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저로 쓴 «과연 열린 시대인가»에 제9장 “제3 밀레니엄의 열린 경영”을 수록했다.

 

[책 목차]

1. 열린시대의 사회학
2. 열린시대의 개인, 국가, 그리고 사회
3. 세계화 시대의 신경제질서 : 도전과 기회
4. 컴퓨터 시대의 인문학 : ‘기계주의적’ 진단과 전망
5. 열린사고와 마음의 문지기 : 인식론적 동기
6. 정보화 사회와 행정혁신
7. 열린시대, 열린사회의 여성복지 : 사회복지의 새로운 패러다임
8. 열린수업의 재조명 : 구성주의적 의미와 실천
9. 제3밀레니엄의 열린 경영
10. 열린시대의 지식경영 : 자기조직화를 통한 지식창조 기반구축
11. 열린노사관계 : 21세기 노사관계의 새로운 대안
12. 정보화 시대의 열린 경영 🙂

원문보기_text 43p


[9장 목차]

1. 제3밀레니엄의 시작

2. 열림과 열린 경영

열림의 의미
열린 경영

3. 제3밀레니엄의 열린 세상

제3밀레니엄 초의 메가트렌드
세계화
네트워크화
지식창조화
복합화
상생화
미래 흐름의 최대공약수

4. 제3밀레니엄의 열린 경영

열린 비전과 열린 미션
열린 전략

열린 리더십

열린 사람

열린 조직

열린 정보

열린 기업문화

5. 위기를 기회로

참고문헌


1. 제3밀레니엄의 시작

지금 세계 각국은 ‘제3의 밀레니엄(3rd millennium) 시대’를 맞을 준비에 한창이다. 이처럼 세계인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밀레니엄이란 무엇인가? 영어사전에서는 1년을 year, 10년을 decade, 100년을 century, 1,000년을 millennium으로 표기하고 있다.

1,000년을 밀레니엄으로 표기하게 된 것은 성경 「요한계시록」의 ‘천년왕국(千年王國)’ 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그런데 우리 모두의 관심사인 21세기, 즉 제3밀레니엄이 시작되는 해가 2000년인지 또는 2001년인지에 대한 논란이 분분하다. 교과서적으로 이야기한다면 1세기는 서기 1년부터 100년까지고 21세기는 2001년부터 2100년까지 다. 같은 논리로 서기 1년부터 1000년까지가 제1밀레니엄이고 1001년부터 2000년까지가 제2밀레니엄, 그리고 2001년부터 3000년까지가 제3밀레니엄이 된다.

어쨌든 영어로 century에 해당하는 백 년을 우리말로 세기(世紀)로 표현하는 것처럼 천 년에 해당하는 millennium의 우리말이 있었으면 한다. 일반적으로 2001년을 극적으로 나타낼 때 21세기라고 표현하는데, 영어의 ‘제3밀레니엄’처럼 한글로 된 ‘제3무엇’이라고 하면 그 효과가 더욱 극적이지 않을까.

본론으로 들어가 보자. 최근 들어 세상이 빠른 속도로 열리고 있다. 따라서 곧잘 생체(生體)에 비유되는 전형적인 환경적응체인 기업은 세상의 변화에 적응하지 못할 경우 적자생존의 논리에 따라 백악기의 공룡처럼 사라질 수밖에 없다. 그런 이유로 기업들은 환경변화의 가장 큰 흐름인 ‘열림’에 적응하고자 경영 전반에 걸쳐 열림의 개념을 접목시키고 있다. 열림이라는 메가트렌드는 조만간 다가올 제3밀레니엄 초에는 더욱 가속화될 것이다.

제3밀레니엄 초의 변화를 설명하는 키워드는 세계화, 네트워크화, 지식창조화, 복합화, 상생화의 다섯 가지로 요약되며, 이들의 최대공약수 역시 열림이라는 개념이다. 따라서 열린 경영은 기업성장을 위한 필요조건의 차원을 넘어 생존을 위한 충분조건으로 자리매김될 것이다.

이 같은 맥락에서 다음 절에는 세상이 열리고 있는 모습에 대해 살펴본 후, 열림에 대한 실체와 열린 경영에 대한 전체적인 내용을 검토하려고 한다. 이어서 열림이 더욱 확산될 제3밀레니엄 초기의 변화하는 세상에 대해 살펴보고, 마지막으로 4절에서는 제3밀레니엄 시대에 적합한 한국적 경영방향에 대해 생각해보고자 한다. 한편 대안모색은 전 세계 기업이 아닌 한국 기업에 초점을 맞춰 ‘열린 경영’을 중심으로 실질적으로 접근하고자 한다. 단순히 코치(coach)하는 시각에서 벗어나, 열린 경영이 한국 기업에 실제적으로 적용될 수 있도록 고민함으로써 최근 경쟁력 약화로 어려움을 겪는 우리 기업들에게 다소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참고로 이 글에서 열림에 대한 본질과 현재 세상이 열리고 있는 모습에 대해서는 필자와 장승권 교수가 함께 쓴 「열린 시대 열린 경영」(1995)을 참조했다. 그리고 제3밀레니엄 초의 변화에 대해서는 삼성경제연구소와 미국의 스탠포드연구소(SRI), 일본의 노무라(野村)종합연구소와 미쓰비시(三菱)종합연구소가 ‘2005년의 경영환경’을 주제로 공동 연구한 결과물을 바탕으로 했다. 따라서 이 글에서는 검토의 대상이 되는 기간을 제3밀레니엄 전반에 걸친 1000년간이 아니라 가까운 미래인 2005년으로 설정했음을 밝혀둔다.

2. 열림과 열린 경영

‘열린 시대 열린 경영’을 주제로 고민했던 1994년만 해도 ‘열린’이라는 형용사의 쓰임새가 그리 많지 않았다. 고작해야 ‘열린 음악회’ ‘열린 대학(방송대학)’ 정도가 아니었나 싶다. 그러던 것이 최근에는 남용된다 싶을 정도로 널리 쓰이고 있다. 열린 교육, 열린 방송, 열린 사회, 열린 행정, 열린 예술, 열린 경영, 열린 인사, 열린 문화 등에서 보듯 그 내용이 무엇이든 ‘열린’이라는 단어를 붙이지 않는 게 오히려 어색할 정도가 되었다. 또한 ‘열린’이라는 형용사를 붙이지는 않지만 그 실질 내용이 열림에 해당하는 것들도 많다. 문민정부가 내건 세계화, 정보화를 대표적인 예로 들 수 있고, 요즘 열풍처럼 확산되는 인터넷도 열림을 기본원리로 하고 있다.

열림의 의미

개념조차 모호할 정도로 다양하게 쓰이고 있는 열림의 의미는 무엇인가? 우선 열림의 사전적인 의미부터 살펴보자. 국어사전에는 ‘열리다’를 다음과 같이 몇 가지로 나누어 정의한다(민중서림 편집국, 1994). “첫째, 닫히거나 막히거나 가리어진 것이 트이다. 둘째, 문화가 개발되다. 셋째, 사업ㆍ흥행ㆍ경영 등이 시작되다 또는 어떤 모임이 개최되다”로 나와 있다. 그중 이 글에서는 첫 번째의 “닫히거나 막히거나 가리어진 것이 트이다”라는 의미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가려고 한다.

열림을 반대어인 닫힘과 비교하면 그 의미가 좀더 명확하게 드러난다. 닫힌다는 것은 내부와 외부가 명확히 구분되는 것이지만 열린다는 것은 내부와 외부가 구분되지 않거나 부분적으로 구분되는 것이다. 닫힘이란 앞을 가로막는 벽이 있어 흐름이 자유롭지 못하지만 열림이란 벽이 없거나 있더라도 매우 낮아서 흐름이 자유롭다. 이처럼 열림과 닫힘의 개념은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상대적이다. 예를 들어 중국의 사회주의 체제는 미국의 시장경제체제에 비해 상대적으로 닫혀 있지만 북한의 통제체제와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열린 사회라고 할 수 있다.

열림에 대한 이해를 보다 깊게 하기 위해 몇 가지 다른 관점에서 검토해보자. 열림은 양적인 열림과 질적인 열림으로 나눌 수 있다. 가령 방이 하나 있는데 그 방에 문을 여러 개 달고 또 문을 크게 만드는 것은 양적인 열림이다. 양적인 열림은 흐름이 자유로워질 수 있는 가능성을 제공한다. 이러한 가능성이 현실화되는 것이 질적인 열림이다. 질적인 열림이란 벽에 난 열린 문을 통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왕래하느냐 하는 것이다. 그러나 양적, 질적 열림을 통해 내외부 간에 많은 흐름과 교류가 있더라도 상호 결합을 통한 시너지가 창출되지 않으면 그 열림은 가치가 없게 된다.

최근에 여러 기업에서 여성인력이나 외국인을 채용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여성 차별과 외국인 차별이라는 인식의 벽이 허물어지고 닫힌 채용이 열린 채용으로 전환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조직 내부로 들어온 인력들이 기존 조직과 융화되지 못하거나 열린 채용이 단순히 남의 시선을 의식한 대외과시용이라면 이는 양적인 열림에 그치고 만다. 이것이 질적으로 열리려면 물리적 결합은 물론 화학적으로 결합(융합)되어 시너지를 냄으로써 새로운 가치가 창조되어야 한다. 이처럼 양적인 열림은 하드적인 측면이 강한데 비해 질적인 열림은 소프트적인 측면이 강하다. 이를 정보화에 비유하면 컴퓨터를 설치하고 통신망을 구축하는 것은 양적이고 하드적 측면이며, 정보처리량과 통신량을 늘리고 유효적절하게 응용하는 것이 질적이고 소프트적인 측면이다.

열림은 시점(視點) 차원에서도 두 가지로 구분된다. 내부자 시점의 열림과 외부자 시점의 열림이다. 예를 들면 감방이라는 곳은 간수의 입장에서는 항상 열린 공간이지만 죄수의 입장에서는 닫힌 공간이다. 또 미ㆍ일 간 마찰을 빚고 있는 시장개방 논쟁에서 일본은 시장을 열었다고 주장하고 미국은 시장이 닫혀 있다고 주장한다. 미국의 주장은 일본이 시장개방을 했다고는 하지만 행정규제나 유통관행을 이용해 미국 기업이 일본 시장에 진출할 수 없도록 함으로써 실질적으로 닫혀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경우는 내부자 시점은 열려 있더라도 외부자 시점에서 보면 닫힌 것이다.

결론적으로 진정한 열림이란 양적, 질적으로 열려야 하며, 내부자 시점과 외부자 시점에서도 열려야 한다. 이러한 개념을 바탕으로 열린 경영에 대해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열린 경영

기업은 임직원들의 손과 머리로 상품ㆍ서비스를 만들어 고객에게 새로운 가치를 전달하고 이를 통해 나오는 이윤을 주주, 임직원, 사회 등 이해관계자들에게 배분하는 역할을 한다. 따라서 기업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임직원과 주주, 사회 등 조직을 둘러싸고 있는 환경과 유기적인 관계를 맺고 이들의 욕구를 지속적으로 충족시켜야 한다. 한편 기업은 전형적인 환경적응체이기 때문에 기업을 둘러싼 환경변화의 흐름을 거스를 경우 생존자체에 문제가 생긴다. 따라서 열린 시대를 맞는 환경에서는 열린 경영이 필연적으로 요구된다.

열린 경영이란 무엇인가? 위에서 언급한 열림의 개념을 경영에 투영하는 것이다. 즉 조직의 내외부를 가로막는 벽을 허물어 경영자원이 조직 내외부를 가로질러 원활하게 소통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진정한 의미의 열린 경영이 되려면 경영의 제반 요소들이 양적, 질적으로 열리고 형식적, 실질적으로 열리며 내부자 시점과 외부자 시점이 모두 열려야 한다.

열림을 경영에 접목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이고, 과연 실익이 있는가? 첫째 이유는 이미 언급한 것처럼 열린 경영이 기업 존속의 필요충분조건이기 때문이다. 둘째 이유는 경영방식이 열리면 조직내부의 창조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조직이 열리면 조직 내부자가 외부의 살아있는 정보를 직접 접할 수 있으며 정보, 사람, 자본 등 외부자원의 유입량이 많아지고 의사소통이 활발하게 이루어진다. 이를 통해 조직내부에 다양한 정보와 지식이 축적되고, 이들이 서로 창조적으로 충돌하고 복합되면서 새로운 지식의 창조가 일어나 개인과 조직의 창조력이 강화된다. 셋째 이유는 열린 경영을 통해 시너지가 나오기 때문이다. 여러 주체들이 각자의 경영방식을 동시에 열면 각기 다른 조직에 속한 경영자원들이 원활한 교류를 통해 합쳐지고 융합되어 시너지를 낸다. 시너지가 발휘될수록 열린 경영은 더욱 확산되므로 열림과 시너지는 서로 선순환 관계를 이룬다. 마지막으로 열린 경영을 통해 저성장 시대를 극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닫힌 경영에서는 모든 경영자원을 자력으로 조달해 내부에 축적하므로 고정비 부담이 커진다. 반대로 조직을 열면 자원을 외부에서 조달할 수 있으므로 고정비 중심의 비용구조가 변동비 중심으로 전환된다. 안정적인 고성장 시대에는 고정비 중심의 비용구조가 강점을 갖지만 성장이 둔화되고 환경이 급격히 바뀌는 경우에는 변동비 중심의 비용구조가 이익확보에 더 유리하다.

열린 경영을 실천하기 위해서 경영현장에서 열어야 할 대상은 무엇인가? 비전과 미션, 경영전략, 리더십, 인적자원, 조직구조, 정보와 의사소통, 기업문화 등 경영을 구성하는 제반 요소 모두가 대상이다. 만일 이들 중 한두 가지만 열린다면 오히려 혼란이 가중된다. 이는 경영의 내적 적합성이 깨지기 때문이다.

경영조직의 적합성(fit)에서는 외적 적합성(external fit)과 내적 적합성(internal fit)이 있다. 외적 적합성은 조직이 외부환경에 적응하는 과정을 말하며, 내적 적합성은 외적 적합성을 높이는 과정에서 경영의 여러 요소들이 변화하는 방향성이 일치되어야 함을 말한다. 만약 방향성이 달라질 경우 조직의 벡터(vector)가 분산되어 힘은 모아지지 않고 결국은 ‘사공’이 많아 배가 산으로 올라가는 국면을 맞이한다.

열린 경영에 관해서는 거의 유일한 미국 문헌인 「Open-Book Management」(Case, 1995)라는 책에서는 회계와 재무관련 지표를 구성원들에게 공개하는 것이 참여의식을 높이고 동기부여가 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 경영요소 일부분만 바꿔서는 당초 기대한 성과가 나오기 어렵다. 경영요소를 여는 구체적 방안에 대해서는 4절 ‘제3밀레니엄의 열린 경영’에서 상세히 설명하기로 한다.

3. 제3밀레니엄의 열린 세상

2005년을 기준시점으로 미래에 전개될 변화의 모습을 예견해보자.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각론 차원에서 전망하는 것도 가능하겠지만, 나무를 보는 데 치중하면 숲이 보이지 않을 수도 있다는 점을 고려하여 총론 차원에서 키워드 중심으로 논의를 전개해보자.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미래에는 단절적 변화(transitional change)가 일어날 것이며, 변화의 방향성은 세계화, 네트워크화, 지식창조화, 복합화, 상생화라는 다섯 가지 키워드로 요약되고, 열림이라는 개념이 이들 키워드의 최대공약수가 될 것이다. 이들 키워드는 상호독립적으로 진행된다기보다 서로 영향을 주고 받으며 진행되는데, 이 글에서는 편의상 각각의 키워드를 구분해서 설명하기로 한다.

제3밀레니엄 초의 메가트렌드

제3밀레니엄 초에는 과거의 연장선상에서 사물을 보는 사고방식으로는 미래예측이 불가능한 단절의 시대가 전개된다. 미래를 보는 시각에는 대개 세 가지 유형이 있다. 첫 번째 유형은 현재 일어나는 변화의 수준, 넓이, 깊이, 속도가 미래에도 그대로 지속될 것으로 보는 ‘현상연장적’ 시각이다. 두 번째 유형은 미래의 변화 정도가 현재보다 더욱 넓고, 깊고, 빠를 것이므로 현재의 변화수준이 미래까지 연장되지 않을 것이라는 ‘현상 부정적’ 또는 ‘단절적’ 시각이다. 마지막 세 번에 유형은,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처럼 파국이 오거나 유토피아 같은 세상이 전개될 것이라는 ‘극단적’ 시각이다. 이 세 가지 유형 간의 구분은 명확하지 않으며, 또 다른 유형으로도 구분이 가능하지만 일단 세 가지 유형만을 놓고 보면 가장 설득력 있는 것이 두 번째의 현상부정형 또는 단절형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는 21세기라는 새로운 세기를 목전에 두고 있는 세기말이다. 세기말이라 해서 다른 때보다 특별히 변화의 수준이 높아진다고 단언할 수는 없지만 많은 전문가와 연구기관들이 세기말에는 변화의 수준이 혁신적일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전망들은 서로 증폭되어 현실에 피드백 된다. 그 결과 혁신을 도모하도록 현상을 자극함으로써 상당히 급격한 수준의 변화가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 역사를 보면 세기말에 단절적 변화가 있었음을 찾아볼 수 있다. 일례로 19세기 말에는 내연기관, 전기, 합성화학물, 자동차 같은 발명품이 혁신의 물결을 주도했다(Dertouzos, 1997). 이를 통해 사람들은 더 적은 비용으로 더 많은 제품을 생산할 수 있게 되었고 제품의 수송방법이 개선되었다. 또한 소득이 늘고 교육기회가 확대되었으며 화이트칼라라는 새로운 계층이 나타났다. 이처럼 사회 전체의 질서가 개편된 변화의 정도를 단절적이라고 표현해도 큰 무리는 없을 것이다.

세계화

우리 귀에 익숙한 세계화라는 키워드는 현재진행형 흐름이다. 세계화는 국가 간에 형식적으로 또는 물리적으로 가로놓인 국경이라는 장벽이 허물어지거나 낮아짐으로써 상품ㆍ서비스ㆍ자원ㆍ문화 등이 자유롭게 유통되는 현상을 말한다. 장벽이란 무역장벽일 수도 있고 지역장벽일 수도 있다. 이미 세계는 이러한 장벽이 허물어지면서 상품과 서비스는 물론 사람과 자본까지 과거와는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자유롭게 국경을 넘나들고 있다. 세계화를 두고 개인의 일상과는 상관이 없는, 기업이 경제활동을 하거나 정부가 외교활동을 하는 것으로만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는데, 사실 세계화 추세는 이미 개인생활 속에도 깊이 스며들어 있다.

우리 주변부터 살펴보자. 고급 백화점은 물론 동네 편의점에 가더라도 에비앙 생수나 스니커즈 초콜릿부터 엘르 잡지에 이르기까지 외국제품이 넘쳐나고 있으며, 재래시장에는 중국에서 건너온 농산물이 판치고 있다. 상품뿐만 아니라 서비스 측면을 보아도 시티은행이 한국에 진출한 것은 벌써 오래 전 일이며, 웬만한 사람들은 비자카드나 AMEX카드를 소지하고 있다. 얼마 전에는 AT&T가 국내에 진출해서 통신사업에 착수했으며 DHL이나 FedEx도 택배사업에서 영역을 확대하고 있는 중이다. 이처럼 외국상품과 서비스가 국내시장에 진출하는 것에 상응해서 우리 기업들도 적극적으로 해외로 진출하고 있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반도체ㆍ자동차ㆍ조선 철강사업이다.

사람의 이동 측면을 보면 10년 전만 해도 외국에 한 번 나가보는 것이 큰 자랑거리였다. 그런데 지금은 신혼여행을 하와이나 괌으로 가는 것이 보편화되었다. 해외유학도 과거에는 특별한 사람들의 몫이었지만 최근에는 보통 가정에서도 대학생은 물론 중고등학생, 심지어 초등학생까지 해외로 보내는 유학 붐이 일고 있다. 역으로 외국인들의 국내 유입도 매우 활발하다. 시내 음식점에서 중국 연변 출신의 종업원을 보는 것은 흔한 일이 되었으며, 공단에 가면 동남아 근로자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학원가에는 여행비자로 입국한 서구인들이 영어회화를 가르치는 것이 흔한 일이 되었다.

눈을 돌려 거시적으로 보면 현재 우리나라 주식시장은 외국자본이 좌우하고 있다고 해도 무방하다. 이들이 차지하는 비중은 10% 내외에 불과하지만 요즘처럼 주식시장이 불황에 빠져 국내 기관투자가나 일반 투자자들이 손써 볼 여지가 없는 경우에는 외국자본의 진퇴에 따라 주가가 등락을 거듭한다. 이 같은 변화는 국경이 허물어짐으로써 자원이 자유롭게 교류되는 세계화에 기인한 것이다.

세계화의 흐름을 경제적인 측면에서 좀 더 자세히 살펴보자. 주지의 사실이지만 세계시장 규모는 양극체제가 무너진 이후 엄청나게 확대되었다. 구소련, 동구, 중국 등 공산권이 시장경제체제로 전환하고, 남미 같은 제3세계 국가까지 자본주의 경제권으로 편입됨에 따라 이제까지 12억 명이 경쟁하던 시대가 45억 명이 경쟁하는 초경쟁 시대로 바뀐 것이다. 게다가 GATT를 대신한 WTO 체제가 열리면서 국경은 더욱 허물어지고 있고 무역ㆍ기술ㆍ환경ㆍ경쟁ㆍ투자ㆍ회계 등에 걸쳐 세계 공통 표준을 모색하는 라운드(round)가 다방면으로 진전되고 있다. 이에 따라 세계 경제체제를 구성하고 있는 여러 요소들은 새로운 방법으로 연결되고 국가 간의 상호의존 관계가 더욱 심화될 것이다.

한편 세계화의 최대 장애요인으로 지목되는 무역장벽은 어떻게 될 것인가? 지금은 세계경제가 ‘자유무역주의’로 갈 것인가, ‘신중상주의’로 갈 것인가의 두 가지 시나리오로 팽팽히 맞서고 있다. WTO 출범으로 전 세계의 인적ㆍ물적 자원이 자유롭게 흐를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되었고, 이 추세가 더욱 확산되면 세계는 다자간 협상을 통한 자유무역주의로 나아갈 것이다. 이와 반대로 미국이 NAFTA를 결성하고 EU가 블록화를 강화하는 한편 일본과 중국, 한국이 동북아 경제권을 만들어 각 블록 간에 무역전쟁이 벌어진다면 쌍무적 신중상주의 시대가 도래할 가능성이 크다.

여기서 자유무역주의가 득세하면 세계시민 모두가 번영하는 상생(win-win)의 협력시대가 도래하겠지만, 반대로 신중상주의가 득세하면 서로가 이익을 다투는 제로섬(zero-sum) 게임이 벌어져 세계경제는 정체될 것이다. 다시 말해 세상이 열리면 열릴수록 세계시민들이 누리는 혜택은 커지는 것이다. 그러나 현재 진행상황으로 보아서는 낙관하기가 어렵다. 지금 세계경제는 자유무역주의와 신중상주의 흐름이 공존하고 있는데, 장기적으로 보면 자유무역주의가 정착될 것으로 예상되지만 당분간은 상호주의에 입각한 쌍무적 무역협상이 득세할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 정부와 기업들은 이들 두 가지 시나리오 모두에 대응할 필요가 있다.

이처럼 세계화가 급속히 진전되면 상품과 서비스는 물론 자본이나 인력, 기술이나 지식 같은 경영자원도 현재와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자유롭게 국경을 넘나든다. 글로벌 자본시장이 확대되고 외환관리 자유화로 국가 간 자본 유출입이 자유로워진다. 또 유휴 노동력이 국경을 넘어 이동하고 후진국 노동력이 선진국에 불법 이민하는 사례가 증가하면서 사회적으로 여러 문제점들을 야기시킨다. 물론 한국 기업의 경영층에도 외국인이 상당수 자리잡게 될 것이다. 전 세계의 첨단기술이나 지식도 정보화를 매개로 범세계적으로 공유되며 국가별로는 핵심기술 확보에 주력하게 될 것이다. 기업들 역시 기술력 확보를 위해 국경을 초월하는 M&A나 전략적 제휴, 그리고 지적소유권 매매가 활발해지고 세계 여러 나라가 공동으로 참가해서 하나의 제품이나 서비스를 만드는 국제분업이 일반화된다.

한편 기업 본거지 자체를 다른 나라로 옮기는 경우도 빈번해진다. 생산ㆍ판매ㆍR&D 기지를 해외로 이전하는 차원을 넘어 본사까지 해외로 이전하게 된다. 다국적 기업들은 정부의 규제완화 속도가 늦고 산업 인프라(infra-structure)가 낙후된 나라들을 외면하고 기업활동이 용이한 나라로 몰린다. 중전기 분야의 세계적 기업인 ABB가 스웨덴의 사회주의식 경제체제를 피해 스위스 취리히로 본사를 이전하고, 마쓰시타가 멀티미디어 본부를 실리콘밸리로 이전한 사실은 우리에게 큰 시사점을 준다.

우리 사회 일각에서는 해외 진출을 곱지 않은 시각으로 보는 경우가 있다. 국내기업이 경영기능의 일부를 해외로 이전하면 국내 경제는 실업이 증가하고 마침내 산업 공동화를 초래한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이야말로 시대적 흐름에 역행하는 사고방식이다. 우리처럼 천연자원이 빈약하고 산업화가 뒤진 나라가 열린 세상을 맞아 안으로 문을 닫아건다면, 자체적으로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실업증가와 산업 공동화는 어찌할 것인가. 국내 기업이 해외로 진출하는 것만큼 해외기업들을 국내로 유치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정부가 규제를 풀어 민간주도의 자유경제체제를 확립하고 행정의 개념을 ‘규제’에서 ‘서비스’로 전환하는 한편, 기업을 원활히 경영할 수 있도록 산업 인프라를 정비해야 한다. 영국의 윈야드라는 후미진 시골에 삼성전자가 공장을 건설할 때 영국 정부가 투자비를 지원하고 공장 설립에 따른 행정절차까지 대행해주었다는 사실은 열린 시대를 맞는 정부의 자세가 어떠해야 하는지를 가르쳐준다.

세계화 추세는 문화 면에서도 상당한 진척을 보일 것이다. 미국식 생활패턴을 모방하는 동질화 추세와 지역별, 문화권별로 자신들의 개성을 강조하는 다양화 추세가 병행된다. 정보통신 기술의 발달과 무역장벽 해소로 세계를 하나로 묶는 글로벌 시장이 등장하면서 인류 최고의 발명품이라 일컫는 미국식 실용주의적 라이프스타일이 전 세계에 확산됨으로써 이와 관련된 제품, 예를 들어 코카콜라나 빅맥 같은 식음료부터 나이키 신발에 이르기까지 글로벌 상품이 더욱 보편화된다. 반면 서구화 또는 미국화 추세에 거부하는 움직임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이처럼 사회가 다원화, 개성화됨에 따라 시장은 각 개인의 소득과 취향에 따라 세분화될 것이다. 이는 가장 세계적인 것 또는 가장 한국적인 것은 경쟁력을 갖지만 세계적이지도 한국적이지도 못한 상품과 서비스는 설 자리를 잃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세계화라는 거스를 수 없는 추세를 기업에게 위협요인이 될 수도 있고 기회요인이 될 수도 있다. 우선 위협요인부터 살펴보자. 시장경제체제가 45억 명으로 늘어나면서 동유럽, 아시아, 남미의 모든 국가들이 수출지향적인 정책을 추진하게 되면 세계경제는 과거와 비교할 수 없는 초경쟁 상태에 직면한다. 게다가 미국, 유럽, 동북 아시아를 중심으로 하는 경제삼극체제가 형성되어 치열한 경쟁을 더욱 부추길 것이다.

국내시장에서도 세계의 초일류 상품ㆍ서비스와 직접 경쟁해야 하며, 자본 자유화가 진전됨에 따라 해외 기업이 한국 시장에서 직접 M&A를 시도하고 해외 기관투자가들의 국내 기업에 대한 영향력이 더욱 커진다. 일본의 시장개방 과정에서 보듯 통상마찰의 내용도 시장개방 압력에서 구조조정 압력으로 전환되어 한국식 기업지배구조(corporate governance)와 거래관행에 이의를 제기할 가능성이 크다. 이 같은 초경쟁 시대에는 무수한 경쟁자들과 글로벌 시장에서 끊임없이 경쟁해야 하는 만큼 기업 생존의 문턱이 당연히 높아진다. 결국 평균적인 능력으로는 생존할 수 없는 일류들만의 경쟁시대가 펼쳐진다.

반면 일류가 되면 45억 명으로 확대된 글로벌 시장에 쉽게 접근할 수 있고 글로벌 자원을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다. 따라서 우리 기업들은 국내 시장에 안주하던 자세에서 벗어나 전 세계를 대상으로 판매망을 구축하고 지역적 강점을 활용하는 글로벌 경영에 매진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특히 시장경제체제에 새로 진입한 나라들에서 팔리는 제품이 첨단 고가제품보다 중저급 품질의 보급품이 주류를 이룬다는 점은 우리에게 커다란 기회요인으로 작용한다.

세계화 물결이 주는 시사점은 무엇인가?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초국적(transnational) 경영을 추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교과서에서 가르치는 초국적 경영과는 별개로 한국적 실정에 맞는 경영방식 개발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최근 우리 기업들이 세계화 벤치마킹 대상을 미국이나 일본 기업으로 삼고 있는데 이들의 경영여건과 우리의 경영여건은 매우 다르다. 좋은 예로 IBM이나 도요타 자동차는 우리보다 열 배에서 수십 배에 이르는 내수시장을 갖고 있으며 이를 기반으로 세계화를 진행한다. 해외에 진출할 때도 미국은 앞선 연구ㆍ설계 기술을 바탕으로, 일본은 최고의 생산기술을 진출국에 전수하는 방법으로 활동 범위를 넓혀간다. 그러나 우리는 미국이나 일본처럼 큰 내수시장이 없으며 뛰어난 기술력도 없다.

그 점에서 오히려 유럽 기업을 벤치마킹하는 것이 보다 효과적이다. 필립스, 네슬레, ABB처럼 자국 시장에는 생산량의 5∼10%만 판매하고 나머지는 모두 해외시장에서 소화하는 방식이 우리 현실에 적합하다. 또 진출대상 국가를 굳이 선진국으로 국한시킬 필요도 없다. 새로 시장경제체제에 편입된 나라들만 해도 무려 33억 명에 이르는 소비자를 보유한 시장이다. 제품도 굳이 첨단을 고집할 필요가 없다. 개도국이나 저개발국에는 오히려 중저가 제품이 어울린다. 카메라의 경우를 보자. 선진국 시장에서는 고가의 렌즈형 카메라나 최첨단 DSC(Digital Still Camera)가 잘 팔리지만 이 분야는 이미 일본 기업들이 장악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도 지구상에는 카메라 셔터를 눌러보지 못한 사람만도 수십억 명에 이른다. 이들에게는 오히려 100달러 미만의 실용적인 중저가 제품이 인기를 끈다. 따라서 중저가 제품을 타깃으로 하면 글로벌 시장에서 충분히 실익을 거둘 수 있다.

이 같은 전략을 실천하기 위한 선행조건이 글로벌 네트워크 조직을 구축하는 것이다. 우리 기업들은 최근 해외진출을 가속화하면서 지역별 또는 국가별 해외 본사를 설치하고 있는데, 해외 본사를 운영하는 방식에는 대략 두 가지가 있다. 중저가 제품으로 개도국 시장에 진출할 경우에는 현지완결형체제(localization)가 적합하다. 이는 핵심역량(core competence)에 해당하는 것은 모기업에서 가져오고 나머지 모든 권한과 책임을 현지 법인장에게 위임함으로써 현지밀착형 경영을 하는 것이다.

첨단제품으로 선진시장을 공략할 때는 글로벌 최적화 개념(globalization)이 보다 강점을 발휘한다. 만일 렌즈형 카메라를 만든다고 할 때 콘셉트는 한국, 설계와 브랜드는 독일, 디자인은 이탈리아, 생산은 동남아, 광고는 영국에서 각각 분야별로 나누어 만든 완제품을 미국 시장에 판매함으로써 글로벌 최적화를 이루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각 기능별로 세계 최고의 역량을 갖고 있는 지역에서 해당 기능을 수행하도록 하고, 한국 본사에서는 이들을 총체적으로 엮는 시스템화 능력이 요구된다. 이상의 현지완결형체제와 글로벌 최적화 개념을 결합한 것이 바로 초국적 경영이다.

네트워크화

네트워크화라는 흐름 역시 열린 세상의 전형적인 상징이다. 네트워크화란 정보기술(IT: information technology)이나 인간관계(human relationship)가 확산되어 공간적으로 떨어져 있는 여러 개체들이 연결(네트워킹)됨으로써, 개체들 사이를 가로막는 비가시적 공간의 벽이 무너지고 개념적인 거리가 줄어들며 정보와 지식이 자유롭게 유통되는 현상을 말한다.

여기서 핵심을 이루는 네트워킹의 수단에는 정보기술을 이용한 정보네트워크(information network)와 인간관계를 활용한 휴먼네트워크(human network)가 있다. 제3밀레니엄 초에는 정보네트워크와 휴먼네트워크가 시공의 한계를 넘어 전 세계적으로 광범위하게 구축되는데, 네트워크가 형성되기 위해서는 기술적인 것에 앞서 신뢰(trust) 구축이 선행되어야 한다.

정보네트워크를 살펴보자. 정보네트워크에 대해 이야기할 때면 무엇보다 먼저 컴퓨터를 떠올리게 되고 컴퓨터에 익숙하지 못한 세대들은 지레 겁부터 먹는다. 그러나 정보화는 이 시대를 사는 우리의 생활상을 직간접적으로 바꾸어 놓고 있는 피할 수 없는 흐름이다. 우선 PC통신을 보자. PC통신을 통해 세계 어느 곳, 누구와도 대화할 수 있으며 사이버 마켓에서 쇼핑을 할 수도 있다. PC통신의 발달은 권력의 이동을 초래하기도 한다. 힘의 원천이 권력에서 정보로 옮겨진다는 의미다. 가령 추석이나 설날 지방으로 가는 비행기 표를 미리 구하지 못했다고 하자. 과거 같으면 소위 힘있는 사람에게 표를 구해 달라고 청탁한다. 그런데 지금은 힘있는 사람보다 더 큰 힘을 가진 것이 PC통신이다. 출발 전날 천리안이나 유니텔에 들어가 항공사에 접속하면 몇 분 안에 원하는 시간대의 항공권 몇 장을 쉽게 ‘사냥’할 수 있다.

정보화의 실용사례 중 하나가 인터넷이다. 인터넷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정보기술에 해박한 전문가들이나 사용하는 도구로 알았다. 그러나 이제는 C&C(computer & communication) 장비와 정보기술에 대한 기초지식만 있으면 누구나 인터넷에 들어가 정보를 수ㆍ발신할 수 있다. 초등학생이 홈페이지를 만들고, ‘정월 보름날의 놀이와 음식’이라는 학교 숙제를 인터넷으로 해결하는 것이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

정보화 진전은 행정처리에까지 영향을 미쳐 시민들은 한 단계 높아진 행정 서비스를 경험하고 있다. 종전에 여권을 발급 받으려면 동사무소에 가서 서류를 만들어 외무부 여권과에 제출했다. 그러나 행정부 간 전산망이 연결되면서 구청에서 신청하고 구청에서 발급받을 수 있게 되었다. 행정처리가 전산망으로 모두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주민등록등본 같은 서류도 마찬가지다. 일일이 동사무소를 찾지 않더라도 역이나 백화점에 있는 출장소에서 발급받을 수 있다. 이처럼 정보화는 공간의 장벽을 허물고 열어줌으로써 세상을 더욱 편리하게 만들고 불합리한 사회적 낭비를 줄여주며 모든 일에 스피드를 높여준다.

기술과 사회의 관계를 설명하는 데는 현재 두 가지 주장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 사회적 필요성에 따라 기술이 발전한다는 주장과 기술발전이 사회변화를 선도한다는 주장이 그것이다. 필자는 정보기술 분야에서만큼은 기술발전이 세상을 바꾸고 있다는 측의 손을 들어주고 싶다. 예를 들어 정치문제를 보면 제3밀레니엄 초반에는 정보화로 인해 시민들의 직접정치가 몇천 년 만에 부활할지도 모를 일이다.

지금은 국회의원이나 대통령에게 정치를 맡기는 간접방식에 의존하고 있지만 미래에는 PC통신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의견을 직접 개진할 것이다. 정부나 정당이 어떤 정책을 발표하거나 시행하면 PC통신에는 의견이 봇물처럼 쏟아져 들어오고 그 결과가 바로 여론화된다. 행정가나 정치가들은 PC통신에 모인 의견을 참조해서 정책을 수정하게 된다. 이로 인해 시민단체들의 영향력이 커지고 정치권력에 대한 민간제어기능이 강화됨으로써 선거유세, 정치적 조직화, 투표 등 정치문화 전반에 걸쳐 많은 변화가 일어난다. 이는 PC통신으로 인해 시민이 직접 참여하는 정치가 확산되는 것이지 어느 한 사람이나 집단이 직접정치의 필요성을 깨닫고 이를 강력히 주장해서 PC통신이 확산되는 것은 아니다.

이야기를 되돌려 정보기술에 대해 살펴보자. 많은 사람들이 정보기술에 대해 이야기할 때면 주로 네트워킹 기술을 염두에 둔다. 정보기술의 발달과정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로 설명할 수 있지만 대개 세 단계로 나누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 첫 번째가 자료처리(data-processing) 단계다. 우리가 사용하는 컴퓨터 또는 전산기기(電算機器)라는 용어 자체에 계산을 한다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듯이, 초기 정보기술 개발에는 주로 개별적으로 독립되어 있는 스탠드얼론(stand-alone)형 기기를 통해 대량의 정보를 신속 정확하게 처리하는 데 주안점을 두었다. 두 번째가 경영정보를 지원하는 단계(MIS: Management Information System)다. 정보기기가 대량의 정보를 처리해줌으로써 사람의 일손을 대신하는 차원을 넘어 정보처리 결과물을 주요 의사결정을 내리는 기초자료로 활용하는 수준까지 진전한 것이다. 세 번째가 네트워킹 단계다. 1979년 NEC 회장으로 취임한 고바야시(小林宏治)라는 선각자는 ‘C&C’라는 용어를 창안하면서, 그때까지 전혀 다른 영역으로 취급되던 computer 기술과 communication 기술이 서로 융합되어 완전히 새로운 기술진전이 이루어진다고 예견했다. 고바야시가 ‘and’라는 단어 대신에 ‘&’라는 기호를 쓴 것은 단순한 물리적 결합이 아니라 화학적 결합이 일어난다는 것을 의미한 것이었으며, 이를 실현시킨 매체가 반도체 기술이고 그 결과물이 네트워킹 기술이다.

정보기술은 미래에 더욱 가속적으로 발전할 것이며 그 방향성은 고속화, 대용량화, 복합화, 접근용이성의 네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고속화에 있어서는 정보처리기술, 정보축적기술, 정보통신기술이 동시에 빨라진다.

둘째, 기억매체에 있어서는 대용량화와 소형화가 진전된다. 셋째, 복합화는 멀티미디어화가 진전되는 모습으로 나타날 것이다. 넷째, 접근용이성 측면에서는 인터페이스의 개량에 따라 정보기기 조작이 간편해지고 휴대화 기술이 발달하여 전 세계의 정보에 쉽게 접근할 수 있게 된다. 이에 따라 노트북PC, 휴대전화, 휴대형 정보단말기(PDA: Personal Digital Assistant) 등은 일상용품으로 자리잡을 것이다. 「컴퓨터월드」지는 “지난 30년 동안 컴퓨터 산업이 발전한 속도로 자동차 산업이 발전했다면 현재 롤스로이스 한 대의 생산원가는 2.5달러, 휘발유 갤런당 주행거리는 2백만 마일에 달하게 되었을 것이다.”라는 내용의 기사를 게재했다.

이런 식으로 정보기술이 빠르게 진전되면 제3밀레니엄 초에는 AT&T가 슬로건으로 내걸고 있는 ‘언제 어디서나(anytime, anywhere)’라는 모토가 허황한 구호가 아닌 현실로 다가오게 된다. 그렇게 되면 전 세계에 산재된 정보들이 자유자재로 유통되면서 새로운 가치창조의 핵심수단으로 부각될 것이며, 사람 간 또는 문화 간 이해의 격차는 줄어들고 다양화, 탈대량화, 분권화가 진전된다. 또 정보기술의 발달은 무역장벽의 붕괴와 맞물려 세계를 하나로 묶는 글로벌 시장을 등장시킬 것이다. 다니엘 벨이 밝힌 것처럼 생산의 중심이 정보나 서비스로 집중되면서 정보와 지식이 사회적, 경제적 교환수단으로서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정보기술의 진전은 아직은 생소하게 들릴 수 있는 ‘연결의 경제(economies of linkage)’라는 새 장을 열고 있는데, 이 개념은 조만간 기업 이윤추구의 핵심전략으로 채택될 것이다. 지금까지 우리 산업이나 기업들은 주로 규모의 경제(economies of scale)를 통해 이윤을 창출했다. 규모의 경제는 생산규모를 늘리면 설비나 토지 같은 고정자산에 투자했던 비용들이 여러 생산품에 분산되므로 단위당 비용이 낮아지는 효과를 준다. 또 생산량을 늘리는 과정에서 축적된 경험이 학습효과를 가져와 생산단가가 낮아지기도 한다. 우리나라가 경쟁력이 있다고 하는 제철, 자동차, 반도체, 유화, 조선 같은 산업이 이 같은 규모의 이점(scale merit)을 통해 성장했다.

여기서 나아가 최근에는 범위의 경제(economies of scope)가 널리 확산되고 있다. 이는 설비나 토지 같은 생산기반을 여러 제품을 생산하는 데 공통적으로 사용하여 효율을 올리고 비용을 절감하는 것이다. 또한 고객의 니즈에 맞도록 제품의 범위를 다양화시킴으로써 고객만족도를 높여 매출액을 늘리고 부가가치를 높인다는 개념도 들어 있다. 이와 달리 연결의 경제는 외부와의 네트워킹을 통해 원가를 줄이는 방식이다. 따라서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이 연결의 경제를 활용하려면 거래비용(transactional cost)이 관리비용(bureaucratic cost)보다 싸게 먹혀야 한다.

관리비용이란 기업규모가 확대되는 과정에서 생기는 피라미드의 무게로 생각하면 된다. 의사전달을 하는 데 드는 비용, 대규모 조직에 따른 대기업병이나 관료주의로 인한 비용, 조직의 방향성을 통일시키는 데 드는 비용, 조직을 관리ㆍ통제하는 데 드는 비용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이는 소규모 조직일 경우에는 부담이 되지 않지만 조직 규모가 커질수록 그 비용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특히 구미기업에 비해 일본이나 우리 기업들은 관리비용이 상당히 높게 나타나는데, 그것은 자력주의(自力主義)에 의한 결과로 해석된다.

자력주의는 필요한 모든 기능을 조직 내부에 끌어안고 조직 내부에서 완결하는 방식을 말한다. 구미의 경우는 노동시장이 유연하여 사람이 필요하면 외부에서 데려오지만 한국과 일본기업에는 신입사원을 채용해서 각자의 필요에 맞도록 재교육시키고 대부분 정년이 보장되는 종신고용제가 관행화되어 있다. 전산설비만 해도 리스를 택하지 않고 구매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계열기업군 차원에서 보면 다운스트림(downstream)에 있는 기업이 원자재를 외부에서 구매하기보다는 오히려 업스트림(upstream)에 있는 회사를 새로 만들거나 M&A하여 수직계열체제를 구축한다. 이런 경향은 100평짜리 전셋집보다는 10평짜리라도 내 집을 가져야 마음이 편하다는 심리적 태도에 기인하는 바가 크다.

자력주의는 외부의 경영환경이 크게 변하지 않고 고도성장이 유지되는 경우에는 높은 수익을 보장한다. 아무리 생산량이 증가해도 미리 투자된 고정자산으로 감당할 수만 있다면 고정비가 추가되지 않고 변동비도 늘지 않으므로 전체비용이 절감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경영환경이 급변하고 성장률이 둔화될 경우 자력주의는 커다란 걸림돌이 된다. 생산량이 얼마 되지 않는데도 일정액의 고정비를 부담해야 하므로 수지가 악화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저성장기에는 가능한 한 고정비 투자를 줄이고 필요할 때마다 외부에서 자원을 조달하는 방식이 유리하다.

자력주의로 생기는 관리비용을 줄이는 방법은 무엇인가? 경영자원을 가능한 한 외부에서 조달하는 방식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본다. 기업의 핵심역량에 부합하고 높은 부가가치를 올릴 수 있는 부분은 계속 확대ㆍ발전시켜 나가면서 나머지는 아웃소싱(outsourcing)을 통해 조직의 몸체를 가볍게 하는 것이다. 그런데 아웃소싱을 확대하는 데는 고려할 점이 있다. 아웃소싱의 상대가 통제의 범위를 벗어나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발생하는 비용이 소위 거래비용이다. 단적인 예로 협력회사의 노사분규로 핵심부품 몇 개가 제때 들어오지 않으면 모회사 전체가 생산라인을 세워야 한다. 필요한 사람을 외부에서 데려다 쓰고 싶어도 필요한 사람을 즉시 데려오기가 그리 쉽지만은 않다. 다른 회사와 전략적 제휴를 했더라도 서로 의사소통을 하고 공동작업을 하는 데 생각지도 못했던 장애요인들이 나타난다. 이 모두 거래비용에 해당하는 것들이다. 결론적으로 관리비용과 거래비용을 저울질해서 관리비용이 낮으면 자력주의로 나가고 거래비용 부담이 더 적다면 아웃소싱을 택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최근 우리 경제는 저성장기를 맞고 있으며 과거 자력주의라는 원칙에서 선투자했던 고정자산들이 경영상의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우리 기업들이 자력주의를 채택했던 것은 거래비용보다 관리비용이 훨씬 적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기업 규모가 커지고 정보기술이 가속적으로 발전하면서 상황이 바뀌고 있다. 조직확대에 따른 피라미드의 무게가 계속 커져 관리비용 부담이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는 반면 정보기술의 발달로 외부 거래비용은 점차 줄고 있다. 아직 제조 중심의 하드형 산업에서는 이런 움직임이 덜하지만 지식이나 정보가 중심이 되는 소프트형 산업에서는 급격히 진행되고 있다.

예전에 서류를 전달하고 공동으로 작업하던 것 자체가 이제는 책상 위의 PC 하나로 해결된다. 대표적으로 보잉사가 777모델을 개발할 때 일본업체와 협력한 사례를 들 수 있다. 미국과 일본은 밤낮이 바뀌는 시차를 이용해 미국에서는 낮에 개발하고 밤이 되면 일본으로 작업 결과를 넘긴다. 일본에서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작업한 후 다시 미국으로 넘기는 식으로 네트워킹을 통해 개발기간을 획기적으로 단축시켰다. 이 같이 조직 외부와 네트워킹을 구축함으로써 거래비용을 다소 부담하더라도 내부의 관리비용을 대폭적으로 줄이는 효과가 바로 ‘연결의 경제’에서 나온다. 이처럼 미래에는 정보를 중심으로 자원과 자본 등 모든 경영자원이 글로벌 차원으로 네트워킹되면서 경영 전 부문에 걸쳐 혁신적인 변화를 가져올 것이다.

주제를 바꿔 휴먼네트워크를 살펴보자. 흔히 네트워크라 하면 주로 정보네트워크만 떠올리게 되는데 사람과 사람 사이를 엮는 휴먼네트워크도 그 못지않게 중요하다. 학습조직에 대해 알고 싶다면 인터넷으로 정보를 검색하는 방법도 유효하지만 학습조직에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는 사람을 찾아가 점심식사를 하면서 한두 시간 대화를 나누는 것이 더욱 효과적일 수도 있다. 커뮤니케이션은 일방향일 때보다 쌍방향일 때 훨씬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정보화가 일상화되지 못한 상황에서는 우리 민족의 정서상 정보네트워크보다는 휴먼네트워크가 더 자연스러운 면도 무시할 수 없다.

우리는 휴먼네트워크를 강조하면 괜히 색안경을 끼고 보는 시각이 있다. 아마도 과거의 정경유착에서 비롯된 것일 것이다. 그러나 일본의 한국계 청년 기업가인 손정의(孫正義)가 빌 게이츠와 손잡고 ‘소프트뱅크’라는 일본 최대의 소프트 전문회사를 일군 것이 그가 빌 게이츠와 학창시설을 같이 한 인연에서 출발했다는 것을 보면 휴먼네트워크의 가치가 두드러진다. 우리 기업들이 세계 일류기업과 전략적 제휴를 하는 과정에서 일이 꼬이는 경우가 많은 것도 제휴라는 것이 단순히 ‘business to business’식으로 전개되는 것이 아니라, 그 이면에는 ‘human to human’이라는 네트워크가 작용한다는 점을 간과했기 때문이다.

네트워킹과 관련한 마지막 주제로 신뢰에 대해 살펴보자. 네트워크와 신뢰 간에는 관련성이 없어 보인다. 그러나 아무리 물리적으로 훌륭하게 네트워킹을 하더라도 그 바탕에 신뢰가 없으면 무용지물이 된다. 서로 상대를 믿지 못하면 네트워킹이라는 메커니즘이 작동하지 않기 때문이다. 만일 보잉777을 설계하면서 미국이나 일본 기업 중 누구라도 사전에 정한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면 공동개발 자체가 무산되었을 것이다. 모기업과 협력회사의 관계도 약속대로 부품이 입고되지 않으면 생산 자체가 불가능해진다. 신뢰가 없이는 네트워킹 자체가 존립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안타까운 것은 프란시스 후쿠야마가 「트러스트」라는 책에서 주장한 것처럼 우리 사회의 신뢰에 대한 문제다. 후쿠야마는 선진국의 가장 큰 사회자본은 그 사회 전반에 깔려 있는 신뢰이며, 미국이나 일본은 이러한 신뢰가 깔려 있으나 한국이나 중국, 이탈리아는 신뢰형성의 범위가 가족 단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Fukuyama, 1995). 그중 한국은 예외적으로 정부가 개입을 해서 가족 단위의 신뢰를 사회 전반까지 확산시킴으로써 대기업이 성장할 수 있었지만, 대만이나 이탈리아는 그렇지 못해 아직도 가족 중심의 중소기업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렇게 볼 때 우리나라는 만일 정부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하면 우리 사회를 지탱하는 신뢰가 일거에 허물어질 수 있다는 가능성을 안고 있다. 그런데 불행히도 우리는 최근에 그것이 현실로 나타나고 있음을 목격하고 있다. 여러 부실기업들의 도산처리가 지연되면서 나라 전체가 엄청난 비용을 부담하는 것이나 노사분규가 격렬한 것도 모두 신뢰가 결여되어 있기 때문이다. 과연 이 정도의 사회적 신뢰로 네트워킹화의 흐름을 수용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점에서 우리는 커다란 숙제를 안고 있는 것이다.

지식창조화

지식창조화는 지식화와 창조화를 합친 말로 이를 줄여 ‘지창화’라고도 할 수 있다. 앨빈 토플러는 「제3의 물결」이라는 명저를 통해 제2의 물결에서는 토지나 노동, 자본이 주된 생산요소였으나, 제3의 물결에서는 데이터, 정보, 이미지, 심볼, 문화를 포함하는 지식이 가장 중요한 자원으로 등장하게 되고, 무한한 자원인 지식이 가장 부가가치가 높은 요소로서 다른 모든 생산요소를 대체한다고 했다(Toffler, 1991). 이처럼 지식은 고부가가치를 주며 남의 것을 베낀 모방보다 독창적인 지식이 더욱 높은 가치를 갖는다.

지난 수세기 동안 계속되었던 자본을 바탕으로 하는 물재생산 중심의 시대는 지나고, 앞으로는 지식이 힘(power)의 원천이 되는 지식사회(知識社會)의 초기 모습이 등장한다. 이는 우리 사회의 선행지표인 미국이나 일본에서 뇌업사회(腦業社會), 지력사회(知力社會), 지가사회(知價社會)라는 현란한 용어들이 등장한 것만 봐도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다. 이런 흐름은 이미 현재진행형이라고 보아도 무방하다. 가령 반도체 메가D램을 조기에 개발해서 발매하면 그 가격은 수십 달러에 이른다. 그중 전통적인 원가인 토지, 노동, 자본으로 인한 비용은 극히 일부이고 대부분이 지식창조의 몫이다. 또한 메가D램 같은 대량생산제품보다 ASIC 같은 주문형 반도체의 부가가치가 훨씬 높은 것 역시 지식창조의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기 때문이다.

제3밀레니엄 시대가 지식사회로 진행하는 이유는 무엇 때문인가? 첫째, 기술발전과 확산이 더욱 가속화되기 때문이다. 기존의 지식과 기술이 급속하게 노후화되고 정보기술의 혁신적인 발달로 기술의 라이프사이클이 점점 짧아져 지식의 재충전이 필요해진다. 생산기술은 더욱 유연하고 지능화되며 소프트화된다. 또한 DVD(Digital Video Disk) 같은 새로운 기술을 산업의 사실상의 표준(de facto standard)으로 부상시키는 것처럼 기술상업화를 통해 이익을 창출하는 것이 R&D 분야의 핵심과제로 부각된다. 특히 액정이나 메가D램 기술과 같이 부품 자체가 상품이 될 수 있는 전략부품의 개발이 시급해진다. 둘째, 전방위(全方位) 무한경쟁이 진행되기 때문이다. 제3밀레니엄 초기에는 융업화와 기업 간 제휴로 업종 간 구별이 없는 경쟁이 야기되고, 정보화와 물류 발달로 인해 지역 간 구별이 없는 경쟁이 전개된다. 따라서 핵심역량에 기반을 둔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경쟁우위를 확보하고, 지속적으로 선두를 고수하지 않으면 생존을 장담할 수 없는 창조의 시대가 열리게 되는 것이다.

이야기를 바꾸어 국가 전체의 산업구조에 대해 살펴보자. 산업구조는 1차산업보다 2차산업이, 2차산업보다 3차산업의 비중이 높아짐에 따라 점차 고도화된다. 이는 다시 말해 지식창조의 비중이 높아진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한국은 경제의 기반을 이루고 있는 반도체, 자동차, 철강, 조선, 유화 같은 2차산업을 포기하고 금융업, 서비스업이라는 3차산업으로 이행해야 하는가? 이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며, 그 대안으로 ‘0.5차 더하기’를 제시할 수 있다. 1차산업은 1.5차로, 2차산업은 2.5차로, 3차산업은 3.5차로 반 단계씩 발전하는 것이다.

농산물을 밭떼기로 중간상에게 넘기지 않고 가공해서 판매하면 부가가치가 올라간다. 이처럼 2차산업도 지식의 비중을 높이면 2.5차가 된다. IBM의 경우 자신들은 2차가 아니라 2.5차라고 선언한 지가 벌써 십수 년이 지났다. 언젠가 「Harvard Business Review」에는 ‘미래에 세계를 석권하는 컴퓨터 회사는 컴퓨터를 만들지 않는 회사’라는 역설적인 내용이 게재되었다(Rappaport, 1991). 시장을 제패하는 회사는 컴퓨터를 만드는 회사가 아니라 컴퓨터 시스템을 설계하는 회사라는 것이다. 고객 회사를 분석해서 원가계산에 문제가 있고 이로 인해 판매가격이 잘못 책정되었다는 점을 지적해준 후, 소위 ABC원가제도(Activity Based Costing) 도입을 권고하고 이를 위한 시스템을 설계해준다는 식이다. 이렇게 되면 컴퓨터를 만드는 회사는 시스템 설계회사의 하청업체로 전락하고 시스템 설계회사, 즉 지식의 창조자가 부가가치를 독점하게 된다.

이처럼 지식창조가 중요해지면 화이트칼라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 ‘골드칼라(gold-collar)’라는 계층이 사회의 핵심 계층으로 부상한다. 이들은 고도의 창조력과 두뇌력으로 무장한 크리에이터, 디자이너, 마케터 등의 전문 직능인 또는 지적 노동자들로서 정보와 지식을 수집ㆍ분석ㆍ창조하는 ‘상징 분석가(symbolic analyst)’들이다. 옛날 왕정시대나 군주시대에 천 명이 한 명의 군주를 먹여 살렸다면 현재는 천 명이 천 명을 먹여 살리는 세상이고, 미래는 한 명의 천재가 천 명의 대중을 이끌고 가는 시대가 올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천재가 바로 골드칼라인 셈이다.

지식창조화라는 키워드가 기업에 주는 시사점은 지식창조경영(knowledge-creating management)과 골드칼라 확보에 주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 기업의 현실은 지식창조와는 아직도 요원한 편이다. 반도체, 자동차, 조선 같은 몇몇 제품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이 선진 제품을 모방한 것이고 나름대로의 독특한 지식을 부가하지 못한 채 저원가 대량생산에 의존하고 있다. 한마디로 지식창조화 시대에 걸맞은 상품이나 서비스 개발은 거의 진척이 없다. 더욱이 지식창조의 기반이 취약하고 내부조직 간의 벽이 높아 기존 지식의 공유나 축적조차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미래에 전개될 지식창조화 시대에는 소위 재벌(財閥)보다 지벌(知閥)이 더 큰 힘을 발휘하며 기업의 가치도 지식을 전략적으로 획득ㆍ창조ㆍ분배ㆍ적용할 수 있는 능력에 의해 좌우된다. 또한 선두를 따라가는 캐치업(catch-up) 전략보다 창조를 통해 기회를 선점하는 전략을 구사해야 사업성공률이 높아진다. 따라서 기업은 수익성이 낮은 성숙시장에서 점유율 경쟁을 벌이는 것보다 창조적이고 선도적인 기술이 요구되는 새로운 시장에서 기회를 선점하는 데 주력해야 한다.

소비자 니즈도 생존욕구의 충족에서 자기실현의 단계로 욕구수준이 높아졌기 때문에 신상품이나 신사업의 창조가 불가피하게 되었다. 따라서 기업은 기술, 상품, 프로세스 등 모든 분야에서 창조력을 발휘해 경쟁력을 확보해야만 영속성을 이어갈 수 있다. 결국 기업은 모든 경영방식을 지식창조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바꾸어가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한편 창조적 집단인 골드칼라가 사실상의 산업표준과 전략부품을 창조하여 경쟁환경을 장악하게 되므로 이들을 확보하고 효과적으로 양성하는 것이 기업경영의 중요한 과제로 등장한다. 골드칼라를 확보하는 방법도 지금처럼 굳이 내부 인력화를 고집할 필요가 없다. 계약직, 파트너, 자문역처럼 어떠한 형태를 유지하든지 그들과 두뇌 네트워크를 형성해서 활용하면 될 것이다.

복합화

머지않아 사회, 문화, 기술, 산업, 기업경영 등 전 분야에서 복합화를 통해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는 활동이 활발하게 전개된다. 복합화란 서로 다른 성질을 가진 요소들이 물리적 또는 화학적으로 결합되어 시너지를 냄으로써 새로운 가치가 창조되는 현상을 말한다. 따라서 복합화가 이루어지려면 먼저 물리적 또는 화학적 결합이라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일례로 TV와 VCR을 합친 TVCR은 물리적 결합이다. 겉으로는 하나의 제품이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두 개의 제품이 결합되어 각각의 기능을 발휘함으로써 부가가치를 높인다. 그러나 이는 두 개의 제품이 하나로 포장된 것에 불과하다. 화학적 결합이 되려면 언젠가 출현할 자동번역 무선전화기처럼 전화기 속에 음성인식기술, 반도체기술, 통신기술 등 여러 이질적인 기술이 융합되어 시너지가 창출되고, 고객이 신제품으로 인식할 수 있는 새로운 가치가 창조되어야 한다.

복합화라는 용어는 우리에게는 생소하지만 일본에서는 10여 년 전부터 기술ㆍ산업 분야에서 유행했던 것으로, 일본의 통산성이 미국의 앞선 기술을 따라잡기 위해 머리를 짜낸 아이디어다. 그 결과 전자제품과 관련된 대부분의 기초기술은 미국이 개발했지만 일본은 여기에 경박단소(輕薄短小)를 지향하는 상품화 기술을 부가함으로써 세계 최고의 가전제품 생산국으로 자리잡았다.

현재 상황을 미루어 볼 때 앞으로 약 10년간은 획기적인 발명이나 발견을 기대하기가 어렵다고 한다. 그러나 정보화 진전에 따라 앞서 말한 범위의 경제와 연결의 경제가 확산되어 복합화가 진전되면 기존의 독립된 기술이 상호 결합된 새로운 기술이 활발하게 나타날 것이다. 이 같은 예측은 이미 어느 정도 현실화되고 있다. 메카닉스(mechanics)와 일렉트로닉스(electronics)가 합쳐져 메카트로닉스(mechatronics), 케미컬(chemical)과 일렉트로닉스(electronics)가 합쳐져 케미카트로닉스(chemicatronics)가 출현했다. 또 바이오켐트로닉스(biochemtronics)는 바이오(bio)와 케미컬(chemical), 일렉트로닉스(electronics)가 결합된 것이다.

지금도 메카트로닉스는 상당히 응용되고 있다. 과거에는 자동차를 당연히 기계제품으로 분류했다. 그러나 고급 차종의 경우에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전통적으로 기계에 해당하는 차체나 엔진의 비중이 낮아진 반면 전자제품이나 소프트웨어가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졌다. 이 경우에는 원가 구성비에서 볼 때 오히려 후자의 비중이 훨씬 더 높다. 결국 자동차는 기계제품일 수도 있고 전자제품일 수도 있는 것이다. 더욱이 자동차에 전화기, 팩스, 카네비게이션 같은 전자제품이 계속 추가되는 추세를 감안하면, 자동차를 전자ㆍ통신제품에 바퀴 네 개를 단 것으로 분류해야 할지도 모를 일이다. 이처럼 완전히 독립된 기술로 간주되던 별개의 기술이 융합되고 여러 기술이 합쳐진 복합제품이 보편화되면 업종 간 그리고 상품ㆍ서비스 간의 경계가 모호해진다.

복합화의 흐름이 기업에 주는 시사점은 무엇인가? 복합화를 기업 가치창조 흐름의 전 과정에 적용하는 복합경영이 요구된다. 가치창조 흐름의 상류(上流)에서는 시즈(seeds)의 복합화, 중류(中流)에서는 디즈(deeds)의 복합화, 하류(下流)에서는 니즈(needs)의 복합화라는 차원에서의 복합화가 추진되어야 한다. 이 용어들은 운율을 맞추기 위해 만든 작위적 냄새가 나지만 시즈(seeds)는 사업의 씨앗이 되는 기술, 디즈(deeds)는 제반 운영(operation), 니즈(needs)는 고객의 요구를 말한다.

이를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시즈의 복합은 위에서 언급한 메카트로닉스처럼 서로 다른 기술의 복합화를 통해 이제껏 소개되지 않은 새로운 기술을 창조하여 상품화로 연결하는 것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기업은 제품 리더십이 강화된다.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 전자, 통신, 소재, 기계, 화학 등 개별 기술력에서는 선진기업에 비해 절대 열위의 상태에 있지만 계열기업군들이 이업종 다각화를 추진한 결과, 한 계열기업군이 여러 기술을 모두 보유하고 있으므로 복합화의 측면에서는 선진기업보다 상대적으로 유리한 점이 있다. 이런 강점을 살려서 비록 일류기술은 못되지만 복합화를 통해 선진기업이 개발하지 못한 새로운 니치(nitch)기술을 개발할 수 있다면 매우 바람직한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디즈의 복합은 리엔지니어링(BPR), 동기설계(concurrent engineering)처럼 경영 프로세스를 복합하여 원가 절감, 스피드 제고, 품질 향상을 도모하는 것이다. 여기에 정보기술의 진전을 바탕으로 여러 주체들 간에 네트워킹이 이루어지면 규모의 이점이나 범위의 이점을 뛰어넘어 연결의 이점을 향유할 수 있다. ‘공통생산’을 통해 다품종소량생산이 가능해지며 ‘공유생산’을 통해 부가가치를 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니즈의 복합은 고객이 개별적으로 구입하는 제품과 서비스를 통합하여 고객의 니즈를 총체적으로 만족시켜 주는 ‘고객 니즈 토탈솔루션형’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다. 와츠 왜커가 ‘21세기에 시장을 주도할 새로운 개념은 제품과 서비스의 통합이나 제품과 서비스 간의 경계 와해’라고 제시한 것처럼, 미래의 고객들은 자신들의 니즈를 복합적이고 총체적으로 충족시켜 주기를 원한다. 이를 위한 해결책이 모듈(module) 방식을 활용한 매스커스터마이제이션(mass-customization)이다. 이 방식은 양립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개별주문생산과 일괄대량생산의 장점만을 취함으로써 개별 고객의 요구를 충족시키는 동시에 대량생산처럼 원가를 낮추는 방식이다. 즉, 미리 고객을 세분화하고 고객의 니즈에 맞는 모듈을 대량으로 만들어 놓은 후 고객의 요구에 따라 해당 모듈을 조합해서 생산하는 것이다. 기업은 이 방식에 의해 대량생산의 원가로 주문생산의 개별요구를 만족시켜줌으로써 다양하고 복합적인 고객의 니즈에 대응할 수 있다.

가령 미국에 있는 주재원이 한국으로 귀임한다고 가정하자. 귀임하는데 필요한 일이 상당히 많을 것이다. 비행기표 사는 것부터 이삿짐 옮기는 것 등 생각하기조차 버거울 정도이며 자칫 몇 가지를 놓쳐 중대한 실수를 범할 수도 있다. 이런 경우 토탈솔루션 서비스를 적용한다면 먼저 문제 정의(problem-defining)부터 시작해서 귀임에 필요한 일을 정의하고 이를 모듈화시킨다. 그리고 각 모듈에 대해 고객의 요구 수준에 따라 각각의 서비스 수준을 결정한 후 네트워킹을 통해 ‘문제 해결사’를 모아 총체적인 서비스를 해줌으로써 궁극적으로 고객의 문제를 해결(problem-solving)하는 것이다. 이런 서비스의 원형을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가 있다. 몇 개의 금융회사가 함께 고객플라자를 개설한 뒤 정년 퇴직한 고객을 대상으로 저축 얼마, 부동산 투자 얼마, 주식투자 얼마 하는 식으로 자산운용 포트폴리오(portfolio)를 자문하고, 고객이 이를 승낙하면 각 금융회사들이 자금을 나누어 운영하는 방식이다.

상생화

상생화란 여러 주체들이 자기 이익만을 다투는 이기주의의 장벽을 허물고 서로 힘을 합쳐 시너지를 내는 이타주의의 길로 나아감으로써 더불어 발전하는 현상을 말한다. 이를 영어식으로 표현하면 win-lose에서 win-win으로 전환하는 것이며, zero-sum 대신 positive-sum을 추구하는 것이다. 한정된 ‘파이(pie)’를 서로 차지하기 위해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파이를 먼저 키워 놓은 후에 이를 나누는 방식이다.

여러 주체들이 세상을 살면서 상호관계를 맺는 데는 크게 상충(相衝)과 공생(共生)의 두 가지 방식이 있다. 갑이라는 주체와 을이라는 주체가 서로 부딪쳐 충돌하는 것이 상충이다. 이와 반대로 공생은 갑과 을이 더불어 살아가는 유형으로 편리공생(便利共生), 상리공생(相利共生), 상승공생(相乘共生)의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편리공생은 더불어 살아가되 한쪽 편이 일방적으로 이익을 얻는 유형이고, 상리공생은 서로 이익을 주고받는 상호 부조관계를 갖는다. 상승공생은 양쪽이 서로 이익을 주고받는 과정에서 시너지가 생기는 것으로서 공생의 관계를 맺기 전보다 그 이익이 더 큰 경우를 말한다. 세 유형 중 가장 바람직한 형태가 상리공생으로 이를 달리 말하면 상생(相生)이라고 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시장경제체제에서는 경쟁에서 이기는 것이 최선이다. 경제교과서의 제일 앞에 위치한 아담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invisible hand)’ 역시 완전경쟁의 상태를 가정한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치열하게 경쟁하기보다 서로 협력할 때 더 크게 성장하는 사례를 종종 볼 수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의 포도주 산업을 보자. 포도주 하면 으레 프랑스를 떠올린다. 물론 세계 포도주 시장은 프랑스가 석권하고 있지만 중저가에서는 캘리포니아가 바짝 추격하고 있다. 캘리포니아가 여기까지 성장한 것은 두 나라 포도주 업체의 경영방식이 달랐기 때문이다. 프랑스는 경쟁하는 상충관계를 유지했고 캘리포니아는 협력하는 상생관계를 유지했다. 프랑스의 포도주 업자는 다른 업자를 모두 경쟁자로 간주했지만 캘리포니아 포도주 업자들은 서로 협력하여 프랑스 포도주에 대응했다. 기술 개발, 품종 개량, 광고선전을 공동으로 했으며 기상예측에 드는 비용도 공동으로 분담했다. 그 결과 캘리포니아 포도주는 중저가 시장에서만큼은 프랑스를 따라잡을 수 있었다.

상생화의 중요성이 부각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경쟁의 속성이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기존의 홀로서기(stand-alone) 경쟁이 한계에 봉착하면서 제휴(alliance)의 경쟁이 부각되고 있다. 세계화 진전에 따라 기업 간 경쟁이 격화되고 기술 수준이 비약적으로 발전함에 따라 어느 기업도 필요한 기술을 독자 개발하기가 불가능해졌다. 이에 따라 일류기업 간에는 기술을 주고받는 등 상생을 추구하는 움직임이 확산되고 있다.

미래에는 에디슨처럼 개인의 힘으로 발명ㆍ발견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다. 1메가D램 반도체도 개인이 발명한 것이 아니라 벨연구소의 연구팀이 이루어낸 결과이며 인텔의 펜티엄칩 역시 마찬가지다. 개인보다는 팀이나 회사 전체가 힘을 합칠 때 발명ㆍ발견이 가능해진다. 앞으로 제3밀레니엄 초에는 여러 회사가 컨소시엄을 형성하는 일이 다반사로 일어나고 경쟁사와 제휴하는 ‘적과의 동침’이 상식화될 것이다. 국제사회도 전 세계가 국경 없는 경제활동 단위로 움직이는 단계에 진입함에 따라 협력을 통해 공동 발전하려는 노력이 확산되고 국가 간 기술 특화, 산업구조조정에 따른 국제분업이 활발하게 논의될 것이다.

이런 식으로 개인, 개별 기업, 개별 국가가 할 수 있는 일이 줄어들면서 제3밀레니엄 초에는 여러 주체들이 힘을 모아야 비로소 생존이 가능한 사회가 된다. ‘컴피티션(competition)’이 아닌 ‘코피티션(coopetition: cooperation+competition)’이 더욱 확산된다(Baandeuburger, 1996). 경쟁 방식이 어느 한쪽의 일방적인 승리가 아니라 경쟁자 간의 창조적 상생을 모색하는 방식으로 전환된다. 앞으로는 다 같이 승리하는 상생 게임을 만들지 못할 경우 양쪽이 공멸할 가능성이 커진다. 따라서 지금까지 양보나 타협에 의해 협력하던 수준에서 진일보하여 서로의 장점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는 상생의 룰을 창안하는 것이 중요해진다.

기업에 대한 사회적 시각이 근본적으로 바뀌는 것도 상생화의 흐름을 부추기고 있다. 그중 결정적인 것이 기업을 둘러싼 이해관계자의 행동패턴이 바뀐다는 점이다. 기업은 사회적 산물이라는 관점에서 소비자단체를 비롯한 환경단체 등 이해관계자들이 기업활동을 감시하고 간섭하려는 압력이 커진다. 기업의 사회공헌에 대한 요구 또한 커진다.

정부의 역할은 상대적으로 축소되고 기업의 사회가치 창조에 대한 일반의 요구가 증가하면서 각종 사회재(의료, 교육, 사회안전, 탁아소 및 교도소 운영, 사회봉사사업, 실버산업 등)의 생산 주역이 정부에서 민간기업으로 점차 넘어간다. 문화활동 면에서도 간접적, 물질적 지원을 넘어서 기업이 스스로 문화와 사회가치를 창조하고 주도하는 역할을 요구 받는다. 특히 환경보호가 국가와 인종을 초월하여 세계 전체의 공동 관심사로 등장하면서 환경보호를 위한 기업의 역할이 당연시되고 환경보호에 노력하지 않는 기업은 장기적으로 생존이 곤란하게 된다. 이처럼 제3밀레니엄 초에는 사회 전반에 걸쳐 공적 책임의 시대가 전개된다. 따라서 기업은 이윤추구와 사회적 책임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아야 하는 부담을 안게 된다.

그렇다면 기업은 어떻게 상생화에 대응할 것인가? 이해관계자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상생경영이 요구된다. 상생경영을 대별하면 대내상생과 대외상생으로 나눌 수 있다. 대내상생이란 기업(엄밀히 얘기하면 주주)과 거기에 속한 구성원들이 더불어 살아가는 것이다. 기업만의 이익을 추구하기 위해 구성원들의 일방적 희생을 강요해서는 기업존속이 불가능해진다. 그리고 기업 경영자들은 구성원들을 비용의 원천으로 간주하는 시각에서 탈피하여 투자의 대상으로 인식해야 한다.

이렇듯 대내상생이 부각되는 이유는 사회 전반에 걸쳐 인간을 중시하고 개인의 다원성을 인정하는 인본주의적 가치관이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제3밀레니엄 초에는 근본을 중시하는 윤리 중심, 인간 중심의 포스트모더니즘 사조가 확산됨으로써 자아실현 욕구가 커지며, 사회는 더욱 분권화되고 개인의 자율성과 개인성이 중시된다.

기업 내부적으로는 구성원의 욕구 실현이 경영상의 중요 이슈로 부상한다. 따라서 기업은 구성원들에게 개개인의 가치를 높일 수 있는 업무를 부여하는 등 구성원들의 가치향상 노력을 전폭적으로 지원하게 될 것이다. 또한 관료적이고 권위적인 조직 우선주의를 타파하고 인본주의에 입각한 인적자원관리를 통해 최고의 인재를 영입하고 유지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해진다. 사람의 의욕과 창의성을 극대화시키는 인력관리는 쉽게 모방할 수 없는 장기적인 경쟁우위의 원천이며, 인본주의적 인력관리야말로 원석을 다듬어 보석으로 만드는 세공사와 같은 역할을 할 것이다.

대외상생은 기업과 영향을 주고받는 모든 이해관계자들과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것을 말한다. 그 대상에는 고객, 일반 사회는 물론 자연환경까지 포함된다. 고객과 상생하기 위해서는 사업과 상품을 개발할 때 개인의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도록 고려해야 한다. 사회와 상생하기 위해서는 ‘기업은 사회의 신뢰 위에 존재한다’라는 생각을 갖고, 책임경영의 대상을 주주, 채권자 등 협의의 개념에서 지역사회, 국가를 포함하는 광의의 개념으로 확대해야 한다. 물론 세계화 추진에도 상생화가 고려되어야 한다. 여기에 실패한 전형적인 나라가 일본이다. 과거 일본기업이 해외진출을 하면서 국제사회로부터 경제동물(economic animal)로 지탄받은 것은 진출국의 이해를 무시하고 자국의 이익만을 추구했기 때문이다. 상생화 시대에는 이런 방식이 통용되지 않으며 자국의 이익을 도모할 뿐만 아니라 진출국에도 기여해야 한다.

미래 흐름의 최대공약수

앞 절에서 열림을 ‘닫히거나 막히거나 가리어진 것이 트여야 한다’, ‘벽이 낮아지거나 없어져 흐름이 자유로워야 한다’라고 정의했다. 그리고 진정한 열림이 되려면 ‘여러 요소의 결합을 통해 시너지가 나오고 새로운 가치가 창조되어야 한다’라고 했다.

이들을 정리하면 열림의 필요조건은 최소한 세 가지가 된다. 첫째, 닫히거나 막히거나 가리어진 것 또는 그러한 상태가 열림의 출발점(input)이다. 둘째, 트이거나 벽이 없어지거나 낮아지는 것이 열리는 과정(process)이다.

셋째, 이러한 과정을 통해 흐름이 자유로워지고 그로 인해 여러 요소 간에 교류가 이루어져 시너지가 나오는 것이 도착점(output)이다. 여기서 지금까지 기술한 5가지 키워드를 대입시켜 보면  <표 1>과 같다.

<표 1> 열림의 시각에서 본 5가지 키워드의 속성

구분 출발점(input) 과정(process) 도착점(output)
닫히거나 막히거나 가리어진 것 또는 상태 트이거나 벽이 없어지거나 낮아짐 흐름이 자유로워지거나 시너지가 도출
세계화 국가 간에 가로놓여 있는 국경이라는 장벽 시장개방 등으로 낮아지거나 허물어짐 상품·서비스, 자원, 문화가 자유롭게 유통
네트워크화 개체들 간에 가로놓여 있는 비가시적인 공간의 벽 정보기술과 인간관계를 통한 연결(네트워킹) 정보와 지식이 자유롭게 이동
창지화 개별적인 지식 지식의 공유 새로운 지식이 창조
복합화 서로 다른 성질을 가진 요소 물리적, 화학적으로 결합 상승효과를 통해 새로운 가치를 창조
상생화 여러 주체들이 자기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정신적인 닫힘 이기주의라는 정신적인 벽이 허물어짐 상승효과를 통해 여러 주체가 더불어 발전하고 성장

창지화, 즉 지식창조화에 대해서는 다시 한 번 상세히 살펴보자. 지식이란 일반 재화처럼 희소성에 의해 가치가 높아지지 않으며 교환을 통해서 없어지지도 않는다. 오히려 많은 사람들이 공유할수록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속성이 있다. 지식공유란 여러 주체들이 벽을 허물고 자기 지식을 공개함으로써 가능해진다. 따라서 지식공유는 열림을 바탕에 깔고 있다. 이 같은 지식의 공유는 곧 지식창조로 연결된다. 일례로 진화론은 다윈이 맬더스의 인구론이라는 공유된 지식과 자신이 관찰한 갈라파고스에서의 경험이 시너지를 일으킨 결과다.
그러면 지금까지 설명한 5가지 키워드가 세 가지 조건을 충족시키는지 검토해보자. 세계화는 국경이라는 장벽이 허물어지는 것이고, 정보화는 공간의 벽이 허물어져 흐름이나 유통이 자유로워지는 것이어서 열림이라는 개념이 쉽게 연결된다. 지식창조화나 복합화, 상생화의 경우에는 조금 애매해지는데 좀 더 깊이 생각해보면 역시 열림과 깊은 관련성을 맺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지식공유와 관련해서 ‘카피레프트(copyleft)’에 대해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몇 년 전부터 미국은 막강한 지적자산을 무기로 세계 각국에 통상압력을 가하고 있는데 그중 하나가 ‘카피라이트(copyright)’다. copyleft는 copyright와 상반되는 개념으로 모든 지적자산을 세계 시민들이 공유하자는 것이다. 여기에는 재산에 대한 권리(right)를 주장하는 대신 던져 버리겠다(left)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지적자산을 개발한 주체의 배타적 권리를 인정함으로써 창의력과 기업가정신을 고취시키는 방식이 인류에게 도움이 될 것인지, 아니면 모든 주체가 개인의 권리를 포기하고 전체가 공유함으로써 상승효과가 증폭되어 인류발전에 더 많이 기여할 것인지에 대한 판단은 쉽게 결론지을 수가 없다. 다만 copyleft가 의미하듯 지식을 공유하는 움직임이 전 세계적으로 일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며, 앞으로 이런 움직임은 더욱 확산될 것이다.

다음 복합화는 서로 성질이 다른 요소들이 결합되어 시너지를 내는 것인데, 여기서 ‘결합’이 되기 위해서는 당연히 열림이 전제되어야 한다. 닫힌 상태에서 자신의 특성만을 고수한다면 다른 요소와의 결합 자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상생화 또한 이기주의를 없애고 이타주의를 지향하기 위해서는 열림이 전제가 되어야 한다. 이렇듯 제3밀레니엄 초의 변화를 설명하는 다섯 가지 키워드가 모두 열림에 바탕하고 있다는 점에서 열림은 미래 흐름의 최대공약수라고 할 수 있다.

4. 제3밀레니엄의 열린 경영

지금까지 제3밀레니엄 초에 전개될 메가트렌드와 그 흐름을 읽을 수 있는 키워드에 대해 살펴보았다. 이 같은 단절적이고 전이적인 변화는 기업에 환경적응이라는 힘겨운 숙제를 던져준다. 이 숙제에 대한 해답은 ‘더욱 열린 경영’을 도입하고 정착시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비전과 미션, 경영전략, 리더십, 사람, 정보와 의사소통, 기업문화 등 경영의 실체를 구성하고 있는 모든 요소를 다 열어야 한다.

열린 비전과 열린 미션

비전과 미션을 여는 것은 열린 경영의 지향점이다. 비전과 미션은 조직이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고 구성원들에게 동기를 부여하며, 이기심에 바탕한 내부의 권력 다툼을 불식시킨다. 조직 구성원들이 진정으로 비전과 미션을 공유하면 개인의 이익을 초월해 조직 전체의 이익을 추구하게 되기 때문이다.

비전과 미션을 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먼저 비전과 미션에 상생의 개념이 포함되어야 한다. 가령 비전을 ‘주주의 부를 축적하는 데 기여한다’라고 하든지 미션을 ‘최고의 이윤을 추구한다’라는 식으로 이기적이고 닫힌 개념으로 작성하면, 구성원들은 물론 기업경영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이해관계자들을 설득하는 데 한계가 있다. 따라서 기업은 사회를 구성하는 일원임을 선언하고, 내부 구성원과 상생을 도모하는 한편 외부 이해관계자, 자연환경과 친화하겠다는 의지를 비전과 미션에 담아야 한다.

더욱이 인본주의가 확산되고 조직 구성원들이 자신들의 삶에 대한 가치 추구에 큰 비중을 두게 될 미래에는 구성원들에게 자부심을 심어 주어야 한다. 즉 자신이 조직에 최선을 다하면 그 조직이 인류사회의 발전에 기여한다는 비전과 이를 위해 세계로 나아가고 고객을 만족시키고 미래를 개척한다는 식의 고무적인 미션을 담아야 한다. 비전과 미션이 지향하는 조직의 모습이 과거 제국주의 시대에 통용되던 ‘크고 강한(big & strong)’ 차원에서 벗어나 ‘좋고 존경받으며 독창적인(good, admirable & only one)’ 조직이라는 내용이 포함된다면 더욱 바람직하다.

열린 전략

열린 전략은 열린 비전과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 험난한 여정(journey)을 헤쳐가는 데 필수적인 지도(map)가 된다. 전략이 열린다는 것은 다음 세 가지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전략이 외부환경과 깊은 관련성을 가져야 하고, 전략을 수립하는 과정이 열려야 하며, 전략을 수립하는 기법이 열려야 한다.

외부환경과의 관련성에 대해 살펴보자. 경영환경이 비교적 안정적이고 경제 자체가 안정적으로 성장하고 있을 때에는 전략의 초점이 조직 내부의 효율 향상에 모아진다. 그러나 환경이 급변하고 성장률이 둔화되는데도 내부 효율에만 신경을 쓰면 패러다임 변화에 적응하지 못해 조직의 존속 자체가 문제된다. 제3밀레니엄 초는 패러다임이 급변하며 과거의 장점이 미래의 단점으로 역전하는 단절적 변화가 일어나는 세상이다. 이 같은 환경에서는 여건 변화에 대한 적응성을 높이는 데 전략의 초점을 맞추는 것이 당연한 일이다.

안정적인 환경에서는 CEO의 스태프 조직이 주도하여 전략을 짜고 이를 일사불란하게 실천하는 닫힌 방식이 상대적으로 효율적이다. 그러나 환경이 급변하는 경우에는 전략을 짜는 방식이 열려 있어야 한다. 환경은 시시각각으로 변해가는데 전략수립과 실행을 현장과 동떨어진 스태프 조직이 주도한다면 환경적응 속도가 지연되어 기회를 상실하게 된다. 따라서 환경과 접점에 위치하면서 환경변화를 동물적 감각으로 감지하고, 대응책을 직관적으로 마련할 수 있는 라인 조직을 중심으로 전 조직원들의 참여 아래 전략이 수립되고 실행되는 열린 방식을 채택해야 전략이 실효성을 갖는다.

전략을 수립하는 데에도 열린 기법이 보다 효율적이다. 시나리오 기획(scenario planning)이나 로드맵(road map), 연동기획(moving planning)이 열린 기법의 좋은 예다.

시나리오 기획이란 미래에 전개될 환경을 흑백논리에 입각한 단답형으로 결론짓지 않고, 이렇게 될 수도 있고 저렇게 될 수도 있다는 시각에서 여러 가능성을 항상 열어 놓은 채 이를 바탕으로 몇 개의 시나리오를 그려본 후 상황에 맞게 전략을 전개하는 방법이다.

로드맵형은 마스터플랜(master plan) 방식이 환경분석, 경쟁분석, 자사분석을 바탕으로 전략방향을 정한 후 전략과 실행계획까지 사전에 치밀하게 수립함으로써 기획과정에 지나치게 많은 경영자원과 시간이 소요되는 반면 예측력은 그리 높지 못하다는 반성에서 출발한 것이다.

로드맵은 계획수립보다는 실행에 보다 많은 경영자원을 투입한다는 차원에서 최종 목표와 중간 경유지만을 정해 놓고 일단 실행에 착수한 후 실행 과정에서 여건이 바뀌면 거기에 맞춰 전략을 보완하는 방식이다. 예를 들어 추석 귀성길에 서울에서 부산까지 자동차로 이동한다고 하자. 과거 몇 년간의 통계자료와 여러 언론기관이 보도한 교통정보를 기초로 많은 공을 들여 마스터플랜형 귀성계획을 짜보아야 고속도로에 이르기도 전에 이미 예상이 빗나간다. 차라리 최종 목표와 중간 경유지만 정한 상태에서 일단 출발하고 지도와 교통방송(환경변화에 대한 정보)을 참고해서 고속도로와 국도를 바꿔가며 이동하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다.

연동기획은 로드맵과 유사한 방식으로 연간 경영계획 기간을 굳이 1월부터 12월까지로 고집할 게 아니라, 상황이 변할 때마다 연간계획을 다시 수립해서 실행하는 것이다.

열린 리더십

열린 리더십은 열린 경영을 끌고 가는 원동력(driving force)이며, 이를 생성하는 주체가 바로 리더다. 열린 리더는 ‘감지-해석-적용-반성’의 사이클을 반복한다. 리더는 외부환경의 변화나 패러다임의 흐름을 직관적으로 감지하고 이를 조직의 용어로 해석한다. 여기서 조직의 용어란 비전과 미션, 전략을 말한다. 적용단계에서는 해석된 용어들을 조직 구성원에게 전파하고 실행에 옮기도록 독려한다. 마지막 단계에서는 실행결과에 대해 반성하고 다시 처음의 환경변화 감지로 초점을 돌리는 순환과정을 밟는다.

리더십은 이러한 순환과정을 효과적으로 수행하는 능력에 다름 아니다. 리더십에는 관료형(bureaucratic), 거래형(transactional), 구조개혁형(transformational)이 있다. 관료형은 군림하는 군주 스타일이며 거래형은 구성원의 충성과 보상을 맞바꾸는 유형이다. 열린 시대에는 이들 유형보다 환경변화에 맞추어 조직 내부의 구조를 개혁하는 리더가 보다 큰 효력을 발휘한다.

구조개혁형 리더는 미래 비전을 제시하고 이를 핵심 중간관리자들에게 전파하며, 중간관리자들이 행동변화를 일으킬 수 있도록 동기를 부여하고 지적인 자극을 가한다. 구조개혁형 리더의 특성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조직과 시스템의 근본적인 개혁도 불사하며 사고와 발상이 창조적이고 헌신적이다. 또한 변화가 체질화될 때까지 개혁을 지속적으로 추진하며, 성공에 대해 합리적으로 보상하고 변화 과정에 대해 파격적인 관심을 보이는 동시에 조직의 요구와 조직원들의 요구를 적절히 융합시키는 특징을 갖고 있다(Tichy, 1986).

열린 사람

열린 사람은 열린 경영의 주체이자 객체다. 조직은 사람으로 구성되며 조직의 변화는 사람의 변화에서부터 시작되기 때문이다. 열린 사람에 대해서는 개인 차원에서 열린 사람과 조직 차원에서 열린 사람이라는 두 가지 측면에서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개인 차원에서 보는 열린 사람이란 개방인, 세계인, 창조인으로 구체화된다. 개방인은 열린 마음으로 느끼고 열린 머리로 생각하며 열린 행동을 한다. 열린 마음이란 자신의 위치를 알고 스스로 반성할 줄 아는 자기성찰적 자세를 갖는 것이다. 또한 더 좋은 아이디어를 받아들이기 위해 남의 의견을 경청하며 자기 고집을 주저 없이 버리는 것이다. 근본적으로 개방인은 상대방의 입장에 서서 생각하는 역지사지(易地思之)의 사상을 체득하고 있다. 한편 열린 머리란 상충적인 흑백논리에서 벗어나 관련된 모든 상황을 다각적, 총체적, 입체적으로 판단하는 머리다. 그리고 열린 행동을 하는 사람은 조직을 아끼는 마음과 공동체 의식, 팀워크와 시너지적 사고를 하며, 개인과 조직의 목표를 연계시키는 조정력과 타 부문과의 협조력을 갖추고 있다. 행동이 열린 사람은 변화를 거부하거나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변화를 수용하며 변화 자체를 즐기기까지 한다. 세계인은 국제적 시각ㆍ감각ㆍ능력을 바탕으로 국제적인 매너와 에티켓, 외국어 능력, 글로벌 네트워크 활용력을 보유하고 있는 사람을 말한다. 창조인은 학습능력을 갖춘 사람이다. 미래예측, 현상파악, 문제정의, 벤치마킹에 대한 능력을 갖추고 있으며 불확실한 환경변화에 대한 수용적, 개선력, 동기부여 능력을 발휘하는 사람이다.

다음으로 조직 차원에서 살펴보자. 열린 사람을 키우는 조직이 되기 위해서는 인사제도가 열려 있어야 한다. 닫힌 인사는 사람을 규율화시키며 예외 변수가 나오지 않도록 적절히 억누르고 통제하는 일이 본업이다. 사람을 비용 원천으로 보아 인력효율지표를 수단으로 조직운영의 효율성을 높이는 데 신경을 집중한다. 따라서 모든 발상이 ‘조이는 문화’, ‘금지의 문화’에서 출발한다. 이와 달리 열린 인사는 사람을 창조의 주체로 보기 때문에 자율통제를 유도한다. 또한 사람을 투자 대상으로 인식하고 인력개발에 노력한다. 그 결과 각 부문의 요구에 따라 적절한 인재를 발굴하고 육성해서 공급하는 서비스 기능을 수행한다.

조직이 외부 환경변화에 유연하게 대응하기 위해서는 조직 구성원의 다양성이 요구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한국 기업의 고질적 병폐 가운데 하나인 폐쇄적 순혈주의를 타파하고 외국인, 여성 등 외부의 유능한 인력을 조직의 혈관에 수혈시켜야 한다. 이런 인력을 유효하게 활용하고 조직에 정착시키려면 공정성을 확보하기 위한 공개평가가 전제되어야 한다. 특히 글로벌 시대에는 동양의 미덕인 성실과 명분을 중시하는 평가방식에 구미의 실질과 객관성 중심의 공정성을 접목시킬 필요가 있다. 또한 연(緣)을 중시하는 순혈주의를 타파하고 능력주의로 전환함으로써 능력과 업적을 중시하는 문화가 뿌리내려야 한다.

이를 통해 능력 있는 외국인들이 최고경영자의 자리까지 진입해야 글로벌 인력이 우리 기업과 융화되는 것이며, 이때 비로소 세계화의 기반이 마련된다. 스위스 기업인 네슬레의 경우 스위스 출신 임원은 절반에도 못 미치며 독일인이 CEO를 맡고 있다. 혼다(本田)가 일본 자동차 회사 중 미국에서 가장 빨리 정착하게 된 이유가 미국인을 현지 사장으로 영입했기 때문이라는 점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와 더불어 일반 노동력 차원에서도 제3세계 국가나 동구권의 저임금 노동력을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 특히 뛰어난 기초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구소련 기술인력이나 선진국에서 활약하는 중국ㆍ인도 출신의 기술인력을 활용하는 방안을 강구할 필요가 있다.

한편 여성인력의 강점을 적극 활용해야 한다. 지식사회의 도래에 따라 고학력 여성이 증가하고 자녀의 수가 감소하면서 상대적으로 여성인력의 사회진출 기회가 늘고 있다. 거기에 정보기술의 진전과 홈오토메이션 상품이 확산되면서 여성들의 재택근무나 파트타임근무가 가능해지고 있다. 따라서 이제는 여성인력의 수와 비율을 늘린다는 형식적인 열림의 차원에서 벗어나 여성인력의 책임과 권한의 폭을 확대하는 등 실질적인 열림이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미래에는 남성적 강인함보다 여성적 세심함이 요구된다. 지금 시점에서 보아도 상품의 구매의사결정 과정에서 여성들의 영향력이 점점 커지고 있어서 여성적 감각을 무시한 상품ㆍ서비스는 시장에서 성공하기 어렵게 되어 있다. 더욱이 디자인이 우수한 감성상품에 대한 소비자 니즈는 계속 커갈 것으로 전망되고 있어 머지않아 여성적 감성이 경쟁력의 핵심으로 자리잡게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조직은 구성원들의 가치를 높여주는 ‘휴먼 르네상스(human renaissance)’를 실현해야 한다. 미래에는 인본적 가치관을 바탕에 깔고 최고의 인재를 영입하고 구성원과 지식과 창의력을 극대화시키는 기업만이 앞서 인재를 영입하고 구성원의 지식과 창의력을 극대화시키는 기업만이 앞서갈 수 있다. 상품전략이나 가격전략은 경쟁기업이 쉽게 모방할 수 있지만 사람의 의욕과 창의성을 극대화시키는 역량은 장기간 독점적으로 행사할 수 있는 경쟁우위의 원천이 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사람이 지닌 본질적이고 잠재적인 능력을 끌어내 최선을 다할 수 있도록 동기를 부여하는 근무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그 하나가 조직 구성원들에게 환경변화의 흐름에 동참할 수 있도록 재교육과 재충전의 기회를 부여하는 것이다. 교육방식도 지금과 같이 한 자리에 모아놓고 표준화된 지식을 억지로 주입하는 소품종대량생산형의 훈련(training)에서 탈피하여 현장학습을 중심으로 하는 다품종소량생산형 학습(learning)으로 전환해야 한다.

열린 조직

열린 조직은 곧 열린 경영을 담는 틀이다. 제3밀레니엄 시대에 경쟁력을 발휘할 수 있는 조직의 특성을 굳이 한자어로 표기하면 ‘경박연개(輕薄軟開)’한 조직이다. 이 말은 다소 작위적이긴 하지만 현재 조직의 문제점인 ‘중후경폐(重厚硬閉)’에 대칭되는 개념이다. 즉 조직의 패러다임이 무겁고, 두껍고, 경직되고, 닫힌 조직에서 가볍고, 얇고, 유연하고, 열린 조직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뜻이다.

‘경(輕)’은 몸이 가볍고 동작이 기민하다는 뜻이다. 현재의 조직구조가 미래사회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조직의 군살(bubble)은 물론 지방질(fat)까지 철저히 제거하는 조직 감량화가 필요하다. 그 구체적인 방법은 무엇인가? 상시 조직을 줄이고 프로젝트 조직을 늘리는 것이다. 생산, 영업, 재무, 인사 등 상시적 기능조직을 대상으로 업무 프로세스를 개선하고 정보화를 추진하는 한편 다운사이징(downsizing)을 통해 인력 규모를 줄여야 한다. 상대적으로 증가하는 프로젝트 조직에 대해서는 개발, 전략입안, 콘셉트 창조와 업무 디자인, 신규사업처럼 창조적인 역할을 부여하고, 비계층적인 애드혹(ad-hoc) 스타일로 운영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부서 간 업무중복이나 부문 간 이기주의에 따른 효율성 저하와 조직 비대화를 막기 위해 프로젝트 또는 브랜드별로 기능횡단팀(cross-functional team)을 활용하는 것도 조직을 가볍게 하는 좋은 대안이 될 수 있다.

‘박(薄)’은 조직의 상하 폭이 얇은 것을 의미한다. 조직이 얇으면 의사결정이 빠르고 권한이 고객접점으로 이동함으로써 고객만족과 종업원만족을 동시에 실현할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첫째, 중층(重層)구조부터 파괴해야 한다. 기존의 중층구조를 유지한 상태에서는 의사결정 속도가 느려 급변하는 환경변화에 적응할 수가 없다. 따라서 조직의 폭을 얇게 만들어 업무의 신속성과 간결성을 배가시켜야 한다. 더불어 스태프 조직을 본연의 기능에 충실하도록 해야 한다. 스태프 조직이 라인 기능을 수행함으로써 조직의 단계가 실질적으로 늘어나는 부작용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다. 둘째, 직급과 직책을 분리해야 한다. 국내 기업에서는 승진한 인력을 수용하기 위해 위인설관(爲人設官) 식으로 불필요한 자리를 신설하는 경우가 많다. 이는 조직 계층을 두껍게 할 뿐만 아니라 조직 내 의사소통, 의사결정 측면에서 정상적인 흐름을 왜곡시킨다. 따라서 승진하더라도 직책을 부여하지 않고 담당 간부나 담당 임원으로 보임하는 직급과 직책의 분리가 필요하다. 셋째, 대규모 조직을 소규모 조직처럼 움직이는 운영상의 기술을 개발해야 한다. 조직구조를 물리적으로 쪼개는 데는 한계가 있으므로 큰 덩치로도 뛰어난 순발력과 스피드를 가진 씨름선수와 같이 기민하게 움직일 수 있도록 조직을 운영해야 한다.

‘연(軟)’은 오감(五感)으로 변화를 감지하고 환경변화에 맞추어 스스로 진화하는 유기체적 조직을 만드는 것이다. 이는 조직을 인체처럼 오감으로 외부의 변화를 신속 정확하게 포착하여 최선의 방향으로 유연하게 대처하는, 살아 있는 두뇌와 신경계, 근육을 갖춘 유기체로 구축하는 것을 말한다. 여기에 대해서는 다음에 기술할 ‘열린 정보’에서 자세히 설명하기로 한다.

‘개(開)’란 틀에 얽매이지 않는 열린 상태다. 조직의 내외부에 놓여 있는 벽을 허물면 경영자원을 최적으로 활용할 수 있고 조직을 외부로 열면 정보와 자원이 원활히 유통된다. 이를 위해서는 첫째, 조직 상하 간의 벽을 허물어 수평적인 조직을 구축해야 한다. 수직적 질서는 직급 간의 벽으로 인해 정보 흐름을 막고 구성원들을 위축시키지만 반대로 수평적 질서는 직급, 직책에 상관없이 적재적소에서 각자의 역량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다. 필요하다면 공식적 조직체계를 넘어서는 휴먼 네트워크를 구축할 것도 고려해야 한다. 둘째, 조직 좌우 간의 벽을 허물어 내부의 거래비용을 절감해야 한다. 부서 간의 이기주의나 의사소통 부재는 부문 간의 업무협조를 가로막고 의사결정을 지체시켜 조직의 고객 대응력을 저하시킨다. 따라서 기능별 조직에서 탈피하여 프로세스 중심으로 전환하는 조직재설계가 필요하다. 셋째, 조직의 내부와 외부를 가로막는 경계를 허물고 이해관계자들과 협력하여 상생경영의 기반을 마련한다. 그러기 위해서 기업은 사회와 광범위한 네트워크를 구축하여 정보를 공유하고 공동으로 문제를 해결해나가야 한다.

이상에서 살펴 본 경박연개 조직은 ‘네트워크 조직’으로 달리 부를 수도 있다. 네트워크 조직은 정보화의 진전에 힘입은 바 크다. 이는 피터 드러커의 다음과 같은 전망이 뒷받침하고 있다. “새로운 컴퓨터 시스템이 통제력을 분화시키고 모든 사람들이 정보망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해주기 때문에 소유권, 디자인, 제조, 경영 스타일에 대한 관례를 뒤엎고, 세계 전역에 온라인으로 연결된 수백 개의 워크스테이션과 최고경영층이 수평적으로 연결되어 일본이나 미국에서 제품을 만들고, 포장은 한국에서 하며, 제품 실험은 샌디에고에서 이루어질 것이다.” 이처럼 제3밀레니엄 초에는 정보를 중심으로 자원과 자본 등의 경영자원이 글로벌 차원에서 네트워킹되면서 경영 전 부문에 걸쳐 혁신적인 변화를 가져올 것이다.

열린 정보

열린 정보는 열린 조직의 생명을 유지하는 신경에 해당한다. 신경망은 인체와 관련된 모든 정보를 전달한다. 만일 신체의 어느 한쪽에 신경이 통하지 않으면 마비증세가 온다. 그렇다고 해서 마비된 신체를 잘라내면 몸 전체의 기능이 약화된다. 따라서 열린 조직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정보가 유연하게 흘러야 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기업의 정보전달 체계를 인체의 신경조직에 비유하면 다음 <표 2> 와 같다.

<표 2> 유기체의 신경조직과 기업조직의 정보전달체계

인체기관 기능 기업조직 바람직한 방향
오감 감각정보를 대뇌에 전달하는 신경세포 집단으로 감각정보의 중개소 환경변화를 감지하는 대외 정보망 열린 대외 정보망을 통해 환경변화를 즉시 포착하는 신경망 구축
대뇌, 중추 기억, 학습, 판단, 창조 CEO와 전략기획 부문 환경변화에 적응하기 위한 전략 수립
자율신경계 대뇌의 지시 없이도 외부 환경 변화에 즉각적으로 대응 회사의 가치관이나 비전, 미션 등 공통의 방향성에 기초하여 환경변화에 자율 대응하는 시스템 초과지식 축적과 권한위양 확대로 자율적 대응기반 구축
근육 대뇌, 중추, 자율신경계의 명령 수행 전략실행 조직 효과성을 중시하는 경영자원 관리로 대응력 제고

둘째, 대내외 핵심기능을 보강한다. 부문 차원의 핵심역량을 강화하고 조직 전체 차원에서는 환경변화에 맞도록 경영자원을 공유하고 배분함으로써 시너지가 창출되도록 한다. 최고의사결정은 CEO 단독 또는 TMT(Top Management Team)를 중심으로 전략기능을 보강한다.이 같은 비유를 유추해석 하면 열린 정보를 실현하기 위해서 다음과 같은 조치들이 필요하다. 첫째, 사람의 오감에 해당하는 기능을 구축한다. 즉 환경변화를 즉시 포착할 수 있는 외부 신경망을 구축하고 외부 환경과의 접점을 대폭 늘려서 변화의 추세를 해석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는 것이다. 또한 국내 및 전 세계 현지법인에 산재한 정보를 서로 공유하고 의견을 나눌 수 있도록 글로벌 정보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한편 환경변화를 읽는 열쇠가 되는 고객정보를 수집한다. 예를 들면 세계 각국에 고객정보센터를 운영하고 고객전담 창구를 마련하는 것이다.

셋째, 자율신경계를 제대로 가동하기 위해서는 권한위양과 자율경영이 선결조건이다. 조직 전체의 핵심전략을 제외한 모든 의사결정 권한을 사업부 또는 단위조직, 해외본사로 위양하는 것이 필요하다. 다만 ‘권한은 위양하되 정보는 집결시킨다’는 원칙을 갖고 모든 조직을 네트워킹시킴으로써 정보가 단절되지 않고 원활히 유통되도록 유의해야 한다.

보다 원론적으로 이야기하자면 열린 정보를 위해서는 정보단속주의를 타파하고 정보공개주의를 채택해야 한다. 열린 시대, 열린 조직에서는 조직 전체가 정보를 공유해야 제 기능을 발휘한다. 창문을 열면 신선한 바람이 들어오지만 파리와 모기도 같이 들어오는 것처럼 정보공유에 따른 부작용도 만만치 않은 것이 사실이다. 특히 비밀로 다뤄야 할 정보가 외부로 유출되어 피해를 입을 수도 있다. 그러나 빈대 잡자고 초가삼간을 태울 수는 없는 일이다. 일본의 가오(花王)는 ‘정보 앞에서는 회장부터 사원까지 평등하다’라는 원칙을 갖고 일류기업의 대열에 올라섰다.

열린 정보의 필요성은 조직 통제력에서도 찾을 수 있다. 조직을 열면 조직 내 위계질서가 무너지고 그에 따라 물리적 힘에 의존하던 통제기능이 불능상태에 빠지게 된다. 이러한 물리적 통제를 대체하는 것이 바로 열린 정보에 의한 자율통제 기능이다. 조직원들은 정보공유와 원활한 의사소통을 통해 항상 자신의 위치를 파악하고 조직 전체 속에서 균형을 잡을 수 있다. 특히 참여경영이 강조되는 열린 시대에는 상하 간의 원활한 의사소통이 조직에 잠재해 있는 불만을 노출시켜 해결방안을 찾게 함으로써 조직원들의 사기진작에 도움을 준다.

열린 기업문화

열린 기업문화는 열린 조직을 감싸고 있는 ‘공기’와 같다. 대기의 청정도가 사람의 건강에 영향을 미치듯이 기업문화 역시 열린 조직에 영향을 미친다. 열린 조직은 자율적 문화가 바탕에 깔린 창조적 조직이다. 여기서 창조성은 열린 세상을 향해 보다 가치 있는 상품과 서비스를 내놓을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인간의 움직임이 로봇과 다른 것은 그 관절 수가 많기 때문이다. 그처럼 창조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다양한 가치관을 수용하고 장려해야 한다. 여러 미래학자는 앞으로 전개될 세상은 관용과 다양성, 그리고 논리적인 좌뇌와 감성적인 우뇌가 서로 균형을 이루는 홀로닉 시스템(holonic system)을 갖춘 사람들에 의해 견인될 것이라고 예견한다.

또한 열린 조직에는 배우는 문화가 정착되어 있다. 열린 조직은 다른 조직, 다른 회사, 다른 나라, 넓게는 과거 역사로부터 배우려 한다. 특히 경영환경과 고객의 요구가 급변하는 상황에서 기업의 노화를 방지하고 끝없는 생명력을 유지하는 길은 변화의 흐름을 민첩하게 감지하고 변화에 유연하게 적응하는 방법이 유일하다. 이를 위해서는 끊임없이 배우는 문화가 조직 내에 자리잡아야 한다.

5. 위기를 기회로

미래 시점에서 현재를 돌아보면 미래예측이란 하찮은 일로 보일 수도 있지만 현재 시점에서 미래를 예견하기란 학문의 영역을 넘어선 신의 몫이다. 그렇다고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운명에 맡겨버리기에는 인간의 의지가 허락하지 않는다. 필자가 제시한 2005년의 변화와 키워드 역시 2005년에 가서 돌아보면 감탄을 금치 못할 정도로 정확할 수도 있고 실소를 금치 못할 웃음거리가 될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예측의 정확성 여부가 아니라 현재 우리에게 주어진 자료와 지적 능력을 바탕으로 최선의 전망을 해보고, 이에 맞춰 전략을 수립하고 실천하는 행동력이다.

필자가 이 글을 쓴 이유는 미래는 지금보다 더욱 열린 세상이 될 것이라는 것. 따라서 기업은 경영 전 부문에 열림의 개념을 적용시켜가야 한다는 점을 널리 알리고 싶어서다. 급격한 환경변화는 언제나 위기(危機)를 동반한다. 위기는 또한 위험(危險)과 기회(機會)의 양면적 속성을 갖고 있다. 따라서 준비하는 사람에게는 기회가 되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에게는 위험으로 작용한다. 희미하게나마 미래에 대한 방향성만이라도 포착해서 대비하는 경우와 그렇지 못한 경우는 분명히 커다란 차이가 있을 것이다.


■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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