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만년전 동해는 거대한 ‘짠물 호수’였다.

목차

프롤로그: 지구라는 타임머신과 얼어붙은 과거

제1장. 빙하기의 무대 설정: 해수면 120m 하강의 충격

제2장. 해협의 물리학: 문턱(Sill)과 수리학적 제어(Hydraulic Control)

제3장. 동해의 대봉쇄: 네 개의 문은 어떻게 되었나

제4장. 과거의 해저를 스캔하다: 지질학적 증거와 시퀀스 층서학

제5장. 거친 바닥의 미스터리: 움직이는 자갈과 조석 증폭

제6장. 공급원의 대격변: 거대 강의 등장과 쿠로시오의 후퇴

제7장. 거대한 희석: 동해는 얼마나 싱거웠나?

제8장. 숨 막히는 심해: 성층 강화와 무산소의 확산

제9장. 과거를 읽는 과학의 도구들 (1): 대리지표(Proxy), 자연의 암호를 해독하다

제10장. 과거를 읽는 과학의 도구들 (2): 연대 측정과 모델링

제11장. 바다, 다시 숨을 쉬다: 극적인 부활의 타임라인

제12장. 육교를 건넌 사람들: 인류 역사의 교차점

제13장. 과학의 경계: 우리가 아직 모르는 것들과 불확실성

에필로그: 과거로부터 배우는 미래

참고문헌 (References)

 

프롤로그: 지구라는 타임머신과 얼어붙은 과거

우리가 사는 지구는 끊임없이 변화하는 역동적인 행성이다. 때로는 그 변화가 너무 느려 우리가 인지하지 못하지만, 지구의 긴 역사 속에는 상상을 초월하는 극적인 변화의 순간들이 존재했다. 지금으로부터 약 2만 년 전, 지구는 ‘마지막 최대 빙하기(LGM, Last Glacial Maximum)’라는 혹독한 추위의 절정기에 있었다.

이 시기를 상상해 보자. 북아메리카 대륙의 절반과 북유럽 전체가 수 킬로미터 두께의 거대한 빙상(Ice Sheet)으로 덮여 있었다. 마치 남극 대륙이 북반구로 확장된 듯한 모습이었다. 이 거대한 얼음덩어리들은 지구상의 막대한 양의 물을 가두어 버렸다. 그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전 세계의 해수면이 지금보다 무려 120미터 이상 낮아진 것이다(Lambeck et al., 2014; Spratt & Lisiecki, 2016).

120미터의 해수면 하강은 오늘날의 지도를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평균 수심이 44미터 정도에 불과한 황해는 바다가 아니라 광활한 육지 평야로 변했고, 한반도는 일본 열도와 거의 맞닿을 지경이 되었다.

이러한 전 지구적 격변 속에서 동해는 어떤 운명을 맞이했을까? 지난 수십 년간 과학자들은 동해 깊은 바닥에 쌓인 퇴적물이라는 ‘타임캡슐’을 열어 그 비밀을 파헤쳐 왔다. 그들이 밝혀낸 빙하기 동해의 모습은 오늘날 우리가 아는 푸른 바다와는 완전히 달랐다.

당시 동해는 외부와 거의 단절된 거대한 ‘짠물 호수’처럼 변해 있었고, 표면은 민물에 가까울 정도로 싱거웠으며, 깊은 바다는 산소가 고갈되어 생명이 살기 어려운 ‘죽음의 바다’가 되어 있었다(Oba et al., 1991; Lee et al., 2008).

도대체 2만 년 전 동해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졌던 것일까? 어떻게 바다가 싱거워지고 숨을 멈출 수 있었을까? 그리고 그 혹독한 시기가 끝났을 때, 동해는 어떻게 다시 지금의 모습으로 돌아올 수 있었을까? 이 책은 최신 과학 연구 결과들을 바탕으로, 빙하기 동해에서 펼쳐졌던 극적인 환경 변화의 원인과 과정을 추적하는 지적 탐험이다. 학술적으로 검증된 엄밀한 증거들을 하나하나 살펴보며, 수만 년 전 과거로의 여행을 시작해보자.

 

제1장. 빙하기의 무대 설정: 해수면 120m 하강의 충격

모든 사건에는 배경이 있다. 동해의 극적인 변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마지막 최대 빙하기(LGM)’라는 시대적 배경을 명확히 이해해야 한다. LGM은 약 2만 3천 년 전부터 1만 9천 년 전까지의 기간을 말하며(Mix et al., 2001), 이 시기는 인류가 경험한 가장 최근의 극한 기후였다. 해수면 하강은 이 시대를 규정하는 가장 중요한 특징이다.

사라진 바닷물 120미터, 어떻게 알 수 있을까?

LGM 시기 전지구 평균 해수면(GMSL, Global Mean Sea Level)은 현재보다 약 120m에서 최대 135m까지 낮았다(Spratt & Lisiecki, 2016; Lambeck et al., 2014). 이 엄청난 양의 바닷물이 모두 대륙 빙하 속에 얼어붙어 있었다.

과학자들은 이 숫자를 어떻게 알아냈을까? 이는 단순한 추측이 아니라 정밀한 과학적 증거에 기반한다. 가장 강력한 증거는 심해 퇴적물 속 유공충(미세 화석) 껍질에 기록된 산소동위원소 비율(δO-18)이다. 빙하가 많아질수록 바닷물의 동위원소 비율이 변하기 때문에(자세한 원리는 제9장에서 다룬다), 이를 역산하여 사라진 빙하의 양, 즉 해수면 하강 폭을 계산할 수 있다. 또한 과거 해안선 근처에서만 서식했던 산호초 화석의 위치나 대륙붕 퇴적층의 분석 등 다양한 지표들을 결합하여 신뢰도를 높인다(Spratt & Lisiecki, 2016).

평균과 현실의 차이: 상대 해수면의 복잡성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개념적 구분이 필요하다. ‘전지구 평균 해수면(GMSL)’은 말 그대로 지구 전체 바다 높이의 평균값이지만, 특정 지역에서 실제로 나타나는 해수면 높이, 즉 ‘상대 해수면(RSL, Relative Sea Level)’은 지역마다 다를 수 있다(Lambeck et al., 2014).

왜 이런 차이가 발생할까? 땅 자체가 움직이기 때문이다. 어떤 지역은 지각 운동으로 솟아오르고(융기) 어떤 지역은 가라앉는다(침강). 또한 해류의 변화나 수온 변화도 국지적인 해수면 높이에 영향을 준다.

특히 빙하기에는 ‘빙하성 지각균형 조절(GIA, Glacial Isostatic Adjustment)’이라는 현상이 중요하다. 거대한 빙하의 무게가 지각을 짓누르면 그 주변부는 오히려 약간 솟아오르고, 빙하가 녹아 무게가 사라지면 눌렸던 지각이 다시 천천히 솟아오르는 복잡한 과정이 발생한다. 마치 메모리폼 매트리스를 눌렀다 떼는 것과 같다. 과학자들은 이러한 GIA 효과를 정교한 모델로 계산하여(역산), 평균 해수면 데이터로부터 각 지역의 실제 상대 해수면을 추정한다(Lambeck et al., 2014).

이러한 전 지구적인 해수면 하강은 해안선을 극적으로 후퇴시켰다. 특히 수심이 얕은 대륙붕 지역은 광범위하게 육지로 드러났는데, 이는 바다와 바다를 연결하는 통로인 ‘해협(Strait)’의 기능을 마비시키는 결정적인 사건이 되었다(Mix et al., 2001).

 

제2장. 해협의 물리학: 문턱(Sill)과 수리학적 제어(Hydraulic Control)

해수면 하강이 동해에 미친 영향을 이해하려면, 단순히 해안선이 후퇴했다는 사실을 넘어, 바닷물이 어떻게 흐르는지를 제어하는 물리학 법칙을 이해해야 한다. 여기에는 두 가지 중요한 개념이 등장한다. 바로 ‘문턱(Sill)’과 ‘수리학적 제어(Hydraulic Control)’이다.

바닷길의 병목 구간: 문턱(Sill)

동해는 네 개의 해협을 통해 외부와 연결된다. 이 해협들을 통한 바닷물의 교환을 이해하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문턱 수심(Sill Depth)’이다. 문턱이란 해협의 바닥에서 가장 얕은 지점을 의미한다(Pratt & Whitehead, 2008).

욕조의 배수구가 욕조의 크기보다 물이 빠져나가는 속도를 결정하듯, 해협에서는 이 문턱이 전체 물의 흐름을 제어하는 병목 구간 역할을 한다. 아무리 해협의 다른 부분이 깊어도, 결국 물이 통과할 수 있는 최대 용량은 이 문턱에 의해 제한된다(Armi & Farmer, 1986).

해수면이 하강하면 이 문턱의 상대적 높이는 그만큼 높아지는 효과가 나타난다. 만약 문턱 수심이 해수면 하강 폭보다 얕다면, 그 해협은 완전히 닫혀 육지로 변하게 되는데, 이를 ‘노출’ 또는 ‘폐쇄(Closure)’라고 하며, 때로는 인접한 육지를 연결하는 ‘육교(Land Bridge)’가 형성되기도 한다(Kuzmin et al., 2002). 설령 문턱이 물속에 간신히 남아있더라도, 물이 통과할 수 있는 깊이(유효 수심)와 폭이 급격히 줄어들어 해협의 총 단면적은 극적으로 축소된다(Mix et al., 2001).

직관을 배신하는 흐름: 수리학적 제어

여기서 우리는 직관적인 생각의 함정에 빠지기 쉽다. 수심이 반으로 줄면 유량도 반으로 줄어들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현실은 훨씬 가혹하다. 유량은 수심 감소보다 훨씬 더 급격하게, 거의 ‘꺼지듯이’ 줄어든다. 이는 ‘수리학적 제어(Hydraulic Control)’라는 유체역학의 원리 때문이다(Armi & Farmer, 1986).

고속도로가 갑자기 좁아지는 터널 입구를 상상해보자. 4차선 도로가 2차선으로 줄어들면 통행량은 단순히 절반이 되는 것이 아니라, 극심한 정체로 인해 절반 이하로 뚝 떨어진다. 단순히 줄어든 폭에 비례해서 통행량이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선형적 감소), 훨씬 더 큰 폭으로 줄어드는 것이다(비선형적 감소).

바닷물의 흐름도 마찬가지다. 특히 해협의 좁은 문턱 위를 흐르는 물은 댐의 수문을 통과하는 물과 유사한 특성을 보인다. 흐름이 특정 임계 상태에 가까워지면, 유량은 수심에 단순 비례하는 것이 아니라 수심의 거듭제곱(예를 들어, 이상적인 조건에서는 약 3/2승)에 비례하여 변화한다(Pratt & Whitehead, 2008).

이것이 핵심이다. 수심이 절반으로 줄면 유량은 절반이 되는 것이 아니라, (1/2)의 3/2승, 즉 약 35% 수준으로 급감한다. 만약 수심이 1/7로 줄었다면, 유량은 약 1.8% 수준으로 곤두박질치게 된다. 이것이 바로 대한해협에서 일어난 일이다. 수심이 조금만 얕아져도 흐름 용량은 거의 ‘꺼지듯이’ 줄어드는 것이다(Armi & Farmer, 1986). 이 원리는 전 세계 주요 해협의 흐름을 설명하는 데 널리 사용되는 검증된 물리 법칙이다(Pratt & Whitehead, 2008).

 

제3장. 동해의 대봉쇄: 네 개의 문은 어떻게 되었나

LGM 시기 해수면 120m 하강과 문턱 수심이라는 물리적 제약 조건 하에서, 동해의 네 해협은 각기 다른 운명을 맞이했다. 그 결과 동해는 거의 완벽하게 고립된 거대한 분지가 되었다.

북쪽의 문: 완전 폐쇄

북쪽에 위치한 해협들은 모두 문턱 수심이 얕아 LGM의 저해수위를 견디지 못하고 육지로 변했다.

  1. 타타르(마미야) 해협: 유라시아 대륙과 사할린 사이에 위치하며, 문턱 수심이 현재 기준으로 약 7~15미터에 불과하다(Lee et al., 2008). 이곳은 완전히 육지로 드러나 대륙과 사할린을 연결하는 넓은 육교가 되었다(Seki et al., 2019).
  2. 소야(라페루즈) 해협: 사할린과 홋카이도 사이에 위치하며, 문턱 수심은 약 55~60미터이다. 이곳 역시 확실하게 폐쇄되어 사할린과 홋카이도를 잇는 육교로 변했다(Keigwin & Gorbarenko, 1992; Isobe, 2020).
  3. 쓰가루 해협: 홋카이도와 혼슈 사이에 위치하며, 문턱 수심은 약 130미터이다. 이는 LGM 절정기의 해수면 하강 폭(-120m ~ -135m)과 거의 비슷하여, 이 시기에는 폐쇄되었다는 것이 학계의 주류 해석이다(Isobe, 2020).

북쪽의 세 해협이 모두 닫히면서, 북태평양의 차고 염분 높은 바닷물(오야시오 해류 성분)이 동해로 유입될 경로는 완전히 차단되었다.

남쪽의 문, 대한해협: 실낱같은 연결과 99%의 유량 감소

  • 대한해협(쓰시마 해협): 한반도와 일본 규슈 사이에 위치하며, 문턱 수심이 약 140미터로 네 해협 중 가장 깊다. 덕분에 대한해협은 LGM 시기에도 완전히 닫히지는 않고, 서쪽 통로(부산과 쓰시마 섬 사이)를 통해 동중국해와 간신히 연결된 ‘형태상 열린’ 상태를 유지했다(Park et al., 2000).

하지만 앞서 설명한 ‘수리학적 제어’의 마법이 여기서 작동했다. 문턱 위에 남은 물의 깊이는 고작 10~20미터 수준으로 줄어들었고, 폭도 훨씬 좁아졌다. 과학자들이 당시의 지형을 복원하여 계산한 결과, 유효 수심은 약 12m, 폭은 약 10km에 불과했다(Lee et al., 2008).

이 좁고 얕은 통로를 통해 흐른 물의 양은 얼마나 되었을까? 해양학의 유량 단위인 스베르드럽(Sverdrup, Sv, 1 Sv = 초당 100만 m³)으로 계산하면, LGM 당시 대한해협의 유량은 0.009~0.035 Sv로 추정된다. 현재 대한해협을 통과하는 쓰시마난류의 평균 유량이 약 2.4~2.6 Sv임을 고려하면(Takikawa, Yoon & Cho, 2005), 이는 현재의 약 1~2%에 불과한 실낱같은 흐름이었다(Lee et al., 2008). 보수적으로 최대치를 잡아도 5%를 넘지 않는다(Park et al., 2000).

결론적으로 LGM 시기 동해는 북쪽 문은 완전히 닫히고 남쪽 문은 99%가 막힌, 거대한 ‘반고립 분지(Semi-isolated basin)’가 되었다(Keigwin & Gorbarenko, 1992). 동해는 평균 수심이 매우 깊어(약 1,700m) 해수면이 하강했어도 대부분의 영역(약 85%)이 물에 잠겨 있었지만(Lee et al., 2008), 출입구가 거의 막혀버리면서 외부와의 교류가 극도로 제한되었다.

 

제4장. 과거의 해저를 스캔하다: 지질학적 증거와 시퀀스 층서학

과학자들이 수만 년 전 해협의 정확한 모양과 깊이를 알아내고 유량을 계산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해저 지질학의 눈부신 발전이 있다. 과거를 들여다보는 과학의 창은 어떻게 작동할까?

지구의 초음파 사진: 탄성파 탐사

해저의 구조를 파악하는 가장 강력한 도구는 ‘고해상 탄성파 반사 단면(High-resolution seismic reflection profiling)’이다(Yoo & Park, 2000). 이는 병원에서 초음파로 몸속을 들여다보는 것과 원리가 같다. 연구선에서 강력한 음파(탄성파)를 해저로 발사하면, 이 음파는 해저면뿐만 아니라 그 아래에 있는 다양한 지층의 경계면(밀도나 성분이 달라지는 경계)에서 반사되어 돌아온다. 이 반사 신호들이 돌아오는 시간과 강도를 정밀하게 분석하면, 마치 땅속을 투시하는 것처럼 해저 지층의 구조와 두께까지 상세하게 영상화할 수 있다.

시간의 나이테를 읽는 법: 시퀀스 층서학

지구의 역사는 퇴적층에 고스란히 기록되어 있다. 특히 빙하기와 간빙기가 반복되면서 해수면은 주기적으로 오르내렸고, 그때마다 해저에는 독특한 형태의 퇴적층들이 순서대로 쌓였다. 이러한 퇴적층의 형성 원리와 순서를 해석하는 학문을 ‘시퀀스 층서학(Sequence Stratigraphy)’이라고 한다(Catuneanu, 2006). 이 원리를 이해하면 탄성파 자료 속 복잡한 선들이 언제, 어떤 환경에서 만들어졌는지 해석할 수 있다.

  1. 저해수위 계열(LST, Lowstand Systems Tract): 해수면이 가장 낮을 때(빙하기) 형성된다. 강에서 공급된 퇴적물들이 육지로 변한 대륙붕을 지나 대륙붕 가장자리까지 이동하여 쐐기 모양의 퇴적체(Lowstand wedge)를 형성한다(Yoo et al., 2003; Yoo & Park, 1997).
  2. 해진 계열(TST, Transgressive Systems Tract): 해수면이 상승하기 시작할 때 형성된다. 바다가 육지를 침범하면서(해진), 이전 지층 위로 비교적 얇은 모래나 자갈층이 넓게 덮인다(Park & Yoo, 1988).
  3. 만수위 계열(HST, Highstand Systems Tract): 해수면이 가장 높을 때(간빙기) 형성된다. 현재처럼 해안선 근처 내륙붕에 두꺼운 진흙 등이 안정적으로 쌓인다(Park & Yoo, 1988).

대한해협의 탄성파 단면에는 이러한 LST-TST-HST의 반복 패턴이 선명하게 나타난다(Yoo & Park, 2000).

과거 지형 복원: 퇴적물 걷어내기

과학자들은 이 탄성파 자료와 시퀀스 층서학 개념을 이용해 정교한 복원 작업을 수행했다. 현재의 해저면에서부터 LGM 이후에 쌓인 퇴적층(TST와 HST)의 두께를 정밀하게 계산하여 제거하는 ‘보정’ 작업을 통해, LGM 당시의 원래 해저 지형을 드러낸 것이다.

이러한 복원 작업을 통해, LGM 당시 대한해협 서쪽에는 최대 230미터 깊이까지 파인 깊은 수로(Trough)가 존재했지만(Park et al., 2000), 중요한 것은 물의 흐름을 제어하는 가장 얕은 문턱(Sill) 부분의 지형이었다. 앞서 계산된 LGM 당시 대한해협의 유효 단면적(유효 수심 약 12m, 폭 약 10km)은 바로 이 문턱 부분의 지형을 복원하여 얻은 값이다(Lee et al., 2008). 이처럼 지질학적 증거들은 당시 대한해협이 물리적으로 얼마나 좁고 얕은 통로였는지를 명확하게 보여준다.

 

제5장. 거친 바닥의 미스터리: 움직이는 자갈과 조석 증폭

대한해협의 해저 지질 탐사는 또 다른 흥미로운 미스터리를 던져주었다. 대한해협 서쪽 수로의 바닥(현재 수심 약 80~170m)에는 고운 모래뿐만 아니라 직경 2~16mm에 달하는 자갈들이 섞인 거친 퇴적물이 넓게 분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Park & Yoo, 1992). 더욱이 이 거친 퇴적물들은 북동쪽(동해 방향)으로 길게 배열되어 있어, 과거에 강력한 물살이 이 방향으로 지속적으로 흘렀음을 암시한다(Yoo & Park, 1997).

역설: 약한 흐름과 강한 흔적

이는 언뜻 모순처럼 들린다. LGM 당시 대한해협의 평균 유량은 현재의 1~2%에 불과할 정도로 미미했고(Lee et al., 2008), 평균 유속도 0.1~0.3 m/s로 느렸다고 추정되는데, 어떻게 이렇게 무거운 자갈을 움직일 만큼 강력한 흐름이 존재했을까?

입자의 이동 역학을 설명하는 고전적인 이론인 ‘휠스트룀-순드보리 곡선(Hjulström–Sundborg curve)’에 따르면, 입자가 움직이기 시작하려면 특정 임계값 이상의 유속이 필요하다(Sundborg, 1956). 직경 10mm 정도의 자갈이 움직이려면 초속 1미터(m/s) 수준의 매우 빠른 유속이 필요하다(Park & Yoo, 1992). 이는 당시의 평균 유속 추정치로는 설명할 수 없는 속도이다.

해답: 조석 증폭(Tidal Amplification)

이 미스터리의 해답은 바로 ‘조석(Tide)’, 즉 밀물과 썰물에 있다. LGM 당시 대한해협 서수로는 폭이 약 10km로 매우 좁고 수심도 10~20m로 얕았다. 이렇게 좁고 얕은 병목 구간에서는 지형적인 제약으로 인해 조류(Tidal current, 밀물과 썰물의 흐름)가 매우 강하게 증폭되는 현상이 발생한다. 이를 ‘조석 증폭(Tidal Amplification)’이라고 한다(Park et al., 2000).

넓은 강에서는 물이 잔잔하게 흘러가지만, 좁은 협곡을 통과할 때는 급류가 형성되는 것과 같은 원리이다. 비록 동해로 순수하게 유입되는 평균적인 물의 양(순 유입량)은 매우 적었더라도, 하루에도 몇 번씩 강력하게 증폭된 조류가 좁은 해협 바닥을 휩쓸면서 자갈과 모래를 이동시키기에 충분히 강한 힘(바닥 전단력)을 발휘했던 것이다.

이러한 강력한 흐름은 퇴적물을 이동시켜 대륙붕 가장자리에 저해수위 쐐기를 만드는 데도 기여했다(Yoo et al., 2003; Yoo & Park, 2000). 이 자갈과 모래의 이동 흔적은 LGM 시기에도 대한해협 서수로가 역동적인 흐름이 존재하는 통로였음을 보여주는 생생한 현장 증거이다(Itaki et al., 2004).

 

제6장. 공급원의 대격변: 거대 강의 등장과 쿠로시오의 후퇴

동해가 고립되면서 내부 환경이 변하기 시작했다. 가장 두드러진 변화는 바닷물이 비정상적으로 싱거워지는 ‘저염화’ 현상이었다. 이는 동해로 유입되는 물의 양뿐만 아니라, 그 ‘성질’ 자체가 완전히 바뀌었기 때문이다. 이 변화는 대한해협의 상류 지역인 동중국해(East China Sea, ECS)의 환경이 LGM 시기에 완전히 재편된 것에서 비롯되었다.

황해의 소멸과 거대 강의 직격탄

LGM 시기 해수면 하강으로 황해가 육지로 변했다는 사실이 여기서 다시 중요해진다(Oba et al., 1991). 이 변화는 동아시아의 물줄기를 근본적으로 바꾸어 놓았다. 중국 대륙을 가로지르는 거대한 강들—고(古) 양쯔강(Paleo-Changjiang)과 고(古) 황하(Paleo-Huanghe)—의 하구가 동중국해 대륙붕의 가장자리, 즉 대한해협 바로 앞까지 확장되었다.

이전까지는 황해라는 넓은 바다에서 희석되던 이 강물들이, 이제는 대한해협 상류 지역으로 직접 쏟아져 들어오게 된 것이다. 이 막대한 양의 담수는 북부 동중국해에 강력한 연안 저염수(East China Sea Coastal Water, ECSCW)를 형성하는 ‘담수 폭탄’과 같았다(Tada, 1999).

쿠로시오의 우회: 염분 공급원의 약화

동시에, 동해로 유입되는 염분의 주된 공급원인 쿠로시오 해류(Kuroshio Current)의 영향력이 크게 약화되었다. 쿠로시오 해류는 북태평양 서쪽 경계를 따라 흐르는 강력한 난류로, 고온, 고염분의 특징을 갖는다.

하지만 LGM 시기에는 대만과 류큐 열도(일본 남서쪽 섬들) 주변의 지형 변화(육교 형성 및 얕은 수로 재배치)로 인해, 쿠로시오 본류가 동중국해 대륙붕 안쪽으로 깊이 들어오지 못하고, 대륙붕 바깥쪽(류큐 해구 쪽)으로 우회하는 경로를 취하게 되었다(Ujiie & Ujiie, 1999).

이는 류큐 해구 주변의 심해 코어에서 발견되는 미화석 기록을 통해서도 확인된다. 당시 쿠로시오의 영향력이 약화되고 연안수의 영향이 우세해지면서 플랑크톤 군집의 변화(Ujiie et al., 1991)나 해수의 탁도 변화(Ahagon et al., 1993)가 관찰된다. 결과적으로 대한해협 상류로 공급되는 고염분의 물이 크게 줄어들었다.

‘고(古) 대마난류’: 싱거운 물의 탄생

이 두 가지 변화, 즉 담수 유입의 폭증과 염분 공급의 약화가 결합하여 대한해협을 통과하는 물의 성질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LGM 시기 동해로 유입된 물, 이른바 ‘고(古) 대마난류(Paleo-Tsushima Water)’는 현재의 대마난류와는 이름만 같을 뿐, 그 성질은 완전히 달랐다. 그것은 염분 높은 쿠로시오 성분은 희박하고, 거대 강에서 기원한 동중국해 연안의 저염수가 지배적인 혼합수였다(Lee et al., 2008). 동해의 저염화는 필연적인 결과였다.

 

제7장. 거대한 희석: 동해는 얼마나 싱거웠나?

유입량은 극히 적은데(현재의 1~2%), 그나마 들어오는 물조차 매우 싱거운 ‘고(古) 대마난류’였다. 게다가 북쪽 해협들은 완전히 닫혀 염분 높은 태평양 물의 유입도 없었다. 이러한 조건들이 결합되면서 동해는 역사상 유례없는 ‘저염화(Low Salinity)’ 현상을 겪게 된다.

염분을 측정하는 과학적 증거

과학자들은 어떻게 과거 바다의 염분을 알아낼까? 가장 직접적인 증거는 제9장에서 자세히 다룰 산소동위원소(δ18O) 분석에서 나온다. 여러 지역의 동해 퇴적 코어에서 LGM 시기에 해당하는 유공충 껍질의 δO-18 값이 평상시보다 현저하게 가벼워진(작아진) 것이 관찰되었다(Oba et al., 1991; Keigwin & Gorbarenko, 1992). 이는 당시 동해 표층수가 크게 희석되었음을 강력하게 시사한다.

숫자로 보는 저염화: 20~29 psu

이러한 관측 증거와 함께, 물과 염분의 수지 균형을 계산하는 단순 모델(상자모형)을 이용하여(Matsui et al., 1998), 과학자들은 당시 동해 표층의 염분(SSS, Sea Surface Salinity)을 정량적으로 추정했다.

현재 동해의 평균 염분은 약 34~35 psu이다(해양학에서는 염분 단위를 psu, Practical Salinity Unit으로 표현한다)(Lee et al., 2008). 하지만 LGM 시기 동해 표층의 염분은 대체로 20~29 psu 범위까지 떨어진 것으로 추정된다(Zheng et al., 2023). 이는 평소의 60~80% 수준으로, 바다라기보다는 강물과 바닷물이 섞이는 기수역(Estuary)에 가까울 정도로 매우 싱거운 상태였다. 최근의 연구에서는 일부 지역에서 최저 20 psu 수준까지 접근했을 가능성도 제시된다(Zheng et al., 2023).

‘따뜻한 LGM’ 논쟁과 염분 해석

흥미로운 점은, 당시 동해의 수온에 대한 논쟁이다. 일반적으로 빙하기는 매우 추웠을 것으로 생각하지만, 알케논(분자 온도계) 분석 결과 LGM 동해의 표층 수온이 예상했던 것만큼 차갑지는 않았을 가능성(‘따뜻한 LGM’)이 제기되었다(Ishiwatari et al., 2001). 물론 현재보다는 훨씬 추웠지만, 빙하기임을 고려할 때 상대적으로 덜 추웠다는 의미이다.

이것이 중요한 이유는 δO-18 값이 수온과 염분에 동시에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만약 수온이 생각보다 높았다면(따뜻했다면), δO-18 값이 극단적으로 가벼워진 것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염분이 훨씬 더 낮아져야만 한다. 즉, ‘따뜻한 LGM’ 가설은 동해의 저염화가 매우 심각했다는 주장을 오히려 강화하는 역할을 한다.

물론 이러한 추정치는 코어의 위치나 시기, 그리고 연대 측정의 정확도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Gorbarenko & Southon, 2000; Dong et al., 2024), LGM 시기 동해가 비정상적으로 싱거웠다는 사실은 명확하다.

 

제8장. 숨 막히는 심해: 성층 강화와 무산소의 확산

표층이 싱거워진 것은 단순히 염도의 변화로 끝나지 않았다. 이는 동해의 물리적인 구조 자체를 바꾸어 놓았고, 심해 생태계에는 재앙적인 결과를 가져왔다. 핵심은 ‘성층(Stratification)’의 강화이다(Tada, 1999).

물과 기름처럼 분리된 바다: 밀도약층의 형성

바닷물의 밀도는 염분과 수온에 의해 결정된다. 염분이 낮을수록, 그리고 수온이 높을수록 밀도가 낮아져 가벼워진다. LGM 시기 동해 표층에 형성된 저염수(20~29 psu)는 그 아래의 기존 바닷물보다 훨씬 가벼웠다. 이 가벼운 물은 마치 거대한 ‘싱거운 뚜껑(Low-salinity Cap)’처럼 동해 전체를 덮어버렸다(Oba et al., 1991).

이 ‘싱거운 뚜껑’과 그 아래의 무겁고 짠 심층수 사이에는 밀도가 급격하게 변하는 강력한 경계면이 형성되었다. 이를 ‘밀도약층(Pycnocline)’이라고 하며, 특히 염분 변화가 주도한 경우 ‘염분약층(Halocline)’이라고도 부른다. 이 강력한 성층은 마치 물과 기름을 분리하는 투명한 막처럼 작용하여, 바닷물이 위아래로 섞이는 연직 혼합을 강력하게 억제했다(Park et al., 2000). 최근 연구에 따르면, 이 저염층의 두께가 수백 미터에 달했을 것으로 추정되기도 한다(Dong et al., 2024).

심해의 질식: 환기(Ventilation)의 중단

바다가 건강하게 유지되려면 끊임없이 순환해야 한다. 특히 표층에서 대기로부터 공급받은 산소가 심층으로 전달되는 과정, 즉 ‘환기(Ventilation)’가 원활해야 한다. 일반적으로 차가운 극지방이나 동해의 겨울철에는 표층수가 냉각되어 무거워지면서 심층으로 가라앉아(침강) 산소를 공급한다. 하지만 LGM 동해에서는 ‘싱거운 뚜껑’이 이 산소 공급 경로를 완전히 차단해 버렸다(Keigwin & Gorbarenko, 1992). 표층수가 아무리 차가워져도 염분이 너무 낮아 심층수보다 가벼웠기 때문에 더 이상 가라앉을 수 없었던 것이다.

산소 공급은 중단되었지만, 심해에서의 산소 소비는 계속되었다. 표층에서 생산되어 죽은 유기물들이 심층으로 가라앉으면, 박테리아가 이를 분해하는 과정에서 끊임없이 산소를 소모하기 때문이다. 공급은 없고 소비만 계속되는 상황에서, 동해 심층의 산소는 빠르게 고갈되었다. 결국 동해 심층은 산소가 거의 없는 ‘저산소(Suboxia)’ 상태를 넘어, 완전히 고갈된 ‘무산소(Anoxia)’ 상태에 이르게 되었다(Oba et al., 1991). 동해가 숨을 멈춘 것이다.

무산소의 증거 1: 검은색 줄무늬 (암색 미세층리)

산소가 없는 환경은 퇴적물에 독특하고 명확한 흔적을 남긴다. 정상적인 해양 환경에서는 바닥에 사는 저서생물(조개, 갯지렁이 등)이 퇴적물을 파헤치고 뒤섞는 ‘생물 교란(Bioturbation)’ 활동을 한다. 하지만 무산소 환경에서는 이러한 생물이 살 수 없다.

그 결과, 퇴적물이 교란 없이 그대로 쌓여 세밀한 줄무늬 형태의 층리 구조가 완벽하게 보존된다. 또한 산소가 부족하여 유기물이 완전히 분해되지 않고 남아 어두운색을 띠게 되는데, 이를 ‘암색 미세층리(Dark laminated layers)’라고 한다(Tada, 1999). LGM 시기 동해의 퇴적 코어에서는 이러한 암색층이 광범위하게 발견되며(Gorbarenko & Southon, 2000), 이는 당시 동해 심층이 거대한 죽음의 바다였음을 증언한다.

무산소의 증거 2: 생물 및 화학적 지표

저서성 유공충의 빈약한 산출 역시 심층의 산소 부족을 시사한다(Oba et al., 1991). 또한, 심해의 산소 농도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방사선충(Radiolarians) 군집의 변화(Itaki et al., 2004)나 몰리브덴(Mo), 우라늄(U) 등 산화환원 환경에 민감한 미량원소(Redox-Sensitive Trace Elements)의 농집 패턴은 당시 저층수의 산소가 고갈되었음을 독립적으로 증명한다.

오늘날의 흑해(Black Sea)와의 유사성

‘싱거운 뚜껑’으로 덮여 심해가 숨을 쉬지 못하는 LGM 동해의 모습은 오늘날의 흑해(Black Sea)와 놀랍도록 유사하다(Lee et al., 2008). 흑해 역시 좁은 해협으로만 외부와 연결되어 있고, 거대 하천의 유입으로 표층 염분이 낮아 강력한 성층이 형성되어 있으며, 심층은 무산소 상태이다. 비록 세부적인 차이는 있지만(Tada, 1999), “얕은 문턱 + 제한된 유입 + 저염 캡 → 강성층 형성 → 환기 약화”라는 핵심 메커니즘은 동일하게 작동한다(Lee et al., 2008; Pratt & Whitehead, 2008).

 

제9장. 과거를 읽는 과학의 도구들 (1): 대리지표(Proxy), 자연의 암호를 해독하다

우리는 타임머신 없이 어떻게 수만 년 전 바다의 염도와 수온, 산소 농도를 알아낼 수 있을까? 그 비결은 바로 해저 퇴적물이라는 타임캡슐 속에 숨겨진 ‘대리지표(Proxy)’를 해석하는 놀라운 과학 기술에 있다. 지표는 과거 환경을 간접적으로 알려주는 대리 변수이며, 고해양학 연구의 핵심 도구이다(Lee et al., 2008). 과학자들은 어떻게 이 암호들을 해독할까?

만능 기록 장치: 산소동위원소(δO-18)의 비밀

가장 강력하고 널리 쓰이는 지표는 단연 ‘산소동위원소 비율(δO-18)’이다(Oba et al., 1991). 이 기록은 주로 유공충(Foraminifera, 플랑크톤의 일종)의 껍질에 남아있다. 유공충은 탄산칼슘(CaCO₃)으로 이루어진 껍질을 만들 때 주변 바닷물에 있는 산소(O) 원자를 사용한다. 자연계의 산소에는 질량이 약간 다른 동위원소, 즉 가벼운 산소(O-16)와 무거운 산소(O-18)가 있다. 유공충 껍질 속 O-16와 O-18의 비율(이것을 δO-18 값으로 표현한다)은 당시 주변 바닷물의 환경 조건에 따라 민감하게 변한다.

  1. 염분계 기능: 물이 증발할 때는 가벼운 O-16를 포함한 물 분자가 더 쉽게 증발한다. 따라서 강물(담수)은 바닷물보다 O-16의 비율이 훨씬 높다(δO-18 값이 가볍다). 만약 동해에 담수 유입이 증가하여 싱거워지면, 바닷물의 δO-18 값이 가벼워지고(작아지고), 이를 이용해 껍질을 만든 유공충의 δO-18 값도 가벼워진다.
  2. 온도계 기능: 물이 차가울수록 유공충은 껍질을 만들 때 무거운 O-18를 더 많이 사용하려는 화학적 경향이 있다. 즉, 수온이 낮아지면 δO-18 값은 무거워진다(커진다).

LGM 동해의 유공충 껍질에서 δO-18 값이 비정상적으로 가벼워진 것은(Oba et al., 1991), 당시 동해가 매우 싱거웠거나, 혹은 매우 따뜻했음을 의미한다.

해석의 난관 1: 빙하량 효과 보정

하지만 δO-18 해석은 간단하지 않다. 먼저, 빙하기에는 가벼운 O-16가 대륙 빙하에 대량으로 갇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전 지구의 바닷물 자체에 무거운 O-18의 비율이 높아진다(평균적으로 약 1‰ 정도). 이를 ‘전지구 빙하량 효과(Global Ice Volume Effect)’라고 한다. 지역적인 염분이나 수온 변화를 정확히 계산하려면, 먼저 이 전 지구적인 배경 신호를 보정하여 제거해야 한다.

해석의 난관 2: 온도와 염분 분리하기

빙하량 효과를 보정하더라도, δO-18는 여전히 온도와 염분 두 가지 요인에 의해 동시에 변한다. 따라서 δO-18만으로는 저염 때문인지 고온 때문인지 정확히 구분하기 어렵다(Gorbarenko & Southon, 2000).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과학자들은 독립적인 수온 지표를 사용한다.

알케논(U′K37): 분자 온도계

코코리스(Coccolithophores)라는 특정 식물성 플랑크톤은 수온에 따라 자신이 만드는 ‘알케논(Alkenone)’이라는 유기 분자의 구조(불포화도 비율, U′K37)를 미세하게 조절한다. 퇴적물에서 이 분자를 추출하여 분석하면 과거 표층 수온을 매우 정밀하게 복원할 수 있다(Ishiwatari et al., 2001).

TEX86:

특정 고세균(Archaea)이 만드는 막지질(GDGT)의 구조를 분석하여 수온을 추정하는 또 다른 유기 분자 온도계이다(Wu et al., 2020).

이러한 독립적인 수온 기록을 확보한 후, δO-18 기록에서 수온 효과를 제거하면, 마침내 우리가 원하는 염분 변화의 기록만을 순수하게 분리해낼 수 있다. 제7장에서 언급된 ‘따뜻한 LGM’ 가설은 바로 이 알케논 분석에서 나온 결과이며(Ishiwatari et al., 2001), 이는 역설적으로 δO-18의 급격한 감소가 심각한 저염화 때문이었음을 확증해준다.

심해의 산소 감지기: 방사선충(Radiolarians)

심층의 환기 상태를 파악하는 데는 방사선충이 탁월한 지표로 사용된다(Itaki et al., 2004). 방사선충은 규질(SiO₂) 골격을 가진 동물성 플랑크톤으로, 종마다 선호하는 수심과 산소 농도가 다르다. 심수성 종들의 비율 변화를 추적하면, 과거 심층의 환기가 얼마나 활발했는지, 산소 농도가 어떠했는지를 민감하게 파악할 수 있다.

 

제10장. 과거를 읽는 과학의 도구들 (2): 연대 측정과 모델링

과거 환경 변화의 퍼즐을 완성하려면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지표)’뿐만 아니라, 그 일이 정확히 ‘언제 일어났는지’를 알아야 한다. 사건들의 순서와 속도를 알아야 원인과 결과를 연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관측된 사실들을 바탕으로 ‘왜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 그 과정을 설명해야 한다. 여기서 ‘연대(Chronology)’와 ‘모델(Modeling)’이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Lee et al., 2008).

시간의 축을 세우다: AMS C-14 연대 측정의 혁명

과거의 정확한 시점을 파악하는 가장 강력한 도구는 방사성 탄소(¹⁴C) 연대 측정이다. 살아있는 생물은 대기 중의 탄소를 흡수하는데, 탄소에는 안정적인 ¹²C와 불안정하여 시간이 지나면 붕괴하는 방사성 동위원소 ¹⁴C가 일정한 비율로 섞여 있다. 생물이 죽으면 ¹⁴C의 공급이 중단되고 남아있는 ¹⁴C는 일정한 속도(반감기 약 5730년)로 줄어든다. 따라서 화석에 남아있는 ¹⁴C의 양을 측정하면 그 생물이 언제 죽었는지 알 수 있다.

특히 극미량의 시료로도 정밀한 측정이 가능한 ‘가속기 질량분석(AMS, Accelerator Mass Spectrometry)’ 기술의 발달은 고해양학 연구에 혁명을 가져왔다. 퇴적 코어 속 작은 유공충 껍질 몇 개만으로도 수만 년 전의 연대를 측정할 수 있게 된 것이다(Gorbarenko & Southon, 2000).

시간의 왜곡을 바로잡다: 해양 저장고 효과 보정

하지만 바다 시료의 연대 측정은 육상 시료보다 훨씬 복잡하다. 바닷속의 탄소는 심해에 오랫동안(평균 수백 년 이상) 머물다가 표층으로 올라오기 때문에, 표층 해수는 대기보다 더 오래된 탄소(즉, ¹⁴C가 더 적게 남아있는 탄소)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같은 시기에 살았던 육상 생물과 바다 생물을 비교하면, 바다 생물의 ¹⁴C 연대가 실제보다 더 오래되어 보이는 현상이 발생한다. 이를 ‘해양 저장고 효과(Reservoir Effect)’라고 한다.

이 저장고 효과는 지역의 해양 순환 특성이나 시대에 따라 다르기 때문에(예를 들어, 환기가 약했던 LGM 동해는 저장고 효과가 더 컸을 수 있다), 이를 정확하게 보정하는 것이 연대 측정의 신뢰도를 결정하는 핵심이다(Gorbarenko & Southon, 2000). 과학자들은 화산 폭발로 생성된 화산재층(Tephra) 등 보조적인 연대 지표를 활용하여 연대 모델의 정확성을 높이기 위해 노력한다(Itaki et al., 2004).

과정을 재현하다: 모델링의 힘

지표와 연대를 통해 관측된 사실들(언제, 무엇이 변했는지)을 확보했다면, 이제 이들을 연결하여 인과 관계(왜, 어떻게 변했는지)를 설명해야 한다. 이때 사용되는 것이 ‘모델링’이다.

  • 상자모형(Box Model): 복잡한 해양 순환 시스템을 단순화하여 접근하는 방법이다. 예를 들어, 동해 전체를 몇 개의 균질한 상자(Box)로 가정하고(Matsui et al., 1998; Zheng et al., 2023), 각 상자로 들어오고 나가는 물의 양(Q_in, Q_out), 염분, 증발(E), 강수(P), 육상 유입(R) 등을 계산하여 전체적인 수지 균형과 시간적 변화를 추정한다. 상자모형은 LGM 동해의 염분이 왜 낮게 유지되었는지를 정량적으로 이해하는 데 매우 유용하다.

이때 모델의 입력값으로는 앞서 구한 지형 기반의 유입량 추정치와, 전지구 해수면 변동 곡선(Spratt & Lisiecki, 2016), 그리고 GIA 모델을 통한 지역 상대 해수면 보정값(Lambeck et al., 2014) 등이 사용된다.

  • 복잡 수치 모델 (3차원 해양 순환 모델): 최근에는 컴퓨터 성능의 발달로 상자모형의 한계를 넘어, 실제 해저 지형과 물리 법칙을 적용하여 3차원적인 해류의 흐름, 수괴의 분포 등을 더 현실적으로 재현하는 복잡한 수치 모델(예: GCMs, ROMS)도 활발하게 활용되고 있다.

삼각 측량: 교차 검증을 통한 신뢰 확보

결국 고해양학 연구는 지표(무엇이), 연대(언제), 모델(왜/어떻게)이라는 세 가지 축을 이용한 ‘삼각 측량’이다. 예를 들어, 지표 분석으로 얻은 염분 최저점의 시기가, 지질학적 증거로 복원한 해협 단면적의 최소 시점(Yoo & Park, 2000) 및 모델로 계산한 결과와 일치할 때, 우리는 비로소 과거의 변화에 대한 신뢰할 수 있는 통합적인 그림을 얻게 된다(Zheng et al., 2023).

 

제11장. 바다, 다시 숨을 쉬다: 극적인 부활의 타임라인

LGM 동해의 고립과 질식 상태는 영원히 지속되지 않았다. 약 1만 9천 년 전부터 지구의 기후가 따뜻해지기 시작하면서 거대한 대륙 빙하가 녹기 시작했고, 전 지구 해수면은 다시 상승했다(Spratt & Lisiecki, 2016). 닫혔던 빗장이 풀리면서 동해는 극적인 부활의 과정을 겪게 된다. 이 회복 과정(재연결 및 환기 회복)은 점진적이지 않고 단계적으로, 때로는 급격하게 진행되었다(Itaki et al., 2004; Pratt & Whitehead, 2008). 과학자들은 정밀한 연대 측정과 다양한 지표 분석을 통해 이 극적인 부활의 타임라인을 재구성했다.

1단계: 초기 재연결 (약 19,000년전 경)

약 19,000년전 무렵부터 변화의 신호가 감지되기 시작한다. (연대 보정 오차로 인해 수백 년의 차이는 있을 수 있다.) 해수면이 서서히 상승하면서 대한해협의 수심이 깊어지고 폭이 넓어지기 시작했다(Park et al., 2000). 동해로 유입되는 바닷물의 양이 조금씩 증가했고, 표층 염분(SSS)은 기나긴 저점에서 벗어나 서서히 반등하기 시작했다(Zheng et al., 2023). 퇴적 코어에서는 완전 무산소를 지시하던 암색 미세층리가 점차 끊기기 시작하며 심해 환경이 조금씩 개선되는 초기 변화가 관찰된다(Oba et al., 1991; Lee et al., 2008).

2단계: 환기 급증과 MWP-1A의 방아쇠 (약 16,000–14,000년전)

가장 극적이고 폭발적인 변화가 일어난 시기이다. 심수성 방사선충 군집 분석 결과는 이 시기에 심층 환기가 급격하게 강화되었음을 명확하게 보여준다(Itaki et al., 2004). 오랫동안 지속되었던 무산소 상태가 빠르게 해소되고 깊은 바다에 산소가 돌아왔다(Gorbarenko & Southon, 2000).

왜 이렇게 급격한 변화가 일어났을까? 그 결정적인 방아쇠는 ‘융빙수 대방출 1A(Meltwater Pulse 1A, MWP-1A, 약 14,600년전 경)’ 사건이었다. 이는 북반구의 빙하가 급격히 녹으면서 전 지구 해수면이 단기간에 급상승한 사건이다.

이 급격한 해수면 상승은 대한해협 문턱의 수심을 특정 임계점 이상으로 높였다. 이때 제2장에서 설명한 ‘수리학적 제어’의 비선형적 효과가 극적으로 작동했다. 수심이 임계점을 넘어서자 유입량이 폭발적으로 증가한 것이다(Pratt & Whitehead, 2008). 마치 둑이 터지듯 외부의 신선한 바닷물이 동해로 쏟아져 들어오면서, 오랫동안 정체되어 있던 바다가 한꺼번에 거대한 숨을 들이켠 것이다(Keigwin & Gorbarenko, 1992).

3단계: 현대형 순환으로의 이행 (약 14,000–11,000년전)

해수면이 계속 상승하면서 마침내 쓰가루 해협이 다시 열렸다. 북쪽 문이 열리면서 북서태평양 기원의 차고 산소가 풍부한 물(오야시오 성분)이 동해로 유입되기 시작했다. 이는 마치 ‘펄스형 환기’처럼 심층의 산소 부족을 빠르게 해소하는 역할을 했다(Isobe, 2020).

남쪽과 북쪽의 문이 모두 열리면서 동해의 순환은 더욱 활발해졌다. 상하층의 밀도 차이가 줄어들고 성층이 더욱 약화되는 경향이 유기지표(U′K37, TEX86) 분석을 통해서도 확인된다(Ishiwatari et al., 2001; Wu et al., 2020). 동해는 점차 현재와 유사한 활발한 순환 시스템을 갖추게 되었다. 비록 ‘영거 드라이아스(Younger Dryas, 약 12,900–11,700년전)’라는 일시적인 혹한기에 잠시 주춤하기도 했지만(Keigwin & Gorbarenko, 1992), 분지 규모의 환기 회복이라는 큰 흐름은 거스를 수 없었다.

 

제12장. 육교를 건넌 사람들: 인류 역사의 교차점

빙하기의 해수면 하강은 단순히 바다 환경만을 변화시킨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당시 동아시아에 살았던 인류의 이동과 문화 교류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해협이 육지로 변하면서 새로운 길이 열렸기 때문이다. 이는 자연사와 인문학이 만나는 흥미로운 접점이다(Keigwin & Gorbarenko, 1992).

열린 길: 북방 루트와 육교(Land Bridge)

LGM 시기, 문턱 수심이 얕았던 타타르 해협과 소야 해협은 완전히 육지로 드러나 ‘육교(Land Bridge)’가 되었다(Lambeck et al., 2014). 이로 인해 유라시아 대륙(러시아 연해주)에서 사할린을 거쳐 일본 홋카이도까지 걸어서 이동할 수 있는 거대한 육상 통로가 형성되었다. 이는 당시 구석기인들에게 새로운 생존 공간과 이동 경로를 제공하는 중대한 사건이었다.

고고학적 증거: 흑요석 추적과 원산지 분석

육교를 통해 활발한 인적, 물적 교류가 있었다는 사실은 고고학적 증거를 통해 확인된다. 가장 대표적인 증거는 ‘흑요석(Obsidian)’이다. 흑요석은 화산 활동으로 생성되는 천연 유리로, 날카롭게 깨지기 때문에 구석기 시대의 중요한 석기(뗀석기) 재료였다.

중요한 점은 흑요석이 산지에 따라 고유한 화학 성분, 즉 ‘지문’을 갖는다는 것이다. 유물의 성분을 X선 형광분석(XRF)이나 계측중성자활성화분석(INAA) 등 첨단 기술로 분석하면 그것이 어디서 채취된 것인지 원산지(Provenance)를 정확하게 추적할 수 있다(Kuzmin et al., 2002).

사할린의 구석기 유적지에서 발견된 약 2만 3천 년 전(LGM 시기)의 흑요석 유물을 분석한 결과, 놀랍게도 그중 일부가 홋카이도산인 것으로 밝혀졌다(Kuzmin et al., 2002). 이는 당시 사람들이 현재 바다로 막혀 있는 소야 해협을 건너다녔음을 의미하며, 육교의 존재를 강력하게 시사하는 직접적인 증거이다.

쓰가루 해협과 인류 이동

쓰가루 해협(수심 130m) 역시 LGM 절정기에 폐쇄되어 혼슈(일본 본토)와 홋카이도를 연결하는 육교가 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이는 일본 열도 내에서의 고대 원재료 조달 및 교류 패턴 연구를 통해서도 간접적으로 지지된다(Oda, 1990; Motohashi, 1996).

최근에는 이러한 육교의 존재를 지질학적으로 직접 검증하려는 시도도 이루어지고 있다. ‘베릴륨-10(¹⁰Be) 노출연대 측정’이 그 방법이다. 암석이 육상에 노출되면 우주선(Cosmic Ray)에 의해 암석 표면에 ¹⁰Be라는 특수한 동위원소가 생성된다. 현재 물속에 잠겨 있는 해협 바닥의 암석에서 ¹⁰Be가 검출된다면, 이는 과거에 그 암석이 육상에 노출된 적이 있음을 증명하는 것이다(Kim & Imamura, 2004). 비록 이 방법은 여러 가지 보정이 필요하고 불확실성이 있지만(Kim & Imamura, 2004), 해양학과 고고학의 발견을 연결하는 중요한 도구임에 틀림없다(Itaki et al., 2004).

 

제13장. 과학의 경계: 우리가 아직 모르는 것들과 불확실성

현대 과학은 LGM 동해의 모습을 놀라울 정도로 상세하게 복원했지만, 모든 퍼즐이 맞춰진 것은 아니다. 과학의 발전은 현재의 지식이 완벽하지 않음을 인정하고 불확실성을 명확히 하는 데서 출발한다(Oba et al., 1991). 우리가 아직 해결해야 할 과제들은 무엇일까?

유량의 정확한 값: 1%인가, 5%인가?

대한해협의 유입량이 현재의 1~2%라는 것이 주된 견해이지만(Lee et al., 2008), 이 값은 과거 지형 복원과 당시 유속 가정에 기반한 추정치이다. 지형 복원에 사용되는 탄성파 자료의 해석 오차나(Yoo & Park, 2000), 퇴적 두께 보정의 불확실성 때문에 최대 5%까지 보는 시각도 존재한다(Park et al., 2000). 특히 수리학적 제어는 수심 몇 미터 차이에도 유량이 급변할 수 있는 비선형 시스템이므로(Pratt & Whitehead, 2008), 정확한 값을 특정하기는 매우 어렵다.

염분의 최저값과 공간적 분포

표층 염분이 20~29 psu 범위였다는 데는 폭넓은 합의가 있지만(Zheng et al., 2023), 정확한 최저값과 지역별 분포는 코어의 위치와 분석 방법에 따라 조금씩 다르다. δO-18에서 온도 효과를 분리하는 과정의 오차(Ishiwatari et al., 2001)나 염분 수지 모형의 가정 차이(Matsui et al., 1998)가 불확실성의 원인이 된다. 최근 연구는 심부에 수백 미터 두께의 저염층이 발달했을 가능성을 제시하며 공간적 불균질성의 중요성을 강조한다(Dong et al., 2024).

쓰가루 해협의 잔여 수로 가능성

LGM 절정기에는 닫혔다는 것이 정설이지만, 해수면이 조금 더 높았던 시기(-100m 수준)에는 극히 얕은 잔여 수로가 남아 북태평양과 미세하게 연결되었을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Isobe, 2020). 일부 지역에서 나타나는 수온이나 생물지표의 편차는 이러한 가능성을 시사하기도 한다(Sagawa et al., 2023). 이는 지역별 상대 해수면의 차이와도 관련이 있다(Spratt & Lisiecki, 2016; Lambeck et al., 2014).

정확한 시점과 동시성 문제

AMS C-14 연대 측정의 해양 저장고 효과 보정에는 필연적으로 수백 년 정도의 오차가 따른다(Gorbarenko & Southon, 2000). 이 때문에 초기 재연결, 환기 급증 등 각 사건이 정확히 언제 시작되었는지, 그리고 동해의 여러 지역에서 동시에 일어났는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불확실성이 존재한다(Itaki et al., 2004).

외부 요인의 변동성

우리가 아직 정확히 모르는 외부 요인들도 많다. LGM 시기 쿠로시오 해류의 세기와 경로가 시간에 따라 어떻게 변했는지(Ujiie & Ujiie, 1999) 등은 여전히 연구가 필요한 분야이다.

하지만 이러한 세부적인 불확실성에도 불구하고, 큰 그림은 명확하다. 과학자들은 이러한 불확실성의 범위를 명확히 제시하면서도(Lee et al., 2008), “북쪽은 닫히고 남쪽은 거의 막혀 있었다 → 동해는 싱거워지고 숨이 막혔다 → 해수면 상승과 함께 단계적으로 회복되었다”는 핵심 시나리오에 대해서는 확고한 합의를 이루고 있다.

 

에필로그: 과거로부터 배우는 미래

2만 년 전 동해의 이야기는 한 편의 장대한 드라마다. 빙하기라는 거대한 기후 변화 앞에서 동해는 외부와 단절되었고(봉쇄), 거대한 강물의 유입으로 성질이 변했으며(희석), 결국 깊은 바다는 생명력을 잃었다(질식). 그리고 기후가 다시 따뜻해지고 해수면이 상승하자, 닫혔던 빗장이 풀리며(재연결) 극적으로 되살아났다(환기 회복).

한 줄로 요약하면, 길이 막히자 동해는 ‘싱거운 뚜껑’이 덮인 채 숨이 막혔고, 길이 다시 열리자 뚜껑이 걷히며 깊은 바다가 한꺼번에 숨을 들이켰다.

이 장대한 이야기는 해저 퇴적물 속에 남겨진 작은 플랑크톤 껍질 하나, 눈에 보이지 않는 동위원소의 비율 차이, 해저 깊숙이 숨겨진 지층의 구조 등 과학자들이 찾아낸 무수한 증거들을 통해 재구성되었다. 지표, 연대, 모형이라는 과학적 도구를 이용한 끈질긴 추적과 교차 검증 덕분에 우리는 수만 년 전 과거의 비밀을 생생하게 들여다볼 수 있게 되었다.

빙하기 동해의 탐구는 단순한 지적 호기심을 넘어선다. 이는 지구가 얼마나 역동적으로 변화하는 행성인지를 보여주며, 기후 변화가 해양 환경에 얼마나 극적이고 복잡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를 경고하는 생생한 사례 연구이다. 현재 우리는 인류가 초래한 또 다른 기후 변화의 시대를 살고 있다. 지구 온난화로 인해 해수면이 상승하고 해양 환경이 급변하는 지금, 과거 바다가 어떻게 반응하고 변화했는지를 이해하는 것은 우리의 미래를 예측하고 대비하는 데 중요한 통찰을 제공할 것이다. 동해의 비밀을 파헤치는 과학의 여정은 과거를 넘어 미래를 향해 계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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