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내용]
프롤로그
중앙유라시아사는 국내 독자들에게 아직은 생소한 분야이다. 본격적인 역사 읽기에 앞서 중앙유라시아와 관련된 주요 개념들을 설명하는 게 독자들의 이해를 도울 수 있으리라는 판단으로 프롤로그를 마련했다. 중앙유라시아라는 용어, 초원과 사막, 유목민과 오아시스 주민의 개념에 대해 상세히 설명한다.
1부 고대 유목국가
기원전 7세기부터 기원후 5세기경까지의 시대를 다룬다. 유라시아 초원의 서쪽과 동쪽에서 스키타이와 흉노가 역사상 최초의 유목국가를 건설하여 주변의 정주 농경민들과 정치·경제적 관계를 맺고, 동시에 실크로드를 통한 동서 문명의 교류에 적극적인 역할을 하는 시대이다. 이들 유목국가가 어떤 방식으로 구성되고 운영되었는가, 남쪽의 농경국가와는 어떠한 관계를 맺었는가 하는 점들에 대해서도 설명한다.
흥미로운 사실은 중앙유라시아사 전반에 나타나는 중요하고 전형적인 특징들이 이 시기에 거의 다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고대 유목국가의 활동에 대해 정확히 파악하는 것은 그 후 중앙유라시아의 역사적 전개를 이해하는 초석이 된다고 할 수 있다. 흉노와 같은 유목국가와 한나라와 같은 정주국가가 동요를 일으켜 서로 관계했던 패턴이 무너질 때 정치적 혼란과 함께 대규모 민족 이동이 발생하는 현상도 주목할 만하다. 중국사에서 오호십육국과 남북조 시대로 불리는 분열의 시대는 사실상 중앙유라시아 전체를 포괄하는 광범위한 민족 이동을 일컫는 하나의 표현에 불과한 것이었다.
2부 투르크 민족의 활동
민족 대이동과 그에 따른 혼란의 시대가 끝나고 투르크인들이 중앙유라시아의 정치적 패권을 장악하는 시대, 즉 6세기부터 10세기까지를 다룬다. 과거 중국의 기록에 ‘돌궐突厥’이라는 이름으로 기록된 집단이 알타이 산맥 부근에서 흥기하여 유목제국을 건설하였는데, 그 영역은 과거 흉노에 비해 훨씬 더 서방으로 확장되었다. 돌궐의 뒤를 이어 같은 투르크계 집단인 위구르 역시 유목국가를 건설하였다. 중앙유라시아를 무대로 한 유목국가의 활동 범위는 중국의 당나라, 유럽의 비잔티움, 페르시아의 사산 왕조에까지 미칠 정도로 광범위하였다. 또한 중앙아시아 오아시스 도시의 주민인 소그드인들은 이들 유목민과 손을 잡고 유라시아 전체를 무대로 교역활동을 벌였고 여러 지역의 문화를 매개하는 역할도 하였다.
그러나 9세기 중반 위구르 제국이 붕괴하면서 투르크 민족 패권의 시대도 종지부를 찍고 말았다. 이는 당 제국의 붕괴, 아바스 왕조의 쇠퇴와 시기적으로 일치하였기 때문에 유라시아 전역에 걸쳐 광범위한 정치적 혼란을 야기했다. 나아가 이는 과거에 나타났던 현상, 즉 대대적인 민족 이동을 촉발하게 되었다.
3부 정복왕조와 몽골 제국
민족 대이동이 다시 나타나는 10세기부터 몽골 제국이 흥기하여 붕괴하는 14세기까지를 다룬다. 몽골 제국이 출현하기 전에 중국사에서 소위 ‘정복왕조’로 알려진 거란(요)과 여진(금)이 북중국에 건설한 국가들의 특징을 살펴본 뒤, 몽골 제국이 어떤 역사적 환경 속에서 등장하게 되었는가를 살펴본다. 특히 몽골 제국이 중앙유라시아의 초원은 물론이고 동아시아와 서아시아 및 러시아와 흑해 북방을 포괄하는 역사상 최대의 육상 제국을 건설할 수 있었던 힘은 어디에서 나온 것인지를 탐구하는 것은 흥미로운 주제다.
그러나 제국의 영토적 거대함, 칭기스 일족 내부의 대립과 전쟁 등으로 몽골 제국은 초기의 통합성을 상실하고 정치적으로 비교적 자립적인 몇 개의 ‘울루스’로 분할된다. 즉 카안 울루스(대원大元)를 정점으로 서방의 3대 울루스로 나뉘게 되는데, 이제까지는 그것을 단일한 제국에서 여러 개의 계승국가들로 분열된 것이라고 이해해왔지만, 이 책에서는 몽골 제국이라는 정치적 통합성이 상당 정도로 유지되고 있었다는 점에 주목한다. 몽골 제국은 유라시아를 포괄하는 거대한 통합을 통해서 역사상 유례없는 소통을 가능케 했기 때문에, ‘팍스 몽골리카’라는 말로 표현되는 이 시대의 문명 교류의 실상과 그 역사적 의의를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4부 계승국가의 시대
포스트 몽골 시대, 즉 15세기부터 17세기까지의 중앙유라시아사를 다루고 있다. 흔히 몽골 제국의 멸망과 함께 유목민들은 더 이상 역사적으로 의미 있는 역할을 하지 못하게 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15세기 이후 사태의 전개 과정은 이러한 통념이 사실과 다르다는 점을 분명히 보여준다.
초원으로 후퇴한 몽골 유목민들의 세계는 한동안 명나라의 공세와 유목사회 내적인 분열로 인하여 소강상태에 접어들지만, 15세기 들어 오이라트 서몽골의 주도로 중국과 중앙아시아를 강력하게 압박하기 시작했고, 뒤이어 동몽골에 의해 대통합을 이루게 되었다. 중앙아시아에서도 차가다이 울루스를 모태로 티무르 제국이 등장하여 서아시아까지 석권하면서 맹위를 떨쳤다. 또한 이 시기에는 티베트 불교와 이슬람교가 각각 몽골 초원과 동투르키스탄을 무대로 적극적인 포교 활동을 펼쳤고, 그 결과 중앙유라시아의 동방과 서방의 주민들은 각각 불교와 이슬람교로 개종하게 되었다. 이슬람 세력은 위구리스탄(투르판과 하미)을 거쳐 감숙과 섬서까지 확장되었고, 티베트 불교는 청해 지방을 매개로 내외 몽골 초원과 연결되었다. 이로써 불교와 이슬람교라는 종교적 이념에 바탕을 둔 새로운 정치적 정통성이 표방된 것 역시 포스트 몽골 시대의 중요한 특징을 이룬다.
5부 유목국가의 쇠퇴
17세기부터 19세기 후반에 이르는 시기를 다룬다. 즉 한쪽으로는 만주인들이 세운 청 제국이, 다른 한쪽으로는 러시아인들이 중앙유라시아로 팽창해 들어오면서 이 지역을 무대로 활동하던 유목민과 오아시스 주민들이 이들 제국에 복속하고 편입됨으로써, 중앙유라시아가 주체가 되는 역사적 동력이 최종적으로 소멸되어가는 과정을 다룬다.
칭기스적 전통에서 배양된 정치적 정통성과 국가적 이념을 학습하면서 성장한 만주인들은 내몽골과 외몽골의 유목민들을 차례로 복속시키고, 마침내 18세기 중반에는 최후의 유목국가라고 할 수 있는 준가르를 붕괴시킨다. 나아가 이를 계기로 티베트와 신강마저 흡수함으로써 중앙유라시아의 동부 지역을 완전히 석권하였다. 러시아 역시 16세기 중반 이후 맹렬한 기세로 동진을 시작하여 시베리아 전역을 장악하고, 19세기 중후반까지는 중앙아시아에 있던 코칸드, 부하라, 히바 등 세 칸국들을 차례로 병합하는 데 성공하였다. 이로써 중앙유라시아는 청과 러시아라는 두 제국에 의해 완전히 분할되었고, 역사적 독자성과 동력을 상실하고 말았다.
에필로그
이 책의 본문은 시기적으로 19세기 후반에 끝난다. 현대사는 에필로그에서 다룬다. 저자가 서문에서 지적했듯이 “러시아 및 중국의 일부가 되어 주체적인 역할을 상실한 시대에 대해 서술상의 차이를 두는 것도 어느 정도는 납득할 수 있지 않을까”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소비에트 혁명 이후, 중앙아시아, 몽골, 신강, 티베트 등 중앙유라시아 주요 지역이 현대에 들어 어떤 운명을 맞이했는지 서술하면서 책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