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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아 컨센서스 5차 콜로키엄]

  • 주제: 통섭 & 당신의 인생을 이모작하라.
  • 발제자: 최재천 교수 (이화여자대학교 자연과학대학)
  • 일시: 2006년 12월 4일 (월) 오후 5시
  • 장소: EAI 회의실
  • 참석자: 김병국, 손동현, 윤순봉, 이정우
  • 정리: 송문희(EAI)

콜로키엄 정리자료_text 20p


[요약]

[발제]

[토론]


[요약]

1. 통섭(consilience)

16세기를 기점으로 하여 학문이 세분화되면서 발전하기 시작하면서 특히 자연과학분야에서 전문화는 해당 영역의 지식의 급속한 확대를 가져오게 한 원동력이 되었다. 생명과학의 발달은 형태를 대상으로 한 연구를 뛰어넘어 분자수준의 연구가 이루어지게 되었고, 드디어는 인간의 유전자서열을 규명해내고 인간의 유전자를 교체하는 경지에 이르게 되었다.

그러나 에드워드 윌슨은 현대사회에서 전문지식이 파편화돼 버렸음을 질타하며 학문 간 벽을 깨는 방법으로 ‘통섭’(consilience)을 제안한다. 인간의 사회적 행동양식도 생물학적, 유전적 진화과정을 통해 설명할 수 있다는 “사회생물학”을 처음 제창한 에드워드 윌슨의 그간의 학문적 업적을 총괄하는 [Consilience]란 책이름의 라틴어 어원은 ‘함께 넘나듦’(jumping together)이라는 의미이다. 저자는 이를 “분야를 가로지르는 사실과 이론들을 연결해 지식을 통합하는 것”이라는 뜻으로 사용하면서 분자 수준의 미시구조에서 범우주적인 통찰, 그리고 인간의 마음에 대한 인식에 이르기까지 ‘통섭(統攝)’을 통해 ‘하나의 진리’에 도달할 수 있다고 본다. 그는 자연과학과 인문, 사회과학이, 인간의 지식은 본질적으로 통일성을 가지고 있다는 전망을 바탕으로 협력해야 함을 강조한다. 이 ‘지식의 대통합’이라는 전망을 설득력 있게 제시하기 위해 서구 학문의 큰 줄기에서 갈라져 나온 다양한 가지를 심층적으로 분석하고 그 가지들 속에 숨어 있는, 그렇지만 그 분야의 전문가들이 간과했던 지식 통합의 가능성을 찾아내 명확하게 보여 준다.

에드워드 윌슨은 서구 학문의 뿌리라고 할 수 있는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의 세계관에서 출발하여 근대 학문과 과학의 모체가 되었던 계몽주의를 거쳐 현대 자연과학, 사회과학, 예술, 종교 이론에까지 이르기까지 ‘지식의 대통합’이라는 전망 속에서 인간의 지적 모험을 통시적, 공시적으로 아우르고 있다. 그리고 학문 분과들 사이를 가로막고 있는 주요 벽들, 자연과학자와 인문사회과학자의 대립, 마음과 몸의 이분법, 유전자주의자와 양육주의자의 대립, 윤리 규준에 대한 경험론자와 초월론자의 논쟁, 유물론자와 유신론자들의 적대 들을 최신 과학 성과들을 통해 넘나들며 양자들의 종합을 모색한다.

저자가 세우고 있는 이론의 핵심은 바로 유전자이다. 한 집단의 문화라고 하는 것도 그 집단이 가지고 있는 유전자의 양상이 반영되는 것이라는 가설을 세우고 이를 ‘유전자-문화 공진화’라고 부른다. “유전자의 규정을 받는 후성 규칙들은 문화적 습득과 전달을 가능케 하는 감각지각과 정신발달의 규칙성이다. 문화는 어떤 유전자가 다음 세대로 전달될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을 돕는다. 성공적인 새 유전자는 개체군의 후성규칙을 변화시킨다. 변화된 후성규칙은 문화적 습득이 이뤄지는 경로의 방향과 효율성을 변화시킨다.”라고 설명한다. 이를 두고 에드워드 윌슨이 결국은 환원주의로 회귀하는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제 21세기에 들어서면서 거의 모든 학문분야에서 상호 교류와 통합의 바람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며 그 중심에 [Consilience]의 저자인 에드워드 윌슨이 자리잡고 있다는 것이다.

2. 당신의 인생을 이모작하라

2020년 대한민국 사회는 65세 이상 노령 인구가 15세 미만 유년 인구보다 많아지는 가분수 사회가 된다. 그때가 되면 젊은이 4명이 노인 1명을 부양해야 한다. 이름하여 ‘고령 사회’ 또는 ‘초고령 사회’가 되는 것이다. 고령화 문제는 기껏해야 정년을 몇 년 앞뒤로 조정하는 소극적인 방법으로는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문제이다.

이처럼 심각한 고령화 사회 문제를 극복하기 위한 방안은 다음과 같다. 첫째, 고령화의 직접적인 원인을 낮은 출산율이 제공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무조건 출산율을 높이는 것만이 최선의 방책인지는 진지하게 고민해봐야 한다. 지구촌 전체를 생각하면 저출산은 사실 반가운 현상일 수 있다. 외국인들에게 문호를 개방하여 노동력을 확보하는 방안을 제일 먼저 검토하여야 한다. 둘째, 이 땅의 젊은이들로 하여금 일찍 결혼하여 자식을 낳아 기를 수 있도록 양육 환경을 획기적으로 개선해야 한다. 생색만 내는 수준이 아니라 대규모 국토개발사업 수준의 예산을 투자하여 지금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수준의 보육 시설과 교육 환경을 마련해야 한다. 셋째, 인생을 번식기와 번식후기의 두 시기로 나누고 번식기, 즉 제1인생에 보다 확실한 복지 혜택이 제공될 수 있도록 임금 체계나 기업 구조를 변혁해야 한다. 여러 가지 이유로 국가의 보호를 받아야 할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제2인생을 사는 사람들도 기본적으로 모두 직업을 갖고 일하며 살 수 있는 사회구조를 갖추어야 한다. 넷째, 국가와 사회가 설령 재정적으로 바람직한 고령화 대비책을 마련한다 하더라도 건강의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는 사실을 주목해야 한다. 고령 사회에 대한 준비가 완벽하게 마련된다 하더라도 ‘나의 건강’이 확보되지 않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 국가는 국민 전체의 건강을 위한 체계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하고 개인은 각자 자신은 물론 사회 전체의 행복을 위해 자신의 건강을 돌봐야 한다. 2020년 고령 사회 대한민국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우리 삶을 번식기 50년과 번식후기 50년의 ‘두 인생 체제’로 개혁하면서 제2인생을 잉여 인생이 아니라 당당하게 거듭나는 또 하나의 멋진 인생으로 맞이해야 한다.

<키워드>

통섭(統攝), 지식이 갖고 있는 본유의 통일성, 환원주의(reductionism)의 극복, 아리아드네의 실타래, 기능적 장애물과 진화적 장애물, 후성규칙, 유전자-문화 공진화 이론, ‘explaining brain’(설명하는 뇌), ‘창발성’(emergent property), 인구폭발, dying Korea, ‘fundamental’, ‘multi-player’, 지식생태계, ‘inter-disciplinary’(학제적), ‘범학문적’(trans-disciplinary), ‘society of fellows’(현대판 집현전), ‘middle-up & down’ 방식, 고령화 사회, ‘번식기’(reproductive period), ‘번식후기’(post-reproductive period), 인생이모작


[발제]

1. 통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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옮긴이(최재천) 서문

진리의 행보는 우리가 애써 만들어 놓은 학문의 경계를 존중해 주지 않는다. 학문의 구획은 자연에 실재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지식은 대체로 보아 16세기를 기점으로 하여 쪼개지기 시작했다. 이 같은 추세를 부채질한 환원주의가 엄청난 양의 지식을 발굴해 내는데 기여했음을 부인할 수는 없다. 그러나 20세기를 마감하며 우리는 우리가 그토록 열심히 찾아낸 부분들을 한데 묶어도 좀처럼 전체를 이루지 못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21세기에 들어서며 불기 시작한 통합의 바람 속에서 그 동안 환원주의 일변도로 나아가던 생물학도 종합적 차원으로 접어들고 있다. 이 같은 변혁에 이론적인 기초를 제공한 사람이 [Consilience: The unity of knowledge]의 저자 에드위드 윌슨(Edward Osborne Wilson)이다. 하지만 그의 시계(視界)는 생물학의 범주 안에 머물기를 거부한다. 그는 생물학과 심리학이 인지신경과학 또는 행동신경과학으로 거듭나고 있음을 본다. 그는 인간지성의 흐름이 과학과 인문학을 융합하는 방향으로 흘러갈 것이라 본다. 에즈워드 윌슨은 이런 학문의 미래를 설명하기 위해 19세기 자연철학자 윌리엄 휴얼(William Whewell)의 ‘consilience’ 개념을 부활시킨다. 휴얼은 ‘consilience’ 를 한마디로 ‘jumping together’ 즉 ‘더불어 넘나듦’으로 정의했다. 이것은 과학을 이용하여 모든 것을 지극히 작은 단위들로 쪼개는데 여념이 없어 전체를 보지 못하게 되는 오류를 경계하자는 뜻이다.

통섭의 주제는 ‘지식이 갖고 있는 본유의 통일성’이다. 지식의 통일은 서로 다른 학문 분과들을 넘나들며 인과설명들을 아우르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현대자연과학의 진화에 있어서 주된 원동력이다. 세상이 어떻게 작동하는가에 대한 물질적인 이해는 현대문명의 기본인 기술의 발전을 가능하게 했다. 지식은 과연 본유의 통일성을 지니는가? 지식의 계속적인 파편화와 그것으로 인한 철학의 혼란은 실제 세계의 반영이라기보다는 학자들이 만든 인공물일 뿐이다.

세포생물학과 생태학뿐만 아니라 오늘날의 모든 과학이 마주하고 있는 가장 강력한 도전은 복잡계를 완벽하고 정확하게 기술하는 것이다. 복잡성이론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조직의 다양한 수준들을 가로지르는 공통적 특성들을 드러내 보이는 자연계 내의 알고리즘을 찾는 작업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생물 개체들과 개체의 집합들은 알려진 복잡계들 중에서 최고로 복잡한 체계들이다. 그것들은 자기 스스로 조립도 하고 적응하기까지 한다. 분자에서 세포, 개체, 생태계로 나아가면서 자신들을 건축해 나가는 살아있는 체계들은 복잡성과 창발성의 근본법칙들을 드러내 보인다.

3장 계몽사상

오귀스트 콩트는 진정한 사회과학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믿었다. 그는 콩도르세를 이어받아 다음과 같이 말했다. “사람들은 화학과 생물학에 관해 자기 멋대로 생각할 수 없다. 그렇다면 정치철학에 관하여 자기 멋대로 생각해도 될 이유는 무엇인가?” 사람도 결국 아주 복잡한 기계일 뿐이다. 그들의 행위와 사회 제도가 아직은 정의되지 않은 그 어떤 자연법칙을 따르지 않을 이유는 무엇인가?

4장 자연과학

물리학, 화학 그리고 생물학과 같은 자연과학의 축적된 지식과 도구가 없다면 인간은 인지의 감옥에 갇히고 만다. 좀 심하게 말하면 그런 상황에서 인간은 그림자가 드리운 깊은 연못에서 태어난 지적인 물고기와 같다. 인간은 자신을 가두고 있는 물과 그 위에 있는 태양과 하늘 그리고 별의 기원에 대해서 독창적인 사유와 신화를 만든다. 그러나 언제나 그것은 틀릴 수밖에 없다. (p99)

나는 과학 이전 시대의 사람들은 육안으로 볼 수 있는 좁은 영역 내에서만 물리적 실재의 본성을 추측할 수 밖에 없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과거의 천재 과학자도 마찬가지였다. 이렇게 말함으로써 그들을 폄하하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신화, 계시, 예술, 무아지경, 또는 그 밖의 가능한 수단으로는 어떤 것도 얻을 수 없었던 게 사실이다. 또한 과학 이전 시대에는 신비주의가 미지의 것에 대한 가장 강력한 탐구 방법이었지만 결국 감정적 만족 외에는 아무것도 내놓은 게 없다. (p101)

5장 아리아드네의 실타래

만일 개념 형성의 생물학적 과정이 정확히 이해된다면 우리는 뇌와 뇌 밖의 세상을 탐구하기 위한 더 나은 방법들을 고안해 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되면 사건, 자연법칙 그리고 사고 과정에 대한 물리적 기초 간의 연결을 단단하게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결국 마지막 단계로 넘어가 객관적 진리에 대한 확고한 정의를 내릴 수도 있을까? 아마도 그렇게 하지는 못할 것이다. 사실은 그 개념 자체가 위험스럽다. 왜냐하면 거기에는 절대주의의 냄새가 풍기기 때문이다. 절대주의는 과학과 인문학에 공히 위험한 메두사와 같다. 객관적 진리에 대한 확고한 정의를 섣불리 받아들이는 것은 그것을 거부하는 것보다 위험할 수 있다. 그렇다면 포기할 준비를 해야 되는가? 결코 그래서는 안 된다! 의미 없는 바다에서 표류하는 것보다는 길잡이가 되는 별을 향해 항해하는 편이 낫지 않은가? 나는 우리가 선배들의 목표에 접근하고 있는지를 스스로 알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설령 도달할 수 없다 할지라도 말이다. 객관적 진리는 우리가 따르는 철학적 실용주의 정신과 우리가 공유하는 생각들의 우아함, 아름다움 그리고 능력 속에서 언젠가 꽃을 피울 것이다. (p131-132)

6장 마음

어떤 물질적 기술이 주관적 경험을 설명할 수 있을까? 만일 마음이 물리 법칙들에 묶여 있다면 그리고 마음이 해독될 수 있다면 자유의지는 어떻게 존재할 수 있는가? 여기서 말하는 ‘자유의지’란 인간이 자신의 몸과 마음의 물리학. 화학적 상태가 부과하는 제약들로부터 어떻게 자유로울 수 있는지를 묻고 있는 것이다. 현재 인간의 모든 사고능력을 더 높은 수준에서 시뮬레이션하려는 노력이 계속되고 있다. 그러나 기술의 진보에도 불구하고 아직은 인간의 마음을 설명해내지 못하고 있다. 가까운 장래에 인간의 마음에 대한 조잡한 시뮬레이션 정도는 가능할지도 모른다. 뇌과학은 마음의 기본작동을 충분히 이해할 정도로 세련될 것이고 컴퓨터과학은 그 기본작동을 흉내 낼 수 있을 만큼 발전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기능적 장애물과 진화적 장애물이라는 두 가지 난관이 우리의 앞길을 가로막고 있다.

기능적 장애물은 인간의 미음으로 들어가거나 마음을 통해 나오는 정보입력의 엄청난 복잡성을 말한다. 합리적 사고는 몸과 뇌 사이의 계속적인 교환이 신경의 방전과 호르몬의 흐름을 통해 일어남으로써 생겨난다. 이 때 호르몬의 흐름은 정신 태도, 주의, 목표선정을 조절하는 감정적 통제의 영향을 받는다. 기계 속에 마음을 복제해 넣기 위해서는 뇌과학과 인공지능 기술을 완성하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시뮬레이션의 선구자들은 전적으로 새로운 형태의 계산, 예컨대 인공감정(AE)도 발명하고 설치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휴머노이드 마음을 창조하는데 있어서 두 번째 장애물은 인류의 고유한 유전적 역사 때문에 생겨난 일종의 진화론적 난관이다. 보편적인 인간본성(인류의 심리적 통일성)은 잊혀진 과거 환경에서 수백만 년 동안의 진화 역사를 통해 생겨난 산물이다. 따라서 인간 본성의 유전적 설계도를 면밀히 검토하지 않는다면 시뮬레이션된 마음이 능력 면에서는 대단할 지 몰라도 결과적으로 인간의 마음과는 매우 동떨어진 것이 될 수도 있다. 인공마음이 인간이 되려면 각 개인의 고유함도 흉내낼 수 있어야 한다. (p219-227)

8장 인간본성의 적응도

인간 본성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인간 본성을 규정하는 유전자도 아니고 인간본성의 궁극적 산물인 문화도 아니다. 그것은 후성규칙들이다. 즉 문화의 진화를 한쪽으로 편향시켜 유전자와 문화를 연결해 주는 정신발달의 유전적 규칙성이다. 감각체계와 뇌의 선천적 작용들의 집합체인 후성규칙은 개체가 환경에서 직면한 문제들에 대해 빠른 해결책을 찾도록 만드는 일종의 어림법(rules of thumb)이다.

뇌는 생물학적 질서의 최고 단계들의 산물로서 개체의 해부학적 구조와 생리적 작용에 함축되어 있는 후성규칙들의 제약을 받고 있다. 뇌는 환경자극의 범람 속에서 작동하면서 보고 듣고 배우며 자기자신의 미래를 계획한다. 진화과정에서 수많은 뇌의 집합적 선택은 인간의 모든 것(유전자, 후성규칙, 의사소통적 마음, 그리고 문화)의 진화적 운명을 결정한다. 인간진화가 침팬지나 늑대의 진화와 정말로 다른 점은 인간의 진화를 추동해 온 환경에서 문화적인 요소가 큰 부분을 차지한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문화가 조성한 특수한 환경은 행동 유전자들에 영향을 끼친다. 즉 행동유전자들은 문화의 영향을 받는다. 유전자-문화 공진화 이론은 인간의 행위가 문화를 만들고 동시에 문화가 인간의 행위를 만든다고 한다. 사회적으로 학습된 복잡한 행동이라고 엄격히 정의되는 문화는 확실히 인간에게만 한정되어 있다. (p291-293)

10장 예술과 그 해석

지성, 언어, 문화, 사회 계약 등의 수단을 통하여 호모 사피엔스(인간)가 다른 경쟁 동물보다 경쟁에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게 되면서 다른 대가를 치르게 되었는데 그것이 바로 ‘자아 인식의 충격, 개인적 존재의 유한성, 그리고 환경의 혼돈’ 같은 것들이었다. 즉, 호모 사피엔스라는 종은 심리적 추방감으로 고생하는 유일한 종인 것이다.
진화적으로 발생한 ‘자기 인식’(self-recognition)이라고 하는 능력 때문에 탄생과 죽음, 인생에 대하여 고민할 수 밖에 없게 되었고 이러한 자아의 혼돈을 해결하기 위하여 생겨난 것이 바로 예술이다.

인간의 뇌는 나를 인식하고, 고민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물질이 아니다. 다만 생존하기 위해서 고도로 조직화된 물질일 따름이다. 그런데, 생존과 번식을 위한 동물적 본능 이외에도 인간이라고 하는 동물과는 다른 본성(언어라든가 문화라든가 하는)이 생겨났고, 따라서 이러한 새로운 본성을 위한 프로그램이 뇌에 자리를 잡아야 했다. 그러나 진화는 그렇게 빠른 속도로 일어나지 않는다. 우리는 구석기 시대의 몸(뇌도 마찬가지)을 가지고 이 현대를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인간은 인간이 보유하게 된 지성이라는 우연한 축복에 조화롭게 대처할 진화를 하기에는 너무나 시간적인 여유가 없었다. 바로 이러한 차이와 간극을 메운 것이 예술이다. 예술은 가장 원시적인 인간의 본성에 충실하면서도 지성의 진화에 따라 생겨난 산물인 것이다.

예술의 생물학적 기원 가설은 후성규칙들이 실재하는지, 그리고 그 규칙들이 만들어 내는 원형들이 어떤 것인지에 의존한 하나의 작업가설이다. 이것은 자연과학의 정신 속에서 구성되어왔다. 즉 이 가설은 입증이나 반증이 가능하며 생물학의 다른 부분들과 통섭적이다. 그렇다면 이 가설은 어떤 식으로 검증되어야 할까? 한 가지 방법은 예술 속에서 가장 자주 등장하는 주제들과 그 밑바탕에 놓인 후성규칙들을 진화론적 입장에서 예측하는 것이다. 우리가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왜 이런 현상이 존재하는지, 그리고 왜 정신 발달 과정이 특정 이미지와 내러티브에 그토록 한결같이 집착하는지에 관한 물음들이다. 진화론은 기저의 후성규칙들을 예측하고 유전 역사 속에서 그 기원을 이해하기 위한 강력한 수단이 될 수 있다. (p395-396)

11장 윤리와 종교

내가 볼 때 헌신의 유형 중 가장 위험한 것은 기독교 특유의 신앙심이다. 즉 나는 이 세계에 속하려고 태어난 것이 아니라는 믿음이다. 이것은 제 2의 삶을 기다리며 고통(특히 타인들의 고통)쯤은 감내할 수 있게 해 주고, 자연환경은 다 써버려도 된다는 망상을 심어주며, 신앙의 적들은 잔인하게 다뤄도 좋다고 토닥여 주고, 자살에 가까운 순교를 칭송하게 만든다. (p424)

경험론은 우리가 신의 영광을 증거하기 위해 신의 피조물의 정점으로서 우주의 중심에 놓은 특별한 존재라고 주장하는 현기증 나는 이론을 파괴했다. 우리가 하나의 종으로서 긍지를 가질 수 있는 것은 우리가 혼자라는 사실을 발견함으로써 신에게 진 빚을 거의 갚았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는 다른 동료 인간들에게나 우리의 모든 희망을 좌우하고 있는 지구상의 다른 모든 생물들에게 더 겸손해질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만일 어떤 신들이 있어 우리를 굽어보고 있다면 그들은 우리가 이런 발견을 해 내고 또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것을 우리 힘만으로 성취해 내기 시작한 것에 대해 찬탄해 마지않을 것임이 분명하다. (p428-429)

12장: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세계인구는 위험할 정도로 많으며 앞으로 더욱 증가하여 2050년 이후 어느 시점에서는 정점에 이를 것이다. 인류 1인당 생산, 건강, 수명이 전반적으로 향상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수백만 년 된 천연자원과 생물의 다양성을 포함하는 지구의 자원을 소모해야만 가능한 것이다. 호모 사피엔스는 식량과 물 공급의 한계에 다가서고 있다. 이전에 살았던 다른 종들과 달리 인류는 세계의 대기와 기후를 변화시키고 지하수면을 낮추며 오염시키고 숲을 줄어들게 하여 사막을 증가시키고 있다. 이러한 환경 스트레스의 대부분은 직, 간접적으로 산업화된 몇몇 국가에서 비롯되었다. 나머지 국가들은 산업화된 국가들의 증명된 번영방식을 열광적으로 답습하고 잇다. 그러나 지금과 같은 소비와 낭비의 수준에서는 경쟁이 유지될 수 없다. 개발도상국의 산업화가 일부 성공한다 하더라도 환경변화의 여파기 그에 선행될 인구폭발을 위축시킬 것이다.

계몽사상의 유산은 우리는 우리 자신의 힘으로 알 수 있고, 앎으로써 이해할 수 있으며, 이해함으로써 현명한 선택을 할 수 있다는 믿음이다. 이러한 자신감이 과학 지식의 기하급수적 성장을 가져왔으며 이 지식은 증가하는 완전한 인과적 설명의 망으로 짜여 있다. 이 과업을 달성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하나의 종으로서 자신에 관해 많은 것을 배웠다. 다른 생명과 마찬가지로 호모 사피엔스는 스스로 길을 개척해 왔다. 그래서 지금 우리는 이곳에 있다. 동물의 사회성과는 달리 인간의 사회성은 문화에 의해 도덕지침과 법률로 진화한 장기 계약을 형성하는 유전적 성향에 기초해 있다. 계약형성 규칙들은 인류에게 위로부터 그냥 주어진 것은 아니었으며 두뇌 구조 안에서 무작위적으로 발생한 것도 아니었다. 그 규칙들은 수십억 년에 걸쳐 진화한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생존과 미래 세대에 발현될 기회를 규정하는 유전자에 담겨있기 때문이다. (p481-507)

2. 당신의 인생을 이모작하라

2020년 대한민국 사회는 65세 이상 노령 인구가 15세 미만 유년 인구보다 많아지는 가분수 사회가 된다. 그때가 되면 젊은이 4명이 노인 1명을 부양해야 한다. 이름하여 ‘고령 사회’ 또는 ‘초고령 사회’가 되는 것이다. 일찍이 동양에서는 한(漢)나라 이래, 서양에서는 로마제국이래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무서운 신세계(Brave New World)가 바야흐로 펼쳐질 즈음이다. 이런 끔찍한 변화가 이 한반도에서, 지구상 그 어느 곳에서보다 심각하게 벌어질 것이다. 우리나라는 2000년에 이미 고령화 사회에 도달했으며, 2018년에는 고령 사회에 속할 것이다. 전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늙어 가는 나라가 바로 ‘다이내믹 코리아(Dynamic Korea)’, 대한민국이다. ‘역동적인 코리아’는커녕 ‘죽어 가는 코리아(Dying Korea)’나 ‘풀 죽은 코리아(Depressed Korea)’라고 해야 할 것 같다.

생물 중에서 번식기 후의 삶이 이렇게 긴 생물은 인간 밖에 없다. 대부분의 생물들이 번식기에 가장 화려하게 살다가 번식을 끝낸 후에는 죽는다. 그러나 인간의 경우, 번식기를 지나고서도 오랜 삶을 영위하기 때문에 자연적인 생태계의 구조와는 다른 시스템이 형성된다. 번식기를 지나고서도 오랜 기간을 살아가기 때문엔 세대간의 입장이 다를 수밖에 없고, 부양의 문제가 크게 다가온다. 기존의 시스템에서는 평균 수명도 짧고 노인인구 증가율이 높지 않았기에 젊은 세대가 연금 등의 제도를 통해 노인세대를 부양하는 것이 힘겹지 않았다. 그러나 인간의 수명이 80, 90, 이제 100까지도 바라보고 점차로 사회가 고령화되면서 젊은 세대에 의한 노인 세대의 부양이 어려워진다. 이러한 고령화는 지극히 생물학적인 문제이기 때문에 노화생물학 또는 진화생물학의 관점에서 왜 우리 인간은 번식을 멈추고도 이토록 오랜 세월 동안 살게 되었는지에 대한 연구는 물론, 번식을 하는 개체들과 그렇지 않은 개체들의 빈도 변화가 사회 구조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생태학자와 사회생물학자의 분석이 필요하다.

이처럼 심각한 고령화 사회 문제를 극복하기 위한 방안은 다음과 같다.
첫째, 고령화의 직접적인 원인을 낮은 출산율이 제공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무조건 출산율을 높이는 것만이 최선의 방책인지는 진지하게 고민해봐야 한다. 지구촌 전체를 생각하면 저출산은 사실 반가운 현상일 수 있다. 외국인들에게 문호를 개방하여 노동력을 확보하는 방안을 제일 먼저 검토하여야 한다.
둘째, 이 땅의 젊은이들로 하여금 일찍 결혼하여 자식을 낳아 기를 수 있도록 양육 환경을 획기적으로 개선해야 한다. 생색만 내는 수준이 아니라 대규모 국토개발사업 수준의 예산을 투자하여 지금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수준의 보육 시설과 교육 환경을 마련해야 한다.
셋째, 인생을 번식기와 번식후기의 두 시기로 나누고 번식기, 즉 제1인생에 보다 확실한 복지 혜택이 제공될 수 있도록 임금 체계나 기업 구조를 변혁해야 한다. 여러 가지 이유로 국가의 보호를 받아야 할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제2인생을 사는 사람들도 기본적으로 모두 직업을 갖고 일하며 살 수 있는 사회구조를 갖추어야 한다.
넷째, 국가와 사회가 설령 재정적으로 바람직한 고령화 대비책을 마련한다 하더라도 건강의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는 사실을 주목해야 한다. 고령 사회에 대한 준비가 완벽하게 마련된다 하더라도 ‘나의 건강’이 확보되지 않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 국가는 국민 전체의 건강을 위한 체계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하고 개인은 각자 자신은 물론 사회 전체의 행복을 위해 자신의 건강을 돌봐야 한다. 2020년 고령 사회 대한민국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적극적으로, 철저하게, 그리고 일찌감치 제2 인생을 준비해야만 한다. 또한 먼저 은퇴의 개념부터 우리 사회에서 완전히 추방해야 한다.”


[토론]

토론주제

  • 생명과학인 생물학과 다른 과학의 차이점
  • 생물학의 과제: ‘explaining brain’(설명하는 뇌) 분석
  • ‘fundamental’, ‘consilience’(統攝)와 ‘지식생태계’
  • ecological niche로서의 의생학 응용
  • 다가올 고령화의 시대(the age of aging)와 인생이모작

1. 생명과학인 생물학과 다른 과학의 차이점

최재천: 21세기를 생명과학(life science)의 시대라고 부른다. 그런데 생물학과 다른 자연과학과의 차이는 무엇인가? 가장 큰 구별점은 물리적 세계는 정량화(quantification)할 수 있는 세계인 반면 생명세계는 정성적인(qualities) 세계라는 점이다.

How biology differs from others? The physical world is a world of quantification…and of mass actions. By contrast, the world of life can be designated as a world of qualities. Individual differences, stored information, properties of the macromolecules, interactions, ecosystem, and many other aspects of living organisms are prevailingly qualitative in nature. (Ernst Mayr)

‘환원주의’(reductionism in biology)의 극복

20세기까지 생물학은 환원주의에 기대어 살아온 것이 사실이다. “유전학(heredity)은 핵산들의 작용 이외의 아무것도 아니다.” (Heredity is nothing but an action of bunch of nucleic acids!)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생물학에서 분자생물학(molecular biology)과 환원주의의 역할은 절대적이었다. 기존의 생물학은 모든 것이 유전자로 환원될 것이고 유전자 분석을 쌓아가다 보면 생명현상의 파악이 가능할 것이라는 전제하에서 ‘게놈’(genomes)에서부터 ‘생명현상 전체’(life)를 이해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막상 인간을 수백 년간 연구해도 원하는 답을 얻는 데 실패하게 되자 21세기에 접어들면서는 생명과학에 있어서도 생태학(ecology), neurobiology, systems biology, ‘emergence’, ‘complexity’등의 새로운 어휘와 사고체계가 요구되기 시작하였다. 즉 유전자(genes)로부터 지구생태계(biosphere)에 이르는 생명체들의 각 단계별 위계구조하에서 나타나는 ‘창발성’(emergent property)의 문제를 분석할 필요가 생겼고, 생물과 환경의 관계를 연구하는 ‘생태학’(ecology)이 부각되었다. brain, consciousness, mind간의 관계를 연구하는 인지과학, 진화심리학은 마음과 정신과정을 환원적으로 분석하는 데는 익숙하지만 그러나 이들이 연결되어 있는 회로망과 회로망들의 상호작용(interaction)을 밝히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유전자들과 단백질들간의 네트워크를 분석함으로써 ‘유전자 지형’(genescape)을 연구하는 ‘systems biology’가 등장했다.

2. 생물학의 과제: ‘explaining brain’(설명하는 뇌) 분석

최재천: 뇌의 진화(evolution of brain)는 1. survival brain(생존의 뇌) 2. feeling brain(감정의 뇌) 3. thinking brain(사고의 뇌)의 3단계로 나뉜다. 인간은 이 중에서도 사고의 뇌를 갖춘 대표적인 동물로 간주된다. 그렇다면 ‘thinking brain’(사고의 뇌)은 인간만의 전유물인가? 정도와 방법의 차이는 있을지 모르지만 뇌를 가진 동물이라면 누구나 나름대로 사고할 줄 아는 능력을 갖췄다. 심지어 플라나리아 편형동물도 기억하고 기억에 입각한 결정을 하는 것을 보면 이것이 다른 동물과의 진정한 차이라고 볼 수 없다. 다만 그들은 그들의 생각을 설명하고 구연할 줄 모른다.

그러나 우리 인간은 모든 형상을 독립적으로 경험하며 서로 다른 현상들의 귀납들을 한데 묶어 의미를 추출한다. 고도로 발달된 언어를 구사하면서 이야기하고 설명하는 것이 가능한 것은 인간이 유일하다. 언어(language)가 인간만의 전유물은 아니지만 ‘언어(language)를 가지고 설명할 수 있는 뇌’를 가진 것은 인간만의 특징이다. 신화를 창조할 수 있는 유일한 동물이 바로 우리 인간이다. 그러므로 인간과 다른 동물과의 가장 큰 차이점으로 ‘explaining brain’(설명하는 뇌)가 추가되어야 한다. 이로써 데카르트의 “Cogito, Ergo Sum”에 이어 “Enarro, Ergo Sum” (설명한다, 그러므로 존재한다)라는 명제가 새롭게 정립되어야 한다.

지금까지의 뇌과학은 ‘생각하는 뇌’를 들여다보기에 바빴다. 인간이 사고할 때 뇌의 어느 부위가 활성화되는지를 촬영하기에 급급했다. 이제부터는 ‘설명하는 뇌’(explaining brain)를 연구해야 한다. ‘설명하는 뇌’는 아마 ‘생각하는 뇌’와 ‘느끼는 뇌’가 보다 긴밀하게 협조하는 관계 속에 존재할지도 모른다. ‘설명하는 뇌’(explaining brain)를 분석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방법론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물리학자들이 만들어놓은 기존의 과학적 틀과 frame에 끼워 맞추려 하지 말고 ‘생물학’에 고유한 방법론을 찾아내야 한다. 즉 기존 framework로의 환원주의적인 수렴을 피하고 물리학에 의존하던 관성에서 벗어나 생물학 고유의 틀로 설명을 시작해 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손동현: ‘explaining brain’의 분석에 성공한다면 인간두뇌의 고유한 특성을 완전히 밝혀낼 수 있을 것인가? 아마도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설명할 수 있는 것’보다 ‘설명할 수 없는 것’이 어쩌면 더 많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인간의 뇌가 오늘날까지 진화되어 왔는데 그렇다면 진화된 뇌가 스스로를 설명할 수 있을까? 인간의 뇌로 인간의 뇌를 설명하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 아닐까?

윤순봉: explaining brain(설명하는 뇌)은 ‘지행용훈평(知行用訓評)’에서 ‘평(評)’과 가까운 개념으로 볼 수 있다. ‘대화하고 설명한다는 것’은 곧 창조를 뜻하는 말인데 이것이야말로 컴퓨터와 같은 기계들이 따라올 수 없는 인간 고유의 영역이다. 그렇다면 survival brain(생존의 뇌), feeling brain(감정의 뇌), thinking brain(사고의 뇌), explaining brain(설명하는 뇌) 중에서 explaining brain(설명하는 뇌)이 차지하는 비중은 얼마나 될 것인가? explaining brain은 아마도 뇌의 어떤 특정부위가 아니라 뇌의 각 영역을 넘나드는 network를 의미하는 개념일 것이다.

3. ‘fundamental’, ‘consilience’(統攝)와 ‘지식생태계’

(1) ‘emergent property’(창발성)와 ‘consilience’(통섭)

최재천: ‘창발성’(emergent property)은 ‘양(量)’에서 ‘질(質)’로 넘어가는 과정의 법칙을 의미하는데 그 동안 자연과학자들은 한 단계 더 높은 단계를 설명해야 할 때 ‘창발성’이라는 개념으로 손쉬운 도피(?)를 한 측면이 있다. ‘비선형’(non-linearity), ‘비대칭’(non-asymmetry)을 특징으로 하고 관찰자에 따라 달라지는(observer-dependent) ‘창발성’은 개념이 너무 추상적이라는 문제점이 있다. 21세기 자연과학은 ‘창발성’ 문제에 정면도전하여 문제를 해결해야만 한다. 이것은 결국 어느 방향으로 접근할 것인가의 ‘scale’의 문제(scale-dependent)가 될 것이다. 이 과정에서 생태학에서 말하는 ‘위계체계’를 이해하면 창발성 이해에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DNA 이중나선구조를 밝혔던 James Watson은 “ 21세기는 생물학과 심리학이 만날 것이다.”라고 했고 찰스 다윈은 1859년 ‘종의 기원’에서 “먼 훗날 심리학은 전혀 새로운 기초 위에 놓일 것이다.” 라고 말하면서 일찍이 ‘지식의 대통합’(consilience)을 예견했다. “진리(truth)의 행보(trajectory)는 우리가 애써 만들어 놓은 학문의 경계를 존중해 주지 않는다.” 이제는 우리가 진리의 행보를 따라 과감히 그리고 자유롭게 학문의 국경을 넘나들 때가 되었다. 진정한 세계화는 진리를 추적하는 학문의 영역들에서 먼저 일어나야 한다. 기본에 충실한(‘fundamental’) ‘multi-player’를 만드는 것이 바로 ‘consilience’의 개념이다. 장차 생물학은 ‘consilience’의 주요 ‘node’가 될 것이다.

손동현: ‘정반합’이라는 헤겔의 ‘변증법적 논리’라는 것도 형식론적으로 설명 안 되는 것을 잠시 유예시키는 것에 불과한 것이 아닐까? ‘하위차원’이 없이는 ‘상위차원’이 있을 수 없지만 ‘상위차원’이 ‘하위차원’으로 모두 환원되는 것은 아닌, 독특한 ‘창발’이라는 개념을 철학적, 과학적으로 설명해내는 작업은 반드시 필요하다. 그렇다면 ‘양’적인 것이 ‘질’적인 것으로 바뀌는 ‘창발’이라는 과정을 과학적으로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 것인가? 연속성에 기반한 선형적인(linear) 방법으로 ‘창발’현상을 ‘비창발적’으로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2) 지식생태계 창출 방안

최재천: 지식생태계란 지식이 활발하게 순환되고 높은 생산력을 가진 생태계(an ecosystem with high production and active circulation of knowledge)를 의미한다. 지식생태계 창출을 위해서는 ‘inter-disciplinary’(학제적) 연구를 해야 한다. 이것은 단순한 ‘multi-disciplinary’(다학문적) 연구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이제는 진정 학문의 경계를 허물고 일관된 이론의 실로 모두를 묶는 ‘범학문적’(trans-disciplinary) 접근을 해야 할 때이다.

우리나라에서 개인적 지성의 한계를 극복하는 ‘brain storming’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분야의 두뇌집단인 씽크탱크가 모일 수 있도록 ‘society of fellows’(현대판 집현전) 형태의 지식생태계 창출이 필요하다. 생물학 분야에서도 지식생태계 창출을 위한 ‘기초 다지기’ 작업을 수행함에 있어 ‘크고’ ‘깊고’ ‘느린’ 생물학을 추구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미국과 유럽의 선진과학기술을 쫓아가기에만 급급하고 응용과학기술에만 집착하는 기존의 모습을 버려야 한다.

김병국: 지식생태계를 창출하려면 우선 이를 구성하는 개별 두뇌(brain)의 능력이 뛰어나야 한다. 이와 함께 이들을 효율적으로 연결시킴으로써 ‘양’에서 ‘질’로 전환되는 ‘창발’을 가능하게 만들 수 있는 인프라가 구축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것이 가능한 국가가 과연 얼마나 될 것인가? 한국에서 이것이 가능할 것인가? 지식생태계의 필요성에는 동감하지만 그러나 한국의 현실은 비관적인 느낌을 준다. 새로운 시대에는 지금까지와 다른 새로운 지식을 창출하기 위한 제도와 토대(infra)가 마련되어야 한다. 문제는 이것을 누가, 어떻게 할 것이냐에 달려 있다. 한국이 새 시대의 선두주자가 되려면 지식생태계 창출을 위한 infra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에 대한 연구가 선행되어야 한다.

윤순봉: 지식 클러스터(cluster)가 어떻게 형성되는가?

디지털 세상은 ‘node → link → network → space’라는 stage로 진화했지만 현재의 가상공간은 주로 형식지만 소화하는데 그치고 있다. 집단지성(collective intelligence)에서는 ‘지적 자극’과 ‘지적 충돌’을 통해 창발(emergence)이 생기면서 상전이(相轉移, phase transition)가 일어나므로 암묵지가 더 큰 위력을 발휘한다. 이는 지식생태계 창출이 시급하다는 의미다. 미래세상의 진정한 가치는 ‘디지털’이 아닌 ‘아날로그’에 있을지도 모른다. 급속하게 발달하고 있는 디지털 기술을 몸체(container)로 하는 동시에 그 내용물(contents)에서는 아날로그적 감성을 담는 ‘아날로그형 디지털’이 더욱 각광을 받을 수 있다. 한민족은 유목민의 후손들로서 미래세상의 새로운 변화에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는 장점을 갖고 있다. 유목민의 특성인 ‘평등주의 사상’ 역시 진취적인 자세와 도전정신의 측면에서 앞으로 장점으로 작용하게 될 것이다.

한국에 적합한 지식생태계 모형은 무엇일까?

‘top-down’ 방식은 위에서 아래로의 일사분란한 실행체계를 가지므로 비용효율적인(cost-effective) 장점이 있는 반면 아이디어가 부족하다는 단점이 있다. 한편 ‘bottom-up’ 방식은 아이디어 개발에는 유리한 반면 많은 낭비가 생길 수 있다는 단점이 있다. 미국은 막대한 지적, 경제적 자원을 갖고 있기 때문에 비용 부담이 큰 bottom-up 방식을 통해서 ‘자기조직화’를 통한 ‘창발’이 활발하게 이루어지는 ‘지식생태계’ 창출에 성공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은 bottom-up과 top-down의 장점을 모두 누릴 수 있는 middle-up & down 방식을 택해야 한다. 이는 top에서 대략의 큰 틀을 짜고 방향을 정하면 middle에서 다양한 아이디어를 내고 구체안을 수립한 후 bottom에서의 연구개발을 실행에 옮기는 방식이다. middle-up & down 방식은 bottom-up 방식보다는 비용효율적이고 top-down 방식보다는 아이디어 창출에 유리한 장점을 갖고 있다. 물론 이 과정에서 top의 직관도 중요하다. 현재 ‘지적 집합체’의 최고 아이콘인 미국 ‘실리콘밸리’는 middle-up & down 방식을 통해 거대지식 생태계 창출에 성공하고 있다.

4. ‘ecological niche’로서의 ‘의생학’ 응용

최재천: 개미들은 지도자가 없이도 ‘자기조직화’현상을 보인다. 일개미들의 독립적인 뇌가 합해져서 ‘global brain’, ‘social brain’이 결정되는 것이 아닐까? 인간의 뇌와 자연생태계(eco-structure)는 복잡하기 그지 없다. 이처럼 복잡한 자연계, 생태계의 논리(logic)를 배우고(ecological niche) 자연에서 영감을 얻어 (‘bio–inspired’) 이를 인간사회에 응용하려는 학문이 ‘의생학’(擬生學, ecologic & biomimicry)이다. 자연은 수백 만년의 진화기간 동안 테스트를 거친 것이므로(tested by evolutionary time) 그 자체로 ‘winning strategies’라는 것이 ‘의생학’의 논거이다.

5. 다가올 고령화의 시대(the age of aging)와 인생이모작

최재천: 2020년 대한민국은 인생 80(90) 시대가 시작된다. 인구 4900만을 정점으로 인구가 감소하기 시작하면서 65세 이상 노인들이 15세 미만 어린이들보다 많아질 것이다. 급격한 고령화 사회로의 전환은 오래 산다는 것이 더 이상 축복이 아닌 천재지변 수준의 엄청난 사회적 격변을 초래할 것이다. 2002년 ‘Dynamic Korea’ 에서 2020년 ‘Dying Korea’로의 전환을 예기하는 ‘고령화’는 인간 개체군 구조의 변화를 의미하는 새로운 진화형태이다.

자연계를 통틀어 번식을 멈추고도 10년 이상을 버티는 종족은 인간뿐이다. 어쩌면 바로 이것 때문에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 되었을 수도 있다. 나이가 들어 자식 낳기를 멈춘 인간이 다음 세대를 길러주기 때문에 여기서 생긴 시간적 여유를 문명발달에 쓸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고령화가 문명의 발달을 가능하게 한 것인가?

현재 우리나라는 홍콩을 제외하면 출산율 1.08%로 최저출산율을 보이고 있으며 OECD예측에 의하면 2050년경에는 세계에서 가장 노인국이 될 것이다. 고령화 사회를 대비한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져야 하며 제 2인생을 계획할 수 있는 사회적 환경이 조성되어야 한다. 2020년이 되면 유권자 중 고령자의 비중이 커질 것이다. 보수, 진보를 떠나 정치가 전반적으로 고령화 할 수밖에 없을 것이고 이는 정치적으로도 엄청난 변화가 일어날 것임을 암시하는 것이다.

인생을 ‘번식기’(reproductive period)를 의미하는 ‘제1인생’과 ‘번식후기’(post-reproductive period)를 뜻하는 제2인생으로 나누는 경우 제2인생을 위한 이모작의 ‘질(質)’이 중요할 것이다. 한국인들은 ‘인생 이모작’에 있어서도 삶의 ‘질’(quality)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제2인생을 준비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도록 교육과 학문의 재분배가 있어야 한다.

김병국: 고령화 사회가 될수록 미래를 지배하는 국가는 노인들이 이모작을 제대로 잘하는 나라가 될 것이고 이들 국가가 국가경쟁력에서도 유리한 지위를 차지할 것이다. 그렇다면 고령화 사회로의 급속한 진입이라는 위기요인을 새로운 ‘기회’로 활용하는 방안을 모색해야 하지 않을까?

윤순봉: 현실 세상에서는 소위 제도권이 ‘지성’을 선택하고 ‘지식’을 통제한다. 하지만 미래 세상에서는 ‘가상공간’에서 진화논리가 작동하면서 지식생태계가 최고의 지성을 택할 것이다. 더 이상 정치권이나 제도권이 지식을 통제하는 것이 불가능해지면서 권력체제 자체가 큰 변혁을 겪을 것이다.

세계화(globalization)의 큰 이슈 중 하나가 사람, 문화, 종교의 이동이다. 저출산 문제도 전지구적인 차원의 합의를 바탕으로 인구의 횡적인 이동이 원활히 이루어지면 극복할 수 있겠지만 그리 쉬운 문제는 아니다. 인도는 아직까지 후진국이지만 막대한 수의 젊은 국민들을 감안한다면, 이미 고령화 사회에 진입하고 있는 중국보다 미래에는 더욱 막강한 국가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또한 ‘국가’가 막강해지는 것이 중요한가 아니면 ‘개인의 행복’이 더 중요한가에 관한 가치관도 중요한 문제다. 머지않아 다가올 고령화 사회에서는 나이든 사람들의 지혜를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 현재 인류가 갖고 있는 가장 큰 자산인 동시에 활용도가 가장 낮은 것이 바로 지혜(wisdom)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