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신. “[editor’s note] 투자가 아쉬운 한국이라는 국가 브랜드”. «월간 디자인». 2005.5.1.
“광고 없이 사업을 하는 것은 깜깜한 곳에서 예쁜 아가씨에게 윙크를 하는 것과 같다. 당신은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겠지만 상대는 당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모른다.”
어떤 모임에 참석했는데, 갑자기 칠레에 대해 얼마나 아는지 설문조사를 했습니다. 문제를 풀수록 깨달은 것은 ‘칠레에 대해 정말 아는 게 없구나’라는 사실이었습니다. 칠레 하면 떠오르는 것은 대략 세 가지인데, 저렴하면서 맛있는 와인, 최근 우리나라와 자유무역협정을 맺어 그들의 값싼 농산물을 먹을 수 있게 되었다는 점, 그리고 남아메리카 대륙 태평양 쪽에 국토가 길게 뻗어 있다는 점 정도입니다. 칠레의 역사는 물론, 그들의 건축, 미술, 음악, 음식, 스포츠, 유명 인사, 아무것도 아는 게 없었습니다. 칠레든 페루든 관심 없는 외국에 대해 특별히 알고 싶은 생각도 없었고 그냥 무심하게 지내왔는데, 설문조사에 응하다 보니 새삼 저의 무식함을 깨달았지요.
“그런데 과연 외국인에게 한국에 대해 어느 정도 아는지 설문조사를 하면 과연 그들은 우리를 얼마나 알까요? 그들의 한국에 대한 지식은 제가 갖고 있는 칠레에 대한 지식 정도 아닐까요. 어떤 TV 프로에서 본 건데, 독일 학생들에게 한국에 대해 아느냐고 묻자, 아는 게 거의 없고 2002 월드컵 축구의 열기를 겨우 기억하더군요. 물론 지식인은 조금 다르겠지요. 하지만 그들은 극소수입니다. 동아시아 사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최근 한류열풍으로 한국의 연예인 몇몇은 알고 있겠지요. 그러나 태국의 초등학교 지리 교과서에는 독도는 고사하고 제주도조차 한국 땅으로 표기되어 있지 않았고, 지리 선생조차 그 사실을 모르고 있다는 방송을 보고 충격을 받았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스스로 유구한 역사를 갖고 있다고 자부합니다. 찬란한 문화유산, 전 국토가 문화재, 맛있고 건강에 좋은 음식문화, 삼천리금수강산, 고유의 문자 등 자랑거리로 가득 차 있다고 믿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우리들만 알아야 하는 무슨 비밀인지, 외국인들은 그 사실을 거의 모르고 있다는 슬픈 현실을 마주하게 됩니다. 정말로 한국은 속상할 정도로 ‘은자隱者의 나라’입니다. 각 분야의 역사를 다룬 전문서적들을 보면 이 사실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최근에 1천 페이지가 넘는 방대한 분량의 <옥스퍼드 세계 영화사>가 출간되었습니다.
“저는 이 책을 사서 맨 먼저 한국 영화에 대한 그들의 평가가 어떤지 보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보다 한 수 아래일 것 같은 인도네시아, 대만, 뉴질랜드 영화는 있어도 한국 영화는 소개되지 않았습니다. 6천 년 인류 주거의 역사를 다루었다는 <집>(저자 노버트 쉐나우어)이라는 책에도 중국과 일본의 집은 각각 한 챕터나 할애되지만, 한국 집은 한군데도 언급이 없습니다. 이 사실이 안타까웠는지 한국 출판사가 원서에는 없는 한국 편을 편집해 넣었더군요. 서양의 미술사 책을 보아도 한국 미술은 늘 중국과 일본의 그늘에 가려 아시아의 기타 국가편에 부분적으로 소개되는 정도입니다.
한국인들은 우리 문화유산이 그들보다 뒤떨어진다는 생각은 결코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세계는 한국의 문화유산을 모릅니다. 일본이 독도를 제아무리 자기네 땅이라고 우겨도 독도는 우리 땅이 분명하지만, 다른 나라도 그렇게 생각할지는 모를 일입니다. 다른 나라 생각 따위는 듣고 싶지 않다. 독도는 우리 땅이고 우리 문화는 우수하고 우리 자연은 어느 나라보다 아름답다. 이렇게 주장한다면 자존심은 세워질지 모르지만, 실질적인 이익이 생기는 것은 아닙니다. 독도에 대한 일본의 탐욕을 확실하게 근절하는 최고의 방법은 한국 내에서 벌이는 시위와 논쟁이 아니라 세계 지리학계를 대상으로 한 투자일 것입니다. 더 근본적인 일은 출판, 전시, 광고, 방송 등 해외의 미디어로 한국의 역사와 문화를 널리 알리는 일체의 활동일 것입니다.
<페르소나 마케팅>이라는 책에서 이런 구절을 읽었습니다. “광고 없이 사업을 하는 것은 깜깜한 곳에서 예쁜 아가씨에게 윙크를 하는 것과 같다. 당신은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겠지만 상대는 당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모른다.” 혹시 한국은 세계를 상대로 이렇게 사업을 하고 있는 건 아닌지요. 한국 사람들은 옛날부터 나서기를 싫어하고 겸손한 것을 최고의 미덕으로 알고 살아왔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시대가 변해서 자신을 표현하지 않으면 아무도 그에게 관심 갖지 않는 세상입니다. 이제는 기업은 물론, 개인과 국가도 브랜드 개념이 필요합니다.
우리끼리 정의하고 알아주는 한국 브랜드 이미지 말고 남들이 알아주는 브랜드 말입니다. 국가의 이미지를 만들고, 그것을 해외에 알리는 일에 정말 큰 예산을 책정해야 할 것입니다. <브랜드 갭>의 저자 마티 뉴마이어는 이렇게 말합니다. “이 세상에 단조롭고 흥미 없는 제품은 없다. 단지 단조로운 브랜드만이 있을 뿐이다.” 이 구절을 잃으니 이런 생각이 떠오릅니다. ‘한국의 역사와 문화, 자연은 정말 재미 있고 훌륭하다. 그러나 한국의 브랜드 이미지는 단조롭고 재미 없다. 아니 대다수 외국인들의 머릿속에는 아예 한국의 어떤 이미지조차 존재하지 않는다.’
이 글의 내용을 서재원씨가 재미 삼아 ppt로 만들었다. 디자인이 참 멋지고 설득력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