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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o-sapiens/neo-genesis 관련 부분 발췌]


131년 전 … 미지의 세계에 도전할 때처럼, 오늘날 우리 대학도 이전에는 경험해보지 못했던 미지의 세계를 향해 나아가고 있습니다. 거대한 문명사적 전환의 소용돌이 속에서 과학기술의 급속한 발전과 정보통신수단의 발달은 대학의 교육과 연구의 환경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대학들은 아직도 산업사회의 틀 안에 갇혀 변화를 주저하고 있습니다.

대학은 지금 빠르게 진행되는 사회 변화에 선도적으로 대응해야 합니다. 저는 연세대학교의 총장으로서 연세대학을 바꾸고 대한민국 고등교육의 비전을 제시하려고 합니다. 이를 위해 앞으로의 100년을 향해 ‘미래를 이끌어 가는 대학’의 초석을 쌓겠습니다. 저는 대학이 도전해야 할 과제 중에서 세 가지에 주목하고자 합니다.

첫째, 100세 시대에 대비하여 교육 방식을 획기적으로 바꾸어야 합니다.

우리는 의학기술의 급속한 발전으로 인하여 장수시대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올해 선발된 학부 신입생들은 2100년까지 살아갈 것이 확실해 보입니다. 잠시 2100년이 어떤 사회가 될지를 상상해보십시오. 우리 학생들이 대학교를 졸업한 이후, 평생 어떤 사회에서 살아갈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과학계에서는 2045년쯤 인공지능이 인간의 지능을 뛰어 넘을 것이라는 예측이 나오고 있습니다. 이 때면 우리 신입생이 50세쯤 될 것이고, 그들은 그 후에도 50년을 더 살아갈 것입니다. 상상조차 하기 어려운 사회에서 살아갈 우리 학생들에게, 현재 수준의 전공지식만을 가르쳐 졸업시키는 것은 시대착오적일 것입니다. 스펙쌓기와 젊음을 맞바꾸고, 점수가 지성을 지배하는 현재의 모습으로는 미래의 인재들을 키워나갈 수 없습니다. 이들이 평생 사용할 수 있는 내용을 가르쳐야 합니다. 인공지능이 인간의 일을 대체하는 시대가 와도,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사고능력을 가르쳐야 합니다. 저는 그것이 문학-역사-철학에 근거한 기초교육이라고 생각합니다. 2100년까지 살아갈 학생들이 필요로 하는 것은 생각하는 능력, 상상력, 그리고 창의력입니다. 남들과 다르게 생각하는 인재를 키워내려면 지식 전달 위주의 교육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저는 교육의 내용과 방법을 그런 방향으로 바꾸려 합니다.

둘째, 대학은 네트워크 사회에 대응해야 합니다.

네트워크 사회에서는 누구와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가 경쟁력의 원천이 됩니다. 지식은 이질적인 다른 지식과 연결되면서 새로운 지식을 만들고 있습니다. 물리학은 나노기술에 핵심적인 이론과 기술을 제공하면서 순수과학과 응용기술의 벽을 허물었습니다. 인문학과 자연과학이 만나 이전에는 상상치 못했던 창조적인 혁신을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앞으로 대학의 연구력은 이질적인 지식이 결합되는 방식에 달려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서로 다른 전공 간 그리고 캠퍼스 간의 연구 네트워크를 활성화하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경주할 것입니다.

대학 교육도 문과-이과의 구분을 뛰어넘어 타 분야 연구자와 대화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줘야 합니다. 새로운 교육을 통해 지능(intelligence)의 향상뿐만 아니라, 이미 세상에 존재하는 스마트한 아이디어들을 연결하는 ‘외지능(extelligence)’도 향상시켜야 할 것입니다. 창의력이란 무에서 유를 만들어내는 능력이 아니라, 이미 있는 것들을 연결시켜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는 ‘생각의 네트워킹’ 능력이기 때문입니다.

네트워크의 위력은 지식이나 학문 분야뿐만 아니라 대학의 행정 영역에서도 발휘됩니다. 부서 이기주의를 넘어서 행정 부서 간의 협업이 얼마나 잘 일어나는지가 대학 경쟁력의 근원이 되는 것입니다. 저는 총장으로서 모든 전공의 벽을 넘나들고, 행정부서 간 협업이 일어나는 대학을 만들기 위해 다양한 소통의 공간을 활성화하겠습니다.

끝으로, 대학교육은 ‘공감문명’의 도래에 대비해야 합니다.

미래사회에서는 개인의 이익을 추구하던 사회적 가치체계가 서로 존중하고 배려하며 아픔과 기쁨을 함께 나누는 공감의 가치체계로 바뀔 것입니다. 산업사회가 이해타산과 이익추구에 의해 움직였다면, 미래사회에서는 공감에 기초한 나눔과 돌봄이 그 중심원리로 자리 잡을 것입니다. 이웃과 환경에 대한 관심, 다양성에 대한 존중, 정책결정과정에의 참여욕구가 증가하게 될 것입니다. 이에 따라 생존하려는 욕구는 자신을 표현하고자 하는 욕구로 바뀌고, 개인주의적 관심은 공동체에 대한 관심으로 변화될 것입니다.

따라서 대학은 교육을 통해서 단순한 물질적 자원과 재능의 나눔을 넘어 기회마저도 함께 나누는 사회를 만드는데 기여해야 합니다. 연세를 세운 선각자들이 우리에게 심어준 가치가 바로 이러한 나눔의 문화이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