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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아 컨센서스 18차 콜로키엄]

  • 주제: 국가발전과 거버넌스
  • 발제자: 정용덕 교수 (서울대 행정학과)
  • 일시: 2007년 4월 10일 오후 5시
  • 참석자: 김병국, 손동현, 이정우
  • 자료정리: 송문희(EAI)

콜로키엄 정리자료_text 21p


[요약] 국가발전과 거버넌스

[발제] 국가발전과 거버넌스(정용덕 교수)

[토론]


[요약] 국가발전과 거버넌스

1. 국가역량의 요소

국가역량(national capacity)의 요소로는 영토, 인구 등의 기본요소와 경제력, 군사력을 기반한 부국강병 그리고 정보화, 지식정보 콘텐트를 배경으로 하는 지식국가가 있다. 이와 함께 민주주의, 공정성, 사회복지를 지표로 삼는 국가정당성도 중요한 요소를 구성한다.

2. 한국의 국가역량

한국은 영토규모가 세계 106위, 인구가 25위, GDP 규모 11위, 일인당 구매력 26위로 ‘작지만 큰 나라’인 동시에 경제적으로 ‘부유한 나라’에 속하며 군대인력 4위, 국방비 지출 8위로 군사력 면에 있어서도 ‘강력한 나라’이다. ‘지식국가’로서의 요소들에 관해 살펴보면 한국은 정보인프라의 구축 면에서는 이미 세계 최상위권에 도달해 있다. 2004년을 기준으로 PC 보급이 2,620만 대에 이르고 전체 인구의 70% 이상(3,158만 명)이 인터넷을 이용하고 있다. 국가정보화 지수에서 한국은 2004년에 세계 7위 그리고 2005년에는 세계 3위로 도약하고 있다 (전산원, 2005). 그러나 개인간 및 조직간의 원활한 정보 공유가 이루어지지 않는 문제점과 양질의 지식정보 축적 및 디지털화가 미흡한 문제가 있다. 그 결과 한국은 ‘전자정부 5단계 모형’에서 4번째 ‘전자거래(e-transaction)’ 단계에서 5번째 ‘마디 없는 통합(seamless integration)’의 단계로 업그레이드 되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국가 정당성 측면에서 한국은 1987년 시점을 기준으로 한국은 산업화에 이어 안정적인 민주주의가 실현되는 나라이며, 유럽 선진 자유민주주의의 수준에는 아직 미치지 못하지만 일본 및 대만과 더불어 아시아에서는 자유민주주의가 가장 높은 수준에서 실현되는 나라로 분류되고 있다 또한, 한국은 언론과 출판 그리고 종교의 자유가 허용되는 ‘자유로운 나라’에 해당하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삶의 질(質) 면에서는 일인당 구매력(2000년에 일인당 GDP가 $17,380으로 154개국 가운데 26위로서 국민경제 규모 면에서의 위상에 비해 낮은 편이다. 공정성 면에서, 부(富)의 재분배 상태는 116개 국 가운데 26위이며, 지니 계수는 25위, 남성의 평균 임금에 대한 여성의 평균 임금이 차지하는 비중이 50% 이하로 ‘심한 성적 차별이 존재하는 나라’에 속한다. 또한, 한국은 게임의 규칙이 정당하게 지켜지고 있는가 하는 부패인식지수(corruption perception index)의 국제비교에서 경제력에 대한 위상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은 평가를 받고 있다. 결론적으로 한국은 국민경제 규모, 군사력, 정보화 면에서는 세계 최상위권 국가군에 속하는 반면에, 민주주의 정치, 삶의 질, 공정성 면에서는 두 번째 상위권 국가군에 속하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3. 거버넌스 역량과 국가 역량

공공문제를 해결하는 능력, 즉 거버넌스 역량을 뒷받침 하는 요인에는 ‘국가 권위(state authority)’ 및 ‘정책정보(policy information)’라는 두 가지 능력이 포함 된다. 전자는 사회에 구속력 있는 결정을 내리고 그것을 효과적으로 집행할 수 있는 능력으로서 곧 국가 역량을 의미한다. 후자는 국가정책결정이 가능한 넓은 범위의 사회구성원들에게 개방되어 시민사회와의 긴밀한 연결망(network)을 통해 정확한 정책정보를 수집하고 활용하는 능력을 뜻한다. 이 두 가지 요인들은 상충관계에 있기 때문에 어느 한 가지 요인이 극대화 되었다고 해서 거버넌스 역량이 증대되는 것은 아니며, 두 가지 요인이 적절하게 균형을 이루어 발전할 때 비로소 거버넌스 능력도 증대될 수 있다.

한국은 20세기에 제도화된 강력한 관료체계를 바탕으로 비교론적으로 매우 높은 수준의 국가 권위 능력을 유지해 왔다. 그러나 사회부문에 대한 국가정책 결정의 개방성과 연계성을 바탕으로 하는 정책정보 능력 면에서는 많은 취약점이 있었다. 그러나 87년 민주화 이후 이러한 강성국가의 제도적 특성에 점진적인 해체가 진행되면서 국가 권위 능력의 저하가 이루어지고 있는 반면에 사회부문에 대한 국가정책 결정과정의 개방성은 높아지고 있다. 문제는 국가정책 결정과정이 시민사회에 개방되는 범위가 넓어지고 있기는 하지만, 그로 인해 증대되는 시민 참여가 순기능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 제도화가 아직 마련되어 있지 않다는 점이다. 따라서 한국에서 거버넌스 역량을 증진시키기 위해서는 기존 행정 관료체계의 효율성을 증진시키기 위한 노력에 더하여 국정운영이 가능한 사회부문과 긴밀하게 연계되어 이루어질 수 있도록 개방화와 분권화의 노력을 아울러 기울일 필요가 있다.

4. 국가역량을 증진하기 위한 새로운 거버넌스 체계의 모색

한국의 국가역량을 증진하기 위한 거버넌스 체계의 제도화 방안을 두 가지로 나누어 논의해 본다. 첫째, 적정 수준의 ‘국가’역할과 그 ‘국가’역할을 효과적으로 뒷받침하기 위한 거버넌스 체계의 설계에 관한 것이다. 한국은 GDP 면에서는 세계 최상위권에 속하지만, 일인당 국민소득 면에서는 아직도 중진국 수준에 머물러 있다. 지정학적 요인으로 인한 강력한 국력을 유지할 필요성, 지난 세기 불균형 성장 정책에 의해 상대적으로 낙후된 국민들의 ‘삶의 질’ 향상과 공정성의 증진, 더 나아가 지구 표준에의 적합성을 높이기 위한 경제적 구조조정과 사회안전망의 구축 등은 여전히 국가의 적극적 역할을 필요로 하는 요인들이다.

중국과 일본 등이 세계 5대 국방비 지출국가이며 영토욕심을 드러내고 패권경쟁 중임을 감안할 때 지속적인 경제성장과 부국강병은 앞으로도 한국의 생존을 위해 필수적인 과제가 아닐 수 없다. 이와 함께 저출산과 고령화 등 새로운 사회문제들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는 ‘국가’ 의 역할과 규모 확장에 대한 정치적 합의가 필요하다. 또한 기존의 성장 – 복지 이원론에서 성장 – 복지 선순환을 가능하게 하는 방안을 모색해야 하며 다양한 정책연결망(policy network)을 제도화해야 한다. 그러나 ‘국가’성장은 최대한 억제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국가’ 시장, 시민사회 공동체가 연결망을 통해 협의하고 분업하는 새로운 거버넌스 체계인 “協治 거버넌스(collaborative governance)”를 제도화할 필요가 있다. 둘째, ‘국가’정책결정과정에서 민주성과 합리성이 모두 증진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거버넌스 체계의 설계에 관한 것이다. 1980년대 말의 민주주의 이행 이후 한국에서 ‘국가’ 권위의 약화가 진행되고 있는 반면에, 이를 대체해줄 새로운 ‘국가-시민 사회간 조정기제는 아직 마련되어 있지 않다. 이로 인해 많은 의사 결정 비용이 초래 되고 있다. 적정 수준의 ‘국가’ 권위를 유지 하면서 동시에 ‘국가’정책 결정 과정을 시민 사회에 개방함으로써 정책정보 능력이 증진 되도록 하기 위한 다양한 형태의 정책 연결망이 구축된 거버넌스 체계를 제도화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협력적 리더십(collaborative leadership)’을 배양할 수 있는 토대를 구축해야 할 것이다. 거버넌스 역량의 극대화를 가져오기 위한 이와 같은 새로운 거버넌스 체계의 설계 및 제도화가 순조롭게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모든 정치사회집단들의 이해와 동참이 필수적이다.

<키워드>

거버넌스, 거버넌스 역량, 국가역량(national capacity), 국가 권위, 부국강병, 지식국가, 국가정당성, 협력적 리더십(collaborative leadership), 協治 거버넌스(collaborative governance)


[발제] 국가발전과 거버넌스(정용덕 교수)

발제자료_ppt 32p


한국의 국가역량을 증진하기 위한 거버넌스 체계의 제도화 방안을 두 가지로 나누어 논의해 본다. 첫째, 적정 수준의 ‘국가’역할과 그 ‘국가’역할을 효과적으로 뒷받침하기 위한 거버넌스 체계의 설계에 관한 것이다. 한국은 GDP 면에서는 세계 최상위권에 속하지만, 일인당 국민소득 면에서는 아직도 중진국 수준에 머물러 있다. 지정학적 요인으로 인한 강력한 국력을 유지할 필요성, 지난 세기 불균형 성장 정책에 의해 상대적으로 낙후된 국민들의 ‘삶의 질’ 향상과 공정성의 증진, 더 나아가 지구 표준에의 적합성을 높이기 위한 경제적 구조조정과 사회안전망의 구축 등은 여전히 국가의 적극적 역할을 필요로 하는 요인들이다. 그러나 ‘국가’성장은 최대한 억제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국가’ 시장, 시민사회 공동체가 연결망을 통해 협의하고 분업하는 새로운 거버넌스 체계를 제도화할 필요가 있다. 둘째, ‘국가’정책결정과정에서 민주성과 합리성이 모두 증진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거버넌스 체계의 설계에 관한 것이다. 1980년대 말의 민주주의 이행 이후 한국에서 ‘국가’ 권위의 약화가 진행되고 있는 반면에, 이를 대체해줄 새로운 ‘국가-시민 사회간 조정기제는 아직 마련되어 있지 않다. 이로 인해 많은 의사 결정 비용이 초래 되고 있다. 적정 수준의 ‘국가’ 권위를 유지 하면서 동시에 ‘국가’정책 결정 과정을 시민 사회에 개방함으로써 정책정보 능력이 증진 되도록 하기 위한 다양한 형태의 정책 연결망이 구축된 거버넌스 체계를 제도화할 필요가 있다.

1. ‘거버넌스(governance)와 ‘국가 역량’의 개념 정의

(1) ‘거버넌스(governance)와 ‘국가 역량’의 의의

‘거버넌스’와 ‘국가 역량’은 최근 국내외에서 자주 논의되어 온 주요 담론 주제들이다. 먼저 주요 용어들에 대한 개념들을 정리해 보면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째, 사회적으로 대두된 어떤 문제가 ‘공공의 문제’인지 아닌지 여부를 가려 그 해결 방안을 마련하고 실행에 옮기는 일련의 집합적 행위를 의미한다. 근대국가의 발전과 더불어 20세기에 지배적인 거버넌스 패러다임이었던 ‘행정국가’의 시대에는 공공 문제에 관한 한 ‘국가’가 독점적으로 책임을 지고 해결하는 것으로 간주했다. 그러다가 20세기 말 이후부터는 공공문제의 정의와 해결에 있어 국가의 독점적 역할보다는 국가와 시장과 시민사회공동체가 더불어 협의하고 협력하는 새로운 거버넌스 방식이 더 바람직하다는 인식이 대두되고 있으며, 소위 “정부에서 거버넌스로”라는 수사와 더불어 그 적용 범위가 날로 넓어져 왔다.

둘째, 거버넌스를 조직의 운영 방식과 체계를 의미하는 것으로 정의한다. 이와 같은 의미의 거버넌스는 기존의 행정관리 개념과 유사성이 많으면서도 행정의 내부관리 외에 행정과 정치 간의 관계에 초점을 두어 논의가 이루어지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정치-행정간 관계에 관한 논의가 이전에는 주로 대의민주주의 정치와 관료주의 행정 간의 관계를 중심으로 논의가 이루어지던 것에서 참여 민주주의 정치와 탈 관료주의적인 사고를 적극 반영하는 점에서도 차이가 있다 (Pierre & Peters, 2000).

‘국가 역량(the state capacity or capability)’이라는 용어 또한 서로 다른 두 가지 의미로 쓰이고 있다. 첫째, 국가와 사회간의 상대적인 힘을 나타내는 개념인 ‘국가 자율성(state autonomy)’이라는 의미로 사용되는 경우이다. 둘째, ‘국가’뿐만 아니라 사회부문까지 합한 나라 전체의 역량을 의미하는 경우이다. 이처럼 나라 전체의 역량을 뜻하는 국민 역량은 ‘국부(national wealth),’ ‘국력(state power),’ ‘국가 경쟁력(national competitiveness)’ 등의 유사한 개념을 통해 표현되기도 한다. 그런데 이들 두 개념 사이에는 상호 긴밀한 연관성이 있다. 즉 나라 전체의 역량, 즉 국민 역량에는 국가 역량이 중요한 구성 요소가 된다. 국가 역량에 따라 ‘거버넌스 역량(governance capacity)’ 또한 영향을 받는다.

(2) 국가역량의 요소

국가역량(national capacity)의 요소로는 영토, 인구 등의 기본요소와 경제력, 군사력을 기반한 부국강병 그리고 정보화, 지식정보 콘텐트를 배경으로 하는 지식국가가 있다. 이와 함께 민주주의, 공정성, 사회복지를 지표로 삼는 국가정당성도 중요한 요소를 구성한다.

2. 국가역량(national capacity)의 국제 비교

(1) 한국의 국가역량

한국 국력의 기본적인 요소들을 살펴보자. 한국(남한을 기준으로)은 영토(9,873천 hectares; 106위/172개국) 면에서는 세계 평균에도 미치지 못하는 작은 나라이지만, 인구(2000년; 4,740만 명; 25위/168개국) 면에서는 상위 15%이내에 드는 큰 나라 가운데 하나다. 일인당 구매력($17,380; 26위/154개국) 면에서 인구 규모와 비슷한 위상을 차지하지만, GDP(2004년 기준으로 11위/상위 20개국)에서는 세계 최상위권에 속하며, 1997년말 이후 외환위기 직후를 제외하고는 그 규모가 계속 증가하고 있다 한편, 총국방비지출 규모($200억; 8위/170개국)나 군대인력 규모(1,082,000명; 4위/158개국)에서 경제력에 비해 상대적으로 더 많은 군대 유지비용을 부담하고 있다. 이처럼 영토와 인구, 군사력과 경제력을 기준으로 하는 부국강병의 측면에서 한국은 ‘작지만 큰 나라’ 임에 틀림없다.

다음으로 ‘지식국가’로서의 요소들에 관해 살펴보자. 우선 한국은 정보화의 하부구조 면에서는 이미 세계 최상위권에 도달해 있다. 2004년을 현재 PC 보급이 2,620만 대에 이르고 초고속전산망이 구축되어 있으며, 거의 모든 서류가 디지털 자료화(Digitalized D/B) 되어있으며, 전체 인구의 70% 이상(3,158만 명)이 인터넷을 이용하고 있으며, 초고속 인터넷 가입자 가구(전체 인구의 73%인 1,192만 가구) 수는 세계 4위에 올라 있다. 이와 같은 변수들을 모두 감안한 국가정보화 지수에서 한국은 2004년에 세계 7위 그리고 2005년에는 세계 3위로 도약하고 있다 (전산원, 2005). 그러나 개인간 및 조직간의 원활한 정보 공유가 이루어지지 않는 문제점이 있다. 이 때문에 이른바 ‘전자정부 5단계 모형’에서 한국이 이미 도달해 있다고 보는 4번째 ‘전자거래(e-transaction)’ 단계에서 5번째 ‘마디 없는 통합(seamless integration)’의 단계로 업그레이드 되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UN-ASPA, 2002). 그리고 지식국가가 되기 위한 좀더 근본적인 과제는 좀더 양질의 지식정보를 디지털 자료화해야 하는 일이다. 아무리 정보화 하부구조가 구축되어 있다고 해도, 최상의 지식 문화 콘텐트(content)를 개발하고 이를 매체에 담아 상호 공유할 수 있지 않다면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최정훈, 2004).

한국의 국력 지표

요소 측정치 (측정 년도) (바람직한 방향으로의) 한국 순위/국가 수
기본 요소 영토 9,873천 헥타르 (1998) 106/172
인구 4,740만 명 (2002) 25/168
경제력 일인당 구매력 $17,380 (2000) 26/154
국내총생산(GDP) $679,674백만 (2004) 11/최상위20
군사력 총 국방비 지출액* $200억 (2005) 8/170
군대인력 규모 1,082,000명 (2001) 4/158
일인당 국방비 지출액 $237 (2001) 29/163
GDP 대비 국방비지출 비중 2.7% (2001) 62/163
정보화 인구 100명당 PC 보유 수 25.1명 (2001) 20/138
인터넷 사용자 수 51.1% (2001) 4/149
국가정보화 지수 89; 91 (2004; 2005) 7; 3/50
전자정부 준비지수 0.8575 (2004) 5/178

자료: World Development Indicators Database, 2005. (www.siteresocrces.worldbank.org); Smith, 1999/2003; 전산원, 2005; http://www.worldfactbook.org.

한 나라의 경제력과 군사력 그리고 정보화의 수준이 곧 그 나라 전체의 역량, 즉 국민 역량이라고 할 수는 없다. 이를테면, 단순히 인구 규모나 군대 규모가 크다는 것 외에도 그 구성원들이 얼마나 통합된 응집력을 소지하고 있는지 여부가 또한 중요할 것이다. 국민 통합이 형성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국민들이 국가에 대한 정당성을 인정할 수 있어야 한다. 국가의 정당성이 확보되기 위해서는 적어도 두 가지 요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첫째, 정부의 구성과 공공정책의 결정이 민주주의 절차에 따라 합법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국민들의 믿음이 있어야 한다. 둘째, 국가 정책이 국민의 기본적인 삶의 질을 보장하고, 공정한 자원 배분이 이루어져야 한다.

한국은 적어도 1987년 말 이후부터는 자유롭고 공정한 절차에 의한 보통선거를 통해 경쟁적인 복수 정당의 후보들 가운데에서 대통령과 국회의원들이 국민에 의해 직접 선출되고 있다. 1991년 이후부터는 지방의회의 구성 그리고 1995년부터는 지방자치단체장들이 역시 주민들에 의해 직접 선출되고 있다. 이 시점을 기준으로 한국은 산업화에 이어 안정적인 민주주의가 실현되는 나라이며, 유럽 선진 자유민주주의의 수준에는 아직 미치지 못하지만 일본 및 대만과 더불어 아시아에서는 자유민주주의가 가장 높은 수준에서 실현되는 나라로 분류되고 있다 (Thompson, 1996). 또한, 한국은 언론과 출판 그리고 종교의 자유가 허용되는 ‘자유로운 나라’에 해당하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삶의 질(質) 면에서는 일인당 구매력(2000년에 일인당 GDP가 $17,380으로 154개국 가운데 26위로서 국민경제 규모 면에서의 위상에 비해 낮은 편이다. 또한, 의무적인 군복무 연수가 세계에서 가장 긴 나라군(평균 2년 이상인 나라는 12개국)에 속한다. 평균 수명(2000년에 74.3년)은 160개국 가운데 35위이며, 하루 과일 및 채소 섭취량에서 한국은 두 번째 상위권 국가군(약 330g대), 일인당 하루 물 사용량(1.7 리터)은 156개국 중 45위에 각각 속한다.

공정성 면에서, 부의 재분배 상태는 116개 국 가운데 26위이며, 지니 계수는 25위, 남성의 평균 임금에 대한 여성의 평균 임금이 차지하는 비중이 50% 이하로 ‘심한 성적 차별이 존재하는 나라’에 속한다. 또한, 한국은 ‘ 게임의 규칙이 정당하게 지켜지고 있는가 하는 부패인식지수(corruption perception index)의 국제비교에서 경제력에 대한 위상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은 평가를 받고 있다. 결론적으로 한국은 국민경제 규모, 군사력, 정보화 면에서는 세계 최상위권 국가군에 속하는 반면에, 민주주의 정치, 삶의 질, 공정성 면에서는 두 번째 상위권 국가군에 속하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상의 경험적 자료를 토대로 한국에서 앞으로 어떠한 정책의 우선순위를 지향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인가? 국가발전모델에 있어서 최고 강대국을 지향하면서 이른바 “부강(富强)국가”를 추구하는 정책을 모색할 것인가, 아니면 적정 수준의 군사력과 경제력을 유지하면서 국민의 삶의 질과 공정성을 아울러 추구하는 이른바 “소강(小康)국가”를 모색할 것인가? 이는 정책 선호에 대한 가치판단의 문제이면서 동시에 실현가능성을 감안해야 하는 현실적인 문제이기도 하다.

(2) 한국 ‘국가’의 양적 규모: 실제와 과제

한국은 비교론적 시각으로 보면 ‘작은 정부’에 속한다. 그러나 실제적으로는 ‘초사업 예산’ 부문 및 규제정책에 의한 국가 영향력이 매우 크게 작용한다. 실제로 참여정부 출범 이후 정부의 인력과 조직이 확대되는 등 양적 규모의 확대가 있었다. 이처럼 공공부문의 확대가 이뤄지고 있는 근본 원인은 우리 사회의 민주화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수요측면에서는 민주주의의 진전에 따라 그 동안 소외됐던 계층의 행정서비스 욕구와 서비스의 질에 대한 기대수준이 모두 폭발적으로 분출하고 있다. 공급측면에서도 선거경쟁이 훨씬 더 중요해진 정치 환경이 펼쳐지면서 유권자들의 욕구와 기대수준에 여야를 막론하고 정책결정자들이 보다 긴밀하게 순응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됐다. 이와 같은 이유로 인해 1988년 이후 정부의 양적 규모가 지속적으로 성장한 것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제비교에서 한국의 정부 규모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아직 작은 편이다. GDP에 대비한 국가재정지출 규모의 비중이나 국가부문 종사자의 인건비가 차지하는 비중 등의 지표에서 한국은 OECD국가들 가운데 가장 ‘작은 정부’를 유지하고 있다. 향후 새로운 ‘국가’ 역할에 의한 ‘국가’의 성장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 있다. 그러나 20세기 서구 국가들의 경험에서 보듯이 국가의 규모확대는 최대한 억제할 필요가 있다.

(3) 한국 국가발전의 향후 과제

한국은 부패 방지, 형평성 및 삶의 질 향상이라는 ‘국가 정당성’ 증진을 위해 ‘국가’의 역할이 강화될 필요가 있다. 중국과 일본 등이 세계 5대 국방비 지출국가이며 영토욕심을 드러내고 패권경쟁 중임을 감안할 때 지속적인 경제성장과 부국강병은 한국의 생존을 위해 필수적인 과제가 아닐 수 없다. 이와 함께 저출산과 고령화 등 새로운 사회문제들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는 ‘국가’ 의 역할과 규모 확장에 대한 정치적 합의가 필요하다. 또한 기존의 성장 – 복지 이원론에서 성장 – 복지 선순환을 가능하게 하는 방안을 모색해야 하며 다양한 정책연결망(policy network)을 제도화해야 한다. 국가 시장 시민사회간 적극적 역할 분담을 통한 “協治(collaborative governance)”가 가능할 수 있도록 거버넌스 능력을 증진시켜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협력적 리더십(collaborative leadership)’을 배양할 수 있는 토대를 구축해야 할 것이다.

3. ‘국가’의 역할과 규모

(1) 국가의 기능과 규모

한국은 국제비교에서 군사력 면에서는 최상위권에, 경제력 면에서는 상위권에, 그리고 정보화에 있어서 최상위권에 각각 속해 있음을 알았다. 그러나 국민 통합의 기본 요건인 대의민주주의 정치에서나 삶의 질과 공정성 면에서는 아직 두 번째 수준의 상위권 국가군에 속하는 것으로 파악되었다. 그렇다면 국민의 삶의 질과 공정성을 증진시키기 위해 국가가 좀더 적극적인 역할을 수행하려고 하는 경우, 적어도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사안을 감안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첫째, 그로 인하여 경제력과 안보 능력에 상충관계(trade-off)가 발생할 가능성은 없는지 여부이다. 만일 불가피하게 상충관계가 있다면 어느 정도까지 허용할 수 있을 것인가의 문제이기도 하다. 둘째, 상대적으로 낮은 수준에 있는 삶의 질 향상과 공정성 확보를 위해 국가가 역할을 증대하는 경우에 이로 인해 초래되는 국가의 양적 규모 성장을 어느 정도나 허용할 것인가의 문제다.

주요 OECD 국가들의 정부지출 규모 (GDP 대비 비중, %)31출처: OECD Economic Outlook Database를 토대로 작성 (Jung, 2006).

표에서 제일 밑에 있는 것이 한국이다. 제일 위는 스웨덴이고 독일이 3번째이다. 한국보다 큰 비중은 미국 오스트레일리아 캐나다 등이다.

주요 OECD 국가들의 정부인건비 규모 (GDP 대비, %)32출처: OECD Economic Outlook Database(http://new.sourceoecd.org)를 토대로 작성(Jung, 2006).

정부인건비 비중을 보면 일본과 한국이 제일 작고 스위스, 프랑스가 상위를 차지하고 있다.

(2) 거버넌스 역량과 국가 역량

국제 경쟁력 평가 보고서에서 한국의 국가부문은 그다지 후한 점수를 받고 있지 못하다. 공공문제를 해결하는 능력, 즉 거버넌스 역량을 뒷받침 하는 요인에는 ‘국가 권위(state authority)’ 및 ‘정책정보(policy information)’라는 두 가지 능력이 포함 된다 (Pierre & Peters, 2000; 정용덕, 2001: 817-51). 전자는 사회에 구속력 있는 결정을 내리고 그것을 효과적으로 집행할 수 있는 능력으로서 곧 국가 역량을 의미한다. 후자는 국가정책결정이 가능한 넓은 범위의 사회구성원들에게 개방되어 시민사회와의 긴밀한 연결망(network)을 통해 정확한 정책정보를 수집하고 활용하는 능력을 뜻한다. 이 두 가지 요인들은 상충관계에 있기 때문에 어느 한 가지 요인이 극대화 되었다고 해서 거버넌스 역량이 증대되는 것은 아니며, 두 가지 요인이 적절하게 균형을 이루어 발전할 때 비로소 거버넌스 능력도 증대될 수 있다.

이와 관련해서 제기되는 다른 한 가지 흥미로운 논제는 국가가 수행하는 기능 및 양적 규모와 국가 권위 간의 관계에 관한 것이다. 대체로 국가 기능 및 양적 규모와 국가 권위 혹은 국가 역량과는 상관관계가 높지 않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작은 정부를 유지하면서도 엄격한 법 집행을 통해 강력한 국가 권위를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한국과 일본은 서구의 복지국가들에 비해 훨씬 작은 정부를 유지해 왔지만, 국가 권위 면에서는 더 강력한 국가 강도를 유지해 왔다. 한국은 20세기에 제도화된 강력한 관료체계를 바탕으로 비교론적으로 매우 높은 수준의 국가 권위 능력을 유지해 왔다. 그러나 사회부문에 대한 국가정책 결정의 개방성과 연계성을 바탕으로 하는 정책정보 능력 면에서는 많은 취약점이 있었다. 따라서 한국에서 거버넌스 역량을 증진시키기 위해서는 기존 행정 관료체계의 효율성을 증진시키기 위한 노력에 더하여 국정운영이 가능한 사회부문과 긴밀하게 연계되어 이루어질 수 있도록 개방화와 분권화의 노력을 아울러 기울일 필요가 있다.

다만, 1987년의 민주주의 이행 이후 한국의 ‘강성국가(strong state)’의 특성이 점차 약화되면서 국가 권위와 정책정보 능력 모두에 변화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헌법재판소를 비롯한 사법부의 독립성도 현저하게 증대되어, 집행 중에 있는 대규모 국책사업의 중단을 가져오는 판결이 이루어지는 등 행정부에 대한 강력한 견제 기능이 이루어지고 있다. ‘농협’ 등 국가 코포라티즘 매개조직들(corporatist intermediate organizations)의 다원화와 민주화가 이루어지고 있으며, 시민단체의 급성장 등에 의해 극도로 ‘국가 중심적’이던 국가와 시민사회간의 관계에 의미 있는 변화가 이루어지고 있다. 행정부 내에서도 경제기획원(현재는 기획예산처), 총무처(현재는 행정자치부와 중앙인사위원회), 법제처, 감사원 등의 ‘중앙관리기구(central agency)’들에 의해 관료기구들을 효과적으로 통합할 수 있었던 것도 예전 같지 않다. 개방형이나 계약제의 부분적 도입으로 인해 직업공무원제에 부분적인 해체가 진행 중에 있으며, 소위 ‘검사동일체 원리’의 폐지에서 보듯이 계층제를 바탕으로 한 일사 분란한 조직 응집력에도 변화가 있다.

이처럼 강성국가의 제도적 특성에 점진적인 해체가 진행되면서 국가 권위 능력의 저하가 이루어지고 있는 반면에 사회부문에 대한 국가정책 결정과정의 개방성은 높아지고 있다. 문제는 국가정책 결정과정이 시민사회에 개방되는 범위가 넓어지고 있기는 하지만, 그로 인해 증대되는 시민 참여가 순기능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 제도화가 아직 마련되어 있지 않다는 점이다. 최근 몇 년 사이에 자주 볼 수 있는 것처럼, 시행 중에 있는 국책사업들이 중단되거나 교착 상태에 처하게 되는 경우가 좋은 예가 될 것이다. 이와 같은 예들은 한국에서 국가 권위는 약화되고 있으나 그것을 대체할 효과적인 정책정보 능력은 아직 증진되지 않은 채로 있기 때문에 빚어지는 현상인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처럼 한국에서 국가 권위의 약화가 진행 중이지만, 그것을 대체하여 국가정책 결정의 자동조절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해주는 새로운 형태의 국가-사회간 정책연결망(policy network)은 아직 마련되어 있지 않은 것이다.

(3) 국민역량의 증진을 위한 새로운 거버넌스 체계의 설계

WEF이 발간한 1996년의 보고서를 예로 들면, 모두 49개의 평가 대상국 가운데 한국은 국제경쟁력 평가에서 20위를 차지하고 있다. 이것은 이른바 아시아의 “신흥공업국가들(NICs)”인 타이완(9위), 말레이시아(10위), 일본(13위), 태국(14위)에 비해서도 훨씬 낮은 평가를 받은 것이다. 더욱 심각한 것은 한국이 국제 경쟁력에서 이처럼 낮은 평가를 받도록 만드는 요인에 흔히 국가 부문의 비효율성이 포함되는 점이다. 이것은 그동안 한국에서 지배적으로 적용되어 왔던, 그래서 급속한 산업화 과정에서 순기능적이었던 것으로 평가되던 한국적 거버넌스 체계가 더 이상 적합하지 않게 된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향후 한국이 지향해야 할 새로운 거버넌스 체계의 구축 방안은 무엇이 될 것인가?

첫째, 아직은 국가가 국민 역량의 증진을 위해 적극적인 역할을 수행해야 하며, 이를 위해 새로운 거버넌스 체계를 모색해야 한다. 앞에서 살펴 본 것처럼, 한국이 국민경제의 총량 면에서는 세계 최상위권에 속해 있지만, 일인당 국민소득 면에서는 아직도 중진국 수준에 머물러 있다. 따라서 앞으로도 경제 발전을 위한 국가의 적극적인 역할은 지속되어야 한다. 물론 과거 압축성장이 이루어지던 시대와는 다른 내용과 방법의 국가 역할이 필요하다. 21세기 전지구화의 시대에 요구되는 지구표준(global standard)에의 정합성을 높이기 위한 경제 구조조정을 서두르는 일 등이 포함될 것이다. 이와 더불어 사회안전망을 구축하는 일이 국가의 우선적인 과제에 포함된다. 더 나아가서 20세기에 추진된 불균형 성장 정책에 의해 상대적으로 낙후된 국민의 삶의 질과 공정성을 증진시키기 위한 좀더 적극적인 국가 역할이 있어야 한다. 이처럼 국가가 경제 및 사회 발전을 위해 적극적인 역할을 수행하면서도, 그 양적 규모가 확대되는 것은 최대한 억제해야 한다. 민주화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국가 성장이 이루어지는 것은 20세기에 서구의 선진 산업국가들이 이미 경험한 현상이다. 그렇기는 해도, 서구 나라들의 경험을 들어 민주화의 진전에 따라 국가의 확대가 이루어지는 현상을 당연시할 수만은 없다. 서구 나라들의 경우 민주주의가 활성화되는 과정에서 국가의 양적 팽창이 이루어지기는 했으나, 20세기 후반에 이르러 이에 대한 급격한 반전을 꾀하고 있기 때문이다. 유의할 것은 민간기업 조직과는 달리 정부 조직은 일단 성장이 이루어지면 그것을 다시 축소하기란 엄청나게 어려운 속성을 지니고 있는 점이다.

이처럼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그들이 도달한 대안이 바로 ‘새로운 거버넌스’의 구축이다. 일단 형성된 공공서비스 수요나 새로이 발생하는 공공문제에 적극 대응하되, 그것을 국가가 관료체제에 의존하여 독점적으로 해결하려고 하기보다는 국가와 시장과 시민사회공동체가 연결망(network)을 통해 협의하고 분업하는 방식이다. 지금 한국이 선택할 방향은 서구 선진국들이 거쳐 온 시행착오의 과정을 뛰어넘는 전략인 것으로 판단된다. 20세기 초 이래 수십 년간의 ‘큰 정부’의 단계를 거쳐 20세기 말에 이르러 다시금 그 확장된 정부조직을 줄이기 위해 마치 과체중인 사람이 체중 감량 하듯이 애쓰는 과정을 한국은 건너 뛰어 넘자는 것이다. 서구 나라들이 한 세기에 걸친 경험을 통해 도달한 대안인 ‘새로운 거버넌스’ 체계를 한국은 아예 지금부터 적극 구축해 나아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20세기에 압축 성장과정에서 소외되었던 국민들의 행정서비스 욕구와 21세기에 환경변화에 따라 새로이 발생하는 공공문제의 해결에 국가가 적극 부응하되 그 양적 성장은 최대한 억제함으로써 이른바 ‘작은 정부, 많은 공공서비스’를 구현하는 것이 필요하다.

둘째, 국가정책의 결정과정에서 민주성과 합리성이 모두 증진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새로운 거버넌스 체계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 1980년대 말의 민주주의 이행 이후 한국에서 국가 권위의 약화가 진행되고 있는 반면에 이를 대체해줄 새로운 국가-사회간의 조정 장치는 아직 마련되어 있지 않다. 이 때문에 국가정책 결정이 지연되고 집행에 차질이 빚어지는 사태들이 속출하고, 더 나아가서 사회갈등의 증대와 국제 경쟁력의 약화를 가져오는 주요인이 되고 있다. 그렇다고 과거 권위주의 시절처럼 국가가 배타적으로 국가정책을 결정하고 강력한 공권력을 동원해서라도 집행의 효과성을 높이겠다는 주장이 있다면 이는 규범적으로 바람직하지도 않거니와 현실적으로도 가능해 보이지 않는다. 이와 정반대로, 시장의 자율조정기제에 맡기면 모두 해결된다는 신자유주의식의 주장 역시 비현실적인 대안이다. 영국에서 대처(Thatcher) 정부에 의해 신자유주의 정책이 강력하게 추진되기까지에는 수십 년에 걸친 이른바 ‘영국병’을 경험한 이후였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민주화의 진전에 따라 사회 구성원들의 정책 과정에의 참여가 폭증하고 있으나, 이러한 참여가 집단 이익을 집결하여 거칠게 표명하고 대결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을 뿐, 집단 상호간의 권력상쇄와 자동조절이 이루어지기에 충분한 수준의 사회적 다원화는 아직 요원해 보인다. 아마도 다원화가 이루어지기까지 방치해 두기에는 그 진화 과정에서 지불해야 할 사회적 거래비용이 너무 많을 것으로 예상 된다. 그렇다면, 사회 구성원들이 보다 민주적이고 합리적인 국가-사회간의 새로운 정책조정기제를 의도적이고 계획적으로 제도화하려는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어느 정도 수준의 국가 권위를 유지하면서 동시에 국가정책 결정과정을 시민사회에 개방하고 유기체적으로 연계하여 정책정보 능력이 증진되는 다양한 형태의 정책연결망을 구축하는 일이다. 거버넌스 역량의 극대화를 가져오기 위한 이와 같은 새로운 거버넌스 체계의 설계 및 제도화가 순조롭게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모든 정치사회집단들의 이해와 동참이 필수적이다.


[토론]

토론주제

  • 국가권위능력과 정책정보능력의 관계
  • 바람직한 협치(協治) 거버넌스의 내용은 무엇인가?
  • 누가 어떻게 협치(協治) 거버넌스를 주도할 것인가?

1. 국가권위능력과 정책정보능력의 관계

손동현: 국가권위능력과 정책정보능력은 반비례하는가? 장기적으로는 국가권위능력이 정책집행능력과 비례하는 것이 아닌가?

정용덕: 국가권위능력과 정책정보능력의 구분(G. Peters)은 라는 스웨덴 행정학자의 개념에서 따온 것이다. 이 둘은 Governance 능력을 결정하는 두 가지 요인으로 서로 배타적인 것이나 반비례하는 관계가 아니다. 국가권위능력이 높은 모델로는 프랑스와 일본이 있고 정책정보능력이 높은 모델로는 영국을 들 수 있다. 정책정보능력은 국가와 사회를 이분화시키는 개념이 아니다. 국가주도의 일방적 정보 수집은 왜곡되기 쉽다. 오히려 국가와 사회가 엉킨 상태를 상정한 것으로 국가와 사회의 경계가 느슨할수록, 그리고 의사 결정 과정에 시민사회 참여가 증대되고 국가의 운영 방식이 개방화 될수록 정책정보 능력은 향상된다. 한국의 경우 87년 이전까지 국가 권위는 강하였지만 정책정보능력은 약했다. 그러나 87년을 기점으로 이제는 국가권위가 약화되는 반면 정책정보능력은 강화되고 있는 추세에 있다.

2. 바람직한 협치(協治) 거버넌스의 내용은 무엇인가?

이정우: 막스 베버의 관료주의가 근대화(modernization)의 행정적 구현형태였다면 오늘날 ‘탈(脫)관료제’ 현상은 탈근대화의 주요한 특징으로 볼 수 있다. e-governance나 전자 민주주의, 전자정부가 기존의 관료제를 깨는 기술적 요인을 제공하고 있다. 앞으로는 거버넌스(governance)의 의미가 권력보다는 권위(authority)나 매력(魅力)을 더 중요시하는 것으로 바뀌게 될 것이다. 이처럼 돈과 권력 이외의 힘(power)이 좀더 다원적으로 존재할 때 더욱 성숙한 사회가 되는 것이다.

김병국: 관(官)과 기업이 같이 맞물려 있고 국가(state)와 사회(society)가 뒤엉켜 있는 ‘정책공동체’라는 것은 스스로 자제할 수 있는 강력한 국가를 염두에 둔 개념인 것 같다. 그러나 예산 팽창 이나 규제 팽창을 통한 국가개입이 아닌, 시민사회와 연결하면서 공공선(public goods)을 추구하는 절제된(disciplined) 국가라는 것이 과연 현실적으로 존재할 수 있는가? 본래 국가(state)라는 것이 상당히 이기적인 존재로서 공공선(public goods)보다는 자신의 조직(organization)보존을 일차적으로 추구한다는 ‘비관적’인 시각에서 본다면 이상적인 ‘협치’로 가는 길은 험난할 뿐만 아니라 그 가능성도 매우 낮다. 그렇다면 영국 대처식이나 미국 레이건식의 ‘시장’이 현실적인 대안이 되지 않을까? 네트워크와 community를 구성해서 협치의 작동기제를 만드는 것에도 현실적인 문제가 존재한다. 실제 현실에서는 네트워크의 결과가 나쁜 담합(collusion)으로 가는 경우가 많다. 이처럼 네트워크의 실제 내용물이 좋은 것도 있고 나쁜 것도 있을 수 있다면 무엇이 좋은 네트워크와 나쁜 네트워크를 구분해 줄 수 있겠는가? 거버넌스는 공통의 이익과 기능을 중심으로 모이고 흩어지는 것을 의미한다. 협치네트워크 하에서 힘의 원천은 ‘평판(reputation)’이 될 것이다.

정당제와 관료제에 기반한 베버식의 근대적 사고로는 국가와 시장 그리고 시민사회 간의 ‘정책망’을 상정하기가 어려운 측면이 있다. 협력적 거버넌스(collaborative governance)의 방향으로 나가면서 국가의 역할규모를 확대하지 않아야 한다고 할 때 이러한 국가는 어떤 state를 의미하는가? 시장의 규칙(rule)을 만드는 규제적인(regulatory) 국가를 뜻하는 것인가? 바람직한 ‘협치 거버넌스’의 핵심 키워드는 결국 중앙정부의 권한은 축소되고 지방정부에 많은 자율성을 주고 지방정부는 시민사회와 주민들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협력하면서 정책을 결정하는 ‘유기체적인 협력’을 하는 형태를 의미하는 것인가?

손동현: 전자정부의 여러 매트릭스 중 하나의 극단에 ‘통치 없는 거버넌스(governance without government)’ 개념이 나온다. 과연 제대로 작동되는 협치 거버넌스 하에서는 궁극적으로 정부라는 형태가 사라지게 될 것인가?

정용덕: ‘통치 없는 거버넌스(governance without government)’는 국가가 소멸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와 사회(society)가 함께 공존하면서 협력하는 governance를 의미한다.

국가와 시장, 시민사회의 관계를 볼 때 한국은 그간 양적, 질적으로 국가의 비중이 컸으나 이제는 상대적으로 국가의 비중이 줄고 시장과 시민사회의 비중과 역할이 커지는 방향으로 나가고 있다. 그러나 ‘분권화’와 ‘자율’이 커진다는 것이 곧 정부 없이 시장만 존재하는 것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이것은 새로운 형태의 정부 공동체를 의미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협치 거버넌스(collaborative governance)가 되려면 ‘분권화’가 이루어져야 한다. 현 노무현 정부가 집권 초기 분권화를 강력히 추진하다 주춤한 이유는 ‘현실정치 문제’ 때문이다. 즉 지방정부를 야당(한나라당)이 장악한 상황에서 분권화를 계속 추진하는 데는 무리가 있었기 때문이다. 한국은 여전히 중앙집권국가이다. 미시적으로는 그때 그때의 정치적 상황에 따라 달라지게 될 것이지만 앞으로의 대세는 ‘지방분권화’와 ‘지역 단위의 clustering’으로 나아가게 될 것이다.

3. 누가 어떻게 협치(協治) 거버넌스를 주도할 것인가?

손동현: 정보화로 인해 인간의 활동이 넘어서지 못하는 시간적 공간적 제약이 현격하게 약화되었다. 이런 와중에서 근대의 논리는 점점 깨어지고 있다. 앞으로 미래 거버넌스 체제의 모습도 시장과 시민사회의 비중과 역할이 커지는 방향으로 나갈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가?

공공적 문제를 해결하는 중간조직으로써의 민간부문의 영역이 점차 확대되고 있다. 예를 들면 ‘아름다운 가게’ 등은 사적 영역이 아니라 공공적 영역의 역할을 수행함으로써 governance의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그런데 형식적으로는 자발적인 결사체인 것처럼 보이지만 정부가 실제로 막강한 영향력을 미치는 state corporatist 조직과 이들 민간조직들을 구별해야 할 필요성이 있을 것이다.

국가(state)의 활동과 시민사회(civil society)의 활동이 잘 융합되는 것이 가능하다면 서구처럼 국가의 규모를 키웠다가 줄이는 과정을 거칠 필요 없이 작은 국가규모의 상태에서 바람직한 governance를 만드는 게 가능할 것이다. 문제는 ‘state’가 타락하는 것은 통제가 되지만 ‘시민사회’가 타락하는 것은 어떻게 통제할 수 있느냐 하는 점이다. 처음부터 통제영역 밖에 존재하는 ‘시민사회’의 타락은 국가의 타락보다 더 위험한 결과를 몰고 올 가능성이 있다. 국가(state)의 활동과 시민사회(civil society)의 활동이 선순환구조로 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시민사회 조직화를 이끄는 ‘건전한 리더십’과 ‘사회윤리’가 필요하다.

김병국: 한국이 개선해야 할 국가역량(state capacity)이 있다. 국가역량을 증진시키는데 있어서 인프라보다는 지식정보, 사회 안전망, 삶의 질(質) 같은 내용물(contents)이 더 중요할 수 있다. 이와 동시에 한국이 주변 4강에 둘러싸여 있음을 감안한다면 부국강병과 경제성장은 계속적으로 추진해야 할 목표인 것이 분명하다. 국가가 이러한 목표를 다 달성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현실적으로 과부하문제가 존재한다. 그렇다면 국가의 성격을 고려해 볼 때 산적한 위의 과제들 중에 어디에 ‘우선순위’를 두고 국가가 ‘자기 역할’을 수행해야 할 것인가?

국가가 여전히 중요한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고 하면서도 국가역할의 확대는 최대한 억제해야 한다는 것은 일견 모순되게 들리는 측면이 있다. 이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예산의 확대인가? 인적 자원의 성장인가? 혹은 규제의 확대인가? 만약에 예산, 인적자원, 규제, 이 모든 것의 확대를 억제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라면 누가 그에 대한 합의를 이끌어 낼 것인가? 국가와 시장 그리고 시민사회간에 정책 공동체를 형성하는 ‘협치(協治)’가 대안이라고 할 때 이것의 추동력은 과연 누가 이끌어 낼 것인가?

시장논리에만 맡길 경우 ‘경제적 양극화’의 심화는 향후 심각한 문제점을 노정시킬 것이다. 이런 양극화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겠는가? 노무현 정부가 스웨덴식 복지 국가 모델을 세웠지만 그것은 한국의 현실여건상 불가능한 모델이다. 최근에 네덜란드식 모델에 대한 담론이 유행하고 있는데 이를 지향하는 한국인이 머리 속으로 꿈꾸고 있는 바람직한 국가의 모습은 무엇인가? 좋든 싫든 시대변화의 키워드는 ‘분권화’와 ‘자율’이 될 것이다. 만약 대기업이 완전 다국적기업화 되는 경우를 가정해 본다면 기업내부 시장을 통해 도시 중심의 경제권으로 통합될 것이다. 국가와 시장의 연결방식에 있어 대처리즘이나 레이거니즘처럼 국가의 몸집은 줄이면서도 시장에 대한 규제력(regulatory power)은 유지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정용덕: 87년 이전에는 state corporatist 조직들이 많았고 실제적으로 이들은 국가 기구나 마찬가지였다. 이들 조직들이 새로운 역할을 모색하면서 87년 이후부터는 국가로부터 일정한 거리를 두려는 경향이 증가하고 있다. 이와 함께 87년 민주화 이후 시민단체의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정책의 우선순위에 관해 본다면 경제성장을 위해서 기업이 시장에서 잘 활동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주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 경제 규제를 더 완화해 나가면서 시장개방을 해야 하고 계속해서 경제 특구를 만들어야 한다.

한편 시장의 결함을 보충해 주기 위해 국가의 역할은 여전히 필요하다. 그러나 이것은 인력이나 예산 등의 국가의 규모 확대를 통해서가 아닌, 제 3의 대안인 협력(collaboration)을 통한 것이어야 한다. collaborative management에 있어 유럽은 이론적인 개념이 강한데 미국은 이를 가져다 현실에 맞게끔 매뉴얼을 만드는 데 능숙하다. 한국도 한국의 실정에 맞는 사례를 만들어내는 것이 필요하다. 예를 들면 박원순씨의 ‘아름다운 가게’가 벤치마킹의 케이스이다. 종교단체의 여신도들의 모임에서 자비로 미혼모들을 돌보는 활동을 하는 것도 한국형 governance의 하나의 케이스이다.

세계에서 가장 시장 중심적인 국가는 미국이다. 그러나 실상을 들여다 보면 미국도 ‘공동체’부문이 엄청 큰 국가임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시장이 차선책이 될 수 있는지 여부는 상당히 상대적인 개념을 내포하는 문제이다. 시장의 결함을 보충하면서도 정부의 규모 확대도 막을 수 있도록 ‘공동체’부문을 활성화시키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리더십이 필요하다. 한국의 경우 과거 압축 성장과 압축 민주화의 경우처럼 ‘압축 네트워크’를 효율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leader를 선출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산업화라는 압축성장의 과정과 민주화 투쟁에서 고착화된 대결구도와 교착상태를 타개하고 사회 각 부문이 타협점을 찾고 통합되는 것을 가능하게 할 협력적인 리더십(collaborative leadership) 이 절실히 요구되는 때이다. 이를 위해서는 성장과 복지의 선순환을 가능하게 만들고 저출산 고령화 등의 쟁점에 대한 정치적 합의가 선거를 통해 도출되어야 한다. 앞뒤가 맞지 않고 실현 불가능한 공약들을 남발하는 정치인들을 선거과정에서 걸러낼 수 있어야 한다.

시장논리를 적용하면 좋은 네트워크와 나쁜 네트워크를 구분할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명성이나 공익을 추구하기 위한 것도 넓게 보면 다 ‘이익 추구’로 설명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단지 시장에서 공정한 경쟁의 규칙에 따라 fair-play를 안 하면 그것이 나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