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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아 컨센서스 17차 콜로키엄]

  • 주제: 글로벌 컨버전스 시대의 문화
  • 발제자: 최정호 교수
  • 일시: 2007년 4월 3일 오후 5시
  • 참석자: 김병국, 손동현, 윤순봉, 이정우
  • 자료정리: 송문희(EAI)

콜로키엄 정리자료_text 12p


[요약] 글로벌 컨버전스 시대의 문화

[발제] 글로벌 컨버전스 시대의 문화 (최정호 교수)

[토론]


[요약] 글로벌 컨버전스 시대의 문화

1. 변하는 것과 변하지 않는 것

미래학회에서 행한 미래예측 작업을 회고해 본 결과 “하드”한 물리적 차원의 변화(예컨대 인구, 수명, 도시화 또는 GNP, 수출, 중화학 공업화 등의 거시 경제 지표 등)는 대체로 예측과 일치했거나 오히려 예측을 앞서 나갔던 반면, “소프트”한 인간적 차원의 변화(예컨대 자유화, 인간화, 사회복지, 인간의 연대 또는 평화적 정권 교체, 지방자치제, 남북한관계의 발전 등)는 거의 예측에서 벗어나거나 지체되고 있었다. 이를 통해 세상에는 “변화하는 것”만이 아니라 “변화하지 않는 것도, 또는 “빨리 변화하는 것”만이 아니라 “더디게 변화하는 것”도 미래를 예측하는 데에, 아니 미래를 결정하는 데에 중요한 구실을 한다는 것을 새삼 깨달을 수 있었다.

2. 변하지 않을 지정학적 위치

한국의 지리적 및 지정학적 여건은 미래에도 전혀 또는 거의 변화할 전망이 없다. 한국은 앞으로도 계속 유라시아의 두 거대한 대륙국가, 중국과 러시아, 그리고 태평양의 두 강력한 두 해양국가, 일본과 미국에 둘러싸인 동북 아세아의 작은 반도 국가로 남아 있을 것이다. 이사 갈 수 없는 지정학적 위치 때문에 한반도는 과거 곧잘 주변 열강들이 세력다툼 하는 싸움터가 되곤 했다. 그럴 경우 압도적으로 강한 이웃에 힘으로 맞설 수 없는 한반도는 곧잘 열강의 식민지, 반식민지, 또는 종속국의 지위로 전락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 수천 년 동안 한민족의 정체성과 한국문화의 정체성(identity) 유지돼왔다는 사실은 동북아 역사의 기적이라 할 만하다. 특히 과거 중국 대륙을 정복 지배하기도 했던 북방민족들이 장기간의 역사과정에서 거의 중국에 흡수 동화돼버린 사례들과 비교해보면 더욱 그러하다.

3. 변하는 지정학적 기능과 역할

세상이 달라져서 이제는 약육강식의 제국주의 열강들이 세력다툼을 일삼는 전쟁의 시대는 멀어져 가고 국가 간에는 협력과 교류, 그를 위한 평화를 선호하는 좋은 시대가 되어 가고 있다. 이러한 시류에 따라 한반도가 그 구석에 몰려 있는 태평양의 위상도 변화하고 있다. 한반도도 이제는 대륙세력과 해양세력이 충돌하는 전쟁터에서 벗어나 점차 육지와 바다에서 많은 나라들이 찾아와 서로 만나 교류하는 다리가 되고 있다. 1988년 서울 올림픽대회, FIFA(국제축구연맹) 역사상 처음으로 시도된 두 나라 공동개최의 2002년 한. 일 월드 컵 대회의 성공 등이 그 사례들이라 할 수 있다.

4. 지중해문명의 본질

“서양문명”은 지중해(地中海)에서부터 시작됐다. 지중해란 말은 서양 말에서나 한자(漢字)의 번역어에서나 다 같이 지중(地中)의 바다, 육지에 둘러싸인 바다라는 뜻이다. 고대 아테네를 중심으로 그리스 사람들은 남유럽과 북아프리카 그리고 소아시아 3 대륙이 머리를 맞대는 바다에 거미줄처럼 오고 가는 물길을 열어 이미 2500년 전에 여러 지역 여러 대륙을 연결하는 고대세계 최초의 국제적인 “지중해 문화”를 꽃피웠다. 원래 외부세계에 대해 문호를 개방하고 타자(他者)와 만나 교류하고 이질적인 문화를 수용한다는 것이 “지중해적”인 것이고 그것이 바로 “지중해 문화”의 본질이라 생각된다.

5. 21세기 (환)태평양 시대: “제 3의 지중해 시대”

이제 막이 오른 우리들의 21세기는 “태평양의 세기”, “환태평양 문화권의 세기”가 될 것이다. 태평양이 새로운 지중의 바다가 되어 가는 여건은 이미 성숙돼가고 있다. 갈수록 서부의 비중이 커져가는 태평양 국가로서의 미국, 세계의 생산 공장으로 급부상하고 있는 중국, 유럽을 따라잡고 앞서가기 시작한 일본, “야성적(野性的)인 활력”이 충천(沖天)하고 있는 이 지역의 신흥 공업국가들이 환태평양 권역(圈域)을 이루고 있는 나라들이다.

이처럼 이미 모습을 들어내고 있는 “환태평양 권의 시대”, “제3의 지중해 문명의 시대”의 문화란 어떤 것이 될까? 환태평양 권에는 과거의 지중해 문화권, 대서양 문화권 또는 중국문화권에 있었던 것처럼 하나의 통합적인 문화가 없다. 예컨대 헬레니즘 문화, 그리스도교 문화 또는 유교(儒敎)문화와 같이 그 권역에서 국경을 초월해 수용되고 있는 “보편적인 문화”라 할만한 것이 없다. 그곳에는 하나의 문화가 아니라 여러 개의 문화가 혼재-공존하고 있다. 어떤 의미에서는 그 점이 곧 “제3의 지중해 문화”의 특징이 되지 않을까 생각된다.

6. 한국 문화 본질의 발현형태로서 다신론적-범신론적 신앙형태

한국은 매우 다종교적인 나라이다. 서양에서는 그리스도교의 신구교(新舊敎)가 서로를 용인하기까지에도 수백 년에 걸친 피비린내 나는 종교전쟁이 있었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개신교와 천주교는 처음부터 평화적으로 공존해왔으며 불교와 그리스도교도 별다른 마찰 없이 공생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많은 한국인은 불교나 그리스도 교를 믿으면서도 유교적인 조상숭배의 제사를 지내고도 있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한국에는 국가적인 차원에서만이 아니라 가정적인 차원에서도 다(多)종교 상황을 보여주고 있는 사례가 적지 않다는 점이다. 조사결과 한국에서 “진리를 갖고 있는 종교는 오직 하나뿐”이다라는 배타적 입장은 14.9%에 지나지 않았다.

다종교적인 상황에 못지않게 한국문화에 특징적인 것은 한국인의 종교적 태도이다. 한국인은 종교의 본질적 의미를 “내세의 삶”과 결부시키기보다는 “현세적 삶”과 결부시키는 경향이 높다. 그것은 내세 피안(彼岸)에서의 영생(永生)이나 구원(救援)보다도 현세 차안(此岸)의 복(福)을 기원하는 태도이다. 한국인이 종교를 믿는 이유를 조사한 결과 “죽은 다음의 삶을 위해서”라는 응답은 7.1%에 불과하다. 요컨대 한국의 종교는 매우 현세적 세속적이며 그렇기에 그것은 매우 “인간적”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에서는 종교가 신(神)을 섬긴다기보다 인간을 섬긴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한국에는 여러 개의 종교가 들어오더라도 “제신(諸神)의 싸움”에 인간을 희생시키는 일은 거의 없고 인간의 복(福)을 위해 제신이 평화를 강구해서 협조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런 측면에서 본다면 이 지구의 마지막 대양인 태평양이 “지중의 바다”가 되는 “제3의 지중해 문화시대”, 바로 “글로벌 컨버전스의 시대”를 맞으면서 한국문화는 그러한 시대의 문화적 본질을 약간 선취(先取)하고 있다고도 볼 수 있다.

7. 한국의 기복(祈福)사상: 수(壽)-부(富)-귀(貴)-다남자(多男子)

한국인들은 예나 지금이나 항시 나 자신과 내 가족과 내 가까운 친지의 복을 빌며 살았고, 살고 있다. 그 복의 내용이란 전통적으로 수(壽)-부(富)-귀(貴)-다남자(多男子)의 네 눈이 알맹이가 되고 있다. 이 같은 복을 비는 한국인의 기복사상은 한국문화의 기층을 이루고 있는 무속신앙과 서로 연관되어 유지되어 왔다. 뿐만 아니라 한국에 들어 온 외래의 고등종교하고도 습합(習合)하여, 가령 불교를 기복불교화하고 기독교조차 기복종교화하고 있음을 보게 한다. 한국인의 삶에 근원적인 동기부여를 하고 있는 이러한 기복사상은 한국의 문화 전반에도 크고 폭넓은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작용인(作用因)이 되고 있다.

그런데 수(壽)-부(富)-귀(貴)-다남자(多男子)의 기복사상에는 모두 다 나를 동심원(同心圓)의 축으로 하고 있는 이기주의적-개인주의적 복이라는 것과, 보다 많은 것을 추구하는 양(量)의 개념이라는 공약수가 있다. 거기에는 ‘나’를 초월하는 남, 타자(他者)의 존재가 개입될 수 있는 여지가 없다. 결국 복(福) 사상에 내재하는 위와 같은 현실주의-현세주의-자아중심주의-양(量)의 윤리 등은, 부정적으로 표현한다면 ‘나’를 넘어서는 ‘남’과의 세계가 열리지 않는다는 것, 현실적-현세적인 것을 넘어서는 피안(彼岸)의 세계가 열리지 않는다는 것, 요컨대 타자(他者)의 부재(不在), 초월(超越)의 부재(不在)로서 특징지어 볼 수 있다.

복을 비는 한국인의 기복사상은 근대화를 지향하는 한국의 현대사회에서도 뿌리깊게 살아남아 변형된 모습으로 오늘 우리들의 삶과 문화에 유지되고 있다. 그 중에서도 오늘의 한국문화예술의 영역에 특히 지속적이고 심층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는 전통적인 복 사상은 귀(貴) 사상이다. 원래 보편적-개방적 가치개념인 귀(貴)가 한국인의 복 사상에서는 높은 ‘지위’, 높은 ‘벼슬’, 곧 ‘관작(官爵)’으로서만 일방적으로 인지되어 왔다. 이것은 현대의 한국사회에서도 지극히 높은 향학열과 교육열의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그러나 진-선-미의 세계마저도 관직의 높낮이로 저울질되는 일원적(一元的) 사회문화의 구조 속에서는 다양한 가치관이 개화하기는 어려운 문제점이 있다.

오늘날 시대변화에 맞게 한국적 기복사상도 변해 가고 있다. 예를 들어 수(壽)의 개념을 오늘날 영어로 표현하면 ‘survival’이 된다. 모든 생명의 가장 큰 궁극적 목적이 ‘생존’이라면 지구와 인류가 살아 남을 수 있는 자연환경과 생태환경을 유지하고 항구적인 평화체제를 모색하는 데에 한국적 수(壽) 사상이 기여할 점이 있을 것이다.

8. 글로벌 시대 문화의 모습

“글로벌 컨버전스 시대의 문화”의 모습은 어떤 것이 될 것인가? 글로벌 시대에는 지난날 서로 다투며 보편성을 주장하던 모든 문화는 이제 특수문화로 상대화되고 절대적인 것으로는 오직 인간의 삶, 인류의 삶만이 남게 되고 인간이 중심이 되는 인간(주의)적인 문화가 자리잡게 될 것이다. 그것은 가장 인간적인 문화이자 2중의 의미에서 가장 “세계적”인 문화가 될 것이다. 그것은 어떻게 죽어야 할 것인가를 추구하는 아르스 모리엔디가 아니라 다양한 민족, 다양한 대륙, 다양한 문화, 다양한 종교가 어떻게 서로 협조하며 살 것인가 하는 삶의 방식, 곧 모두스 비벤디(modus vivendi)를 추구하는 문화가 될 것이다.

그러한 협조적인 삶의 대전제가 되는 것은 두 말할 것도 없이 ‘평화’이다. 평화란 어떻게 가능한가? 저마다 서로 다른 “하나의 절대자”를 섬기는 곳에선 평화가 불가능하다. 서로 다른 하나의 진리, 하나의 이념, 하나의 유토피아를 믿는 곳에선 언제나 피비린내 나는 “제신(諸神)의 싸움”이 있어 왔음을 역사가 가르쳐주고 있다. 평화란 브란트의 말처럼 “하나가 아니라 여러 개의 진리가 존재한다”는 인식에서 비로서 가능한 것이다. 글로벌 시대의 문화는 다극적, 다중심적이요, 다형태적(polymorphous), 다색적(polychromatic), 다성적(polyphonic)인 문화가 될 것이다. 대서양 시대의 서양문화가 일신론적(monotheistic)인 그리스도교 문화였다고 한다면 환태평양 시대의 문화는 다신론적(polytheistic)인 다(多)종교의 문화가 될 것이다. 글로벌 시대의 문화를 이렇게 전망해본다면 한국문화는 나름대로 그 속에서 기여할 충분한 자격과 자질이 있다고 생각된다.

<키워드>

변하는 것과 변화하지 않는 것, 변화하는 한국의 지정학적 기능과 역할, 지중해문명의 본질, 21세기 (환)태평양 시대: “제 3의 지중해 시대”, 한국의 다신론적-범신론적 신앙, 한국의 기복(祈福)사상: 수(壽)-부(富)-귀(貴)-다남자(多男子), 글로벌 시대 문화의 모습, 모두스 비벤디(modus vivendi), 인간중심의 문화


[발제] 글로벌 컨버전스 시대의 문화 (최정호 교수)

1. 미래를 생각한다는 것

과거가 확정된 ‘사실’의 영역이라면 미래는 앞으로 사람이 꾸려나갈 ‘자유’와 ‘힘’의 영역이다. 미래를 알아보고자 하는 예측은 확정지을 수 있는 사실에 대한 앎만이 아니라 꾸미고자 하는 사실에 대한 꿈이 그 속에 담겨 있곤 한다. 글로벌한 차원에서 미래 환경의 변화를 전망한다는 것은 크고 어려운 주제이다. 그러나 나는 21세기에 한국문화가 새로운 중흥기를 맞이할 것이라 예측한다. 그것은 15세기의 세종시대, 18세기의 영-정조 시대에 이어 3백 년을 주기로 되몰아치는 한국문화의 일대 르네상스가 되리라는 전망이자 ‘꿈’을 담은 예측이다.

2. 변하는 것과 변하지 않는 것

나는 미래문제에 대해 관심이 많아 1968년 한국 미래학회의 창립에 참여했고 1970년 일본 오사카에서 개최된 국제미래학회에는 “서기 2000년의 한국”이란 보고서를 들고 참여한 일도 있다. 그로부터 세기말까지의 지난 30년 동안 한국은 정치 경제 문화적으로 엄청난 변화를 경험했다. 1980년대 중반에 우리들이 15년 전에 예측했든 “미래를 회고”하는 리뷰를 해본 일이 있다. 그 결과 “하드”한 물리적 차원의 변화(예컨대 인구, 수명, 도시화 또는 GNP, 수출, 중화학 공업화 등의 거시 경제 지표 등)는 대체로 예측과 일치했거나 오리려 예측을 앞서 가 있었다. 그러나 “소프트”한 인간적 차원의 변화(예컨대 자유화, 인간화, 사회복지, 인간의 연대 또는 평화적 정권 교체, 지방자치제, 남북한관계의 발전 등)는 거의 예측에서 벗어났던지 지체되고 있었다.

그러한 리뷰를 통해서 얻게 된 깨달음은 단순한 것이다. 세상에는 “변화하는 것”만이 아니라 “변화하지 않은 것도, 또는 “빨리 변화하는 것”만이 아니라 “더디게 변화하는 것”도 미래를 예측하는 데에, 아니 미래를 결정하는 데에 중요한 구실을 한다는 것이다. 물론 변화하지 않은 것도 미래의 변화된 환경에서는 그 의미가 달라질 수 있다. 여기서는 한국의 미래에 관한 얘기를 해보고자 한다.

3. 변하지 않을 지정학적 위치

우선 한국의 지리적 및 지정학적 여건은 미래에도 전혀 또는 거의 변화할 전망이 없다. 한국은 앞으로도 계속 유라시아의 두 거대한 대륙국가, 중국과 러시아, 그리고 태평양의 두 강력한 두 해양국가, 일본과 미국에 둘러싸인 동북 아세아의 작은 반도 국가로 남아 있을 것이다. 1970년대 이후 산업화 도시화의 거센 바람이 한국사회를 휩쓸면서 한국인은 아마도 집단적으로나 개인적으로나 세계에서 가장 많이 이사를 했고 지금도 하고 있는 국민이 되고 있다. 오늘의 한국인은 결혼 후 지금 살고 있는 집을 마련할 때까지 87.6%가 평균 4.7회 이사를 했으며, 23%는 7회 이상, 그리고 11%는 10회 이상 이사하고 있다는 통계도 있다. (통계청: “사회통계”. 서울. 2004년. “주거와 교통”부문) 다만 한 가지 불행스러운 것은 한국인의 삶의 터전인 한반도 그 자체는 이사 갈 수가 없다는 사실이다. 만일 한반도가 유럽으로 이사를 갈 수만 있다면 남북한 인구 7천만의 한반도는 그곳에선 결코 작은 약소국은 아닐 것이다. 혹은 미 대륙이나 대양주의 어느 곳에 이사를 간다면 4천 년의 역사를 이어온 한반도는 문화사적 차원에서나 관광사업적 차원에서 훨씬 매력적인 지역이 될 수가 있었을 것이다. 이사 갈 수 없는 지정학적 위치 때문에 한반도는 과거 곧잘 주변 열강들이 세력다툼 하는 싸움터가 되곤 했다. 그럴 경우 압도적으로 강한 이웃에 힘으로 맞설 수 없는 한반도는 곧잘 열강의 식민지, 반식민지, 또는 종속국의 지위로 전락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 수천 년 동안 한민족의 정체성과 한국문화의 정체성(identity) 유지돼왔다는 사실은 동북아 역사의 기적이라 할 만하다. 특히 과거 중국 대륙을 정복 지배하기도 했던 북방민족들이 장기간의 역사과정에서 거의 중국에 흡수 동화돼버린 사례들과 비교해보면 더욱 그러하다.

4. 변하는 지정학적 기능과 역할

이제는 세상이 달라져서 이제는 약육강식의 제국주의 열강들이 세력다툼을 일삼는 전쟁의 시대는 멀어져 가고 국가 간에는 협력과 교류, 그를 위한 평화를 선호하는 좋은 시대가 되어 가고 있다. 이러한 시류와 한반도가 그 구석에 몰려 있는 태평양의 위상이 변화함에 따라 한반도도 이제는 대륙세력과 해양세력이 충돌하는 전쟁터에서 벗어나 점차 육지와 바다에서 많은 나라들이 찾아와 서로 만나 교류하는 다리가 되고 있다. 1988년 서울 올림픽대회, FIFA(국제축구연맹) 역사상 처음으로 시도된 두 나라 공동개최의 2002년 한. 일 월드 컵 대회의 성공 등이 그 사례들이라 할 수 있다.

5. 지중해문명의 본질

지구 위의 가장 작은 대륙 유럽은 “유라시아 대류의 반도”처럼 3면이 바다에 둘러 쌓여있다. 유럽이 유럽으로부터 떠난 “서양문명”은 지중해(地中海)에서부터 시작됐다. 지중해란 말은 서양 말에서나 한자(漢字)의 번역어에서나 다 같이 지중(地中)의 바다, 육지에 둘러싸인 바다라는 뜻이다. 바다가 사람의 내왕을 막는 “절해”가 아니라 오히려 사람의 문물교류를 위해 육로보다 편리한 수로가 될 때 그 바다는 육지 안의 바다, 지중의 바다, 지중해가 된다. 그를 위해서는 바다를 두려워하지 않은 진취적인 정신과 바다를 이기는 해양(조선, 항해)기술의 발달이 전제가 되어야 한다. 고대 아테네를 중심으로 그리스 사람들은 남유럽과 북아프리카 그리고 소아시아 3 대륙이 머리를 맞대는 바다에 거미줄처럼 오고 가는 물길을 열어 이미 2500년 전에 여러 지역 여러 대륙을 연결하는 고대세계 최초의 국제적인 “지중해 문화”를 꽃피웠다. 원래 외부세계에 대해 문호를 개방하고 타자(他者)와 만나 교류하고 이질적인 문화를 수용한다는 것이 “지중해적”인 것이고 그것이 바로 “지중해 문화”의 본질이라 생각된다.

6. 21세기 (환)태평양 시대: “제 3의 지중해 시대”

그로부터 2000년이 지난 15세기말 칼럼버스의 미 대륙 발견으로 시위된 “대항해(大航海)의 시대”는 유럽과 미국을 연결하게 된다. 구대륙에서 획기적인 산업기술이 발전하고 신대륙에서는 무진장한 자원이 개발되면서 두 대륙 사이를 가로막던 대서양이 수많은 배가 내왕하는 “지중의 바다”로 둔갑하면서 “제2의 지중해 문화” 곧 “대서양 문화”를 낳았다. 지나간 20세기는 이러한 대서양문화가 절정을 기록한 세기요 동시에 그것이 서서히 기울어져가기 시작한 세기였다. 이러한 맥락에서 본다면 이제 막이 오른 우리들의 21세기는 “태평양의 세기”, “환태평양 문화권의 세기”가 될 것이다. 태평양이 새로운 지중의 바다가 되어 가는 여건은 이미 성숙돼가고 있다. 갈수록 서부의 비중이 커져가는 태평양 국가로서의 미국, 세계의 생산 공장으로 급부상하고 있는 중국, 유럽을 따라잡고 앞서가기 시작한 일본, “야성적(野性的)인 활력”이 충천(沖天)하고 있는 이 지역의 신흥 공업국가들이 환태평양 권역(圈域)을 이루고 있는 나라들이다.

이처럼 이미 모습을 들어내고 있는 “환태평양 권의 시대”, “제3의 지중해 문명의 시대”의 문화란 어떤 것이 될까? 환태평양 권에는 과거의 지중해 문화권, 대서양 문화권 또는 중국문화권에 있었던 것처럼 하나의 통합적인 문화가 없다. 예컨대 헬레니즘 문화, 그리스도교 문화 또는 유교(儒敎)문화와 같이 그 권역에서 국경을 초월해 수용되고 있는 “보편적인 문화”라 할만한 것이 없다. 그리스도교 문화든 회교문화든, 혹은 불교 문화든 유교문화든, 과거 어느 권역에서 오랫동안 배타적인 “보편문화”로 군림했던 문화들이 환태평양 권역에서는 저마다 하나의 특수문화로 자리 매겨져 다른 문화와 공존하고 있다. 어떤 의미에서는 그 점이 곧 “제3의 지중해 문화”의 특징이 되지 않을까 생각된다.

7. 한국 문화 본질의 발현형태로서 다신론적-범신론적 신앙형태

한국은 매우 종교적인 나라로 흔히 알려지고 있다. 뿐만 아니라 한국은 다종교적인 나라이기도 하다. 한 조사에 의하면 한국인의 56.1%가 종교를 믿고 종교 별 분포는 불교도가 25.5%, 개신교가 24.0%, 천주교가 5.8%, 기타 0.8%로 나타나 있다 (공보처, 한국인의 의식. 가치관 조사: 자료편, 1996). 서양에서는 그리스도교의 신구교(新舊敎)가 서로를 용인하기까지에도 수백 년에 걸친 피비린내 나는 종교전쟁이 있었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개신교와 천주교는 처음부터 평화적으로 공존해왔으며 불교와 그리스도교도 별다른 마찰 없이 공생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많은 한국인은 불교나 그리스도 교를 믿으면서도 유교적인 조상숭배의 제사를 지내고도 있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한국에는 국가적인 차원에서만이 아니라 가정적인 차원에서도 다(多)종교 상황을 보여주고 있는 사례가 적지 않다는 점이다. 한 조사에 의하면 부자 간에 종교가 일치하는 경우는 45.2%, 모자 간에 일치하는 경우는 60.4%로 드러나고 있다(한국 갤럽조사연구소: “한국인의 종교와 종교의식” 서울, 1984). 한국의 가정에선 아버지는 유교적으로 조상숭배의 제사를 지내고 어머니는 절에 가서 불공(佛供)을 드리며 아들은 예배당에 나가 주일예배를 보고 딸은 천주교의 성가대에서 노래 부른다고 해서 놀랠 사람은 없다. 그처럼 상호 조화적인 신앙형태는 어느 조사결과 대부분의 응답자(75.3%)가 “모든 종교는 나름대로 진리를 갖고 있다”는 수용적인 입장에도 드러나고 있다. 그에 반해 “진리를 갖고 있는 종교는 오직 하나뿐”이다라는 배타적 입장은 14.9%에 지나지 않았다(공보처, “한국인의 의식. 가치관 조사” 서울, 1996)

다종교적인 상황에 못지않게 한국문화에 특징적인 것은 한국인의 종교적 태도이다. 한국인은 종교의 본질적 의미를 “내세의 삶”과 결부시키기보다는 “현세적 삶”과 결부시키는 경향이 높은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그것은 내세 피안(彼岸)에서의 영생(永生)이나 구원(救援)보다도 현세 차안(此岸)의 복(福)을 기원하는 태도이다. 즉 세계 초월적(超越的)이 아니라 세계 내재적(內在的)인 세속적 신앙 태도를 가지고 있다. 한국인이 종교를 믿는 이유를 조사한 결과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마음의 평화를 얻기 위해서”라는 응답(64.1%)이고 그 다음은 “나 자신과 가족 친지들이 잘 되었으면 해서”라는 이유(16.7%)이다. “죽은 다음의 삶을 위해서”라는 응답은 7.1%에 불과하다. (공보처: 앞에 든 책)

요컨대 한국의 종교는 매우 현세적 세속적이며 그렇기에 그것은 매우 “인간적”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에서는 종교가 신(神)을 섬긴다기보다 인간을 섬긴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한국에는 여러 개의 종교가 들어오더라도 “제신(諸神)의 싸움”에 인간을 희생시키는 일은 거의 없고 인간의 복(福)을 위해 제신이 평화를 강구해서 협조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래서 현세적 세속적인 한국인의 종교생활에서는 인간이 신을 섬기기보다는 신이 인간을 섬기고 있다. 한국에서는 오직 “인간이 만물의 척도”가 되고 있다고 하겠다. 지중해의 정신을 철학한 프랑스의 시인 발레리(Paul Val’ery)는 “인간이 만물의 척도라고 한 프로타고라스(Protagoras)의 말은 본질적으로 지중해적 성격을 갖는다”고 했다. (Paul Valery “Inspirations mediterraneannes” Variete III, Paris, 1936) 그런 측면에서 본다면 이 지구의 마지막 대양인 태평양이 “지중의 바다”가 되는 “제3의 지중해문화시대”, 바로 “글로벌 컨버전스의 시대”를 맞으면서 한국문화는 그러한 시대의 문화적 본질을 약간 선취(先取)하고 있다고도 볼 수 있다.

8. 한국의 기복(祈福)사상: 수(壽)-부(富)-귀(貴)-다남자(多男子)

한국인들은 예나 지금이나 항시 나 자신과 내 가족과 내 가까운 친지의 복을 빌며 살았고, 살고 있다. 그 복의 내용이란 전통적으로 수(壽)-부(富)-귀(貴)-다남자(多男子)의 네 눈이 알맹이가 되고 있었다. 되도록 오래 살았으면 하는 장수의 복, 되도록 많은 돈을 벌었으면 하는 치부의 복, 되도록 높은 벼슬을 했으면 하는 출세의 복, 되도록 많은 자식을 낳았으면 하는 후사(後嗣)의 복이 그것이다. 이 같은 복을 비는 한국인의 기복사상은 한국문화의 기층을 이루고 있는 무속신앙과 서로 연관되어 유지되어 왔다. 뿐만 아니라 한국에 들어 온 외래의 고등종교하고도 습합(習合)하여, 가령 불교를 기복불교화하고 기독교조차 기복종교화하고 있음을 보게 한다. 한국인의 삶에 근원적인 동기부여를 하고 있는 이러한 기복사상은 한국의 문화 전반에도 크고 폭넓은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작용인(作用因)이 되고 있다.

그런데 수(壽)-부(富)-귀(貴)-다남자(多男子)의 기복사상에는 서로 상통되는 공약수가 있다. 수-부-귀-다남자는 모두 다 나를 동심원(同心圓)의 축으로 하고 있는 이기주의적-개인주의적 복이라는 공약수가 있다. 거기에는 ‘나’를 초월하는 남, 타자(他者)의 존재가 개입될 수 있는 여지가 없다. 한편, 수-부-귀-다남자는 궁극적으로 모두 다 보다 많은 것을 추구하는 양(量)의 개념이라는 공약수를 갖는다. 짐멜의 말을 빌리자면 그것은 ‘보다 많은 삶으로서’의 복이요, ‘삶 이상의 것을 추구하는 복은 아니다. 결국 복 사상에 내재하는 위와 같은 현실주의-현세주의-자아중심주의-양의 윤리 등은, 부정적으로 표현한다면 ‘나’를 넘어서는 ‘남’과의 세계가 열리지 않는다는 것, 현실적-현세적인 것을 넘어서는 피안(彼岸)의 세계가 열리지 않는다는 것, 요컨대 타자(他者)의 부재(不在), 초월(超越)의 부재(不在)로서 특징지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나’와 대등한 ‘남’의 존재를 인정하고 그러한 타자의 매개를 통해서 서로 똑같은 권리로 복을 추구하는 많은 남과의 공존 속에서 열리는 ‘공(公=Public)의 세계’가 한국문화에 쉽게 자리잡지 못하는 것은 바로 ‘타자의 존재’가 시야에 들어오지 않는 복(福)사상이 갖는 자아중심적 성격 때문이 아닌가 생각된다. 타자의 부재가 낳은 한국문화의 두드러진 특징은 <구운몽>, <사씨남정기> 같은 양반문학에서부터 <춘향전>, <심청전>에 이르는 서민들의 판소리 사설에 이르기까지 우리나라의 고전문학에 전혀 ‘친구’의 존재가 등장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다. 한국인은 모든 복(福)가운데서 장수(長壽)의 복을 으뜸으로 치고 있다. 그것은 생명지상주의 사상이다. 수복(壽福)을 으뜸으로 하는 한국문화에는 어떻게 죽는가 하는 것을 보여주는 죽음의 예술(ars moriendi)은 존재하지 않은 카테고리에 불과하다.

복을 비는 한국인의 기복사상은 근대화를 지향하는 한국의 현대사회에서도 뿌리깊게 살아남아 변형된 모습으로 오늘 우리들의 삶과 문화에 유지되고 있다. 현대 생활에서 수(壽)의 사상은 장수식품이나 장수약품의 폭발적 소비수요의 증가에서 직접 드러나고 있다. 부를 추구하는 복 사상은 한국경제의 고도성장에 기관차와 같은 구실을 한 것으로 생각된다. 60년대 이후 한국이 성공적으로 경제발전을 이룩한 원인을 유교의 전통에서 차고자 하는 일부 견해는 잘못된 것이다. 60년대 이후의 한국사회는 규범문화로서의 유교의 힘이 강화되었던 것이 아니라 오히려 약화됨으로 해서, 바로 그러한 유교의 속박으로부터도 해방된 부(富) 추구의 기복사상이 자유로이 활개를 칠 수 있었기 때문에 고도의 경제성장이 가능했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전통적 복 사상 중 적어도 ‘다남자’의 복은 이제는 더 많은 자식을 얻기 위한 구체적인 목적에서 해방되어 더 많은 섹스를 추구하는 추상적인 행위로 여전히 건재함을 과시하고 있다. 그러나 오늘의 한국문화예술의 영역에 특히 지속적이고 심층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는 정통적인 복 사상은 귀(貴)의 사상인 것 같다. 무릇 높은 것, 드문 것, 공경받는 것을 뜻하는 보편적-개방적 가치개념인 귀가 한국인의 복 사상에서는 높은 ‘지위’, 높은 ‘벼슬’, 곧 ‘관작(官爵)’으로서만 일방적으로 인지되어 왔다. 이것은 현대의 한국사회에서도 지극히 높은 향학열과 교육열의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그러나 진-선-미의 세계마저도 관직의 높낮이로 저울질되는 일원적(一元的) 사회문화의 구조 속에서는 진-선-미를 추구하는 학문-윤리-예술 등 문화의 세계에 다양한 가치관이 개화하기는 어려운 문제점이 있다.

그렇다면 한국적 기복사상은 부정적인 면만 있는가? 그렇지 않다. 시대변화에 맞게 한국적 기복사상도 변해 가고 있다. 수(壽)의 개념을 오늘날 영어로 표현하면 ‘survival’이 된다. 모든 생명의 가장 큰 궁극적 목적이 ‘생존’이라면 지구와 인류가 살아 남을 수 있는 자연환경과 생태환경을 유지하고 항구적인 평화체제를 모색하는 데에 한국적 수(壽)의 사상이 기여할 점이 있을 것이다.

9. 글로벌 시대 문화의 모습

“글로벌 컨버전스 시대의 문화”가 무엇인가에 대해 지금 당장 명확한 답을 내릴 수는 없다. 다만 한가지 분명해 보이는 것은 적어도 그것이 종교적 세계관적 근본주의나 원리주의, 또는 절대주의와는 양립하기 어렵겠다는 점이다. 글로벌 시대에는 지난날 서로 다투며 보편성을 주장하던 모든 문화는 이제 특수문화로 상대화되고 절대적인 것으로는 오직 인간의 삶, 인류의 삶만이 남게 될 것이다. 글로벌 시대의 문화는 따라서 인간이 중심이 되는 인간(주의)적인 문화가 되어야 할 것이다. 그것은 매우 차안적(此岸的) 세속적인 문화가 될 것이다.

많은 문화가 공존하는 글로벌 시대의 문화는 서로가 서로를 죽이는 문화가 아니라 살리는 문화, 세계를 죽이는 문화가 아니라 살리는 문화이며 생명 있는 인간, 생명 있는 세계를 존중하고 섬기는 문화가 되고 또 되어야 할 것이다. 그것은 다(多)종교적 다신론적인 문화일 수 밖에 없다. 그것은 어떻게 죽어야 할 것인가를 추구하는 아르스 모리엔디가 아니라 다양한 민족, 다양한 대륙, 다양한 문화, 다양한 종교가 어떻게 서로 협조하며 살 것인가 하는 삶의 방식, 곧 모두스 비벤디(modus vivendi)를 추구하는 문화가 될 것이다. 그러한 협조적인 삶의 대전제가 되는 것은 두 말할 것도 없이 ‘평화’이다. 글로벌 시대의 문화는 평화를 지향하는 문화가 되고 또 되어야 할 것이다.

평화란 어떻게 가능한가? 저마다 서로 다른 “하나의 절대자”를 섬기는 곳에선 평화가 불가능하다. 서로 다른 하나의 진리, 하나의 이념, 하나의 유토피아를 믿는 곳에선 언제나 피비린내 나는 “제신(諸神)의 싸움”이 있어 왔음을 역사가 가르쳐주고 있다. 평화란 브란트의 말처럼 “하나가 아니라 여러 개의 진리가 존재한다”는 인식에서 비로서 가능한 것이다. (Willy Brandt: “Frieden”, Reden und Schriften des Friedenspreistraegers. Bonn-Bad Godesberg, 1971). 모든 절대자가 상대화되는 “제신의 화해” 위에서만 평화는 가능한 것이고 글로벌 시대의 문화란 그러한 화해를 가능케 해주는 문화라 할 것이다.

“글로벌 컨버전스 시대의 문화”는 결코 일극(一極)중심으로 수렴되는 문화가 아닐 것이다. 그것은 다극적, 다중심적이요, 다형태적(polymorphous), 다색적(polychromatic), 다성적(polyphonic)인 문화가 될 것이다. 대서양 시대의 서양문화가 일신론적(monotheistic)인 그리스도교 문화였다고 한다면 환태평양 시대의 문화는 다신론적(polytheistic)인 다(多)종교의 문화가 될 것이다. 글로벌 시대의 문화를 이렇게 전망해본다면 한국문화는 나름대로 그 속에서 기여할 충분한 자격과 자질이 있다고 생각된다.


[토론]

토론주제

  • 시대변화와 한국적 기복(祈福)사상의 유용성
  • 문화적 상대주의와 정체성(正體性)간의 긴장관계

1. 시대변화와 한국적 기복(祈福)사상의 유용성

김병국: 지금까지 미래를 예측할 때 간과하거나 보지 못한 것이 있었다. 그것은 있는 것 보다 없는 것이 결과를 결정하는 데 더 중요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한국에만 있고 서양에는 없는 것, 서양에만 있고 한국에는 없는 것에 대한 질문을 던지며 미래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또한 변하는 것과 변하지 않는 것의 의미도 다시 파악할 필요가 있다. 다시 말해 ‘있는 것’ ‘변화하는 것’에만 초점을 맞출 것이 아니라 ‘없는 것’ ‘변화하지 않는 것’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

복(福)의 개념이 한국인의 행동을 결정하는 중요한 동인이라면 유학이 국가이념으로 채택된 것은 ‘명분(名分)’으로 ‘복(福)의 추구’을 다스린 것으로 생각된다. 모든 사람들이 수-부-귀-다남자를 추구했다고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거 유학자들은 복과 명분 사이에서 갈등을 느끼며 살았을 것이다. 근대화를 거치면서 유학이라는 ‘명분’은 ‘자유로운 복의 추구’에 자리를 내주게 되었다. ‘명분’과 ‘복’의 경우처럼 명분에도 불구하고 ‘복’의 개념은 수면 아래서 계속적으로 지속되어 온 것이라면 변하는 것과 변하지 않는 것을 구분 짓는 것은 어려운 작업이다. 변하는 것과 변하지 않는 것이 만날 수 있는 조합점은 존재하는가? 일정한 원칙이나 규범, 가치가 없이 복을 추구한다면 성장이라는 큰 혜택을 주는 반면 반대급부도 매우 클 것이다. 그렇다면 앞으로는 무엇이 ‘유학’의 자리를 대신 차지해서 ‘무절제한 복의 추구’를 조정할 수 있을 것인가?

손동현: 한국의 미래를 그릴 때 거부할 수 없는 세계화의 흐름을 고려해야 한다면 가문을 벗어나지 못한 폐쇄성과 ‘타자의 부재’라는 한계를 가진 채로 세계화에 어떻게 대처할 수 있는가? 한국적 기복사상과 문화적 상대주의는 어떻게 연결되는 것인가? 조선시대엔 유교적 에토스가 공생화를 가능하게 하는 도덕적 잣대로 기능했다. 당시의 교육받은 유학자들에게도 복 사상의 추구는 여전히 삶의 동인으로 작용했을까?

최정호: “그리스도는 세계를 세계로부터 해방시켰다”는 아우구스트의 말에 잘 나타나듯이 기독교는 인간적인 욕망 그 자체를 인정하고 이를 추구하는 데 도움을 준다. 반면 불교나 유교 등은 인간적인 욕망을 억제한다. 불교나 낮은 수준의 유교나 기독교는 다 세속을 벗어나려는 초월적 노력이 있었던데 비해 기복사상은 초월의 부재를 특징으로 한다. 짐멜은 <삶의 형이상학>이라는 책에서 ‘보다 많은 삶을 추구하는 인간’과 ‘삶보다 이상을 추구하는 인간’ 두 부류로 나눈 적이 있다. 한국적 기복사상은 그 중에서 ‘보다 많은 삶을 추구하는 인간’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현실적으로 볼 때 한국은 세계적으로 내세울 수 있는 정체성이 없다. 초월의 부재나 타자의 부재는 한국적 허무주의의 다른 표현이다. 한국인에게 유교적 에토스(ethos)가 사라지고 난 후 전통적인 복사상만 남아 있다. 평화를 위협하는 이데올로기나 종교의 폐해를 극복하는 동인으로서 한국적 인간 중심주의나 인본주의가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한국의 기복사상에서 복을 추구하는 방법론을 보면 ‘복을 누리기 위해서는 복을 베풀어야 한다’거나 ‘복 받으려면 덕을 쌓아야 한다’는 것이 있다. 이것은 그 시대 고등종교가 기복사상을 여러 가지 방법으로 규제하는 방식의 일면을 보여준다.

2. 문화적 상대주의와 정체성(正體性)간의 긴장관계

김병국: 세계는 다문화적인 사회로 나아가고 있다. 이 속에서 문화적 상대주의는 한국을 유연하게 만들고 노마드가 가능하게 한다. 다문화적인 시대에 유연함을 가지고 이를 한국의 강점으로 살려 중국과 미국을 연결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 그런데 문화적 상대주의를 갖고 세계로 나갈 때 한국적 ‘정체성’과의 관계는 어떻게 변화될 것인가? 문화적 상대주의 하에서 한국적 정체성은 무엇이며 이를 어떻게 유지할 수 있는가? 글로벌한 세계에서 한국인들이 어떤 에토스로 살아가게 될 것인가?

최정호: 2차 세계대전 이후 신생국가는 국민국가 건설(nation-building)에 역점을 두었다. 조선시대 붕당정치나 당쟁에 매몰되던 한국인이 가문을 벗어난 더 큰 세계인 “res publica”나 “공(公)의 세계”로 나아가게 된 전환점을 준 사건이 바로 20세기의 망국(亡國)의 체험이다. 국가가 없이는 나와 내 자식과 가문의 존속까지도 위태로울 수 밖에 없다는 것을 깨닫게 해 준 망국의 체험은 개인과 가문의 범주에 머물러 있던 한국인들이 공(公)의 세계로 나가는 큰 계기를 제공했다. 이와 마찬가지로 인류의 위기, 지구의 위기가 의식화되기 위해서는 인공 위성을 통해서 지구오존층 파괴를 보여줌으로써 지구환경의 미래에 대한 경고를 하는 등으로 지구 전체를 객관화할 수 있는 시각이 필요하다.

윤순봉: ‘한국인’ ‘한국적’이라는 키워드와 경로의존성(path dependence) 문제를 보다 심도 깊게 다룰 필요가 있다. 한국의 종교는 신(神)이 없는 종교 아닌가? 최근 미국에서 유행하고 있는 ‘brights’ 운동은 무신론도 종교와 동일한 위상을 가질 것을 주장한다. 한국인이 추구하는 최후 목표가 무엇이 될 것인가? 변화하는 환경 속에서 기존의 복(福) 개념은 어떤 내용과 형태로 변모될 것인가? 앞으로는 양(量)보다 질(質)이 더 중요하고 매력(魅力)이라는 것이 중요한 한 축을 담당하게 될 것이다.

세계화가 진행되면서 문화적 상대주의 하에서 고유한 ‘정체성(正體性)’을 유지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생존전략이 될 수 있다. 가까운 일본의 예를 참조할 필요가 있다. 현재 일본 감성의 가치가 세계적으로 높은 위상을 차지하고 있다. 한국도 한국적 감성이나 감각을 그저 흘려버리는 ‘한류(韓流)’가 아니라 일본의 자포니즘처럼 ‘한국적 코레니즘’을 만들어 내야 한다.[1] 눈에 보이는 높은 산, 깊은 계곡, 탑 이런 것보다는 한국의 색깔, 소리, 음식, 운동, 언어, 한국의 적막감(temple stay) 등과 같이 물리적 형체가 없고(intangible) 소프트(soft)한 요소들에 더 초점을 맞추어야 할 것이다. 세계화의 진전 속에서 부가가치를 획득하려면 남과 다른 특색을 발굴해 낼 수 있어야 한다. 21세기 다문화 세계 속에서 한국문화의 정체성을 찾아내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끊임없는 ‘창조 정신’이 뒷받침되어야 할 것이다.

[1] 자포니즘(영어: Japonism) 또는 자포니슴(프랑스어: japonisme)은 19세기 중-후반 유럽에서 유행하던 일본풍의 사조를 지칭하는 말로써 필립 뷰르트 (1830-90)가 최초로 사용하였다. 이는 단순한 “일본취미 (Japoneserie)”에 그치지 않는 일본 취미를 예술 안에서 살려내고자 하는 새로운 미술운동을 지칭한다. 이러한 분위기는 19세기 유럽에서 30여 년 이상 지속적으로 일본을 동경하고 선호한 일본 문화에의 심취에서 비롯되었으며 이는 서양의 미학적 관점에 변화를 주게 된 새로운 미술사적 영향으로 평가 받는다. 자포니즘의 시작은 일반적으로 1855년 만국 박람회에 일본의 채색화가 및 화가들이 제작한 100여 점의 작품이 전시된 것에서 찾는다. 당시 유행했던 인상주의 화가들은 일본 채색판화(우키요에)에 크게 영향을 받았다. “……어쨌든 내 모든 작품은 일본 미술에 바탕을 두고 있다……. 일본 미술은 일본 자국에서는 퇴폐해졌어도 프랑스 인상주의 작가들 사이에서 다시 그 뿌리를 박고 있구나. 내게 자연적으로 관심을 끄는 것은 일본 물건의 거래적인 가치보다는 예술가를 위한 그 실질적인 가치에 있단다…….” (반 고흐가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 中). 출처: wikipedia


[참고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