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역사, 특히 고구려의 마지막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있습니다. 바로 당나라의 명장, **글필하력(契苾何力)**입니다. 그는 고구려를 침공한 적장이었지만, 그 이름은 오늘날 우리에게 아주 흥미로운 언어학적 수수께끼를 던져줍니다.

글필하력, 그는 우리에게 어떤 사람이었나?

글필하력은 단순히 당나라 장군 중 한 명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고구려의 운명에 깊이 개입한 인물로, 우리 역사서와 중국 정사에 그의 행적이 뚜렷이 남아있습니다.

출전: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보장왕 21년 (서기 662년)

원문: 唐將契苾何力, 至蛇水, 爲高麗將蓋蘇文所敗.

번역: 당나라 장수 글필하력(契苾何力)이 사수(蛇水)에 이르렀다가, 고구려 장수 연개소문에게 패하였다.

《삼국사기》는 연개소문이 글필하력의 대군을 격파한 사실을 기록하며 그의 존재감을 보여줍니다. 중국 측 기록은 그가 고구려에 패배한 후 겪은 일을 더 생생하게 전합니다.

출전: 《구당서(舊唐書)》 「열전(列傳) 제59권 글필하력전(契苾何力傳)」

원문: 何力爲高麗所虜…聞帝將討遼東, 請爲前驅. 帝憫其被囚, 未許. 何力固請, 遂齧指瀝血以自誓.

번역: 하력(何力, 글필하력)이 고구려에 포로로 잡혔다… 황제(당태종)가 요동(고구려)을 치려 한다는 소식을 듣고 선봉이 되게 해달라고 청했다. 황제는 그가 포로로 고생한 것을 안타깝게 여겨 허락하지 않았다. 하력이 굳게 청하며, 마침내 손가락을 깨물어 피를 내어 스스로 맹세하였다.

고구려에 포로로 잡히는 수모를 겪었음에도 당나라에 대한 충성심을 잃지 않았고, 결국 고구려-당 전쟁의 최선봉에 서게 된 인물. 이처럼 글필하력은 우리 역사 속에서 고구려의 강력한 적수이자 그 운명을 결정지은 핵심 인물이었습니다.

그런데 왜 ‘계필하력’이 아니라 ‘글필하력’일까?

자, 이제 오늘의 진짜 궁금증입니다.

그의 이름 첫 글자인 契는 분명 ‘맺을 계’ 자입니다. 그렇다면 원칙대로라면 ‘계필하력’이라고 읽어야 마땅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약속이라도 한 듯 ‘글필하력’이라고 읽고 씁니다. 실제로 오늘날 우리가 가장 많이 참고하는 **한국어 위키피디아**나 **나무위키**에서도 그의 이름은 어김없이 ‘글필하력’으로 등재되어 있습니다.

왜일까요? 그 비밀을 파헤쳐 보겠습니다.

해답의 열쇠: 이름의 출신과 ‘음역(音譯)’

1. ‘글필하력’은 본명이 아닙니다

가장 중요한 사실은 ‘契苾何力’이라는 이름이 그의 본명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그는 한족(漢族)이 아닌, 지금의 중앙아시아에 살던 투르크계 민족 ‘철륵(鐵勒)’ 출신입니다. 중국의 정사(正史)는 그의 혈통을 다음과 같이 명확히 밝히고 있습니다.

출전: 《신당서(新唐書)》 「열전(列傳) 제35권」 글필하력전(契苾何力傳)

원문: 契苾何力,鐵勒酋長哥論易勿施莫賀可汗之子。

번역: 글필하력은 철륵(鐵勒) 부족의 추장인 가론이물시막하가한의 아들이다.

이처럼 그의 이름은 본명이 아니라, ‘글필하력’의 원래 투르크어 이름을 당시 중국인들이 자기들 언어의 발음과 비슷한 한자를 빌려와 소리나는 대로 표기한 ‘음역(音譯)’ 이름입니다. 우리가 ‘MacDonald’를 ‘맥도날드’로, ‘Shakespeare’를 ‘셰익스피어’로 적는 것과 똑같은 원리입니다.

[잠깐! 그럼 원래 이름은?]

‘글필하력’이 음역이라는 것을 알고 나면 당연히 “그럼 원래 이름은 무엇이었을까?” 하는 궁금증이 생깁니다. 그의 원래 이름이 100% 확정된 기록은 없지만, 언어학자들이 재구성한 가장 유력한 설은 다음과 같습니다.

  • 契苾 (글필): 그의 부족 이름으로, 투르크어 ‘켈비(Kälbi)’ 로 추정됩니다.
  • 何力 (하력): 그의 개인 이름으로, 고대 투르크어 ‘퀼리그(Külüg)’ 로 재구성됩니다. ‘퀼리그’는 **”명성이 높은, 영광스러운”**이라는 뜻을 가진 아주 멋진 단어입니다.

따라서 그의 원래 이름은 ‘켈비 퀼리그(Kälbi Külüg)’ 였을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명망 높은 켈비 부족의 전사”라는 의미가 담긴 셈이죠.

2. ‘계(契)’가 ‘글’이 된 이유: 옛 중국어 발음의 흔적

자의 현재 한국식 독음은 ‘계’이지만, 당나라 시대의 중고(中古) 중국어 발음은 사뭇 달랐습니다. 당시 자는 **/kʰiet/ [키엗]**과 아주 유사하게 발음되었습니다.

당시 중국인들은 글필하력의 원래 이름 첫 음절과 비슷한 소리를 내기 위해 /kʰiet/ [키엗]으로 발음되던 자를 빌려온 것입니다.

3. ‘키엗’이 ‘글’로! 마법 같은 우리말의 음운 규칙

자, 이제 마지막 단계입니다. /kʰiet/ [키엗]이 어떻게 한국에서 ‘글’이 되었을까요?

여기에는 아주 중요한 우리말의 옛 한자음 흡수 규칙이 숨어 있습니다. 바로, 중국어에서 -t 받침으로 끝나던 소리가 한국으로 들어오면서 받침으로 변하는 경향입니다.

아래 예시를 보면 “아하!”하고 무릎을 치게 될 겁니다.

  • (부처 불) : 옛 중국어 발음 /bjut/ [븃] → 한국어
  • (이를 달) : 옛 중국어 발음 /dat/ [닫] → 한국어
  • (여덟 팔) : 옛 중국어 발음 /paet/ [팯] → 한국어
  • (끝 말) : 옛 중국어 발음 /muat/ [뫧] → 한국어

보이시나요? -t 받침이 모두 ㄹ 받침으로 바뀌었습니다.

글필하력의 契(/kʰiet/ [키엗]) 역시 이 규칙을 그대로 따라, 끝소리 -t가 ㄹ로 변하며 **’글’**이라는 아주 특별한 독음으로 우리 역사 속에 자리 잡게 된 것입니다.

결론: 이름 속에 숨은 역사의 발자취

결국 ‘글필하력’이라는 이름은, 한자 하나에도 동아시아의 국제적인 교류와 언어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음을 보여주는 ‘살아있는 화석’ 같은 존재입니다.

우리가 무심코 ‘글필하력’이라고 부르는 그 이름 속에는, 한 투르크계 명장의 삶과, 그를 기록한 당나라의 언어, 그리고 그것을 우리 식으로 받아들인 한국어의 역사가 겹겹이 쌓여 있었던 것입니다. 이제 그의 이름을 볼 때마다 이 흥미로운 이야기가 함께 떠오르지 않으신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