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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모] 빙하 시대의 거대한 리듬: 80만 년의 기후 대서사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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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하 시대의 거대한 리듬: 80만 년의 기후 대서사시

지구의 숨겨진 박동을 찾아서

지난 80만 년 동안 지구는 거대한 빙하가 온 세상을 뒤덮는 빙하기와, 빙하가 물러나고 따뜻한 날씨가 이어지는 간빙기를 롤러코스터처럼 오갔다. 이 거대한 기후 변화의 리듬은 지구가 우주 공간을 돌면서 겪는 미세한 궤도 변화에서 시작되지만, 그 작은 신호가 어떻게 지구 전체를 얼리고 녹이는 거대한 변화로 증폭되는지는 오랫동안 수수께끼였다.

이 보고서는 마치 타임캡슐처럼 과거의 정보를 고스란히 간직한 남극의 얼음과 깊은 바닷속 퇴적물을 분석하여, 지난 80만 년간 반복된 8번의 빙하기-간빙기 사이클을 추적한다. 특히, 인류가 문명을 꽃피우기 직전의 마지막 기후 사이클(약 13만 년 전부터 현재까지)을 집중적으로 파헤쳐, 지구가 얼마나 역동적이고 때로는 예측 불가능하게 변해왔는지 생생하게 보여준다. 결론적으로, 과거의 기록은 현재 우리가 겪고 있는 기후 변화가 미래에 어떤 나비효과를 불러올 수 있는지에 대한 중요한 경고 메시지를 담고 있다.

 

1. 과거를 여는 열쇠

과학자들은 어떻게 수십만 년 전의 날씨를 알 수 있을까? 그들은 자연에 남겨진 놀라운 ‘기록 보관소’를 탐사하는 기후 탐정들과 같다. 가장 중요한 두 가지 증거는 남극의 얼음과 깊은 바다 밑바닥의 흙이다.

남극의 얼음: 고대의 공기를 품은 타임캡슐

남극 대륙 깊은 곳에 묻힌 얼음은 단순한 얼음이 아니다. 수십만 년 동안 내린 눈이 겹겹이 쌓여 굳어진 것으로, 과거 기후의 비밀을 간직한 ‘시간의 책’과 같다(EPICA Members, 2004; Jouzel et al., 2007).

바다의 퇴적물: 거대 빙하의 부피를 기록한 역사서

전 세계 바다 밑바닥에는 수백만 년 동안 쌓인 미세한 흙과 생물의 사체가 층을 이루고 있다. 과학자들은 이 퇴적물 기둥(코어)을 시추하여 과거 해양 환경과 지구 전체의 빙하 양을 추적한다.

 

2. 지구 리듬의 대전환: 중기 브룬스 이벤트

지난 80만 년의 기후 기록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약 43만 년 전을 기준으로 지구가 마치 다른 행성이 된 것처럼 기후 패턴이 완전히 바뀐 것을 발견할 수 있다. 과학자들은 이 극적인 전환점을 ‘중기 브룬스 이벤트(Mid-Brunhes Event, MBE)’라고 부른다(Jouzel et al., 2007).

이 변화의 원인은 지구 시스템의 ‘체질’이 바뀌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MBE 이후, 거대하게 성장한 대륙 빙하가 특정 임계점을 넘어서면서 매우 불안정해졌다. 그 결과, 지구 궤도 변화에 따른 작은 햇빛의 변화라는 ‘방아쇠’에도 민감하게 반응하여 거대한 붕괴를 일으키게 된 것이다.

MBE 직후에 찾아온 첫 간빙기인 MIS 11은 이 새로운 기후 체제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이 간빙기는 무려 2만 8천 년 동안이나 지속되어, 인류 문명이 시작된 현재 간빙기(홀로세, 약 1만 2천 년)보다 두 배 이상 길었다(Jouzel et al., 2007). 게다가 이 기간 동안 해수면은 지금보다 6~13미터나 높은 상태를 유지했다(Dutton et al., 2015; Rohling et al., 2019). 이는 자연 상태에서도 지구가 지금보다 훨씬 따뜻하고 해수면이 높은 상태로 오랫동안 안정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사례다.

표 1: 중기-후기 플라이스토세 8대 빙하기의 종말과 간빙기의 특징

단계 MIS 전환 전환 연대 (ka BP) 남극 기온(δD) 요지 전지구 해수면 (GMSL, 현대 대비) 핵심 근거
18 → 17 ≈ 712 완만 온난, 작은 진폭 현대보다 낮음 (정량 합의 부족) Lisiecki & Raymo (2005); Rohling et al. (2014); Jouzel et al. (2007)
16 → 15 ≈ 621 직전 MIS 16.2의 극한 한랭 후 온난화 빙기 저준위에서 상승 (고준위 불확실) Lisiecki & Raymo (2005); Spratt & Lisiecki (2016); Jouzel et al. (2007)
14 → 13 ≈ 533 온난도가 약한 간빙기 현대 이하 또는 근접 Lisiecki & Raymo (2005); Dutton et al. (2015); Jouzel et al. (2007)
12 → 11 424–430 매우 길고 온화함 (≈ 28 kyr 지속) +6~+13m (장기 고준위) Jouzel et al. (2007); Dutton et al., 2015; Rohling et al., 2019
10 → 9 ≈ 337 강한 온난, 큰 진폭 현대 부근 ~ 상회 (0 ~ +10 m 논의) Lisiecki & Raymo (2005); Rohling et al. (2014); Dutton et al. (2015)
8 → 7 ≈ 243 온난하나 다소 약함 (내부 다단계 구조) 현대 부근 또는 이하 Lisiecki & Raymo (2005); Dutton et al. (2015); Spratt & Lisiecki (2016)
6 → 5e 130–131 강한 온난 간빙기 (LIG) +6~+9m (95% 하한 +6.6m) Kopp et al. (2009); Dutton et al. (2015)
2 → 1 19–11.7 LGM 저온 → 급격한 온난화 (탈빙기) LGM ≈ –120m → 0m 부근으로 상승 Spratt & Lisiecki (2016); Deschamps et al. (2012); Annan et al. (2022)

 

3. 마지막 기후 대전환: 13만 년의 드라마

가장 최근에 일어난 기후 사이클은 마치 한 편의 장대한 드라마와 같다. 인류가 지금과 같은 세상에 살게 된 과정을 생생하게 보여주기 때문이다.

1막: 지금보다 따뜻했던 세상 (최종간빙기, 12.9만~11.6만 년 전)

현재 간빙기 직전의 마지막 간빙기였던 이때, 지구는 지금보다 더 따뜻했다. 과학자들은 당시 전 세계 해수면이 지금보다 최소 6.6미터, 많게는 6~9미터가량 높았을 것으로 추정한다(Kopp et al., 2009; Dutton et al., 2015). 이는 그린란드와 남극의 얼음이 지금보다 훨씬 많이 녹아 바다로 흘러 들어갔다는 뜻이다. 다만 최근 더 정밀한 연대측정 기술을 이용한 연구에서는 해수면이 2.7미터 이상 높았을 가능성이 매우 낮다는 상반된 결과를 제시하기도 해, 당시 해수면의 정확한 높이를 둘러싼 과학계의 뜨거운 논쟁은 현재진행형이다(Dumitru et al., 2023).

2막: 빙하 시대의 도래 (11.5만~2.65만 년 전)

따뜻했던 시절이 끝나고, 지구는 수만 년에 걸쳐 서서히 얼어붙기 시작했다. 해수면은 점차 낮아져 현재보다 40~80미터 아래로 내려갔다(Grant et al., 2014). 이 과정은 순탄치 않았고, 수천 년 주기로 날씨가 급격히 추워졌다 따뜻해지는 변덕스러운 기후가 이어졌다.

3막: 얼음 세상의 절정 (마지막 최대 빙하기, 2.65만~1.9만 년 전)

마침내 빙하기는 절정에 달했다. 지금의 캐나다와 북유럽은 두께 수 킬로미터의 거대한 얼음덩어리에 완전히 뒤덮였다(Clark et al., 2009). 이 막대한 양의 물이 대륙 위에 얼음으로 갇히면서, 전 세계 해수면은 지금보다 약 120미터나 낮아졌다(Spratt and Lisiecki, 2016; Waelbroeck et al., 2002). 당시 황해는 대부분 육지였고, 한반도와 일본은 땅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당시 지구 평균 기온이 얼마나 낮았는지에 대해서는 분석 방법에 따라 약간의 차이가 있다. 여러 증거를 종합한 한 연구는 산업화 이전보다 약 -4.5°C 낮았다고 추정하는 반면(Annan et al., 2022), 다른 연구는 약 -6.1°C까지 떨어졌다고 본다(Tierney et al., 2020). 이 미세한 차이는 미래 기후 변화를 예측하는 데 중요한 단서가 되기 때문에 과학자들은 그 원인을 밝히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4막: 대융해와 해수면의 폭주 (탈빙기, 1.9만~1.17만 년 전)

약 1만 9천 년 전, 지구 궤도 변화로 북반구가 받는 여름 햇살이 강해지자 길고 긴 빙하기가 마침내 막을 내리기 시작했다(Clark et al., 2009). 그러나 해빙은 결코 점잖게 일어나지 않았다.

특히 약 1만 4,650년 전부터 시작된 ‘융해수 분출 1A(MWP-1A)’ 사건은 가히 충격적이다. 불과 340년이라는 아주 짧은 기간 동안 해수면이 무려 14~18미터나 솟구쳐 올랐다(Deschamps et al., 2012). 이는 1년에 평균 40mm 이상, 즉 현재 해수면 상승 속도의 10배가 넘는 경이적인 속도였다. 이는 거대한 빙하가 특정 임계점을 넘어서면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빠르고 격렬하게 붕괴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강력한 경고다. 당시 녹아내린 물은 북미와 남극 등 여러 빙하에서 동시에 쏟아져 나온 것으로 분석된다(Lin et al., 2021).

5막: 인류의 시대 (홀로세, 1.17만 년 전~현재)

격동의 탈빙기가 끝나고, 마침내 인류 문명의 보금자리가 된 ‘홀로세’가 시작되었다. 해수면은 약 6,000~7,000년 전에 현재와 비슷한 수준으로 안정되었고(Spratt and Lisiecki, 2016), 이 안정적인 기후 덕분에 인류는 농업을 시작하고 문명을 발전시킬 수 있었다.

 

4. 논의: 과거가 미래에게 보내는 편지

누가 먼저인가? 이산화탄소와 기온의 관계

과거 기록을 보면 빙하기가 끝날 때 남극의 기온이 이산화탄소 농도보다 먼저 올라가는 것처럼 보여, “이산화탄소가 온난화의 원인이 맞나?”라는 의문이 제기되기도 했다(Petit et al., 1999).

하지만 이는 퍼즐의 한 조각만 본 것이다. 전 세계 80여 곳의 기록을 종합한 결과, 전체 그림은 명확해졌다(Shakun et al., 2012). 탈빙기의 과정은 다음과 같다.

  1. 시작 (남반구): 지구 궤도 변화로 남반구가 받는 햇빛이 강해지면서 남극과 주변 바다가 먼저 데워진다.
  2. 증폭 (전 지구): 따뜻해진 남쪽 바다는 그동안 품고 있던 막대한 양의 이산화탄소를 대기 중으로 방출한다.
  3. 결과 (전 지구): 대기 중으로 퍼져나간 이산화탄소가 ‘온실 효과’라는 담요 역할을 하며 지구 전체를 데운다.

즉, 지구 궤도 변화가 ‘방아쇠’ 역할을 하면, 이산화탄소는 그 작은 변화를 지구 전체의 거대한 온난화로 증폭시키는 ‘확성기’ 역할을 한 것이다. 이는 이산화탄소가 기후 변화의 핵심 구동력임을 명백히 보여준다.

표 2: 우리가 확실히 알고 있는 과거 기후의 핵심 숫자들

매개변수 값 / 범위 주요 근거 (하버드)
LGM 전지구 평균 기온 하강 (ΔT, 산업화 이전 대비) –4.5 ± 0.9°C –6.1°C (95% CI: –6.5~–5.7°C) Annan et al. (2022) Tierney et al. (2020)
LGM 전지구 평균 해수면 (GMSL) ≈ –120m Spratt & Lisiecki (2016); Waelbroeck et al. (2002)
최종간빙기 (LIG, MIS 5e) GMSL 최고치 +6~+9m (95% 하한 +6.6m) Kopp et al. (2009); Dutton et al. (2015)
MIS 11 GMSL 최고치 +6~+13m Dutton et al. (2015); Rohling et al. (2019)
탈빙기 초고속 상승 (MWP-1A) +14~+18m (≤ 340년 이내) Deschamps et al. (2012)

아직 풀리지 않은 수수께끼

우리는 과거에 대해 많은 것을 알고 있지만, 여전히 중요한 질문들이 남아있다. 최종간빙기나 MIS 11처럼 잘 알려진 시기를 제외한 다른 간빙기들의 해수면이 정확히 얼마나 높았는지는 아직 불확실하다(Dutton et al., 2015). 또한, 거대한 빙하가 정확히 어떤 물리적 조건에서 붕괴하는지에 대한 이해는 미래 해수면 상승을 예측하는 데 가장 큰 도전 과제로 남아있다.

 

정리

지구의 기후 역사는 우리에게 두 가지 중요한 교훈을 준다.

첫째, 지구 기후 시스템은 매우 비선형적이다. 즉, 작은 변화가 쌓이다가 특정 임계점을 넘어서면 상상하지 못했던 거대한 변화로 이어질 수 있다. 약 43만 년 전의 기후 체제 전환이 그 증거다.

둘째, 기후 변화는 우리가 경험하는 것보다 훨씬 빠르고 격렬하게 일어날 수 있다. 1년에 4cm 이상 해수면이 폭등했던 ‘융해수 분출’ 사건은 빙하 시스템이 얼마나 예측 불가능한지를 보여준다.

과거의 기록은 단순한 옛날이야기가 아니다. 인류가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속도로 온실가스를 배출하고 있는 지금, 지구 시스템이라는 거대한 잠자는 거인을 깨우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강력한 경고다. 과거를 이해하는 것은 곧 우리의 미래를 준비하는 것과 같다.

 

참고문헌

Annan, J.D., Hargreaves, J.C. and Mauritsen, T. (2022) ‘A new global surface temperature reconstruction for the Last Glacial Maximum’, Climate of the Past, 18(9), pp. 1883–1901.

Clark, P.U. et al. (2009) ‘The Last Glacial Maximum’, Science, 325(5941), pp. 710–714.

Deschamps, P. et al. (2012) ‘Ice-sheet collapse and sea-level rise at the Bølling warming 14,600 years ago’, Nature, 483(7391), pp. 559–564.

Dumitru, O.A. et al. (2023) ‘Last interglacial global mean sea level from high-precision U–Th dates’, Quaternary Science Reviews, 318, p. 108319.

Dutton, A. et al. (2015) ‘Sea-level rise due to polar ice-sheet mass loss during past warm periods’, Science, 349(6244), p. aaa4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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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ant, K.M. et al. (2014) ‘Sea-level variability over five glacial cycles’, Nature Communications, 5(1), p. 5076.

Jouzel, J. et al. (2007) ‘Orbital and millennial Antarctic climate variability over the past 800,000 years’, Science, 317(5839), pp. 793–796.

Kopp, R.E. et al. (2009) ‘Probabilistic assessment of sea level during the last interglacial stage’, Nature, 462(7275), pp. 863–867.

Lin, Y. et al. (2021) ‘A reconciled solution of Meltwater Pulse 1A sources using sea-level fingerprinting’, Nature Communications, 12(1), p. 2029.

Lisiecki, L.E. and Raymo, M.E. (2005) ‘A Pliocene-Pleistocene stack of 57 globally distributed benthic δ¹⁸O records’, Paleoceanography, 20(1), PA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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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tit, J.R. et al. (1999) ‘Climate and atmospheric history of the past 420,000 years from the Vostok ice core, Antarctica’, Nature, 399(6735), pp. 429–436.

Rohling, E.J. et al. (2014) ‘Sea-level and deep-sea-temperature variability over the past 5.3 million years’, Nature, 508(7497), pp. 477–482.

Rohling, E.J. et al. (2019) ‘Asynchronous Antarctic and Greenland ice-volume contributions to the Last Interglacial sea-level highstand’, Nature Communications, 10(1), p. 5040.

Shakun, J.D. et al. (2022) ‘Global warming preceded by increasing carbon dioxide concentrations during the last deglaciation’, Nature, 484(7392), pp. 49–54.

Spratt, R.M. and Lisiecki, L.E. (2016) ‘A Late Pleistocene sea level stack’, Climate of the Past, 12(4), pp. 1079–1092.

Tierney, J.E. et al. (2020) ‘Glacial cooling and climate sensitivity revisited’, Nature, 584(7822), pp. 569–573.

Waelbroeck, C. et al. (2002) ‘Sea-level and deep water temperature changes derived from benthic foraminifera isotopic records’, Quaternary Science Reviews, 21(1–3), pp. 295–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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