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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아 컨센서스 10차 콜로키엄]

  • 주제: 네트워크 지식국가: 늑대거미의 다보탑 쌓기
  • 발제자: 하영선 교수 (서울대 외교학과)
  • 일시: 2007년 1월 22일 (월요일) 오후 5시
  • 장소: EAI 회의실
  • 참석자: 김병국, 손동현, 윤순봉, 이정우
  • 자료정리: 송문희(EAI)

콜로키엄 정리자료_text 18p


[요약] 네트워크 지식국가

[발제] 네트워크 지식국가: 늑대거미의 다보탑 쌓기 (하영선 교수)

[토론]


[요약] 네트워크 지식국가

1. 21세기 이중(二重)변환의 시기

21세기 세계정치는 이중변환(二重變換)의 와중에 있다. 세계정치의 이중 변환 중 첫째는 자생적 흐름이다. 무엇보다 기술이 발달하고 그에 따라 인간 활동의 폭과 범위, 내용이 변화하고 있다. 행동의 단위인 국가의 성격이 변하고 국가의 활동영역도 전통적인 군사안보에서, 경제·문화·생태환경으로 확대됐다. 이중 변환의 둘째는 세계정치의 흐름을 바꿀 수 있는 힘을 가진 유일한 나라, 미국의 변환이다. 부시 행정부 출범 이후 추진하고 있는 군사변환과 변환외교가 그것이다.

2. 네트워크 지식국가(network knowledge state)의 부상

세계적 차원의 자생적 변환이든 미국이 추구하는 변환이든 가장 큰 특징은 ‘네트워크’와 ‘지식’이다. 21세기에는 군사력과 경제력이 여전히 중요하지만 문화력, 그리고 생태균형력이 새로운 힘의 구성요소가 되고 있다. 이 네 힘을 정치력이 위에서 조종하는 한편 지식력이 모든 힘의 기반을 이루고 있다. 이처럼 21세기 정보화의 물결은 지식의 권력적 함의를 부각시킴으로써 국가의 수단과 목표 및 기능적 성격이 변환되는 지식국가의 부상을 야기한다. 네트워크는 거미줄과 같은 ‘그물망’이다. 네트워크는 거미줄처럼 공간을 효율적으로 점거하고 그 사이를 빠르게 이동할 수 있는 파격적인 장치다. 무역·금융·생산 등 경제활동은 국가 단위를 넘어 지구적 차원의 네트워크로 재편된 지 오래다. 미국이 추진하는 군사적 변환의 요체도 네트워크다. 세계 곳곳에 흩어져 있는 군사기지들을 네트워크로 묶고 동맹국들도 네트워크로 묶는다. 이러한 복합적 변환을 ‘네트워크지식국가’로 개념화한다. ‘네트워크 지식국가’의 등장은 첫째, 정부간 네트워크, 둘째, 국가간의 통합, 그리고 셋째, 국제기구나 초국적(超國的) 민간단체 등 비국가단체들을 포괄하는 복합네트워크의 형성을 통해 세계정치를 변환시키고 있다.

3. ‘네트워크’ ‘지식’ ‘국가’

네트워크 지식국가의 개념은 세 가지 키워드를 중심으로 요약된다. 첫 번째 키워드는 ‘지식’이다. 네트워크 지식국가는 그 수단과 목표로서 지식자원에 크게 의존하고, 그 조직과 작동에 있어서도 지식변수가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하는 국가이다. 두 번째 키워드는 ‘네트워크’이다. 네트워크 지식국가는 국민국가의 양대 축인 국민, 민족과 국가의 이완을 배경으로 하여 영토적 경계의 안과 밖에서 출현하는 개방형 복합 네트워크의 형태로 부상하는 국가이다. 마지막 키워드는 ‘국가’이다. 네트워크 지식국가는 변화하는 세계정치 환경에 대응하여 그 기능적 성격과 존재적 형태 및 권력 메커니즘을 교묘히 변형시키고 있는 국가이다. 요컨대, 네트워크 지식국가는 지식과 네트워크의 복합적 부상에 대응하여 자기조직의 과정을 추구하고 있는 21세기 국가의 미래적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21세기 무대에서 제대로 살아남기 위해서는 군사경제대국에서 지식기반 다보탑 복합국가로 새롭게 태어나야 한다.

4. 한국형 미래 다보탑 쌓기

네트워크 지식국가의 등장이 미래 세계정치의 모습인 만큼 이것은 한국의 국가전략에 매우 중대한 의미를 지닌다. 부강국가의 국가자원은 군사력과 경제력과 같은 하드파워, 즉 ‘실력’(實力)이었다. 하지만 네트워크 지식국가의 국가자원에는 지식의 생산과 활용, 그리고 무엇보다 지식의 표준을 설정하고 담론을 통제하는 소프트파워, 즉 ‘매력’(魅力)이 중요한 국가자원이 됐다. 이러한 시대변화 흐름의 물결에 한국이 뒤쳐져서는 안 될 것이며 한 걸음 더 나아가 오히려 시대변화의 주도권을 획득할 수 있어야 한다. 그 방법은 한반도에 21세기 다보탑형 지식기반 복합국가를 건설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첫째, 우선 21세기 한반도와 동아시아, 그리고 세계질서에 걸맞은 안보번영국가를 건설해야 한다. 둘째, 문화국가건설이다. 지구문화와 전통문화를 성공적으로 통합하고 한반도 특유의 생각과 행동을 창조해서, 남들이 표준을 삼을 수밖에 없는 국가를 건설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21세기 정보컴퓨터 기술혁명의 장점을 최대한 활용한 공지(共知)와 공감의 세계적 기반 위에서 한반도가 동아시아와 세계적 문제를 선도적으로 풀어나갈 수 있어야 한다. 셋째, 지구차원의 기후변화, 오존층 파괴 등 한반도가 당면하고 있는 환경위험을 극복하고 선진생태균형국가를 만들어야 한다, 넷째, 21세기 한반도 복합국가는 복합조종국가이어야 한다.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라는 제국에 둘러싸인 비제국으로서의 분단한국은 상대적으로 열세인 물리력을 극복하고 자신의 생존번영을 입체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그물망 지식정치능력을 키워야 한다. 다섯째, 지식국가의 본격적 구축이 시급하다. 이를 위해 정부 학계 기업이 삼위일체가 되어 세계지식질서의 첨단을 집요하게 추적하고 주도해보려는 지식전쟁을 본격적으로 시작해야 한다. 이 전쟁의 성패가 21세기 한반도의 운명을 좌우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한국형 네트워크 지식국가 구상이 한반도에서 구체적으로 현실화되기 위해서는 구상만으로는 부족하다. 이러한 구상을 현실화하려는 정치주도세력이 등장하여 국내정치와 사회역량을 결집하고, 국외역량을 최대한 활용하면서, 구상을 현실의 풍토 위에 뿌리 내리게 할 때, 한국은 세계가 부러워하는 매력국가로 새로 태어날 수 있을 것이다.

<키워드>

digital shift, 네트워크 지식국가, 안보, 번영, 문화, 생태균형, 늑대거미의 다보탑 쌓기, 한국형 미래 다보탑 쌓기, 국민부강(富强)국가, 주인공 (actor), 초국가적 기업, 국제 비정부기구(GLOBAL NGO), 통공성(通空性)과 공시성(共時性), 매력(魅力)국가, 네트워크 정체성(network identity), ‘네트워크’와 ‘국가정체성’ 사이의 긴장관계, 네트워크적 민족주의, 유동적인 군사변환(military transformation), 전통(全統), 메타 지식(meta-knowledge)


[발제] 네트워크 지식국가: 늑대거미의 다보탑 쌓기 (하영선 교수)

1. ‘국민부강국가’에서 ‘네트워크국가’로

나라를 넘어서는 공간을 상상하는 개념으로 ‘천하질서’, ‘천하예의지방(天下禮儀之邦)이라는 개념이 오랫동안 동아시아를 주도해왔다. 구미의 근대국제질서 무대가 군사와 경제를 중심으로 펼쳐졌던 것과 대조적으로 천하질서의 중심무대는 예(禮)의 무대였다. 그러나 19세기 중반 중국의 전통적 천하질서가 구미중심의 근대 국제질서로 탈바꿈하는 문명사적 대변환을 맞이하게 되었다. 이제 주인공은 천하국가에서 국민국가로, 중심무대는 예(禮)에서 부국강병으로 바뀌게 된다. 천하예의지방과 국민부강국가라는 문명표준의 경쟁, 국민제국들의 약육강식, 국내정치사회세력의 권력투쟁의 치열한 각축 속에서 일본은 새로운 세계사 무대의 중심에 섰고, 중국은 무대의 주변으로 밀려났으며, 조선은 무대에 설 자리를 잃어버려야 하는 비극을 맞이했던 경험이 있다.

그러나 이제 국제정치무대를 보면 여전히 ‘국가’가 중요한 주인공임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주인공들과 새로운 네트워크가 등장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오사마 빈 라덴’이나 ‘알 카에다’ 같은 조직이 미국을 공격한 것은 ‘국가’의 이름으로 공격한 것이 아니었다. 이것은 국제정치라는 폭력공간에 국가의 형태가 아니면서 폭력을 가진 집단이 등장함을 뜻한다. 이제 ‘국가’가 더 이상 폭력의 독점적 권한을 가지지 못하게 된 것이다. 이처럼 10만도 안 되는 작고 분산된 테러조직이 ‘국가’의 형태가 아닌 네트워크를 중심으로 시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고 자유롭게 활동하고 있다. 이러한 전지구적 테러조직들은 전세계의 거점을 거미줄처럼 연결하는 네트워크를 끊임없이 짜고 관리하는 등, 기존의 주인공인 근대국가와는 전혀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 또한 초국가적 기업이나 국제금융시스템(global finance system)을 갖춘 조직들의 규모가 커지고 이들간의 네트워크 친밀도가 강화되는 추세에 있다. 세계경제의 생산, 교환, 금융부문의 초국가적 네트워크의 활동도 계속해서 활발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세계경제무대의 100대 주인공 중에 51개는 기업이고 49개는 국가이다. 이런 전지구적 기업들은 1990년대 이래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정보혁명과 함께 생산, 교환, 금융의 전 영역에서 일국 중심의 안팎으로 닫힌 국민경제공간을 넘나들면서 보다 적극적으로 새로운 그물망을 치고 있다. 국제금융네트워크(global finance network)는 사실상 ‘국가(state)’ 단위를 초월하는 단계로 진입했다.

19세기 초반 생겨난 국제 비정부기구(Global NGO)는 현재 그 수가 만 3천여 개에 이른다. 최근 전세계적으로 급속하게 확산되고 있는 이들 조직은 발언권을 강화하면서 세계 정치무대의 무시할 수 없는 주인공으로 활약하고 있다. 특히나 국가바깥에 존재하는 NGO들은 ‘국가’라는 단위를 넘어서서 활동한다.

1990년대 초반 이래 사이버네트워크의 등장도 주목할 만하다. 근대국민국가라는 주인공이 주권이라는 배타적 명분체제 위에 일국 중심의 부강국가 공간을 확보 내지 확장해왔다면 사이버무대의 주인공은 그물코(node)의 복합적 연결(link)로 짜지는 그물망(network)의 모습으로서 통공성(通空性)과 공시성(共時性)을 특징으로 공간활용의 극대화를 보여주고 있다. 이처럼 근대국가가 가진 폐쇄성과 경직성을 극복하기 위해 네트워크가 대안으로 새로이 등장하고 있다. 국민국가의 안팎에 존재하면서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는 네트워크 조직들이 앞으로 미래의 새로운 수요를 충족시켜 줄 수 있는 미래지향적인 주인공(actor)의 모습이 아닐까?

2. ‘네트워크 지식국가’의 주요내용

21세기를 맞이하면서 국민국가(nation-state)는 그 역할과 위상의 재조정을 통해서 새로운 형태로 변환되고 있다. 이런 국가 변환의 동인으로서 ‘지식’ 변수의 역할이 새롭게 부각되고 있다. 근대 국민국가까지만 해도 ‘지식’ 변수는 ‘부강’과 관련된 여타 변수에 비해서 부차적이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정보화 시대에 이르러 국가업무를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지식 변수에 대한 의존이 필수불가결하게 되었다. 이제 지식은 군사력과 경제력의 핵심이며, 더 나아가 그 자체가 독립적인 권력 자원으로 부상했다. 이렇게 ‘지식’ 자원의 중요성이 부상하면서 근대적인 의미의 부강국가를 넘어서는 ‘지식국가(knowledge state)’가 부상하고 있다. 엄밀한 의미에서 21세기 지식국가는 종전의 국민국가가 아니다. 오히려 지식국가는 여타 행위자들을 아우르는 네트워킹에 능숙하고, 그 자체의 조직형태뿐만 아니라 작동방식도 네트워크의 형태로 변환되는 새로운 형태의 국가일 가능성이 크다.

21세기 국가가 네트워크화된다고 해서, 이것이 국가라는 존재의 소멸이나 탈정치화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국민, 민족으로부터 이완된 국가가 네트워크와 만나는 과정에서 국가의 권력 메커니즘은 새로운 형태로 변형되고 재생산된다. 국가는 IT(information technology)를 매개로 하여 다양한 행위자들의 네트워크를 엮어내고 그 과정에서 새로운 형태의 지식권력을 행사한다. 이런 점에서 21세기 국가변환은 지식국가와 네트워크 국가가 교묘하게 얽히면서 드러나는 ‘네트워크 지식국가(network knowledge state)’의 부상이라고 불러야 할 것이다.

네트워크 지식국가의 개념은, 폐쇄체계(closed system)의 시각에서 국가를 보는 전통적 국제정치이론과는 달리, 개방체계(open system)로서의 국가를 설정한다. 네트워크 지식국가론은 고립된 행위자로서의 ‘국민, 민족들간의 관계(inter-nations)’를 파악하는 기존의 국제정치학을 넘어서, 개방체계의 형태를 띠는 행위자들간의 관계, 즉 링크(link) 및 이들 노드(node)와 링크가 만나는 네트워크 전체의 아키텍처와 작동방식에 주목하는 망제(網際)정치학(inter-network politics) 또는 네트워크 세계정치학의 시각을 채택한다.

21세기 국가변환은 도구적 지식의 생산과 구성적 지식의 활용과정에서 국가의 형태와 기능이 네트워크화되는, 지식국가와 네트워크 국가의 복합모델, 즉 네트워크 지식국가로 개념화된다. 이러한 네트워크 지식국가 개념에서 핵심적인 것은 지식, 네트워크, 국가의 세 변수가 만들어내는 교묘한 조합을 이해하는 것이다. 새롭게 등장하는 지식국가는 종래와 같이 영토를 바탕으로 한 국민, 민족의 경계 안에 갇힌 국민국가의 모습은 아니며 좀 더 네트워크화된 새로운 형태의 국가일 가능성이 매우 크다. 네트워크 국가의 부상은 기존 국민국가의 안과 밖이 연결되는 패턴을 변화시킬 뿐만 아니라 국민, 민족 구성원들의 정체성도 변화시킨다. 다시 말해 네트워크 국가는 국가활동에 있어서 영토적 공간의 적실성이 상실되는 현상과 국민, 민족이라는 정치, 문화 공동체가 재조정되는 현상을 수반한다.

21세기 국가권력은 네트워크 국가라는 개방체계의 정체성을 형성, 유지하기 위해서 구성적 지식을 활용한다. 국민, 민족이 네트워크로 깨져나가는 마당에 국가는, 종전과 같이 영토를 기반으로 한 국민정체성의 형성을 시도하기보다는 의미나 상징을 근거로 경계 긋기를 시도함으로써 사회적 통합과 정당성의 확보를 추구하고자 한다. 이런 과정에서 등장하는 정체성은 국민국가 단위의 국민정체성(nationality)을 잠식하는 ‘네트워크 정체성(network identity)’일 가능성이 크다.

3. 늑대거미의 다보탑 쌓기

(1) 늑대거미: 21세기 세계질서의 새로운 주인공 모습으로 등장하고 있는 네트워크국가를 보다 쉽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늑대거미를 비유적으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거미에게 거미줄은 생명줄이므로 이를 정교하게 칠 필요성이 크다. 그러나 늑대거미는 보통 거미와 달리 대부분 먹이사냥을 위해서 거미줄을 치지 않고 먹이를 쫓아가서 잡아먹는다. 상징적으로 늑대거미는 늑대와 거미의 속성을 함께 보여준다. 17세기 홉스(T. Hobbes)는 도시국가관계를 늑대관계로 비유했다. 약육강식이라는 근대 국민국가적 속성과 변환기의 네트워크적 속성을 함께 상징하고 있는 늑대거미는 21세기 변환의 대표적 주인공으로서, 한편으로는 늑대처럼 먹이사냥을 하고 있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거미처럼 거미줄을 치고 있다.

늑대거미의 복합연기의 내용은 결국 늑대연기와 거미연기의 복합비율에 의해 좌우된다. 미국형 늑대거미는 50개 주의 연방국가로서 세계질서 주도국의 위상을 유지 또는 강화하기 위한 늑대의 연기를 계속하면서도 지구차원의 그물망치기를 본격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한편 유럽형 늑대거미는 국민국가들간의 늑대연기와 유럽연합이라는 지역국가의 그물망치기를 함께 시도하고 있다. 한국, 중국, 일본 등의 동아시아형 늑대거미는 구미에 비해서 뒤늦게 받아들인 늑대연기를 본격적으로 시작하면서 지역 및 지구 차원의 그물망치기는 상대적으로 뒤늦다.

21세기의 전지구적인 욕구를 가장 효율적으로 충족시켜 줄 수 있는 주인공의 모습은 ‘네트워크’와 ‘국가’가 결합한 형태의 ‘네트워크 국가’가 될 가능성이 있다. 근대 국민국가만으로는 더 이상 미래 국제정치무대에서 주인공(actor)의 역할을 할 수 없다. 비유적으로 말하자면 완벽한 면도를 한 형태가 아닌 네트워크라는 수염을 주렁주렁 달고 있는 털복숭이 형태의 네트워크국가가 미래시대의 주인공이 될 수밖에 없다. 21세기 국제정치를 새롭게 개념화하는 작업은 아마도 ‘늑대거미의 다보탑 쌓기’의 형태가 될 것이다.

21세기 변환연기의 핵심은 국가활동과 그물망활동의 복합적 성격이다. 21세기 정보기술혁명은 현실적으로 시간과 공간의 엄청난 축약을 가져다 줌으로써, 무대의 주인공이 거의 완벽한 거미연기를 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다. 거미는 단중심, 다중심 또는 거의 무중심으로 보일 만큼 수많은 그물코들을 입체적으로 연결하여 그물을 친 다음에, 완성한 그물망을 흐르는 물처럼 끊임없이 유동하면서, 그물망 모든 곳에 거의 동시에 존재하는 모습으로 움직인다. 한편 명실상부한 세계정부가 없는 지구공간의 국가활동은 여전히 늑대의 움직임을 크게 벗어나기 어렵다. 그러고도 부족하면 외세를 다양하게 활용하려는 노력을 하게 된다. 21세기 변환연기는 늑대와 거미의 움직임을 동시에 품고 있다.

(2) 다보탑 쌓기: 과거 국제정치의 첫 번째 무대가 ‘군사’와 ‘정치’였다면, 이후 ‘경제’를 거쳐 디지털전환(digital shift)이 급속하게 진행되고 있는 21세기에는 ‘지식’을 기반으로 한 새로운 무대가 펼쳐지고 있다. 21세기 국제정치 무대 역시 여전히 ‘폭력’과 ‘금력’의 무대가 되겠지만, 그러나 ‘기술’, ‘정보’, ‘지식’, ‘문화’, ‘생태균형’ 등과 이를 종합하고 조정하는 ‘정치’가 새로운 장(stage)으로 부각되고 있다. 우선 안보, 경제, 문화, 생태균형 무대가 지식을 기반으로 한 무대로 변환되는데 직접적 영향을 미치고 있다. 군사적으로 핵무기 대신에 정보무기가 중요해지고 있으며, 경제적으로 지식기반경제의 중요성이 빠르게 증가하고 있으며, 지구첨단기업이 되려면 지식경영은 필수적이다. 문화 무대에서도 사이버문화가 화려하게 개화하고 있으며, 생태균형 무대는 지식기반 없이는 무대 자체가 마련되기 어렵다. 다음으로는 중앙 상부의 정치무대가 네 개의 무대를 조종하는 과정에서 과거처럼 폭력이나 금력 대신에 지식력을 활용하여 구조적인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마지막으로는 도구적-구조적 지식을 넘어서서 구성적 지식을 어떻게 짜나가느냐에 따라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21세기 세계질서무대의 3중 복합무대의 구조와 역학을 다보탑을 통해 선명하게 형상화할 수 있다. 3중 복합무대 밑에 놓여 있는 지식기반무대는 다보탑의 기단부에 해당한다. 다음으로 안보, 번영, 문화, 생태균형의 네 무대는 다보탑의 네 석주 위에 놓여 있는 직사각형의 네 귀퉁이와 맞추어 볼 수 있다. 그리고 중앙상부의 복합조종을 위한 정치무대는 다보탑의 중앙석주와 연결된 탑신부 및 상륜부와 짝 지울 수 있다. 그러고 나면 다보탑의 기단부-탑신부-상륜부가 서로 3중적으로 복잡하게 얽혀 있는 모습에서 지식기반 3중 복합무대를 보다 구체적으로 형상화해 볼 수 있다. 21세기에도 여전히 주인공(actor)의 위치를 유지하고 있는 국가는, 과거와는 달리 안팎의 다양한 주인공들을 그물망으로 입체적으로 엮은 그물망국가의 모습으로, 과거의 예(禮)의 무대나 부국강병의 무대보다 훨씬 복잡해진 지식기반의 안보, 번영, 문화, 생태균형 그리고 정치의 복합무대에서 변환의 연기를 보여주고 있다.

4. 21세기 한국의 선택: 매력(魅力)국가 만들기

21세기 달라지는 세계질서 속에서 ‘국민부강국가’가 ‘그물망 지식국가’로 탈바꿈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국민부강국가들의 생존경쟁은 여전히 치열하다. 이 속에서 한국은 소련의 해체에 따른 지구적 탈냉전과 국내 민주화라는 새로운 변화 속에 남북한 냉전분단체제의 어려움을 아직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21세기 복합적 변환의 시대를 맞아 한국이 중요한 주인공 역할을 담당하려면 ‘한국형 늑대거미의 다보탑 쌓기’에 성공해서 전 세계가 부러워하는 매력국가를 건설해야 한다. 구체적으로 ‘한국형 늑대거미의 다보탑 쌓기’가 가지는 의미는 무엇인가? 향후 50년, 100년을 내다볼 수 있는 매력국가로서의 한국형 다보탑 쌓기의 모습은 어떤 것이 되어야 할까?

21세기 세계질서에서 한국이 지구적 위상을 유지하고 또 격상시키려면 네트워크 국가의 새로운 모습을 갖추어야 한다. 그러자면 한국형 늑대거미는 늑대처럼 다른 동물들과의 치열한 싸움 속에서 자기 생명과 먹이를 스스로 확보해야 하며 동시에 다음과 같은 5중 거미줄을 쳐야 한다.

첫째, 21세기 매력국가건설을 위해 한국형 늑대거미는 한반도 통일의 그물망을 짜야 한다. 남과 북이 하나가 되는 것(一統)은 안과 밖의 주인공과 모두 통하기 위한 것(全統)이라야 한다. 둘째, 21세기 네트워크 국가를 건설하기 위해 동아시아 그물망을 제대로 짜야 한다. 한반도는 미-일 관계를 상대적으로 중시하되 새로운 주인공인 중국을 동시에 품는 작은 그물망을 정교하게 쳐야 한다. 그 위에 동아시아 그물망을 조심스럽게 구상해야 한다. 동아시아 그물망의 내용에 따라 동북공정, 독도 문제 등도 다르게 배치될 것이다. 셋째, 세계화의 그물망을 짜야 한다. 세계화의 내용에 있어서는 한반도의 이익과 지구 이익을 동시에 충족시킬 수 있는 한국적 세계화의 모습을 갖추어야 한다. 넷째, 사이버공간의 그물망 짜기에 주목해야 한다. 현실공간에서 보자면 네 국민제국에 갇혀있는 한반도가 현실 지정학적 제약을 해소하려면 사이버공간을 활용해야 한다. 다섯째, 나라 밖의 공간에 못지않게 나라 안의 공간 그물망 짜기가 중요하다. 21세기 한반도 통일국가는 국내의 다양한 정치-사회세력들과 개인까지도 그물망을 짜서 상이한 이해를 정책결정 이후가 아닌 이전에 조정함으로써 다양한 세력들간의 갈등을 최소화해야 한다. 동시에 국가 밖의 중요 국제 역량, 지역 그물망, 지구 그물망들을 촘촘하게 연결해서 그물망 국가를 완성해야 한다. 이러한 5개의 입체그물망을 어떻게 칠 것인가에 대한 숙고가 있어야만 한다. 한국이 동아시아의 중심허브가 되겠다는 전략은 소박한 꿈이라고는 볼 수 있지만 더 이상 21세기에는 맞지 않는 전략이다.


[토론]

토론주제

  • ‘부강(富强)국가’에서 ‘네트워크 지식국가’로의 전환
  • ‘네트워크’와 ‘국가정체성’ 사이의 긴장관계
  • 한국의 전략적 선택: ‘매력(魅力)국가’ 만들기

1. ‘부강(富强)국가’에서 ‘네트워크 지식국가’로의 전환

하영선: 21세기 지금 우리는 더 이상 근대도 아니고 탈근대도 아닌, 이들 요소가 얽히고 뒤범벅되어 있는 복잡한 세상에 살고 있다. 19세기 동아시아에서 천하(天下)와 국제(國際)의 만남이 상당한 시간과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근대 국제관계로 모습을 갖추어 나갔다면, 21세기는 국민국가와 네트워크의 만남이 ‘네트워크국가’를 만들어가고 있다. 물론 국가는 21세기에도 여전히 무대의 주인공으로 활약하게 될 것이다. 부강(富强)의 각도에서 보면 군사적, 경제적 주인공의 모습이 여전히 ‘국민부강국가(國民富强國家)’, 즉 ‘국가’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향후 100년간도 주인공(actor)이 움직이는 모습은 국민국가의 형태를 띨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면 21세기 세계정치 변환의 첫 부분을 ‘네트워크’로 개념 정의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21세기 주인공(actor)의 새로운 문명표준이 ‘국민국가’에서 ‘네트워크국가’로 변환되고 있는 환경 속에서 국가가 생존과 번영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안팎으로 닫힌 국가로서가 아니라 안과 밖을 동시에 품기 위한 네트워크를 끊임없이 짜나가는 국가로의 변환이 불가피하게 되었다. 이처럼 정보화 시대(digital shift)에 새롭게 재구성되는 권력과 지식의 관계를 ‘지식에 기반한 네트워크 국가’로 개념 정의해 본다.

통합(統合)과 분화(分化)의 동학을 동시에 보여주는 네트워크 국가는 어떠한 방식으로 조직되어 구성요소들의 관계를 설정하고 있는가? 네트워크 국가는 안과 밖이 상호침투하고 다차원적이고 유동적인 경계를 가진 시스템이다. 이는 안과 밖이 명확히 구분되고 일차원적이고 경직된 경계를 가진 폐쇄체계로 개념화되는 근대 국민국가의 형태와 대비된다. 네트워크 국가는 구성적 메타지식의 존재에 크게 의존할 수밖에 없다. 이것은 21세기 네트워크 국가가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지식국가와의 결합을 통해서 네트워크 지식국가로 변환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네트워크 지식국가’의 중요개념은 ‘네트워크’, ‘지식’, ‘국가’ 이다. 그런데 국제정치학에서 개념의 추상화작업은 이보다 한발 앞서 빠르게 변하는 현실환경에 잘 조응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국제정치학에서 네트워크 이론은 그 이론적 적용공간이 국제정치무대라는 사실을 제외하면 그다지 새로운 개념은 아니다. 복잡계 이론이나 사회연결망(social network) 이론 등을 국제정치학에 도입할 때도 실제 적용에 있어서는 어려운 점이 많다. 왜냐하면 국제정치사회의 현실은 복잡계 언어로 설명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복잡한 양상을 띠기 때문이다.

아직 ‘폭력(暴力)’이 주(主)가 되는 국제정치공간에 ‘네트워크’나 ‘지식’이 새로운 역할을 할 수 있다는 발상에 대해 선뜻 수긍하기는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아직까지 전근대적 혹은 근대적 사고에 함몰되어 있는 국제정치학계에 이러한 발상의 전환은 필요하다. 지식이 부가가치의 원천이 되는 국가로 개념 정의하는 것은 경제학에서 강조하는 도구적 지식론의 입장이다. 정치학에서는 구성적 지식, 메타지식이 강조되는데 그런 의미에서 ‘mega knowledge’는 ‘meta knowledge’의 한 형태이다. 메타지식(meta knowledge)에 관한 것을 구성지식적 요소라고 한다면 권력부문에서는 누가 권력지식을 주도하느냐를 둘러싸고 새롭게 치열한 경쟁이 생기고 있다. 안보, 경제번영, 문화, 생태균형이라는 4개의 도구지식적 요소와, 구성지식적 요소인 메타지식과, 이를 통합∙조정하는 권력구조적 지식의 3면성이 기존 국제정치와는 다른 차원의 논의를 필요하게 한다. 이를 위해 네트워크 지식국가의 비유적 표현인 ‘늑대거미의 다보탑 쌓기’를 통해 ‘네트워크’, ‘지식’이 국제 공간에서 차지하는 의미를 새롭게 파악해보고자 한다.

손동현: 근대의 기계적, 정량적 관념을 극복하고자 하는 탈(脫)근대사상을 나타내는 단어로 ‘유연성’, ‘현상’, ‘마음’ 등이 있다. 국제정치학에 있어서도 과거처럼 군사력이나 경제력 면에서 부강한 국가만이 아닌, 네트워크 속에 위치하면서 지식에 기반한 형태의 ‘네트워크 지식국가’라는 개념의 등장은 탈(脫)근대적인 사고의 반영으로 보인다. 네트워크 지식국가를 만들기 위해서는 근대의 논리인 논리적, 분석적인 사고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간 ‘+α’가 필요할 것이다. 이러한 ‘+α’를 어떻게 만들 것이며 이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

전통적으로 지식은 권력에 봉사하는 수단으로 쓰여져 온 측면이 있다. 과거 일본 명치유신 때 국가주도하의 지식창출에 있어서는 독일을 발전의 모델로 삼고자 서양고전을 익히는 등 목표가 뚜렷했다. 이처럼 도구적 측면이 강했던 근대시대의 지식과 오늘날의 지식이 요구되는 상황에 존재하는 근본적인 차이점은 무엇인가? 유동성을 특징으로 하며 광대한 시너지효과를 갖는 ‘메타지식’이란 것은 주어진 목표를 위한 수단으로만 사용되는 것은 아니다. 어떤 지식이 수단적 지식이 아니라는 것은 그 지식이 봉사해야 할 특정한 목적이 정해지지 않았다는 의미이다. 그렇다면 메타지식의 의미는 무엇인가? 지식을 관장하는 지식, 보다 근원적인 지식을 의미하는 것인가?

미래의 생존전략으로서 무중심(無中心), 다중심(多中心) 입체거미줄을 치는 경우 이것이 담을 수 있는 새로운 세계상의 내용은 무엇이 될 것인가? 무중심 입체거미줄은 얼핏 보면 무계획적으로 아무렇게나 만들어진 것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더 치밀한 전략이 그 안에 내재해 있는지도 모른다. 그것은 딱딱하고 경직된 특성을 갖는 기존의 국가중심 전략보다는 훨씬 더 유연하고 고차원적인 성격의 전략일 수 있다.

김병국: 전근대에서 근대로 넘어오는 시기에 근대시대의 원리를 발견하고 그 물결을 탈 수 있었던 자만이 살아남았다. 로크의 사회계약론이 나올 당시는 시대변화가 이미 한 세기 정도 진행되고 있던 시기였다. 로크의 사회계약론이 중요한 것은 이런 시대변화를 제대로 읽어냄으로써 그 사상이 그 시대변화의 물결을 타고 확산될 수 있는 기폭제 역할을 하였다는 점에 있다. 시대변화를 제대로 읽고 있는 지식이 있다면 이런 지식에 권력은 따라오기 마련이다. 일본 메이지유신이나 프러시아 근대화과정은 국가가 지식기반 창출에 앞장선 경우였다. 이제 미래 지식을 주도할 새로운 주인공의 역할은 누가 맡게 될 것인가? 달라지고 있는 현 시대변화의 방향을 제대로 읽고 이러한 흐름을 탈 수 있는 자가 미래의 주인공이 될 것이다.

‘네트워크 지식국가’에 대한 담론은 근대와의 연속성을 부인하지 않으면서도 맹목적인 탈근대화의 논리에서도 벗어나 현 시대변화를 설명하고자 한다. 이를 한 마디로 “연속성과 변화의 긴장과 조화” 라고 표현할 수 있다. 단중심, 다중심, 무중심 그물망으로의 전환의 모습은 이슈영역별로 차이(예를 들면 군사안보는 단중심, 경제는 다중심 그물망)가 있을 것이다. 단중심, 다중심의 거미줄망에서 자기만의 독자적인 정체성(identity)을 유지할 수 있는 주인공은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중심이 존재하지 않는 무중심 입체거미줄은 누구에 의해 어떻게 만들어지는 것인가?

이정우: 르네상스기 도시중심의 지식과 달리 근대지식국가에서 지식의 의미는 근대국가형성에 동반된 지식이었다. 근대국가는 부강정책의 기제로 지식을 효과적으로 통제하고 동원할 수 있었다. 그러나 현대에 들어와서는 지식이 자율성을 갖고 지식이 생산, 유통, 판매되는 과정을 누구도 전체적으로 통제하거나 조망할 수 없다. 이제는 국가가 지식기반을 창출하고 주도하는 것이 아니라 IT를 비롯한 과학기술에 기반한 오늘날의 지식을 국가가 어떻게 소화해 낼 것인가가 오히려 문제가 되고 있고 국가가 이를 따라가지 못하면 국가의 힘과 경쟁력이 약화될 수밖에 없다.

윤순봉: 지식생태계 창출방식이 과거 ‘top-down’ 방식에서 ‘bottom-up’, ‘middle-up & down’ 방식으로 변하고 있다. 노드 → 링크 → 네트워크로의 전환과정에서 단순한 선의 집합인 링크와는 달리 창발이 일어난 결과가 바로 ‘네트워크’의 형성이다. 지식국가란 지식이 그 시대 부가가치 창출의 가장 핵심적인 원천이 되는 국가를 의미한다. 이 때의 지식은 ‘mega knowledge’와 ‘meta knowledge’를 포함하는 개념이 될 것이다. 거대한 지식변화를 의미하는 ‘메타 지식(meta knowledge)’의 형성을 위해서도 수렴(convergence)을 통한 질적 변화, 즉 창발(emergence)이 일어나야 한다.

2. ‘네트워크’와 ‘국가정체성’ 사이의 긴장관계

김병국: 네트워크지식국가론은 탈근대 시대로의 진입을 인정하는 전제에서 출발하고 있다. 그러나 단순히 탈근대적 사고에만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근대와 탈근대의 복합적 조합점(combination)을 모색하고 있다. 즉 네트워크라는 거미줄을 얘기하면서도 기존의 국민국가(nation-state)를 포기하지 않음으로써 ‘네트워크 국가’라는 개념을 창안해낸 것이다. ‘거미줄(network)’은 협력, 협상, 분산, 개방을 의미하는 반면 ‘국가’는 절대성, 집중, 폐쇄의 이미지를 갖는다. ‘네트워크 국가’는 이 둘을 조합한 개념으로 이를 복잡계이론에 대입시켜 보면 ‘bottom-up’ 방식과 ‘top-down’ 방식을 결합시킨 것으로 볼 수 있다.

원래 네트워크(network)의 위계구조는 수평적이다. 단극, 다극 거미줄망 또한 수직적 의미의 네트워크를 뜻하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네트워크들의 작동원리는 과연 무엇일까? 국가중심이 아닌 탈(脫)국가적 특성을 나타내는 네트워크구조는 아무런 규제가 필요 없는 자유로운 환경하에 놓여있는 것처럼 보여질 수 있다. 그러나 기존 국가의 통치기제인 폭력(violence), 금력(wealth), 신뢰(trust), 이해관계(interest), 규칙(rule) 등은 역설적이게도 이런 네트워크를 통제하기 위해 오히려 더 필요한 도구일 수도 있다.

하영선: 테러 네트워크, 지구기업 네트워크, 시민사회 네트워크, 사이버 네트워크라는 새로운 주인공의 등장으로 세계무대는 훨씬 화려해졌다. 그러나 21세기 무대의 주연급 주인공들은 여전히 국민국가형태의 모습으로 국가간의 치열한 생존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그러나 이제 그것만으로는 불충분하다. 오늘날 국제정치무대에서 부강(富强)이라는 기득권을 갖고 있는 미국도 공세적인 군사안보만을 강조하기 보다는 네트워크와 IT혁명에 의한 지식에 기반한 유동적인 군사변환(military transformation)을 꾀하고 있다.

이제는 ‘자주’나 ‘협력적 자주’만을 강조하는 폐쇄적 민족주의의 태도에서 벗어나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네트워크 지식국가로의 전환이 이루어지고 있는 국제정치무대에서는 민족주의와 보편주의에 대한 고루한 논쟁보다는 네트워크와 민족주의를 결합시킨 ‘지구적 민족주의’, ‘네트워크적 민족주의’의 개념이 새롭게 만들어져야 할 것이다.

통일문제도 네트워크와 민족주의간의 긴장관계라는 연장선상에서 바라볼 수 있다. 바람직한 통일의 내용은 일통(一統)이 아닌, 모든 시공간과 통할 수 있는 전통(全統)의 모습이어야 한다. 이것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남과 북, 동아시아, 지구적 차원의 결합이 중층적이고 복합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남북의 일통(一統)은 이중 작은 주제 중 하나에 불과한 것이다. 문제는 ‘네트워크 국가’가 ‘네트워크’와 ‘국가’라는 다소 이질적인 두 구성요소로 이루어진다는 점에 있다. 이 두 요소가 어떻게 결합될 것인가와 이들간의 긴장관계를 어떻게 조율해 나갈 것인가에 대한 합의가 필요하다.

손동현: 중세에는 도시를 중심으로 다양한 주인공(actor)들이 활동하였으나 근대에 들어오면서 ‘국민국가’라는 적은 수의 주인공(actor)들이 활동의 중심단위가 되기 시작했다. 근대에도 원시적, 초보적 형태의 네트워크는 존재했지만 원래 국가라는 것이 일정한 폐쇄성을 전제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네트워크는 일반적인 중심개념으로 자리잡지 못했다.

그러나 이제 정보화시대를 맞아 폐쇄적이고 딱딱했던 기존 국가정체성의 모습이 개방적이고 유연한 네트워크 형태로 바뀌고 있다. 그런데 딱딱한 노드(node)나 도트(dot)를 연상시키는 국가라는 이미지와 유동적인 네트워크의 이미지를 갖는 지식국가는 어떻게 연결되는 것일까? 사람의 신체는 복잡한 네트워크구조로 이루어져 있지만 눈, 귀, 코 등의 각각의 기관은 각자 독자성을 유지하고 있다. 이처럼 네트워크 안에 편입되어 있는 각 구성인자들도 자기동일성을 유지할 수 있는가? 아마도 네트워크의 구성인자들이 정체성을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은 ‘자주’를 외치면서 혼자 고립되는 방식이 아닌, 네트워크를 통한 개방의 방식이 될 것이다. 복잡하게 얽혀있는 네트워크 구조하에서 자기동일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실체적(substantial) 사유와 기능적(functional) 사유를 단절시키지 않고 통합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정우: 삶의 단위를 국가나 민족으로 생각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형성하는 네트워크의 형태는 다를 것이다. ‘우리(We)’의 범위를 과연 어디까지로 볼 것인가? 국제적인 네트워크 연결망 속에서 국가를 초월해 점점 보편성을 획득해가고 있는 넓은 의미의 ‘우리’라는 개념과 국가중심주의, 민족중심주의라는 관념 사이에 존재할 수 있는 복잡한 긴장관계는 어떤 모습으로 표출될 것인가? 또 이를 어떻게 조율할 수 있을 것인가?

효율적인 정치를 위해서는 어느 정도 획일성을 유지하기 위한 조종과 통제가 필요하다. 그런데 정체성(identity)이 흐려지고 분산되는 특징을 갖는 네트워크를 일사분란하게 통합하고 조정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할 것이다. 그렇다고 네트워크의 무한정한 확산을 그냥 방치해버릴 수만은 없다. 네트워크와 정치, 이 둘 사이에 존재하는 긴장관계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최소한의 공동체 정체성((identity)을 유지해야만 하는 영역과 분산되고 열려있는 네트워크로만 기능할 수 있는 영역의 경계선은 무엇이 될 것인가?

3. 한국의 전략적 선택: ‘매력(魅力)국가’ 만들기

하영선: 이제는 지식과 같은 비물질적 자원이 기존의 부강을 추구하는 물질적 권력자원을 넘어서, 새로운 권력자원으로 부상하고 있다. 특히 정보화는 지식의 효율적 활용을 가능케 하는 ‘메타 지식(meta-knowledge)’이나 인간의 정체성에 영향을 미치는 ‘구성적 지식’을 부각시키고 있다. 이러한 구성적 메타 지식이 지니는 국제정치학적 의미는 행위자 차원에 기반을 둔 물질적 권력을 넘어서 구조, 체계 차원에서 작동하는 새로운 지식권력, 즉 ‘매력(soft power)’을 부상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조셉 나이(Joseph Nye)는 미국은 폭력과 금력은 소유하고 있지만 매력이 없는 것이 문제라는 점을 지적하면서 ‘soft power’에 의미를 부여한 바 있다. 폭력이나 금력만 가지고는 앞으로 국제정치무대에서 영원한 주인공이 될 수 없다. ‘매력’이라는 보이지 않는 힘이 더 추가되어야 한다. 여기서 매력이란 일종의 홀림 현상을 뜻하는데 이는 머리나 이성이 아닌 마음, 감성을 사로잡는 것을 뜻한다.

한국이 달라지고 있는 국제정치 환경 속에서 생존을 유지하고 지속적인 발전을 이루기 위해서는 새로운 지식권력에 기반한 ‘한국형 매력국가’를 건설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매력’이라는 추상적 담론이 구체적 현실로 실현될 수 있는 전략의 기본원리를 창안해내야 하며, 이를 누가 어떻게 실천해 낼 것인가에 대한 실천전략적 차원의 고민이 있어야 한다. 예를 들면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한미동맹문제도 냉전적, 탈냉전적 사고를 넘어서는 ‘복합동맹(complex alliance)’의 시각에서 현실적인 전략을 새롭게 구상해야 한다.

21세기의 기반이 될 메타지식, 구조적 지식, 도구적 지식의 창출을 위해서는 하드웨어만으로는 부족하다. 오히려 내용물(contents)과 소프트웨어(software)가 더 중요하다. 현재 세계 지식질서에서 한국의 위상을 보면 하드웨어(hardware)는 어느 정도 마련된 반면 소프트웨어(software) 기반은 상대적으로 취약한 실정에 놓여 있다.

중국은 2020년까지 ‘소강(小康)사회건설’을 목표로 하고 있다. 아마도 이후의 담론은 ‘아시아 대동론(大同論)’이 될 것이다. 이것은 또 다른 형태의 네트워크건설을 의미하는 것이다. 단중심, 다중심의 네트워크 그물망에서 이처럼 강력한 허브(hub)가 존재하는 경우 주변은 독자적인 아이덴티티를 가지기 어렵다. 이런 점에서 볼 때 한국정부가 ‘자주’나 ‘동아시아허브론’을 외치는 것은 심정적인 이해는 가지만 현실성은 떨어지는 발상이다.

미국-중국-일본-러시아라는 제국에 둘러싸인 분단한국은 상대적으로 열세인 물리력을 극복하고 자신의 생존번영을 입체적으로 추진할 수 있도록 국제적 네트워크(international network) 속에서 5중의 그물망을 정교하게 치는 방향으로 나가야 한다. 미래의 한국형 네트워크 연결망의 형태는 미국, 일본에 좀더 진하게, 중국에는 약하게 걸쳐지는 거미줄형태가 될 가능성이 있다.

손동현: 한국인들이 IT나 정보화 등에서 자질을 보이며 앞서나가고 있는데 이것이 미래의 한국형 다보탑 쌓기 전략에 유용한 지식기반으로 작용할 수 있을 것인가? 복잡하게 얽혀있는 국제정치네트워크 구조하에서 한국이 자기동일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한국을 둘러싼 주변국들과의 사이에 탄력적이고 유동적인 형태의 거미줄을 쳐야 할 것이다.

김병국: 한국형 다보탑 쌓기 전략을 구상하는 것 자체는 그다지 어렵지 않을 수도 있다. 문제는 이를 한국과 한국민이 실제로 해낼 수 있을 것인가에 달려 있다. 창안된 전략과 아이디어를 누가 어떻게 현실적으로 구체화시킬 수 있는가가 미래 한국형 다보탑 쌓기의 관건이 될 것이다.

이정우: 관계망을 만드는 존재는 스스로 만든 관계망 속에서 또 변화하게 된다. 즉 네트워크를 만든 구성인자들과 이들이 만든 네트워크는 서로 영향을 주고 받는다. 한국의 국가정체성 또한 국제정치네트워크를 만드는 과정에서 분산되고 변화해나가게 될 것이다. 북한, 중국, 일본, 미국, 러시아 등과 복잡하게 얽혀있는 거미줄 망 속에서 한국이 미래 주인공이 될 수 있기 위해서는 어떤 전략을 구사해야 할 것인가?

윤순봉: 국내에 국한된 자원만 가지고는 생존과 지속적 성장이 어려운 국가라는 한국의 특수성을 감안할 때 국가의 유지와 발전을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개방이 뒤따라야만 한다. 여기서의 개방이란 곧 국제적인 네트워크(network)로의 편입을 의미하는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과정에서 한국적인 특수성과 보편성간에 존재하는 긴장관계를 어떻게 극복할 것이냐에 있다. 그런데 여기서 ‘한국적 특수성’이라는 것을 꼭 유지해야만 할 필요가 있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볼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보편성과 특수성이 전혀 별개인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97년 IMF 금융위기가 한국전체를 혼돈의 가장자리(edge of chaos)로 몰고 간 결과 이전과는 전혀 다른 형태의 새로운 경제질서가 자리잡게 되었지만, 그래도 여전히 한국의 정체성과 특수성은 유지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보편성과 특수성은 연속성을 토대로 상호융입되는 측면이 있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