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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력

  • 1848, 가고시마현(鹿兒島縣) 출생
  • 메이지유신 후 해군사관이 됨
  • 1871~1878, 영국 유학
  • 1894, 청일전쟁(淸日戰爭) 때 나니와(浪速)[1] 함장으로서 청국군함 고승호(高陞號)를 격침
  • 1904, 러일전쟁 시 일본 연합함대사령장관으로서 전 해군을 지휘하여 쓰시마 해전(東海海戰)에서 러시아의 발틱함대[2]를 정자전법(丁字戰法)[3] 으로 격파
  • 1913, 원수로 승진

시대적 배경

미국 페리 제독의 강제적 개항(1853) 시 5세

일본이 20세기초 산업발전 및 군사력 강화로 세계 열강에 끼어들어 경쟁하던 시대

청일전쟁, 러일전쟁 등 일본의 동북아 패권 경쟁이 격화되던 시기


성장 과정

13세기부터 무사가문이었던 도고(東鄕)가문에서 태어나 8세 때부터 집 근처 논 사이를 흐르던 작은 개울에서 日本刀로 잉어 50마리를 베어서 잡았다는 일화를 남겼을 정도로 무예에 출중

재치가 뛰어나면서 고집이 강해 웃어른의 말씀에 고분고분 순종하지 않는 문제아

16세 때 당시 영국과의 분쟁, 즉 나마무기(生麥) 사건[4]에서 애국심에 불타, 아버지, 형과 함께 참전

1863년 24세 때 영국 군함의 위력을 목격하고 “앞으로 있을 외세의 침략으로부터 조국을 수호하기 위해서는 먼저 막강한 해군력을 육성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실을 깨달음

1871년 당시 최강의 해군국 영국으로 유학, 어학연수 코스 하나 없던 시절, 교회를 다니며 성가와 성경책으로 영어를 배우고 해군 관련 지식을 습득


주요 업적

러일전쟁 시 쓰시마 해전에서 발틱함대를 격파함으로써 청일전쟁에 이어 일본제국이 동북아 주도국으로 부상


후대에 미친 영향

쓰시마 해전의 승리로 일본은 동북아에서 중국, 러시아를 제치고 확고한 정치군사적 위상을 확보

승전 이후 일본에서 ‘군신(軍神)’으로 불림


리더십 특성

① ‘運‘이 좋은 인물

도고는 무명의 제독이었으나 ‘운이 좋은 인물’이라는 평에 힘입어 일본의 운명을 좌우하는 전쟁의 최고사령관에 임명

도고는 청일전쟁 당시 나니와의 함장으로 청국군함인 고승호를 격침시킨 정도로만 알려진 무명의 제독

그를 추천한 수상과 해군 대신은 “그는 運이 좋은 사람입니다. 그가 이끄는 부하들 중 단 한 명도 영창에 보내진 적이 없습니다. 나라의 운명을 좌우할 싸움에는 운이 있는 장수가 필요합니다.”라고 이유를 밝힘

운이 좋다는 것은, 그만큼 자기관리에 철저하고 주변에 음덕을 베풀었으며 매사에 성실했음을 의미

② 부하들에게 功을 돌리고 무거운 책무를 자임

전투 직전에 도고는 “이기는 전투에서는 諸君들의 역량에 맡기겠다. 다만 상황이 불리할 땐 내가 나서겠다.“고 훈시

쉬운 일은 부하가, 어려운 일은 본인이 하며, 공은 부하에게 돌리고 책임은 자신이 지겠다는 자세

격전에 임한 부하들의 부담을 덜어주고 리더에 대한 신뢰를 통해 제 역량을 십분 발휘하도록 용기를 부여

③ 기동성과 유연성으로 대함거포주의(大艦巨砲主義)를 압도

당시 큰 배와 강력한 대포에 의존하던 해군전술을 어뢰, 기뢰[5]를 이용한 기동성과 유연성을 강조한 전술로 대체

당시 전 세계 해군은 1만 톤급의 거대한 몸체를 지닌 전함과 순양함 건조에 열중

도고는 어뢰가 가지고 있는 전술적 가치에 착안, 자이로스코프를 이용해 방향을 유지하는 自家推進式 어뢰를 도입

쓰시마 해전에서 어뢰를 사용해 러시아 함대의 기함과 주력 전함 한 척을 격침시키는 전과를 거둠. 어뢰가 실전에서 효용을 발휘한 최초의 전투

적의 정면으로 접근한 후, 급회전하여 적에 대하여 가로로 정렬한 丁자 기동을 통해 적 함대를 격파

丁자 기동은 도고가 평소 존경하던 이순신 장군의 학익진(鶴翼陣)을 개량한 전술. 당시 화력을 집중시키며 적의 도주를 막는 데 유리했으며, 화력이 우월했던 일본 함대에 가장 적합한 전술

전투 결과 일본은 러시아艦 19척을 격침, 7척을 포획, 사령관을 포함해 6,016명을 포로로 잡는 등 대승 (반면, 일본 해군의 피해는 3척 침몰, 전사 117명에 불과)

도고는 전투 초기 결정적 순간의 중요성을 강조

“최초의 30분에 적의 전투대형이 무너졌다. 결국 우리 제국의 운명은 그 최초의 30분 동안에 결정된 것이다,”라고 회상


※ 英日同盟의 숨은 위력

도고의 승리 뒤에는 英日同盟이 결정적으로 작용

세계 최강의 해양제국인 영국이 일본 편에 서자, 러시아 해군은 석탄과 기항할 항구를 찾기가 어려워짐. 군함들이 모두 석탄을 사용하는 증기기관선(蒸氣機關船)이던 당시, 석탄은 함대의 혈액

일본의 동맹국인 영국은 최고의 함정용 석탄으로 꼽히던 자국의 질 좋은 무연탄을 러시아 함대에는 판매하지 않았으며, 중립국들의 석탄선이 러시아 함대에 영국산 석탄을 파는 것도 금지

영국을 의식한 많은 중립국 역시 러시아 함대의 자국 항구 기항과 자국의 석탄선들에 의한 석탄 공급을 거부

러시아 함대는 연료 부족을 겪으면서 기항을 허락하는 항구들만을 통해 항해해야 했으며, 결국 “아무리 강한 활이라도 과녁이 너무 멀면 낡은 헝겊조차 뚫지 못한다.”고 하듯이 목적지 블라디보스토크를 눈앞에 두고 지칠 대로 지쳐 이틀 동안에 동해상에서 완전히 격멸됨


[1] 나니와(浪速): 청일전쟁 전에 일본이 해군육성을 위해 구입한 군함 중 하나. 주력함은 청일전쟁 1년 전인 1893년 영국에서 준공된 고속순양함

[2] 발틱함대: 흑해함대동양함대와 함께 제정러시아의 유럽방면을 지킨 3대 주력함대 중 하나.

[3] 정자전법(丁字戰法): 일명 敵前回頭作戰. 함대를 ‘丁’자 모양으로 벌여 대전하는 전법.

[4] 나마무기(生麥) 사건: 1862년 8월에 요코하마 교외의 나마무기 마을에서 한 사무라이가 행렬이 지나가는 데 물러서지 않는다는 이유로 영국 상인 1명을 살해하고 3명에게 부상을 입힌 사건. 이에 대해 영국이 공식적인 사과와 배상을 요구했으나, 당시 극도로 고조된 양이운동(洋夷運動)의 분위기 속에서 이를 거부해 다음 해에 영국과의 사쓰에이 전쟁(薩英戰爭)을 발발시키는 단초가 됨.

[5] 어뢰(魚雷)는 자동장치에 의해 이동해서 폭발하는 폭탄이고, 기뢰(機雷)는 수중에 부설해서 표적을 폭파하는 폭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