何毓靈. 2012. 殷墟花園莊東地五四號墓墓主之謎. 故宮文物月刊(77) 76-79.

 

상나라의 이방인 장군, ‘아장’은 누구인가?: 하육령(何毓靈)의 연구를 중심으로

이 글은 상나라의 수도였던 은허 유적에서 발견된 M54호 무덤의 주인, ‘아장’이라는 장군의 정체를 파헤친다. 고고학자 하육령(何毓靈)은 2012년 연구에서 ‘아장’이 전쟁터에서 사망한 35세 전후의 남성이며, 무덤에서 발견된 독특한 장례 풍습(화초 사용)과 과학적 분석(동위원소)을 근거로 그가 ‘남쪽’ 출신일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최근 연구들은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한다. 2022년 팡(Fang) 등의 연구에 따르면, 상나라는 북쪽의 전쟁 포로들을 수도로 데려오는 등 인구 이동이 여러 방향으로 이뤄졌다. 따라서 ‘아장’의 과학적 데이터가 반드시 남쪽 출신임을 의미하지 않을 수 있다. 더 나아가, 2025년 류(Liu) 등의 유전체 연구는 상나라 시대에 황허강 유역의 내륙 사람들이 동쪽의 산둥 해안 지역으로 대규모 이주했음을 밝혔다. 이는 ‘아장’의 고향이 ‘산둥 해안’일 수 있다는 강력한 대안 가설을 제공하며, 그의 과학적 데이터와도 잘 들어맞는다.

결론적으로 ‘아장’의 출신지는 ‘남방설’, ‘산둥설’, ‘북방 포로설’ 등 여러 가능성이 있으며, 이는 상나라가 다양한 출신의 사람들로 이루어진 복잡한 사회였음을 보여준다. 그의 정확한 고향을 밝히기 위해서는 뼈에 대한 직접적인 고대 DNA 분석이 필요하다.

서론

2000년 12월, 상나라의 마지막 수도였던 은허 유적의 왕실 구역 근처에서 도굴될 뻔한 무덤 하나가 긴급하게 발굴되었다. ‘화원장 동지 M54호묘’로 이름 붙여진 이 무덤은 전설적인 여장군 ‘부호(婦好)’의 무덤 이후 가장 중요한 발견으로 평가받는다.

이 글에서 중점적으로 살펴볼 하육령(何毓靈)의 2012년 논문은 이 무덤의 주인이 ‘아장’이라는 높은 계급의 장군임을 밝혀냈다. 특히 이 연구는 기존의 고고학 분석을 넘어, 뼈를 분석하는 체질인류학, 청동기에 새겨진 글자 해독, 그리고 출신지를 추적하는 안정 동위원소 분석 같은 과학적 방법을 총동원했다. 이를 통해 ‘아장’이 은허 토박이가 아닌, 남동쪽에서 온 ‘이방인 전사’였다는 획기적인 결론을 내렸다.

이 글은 하육령(何毓靈)의 주장을 깊이 있게 살펴보고, 최근 연구 결과들(Fang et al., 2022; Liu et al., 2025)을 바탕으로 그의 결론을 다시 평가하고 확장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를 위해 먼저 무덤 유물을 통해 ‘아장’의 사회적 지위를 알아보고, 다음으로 그의 뼈에 남은 흔적을 통해 그의 삶과 죽음을 추적한다. 마지막으로 과학적 분석을 통해 그의 출신지에 대한 여러 가설을 종합적으로 검토하여, 상나라 사회의 복잡한 모습을 이해하고자 한다.

1. 무덤 유물로 그려보는 상나라 장군의 모습

왕실 핵심 구역에 묻힌 장군

M54호 무덤의 위치는 주인의 신분이 얼마나 높았는지를 잘 보여준다. 이 무덤은 은허의 왕궁과 사당이 모여있는 핵심 구역의 방어용 해자 바로 남쪽(50m)에 있으며, 전설적인 여장군 부호의 무덤과도 불과 500m 떨어져 있다. 왕족이 아닌 사람이 왕실의 심장부에 묻힌 것은 매우 드문 일로, 무덤 주인이 왕실과 아주 가깝고 신뢰받는 사이였음을 암시한다.

흥미롭게도 무덤 위에는 상나라 시대의 건물 터가 있었는데, 이는 부호의 무덤에서도 똑같이 발견된 특징이다. 이 건물 터가 도굴꾼들의 눈을 속여 무덤이 온전히 보존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이처럼 의도적으로 보이는 보호 장치는 이 무덤의 중요성을 더욱 강조한다.

무덤 규모와 순장으로 본 사회적 지위

M54호 무덤은 왕릉처럼 무덤으로 들어가는 길이 따로 없는 단순한 형태의 구덩이 무덤이지만, 그 크기는 당대 최고 수준이었다. 무덤 입구의 넓이는 부호의 무덤과 맞먹고, 바닥 면적은 오히려 더 넓다. 이는 무덤 주인이 왕족은 아니었지만 그에 버금가는 대우를 받았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높은 지위는 함께 묻힌 사람과 동물의 수(순장)에서도 드러난다. 이 무덤에서는 총 15명의 순장자와 15마리의 순장견이 발견되었다. 이는 16명의 순장자와 6마리의 순장견이 나온 부호의 무덤과 비교했을 때, 사람 수는 비슷하지만 개의 수는 훨씬 많다. 당시 순장은 무덤 주인의 권력을 과시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었기에, 이 정도 규모는 무덤 주인이 상나라 사회의 최상류층이었음을 명백히 증명한다.

부장품으로 본 부와 권력

M54호 무덤에서는 총 579점에 달하는 엄청나고 화려한 부장품이 쏟아져 나왔다. 그중 청동기가 267점, 옥기가 233점으로 대부분을 차지하며, 당대 최고급 공예품들로 가득 차 있었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은 제사용 청동 그릇 세트인데, 다른 귀족 무덤과 비교 분석하여 하육령(何毓靈)은 아장의 지위가 부호 바로 다음 가는 수준이라고 논증했다.

‘아장’의 정체를 가장 확실하게 보여주는 유물은 바로 7점의 청동 도끼(鉞, 월)이다. 이 도끼는 단순한 무기가 아니라 군대의 최고 지휘권을 상징하는 물건이다. 한 무덤에서 이렇게 많은 수의 상징 도끼가 나온 것은 은허 유적 전체를 통틀어 처음 있는 일이다. 이는 ‘아장’이 부호를 능가했을지도 모를 막강한 군사적 권위를 가졌음을 의미한다.

이러한 군사적 성격은 청동기에 새겨진 글자(명문)를 통해 더욱 분명해진다. 출토된 청동기 131점에는 ‘아장(亞長)’이라는 이름이 똑같이 새겨져 있었다. 하육령(何毓靈)은 ‘아(亞)’를 군사 관련 관직으로, ‘장(長)’을 그의 씨족 이름으로 해석했다. 즉, 무덤의 주인은 ‘장(長)씨 가문 출신의 아(亞)라는 직책을 맡은 장군’ 이라는 것이다. 특히 제사용 그릇뿐만 아니라 수많은 무기와 전차 부품에까지 이름을 새긴 것은 은허에서 처음 발견되는 현상으로, 자신의 군사적 정체성을 죽어서까지 드러내려는 강한 의지로 보인다.

결론적으로, ‘아장’의 무덤은 단순히 호화로운 것을 넘어, 그의 정체성을 ‘군사 지휘관’이라는 한 가지 모습에 집중하여 연출하고 있다. 여러 종류의 유물을 통해 왕비이자 제사장, 장군이었던 다채로운 역할을 보여주는 부호의 무덤과는 대조적이다. 이는 ‘아장’의 군사적 역할이 그의 사회적 지위를 결정하는 가장 중요하고, 어쩌면 유일한 근원이었다는 점을 암시한다.

2. 전쟁터가 된 몸: 뼈에 새겨진 이야기

전사의 신원 확인

M54호 무덤에서 발견된 주인의 뼈는 일부만 남아있었지만, 뼈를 분석하는 체질인류학 조사를 통해 그의 정보를 알아낼 수 있었다. 분석 결과, 무덤 주인은 사망 당시 35세 전후의 남성으로 밝혀졌다. 보통 상나라 고위층 무덤에서는 뼈가 거의 남아있지 않은 경우가 많은데, ‘아장’의 뼈가 일부라도 보존된 것은 매우 특별한 일이다. 하육령(何毓靈)은 그 이유를 시신 아래에 깔려 있던 다량의 화초(花椒, 산초) 에서 찾았다. 화초의 특정 성분이 시신의 부패를 늦추는 방부제 역할을 했을 가능성이 있는데, 이는 당시 상나라 중심지에서는 발견되지 않는 매우 독특한 장례 풍습이다.

뼈에 새겨진 전투의 흔적

‘아장’의 뼈는 그가 살았던 시대의 폭력성과 그의 직업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하육령(何毓靈)의 논문은 그의 뼈에 남은 7곳의 심각한 부상 흔적을 자세히 분석하며, 그의 죽음이 평범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상처 대부분은 왼쪽 넓적다리뼈, 위팔뼈, 갈비뼈 등 몸의 왼쪽에 집중되어 있다. 이는 전투에서 오른손에 무기를 들고 적과 싸울 때, 상대적으로 방어가 약한 왼쪽이 집중적으로 공격당했음을 보여주는 전형적인 전투 부상 형태다. 특히 왼쪽 위팔뼈에 남은 3곳의 베인 상처는 뼈가 아물었던 흔적이 전혀 없어, 사망 직전에 입은 치명적인 공격으로 보인다. 또한 오른쪽 엉덩이뼈를 꿰뚫은 상처와 왼쪽 넓적다리 뒤쪽에 남은 깊은 상처는 각각 창이나 갈고리창 같은 무기에 찔린 상처로, 큰 동맥이 파열되어 과다출혈을 일으켰을 가능성이 크다. 이것이 그의 직접적인 사망 원인으로 추정된다.

반면, 일부 상처에서는 뼈가 아물었던 흔적도 발견되어, 그가 죽음에 이른 마지막 전투 이전에도 수많은 전쟁터를 누볐던 베테랑 용사였음을 알 수 있다.

‘아장’의 뼈에 새겨진 상처들은 ‘뼈로 쓴 자서전’과 같다. 무덤에서 나온 무기와 청동 도끼가 그가 ‘장군’이었음을 알려준다면, 그의 뼈는 상나라 시대에 장군으로 산다는 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했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즉, 권력의 상징(청동 도끼)과 그 권력이 사용되는 현실(뼈에 새겨진 상처)을 직접적으로 연결하는 것이다.

이처럼 잔혹한 죽음 이후에 당대 최고 수준의 장례가 치러졌다는 사실은, 당시 동맹 관계에 있던 외국인 엘리트들의 군사 복무가 얼마나 ‘고위험-고보상(high-risk, high-reward)’의 성격을 띠었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전투에서 충성을 바치고 성공을 거두는 것은, 비록 목숨을 잃더라도, 상나라 권력의 중심부에서 영원한 명예를 보장받는 길이었던 것이다.

3. 과학으로 밝혀낸 이방인의 흔적

안정 동위원소 분석이란?

고고학에서 안정 동위원소 분석은 과거 사람들의 삶을 복원하는 강력한 과학 기술이다. 특히 스트론튬(Sr)과 산소(O) 동위원소를 분석하면 한 사람이 어디서 태어나고 어디서 살았는지를 추적할 수 있다.

  • 스트론튬(Sr): 우리가 사는 지역의 땅(암석) 성질을 반영한다. 어린 시절에 만들어져 평생 변하지 않는 치아의 스트론튬 수치를 분석하면, 그 사람의 고향(출생지) 을 추적할 수 있다.
  • 산소(O): 주로 마시는 물을 통해 몸에 쌓이며, 기후(위도, 바다와의 거리 등)에 따라 달라진다. 뼈의 산소 수치를 분석하면, 그 사람이 생애 후반기를 보낸 지역의 환경을 추정할 수 있다.

동위원소 데이터가 밝혀낸 아장의 출신

하육령(何毓靈)은 이 최첨단 과학 기술을 ‘아장’의 뼈에 적용하여 그의 출신에 대한 결정적인 단서를 찾아냈다.

  • 스트론튬 분석 결과: ‘아장’의 치아에서 나온 스트론튬 수치는 은허 지역의 기준치와 뚜렷한 차이를 보였다. 이는 그가 어린 시절을 은허가 아닌 다른 지역에서 보냈다는 강력한 과학적 증거이다.
  • 산소 분석 결과: ‘아장’의 뼈에서 나온 산소 수치는 은허 지역의 기준치보다 훨씬 높았다. 일반적으로 산소 수치는 해안에 가까울수록 높아지므로, 이 결과는 그의 고향이 은허보다 동쪽 또는 남동쪽의 해안가 지역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문화적 단서: 남방식 장례 풍습, 화초(花椒)

‘아장’의 시신 아래에서 발견된 다량의 화초(산초)는 동위원소 분석 결과를 뒷받침하는 중요한 문화적 증거다. 시신 아래에 화초를 까는 장례 풍습은 당시 상나라 중심부에서는 발견된 적이 없으며, 주로 남쪽 지역에서 확인되는 방식이다. 이는 ‘아장’이 죽은 뒤에도 자기 고향의 독특한 전통에 따라 묻혔음을 보여주며, 그가 ‘이방인’이었음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 준다.

이처럼 세 가지 독립적인 증거(스트론튬이 알려주는 어린 시절의 지질 환경, 산소가 알려주는 성인 시절의 기후 환경, 화초가 알려주는 장례 문화)가 모두 ‘남동쪽에서 온 이방인’ 이라는 동일한 결론을 가리킨다. 여러 증거가 한곳을 가리키는 이러한 ‘삼각 검증’은 결론의 신뢰도를 매우 높여준다.

이를 통해 우리는 과학 기술을 이용해 권력의 핵심부로 편입된 ‘동맹 관계의 외국인 엘리트'(‘아장’ 같은 인물)와, 전쟁에서 패배하여 제물로 바쳐진 ‘포로로 잡힌 외부의 적’을 구별할 수 있게 된다. 이는 상나라가 외부 세력을 대하는 방식이 얼마나 정교하고 다각적이었는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대목이다.

4. 새로운 관점 1: 그가 북쪽에서 온 전쟁 포로였다면? (Fang et al., 2022)

‘아장’의 출신지가 남동쪽이라는 분석은 강력하지만, 그 해석에는 신중해야 한다. 팡(Fang) 등이 2022년에 발표한 연구는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준다. 이 연구는 상나라 초기 수도였던 정주상성 유적의 ‘단두갱(목이 잘린 시신들을 묻은 구덩이)’에서 나온 유골들을 분석했다. 그 결과, 희생자 대부분이 정주 바깥 지역에서 온 전쟁 포로일 가능성이 높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 연구는 ‘아장’의 사례에 두 가지 중요한 점을 시사한다.

  1. 섣부른 단정은 금물: ‘아장’의 과학적 데이터 수치만으로 그의 고향을 ‘남쪽’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상나라의 영향력은 매우 넓었고, 각 지역의 정확한 동위원소 ‘지도’가 아직 완성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2. 포로 출신의 가능성: 정주 유적의 사례는 상나라가 전쟁을 통해 다양한 지역의 사람들을 포로로 잡아 강제로 이주시켰음을 보여준다. 이는 ‘아장’이 반드시 우호적인 동맹 관계를 통해 은허에 온 것이 아닐 수도 있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아장’은 남쪽 동맹 세력 출신이 아니라, 북쪽 등 다른 지역과의 전쟁에서 사로잡힌 포로였다가, 능력을 인정받아 장군 자리에 오른 인물일 가능성도 충분히 생각해 볼 수 있다.

5. 새로운 관점 2: 그가 동쪽 해안에서 왔다면? (Liu et al., 2025)

‘아장’의 기원에 대한 또 다른 강력한 대안은 류(Liu) 등이 2025년에 발표한 산둥 지역의 고대 DNA 분석 연구에서 찾을 수 있다. 이 연구는 지난 6,000년간 산둥 지역의 인구 이동 역사를 추적했다. 그 결과, 상나라 시대에 내륙(황허강 유역)의 인구가 동쪽 해안(산둥 지역)으로 대규모로 흘러 들어갔음이 밝혀졌다.

내륙과 해안 사이의 이렇게 활발한 인구 교류는 상나라 수도의 지배 계층에 산둥 같은 동해안 지역 출신이 섞여 있었을 가능성을 강하게 보여준다. 이는 ‘아장’의 출신지를 ‘남쪽’이 아닌 ‘동쪽 해안(산둥)’ 으로 볼 수 있는 중요한 근거가 된다.

실제로 ‘아장’의 뼈에서 나온 높은 산소 동위원소 값은 ‘해안가’라는 특징을 나타내는데, 이는 남쪽 해안뿐만 아니라 동쪽의 산둥 해안 지역과도 완벽하게 들어맞는다(何毓靈, 2012; Liu et al., 2025). 또한, 산둥 지역은 상나라 시대에 소금 같은 중요 자원의 생산지였기 때문에, 상나라 중심부와 교류와 갈등이 잦았다는 고고학적 기록과도 일치한다(Liu et al., 2025).

따라서 ‘아장’은 남방의 동맹 세력이 아니라, 오랫동안 상나라 중심부와 교류하며 정치·군사 체계에 깊이 편입된 산둥 지역의 강력한 해안 세력 출신일 가능성이 있다. 이 가설은 동위원소 데이터, 유전체 데이터, 그리고 고고학적 상황을 모두 만족시키는 매우 설득력 있는 대안이다.

6. 고향을 찾아서: ‘장(長)’씨족과 장자구 무덤의 연결고리

기록 속의 ‘장(長)’씨족과 장자구 무덤

‘아장’의 출신을 추적하는 마지막 단서는 다른 기록과 유적과의 비교에서 찾을 수 있다. 옛 기록(갑골문)에는 ‘장(長)씨족‘이 상나라 왕에게 점을 치는 데 사용하는 거북 등껍질을 바쳤다는 내용이 나온다. 점술용 거북의 주산지가 남쪽 지역임을 고려할 때, 이는 ‘장’씨족이 남쪽과 깊은 관련이 있음을 암시한다. ‘아장’ 무덤에서 나온 이름은 바로 이 ‘장’씨족의 일원이 상나라 수도에서 최고위 군사직을 맡았다는 확실한 증거가 된다.

또한, 1997년 은허의 남동쪽에 있는 허난성 루이현에서 ‘장자구(長子口)’라는 이름의 대형 귀족 무덤이 발굴되었다. 이 무덤에서 나온 청동기에도 ‘장자구’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는데, ‘장(長)’ 글자의 모양이 ‘아장’의 것과 매우 비슷해 같은 씨족의 표시로 볼 수 있다.

두 무덤의 관계는?

하육령(何毓靈)은 동위원소 분석이 시사하는 ‘남동쪽 출신’이라는 정보와 ‘장자구’ 무덤을 연결하여, 아장’이 바로 이 ‘장’씨족의 일원이며 그의 고향이 루이현 근처였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항목 은허 ‘아장’ 무덤 루이 ‘장자구’ 무덤 분석 및 의미
위치 은허 수도 왕실 구역 근처 허난성 동남부(은허의 남동쪽) ‘아장’이 남동쪽 출신이라는 동위원소 분석 결과와 일치함.
무덤 양식 단순한 구덩이 무덤 왕 등급의 매우 격식 높은 무덤 격식이 다름. 장자구 무덤은 씨족의 본거지에 묻힌 우두머리, 아장은 수도에 파견된 핵심 인물의 무덤으로 해석 가능.
핵심 이름 (亞) 자구(子口) 같은 ‘장(長)’씨족 이름을 공유함.
지위 상징 최고의 군사 지휘관 (도끼 7점) 지역의 최고 통치자 둘 다 최상급 귀족. 아장은 군사적 권위, 장자구는 가문의 우두머리로서의 권위를 강조.

두 무덤의 격식 차이는 이들이 서로 다른 씨족이라는 증거가 아니라, 오히려 그들의 관계를 더 명확히 설명해준다. 즉, 장자구 무덤의 주인은 자기 영지에서 왕처럼 묻힌 ‘장’씨족의 최고 우두머리였을 것이다. 반면 ‘아장’은 그 가문에서 상나라 수도로 파견되어 복무한 핵심 장군이었을 것이다. 그는 고향에서만큼의 화려한 무덤에 묻히지는 못했지만, 그 대신 상나라 수도의 심장부에 묻히는 최고의 명예를 얻었다.

이러한 관계는 상나라가 단순히 힘으로 지방을 누르는 나라가 아니었음을 보여준다. 상나라는 ‘장’씨족과 같은 강력한 지방 세력과 정교한 정치적 동맹을 맺고 있었다. ‘장’씨족은 ‘아장’이라는 최고의 장군을 보내 군사적으로 봉사했고, 상나라 왕은 그에게 수도에 묻히는 최고의 명예를 주어 그의 가문의 지위를 보장해 주었다. 결국 은허의 ‘아장’ 무덤과 루이의 ‘장자구’ 무덤은 상나라 중앙과 지방 세력의 공생 관계를 보여주는 한 쌍의 고고학적 증거라 할 수 있다.

결론: ‘아장’의 삶을 통해 다시 보는 상나라

‘아장’이라는 한 장군의 삶과 죽음, 그리고 그의 출신을 추적한 이 연구들은 상나라 사회를 새롭게 평가하게 한다.

  1. 개방적인 군사 조직: ‘아장’의 존재는 상나라 군대가 왕족뿐만 아니라, 고도로 전문화된 외국인 출신 엘리트 장군에 의해 지휘되었음을 보여준다. 상나라의 군대와 인재 등용 시스템은 생각보다 훨씬 개방적이고 복잡했다.
  2. 복잡한 동맹 정치: 강력한 지방 세력 출신이 수도의 핵심 군사령관이 되고 죽어서 최고의 예우를 받았다는 사실은, 상나라가 힘만이 아닌 동맹과 통합 같은 복잡한 정치 전략으로 거대한 나라를 유지했음을 증명한다. ‘아장’은 정복의 대상이 아니라, 상나라 권력을 지탱하는 핵심 파트너였다.
  3. 역동적인 다문화 사회: 그의 출신지에 대한 논쟁은 상나라의 인구 이동이 한 방향이 아닌 여러 방향으로 활발하게 이루어졌음을 보여준다. 그의 출신은 ‘남방의 동맹 세력’, ‘북쪽의 전쟁 포로’, ‘동해안의 통합된 엘리트’ 등 다양한 가능성을 안고 있다. 이는 상나라가 얼마나 역동적이고 복합적인 사람들로 이루어진 사회였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례이다.

‘아장’의 이야기는 상나라 사회의 다양성과 개방성을 보여주는 중요한 증거다. 앞으로 그의 뼈에서 직접 고대 DNA를 분석하고, ‘장자구’ 무덤의 인물과 유전자를 비교한다면, 이 미스터리는 풀릴 수 있을 것이다. 과거를 재구성하는 데 있어 여러 분야의 학문이 힘을 합치는 ‘다학제적 접근’이 얼마나 강력한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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