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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로영은비는 우리에게 세가지 부분이 중요합니다. 해당 부분의 [원문], [주석], [전주]를 번역합니다. 제목이 조금씩 다릅니다.
[원문] 은 《문원영화文苑英華. 986》
주롱우총관장사증태자소보두로영은비_周隴右總管長史贈太子少保豆盧永恩碑
북주北周 유신庾信 찬撰
[주석본]은 《유자산집庾子山集.581》 사고전서본
주롱우총관장사증태자소보두로공신도비_周隴右總管長史贈太子少保豆盧公神道碑
청清 예번倪璠[1700ca.] 찬주纂注
[전주본]는 《유개부집전주庾開府集箋注. 1672》 사고전서본
주롱우총관장사증소보두로영은신도비_周隴右總管長史贈少保豆盧永恩神道碑
청清 오조의吳兆宜[1672ca.] 주註
1.
[원문]
君諱永恩, 字某, 昌黎徒何人, 本姓慕容, 燕文明帝皝之後也.
군君의 이름諱은 영은永恩이요, 자字는 모某이다. 창려昌黎 도하徒何 사람으로, 본성은 모용慕容이다. 연燕의 문명제文明帝 모용황慕容皝의 후예이다.
[주석본]
君諱永恩, 字某. 〈《周書》云: 豆盧寜之弟也.〉昌黎徒河人, 本姓慕容, 燕文明帝皝之後也. 〈《周書》云: 其先本姓慕容氏, 南燕之支庶也. 《十六國春秋》、前燕錄曰: 慕容皝, 字元真, 廆第二子, 小字萬年, 長七尺八寸, 雄毅善權略, 博學多材藝. 晉建武元年, 振武將軍; 永昌初, 拜左賢王; 太寧末, 拜平北將軍、朝鮮公. 咸和八年, 即遼東公位; 九年, 晉遣謁者拜皝為鎮東大將軍、平州刺史、大單于. 僣即燕王位, 晉使鴻臚郭忱持節拜皝為侍中、大都督河北諸軍事、大將軍、燕王, 遷都龍城. 及薨, 諡文明王, 子雋稱尊, 追尊曰文明皇帝.〉
군君의 이름諱은 영은永恩이요, 자字는 모某이다.
〈《주서周書》에서 말하기를: “두로녕豆盧寜의 아우이다.”〉
창려昌黎 도하徒河 사람으로, 본성은 모용慕容이다. 연燕의 문명제文明帝 모용황慕容皝의 후예이다.
〈《주서周書》에서 말하기를: “그 선대는 본래 모용씨慕容氏였으며, 남연南燕의 지맥이다.”
《십육국춘추十六國春秋》〈전연록前燕錄〉에 이르기를: “모용황慕容皝은 자字가 원진元真이니, 모용외廆의 둘째 아들이고, 어릴 적 자小字는 만년萬年이다. 키가 칠 척 팔 촌에 이르러, 굳세고 날래며 권략에 뛰어나고, 박학다재했다. 진晉 건무建武 원년에 진무장군振武將軍이 되었고, 영창永昌 초에는 좌현왕左賢王에 임명되었으며, 태녕太寧 말엽에는 평북장군平北將軍 조선공朝鮮公이 되었다. 함화咸和 8년에 요동공遼東公을 계승했고, 9년에 진나라가 알자를 보내 모용황에게 진동대장군鎮東大將軍 평주자사平州刺史 대선우大單于를 봉했다. 스스로를 ‘연왕燕王’이라 칭했는데, 진나라에서 홍로鴻臚 곽침郭忱을 보내 모용황을 시중侍中 대도독하북제군사大都督河北諸軍事 대장군大將軍 연왕燕王에 임명하고, 도읍을 용성龍城으로 옮겼다. 훗날 붕어하자 시호가 문명왕文明王이 되었고, 아들 준雋이 그 지위를 잇자, 문명황제文明皇帝라 추존했다.”〉
[전주본]
君諱永恩, 字某, 昌黎徒河人. 〈《漢書·地理志》曰: 「遼西郡有交黎縣.」 注: 應劭曰: 「今昌黎, 又有徒河縣.」〉本姓慕容, 燕文帝皝之後也.
군君의 이름諱은 영은永恩이요, 자字는 모某다. 창려昌黎 도하徒河 사람이다.
〈《한서漢書》〈지리지地理志〉에서 말하길: “요서군遼西郡에 교려현交黎縣이 있다.” 주注에서 응소應劭는 “지금의 창려昌黎이며, 또한 도하현徒河縣이 있다.”라고 했다.〉
본성은 모용慕容이고, 연燕의 문제文帝 모용황慕容皝의 후예이다.
[편집자주]
[원문]에는 “昌黎徒何人”, [주석본]과 [전주본]에는 “昌黎徒河人”으로 되어 있다.
2.
[원문]
朝鮮微子之封, 孤竹伯夷之國, 漢有四城, 秦為一侯.
조선朝鮮은 미자微子가 봉해진 곳이고, 고죽孤竹은 백이伯夷의 나라이다. 한漢에는 네 성城이 있었고, 진秦 때는 한 명의 후侯가 되었다.
[주석본]
朝鮮微〈當作箕〉子之封, 孤竹伯夷之國. 〈《前燕錄》曰: 皝拜朝鮮公, 又云即遼東公位. 孤竹遼地也. 《漢書·地理志》曰: 樂浪郡朝鮮. 應劭曰: 故朝鮮國也. 武王封箕子於朝鮮. 又《地理志》云: 遼西令支有孤竹城, 應劭曰: 故伯夷國, 今有孤竹城.〉漢有四城, 秦為一候. 〈謂燕也. 《漢書·地理志》曰: 昭帝元鳳元年, 改燕國為廣陽郡; 宣帝本始元年, 更為國, 有薊縣、方城縣、廣陽縣、隂鄕縣, 凡四城也. 揚雄《解嘲》曰: 西北一候. 銑曰: 候, 所謂伺候遠國來朝之賔, 亦官也.〉
조선朝鮮은 미微〈마땅히 기箕로 고쳐야 한다〉자子가 봉해진 땅이고, 고죽孤竹은 백이伯夷의 나라이다.
〈〈전연록前燕錄〉에 따르면, “모용황皝을 조선공朝鮮公에 봉하고, 또 요동공遼東公 지위로도 칭했다. 고죽은 요遼의 땅이다. 《한서漢書》〈지리지地理志〉에 ‘낙랑군樂浪郡 조선朝鮮’이라 하며, 응소應劭는 ‘옛 조선국朝鮮國이다. 무왕武王이 기자箕子를 조선에 봉했다.’고 했다. 또한 같은 《지리지》에서는 요서遼西 영지현令支縣에 고죽성孤竹城이 있다고 했고, 응소는 ‘옛 백이伯夷의 나라며, 지금도 고죽성孤竹城이 존재한다.’고 했다.”〉
한漢에는 네 성이 있었고, 진秦 때는 한 명의 후候가 되었다.
〈이는 곧 연燕을 가리킨다. 《한서漢書》〈지리지地理志〉에 “소제昭帝 원봉元鳳 원년에 연국燕國을 광양군廣陽郡으로 고쳤고, 선제宣帝 본시本始 원년에 다시 국國으로 삼으면서 계薊, 방성方城, 광양廣陽, 음향隂鄕 네 성을 두었다.”고 한다.
양웅揚雄의 《해조解嘲》에서 “서북西北의 한 후[一候]”라 했는데, 설銑은 “후候란 먼 나라 사신을 살피는 관직”이라고 했다.〉
[전주본]
朝鮮箕子之封. 〈《宋·微子世家》曰: 「武王封箕子於朝鮮而不臣.」〉 孤竹伯夷之國. 〈《漢書·地理志》曰: 「孤竹城在遼西令支縣.」 應劭曰: 「故伯夷國, 今有孤竹城.」〉 漢有四城. 〈《漢書·地理志》曰: 「元鳳元年, 改燕國為廣陽郡, 有薊縣、方城縣、廣陽縣、陰鄉縣, 凡四城.」〉 秦為一候. 〈《揚雄·解嘲》曰: 「西北一候.」〉
조선朝鮮은 기자箕子가 봉해진 곳이다.
〈〈송미자세가宋微子世家〉에서 “무왕武王이 기자箕子를 조선에 봉했으나, 신하로 삼지 않았다.”고 전한다.〉
고죽孤竹은 백이伯夷의 나라이다.
〈《한서漢書》〈지리지地理志〉에 “고죽성孤竹城은 요서遼西 영지현令支縣에 있다.”고 했고, 응소應劭는 “옛 백이伯夷의 나라며, 지금도 고죽성孤竹城이 남아 있다.”고 했다.〉
한漢에는 네 성이 있었다.
〈《한서漢書》〈지리지地理志〉에 “원봉元鳳 원년에 연국燕國을 광양군廣陽郡으로 바꾸고, 계薊, 방성方城, 광양廣陽, 음향陰鄉 네 성을 두었다.”고 한다.〉
진秦 때는 한 명의 후候가 되었다.
〈양웅揚雄의 《해조解嘲》에서 “서북西北의 한 후보一候”라고 했다.〉
[편집자주]
원문에 있는 “미자微子” 부분의 착오를 [주석본]과 [전주본]에서는 “기자箕子”로 바로 잡았다.
3.
석명은 원래 4언시 형태로 되어 있다. 《문원영화文苑英華.986》에서 표점이 되어 있지 않다.
乃為銘云
朝鮮建國孤竹為君地稱髙栁山名密雲遼陽趙裂武遂秦分寳珪世胄雕戈舊勲名稱賓實言謂身文挺此含璋降兹岐嶽有犯無隠王道正直唯愛唯敬永成恱色枕籍禮闈留連學植策參帷帳功披荆棘韓陣揮戈齊城憑軾豹䇿乃建龍韜同啓校戰岐陽申威隴坻城壘畫地山林聚米上馬諭書臨戎習禮賈復開營㢘公屈禮従容傳㑹占對造請用此㢘平終兹寛猛緑林兵息潢池盗靜名振赤山威髙青嶺𤣥獸浮河飛螟出境災氣出隴毒水侵涇朝傾地鎮夜落台星石壇承祀豐碑頌靈渭城前柏昌陵下庭湏知地市為讀山銘
편의상 나누어서 번역한다.
乃為銘云:
이에 명문銘을 지어 말하노라:
朝鮮建國, 孤竹為君.
地稱髙栁, 山名密雲.
遼陽趙裂, 武遂秦分.
조선朝鮮이 나라를 세우고
고죽孤竹을 군주로 삼았네.
그 땅은 고류髙栁라 부르고
산은 밀운密雲이라 일컫는다.
요양遼陽은 조趙에 갈라지고
무수武遂는 진秦의 땅이 되었도다.
寳珪世胄, 雕戈舊勲.
名稱賓實, 言謂身文.
挺此含璋, 降兹岐嶽.
보규寳珪는 귀한 혈통이요
새겨 둔 창은 옛 공훈이로다.
이름과 칭호는 실實을 받들고
말은 곧 몸의 문채라 했네.
옥 같은 자질을 드러내어
이 기악岐嶽에 내려왔노라.
有犯無隠, 王道正直.
唯愛唯敬, 永成恱色.
枕籍禮闈, 留連學植.
허물을 범하되 숨기지 않고
왕도의 길은 바르고 곧았네.
사랑과 공경 오로지 지키어
마침내 기쁨의 빛을 이루었다.
경전을 베고 예의 뜰에 기대어
끈질기게 학문을 심었도다.
策參帷帳, 功披荆棘.
韓陣揮戈, 齊城憑軾.
책략을 엮어 장막을 치고
공은 가시덤불을 헤치며 빛났네.
한韓의 전장에서 창을 휘두르고
제齊의 성에서는 수레에 기대었도다.
豹䇿乃建, 龍韜同啓.
校戰岐陽, 申威隴坻.
城壘畫地, 山林聚米.
표범 병서를 펼쳐 세우고
용의 병법 또한 함께 열어
기양岐陽에서 전투를 점검하고
롱저隴坻에서 위세를 떨쳤네.
성채를 그려 땅에 새기고
산림에 곡식을 모았도다.
上馬諭書, 臨戎習禮.
賈復開營, 㢘公屈禮.
말에 올라 글을 내려
전장에 임하되 예를 배웠다.
가복賈復이 진영을 열 듯
청렴한 공公은 몸을 굽혀 예를 다했네.
従容傳㑹, 占對造請.
用此㢘平, 終兹寛猛.
여유롭게 모임을 주재하고
점복으로 응답을 얻어 청을 이루었다.
이 청렴하고 공평한 도를 써
마침내 너그러움과 엄격함을 모두 이루었도다.
緑林兵息, 潢池盗靜.
名振赤山, 威髙青嶺.
玄獸浮河, 飛螟出境.
녹림緑林의 병사 그치고
황지潢池의 도적은 고요하네.
이름은 적산赤山에 떨치고
위세는 청령青嶺을 넘어서도다.
검은 짐승 강 위에 떠 있고
날벌레는 경계를 벗어나네.
災氣出隴, 毒水侵涇.
朝傾地鎮, 夜落台星.
재앙의 기운 롱隴에서 일고
독한 물 형수涇를 침범하네.
아침엔 ‘땅의 큰 산地鎮’ 기우는 듯
밤엔 높던 별마저 떨어지는구나.
石壇承祀, 豐碑頌靈.
渭城前柏, 昌陵下庭.
湏知地市, 為讀山銘.
돌 단壇에서 제사를 이어
웅장한 비석은 신령을 기리네.
위성渭城 앞 잣나무 아래에서
창릉昌陵의 뜰에 이르거든
반드시 이 땅의 ‘지시地市’를 알고
산의 명문銘을 읽어야 하리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