니라 구조적 문제에서 비롯되었으며, 구조 개혁 없이 이대로 가면 파국에 이른다는 경고성 진단이었다.

시대에 뒤떨어지고 창의적 혁신을 가로막는 불량 규제와 시스템을 근본적으로 고쳐야 경제회생이 가능하다는 처방전도 있었다. 그래서 역대정부가 규제개혁을 줄기차게 주창했지만 결과는 어떤가? 규제총량은 2003년 7,855개에서 2014년 14,987개로 계속 증가해왔다. 특히 2014년 7월 이후 국회의원이 발의한 규제법안 1,367개를 조사했더니 2,643개 규제 조항이 들어 있다고 한다. 그렇게 제19대 국회는 경제를 살리자는 규제개혁에는 냉담하고 규제양산에는 열심이었다.

고야의 그림으로 돌아가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두 사내는 싸우기 전에 먼저 진흙 수렁에서 벗어나야 했다. 혼자서 힘들면 서로 합심, 협력해서 수렁부터 벗어나야 했다. 싸우느라 때를 놓칠수록 몸은 점점 더 진흙에 묻히며 공멸에 이를 수밖에 없다.

이제 한국경제는 얼마나 수렁에 잠긴 것일까? 4년 전 19대 국회의 시작 무렵에 발목까지 빠진 상태였다면 지금은 무릎까지 빠져 있는 상태가 아닐까? 20대 국회는 경제회생의 전기를 마련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일 것이다. 여소야대에 내년에는 대선일정까지, 벌써부터 정치 과잉이 걱정스럽기는 하지만 경제문제에 관한 한 20대 국회는 고야의 이전투구 상황을 피하는 이성과 지혜를 발휘해 주기를 기대해본다.


9. 제4차 산업혁명 시대, 우리는 제대로 준비하고 있는가[14]

1956년, 인공지능(AI)이라는 말이 처음 등장하였다. 일단의 과학자들이 인공지능 프로젝트의 이름으로 사람 대신에 기계가 문제를 해결하는 연구를 추진하였다. 이들은 자신감이 넘쳤다.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모여서 여름 한 철을 함께 연구하면 상당한 성과를 거둘 수 있다고 호언하였다. 그러나 결과는 의욕을 따르지 못했다.

그 이후 AI는 과학계에서 기피하는 용어가 되었다. 그 대신에 신경망(Neural network)이란 이름으로 연구는 계속되었다. AI 연구는 시작부터 주춤거렸지만 AI가 지배하 는 미래에 대해 사람들은 걱정 반, 기대 반의 궁금증이 더해만 갔다. 영화계에서 1984년에 처음 개봉했던 터미네이터 시리즈, 스필버그 감독의 AI(2001), 윌 스미스 주연의 아이 로봇(2004) 등이 흥행에 성공한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2012년 이후 과학계에서 AI 용어가 재등장했다. 연구 및 기술개발에서 그럴만한 성과가 있었던 게다. 때마침 AI와 관련하여 22013년에 옥스퍼드 대학의 교수들이 <일자리의 미래>라는 책을 냈다. 저자들은 컴퓨터 자본 또는 AI 기계가 사람의 일자리를 대신할 확률은 회계·감사 업무 94%, 소매업 92%, 부동산 중개업 86%, …, 민간 조종사 55%, 경제학자 43%에 이른다고 예측했다. 그리고 미국의 현존하는 일자리의 47%가 기계에 의해 대체될 위험이 높다고도 했다.

금년 1월, 다보스 포럼(WEF 연차총회)은 4차 산업혁명을 주제로 올렸다. 1차(증기기관과 기계화), 2차(전 기와 대량생산), 3차(컴퓨터와 자동화)에 이어서 세계는 이미 AI, 로봇, 사물인터넷(IoT)이 융·복합하는 네 번째 단계에 들어섰다는 것이 중론이었다. 일자리의 미래에 대해서는 낙관보다 비관론이 앞섰다. 기계가 뺏어가는 일자리의 수는 많고 기계때문에 새로 생기는 일자리는 적기 때문에 잉여 인간의 시대가 올 수 있다는 이야기다.

여전히 한국에서는 4차 혁명이 먼 미래 아니면 딴 나라의 이야기처럼 들렸다. 그러다 “그게 아니구나”하고 정신이 바짝드는 사건이 바로 한국에서 일어났다. 2016 년 3월, 딥러닝에 기반한 구글의 AI 알파고와 한국의 프로기사 이세돌이 벌인 바둑대국에서 알파고가 4대 1로 승리했기 때문이다. 바둑게임은 우주의 별보다 경우의 수가 많고 직관이 중요하기 때문에 컴퓨터가 아직은 사람을 따라오지 못할 거로 믿었거나 또는 믿고 싶었던 이들은 충격에 빠졌다. 4차 산업혁명은 영화 속 미래의 일이 아니라 가까운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실이 되었다.

충격은 일파만파, 세계로 확산되었다. AI가 멋대로 진화· 발전하면서 그를 창조한 인류를 멸망시킬 수 있다는 섣부른 위기론도 제기되었다. 그러나 사람들의 제일 큰 걱정거리는 삶의 터전인 일자리다. 200년 전 1차 산업혁명 때는 증기기관 때문에 수백만의 사람들이 일자리를 잃고 ‘러다이트 운동 (Luddite Movement)’까지 벌였다. 그런데 맥킨지 글로벌연구소에 의하면, AI 혁명은 그 때에 비해 속도는 10배 빠르고 규모는 300 배, 그리고 사회적 충격은 3,000배 더 크다고 하지 않던가.

2016년 6월 말, 사람들의 미래에 대한 불안을 반영한 듯 영국의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AI 기계혁명에 대한 특집 기획기사를 실었다. 요지를 정리하면, 첫째 AI와 로봇기계가 사람의 일자리 총량을 줄일 것이라는 걱정은 기우(杞憂)라는 것이다. 과거 1차∼3차 산업혁명 당시에도 기계가 대신하는 일자리는 눈에 보이는 반면, 어떤 분야에서 어떤 일자리가 새로 생길지 모르기 때문에 불안감. 비관론이 우세했지만 최종 결과는 거꾸로 갔다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이 담당하는 일자리 총량이 줄지 않는다고 해서 문제가 없다는 의미는 아니다. 일자리 총량을 줄이지는 않아도 4차 산업혁명은 대량의 기술적 실업(Technological unemployment)을 불가피하게 유발할 것이다. 또 동시다발적 실업은 사회 혼란과 갈등을 부추기고, 19세기 말 영국의 적기 조례법(Red flag act)의 경우처럼 혁신에 대한 반대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이와 관련 정부는 정부대로, 기업은 기업대로 미리부터 중장기 대응전략을 마련하는 게 좋을 것이다.

끝으로 1∼3차가 그랬듯이 4차 산업혁명은 어두운 측면이 있다고 해서 피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아직까지 세계경제는 선진국의 자본·기술과 개도국의 낮은 임금이 결합해서 생산과 무역을 하는 구조이다. 그러나 미래에는 각국의 비교우위에 근본적 변화가 불가피하다. AI, 로봇 기계가 상용화되면 선진국의 기술과 자본이 굳이 개도국의 숙련된 저임 노동력을 찾아서 물건을 만들고 역수입해야 할 이유가 없다. 달리 말하면 제조공정의 효율성에 기대어 선진국에 상품을 수출해서 먹고 사는 시대는 저물어가고 있다는 의미다.

어느 새 코앞에 다가온 AI 시대를 우리는 잘 준비하고 있는가? 기술개발을 위한 R&D 수준과 정책, 규제 시스템, 창의적 인재 양성을 위한 교육, 그리고 사회 안전망의 재검토에 이르기까지 제대로 준비해야 할 사안이 산적하다.


10. 제도 혁신 없이 한국경제의 미래는 없다[15]

지난 9월 28일, 김영란법이란 이름으로 그동안 논란이 많았던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 금지법이 발효되었다. 바로 그날, 기획재정부는 2016년 세계경제포럼(WEF) 국가경쟁력 평가결과를 분석한 자료를 배포하였다. WEF 평가에 의하면, 한국의 국가경쟁력 종합순위는 조사대상 138개국 중 26위로 재작년, 작년에 이어 정체된 상태이며, 국가경쟁력을 제고하려면 노동 등 구조개혁과 산업개혁 지속 추진 및 성과 확산을 위한 조속한 입법조치가 긴요하다는 것이 정부가 발표한 내용의 요지였다.

비리와 부패는 법치주의와 자본주의를 해치는 주범

김영란법이 발효되던 날, 2016년 WEF 보고서가 발표된 것은 아귀가 잘 맞아 떨어지는 느낌이다. WEF 보고서는 공공부문을 중심으로 한국 사회 전반에 비리와 부패가 만연해있다고 평가하고 있는데, 이를 바로잡겠다는 것이 김영란법의 취지이다. 부패와 비리는 법치주의와 경제발전, 이 두 가지를 해치는 주범이므로 당연히 척결되어야 한다. 김영란법이 그 계기가 된다면 국가의 미래를 위해 그만한 다행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공직자의 부패를 막겠다는 당초의 법안취지와 달리 국회의 입법과정에서 언론인, 사립학교 교직원 등으로 적용대상을 확대한 것, 그리고 합법과 불법의 경계를 사전에 알기 어려운 점 등으로 인해 동법의 실효성과 부작용에 대한 논란이 있었고, 이는 앞으로도 끊이지 않을 전망이다.

한편, WEF 연례 보고서를 중앙정부 차원에서 분석하고 그 의미를 언론에 홍보했다는 점은 흥미로운 부분이다. 다보스포럼으로 더 유명한 WEF는 일찍이 1979년부터 세계 각국의 국가경쟁력을 평가, 순위를 매겨왔던 국제민간기구이다. 1995년까지는 스위스 로잔에 위치한 국제경영개발원(IMD)과 함께 국가경쟁력을 평가했다. 그러다 1996년부터 IMD가 세계경쟁력지수(World Competitiveness Index)를 별도로 발표하면서 두 기구는 갈라섰다. 그리고WEF는 성장경쟁력(Growth Competitiveness Index) 및 기업경쟁력(Business Competitiveness Index)으로 이원화하여 평가해오던 것을 2006년부터는 국제경쟁력지수(Global Competitiveness Index)로 통합 개편하면서 지금 같은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GCI 조사항목은 약 115개 내외이며, 이 중 70% 이상이 평가 대상국의 CEO를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자료이다. 예를 들어 2016년 한국 관련 설문조사는 국내 파트너 기관인 KDI를 통해서 금년 4~5월 중에 국내 대·중소기업 CEO 100명을 대상으로 실시되었다.

비생산적인 지대추구활동을 부추기는 공공제도 부문의 개혁이 관건

이렇듯 민간 주도하에 대부분을 설문에 의존해서 평가한 것에 대해 중앙정부가 검토하고 보도자료를 내는 경우는 다른 나라에서는 보기 힘든 경우일 것이다. 이런 대응이 문제라는 뜻은 아니다. 과거를 돌아보면 WEF 외에도 IMD 세계 경쟁력 순위, 세계은행의 기업환경지수가 발표될 때마다 국내에서는 조사항목과 평가방식의 한계를 감안하지 않은 채 결과를 과도하게 해석하는 경우가 없지 않았다. 따라서 조사방식의 특징과 한계를 이해하고 조사결과를 객관적으로 해석, 전달하면 불필요한 논쟁의 불씨를 예방하는 효과가 있을 것이다. 또한 정부 차원의 검토 과정에서 우리의 상대적 약점에 대해 타산지석(他山之石)의 교훈을 얻을 수 있다면 올바른 정책방향을 잡는 데 도움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기왕에 정부 차원에서 이들 국가경쟁력 지표를 활용하려 한다면, 그 이면의 논리구조를 확실하게 이해할 필요가 있다. WEF 국가경쟁력 평가는 한 마디로 ‘경제성장은 경제제도의 경쟁력에 좌우된다’는 전제를 깔고 있다. 많은 이들은 경제성장이 인적 자본(노동력), 물적 자본(투자), 지적 자본(기술)의 양과 질에 좌우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근본을 따져보면 이들 생산요소는 경제성장과 동행하는 변수이거나 결과이지, 근본적 결정원인은 아니다. 인적·물적·지적자본에 얼마나 어떻게 투자할지, 시장경쟁에 참여할지 아니면 규제지대 추구로 우회할지 등등 개인과 기업의 경제활동의지와 방향에 영향을 미치는 핵심 변수는 따로 있다. 경제게임의 규칙인 제도야말로 기업가정신의 질과 총량을 결정하는 근본요인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WEF 국가경쟁력 지표를 다시 보면, 한국의 제도수준은 평가대상 138개국 중 69위로 한참 뒤처져 있다. OECD 35개 회원국만 놓고 보면 한국의 제도경쟁력은 27위로 하위권이다. 절대적 수준으로는 OECD 평균이 4.8점인데 우리는 3.9점에 불과하다. 특히 공공제도 16개 항목 중에 정책결정 투명성(115위), 정부규제 부담(105위), 정치인 신뢰(96위), 공무원 의사결정의 편파성(82위) 등은 참혹한 수준이다. 더 나아가 공공제도의 열악함은 민간제도의 효율성에도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제도 전반이 생산적 경제활동보다는 각 부문에서 지대추구활동을 부추기는 형국이다. 이 상태로는 한국경제의 회생은 물론 미래를 기약할 수 없다. 행정부를 비롯한 입법부, 사법부는 힘을 합쳐 더 늦기 전에 불합리하고 비효율적인 제도의 개혁에 나서야 한다.


[1] 2016.9.5. 이코노미스트 게재 칼럼(橘化爲枳의 참뜻은)을 일부 수정

[2] 영국의 경제주간지 The Economist는 금년 2월(2016.2.20)에 ‘남한과 이웃 나라들: 초라한 관계(South Korea and its neighbors: The poor relation)’라는 제하의 기사를 게재했다. 기사에서는 비숍의 책을 전혀 언급하지 않았지만 그 내용을 보면, 최근 한반도를 둘러싼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의 국제관계가 120년 전 구한말 상황과 비슷한 점이 있음을 은근하게 암시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3] 2005.7.7. 칼럼을 일부 수정

[4] 2006.3.15. 자유기업원 게재 칼럼, 한국경제학회에서 편찬한 ‘경제학 읽을거리(2011)’ 수록

[5] 조선일보, 2010.3.1.자에서 사진, 기사 인용

[6] 후기: 2010년 광저우 아시안 게임에서 바둑은 사상 처음 금메달 3개가 걸린 공식종목으로 채택되었다. 이 경기에서 한국은 남녀 단체, 혼성 페어 3 종목 모두에서 중국을 이기고 우승하는 혁혁한 성과를 거두었다. 특히 여자단체에서는 루이가 중국 대표선수로 나왔음에도 결승에서 이민진이 이기는 등 종합전적 2승1패로 우승하였다. 반면에 일본은 대만에게도 밀려 최하위인 4등을 하였다.

[7] 2011.10.1. 이데일리 게재 칼럼을 일부 수정

[8] 2015.7.16. 한국경제신문 게재 칼럼을 일부 수정

[9] 2016.2.23. 한국경제신문 게재 칼럼을 일부 수정

[10] 2016.6.17. 자유경제 칼럼을 일부 수정

[11] 황인학(한국의 법치주의와 과잉범죄화의 문제점, 2015) 참조

[12] 2014.8.30. The Economist 특집 기사 참조

[13] 2016.6.13. 이코노미스트 게재 칼럼을 일부 수정

[14] 황인학. 재계 인사이트. 2016.8.10.

[15] 황인학. 재계 인사이트. 2016.1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