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찾은 황해평원 연대기: 한국 구석기 역사의 극적인 반전
Executive Summary
패러다임의 재편: 수동구 중심 모델의 수정
과거 동아시아 후기 구석기 역사는 중국의 수동구(水洞溝) 유적(34,000~25,000년 전)에서 시작된 선진 기술이 한반도로 전파되었다는 단선적·수직적 모델에 지배되었다. 그러나 대전 용호동(龍湖洞), 포천 화대리(禾垈里) 등 한반도 유적들이 수동구보다 더 오래되었다는 ‘시간의 역설’이 제기되었고(38,500년 전), 결정적으로 2014년 수동구의 실제 연대가 기존에 알려진 3만 년 전이 아닌 약 41,000년 전으로 밝혀지면서 ‘스승(중국)-제자(한국)’라는 기존의 위계적 패러다임은 수동구의 재연대와 후속 분석으로 강하게 재해석되고 있다.
대반전의 증거: ‘한국 수양개(하진리) 유적’의 발견
기존 질서의 붕괴를 넘어 새로운 역사의 중심을 제시한 것은 충북 단양의 수양개 6지구(하진리 유적)였다. 이곳(수양개 6지구, 하진리)의 대규모 석기군과 일련의 ^14C 연대는 대체로 약 43,000~40,000년 전이라는 구간을 지지한다. 다만 일부 연대값은 이상치(outlier)로 배제되었으며, 층위·시료 특성에 따른 편차가 보고되어 ‘명확한 단일 연대’로 단정하지는 않는다. (Kim et al., 2021) 이는 수동구와 대등하거나 오히려 앞서는 시기에, 한반도에 이미 고도로 발달한 석기 기술 복합체(technological complex)가 존재했음을 입증하는 강력한 증거다. 이는 한국 구석기 역사가 중국의 영향 아래 종속된 것이 아니라, 독자적인 중심을 가졌음을 선언한 ‘수양개 신화’의 탄생이었다.
중국의 추가 제안과 이어진 방법론 검증·반론
2024년, 중국 학계는 시위(峙峪) 유적이 약 45,000년 전의 것이라 주장하며 다시 역사의 주도권을 되찾으려 시도했다. 그러나 이 주장은 Matters Arising에서는 “약 1만5천 점 중 750점(≈5%)만을 분석한 표본 대표성, 층위 혼합 가능성, 기술 정의 적용” 등을 방법론적 쟁점으로 제기했고, 저자진은 Reply에서 이에 반론을 제시했다. 현재 합의가 형성되기 전의 재검증 국면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현재 시위 유적의 연대와 해석은 ‘격렬한 재검증 단계’에 있으며, 확정된 사실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새로운 역사의 무대: ‘황해 평원’의 부상
단선적 전파 모델이 폐기된 자리에 떠오른 새로운 해답은 빙하기 시절 육지였던 ‘황해 평원(黃海平原)’이다. 이곳은 중국 대륙, 한반도, 일본 열도를 잇는 거대한 ‘문명의 고속도로이자 허브’였다. 수동구, 수양개 등 동아시아 각지의 구석기인들은 이 평원을 무대로 기술과 문화를 단방향이 아닌 다방향으로 교류했다. 이는 약 4만 년 전 동아시아 전역에서 고도의 기술이 동시다발적으로 출현한 이유를 설명하는 가장 합리적인 모델이다.
요컨대, 한국의 후기 구석기 역사는 ‘수동구 문화 전파의 결과’라는 수동적 시각에서 벗어나, ‘황해 평원’이라는 광역 네트워크 속에서 독자적 중심을 가지며 상호작용한 능동적 주체로 재평가되어야 한다. 이는 한반도와 중국의 구석기 연구 관계를 대등한 시각에서 재정립하는 근본적인 패러다임의 전환을 의미한다.
1. 스승의 그림자: 수동구 중심의 세계관
오랜 시간, 동아시아 구석기 역사의 해석 모델은 단 하나의 유적을 중심으로 구축되었다. 바로 중국(中國) 북부의 수동구(水洞溝) 유적이다.
출처: Morgan et al.(2014)
그곳에서 발견된 정교한 돌날(blade)들은 동아시아 후기 구석기 시대의 시작을 알리는 절대적인 기준점, 즉 표지 유적(type site)으로 간주되었다(Bae, Bae and Kim, 2013).
출처: Yi, M., et al. (2021)
이 시기를 학술적으로는 중기 구석기(Middle Paleolithic)와 후기 구석기(Upper Paleolithic)의 속성을 모두 지닌 ‘초기 상부 구석기(Initial Upper Paleolithic, IUP)’라 칭하며, 준비된 몸돌에서 격지를 떼어내는 르발루아(Levallois) 기법을 활용하여 규격화된 돌날을 제작하는 ‘렙토-르발루아지앙(lepto-Levalloisian)’ 석기 기술의 등장을 그 특징으로 한다(Morgan et al., 2014). 학계의 질서는 명확했다. 선진 기술을 가진 ‘스승’ 수동구(水洞溝)가 있고, 그 기술을 전수받은 ‘제자’들이 주변에 있다는 단선적 전파 모델(unidirectional dispersal model)이 지배적이었다. 이러한 구도가 가능했던 것은, Morgan 등의 연구 이전까지 수동구(水洞溝)의 시작 연대가 일반적으로 약 34,000년 전, 혹은 더욱 보수적으로는 약 25,000년 전으로 인식되었기 때문이다(Morgan et al., 2014). 이 구도 속에서 한반도(韓半島)는 기술 전파 경로상의 한 지점으로 여겨졌고, 모든 역사는 수동구(水洞溝)에서 시작되는 듯했다.
출처: Morgan et al.(2014)
2. 시간의 역설 : 스승보다 나이 많은 제자
하지만 이 철옹성 같던 패러다임에 균열을 내는 고고학적 증거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바로 한반도(韓半島)의 후기 구석기 유적들이었다.
출처: Bae and Bae (2012)
Bae and Bae (2012)의 연구에 따르면, 대전 용호동(龍湖洞) 유적 3문화층에서 발견된 슴베찌르개와 함께 나온 숯 시료는 AMS 측정 결과 약 38,500년 전(38,500 ± 1,000 BP)이라는 연대를 보였다.
대전 노은동과 용호동의 좀돌날몸돌과 슴베찌르개
슴베찌르개, 대전 용산동 유적, 구석기시대, 길이 8.0cm, 국립공주박물관 소장
포천 화대리(禾垡里) 유적의 가장 아래 문화층 역시 31,200 ± 900 BP의 연대를 보여주었다. 최근 가속질량분석기(AMS)를 활용한 정밀 연대 측정이 활발해지면서 기존의 연대 편년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이 제기되었다. 다수의 연구는 한국의 여러 후기 구석기 유적이 수동구(水洞溝) 유적보다 수천 년 앞서거나 최소한 동시대에 존재했을 가능성을 제시했다(Bae, Bae and Kim, 2013; Seong, 2011). 고고학자 크리스토퍼 배(Christopher J. Bae)와 성춘택(Seong Chuntaek) 등은 한반도(韓半島) 곳곳에서 축적된 새로운 연대 자료들을 통해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했다.
“기존 통설상 수동구(水洞溝)의 연대는 기껏해야 3만 년 전인데, 한반도(韓半島)에서 발견되는 후기 구석기 유적의 연대는 왜 4만 년을 상회하는가?”
출처: Bae and Bae (2012)
시간의 역설이었다. 제자가 스승보다 나이가 많은 기이한 상황. 이 미스터리를 풀기 위해 기존의 틀을 벗어난 가설들이 등장했다. Bae and Bae (2012)는 당시 제기된 주요 모델들을 세 가지로 정리했다. 성춘택은 화대리(Hwadaeri)나 도산(Dosan) 유적처럼, 오래된 전기 구석기 전통의 석기군 위에서 소량의 돌날이 점진적으로 나타나는 양상이 급격한 외부 기술 유입보다는 내부적인 변화 과정을 더 잘 보여준다고 보며 ‘느린 자생적 진화 모델(slow in situ evolutionary model)’을 제시했다. 그러나 이 모델은 동아시아에 르발루아 기법으로 대표되는 뚜렷한 ‘중기 구석기’가 부재하여 기술적 선후 관계를 설명하기 어렵다는 학술적 딜레마를 안고 있었다(Bae and Bae, 2012; Morgan et al., 2014). 한편 크리스토퍼 배(Christopher J. Bae)는 한국 후기 구석기 시대에 북방계 돌날 기술과 전통적인 남방계 몸돌-격지 기술이 공존하는 현상을 근거로, 돌날 기술이 수동구(水洞溝)가 아닌 시베리아(西伯利亞) 같은 북방에서 직접 유입되었을 가능성을 제기하며 ‘중국(中國)을 거치지 않는 또 다른 경로’를 상정하는 ‘남북 [이주] 모델(north-south [migration] model)’을 제시했다. 한반도(韓半島)는 더 이상 수동구(水洞溝)의 그림자에 가려진 존재가 아니었지만, 거대한 미스터리는 여전히 풀리지 않은 채였다.
출처: Bae and Bae (2012)
3. 심판의 날: 수동구, 진짜 나이를 찾다
2014년, 모든 것을 바꿀 한 편의 논문이 발표된다. 고고학자 크리스토퍼 모건(Christopher Morgan)과 그의 팀은 미스터리의 심장부인 수동구(水洞溝)로 향했다.
출처: Morgan et al.(2014)
그들은 누구도 의심하지 않았던 기존의 연대 편년을 재검토하기로 한다. 그들은 수동구(水洞溝) 1지점의 주요 문화층(8b층 / LCL A)에서 교란되지 않은 ‘제자리(in situ)’ 상태의 숯 시료(UGAMS-9682)를 신중하게 채취했다. 이 시료는 과거 연대 측정의 오류 원인이었던 뼈나 탄산염 단괴와 달리 신뢰도가 매우 높았다(Morgan et al., 2014). 최첨단 AMS 연대 측정 기술과 가장 신뢰도 높은 ‘숯’ 시료를 손에 든 채, 그들은 진실의 문을 두드렸다.
결과는 놀라웠다. 수동구(水洞溝)는 수동구 L1의 핵심 문화층은 약 41,000년 전으로 재연대되었고, L2의 베이즈 연대모형은 약 43,000~39,000년 전의 범위를 지지한다. 이 발견은 단독적인 주장이 아니었다. 2020년, Peng 등이 이끄는 다른 연구팀은 수동구(水洞溝) 2지점에서 새로운 시료들을 채취하고 베이즈 통계 모델(Bayesian modeling)을 적용하여, 초기 상부 구석기 문화층의 시작을 43,000-39,000년 전으로 추정함으로써 Morgan의 발견을 강력하게 뒷받침했다(Peng et al., 2020). 이는 서울대학교(Seoul National University) AMS 실험실 등에서 분석된 한국의 여러 후기 구석기 유적들과 동시대이거나 오히려 더 늦을 수도 있음을 의미했다.Bae, Bae and Kim(2013)의 연구에 따르면, 호평동(Hopyeongdong), 화대리(Hwadaeri) 등의 유적들은 수동구(水洞溝)의 가장 이른 연대와 중첩된다.
일부 국내 유적(예: 하화계리, 월평)에서 약 40,000~46,000년 전의 연대가 보고되었으나, 측정·시료·층위 요인에 따른 편차와 검토가 병행되고 있어, 정확한 수치 비교는 신중해야 한다.
출처: Morgan et al.(2014)
출처: Morgan et al.(2014)
스승과 제자라는 수직적 관계는 한순간에 무너져 내렸다. 그들은 처음부터 대등한 위치에서 함께 시대를 열었던 동료이자 라이벌이었던 것이다.
4. 대반전: 수양개 신화와 시간의 역습
수동구(水洞溝)의 연대가 4만 1천년 전으로 밝혀진 것은 거대한 서막에 불과했다 (Morgan et al., 2014). 새로운 국면의 서사는 한반도의 심장부, 충북 단양의 남한강변에 위치한 수양개 6지구(하진리 유적)에서 시작되었다 (Kim, J. Y., et al., 2023). 2013년부터 2015년까지 이루어진 발굴을 통해, 이곳의 지층은 동아시아 구석기 역사를 다시 쓸 결정적인 증거들을 품고 있음이 드러났다 (Seong and Chong, 2025).
출처: Seong and Chong (2025). 지도의 번호4번이 수양개(하진리 유적).
출처: Seong and Chong (2025).
출처: Seong and Chong (2025).
핵심은 가장 아래에 위치한 두 개의 문화층, 즉 4문화층(Cultural Layer 4)과 3문화층(Cultural Layer 3)이었다.
4문화층: 모든 것의 시작
붉은빛이 도는 고토양층(reddish-brown paleosol)에서 발견된 4문화층은 한국 후기 구석기 시대 초기(EUP)의 기원을 보여주는 가장 강력한 증거였다 (Kim, J. Y., et al., 2023). 이곳에서 나온 숯 시료에 대한 정밀한 AMS 연대 측정 결과, 그 연대는 약 43,000년에서 41,000년 전(cal BP)에 집중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Seong and Chong, 2025). 이곳에서는 무려 10,883점의 석기가 쏟아져 나왔는데, 그중에는 체계적으로 제작된 돌날(blade) 2,253점과 슴베찌르개(tanged point) 65점이 포함되어 있었다 (Seong and Chong, 2025). 이는 단순한 유물 몇 점이 아니라, 고도로 발달한 석기 제작 기술을 가진 집단이 당시에 존재했음을 증명하는 하나의 완성된 ‘기술 복합체(technological complex)’였다.
3문화층: 기술의 연속과 발전
4문화층 바로 위, 노란빛이 도는 고토양층(yellowish-brown paleosol)에서 발견된 3문화층은 약 40,000년 전(cal BP)으로 편년되었다 (Kim, J. Y., et al., 2023; Seong and Chong, 2025). 이곳에서는 7,470점의 석기와 함께 돌날 589점, 슴베찌르개 11점이 확인되어, 4문화층에서 시작된 선진적인 석기 기술이 단절되지 않고 지속적으로 발전했음을 보여주었다.
이처럼 수양개 유적은 ‘연대’뿐만 아니라, 양질의 규질 셰일(siliceous shale)을 선택적으로 사용하여 정교한 석기를 대량으로 생산했다는 ‘기술’의 증거까지 명확하게 제시했다. 풍부하고 명확한 유물군과 신뢰도 높은 연대 측정값의 결합은 한국의 후기 구석기 시대가 약 43,000년 전에 시작되었다는 사실을 확고히 증명했다. 이는 수동구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것을 넘어, 동아시아 구석기 역사의 새로운 중심으로 떠오르기에 충분한, 그야말로 ‘수양개 신화’의 탄생이었다.
출처: Seong and Chong (2025).
5. 중국의 반격: 4만 5천 년의 주장
역사의 주도권을 빼앗긴 듯했던 중국의 반격은 예상치 못한 곳에서 시작되었다. 이미 2024년, Yang 등이 북중국의 시위(Shiyu; 峙峪) 유적이 약 45,000년 전의 초기 후기 구석기(IUP) 문화라고 발표하며 학계를 뒤흔들었다 (Yang et al., 2024). 이는 한반도에서 가장 이른 유적들과 맞먹거나 오히려 앞설 수 있는 연대로, 동아시아 구석기사의 주도권을 되찾으려는 시도로 해석되었다. 역전에 역전이 거듭되는 국면이었다.

Yang, S.-X. et al. (2024) Fig. 1: The distribution of hominin fossils and key archaeological sites in northern Eurasia in the middle and later Late Pleistocene.
Yang, S.-X. et al. (2024) Extended Data Fig. 2 Location of Shiyu in the Nihewan Basin.

Yang, S.-X. et al. (2024) Fig. 2: Shiyu site overview, stratigraphy and age determinations.

Yang, S.-X. et al. (2024) Fig. 4: Shiyu IUP lithic artefacts, graphite disc and bone tool.

Yang, S.-X. et al. (2024) Fig. 3: Bayesian age model for luminescence and radiocarbon ages.
재반박: 과학의 이름으로 드러난 허구의 그림자
그러나 영광은 짧았다. 시위 유적에 대한 주장은 곧이어 과학 연구의 가장 기본 원칙을 위배했다는 치명적인 비판에 직면하며 또 한 번의 중요한 전환점을 맞이했다. 이는 단순한 ‘학술 논쟁’ 수준을 넘어, 연구의 진실성 자체를 의심하게 만드는 수준이었다. 이 논쟁은 Nature Ecology & Evolution에 비판(Matters Arising)과 재반론이 게재되면서 공식화되었으며, 주로 방법론적 신뢰성, 기술적 해석, 그리고 이론적 프레임워크에 집중되어 있다(Carmignani et al., 2025; Yang et al., 2025).
시위 유적을 둘러싼 논쟁은 크게 세 가지 핵심 쟁점으로 요약될 수 있다.
1) 방법론적 무결성: 표본 대표성과 층위 문제
가장 치명적인 비판은 연구의 표본 대표성(Sample Representativeness)에 집중된다. 1963년 발굴 당시 수습된 15,000점 이상의 유물 중 단 750점(약 5%)만이 분석에 사용되었다. 비판자들은 이 소량의 표본이 전체 유물 조합(Assemblage)을 대표한다고 볼 수 없으며, 연구팀이 IUP 가설을 지지하는 유물만을 선별적으로 분석했을 가능성(Selection Bias)을 제기한다(Carmignani et al., 2025).

Yang, S.-X. et al. (2024) Extended Data Fig. 5 Tool types and lithic byproducts from Shiyu.
또한, 유물이 출토된 주요 문화층(Layer 2)은 두께가 약 1m에 달한다. 비판자들은 이 두꺼운 층이 단일 시점의 점유를 반영하기보다 장기간에 걸쳐 여러 시기의 유물이 혼합된 팔림프세스트(Palimpsest)일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한다. 따라서 르발루아 석기, 돌날, 장신구, 골기 등이 동시대에 공존했다는 증거가 불충분하다는 것이다(Carmignani et al., 2025).
2) 기술적 해석의 타당성: IUP 기준 충족 여부
IUP를 정의하는 핵심 기술 요소인 ‘체계적인 돌날 생산(Systematic Blade Production)’과 ‘르발루아(Levallois) 기법’의 존재 여부에 대해 양측의 해석은 극명하게 갈린다.
Yang et al.(2024; 2025)은 통계 분석(ANOVA)을 근거로 의도적인 돌날 제작과 전형적인 르발루아 첨두기의 존재를 주장했다. 그러나 Carmignani et al.(2025)은 돌날의 비율이 극히 미미하며(2.4%), 제시된 몸돌이나 돌날이 IUP의 전형적인 제작 공정(예: 체계적인 양방향 또는 단방향 박리)을 보여주지 않는다고 반박한다. 또한 르발루아 첨두기로 분류된 석기들 역시 해당 기법의 명확한 기술적 특징을 결여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3) 이론적 프레임워크: 보편적 기준 대 지역적 다양성
방법론적, 기술적 논쟁의 기저에는 IUP를 정의하는 이론적 시각차가 존재한다. Yang 등(2025)은 비판자들의 IUP 정의가 지나치게 협소하며 “유럽 중심적(Eurocentric)”이라고 비판했다. 또한, 이 정의가 동아시아의 지역적 다양성을 무시한다고 반박했다. 이들은 유라시아 확산 과정에서 기술의 지역적 변이와 혼합(Creolization)이 발생할 수 있으며, 시위 유적의 특징 조합은 넓은 의미의 IUP 스펙트럼에 속한다고 주장한다.
반면 비판자들은 IUP가 명확한 기술적 정의를 가진 개념이며, 학술적 엄밀성을 위해 최소한의 보편적 기준을 충족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한다(Carmignani et al., 2025). 이 논쟁은 IUP의 정의를 동아시아 맥락에서 어떻게 적용할 것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제기한다(Kuhn and Zwyns, 2014; Zwyns, 2021).
비교 분석 및 지역적 맥락
시위 유적 논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동아시아 및 중앙아시아의 주요 IUP/EUP 유적과의 비교가 필수적이다.
표 1. 동북아시아 주요 IUP/EUP 유적 연대 및 특징 비교 (보정연대 cal BP 기준)
| 권역/유적 | 문화 귀속 | 핵심 연대(보정) | 주요 특징 및 비고 |
| 산시 Shiyu (시위) | IUP 주장 (논쟁 중) | 약 45,000년 전 | 르발루아, 돌날, 장신구, 장거리 흑요석 이동 보고. 표본 대표성 및 기술 정의 논란 (Yang et al., 2024). |
| 몽골 Tolbor-16 | IUP (합의) | 약 45,600–42,500 | 체계적인 돌날 생산 기술. 북중국·알타이 연결고리 (Zwyns, 2021). |
| 알타이 Kara-Bom | IUP (합의) | 약 49,000–45,000 (IUP 초기) | 르발루아 첨두기 및 돌날 기술. IUP의 서→동 전개 핵심 (Rybin et al., 2023). |
| 북중국 Shuidonggou (수동구) L1 | IUP (합의) | 약 43,000–40,000 (개시) | 동북아 IUP의 대표 사례. 체계적인 돌날 기술 확립 (Morgan et al., 2014). |
| 한반도 (다수 유적) | EUP (초기 후기구석기) | 약 43,000–40,000 | 돌날 및 슴베찌르개 출현. 르발루아 요소 희박하여 IUP 명칭 적용 신중 (Seong and Chong, 2025). |
시위 유적의 연대(약 45,000년 전)는 몽골이나 알타이의 초기 IUP 연대와 유사하나, 기술적 구성과 유물 조합의 무결성 측면에서 합의된 기준 유적들과 차이를 보이며 논쟁의 대상이 되고 있다.
표 2. IUP 진단 요소별 시위 유적 충족 여부 (주장 vs. 비판)
| 진단 항목 | 저자 주장 (Yang et al., 2024; 2025) | 비판 요지 (Carmignani et al., 2025) | 현재 상태 |
| 유물군 통합성 및 대표성 | 문화층(2층) 중심의 동시대 조합 대표 | 1.5만 점 중 750점(5%) 선별 편향. 층위(1m 두께) 혼합 가능성. | 미확정 (핵심 쟁점) |
| 체계적 돌날 생산 | 체적 블레이드 감소 존재. 통계적으로 유의미. | 비율 극히 낮음(2.4%). 체계성 불명확. 우연한 산물 가능성. | 불명확 (전수 분석 필요) |
| 르발루아 기법 | 르발루아 포인트 및 특징적 타격면 존재. | 핵심 기술적 근거 불충분. 오독 가능성. | 부분 충족/논란 |
| 장거리 원료 이동 | 800–1,000 km 흑요석 이동 보고. | 소스 검증 및 석기와의 동시성 재현 필요. | 부분 충족 |
| 상징물 (장신구/골기) | 흑연 원반 및 가공 골기 보고. | 석기 기술과의 동시성 및 맥락 불분명. | 부분 충족/불명확 |
| IUP 정의 적합성 | 지역 변이를 포함하는 포괄적 IUP. ‘유럽중심’ 정의 부당. | 엄격한 기술 기준 미충족. 정의 확장 과도. | 판정 보류 (정의 논쟁) |
결론 및 전망
Yang et al.(2024)의 연구는 45,000년 전 동아시아에 복합적인 문화 행위(장거리 이동, 장신구 등)가 존재했을 가능성을 제시하며 학계에 중요한 화두를 던졌다. 그러나 이 유물 조합을 IUP로 규정하고 현생 인류의 확산 증거로 해석하기에는 표본 대표성의 심각한 결여와 유물 조합의 통합성(동시성) 불확실성이라는 중대한 한계가 존재한다.
현재 이 논쟁은 관련 반박문과 재반론이 게재된 후(2024년 10월 29일 온라인 게재, 2025년 1월호 수록) 진행 중이다. 현 단계의 컨센서스는 시위 유적을 “아주 이른 IUP”로 확정하기에는 이르며, 해석은 ‘격렬한 재검증 단계’에 놓여있다는 것이다.
이 논쟁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후속 연구가 필수적이다.
- 1963년 컬렉션 중 분석되지 않은 나머지 95% 유물에 대한 전수 분석.
- 정밀한 층서 통제 하의 재발굴을 통한 유물 맥락(석기, 장신구, 골기의 동시성) 규명.
- 돌날 생산 체계(Chaîne opératoire)의 명확한 재구성 및 정량적 검증.
- IUP 정의에 대한 동아시아 지역적 맥락에서의 합의 도출.
시위 유적의 최종적인 해석은 동아시아 현생 인류의 확산 시기와 기술 전파 모델을 재편하는 중요한 분수령이 될 것이다.
6. 잃어버린 세계, 황해 평원의 부활
시위 유적 논쟁이 진행중이지만, 동아시아 구석기 역사와 관련된 또다른 이슈 하나는 “어떻게 이 넓은 지역에서 비슷한 시기에 고도의 기술이 동시다발적으로 나타날 수 있었는가?” 라는 더 큰 질문으로 바뀌었다. 단선적인 전파 모델이 폐기된 자리에 거대한 공백이 생긴 것이었다.
바로 그때, 학자들의 시선은 오랫동안 잊혔던 곳으로 향했다. 육지가 아닌 바다, 바로 황해(黃海)였다.
마지막 최대 빙기(Last Glacial Maximum, LGM) 시절, 막대한 양의 물이 대륙 빙하의 형태로 얼어붙으면서 전 지구적 해수면은 현재보다 약 120–134미터까지 극적으로 낮아졌다(Lambeck et al., 2014). 그 결과 오늘날 황해(黃海)의 얕은 대륙붕(continental shelf)은 광대한 평원으로 드러나, 동아시아(東亞細亞) 내륙과 한반도(韓半島), 나아가 일본 열도(日本列島)를 잇는 거대한 ‘육상 회랑(Land Corridor)’으로 기능했다(Chough et al. 2004). 황해(黃海) 동부 연안 퇴적층에 뚜렷하게 남아있는, 과거에 육지에서만 형성될 수 있는 고토양층(palaeosol)과 퇴적이 중단되고 침식이 일어났음을 보여주는 비퇴적(unconformity) 흔적은 이곳이 실제로 육지였음을 말해주는 명백한 지질학적 증표이다(Lim et al., 2004).
출처: Bae and Bae (2012)
모든 조각이 맞춰졌다. 황해 평원(黃海平原)은 단순한 땅이 아니었다. 황하(黃河)와 양자강(揚子江)에서 뻗어 나온 거대한 고하천망(古河川網, paleo-river network)이 흘렀고, 그 주변으로 넓은 초원과 삼림이 분포하여 수렵채집민에게 풍부한 자원을 제공하는 ‘기회의 땅’이었다. 시베리아(西伯利亞)의 사냥꾼, 수동구(水洞溝)의 장인, 한반도(韓半島)의 개척자들은 이 평원을 무대로 자유롭게 오가며 만나고, 교류하고, 경쟁하는 거대한 문명의 고속도로이자 허브였던 것이다. 이러한 교류의 가장 강력한 물증은 흑요석(Obsidian)이다. 성춘택 (2019)의 연구에 따르면, 백두산(白頭山)에서 온 흑요석이 직선거리로 500km에서 최대 800km 떨어진 한반도(韓半島) 중부 지방 유적들에서 발견되는데, 이는 LGM 시기에 이미 거대한 광역 교류 네트워크가 존재했음을 입증한다. 또한 이 시기 시베리아(西伯利亞)나 몽골(蒙古) 등 북방 내륙에서는 혹독한 추위로 인구가 급감했지만, 상대적으로 온난했던 한반도(韓半島)와 황해 평원(黃海平原)은 오히려 인구의 피난처(refugium) 역할을 하며 점유 밀도가 높아지는 역설적인 현상이 나타났다. 이는 황해 평원(黃海平原)이 인류 생존의 핵심 무대였음을 보여준다. 좀돌날(microblade) 문화가 이 ‘황해 육지(Yellow Sea landmass)’를 통해 어떻게 확산되었는지를 분석한 연구는 이 회랑을 통한 활발한 기술 교류 및 인구 이동을 보여주는 강력한 고고학적 증거를 제공한다. 기술과 정보는 이 평원을 통해 한 방향이 아닌, 몽골(蒙古)·시베리아(西伯利亞) 등 북방과 산동반도(山東半島) 등 여러 지역에서 거미줄처럼 얽힌 다방향으로 퍼져나갔다. 이것이 바로 동아시아(東亞細亞) 전역에서 약 4만 년 전,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후기 구석기 시대가 동시에 개막할 수 있었던 이유였다.
수동구(水洞溝)의 진짜 나이가 밝혀지는 순간, 유령처럼 떠돌던 황해 평원(黃海平原) 가설의 존재와 기능은 더 이상 추론이 아닌, 동아시아(東亞細亞) 구석기 역사의 미스터리를 푸는 결정적인 열쇠로 자리잡게된 것이다. 최신 AMS 연대 측정 결과와 고지리 환경 복원 연구는 한국 후기 구석기 시대에 대한 전통적 이해를 근본적으로 바꾸고 있다. 연대의 재설정은 돌날 기술 등 후기 구석기 문화 요소가 수동구(水洞溝)에서 한반도(韓半島)로 일방적으로 전파되었다는 기존 가설의 한계를 명확히 보여주며, 황해 평원(黃海平原)을 통한 다방향 교류 모델의 설득력을 높인다. 잃어버린 평원은 단순한 통로를 넘어, 동아시아(東亞細亞) 구석기인들의 핵심적인 생활 무대이자 문화 교류의 중심지 역할을 했을 가능성이 크다. 결론적으로, 한국 후기 구석기 연구는 ‘수동구(水洞溝) 문화 전파의 결과’라는 수동적 시각에서 벗어나, 동아시아(東亞細亞)의 광역적 교류 네트워크 속에서 독자적인 발전과 상호작용을 병행한 능동적 주체로 재해석될 필요가 있다. 이는 한반도(韓半島)와 중국(中國) 북부 구석기 연구의 관계를 대등한 시각에서 재정립하는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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