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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아 컨센서스 21차 콜로키엄] 중간 종합정리.

  • 일시: 2007년 5월 15일 오후 5시
  • 장소: EAI 회의실
  • 참석자: 김병국, 손동현, 윤순봉, 이정우
  • 자료정리: 송문희(EAI)

콜로키엄 정리자료_text 12p


[토론]

1. 바뀐 삶의 방식을 어떠한 제도(institution)에 담을 수 있을 것인가?

손동현: 미래 시대상이 어떻게 바뀔 것인가에 대해 좀더 구체적인 논의가 필요하다. 바뀐 삶의 방식을 어떠한 제도(institution)에 담을 수 있을 것인가? 현재의 추세를 살펴보면 근대의 논리에 따르는, 우리에게 친숙한 조직이나 제도는 점점 해체되고 비조직화, 네트워크화의 방향으로 나가고 있다. 그렇다면 미래사회에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형태의 조직이나 제도를 찾아야만 하는 것인가? ‘제도(institution)’라는 것은 그 자체로 흐름을 정지시켜 가두고 고정시키는 속성을 갖는 것이다. 지금의 시대가 조직과 제도를 벗어나 ‘유목적’으로 가고 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이런 변화를 ‘제도’라는 틀로 담아내는 데는 어려움이 클 것이다.

김병국: 삶의 방식을 규율해주는 원칙의 합이 ‘제도’로 정립된다. 유목적 삶으로 변모되고 있다고는 하지만 노마드적 삶에도 (농경사회의 삶과는 다르겠지만) 분명 나름의 ‘질서’는 있을 것이다. 과거 흩어져있는 것처럼 보였던 유목적 사회에도 눈에 보이지 않는 틀이나 지휘체계가 분명 존재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미래사회에도 국가의 권위나 권력을 담아내는 ‘형식’이 달라질 뿐이지 이런 요소들이 없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윤순봉: 유목사회와 정착사회는 분명 제도나 시스템에 차이가 있다. 유목민은 칸(Kahn)이 군림하지 않고 전원합의체를 원칙으로 했던 반면, 정착사회의 군주는 전복(顚覆)과 세습을 바탕으로 국민들 위에서 군림하는 존재였다.

종교, 능력, 법과 제도 등 어느 한 시대에 속한 인류가 최적의 행복을 누리는데 영향을 주는 요소들이 많다. 그 중에서도 법과 제도는 아직까지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미래사회에도 법과 제도는 여전히 영향력이 있겠지만 이와 다른 ‘그 무엇’인가가 더 중요해질 가능성이 존재한다. 즉 ‘가중치’와 ‘우선순위’가 변화될 수 있는 것이다. ‘그 무엇’은 문화일 수도 있고 가치관일 수도 있다. 예를 들면 기업의 경우 지난 30년간 서류화(documentation)를 통해 모든 것을 매뉴얼화시키는 것이 일반적인 추세였다. 그러나 환경변화의 속도가 가속화되면서 계속 법과 제도를 바꿔나가야 함에 따라 비용, 특히나 변동비가 많이 증가하는 문제점이 나타났다. 이에 따라 기업들은 바뀌는 법과 제도들을 매번 매뉴얼화하는데 드는 막대한 비용과 시간을 줄이고자 서류화 대신 법과 제도를 만드는 기본 사상과 가치관을 구성원에게 주입시키는 ‘공유가치(shared value)’의 중요성에 관심을 돌리기 시작하고 있다.

이정우: 노마드(nomad)란 것은 기존질서를 다 와해시키고 카오스상태로 가는 것이 아니라 질서의 시스템이 달라지는 것을 의미한다. 즉 노마드는 규칙과 반대되는 개념이 아니다. 노마드는 정지해 있는 것이 아니라 선(line)을 따라 흘러간다. 정착사회처럼 정교하게 정립된 형태는 아니지만 유목적 사회에도 갈등을 조정하기 위한 법과 제도, 그리고 정치라는 나름의 시스템이 존재한다. 미래의 인간사회에도 갈등은 여전히 존재할 것이지만 이를 조절하는(regulating) 방식은 지금과는 차이가 있을 것이다.

손동현: ‘제도(institution)’라는 것은 흐르는 것이 아니다. 제도는 고정적이고 안정적인 것인데 이는 변화하고 있는 노마드적 삶의 모습과는 거리가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노마드적 삶의 유동적인 모습들을 제도 없이 어떻게 규율할 수 있을 것인가? 미래의 삶에도 일정한 틀이 존재한다면 어색한 ‘제도(institution)’라는 단어 대신 새로운 ‘프로그램(program)’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이 나을 것이다.

2. 미래사회에 국가의 모습과 역할은 어떻게 달라질 것인가?

김병국: 국가의 규제방식이 “~만 할 수 있다”는 positive list에서 “~만 빼고는 다 할 수 있다”는 negative list의 형태로 점점 바뀌고 있다. 이것은 국가의 권력이 점차 약해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제 국가는 과거처럼 물리적 폭력의 합법적 독점체로서 군림하면서 전방위(全方位)적인 규제와 개입을 하는 존재가 아니라, 규칙을 만드는(rule making) 조절국가(regulatory state)로 그 역할이 축소될 것이다.

한 국가가 얼마나 강한가를 측정하는 지표로 예산이나 공무원 수를 볼 때 오히려 국가가 약하기 때문에 예산이나 공무원 수가 많이 증가하는 현상을 발견할 수 있다. 이것은 사회 이익집단들이 국가를 포로로 삼고 그들의 이익을 관철시키려 하는 데서 비롯되는 것이다. 따라서 규모만 크고 권력은 작은 약대(弱大)정부 보다는 규모와 조직의 유연성(flexibility)을 양대 축으로 놓고 볼 때 규모는 작지만 조직의 유연성이 가장 큰 조직시스템을 갖추는 국가가 미래시대 경쟁력을 획득하게 될 것이다. 조직의 유연성(flexibility)을 높이기 위해서는 작은 규모가 유리하게 작용할 것이고 제도 자체도 보다 더 유연해질 필요가 크다. 이를 위해서는 법(法)보다는 ‘공유가치’를 활용하고 negative list를 통해 시민사회에 많은 자율성을 주면서 규칙을 만드는(rule making) 조절국가(regulatory state)로 국가의 역할이 변화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미래사회에 조절국가(regulatory state)로 기능하게 될 국가의 모습은 과연 어떤 것이 될 것인가? 영토를 가진 국가라는 존재가 실제로 nomadic이 될 수 있을 것인가?

윤순봉: 기업의 경우에 “패러독스 경영(paradox management)”이 중요하다. 이는 큰 기업은 작은 기업처럼, 작은 기업은 큰 기업처럼 운영해야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는 뜻이다. 대량생산 방식으로 비용(cost)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했던 포드(Ford)를 넘어 제품 차별화로 승부수를 띄웠던 GM의 경험이 있지만, 이제 기업들은 가격과 제품 차별화 모두에서 소비자를 만족시킬 수 있어야 살아남을 수 있는 환경하에 놓여져 있다.

이에 성공한 대표적 기업이 GE로서 웰치 회장은 큰 회사를 작은 회사처럼 경영했다. 흔히 큰 회사는 자본, 인력, 명성, 네트워크, 무수한 해외지점 등의 장점을 가진 반면 관료주의의 폐단과 시간이 많이 소요되고 ‘stand alone’하는 등의 단점이 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웰치는 조직의 하드 혁신(hard renovation)을 거쳐 단순성(simplicity)과 자기확신(self-confidence) 등을 요소로 하는 소프트 혁신(soft renovation)에 성공함으로써 효율성을 높일 수 있었다.

국가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국가의 규모와 권력(power, GDP)을 양대 축으로 놓고 강소국, 강대국, 약소국, 약대국으로 나눌 수 있다. 현재의 일반적인 논쟁은 “큰 정부가 좋은가, 작은 정부가 좋은가”에 관한 것이다. 흔히 큰 정부가 곧 강한 정부라고 생각하지만 이는 잘못된 것이다. 작지만 강한 정부 즉 ‘강소(强小)정부’가 효율적이고 경쟁력이 있다. 고정비는 한번만 투자하고 변동비는 대폭 절감되는 효율적인 ‘강소(强小)정부’ 하에서 규칙 정립자(rule setter)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는 국가가 미래사회에 경쟁력을 가질 것이다. 따라서 ‘강소(强小)정부’는 국가권력의 약화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의 역할(role)이 바뀌는 것이다.

미래에는 정보의 비대칭성이라는 벽이 허물어지고 점차 권력이 더 분산될 것이다. 조직이나 제도간의 경계도 모호해지거나 허물어질 것이다. 각 노드(node)의 사이즈나 단위는 작아지지만 노드들 사이의 링크(link)나 네트워크(network)는 더욱 빈번해지고 활성화되면서 점점 더 많은 영향력을 행사하게 될 것이다.

현실적으로 동아시아가 어떻게 변화될 것인가를 예측해 보자. 정치적으로는 국가권력이 여전히 행사되겠지만 FTA로 한중일 3개국이 경제적으로 밀접하게 연결되면서 국가권력은 많이 축소되고 오히려 동경권, 상해권, 홍콩권, 북경권, 서울권 등 각 국의 주요도시들을 중심으로 한 ‘권역간 경쟁’이 더 치열해지게 될 것이다.

이정우: 노마드적 삶에 있어 국가는 규칙 정립자(rule setter)로서가 아니라 문제 해결(problem solving)을 돕는 역할을 해야 할 것이다. 초기 로마는 헌법이나 관료가 존재하지 않았지만 효율적으로 국가가 운영되었다. 이후에 점차 법(法)의 비중이 커지고 국가의 규모가 커짐에 따라 로마가 오히려 쇠락의 길로 접어들게 되었다는 사실은 미래사회 국가의 역할 논의에 있어서도 시사점을 주는 바가 있다.

3. 미래사회 공동체적 삶의 준거(準據)는 무엇이 될 것인가?

손동현: 공동체적 삶의 준거가 개인주의(individualism)냐 공동체주의냐(communitarian)에 관한 논쟁이 꾸준히 전개되어 왔다. 미래 유목적 사회에도 사회생활을 영위하는 주체로서의 인간은 존재할 것이기에 개인주의와 공동체주의를 둘러싼 그간의 논의는 계속될 것이다. 유목적 사회에서는 각 노드들이 개별개체로 떨어져 있어서는 안되고 링크나 네트워크로 유동적으로 편입해 들어갈 필요성이 더 커진다고 본다면 삶의 준거를 정하는데 있어 네트워크가 우선시될 것인가? 아니면 각 노드들이 우선할 것인가?

김병국: 흔히 네트워크사회를 수평적인 사회라고 하지만 여기에도 위아래는 존재한다.. 네트워크 사회의 허브(hub)는 실제로는 ‘위(上)’를 의미하는 것이 아닌가?

손동현: 네트워크 속에서는 가입과 탈퇴가 자유롭고 허브도 수시로 바뀌어 질 수 있다. 이처럼 허브는 미리 고정되어 있는 어떤 실체가 아니기 때문에 허브를 위계질서상 맨 위에 존재하는 것으로 보는 것은 무리가 있다. 앞으로는 네트워크 속에서 각 커뮤니티(community)들이 훨씬 더 중요해지게 될 것이다.

이정우: 카오스상태로부터 각종의 커뮤니티(community)가 형성되어 나올 것이고, 각 노드들은 수많은 커뮤니티(community)의 교차지점에 서 있게 될 것이다. 혈연, 지연, 학연, 국가라는 기존의 공동체에 국한되는 것이 아닌,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형태의 커뮤니티들이 형성되고 있는 환경하에서 개인의 정체성은 분산될 수도 있고 오히려 더 다양한 삶을 영위할 수도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