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 家康, とくがわ いえやす, Tokugawa Ieyasu)는 센고쿠 시대부터 에도 시대 초기(1603년 음력 2월 12일 ~ 1605년 음력 4월 16일)의 무장이자 센고쿠 다이묘이다. 오다 노부나가, 도요토미 히데요시와 함께 향토삼영걸로 불린다.
울지 않는 두견새는 죽여버리겠다. (鳴かぬなら殺してしまへ時鳥, 오다 노부나가)
울지 않는 두견새는 울게 해 보이겠다. (鳴かずともなかして見せふ杜鵑, 도요토미 히데요시)울지 않으면 울 때까지 기다리겠다. (鳴かぬなら鳴まで待よ郭公, 도쿠가와 이에야스)
– 마쓰우라 세이잔의 수필 «갑자야화»에 수록된 센류
사람의 일생은 무거운 짐을 지고 먼 길을 감과 같다. 서두르지 말라. 부자유를 늘 있는 일이라 생각하면 부족함이 없다. 마음에 욕망이 일거든 곤궁할 적을 생각하라. 인내는 무사함의 기반이며, 분노는 적이라 여겨라. 이기는 것만 알고 지는 일을 모른다면 몸에 화가 미친다. 자신을 책할지언정 남을 책하지 말라. 부족함이 지나침보다 낫다.
人の一生は重荷を負て遠き道をゆくがごとし。 いそぐべからず。不自由を常とおもへば不足なし、 こころに望おこらば困窮したる時を思ひ出すべし。堪忍は無事長久の基、いかりは敵とおもへ。 勝事ばかり知りて、まくる事をしらざれば、害其身にいたる。おのれを責て人をせむるな。 及ばざるは過たるよりまされり。
기뻐하다가 잠에서 깨어 다시 잠든다. 덧없는 세상 꿈은 새벽 하늘과 같네.
(嬉やと 再び覚めて 一眠り 浮世の夢は 暁の空)
먼저 떠나든 뒤에 남든 결국 같은 것. 함께 갈 수 없는 것을 이별이라 생각하네.
(先にゆき 跡に残るも 同じ事 つれて行ぬを 別とぞ思ふ)
내 생애에 무서운 사람 특별히 고마운 사람이 네 분 있었지. 한 사람은 바로 신겐 공이지. 신겐 공은 내게 싸움을 가르쳐 주었어… 다음이 노부나가 공이고. 오다 노부나가… 얼마나 무서운 이름이었던가… 그러나 그분에게서 배운 것 또한 고마운 일… 이 세상에 내 스승이 아닌 것은 없지… 차근차근 회고해 보니 얼핏 보기에 우매한 것 같은 천민 속에서도 신불의 모습은 뚜렷이 찍혀 있어. 무한한 가르침을 간직하고서… 다음으로 내게 스승이 된 것은 다이꼬오였다. 다이꼬오가 내게 가르쳐 준 것은 시류의 변화였지… 아니, 그 변화에 어떤 태도로 대처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였어. 그것을 다이꼬오는 자기의 죽음으로 가르쳐 주었어. 고마운 노릇이지. 다음이 바로 그대지…
– 도쿠가와 이에야스. 마사무네에게. ‘울지 않는 새를 울 때까지 기다린’ 후의 감동
처음에는 그녀도 이에야스를 바닥을 알 수 없는 차고 흐린 묵은 늪처럼 생각했었다. 그런데 그 감정을 표면에 드러내지 않는 무시무시함은, 실은 사람에게는 죽을 때까지 성장이 있다고 하는 이에야스 식의 인간관에서 비롯된, 겸손과 위로에서 오는 ‘인내’라는 것을 알았다.
– 다쓰 부인. 시아버지를 생각하며
고에쓰. 인간 마음의 성장에는 세 개의 커다란 단계가 있는 모양이야. 아니, 세세히 따지면 숱하게 많을 테지만 말이지, 우선 맨 먼저 인간은 자기 자신을 위해 일을 하는 거야. 그런데, 다음에는 어떻게 해서 사심을 털어 버릴까 하고 고심을 하지. 사심, 사욕으로 살아나가는 한심스러움이 마음에 걸려서 못 견디는 시절이 계속되는 법이야. 입으로는 천하를 위하고 가신을 위한다면서 실은 내 자신의 욕심 뿐… 그렇게 생각하니 차마 신불 앞에 얼굴을 들 수 없는 심정이 들어서 말이지. 그런데 그런 시기가 지나고 나면 또 한 가지 커다란 것을 깨닫게 되는 거야. 실은, 이 세상과 나 개인과는 별개의 것이 아니라는 것이야. 알겠나. 이 몸의 도리를 말한다면 천지에 가득 차고, 천지의 도리를 줄여가면 이 몸 속에 숨어 버린다. 즉, 연마해 올린 사심은 그대로 천지의 도리인 것일세… 과연…
거기까지 생각을 하시면 사심은 곧 천지의 마음, 公心 또한 천지의 마음, 둘 사이에 차별은 없다… 는 것입니까?
나는 어렸을 때 순뿌의 린자이 사에서, 셋사이 도사에게 곧잘 그 말씀을 들었었다. 한 톨의 쌀 속에도 우주는 그대로 깃들어 있는 것이라고… 그것을 도중에서 그만 잊어 버리고 사심을 완전히 떠나지 않으면 위인이 될 수 없는 것이라고, 잘못 생각을 했었다… 고에쓰, 연마된 사심은 우주의 마음이 될 수 있는 거야. 난 그 뒤부터 아주 훨씬 편해졌다. 그렇다고 방심을 하는 건 아니야…
– 도쿠가와 이에야스. 고에쓰와의 대화에서
대세에 거슬리는 자는 반드시 멸망한다. 그건 하늘에 대고 침을 뱉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 도쿠가와 이에야스
살아 있는 한, 그 하늘과 땅이 가리키는 <올바름>을 위해 일한다. 아니, 일을 하기 위해 살아 있는 것이다…
– 도쿠가와 이에야스
나는 남을 칭찬하는 것이 제일 싫다. 칭찬하지 않으면 안될 만한 인물이란 세상에 그리 흔한 게 아니다. 그걸 칭찬한다는 것은 마음에도 없는 아부, 상대에 대한 모욕이다… 사람은 결코 사람을 얕잡아 봐선 안돼. 자신을 잃게 하는 욕설이나 꾸지람도 삼가야 한다. 하지만 그와 마찬가지로 지나치게 칭찬만 하는 것도 무책임한 짓. 칭찬을 하면 대개의 사람은 강아지처럼 꼬리를 치겠지. 다이꼬오는 그 호흡을 잘 알고 있어서 이를 인심을 모으는데 곧잘 썼다. 그러나… 나는 달라. 나는 칭찬하지 않는다. 뜻 없이 칭찬을 늘어놓는 것은 상대를 모욕하는 것으로 보기 때문이야.
– 도쿠가와 이에야스
나는 자신의 출세나 녹봉을 위해서 일해 온 것은 아니다. 나는 이에야스에게 반한 거야. 사나이는 말이야, 반한 사나이를 위해서는 이해를 떠나 일하는 법이거든.
– 혼다 사쿠자에몬
이길 궁리를 하다가 호오죠 부자는 끝내 스스로 자멸해 갔다. 지는 것을 몰랐다. 양보하는 것을 잊고 있었어… 마사노부, 나는 말이야, 가신들에게 많이는 주지 않겠다. 많이 주지 않으면 일을 하지 않는… 그런 가신은 아무리 많아도 소용없다는 걸 깨달았다. 지나치게 풍부하면 결속력이 약해져서 오히려 고집을 부린다… 호오죠 멸망의 원인은 거기에 있었던 거야.
– 도쿠가와 이에야스
신념이 없는 행동만큼 세상 일을 그르치게 하는 것은 없다.
– 도쿠가와 이에야스
이에야스의 가신들이 강한 것은, 그 자신의 소박 검소한 데에 있다. 그는 결코 신하들 누구보다도 사치하지 않았다. 아니, 사치한 자의 통솔력은 속이 들여다 보였다. 보다 잘 통솔하기 위해서는 더욱 사치하게 되고, 녹을 늘려 주지 않으면 필시 감당할 수 없게 되어 간다. 더 줄 수 있는 땅이 무한정이 아닌 한, 이 통솔력은 머잖아 한계점에 이르러 산산이 허물어지고 말리라. 이에야스가 요리토모 이후의 가마쿠라 역사 가운데서 배운 것은 바로 이러한 점이었다. 스스로의 검소함을 보여 주어 부족한 것을 한탄하지 못하게 하는 데에 단결과 희망이 생겨간다. 불평이란 어떤 경우에 있어서도, 정지와 분열의 근원이 되는 것이었다.
– 야마오카 소하치
나도 맛있는 음식은 맛이 있다. 그러나 가난한 백성이 있는 한은 그들에게 부끄러워서 얼굴을 들지 못할 호사는 삼가야 한다고 늘 생각하고 있다. 사람은 너나 할 것 없이 모두 신불의 사랑하는 자식들이야. 그리고, 조금이라도 남보다 호사를 한다고 생각하면 언젠가 그것이 마음의 부담이 되어 커다란 자신을 잃어가는 법이다.
– 도쿠가와 이에야스. 차야에게 소찬을 변명하며
쓰끼야마와 얘기를 나누다 보면 나는 언제나 분노를 느꼈다. 상대의 주장이 옳으면 옳을수록 노여움이 끓어 올랐었지… 옳다는 것은, 때로는 조금도 사람을 행복하게 해 주지 못하는 거야.
– 도쿠가와 이에야스. 가신들에게 상경을 설득하며
허허실실의 책략은 실은 적보다 자기 편에 대해서 더 필요한 것이었다.
– 이에야스, 가즈마사, 사쿠자에몬의 2인 3각
인간의 생애에는 중대한, 중대한 위기가 세 번은 있는 거지. 아이에서 어른이 될 무렵의, 무분별한 色情… 그리고 장년기의 혈기만 믿는 투쟁심. 그것으로 끝나는가 생각했더니 또 하나 있었어. 불혹을 넘어서 나는 이제 완성되었다고 생각하는 자만심…
– 도쿠가와 이에야스. 병석에서
싸움에 진 편이 멸망해 가는 것은 당연하지만, 이긴 편 역시 머지 않아 반드시 파멸을 움켜잡고 있는 것이었다. 승리와 慢心은 피할 수 없는 인간의 버릇인 듯하다. 그 눈으로 볼 때 이에야스로서는 노부나가 역시 너무 지나치게 이긴 것 같은 생각이 들어 어쩔 수가 없었다.
– 도쿠가와 이에야스. 나가시노 전투의 복기 중
느릿하게 움직이는 물이란 아주 답답하게 보인다. 그러나 그러한 물도 같은 뜻을 서로 구하여 모이면 마침내 폭포로도 분류될 수 있는 것이다.
– 도쿠가와 이에야스
역시 가신의 의견을 듣고자 했던 것이 잘못이었다. 만일 의견을 말하게 하고 그것을 채택하지 않는다면 불평의 씨앗만이 남으리라.
– 도쿠가와 이에야스. 신겐과의 대결을 앞두고
사람과 사람이 모이면, 그 가운데서 저절로 우두머리와 손발의 서열이 생겨가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에야스는 자신이 순뿌에 있는 동안 쓰끼야마 마님에게 필요 이상의 응석을 허락하여 두 우두머리가 있는 집으로 만들어 버리고 말았다. 싸우는 것이 싫어서였지만 그것은 마침내 평생 마님을 꺼려야만 하는 원인이 되고 말았다.
– 야마오카 소하치
죽이는 자는 죽음을 당한다. 살리는 자는 삶을 얻는다… 첫째도 책략, 둘째도 책략이라면 서글픈 일. 모든 행동이 하늘의 뜻에 어긋난다면 언젠가는 책략 때문에 쓰러지고 말리라…
– 도쿠가와 이에야스. 오아이와의 대화에서
그 때 이에야스는 자기의 운명을 시험하려고 생각했다. 여기서 신불에게 외면당할 정도라면 살아야 보람 없는 인생이라고 골똘히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은 이미 8할 가량의 패배를 내포한 젖비린내 나는 생각이었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 것이다. 운명이란 어떤 경우에든지 시험해도 좋은 것은 아니었다. 끊임없는 준비, 끊임없는 전진, 인내에 인내를 거듭하며 다만 그것에 철저를 기할 도리밖에는 다른 길이 없었던 것이다…
– 도쿠가와 이에야스
싸우는 것만이 싸움이 아니다, 노부야스. 싸우고 싶을 때 지그시 참고 움직이지 않는 인내도 역시 싸움의 수법. 가히의 신겐 공은 그 싸움에 강했다.
– 도쿠가와 이에야스
그들이 온몸을 떨며 고함쳐대는 것도, 덮어놓고 칼을 휘두르는 것도, 결국은 오랫동안 인종을 강요당해 온 자의 열등감에 지나지 않는다. 이에야스는 냉정히 그것을 간파한 모양이다. 그리고 집단심리의 맹점을 찔러 그들 속에서 우선 타산과 이성을 끌어내려고 시도하는 것이 틀림없다.
– 도쿠가와 이에야스. 귀환 도중 조우한 농민 폭도를 진무하는 광경에서
그때 대감님을 쳤었더라면, 이겨도 진 것이 됩니다.
허허, 어째서 이기고도 지나.
착한 분을 죽이고 그보다 못된 사람에게 천하를 잡게 하면, 농군들은 또 평생 울 수밖에 없어요. 착한 분이라고 알았을 때 그것을 살리는 것이 이익이라고… 그렇게 말했더니 다른 사람들도 납득했죠… 대감님, 도리라는 것은 강한 것이더군요.
– 도쿠가와 이에야스와 농민 폭도와의 대화
백성의 말을 깊이 깊이 새겨 들으란 셋사이 도사의 가르침은 백성의 말에서 진리를 들으라는 뜻이었다. 백성의 소리 외에 진리가 있다고 생각하면, 그것이 어느덧 제멋대로의 망상이 되어 있다는 가르침이었다. 그 소리를 듣기 위해서는, 우선 ‘自我’를 버리고 ‘無’가 되는 것이며, ‘無’가 되어 버리는 것이, 실은 보다 큰 ‘我’를 확립하는 기초가 된다고 곧잘 가르침을 받았다…
– 도쿠가와 이에야스. 농군 마고시로와의 대화 후의 느낌 가운데
그러냐, 그대는 그다지도 무사를 무법한 것으로 알고 있었던가… 본국에 돌아가면 그대의 지금 말을 다시 음미해 보겠다. 자기 일신을 위한 일만으로는 결코 군사를 움직이지 않도록 말이야…
– 도쿠가와 이에야스. 배를 내주느니 죽겠다는 뱃사공과의 대화
우대신은 너무 탐욕스러웠는지도 모른다. 한꺼번에 평화를 불러오려고 말이야. 아니, 나도 마찬가지… 길만 재촉하고 마음에 준비가 없었다면, 본국에 돌아가서도 당황만 할 뻔 했지… 그런가, 불제자는 모든 인간이 소유의 욕심을 떠나기까지 싸움이 계속된다고 보고 있는가? 불교가 지향하는 것도, 역시 민중의 희망과 같다는 것이었다. 아니, 그렇기 때문에 부처님은 거룩하고, 승려는 아직도 사원과 함께 남아 있는 것이 틀림없다… 모든 사람이 한결같이 바라는 ‘극락 정토’의 건설에 목숨을 내걸고 협력하는 것이 참된 무장의 임무였다.
– 도쿠가와 이에야스. 승려 겐꾸와의 대화에서
작전회의의 마지막은 언제나 선동의 능란성과 졸렬함에 대한 것으로 미치어 온다. 걸핏하면 징조가 좋으니, 재수가 좋으니, 벌써 이겼다느니, 하고 온갖 현상을 포착하여 그것을 암시로 삼아 겁내는 마음을 봉해가는 것이다. 바꾸어 말하면, 그것은 이성적으로 계산을 다 한 다음, 이윽고 열광으로 인간을 몰아치지 않으면 안되기 때문이었다.
– 야마오카 소하치. 이에야스가 노부마사에게 ‘사위 대 사위’의 대결을 명하는 장면에서
싸움이란 너무 이겨도 안되는 거야… 지금 히데요시를 쳐부숴 보지, 온 나라가 또다시 혼란해질 것이다. 나에겐 히데요시만한 힘이 아직 없다… 온 일본 땅의 영주들을 몽땅 상대로 해서 싸우지 않으면 안된다. 그러한 나 대신 히데요시가 모든 화살을 받고서 있어 준다… . 히데요시로서도 다스려지는데, 일부러 천하를 난세로 몰아넣는다는 것은 나의 맹세가 거짓이 된다.
– 도쿠가와 이에야스. 고마키 전투의 승리 후
하나가 된다는 것은 자신을 죽이고 상대에게 종사한다는 것은 결코 아니었다. 안에서 상대를 감시하고 상대의 잘못을 바르게 고칠 수가 있다. 대립을 하면 쌍방이 목적을 잃고 다시 세상을 난세의 소용돌이 속으로 밀어 넣을 우려가 있었으나 대립을 풀면 목적은 한 가지인 것이다…
– 도쿠가와 이에야스. 대 히데요시 전략
사사건건 위압으로 영주들을 납득시키려 든다. 軍事는 그것으로 된다. 상대의 무력을 위축시켜 버리면 싸우지 않고 이기기도 하리라.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위압이지 납득은 아니다. 짓눌린 평화이지, 진정한 평화라곤 할 수 없다.
– 도쿠가와 이에야스. 히데요시의 정치에 대한 평
대장이란 언제나 보통 사람과는 달리 자기를 떠난 인내 속에서 살지 않으면 안 된다.
– 도쿠가와 이에야스. 히데다다에게 다쓰와의 혼인을 권유하며
도시이에에게 그러한 경멸감을 품게 할 만한 사내라면 별로 문제 삼을 가치조차 없다, 어차피 세월의 심판을 받아 비참한 노쇠의 손아귀에 잡히고 말 뿐인 것이다… 사람이 사람을 심판한다… 는 둥 하기보다는 더욱 더욱 커다란 심판이 사람의 일생을 기다리고 있다.
– 마에다 도시이에. 이에야스와의 조우 직전
우정… 그것마저 지킬 수 없는 인간이 되고 싶지는 않다. 아니, 그와 같은 인간이었다면 거기서부터 그의 <사명>은 반드시 하나의 파탄에 직면될 것이 틀림없을 것이다…
– 도쿠가와 이에야스. 마에다 도시이에를 답방하며
마에다나 아사노에게 반심은 없어. 하지만 나가모리나 마사이에에게 그 따위 꿈을 그리게 한다… 다시 말해서 참소를 받는다는 것은 받는 쪽에도 그만한 미숙한 틈이 있기 때문이야. 틈은 즉 소중한 자기에 대한 불충심…
– 도쿠가와 이에야스
개인의 기량이 아무리 뛰어난 것이라도 인간의 수명에는 한도가 있다. 그것을 깨닫지 못하는 새로운 계획은 봄눈보다 더 허무한 것이라고 회상을 구실삼아 충고를 하는 것이었다.
– 도리이 모도다다. 이에야스와 영결하며
이에야스가 측근의 의견을 모을 때에는 직접 그 자의 견식을 시험해 보려는 경우와, 거기서 끌어낸 상대방의 이해력에 적응할만한 정도의 교육을 베풀려는 경우가 있었다. 젊은 사람과의 대담은 거의 후자에 속하고 있다.
– 야마오카 소하치
어떠한 종류의 불평도 반항심도, 같은 인간이면서 자기 쪽이 대접을 못 받고 있다고 생각했을 때 싹터 온다. 상대방 이상의 재능이 자기에게 있다고 믿으면서 그 상대에게 꿀리고 있다 생각하는 것만큼 불행한 생활방법은 없다… 사람을 상대 않고 하늘을 상대하며 그 뜻하는 대로 전력을 다 기울여 보리라고…
– 도쿠가와 이에야스
이번 소동에 대한 자기의 태도가 사사로운 감정이나 사사로운 분노로 더럽혀진 야심적 지휘가 아니었나 반성한 것이다. 사사로운 감정이나 야심의 지휘였다면 그건 많은 無理를 내포한다. 무리는 일시적 소강상태를 가져오기는 하더라도 언젠가는 무너지고 마는 것이었다.
– 도쿠가와 이에야스
미쓰나리의 편에선 이에야스를 적이라고 떠들어 대고 있다. 하지만 이에야스는 그것을 아이들의 소동으로 차분하게 지켜보며 상대가 떠들다가 지쳤을 때 기회를 잡아 해결해 버리면 그뿐이었던 것이다. 성질이 느긋한 것이 아니다. 아이들끼리의 흥분은 식어 갈수록 단결이 흩어져 온다고 냉정하게 꿰뚫어 보고 있다. 그리고 이해득실의 계산을 할 수 있도록 상대방에게 시간 여유를 주면 그때에 가서 반드시 옳은 길로 나아가는 사람에게 편을 들게 되리라고 판단하였음이 분명하다.
– 도쿠가와 이에야스
이에야스는 싸움이라는 것은 이상한 것이라고 문득 생각했다. 냉정하게 생각하면 십중팔구까지 승패를 예측할 수 있는 능력을 인간은 가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 이긴다는 불가사의한 계산에 분별을 잃고 쓸데 없는 피를 흘리는 것이다.
– 이시다 미쓰나리
싸움에 이겼다는 것은 이를테면 사업의 중간에 지나지 않는다. 문제는 그 뒤의 경영에 있었다. 승리자의 통제와 패자의 처벌에 영토 문제가 얼크러져 있어 한 걸음만 잘못 디디면 곧 다음 싸움의 싹을 낳게 된다.
– 도쿠가와 이에야스
누구나 말이다, 정의란 것이 그대가 찾고 있는 것처럼 깨끗이 닦인 구슬 그대로 반짝이는 것이라면 고생하며 찾을 자는 하나도 없어. 정의 또한 항상 진흙 속에 있지…
– 도쿠가와 이에야스. 나가야스에게
그 무렵 이에야스가 좀더 주인다운 주인이었다면 그 놈에게 그와 같은 엉큼한 짓은 꾸미지 못하게 했을 것을… 이에야스는 젊었어… 이에야스가 젊었던 탓에 사나운 말을 명마로 바꾸지 못했지. 그것이 그 놈의 불운이었어. 주인 쪽에서 본다면 가신은 잘 골라야 되는 것. 헌데 섬기는 쪽에서 본다면 참으로 주인을 잘 고르지 못하면 야시로 같은 불쌍한 일이 생기게 될지도 모르는 거야
– 도쿠가와 이에야스. 나가야스에게
인간은 천성보다는 훈육이 훨씬 큰 비중을 갖는다.
– 도쿠가와 이에야스. 히데요리에 대한 아쉬움을 피력하면서
대장이란 것은 슬플 때 울지 않는 거지. 괴로울 때 참는 거지… 그리고 맛있는 것은 부하에게 먹이는 거야. 어때, 고로타는 대장이 될 수 있을 것 같으냐.
– 도쿠가와 이에야스. 고로타마루와의 대화에서
구상은 누구나 할 수 있다. 문제는 그걸 활용할 사람이 있느냐 없느냐에 달려 있는 거다…
– 도쿠가와 이에야스. 진에몬과의 대화에서
이에야스는 조부도 아버지도 어머니도 아내도 자식도 모조리 난세에 빼앗긴 피해자였다. 그리고 온갖 의미에서 한 번은 인생의 실패자이기도 했던 것이다… 그 이에야스가 평화를 초래하는 귀신이 안된다면 그도 또한 비참하게 시대의 형세에 짓밟히고 말았을 것이 틀림없다. 그러나 이에야스는 같은 실패를 결코 두 번 다시 되풀이하지 않았다. 한 번으로 참담한 고생을 맛보아 분간하고 거기에 냉큼 다음의 성공을 포착했다.
– 이타쿠라 카츠시게
인생에서 무엇이 제일 중요한지 그 마음가짐을 말씀해 주십시오. 사람의 일생은 무거운 짐을 지고 먼 길을 가는 것과 같다. 서두르지 말지어다… 부자유를 일상사로 생각하면 그리 부족한 것은 없는 법이야. 마음에 욕망이 솟거든 곤궁했을 때를 생각할지어다. 참고 견딤은 無事長久의 근원이요, 노여움은 적이라 생각하라. 이기는 것만을 알고 지는 일을 모르면 해가 그 몸에 미치는 것이다. 자신을 책하고 남을 책하지 말라. 미치지 못하는 것은 지나친 것보다 나으니.
– 도쿠가와 이에야스. 이타쿠라 카츠시게에게 들려준 自戒. «大望» 전편의 핵심
참다운 충신이란 도요토미 가문이나 도꾸가와 가문의 충신을 가리키는 게 아니란 말야. 진짜 충신이란 하늘의 충신을 말하는 거야. 이 이에야스도 하늘(진리)의 충신인고로 지금 천하를 맡고 있다.
– 도쿠가와 이에야스. 사카이 행정관 나루세 마사나리에게
모르는 것은 해 보았자 헛일이야. 알 때까지 아무 것도 하지 마라.
– 도쿠가와 이에야스. 사카이 행정관 나루세 마사나리에게
같은 내용이지만 사람에 따라, 연령에 따라, 환경에 따라 모두 느낌이 다른 것을 알고 있느냐…
– 도쿠가와 이에야스. 마사스미에게
그렇다면 또 한 가지. 누구의 입으로 히데다다에게 고하게 하는 편이 히데다다의 궁리로 활용될 것인가, 그걸 첫째 고려하여야 한다… 도시카쓰가 말한다면 히데다다는 가볍게 듣는다. 그러나 내가 딸려 준 나이 먹은 마사노부에게서 들으면 심각하게 듣는다.
– 도쿠가와 이에야스. 마사스미에게
인간이 과연 모두가 성현의 길을 받드는 성인이 될 수 있을 것인지… 실제로는 평화를 기뻐하는 자만이 있는 게 아니란 말야. 십중팔구까지는 기뻐하지만 기뻐하지 않는 자도 또 얼만가는 있단 말야.
– 오다 우라쿠. 이에야스를 비판하며
그만큼 난장판이 계속된 난세의 뒤입니다. 그러므로 엄하게 할 곳은 엄하게 다스리지 않으면 그들은 더욱 더 새로운 정치를 얕봅니다. 불교에서도 敎化를 위한 엄격함은 결코 무정, 무자비라고 보지 않습니다.
– 덴까이 도사. 이에야스와의 대화에서
주인된 자는 항상 물이 새는 배를 타고 불타는 지붕 밑에서 잠을 잔다는 마음가짐이 긴요한 것이겠지…
– 도쿠가와 이에야스. 하야시 도슌에게
소년기에서 청년기로 들어가는 어떤 시기의 변화에는 정해진 코스가 있는 모양이었다. 우선 까닭 없는 반항기가 사춘기이고 그것이 지나면 몹시 허세를 부리게 된다. 자못 어른스러운 듯이 버티며 반감이라고까진 할 수 없더라도 연신 지식과 야유를 자랑한다. 말할 것도 없이 어느 것이나 속이 얕은 자기 주장인 것이며 그 이상의 사려 분별과는 거리가 먼 것이다.
– 가다기리 가쓰모도. 히데요리에 대한 소회
인간이란 역시 7할까지는 감정으로 진퇴할 수 있는 동물인 모양이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이에야스의 희망도, 그에 감동해서 하는 그들의 약속도 꽤나 무리한 일이었다. 자손들의 생활까지도 조상들이 규정한다는 것은 역시 아집의 하나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사람은 자기를 믿어 주는 자를 위해서는 기꺼이 죽을 수도 있는 일면을 없앨 수는 없는 모양이다. 그렇다면 그것은 하나의 아름다운 ‘의지’라고 생각해도 좋을지 모른다.
– 야마오카 소하치. 이에야스가 두 아들의 보좌를 가신에게 부탁하는 광경에서
나는 일이 벌어질까 봐 두려워서, 뿌리 위에 흙을 덮으려고 했어. 흙을 덮으면 뿌리는 더한층 뻗어갈 뿐이지…
– 도쿠가와 이에야스. 차아 부인에게
만에 하나라도 패할 리는 없으리라. 그러나 기세를 타고서 과격한 승리를 거둘 우려는 충분히 있었다. 싸움이란 승패와는 달리 지상에 깊은 원한의 뿌리를 박는다. 과격하게 승리를 하면 그 뿌리는 점점 크게 번져서 뒷날 뜻밖의 곳에서 불행한 싹을 내미는 것이다.
– 도쿠가와 이에야스
그러나 배도 8할쯤 부른 것이 건강에 좋은 것과 마찬가지로 승리도 8할쯤으로 충분한 거야. 알겠나. 너무 이기면 과식한 것과 마찬가지로 몸에 해는 될지언정 약은 되지 않아. 그대도 그걸 잊지 말게.
– 도쿠가와 이에야스. 마사스미에게
불의를 행하는 자는 반드시 천벌을 받는다. 이건 움직일 수 없는 진실이다. 특히 젊은 사람들은 이것 가슴에 새겨 두었다가 뒷날의 처세를 그르치지 않도록 해야 한다.
– 도쿠가와 이에야스. 마사무네와의 대화 가운데
개인의 지혜나 사고에는 한정이 있다. 참다운 지혜자란 남이 하는 말을 여러 가지로 들어 보아서, 그 중 좋은 지혜를 이용하는 사람이다.
– 도쿠가와 이에야스
젊을 때는 모두들 과감한 탈선을 하는 것… 그러나 이것은 연령과 함께 차차 수그러지는 한낱 혈기. 그럴 때마다 벌한다면 어떻게 되겠나? …
– 도쿠가와 이에야스. 센히메 자결 강요를 힐난하며
싸움이 얼마나 두려운가를 모르는 자만큼 다루기 힘든 것도 없다…
– 도쿠가와 이에야스. 夏陣을 앞두고
역시 분노는 적이야.
– 도쿠가와 이에야스. 오다 우라쿠와의 대화에서
세상을 태평 세상으로 바꾸기 위해서는 새로운 질서가 필요한 것은 말할 것도 없으며 그 지표를 보여 주는 ‘법도’는 엄격히 지키게 해야 했으나, 그렇다고 법도가 있기 때문에 인간이 존재한다…는 것은 아니었다. 법도도 역시 어떻게 해서 사람을 보다 잘 살게 하는가 하는 궁리에 지나지 않으며, 그 위에 또 하나 중요한 천지 자연의 ‘법’이 있는 것이다…
– 도쿠가와 이에야스. 히데요리 자결 소식을 듣고
그리고 인간의 지혜 여하에 따라, 싸움을 근절할 수는 없더라도 그 수효는 줄일 수 있는 거야. 그렇게 하자면 먼저 강해져야 한다. 우리들에게 싸움을 걸어도 못 이긴다…는 것을 인식시킨다…
– 도쿠가와 이에야스. 다다테루와의 대화 가운데
남에게 엄격한 자는 내 자신에게 가장 엄격해야만 되오… 세상 사람들은 말이오, 자기 자신의 못남을 남의 실패에 견주며 자위하는 버릇을 갖고 있소…
– 도쿠가와 이에야스. 히데타다와의 대화 가운데
공허한 염불만으로 세상이 깨끗해지거나 올바른 평화가 찾아온다면 누구나 고생할 필요가 없겠지요…
– 홍아미 고에쓰. 이에야스와의 대화 도중 고다이인을 비판하며
이층에서 내려다 보면 아래층이 잘 보이는 법. 하지만 아래층의 사람이 아무리 발돋움을 해 봐도 이층은 넘겨다 볼 수 없습니다. 우리들이 매일 주고받는 말에도 항상 이런 차이가 있지요. 오고쇼가 지금 자책을 하고 계시는 것은 치지 않아도 될 것을 쳤다는 반성…
– 야규 무네노리. 이에야스의 夏陣에 대한 소회의 설명
모름지기 사람과 인연을 끊으려 할 때엔 양편 사이에 오해나 감정의 갈등이 남지 않도록 또 다른 보답, 또 다른 배려가 중요한 거야.
– 도쿠가와 이에야스. 마사무네의 관직을 높여준 배경 설명
자비는 초목의 뿌리다. 人和는 그 꽃과 열매다. 사람과 사람이 대등한 입장에 있을 때엔 자비라고 하지 않고 동정이라고 한다.
– 도쿠가와 이에야스. 야마오카 소하치
인간의 생활에는 항상 두 가지 면이 있다. 그 하나는 사사로운 정, 또 하나는 공적인 정… 이라고 대부분의 자들은 사물을 둘로 나누어서 생각한다. 그러나 둘로 나누면 공을 위해서 언제나 사사로운 정을 버려야 하는 괴로움만이 남게 된다. 여기에 인간 그릇의 크고 작음을 분별하는 중요한 구분이 있다고 생각해라. 사와 공이 언제나 마음 속에서 격투를 하고 있는 경지라면 사람의 일생은 희생의 연속… 법을 지키고 질서를 지키려고 하면 할수록 괴로움은 더해간다. 훌륭한 인생일수록 괴로운 생애가 되어 버리는 거야. 公私一體. 사사롭게 기뻐하는 것이 그대로 공에서도 통한다… 는 경지에서 일해야만이 최고의 그릇인 거다…
– 도쿠가와 이에야스. 가쓰다까에게 사자의 명을 내리며
전국 세상에선 약한 소리란 금물. 하면 된다는 기개가 제일이다… 그러나 태평 세상의 마음가짐은 그것만으로는 안된다. 첫째도 대비, 둘째도 대비. 자신을 가질 수 없는 일에 대해서까지 큰소리를 치는 것은 당치 않은 일…
– 도쿠가와 이에야스. 이이 나오타카
이에야스는 생명이란 것은 커다란 수영장… 즉 거목 속에 있기 때문에 인간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 야마오카 소하치. 이에야스가 시의를 물리치는 장면에서
알겠지. 인간에게는 자기 것은 하나도 없다. 몸도… 생명도…만물이 전부 그 누구의 것도 아니라는 말은 모든 사람의 것이라는 말이다. 모든 사람의 것을 맡고 있는 것이다… 내 목숨도 모든 사람의 것… 모든 사람이 맡긴 것… 내가 맡고 있던 것을 장군에게 넘겨 맡기는 거다. 알겠느냐? 모든 사람을 위한다는 뜻은 지금 살아 있는 자들만은… 아니다. 앞으로 한없이 태어날 수많은 사람들을 위해 소중히 써야 한다… 는 조심성을 말한다. 지레짐작하여 지금 살아 있는 자들이 모두 서로 나누어 가져 본들 아무런 의미가 없는 거야.
– 도쿠가와 이에야스. 아들에게 남기는 유언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은 실은 누구의 것도 아니다. 이 누구 것도 아니라는 것은 만민을 위한 것… 이것을 잘못 알고 내 것이라고 생각하는 데서 분쟁의 싹이 튼다.
– 야규 무네노리. 이에미쓰에게 영지를 반납하며