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순봉. “매력 있는 나라 만들기”. 조세연구원 재정포럼 [권두칼럼].  2004년 12월호.


매력 있는 나라 만들기

윤순봉

“경제는 심리다”라는 말이 있듯이, “어렵다 어렵다” 하면 정말 어려워지는 것이 경제다. 모든 경제주체들이 한국경제의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는 현실에서 여기 또 다시 부정적인 이야기를 덧붙이는 것은 큰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한국경제의 실상을 사실대로 보고 그 바탕 위에서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라는 대책을 생각해야 할 때다. “경제를 다시 살리자”나 “재도약하자” 등 방법론이 결여된 당위론적 슬로건이 아니라 보다 구체적이고 도전적인 목표가 필요하다. 필자는 그 대안의 하나로서 “매력 있는 나라를 만들자”라는 목표를 제시하고자 한다. 매력이란 강압이나 강권이 아닌, 상대방이 스스로 이끌려 오게 하는 유인력을 의미한다. 상대방이 스스로 원하여 내게 다가오는 것이므로 제로섬 관계가 아닌 상생의 방정식이 성립한다. 특히 21세기에는 “큰, 강한, 존경 받는”이라는 위압적 용어보다 “매력”이라는 말이 훨씬 “매력”적이다. 매력 있는 한국을 만들자는 목표는 우리 경제 주체들의 의욕과 엔돌핀을 일으킬 수 있을 것이다.

한국이 매력 있는 나라가 되려면 어떤 조건이 갖춰져야 하는가.

이를 위해서는 성장잠재력의 확충, 다양성에 대한 사회적 포용력, 그리고 안보와 안전의 확보라는 세 가지 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첫째, 성장잠재력을 확충하자. 경기는 상황 변동에 따라 늘 유동적으로 움직이는 것이다. 호경기가 부작용을 남기는 경우도 있으며 불경기에 미래를 위한 바람직한 준비가 이루어질 수도 있다. 호불황에 따라 일희일비하기보다는 경제의 펀더멘탈을 이루는 성장잠재력에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다. 강인한 성장잠재력을 육성하고 있다면 그 경제는 다소의 경기변동에도 불구하고 건전하게 성장할 수 있다.

성장잠재력의 확충을 위해 우선 생산요소인 노동의 투입이 확보되어야 한다. 당연히 일자리가 늘어나고 실업자가 줄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투자가 유치되어야 하므로 결국 궁극적 해결책은 매력적인 사업 환경을 구축하는 것뿐이다.

법인세율이 90%라도 돈벌이만 된다면 세계 유수기업들이 몰려올 터이니 돈이 되는 기업환경을 일구는 것이 급선무다. 한국의 강점은 역시 “디지털과 소프트(digital & soft)”에 있다. 전통적인 제조업 기반도 중요하지만 IT강국의 이미지를 살려 디지털 사업의 신천지를 만들어갈 필요가 있다. 또한 제조업의 2.5차화, 문화를 결합한 소프트 관광 등 산업 전반의 소프트 경쟁기반 구축에도 힘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다음으로 자본 투입을 늘려야 한다. 수 조원의 잉여자금을 쌓아 놓고도 투자하지 않는 원인을 기업에 돌리는 목소리들도 있지만, 근본원인은 역시 심리적인 데서 출발한다. 동물의 왕인 호랑이도 번식을 하기 위해서는 최적의 환경이 조성되어야 한다. 주변에 침입자가 있거나 수십km에 달하는 자신의 영역이 확보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교미가 불가능하다. 최근 숲이 파괴되고 인간의 영역이 확대되면서 시베리아 호랑이가 멸종 위기에 몰리게 된 것도 당연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기업가에게 신규투자란 새로운 생명의 잉태와 진배없다. 단한번의 의사결정 실수로도 수십 년을 이어온 사업이 일시에 몰락할 수 있다. 기업이 모든 정보와 지식을 모으고 직관과 지혜를 발휘해도 대규모 투자가 성공할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다. 하물며 제반 환경이 불확실하고 앞날의 위험이 높을 때 기업이 투자를 기피하는 것은 당연하다. 기업이 마음껏 활동할 수 있는 최소한의 영역과 조건이 갖추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위축된 기업가정신을 아무리 나무라봐야 소용이 없다.

마지막으로 인적자원(human capital)의 총량을 늘리고 질을 높여야 한다. 하지만 최근 논의되는 교육개혁에 대한 담론은 우려되는 바가 없지 않다. 학교에서의 지나친 평등주의의 강조는 학생들이 치열한 경쟁사회에 적응하는데 부담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우리끼리 아무리 평등하게 살고 싶더라도 글로벌 경쟁시대에 그런 소박한 희망은 유지될 수 없다. 치열하게 앞서가는 선진국의 교육을 수수방관하고 있을 수는 없는 것이다. 적절한 경쟁 원리의 도입을 통해 학생들의 경쟁력을 키우고 사회에의 적응력을 높여주는 것은 기성세대의 의무이다.

또한 대학교육의 고도화가 시급하다. 대한민국 최고의 대학이 세계 대학 100위에도 들지 못한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우리 기업은 세계 1등제품을 50여개나 가지고 있지만 세계 1등 학과가 한국에 있는가. 대학의 지식경쟁력이 취약하여 수많은 영재들이 지식 선진국으로 유학을 떠나고 상당수가 돌아오지 않고 있다. 대학은 다른 일보다 학생들의 경쟁력을 향상시키고 스스로의 지식경쟁력을 강화하는데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모든 주체들이 자기 자리에서 자기의 일을 충실히 할 때 매력 있는 나라가 만들어 질 수 있다.

둘째, 다양성을 수용하는 사회역량을 기르자. 한국 전체가 동-서, 남-북, 보수-진보, 성장-분배, 빈-익, 국내-외 등으로 양분되고 있는 형상은 “죄수의 딜레마”를 연상시킨다. 이를 극복하는 첫걸음은 먼저 주어진 상황을 받아들여야 한다. 예컨대 진보 진영에서는 “세상이 바뀌었는데 극우 보수파가 변화를 거부하고 있다”라고 하고, 보수 진영에서는 “조만간 다시 좋은 세상이 올 것”이라 한다. 서로가 서로를 인정하지 않으면서 소위 집합의 오류가 생긴다. 더욱이 세계화의 급진전을 보이면서 문화적으로, 인종적으로, 이념적으로 다양한 요인들이 한국 사회에 유입되고 있다. 이러한 다양성을 관리하고 갈등을 조정하는 능력을 사회 전체적으로 배양하는 일이 시급하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자유로운 선택에 맡겨야 할 문제를 선악의 잣대로 재고 자신의 기준을 강요하는 태도가 사라져야 한다.

셋째, 안보-안전이 확보되어야 한다. 안전은 매력의 토대를 이룬다. 여기저기서 폭탄이 터지고 테러리스트들이 활보하는 사회는 가장 매력적이지 못한 사회일 것이다. 우선 자유시장경제 그 자체에 대한 자신감을 바탕으로 공고한 한미공조 아래 북한 문제에 슬기롭게 대처함으로써 국가 안보를 확보해야 한다. 복잡해지고 불확실성이 높아지는 경제환경에서 우리 기업들과 산업이 생존의 차원을 넘어 발전할 수 있는 경제 안보 역시 중요하다. 환경 보호나 에너지 안보 역시 빠뜨려서는 안 될 사항이다. 사회적으로는 각 근로자들이 직업안정과 노후보장을 확보할 수 있는 사회 안전망도 요구된다. 자신의 현재의 삶과 미래의 삶이 불안한 속에서는 매력은 사치일 뿐이다.

이러한 일들이 제대로 진행되려면 모든 경제주체들이 자신감을 회복해야 한다. 특히 외환위기를 거치는 과정에서, 위기의 원인을 우리 사회 주류(mainstream)의 부패와 과오로 몰아붙이는 역사적 판단은 재검토되어야 한다. 한 시대를 이끌어 오면서 오늘의 경제성과를 달성한 주류 계층에 대해서 공과 과를 공정하게 평가하고 잘한 부분에 대해서는 존경과 인정을 보내는 합리적 분위기가 아쉽다. 열심히 노력한 대가가 비판과 매도뿐인 상황에서 누가 자신의 열정과 노력을 기울이려 하겠는가. 특히 경제성장의 주역이었던 기업을 일방적인 글로벌 스탠다드로 재단하고 구시대의 유물로 치부하는 것은 기업가정신은 물론 모든 경제주체의 자신감을 훼손시키고 있다. 현재의 글로벌 스탠다드는 미국 금융자본의 이익을 대변하는 월스트리트 방식일 뿐 만국에 통용될 보편적 기준이 아니다. 우리는 우리의 강점을 극대화할 수 있는 우리의 기준, 우리의 모델을 보존해야 하며, 이것은 결코 국수주의의 재판이 아니라 진정한 글로벌화를 위한 준비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