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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옹蔡邕 관련자료

채옹_위키한글판

채옹(蔡邕, 133년 ~ 192년)은 후한 말기의 학자로, 자는 백개(伯喈)이며 연주 진류군 어현(圉縣) 사람이다. 전한의 개국공신 채인의 14세손으로,[1] 학문과 글씨에 뛰어난 재주를 가져 명성이 높았다. 서예의 기법인 영자팔법의 고안자라고도 알려져 있다. 훗날 서진 초의 명장 양호의 외할아버지이기도 하다. 또 방계 증손자로 채표(蔡豹,字士宣) 등이 있다.

채옹_나무위키

후한 중기 ~ 말기의 문인ㆍ서예가이며 자는 백개(伯喈)로 채릉(蔡棱)[1]의 아들, 채훈(蔡勳)[2]의 후손이다. 딸로 채염, 채정희를 두었다. 그의 어머니는 원방의 누이.
학문과 글씨에 뛰어난 재주를 가져 명성이 높았다. 교현, 마일제, 왕랑, 노식, 조조 등과 친분을 쌓았으며 서예의 기법인 영자팔법의 고안자라고도 알려져 있다. 훗날 서진 초기의 명장 양호(羊祜)의 외할아버지이기도 하다.

蔡邕_바이두백과

蔡邕(133年-192年),字伯喈,陈留郡圉县(今地名有河南省尉氏县、河南省杞县两说 [58])人 [1]。中国东汉名臣,文学家、书法家 [56-57],才女蔡文姬之父 [59]。

오휴규. (2002). 채옹(蔡邕)의 서예창작이상. 대동철학, 19, 3-70.

초록
문전통적 서예의 궁극적 목표는 대자연의 모방을 통하여 그 아름다움을 재현함으로 해서 마음을 감화시키고 정화시키는 것으로 생각하였는데, 이것은 자연미를 중시한 한대(漢代) 채옹(蔡邕)의 서예 창작론으로부터 비롯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즉, 채옹의 자연미 창작 이상(理想)으로 서예는 단순한 기예를 넘어 하나의 도와 같은 경지이며, 사회문화발전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순수 예술로 인식하게된 계기가 되었고, 나아가 실용 언어로서의 역할을 떠나 독립된 하나의 예술언어로서 감상의 대상으로 발전하게 된 동기가 되었다. 이러한 채옹의 서예 창작이상은 후대로 오면서 그 개념이 점차 확대 재생산되면서 서예의 시작과 궁극적 목표를 제시하는 것으로 되어 역대 서예가들은 모두 자연에서 서예의 실마리를 찾고자 하였으며, 서예의 감상에 대해서도 자연과 결부시켜 감상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오늘날까지, 채옹의 자연미 창작이상은 어느 누구도 실현하지 못했다고 보나 서예가 도달하여야할 궁극적 청사진을 제공한 영향은 막대하다. 뿐만 아니라, 서예가 신성한 문사예술로 유지되고 발전되어 온 것은 채옹에서 비롯된 서조자연관(書肇自然觀)이라 보아야 할 것이며, 오늘날까지 서예에 대한 끝없는 열정과 탐색을 야기하고 탈속된 고아한 높은 예술적 경지를 확보하게 한 것도 그 의의를 두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채옹의 자연관 서예창작이상은 마치 카르노 사이클처럼 앞으로도 변함없이 서예 창작이상과 비평기준이 되어 북극성처럼 빛날 것으로 생각한다

출처: 《고문원古文苑》17 잡문雜文

채옹蔡邕,《전세篆勢》

송宋 장초章樵 주註

〈徐堅《初學記》題以蔡邕篆書體. 古者蒼頡觀鳥跡造文字, 書契始作. 至周宣王時, 史籀作大篆十五篇. 及秦書有八體: 一曰大篆, 二曰小篆. 王莽居攝, 使甄豐校定六書. 五曰繆篆, 所摹印也;六曰鳥䖝書, 所書幡信也. 自漢而下, 轉相摹倣, 名體愈多. 伯喈妙於書法, 靈帝命書六經, 刻石於太學門外.〉

〈서견徐堅의 《초학기初學記》에서는 채옹蔡邕의 전서체篆書體를 주제로 삼았다. 옛날 창힐蒼頡이 새의 발자국을 보고 문자를 만들면서 서계書契가 시작되었고, 주선왕周宣王 시기에 사주史籀가 대전大篆 15편을 지었다. 진나라 문자에는 여덟 가지 서체가 있었는데, 첫째는 대전, 둘째는 소전小篆이다. 왕망王莽이 정권을 잡고 있을 때 견풍甄豐에게 명하여 육서六書를 교정하게 했다. 다섯째는 무전繆篆으로, 인장을 새기는 데 쓰였고, 여섯째는 조충서鳥䖝書로, 깃발이나 신표를 쓰는 데 사용되었다. 한나라 이후로는 계속 서로를 따라 모방하다 보니 이름과 서체가 더욱 많아졌다. 백개伯喈는 서법에 능했고, 영제靈帝는 그에게 육경六經을 써서 태학太學 문 바깥 돌에 새기게 했다.〉

鳥遺跡, 皇頡循聖作則, 制斯文.
皇頡, 蒼頡也. 後世推尊之, 故稱皇頡. 崔瑗《草書體》云: 「書體之興, 始自頡皇, 冩彼鳥跡以定文章. 」〉

새의 자취를 본 황힐皇頡은 성인의 도를 따라 법을 만들었고, 이로써 문자를 제정했다.
황힐皇頡은 곧 창힐蒼頡이다. 후세 사람들이 추존하여 황힐皇頡이라 부른 것이다. 최원崔瑗의 《초서체草書體》에서는 “서체의 시작은 힐황頡皇에서 비롯되었으며, 새의 발자국을 본떠 문장을 정했다”고 말했다.〉

體有六筭, 為真形, 要妙巧入神. 或龜文斜列, 櫛比龍鱗;紆體放尾, 長短副身;頹若黍稷之垂穗, 藴若蟲蛇之棼緼;揚波振激, 鷹跱〈一本作龍躍〉、鳥震〈平聲〉, 延頸脅翼, 勢似凌雲.
或輕舉内投, 㣲本濃末, 若絶若連, 似露縁絲, 垂凝下端. 〈篆體有懸針、倒薤、垂露、偃波, 名非一.〉
從者如懸衡, 者如編抄者;邪趣不方不圓, 若行若飛, 跂跂翾翾. 〈跂, 音企, 虫行也;翾, 音儇, 小飛也.〉
遠而望之, 象鴻鵠羣遊, 絡驛遷延;迫而察之, 端澄不可得見, 指偽不可勝原.
研桑不能數其詰屈;〈計研桑、𢎞羊二人, 精於筭. 班固〈賓戲〉曰: 「研桑心計於無垠. 」〉
離婁不能覩其隙間;〈離婁, 古之明目人.〉
般、倕揖讓而辭巧;〈公輸般, 魯人;倕, 黃帝時人, 皆匠之巧者.〉
籀、誦拱手而韜翰;〈籀, 史籀也;誦, 沮誦也. 黃帝之史, 與蒼頡始造書法.〉
處篇籍之首目, 粲粲斌斌, 其可觀也;摛華艷於紈素, 為學藝之範圓. 〈圓, 音旋, 規也, 所以為圓. 伯喈自謂以此美麗之字體寫之紈素, 可為後人法式.〉
嘉文德之𢎞懿, 舉大體而論旃. 〈旃, 猶之語助也. 《左傳》: 「虞公求旃. 」〉

서체에는 여섯 가지 운용 원리가 있으며, 이것이 진정한 형상을 이루고, 오묘하고 정교하여 신의 경지에 이른다. 어떤 것은 거북 무늬처럼 비스듬히 나열되고, 용 비늘처럼 빗살처럼 배열된다. 몸체는 굽고 꼬리를 늘어뜨리며, 길고 짧음이 몸에 어울린다. 늘어진 모습은 기장이나 조의 이삭 같고, 얽히고 뭉친 모습은 벌레나 뱀이 뒤엉킨 모양과 같다.

물결이 이는 듯하고 격렬하게 흔들리며, 매가 서 있거나〈다른 본에는 ‘용이 뛰어오른다’로 되어 있다.〉 새가 떨치고 날아오르는 모습처럼, 목을 내밀고 날개를 편 형세는 마치 구름을 뚫고 올라가는 듯하다. 가볍게 솟구쳐 안으로 파고들기도 하고, 처음은 연하고 끝은 진하며, 끊긴 듯 이어지고, 이슬이 실을 따라 흘러 끝에 맺히는 것 같다. 〈전서체에는 ‘현침懸針’, ‘도해倒薤’, ‘수로垂露’, ‘언파偃波’ 등 여러 이름이 있으며 일정하지 않다.〉

어떤 것은 저울추처럼 매달려 있고, 어떤 것은 실을 꿴 듯 엮여 있으며, 기울고 비틀려 네모도 아니고 원도 아니며, 걷는 듯 날아가는 듯하다. 기기跂跂하고 현현翾翾하여, 〈‘기跂’는 ‘기어감’, ‘현翾’은 ‘작게 날아감’을 뜻한다.〉

멀리서 보면 기러기와 백조가 무리지어 노니는 듯하고, 줄지어 이어지고, 천천히 흐른다. 가까이 다가가 살펴보면 맑고 단정하여 구체적으로 가리키기 어렵고, 거짓을 밝히려 해도 끝내 근거를 찾을 수 없다.

연상研桑은 그 복잡한 굴곡을 셈할 수 없었다. 〈연상과 홍양𢎞羊은 산수에 밝았다. 반고班固의 《빈희賓戲》에서는 “연상은 끝없는 마음의 계산을 했다”고 말했다.〉

이루離婁도 그 틈새를 볼 수 없었다. 〈이루는 고대에서 시력이 가장 뛰어난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공수반公輸般과 수倕는 서로 절하고 겸양하며 그 기교를 감추었다. 〈공수반은 노魯나라 사람이었고, 수는 황제黃帝 때 사람이었으며, 모두 뛰어난 장인이었다.〉

주籀와 송誦은 손을 모으고 붓을 거두었다. 〈주籀는 사주史籀, 송誦은 저송沮誦이다. 황제 시기의 사관으로 창힐과 함께 서법을 만들었다.〉

책이나 문서의 첫머리에 놓이면 찬란하고 빛나 보기에 훌륭하며, 화려하고 아름다운 서체를 흰 비단 위에 펼치면, 학문과 예술의 본보기가 되는 기준이 된다. 〈‘원(圓)’은 ‘선(旋)’과 같은 음으로, ‘규(規)’를 뜻하며, 원을 그리는 도구이다. 백개(伯喈)는 이 아름다운 서체로 흰 비단에 글을 쓰면, 후세 사람들의 법식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문덕文德의 넓고 아름다움을 찬미하며, 큰 체계를 들어 이 뜻을 논하였다. 〈‘전旃’은 어조사로, 《좌전左傳》에 “우공이 전을 구했다”는 구절이 있다.〉았을 뿐이나, 그 형상은 이와 비슷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