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윤순봉. 2025. “북경원인은 현재 중국인의 조상인가?” 윤순봉의서재.

https://yoonsb.com/2025/08/11/212025/

북경원인은 현재 중국인의 조상인가?

요약

본 보고서는 ‘북경원인(北京原人)은 현대 중국인의 조상인가?’라는 질문을 과학, 정치, 문화의 다층적 맥락에서 분석한다. 과학적 결론은 명확하다. 현대 유전학과 고대 게놈 연구는 현생 인류가 아프리카에서 기원했으며(아프리카 기원설), 현대 동아시아인은 단일 혈통의 연속이 아닌 복잡한 이주와 혼합의 산물임을 증명한다. 이 관점에서 북경원인(北京原人)은 직계 조상이 아닌, 진화 과정에서 사라진 먼 친척이다. 그러나 정치의 영역에서 북경원인(北京原人)은 ‘백년국치(百年國恥)’라는 역사적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민족적 자긍심을 회복하려는 국가적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조상’으로 기능해왔다. 북경원인은 중화민국 시기 민족 자긍심의 원천이었고, 모택동(毛澤東) 시대에는 노동 이데올로기의 화신으로, 개혁개방 이후에는 애국주의 교육의 상징으로 끊임없이 재탄생했다. 현대 중국은 이 모순을 해결하는 대신, 과학 엘리트에게는 국제 표준인 ‘아프리카 기원설’을, 대중에게는 민족 신화인 ‘북경원인(北京原人) 조상설’을 각기 다른 방식으로 전달하는 정교한 ‘이중 트랙(dual-track)’ 전략을 구사한다. 결국 북경원인(北京原人)의 사례는 과거가 단순히 ‘발견’되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정치·문화적 필요에 의해 끊임없이 ‘구성’되고 ‘발명’된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가장 생생한 증거이다.

목차

서론: 과학적 사실과 정치적 상징 사이

제1부: 한 화석의 일대기: 발견, 영광, 그리고 미스터리

제1장. ‘용의 뼈’에서 인류의 조상으로: 주구점의 위대한 발견

제2장. 전쟁과 소실: 사라진 두 상자의 행방

제2부: 과학의 판정: 유전자는 ‘아니’라고 말한다

제3장. 인류의 고향을 둘러싼 과학 전쟁

제4장. 중국인은 어떻게 하나의 민족이 되었나: 유전자로 본 동아시아인

제3부: 상징의 정치학: 국가는 어떻게 조상을 만드는가

제5장. ‘조상’을 필요로 하는 나라: 중화사상과 백년의 상처

제6장. 시대의 아이콘, 북경원인의 끝없는 변신

제7장. 정부의 정교한 줄타기: 과학적 사실과 국가 신화 사이

제8장. 과학자와 대중, 서로 다른 상상력

제9장. 보이지 않는 전쟁: ‘인류의 역사’를 선점하라

결론: 만들어진 조상, 그리고 중국이라는 현재

각주 (Footnotes)

보충자료 (Supplementary Materials)

참고문헌 (Bibliography)

 

서론: 과학적 사실과 정치적 상징 사이

‘북경원인(北京原人)’은 현재 중국인의 조상인가? 이 단순해 보이는 질문은 지난 한 세기 동안 단순한 과학적 호기심을 넘어, 중국의 국가 정체성, 정치 이데올로기, 그리고 민족적 자부심의 가장 민감한 부분을 관통해 온 거대한 화두였다. 이 질문에 어떻게 답하는지에 따라 한 국가가 자신의 기원과 역사를 이해하는 방식이 송두리째 달라지기 때문이다.

북경원인(北京原人)의 이야기는 한 편의 대서사시와 같다. 20세기 초, 북경(北京) 외곽의 작은 언덕 주구점(周口店)에서 약재로 쓰이던 ‘용의 뼈’ 사이에서 극적으로 발견되어 세계 과학계를 흥분시켰으나, 중일전쟁의 포화 속으로 원본 화석 전체가 연기처럼 사라지는 비극을 맞았다. 역설적이게도, 이 화석의 물리적 ‘부재(不在)’는 그를 과학적 검증의 영역 너머로 보내버렸고, 오히려 더욱 강력한 상징적 힘을 갖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이야기를 시작하기에 앞서, 우리는 질문의 핵심에 놓인 ‘현대 중국인’이라는 용어가 가진 중의성(重義性)을 먼저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정치적 담론이나 대중적 인식 속에서 ‘중국인’은 종종 중화민족(中華民族)의 핵심인 한족(漢族) 중심의 민족주의적 정체성과 강하게 결부된다. 하지만 인구 유전학이나 고인류학과 같은 과학의 영역에서 이 질문은 ‘현대 동아시아인(Modern East Asians)’이라는 훨씬 더 넓고 생물학적인 범주로 논의된다. 과학자들에게 중요한 것은 국경이나 민족이 아니라, 유전자로 연결된 인구 집단의 계보이기 때문이다. 본 보고서는 이 두 가지 용례를 명확히 구분하여, 정치가 만든 서사와 과학이 밝혀낸 사실 사이의 간극을 더욱 정밀하게 추적할 것이다.

지난 100년간, 북경원인(北京原人)의 역할은 중국의 정치 지형이 바뀔 때마다 끊임없이 재해석되고 동원되었다. 중화민국 시기에는 서구 열강에 맞서 민족적 자긍심을 드높이는 고대 문명의 증거로, 모택동(毛澤東) 시대에는 “노동이 인간을 만들었다”는 마르크스주의 이데올로기를 증명하는 살아있는 화석으로, 그리고 개혁개방 이후에는 흩어진 민족의 마음을 하나로 모으는 부흥의 상징적 자원으로 그 역할을 바꾸어왔다.[1] 하지만 21세기에 들어, 이 오래된 서사는 고대 DNA 분석이라는 과학 기술의 혁명으로 인해 강력한 도전에 직면하게 된다. 이 새로운 과학적 증거들은 전 세계 과학계의 정설인 아프리카 기원설(Recent African Origin, RAO)을 강력하게 뒷받침하고 있다. 이 이론에 따르면, 현생 인류는 모두 아프리카에서 태어나 세계로 퍼져나간 후손들이며, 북경원인(北京原人)과 같은 각 지역의 고인류들은 중국인의 직계 조상이 아니라 어느 시점에서 대체된 먼 친척이라는 것이다. 이는 중국 학계가 오랫동안 자국의 풍부한 화석 증거를 바탕으로 지켜온 다지역 기원설(Multiregional Evolution, MRE) 및 그 변형인 혼혈을 동반한 연속 진화설(Continuity with Hybridization, CWH)과 정면으로 충돌한다.[2] 최근에는 데니소바인(Denisovan), 화룡동인(華龍洞人)과 같은 새로운 화석들이 발견되면서(Wu et al., 2023), 인류의 진화사가 훨씬 더 복잡한 과정이었음이 드러나고 있다.

결론적으로 이 보고서는 북경원인(北京原人)의 사례를 통해 ‘과거’란 땅속에 묻혀 있다가 단순히 ‘발견’되는 고정된 실체가 아님을 주장하고자 한다. 과거는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필요와 열망에 의해 끊임없이 ‘재구성’되고 때로는 ‘발명’되기도 한다. 특히 백년국치(百年國恥)라는 역사적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민족적 자부심을 회복하려는 국가적 열망은, 과학적 사실을 특정 방향으로 해석하려는 강력한 동기가 되었다. 나아가 21세기 중국은 인류의 기원과 같은 핵심적인 역사 서사를 직접 주도하려는 화어권(話語權) 확보 전략을 펼치고 있으며, 이 모든 과정이 북경원인(北京原人)을 둘러싼 논쟁에 복잡하게 얽혀있다.

제1부: 한 화석의 일대기: 발견, 영광, 그리고 미스터리

제1장. ‘용의 뼈’에서 인류의 조상으로: 주구점의 위대한 발견

1.1. 약재로 팔리던 ‘용골(龍骨)’, 그 비밀을 쫓다

북경원인(北京原人)의 이야기는 20세기 초, 중국의 어느 평범한 약재상에서 시작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당시 중국에서는 오래된 동물 뼈 화석을 ‘용골(龍骨)’, 즉 신비로운 용의 뼈라 부르며 귀한 약재로 유통했다. 사람들은 이 용골을 곱게 갈아 해열제나 지혈제로 사용했고, 그중 상당수가 바로 북경(北京)에서 남서쪽으로 약 50km 떨어진 주구점(周口店)의 용골산(龍骨山)이라 불리는 석회암 언덕에서 채굴된 것들이었다.

이 기묘한 약재에 숨겨진 거대한 비밀의 실마리를 처음 발견한 사람은, 당시 중국 정부의 광산 고문으로 초빙되어 있던 스웨덴 출신의 저명한 지질학자 요한 군나르 안데르손(Johan Gunnar Andersson)이었다. 1918년경, 그는 용골산의 퇴적층을 조사하던 중, 평범한 동물 뼈 화석들 사이에 섞여 있는 날카로운 석영(quartz) 조각들에 주목했다. 그의 예리한 눈은 그 돌조각의 깨진 단면이 자연적인 힘이 아닌, 누군가 의도를 가지고 내리쳐 만든 흔적, 즉 인류가 사용했던 원시적인 석기(石器)의 특징을 가지고 있음을 간파했다. 그는 자신의 가설을 담은 보고서에서, 주구점(周口店)이 단순한 고대 동물의 무덤이 아니라 인류의 흔적을 품고 있는 매우 중요한 유적지일 수 있음을 세계 학계에 최초로 알렸다 (Andersson, 1919).

그의 주장은 곧 서구 학계의 폭발적인 관심으로 이어졌다. 특히, 당시 중국의 근대화를 위해 막대한 자금을 투자하던 미국의 록펠러 재단(Rockefeller Foundation)은 이 발견의 잠재력을 즉시 알아보았다. 재단의 전폭적인 재정 지원이 결정되면서, 주구점(周口店)의 발굴은 20세기 초 가장 중요한 국제 공동 고인류학 프로젝트 중 하나로 급부상하게 되었다 (Manias, 2012). 수백 년간 용의 뼈를 캐던 조용한 채석장은 이제, 인류의 기원을 밝히려는 최첨단 과학의 현장으로 변모할 준비를 마쳤다.[3]

1.2. 단 하나의 치아, 역사를 새로 쓰다

안데르손(Andersson)이 가능성의 문을 열었다면, 그 문을 박차고 들어가 새로운 역사를 선언한 인물은 캐나다 출신의 해부학자 데이비드슨 블랙(Davidson Black)이었다. 1927년, 그의 연구실로 주구점(周口店) 발굴팀이 찾아낸 단 하나의 아래 어금니 화석이 배달되었다. 그는 이 치아를 모든 각도에서 분석한 끝에, 이것이 기존에 알려진 어떤 유인원이나 현생 인류의 것과도 다르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그는 과학계 역사상 가장 대담하고 논쟁적인 승부수를 던졌다. 단 하나의 증거물을 근거로, 이것이 인류 진화의 새로운 종이라고 선언한 것이다. 그는 이 미지의 인류에게 ‘시난트로푸스 페키넨시스(Sinanthropus pekinensis)’, 즉 ‘북경의 중국 사람’이라는 공식적인 학명까지 부여했다 (Black, 1927). 이것이 바로 ‘북경원인(北京原人)’의 학술적 탄생이었다. 당시 학계의 반응은 격렬한 찬반으로 나뉘었으나, 블랙(Black)의 대담한 주장은 전 세계의 모든 시선을 주구점(周口店)으로 집중시키는 극적인 효과를 낳았다 (Schmalzer, 2008).

1.3. 중국인 과학자, 첫 완벽한 두개골을 발굴하다

블랙(Black)의 가설이 세상의 주목을 받은 지 2년이 지난 1929년 12월 2일, 마침내 길고 길었던 논쟁에 종지부를 찍는 역사적인 순간이 찾아왔다. 그날의 영웅은 서양인 과학자가 아닌, 당시 25세의 젊은 중국인 지질학자 배문중(裴文中)이었다. 희미한 촛불이 흔들리는 어둠 속에서, 그는 퇴적층을 조심스럽게 파내려가던 중 거의 완벽한 형태로 보존된 사람의 머리뼈 덮개, 즉 두개골 덮개(calvarium)를 발견했다 (Pei, 1929; Jia and Huang, 1990).

이 발견은 그야말로 ‘결정적 증거’였다. 치아 하나에서 시작된 논쟁을 잠재우고, 북경원인(北京原人)이라는 고대 인류가 실제로 존재했음을 전 세계에 물질적으로 증명하는 순간이었다. 배문중(裴文中)의 이 위대한 발견은 서구 주도로 이루어지던 고인류학 연구의 판도를 바꾸는 상징적인 사건이었으며, 중국인 과학자가 자국의 땅에서 인류의 역사를 직접 발굴하는 주체로 서게 된 계기였다. 이후 주구점(周口店) 발굴의 지휘봉을 이어받은 가란파(賈蘭坡)와 같은 후배 중국 과학자들은 1936년에만 세 개의 두개골을 추가로 발굴하는 등, 북경원인(北京原人) 화석 컬렉션을 세계적인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Jia and Huang, 1990; Olsen and Miller-Antonio, 2004). 이들의 헌신적인 노력은 주구점(周口店)을 중국 과학계의 상징적 현장이자 자부심의 원천으로 만들었다 (Jia, 1980).[4]

1.4. 77만 년 전, 그들은 불을 다스렸는가?

주구점 유적은 약 40여 개체로 추정되는 인류 유골과 함께, 10만 점이 넘는 석기, 그리고 고대 동굴 생활의 흔적들이 무더기로 발견되면서, 과학자들은 북경원인(北京原人)의 생물학적 특징뿐만 아니라 그들의 문화와 생활 방식까지 복원할 수 있게 되었다. 이 독보적인 가치를 인정받아 주구점 유적지는 198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UNESCO, n.d.).

수많은 연구 주제 중에서도 가장 뜨거운 논쟁거리는 바로 ‘불 사용’ 문제였다. 초기 연구자들은 동굴에서 발견된 두꺼운 재층과 불에 탄 뼈들을 근거로 북경원인(北京原人)이 불을 자유자재로 사용했다고 확신했으나, 1990년대 후반 일부 과학자들이 강력한 반론을 제기하면서 이 확신은 흔들리기 시작했다.[5] 이 오랜 논쟁은 최근, 새로운 과학수사 기법이 동원되면서 극적인 전환을 맞았다. 먼저, 심관군(沈冠軍)이 이끄는 연구팀은 26Al/10Be 매장 연대측정법이라는 최신 기술을 이용해 유적의 연대를 재측정했다.[6] 분석 결과, 북경원인(北京原人) 화석이 발견된 하부 문화층의 가중 평균 연대는 기존의 약 50만 년 전이 아닌, 무려 0.77±0.08 백만 년(Ma) 전으로 산출되었다 (Shen et al., 2009).

불 사용 논쟁 역시 새로운 ‘법의학적’ 증거 앞에 섰다. 황(Huang) 연구팀은 뼈 화석의 내부 결정 구조를 분석하는 X선 회절(XRD) 분석을 통해, 최소 15점의 뼈 화석이 600°C 이상의 고온에서 인위적으로 가열되었음을 입증했다 (Huang et al., 2021). 더 나아가 가오(Gao) 등의 연구팀은 2009년부터 진행된 새로운 발굴에서 돌로 둘러싸인 노지(hearth), 즉 인공 화덕 구조의 흔적을 발견함으로써, 이들이 단순히 불을 우연히 이용하는 수준을 넘어 불을 관리하고 유지했음을 강력하게 시사했다 (Gao et al., 2017). 전 세계적으로 인류가 불을 보편적으로 사용했다는 명확한 고고학적 신호가 약 40만 년 전부터 나타나는 것을 고려할 때(Sørensen et al., 2021), 77만 년 전 주구점(周口店)의 증거는 인류의 역사에서 가장 이른 시기의 불 사용 사례 중 하나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제2장. 전쟁과 소실: 사라진 두 상자의 행방

2.1. 화석을 옮기려는 비밀 작전

1930년대, 북경원인(北京原人)의 발견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주구점(周口店)과 북경 협화의학원(北京協和醫學院, PUMC)의 영광은 위태로운 평화 위에 서 있었다. 1937년 중일전쟁이 발발하고 일본군의 침략이 격화되면서, 북경 협화의학원의 견고한 금고 안에 보관 중이던 화석들의 안전이 심각한 위협에 처했다. 당시 협화의학원은 미국의 록펠러 재단이 운영하는 기관이었기에 치외법권 지역에 속해 있었으나, 1941년 말 미국과 일본의 관계가 파국으로 치달으며 더 이상 안전을 보장할 수 없게 되었다 (Jia and Huang, 1990).

결국 인류 전체의 보물인 이 화석들을 안전한 미국 본토로 극비리에 옮기기 위한 대담한 작전이 세워졌다. 계획의 핵심은 협화의학원의 해부학자 호승지(胡承志)가 모든 북경원인(北京原人) 화석들을 두 개의 튼튼한 미 해병대용 나무 상자에 나누어 담아, 미 해병대의 호송 하에 항구 도시 진황도(秦皇島)까지 이동시킨 후, 그곳에서 대기 중인 미국 상선 ‘SS 프레지던트 해리슨(SS President Harrison)’호에 실어 미국으로 향한다는 것이었다 (Jia and Huang, 1990; Wayman, 2012). 모든 과정은 첩보 영화처럼 진행되었다. 호승지(胡承志)는 화석을 미 해병대에 인계했고, 인류의 가장 오래된 역사를 품은 두 개의 상자는 일본군의 감시가 도사리는 철로 위를 달려 진황도(秦皇島)를 향했다.

하지만 이 기차가 진황도(秦皇島)에 도착한 직후, 역사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향해 치달았다. 1941년 12월 7일, 일본이 진주만을 기습 공격하며 태평양 전쟁이 발발한 것이다. 북경(北京)과 진황도(秦皇島)를 포함한 중국 전역의 통신과 수송망은 순식간에 마비되었고, 두 개의 나무 상자는 그 혼란 속으로 완벽하게 사라져 버렸다.

오랫동안 사람들은 북경원인(北京原人) 화석이 ‘프레지던트 해리슨호’에 실린 채 일본군에 의해 격침되었다고 믿어왔다. 하지만 이는 전쟁의 혼란이 만들어낸 잘못된 신화다. 선장 오렐 A. 피어슨(Orel A. Pierson)의 공식 보고서에 따르면, 해리슨호는 화석을 싣기도 전인 1941년 12월 8일, 상해(上海) 인근 해상에서 일본 해군과 마주쳤다. 배가 적에게 나포될 위기에 처하자, 피어슨 선장은 배가 일본군의 손에 넘어가 연합군 공격에 쓰이는 것을 막기 위해 고의적으로 배를 사산도(佘山島) 해안에 ‘좌초(grounded/beached)’시키는 결단을 내렸다 (Pierson, n.d.).[7]

이 사실은 중요한 점을 시사한다. 해리슨호는 진황도(秦皇島)에 도착하지 못했으므로, 북경원인(北京原人) 화석이 배에 실리지 못했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 이에 따라 화석의 운명은 바다가 아닌, 북경(北京)에서 진황도(秦皇島)로 향하는 육로 어딘가에서 결정되었을 것이라는 추정에 무게가 실린다.

2.2. 누가 가져갔나?: 실종을 둘러싼 가설들

수십 년 동안 수많은 탐사와 추적이 이루어졌지만, 명확한 답 대신 몇 가지 유력한 가설만이 미스터리를 더욱 깊게 만들고 있다 (Wayman, 2012).

가설 1: 일본군의 계획적 탈취

가장 널리 받아들여지는 가설이다. 당시 일본 학계와 군부는 북경원인(北京原人) 화석의 가치를 잘 알고 있었기에, 전쟁이 발발하자마자 진황도(秦皇島)로 향하는 기차나 항구에서 정보를 입수한 일본군이 화석 상자를 조직적으로 탈취했을 가능성이 높다 (Jia and Huang, 1990). 이후 비밀리에 일본 본토로 옮겨져 황실 컬렉션의 일부가 되었거나 도쿄대학(東京大學) 어딘가에 숨겨져 있다는 소문만 무성하다 (Wayman, 2012).

가설 2: 거대한 음모론, 아와마루(阿波丸)호

1945년 미군 잠수함에 의해 격침된 일본의 호화 여객선 ‘아와마루(阿波丸)호’에 화석이 실려 있었다는 주장이다. 이 배에 막대한 양의 금괴 등 일본의 전쟁 자금이 실려 있었다는 사실 때문에 화석 역시 함께 수장되었다는 음모론이 생겨났다. 하지만 화석 실종 시점(1941년)과 침몰 시점(1945년) 사이의 시간적 간극이 너무 커 신빙성이 낮은 가설로 평가된다 (Dingman, 1983; Jia and Huang, 1990).

가설 3: 가장 구체적인 단서, 미 해병대 기지

가장 최근에 제기된 흥미롭고 구체적인 가설이다. 2010년, 1947년 국공내전 당시 진황도(秦皇島)의 미 해병대 기지(캠프 홀컴)에서 근무했던 한 해병의 아들이 놀라운 증언을 했다. 그의 아버지가 임종 직전, “기지에서 참호를 파던 중 이상한 뼈들이 가득 담긴 상자를 발견했다가 다시 묻어버렸다”는 이야기를 털어놓았다는 것이다 (Wayman, 2012). 이 증언을 토대로 연구팀이 지상 투과 레이더(GPR)를 이용해 해당 지역을 조사한 결과, 현재는 주차장으로 변한 곳에서 몇 군데의 ‘이상 신호’를 발견하기까지 했다. 만약 이 증언이 사실이라면, 인류의 보물은 중국인이 수십 년간 찾던 바로 그 장소의 아스팔트 밑에 잠들어 있을지도 모른다.

2.3. 사라졌기에 ‘완벽한 조상’이 되다

북경원인(北京原人) 화석의 실종은 과학계에 회복 불가능한 손실을 남겼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화석의 물리적 ‘부재(不在)’는 그 상징적 힘을 폭발적으로 증가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Schmalzer, 2008; Cheng, 2017). 화석은 더 이상 과학적 분석의 대상이 아닌, 국가적 신화의 영역으로 들어갔다.

사라진 화석은 미래 과학의 냉정한 심판으로부터 영원히 자유로워졌다. 만약 화석이 남아 있었다면, 오늘날의 발전된 과학 기술은 북경원인(北京原人)이 현대 중국인의 직계 조상이 아니라 진화의 과정에서 사라져간 ‘곁가지’였음을 명백히 증명했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그 ‘불편한 진실’을 말해줄 증거가 사라지면서, ‘최초의 중국인’, ‘민족 연속성의 상징’이라는 민족주의적 관념은 아무런 방해 없이 자라날 수 있었다 (Cheng, 2017; Wu, 2017). 결국 북경원인(北京原人)은, 어떤 이데올로기적 요구에도 부응할 수 있는 순수한 상징, 즉 과학으로는 증명할 수도 반박할 수도 없는 ‘완벽한 조상’이 된 것이다.

제2부: 과학의 판정: 유전자는 ‘아니’라고 말한다

제3장. 인류의 고향을 둘러싼 과학 전쟁

북경원인(北京原人)이 중국인의 직계 조상인지에 대한 질문에 답하려면, 먼저 “우리는, 즉 현생 인류는 어디에서 처음 시작되었는가?”라는 더 큰 질문에 답해야 한다. 이 질문을 두고 지난 수십 년간 전 세계 과학계는 거대한 논쟁을 벌여왔다. 이 장에서는 ‘모든 인류는 아프리카에서 시작되었다’는 주장과 ‘인류는 세계 각지에서 독자적으로 진화했다’는 주장이 어떤 증거들을 바탕으로 충돌하고, 최종적으로 과학계가 어떤 결론에 도달했는지 그 과정을 자세히 살펴본다.

3.1. 과학계의 정설: 모든 인류는 아프리카에서 출발했다

오늘날 대부분의 과학자가 동의하는 정설은 ‘최근 아프리카 기원설(Recent African Origin, RAO)’이다 (Stringer, 2022). 1980년대 유전학의 발전으로 시작된 이 이론은, 우리 몸의 세포 안에 있는 특별한 유전 정보, 즉 어머니에게서 자녀에게로만 전달되는 미토콘드리아 DNA(mtDNA)를 분석하면서 결정적인 증거를 확보했다. 1987년, 칸(Cann), 스톤킹(Stoneking), 윌슨(Wilson)은 전 세계 모든 현생 인류의 mtDNA가 약 20만 년 전 아프리카에 살았던 한 여성, 혹은 한 집단의 후손이라는 연구 결과를 발표하며 ‘미토콘드리아 이브’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Cann, Stoneking, and Wilson, 1987).

이 주장을 뒷받침하는 또 다른 강력한 증거는 유전적 다양성에 있다. 인류의 유전적 다양성은 아프리카 대륙 안에서 압도적으로 가장 높게 나타나며, 아프리카에서 멀리 떨어진 대륙으로 갈수록 점차 줄어든다. 이는 소규모의 집단이 고향을 떠나 새로운 곳에 정착할 때 유전적 다양성의 일부만을 가져가는 ‘연속 창시자 효과(Serial Founder Effect)’로 설명된다 (Ramachandran et al., 2005).[8]

이 증거들을 종합한 RAO의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 탄생: 우리와 똑같이 생긴 현생 인류(Homo sapiens)는 약 30만 년 전 아프리카에서 처음 등장했다 (Hublin et al., 2017).
  • 이주: 약 6만~7만 년 전, 그들 중 소규모의 한 집단이 아프리카를 떠나 다른 대륙으로의 위대한 여정을 시작했다.
  • 대체: 그리고 이들은 수만 년에 걸쳐 유럽, 아시아 등지로 퍼져나가면서, 그곳에 먼저 살고 있던 네안데르탈인이나 북경원인(北京原人)과 같은 고인류(Archaic hominins)들을 점차 대체했다 (Stringer and Andrews, 1988).

이 이야기에 따르면, 북경원인(北京原人)은 우리 가계도의 직계 조상이 아니라, 우리 조상들이 아시아에 도착하기 훨씬 이전에 그곳에 살다가 진화의 과정에서 사라진 먼 친척인 셈이다.

3.2. 중국의 강력한 반론: “우리는 여기서 진화했다”

전 세계 유전학자들이 RAO의 증거를 쌓아 올리는 동안에도, 중국의 고인류학자들은 자신들의 땅에서 발굴해 온 수많은 화석들을 근거로 전혀 다른 이야기를 펼쳤다. 이는 서구의 고전적인 ‘다지역 기원설(Multiregional Evolution, MRE)’ (Thorne & Wolpoff, 1992)에 뿌리를 두고, 중국의 특수성을 강조한 ‘혼혈을 동반한 연속 진화설(Continuity with Hybridization, CWH)’이다 (Wu, 2004).

이 이론의 주창자인 중국 고인류학계의 태두(泰斗), 오신지(吳新智)는 동아시아인의 진화라는 거대한 강물의 본류는 수십만 년 전 북경원인(北京原人)으로부터 시작해 바로 이 땅에서 끊임없이 흘러왔으며, 아프리카나 다른 지역에서 온 외부인들과의 혼혈은 강의 본류에 합쳐진 몇 개의 작은 샛강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Wu, 2006). 그들이 내세우는 가장 중요한 증거는 화석의 형태학적 특징이다. 그들은 삽처럼 안쪽이 약간 파인 모양의 앞니(shovel-shaped incisor)와 같은 몇몇 독특한 신체적 특징들이, 수십만 년 전의 중국 고인류 화석에서부터 현대 동아시아인들에게까지 대를 이어 꾸준히 나타난다고 주장한다. 만약 아프리카에서 온 이주민들이 기존 인류를 완전히 대체했다면, 이런 지역적 특징이 어떻게 계속 이어질 수 있겠냐는 것이 바로 그들이 ‘대체’가 아닌 ‘연속’을 주장하는 핵심 근거이다.

3.3. 10만 년 전의 증거, 과연 진실일까?

‘연속 진화설’을 지지하는 학자들은 아프리카인들의 아시아 도착 시점(6~7만 년 전)보다 훨씬 오래된 현생 인류 화석을 중국 땅에서 찾아내고자 했다. 그리고 2010년대, 그들은 마침내 그 증거를 찾았다고 생각했다. 중국 남부의 지인동(智人洞)과 복암동(福岩洞) 동굴에서 발견된 화석들이었다. 특히 복암동(福岩洞)에서는 형태상으로 완벽한 현생 인류의 치아 화석 47개가 발견되었고, 연대 측정 결과 최소 8만 년에서 최대 12만 년 전이라는 놀라운 결과가 나왔다 (Liu et al., 2015). 이는 RAO의 시간표를 완전히 무너뜨리는 강력한 증거처럼 보였다.

하지만 이 발견은 곧 방법론적 문제에 대한 강력한 비판에 직면했다.[9] 결국 2021년, 손설봉(孫雪峯)이 이끈 연구팀이 논란의 핵심인 치아 화석 자체의 나이를 직접 측정했다. 연구팀이 치아에 남은 미량의 단백질을 이용해 방사성탄소연대측정(14C)을 실시한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8만 년 이상으로 알려졌던 치아들은, 실제로는 마지막 빙하기가 끝난 후인 약 9천 년 전 이내의 아주 ‘젊은’ 치아였음이 밝혀졌다 (Sun et al., 2021). ‘스모킹 건’으로 여겨졌던 증거는, 결국 지층의 뒤섞임이 만들어낸 ‘오해’였음이 드러난 것이다.

3.4. 유전학의 첫 판결: 모든 남성의 뿌리는 아프리카

화석 증거를 둘러싼 논쟁과는 별개로, 유전학 연구실에서는 ‘연속 진화설’에 대한 훨씬 더 직접적인 검증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2001년, 중국 복단대학(復旦大學)의 금력(金力) 교수가 참여한 국제 연구팀은 동아시아 남성 1만 2천여 명의 Y염색체를 분석한 결과를 발표했다 (Ke et al., 2001). Y염색체는 아버지에게서 아들에게로만 물려받기에 부계 혈통을 추적하는 ‘유전적 성씨’와 같다. 만약 ‘연속 진화설’이 맞다면, 중국 남성들 중 상당수는 북경원인(北京原人)으로부터 물려받은 고유의 ‘중국계 성씨’를 가지고 있어야만 했다.

하지만 연구 결과는 매우 명확했다. 조사된 표본 전체에서, 아프리카를 벗어난 남성 계통이 공통으로 가지는 유전적 표지인 ‘M168’ 돌연변이가 보편적으로 확인되었다. 북경원인(北京原人)의 후손에게서 나타나야 할 고유한 ‘성씨’는 어디에서도 발견되지 않았다. 유전학의 족보에는, 현대 동아시아인의 모든 부계 혈통이 아프리카에서 시작되었음이 명백하게 기록되어 있었던 것이다.[10]

3.5. 우리 안의 네안데르탈인: 혼혈의 흔적들

‘아프리카 기원설’이 거의 모든 논쟁에서 승리한 것처럼 보이던 2010년대, 유전학은 다시 한번 우리를 놀라게 할 마지막 반전을 보여주었다. 그것은 바로 ‘혼혈’의 증거였다. 과학 기술의 발전 덕분에, 과학자들은 마침내 네안데르탈인과, 시베리아에서 새롭게 발견된 미지의 고인류 ‘데니소바인’의 뼈에서 DNA를 추출하여 그들의 게놈 전체를 해독하는 데 성공했다 (Green et al., 2010; Meyer et al., 2012; Prüfer et al., 2014). 그리고 이 고대 인류의 유전 정보를 오늘날 우리 현대인의 것과 비교하자, 놀라운 사실이 드러났다. 아프리카 대륙 바깥에 사는 모든 현대인의 DNA에는 약 1~2%의 네안데르탈인 유전자가 섞여 있다는 것이었다 (Sankararaman et al., 2014). 이는 우리 조상들이 아프리카를 떠나 다른 대륙으로 이주하는 과정에서, 그곳에 먼저 살고 있던 네안데르탈인과 만나 아이를 낳았다는 직접적인 증거였다. 심지어 2018년에는 아버지가 데니소바인이고 어머니가 네안데르탈인인 10대 소녀의 뼈, 일명 ‘데니(Denny)’가 발견되면서(Slon et al., 2018), 서로 다른 고인류 종 사이의 사랑이 실제로 존재했음이 의심의 여지 없이 증명되었다.

이러한 혼혈은 오늘날 우리에게 실질적인 ‘유산’을 남겨주었다. 가장 극적인 예는 티베트인의 고지대 적응 능력이다. 티베트인들이 해발 4,000미터가 넘는 희박한 산소 환경에서도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게 하는 특별한 유전자(EPAS1)는, 놀랍게도 수만 년 전 아시아에 살았던 데니소바인으로부터 물려받은 것이었다 (Huerta-Sánchez et al., 2014; Huerta-Sánchez et al., 2021). 이는 우리 조상들이 혼혈을 통해, 수십만 년 동안 아시아의 혹독한 환경에 먼저 적응하며 살았던 고인류의 ‘생존 노하우’를 유전자 형태로 물려받은, 즉 ‘적응적 유전자 도입(adaptive introgression)’이 일어났음을 보여준다.[11] 이 발견들은 기존의 RAO 모델을 ‘완전한 대체’가 아닌, ‘혼혈을 포함한 대체(RAO with hybridization)’ 모델로 더욱 정교하게 만들었다.

제4장. 중국인은 어떻게 하나의 민족이 되었나: 유전자로 본 동아시아인

3장에서 현생 인류의 큰 줄기가 아프리카에서 시작되었음을 확인했다. 그렇다면 이 거대한 흐름은 동아시아라는 특정 지역에서 구체적으로 어떻게 펼쳐졌을까? 북경원인(北京原人)이 중국인의 직계 조상이 아니라면, 진짜 중국인의 조상들은 누구이며, 그들은 어떻게 이 땅에 정착하고 퍼져나가 오늘날의 한국인, 중국인, 일본인을 형성했을까? 이제 고대 게놈학(ancient genomics)이라는 혁명적인 기술을 통해, 수천 년 전 살았던 사람들의 뼈에서 직접 유전 정보를 읽어내어 동아시아 인구 형성의 위대한 드라마를 재구성해 본다.[12]

4.1. 남과 북으로 나뉜 최초의 농부들: 동아시아의 두 원형

이야기는 약 9,500년 전, 농업이 막 시작되던 신석기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동아시아 대륙에는 유전적으로 뚜렷하게 구분되는 두 개의 큰 인류 집단이, 마치 서로 다른 두 개의 ‘유전적 국가’처럼 존재하고 있었다. 2020년에 발표된 한 획기적인 연구는 중국의 남부와 북부에서 출토된 9,500년에서 300년 전 사이의 26개 고대 인골 게놈을 분석하여, 이 두 집단의 존재를 명확하게 세상에 알렸다 (Yang et al., 2020).

  • 북방의 ‘황하(黃河) 농경민’: 황하(黃河) 유역을 중심으로 살았던 이들은 세계 최초로 ‘조’를 재배한 농부들이었다. 고고학적으로는 앙소(仰韶) 문화 등으로 알려진 이들의 유전자는 오늘날 한족(漢族)을 포함한 대부분의 동아시아인들과 가장 가까운, 즉 동아시아인의 ‘주류’ 조상으로 밝혀졌다. 이러한 유전적 변화는 농업의 확산과 같은 생계 방식의 변화와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Ning et al., 2020).
  • 남방의 ‘해안 수렵채집민’: 남부 복건성(福建省)의 해안가와 그 앞바다의 섬에 살았던 이들은 바다에 의지해 살던 사람들이었다. 특히 복건성(福建省) 양도(亮島)에서 발견된 ‘양도인(亮島人)’의 유전자는 오늘날 중국 대륙 사람들보다는, 대만 원주민을 포함하여 태평양의 수많은 섬에 퍼져 사는 오스트로네시아어족 사람들과 훨씬 더 가까웠다. 이는 언어학자들이 오랫동안 주장해 온, ‘태평양 섬사람들의 기원은 중국 남부 해안’이라는 가설을 증명하는 결정적인 유전학적 증거였다.

이처럼 신석기 시대 동아시아는 진령-회하선(秦嶺-淮河線)이라는 거대한 지리적 경계를 따라 뚜렷한 유전적 정체성을 유지하고 있었으나, 산동반도(山東半島)와 같은 북방 연안 지역의 인구는 남과 북의 유전자를 잇는 다리 역할을 하며 장기간에 걸친 유전자 흐름을 촉진했다 (Liu et al., 2025).

4.2. 세 조상 집단이 만든 동아시아의 뿌리: 3축 모델

남과 북이라는 이분법을 넘어, 동아시아인의 기원을 더 정교하게 설명하기 위해 과학자들은 2021년, 동아시아 인구사를 설명하는 가장 중요한 분석 틀인 ‘3축 모델(three-axis model)’을 제시했다 (Wang et al., 2021). 이 모델은 오늘날 동아시아인의 복잡한 유전적 구성이, 서로 다른 기원과 문화를 가진 세 개의 고대 조상 집단이 수천 년에 걸쳐 합쳐지고 섞인 결과라고 설명한다.[13]

  • 북방 축 (시베리아의 수렵채집민): 몽골 고원과 흑룡강(黑龍江) 유역을 중심으로 한 수렵채집민 및 초기 목축민 집단이다. 이들은 약 4만 년 전 북경(北京) 인근에 살았던 고대인 전원동인(田園洞人)의 유전적 후예로, 동아시아의 매우 깊은 토착적 뿌리를 대표한다 (Yang et al., 2017). 훗날 몽골어족과 퉁구스어족 사용자의 핵심 조상이 되었다.
  • 남방 축 (양자강의 벼농사민): 중국 남부와 동남아시아를 중심으로 한 집단으로, 양자강(揚子江) 유역의 초기 벼농사 집단과 관련이 깊다. 이들은 훗날 동남아시아와 태평양으로 퍼져나간 오스트로네시아어족, 오스트로아시아어족 사람들의 조상이다. 약 14,000년 전 운남성(雲南省)에서 발견된 ‘몽자인(蒙自人)’의 게놈은 이 남방 축의 깊은 고대적 다양성을 보여주는 중요한 증거다 (Wang et al., 2022).
  • 황하 축 (황하의 조 농사민): 황하(黃河) 유역의 조 농사를 짓던 집단으로, 오늘날 한족(漢族)과 티베트인의 가장 핵심적인 조상이다. 그들이 사용했던 언어는 오늘날 수억 명이 사용하는 중국어-티베트어족의 기원이 되었다.

이 모델의 핵심은, 세 번째 강인 황하(黃河) 농경민 집단이 신석기 시대 이후 폭발적으로 팽창하면서 남쪽과 서쪽으로 퍼져나가, 기존에 살고 있던 북방의 수렵채집민(첫 번째 강)과 남방의 벼농사민(두 번째 강)과 광범위하게 혼합되었다는 것이다. 오늘날 동아시아의 유전적 지형은 바로 이 세 번째 강의 거대한 확산과 그 과정에서 일어난 복잡한 혼합의 결과물이다.

4.3. 수천 년간의 이동과 혼합, 그 위대한 드라마

‘3축 모델’의 프레임워크를 바탕으로, 각 축을 따라 일어난 구체적인 인구 이동과 혼합의 역사를 따라가 보자.

북방 축의 역사는 유라시아 대초원이라는 거대한 무대를 배경으로 펼쳐졌다. 고대 게놈 연구는 기원전 2,000년경 청동기 시대부터 이미 동아시아계와 서부 유라시아계(유럽계)의 혼합이 활발히 진행되었음을 보여준다 (de Barros Damgaard et al., 2018). 특히 흉노(匈奴) 제국은 이란계, 한(漢)계 등 다양한 유전적 배경을 가진 집단들이 연합하여 형성된 다문화, 다민족 제국이었음이 밝혀졌다 (Jeong et al., 2020).

한편 남방 축의 역사는 중국 남부에서 동남아시아로 향하는 거대한 이주의 파도를 통해 이해할 수 있다. 고대 게놈 분석 결과, 동남아시아의 선사 시대는 최소 두 번 이상의 대규모 이주 파동으로 설명된다 (McColl et al., 2018; Lipson et al., 2018). 첫 번째는 신석기 시대에 중국 남부에서 기원한 농경민들이 이주하여 원래 살고 있던 토착 수렵채집민들과 혼합된 것이고, 이후 청동기 시대에 또 다른 유전적 특성을 가진 집단이 두 번째로 유입되어 오늘날 동남아시아의 복잡한 인구 구성을 만들었다.[14]

그리고 이 모든 흐름을 바꾼 가장 결정적인 사건은 바로 황하 축의 대팽창이었다. 신석기 시대 이후, 황하(黃河) 유역의 조 농사를 짓던 집단은 인구와 기술력을 바탕으로 남쪽으로 강력하게 팽창했다. 이 과정은 실제 대규모 인구 이동을 동반한 ‘인구 확산(demic diffusion)’이었으며(Yang et al., 2020; Wen et al., 2004), 이로 인해 신석기 시대에 뚜렷했던 남북 간의 유전적 경계가 점차 흐려졌다. 특히 현대 한족(漢族) 남성의 약 40%가 단 세 명의 신석기 시대 ‘슈퍼 조상’의 후손이라는 연구 결과는, 농업의 확산과 함께 특정 남성 혈통(Y염색체)이 얼마나 폭발적으로 확산되었는지를 보여준다 (Yan et al., 2013).

4.4. 특별 탐구: 일본인은 어디에서 왔는가?

동아시아 본토에서 일어난 거대한 인구 이동과 혼합의 파동이 동쪽 끝의 섬인 일본 열도에는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오랫동안 일본인의 기원은 토착 수렵채집민인 조몬인(縄文人)과, 한반도를 통해 이주해 온 야요이인(弥生人)의 혼혈이라는 ‘이중 구조 모델’로 설명되었다. 하지만 2021년, 고대 인골 DNA 분석 연구는 이 모델을 근본적으로 수정하는 ‘3원 기원 모델(tripartite model)’을 제시했다 (Cooke et al., 2021).

이 새로운 모델에 따르면, 현대 일본인의 유전적 구성은 세 개의 서로 다른 조상 집단이 순차적으로 섞인 결과물이다.

  • 제1의 조상 (기층): 약 16,000년 전부터 일본 열도에 살아온 토착 수렵채집민 조몬인(縄文人)의 유전자.
  • 제2의 조상 (첫 번째 파동): 약 3,000년 전, 벼농사 기술과 함께 한반도를 통해 유입된 동북아시아 계통의 야요이인(弥生人)의 유전자.
  • 제3의 조상 (두 번째 파동): 약 1,700년 전, 일본에 국가가 형성되던 고훈(古墳) 시대에 유입된 또 다른 동아시아(한족(漢族)과 유사한) 계통의 유전자.

이 3원 모델은 동아시아 본토에서 일어난 신석기 시대 농경민의 확산(야요이 혈통)과 이후 역사 시대의 인구 이동(고훈 혈통)이 일본 열도의 인구 구성에 순차적으로 파동을 일으키며 오늘날의 일본인을 형성했음을 명확히 보여준다.

제3부: 상징의 정치학: 국가는 어떻게 조상을 만드는가

제5장. ‘조상’을 필요로 하는 나라: 중화사상과 백년의 상처

과학적 사실이 국가의 이데올로기적 필요와 만날 때, 과학은 순수한 지식의 영역을 넘어 강력한 정치적 상징으로 재탄생한다. 북경원인(北京原人)이 현대 중국인의 직계 조상이 아니라는 과학적 결론에도 불구하고, 이 화석 인류가 오늘날까지 중국에서 강력한 국가적 시조로 남아있는 이유를 이해하려면, 먼저 그 서사를 간절히 필요로 하는 중국의 깊은 이데올로기적, 심리적 토대를 분석해야 한다. 그 토대는 바로 수천 년간 이어져 온 ‘중화사상(中華思想)’이라는 세계관과, 근대 시기 겪었던 ‘백년국치(百年國恥)’라는 뼈아픈 역사적 트라우마에 있다.

고고학과 인류학이 민족주의와 결합하는 현상은 지역과 시대를 초월하여 나타나는 보편적인 현상이다.[15] 학자 배리 소트먼(Barry Sautman)은 중국의 고인류학과 고고학이 현대 중국의 민족주의라는 거대한 옷감을 짜는 ‘개념적인 날실과 씨실을 제공한다’고 날카롭게 지적했다 (Sautman, 2001). 즉, 북경원인(北京原人)에 대한 서사는 단순한 과학 이론이 아니라, 국가 정체성을 구축하기 위한 거대한 프로젝트의 핵심 재료라는 것이다.

5.1. 외부 기원설과 충돌하는 ‘문명의 중심’이라는 믿음

수천 년 동안, 중국은 스스로를 세계의 유일한 문명 중심, 즉 ‘중국(中國)’, 말 그대로 ‘가운데의 나라’라고 믿었다. 이러한 자문화 중심주의 사상을 중화사상(中華思想)이라고 부른다 (Callahan, 2012). 이 세계관은 춘추전국시대(春秋戰國時代)를 거쳐 진(秦)·한(漢) 시대에 체계화되었으며, 세상을 명확히 둘로 나누었다. 중국 천자의 통치력이 미치는 문명 세계를 ‘화(華)’, 그리고 그 주변의 가르침이 필요한 미개한 땅을 ‘이(夷)’로 구분하는 화이론적 질서(華夷秩序)가 바로 그것이다 (Fairbank, 1968). 이처럼 자신들이 인류 문명의 유일한 시원이자 중심이라고 믿어온 이들에게, ‘아프리카 기원설’은 단순한 과학 이론을 넘어 그들의 세계관 자체를 부정하는 심리적 충격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었다. 인류 역사의 출발점이 ‘가운데 나라’가 아니라, 그들이 오랫동안 변방으로 여겨왔던 머나먼 아프리카 대륙이라는 사실은, 문명적 자존심에 깊은 상처를 내는 불편한 진실이었다.

5.2. 역사적 트라우마가 ‘토착 조상’을 소환하다

중화사상(中華思想)이라는 오래된 토양 위에, 근대 시기의 뼈아픈 상처가 더해지면서 ‘토착 조상’에 대한 열망은 국가적 염원이 되었다. 그 상처가 바로 ‘백년국치(百年國恥)’, 즉 ‘백 년간의 국가적 치욕’이라는, 중국 현대사를 관통하는 거대한 역사적 트라우마다 (Cohen, 2002). 19세기 중반 아편전쟁(1839-1842)을 시작으로 중화인민공화국이 수립되는 1949년까지, 약 110년간 중국은 서구 열강과 일본에 의해 역사상 유례없는 굴욕을 겪었다. 세계의 중심이라 믿었던 제국은 무력하게 무너졌고, 서구인들은 중국을 ‘동아병부(東亞病夫, 동아시아의 병든 남자)’라 조롱했다. 이 모든 굴욕의 기억은 오늘날 현대 중국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가장 핵심적인 건국 서사로 자리 잡았다 (Kaufman, 2011). 특히 중국 공산당은 자신들이 바로 이 ‘백년국치(百年國恥)’를 종식시키고 잃어버린 국가의 주권과 존엄을 되찾게 한 유일한 정치 세력임을 강조함으로써, 통치의 정당성을 확보한다 (Chen, 2005).

바로 이 지점에서 ‘조상’의 문제가 중요해진다. ‘치욕을 극복하고 위대한 민족을 부흥시킨다’는 서사가 최대의 감정적, 정치적 힘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치욕을 당하고 다시 일어서는 주체, 즉 중화민족(中華民族)이 외부에서 온 이주민이 아니라, 수천수만 년 전부터 바로 이 땅에 뿌리박고 살아온 고대적이고 순수한 존재여야만 한다. 이러한 서사 구조 속에서, 중국인의 조상이 불과 수만 년 전에 아프리카에서 온 이주민의 후예라는 ‘아프리카 기원설’은 이데올로기적으로 매우 불편하고 위험한 이야기가 된다 (Cheng, 2017). 반면, 수십만 년 전부터 중국 땅에서 독자적으로 진화해 온 고유의 조상, 즉 북경원인(北京原人)의 이야기는 이 모든 이데올로기적 필요를 완벽하게 충족시킨다. 북경원인(北京原人)은 ‘동아병부(東亞病夫)’라는 오명을 씻어낼 ‘과학적’ 증거이자, ‘백년국치(百年國恥)’를 딛고 일어선 중국 민족의 역사적 정통성과 그 깊이를 증명해 주는 가장 강력한 상징이 된다. 그는 더 이상 단순한 화석 인류가 아니라, 국가의 서사를 완성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이데올로기적 ‘시조(始祖)’로 소환되는 것이다.[16]

제6장. 시대의 아이콘, 북경원인의 끝없는 변신

하나의 과학적 발견은 그것을 해석하는 시대의 필요에 따라 전혀 다른 옷을 입는다. 북경원인(北京原人)만큼 이 진리를 극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도 드물다. 그는 발견된 순간부터 단순한 고인류 화석에 머무르지 않고, 중국의 격동적인 현대사 속에서 각기 다른 정치 체제의 요구에 부응하며 끊임없이 새로운 역할과 의미를 부여받았다. 그는 민족의 자긍심이었다가, 계급투쟁의 교본이 되었고, 마침내 국가 통합의 성스러운 상징으로 거듭났다.

6.1. 중화민국 시기: 민족 자긍심의 원천 (1920년대-1940년대)

1920년대 후반, 북경원인(北京原人)의 발견 소식이 전해졌을 때, 당시 중국 대륙을 통치하던 중화민국(中華民國) 정부는 깊은 위기에 빠져 있었다. 내부적으로는 군벌(軍閥)들의 할거로 국론이 분열되어 있었고, 외부적으로는 서구 열강과 일본의 거센 침탈에 시달리고 있었다. 바로 이런 절망적인 시기에, 북경원인(北京原人)의 발견은 서구 중심의 진화 서사에 맞서, 중국 문명의 독자성과 유구함을 과학적으로 증명하는 가장 확실한 증거로 활용되었다 (Curran, 2010). 이는 분열된 민심을 하나로 모으고 근대 국가로서의 정체성을 확립하려는 고도의 정치적 프로젝트였다 (Cheng, 2017). 정부의 이러한 의도는 실제 교육 정책에도 반영되었다. 1934년, 중화민국 교육부(國民政府 敎育部)가 발행한 《과학 교육 지도 강요(科學敎育指導綱要)》와 같은 공식 문서는, 과학 교육을 통해 새로운 국가 정체성을 이처럼 유구하고 과학적인 과거 위에 구축하고자 하는 정부의 뚜렷한 목표를 보여준다 (國民政府 敎育部檔案, 1934). 북경원인(北京原人)은 그렇게 ‘과학적 애국주의’의 첫 번째 아이콘이 되었다.

6.2. 모택동 시대: 노동 이데올로기의 화신 (1950년대-1970년대)

1949년, 모택동(毛澤東)이 이끄는 공산당이 중국 대륙을 장악하면서, 북경원인(北京原人)은 또 한 번의 극적인 변신을 겪게 된다. 공산당은 그에게 마르크스주의 이데올로기를 대중에게 전파하는 가장 효과적인 선전 도구의 역할을 부여했다 (Schmalzer, 2008). 그들이 주목한 것은 프리드리히 엥겔스(Friedrich Engels)의 유명한 명제, “노동이 인간을 만들었다”였다. 유인원이 두 발로 서고, 돌을 깨뜨려 도구를 만드는 ‘노동’을 통해 비로소 사고하는 ‘인간’으로 진화했다는 이 사상은, 육체노동의 신성함과 프롤레타리아 계급의 역사적 우월성을 강조하는 공산주의 이데올로기의 핵심이었다. 그리고 이 추상적인 이론을 대중에게 보여줄 가장 완벽한 실물 교보재가 바로 북경원인(北京原人)이었다. 박물관과 교과서 속에서 그는 돌망치를 손에 쥔 채 불을 피우는 원시 노동자, 즉 ‘최초의 프롤레타리아 영웅’으로 재탄생했다.

이러한 과학의 정치화는 ‘원모인(元謀人)’의 사례에서 절정에 달한다. 1965년 운남성(雲南省)에서 발견된 이 화석의 연대는 당시 기술로는 측정이 불분명했음에도 불구하고, 1972년 2월 미국 대통령 리처드 닉슨의 역사적인 방중 직후, 중국 정부는 원모인(元謀人)이 무려 170만 년 전의 화석이라고 대대적으로 발표했다 (Cheng, 2019). 이는 과학적 검증 절차보다는, 미소 냉전의 한복판에서 중국의 독자적인 역사와 위상을 과시하려는 명백한 정치적 계산에 따른 것이었다 (Liu, 2006).

6.3. 개혁개방 시대: 애국주의 교육의 상징 (1980년대-현재)

모택동(毛澤東)의 사망과 문화대혁명의 종식 이후, 중국은 개혁개방의 길로 들어섰다. 낡은 계급투쟁의 구호가 힘을 잃자, 중국 공산당은 흩어지는 인민을 하나로 묶을 새로운 접착제로 ‘민족주의’와 ‘애국주의’를 선택했다 (Zhao, 1998). 이 새로운 시대에, 북경원인(北京原人)은 또다시 국가의 부름을 받아 민족의 단결과 문화적 자부심을 고취하는 성스러운 상징으로 부활했다.

가장 먼저, 과학의 현장이었던 주구점 유적지는 정치 교육의 성지로 탈바꿈했다. 1997년 6월 11일, 중국공산당 중앙선전부(中共中央宣傳部)는 주구점 유적지를 ‘제1차 전국 애국주의 교육 시범 기지’ 100곳 중 하나로 공식 지정했다 (中共中央宣傳部, 1997). 이제 전국의 학생들은 이곳을 방문하여 위대한 중화민족의 시조 앞에서 민족적 자부심과 국가에 대한 충성심을 배우게 되었다. 이러한 역할은 2024년부터 시행된 《중화인민공화국 애국주의 교육법》을 통해 법적으로 더욱 강화되었다 (中華人民共和國全國人民代表大會, 2023).

하지만 이 상징 조작의 정점은 바로 ‘국가 의례’의 창조였다. 1993년 제7회 전국체전에서는 주구점(周口店)에서 ‘문명의 불’을 채화하는 행사가 실제로 거행되었으며, 2008년 북경 올림픽 때는 올림픽 성화의 북경 구간 최종일 릴레이가 바로 이곳에서 시작되었다. 이는 올림픽의 기원인 고대 그리스의 올림피아를 의식적으로 모방한 것으로, 중국 문명의 기원이 서구 못지않게 유구하고 신성하다는 메시지를 전 세계에 발신하려는 의도였다. 2000년 1월, 북경(北京)의 중화세기단(中華世紀壇)에서는 주구점(周口店)에서 채화한 ‘성스러운 불꽃’이 점화되는 국가 의례가 거행되며, 북경원인(北京原人)으로부터 현대 중국 국가로 이어지는 끊어지지 않는 문명의 계승을 시각적으로 구현했다 (Cheng, 2017; Peng, 2024).

제7장. 정부의 정교한 줄타기: 과학적 사실과 국가 신화 사이

우리는 이제 하나의 명백하고도 거대한 모순에 도달한다. 한쪽에는 ‘모든 현생 인류는 아프리카에서 왔다’는, 더 이상 거부하기 힘든 과학계의 정설이 있다. 다른 한쪽에는 ‘북경원인(北京原人)은 중국인의 직계 조상’이라는, 국가 통합을 위해 수십 년간 공들여 쌓아 올린 강력한 민족주의 신화가 있다. 과학적 진실과 정치적 필요가 정면으로 충돌하는 이 상황에서, 현대 중국 정부는 둘 중 하나를 선택하여 다른 하나를 폐기하는 흑백논리의 방식을 택하지 않았다. 대신, 그들은 이 모순을 부정하거나 해결하려 하지 않고, 오히려 그것을 지극히 정교하게 ‘관리’하는, 매우 현대적이고 세련된 통치 기술을 보여주고 있다. 바로 서로 다른 대상을 향해, 서로 다른 메시지를 전달하는 ‘이중 트랙(dual-track)’ 전략이다.

7.1. 트랙 1: 교과서의 진실 – 과학 엘리트에게는 ‘아프리카 기원’을 가르치다

가장 주목할 만한 변화는 국가 교육 시스템에서 나타났다. 2020년 개정된 고등학교 생물학 교육과정 표준은 진화 단원에서 공통 조상과 분자 증거 등 현대 진화론의 핵심 개념 학습을 강조하고 있으며, 이를 바탕으로 다수의 국가 검정 교과서와 보조 자료에서는 ‘아프리카 기원설’이 사실상 표준으로 소개 및 교육되고 있다. 이는 국가가 공인하는 지식 체계 내에서 인류 기원에 대한 서술이 변화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다. 이제 중국의 미래를 이끌어갈 과학자, 의사, 공학도들은 고등학교 생물 시간에 인류의 아프리카 기원을 ‘과학적 사실’로 배우게 된 것이다.

중국의 젊은 과학자 세대 역시 국제 학계와의 교류가 활발해지면서, ‘아프리카 기원 및 지역 혼합’ 모델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추세다 (Liu et al., 2025). 여기에는 매우 냉철하고 현실적인 국가 전략이 깔려있다. 21세기 기술 패권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중국은 유전 공학, 생명 과학, 첨단 의료 기술 분야에서 세계 최고 수준에 도달해야만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중국의 최고 과학자들이 국제 학계와 동일한 언어와 이론적 기반 위에서 소통하고 경쟁해야 한다. 만약 자국의 미래 엘리트들에게 국제 학계에서 통용되지 않는 과학을 가르친다면, 이는 국가의 과학 경쟁력을 스스로 갉아먹는 자해 행위가 될 것이다. 결국 이는 ‘기술 전쟁’에서의 실리를 택한 고도의 프래그머티즘(pragmatism)적 선택이다.

7.2. 트랙 2: 박물관의 신화 – 대중에게는 ‘중국인의 조상’을 보여주다

하지만 당신이 중국의 최첨단 생물학 교실에서 나와, 주말을 맞아 가족과 함께 길 건너편의 역사 박물관으로 들어가는 순간, 전혀 다른 시공간으로 이동하게 된다. 대중을 대상으로 하는 역사 교과서, 국립 박물관의 전시 패널, TV 역사 다큐멘터리, 그리고 국가적 기념 행사에서는, 여전히 북경원인(北京原人)이 자랑스러운 ‘중국인의 조상’으로, 조금의 의심도 없이 소개된다 (Cheng, 2017). 주구점(周口店) 유적 박물관의 디오라마 속에서는 얼굴에 뚜렷한 동아시아인의 특징을 가진 북경원인(北京原人) 가족이 함께 불을 피우고 노동하며 공동체를 이루는 모습이 감동적으로 연출된다. 전시물의 설명 어디에서도 ‘아프리카’, ‘이주’, ‘대체’와 같은 단어는 찾아보기 어렵다. 그곳에서 방문객이 경험하는 것은 과학적 논쟁이 아니라, 수십만 년간 이 땅을 지켜온 조상에 대한 경외감과 민족적 자부심이라는 감정이다. 이러한 서사는 일부 학자들이 여전히 ‘동아시아 기원설’을 옹호하며 민족주의적 서사에 학술적인 권위를 더해주는 역할을 통해 더욱 강화되기도 한다 (Peng, 2024).

7.3. 두 개의 서사, 하나의 국가: 모순을 관리하는 기술

어떻게 ‘우리는 아프리카에서 왔다’는 진실과, ‘우리는 수십만 년간 이곳에 있었다’는 신화가 하나의 국가 안에서 동시에, 그리고 공식적으로 존재할 수 있을까? 이는 중국 정부가 이 두 개의 서사를 서로 다른 목표를 가진, 완벽하게 분리된 트랙 위에서 운영하기에 가능하다. 이는 단순한 혼란이나 정책의 실수가 아니라, 지극히 의도되고 고도로 계산된 국가 전략이다.

  • 트랙 1 (과학 엘리트 트랙): 목표는 ‘기술 발전과 국제 경쟁력 확보’다. 대상은 미래의 과학 기술 인재들이며, 내용은 국제 표준에 부합하는 ‘과학적 진실’이다.
  • 트랙 2 (대중 교육 트랙): 목표는 ‘국민 통합과 정치적 안정 유지’다. 대상은 일반 대중과 학생들이며, 내용은 민족적 자부심을 고취하는 ‘국가적 신화’다.

국가는 과학적 진실이 가져다주는 이점(기술 발전, 국제적 위상)을 모두 취하는 동시에, 그 진실이 야기할 수 있는 이데올로기적 불안정성(민족 서사의 약화)을 효과적으로 통제하는, 놀라운 균형감각을 보여주고 있다. 이 정교한 이중 트랙 전략은, 21세기 정보화 시대에 국가가 어떻게 과학과 신화를 동시에 활용하여 국가적 목표를 달성하는지를 보여주는 생생한 사례다.

제8장. 과학자와 대중, 서로 다른 상상력

국가가 거대한 서사를 만들어낼 때, 그 안의 사람들은 어떤 삶을 살아갈까? 과학자들은 정치적 폭풍 속에서 어떻게 자신의 연구와 신념을 지켜냈을까? 그리고 대중은 국가가 제시하는 공식적인 조상 이야기를 그대로 받아들이기만 했을까? 이 장에서는 거대한 담론의 그늘 아래, 국가의 서사와 상호작용하며 자신들의 이야기를 만들어갔던 과학자들과 대중의 구체적인 삶과 상상력을 들여다본다.

8.1. 광풍의 시대, 과학자의 순응과 저항

북경원인(北京原人) 이야기의 중심에는 중국 고인류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두 명의 위대한 과학자, 첫 두개골 발견자인 배문중(裴文中)과 그의 뒤를 이어 주구점(周口店) 발굴을 평생의 업으로 삼았던 가란파(賈蘭坡)가 있다. 특히 가란파의 파란만장한 삶은 정치의 광풍이 과학의 전당을 덮쳤을 때 한 지식인이 겪어야 했던 고뇌와 선택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1966년, 중국 전역에 문화대혁명(1966-1976)의 광풍이 몰아닥쳤다. ‘낡은 모든 것’을 파괴한다는 명분 아래, 서구 학문과 연계된 지식인들은 ‘반동분자’로 공격 대상이 되었다. 세계적인 명성을 가진 고인류학자였던 가란파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그는 하루아침에 ‘부르주아 반동 학술 권위자’라는 딱지가 붙은 채, 자신이 평생을 바쳐 이끌어온 연구소에서 공개적으로 비판받고 모욕당하는 ‘비판투쟁대회(批鬥大會)’에 끌려다녔다 (Olsen and Miller-Antonio, 2004).

바로 이 절망과 공포의 한복판에서, 노학자 가란파는 자신의 목숨을 건 위대한 저항을 감행한다. 그는 홍위병(紅衛兵)들이 주구점(周口店)의 수십 년간 축적된 발굴 기록 원본과 자료들을 소각하려 한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그는 엄청난 개인적 위험을 무릅쓰고, 이 귀중한 자료들을 비밀리에 빼돌려 자신의 집과 동료들의 집에 나누어 숨겼다. 덕분에 주구점(周口店) 연구의 과학적 명맥은 기적적으로 이어질 수 있었다 (Goodrum, 2016).

하지만 그의 삶은 단순한 저항의 서사로만 그릴 수 없다. 문화대혁명이 끝난 후 학계에 복귀한 그는, 평생에 걸쳐 국가가 선호하는 ‘다지역 기원설’, 즉 북경원인(北京原人)이 중국인의 직계 조상이라는 서사를 가장 강력하게 지지하고 설파한 학자 중 한 명이기도 했다 (Jia, 1980). 그의 이중적인 모습은, 정치적 격랑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때로는 체제에 순응하면서도 과학자로서의 양심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해야 했던 당시 지식인들의 복잡한 현실을 보여준다.

8.2. 국가가 ‘조상’을 말할 때, 대중은 ‘야인(野人)’을 꿈꿨다

국가가 북경원인(北京原人)을 질서정연하고 노동하는 ‘문명적 조상’으로 열심히 가르치고 있을 때, 중국 대중의 상상력은 전혀 다른 곳을 향해 폭발하고 있었다. 바로 국가의 통제를 벗어난, 신비롭고 길들여지지 않은 존재, 중국판 빅풋인 ‘야인(野人)’, 즉 ‘들사람’이었다.

야인(野人)에 대한 목격담은 고대부터 존재했지만, 특히 모(毛) 시대의 엄격한 사회 통제가 끝나고 사회가 개방되기 시작한 1970년대 후반과 1980년대에 전국적인 신드롬을 불러일으켰다 (Schmalzer, 2008). 후베이성(湖北省)의 깊은 산골 신농가(神農架) 지역을 중심으로, 키가 크고 온몸이 털로 뒤덮인 생명체를 목격했다는 증언이 쏟아져 나왔다. 이 열풍은 단순한 미신을 넘어, 심지어 중국과학원(中國科學院)이 직접 대규모 국가 탐사대를 조직하여 야인(野人)의 발자국으로 추정되는 흔적을 분석하고(Meldrum and Zhou, 2012), 대대적인 수색 작업을 벌이는 단계에까지 이르렀다 (Smith, 2021).

이 ‘야인 신드롬’은 국가가 제시하는 공식 서사에 대한 ‘대항 담론(counter-discourse)’으로 해석될 수 있다 (Schmalzer, 2008). 야인(野人)은 국가가 제시하는 공식 조상, 북경원인(北京原人)이 가진 모든 것의 정반대에 서 있는 존재였다. 북경원인(北京原人)이 석기를 사용하고 불을 피우며 문명으로 나아가는 진보적 존재였다면, 야인(野人)은 문명을 거부한 원시적이고 자유로운 존재였다. 북경원인(北京原人)이 국가에 의해 완벽하게 분석되고 정의 내려진 통제 가능한 과거를 상징했다면, 야인(野人)은 아직 발견되지 않은 미지의 신비로운 존재를 상징했다. 국가가 ‘노동하는 인간’이라는 이성적이고 진보적인 조상상을 제시할 때, 대중은 통제 불가능하고 신비로운 ‘야인(野人)’에 열광했다 (Smith, 2021). 이는 공식 서사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인간 경험의 복잡성과, 억압된 사회에서 분출하는 상상력의 힘을 보여주는 중요한 문화적 현상이다.

제9장. 보이지 않는 전쟁: ‘인류의 역사’를 선점하라

21세기, 북경원인(北京原人)을 둘러싼 이야기는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든다. 21세기 중국의 고인류학과 고생물학은 막대한 국가적 투자와 폭발적인 화석 발견에 힘입어 그야말로 ‘황금기’를 맞이하고 있다 (Zhou et al., 2021). 바로 이러한 자신감을 바탕으로, 중국은 과거에는 화석의 ‘해석’을 둘러싼 이데올로기적 경쟁을 벌였다면, 이제는 화석과 유전자 데이터라는 ‘자원’ 자체를 통제하고, 이를 통해 인류의 역사 전체에 대한 ‘발언권’을 확보하려는, 훨씬 더 근본적이고 전략적인 경쟁을 시작했다.

9.1. “모든 뼈는 국가의 것”: 데이터 주권의 법제화

21세기에 들어, 중국은 과거의 유산을 보호하기 위한 새로운 ‘만리장성’을 쌓기 시작했다. 이 장성은 돌과 흙이 아닌, 법률과 규제라는 보이지 않는 벽돌로 만들어졌으며, 국가의 핵심 전략자산으로 규정된 화석과 인간 유전 자원을 보호하고 ‘과학적 주권(scientific sovereignty)’을 구축하기 위한 것이다.

그 첫 번째 벽돌은 2011년에 공포된 《고생물화석 보호조례》(국무원령 제580호)였다. 이 법령은 중국 영토 내에서 발견되는 모든 화석의 소유권이 국가에 귀속됨을 명시하고, 화석의 발굴 및 국외 반출에 대한 엄격한 허가 절차를 규정했다 (中華人民共和國國務院令第580號, 2011).

더욱 강력하고 전방위적인 통제는 유전 정보의 영역에서 이루어졌다. 2019년에 시행된 《인류유전자원 관리조례》는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데이터 민족주의’ 법안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 (中華人民共和國, 2019). 이 조례의 핵심 내용은 다음과 같다.

  • 샘플 통제: 외국인이나 외국 기관은 중국인의 DNA, 혈액, 조직 등 어떤 형태의 인간 유전 자원도 독자적으로 수집하거나 보존할 수 없다.
  • 연구 주도권: 모든 국제 공동 연구는 반드시 중국 측 기관이 실질적인 주도권을 가져야 한다.
  • 데이터 국경: 연구 과정에서 생산된 모든 원본 데이터와 기록은 중국 외부로 반출하는 것이 원칙적으로 금지되며, 예외적인 경우에도 모든 데이터의 백업 사본은 의무적으로 중국 내 서버에 보관해야 한다.

이 법 조항들이 외국인 과학자에게 보내는 메시지는 서늘할 정도로 명확하다. “당신들의 선진 기술과 연구비는 환영한다. 하지만 연구의 핵심 자산인 샘플과 데이터는 한 발짝도 이 국경 밖으로 나갈 수 없다. 그리고 그로부터 나오는 모든 영광과 소유권은 궁극적으로 중국의 것이다.”

9.2. 화어권(話語權) 쟁탈: 역사의 저자가 되려는 야망

중국은 왜 이토록 강력한 법률적 요새를 구축하는 것일까? 이는 단순히 몇 점의 화석이나 DNA 샘플을 보호하려는 차원을 넘어선다. 궁극적인 목표는 바로 ‘화어권(話語權)’, 즉 ‘담론 권력’을 장악하는 것이다. ‘화어권(話語權)’은 단순히 ‘말할 권리’를 넘어, 의제를 설정하고, 논쟁의 규칙을 정하며, 최종적인 해석을 내릴 수 있는 권력을 의미한다. 즉, 인류 진화의 역사라는 거대한 책을 집필하는 ‘저자’의 자리를 차지하겠다는 야망이다.

지난 한 세기 동안, 인류 진화의 역사는 주로 서구의 연구실에서 쓰여졌다. 하지만 이제 중국은 더 이상 ‘원자재’ 공급자 역할에 만족하지 않는다. 그들은 자국의 풍부한 화석 증거와 막대한 자본을 바탕으로, 인류 진화 이야기의 새로운 저자가 되기를 원한다 (Wu et al., 2019). 데이터와 화석에 대한 접근을 통제함으로써, 중국은 연구의 방향과 결과의 해석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되었으며, 이는 과학의 영역을 넘어선 지정학적 경쟁의 새로운 전선이 되고 있다.

결론: 만들어진 조상, 그리고 중국이라는 현재

그래서, 북경원인(北京原人)은 현재 중국인의 조상인가?

이 보고서의 긴 여정을 마친 지금, 우리는 이 질문이 처음부터 두 개의 서로 다른 세계에 속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하나는 증거와 데이터, 그리고 끝없는 회의(懷疑)를 통해 진실을 탐구하는 과학의 세계다. 다른 하나는 정체성과 기억, 그리고 강력한 서사를 통해 국민을 하나로 묶으려는 국가와 정치의 세계다. 이 두 세계는 같은 ‘과거’를 바라보지만, 전혀 다른 것을 보고 있으며, 따라서 전혀 다른 답을 내놓는다.

과학의 세계가 내놓은 답은 명확하고 일관된다. 1980년대 후반, ‘미토콘드리아 이브’의 발견으로 시작된 유전학 혁명은 현대 동아시아인의 Y염색체가 모두 아프리카에서 기원했음을 증명하며, 북경원인(北京原人)과의 직접적인 유전적 연속성이 없음을 보여주었다 (Ke et al., 2001). 21세기에 들어 고대 게놈 해독 기술은 한 걸음 더 나아가, 동아시아인의 형성이 북경원인(北京原人)으로부터 이어지는 단일하고 순수한 혈통의 연속이 아님을 명백히 밝혔다. 오히려 그것은 북방, 남방, 그리고 황하(黃河) 유역이라는 세 축을 따라 수천 년에 걸쳐 서로 만나고 섞이면서 만들어낸 복잡하고 역동적인 ‘혼합의 역사’였다 (Wang et al., 2021). 과학의 언어로 말하자면, 북경원인(北京原人)은 중국인 가계도의 직계 조상이 아니라, 진화의 거대한 강줄기에서 갈라져 나와 사라져간 하나의 곁가지다.

반면, 국가와 정치의 세계가 내놓은 답은 더욱 단호하고 절박하다. 그 답은 데이터가 아닌, ‘백년국치(百年國恥)’라는 깊은 역사적 트라우마에서 시작된다 (Kaufman, 2011). 서구 열강과 일본에 의해 문명의 자존심이 무참히 짓밟혔던 고통스러운 기억은 ‘우리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강력한 답을 요구했다. 그것은 바로 ‘우리는 외부인이 아니라, 수십만 년 전부터 바로 이 땅을 지켜온 유구하고 위대한 민족’이라는 서사였다. 이 서사를 증명해 줄 상징이 절실히 필요했고, 북경원인(北京原人)은 그 역할을 위해 역사 속에서 소환되었다. 그는 중화민국 시기에는 민족 자긍심의 원천이었고, 모택동(毛澤東) 시대에는 프롤레타리아 영웅으로 변신했으며, 개혁개방 이후에는 흩어진 민심을 하나로 묶는 애국주의 교육의 성스러운 상징으로 거듭났다 (Zhao, 1998).

오늘날, 세계 최강대국을 꿈꾸는 현대 중국은 이 두 개의 상충하는 진실 사이에서 어느 하나도 포기하지 않는 정교한 ‘이중 트랙(dual-track)’ 전략을 구사한다. 한편으로는 미래의 기술 패권을 위해, 교육과정 표준을 통해 현대 진화론을 강조하고 실제 교과서에서는 ‘아프리카 기원설’이라는 국제 표준을 가르친다. 다른 한편으로는 국민적 통합과 체제 유지를 위해 박물관과 대중 매체를 통해 ‘북경원인(北京原人) 신화’를 끊임없이 유포한다. 국가는 이 모순을 해결하는 대신, 그것을 분리하여 관리함으로써 양쪽의 이득을 모두 취하는 고도의 통치술을 완성한 것이다.

결국 북경원인(北京原人)의 이야기는 역사학자 에릭 홉스봄(Eric Hobsbawm)과 테렌스 레인저(Terence Ranger)가 말한 《만들어진 전통(The Invention of Tradition)》의 가장 완벽하고 현대적인 사례다 (Hobsbawm and Ranger, 1983). 그것은 아득한 과거와의 연속성을 주장하지만, 실제로는 현재의 정치적, 문화적 필요에 의해 창조되고 끊임없이 재구성되는 서사인 것이다. 이 보고서가 최종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과거란 땅속에 묻힌 채 우리를 기다리는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Schmalzer, 2008). 과거는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필요와 욕망에 의해 끊임없이 재해석되고 동원되는 살아있는 자원이다 (Cheng, 2017). 북경원인(北京原人)이라는 화석 자체는 전쟁의 포화 속으로 영원히 사라졌을지 모르지만, 북경원인(北京原人)이라는 상징은, 중국이 스스로에게 ‘우리는 누구이며, 어디에서 왔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는 한, 앞으로도 계속해서 새로운 모습으로 재창조될 것이다. 그의 이야기는 결국 아득한 과거의 진실을 비추는 창이 아니라, ‘중국’이라는 현재의 욕망과 정체성을 가장 선명하게 비추는 거울로 우리 곁에 남을 것이다.

각주 (Footnotes)

[1] 고고학과 인류학이 민족주의와 결합하는 현상은 보편적이다 (Kohl and Fawcett, 1995; Díaz-Andreu and Champion, 2016). 배리 소트먼(Barry Sautman)은 중국의 고인류학과 고고학이 현대 중국의 민족주의라는 거대한 옷감을 짜는 ‘개념적인 날실과 씨실을 제공한다’고 지적하며, 과학적 담론이 국가 정체성 프로젝트의 핵심 재료로 사용됨을 분석했다 (Sautman, 2001; Schmalzer, 2008).

[2] 각 모델의 핵심 가정은 다음과 같다. 아프리카 기원설(RAO)은 현생인류가 아프리카에서 출현하여 전 세계로 이주하며 다른 고인류를 대체했다는 모델이다 (Cann, Stoneking, and Wilson, 1987). 다지역 기원설(MRE)은 호모 에렉투스가 각 지역에서 병렬적으로 진화하며 유전자 교류를 통해 단일 종을 유지했다는 과거의 가설이다 (Thorne and Wolpoff, 1992). 혼혈을 동반한 연속 진화설(CWH)은 중국의 호모 에렉투스가 현대 동아시아인으로 연속 진화하는 것이 주류이며 외부와의 혼혈은 부차적이라고 보는 중국 학계의 주장이다 (Wu, 2004; Wu and Cui, 2010).

[3] 주구점(周口店)의 발견은 이후 동아시아 인류 진화에 대한 모든 후속 연구의 초석이 되었으며, 학자들은 플라이스토세 화석 기록을 논할 때 주구점(周口店) 자료의 중요성을 지속적으로 재확인했다 (Etler, 1996; Bae, 2010).

[4] 이들 초기 중국 개척자들의 학문적 유산은 후대 학자들에게도 높이 평가받고 있다. 주구점(周口店)에서 축적된 풍부한 화석 자료들은 동아시아 인류가 지역적으로 연속성을 가지며 진화했다는 가설의 핵심 근거가 되었으며, 이 가설은 화룡동(華龍洞)의 하악골과 같은 새로운 화석들이 발견되면서 오늘날까지도 활발히 논의되고 있다 (Wu et al., 2023).

[5] 1998년 와이너(Weiner) 등은 주구점(周口店)의 재층으로 알려졌던 퇴적물이 실제로는 물에 의해 운반된 유기물 퇴적층일 수 있으며, 불에 탄 뼈들도 자연 발화의 결과일 수 있다는 반론을 제기하여 오랜 논쟁을 촉발시켰다 (Weiner et al., 1998). 그러나 황(Huang) 등의 최신 XRD 분석은 이러한 회의론에 대한 강력한 재반박 증거를 제공했다.

[6] 26Al/10Be 매장 연대측정법은 석영과 같은 광물이 지표면에 노출되었을 때 우주선(cosmic ray)에 의해 생성된 동위원소 26Al 과 10Be 가, 동굴처럼 깊은 곳에 매장된 후 방사성 붕괴로 인해 그 비율이 시간에 따라 일정하게 변하는 원리를 이용하는 연대측정법이다. 이는 전통적인 칼륨-아르곤 연대측정법 적용이 어려운 퇴적층의 연대를 측정하는 데 매우 효과적이다 (Balco and Shuster, 2009).

[7] 피어슨(Pierson) 선장은 보고서에서 “이 배가 몇 시간 안에 우리 군을 상대로 한 병력 수송에 이용될 수 있었다. 나는 내 힘이 닿는 모든 수단을 동원해 이를 막기로 굳게 결심했다”고 기록하며 당시의 긴박했던 심정을 증언했다 (Pierson, n.d.). 이 배는 이후 일본군에 의해 인양되어 운용되다가 1944년 미군 잠수함에 의해 최종적으로 격침되었다.

[8] 이러한 유전적 다양성 패턴은 인류의 아프리카 기원 가설이 비교 경제 발전과 같은 사회과학 분야에서도 중요한 설명 변수로 활용될 만큼 강력한 증거로 인정받고 있음을 보여준다 (Ashraf & Galor, 2013).

[9] 비판의 핵심은 아열대 기후의 복잡한 동굴 환경에서 화석과 그 주변의 연대측정 시료(예: 방해석 층) 사이의 층위학적 관계를 신뢰할 수 있는가에 있다. 후대의 젊은 화석이 침식 작용으로 인해 더 오래된 지층으로 섞여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화석 자체에 대한 직접적인 연대측정이 가장 높은 증거 위계를 가진다.

[10] 이러한 결론은 중국 내 28개 민족 집단을 분석하여 모든 동아시아 인구 집단이 공통의 기원을 공유함을 보여준 초기 연구(Chu et al., 1998)나, 한족(漢族) 문화의 확산이 실제 인구 이동(demic diffusion)에 의한 것이었음을 유전학적으로 증명한 연구(Wen et al., 2004) 등을 통해서도 일관되게 뒷받침된다. Y염색체는 부계 혈통 추적에 매우 효과적인 방법으로 인정받는다 (Calafell, Larmuseau and van Oven, 2017; Jin, 2013).

[11] 이러한 혼혈이 제공한 기능적 적응은 인류가 새로운 환경에 정착하고 생존 전략을 다변화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점에서, 인류 진화의 핵심 요소로 재평가되고 있다 (Buck, 2024).

[12] 고대 게놈 분석의 정확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비교의 기준이 되는 방대한 고품질 현대인 게놈 데이터가 필수적이다 (Bergström et al., 2020). 또한 DNA가 너무 오래되어 손상된 경우에도, 그 DNA의 ‘설계도’로 만들어진 단백질을 분석하는 단백질체학(proteomics)을 통해 계통을 추적하는 기술까지 등장했다 (Fu et al., 2025a).

[13] 한편, 최근 발견된 하얼빈(哈爾濱) 두개골, 일명 ‘용인(龍人, Dragon Man)’은 이 세 축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또 다른 고대 인류 집단의 존재를 시사한다. 이 두개골은 현생 인류의 자매 그룹에 해당하는 새로운 혈통일 가능성이 제기되면서(Ni et al., 2021; Bae & Wu, 2021), 데니소바인과의 복잡한 관계를 암시하고 있다. 최근 이 두개골의 치석에서 데니소바인의 미토콘드리아 DNA가 검출되면서 이 가설은 더욱 힘을 얻고 있다 (Fu et al., 2025b). 다만, 고대 DNA, 특히 치석과 같은 시료에서 추출한 DNA 연구는 현대인의 DNA에 의한 오염 가능성 등 분석법의 한계가 존재하여 해석에 신중해야 한다는 학계의 비판적 검토도 함께 제기된다. 따라서 이 연결고리는 향후 추가적인 교차 검증을 통해 더욱 공고해질 필요가 있다.

[14] 남방 축의 깊은 시간적 범위는 데니소바인의 광범위한 분포를 통해서도 엿볼 수 있다. 시베리아뿐 아니라 아열대 기후인 대만에서도 데니소바인 하악골이 발견되면서(Tsutaya et al., 2025), 우리 조상들이 아시아 전역에서 다양한 고인류와 마주쳤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이들의 생존 전략에 대한 연구도 활발히 진행 중이다 (Zhang, D., et al. 2024).

[15] 고고학과 인류학이 민족주의와 결합하는 현상은 특정 지역에 국한되지 않고 유럽(Díaz-Andreu and Champion, 2016)과 코카서스(Shnirelman, 2013) 등 전 세계적으로 나타나는 보편적인 현상이다 (Kohl and Fawcett, 1995).

[16] 이러한 ‘중화민족 부흥’의 서사는 강력한 통합의 도구인 동시에, 내부적인 긴장을 내포하고 있다. 공식적으로는 56개 민족을 아우르는 통합된 ‘중화민족’을 내세우지만, 현실에서는 종종 ‘대한(大漢)주의’, 즉 한족(漢族) 중심의 민족주의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Carrico, 2017). 이 과정에서 소수민족의 역사와 정체성은 거대한 한족 중심의 서사 속으로 흡수되거나 주변화되는 경향을 보이며, 이는 현대 중국의 민족 관계에 지속적인 긴장 요소로 작용한다 (Leibold, 2013).

보충자료 (Supplementary Materials)

표 1: 주구점(周口店) 유적 제1지점의 주요 층위, 연대, 발견 요약

층위(Layers) 주요 발견 연대측정법 산출 연대 (백만 년) 상관 MIS 주요 참고문헌
4층 불에 탄 뼈(600°C 이상), 노지 흔적, 퇴적물 자기감수율, XRD – – Huang et al. (2021); Gao et al. (2017)
5층 유석(flowstone) U-계열 연대측정 ~0.5-0.6 MIS 13-15 Shen et al. (2009)
7-10층 첫 북경원인 두개골, 석기 ²⁶Al/¹⁰Be 매장 연대측정 0.77±0.08 MIS 17-19 Shen et al. (2009)
10층 불에 탄 뼈(논쟁적) 층위 분석 – MIS 19 Weiner et al. (1998)
13-14층 사이 브룬-마투야마 역전 고지자기 ~0.78 MIS 19 Shen et al. (2009)

 

표 2: 동아시아 고대 인구 집단의 주요 유전 혈통 요약

유전 혈통 대표 표본/유적 추정 연대 관련 고고학 문화/생계 주요 기여 집단 핵심 연구
톈위안/고대 북부 유라시아 전원동인(田園洞人) “~40,000년 전” 후기 구석기 / 수렵채집 북방 축의 기저 집단 Yang et al. (2017)
고대 동북아 흑룡강 유역 신석기인 (AR_EN) “~7,500년 전” 신석기 / 수렵채집 퉁구스어족, 몽골어족 Ning et al. (2020); Mao et al. (2021)
황하 유역 신석기 농경민 하남성(河南省) 왕구(汪溝) “~5,000년 전” 앙소(仰韶) 문화 / 조 농사 한족(漢族), 티베트인 Wang et al. (2021); Yang et al. (2020)
복건 신석기 해안민 복건성(福建省) 양도(亮島) “~8,000년 전” 신석기 / 해안 수렵채집 오스트로네시아어족 Yang et al. (2020)
호아빈/남방 수렵채집민 베트남 호아빈 문화인 “~4,000-8,000년 전” 중석기 / 수렵채집 동남아시아인, 오스트로아시아어족 McColl et al. (2018)
스텝 목축민 야므나야(Yamnaya) / 아파나시에보(Afanasievo) “~5,000년 전” 청동기 / 목축 북방 축 혼합, 인도-유럽어족 de Barros Damgaard et al. (2018); Jeong et al. (2020)

 

주요 용어 해설

인류 기원 모델 및 개념

  • 아프리카 기원설 (Recent African Origin, RAO)

현생인류(Homo sapiens)가 약 30만 년 전 아프리카에서 출현하여 전 세계로 이주하며, 네안데르탈인이나 호모 에렉투스와 같은 다른 지역의 고인류를 대체했다는 모델입니다. 현대 유전학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는 과학계의 정설입니다.

  • 다지역 기원설 (Multiregional Evolution, MRE)

약 200만 년 전 아프리카를 떠난 호모 에렉투스가 유럽, 아시아 등 각 지역에서 병렬적으로 현생인류로 진화했으며, 이들 간의 지속적인 유전자 교류를 통해 단일 종으로 유지되었다는 과거의 주요 가설입니다.

  • 혼혈을 동반한 연속 진화설 (Continuity with Hybridization, CWH)

중국의 고인류학자 오신지(吳新智)가 주창한 다지역 기원설(MRE)의 변형 모델입니다. 중국의 호모 에렉투스가 현대 동아시아인으로 연속적으로 진화하는 것이 주된 흐름이며, 아프리카에서 온 이주민 등 외부 집단과의 혼혈은 부차적인 유전자 교류에 불과했다고 주장합니다.

  • 유전자 도입 (Introgression)

서로 다른 두 종 또는 뚜렷이 구분되는 집단 사이의 교배와 그 잡종 후손이 부모 종 중 하나와 반복적으로 교배하면서, 한쪽의 유전자가 다른 쪽의 유전자 풀로 옮겨가는 현상을 말합니다. 현생인류가 네안데르탈인이나 데니소바인과 혼혈한 것을 설명하는 핵심적인 유전학적 메커니즘입니다.

  • 인식론적 민족주의 (Epistemological Nationalism)

특정 국가가 자국의 역사와 기원에 대한 진실의 기준을 국제적 과학계의 합의와 무관하게 스스로 정립하려는 경향을 의미합니다. 이는 과학의 보편주의와 대립하며, 지식 생산의 권위를 둘러싼 투쟁을 포함하는 개념입니다.

주요 과학 용어

  • 미토콘드리아 DNA (mtDNA)

우리 세포의 ‘에너지 공장’인 미토콘드리아 안에 있는 특별한 DNA입니다. 아버지의 DNA와 섞이지 않고, 오직 어머니에게서 자녀에게로만 거의 그대로 전달됩니다. 그래서 마치 할머니-어머니-딸로 이어지는 ‘모계 족보’처럼 인류의 먼 과거를 추적하는 데 사용됩니다.

  • Y염색체 (Y-chromosome)

성별을 결정하는 염색체 중 하나로, 아버지에게서 아들에게로만 전달됩니다. mtDNA와는 반대로 ‘부계 족보’ 역할을 하며, 특정 남성 혈통이 어떻게 퍼져나갔는지 추적하는 데 결정적입니다.

  • 게놈 (Genome)

한 생물이 가진 모든 유전 정보의 총집합입니다. 우리 몸의 모든 것을 만드는 거대한 ‘설계도’ 또는 ‘백과사전’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고대 인류의 게놈을 해독하면 그들의 유전적 특징과 계보 전체를 알 수 있습니다.

  • 하플로그룹 (Haplogroup)

DNA에서 함께 유전되는 긴 유전자들의 묶음 또는 그룹입니다. Y염색체나 mtDNA에서 발견되며, 같은 하플로그룹을 가진 사람들은 아주 먼 옛날 공통의 조상에서 갈라져 나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보고서에 언급된 ‘M168’은 아프리카에서 기원한 남성들이 공통으로 가진 ‘유전적 성씨(姓氏)’와 같은 하플로그룹입니다.

  • 연속 창시자 효과 (Serial Founder Effect)

어떤 인구 집단에서 소수의 무리가 떨어져 나와 새로운 집단을 만들고, 또 그곳에서 일부가 떨어져 나와 다음 집단을 만드는 과정이 반복될 때, 유전적 다양성이 점차 줄어드는 현상입니다. 마치 다양한 색깔의 구슬이 든 주머니에서 몇 개만 꺼내 새 주머니를 만들고, 또 거기서 몇 개만 꺼내는 과정을 반복하면 나중에는 몇 가지 색깔만 남는 것과 같습니다. 인류가 아프리카에서 멀어질수록 유전적 다양성이 낮아지는 것을 이 원리로 설명합니다.

  • 적응적 유전자 도입 (Adaptive Introgression)

다른 종(예: 네안데르탈인)과의 혼혈을 통해 들어온 유전자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데 도움이 되어, 그 유전자를 가진 후손들이 더 잘 살아남게 되는 현상입니다. 티베트인이 데니소바인에게서 물려받은 고지대 적응 유전자(EPAS1)가 가장 유명한 예입니다. 일종의 유전적 ‘지름길’ 또는 ‘생존 노하우 전수’라고 할 수 있습니다.

  • 방사성탄소연대측정 (Radiocarbon Dating, 14C)

살아있는 모든 생물에 존재하는 방사성 탄소(14C)가 죽은 후에는 일정한 속도로 줄어드는 원리를 이용해 연대를 측정하는 방법입니다. 비교적 젊은(약 5만 년 이내) 유기물(뼈, 목탄 등)의 연대를 아는 데 매우 정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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