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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오늘 여러분들께 말씀드릴 내용은 크게 일곱 가지인데요.

첫 번째, 인트로[introduction]. 지난 100년 동안 한민족의 역사 연구는 진화를 멈추었다. 좀 도발적인 인트로입니다.

두 번째는 우리가 착각을 하고 있는 오해와 진실에 대한 질문 4가지를 하고요.

미리 말씀드릴 것은 저는 문외한입니다. 문 밖에 있는 건달입니다. 도대체 평생 40~50년을 역사 연구를 하신 분들, 또 학사, 석사, 박사, 정규 과정을 밟으신 분들과 경쟁할 수 있는 방법이 뭘까? 모든 일을 하더라도 경쟁력이 뭔가를 생각을 하는데요.

그래서 남들이 하는 방식으로 어프로치 해서는 승부가 나지 않겠다고 생각해서 제 나름 독특한 방식을 몇 가지 채택을 해봤습니다.

네 번째가 콘텐츠 중에 가장 핵심인데요. 테라인코그니타[terra incognita]. 미지의 땅, 모르는 땅이라는 개념에 대해서 소개 말씀을 드리고,

다섯 번째는 이것도 이번에 제가 좀 새롭게 제안하는 내용인데요. 고유명사, 특히 지명 같은 것은 한 군데 고착돼 있죠. 그런데 오천 년이라는 세월을 놓고 보니까 고유명사라는 것이 마치 발이 달린 것처럼 여기저기 옮아 다니더라, 그러면 그 지명이 5천 년 동안 어떻게 옮아 다녔는가 라는 말씀을 드리고,

마지막으로 앞에 쭉 말씀드린 것을 종합해서 그럼 지난 5천 년 동안 우리 한민족과 지나족 사이의 국경은 어떠했는가를 짧게 리뷰를 하고,

마지막 마무리로서 왜 우리나라 역사 연구가 현재처럼 100년 동안 진화는커녕 퇴보를 하고 있는가. 엄청난 터부[taboo]와 도그마[dogma]가 있다. 이것을 어떻게 타파할 것인가라는 내용으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먼저 시작하기 전에 제가 중국, 중국인이라는 용어를 쓰는 대신에 지나, 지나인이라는 용어를 씁니다. China죠. 우리가 흔히 인도지나반도, 남지나해 이런 식으로 쓰는데 엄밀하게 따지면 중국과 지나는 완전 다른 이야기입니다.

지나는 진나라, Chin에서 온 것이죠. 진나라라 해봐야 현재 중국 영토의 4분의 1밖에 안 됩니다.

그런데 우리가 중국, 중국인이라고 이야기할 때는 현재처럼 거대한 중국과 거대한 13억, 14억 명에 이르는 중국인을 생각을 하거든요. 그래서 개념상 혼란이 올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하화족이라고 이야기를 해버리면 너무 작죠 인구가. 사방 천리 밖에 안 되고, 그래서 과거 역사 이야기할 때 가장 적절한 용어는 지나, 지나족이라고 표현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첫 번째 본론에 들어가겠습니다. 주제는 지난 100년 동안 일제 시대부터 지금까지 우리 한민족의 역사 연구는 진화를 멈추었다라는 주제입니다.

1920년도에 일본의 오다 쇼고라는 분이 내신 아동용 역사 교과서입니다.

이 교과서의 전통을 그대로 이어받은 것이 1948년 신석호 선생이 내신 《중등학교 사회생활과 우리나라의 생활》입니다.

내지는 이렇습니다. 그래서 바로 1948년도 판과 현재 우리가 학생들한테 가르치고 있는 역사 교과서를 비교를 해보죠.

옛날 일제시대 때 고조선이죠. 지금은 고조선 지도 자체가 역사 교과서에 실려 있지 않습니다. 다만 관련 문화 범위 이렇게 설명이 돼 있죠.

그다음에 고대 제국, 고대 제국. 똑같습니다.

고구려 옛날 사진을 보면, 이쪽 끝 대릉하 쪽까지 고구려 영토라 되어있죠. 그런데 지금 보면 현재 요하 유역까지 우리 고구려 최대 영토 이렇게 돼 있습니다. 오히려 일제시대 때보다 땅이 더 좁아졌습니다.

그리고 발해 강역을 보더라도 이 지도를 보면 오른쪽 끝에 흑룡강 끝까지 발해의 영토입니다. 요새 교과서를 보면 송화강 정도까지 발해의 영토로 되어있죠. 오히려 일제시대 때 가르치는 것보다 더 좁은 영토로 가르치고 있습니다.

신라 때는 대동강, 지금도 대동강으로 똑같습니다.

고려 때도 왼쪽 서계[西界]가 압록강, 압록강 똑같습니다.

옛날 책을 보니까 조선지도가 없는데요. 갈음할 수 있는 것이 정묘 병자 호란 약도를 보시면 압록강, 두만강, 백두산이 경계로 되어있고 지금도 마찬가지죠.

전체 종합을 해보겠습니다. 고조선 지도는 현재 없습니다. 아이들한테 가르치고 있지 않습니다. 한사군은 동일하고 고구려 영토는 일제시대 때보다 오히려 줄었습니다. 통일신라 동일하고 발해도 오히려 줄었습니다. 고려, 조선은 동일하죠.

제가 지난 100년 동안 한민족의 역사 연구는 진화를 멈췄다고 말씀을 드렸는데 더 엄밀하게 말씀을 드리면 오히려 퇴보를 했다, 제가 조금 이상한 부분 세 가지를 말씀드렸는데요. 고조선, 고구려, 발해 세 가지 분야에서 오히려 일제시대 때보다 역사책이 더 퇴보를 했습니다.

먼저 고조선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지금 교과서에 나오는 내용이 국토가 아니고 관련 문화 범위입니다. 도대체 왜 우리나라가 우리나라 고조선의 국토, 영토가 어디까지였다고 말을 할 수 없는지 저는 그 이유 자체를 모르겠습니다.

그런데요. 지금은 개정 7판 교과서가 나왔는데 개정 6판을 보면 연두색으로 보이는 부분이 동이족의 분포 지역 이렇게 되어 있거든요. 아까 지도와 조금 차이가 나죠. 이것과 이것.

제가 개인적으로 볼 때는 산해관에 있던 부분까지는 충분히 고조선의 영역이었고 그 아랫부분에 점을 쳐 놓은 것이 조금 애매모호한데요. 산동반도 끝입니다. 우이[嵎夷]라는 동쪽 오랑캐가 살았던 땅인데요.

이 지도는 대만에서 출간한 《중국역사지도집》입니다. 끝에 보면 우이[嵎夷]라고 되어있죠.

그런데 신기한 것은 바이두백과에 들어가서 우이[嵎夷]라고 검색해 보면 우이문화가 중국문화로 융합이 됐다, 우이문화가 멀리 조선반도로 전파됐다고 하고 있습니다.

바이두백과에서, 중국 나라 전체가 동북공정에 휩싸여 있는 입장에서 이 정도 표현하는 것은 최대한의 표현입니다. 우이문화는 중국문화와 완전히 다르다, 우이라는 사람들이 중국 사람들과는 완전히 다른 사람들이라는 간접적인 표현으로 봐야 됩니다.

1705년에 《우공추지》라는 책이 있는데요. 이 책에 보면 《구주분역도》라는 지도가 실려 있습니다.

보시면 우리나라 한반도에 우이[嵎夷]라고 표기되어 있죠. 산동반도에 살던 우이[嵎夷]라는 족이 우리 한민족이라는 이야기입니다.

더 결정적인 것은 《이아구주도》라는 지도인데요.

아랫부분에 보시면 바로 대놓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朝鮮即嵎夷, 조선 즉 우이다. 그러니까 산동반도에 살던 우이는 바로 한민족이다. 결정적으로 이야기할 수는 없지만 거의 그런 것 같다는 이야기죠.

고구려 이야기하겠습니다. 그 유명한 두우 선생이 쓰신 《통전》이라는 책인데요.

《통전》에 보면 변방 동이 고구려전에 빨간 부분이 보이시죠. 동서 육천리[東西 六天里]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고구려가 후한 때는 사방, 남북동서 2천 리였는데, 위나라 때 1천 리 정도로 줄었고, 수나라 때 점점 커져서 동서 6천 리가 됐다고 쓰고 있습니다. 사방 2천 리, 사방 1천 리로 줄었다가 수나라 때 동서 6천 리입니다.

지금 우리가 가르치고 있는 교과서를 보면 동서 3천 리, 남북 3천 리입니다. 이것이 고구려 때 최대 강역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이거든요. 정말 턱도 없는 소리죠.

세 번째 발해를 보시죠. 발해는 대조영이 북쪽을 병탄을 해서 땅이 사방 5천 리입니다. 《요사》에 나와 있습니다.

그리고 《신당서》는 발해가 있던 당대 역사책이죠. 여기서는 사방 5천 리고 부여, 옥저, 변한, 조선 등 바다 북쪽에 있던 여러 나라 땅을 모두 다 차지했다고 쓰고 있습니다. 《신당서》라는 책 자체가 상당히 자기들한테 유리하게 역사 왜곡이 된 책인데도 불구하고 사방 5천 리라고 표현을 하고 있거든요.

지금 교과서에서 나온 지도에서 대충 계산을 해보면 동서가 4천 리, 남북이 2천 5백 리 정도입니다. 엄청나게 작게 표현이 되어있죠.

대략 우리들이 중국 이야기를 할 때 중국의 본토를 사방 5천 리라고 표현을 하죠. 여기에 비해서 고구려를 보면 동서 6천 리, 남북은 조금 좁았던 것 같습니다. 여기에 발해를 그려보면 사방 5천 리가 이 정도 땅입니다. 정말 우리 선조들이 상상을 할 수 없을 만큼 넓은 땅을 차지를 하고 있었죠. 이렇게 놓고 보면 중국 지나족이나 우리나라 조상이나 거의 차지했던 땅이 거의 비슷하다, 오히려 더 넓을 수도 있다, 진나라 보다는 발해가 훨씬 더 넓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막연히 진시황제가 통일한 땅은 엄청나게 넓은 땅이고 우리가 차지했던 발현한 고구려는 상당히 좁은 땅이라고 선입감을 갖고 있죠. 지난 100년 동안 우리 한민족의 역사 연구는 진화를 멈춘 것이 아니라 오히려 퇴보했다고 말씀드릴 수가 있습니다.

두 번째, 몇 가지 이슈에 대해서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첫째 질문입니다. 고조선이라는 나라가 압록강 남쪽에 있었을까요? 압록강 북쪽에 있었을까요?

우리가 배운 모든 교과서나 모든 자료에서는 고조선이라는 게 평양 부근에 있었으니까 압록강 남쪽에 있었다고 대부분 생각들을 하시죠. 그리고 지금도 그렇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지금도 도읍 자체가 평양이니까 압록강 남쪽에 있다고 표현을 하고 있습니다.

몇 개 고지도를 보시죠. 《역대지리지장도》라는 지도는 꽤 유명한 지도죠. 중국에서 만든 세계 최초의 역사지도집이라고 자랑할 정도인데요.

마지막 부분을 보시면 《십구사지리도》라는 지도가 있습니다.

이 부분을 확대를 해보면 압록수, 조선이 보이시죠. 압록수 훨씬 위쪽에 조선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 압록수도 지금의 압록강이 아니라 지금의 요하를 그때 압록수라고 불렀습니다.

그걸 현대 지도에 표현을 해보면 장성이 있고 요동, 요수가 있고 압록수가 있고 조선 땅은 여기가 조선 땅입니다.

그다음 1616년에 나온 《십구사략통고》라는 책에 나오는 지도입니다. 제가 거의 유일하게 디지털원본을 못 가지고 있는 지도인데요. 국사편찬위원회 자료에서 인용을 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압록수 북쪽에 조선이 있습니다.

그다음에 《육경도》라고 하는 유명한 책이죠. 하버드 옌칭연구소에서 갖고 있는 책인데요.

보시면 우공구주급금[禹貢九州及金], 지금의 군현산하를 그렸다는 지도겠죠.

확대를 하면 압록강, 조선. 이 압록강은 현재 요하를 말합니다. 요하 훨씬 위쪽에 조선이 있습니다.

그다음 우리나라 중앙국립도서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지도인데요. 《우공구주지도》라는 지도입니다.

빨간 인장 때문에 잘 보이지 않는데 확대를 하면 압록수 북쪽에 조선이 있습니다.

고조선은 압록강 남쪽에 있었나요? 북쪽에 있었나요?

답은 고조선의 도읍은 압록강 북쪽에 있었다고 이야기하는 것이죠.

두 번째 질문입니다. 여러분들이 너무나 잘 아시는 백이숙제는 지나족, 중국 사람인가? 우리 한민족인가? 그리고 백이숙제의 고향인 고죽국이라는 나라는 지나 계열 국가인가? 우리 한민족 계열 국가인가?

너무나 당연하게 고죽국이라는 나라 이야기를 할 때는 백이숙제 이야기가 나오고, 중국책이 나오고,

교과서에도 우리들은 《수양산을 바라보며》 이런 것을 배웠습니다. 성삼문 선생이 쓰신 시죠.

누구나 다 백이숙제는 중국 사람이고, 왜냐하면 백이숙제 이야기는 사마천 사기열전 제일 앞부분이 나오거든요. 그러니까 이 이야기를 중국 사람이지 우리 한민족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거의 없죠.

공부를 해보니까 백이숙제는 우리 한민족입니다. 그리고 고향 땅인 고죽국은 한민족의 국가고 특히 고조선의 거수국, 제후국입니다.

당시 우리나라 고조선은 엄청나게 방대했습니다. 중국 지나계통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아주 강대한 민족이었고 그 형태는 연방 형태입니다.

《제왕운기》를 보면 고조선이 신라, 고려, 남북 옥저, 동부 부여, 예, 맥 모두를 아울렀다고 되어 있습니다.

《세종실록》 지리지를 봐도 조선, 신라, 고려, 남북 옥저, 동북 부여, 예, 맥 모두 단군이 다스렸다고 되어있죠.

그러니까 “United States of America”처럼 그 당시 고조선은 “United States of 고조선” 형태를 갖고 있었습니다.

단군은 사람이 아니죠. 고조선 연방의 연방대통령의 직책을 단군이라고 불렀습니다.

《삼국유사》를 보면 단군왕검이라고 되어있죠. 첫 번째 단군의 이름이 왕검이었다는 이야기죠.

그런데 그 고조선 연방의 제후국, 거수국이라고 이야기를 하죠. 거수국 중 하나가 고죽국입니다. 고지도를 보시죠.

일본에서 나온 《당토명승도회》라는 책에 보시면 《영평부총도》라는 지도가 나오는데요.

영평부 위쪽에 고조선성[古朝鮮城]이라고 되어있죠. 왼쪽에 보시면 고고죽국[古孤竹國], 그 옆에 백이숙제묘[伯夷叔齊廟]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쪽에 고죽국이 있었던 것이죠.

백이숙제의 묘는 소설에 나오는 무덤이 아니고 얼마 전까지, 문화혁명이 일어나기 전까지 실제 존재를 했다고 합니다. 사진도 남아 있죠.

그 위치가 대략 영평부가 이쪽입니다. 고문헌을 보시죠.

《수서》를 보시죠.

수양제가 고구려를 상당히 좀 고깝게 여기는 것이죠. 그래서 공격을 해야 되겠다고 작전을 짜면서 자기의 책사인 배구한테 물어봅니다. 이 고구려란 나라가 도대체 어떤 나라냐고 이야기하니까,

그 이야기가 《수서》, 《구당서》, 《신당서》 거의 비슷하게, 글자 한두 개 다르게 수록이 되어 있는데요.

배구가 말하기를 고려, 고구려라는 땅은 본래 고죽국이다. 주나라 때 기자를 보냈고 한나라 때 한사군 또는 한삼군, 그리고 진나라 때는 요동땅이 되었다. 그러니까 고구려 땅, 고죽국, 기자가 왔던 곳, 한사군 한삼군, 요동땅이 다 같은 지역이죠.

여기가 아까 전에 말씀드린 영평부 지역입니다. 여기에 고구려, 고죽국, 기자 봉지, 한삼군 한사군, 요동땅이 있었다는 것이죠.

저도 이런 중국 정사가 한두 가지도 아니고 수없이 중국 정사 24사에서 이렇게 이야기를 하니 처음에는 상당히 놀랐죠. 저도 평생 알기로 한사군이라는 것은 평양 땅에 있었고, 위만 조선도 평양에서 망했고, 고조선도 평양에 있었고 이렇게 배웠는데 중국의 정사 24사/25사, 중국이 그렇게 자기들이 스스로 자랑을 하고 자부심을 갖는 정통 역사책에서 다 이렇게 기록을 하고 있습니다.

제가 고죽국이라는 나라가 고조선의 제국이라고 말씀을 드렸는데요. 왜 그런지 몇 가지 이유를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전통적으로 지나 국가들의 나라 이름은 무조건 한 자입니다. 중국의 24사, 25사나 중국의 역사책을 보면 자기들 지나 계통 국가 이름에서 두 개 이름 자가 있는 경우는 하나도 없습니다. 모든 것이 요, 순, 우, 하, 상, 주, 한 이런 식이거든요.

그런데 우리들이 한나라를 부를 때 동한, 서한, 전한, 후한 이렇게 부르는 것은 후대 사람들이 그 당시에 한나라가 두 개가 있으니까 헷갈리지 말라고 앞에 있던 한이 전한이고 뒤에 있던 한이 후한이다 이렇게 부르는 것이죠.

원래 당시에는 무조건 한 자로 부릅니다. 고죽은 두 자죠. 이미 여기에서 이것은 지나계 국가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고죽을 해석을 해보면 외로운 대나무. 무슨 나라 이름이 이래요. 외로운 대나무입니까? 이거 뭐 소설 쓰는 것도 아니고 수필 쓰는 것도 아니고. 대략 북경 동쪽의 한자말 중에서 뜻풀이가 잘 안 된다고 하면 한민족 또는 만주 계통 말을 음차한 것이라고 보시면 큰 대과가 없죠.

음차라는 것은 예를 들어서 코카콜라를 중국 사람들이 가구가락[可口可樂]이라고 표현을 하고 발음이 비슷하게 코카콜라 이렇게 나온다는 것이거든요. 그러니까 표시할 말이 없으니까 한자말로 따온 것을 음차한다고 하는 것이죠.

예컨대 우리가 알고 있었던 주몽이라는 이름도 광개토대왕비를 보니까 추모라는 우리 말을 한자말로 쓰니까 주몽이더라 라고 이야기를 하는 것이죠.

고죽[孤竹]도 고추[Gū zhú]라고 발음이 되는 것이죠. 그럼 이 고추라는 말이 어디서 왔느냐고 따져보니까 우리나라 말에 고추가[古雛加]라는 직책이 있습니다. 고구려 때요. 아마 여러분들 어릴 때 배운 기억이 나시죠.

《삼국지》를 보면 위서 동이전에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고구려 때 직책이 상가, 대로, 패자, 고추가 등등 아주 중요 직책 중 하나인데 고추가가 누구냐 하면 왕의 피붙이 중에서 똑똑한 사람입니다. 이 사람을 임명해서 지방에 제후로 보내는 것이죠.

고추가[古雛加]에서 가[加]는 우리가 님 자, 어머님 아버님 할 때 님 자고 고추[古雛]를 한자말로 표현을 하다 보니까 고죽[孤竹]으로밖에 표현이 되지 않는 것이죠. 그런데 여기까지는 어느 정도 다들 인정을 하죠.

그런데 이 이야기는 고구려 때 직책 아니냐, 물론 고구려라는 나라가 고조선의 여러 가지 전통을 이어받았다고 하지만 직접 고조선 때 고추[古雛]라는 직책을 쓴 증거가 없지 않느냐고 반론을 하죠.

그런데 얼마 전에 무려 1400년이나 된 두로영은이라는 분의 비석이 하나 발견이 됐는데요.

이 비문에서 결정적인 단어가 나옵니다. 위에 한자가 보이시죠.

조선건국고죽위군[朝鮮建國孤竹為君]입니다. 조선이 나라를 세웠는데 고죽을 위군으로 삼았다. 조선이 고죽국을 만들고 거기다가 고추가를 한 명 보냈다, 그래서 군주가 되도록 했다. 아주 결정적인 문구가 나오는 것이죠.

그다음에 조선은 기자를 봉한 땅이고 고죽백이의 나라다. 바로 직접적인 이야기입니다. 조선이 기자가 온 땅이고 고죽백이의 나라라는 것이죠.

그러니까 다시 말씀을 드리면 백이숙제는 중국 사람이 아니고 지나 사람이 아닙니다. 우리 한민족입니다. 고죽국은 지나계의 국가가 아니고 한민족의 국가입니다.

고조선의 방계 거수국 중에 하나인데 가장 서쪽에 있다 보니까 사마천의 눈에 띈 것이죠. 그래서 조선을 표현하기로 고죽국이라고 표현을 했던 것이죠.

그다음 세 번째, 요수 요하라는 강이 고문헌을 보면 수도 없이 나옵니다. 이 강이 과연 같은 강일까요? 다른 강일까요? 상식은 같은 강입니다. 그런데 완전히 다른 강입니다.

중국의 바이두백과인데요. 바이두백과에 요하[遼河]를 검색해보면 지금 요동땅에 있는 요하 그대로 표현이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요수[遼水]를 검색해보면 옛날의 요하 이름이라고 되어있고 거의 비슷한 것처럼 보이지만 오른쪽에 지도가 하나 붙어 있는데요.

이 지도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구글에 표시를 하면 이쪽에 요수가 있습니다. 북경 한참 밑 제나라 위에, 산동반도 사이에 요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바이두백과에서 이미 요수와 요하는 다른 강이라고 이야기할 정도면 이것은 최후의 bottom-line으로 봐야죠. 바이두백과에서 표현한 것은 중국 사람 전체는 아니겠죠. 그 중에서 아주 앞서 있는 지리학자들은 요수와 요하는 완전 다른 강이라고 알고 있는 것이죠.

중국 한전을 찾아보면 요[遼]라는 말은 멀다. 그래서 지리학 관점에서 보면 멀리 국경 부근 또는 국경 너머에 있는 땅을 요[遼]라고 했고 그쪽에 흐르는 강을 요하 또는 요수라고 했고 그곳의 동쪽을 요동, 서쪽을 요서라고 불렀다는 것이죠.

고지도를 하나 보겠습니다. 1584년에 만든 《법계안립도》라는 책에 나오는 《남섬부주도》라는 지도인데요.

오른쪽 위에 보시면, 제가 조금 확대를 하겠습니다. 요[遼]라는 것이 보이시죠. 국경 근처에 멀리 있는 땅을 요[遼]라고 불렀고 그 요[遼] 건너편에 보면 고려[高麗]라고 보이시죠. 이것이 고구려입니다.

답은 요수와 요하는 완전히 다른 강이다 라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