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력
- 1770, 해군 입대
- 1794, 코르시카 섬 점령 시 오른쪽 눈 실명
- 1797, 세인트빈센트 해전에서 오른쪽 팔 잃음
- 1798, 나일 강 입구에서 프랑스 함대 격파
- 1803년부터 지중해 함대사령관으로 프랑스 함대를 견제
- 1805, 10월 21일 트라팔가 해협에서 프랑스-에스파냐 연합함대를 포착, 대담한 분단작전으로 격멸
시대적 배경
나폴레옹이 20년에 걸쳐 유럽 대륙을 정복하는 과정에서 유일하게 바다의 장벽에 막혀 영국을 점령하지 못하던 상황
나폴레옹은 영국이 건재한 한 자신의 유럽지배가 완벽하지 못함을 깨닫고 공세를 취했으나 넬슨에게 패배함으로써 그의 제국지배 자체가 와해되는 계기가 됨
성장 과정
가난하지만 품위 있는 가문에서 출생
13세 때 해군대령이던 외삼촌과 함께 해상생활을 경험하고 15세 때는 북극을 탐험
외향적이고 인내력이 강했으며, 소년 시절부터 “죽은 뒤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안장될 것”을 희망
이후 해군장교로서 지속적으로 전과를 올림. 35세에 함장이 되고 46세 때 지중해함대 사령관이 됨
주요 업적
나폴레옹의 영국침공을 트라팔가에서 막아내고 결국 나폴레옹 제국 몰락의 도화선이 됨. 그의 독창적인 해전 전술은 ‘Nelson Touch’라고 불리며 후대 해전에 큰 영향을 줌
리더십 특성
① ‘All or Nothing’의 死生觀
과감한 승부사의 기백을 죽을 때까지 보유
“나는 패전 책임을 지고 처형되느냐 아니면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매장되느냐의 양자택일의 기로에 서 있다”고 늘 말함
전투시에는 늘 부하들보다 앞장서서 돌격했으며 전사를 두려워하지 않음
그 결과 부상이 많았고 왼쪽 눈과 왼쪽 팔을 잃음
트라팔가 해전에서도 적함대 대열에 가장 먼저 다가가 포격을 가한 것은 그가 탑승한 빅토리아호
② 기계적 명령복종보다 자신의 판단을 신뢰
넬슨은 전투 중 자신의 판단이 옳다고 확신하면 사령부의 명령을 무시하고 자신의 소신대로 전투 수행
1801년 코펜하겐 전투 중 당시 사령관 하이드 파커(Hyde Parker)는 전황이 불리하다고 판단하고 철수를 명령
넬슨은 최전방에서 전세의 변화를 감지하고 철수할 시점이 아님을 간파. 그는 일부러 망원경을 失明한 왼쪽 눈에 갖다 대고 “나는 신호가 보이지 않는다.”고 외침
결국 덴마크 해군이 항복할 때까지 전투가 지속되었으며 사령관 파커는 전투 종료 후 넬슨을 포옹하며 그의 정확한 판단력에 감사
③ 직각전환 전술을 통한 ‘Nelson Touch’
넬슨은 당시 해군의 전술을 획기적으로 뒤바꾼 신전술을 통해 프랑스-에스파냐 연합함대를 격멸
당시 함선은 양측면의 포를 사용하기 위해 일렬로 늘어서서, 서로 대포를 발사하여 한쪽이 전멸할 때까지 지속하는 지리하고 낭비적인 형태
넬슨은 능숙한 키잡이를 활용, ‘직각전환’을 통해 양측면의 대포를 모두 사용하도록 하고, 이를 통해 적함대를 양분시키는 전술을 구사

영국 함정(붉은색)이 종렬로 늘어선 적 함대(흰색)를 좌측포로 공격하다가 방향을 수직으로 바꿔 종렬을 차단하는데, 이때 양쪽 대포를 모두 이용하여 적선을 공격할 수 있음. 종렬을 관통한 후 다시 수직으로 전환하여 적선의 측면을 완전히 격파함.
넬슨은 일렬로 늘어선 적 함대를 양분한 후 한쪽을 무력화하고 다른 한 쪽을 집중 공격하는 전술을 구사(Nelson Touch)
절단된 한쪽이 지원하러 오기 전에 선제공격했던 함대를 괴멸시키는 속전속결이 관건
함대가 평행하게 이동하며 발포한 후 즉각 직각으로 선회하여 적의 대열을 갈라놓았고, 이러한 넬슨의 전술은 유례가 없었던 것으로 해전전술에 대변화를 초래
1만 4천여 명의 사상자를 낸 프랑스의 함대는 모두 괴멸되었고, 해군제독 빌레누브(Villeneuve)는 영국 해군에 의해 생포됨
④ 노련한 키잡이와 포수 양성
실전에서 잔뼈가 굳은 현장출신의 지휘관들과 잘 훈련된 병사들을 보유
섬나라의 해군으로서 몇 년 심지어는 십수 년을 배에서 내리지도 못한 채 지속된 함상 생활에 단련된 능숙한 지휘관이 다수
당시 선원들의 상당수가 부랑아, 걸인, 채무불이행자들로 충원되고, 이들의 탈출을 차단하기 위해 항구에 정박하지 못하는 상황이 지속
넬슨 자신도 장기간의 함상 생활, 심각한 부상, 지병으로 고생했으며, 당시 영국인들은 넬슨을 존경하면서도 자신의 자식들이 넬슨과 같이 되기를 원하지는 않았다고 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