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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아 컨센서스 11차 콜로키엄]

  • 주제: IT혁명, 세계화 시대의 정치
  • 발제자: 임혁백 교수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 일시: 2007년 2월 5일 (월요일) 오후 5시
  • 장소: EAI 회의실
  • 참석자: 김병국, 손동현, 이종관, 임혁백
  • 자료정리: 송문희(EAI)

콜로키엄 정리자료_text 25p


[요약] IT혁명, 세계화 시대의 정치

[발제] IT혁명, 세계화 시대의 정치 (임혁백 교수)

[토론]


[요약] IT혁명, 세계화 시대의 정치

1. 베스트팔리아 체제의 종언과 ‘신중세시대’(new medievalism)의 출현

세계화와 정보화 혁명으로 국제질서가 바뀌고 있다. 세계화는 1648년에 시작되었던 베스트팔리아 체제의 종언을 예고하고 있다. 국민국가가 기본 단위로 군림했던 시대가 지나가고 복합적, 중층적인 국제체제가 출현하고 있다. 오늘날의 국가는 신성로마제국과 교황과 같은 세계정부와 자율권과 자치권을 갖고 있는 자치도시, 자치영주로부터 협공을 받았던 중세국가와 비슷한 처지에 있다는 점에서 ‘신중세시대’(new medievalism)에 있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신중세시대의 글로벌 거버넌스의 기본적 특징은 무엇인가? 무엇보다도 신중세시대의 글로벌 거버넌스는 불평등하고 위계적이다. 신중세시대의 세계의 중심은, 유럽연합, 일본과 동아시아 신흥공업국으로 이루어지는 3극지역인 제1권역 또는 신중세권역이다. 신중세권역을 제외한 대부분의 다른 나라들은 세계화된 경제에 일정 부분 편입되어 있으면서 동시에 정치적 자유가 확립되어 있지 않으며, 여전히 20세기적인 영토국가중심의 근대화를 진행하고 있는 반주변부적인 근대권역에 속해 있다. 여기에 더하여 여전히 근대권에도 진입하지 못한 채 빈곤과 억압이 교차하는 전근대적 사회에 살고 있는 혼돈권역이 잔존하고 있다. 이처럼 신중세시대에 국제지배구조가 불평등한 위계구조의 특징을 띠고 있는 이유는 기본적으로 세계화가 지역적으로 불균등하게 일어나고 있다는 데서 기인한다.

이러한 세계화와 정보화로 영토적 국민국가는 예전의 영광을 회복할 수 없게 되었다. 국가의 정책주권은 갈수록 약화되고 있으며, 영토성이 약화되면서 물리적 폭력의 독점적 사용자로서의 국가 권력의 정당성도 약화되고 있다. 인터넷 혁명으로 거리의 개념이 소멸하면서(death of distance), 이제 경쟁은 지리적으로(geographic) 이루어지지 않고 가상적(virtual)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구 베스트팔리아 체제 하에서 독보적인 존재였던 국가는 왜소해진 행위자로 전락하고 있는 반면 기업, 이익집단, NGO등이 스타 플레이어로 떠오르고 있다. 그러므로 영토국가를 기본 행위자로 하는 구 베스트팔리아 체제는 황혼을 맞이하고 있는 것은 틀림없다.

2. 글로벌 거버넌스의 미래: 네오 베스트팔리아 (Neo-Westphalia)인가, 포스트 베스트팔리아 (Post-Westphalia)인가?

그렇다면 구 베스트팔리아 체제를 대체하는 새로운 글로벌 거버넌스는 무엇인가? 새로운 글로벌 거버넌스의 모습에 관해서는 대체로 두 가지의 상반된 견해가 있다. 네오 베스트팔리아(또는 베스트팔리아 2기)와 포스트 베스팔리아 논쟁이다. ‘네오 베스트팔리아론’(Neo-Westphalia) 주장의 핵심은 구 베스트팔리아 체제는 사라질 것이지만 구 베스팔리아 체제의 구조조정을 담당하는 주역은 여전히 국가라는 것이다. 세계화의 시대에 국가는 예전과 같은 배타적, 독점적 권력을 보유하고 있지 않지만 여전히 가장 중요한 행위자로서 새로운 글로벌 거버넌스 확립의 주역이 될 것이며, 영토국가가 중심이 되어 영토국가의 영역의 축소와 관할영역의 재조정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것이다. 반면에 ‘포스트 베스트팔리아론’(Post-Westphalia)은 영토국가가 세계화 시대의 다원적 행위자 중의 하나로 전락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국민국가의 주권의 절대성이 약화되면서 국민국가는 초국가연합, 지방, IGO, NGO, 거대기업과 관할영역을 둘러싸고 경쟁을 할 것이며, 주권을 다중적으로 분점, 공유(shared sovereignty)할 것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주권국가가 중심이 되는 베스트팔리아 체제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체제가 등장할 것이라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국제질서의 유지의 핵심적 행위자는 초국적 수준으로 올라가며, 국제평화의 수립과 유지에서 주권국가는 ‘초국적 지역연합’(New Rigionalism) 또는 강화된 글로벌 시민사회에 의해 대체되거나 보완된다. 그러나 포스트 베스트팔리아론은 그 주창자들이 인정하듯이 현실 분석에 근거하고 있다기 보다는 규범적인 미래 희망적 사고라는 한계를 갖고 있다.

3. 국내정치 거버넌스: 한국정치의 시간은 어디에 와 있으며, 어디로 가고 있는가?

한국은 지난 반세기 동안 압축적으로 근대화를 이룩하고 탈근대로의 진입을 시도하고 있는 나라이다. 현재 한국정치의 시간은 전근대, 근대, 탈근대를 단계적으로 이행해온 선진국과는 달리 ‘전근대,’ ‘근대,’ ‘탈근대’라는 비동시적 역사적 시간이 동시적으로 공존하고 있는 ‘비동시성의 동시성’을 기본적인 특징으로 하고 있다. 선진국이 수백 년에 걸쳐 이루어 내었던 근대화를 수십 년 만에 압축적으로, 돌진적으로 달성하려 한데서 나온 부작용인 것이다. 정치뿐 아니라 기업경영, 노사관계, 가족관계에서 여전히 전근대적인 관습, 가치, 행태를 청산하지 못한 채, 21세기에 들어서 있다. 이처럼 우리 정치는 농경시대의 정착정치, 산업화 시대의 거대 조직의 정치를 청산하지 못한 채 탈근대로 들어서게 됨으로써 거대 조직을 유지하기 위한 고비용-저효율 정치, 국민의 요구에 느리게 응답하는 정치, 흩어지고 고립된 개인들 간에 이루어지는 저신뢰 정치, 폐쇄적 연고 정치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즉, 대(大), 지(遲), 독(獨), 폐(閉), 배(排)의 농경시대, 산업화 시대의 정착정치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4. 한국정치의 과제: 신유목적 민주주의

따라서 21세기 한국 정치의 과제는, 전근대를 청산하고 근대를 완성하여 탈근대에 진입함으로써 선진 민주주의와의 시간적 지체 현상(time lag)을 극복하는 것이다. 이러한 시간적 지체 현상을 극복하는데 있어서 우리는 디지털 혁명이 주는 기회를 이용해야 한다. 지금 우리 사회는 디지털 혁명과 세계화의 흐름에 의해 신유목사회로 급속히 전환되고 있다. 오늘날 국가-시장-시민사회 간의 경계가 흐려지면서 고정적 경계의 시대에서 유동적 경계의 시대로 변하고 있다. 이에 따라 국가, 시장, 시민사회가 권력을 분점하면서 協治(협력적 통치)와 共治(공동통치)를 하는 ‘혼합통치’(heterarchy)의 시대로 진입하고 있다. 이에 따라 우리 정치도 소(小), 속(速), 연(連), 개(開), 포(包)의 신유목적 민주주의로 나갈 것이다. 즉, 조직의 경량화, 투명화를 통한 저비용고효율의 정치, 국민의 요구에 빠르게 응답하는 정치, 열린 네트워크의 정치, 모든 국민에게 참여가 개방된 정치, 포용적 상생정치가 21세기 신유목적 민주주의의 내용이 될 것이다. 21세기 한국은 중앙집권시대를 마감하고 지방, 시민사회, 기업, 초국적 기업에 권력을 분권, 분점하는 분권국가로 갈 것이며, 사회 제 세력간의 네트워킹을 촉진하는 촉매국가로 변화하게 될 것이다.

오늘날 디지털 혁명과 세계화는 한국인으로 하여금 오랫동안 지속되어온 농경시대의 정치, 산업화 시대의 정치를 청산하고 신유목적 민주주의로 가게 하는 구조적 조건을 형성하고 있다. 그러나 구조적 조건의 성숙만으로 신유목적 민주주의로의 전환을 보장할 수 없다. 우리는 구조적 조건을 최대한으로 이용하여 신유목적 민주주의로 가기 위해 필요한 제도를 디자인하고 그의 실현을 위한 정치개혁에 나서야 한다.

<키워드>

베스트팔리아 체제의 종언, 신중세시대(new medievalism)의 출현, 디지털 혁명, 세계화와 글로벌 거버넌스의 변화, 네오 베스트팔리아(Neo-Westphalia), 포스트 베스트팔리아(Post-Westphalia), 국내정치 거버넌스, 비동시성의 동시성, 協治(협력적 통치)와 共治(공동통치), ‘혼합통치’(heterarchy), 소(小), 속(速), 연(連), 개(開), 포(包)의 신유목적 민주주의, 속도의 정치, 경량화, 유연화의 정치, 협치 네트워크, 열린 프론티어 정치, 포용적 민주주의, 고신뢰 정치, 오프라인 정치참여와 온라인 정치참여의 융합화(hybridization), 표현주의적 정치참여(expressionism), 축제로서의 정치


[발제] IT혁명, 세계화 시대의 정치 (임혁백 교수)

발제자료_text 16p


1. 근대산업사회에서 지식정보사회로의 이동

산업사회에서 지식정보사회로 이동함에 따라 경제부문에서는 전통산업에서 디지털 산업, 소프트웨어 산업, 컨텐츠 산업 등의 지식정보산업으로 중심 축이 이동하고 있다. 정치부문에서는 이성적 정치에서 감성적 정치로 변화함에 따라 축제와 같은 정치가 등장하고, 국경을 넘나드는 초국가적 글로벌 행위자들이 출현하여 급속도로 영향력을 확대함에 따라 정치의 탈영토화가 가속화되고 있다. 사회적으로는 디지털 디바이드와 함께 신유목사회의 도래가 새로운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근대산업사회와 지식정보사회의 특질을 비교해 보면 아래 표와 같다.

<근대산업사회와 지식정보사회의 특질 비교>

산업사회 지식정보사회
물질적 가치 중시 탈물질적 가치 중시
물질적 가치의 특징: 객관적, 예측가능, 저장 가능, 불변적 지식가치의 특징: 주관적, 예측 불가, 저장 불가, 가변적
“소유”/소비의 경합 “이용”/소비의 비경합
가치창출의 원천으로서의 노동과 자본 가치 창출의 원천으로서의 지식, 정보,

아이디어

규격화된 대량생산, 자원다소비형 다품종소량생산, 자원절약형
소비의 균질화, 대중화 주관적 만족중시, 소비의 차별화, 다양화
공급자 중심의 산업분류: 1차, 2차, 3차 산업 수요자 중심의 산업분류: 物財산업, 위치 산업, 시간산업, 지식산업
소유의 양극화/빈부격차 노동의 양극화/정규직 대 비정규직
경제와 문화의 일국적 통일 경제와 문화의 글로벌화
중앙집권적 영토 국민국가의 강화 국민국가의 상대적 쇠퇴, 지방분권화
권력의 집중/정치, 경제권력의 우위 권력의 분산/사회, 문화적 권력의 대두
위계적 조직/필하모니형 조직 네트워크형 조직/재즈밴드형 조직
물질적, 직업적 이해관계를 중심으로한

집단형성/계급, 이익집단

기호, 의견, 문화적 공감대를 매개로한

네트워크형 동원/축제로서의 정치

계급/정당귀속감에 따른 투표행동 인물/쟁점에 따른 투표행동
이성적, 안정적, 정책선호의 일관성 감성적, 유동적, 정책선호의 비일관성

출처: 김세걸 (2005)

2. 디지털 혁명, 세계화와 글로벌 거버넌스의 변화

세계화와 정보화 혁명은 지난 350년간 유지되어 왔던 국경에 기초한 통치의 개념을 혁명적으로 변화시키고 있다. ‘국경이 없는 세계’(borderless world)가 전개되면서 내정과 외정의 구분이 희미해지고 있으며, 정치권력과 권위의 분권, 분산, 분점이 일어나고 있다. 세계화 시대에 초국가적 통합운동과 지방적 분리운동이 동시에 일어나면서 국민국가의 배타적 관할영역이 축소되고 있다. 국가는 위로부터 초국가적인 세계정부, 지역정부에 의해 압도당하고, 하위수준의 기업, 지방, 시민사회에 의해 도전을 받고 있다. 그러나 동시에 이러한 문화 전파에 저항하는 움직임도 격화되고 있다. 신부족주의(neo-tribalism)가 세계주의와 동시에 부활하고 있다.

(1) ‘신중세적’ 세계질서의 부활(new medievalism)

세계화와 정보화 혁명으로 국제질서가 바뀌고 있다. 세계화는 1648년에 시작되었던 베스트팔리아 체제의 종언을 예고하고 있다. 국민국가가 기본 단위로 군림했던 시대가 지나가고 복합적, 중층적인 국제체제가 출현하고 있다. 오늘날의 국가는 신성로마제국과 교황과 같은 세계정부와 자율권과 자치권을 갖고 있는 자치도시, 자치영주로부터 협공을 받았던 중세국가와 비슷한 처지에 있다는 점에서 ‘신중세시대’(new medievalism)에 있는지도 모른다.

(2) 권역간 불평등(uneven globalization)

그렇다면 신중세시대의 글로벌 거버넌스의 기본적 특징은 무엇인가? 무엇보다도 신중세시대의 글로벌 거버넌스는 불평등하고 위계적이다. 신중세시대의 세계의 중심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가 공고화되어 있고 국가 간의 상호의존이 커지고 있고, 영토국가가 세계정부, 초국적 정치체와 자치적 지방 사이에 끼어있는 제1권역 또는 신중세권역이다. 신중세권역을 제외한 대부분의 다른 나라들은 세계화된 경제에 일정 부분 편입되어 있으면서 동시에 정치적 자유가 확립되어 있지 않으며, 여전히 20세기적인 영토국가중심의 근대화를 진행하고 있는 반주변부적인 근대권역에 속해있다. 여기에 더하여 여전히 근대권에도 진입하지 못한 채 빈곤과 억압이 교차하는 전근대적 사회에 살고 있는 혼돈권역이 잔존하고 있다. 신중세시대에 국제지배구조가 불평등한 위계구조의 특징을 띠고 있는 이유는 기본적으로 세계화가 지역적으로 불균등하게 일어나고 있다는 데서 기인한다. 기실 세계화는 전 세계적으로 고르게 확산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세계화란 북미, 유럽연합, 일본과 동아시아 신흥공업국으로 이루어지는 3극지역간의 생산, 기술, 금융, 사회문화적 구조가 수렴, 통합되고 있는 현상(triadization)을 의미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3) 글로벌 거버넌스의 미래: 네오 베스트팔리아 (Neo-Westphalia)인가, 포스트 베스트팔리아 (Post-Westphalia)인가?

세계화와 정보화로 영토적 국민국가는 예전의 영광을 회복할 수 없게 되었다. 국가의 정책주권은 갈수록 약화되고 있으며, 영토성이 약화되면서 물리적 폭력의 독점적 사용자로서의 국가 권력의 정당성도 약화되고 있다. 인터넷 혁명으로 거리의 개념이 소멸하면서(death of distance), 이제 경쟁은 지리적으로(geographic) 이루어지지 않고 가상적(virtual)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구 베스트팔리아 체제 하에서 독보적인 존재였던 국가는 왜소해진 행위자로 전락하고 있는 반면 기업, 이익집단, NGO등이 스타 플레이어로 떠오르고 있다. 그러므로 영토국가를 기본 행위자로 하는 구 베스트팔리아 체제는 황혼을 맞이하고 있는 것은 틀림없다.

그렇다면 구 베스트팔리아 체제를 대체하는 새로운 글로벌 거버넌스는 무엇인가? 새로운 글로벌 거버넌스의 모습에 관해서는 대체로 두 가지의 상반된 견해가 있다. 네오 베스트팔리아(또는 베스트팔리아 2기)와 포스트 베스팔리아 논쟁이다. ‘네오 베스트팔리아론’(Neo-Westphalia) 주장의 핵심은 구 베스트팔리아 체제는 사라질 것이지만 구 베스팔리아 체제의 구조조정을 담당하는 주역은 여전히 국가라는 것이다. 세계무역기구(WTO)는 1999년 11월 시애틀에서 140개 회원국 재무장관이 참석한 가운데 21세기의 글로벌 거버넌스를 확립하려는 밀레니엄 라운드를 개최하였다. 시애틀의 밀레니엄 라운드는 베스트팔리아 이후의 거버넌스 확립도 국가가 주도할 것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세계화의 시대에 기존의 주권국민국가에 의해 마련된 규칙을 폐지하고 새로운 국제규칙을 마련하는 주역이 바로 국민국가의 재무장관들이었던 것이다. 네오 베스트팔리아론은 세계화의 시대에 국가는 예전과 같은 배타적, 독점적 권력을 보유하고 있지 않지만 여전히 가장 중요한 행위자로서 새로운 글로벌 거버넌스 확립의 주역이 될 것이며 영토국가가 중심이 되어 영토국가의 영역의 축소와 관할영역의 재조정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것이다. ‘영토국가의 무력화’ 주장은 정치적으로 조작된 신화이며, 여전히 국가는 가장 중요한 행위자로서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적응능력을 보유하고 있으며, 국가는 세계화의 희생양이 아니라 세계화의 산파로서 강한 사회 변형능력을 갖고 있고, 세계화 시대의 다양한 국가적, 지역적 교역과 투자의 망을 결합하는 ‘촉매국가’(catalytic state)로 변신할 것이라는 것이다. 국제안보와 평화의 문제도 다수의 강대국들의 협력에 의해서 해결하는 19세기의 ‘유럽 콘서트’(European Concert) 방식을 추구하는 전투적 다수강대국주의(militant plurilateralism)나, 또는 UN 안보리 내에서 불평등하게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강대국들이 밀어붙이는 ‘독단적 다자주의’(assertive multilateralism)가 될 것이라는 것이다.

반면에 ‘포스트 베스트팔리아론’(Post-Westphalia)은 영토국가가 세계화 시대의 다원적 행위자 중의 하나로 전락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국민국가의 주권의 절대성이 약화되면서 국민국가는 초국가연합, 지방, IGO, NGO, 거대기업과 관할영역을 둘러싸고 경쟁을 할 것이며, 주권을 다중적으로 분점, 공유(shared sovereignty)할 것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주권국가가 중심이 되는 베스트팔리아 체제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체제가 등장할 것이라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국제질서의 유지의 핵심적 행위자는 초국적 수준으로 올라가고 국제평화의 수립과 유지에서 주권국가는 ‘초국적 지역연합’(New Rigionalism) 또는 강화된 글로벌 시민사회에 의해 대체되거나 보완된다. 유토피아적 세계화론자들은 세계화와 정보화 혁명이 글로벌 시장, 글로벌 빌리지, 세계정부를 형성하면서 국민국가는 소멸하거나 주변화되고 궁극적으로는 국내뿐 아니라 국제기구(초국적 지역기구, 글로벌 기구)에도 민주적 참여, 책임성, 투명성, 법치, 사회정의의 규범을 갖춘 코스모폴리탄 민주주의로 갈 것이라고 예언한다. 포스트 베스트팔리아론은 그 주창자들이 인정하듯이 현실 분석에 근거하고 있다기 보다는 규범적인 미래 희망적 사고라는 한계를 갖고 있다.

3. 국내정치 거버넌스: 신유목적 민주주의

(1) 한국정치의 시간은 어디에 와 있으며, 어디로 가고 있는가?

우리는 지금 이처럼 거대한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 있다. 한국은 근대화 프로젝트인 산업화와 민주화를 완성하였으나 분단의 지속으로 완전한 근대국민 국가 형성에는 실패하였다. 그러나 지난 세기 말에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빠른 시간 내에 디지털 문명의 하부구조의 구축을 완료함으로써 디지털 시대의 선두 주자로 부상하였다. 현재 한국정치의 시간은 전근대, 근대, 탈근대를 단계적으로 이행해온 선진국과는 달리 ‘전근대,’ ‘근대,’ ‘탈근대’라는 비동시적 역사적 시간이 동시적으로 공존하고 있는 ‘비동시성의 동시성’을 기본적인 특징으로 하고 있다. 선진국이 수백 년에 걸쳐 이루어 내었던 근대화를 수십 년 만에 압축적으로, 돌진적으로 달성하려 한데서 나온 부작용인 것이다. 정치뿐 아니라 기업경영, 노사관계, 가족관계에서 여전히 전근대적인 관습, 가치, 행태를 청산하지 못한 채, 21세기에 들어서 있다. 한국은 근대를 완성하지 못한 채, 세계화로 인해 세계시간이 동시화되는 압력으로 탈근대에 들어가고 있다.

한국정치에는 아직도 전근대적인 요소가 온존하고 있다. 가산정치, 연고주의 정치, 폐쇄적 네트워크 정치, 가부장주의적 정치가 아직도 한국정치를 상당부분 좌우한다는 사실은 전근대적 요소가 온존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러면서 한국 정치의 근대화는 미완성이다. 근대화의 양대 프로젝트라고 할 수 있는 산업화, 민주화는 완성하였으나 완전한 근대 국민국가 형성(nation building)에는 실패했기 때문이다. 분단으로 근대적 국민국가의 완성이 지연되면서 우리 정치는 냉전적 색깔론으로 이데올로기적 편협성을 드러내었으며, 민족분단(남북)과 국내분단(동서지역분단)이 공존하는 기형적 형태를 노정하였다. 또한 압축적 근대화는 정치 분야에서 전근대적인 의식, 행태, 관행을 청산하지 못한 채 근대적인 정당, 의회, 선거제도를 도입하는 형태로 나타났고, 권위주의적 근대화 과정에서 행정이 정치를 대체하는 기형이 나타났다.

그러나 80년대 후반의 민주화로 선거경쟁이 제도화되었으며, 시민사회가 출현하였고 평화적 정권교체까지 이루는 등 민주주의의 공고화를 위해 빠르게 전진하고 있다. 그러면서 동시에 우리 정치에 탈근대적 요소가 들어오고 있다. 디지털 혁명으로 한국정치에도 인터넷 정치의 요소가 들어오고 있으며, 한국의 정치는 빠른 속도로 탈근대로 진입하고 있다.

(2) 한국민주주의의 문제점: 농경시대 정치, 산업화시대의 정치가 탈산업화 시대에도 잔존

한국정치의 소프트웨어는 여전히 전근대적인 ‘농경시대의 정치’이다. 한국 정치가 안고 있는 가장 큰 문제점은 전근대적인 ‘농경시대의 정치’가 탈산업화 시대에도 잔존하고 있다는 것이다. 조선시대의 정착정치(stationary politics)의 기본적인 특징은 주어진 땅에서 산출되는 고정적인 수확량을 둘러싼 영합적인(zero-sum) 분배정치였다. 여기서는 정치권력이 경제적 산출의 분배를 결정하는 ‘비경제적 강압’(extraeconomic coercion)에 의한 분배방식이 지배하였다. 따라서 정치권력을 장악한 자가 모든 것을 장악하는 정치우위의 사회였고, 이 사회에서는 권력을 둘러싼 생사를 건 투쟁이 벌어졌고, 자연히 ‘평화적 정권교체’는 예외적이 될 수밖에 없었다. 조선시대의 정권교체를 지칭하는 ‘換局’은 보통 수백 명의 죽음을 치르면서 이루어 졌던 것이다.

농경시대에는 유동적인 정치가 아니라 ‘정착적인 정치’(stationary politics)가 등장한다. 정착적인 정치의 대표적인 현상은 연고의 정치 또는 폐쇄적인 네트워크의 정치이다. 폐쇄적인 네트워크의 정치는 포용성이 낮다. 혈연, 지연, 학연을 중심으로 ‘안’(ins)과 ‘밖’(outs)을 구별하고 ‘안’과의 유대를 강화하는 만큼 ‘밖’을 배제하고 배타시하기 때문이다. 폐쇄적인 네트워크인 연고의 정치는 전반적인 ‘사회적 신뢰’를 저하시킨다. 연고의 정치와 제로섬적인 분배의 정치는 타협이 어려운 정치 환경을 낳는다. 타협은 정합게임(positive-sum game)을 요구하나 농경사회는 그러한 정합게임을 위한 물질적 기초를 마련할 수 없기 때문이다. 조선시대의 농경정치는 중앙집권과 지역할거가 동시에 공존하는 특징을 가지고 있었다. 조선 후기의 대부분의 기간을 지배해온 노론은 기호지방을 기반으로 하고 있었고 야당이었던 남인은 영남지방을 근거지로 하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조선시대의 농경정치는 강한 가산주의(patrimonialism)와 가부장주의(patriarchism)를 특징으로 하고 있었다.

농경시대의 정치와 함께 우리 정치를 짓누르고 있는 것은 산업화 시대의 정치 유산이다. 산업화 시대의 정치는 거대 조직의 정치를 기본적인 특징으로 한다. 정당 조직, 선거 캠페인에서 포드주의적 조립라인 생산(assembly line)방식으로 표를 동원하고 조직하였다. 자연히 의원 보다 당 사무국 우위의 정당정치가 지배하였다. 이러한 포드주의적 조립라인 방식의 정치는 고비용 정치를 낳았다. 정당의 관료화가 이루어지고 원내 중심정당이 아닌 당 사무국 중심 정당이 될 수밖에 없었다. 산업화 시대의 정치는 또한 정치의 중앙집권화를 초래하여 중앙의 지방 지배를 가속화하고 지방분권을 지연시켰다. 이런 한국의 산업화 정치는 서구와 같이 계급을 기반으로 하지 않고 지역을 기반으로 조직되어 자연히 계급정치에서 나타나는 이익정치, 타협정치가 실종되고 지역주의가 타협이 어려운 정치지형을 만들어 내었다.

이와 같이 한국은 전근대적인 농경시대의 관습, 가치, 행태를 청산하지 못한 채 압축적 근대화를 시도하였고, 근대를 완성하지 못한 채 세계화와 정보화의 압력에 의해 탈근대로 들어서고 있다. 잔존하고 있는 농경시대의 정치와 왜곡된 산업화 시대의 정치가 결합한 결과는 3不政治(不和, 不容, 不姙의 정치)를 낳았다. 불화(不和)의 정치란, “공존의 정치”가 자리 잡지 못하고 불화, 대결, 반목의 정치가 지속됨을 가리킨다. 불용(不容)의 정치란, 민주주의 하에서 모든 사람들은 서로가 다른 생각을 갖고 있다는데 합의(agree to disagree)하여야 함에도 불구하고 의견의 차이를 인정하는데 인색함을 뜻한다. 불임(不姙)의 정치란, 민주화 지도자들이 독재정권에 반대하는 운동을 조직하고 동원하는 데는 유능했으나 미래의 비전을 제시하고 대안을 설계하는 능력이 결여되어 민주화 이후에도 의회정치의 생산성은 극히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음을 말한다.

(3) 신유목사회의 출현

한국은 디지털 혁명이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나라 중의 하나이다. 초고속정보고속도로의 전국적 구축이 완료되어 있는 나라가 한국이며 초고속인터넷 보급율은 미국을 제치고 세계 1위이다. 정보화 분야에서 한국은 이미 선진국을 ‘따라잡는’(catch-up) 수준을 넘어서 디지털 혁명을 이끌고 있는 ‘선도자’(front runner)이다. 디지털 혁명과 신경제, 자동차의 대중화, 고속도로망, 고속철 등의 교통혁명, 도시화 등으로 한국사회는 고도로 이동성이 높은 유목사회로 변모하고 있다. 사이버 상의 이동, 지리적 이동, 직업적 이동, 교육 이동, 계층적 이동이 모두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다. 이러한 디지털 혁명, 세계화, 그리고 민주화가 한국에서 “신유목사회”(neo-nomad society)를 출현시키고 있다.

자크 아탈리(Jaques Attali)는 디지털 혁명과 세계화로 인류는 5000년간의 ‘정착생활’을 마감하고 노트북과 휴대폰을 들고서 직업, 주거, 환경, 국경, 가정을 수시로 바꾸면서 자신의 행복을 추구하는 ‘신유목민’(neo-nomad)으로 변모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신유목민의 이동은 오프라인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온라인 사이버 공간에서 자신의 행복을 찾아 계속 이동하는 ‘가상 유목민’이야말로 디지털형 신유목민이다. 신유목민의 시대에 시민들은 자신이 이동하는 문화, 이데올로기, 종교에 따라 정체성을 달리해야 할 것이다. 말하자면, 신유목민들은 정착시대의 본원적 집단정체성에서 탈피하여 유동적, 복합적, 다중적인 정체성을 갖도록 요구받게 될 것이다. 그들은 세계시민으로서의 정체성, 민족의 일원으로서의 정체성, 지방적 정체성, 직업적 정체성, 시민단체의 일원으로서의 정체성을 동시에 가져야 한다. 신유목민들은 복합적 정체성에 기초하여 ‘레고문명’(civiLego)을 만들어 나갈 것이다. 신유목민들은 서로의 문명을 존중하는 데서 나아가 다양한 문명, 철학, 이데올로기, 정치체제, 문화, 종교, 예술 중에서 자신이 원하는 것을 골라서 조립한 레고문명을 만들어 나갈 것이다. 이러한 신유목민들이 만들어 나가는 레고문명은 다원주의적이면서 포용적이다.

(4) 신유목적 민주주의의 특징

21세기 한국에서 이러한 신유목사회의 출현은 정착시대의 정치를 극복하고 신유목적 민주주의를 실현할 수 있는 기반을 제공해 줄 것이다. ‘제로섬’의 폐쇄사회에서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개방적 ‘신유목사회’로의 변화는 정치패러다임을 경량화(小), 신속화(速), 네트워크화(連), 개방화(開), 포용화(包)시킬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첫째, 디지털 혁명은 속도의 정치를 요구한다. IT는 소통의 시간적, 공간적 제약을 제거함으로써 소위 ‘지리의 종말’과 ‘속도 전쟁’이 동시 에 일어나게 된다. 인터넷, 휴대폰, 팩스, MP3와 같은 유목물품을 가지고 빠른 소통과 대화를 통해 누가 빨리 시민의 요구를 파악하여 정치에 반영하느냐 하는 소통과 응답의 ‘속도 경쟁’이 신유목적 민주주의의 핵심을 이루고 있다. 한국에서도 2002년 대선 때 노사모는 온라인과 오프라인이 결합된 선거운동을 통하여 상대 후보와는 속도에서 따라올 수 없는 빠른 선거운동을 펼친 예가 있다. 이러한 속도의 정치는 정치상품 브랜드의 생명주기(product life cycle)를 단축시킨다.

둘째, 신유목사회는 정치조직을 경량화시켜 저비용고효율 정치를 실현할 것이다. 항상 이동해야 하는 유목민은 무거운 물질적인 것은 이동에 불편만을 준다. 신유목민은 오로지 생각과 경험, 지식이나 관계만을 축적하려 한다. 신유목민들이 기본‘유목물품’인 인터넷을 활용할 경우 획기적인 정치비용의 절감을 가져다 줄 것이다. 포드주의적 조립라인 생산방식으로 표를 동원하고 조직하였던 산업화 시대의 거대조직의 정치는 온라인, 오프라인 상에서 개별적인 접속, 접촉, 소통을 통하여 표를 이끌어 내는 경량화된 유목형 정치로 바뀌고 있다.

셋째, 신유목 사회는 개방적 네트워크의 정치를 가능케 할 것이다. 유목민들은 살아남기 위해서 항상 부족 전체와 연결되어 있어야 하며 필요하다면 가까운 오아시스와도 연결되어 있어야 한다. 신유목민의 유목물품인 핸드폰, 인터넷, 팩스 등은 다양한 네트워크와의 항상 접속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전송수단이다. 그런데 신유목사회가 구축하려는 네트워크는 개방적 네트워크이다. 따라서 신유목 사회에서는 사회적으로 합의된 게임의 규칙(rule of game)을 준수하기로 동의한 모든 자들에게 네트워크가 개방된 정치가 가능하게 될 것이고, 시공간적 제약을 없애준 디지털 혁명으로 중앙에서 지방 그리고 국경을 넘어서 전 세계적으로 확장이 가능한 ‘확장형 네트워크’로 나가게 될 것이며, 프로젝트와 과업 중심으로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작업이 끝나면 해체되었다가 다시 새로운 과업을 중심으로 새로운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과제형 네트워크’의 정치조직이 출현할 것이다.

넷째, 신유목사회는 포용성이 높은 정치를 이끌 것이다. 신유목민들이 계속 이동하면서 서로 거래, 교환, 교류하기 위해서는 서로를 포용하는 공존의 정치를 펼칠 수밖에 없다. 아탈리에 의하면 유목민(nomad)이라는 단어는 함께 나눈다는 의미의 그리스어이다. 유목민은 타인에게 예의 바르며 개방적이며 어떤 선물을 줄지 항상 신경을 써야 하며, 다른 부족과 방랑의 장소를 공유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 신유목민들은 서로의 생활양식과 가치관을 존중하면서 공존하여 복합적 문화를 조립하는 레고문명(CiviLego)의 시대를 열어간다는 것이다. 복합적, 다중적 정체성은 신유목시대의 다양한 네트워크에 참가하기 위한 필수적 조건이다. 신유목시대의 거래와 교환에 참가하기 위해서는 세계시민으로서의 정체성, 민족의 일원으로서의 정체성, 지방적 정체성, 직업적 정체성을 동시에 가져야 하기 때문이다.

다섯째, 신유목사회는 고신뢰정치를 열어갈 것이다. 디지털 시대에 네트워크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높은 사회적 신뢰가 요구된다. 디지털 시대에 신뢰는 사회조직의 단순한 덕목이 아닌 생존을 위한 조건이다. 디지털 시대의 네트워크에서 신뢰가 형성되지 않으면 네트워크 자체의 존립이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수많은 네트워크가 그물처럼 얽혀있는 디지털 시대의 특성상 한 주체의 일탈 행위는 승수작용을 거쳐 사회전반에 막대한 피해를 초래할 것이다. 따라서 사회적 신뢰가 구축되어야 디지털 사회가 본질적으로 완성된다.

여섯째, 신유목사회는 프론티어의 정치를 가능하게 할 것이다. 디지털 혁명으로 과거에 상상하지 못했던 새로운 영역이 열리고 기존의 아날로그 영역의 확장이 가능해진다. 따라서 주어진 산출물의 분배를 둘러싸고 제로섬적인 분배게임을 특징으로 하는 농경시대형 ‘가치분배의 정치’의 종식이 가능해지고, 새로운 영역을 창출하고 관할권을 조정(coordinate)하는 신유목형 ‘가치창조의 정치’로 변모하게 될 것이다. 폐쇄적이고 배타적인 이념정치, 고정적 계급정치를 특징으로 하는 구정치는 쇠퇴하고, 새로운 정치세력이 항상 정치에 진입할 수 있는 개방적 정치가 열리게 된다. 여기서는 고정적 계급이 아니라 이동하는 시민의 표가 중요해지고, 자본가와 노동자간의 계급균열이 아니라 정보부자 (gold collar)와 정보빈자 (information poor)간의 균열선이 표를 동원하는 핵심적 균열선이 되는 탈계급정치가 등장하게 된다.

(5) 신유목적 민주주의와 국내 거버넌스의 변화: 협치 네트워크

한 나라의 사회질서를 조직하는 주요 집단적인 행위자는 국가, 시장, 시민사회이다. 그런데 세계화, 정보화, 지방화는 글로벌한 차원에서 거버넌스를 변화시키고 있을 뿐 아니라 국내적인 거버넌스에도 구조적인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 국가는 비정부국가기구(NGO), 다국적 기업, 국가 간 기구, 지역기구, 지방정부 등과 권력을 분점하면서 협치(協治)와 공치(共治)를 할 수 밖에 없게 되었다.

협치 네트워크란 종적, 횡적으로 분절화된 국가, 시장, 시민사회조직들이 협력적으로 연계된 그물망의 거버넌스체제를 의미하며, 여기서 행위자(노드)간의 상호작용유형은 네트워크형 즉, “다(多) 대(對) 다(多)”의 다자적이고 횡단적인 링크관계이다. 여기서는 국가, 시민사회, 시장(기업)간의 경계(boundary)가 흐려지면서 고정적 경계의 시대에서 유동적 경계의 시대로 전환되고, 이러한 경계의 파괴는 세 영역이 혼합된 ‘회색지대’(gray areas)를 출현시키고 있다. 국가의 공적 규제의 영역에 시장의 원리가 도입되고, 기업단체와 NGO가 국가 규제 기능을 대행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으며, 국가-기업-NGO가 공동으로 참여하는 민, 관, 기업 공동 프로젝트가 지역개발, 교육기구 등에서 출현하고 있다. 전통적인 국가의 영역인 보건서비스(healthcare), 복지서비스 등의 민영화가 일어나고 있다. 국가의 임무라고 할 수 있는 사회간접자본의 형성, 사회하부구조의 건설도 민간기업이 담당하는 일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이러한 혼합기구들은 국가, 시장, 시민사회의 질서조직 원리가 혼합된 혼합통치(heterarchy) 질서에 의해 작동되고 운영되고 있다. 혼합통치 거버넌스 하에서 국가, 시장, 시민사회 중 어느 부문도 지배적이지 않다.

이러한 협치 네트워크가 제대로 작동할 수 있기 위해서는 분권과 분산, 자율, 수평적 연계, 초기능적 연계 등이 필요하다. 즉, 국가와 시장영역에서의 분권(分權)이 이루어져야 하며, 남의 구속을 받지 않고 자신의 영역을 확보하는 독립성에 더하여 스스로를 통제 하는 자기조절(self-regulation)능력을 가져야 하고, 링크의 양상은 특정 단위체가 동시에 복수의 프로젝트 네트워크에 참여할 수 있도록 혼합지배적(heterarchical)이어야 한다. 또한, 국가와 사회 행위주체 공히 기존의 기능적 관할영역을 넘어서 초기능적 연계(cross-functional linkage)를 이룰 수 있어야 한다.

(6) 신유목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한 조건

신유목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높은 수준의 정치적 자유가 존재해야 신뢰를 바탕으로 한 참여의 네트워크가 이루어질 수 있다. 싱가포르는 신유목사회임에도 불구하고 인터넷 서비스 제공자(ISP) 검열을 함으로써 인터넷을 통한 정치적 반대의 형성을 막고 있어 신유목민주주의가 실현되고 못하고 있다. 이와 함께 시민의 활발한 정치참여가 필요하다. 공동체에 관한 무관심, 냉소주의, 무임승차적 태도가 만연한 사회는 신유목적 민주주의의 실현이 어렵다. 국가와 시장에 대해 항시적으로 견제와 감시를 하는 자율적 시민결사체가 정치적으로 활성화되어야 한다. 그러나 민주주의의 과잉제도화(over-institutionalization), 공고화는 경로의존성으로 인해 신유목민주주의의 실현을 가로막을 수 있다. 2004년 미국 대선경선에서 Howard Dean의 실패가 그 예이다. 따라서 신유목민주주의는 경로의존성이 약한 신생 민주주의 국가에서 잘 발달할 수 있다. 한국의 경우 서구의 정당과 달리 제도화의 수준이 낮고 경로의존적 관성이 약하며 변화에 대한 유연성, 수용성이 높기 때문에 신유목적 민주주의로의 개혁이 상대적으로 용이하다.

(7) 신유목민주주의 정치참여의 5가지 변화

① 오프라인 정치참여와 온라인 정치참여의 융합화(hybridization): 온라인에서 오프라인으로,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정치참여의 방향전환이 매우 빈번해진다. 이제 오프라인 기반의 정치조직들이 유권자 정치동원을 위해 온라인화 또는 디지털화되고 있을 뿐 아니라, 온라인에서 자발적으로 형성된 다양한 형태의 온라인 정치조직(예, 온라인 정치커뮤니티)을 중심으로 한 유권자들의 정치참여 증가 예상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는 온라인 정치참여는 오프라인 상의 사회관계에 기반하여 이루어지는 네트워크화된 정치참여(예: ‘오프모임’, ‘지역모임’, ‘촛불시위’ 등)의 성격이 지배적이다.

② 집단화된 정치참여에서 개인화된 정치참여로의 전환: 아직까지는 집단화된 정치참여와 개인화된 정치참여가 혼재된 양상이나 점차 개인화된 정치참여로 전환될 것이다. 앞으로 휴대폰, PDA 등 모바일을 통한 정부, 정당, 정치인과 유권자 간의 직접적이고 쌍방향적 커뮤니케이션에 기반하는 이른바 ‘모바일 정치’가 활성화됨에 따라 개인화된 정치참여가 더욱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클럽, 카페 등 사이버공동체를 통한 정치참여에서 미니홈피, 블로그 등 개인적 공간에 기반한 개인화된 정치참여로 이동하는 추세에 있다. 그러나 반대로 개인화된 정치참여가 집단화된 정치참여로 전환하는 사례들(예: ‘블로그 커뮤니티’ 또는 ‘메타블로그’)도 많이 존재한다.

③ 공급자 주도의 ‘대의적’ 정치참여에서 유권자, 네티즌 등 수요자 주도의 ‘직접적, 자발적’ 정치참여로의 전환: 정부, 정당, 정치인, NGO 등 기존의 ‘정치적 대표’(공급자)가 주도하는 ‘대의적’ 정치참여에서 유권자, 네티즌 등 수요자가 주도하는 ‘직접적’ ‘자발적’ 정치참여로 점차 변화된다. 이로 인해 정부-시민, 정당(정치인)-유권자 간의 ‘직접적 접촉’(direct contacts)에 기반한 IT네트워크형 정치참여가 증대됨에 따라 이른바 ‘인터넷 포퓰리즘’의 일상화를 초래할 가능성이 높아지게 된다.

④ 표현주의적 정치참여(expressionism)의 활성화: 자기절제와 이성적, 합리적 판단이 요구되는 ‘심의적’ 정치참여에서 자기표출과 감성적 표현의 자유로움이 더욱 강조되는 이른바 ‘표출적’ 정치참여가 중요해지고 있다. 지난 2004년 탄핵 및 총선 당시의 ‘정치패러디물’, ‘플래시몹’ 등이 그 예이다. 게시판 대화 또는 토론 중심의 정치참여에서 ‘리플’, ‘댓글’ 중심의 자기표출적 글쓰기 방식(‘리플놀이’ 등)이나 패러디 사진 및 동영상 등 네티즌들이 직접 생산한 이미지 콘텐츠 중심의 정보공유를 특징으로 하는 표출주의적 정치참여가 일상화된다. 이러한 흐름에 따라 기존의 정치참여가 합리적 판단과 심층적 사려를 요구하는 ‘심각하고 무거운 정치행위’ 였다면, 표출적 정치참여는 정치를 ‘즐거움’ 또는 ‘희열’(jouissance), ‘놀이’(play)의 대상으로 여기는 쾌락적이고 축제적인(ritualistic) 정치참여라는 점은 신유목정치의 중요한 특징이다. 즉 대규모의 위계적 조직화, 합리화, 규율을 특징으로 하는 산업화 시대의 아폴론적 정치참여 거버넌스에서 자발성, 창의성, 개방성, 축제성을 특징으로 하는 탈산업화, 탈근대화 시대의 디오니소스적 정치참여 거버넌스로 전환되고 있다.

⑤ 공식화, 제도화된 채널(선거)을 통한 참여에서 일상화된 정치참여로 변화: IT기반 정치참여는 투표, 선거 등 제도화된 정치과정에만 더 이상 한정되지 않으며 일상적인 정치참여, 정치참여의 일상화로 확대된다. IT에 기반한 정치참여는 이슈중심의(issue politics) 정치로의 전환을 주도할 것이다. 인터넷, 휴대전화, PDA를 통한 정치참여의 활성화가 점차 정치과정을 영구적 캠페인(permanent campaign)의 일상화 또는 권리주창정치 (issue advocacy politics)의 일상화로 바꿔놓을 것이다.

(8) 신유목형 정치참여의 밝은 얼굴과 어두운 얼굴

① 밝은 얼굴: 정치참여에서 IT를 적극 활용할 경우, ‘정치적 개인’의 역할을 크게 증대시킴으로써 국가에 봉사하고 헌신하는 수동적 개인들에서 국가의 정책결정과정에 직접 참여하는 적극적 개인들이 정치와 행정의 주체가 되는 상황을 가져올 것이다. IT의 적극적 활용을 통해 지구적 소통능력(cosmopolitan communicative competence)을 갖춘 ‘세계시민’ 또는 ‘지구적 한국인’을 배양(empowering)할 수 있게 될 것이다.

② 어두운 얼굴: IT의 적극적 활용에 따라 개인의 자유와 소통능력이 급격하게 강화되고 ‘가속화된 다원주의’(accelerated pluralism)가 증대하는 반면, 이들 네트워크화된 개인들의 사회적, 정치적 책임의식이 크게 약화되어 민주주의와 정치참여의 질을 떨어뜨릴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된다. 인터넷과 정보화의 진전으로 개별의식, 지역의식, 민족의식, 글로벌 의식 등의 다층적 의식구조가 형성됨에 따라 정치과정과 정치참여가 상당히 과도기적이고 불안정한 모습을 띠게 만들 수 있다. 이와 함께 참여의 과부하가 정책의 사이버공간을 끊임없이 분극화, 파편화(공론장의 분열)시킴으로써 타협의 여지가 사라지고 시민들의 정치적 냉소주의를 증대시키고 궁극적으로 참여의 하락을 초래할 우려가 있다. IT기반의 정치참여 활성화가 ‘정치의 유동성’ 또는 ‘정치의 불확실성’을 크게 증대시킴으로써 전통적인 정당의 기능 및 역할의 약화를 초래하여 대의민주주의 제도적 기반을 약화시키고 민주주의의 제도화와 공고화를 저해할 소지가 있다.


[토론]

토론주제

  • ‘탈근대적인 행위양식’과 ‘전근대적인 지향’의 결합 가능성?
  • 협치네트워크의 작동원리와 ‘권위’의 문제
  • 신유목적민주주의와 경로의존성의 상관관계
  • 네오 베스트팔리아(Neo-Westphalia)로 갈 것인가?

1. ‘탈근대적인 행위양식’과 ‘전근대적인 지향’의 결합 가능성?

손동현: 사회의 행동양식은 탈현대적인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 내용에 있어서는 탈현대적인 것이 아니라 전근대적인 것을 지향하고 있다면, 즉 탈근대적인 행동양식이 전근대적인 지향과 결합된다면, 이것은 커다란 혼란을 가져다 주지 않겠는가? 예를 들어 아직까지 한국사회에는 ‘연고주의’라는 전근대적인 요소가 만연해 있는데, 이것이 탈현대적이고 신유목적인 행동양식에 내용물로 담기게 되는 경우는 문제가 발생할 것이라는 우려가 생긴다. 일정한 지향이 전혀 없이 단순히 행동양식만 바뀌는 것도 문제가 있지만, 어떠한 목표나 지향이 있는 경우라 하더라도 청산해야 할 것을 청산하지 못하고 반영하는 것 역시 문제가 있다. 특정이데올로기를 지닌 자들이 인터넷 등의 신유목물품을 수단으로 자신들의 이데올로기를 확산시키려는 전략을 구사한다면 위험한 결과를 가져올지도 모른다. 예를 들어 선거에 있어 진짜 유목민(nomad)이라면 연고주의를 떠나야 하는데 인터넷이라는 신유목물품을 이용해서 오히려 이를 신속하게 퍼뜨리고 강화해나가게 된다면 정치적인 혼란이 올 것이다. 한국정치에 있어 전근대, 근대, 탈현대라는 세 시대상이 동시에 공존한다는 것은 정치적 측면에서는 큰 부담을 안겨주는 환경이라고 볼 수 있다.

도덕적 가치와 정치적 행위양식은 다른 것이다. 따라서 이를 구별해야 한다. 만고불변의 도덕적 가치는 예로부터 주장되어 왔지만 단지 현실의 정치행위양식이 이를 구체적으로 실현시키는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해오고 있다. 현재 한국의 정치시간은 근대도 제대로 완성 시키지 못한 상태에서 갑자기 탈근대사상이 밀려들어옴으로써 혼돈의 시간 속에 놓여져 있다. 이런 환경 속에서 미래 신유목정치의 어두운 얼굴이 나타나게 될 가능성을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서는 계몽적인 근대이성이 요구했던 정통적 가치들과 만날 수 있는 조합점을 찾아야 할지도 모른다.

임혁백: 전근대적인 문화와 행동지향 등이 인터넷이라는 탈현대적인 소통과 결합이 되었을 때 나타날 수 있는 위험에 대한 우려에는 공감하는 바가 있다. 요즘 사이버에티켓을 상실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신유목적인 네트워크’라는 것은 개방적이고 공존지향적이고 포용적인 속성이 있다. 그러나 이런 신유목적인 행위양식이 과거의 전근대적인 가치와 결합하는 경우에는 신유목민주주의가 지향하는 개방성, 포용성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 그래서 신유목사회에 맞는 소통의 에티켓을 만들어 가는 것이 중요하다. 이와 함께 익명성의 뒤에 숨어 심의적인 토론이 아닌 상대방에 대한 원색적인 공격으로 프라이버시가 침해되는 등의 문제를 막을 수 있는 제도적인 차원에서의 조정과 개혁이 필요하다.

‘유목생활’이란 끊임없는 이동을 전제로 하는데 특정이데올로기에 집착하게 되면 더 이상 효율적인 이동을 할 수 없다. 모르는 사람과 거래도 하고 사업도 하려면 연고주의라는 특정이데올로기를 고수해서는 안 된다. 여기서 공존과 관용이 나오게 된다. 배타적인 연고주의라는 전근대적인 가치관을 벗어나지 못하는 경우 다음 단계로 신속하게 이동하는 데 있어 커다란 한계에 봉착하게 될 것이 분명하다. 이를 위해서는 단면적이고 폐쇄적인 것이 아닌, 다중적이고 복합적인 정체성을 가질 것이 요구된다. 이런 측면에서 본다면 인터넷이라는 유목물품을 사용해서 전근대적이고 정착적인 가치나 문화를 계속 확산시킬 가능성 자체를 배제할 수는 없다 하더라도 유목정치의 속성상, 계속적인 생존은 힘들어질 것이다. 이것은 온라인과 오프라인 양자에 동일하게 적용되는 것이다.

2. 협치 네트워크의 작동원리와 ‘권위’의 문제

김병국: IT혁명, 복합적 상호의존주의가 심화되면서 권력이 분산됨으로써 장차 협치(協治)의 길로 나아가야 생존이 가능하다는 데는 동의할 수 있다. 그런데 협치 민주주의로 나아갈 수 있는 조직과 그렇지 못한 조직이 있을 것이고, 개인적으로도 이러한 참여의 문이 활짝 열렸을 때 시대의 흐름을 탈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자와 이에 실패한 낙오자가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미래 트렌드로 제시되고 있는 협치 네트워크의 바람직한 작동을 위한 전제조건은 과연 누가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인가? 개인적인 능력(capability)의 차원에서 본다면 개방적, 확장적, 과제형, 협치적 네트워크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 이를 운영해나갈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자는 아마도 일반대중이 아니라 엘리트일 것이다. 왜냐하면 협치 네트워크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정보의 해석 비용이 필요할 것인데, 일반 대중은 이를 감당할 능력도, 의지도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본다면 협치 네트워크는 굉장히 민주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이를 구성하는 개인들의 능력의 한계와 차이로 인해 그 내용은 오히려 엘리트주의적인 것으로 운영될 가능성이 있다. 아니면 이와는 정반대의 형태로 ‘참여의 과부하’와 ‘정치의 불확실성’이 증대됨으로써 민주주의의 제도화가 저해될 가능성도 존재한다. 이런 환경 속에서 대중은 ‘권위’를 찾게 될 것이다. 인터넷에는 수많은 정보가 있다. 만 개의 블로그 중 만약 열 개가 잘 운영된다면 그것은 권위(authority)나 평판(reputation)을 가진 허브가 존재하기 때문일 것이다. 네트워크환경 속에서의 권위는 과거 국가권력에 의해 권위가 뒷받침되었던 것과 달리 자신의 정직성(honesty, integrity)을 기반으로 한다는데 차이가 있을 뿐, 네트워크가 제대로 운영되려면 ‘권위’가 존재해야 한다는 점은 공통점으로 볼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허브 또한 유동적인 존재에 불과하므로 허브가 계속 살아남으려면 대중이 다시 찾을 수 있도록 신뢰를 확보해야 할 것이다. 협치 네트워크가 제대로 작동할 수 있으려면 권위를 가진 엘리트에 대한 일반대중의 신뢰가 형성되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소위 ‘협치 네트워크’라는 것은 엄청나게 어려운 거버넌스(governance)를 이야기하고 있다. 새로운 정치 거버넌스로 협치민주주의가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개방성, 분권과 분산, 자율, 수평, 초기능적 연계 등의 전제조건이 필요하다. 그러나 이러한 전제조건을 충족시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고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또한 협치 네트워크 작동의 전제조건으로 나열된 개방성, 포용, 신뢰, 자유의식, 참여의식 등의 가치들은 지극히 전통적인 것으로 볼 수 있다. 즉 협치 네트워크라는 구조는 탈근대적인 것이라 하더라도 이것이 바람직한 방향으로 나갈 수 있도록 하는 조정하는 가치들은 결국 ‘전통적인’ 가치들인 것이다. IT혁명과 복합적 상호의존 때문에 권력이 분산되고 정당이 주도권을 잃게 되는 경우 이런 시대적 흐름을 제대로 탈 수 있는 사회는 오히려 전통적인 가치를 유지하는 사회가 될 것이다.

신유목적민주주의 시대에는 정치가 희열, 즐거움, 놀이로 변한다고 가정할 때 이러한 즐거움의 배타성, 쾌락의 저질성이 문제된다. 과거 네트워크적 정치행위방식으로 워싱턴에 수많은 사람들을 모았던 마틴 루터 킹 목사의 정치행위내용물은 축제적인 정치행위방식과는 대조적으로 지극히 전통적인 ‘자유’라는 가치에 기반한 심각하고 무거운 것을 담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쾌락과 축제를 무겁고 심각한 것과 정반대의 것으로 받아들일 필요는 없지 않는가?

Robert Dahl은 권력이 너무 분산되어 있고 모두가 과도하게 참여하고 있어 누가 지배하는지도 모르는 정치형태를 일컬어 다원주의(pluralism)로 개념화한다. 그렇다면 네트워크정치와 다원주의(pluralism)는 어떻게 다른 것인가?

임혁백: 네트워크에서 ‘권위’라는 것이 반드시 필요한가는 의문이다. 단일 네트워크에서는 허브가 상당한 권위를 가질 수도 있지만, 다(多)-대(對)-다(多)의 수평적 이고 다자적인 IT시대 네트워크에서는 권위가 필요하지 않다. 이처럼 다자적이고 수평적인 네트워크에서는 특정한 ‘권위’라는 것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독립적이고 분권적으로 움직이는 것이 더 중요해진다. 활동적인 네티즌들은 권위 없이 돌아다닌다. 멱함수 법칙도 허브가 일정목적을 가지고 유도한 것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이루어진 결과를 나타내는 것에 불과하다.

네트워크 정치는 한가지 가치만 고집하는 교조주의(fundamentalism)가 아니라 상대방이 나와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는 전제에서 출발하는 것이고, 그래야만 공존이 가능해진다. 그런 의미에서 네트워크 정치는 다원주의(pluralism)와도 맥락이 통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개방형, 확장형, 과제형 네트워크의 효율적인 작동을 위한 전제조건인 개방성, 신뢰, 포용, 참여의식 등을 ‘전통적인’ 개념으로 보는 것은 무리가 있다. 예를 들면 농경시대정치는 제로섬적 분배정치를 기반으로 한 고착화되고 폐쇄적인 정치였다. 신뢰도 아웃사이더그룹에 대한 배타를 기반한 인사이드만의 배타적인 신뢰에 불과했다. 따라서 정치의 개방성, 신뢰 등을 전통적인 가치로 볼 수는 없다.

손동현: 네티즌들이 권위 있는 곳을 찾아간다는 발상은 잘못된 것이다. 실제로 네티즌들이 기성의 권위체에 인도되어 링크하는 것은 아니다. 권위 있는 곳을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아무데나 찾아가다 보니 우연히 허브가 생긴 것이고, 자생적으로 생겨난 허브도 언제 해체될지 모르는 유동적인 상태에 있게 된다.

이종관: 오늘날 네트워크 사회에서 신뢰, 포용, 참여의식을 실현시킬 가능성이 과거보다 높아진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시장구조원리와 네트워크 구조원리는 유사점이 많다. 시장경제원리가 완전히 발현되는 모습이 네트워크라고 볼 수 있다. 시장원리를 정치에 대입시키면 신자유주의(Neo-Liberalism)의 등장과 연결될 수 있을 것이다. 네트워크사회의 도래로 탈정치화의 모습이 부각되면서 권력이 증발되거나 권력의 속성이 상당히 변화되고 있다. 네트워크사회는 정치라는 개념을 대입시키기 힘든, 무정부적인 특성을 가진다. 앞으로 네트워크 사회를 기반으로 한 신유목적 민주주의로 정치가 전환되면 정치라는 것이 사실상 실종되는 것 아닌가? 대통령, 정당, 더 나아가서는 국가라는 존재마저도 필요 없는 것이 될 가능성은 없는가? 불안정성, 일시성, 즉흥성이라는 네트워크의 어두운 측면들을 중화시키는 정도의 수준에서만 정치가 필요한 것 아닌가? 정보지식사회에서는 필하모니형 오케스트라식이 아닌 재즈밴드형 집단의 형태가 바람직한 것이라면 정당형태도 이렇게 변화하는 게 좋을 수 있다. 이런 측면에서 본다면 우리나라 정당의 이합집산은 오히려 긍정적인 것으로 보여진다.

3. 신유목적민주주의와 ‘경로의존성’의 상관관계

김병국: 과연 민주주의의 ‘과잉제도화’가 신유목주의의 출현을 가로막는다고 볼 수 있는가? 일본, 독일, 스웨덴, 영국의 예처럼 경로의존성이 너무 공고화되어 있으면 변화의 흐름을 제대로 타는데 어려움이 있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미국의 경우는 공고화된 민주화를 토대로 개방성, 신뢰, 참여 등 신유목적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할 수 있는 전제조건들을 충족시키면서 현재 시대변화의 흐름을 제대로 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미국의 강한 경로의존성은 신유목주의의 출현을 가로막는 ‘과잉제도화’로서가 아니라 오히려 제도적 장점으로 작용하는 것이 아닌가?

경로의존성이 약한 나라에서 새로운 정치가 이루어질 가능성이 그만큼 높아진다고 한다. 그러나 새로운 정치가 제대로 작동되는데 필요한 개방성, 신뢰, 포용, 협력 등의 전제조건들이 한국의 정치에서는 빠져 있다. 그렇다면 한국이 가진 낮은 경로의존성이 신유목적민주주의라는 새로운 정치의 구현과정에 반드시 긍정적인 요소로만 작용하게 될 것인지는 의문이다. 우리나라헌법의 내용을 보면 제왕적 대통령제가 가능할 수 있도록 장치가 되어 있다. 앞으로 한국정치가 신유목적민주주의로 나갈 수 있기 위해서는 ‘분권’이 가능할 수 있도록 헌법적 틀부터 바꾸어야 한다. 한국이 신유목적민주주의 실현에 유리할 수 있는 요인을 갖고 있다면 그것은 제국이 아니기 때문에 현실이익으로부터 비교적 자유로울 수 있다는 측면과, IT가 급속히 발달하고 있고, 동양과 서양의 가치융합적인 문화를 생산해낼 가능성이 크다는 점 등이 될 것이다.

손동현: 필하모니형 정치가 아닌 재즈밴드형 정치가 성공할 수 있기 위해서는 각 구성멤버의 수준이 높아져야 한다. 사회공동체 삶의 경계(layer)는 다층적이기 때문에 금융을 제외한 정치, 사회, 문화 등의 다른 경계(layer)에서는 지역화(localization)가 가능할 수 있을 것이다. 다층적 경계(layer)의 독자성이 존중될 필요가 있다. 전 세계 모든 부문이 일체화, 획일화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임혁백: 신유목민주주의를 정착시키기 위해서는 빠르게 움직이는 유목사회가 정치적으로도 구현될 수 있어야 한다. 신유목사회가 형성된 경우라도 이것이 정치적으로 표출되는 양식은 동일하지 않다. 중국도 IT가 급속히 발달하고는 있지만 정치적 자유가 확보되지 않으면 결국 신유목민주주의로의 길은 차단되고 말 것이다. 한국은 새로운 정치와 신유목적인 이동에 대한 변화에 대한 수용성이 대단히 높다. 한국의 민주주의 역사가 비교적 짧은 것이 장점으로 작용한다고 볼 수 있다. 미국의 경우 과잉제도화의 측면에서 볼 때는 제도화가 잘 되어 있고 양당제가 고착화되어 있어 새로운 정치가 들어갈 공간은 그만큼 좁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와 동시에 개방성, 관용, 신뢰 등의 제반 전제조건들이 충족되어 있는 점은 신유목민주주의 구현에 유리한 점으로 볼 수 있다.

시장은 분산적인 ‘경쟁’이 이루어지는 곳인데 반해 네트워크는 ‘연결’이 핵심키워드가 된다는 점에 차이가 있다. 정당의 이합집산이 반드시 바람직한 것은 아니고 완전한 무정부(anarchy)상태가 이상적인 것만도 아니다. 신유목민주주의에 대한 논의는 앞으로 정당이나 국가 등이 불필요하게 된다든가 이를 해체해야 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신유목사회에 맞게 기존의 대의제 민주주의를 신유목정치로 변형시켜 나가야 한다는 의미이다. 대통령제나 의원내각제 등 제도에 대한 논의도 이런 맥락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4. 네오 베스트팔리아(Neo-Westphalia)로 갈 것인가?

김병국: 신중세질서에서 권역별 차이도 중요하지만 이에 못지않게 ‘이슈영역별’ 차이도 중요할 것이다. 군사부문은 여전히 전근대적인 영역에 머무르고 있는 반면, 오늘날 금융은 가장 탈근대적이고 네트워크 중심적인 영역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이렇게 볼 때 금융부문은 포스트베스트팔리아로 갈 가능성이 큰 반면, 안보, 정치 분야는 오히려 1648년 베스트팔리아 1기나 1815년 European Consort의 형태로 진전될 가능성이 더 크다. 신중세 핵심권역에 들어가 있는 국가는 독자적인 경계(layer)를 가질 수 없고 정치, 사회, 문화 등의 영역도 일차원적인(one-dimensional) 금융부문의 영향으로부터 결코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 앞으로 정치, 사회, 경제 각 분야는 plulateralism의 양상을 띠게 될 것이다.

한국의 경우 과연 ‘통일’을 진정한 근대국가의 완성으로 평가할 수 있겠는가? 남북통일로 인해 오히려 비동시성의 동시성이 강화됨으로써 혼동권역이 강화될 위험성이 더 커지지 않을까? 한국에게 있어 통일을 근대화의 완성으로 보는 것은 형식적인 논리에 불과하고, 오히려 내용적으로는 이와 반대로 갈 위험이 클 것이다.

임혁백: 근대의 특징이 국가라는 단위체가 존재하고 영토 내에서 사회를 조정해 나가는 방식인데 비해 신중세사회의 특징은 무정부주의적인 사회라는 것이다. 무정부적인 사회에서는 자발적인 교류를 통해 질서가 만들어진다. 정당이나 국가가 표준적인 가치나 지향점을 만들어주고 이끌어가는 오케스트라 사회에서 지휘자가 없는 재즈밴드형 사회로 변화한다고 하지만, 여전히 그 속에서도 질서는 필요하다. 즉 정해진 지휘자는 없지만 각 구성멤버간에 자연스럽게 조화가 이루어지는, 아나키(anarchy)상태에서의 질서, 무질서 속의 질서가 만들어질 수 있어야 한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마지막 분단국가인 한국이 통일을 통해 근대적인 국민국가 만들기 모델을 완성시킬 수 있을까? 근대국가완성을 이야기할 때의 통일은 북한붕괴를 전제로 한 것이 아니라, 북한이 근대시민국가가 된 상태를 전제로 한 것이다. 이를 전제로 할 때만 진정한 의미의 근대국가건설을 완성했다고 할 수 있다. 베스트팔리아 이후의 국제거버넌스의 전개양상을 예측해 보면 포스트베스트팔리아로 갈 가능성은 적다. 왜냐하면 권역별 불평등과 세계화의 차별성 그리고 신부족주의의 발현 등에 따라 코스모폴리탄적 세계정부를 건설하는 것은 아직까지 현실성이 떨어지는 유토피아적인 발상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국가가 주도해서 자기권한을 이양하고 재조정하는 네오 베스트팔리아(Neo Westphalia)로 나가게 될 것이다. FTA라는 것도 결국은 국가주도의 구조조정의 한 방식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권력이양과 재조정의 과정에서 대통령제냐 의원내각제냐 하는 외형적인 통치형태에 대한 논쟁보다는 신유목민주주의가 가능할 수 있도록 권력의 분산과 분권을 가능하게 하는 장치를 만드는 작업이 필요할 것이다.

손동현: 시장도 결국은 경쟁으로 ‘연결’되어 있는 것 아닌가? 앞으로 미래 시대상의 변화를 추적하는데 있어 대통령제, 의원내각제 논의 등 권력구조에 대한 좀 더 심도 깊은 논의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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