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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요약] 북신문화: 중국 북부 신석기시대 수렵-채집-경작자의 인구 확산에 대한 고고식물학적 증거: Jin, Guiyun(2020). The Beixin Culture archaeobotanical evidence from Guanqiaocunnan indicates a population dispersal of hunter-gatherercultivators into and across the Haida region of northern China.

ㅇ출처:
Jin, Guiyun, et al. “The Beixin Culture archaeobotanical evidence from Guanqiaocunnan indicates a population dispersal of hunter-gatherercultivators into and across the Haida region of northern China.” Antiquity 94.378 (2020): 1426-1443.

 

The Beixin Culture: archaeobotanical evidence for a population dispersal of Neolithic hunter-gatherer-cultivators in northern China

북신문화: 중국 북부 신석기시대 수렵-채집-경작자의 인구 확산에 대한 고고식물학적 증거

저자, 소속

 논문 요약

본 논문은 중국 북부 해대(海岱) 지역에서 나타난 북신문화(北辛文化, BC 5000년경)의 확산이 기존의 ‘농업/확산(farming/dispersal)’ 가설과 부합하는지를 검증했다. ‘농업/확산’ 가설은 신석기 문화의 확산이 정착 농업을 기반으로 한 인구 집단의 이동을 통해 이루어졌다고 설명한다 (Bellwood & Renfrew 2002; Bellwood 2005). 그러나 관교촌남 유적(BC 4340-3970)에서 출토된 풍부한 고고식물학적 자료를 분석한 결과, 북신문화 사람들은 기장, 조, 쌀과 같은 작물을 재배하면서도 도토리, 개암 등 야생 식물 채집과 수렵에 크게 의존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그들의 경제 기반이 완전한 농업 사회가 아닌 수렵-채집-경작(hunter-gatherer-cultivator)의 복합적인 형태였음을 보여준다. 따라서 북신문화의 사례는, 정착 농업이 아닌 복합적인 생계 방식을 가진 신석기 인구 집단도 광범위한 지역으로 확산할 수 있었음을 보여주며, ‘농업/확산’ 가설에 대한 중요한 재검토를 요구한다.

서론: ‘농업/확산’ 가설과 북신문화

동아시아를 포함한 전 세계 신석기 문화의 확산을 설명하는 가장 유력한 모델은 ‘농업/확산’ 가설이다 (Bellwood & Renfrew 2002; Bellwood 2005). 이 가설은 작물화된 동식물에 의존하는 안정적인 농업 경제를 갖춘 인구 집단이 이동하면서 새로운 기술, 물질문화, 그리고 언어를 전파했다고 본다 (Bellwood 2005). 그러나 고고학적 발견이 축적되면서 토기나 기념물 건축과 같은 ‘신석기적’ 요소가 반드시 농업 경제와 일치하지 않는 사례들이 보고되었다 (Dietrich et al. 2012; Mithen et al. 2018).

본 논문은 중국 북부 해대(海岱) 지역에서 기원전 5000년경 등장하여 약 1000년에 걸쳐 주변으로 확산된 북신문화를 사례로 이 가설을 검증하고자 한다. 북신문화는 정교한 토기와 건축 양식을 갖추고 있었지만, 그 경제 기반이 정말로 농업에 의존했는지는 명확하지 않았다. 이 연구는 관교촌남 유적의 고고식물학적 증거를 통해 북신문화의 생계 방식을 규명하고, 이를 바탕으로 신석기 시대 인구 확산의 동력이 무엇이었는지 탐구한다.

연구 지역 및 문화적 배경

해대(海岱) 지역의 신석기 문화

해대(海岱) 지역은 북쪽의 황하 하류 유역과 남쪽의 회하(淮河) 하류 유역 사이에 위치하며, 각각 조와 기장 농업, 쌀 농업의 핵심 지역이었다 (Bellwood 2005). 이 지역에서는 후리(后李) 문화를 시작으로 북신(北辛) 문화, 대문구(大汶口) 문화, 그리고 초기 국가 사회의 모습을 보여주는 용산(龍山) 문화가 순차적으로 발전했다 (Luan & Wagner 2009). 각 문화의 편년은 아래 스프레드시트에서 확인할 수 있다.

그림 1. 중국 북부의 해대 지역과 본문에 언급된 유적들: 1) 관교촌남; 2) 북견(北阡); 3) 대의산(大椅山); 4) 쌍돈(雙墩); 5) 동반(董潘); 6) 남둔령(南屯嶺); 7) 어화채(魚化寨); 8) 반파(半坡); 9) 강채(姜寨); 10) 원교(員橋); 11) 조가장(趙家莊) 12) 하모도(河姆渡); 13) 전라산(田螺山); 14) 초혜산(草鞋山) (지도 제작: Z. Rao).

북신문화의 특징

북신문화는 선행하는 후리(后李) 문화보다 더 다양하고 표준화된 석기(돌낫, 돌도끼, 갈돌 등)를 사용했다. 토기 역시 형태가 다양해지고 문양이 장식되었으며, 특히 세 개의 다리가 달린 ‘정(鼎)’은 이후 대문구(大汶口)와 용산(龍山) 문화로 이어지는 대표적인 기종이다 (Luan & Wagner 2009; Liu & Chen 2012: 184). 주거지는 후리(后李) 문화의 지상식 장방형 가옥과 달리 반지하식 원형 가옥 형태를 띠며, 묘제에서는 뚜렷한 사회 계층화의 증거가 보이지 않아 평등 사회로 추정된다 (Wang 2009; Liu & Chen 2012).

그림 2. 후리(后李, a-f) 및 북신(北辛, g-l) 문화 토기: a) 분(盆); b & g-h) 보(鉢); c & j) 관(罐); d & f) 부(釜); k) 삼족부(三足釜); i & l) 정(鼎) (모든 사진 제공: F. Luan).

연구 대상: 관교촌남 유적

관교촌남 유적은 2014-2015년에 발견된 중기 북신문화 시기(BC 4600-4300)의 취락이다 (Department of Archaeology and Museology, Shandong University & Tengzhou Han Dynasty Carved Stone Museum 2019). 발굴 과정에서 주거지 유구로 추정되는 소토(燒土) 지역과 함께 17개의 회갱(灰坑, 쓰레기 구덩이)이 확인되었다. 이 회갱들에서 토기, 석기와 함께 다량의 동물 뼈(돼지, 사슴, 새, 물고기, 담수 조개 등)와 식물 유존체가 수습되었다.

그림 3. 관교촌남 유적 발굴 평면도 (제도: H. Wu & E. Jamieson).

연구 결과: 고고식물학 분석 및 연대 측정

연대 측정

관교촌남 유적의 회갱에서 출토된 기장(broomcorn millet), 조(foxtail millet), 쌀(rice)의 탄화 곡물을 직접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한 결과, 유적의 사용 시기는 BC 4300년에서 BC 4000년 사이로 나타났다. 이는 이 유적이 중기 북신문화에 속하며, 서로 다른 회갱들이 동시대에 사용되었음을 보여준다.

그림 5. 관교촌남 유적에서 출토된 탄화 곡물 유존체에 대한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 결과 (제작: K. Su).

고고식물학 분석 결과

총 39개의 토양 표본에서 4530점의 식물 유존체를 수습하여 분석했다. 분석 결과, 출토된 식물은 크게 곡물류, 견과/과일류, 잡초류로 나눌 수 있었다.

그림 4. 관교촌남 유적에서 출토된 식물 유존체 일부: 1) 조; 2) 기장; 3) 쌀; 4) 콩; 5) 들깨; 6) 도꼬마리; 7) 돌콩; 8) 싸리; 9) 대추; 10) 머루; 11) 개머루속; 12) 산앵두; 13) 도토리; 14) 가시연꽃 씨앗 껍질; 15) 개암; 16) 낙우송과 (사진 촬영: J. Yang).

그림 6. 관교촌남 유적 출토 식물 유형의 백분율 및 출현율 (제작: S. Chen & E. Jamieson).

해석: 혼합 경제와 그 의미

분석 결과를 종합하면, 관교촌남 사람들은 작물 재배와 야생 자원 수집을 병행하는 혼합 경제(mixed economy) 체제를 유지했다. 곡물의 수량이 압도적으로 많지만, 이는 곡물 가공 과정에서 작은 씨앗이 유실될 확률이 높기 때문일 수 있다. 예를 들어, 아래 스프레드시트에서 보듯 개암 1알은 기장 약 200알과 비슷한 칼로리를 제공하므로, 수량만으로 중요도를 판단하기는 어렵다.

특히 주목할 점은 다음과 같다.

  1. 야생 식물의 높은 비중: 동시대 황하 중류 유역의 유적들(예: 어화채(魚化寨), 반파(半坡))이 조, 기장 농업에 크게 의존했던 것과 비교할 때, 관교촌남은 견과류와 과일 등 야생 식물의 다양성과 비중이 훨씬 높다 (Zhao 2017; Cai & Chou 1984). 이는 북신문화 사람들이 농업에 전적으로 의존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2. 기장 중심의 농업: 생산성이 더 높은 조보다 생장 기간이 짧고 척박한 환경에서도 잘 자라는 기장의 비중이 높은 것은, 이들의 농업이 흉작의 위험을 줄이기 위한 ‘보험적’ 성격이 강했음을 시사한다 (Pursglove 1972; Weisskopf 2010). 이는 아직 수렵-채집이 경제의 중심이었음을 뒷받침한다.
  3. 건지(乾地) 및 습지(濕地) 농업 병행: 기장조와 같은 밭작물과 쌀·가시연꽃 같은 습지 식물이 함께 발견된 것은 다양한 환경을 농경에 활용했음을 의미한다.

결론: ‘농업/확산’ 가설에 대한 재고

관교촌남의 고고식물학적 증거는 북신문화가 완전한 농업 사회가 아니라, 수렵, 채집, 그리고 소규모 경작을 결합한 복합적인 생계 전략을 가졌음을 명확히 보여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신문화는 약 천 년에 걸쳐 해대(海岱) 지역 전역으로 확산되었다.

이는 신석기 문화의 확산이 반드시 정착 농업에 의존하는 인구의 이동을 통해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시사한다. 북신문화의 사례는, 수렵-채집-경작과 같은 ‘생계 모자이크(subsistence mosaics)’를 가진 집단 역시 문화 혁신을 이루고 광범위한 지역으로 퍼져나갈 수 있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증거다 (Crowther et al. 2018). 따라서 ‘농업/확산’ 가설은 동아시아 신석기 시대의 복잡하고 다양한 인구 이동 양상을 설명하기에는 지나치게 단순한 모델일 수 있으며, 이에 대한 수정과 보완이 필요하다.

논문 초록

According to the ‘farming/dispersal’ hypothesis, the Early and Mid-Holocene spread of Neolithic material culture in East Asia would have arisen from dispersals of established farming populations. The authors test this hypothesis by considering the Beixin Culture that appeared in the south-west Haidai region of northern China c. 5000 BC, before spreading north and east to the coast over the subsequent millennium. While this culture had architecture, elaborate pottery and other forms of Neolithic material culture, analysis of archaeobotanical evidence from Guanqiaocunnan (4340-3970 BC) suggests an economic base of hunting, gathering and cultivating, rather than a reliance on farming.

‘농업/확산’ 가설에 따르면, 홀로세 초기와 중기에 동아시아에서 신석기 물질문화가 퍼져나간 것은 이미 자리잡은 농업 인구 집단의 이동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저자들은 기원전 약 5000년경 중국 북부 해대(海岱) 지역 남서부에 등장한 뒤, 이후 천 년에 걸쳐 북쪽과 동쪽 해안으로 확산된 북신문화(北辛文化)를 살펴봄으로써 이 가설을 검증한다. 북신문화는 건축물, 정교한 토기, 그 밖의 다양한 신석기 물질문화를 갖추고 있었지만, 관교촌남 유적(기원전 4340~3970년)에서 나온 고고식물학적 증거를 분석한 결과, 이들의 경제 기반은 농업에 의존한 것이 아니라 수렵, 채집, 경작을 함께 하는 복합적인 형태였음이 드러났다.

 

논문 결론

Ethnographic studies consistently demonstrate that subsistence economies involve the exploitation of both wild and domesticated plants, with variable degrees of importance and different roles (Freeman 2012). While we agree that agriculture provided a new dynamic for population dispersals during the Early and Mid-Holocene, advances in archaeological analysis now support models of human dispersals based on subsistence mosaics (e.g. Crowther et al. 2018). As such, the farming/dispersal hypothesis obscures as much as it explains. The Beixin Culture appears to provide a further example of population dispersal supported by a subsistence mosaic in this case with a primary reliance on the gathering of wild foods. Confirmation of this dispersal model requires further excavation, the analysis of additional archaeobotanical assemblages and aDNA analysis of both human and animal skeletal material from across the Haidai region, and East Asia more widely.

민족지학 연구들은, 생계 경제란 야생 식물과 작물화된 식물 양쪽 모두를 활용하며, 각각의 중요도와 역할이 다양하게 나타난다는 사실을 한결같이 보여준다(Freeman 2012). 우리도 농업이 홀로세 초기와 중기의 인구 확산에 새로운 동력을 제공했다는 점에는 동의한다. 그러나 고고학적 분석 기법이 발전함에 따라, 이제는 ‘생계 모자이크’—즉 하나의 생계 수단에 의존하지 않고 여러 방식을 조합하는 형태—에 기반한 인류 확산 모델이 뒷받침되고 있다(예: Crowther 외 2018). 이런 점에서 ‘농업/확산’ 가설은 설명해주는 것만큼이나 많은 것을 가려버린다. 북신문화는 생계 모자이크에 의해 뒷받침된 인구 확산의 또 다른 사례로 보이며, 이 경우에는 야생 식량의 채집에 주로 의존한 것이 특징이다. 이러한 확산 모델을 확증하기 위해서는 추가적인 발굴 조사, 더 많은 고고식물학 유물군에 대한 분석, 그리고 해대(海岱) 지역은 물론 동아시아 전역에서 출토된 인간과 동물의 골격 자료에 대한 고대 DNA(aDNA) 분석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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