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윤순봉. 2025. 기장 매트릭스: 신석기 시대 화북 농업의 인구 확산에 대한 유전학, 고고학, 언어학 증거의 통합적 분석. 윤순봉의서재.
https://yoonsb.com/2025/08/05/71638/
기장 매트릭스: 신석기 시대 화북 농업의 인구 확산에 대한 유전학, 고고학, 언어학 증거의 통합적 분석
중국(中國) 신석기 시대 기장(millet) 농업의 확산이 단순한 기술 전파가 아닌, 사람의 이동을 동반한 인구 확산(demic diffusion)이었음을 고고학, 유전학, 언어학 등 다학제적 증거를 통해 알 수 있다. 특히, 화북(華北) 지역의 두 주요 농업 중심지인 서요하(西遼河) 유역과 황하(黃河) 유역 사이에는 후기 신석기 시대부터 청동기 시대에 걸쳐 상당한 규모의 양방향 인구 이동과 유전자 흐름이 있었음이 고대 DNA 분석을 통해 확인된다.
이러한 인구 이동은 단일 중심지에서 주변으로 향하는 일방적 확산이 아니라, 두 지역 농경 집단 간의 복잡하고 상호적인 교류 과정이었다. 이 과정은 기존에 유전적으로 구분되었던 북방계와 남방계 인구를 융합시켜 화북(華北) 지역에 새로운 거대 인구 집단(meta-population)을 형성했다. 이 혼합된 인구 집단은 상(商), 주(周)와 같은 후대 청동기 문명의 인구학적 기반이 되었으며, 현대 북부 한족(漢族)의 유전적 기층을 마련했다. 결론적으로, 기장 농업의 확산은 사람들의 이동과 혼혈을 통해 화북(華北)의 유전적, 문화적 지형을 근본적으로 재편한 결정적인 사건이었다.
keywords: Millet Agriculture, Neolithic China, Demic Diffusion, Ancient DNA (aDNA), West Liao River, Hongshan Culture.
목차
3. 유전학적 증거: 기장 개척지를 가로지른 인류 이동의 추적
- 3.1 신석기 시대 화북의 유전적 태피스트리
- 3.2 인구 확산의 증거: 서요하에서 중원으로의 인구 이동
- 3.3 양방향 도로: 중원에서 서요하로의 상호적 유전자 흐름
- 3.4 동위원소 분석을 통한 확증: 개인의 삶의 궤적 추적
4. 종합
1. 기장의 여명. 농업의 요람을 확립하다
중국대륙(中國大陸)에서의 농업 기원은 후속 인구 이동과 문화 발전을 이해하는 데 있어 근본적인 맥락을 제공한다. 특히, 신석기 시대 화북(華北) 지역의 기장(millet) 농업은 이후 동아시아(東亞細亞) 선사 시대의 인구학적, 유전학적, 그리고 언어학적 지형을 형성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이 농업의 기원과 초기 발전 양상을 규명하는 것은, 그것이 어떻게 그리고 누구에 의해 확산되었는지를 논하기 위한 필수적인 선행 과제이다. 본 장에서는 고고식물학 및 고고학 증거를 바탕으로 기장 농업의 지리적, 연대적 매개변수를 정의하고, 핵심적인 두 중심지인 서요하(西遼河) 유역과 황하(黃河) 유역을 중심으로 그 기원을 탐색한다.
1.1 중국 농업의 이원적 구조
중국(中國)에서의 농업 기원은 세계적으로도 독특한 이원적 구조(dualistic structure)를 특징으로 한다. 이는 서로 다른 생태 환경에 적응한 두 개의 독립적인 작물화 중심지가 거의 동시대에 발전했음을 의미한다. 북부의 황하(黃河) 유역을 중심으로는 조(粟, foxtail millet, Setaria italica)와 기장(黍, broomcorn millet, Panicum miliaceum)을 기반으로 한 건조지 농업 시스템이 발전했으며, 남부의 장강(長江) 중·하류 유역에서는 벼(Oryza sativa)를 기반으로 한 습지 농업 시스템이 등장했다(Matuzevičiūtė and Liu 2021). 고고식물학적 증거에 따르면, 두 농업 시스템은 늦어도 기원전 8000년경까지는 확립되었다(Matuzevičiūtė and Liu 2021).
이 두 시스템은 수천 년 동안 대체로 분리된 채 발전했으며, 이들 사이의 본격적인 상호작용과 통합은 청동기 시대에 이르러 가속화되었다(Matuzevičiūtė and Liu 2021). 두 핵심 지역 사이의 회하(淮河) 유역과 같은 중간 지대에서는 약 6000년 전부터 두 작물을 함께 경작하는 혼합 농업 지대가 나타나기도 했다(He et al. 2017). 이러한 농업 시스템의 경계는 고정된 것이 아니라, 동아시아(東亞細亞) 여름 몬순과 같은 기후 변화에 반응하여 유동적으로 변화했다(He et al. 2017).
이러한 근본적인 농업의 남북 분리는 동아시아(東亞細亞) 선사 시대 인구 구조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서로 다른 생태 환경에서 각각 높은 생산성을 지닌 농업 시스템(기장 대 벼)이 확립되면서, 이는 화북(華北)과 화남(華南) 지역에서 각각 독립적인 대규모 인구 성장을 뒷받침했다. 수천 년간 지속된 이러한 인구학적 분리는 고대 DNA 분석을 통해 확인되는 동아시아(東亞細亞) 인구의 깊은 남북 유전적 경사(north-south genetic cline)를 형성하는 주된 동력으로 작용했을 가능성이 높다(Bennett, Liu and Fu 2025; Wang et al. 2021). 즉, 농업 시스템의 차이는 단순히 식량 생산 방식의 차이를 넘어, 동아시아(東亞細亞) 인구의 거시적인 유전 구조를 형성한 근본적인 원인이었던 것이다.
1.2 서요하 유역: 초기 재배의 한 중심지
중국(中國) 동북부에 위치한 서요하(西遼河) 유역은 화북(華北) 건조 농업의 중요한 발상지 중 하나로 간주된다(Ma et al. 2016). 이 지역의 흥륭와(興隆窪) 문화(약 8000–7000 BP)는 기장 농업의 가장 초기 증거를 제공하는 핵심적인 고고학 문화이다. 흥륭구(興隆溝) 유적지의 분쇄 석기 및 토기에서 발견된 녹말 입자를 분석한 결과, 약 8000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작물화된 조(粟)와 기장(黍)의 존재가 확인되었다(Ma et al. 2016).
흥미롭게도, 흥륭와(興隆窪) 및 조보구(趙寶溝) 문화(약 8000–6400 BP) 시기의 미세식물학적 유해 분석은 더 커진 낟알 크기와 같은 작물화의 형태적 특성을 보이는 기장 유해와 함께, 도토리, 덩이줄기, 콩과 같은 풍부한 야생 식물 자원이 함께 발견됨을 보여준다(Liu et al. 2015). 이는 농업으로의 전환이 기존의 다양하고 안정적인 수렵·채집 경제를 급격히 대체한 것이 아니라, 농경이 기존 경제 체제에 점진적으로 통합되는 장기적인 과정이었음을 시사한다.
이러한 초기 농업의 출현은 기후 변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서요하(西遼河) 유역에서 기장 작물화가 시작된 시기는 홀로세 기후 최적기(Holocene Climatic Optimum)와 일치하는데, 이 시기는 오늘날보다 더 따뜻하고 습한 기후를 보였다(Jia et al. 2016a). 이러한 유리한 기후 조건은 기장의 야생 조상을 포함한 C4 식물의 자연적 풍부도를 높여, 수렵채집민들에게 안정적인 식량 자원을 제공하고 작물화를 실험할 수 있는 유리한 생태적 기회를 창출했다(Wang et al. 2021).
그러나 기후와 인간 사회의 관계는 결정론적이지 않았다. 기원전 1500년경 기후가 더 춥고 건조한 방향으로 악화되자, 집약적 기장 농업에 의존하던 하가점 하층(夏家店下層) 문화는 쇠퇴하고, 양과 염소의 비중이 높아지고 이동 생활과 관련된 유물이 증가하는 등 목축 지향적인 경제를 가진 하가점 상층(夏家店上層) 문화로 대체되었다(Jia et al. 2016b). 이는 기후가 농업의 시작을 가능하게 한 촉매제였던 동시에, 기후 악화가 기존 생업 방식의 전략적 전환을 강제하는 압력으로 작용했음을 보여준다. 즉, 인간 사회는 환경 변화에 수동적으로 반응한 것이 아니라, 능동적으로 적응 전략을 변화시키는 역동적인 관계를 맺고 있었던 것이다.
1.3 중원: 황하 농업 핵심부의 부상
서요하(西遼河) 유역과 거의 동시대에, 황하(黃河) 중·하류 유역을 포함하는 중원(中原) 지역 역시 기장 농업의 또 다른 핵심적인 발상지로 발전했다. 자산(磁山), 대지와(大地灣) 등 여러 유적지에서 발견된 고고식물학적 증거는 이 지역의 기장 재배 역사를 10,000 cal BP 이전까지 끌어올린다(Lu et al. 2009; Barton et al. 2009; Wang et al. 2019).
특히 약 8000년 전의 배리강(裴李崗)-자산(磁山) 문화 시기에는 조(粟), 기장(黍), 그리고 가축화된 돼지라는 세 요소가 결합된 ‘삼위일체(trinity)’의 건조 농업 패키지가 이미 초보적인 형태로 형성되었다(趙越雲 and 樊志民 2016). 이 조합은 이후 화북(華北) 전통 농업의 근간이 되었다. 앙소(仰韶) 문화 시기(7,000–5,000 BP)에 이르러 이 건조 농업 시스템은 급속도로 발전하여 황하(黃河) 유역 전반의 지배적인 경제 기반이 되었으며, 이는 이 지역에서 ‘농업 혁명’이 완성되었음을 의미한다(趙越雲 and 樊志民 2016). 하남성(河南省) 령구(嶺口) 유적지에서 출토된 앙소(仰韶) 시대 인골에 대한 안정 동위원소 분석 결과는 이들의 식단이 C4 식물인 기장에 크게 의존했음을 보여주며, 고고학적 증거를 뒷받침한다(Wang et al. 2025a).
이처럼 신석기 시대 화북(華北) 지역에서는 서요하(西遼河) 유역과 황하(黃河) 유역이라는 두 개의 핵심적인 기장 농업 중심지가 독자적으로, 그러나 거의 동시에 발전했다. 이 두 지역은 이후 수천 년에 걸쳐 복잡한 상호작용을 통해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화북(華北) 전체의 인구학적, 문화적 지형을 형성하는 두 개의 주요 축으로 기능하게 된다.
표 1: 화북(華北) 지역 주요 신석기 및 청동기 시대 문화
| 문화 (Culture) | 주요 지역 | 연대 (BP) | 주요 특징 | 주요 생업 전략 |
| 흥륭와 (興隆窪) | 서요하(西遼河) 유역 | 8000–7000 | 최초의 옥기, 빗살무늬 토기, 초기 정주 마을 | 초기 기장 재배 + 수렵·채집 |
| 홍산 (紅山) | 서요하(西遼河) 유역 | 6500–5000 | 정교한 옥기(용, 새), 제단, 신전, 무덤 등 복합 사회의 등장 | 기장 농업 심화 + 수렵·채집 |
| 앙소 (仰韶) | 황하(黃河) 중류 유역 | 7000–5000 | 채색 토기(채도), 대규모 마을, 농업 경제 확립 | 집약적 기장 농업 + 돼지 사육 |
| 용산 (龍山) | 황하(黃河) 중·하류 유역 | 5000–4000 | 흑도(黑陶), 성벽 도시, 사회 계층화 심화, 지역 간 교류 증가 | 집약적 기장 농업, 작물 다양화 |
| 하가점 하층 (夏家店下層) | 서요하(西遼河) 유역 | 4000–3500 | 청동기, 집약 농업, 인구 밀집, 방어 시설 | 집약적 기장 농업 + 돼지 사육 |
| 하가점 상층 (夏家店上層) | 서요하(西遼河) 유역 | 3000–2600 | 청동 단검, 목축 관련 유물 증가, 이동성 증가 | 농경-목축 혼합 경제 (목축 비중 증가) |
2. 거대 가설과 그 이견. 범-유라시아 논쟁
서요하(西遼河) 유역에서 시작된 기장 농업이 단순한 식량 생산 기술을 넘어, 동아시아(東亞細亞)와 유라시아(Eurasia) 대륙 전반의 언어 및 인구 분포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에 대한 논의는 최근 학계의 가장 뜨거운 쟁점 중 하나이다. 특히 Martine Robbeets 등이 2021년 Nature에 발표한 ‘농업/언어 확산’ 가설은 언어학, 고고학, 유전학의 증거를 종합하여 범-유라시아 어족(Transeurasian languages)의 기원을 서요하(西遼河) 유역의 초기 기장 농경민과 연결함으로써 학계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그러나 이 거대 가설은 곧바로 여러 분야의 학자들로부터 강력한 비판에 직면했다. 본 장에서는 이 논쟁의 핵심을 심층적으로 분석하여, 서요하(西遼河) 농경민의 확산이 실제로 어떤 성격을 가졌는지에 대한 상반된 시각을 조명한다.
2.1 ‘농업/언어 확산’ 가설 심층 분석 (Robbeets et al. 2021)
Robbeets 등이 제안한 가설의 핵심은 일본어족, 한국어족, 퉁구스어족, 몽골어족, 튀르크어족을 포함하는 거대한 범-유라시아 어족이 단일한 공통 조상에서 기원했으며, 그 확산이 서요하(西遼河) 유역의 신석기 농경민의 이주, 즉 인구 확산(demic diffusion)에 의해 주도되었다는 것이다(Robbeets et al. 2021). 이들은 세 가지 분야의 증거를 ‘삼각 검증(triangulation)’하여 이 주장을 뒷받침했다.
- 언어학적 증거: 98개의 범-유라시아 어족 언어에 대한 계통 발생학적 분석을 통해, 이 언어들의 공통 조상인 범-유라시아 조어(Proto-Transeurasian)가 약 9,181년 전 서요하(西遼河) 유역의 초기 기장 농경 공동체에서 사용되었다고 추정했다(Robbeets et al. 2021). 또한, 재구성된 조어에는 농경과 관련된 핵심 어휘(예: ‘밭’, ‘씨앗’, ‘기장’, ‘경작하다’)가 포함되어 있어, 초기 화자들이 농경민이었음을 시사한다고 주장했다(Robbeets et al. 2021).
- 고고학적 증거: 서요하(西遼河) 유역의 흥륭와(興隆窪) 문화에서 시작된 기장 농업의 확산 경로와 시기가, 언어 계통수에서 각 어파가 분기되는 패턴과 뚜렷한 상관관계를 보인다고 주장했다(Robbeets et al. 2021). 예를 들어, 서요하(西遼河) 유역의 농경 문화가 동쪽으로 요동반도(遼東半島)와 한반도(韓半島)로 확산되는 고고학적 양상이 퉁구스어족과 한국어족-일본어족의 분기 시점 및 경로와 일치한다는 것이다(Robbeets et al. 2021).
- 유전학적 증거: 동북아시아(東北亞細亞) 전역에서 출토된 고대 인골의 DNA 분석을 통해, 이 지역 농업의 확산이 서요하(西遼河) 유역 농경민의 실제적인 인구 이동에 의해 이루어졌음을 밝혔다(Robbeets et al. 2021). 특히, 모든 범-유라시아 어족의 현대 화자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아무르강(黑龍江) 유형 조상(Amur-like ancestry)’이라는 유전적 요소를 확인하고, 이를 서요하(西遼河) 유역의 초기 농경민과 연결했다. 이 유전적 유산의 확산이 곧 농경민의 이주와 언어의 확산을 증명한다는 것이다(Robbeets et al. 2021).
이 세 가지 증거의 수렴은 서요하(西遼河) 유역의 기장 농경민들이 자신들의 농업 기술과 함께 유전자와 언어를 동북아시아(東北亞細亞) 전역으로 퍼뜨렸다는 강력하고 통합적인 서사를 제공했다.
2.2 비판적 재평가와 대안 모델
Robbeets 등의 가설은 발표 직후 Tian을 비롯한 여러 학자들로부터 강력한 비판을 받았다(Tian et al. 2022). 이들은 Robbeets 연구팀이 사용한 세 가지 증거 각각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으며, 이들의 결론이 데이터를 과도하게 단순화한 결과라고 주장했다.
- 언어학적 비판: Tian 등은 Robbeets 연구팀이 제시한 범-유라시아 어족 공통 조상의 어휘 및 문법적 증거가 빈약하며, 소수의 유사성마저도 공통 기원이 아닌 오랜 기간에 걸친 언어 간의 차용(borrowing)과 지역적 접촉(areal contact)으로 더 잘 설명될 수 있다고 반박했다(Tian et al. 2022). 이들은 제안된 3,000여 개의 동원어(cognate) 목록 중 엄격한 음운 대응 규칙을 만족시키는 것은 극소수에 불과하며, 이는 유전적 관계의 증거가 되기에는 불충분하다고 지적했다(Tian et al. 2022). 이들의 관점에서 범-유라시아 어족은 유전적으로 연관된 어족(language family)이라기보다는, 지리적으로 인접하여 서로 영향을 주고받은 언어들의 집합체, 즉 ‘언어 연합(sprachbund)’에 가깝다(Tian et al. 2022).
- 고고학적 비판: 서요하(西遼河) 유역의 농경 문화(예: 홍산(紅山) 문화)와 한반도(韓半島), 일본 열도(日本列島) 등 다른 지역의 물질문화 사이의 직접적인 연결고리는 희박하며, 대규모 농경민 이주를 뒷받침할 고고학적 증거가 부족하다고 지적했다(Tian et al. 2022; Miyamoto 2022). 오히려 한반도(韓半島)와 일본 열도(日本列島)로의 초기 농업 도입은 소규모 집단의 이동과 토착 수렵채집민(즐문(櫛文), 조몬(繩文)인)에 의한 농업 기술의 선택적 수용이라는 더 복잡한 양상을 보인다고 주장했다(Miyamoto 2022).
Miyamoto (2022)는 ‘농업/언어 확산’ 가설에 대해 보다 구체적인 고고학적 반론을 제기한다. 그는 범-유라시아 어족의 확산이 단일한 농업 확산 모델로 설명될 수 없으며, 일본어족(Japonic)과 한국어족(Koreanic)의 확산은 서로 다른 시기에 다른 동인에 의해 발생한 별개의 사건이라고 주장한다.- 일본어족의 확산: Miyamoto는 일본어족의 확산을 특정 토기 제작 기술의 전파와 연결한다. 이 기술(넓은 점토판 사용, 외부 접합, 목재 도구로 표면 정리 등)은 요동(遼東)의 편보(偏堡, Pianpu) 문화(기원전 2700년경)에서 시작되어 한반도(韓半島) 북부의 궁귀리(宮貴里, Gonggwiri) 유형 토기, 남부의 무문(無文, Mumun) 토기 문화를 거쳐 일본(日本)의 야요이(彌生, Yayoi) 문화로 이어지는 계보를 형성한다. 그는 이 기술적 전통의 연속성이 곧 일본어족의 확산 경로를 보여준다고 주장하며, 특히 요동(遼東)에서 한반도(韓半島)로의 초기 확산은 농업 전파와는 무관했다고 강조한다(Miyamoto 2022).
- 한국어족의 확산: 반면, 한국어족의 확산은 훨씬 후대인 기원전 5세기경에 발생한 별개의 이주 물결과 관련이 있다고 본다. 이 이주는 농업적 요인이 아닌, 중국(中國) 연(燕)나라의 동방 팽창이라는 정치적 압력으로 인해 촉발되었다. 이주민들은 점토대토기(粘土帶土器, rolled rim vessel) 문화와 세형동검(細形銅劍) 문화를 한반도(韓半島)에 도입했으며, 이들이 가져온 한국어족이 기존에 한반도(韓半島)에서 사용되던 일본어족을 점차 대체했다고 설명한다(Miyamoto 2022).
이처럼 Miyamoto의 모델은 언어 확산이 반드시 농업 확산과 동반되지 않으며, 기술 전파나 정치적 이주와 같은 다양한 사회적 동인에 의해 복합적으로 이루어졌음을 보여줌으로써 Robbeets 등의 단선적인 가설에 이의를 제기한다.
- 유전학적 비판: 범-유라시아 어족 화자들 사이에 공유된 유전적 조상이 존재한다는 점은 인정하지만, 그 혼합의 패턴과 시기가 서요하(西遼河)라는 단일 중심지로부터의 단순한 농경민 확산 모델과는 부합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Tian et al. 2022). Robbeets 등이 핵심 증거로 제시한 ‘아무르강(黑龍江) 유형 조상’은 서요하(西遼河) 유역뿐만 아니라 동북아시아(東北亞細亞)의 광범위한 수렵채집민에게서 발견되는 오래된 유전적 요소이며, 이를 특정 농경 집단과 독점적으로 연결하는 것은 무리라고 주장했다(Tian et al. 2022). 또한, 한국과 일본의 유전적 구성을 모델링하는 과정에서 데이터의 해상도가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특정 가설(예: 홍산(紅山) 문화와 하가점 상층(夏家店上層) 문화의 순차적 영향)을 선택적으로 채택했다고 지적했다(Tian et al. 2022).
이러한 비판들은 Robbeets 등의 ‘삼각 검증’이 실제로는 세 증거가 동일한 지점을 가리키지 않는 실패한 시도라고 결론 내린다. 대신 Tian 등은 이들 지역의 언어적, 유전적, 문화적 유사성이 단일 기원에서의 분기(tree-like model)가 아니라, 수천 년에 걸쳐 이어진 복잡하고 다방향적인 상호작용 네트워크(network model)의 결과물이라고 주장한다. 이 논쟁은 단순히 데이터 해석의 차이를 넘어, 인류의 과거를 단순하고 명료한 분기 모델로 설명하려는 시도와, 복잡하고 뒤얽힌 네트워크 모델로 이해하려는 시도 사이의 근본적인 방법론적 시각차를 드러낸다.
3. 유전학적 증거: 기장 개척지를 가로지른 인류 이동의 추적
‘농업/언어 확산’ 가설의 진위를 가리는 핵심은 결국 “사람이 농업 기술과 함께 이동했는가?”라는 질문에 달려 있다. 고대 DNA 분석 기술의 발전은 과거 인구 집단의 이동과 혼혈을 직접적으로 추적할 수 있는 전례 없는 도구를 제공했다. 본 장에서는 서요하(西遼河) 유역과 황하(黃河) 유역을 중심으로 축적된 방대한 고대 유전체 데이터를 종합하여, 두 지역 간에 실제로 인구 이동, 즉 인구 확산(demic diffusion)이 있었는지를 검증한다. 유전학적 증거는 거시적인 인구 이동의 방향과 규모를 보여주며, 안정 동위원소 분석은 개개인의 삶의 궤적을 추적하여 이 거시적 그림에 미시적 실체를 부여한다.
3.1 신석기 시대 화북의 유전적 태피스트리
본격적인 상호작용이 시작되기 전, 신석기 시대 화북(華北) 지역은 유전적으로 동질적인 공간이 아니었다. 이미 초기 신석기 시대에 동아시아(東亞細亞) 전역에는 뚜렷한 남북 유전적 경사가 확립되어 있었으며 (Wang et al. 2021), 화북(華北) 내에서도 최소 세 개의 구별되는 고대 인구 집단이 존재했다.
- 황하(黃河) 유역 농경민 (Yellow River Farmers): 황하(黃河) 중하류 유역을 중심으로 한 인구로, 주로 이 지역에서 유전적 성분이 극대화되는 독자적인 조상 계통(종종 ‘신석기 황하’, NYR로 지칭됨)을 가진 기장 농경민이었다(Ning et al. 2020; Wang et al. 2021). 이들은 중원(中原) 지역의 인구학적 기반을 형성했다.
- 아무르강(黑龍江) 유역 수렵채집민 (Amur River Hunter-Gatherers): 아무르강(黑龍江) 유역에서 러시아(Russia) 극동에 이르는 북방 지역에 널리 분포했던 인구로, 황하(黃河) 농경민과는 뚜렷이 구별되는 조상 계통(‘고대 동북아시아인’, ANA, 또는 ‘아무르강(黑龍江) 유형’으로 지칭됨)을 가졌다(Ning et al. 2020; Mao et al. 2021). 이들은 이 지역에 깊은 뿌리를 둔 수렵채집민의 후예였다.
- 서요하(西遼河) 유역 인구 (West Liao River Populations): 지리적으로 두 집단 사이에 위치한 서요하(西遼河) 유역의 신석기 인구는 이 두 집단의 혼합된 유전적 특징을 보였다. 이들은 황하(黃河) 유역 농경민의 유전적 요소와 아무르강(黑龍江) 유역 수렵채집민의 유전적 요소를 모두 가지고 있었다(Ning et al. 2020).
이 세 집단은 이후 화북(華北) 지역의 인구 동태를 형성하는 주요 ‘행위자’로서, 이들 간의 상호작용과 유전자 흐름이 후기 신석기 시대와 청동기 시대의 복잡한 유전적 지형을 만들어냈다.
https://yoonsb.com/2026/04/11/202056/
3.2 인구 확산의 증거: 서요하에서 중원으로의 인구 이동
가장 직접적인 유전학적 증거는 서요하(西遼河) 유역에서 황하(黃河) 유역으로의 인구 이동이 실제로 있었음을 보여준다. Ning 등이 2020년 Nature Communications에 발표한 101개의 화북(華北) 고대 유전체 분석 연구는 이 문제에 대한 결정적인 데이터를 제공했다. 이 연구에 따르면, 후기 신석기 시대와 청동기 시대 동안 “서요하(西遼河) 농경민과 관련된 조상 계통이 남쪽으로 황하(黃河) 유역으로 확산”되었다(Ning et al. 2020).
이러한 남향 이동의 시기는 고고학적으로 농업이 집약화되고 용산(龍山) 문화와 같은 복합 사회가 출현하는 시기와 정확히 일치한다(Ning et al. 2020). 황하(黃河) 중류 유역(MYRB)의 용산(龍山) 시대 인구 유전체를 분석한 결과, 기존 앙소(仰韶) 시대 인구와는 다른 새로운 유전적 요소의 상당한 유입이 확인되었다. 이 새로운 요소에는 황하(黃河) 하류 유역에서 온 인구와 관련된 혈통뿐만 아니라, 서요하(西遼河) 집단과 접촉 및 혼혈 관계에 있었을 북방 스텝 목축민과 관련된 혈통도 포함되어 있었다(Huang et al. 2025, Advance online). 이는 용산(龍山) 문화 시기 중원(中原) 지역이 외부로부터의 인구 유입을 통해 유전적으로 더욱 이질적인 사회로 변모했음을 시사하며, 그 유입의 한 축이 북쪽의 서요하(西遼河) 유역이었음을 증명한다.
3.3 양방향 도로: 중원에서 서요하로의 상호적 유전자 흐름
서요하(西遼河)에서 중원(中原)으로의 인구 이동은 일방적인 과정이 아니었다. 유전학적 증거는 황하(黃河) 유역에서 서요하(西遼河) 유역으로의 “상호적인 유전자 흐름(reciprocal gene flow)” 또한 존재했음을 명백히 보여준다(Ning et al. 2020). 이는 두 지역 간의 상호작용이 단순한 이주나 정복이 아닌, 복잡한 교류의 형태였음을 의미한다.
부계 유전자를 추적하는 Y염색체 하플로그룹 분석은 이러한 북향 이동의 구체적인 증거를 제공한다. 서요하(西遼河) 유역의 선사 시대 인골 분석 결과, 시간이 흐름에 따라 유전적 다양성이 증가하는데, 특히 황하(黃河) 유역 농경민 및 중국-티베트어족(Sino-Tibetan languages) 화자와 강하게 연관된 하플로그룹 O3가 유입되어 그 빈도가 증가하는 양상이 관찰된다(Cui et al. 2013). 구체적으로, 서요하 유역 후기 인구에서 하플로그룹 O3의 빈도는 37%에 달했다(Cui et al. 2013). 서요하(西遼河) 유역의 청동기 시대 문화인 하가점 하층(夏家店下層) 문화 인구의 유전적 구성은 중원(中原)으로부터의 이주민 유입이 있었음을 보여준다(Cui et al. 2013). 최근 연구들 역시 중원(中原) 지역이 고대 인구 이동의 핵심 허브 역할을 했으며, 황하(黃河) 유역의 후기 신석기(YR_LN) 관련 유전적 혈통이 서요하(西遼河) 유역을 포함한 주변 지역으로 광범위하게 확산되었음을 재확인한다(Wan et al. 2025, Advance online).
이러한 양방향 유전자 흐름은 두 농업 중심지가 상호 경쟁하고 교류하며 점차 하나의 거대한 인구학적 네트워크로 통합되어 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3.4 동위원소 분석을 통한 확증: 개인의 삶의 궤적 추적
고대 DNA가 집단 수준의 유전자 흐름을 보여준다면, 안정 동위원소 분석은 그 흐름을 구성했던 개개인의 이동을 증명하는 강력한 도구이다. 특히 스트론튬(Strontium) 동위원소 비율(87Sr/86Sr)은 개인이 유년기를 보낸 지역의 지질학적 특성을 치아 에나멜에 기록하기 때문에, 비현지 출신 이주자를 식별하는 데 효과적이다(Bentley, Price and Stephan 2004).
황하(黃河) 유역의 후기 신석기 용산(龍山) 문화 유적인 호가대(郝家台)와 왕성강(王城崗)에서 출토된 인골을 분석한 연구들은 공통적으로 전체 인구의 상당수(약 25%)가 해당 지역 출신이 아닌 비현지인임을 밝혀냈다(Shen et al. 2024; Zhao et al. 2015). 이는 이 시기 중원(中原) 지역의 주요 정치 중심지들이 외부 인구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며 성장했음을 시사한다.
더욱 흥미로운 점은, 이 비현지인들 중 상당수가 여성이라는 사실이다(Shen et al. 2024). 이는 부계 거주(patrilocality) 관습에 따른 지역 간 혼인 교류가 인구 이동과 유전자 흐름의 중요한 사회적 메커니즘이었을 가능성을 제기한다. 즉, 거대한 인구 집단의 유전적 변화로 나타나는 인구 확산 현상이 반드시 전사 집단의 정복이나 씨족 전체의 대규모 이주와 같은 극적인 사건만을 통해 이루어진 것이 아닐 수 있다. 오히려 수백 년에 걸쳐 지속된 혼인 네트워크를 통한 꾸준하고 구조화된 개인들의 이동이 누적되어, 거시적인 유전적 지형의 변화를 초래했을 수 있다. 이처럼 동위원소 분석은 거대 담론 뒤에 숨겨진 개인들의 삶의 이야기를 복원함으로써, 인구 확산이라는 현상에 사회적 실체를 부여한다.
4. 종합
지금까지의 고고학적, 언어학적, 유전학적, 동위원소적 증거를 종합하면, 신석기 시대 화북(華北) 지역에서 기장 농업의 확산은 단순한 기술 전파가 아니라 사람들의 실제적인 이동을 동반한 ‘인구 확산(demic diffusion)’ 과정이었음이 명백해진다. 그러나 그 과정은 단일 방향의 정복적 확산이 아닌, 복잡하고 다층적인 상호작용의 결과물이었다. 이러한 상호작용은 화북(華北) 지역의 유전적 지형을 근본적으로 재편했으며, 후대 중국(中國) 문명의 인구학적 토대를 마련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4.1 증거 종합: 쟁기와 함께 움직인 사람들
사용자의 핵심 질문, 즉 서요하(西遼河)에서 중원(中原)으로 기장 농사가 전파될 때 농사 방법만 전파되었는지 혹은 사람도 같이 이동했는지에 대한 답은 명확하다. 다수의 독립적인 고대 DNA 연구는 후기 신석기 시대와 청동기 시대에 걸쳐 서요하(西遼河) 유역과 황하(黃河) 유역 간에 상당한 규모의 양방향 인구 이동이 있었음을 일관되게 증명한다(Ning et al. 2020; Cui et al. 2013; Wan et al. 2025, Advance online). 이러한 인구 이동은 인구 확산의 정의 그 자체이다. 스트론튬 동위원소 분석은 이러한 집단 수준의 유전자 흐름이 혼인 교류와 같은 사회적 메커니즘을 통해 이동한 개개인들에 의해 이루어졌음을 보여주며, 유전학적 결론을 더욱 공고히 한다(Shen et al. 2024; Zhao et al. 2015).
따라서 ‘사람이 함께 이동했다’는 결론은 확고하다. 그러나 인구 확산이라는 메커니즘이 확인되었다고 해서, Robbeets 등이 제시한 ‘농업/언어 확산’ 가설의 거대 서사 전체가 자동으로 입증되는 것은 아니다. 유전학적 데이터가 보여주는 현실은 서요하(西遼河)라는 단일 중심지에서 출발하여 5개 주요 어족의 분포를 깔끔하게 설명하는 단선적인 확산(Millet Arrow)과는 거리가 있다. 오히려 고고학적, 유전학적 현실은 황하(黃河) 농경민과 서요하(西遼河) 농경민, 그리고 주변의 수렵채집민 집단이 복잡하게 얽히고설키며 서로의 유전자 풀에 기여한 다방향적 교류의 ‘매트릭스(Millet Matrix)’에 가깝다. Miyamoto (2022)가 보여주듯, 언어의 확산조차도 농업 전파, 기술 전수, 정치적 이주 등 다양한 동인에 의해 각기 다른 시점에 복합적으로 이루어졌을 가능성이 높다.
4.2 더 넓은 함의: 화북 거대 인구 집단의 형성
서요하(西遼河)와 황하(黃河), 두 기장 농업 중심지 간의 장기간에 걸친 상호작용과 혼혈은 화북(華北) 지역의 인구 역사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초기 신석기 시대에 뚜렷하게 구분되었던 북방적 유전 요소(서요하(西遼河)/아무르강(黑龍江) 관련)와 남방적 유전 요소(황하(黃河) 유역 관련)는 후기 신석기 시대에 이르러 활발하게 섞이기 시작했다.
이 과정을 통해 화북(華北) 지역에는 이전보다 훨씬 더 균질화된 새로운 유전적 지형이 창출되었다(Ning et al. 2020). 이 혼합된 ‘거대 인구 집단(meta-population)’, 즉 서요하(西遼河)와 황하(黃河) 유역 인구가 융합된 밀집 혼합 인구(약 4000 BP 이후 형성)는 이후 중원(中原) 지역 청동기 문명, 즉 이리두(二里頭), 상(商), 주(周) 왕조를 형성하는 인구학적 기반이 되었다(Wang et al. 2021). 그리고 이들의 유전적 유산은 현대 북부 한족(漢族)에게까지 이어지고 있다(Du et al. 2024).
흔히 중원(中原) 지역은 ‘중화 문명의 요람’이자 다양한 문화가 융합된 ‘용광로(melting pot)’로 불린다. 고대 유전체 연구는 이러한 용광로 현상이 역사 시대에 갑자기 시작된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 진정한 의미의 첫 번째 용광로 사건은 바로 신석기 시대 후기, 북방의 서요하(西遼河) 농경민과 남방의 황하(黃河) 농경민이 만나 유전적으로 융합된 과정이었다. 이 사건은 단순히 농업 기술의 교류를 넘어, 이후 수천 년간 이어질 화북(華北) 지역의 역사적 정체성을 구축할 유전적 기층(genetic substrate)을 마련한 근본적인 인구학적 사건이었다. 따라서 두 핵심 지역 기장 농경민들의 상호작용은 화북(華北) 인구 집단의 형성 그 자체를 의미하는 결정적인 과정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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