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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모] 레반트의 유령들: 최초의 개척자들은 정말 ‘실패’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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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반트의 유령들: 최초의 개척자들은 정말 ‘실패’했을까?

막다른 길에서 숨겨진 영향력으로

현생인류, 호모 사피엔스의 위대한 여정은 아프리카에서 시작됐다. 하지만 그 첫걸음은 어땠을까? 특히, 아프리카를 벗어나 처음으로 레반트(Levant, 오늘날의 이스라엘, 시리아 등 동부 지중해 연안)에 도달했던 선구자들의 운명은 오랫동안 미스터리였다.

얼마 전까지 과학계의 답은 단호했다. 약 19만 년 전 이스라엘 미슬리야(Misliya) 동굴이나 12만 년 전 스쿨(Skhul)·카프제(Qafzeh) 동굴에 살았던 인류는 그저 ‘실패한 시도’였을 뿐, 후대에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못하고 사라진 ‘유령’ 같은 존재라는 것이었다. 오늘날 우리 비(非)아프리카인의 조상은 그보다 훨씬 뒤인 약 7만~5만 년 전의 단 한 번의 성공적인 대이동에서 비롯되었다는 ‘단일 확산설’이 정설이었다.

하지만 최근, 화석, 유전자, 그리고 고대 기후를 복원하는 놀라운 기술들이 이 오래된 정설에 도전장을 내밀고 있다. 초기 개척자들의 이야기는 ‘완전한 멸종’이라는 비극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들은 비록 단명했을지라도, 인류의 대서사시에 우리가 몰랐던 영향을 남겼을 수 있다는 새로운 해석이 떠오르고 있다. 이것은 ‘막다른 길’에 대한 이야기가 ‘숨겨진 영향력’에 대한 이야기로 바뀌는 과정이다.

2011–2015년, 정설의 시대: “오직 한 번의 성공적인 탈출”

이 시기 학계는 하나의 깔끔한 이야기에 동의했다. 인류의 성공적인 ‘아프리카 탈출’은 비교적 최근에 일어난 단 한 번의 사건이라는 것이다.

마치 역사책의 한 페이지처럼, 이야기는 명확했다. 스토니브룩 대학교(Stony Brook University)의 베인(A. Beyin)은 오늘날 비아프리카인의 조상은 “7만 년 전 이후“의 단일 확산에서 비롯되었다고 정리했다(Beyin, 2011). 그 이전에 레반트에 도착했던 용감한 선구자들은 있었지만, 그들의 모험은 그저 “단명한(short-lived)” 해프닝으로 치부되었다. 런던 자연사 박물관(Natural History Museum, London)의 저명한 학자 스트링어(C. Stringer) 역시 스쿨·카프제 동굴의 인류는 “후대 인구에 실질적으로 기여하지 않았다“고 못 박으며, 그들이 우리 족보의 직계 조상이 아님을 분명히 했다(Stringer, 2014).

파도바 대학교(University of Padua)의 파가니(L. Pagani) 연구팀이 이집트와 에티오피아인의 유전자를 분석한 결과도 이 정설을 뒷받침했다. 성공적인 탈출 경로는 북쪽(시나이-레반트)이었을 가능성이 높았지만, 이 역시 7만 년 전 무렵의 ‘주력 부대’에 대한 이야기였지, 그 이전의 ‘선발대’와는 무관했다(Pagani et al., 2015). 이 시기, 레반트의 초기 개척자들은 역사의 무대에서 완전히 퇴장한 것처럼 보였다.

2011–2019년, 반격의 서막: “우리가 몰랐던 ‘이른 외출’의 증거들”

정설이 굳어지는 동안, 고고학 현장에서는 이 깔끔한 이야기에 균열을 내는 증거들이 조용히 쌓이고 있었다. 마치 잊혔던 사건의 증인들이 하나둘 나타나는 것 같았다.

이처럼 ‘이른 외출’은 더 이상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 되었다. 하지만 학계의 해석은 여전히 보수적이었다. “그들이 일찍 나간 것은 맞지만, 결국 모두 실패하고 사라졌다.” 초기 개척자들은 여전히 비운의 주인공으로 남아 있었다.

2020년, 유전체의 최종 판결?: “모든 길은 단 하나의 사건으로 통한다”

2020년, 유전체학이 이 논쟁에 마침표를 찍는 듯했다. 프랜시스 크릭 연구소(Francis Crick Institute)의 베르그스트룀(A. Bergström) 등이 발표한 대규모 연구는 충격적이었다. 전 세계 929명의 고해상도 유전자를 분석한 결과는 명확했다.

“모든 비아프리카인은 7만 년에서 5만 년 전 사이의 단일한 아프리카 탈출 확산에서 유래한다.“(Bergström et al., 2020)

DNA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19만 년 전 미슬리야 동굴의 개척자든, 12만 년 전 스쿨 동굴의 주민이든, 그들의 유전자는 현대인에게서 발견되지 않았다. 유전체 분석은 초기 개척자들이 정말로 흔적도 없이 사라진 ‘유령’이었음을 강력하게 뒷받침했다. ‘멸종 정설’은 그렇게 과학의 최종 승리를 선언하는 듯했다.

2021–2025년, 대반전: “기후가 열어준 ‘기회의 창'”

그러나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과학자들은 질문을 바꾸기 시작했다. “그들은 왜 실패했는가?”가 아니라, “그들이 마주한 세상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최신 기후 모델링 연구는 놀라운 사실을 밝혀냈다. 과거의 레반트와 아라비아는 불모의 사막 장벽이 아니었다. 기후 변화에 따라 주기적으로 초원이 펼쳐지는 ‘녹색 회랑’이 열렸다.

이러한 발견은 모든 것을 바꾸었다. 초기 개척자들의 ‘이른 외출’은 무모한 실패가 아니었다. 그것은 기후가 ‘기회의 창’을 열어주었을 때마다 이루어진, 지극히 합리적이고 반복적인 시도였다. 그들은 막다른 길로 뛰어든 것이 아니라, 열린 문으로 나아갔던 것이다.

최근 파도바 대학교(University of Padua)의 발리니(L. Vallini) 연구팀은 한 걸음 더 나아가, ‘페르시아 고원 허브’ 모델을 제안했다(Vallini et al., 2024). 약 7만 년 전 아프리카를 떠난 우리 조상들이 곧장 전 세계로 퍼진 것이 아니라, 페르시아 고원(오늘날의 이란, 이라크 등)에 오랫동안 머물며 ‘허브’를 형성한 뒤, 약 4.5만 년 전을 기점으로 동서남북으로 뻗어나갔다는 혁신적인 가설이다. 이 모델에 따르면, 레반트의 초기 개척자들은 완전히 동떨어진 ‘실패작’이 아니라, 이 거대한 허브를 형성하는 과정의 일부, 즉 대서사시의 ‘서막’이었을 가능성이 열린다.

결론: ‘멸종’에서 ‘숨겨진 영향’으로

초기 레반트 개척자들에 대한 이야기는 극적으로 바뀌고 있다.

따라서 오늘날 우리는 레반트의 유령들을 더 이상 ‘완전한 실패자’로 부르지 않는다. 그들은 “대부분 단명했지만, 인류의 위대한 여정에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남겼을” 선구자들로 재평가되고 있다.

부록: 핵심 논문 상세 내용

레반트 북방 경로 관련 핵심 논문 요약표

논문 연대/시기 지점·대상 방법 핵심 수치·발견 의미 한계
Beyin (2011) 후기 홍적세 아프리카·레반트 문헌 종합 “오늘날 비아프리카인 대다수는 7만 년 전 이후 확산에서 유래” 후기 단일 확산 정설 확립, 초기 물결은 단명으로 규정 2010년대 이전 자료 위주, 이후 발견 반영 못함
Stringer (2014) 12만–9만 년 전 스쿨·카프제 고고학·화석 재평가 “후대 인구에 실질적으로 기여하지 않음” 레반트 초기 집단은 장기적 기여가 없음을 재확인 유전체 증거가 제한적이던 시기의 논평
Pagani et al. (2015) 7만–6만 년 전 이집트·에티오피아인 게놈 비교 북방 경로(이집트-시나이)가 데이터와 더 일치 성공적인 ‘아웃 오브 아프리카’의 경로로 북쪽을 강조 10만 년 전 이전의 초기 파동과는 무관
Shriner (2016) – Pagani 2015 재분석 통계 모델 재검토 북/남 경로 단정 불가 경로 논쟁은 아직 미해결 상태임을 보여줌 샘플과 모델 가정에 민감함을 지적
Armitage et al. (2011) 12.5만 년 전 UAE 제벨 파야 석기군 분석, OSL 아프리카 중석기와 유사한 석기 발견 아라비아 조기 진출의 증거, 그러나 ‘일시적’ 사건으로 평가 인골 없음, 제작자 단정 불가
Petraglia et al. (2012) 8.5만–7.5만 년 전 사우디 주바 고호수 석기군·환경 복원 습윤기마다 반복적인 점유 흔적 발견 ‘녹색 아라비아’ 시기 내륙 점유 증명 인골 없음, 종 정체성 불확실
Groucutt et al. (2018) 8.5만 년 전 사우디 알-우스타 인골(U–Th, ESR) 호모 사피엔스 손가락뼈 확인 아라비아 내륙에 사피엔스가 존재했다는 직접 증거 개체 1점이라 집단 규모나 지속성은 불명
Hershkovitz et al. (2018) 19.4만–17.7만 년 전 이스라엘 미슬리야 인골(U–Th, ESR) 현생인류 상악골 발견 아프리카 밖 가장 이른 사피엔스 화석 표본이 단수, 후대 기여율은 불확실
Harvati et al. (2019) >21만 년 전 그리스 아피디마 두개골 분석, 연대측정 아피디마 1 두개골을 사피엔스로 재분류 유라시아에서 가장 이른 사피엔스 존재 가능성 보존 불량, 분류에 대한 논쟁이 있음
Bergström et al. (2020) 7만–5만 년 전 전 세계 929게놈 고해상도 전장게놈 “모든 비아프리카인은 7만~5만 년 전 단일 확산에서 유래” 주된 조상 lineage가 후기 단일 확산임을 재확인 국지적인 소량의 기여는 탐지하기 어려움
Beyer et al. (2021) 최근 30만 년 전 지구 기후모델 모델링(강수·해수면) 바브엘만데브 해협 폭 4–20km, 남쪽 길의 조건 좋았음 남쪽 길의 현실성 강화, 레반트 경로도 반복적으로 열렸음 모델 기반 추정, 직접적인 고고학 증거는 아님
Hill et al. (2022) 지난 50만 년 남부 홍해 해수면·조석 모델링 항상 바다였으며, 완전한 육교는 없었음 짧은 해상 횡단이 필요했지만 충분히 가능했음을 시사 항해 기술이나 빈도는 직접 자료 없음
Abbas et al. (2023) 13만–9만 년 전 레반트–요르단 계곡 지층·OSL 분석 장기간 지속된 습윤기(“protracted moisture”) 존재 확인 초기 외출이 반복적·단명했으나, 회랑 자체는 현실적이었음 유전적 기여율은 평가 불가
Vallini et al. (2024) 7만–4.5만 년 전 페르시아 고원 유전+고환경+고고 허브 체류 후 4.5만 년 전 무렵 급격히 확산 초기·후기 파동을 하나의 연속 과정으로 재맥락화 모델 추정, 더 많은 고고학적 증거 필요
Markowska et al. (2025) 지난 800만 년 아라비아 석순 동위원소 분석 반복적인 습윤기가 여러 차례 존재했음을 확인 ‘녹색 아라비아’ 창이 주기적으로 열렸음을 입증 직접적인 인류 증거가 아닌 환경 기록

1) Abbas et al. (2023), Science Advances — “레반트 회랑은 실제로 젖어 있었다”

2) Vallini et al. (2024), Nature Communications — “페르시아 고원 허브 모델”

3) Beyer et al. (2021), Nature Communications — “이동 가능한 ‘기후 창’ 정량화”

4) Hill et al. (2022), Quaternary Science Reviews — “남부 홍해는 늘 바다였다”

5) Hershkovitz et al. (2018), Science — “미슬리야 동굴의 19만 년 전 턱뼈”

6) Harvati et al. (2019), Nature — “아피디마 1: 21만 년 전 유럽의 매우 이른 사피엔스”

7) Armitage et al. (2011), Science — “제벨 파야의 12.5만 년 전 석기군”

8) Petraglia et al. (2012), PLoS ONE — “네푸드 사막의 반복적인 점유”

9) Groucutt et al. (2018), Nature Ecology & Evolution — “알-우스타의 8.5만 년 전 손가락뼈”

10) Bergström et al. (2020), Science — “929게놈 분석: 주된 조상은 7만~5만 년 전 단일 확산”

11) Pagani et al. (2015), AJHG — “성공적인 탈출 경로는 북쪽(이집트-시나이)일 가능성”

12) Shriner (2016), Frontiers in Genetics — “경로는 아직 불확실하다”

13) Beyin (2011), IJEB — “당시의 종합 리뷰: 후기 단일 확산 + 초기 물결은 단명”

14) Lambeck et al. (2011), QSR — “홍해의 해수면과 해안선 복원”

15) Kopp et al. (2009), Nature — “마지막 간빙기 해수면: 지금보다 6.6m 이상 높았다”

16) Rohling et al. (2014), Nature — “기온과 해수면 변화의 ‘엇박자’”

17) Stringer (2014), TREE — “우리의 뿌리는 ‘최근 아프리카 기원(RAO)’에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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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ll, J. et al. (2022) ‘Sea-level change, palaeotidal modelling and hominin dispersals: The case of the southern Red Sea’, Quaternary Science Reviews, 293, 107719. doi:10.1016/j.quascirev.2022.107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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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mbeck, K. et al. (2011) ‘Sea level and shoreline reconstructions for the Red Sea: isostatic and tectonic considerations and implications for hominin migration out of Africa’, Quaternary Science Reviews, 30(25–26), pp. 3542–3574. doi:10.1016/j.quascirev.2011.08.008.

Markowska, M. et al. (2025) ‘Recurrent humid phases in Arabia over the past 8 million years’, Nature, 640(8060), pp. 954–961. doi:10.1038/s41586-025-0885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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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traglia, M.D. et al. (2012) ‘Hominin dispersal into the Nefud Desert and Middle Palaeolithic settlement along the Jubbah palaeolake, northern Arabia’, PLoS ONE, 7(11), e49840. doi:10.1371/journal.pone.0049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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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allini, L. et al. (2024) ‘The Persian plateau served as hub for Homo sapiens after the main Out of Africa dispersal’, Nature Communications, 15(1), 1882. doi:10.1038/s41467-024-46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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