張阿泉. 有一種治學狀態叫「赤峰紅山後狀態」-《赤峰紅山後》中譯本序二[J]. 赤峰學院學報[漢文哲學社會科學版], 2016,37[04]1- 2.
张阿泉. 有一种治学状态叫“赤峰红山后状态”-《赤峰红山后》中译本序二[J]. 赤峰学院学报[汉文哲学社会科学版], 2016,37[0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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有一種治學狀態叫做“赤峰紅山後狀態”: 《赤峰紅山後》中譯本序二
“적봉홍산후 상태”라는 학문의 경지가 있다: 《적봉홍산후》 중문판 서문2
저자: 장아천(張阿泉)
作者簡介:張阿泉, 內蒙古廣播電視台記者, 紀錄片導演, 著名作家.
저자 소개: 장아천, 내몽고 방송국 기자, 다큐멘터리 감독, 저명한 작가.
본문
截至目前, 國內外有關紅山文化的研究專題論文已出版甚多, 濫覲於赤峰本土的紅山文化[紅山文化因首次發現於中國內蒙古赤峰紅山後而得名]名副其實地成為赤峰地區最具代表性與招牌性的頂級文化類型, 可以說「提起紅山文化就是提起赤峰」. 然而作為紅山文化研究之「開山」、早在1938年即公之於世的日文版《赤峰紅山後》考古報告, 在漫長的時間裡, 竟遲遲沒有出現中譯本, 不得不說是奇怪的事. 我揣摩, 國內專門研究紅山文化的某些知名學者不可能越過或繞過這本「打底」的必讀書, 欲「必讀」而又日文, 想來知名學者們一定日文水平很高. 可直接研讀日文原著, 而悶聲不翻譯的原因大約有二:一是忙於“立一家之言”, 無暇做翻譯苦差;二是為了信息資源獨享, 不願與他人分享;可能還有一種情況, 就是既不懂日文也堅決不參考日文版《赤峰紅山後》.
현재까지 국내외에서 홍산 문화와 관련된 연구 논문들이 많이 출판되었고, 적봉 본토의 홍산 문화[홍산 문화는 중국 내몽고 적봉홍산후에서 처음 발견되어 그 이름을 얻었다]는 적봉 지역을 대표하는 가장 상징적인 최상위 문화 유형이 되었다. “홍산 문화를 언급하는 것은 곧 적봉을 언급하는 것이다”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다. 그러나 홍산 문화 연구의 ‘시작’이자, 1938년에 이미 세상에 공개된 일본어판 《적봉홍산후》 고고학 보고서가 오랜 세월 동안 중역본으로 나오지 않았다는 것은 정말 이상한 일이다. 나는 일부 홍산 문화를 연구하는 국내 저명 학자들이 이 ‘기초’가 되는 필독서를 지나칠 수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필독서가 일본어로 되어 있는 만큼, 저명 학자들은 일본어 수준이 높아 직접 원서를 읽었을 것이고, 번역하지 않은 이유는 두 가지일 수 있다. 첫째는 “자기만의 학설을 세우기”에 바빠 번역할 여력이 없었고, 둘째는 정보 자원을 독점하려는 욕구 때문에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또 한 가지 가능성은, 일본어를 이해하지 못하고 일본어판 《적봉홍산후》를 철저히 무시했을 가능성이다.
由日本東亞考古學會編輯出版的日文版《赤峰紅山後》雖被中國學術界冷落多年, 但其獨特的學術價值毋庸置疑. 以濱田耕作、水野清一這兩位日本考古學家為首的日本考古團隊在1935年對「瀕臨損毀」的紅山後古遺址進行的這次「搶救性」發掘, 採用了當時世界上先進的「體質人類學」一路治學方法, 獲得了大量第一手珍貴的考古資料. 1955年, 中國考古學家尹達先生正式提出「紅山文化」這個概念, 而實質上紅山文化研究從1935年就「深度」開始了, 日文版《赤峰紅山後》向外界公佈了紅山文化[即書中副題所示「滿洲國熱河省赤峰紅山後先史遺跡」]的存在.
일본 동아 고고학회가 편집하여 출판한 일본어판 《적봉홍산후》는 오랫동안 중국 학계에서 외면받았지만, 그 독특한 학술적 가치는 의심할 여지가 없다. 일본의 고고학자 하마다 고사쿠濱田耕作와 미즈노 세이이치水野清一가 이끄는 일본 고고학팀은 1935년에 “파괴 직전”의 홍산후 고대 유적을 대상으로 “구조적” 발굴을 진행했으며, 당시 세계적으로 선진적인 “체질 인류학” 방법을 채택하여 다수의 귀중한 1차 고고학 자료를 수집했다. 1955년, 중국 고고학자 윤달尹達 선생이 “홍산 문화”라는 개념을 공식적으로 제시했지만, 사실상 홍산 문화 연구는 1935년부터 이미 “깊이 있게” 시작되었으며, 일본어판 《적봉홍산후》는 홍산 문화[즉, 책의 부제에 명시된 “만주국 열하성 적봉홍산후 선사 유적”]의 존재를 외부 세계에 공개한 첫 번째 자료였다.
記得民間有一句戲說叫“敦煌在中國, 敦煌學卻在日本”, 這裡也可再克隆一句“紅山在中國, 紅山文化研究卻在日本”. 這當然也是戲說, 不值得爭辯, 但道理還是有的, 至少說明日本學者對紅山文化的研究起步比中國學者早. 一門學問往往博大精深, 不可能輕易被某一次發掘活動、某一本考古報告所窮盡, 但「搶佔先機」從來在「以發現為第一要務」的考古行當中極具競爭力. 一直關注紅山文化的中國著名學者梁思永、裴文中等“考古大咖”, 後來翻閱這本日文版《赤峰紅山後》考古報告時, 不可能不懷有尷尬、遺憾的心情.
민간에서는 “둔황은 중국에 있지만 둔황학은 일본에 있다”는 농담이 있는데, 이를 “홍산은 중국에 있지만 홍산 문화 연구는 일본에 있다”로 바꿔 말할 수도 있다. 물론 이 또한 농담일 뿐이지만, 어느 정도 사실을 반영한 말이다. 일본 학자들이 중국 학자들보다 홍산 문화 연구를 일찍 시작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학문이라는 것은 매우 방대하고 심오하기 때문에, 단 한 번의 발굴이나 한 권의 고고학 보고서로 그 학문 전체를 다룰 수는 없다. 그러나 “선수를 치는 것”은 언제나 고고학에서 중요한 경쟁력 중 하나다. 홍산 문화에 오랫동안 주목해온 중국의 저명한 학자들, 예를 들어 양사영梁思永과 배문중裴文中 같은 “고고학 대가”들은 나중에 이 일본어판 《적봉홍산후》 고고학 보고서를 읽으면서 분명히 난처하고 아쉬운 마음을 느꼈을 것이다.
其實迷人的學問都是世界性的“公器”, 譬如蒙古學、匈奴學, 國際上有幾十個、上百個國家的學者都沉醉其中, 樂研不疲, 這也是衡量一門學問是“真顯學」還是「偽顯學」的重要標準. 學術無國界, 、考古無國界, 它像陽光普照大地一樣為全球人服務, 實不必在意好東西、好貨色究竟是出自哪國學人之手[錢鍺書先生有“你如果覺得雞蛋好吃, 何必非要認識那隻下蛋的母雞」一句幽默, 這裡也可「竄改」成「你如果覺得雞蛋好吃, 何必非要計較那隻下蛋母雞的國籍」]. 放下其他因素和背景不談, 僅從學術角度講, 面對日本學者在1938年就奉獻出來的這本高規格紅山文化考古報告, 我們的中國同行心裡應懷一份“見賢思齊”的敬重.
사실 매력적인 학문은 모두 세계적인 “공공재”다. 예를 들어, 몽골학과 흉노학은 전 세계 수십, 수백 개국의 학자들이 열정적으로 연구하는 분야다. 이는 한 학문이 “진정한 학문”인지, 아니면 “거짓된 학문”인지를 가늠하는 중요한 기준이기도 하다. 학문과 고고학은 국경이 없으며, 햇빛이 온 세상을 비추듯이 전 세계 사람들을 위한 것이다. 학문이 어느 나라 학자에 의해 연구되었는지에 대해 너무 신경 쓸 필요는 없다. 전타서錢鍺書 선생의 말처럼, “계란이 맛있다고 느낀다면, 굳이 그 계란을 낳은 암탉을 알아야 할 필요는 없다”라는 유머가 있다. 이를 “계란이 맛있다고 생각한다면, 그 암탉의 국적을 신경 쓸 필요는 없다”로 바꾸어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다른 요소와 배경을 배제하고 학술적 관점에서만 본다면, 일본 학자들이 1938년에 내놓은 이 고품질의 홍산 문화 고고학 보고서를 마주할 때 우리 중국 학자들은 “선인을 보고 배운다”는 존경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以蘇秉琦、郭大順等學者為傑出代表的紅山文化研究, 大大豐富了紅山文化學術成就. 目前不但是赤峰顯學, 更是國際顯學. 越是顯學, 其基礎工作越要做紮實, 及時譯介國外有關紅山文化的經典學術著作便是基礎工作之一, 這方面我們做得還很不夠. 日文版《赤峰紅山後》考古報告問世77年後, 今天終於有了優質中譯本, 從此紅山文化研究的「中文學術著作拼圖」會更完整一些, 這是嘉惠學林的一件盛事, 而這件盛事的發起就源自於赤峰學院的李俊義博士. 俊義君在2007年就動念譯介此書, 並開始著手準備;2008年末, 我們曾在內蒙古大學圖書館冬陽斜照下一起配合翻拍了許多日文版《赤峰紅山後》書中的彩色圖片;後來俊義君乾脆個人出資豪買下了日文版《赤峰紅山後》[系“東方考古學叢刊”甲種第6冊, 全套凡6冊, 不單賣, 全部售價3萬元], 並透過政府與民間「群眾募資」方式, 與同道聯袂主持了日文版《赤峰紅山後》的中文翻譯與出版工作.
소병기蘇秉琦, 곽대순郭大順 같은 학자들이 대표하는 홍산 문화 연구는 홍산 문화의 학술적 성과를 크게 풍부하게 만들었다. 현재 홍산 문화는 적봉에서 중요한 학문일 뿐만 아니라 국제적으로도 중요한 학문이 되었다. 학문이 중요해질수록 그 기초 작업은 더욱 철저하게 이루어져야 하며, 해외의 홍산 문화 관련 고전 학술 저작을 적시에 번역하는 것도 이러한 기초 작업 중 하나다. 이 점에서 우리는 아직 많이 부족하다. 일본어판 《적봉홍산후》 고고학 보고서가 발표된 지 77년 만에, 이제 드디어 훌륭한 중역본이 나왔다. 이로써 홍산 문화 연구의 “중국어 학술 저작 퍼즐”이 조금 더 완성될 수 있게 되었다. 이는 학계에 큰 혜택을 주는 중요한 사건이며, 이 사건의 발단은 적봉학원의 이준의李俊義 박사로부터 시작되었다. 이준의 박사는 2007년에 이 책을 번역할 생각을 했고, 준비를 시작했다. 2008년 말, 우리는 내몽고 대학 도서관에서 겨울 햇살 아래 일본어판 《적봉홍산후》의 많은 컬러 이미지를 함께 촬영했다. 이후 이준의 박사는 개인 자비로 일본어판 《적봉홍산후》동방 고고학 총서 갑종 제6권, 전 6권를 구입했고, 정부와 민간의 “크라우드 펀딩” 방식으로 동료들과 함께 일본어판 《적봉홍산후》의 중역본 번역 및 출판 작업을 주도했다.
生於醫學世家的俊義君並非「科班」出身, 以物理系專科之起點逐步自修, 依靠精湛的古文與舊學素養, 最終成功跨界進入了歷史、考古研究領域. 根據我多年的觀察, 俊義君最擅長的便是“土撥鼠掘洞一樣撲倒身子乾活”和“孤狼捕獵一樣專注地尋找契機”, 日文版《赤峰紅山後》中譯本的推出正是他這種「土撥鼠+孤狼」性格的凸顯.
의학 가문에서 태어난 이준의 박사는 고고학 전공자는 아니었지만, 물리학과를 졸업한 후 독학으로 고전과 역사, 고고학 연구에 성공적으로 진입했다. 내가 오랫동안 관찰한 바에 따르면, 이준의 박사는 “지하에서 땅을 파는 두더지처럼 묵묵히 일하는” 스타일과 “늑대처럼 목표를 집중적으로 추적하는” 스타일을 잘 결합시킨 인물이다. 일본어판 《적봉홍산후》 중역본 출판은 그가 지닌 “두더지+늑대” 성향이 잘 드러난 사례다.
盤點俊義君近年來貢獻的學術實績, 無論是爬梳類著作[如《趙玉豐年譜》、《旺都特那木濟勒年譜》、《貢桑諾爾布史料拾遺》]、校點類著作[如《如許齋集》、《民國林西縣地方文獻彙編》], 還是考證類著作[如《元代全寧路石刻調查與研究》、《內蒙古盟旗名稱研究》]、譯註類著作[如《林東遼代遺跡踏查記》、《元代追封薊國公張應瑞墓碑研究》], 皆貫穿穿著「注重蒐集偏僻史料, 耐心打撈歷史碎片」的價值取向.
이준의 박사가 최근 몇 년 동안 기여한 학문적 성과를 살펴보면, 그가 집필한 다양한 저작들이 그의 학문적 가치관을 반영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연보年譜 편찬류 저작으로는 《조옥풍연보趙玉豐年譜》, 《왕도특나목제륵연보旺都特那木濟勒年譜》, 《공상낙이포사료습유貢桑諾爾布史料拾遺》가 있으며, 교점류 저작으로는 《여허재집如許齋集》, 《민국림서현지방문헌휘편民國林西縣地方文獻彙編》이 있다. 또한, 고증류 저작으로는 《원대전녕로석각조사여연구元代全寧路石刻調查與研究》, 《내몽고맹기명칭연구內蒙古盟旗名稱研究》가 있고, 번역 및 주석류 저작으로는 《림동료대유적답사기林東遼代遺跡踏查記》, 《원대추봉계국공장응서묘비연구元代追封薊國公張應瑞墓碑研究》 등이 있다. 이 모든 저작들은 “외진 역사의 자료를 수집하고, 역사적 조각을 인내심으로 복원하는” 그의 학문적 가치관을 일관되게 반영하고 있다.
2015年, 由俊義君主持的赤峰學院「內蒙古東部近現代歷史文獻研究所」開張運營, 更明確以「廣泛徵集散佚文獻資料, 持續出版《內蒙古東部歷史文獻叢書》為己任. 該所計劃在今後5至10年整理出版的文獻包括《從考古學的角度看熱河》[譯著]、《祖州城:東蒙古滿其格山遼代古城址的考古學歷史學發掘調查報告》[譯著]、《元代達魯花赤竹溫台神道碑研究》[譯著]、《元代魯國大長公主祥哥剌吉研究》、《清朝至民國時期赤峰契約文書彙輯[第一輯]》[上下冊]、《清肅親王善耆巡察東蒙古史料匯輯》[上中下3冊]、《清末至民國時期赤峰縣地方文獻彙編》[10冊]、《《泥蓮書室文集》校箋》[5冊]、《漠南訪碑錄》、《晚清熱河金丹道教史料拾遺》、《清朝末科進士張履謙研究》、《貢桑諾爾布年譜長編》[上中下3冊]、《內蒙古現存清朝聖旨文書調查與研究》、《清朝熱河地區科舉人物研究》[上下冊]、《民國赤峰縣知事葉大匡史料拾遺》、《民國蒙漢合璧五方元音》[上下冊]、《民國時期《政府公報》中的昭烏達盟史料選輯》[上下冊]、《民國時期〈政府公報〉中的卓索圖盟史料選輯》[上下冊]、《喀喇沁王府文化研究論著選譯》[3冊]、《東蒙古歷代行紀彙編》[10冊]…光看這一長串兒「良家婦女臉龐一樣端莊」的書名就足以令人振奮, 真可謂拾珍珠於草野, 還故紙以新魂, 為專業研究輸氧, 為文史閱讀添柴. 「內蒙古東部近現代歷史文獻研究所」估計就是僅有幾個人的“小米研究所”, 但只要有一個明白人在那裡主事, 就是一支能戰鬥的隊伍, 就能做出許多連社科院都未必能做出的大事情.
2015년, 이준의 박사가 주도한 적봉학원의 “내몽고 동부 근현대 역사 문헌 연구소”가 개소하여 본격적인 운영을 시작했다. 이 연구소는 “광범위한 문헌 자료를 수집하고, 지속적으로 《내몽고 동부 역사 문헌 총서》를 출간하는 것”을 목표로 명확히 설정했다. 향후 5~10년 동안 정리하고 출간할 문헌 목록에는 다음과 같은 자료들이 포함될 예정이다. 《고고학적 관점에서 본 열하熱河》 [번역서], 《조주성: 동몽골 만치거산 요나라 고성 유적의 고고학적 역사 발굴 조사 보고서》 [번역서], 《원대 달루화치 주은태 신도비 연구》 [번역서], 《원대 노국 대장공주 상가라길 연구》, 《청나라부터 민국 시기까지 적봉 계약 문서 집성 [제1집]》 [상·하권], 《청숙친왕 선기 동몽골 순찰 사료 집성》 [상·중·하권], 《청말부터 민국 시기까지 적봉현 지방 문헌 집성》 [10권], 《니련서실 문집 교점》 [5권], 《몽남 방비록》, 《만청 열하 금단 도교 사료 수집》, 《청나라 말기 진사 장이겸 연구》, 《공상노르부 연보 장편》 [상·중·하권], 《내몽고 현존 청나라 성지 문서 조사 및 연구》, 《청나라 열하 지역 과거 인물 연구》 [상·하권], 《민국 시기 적봉현 지사 엽대광 사료 수집》, 《몽한합벽오방원음蒙漢合璧五方元音》 [상·하권], 《민국 시기 정부 공보政府公報에 나타난 소오다맹昭烏達盟 자료 선집》 [상·하권], 《민국 시기 정부 공보에 나타난 작소도맹卓索圖盟 자료 선집》 [상·하권], 《카라친 왕부 문화 연구 저작 선집》 [3권], 《동몽골 역대 행기 집성》 [10권] 등이다. 이 길고 장엄한 목록만 보아도 학문적 열정과 기대감을 불러일으키며, 풀 속에서 진주를 찾아내듯이 귀중한 자료를 모으고, 오래된 기록에 새 생명을 불어넣어, 전문 연구에 산소를 공급하고 역사와 문학 연구에 새로운 에너지를 불어넣는 데 기여하고 있다. “내몽고 동부 근현대 역사 문헌 연구소”는 규모가 작은 ‘미니 연구소’일 수도 있지만, 그곳에서 연구를 이끄는 인물이 뛰어난 역량을 가지고 있다면 이는 강력한 연구 팀이 될 수 있다. 이러한 팀은 사회과학원조차도 해내지 못할 큰 일들을 이뤄낼 수 있을 것이다.
我把俊義君這種近於清代樸學[即倡導“博古好古”、“實事求是”的干嘉學派]的治學狀態, 試稱為“赤峰紅山後狀態”, 這也是濱田耕作、水野清一他們這些日本學者當年開掘紅山後古遺址行動留給吾鄉赤峰的一份特殊的「精神氣場」. 我想, 真正有遠見卓識的學者不該太貪戀「山前」的風光, 因為那裡不是學者的舞台, 「山後」才是學者的主場. 在遠離喧囂的陰坡山腳下, 開墾一片屬於自己的園地, 起早貪黑, 戴月荷鋤, 默默地做一些貌似平凡實則高華的農作物苦工, 待秋來必有沉甸甸的收穫. 一個學者越耐得住寂寞, 眼光越長遠, 其學術成就就越大, 成色就越足, 反之亦然. 明白了這個悖論, 也就明白了俊義君所秉持的「赤峰紅山後狀態」的內涵.
나는 이준의 박사의 학문적 상태를 청대 박학[즉, “고문古文을 사랑하고 실사구시實事求是를 추구하는” 간가학파乾嘉學派]에 가까운 것으로 본다. 그래서 이를 “적봉홍산후 상태”라고 명명하고자 한다. 이는 하마다 고사쿠濱田耕作와 미즈노 세이이치水野清一 같은 일본 학자들이 홍산후 고대 유적을 발굴할 때, 우리 적봉에 남긴 독특한 ‘정신적 기운’이기도 하다. 나는 진정한 학자는 “산 앞”의 화려한 경치를 너무 탐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그곳은 학자의 무대가 아니기 때문이다. “산 뒤”가 바로 학자의 주 무대이다. 떠들썩한 곳에서 멀리 떨어진 그늘진 산기슭에서, 자신의 밭을 개간하며,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묵묵히 일하다 보면, 가을이 오면 분명히 무거운 수확을 얻게 될 것이다. 학자는 고독을 견딜수록 시야가 넓어지고, 그 학문적 성취는 더욱 커지며, 성과의 깊이 또한 더욱 풍부해진다. 반대로, 고독을 견디지 못하면 학문의 깊이도 얕아질 것이다. 이 역설을 이해한다면, 이준의 박사가 지니고 있는 “적봉홍산후 상태”의 본질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遵俊義君之囑, 濫竽序二, 權為《赤峰紅山後》中譯本書前書後的故事做補白.
이준의 박사의 부탁에 따라, 부족하나마 《적봉홍산후》 중역본의 서문 2를 맡아, 이 책의 앞뒤 이야기를 덧붙여 보완하였다.
2015년 12월 30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