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te icon 윤순봉의 서재

[고대DNA#9] 섬의 고대 유전체를 통해 본 중국 북부의 역동적인 인구 상호작용: Zhang and Zhang(2025). Island ancient genomes reveal dynamic populations interactions in the northern China.

출처;
Zhang, Xu, and Fan Zhang. “Island ancient genomes reveal dynamic populations interactions in the northern China.” Frontiers in Microbiology 16 (2025): 1584315.

섬의 고대 유전체를 통해 본 중국 북부의 역동적인 인구 상호작용

Xu Zhang(허장, 許章)[1], Fan Zhang(범장, 范章)[2,3]

 

[리뷰] 중화 쇼비니즘 경사도 평가: 1/10

9. Zhang, X. and Zhang, F. (2025) ‘Island ancient genomes reveal dynamic population interactions in northern China’, Frontiers in Microbiology, 16, 1584315. https://www.frontiersin.org/journals/microbiology/articles/10.3389/fmicb.2025.1584315/full.

(1) 연구 개요 저자의 주장

연구는 산동반도와 요동반도를 잇는 해상 길목의 중심인 묘도군도 타기도(砣磯島)대구(大口) 유적에서 발굴된 롱산·악석 시기 고대인 유전체를 최초로 분석했다. 저자들의 발견은 충격적이다. 고고학적으로는 내륙의 롱산 문화 유물이 뚜렷하게 나타남에도 불구하고, 유전적으로는 “내륙 롱산 문화인으로부터의 유의미한 인구 혼합이 없었음”밝혀냈다. 대신, 주민들의 유전적 구성은 주로 선행 시기인 “산동 해안 대문구 문화인”과 “중국 남부 해안 지역” 혈통의 혼합으로 설명된다. 이를 근거로 저자들은 섬에서의 롱산 문화 확산이 사람이 직접 이주한 ‘인구 확산’아니라, 아이디어나 기술만 전파된 ‘문화 확산’결과라고 명확히 결론 내린다.

(2) 편향성 분석 (중화 쇼비니즘 경사도: 1/10)

이 연구는 중원 중심주의 역사 해석에 결정적인 과학적 반증(falsification)을 제시하며, 그 자체로 ‘화살’ 모델을 기각하는 가장 강력한 단일 증거다.

(3) 결론 재구성

이 논문은 중원 중심주의적 편향이 거의 없으므로 결론을 수정할 필요가 없다. 오히려 이 연구는 Du et al. (2024), Wang, F. et al. (2024) 등 편향된 연구들의 결론을 수정하고 무력화하는 데 핵심적인 과학적 증거를 제공한다. 이 연구 결과는 ‘매트릭스’ 모델의 타당성을 강력하게 뒷받침하며, 향후 모든 내륙 중심 모델을 검증하는 리트머스 시험지 역할을 해야 한다. 즉, 어떠한 중원 확산 모델도 타기도의 사례를 설명하지 못한다면, 그 모델은 보편성을 상실하고 ‘내륙에 국한된 현상’으로 격하되어야 한다.

 

[메모] 논문의 이면에 숨어 있는 진짜 이야기

중국 산동반도 앞 작은 섬, 타기도(砣磯島)에서 발굴된 고대인들의 DNA를 분석했다. 이들은 당연히 당시 가장 강력했던 내륙의 중원 문화권 사람들일 것으로 예상했다.

핵심 결론: 예상이 완전히 빗나갔다.

이는 고대 동아시아가 ‘중원’이라는 하나의 중심축으로만 움직인 것이 아니라, 내륙과는 별개로 남과 북을 잇는 역동적인 ‘해양 네트워크’가 존재했다는 강력한 증거이다.

그림 1: 연구 대상 지역의 지리적 위치

타기도(砣磯島) 대구유지(大口遺址)의 위치와 본 연구와 관련된 주변의 주요 고고학 유적지를 보여주는 지도이다. 묘도군도(廟島群島)가 산동(山東)과 요동(遼東) 반도를 잇는 해상 교량 역할을 했음을 시각적으로 보여준다.

이 논문은, “중국 북부의 역동적인 인구 상호작용을 밝히는 섬 고대 게놈”은 묘도군도(廟島群島)의 타기도에서 발굴된 용산(龍山) 및 악석(岳石) 문화 시기 인골의 DNA를 분석한 연구이다. 이 연구의 핵심 발견은 타기도 주민들이 당대 가장 강력했던 용산문화를 물질적으로 수용했음에도 불구하고, 유전적으로는 이전 시대인 대문구(大汶口) 문화의 유산과 남부 해안에서 기원한 조상의 혼합 형태를 유지했다는 점이다(Zhang and Zhang, 2025). 3개 프록시 모델로 환산 시, 이 구성은 ‘동이/북방계 80% + 남방계 20%’라는 명확한 비율로 나타난다(Zhang and Zhang, 2025).

이 결과는 동아시아 고대사를 지배해 온 ‘중원 중심 확산론’의 관점에서 볼 때 매우 ‘당혹스러운’ 발견이다. 기존 통설에 따르면, 황하 중류의 중원에서 기원한 선진 문화가 주변으로 확산될 때 인구 집단까지 대체했어야 한다. 그러나 타기도의 데이터는 이 예상을 완전히 뒤집는다. 이 논문의 이면에 숨겨진 진짜 이야기는 중원, 동이/북방계(서요하 포함), 남방계라는 세 유전적 기원이 어떻게 복합적으로 작용했는지, 그리고 그것이 동아시아 고대사의 거시적 맥락에서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통해 해석될 수 있다.

표 1: 시기-지역별 3개 프록시 유전 구성 (100 기준)

시기 지역 동이/북방(산동 초기신석기 등) 중원(황하 중류계) 남방(해안) 근거
초기 신석기 내륙·연안 100 0 0 후속 모델의 기준 조상 (Liu et al., 2025)
초기 신석기. 소형산(小荊山) 내륙 90.2 0 9.8 3원 혼합: 산동 초기신석기 74.2 + 아무르(黑龍江) 16.0 + 복건(福建) 초기신석기 9.8 (Liu et al., 2025)
대문구 FJGroup 연안 87~100 0~13 0 1원 모델(산동 초기신석기)도 적합 (Liu et al., 2025)
대문구 BQGroup 연안 ~87 ~13 0 연안일수록 동이·북방 비중↑ (Liu et al., 2025)
대문구 GSGroup 내륙 29~50 50~71 0 내륙일수록 중원 비중↑ (Liu et al., 2025)
용산 내륙 44~66
(추정)
34~56
(추정)
0 대문구의 재조합 (Liu et al., 2025)
용산·악석기 (대구유지) 도서 ~80 0 ~20 중원 용산 모델 부적합 (Zhang & Zhang, 2025)


1. 통설에 대한 도전과 세 가지 유전적 기원

1.1. 중원의 역설: 문화적 헤게모니와 유전적 영향력의 분리

가장 큰 당혹감은 당대 가장 강력한 문화 세력이었던 중원 및 산동 내륙 용산문화의 유전적 영향력이 예상외로 미미했다는 점이다. 용산 시대(기원전 2500-1900년)는 중원의 영향력이 팽창하던 시기였으나, 타기도에서는 용산문화의 물질적 증거가 명확함에도 불구하고 내륙으로부터의 유의미한 인구 유입(Demic Diffusion)은 확인되지 않았다. 논문은 이를 “상당한 인구 혼합보다는 아이디어의 확산(Cultural Diffusion)”으로 규정한다(Zhang and Zhang, 2025). qpAdm 모델링 결과, 타기도 인구는 ‘중원 용산’ 프록시로는 모델이 성립하지 않았고, 중원계 유전자는 0%로 나타났다(표 1 참조; Zhang and Zhang, 2025).

이는 문화적 헤게모니가 반드시 인구학적 지배로 이어지는 것은 아님을 보여준다. 강력한 문화가 퍼져나갔음에도 불구하고 대규모 인구 이동은 없었다. 이는 중원 중심의 일방적 확산 모델이 적어도 해안 지역에서는 작동하지 않았음을 의미하며, 기존 역사 서사에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한다.

1.2. 동이 기층의 지속과 ‘불편한 진실’

두 번째 당혹감은 중원 계통의 부재 대신, 산동반도의 토착 세력이자 동이 문화의 핵심인 대문구 문화의 유전자가 압도적으로 지속되었다는 점이다. 타기도 주민들의 유전적 조상 대부분(약 80%)이 이전 시기인 대문구 문화와 연결되어 있다(Zhang and Zhang, 2025). 이는 동이 계통 인구 집단이 중원의 팽창 압력 속에서도 강력한 유전적 연속성을 유지했음을 의미한다.

그림 2: 유전 구조 분석 (PCA 및 ADMIXTURE)

타기도(砣磯島) 대구유지(大口遺址) 사람들(Tuoji_G1, G2)의 유전적 위치를 보여주는 그래프이다. 이들이 다른 동아시아 고대인, 특히 산동(山東) 지역의 대문구(大汶口) 및 용산(龍山) 문화 집단과 가깝게 군집을 이루는 것을 보여주며, 동이(東夷) 계통의 유전적 연속성을 입증한다.

나아가, 대문구 문화 자체의 형성 과정이 중요하다. 최근의 고유전학 연구들은 화북(華北) 지역이 서요하 유역과 황하 유역 농경민 간의 복잡한 양방향 유전자 흐름이 있었던 ‘기장 매트릭스(Millet Matrix)’였음을 보여준다(Ning et al., 2020; Du et al., 2024). 대문구는 단일 집단이 아니라, 내륙으로 갈수록 중원 성분이 최대 71%까지 나타나는 그룹(GSGroup)과, 연안으로 갈수록 동이/북방 성분이 최대 100%에 달하는 그룹(FJGroup)이 공존하는 뚜렷한 유전적 구배를 보인다(Liu et al., 2025). 논문은 타기도의 기반이 된 대문구 문화가 특히 연안의 FJGroup과 유사성이 높다고 지적하는데(Zhang and Zhang, 2025), 이는 타기도 인구의 80%가 중원이 아닌 순수한 동이/북방계 기층에서 왔음을 시사한다. 논문이 이 부분을 깊이 다루지 않은 것은, 중원 중심 서사를 약화시킬 수 있는 ‘불편한 진실’을 부각하는 것을 조심스러워했기 때문일 수 있다.

1.3. 남방계의 부상과 해상 연결망의 재발견

세 번째이자 가장 예상치 못한 당혹감은 내륙과는 무관한 남방계 유전자의 뚜렷한 존재감이다. 타기도 주민들은 복건(福建) 등 남부 해안에서 기원한 조상을 약 20% 보유하고 있으며, 이는 내륙 인구에서는 발견되지 않는 고유한 특징이다(Zhang and Zhang, 2025).

그림 3: 대칭성 검정 (f4 통계)

타기도(砣磯島) 주민들이 내륙의 용산(龍山) 문화인보다 중국 남부 해안 인구와 유전적으로 더 가깝다는 것을 통계적으로 증명하는 그래프이다. 이는 육로가 아닌 해상(海上)을 통한 남북 간의 직접적인 인구 교류가 있었음을 보여주는 결정적 증거이다.

이는 기존의 내륙 중심 역사관으로는 전혀 포착되지 않았던 강력한 장거리 해상 네트워크의 존재를 증명한다. 북방의 산동 연안이 서쪽의 중원이 아니라, 오히려 남쪽 해안선을 따라 연결된 독자적인 ‘해안 회랑 네트워크’에 더 깊이 속해 있었음을 보여준다.

2. 정량적 데이터로 본 유전 흐름 분석

프록시(Proxy) 정의

시기별 분석

  1. 초기 신석기: 산동의 가장 이른 층위부터 북방(아무르(黑龍江))과 남방(복건(福建))의 양방향 신호가 미약하게 확인되며, 중원 성분은 보이지 않는다(Liu et al., 2025).
  2. 대문구문화: ‘내륙일수록 중원 비중↑, 연안일수록 동이/북방(산동 초기신석기) 비중↑’이라는 뚜렷한 구배를 보인다(Liu et al., 2025). 중원 성분은 연안에서 0~13%에 불과하지만 내륙에서는 50~71%까지 나타난다. 이는 ‘동이/북방 토대 위에 중원이 가변적으로 섞인’ 구조임을 의미한다(Du et al., 2024; Liu et al., 2025; Wang et al., 2024).
  3. 용산문화: 대체로 ‘대문구의 재조합’으로 설명되며, 내륙 표본에서는 중원 몫이 약 34~56%로 추정된다(Liu et al., 2025). 남방 신호는 거의 보이지 않는다(Fang et al., 2025).
  4. 대구유지(타기도): ‘동이/북방 80% + 남방 20%’의 2원 혼합으로 최적 적합된다(Zhang and Zhang, 2025). ‘중원 용산’ 모델은 부적합 판정을 받았다. 이는 섬의 기반이 된 대문구가 중원 성분이 거의 없는 연안 그룹(FJGroup)에 가깝다는 점과 일치한다(Zhang and Zhang, 2025).

학술적 주의사항

3. 구조적 해석: ‘매트릭스’ 모델과 해양 네트워크

3.1. 독립적인 해상 네트워크의 실증

이 연구의 가장 중요한 함의는 내륙과는 구별되는 강력하고 독자적인 해상 교류망이 존재했음을 유전학적으로 입증했다는 점이다. 홀로세(Holocene) 안정기 이후 황해의 물리적 환경은 이를 뒷받침한다. 빙하기 이후 해수면이 상승하고(Lambeck et al., 2014) 약 7,000년 전 안정기에 접어들면서, 예측 가능한 조석 공명(Uehara and Saito, 2003)과 연안 지형(He et al., 2023)이 형성되었다. 이러한 환경은 계절풍(Talley, 2011)과 결합하여 원해 직항보다 연안과 섬을 잇는 ‘그물망 항해’에 구조적으로 유리했다.

타기도 주민들의 남부 해안 조상(20%)은 이 이론적 모델을 실증하는 결정적인 증거다. 이는 신석기 시대에 이미 북방의 ‘기장 매트릭스’와 남방의 ‘벼농사 매트릭스’를 연결하는 장거리 해상 네트워크가 활발히 작동했음을 의미하며(Yang et al., 2020), 타기도은 이 네트워크의 중요한 북부 거점 역할을 수행했다.

3.2. ‘매트릭스’ 모델과 복합적인 역사

이 연구는 동아시아 고대사를 단선적인 ‘화살(Arrow)’ 모델이 아닌 복합적인 ‘매트릭스(Matrix)’ 모델로 이해해야 함을 강력히 시사한다.

이는 문화의 확산이 반드시 대규모 인구 이동을 동반하지 않는다는 사실(Cultural Diffusion vs. Demic Diffusion)과 연결된다. 타기도의 사례는 화북(華北) 내륙의 인구 이동 패턴(Ning et al., 2020)과는 대조적이다. 이는 섬 주민들의 유전적 기반이 대문구 시대에 이미 형성되어(Zhang and Zhang, 2025), 초기 이주민의 ‘선점 효과(Preemption Effect)’가 작동했기 때문이다. 안정된 사회를 이룬 기존 주민들이 활발한 해상 네트워크를 통해 외부 인구 유입 없이 새로운 문화 요소를 능동적으로 ‘채택’한 것이다.

결과적으로 이 연구는 해안 지역이 내륙 문명을 수동적으로 수용하는 변방이 아니라, 독자적인 네트워크를 통해 다양한 지역과 교류하며 복합적인 인구 구조를 형성한 역동적인 주체였음을 증명한다.

4. 시사점

요컨대, 이 논문은 기존 통설이 상정했던 중원 중심의 인구 확산 모델이 허구임을 폭로한다. 이 연구는 ① 중원의 제한적인 유전적 영향력(0%), ② 동이(대문구) 기층의 강력한 지속성(80%), 그리고 ③ 예상치 못했던 남방계와의 긴밀한 해상 연결성(20%)을 드러냄으로써(Zhang and Zhang, 2025), 동아시아 고대사가 중원, 동이/북방계, 남방계라는 세 축이 육상과 해상이라는 복합적인 ‘매트릭스’ 위에서 상호작용하며 전개된 과정이었음을 강력하게 시사한다. 타기도의 유전적 구성과 문화적 변용은 안정된 해양 환경을 배경으로 형성된 복잡한 네트워크 위에서 인구 이동, 기술 전파, 문화적 선택이 다층적으로 교차하며 전개된 역동적인 과정이었다.

참고문헌

 

[원문]

초록

용산(龍山)시대(기원전 2500-1900년)는 복잡한 사회 구조와 초기 국가 형성의 출현을 특징으로 하는 중국 중부의 변혁기였다. 인간의 이동이 이러한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했을 가능성이 높지만, 이 시기 이주의 규모와 성격은 아직 잘 알려지지 않았다. 용산문화 인구에 대한 이전의 고대 DNA 연구는 내륙 산동 지역의 개체에 초점을 맞추었으며, 섬 인구로부터는 고대 DNA 데이터가 없었다. 본 연구에서는 타기(砣磯)섬의 용산문화 및 후기 악석(岳石)문화와 관련된 개체들로부터 얻은 최초의 고대 DNA 분석 결과를 제시한다. 우리의 연구 결과는, 산동 내륙 용산문화의 광범위한 문화적 영향에도 불구하고, 타기(砣磯)섬 개체들의 유전적 조상은 주로 선행하는 대문구(大汶口)문화와의 연관성을 반영하며, 중국 남부 해안 지역과 관련된 추가적인 조상 계통을 가지고 있음을 나타낸다. 이는 용산시대 이전에 타기(砣磯)섬으로의 초기 인구 이동이 있었음을 시사한다. 그러나 용산시대 동안 타기(砣磯)섬에서의 용산문화 유물의 확산은 내륙으로부터의 상당한 인구 혼합보다는 아이디어의 확산을 나타내는 것으로 보인다. 또한, 우리의 연구는 타기(砣磯)섬 인구가 내륙보다 해안 지역으로부터 더 많은 유전적 영향을 보여주므로, 해안 이주의 역동적인 성격을 강조하며 타기(砣磯)섬에서 용산문화와 악석문화의 유전적 연속성을 보여준다. 이와 대조적으로, 용산시대 동안 내륙 인구는 이웃 지역으로부터의 중요한 유전적 유입을 보이지 않았다. 이 연구는 신석기 시대 중국의 선사 시대 인구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증진시킬 뿐만 아니라, 이 중요한 시기의 이주 및 문화 교류 패턴에 대한 새로운 통찰력을 제공한다.

키워드

타기(砣磯)섬, 고대 DNA, 묘도군도(廟島群島), 요동반도(遼東半島), 대구(大口) 유적.

 

목차

1. 서론

2. 재료 및 방법

2.1 고고학적 맥락

2.2 고대 DNA 추출, 라이브러리 준비

2.3 시퀀싱 및 데이터 처리

2.4 유전적 성별 결정 및 단일 부모 반수체 그룹 할당

2.5 인구 구조 분석

2.6 qpAdm을 이용한 혼합 모델링

3. 결과

3.1 대구(大口) 유적 개체들의 체질인류학적 분석

3.2 대구(大口) 유적의 고대 유전체 데이터 생산

3.3 대구(大口) 유적 개체들의 유전적 구조

3.4 본토의 동시대 개체들과 구별되는 유전 구조

4. 결론

참고문헌

 

1. 서론

교동(膠東)반도와 요동반도 사이에 위치한 묘도군도(廟島群島)는 동아시아 전역의 선사 시대 문화 교류와 인간 이주에서 해상 경로의 역할을 연구하는 데 핵심적인 위치를 차지한다. 여러 섬들이 불과 몇 해리 떨어져 있어, 이 군도는 두 반도를 잇는 자연적인 다리 역할을 한다 (Wu, 2021a). 이러한 지리적 근접성 덕분에 광범위한 해상 연결이 이루어질 수 있었고, 군도는 초기 해상 시스템의 중심점이 되었다 (Wu, 2019). 이로써 군도는 인간 이주의 다리 역할을 했으며, 묘도군도 내 섬들 사이에서 농업, 문화, 기술을 전파하는 중심지가 되기도 했다 (Lv, 1989).

그림 1. 대구(大口) 고고학 유적의 지리적 위치 및 본 연구와 관련된 기발표된 고대 DNA.

묘도군도는 신석기 시대, 특히 용산시대(기원전 2500-1900년)에 활발한 교류의 중심지였다 (Jiaxin et al., 1993). 이 섬들에서 수행된 고고학적 작업을 통해 고인돌, 석기, 도자기 및 기타 유물로 이루어진 풍부한 물질문화를 관찰할 수 있으며, 이 모든 것은 관습과 혁신의 교류라는 틀 안에서 이루어졌다 (Xu, 2016). 고고학적 및 언어학적 증거 모두는 이 섬들이 오랫동안 사람들의 이주와 농업 관행, 특히 벼농사의 통로 역할을 했으며, 도자기 디자인 기술과 매장 관습의 전달 경로이기도 했음을 강력하게 시사한다 (Kazuo, 2019). 이러한 교류는 교동 및 요동반도의 선사 시대 사회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넓은 지리적 영역(산동반도, 한반도, 심지어 일본열도까지)을 포함하는 지역 단위들을 가로지르는 문화와 기술의 장거리 상호작용을 대표했다. 아마도 가장 큰 문화 교류는 쌀 농업의 확산에 관여한 것이었을 것이다 (Sattar et al., 2010).

해상 경로는 또한 양자강 유역에서 산동반도를 거쳐 발해를 지나 한반도와 일본열도로 벼농사가 확산되는 데 중추적인 역할을 했다. 묘도군도를 잇는 해상 길은 관개 기술과 농기구 개발을 포함한 농업의 이전 및 전파에 중요한 기착지 역할을 했다 (Wu, 2021b). 이러한 교류는 지역 경제뿐만 아니라 해안 지역의 신석기 사회를 형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 군도가 동아시아 대륙의 북동쪽 지역으로 이러한 농업 및 기술 이전을 중개한 역할은 동아시아 초기 농업 경관을 형성하는 데 있어 군도의 중요성을 부각시킨다.

최근 몇 년간 고고학적 관심 증대로 용산시대 묘도군도 인구 연구에 새로운 방향이 제시되었다 (Zhang and Zhang, 2024). 동아시아 북부에서 이루어진 최근의 고대 DNA 연구는 주요 고고학적 문화 변화가 항상 인구 이동 및 혼합과 결합된 역동적인 인구 이동을 시사했다 (Mao et al., 2021; Ning et al., 2020; Robbeets, 2017; Wang C.-C. et al., 2021; Yang et al., 2020). 황하 중·하류 지역의 고대 DNA 분석에 따르면, 산동성의 중기 신석기 대문구(大汶口)문화와 관련된 인구는 토착 수렵채집인의 조상 계통을 물려받았을 뿐만 아니라, 황하 중류의 앙소(仰韶)문화로부터의 유전적 기여도 포함하고 있었다 (Du et al., 2024; Fang et al., 2025; Liu et al., 2025). 후기 신석기 시대에 이르러 용산문화 개체들은 앙소문화로부터 지속적인 유전적 기여를 보였지만, 쌀이 처음 재배된 양자강 유역 인구와 관련된 추가적인 조상 계통이 관찰되었는데, 이는 중국 남부 인구가 이 지역 인구와 혼합되었음을 보여준다 (Ning et al., 2020). 용산문화부터 철기 시대까지 중원 지역의 인구는 주변 지역으로부터의 유전적 기여가 거의 또는 전혀 없이 강한 유전적 연속성을 보인다 (Ning et al, 2020). 황하 하류 지역과 비교할 때, 황하 중류 지역은 강한 인구 팽창을 보여주는데, 앙소문화 개체들은 중국 동북부 서요하(西遼河) 유역의 홍산(紅山)문화 개체들에게 그들 조상의 60%를 기여했으며, 이 영향은 홍산(紅山)문화의 후속 문화인 하가점하층(夏家店下層) 시대에 거의 100%에 달했다 (Ning et al., 2020). 황하 중류 지역의 인구 동태적 팽창은 중국의 서쪽과 남서쪽에도 깊은 영향을 남겼는데, 예를 들어 사천(四川)과 운남(雲南) 및 티베트고원(西藏高原)의 신석기 시대 개체들에게 유전자의 약 90%를 기여했다 (Tao et al., 2023).

이러한 통찰에도 불구하고, 해안 산동 지역의 최근 유전체 연구는 이 지역이 이주 통로로서의 잠재적 역할을 강조했으며, 일본열도의 후기 야요이(彌生) 인구와 해안 인구 사이에 가까운 유전적 관계가 있다는 증거를 제시했다 (Liu et al., 2025). 그러나 지금까지 중국에서 발표된 모든 고대 유전체는 대륙 본토에서 나온 것이며, 섬의 고대 유전체는 문헌에 없다. 이 공백은 동아시아 전역의 선사 시대 인간 이주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제한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우리는 묘도군도의 타기(砣磯)섬에 있는 대구(大口) 유적에서 나온 고대 유전체를 제시하며, 이 중요한 지역의 이주 패턴을 밝히는 데 도움이 될 새로운 데이터를 제공한다.

2. 재료 및 방법

2.1 고고학적 맥락

타기(砣磯)섬의 대구(大口) 유적은 산동성 연태(煙台)시 봉래(蓬萊)구 타기(砣磯)진에 위치하며, 해발 119미터의 경임정산(瓊壬丁山) 남쪽 기슭에 있다. 1980년 11월과 12월, 지역 공사 병원에서 수도관을 건설하던 중 병원 북쪽 경사면에서 4기의 무덤이 발견되었다. 북경대학교 고고학과 고고학자들은 지역 문화유산 관리 부서와 함께 구조 발굴을 실시했다. 출토된 난각도(卵殼陶) 이중잔 등의 유물을 바탕으로, 이 유적은 용산문화 시기로 추정되었다. 1982년 9월, 지역 병원이 유적지에 담장을 건설하려는 계획으로 인한 추가적인 훼손을 막기 위해, 중국사회과학원 고고연구소의 고고학자들은 장도현(長島縣) 박물관과 함께 시굴 조사를 실시했다. 이 발굴은 해안선에서 약 270미터 떨어진 해발 34미터 지점에서 95m2 면적에 걸쳐 이루어졌으며, 2개의 집터, 22기의 무덤, 9개의 동물 구덩이, 10개의 화재 흔적을 발굴했다. 1982년 발굴 당시 수습된 인골에 대한 방사성탄소 연대측정 결과, 유적의 1단계는 용산문화에 해당하며 기원전 2285년에서 기원전 1564년 사이의 연대를 보였고, 2단계는 악석문화에 해당하며 기원전 2046년에서 기원전 1482년 사이의 연대를 보였다 (Wu and Shandong Team, Institute of Archaeology, Chinese Academy of Social Sciences, 1985). 총 19구의 인골이 발굴되었는데, 10구는 용산문화, 9구는 악석문화 시기의 것이었다. 두 문화 단계를 구분하고 방사성탄소 연대로 설정된 연대기적 틀을 뒷받침하기 위해 층위와 도자기 및 골기 같은 유물이 사용되었다. 우리는 고대 DNA 분석을 위해 6개 개체로부터 치아 시료를 채취했다.

2.2 고대 DNA 추출, 라이브러리 준비

우리는 중국 사천대학교의 고대 DNA 실험실에 있는 전용 청정 시설에서 6개의 고대 시료(표 1)를 초기에 스크리닝했으며, DNA 추출 및 라이브러리 준비를 위해 확립된 프로토콜을 따랐다 (Dabney et al, 2013; Korlević et al, 2015). 시료 채취 전, 모든 골격 요소는 5% 표백제로 닦고 각 면에 30분씩 자외선을 쬐었다. 치아를 치과용 드릴(Dremel, USA)로 갈아 미세 분말을 얻었다. 치아 분말 약 50mg을 0.5M EDTA(Sigma-Aldrich) 900µL, Proteinase K(Sigma-Aldrich) 16.7µL, ddH₂O(Thermo Fisher, USA) 83.3µL에 넣고 37°C에서 20시간 동안 분해했다. 분해 후, 상층액을 MinElute 실리카 스핀 컬럼(QIAGEN, Germany)으로 옮기고, 13mL의 맞춤형 결합 버퍼[5M 구아니딘 염산염(MW 95.53), 40% 이소프로판올, 90mM 아세트산나트륨(3M), 0.05% Tween-20]와 혼합한 후, PE 버퍼(80% 에탄올)로 두 번 세척했다. 그 후 DNA를 100µL의 TET 버퍼(QIAGEN, Germany)로 용출했다.

표 1. 본 연구의 대구(大口) 유적 개체들에 대한 유전 시퀀싱 요약.

각 DNA 추출물 20µL 분취량으로 부분적 Uracil-DNA-glycosylase(UDG) 처리를 한 이중 가닥 이중 인덱스 라이브러리를 준비했다. T4 Polynucleotide Kinase(0.5 U/µl; Thermo Fisher)와 T4 DNA Polymerase(0.08 U; Thermo Fisher)를 첨가하여 DNA 단편의 무딘 끝(blunt-end) 복구를 수행하고 25°C에서 15분간 배양했다 (Rohland et al., 2015). 복구된 DNA 단편은 표준 MinElute 정제 단계(QIAGEN, Germany)를 사용하여 정제하고 18µL의 TET 버퍼로 용출했다. 총 40µL 반응 부피에서 IX Quick Ligase(New England Biolabs, NEB)를 사용하여 Illumina 어댑터(0.25µM 어댑터 혼합물)를 무딘 끝에 연결한 후, 또 다른 MinElute 정제를 수행했다. 최종 채움(fill-in) 단계는 1X 등온 버퍼, 0.4 U/µL Bst-중합효소(NEB), 250µM dNTP 혼합물(Thermo Fisher)을 첨가하고 37°C에서 30분, 80°C에서 20분간 배양하여 수행했다. 라이브러리는 고유하게 조합된 이중 인덱스를 사용하여 인덱싱되었다. 인덱싱된 산물은 AMPure XP 비드(Beckman Coulter Ltd)를 사용하여 정제했으며, 라이브러리 농도는 Qubit 2.0 형광계(Thermo Fisher)를 사용하여 정량화했다. 마지막으로, 라이브러리는 150bp paired-end 시퀀싱 설계를 사용하여 Illumina HiSeq X10 기기(Annoroad Company, China)에서 시퀀싱되었다.

2.3 시퀀싱 및 데이터 처리

시퀀스 리드(read)는 각 8bp 인덱스 시퀀스에서 하나의 불일치를 허용하여 역다중화(demultiplexed)되었다. Illumina 시퀀싱 어댑터는 AdapterRemoval v2.3.3을 사용하여 잘라냈다 (Schubert et al., 2016). 병합된 리드는 BWA v0.7.17을 사용하여 인간 참조 유전체(hs37d5; GRCh37에 디코이 시퀀스 포함)에 매핑되었다 (Li and Durbin, 2010). PCR 중복은 DeDup v0.12.8을 사용하여 제거되었다 (Peltzer et al., 2016). 사후 DNA 손상이 유전자형 결정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각 라이브러리에서 관찰된 DNA 오결합 패턴을 기반으로 bamUtils v1.0.15의 trimbam 기능을 사용하여 각 리드의 처음과 마지막 10개 염기쌍을 소프트 마스킹하여 추가적인 “잘라낸(trimmed)” BAM 파일을 생성했다 (Jun et al., 2015). 1240K 패널의 SNP 유전자형 결정을 위해 (Haak et al., 2015; Mathieson et al., 2015), pileupCaller 프로그램을 사용하여 고품질 염기(Phred 스케일 염기 품질 점수 30 이상) 하나를 무작위로 샘플링하여 유사 이배체(pseudodiploid) 유전자형으로 사용했다. C/T 및 G/A SNP의 경우 잘라낸 BAM 파일을 사용했으며, 다른 SNP의 경우 잘라내지 않은 BAM 파일을 사용했다.

2.4 유전적 성별 결정 및 단일 부모 반수체 그룹 할당

우리는 상염색체에 대한 X 및 Y 염색체 커버리지 비율을 비교하여 고대 시료의 분자적 성별을 결정했다 (Fu et al., 2016). 각 개체에 대한 mtDNA 합의 서열은 Geneious v11.1.3 소프트웨어(Kearse et al., 2012)를 사용하여 생성되었고, 반수체 그룹은 HaploGrep3를 사용하여 할당되었다 (Weissensteiner et al., 2016).

2.5 인구 구조 분석

우리는 smartpca v16000을 사용하여 주성분 분석(PCA)을 수행했으며, “HumanOrigins” 데이터셋의 2,077명의 현대 유라시아인과 “1240k-Illumina” 데이터셋의 266명의 동아시아인 하위 집합을 참조 집합으로 포함했다 (Patterson et al., 2006). PCA는 “lsqproject: YES”와 “shrinkmode: YES” 옵션으로 수행되었다. 또한, ADMIXTURE v1.3.0으로 비지도 혼합 분석을 수행했다 (Alexander et al., 2009). 부대립유전자 빈도가 1% 미만인 유전적 마커는 제외되었고, 연관 불평형은 PLINK v1.90의 “–indep-pairwise 200 25 0.2” 옵션을 사용하여 제거되었다 (Chang et al., 2015). 대상 인구와 유라시아 인구가 아프리카 외집단에서 분기한 이후의 유전적 관계를 평가하기 위해, 외집단 f3 통계량이 계산되었다 (보충 표 S9). 추가로, ADMIXTOOLS 패키지의 ‘f4mode: YES’ 기능을 사용하여 f4 통계량이 계산되었다. f3 및 f4 통계량은 모두 ADMIXTOOLS 패키지의 qp3Pop v435와 qpDstat v755를 사용하여 계산되었다 (Patterson et al., 2012).

2.6 qpAdm을 이용한 혼합 모델링

우리는 qpWave/qpAdm 프레임워크(qpWave v410 및 qpAdm v810)를 사용하여 고대 북중국 인구에 대한 혼합 모델링을 수행했다 (Haak et al., 2015). “HumanOrigins” 및 “1240k-Illumina” 데이터셋의 9개 인구를 외집단(OG1)으로 사용했다: Mbuti, Natufian, Onge (“1240k-Illumina” 패널의 Onge.DG), Iran_N, Villabruna, Mixe (“1240k-Illumina” 패널의 Mixe.DG), Ami (“1240k-Illumina” 패널의 Ami.DG), Nganasan, 그리고 Itelmen (“1240k-Illumina” 패널의 Itelmen.DG). 이들 인구는 아프리카 외집단(Mbuti), 초기 홀로세 레반트 수렵채집인(Natufian), 안다만 섬 주민(Onge), 테페 간즈 다레 유적의 초기 신석기 이란인(Iran_N), 후기 플라이스토세 유럽 수렵채집인(Villabruna), 중앙 아메리카 원주민(Mixe), 타이미르 반도의 사모예드족 원주민(Nganasan), 캄차카 반도 원주민(Itelmen)을 포함하는 광범위한 유전적 다양성을 대표한다. 일부 고대 북중국 인구가 Nganasan 및 Itelmen과 증가된 유전적 친화성을 보이는 점을 감안하여, 우리는 Nganasan과 Itelmen을 외집단에서 제외하고 이들 인구를 모델링하기도 했다.

3. 결과

3.1 대구(大口) 유적 개체들의 체질인류학적 분석

대구(大口) 유적의 후기 용산문화 시기, 잘 보존된 성인 개체 6명(남성 3명, 여성 3명)에 대한 두개골 계측이 세심하게 수행되었다. 남성은 M12, M20, M22에서, 여성은 M8, M15, M16에서 확인되었다 (Zhang et al., 2023). 이러한 연구 결과는 산동의 대문구(大汶口)문화 시기 고대 주민들 사이에서 두개안면 형태학적 특성에 상당한 일관성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용산문화 시기로의 진화 과정에서 두개골 형태가 흥미롭게도 더 복잡하고 미묘해졌음을 보여준다. 대구(大口) 유적의 용산기에서 발굴된 인골은 산동 중북부의 정공(丁公) 유적과 북부의 성자애(城子崖) 유적에서 나온 인골과 함께 대문구(大汶口)문화 인구의 주요 두개안면 형태학적 특징을 보여준다. 중요하게도, 이 유해들은 단두형(둥근 두개골) 모양에서 벗어나 중두형(중간 너비 두개골) 특징으로 전환하는 주목할 만한 변화를 나타내며, 넓은 코를 향한 경향이 더 두드러진다. 반면, 산동 남서부의 서오사(西吳寺) 유적에서 나온 골격 유해는 넓은 코에 대한 이러한 경향을 보이면서도 계속해서 단두형(둥근 두개골) 두개 지수를 보여준다 (보충 표 S1-55). 이러한 차이는 각 유적이 용산문화를 채택한 시점이 다르고, 그들이 속한 용산문화의 고유한 지역적 양상이 달랐기 때문일 수 있다. 이러한 형태학적 변화를 이해하는 것은 두개골 특징의 진화를 밝힐 뿐만 아니라 고대 사회의 문화적 적응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향상시킨다.

M8과 M12 역시 고대 DNA 검사를 받았다. M8은 30세 여성으로, 비교적 완전한 두개골을 가지고 있으며, 좁고 장두형이며, 후두부 특징은 덜 발달했고, 넓은 안면 특징을 보인다. 골반뼈는 불완전하며, 발굴 당시 뼈는 소라 껍데기와 조약돌로 덮여 있어 특별한 매장 관습을 나타낸다. M12는 30-35세 남성으로, 타원형 두개골에 중간 정도로 발달한 눈썹 뼈와 사각형 턱을 가지고 있어 현대 중국인과 유사한 특징을 보인다. 그의 두개골 계측 분석은 장두형의 높은 두개골 유형에 좁은 형태를 시사하며, 골반과 엉치뼈 일부가 유실되었다. 뼈에 눌려 발견된 돌들은 다시 한번 특별한 장례 관습을 나타낸다.

3.2 대구(大口) 유적의 고대 유전체 데이터 생산

우리는 초기에 대구(大口) 유적의 고대 개체 6명을 얕은 샷건 시퀀싱(shallow shotgun sequencing)을 사용하여 스크리닝했으며, 개체당 하나의 Illumina 시퀀싱 라이브러리를 사용했다(표 1). 결과는 대구(大口) 시료가 잘 보존되지 않았으며, 내인성 인간 DNA가 1%를 초과하는 개체는 3명뿐임을 보여주었다. 유전체 데이터의 진위는 여러 조치를 통해 검증되었다. 모든 시료는 고대 DNA의 전형적인 사후 화학적 손상을 보였고(보충 그림 1), 추정된 현대 인간 DNA 오염은 5% 미만임을 확인했다(보충 표 S6). Affymetrix “HumanOrigins” 플랫폼의 593,124개 상염색체 SNP에 대한 반수체 유전자형이 생성되었다. 이 유전자형은 발표된 고대 유전체 데이터 및 “HumanOrigins”와 “1240k” 데이터셋의 현대인과 병합되었다. 그룹 기반 분석을 위해, 우리는 주로 고대 개체들을 연대, 지리적 지역, 고고학적 맥락, 유전적 프로파일에 따라 분류했다.

3.3 대구(大口) 유적 개체들의 유전적 구조

고대 산동 인구의 유전적 프로파일을 종합적으로 이해하기 위해, 우리는 먼저 우리의 시료를 현대 유라시아 인구 유전 변이의 상위 두 주성분(PC1 대 PC2)에 투영했다. 예상대로, 대구(大口) 유적의 세 개체 모두 현대 동아시아인과 이 지역에서 발표된 고대 유전체의 유전 변이 내에 속했으며, 특히 PC1 축을 따라 위치했다(그림 2A). 이는 대구(大口) 유적 개체들의 유전적 구성이 다른 동아시아 인구와 밀접하게 일치함을 시사하며, 그들의 특정 유전적 친화성에 대한 추가 조사의 기반을 제공한다. 동아시아인 내의 변이를 더 철저히 탐구하기 위해, 우리는 분석을 18개의 현대 동아시아 인구 패널로 확장했다. 처음 두 주성분은 퉁구스어족(예: 오로촌족, 허저족, 시버족), 티베트인, 그리고 중국 남부 및 동남아시아 인구 등 뚜렷한 그룹을 성공적으로 구별했다(그림 2B). 동일한 패턴은 비지도 혼합(Admixture) 분석에서도 관찰되었는데, 타기(砣磯)섬의 대구(大口) 유적 개체들은 고대 및 현대 동아시아 인구와 동일한 유전 구조를 공유하며(그림 2C; 보충 그림 5), 산동의 신석기 시대 개체들과 가장 많은 유전적 표류를 공유했다(보충 그림 2).

그림 2. 고대 대구(大口) 유적 인구와 현대 동아시아 인구의 유전적 프로파일 요약.
(A) 2077명의 현대 유라시아인으로부터 구성된 처음 두 개의 주성분. 고대 개체들은 처음 두 개의 주성분에 투영됨.
(B) 18개 동아시아 인구의 현대 개체들로부터 계산된 처음 두 개의 주성분.
(C) “Human Origins” 데이터셋에 대한 ADMIXTURE 분석 결과 (k=4). 동아시아 인구만 표시됨.

주목할 점은, 대구(大口) 유적 개체들이 그들의 유전적 친화성에 따라 두 개의 뚜렷한 군집으로 나뉘었다는 것이다(그림 2). Tuoji_G1으로 명명된 한 군집은 개체 M3를 포함하며, 황하 유역의 용산문화 및 대문구(大汶口)문화 인구와 유전적으로 일치한다. 이 군집은 북중국의 더 넓은 유전적 지형과의 명확한 연결을 보여준다. 대조적으로, 두 번째 군집은 각각 악석 및 용산 시기의 두 개체, M2와 M8을 포함한다. 대칭성 검사는 M2와 M8이 서로 분기군(clade)을 이룬다는 것을 시사하므로, 우리는 이 두 개체를 Tuoji_G2라는 단일 그룹으로 묶었다. Tuoji_G1과 비교할 때, Tuoji_G2는 중국 남부 인구 쪽으로 주목할 만한 이동을 보여주며, 이는 용산 시기 동안 이 지역으로부터의 가능한 영향을 나타낸다. 이러한 지역적 이동에도 불구하고, 외집단 f3-통계량 분석은 Tuoji_G1과 Tuoji_G2 모두 다른 고대 및 현대 동아시아 인구와 비교했을 때 서로 가장 높은 유전적 친화성을 공유함을 보여준다(보충 그림 2; 보충 표 S7). 이러한 유전적 관계는 대구(大口) 유적 개체들의 상호 연결성을 강조하며, 공통된 유전적 기원 또는 이 두 그룹 간의 상당한 유전자 흐름을 시사한다. 더욱이, 가장 높은 공유 유전적 친화성은 타기(砣磯)섬과 지리적으로 인접한 산동성의 고대 개체들과 관찰되었다. 이러한 근접성은 주변 지역, 특히 산동으로부터의 대륙적 유전적 영향이 용산 시기 동안 대구(大口) 유적 개체들의 유전 구조를 형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음을 나타낸다. 이러한 발견은 산동 및 주변 지역의 고대 인구 유전 지형에 대한 중요한 통찰을 제공하며, 용산문화의 유전적 다양성에 기여한 지역적 유전 영향의 복잡한 상호작용을 강조한다.

3.4 본토의 동시대 개체들과 구별되는 유전 구조

외집단 f3-통계량 분석은 대구(大口) 유적 개체들의 유전적 하위 구조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대문구(大汶口)문화 및 용산문화와 관련된 개체들을 포함하여 내륙 산동의 선행 및 동시대 개체들과 가장 높은 유전적 친화성을 공유함을 보여준다(보충 그림 2). 그러나 대구(大口) 유적 개체들은 PCA에서 중국 남부 인구 쪽으로의 이동을 보여주며 내륙 용산문화 개체들과 유전적으로 달랐다. 이 신호는 f4(Mbuti, X; LS_Chengziya/LS_Yinjiacheng, Tuoji_G1/Tuoji_G2) 형태의 대칭성 검사에 의해 추가로 확인되었는데, 여기서 X는 동아시아의 다양한 고대 및 현대 인구를, LS_Chengziya와 LS_Yinjiacheng은 산동성 내륙 용산문화 인구를 나타낸다. 예상대로, Tuoji_G1과 Tuoji_G2 모두 중국 남부(그림 3; 보충 그림 3, 4) 및 동남아시아 인구와 상당한 유전적 친화성을 보여주는데, 이는 내륙 산동의 용산문화 개체들과 비교할 때, 섬의 용산 개체들이 중국 남부 인구와 추가적인 유전적 친화성을 보이며, 타기(砣磯)섬으로의 추가적이거나 다른 물결의 인구 혼합을 시사한다.

그림 3. 타기(砣磯)섬의 대구(大口) 유적 개체들에 대한 대칭성 검사.
전 세계 334개 인구에 걸쳐 f4(Mbuti.DG, X; 산동 용산, Tuoji_G1/G2) 통계량 중 가장 양의 값 10개(상단)와 가장 음의 값 10개(하단)를 제시함. 수평 막대는 점 추정치 ±1 표준오차를 나타내며, 표준오차는 5cM 블록 잭나이프를 사용하여 추정됨. 3보다 큰 |Z| 값은 빨간색으로 표시됨. 구체적으로 (A) f4(Mbuti.DG, X; LS_Chengziya, Tuoji_G1); (B) f4(Mbuti.DG, X; LS_Yinjiacheng, Tuoji_G1); (C) f4(Mbuti.DG, X; LS_Chengziya, Tuoji_G2); (D) f4(Mbuti.DG, X; LS_Yinjiacheng, Tuoji_G2)임.

qpAdm 분석에서 입증되었듯이, 대구(大口) 유적 개체들은 양방향 혼합으로 가장 잘 모델링될 수 있다. Tuoji_G1과 Tuoji_G2는 모두 내륙 산동의 대문구(大汶口) 개체들과 중국 남부 해안 지역(예: 복건(福建)성의 양도(亮島) 개체들)의 개체들과 관련된 또 다른 조상 계통으로 모델링되었으며, 대다수의 조상(80%)은 내륙 산동에서, 나머지 20%는 중국 남부에서 유래했다(보충 표 S8). 이 결과는 내륙 산동으로부터의 유전적 영향이 용산 시대보다 앞섰으며, 용산 시대 동안 타기(砣磯)섬으로의 용산문화 확산은 단지 아이디어의 전파였고 대규모 인구 이동을 포함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4. 결론

용산시대(기원전 약 2500-1900년)는 복잡한 사회 구조와 초기 국가 형성의 출현으로 특징지어지는 중국 중부의 변혁기였다. 이 시기에는 광대한 네트워크를 통해 물질문화와 이념적 관행이 확산되었고, 이는 기원전 3천년기 후반까지 도시 중심지의 발전에 기여했다 (Chang, 1989; Yan, 1981; Zhao, 2000). 인간의 이동성이 이러한 변화에 역할을 했을 가능성이 높지만, 이주의 규모와 성격은 아직 제대로 파악되지 않았다. 용산문화의 중심지인 산동은 산악 지역으로, 주변 평야에 정착지가 발견된다. 주요 유적으로는 성자애(城子崖), 정공(丁公), 천왕(天王), 변현왕(卞縣王)이 있으며, 성자애(城子崖)가 가장 크다(20ha). 양성진(兩城鎮)(273ha)과 요왕성(堯王城)(368ha)은 산동에서 가장 큰 유적지로, 남동 해안 근처에 위치하며, 더 작고 경제적으로 통합된 정착지들에 둘러싸여 있어 경쟁하는 정치체의 정치적 중심지였음을 시사한다. 이 유적들은 도자기, 석기, 직물, 그리고 옥과 금속으로 만든 위신재를 생산했다. 농업 관행에는 쌀, 기장, 밀이 포함되었으며, 조가 가장 널리 재배된 작물이었지만 주로 동물 사료로 사용되었다. 타기(砣磯)섬에 위치한 대구(大口) 유적은 물질문화와 전략적 지리적 위치 모두를 바탕으로 용산문화와 관련이 있다 (Zhang and Zhang, 2024). 이는 고대 DNA 분석의 렌즈를 통해 신석기 시대 동안 해안 이주와 내륙 인구와의 상호작용 역할을 조사할 독특한 기회를 제공한다.

대구(大口) 유적 개체들에 대한 유전 분석은 내륙 산동의 인구, 특히 대문구(大汶口) 및 용산문화와 관련된 인구들과 강한 유전적 친화성을 보여준다 (Fang et al., 2025; Liu et al., 2025; Yang et al., 2020). 이 유전적 증거는 타기(砣磯)섬이 본토로부터 물질문화적 영향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인구 이동의 대상이기도 했음을 시사한다. 그러나 용산시대와의 시간적 중첩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qpAdm 분석은 중원의 용산 인구가 대구(大口) 유적 개체들의 유전적 구성을 설명하는 좋은 모델이 아님을 나타낸다. 대신, 대구(大口) 인구의 유전 구조는 선행하는 대문구(大汶口)문화, 특히 부가(傅家) 고고학 유적의 그것과 더 가깝게 닮아 있으며(Du et al., 2024), 이는 신석기 시대 동안 타기(砣磯)섬으로의 초기 인구 이주를 시사한다. 이 인구 이동은 용산시대 이전에 발생한 것으로 보이며, 용산의 영향은 대규모 인구 이주보다는 아이디어와 물질문화의 확산에 국한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흥미롭게도, 대구(大口) 유적 개체들이 부가(傅家) 유적의 대문구(大汶口) 인구와 강한 유전적 연관성을 공유하지만, 이 조상 계통만으로는 모델링될 수 없다. 복건(福建) 지역과 같은 중국 남부 해안 인구로부터의 또 다른 유전적 요소를 도입했을 때 더 나은 적합도를 얻을 수 있다 (Yang et al., 2020). 남부 해안으로부터의 이러한 유전적 기여는 내륙 집단뿐만 아니라 해안 인구도 타기(砣磯)섬 주민들의 유전적 구성에 영향을 미쳤던 복잡한 인구 동태 패턴을 나타낸다. 이 유전적 증거는 용산문화와 관련된 내륙 산동 인구와 뚜렷한 대조를 이루는데, 이들 내륙 인구의 유전 구조는 주로 선행하는 대문구(大汶口)문화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이며, 중국 남부로부터의 중요한 유전적 유입은 없었다 (Wang T. et al., 2021). 대신, 내륙 산동의 용산시대 개체들은 용산시대보다 앞선 앙소문화로부터 유전적 기여를 물려받은 것으로 보인다. 이는 내륙 용산시대 동안 유전적 연속성과 중국 남부로부터의 상당한 유전적 유입 부재라는 뚜렷한 패턴을 강조하며, 인구 이동의 지역적 특수성을 부각시킨다. 대구(大口) 인구에서 해안 지역으로부터의 유전적 기여가 존재한다는 것은 신석기 시대 동안 중국 남동 해안을 따라 강력한 인구 이동의 동력이 있었음을 시사한다. 이러한 패턴은 해안 이주 경로가 해당 시기에 중요했으며, 내륙과 해안 지역 간의 문화적, 유전적 교류를 촉진했음을 나타낸다.

이러한 결과는 용산시대와 관련된 내륙 이주와 문화 확장이 신석기 시대 중국에서 일어난 주요 과정이었다는 오랜 통념에 도전하는, 신석기 인구 동태에 대한 새로운 증거를 제공한다. 오히려, 이 연구 결과는 용산문화의 인구 유전 구조에서 해안 지역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이 과정에서의 이주가 더 복잡했음을 특징짓는다. 대구(大口) 유적은 또한 이전 두 유적지의 그룹보다 더 높은 유전적 다양성을 가졌는데, 이는 해안을 따른 매력적인 확장과 역동적인 상호작용의 정점을 나타낸다. 이는 또한 사회적 네트워크의 발전, 농업 방식의 확산, 그리고 선사 시대 중국에서 해양 경로의 역할을 이해하는 데 함의를 가진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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